[ 가톨릭 언론인 신앙강좌 ] - 자료 정리

o 기간 : ‘99. 9.1~’99.11.3 (10주)
o 장소 : 가톨릭교리신학원
o 주관 : 한국가톨릭언론인협회

  강좌 순서 및 내용 강좌 일시 및 강사
01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01주째
ㅇ 강의 내용 : 복음의 가르침 (1) / 복음과 신앙생활
ㅇ 강의 일시 : ‘99. 9. 1(수) 20:00-22:00
ㅇ 강 사 : 성서 못자리 허영엽 신부
02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02주째
ㅇ 강의 내용 : 복음의 가르침 (2)
ㅇ 강의 일시 : ‘99. 9. 8(수) 20:00-22:00
ㅇ 강 사 : 이현주 목사 (개신교)
03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03주째
ㅇ 강의 내용 : 사목과 선교
ㅇ 강의 일시 : ‘99. 9.15(수) 20:00-22:00
ㅇ 강 사 : 가톨릭대학교 교수, 임병헌 신부
04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04주째
ㅇ 강의 내용 : 가톨릭 사회교리
ㅇ 강의 일시 : ‘99. 9.21(화) 20:00-22:00
ㅇ 강 사 : 가톨릭대학교 교수 이동익 신부
05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05주째
ㅇ 강의 내용 : 언론관련 교회문헌 해설
ㅇ 강의 일시 : ‘99. 9.29(수) 20:00-22:00
ㅇ 강 사 :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박영상 원장
06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06주째
ㅇ 제1강의 내용 : 바른 기도
ㅇ 제2 강의 내용 : 가톨릭 신앙과 나의 삶
ㅇ 1강의 일시 : ‘99.10. 6(수) 20:00-21:00
ㅇ 강 사 : 성심여자고등학교 교장 김영자 수녀

ㅇ 2강의 일시 : ‘99.10. 6(수) 21:00-22:00
ㅇ 강 사 : 월간 샘터 주간 정채봉 교수
07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07주째
ㅇ 강의 내용 : 성지, 성인을 통해 본 한국의 가톨릭 신앙
ㅇ 강의 일시 : ‘99.10.13(수) 20:00-22:00
ㅇ 강 사 : 시인, 신앙유산연구회 회장 이충우 안드레아
08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08주째
ㅇ 강의 내용 : 한국가톨릭교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ㅇ 강의 일시 : ‘99.10.20(수) 20:00-22:00
ㅇ 강 사 : 시흥동 주임신부 박기호 신부
09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09주째
ㅇ 강의 내용 : 내가 본 한국, 한국인, 한국교회
ㅇ 강의 일시 : ‘99.10.27(수) 20:00-22:00
ㅇ 강 사 : 전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
10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10주째
ㅇ 강의 내용 : 피정(2000년 대희년), 평가
ㅇ 강의 일시 : ‘99.11. 3(수) 20:00-22:00
ㅇ 강 사 : 가톨릭대학교 교수 박영식 신부
     
  강사 프로필  
     




( 제1기 언론인 신앙학교 강좌 메모 / 메모자 : 1기 수료자 wonpetro )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1주째
ㅇ 강의 일시 : ‘99. 9. 1(수) 20:00-22:00
ㅇ 강의 내용 : 복음의 가르침 (1) / 복음과 신앙생활
ㅇ 강 사 : 성서 못자리 허영엽 신부

성서 못자리는 성서를 가르치고, 삶을 나누는 본당의 젊은 사제들이 참여 활동

한국 천주교는 2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그동안 많은 성장을 하였다.
양반학자들이 천주학을 공부하고 받아드린 자생적 선교라는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영세율이 저하되고 있는데 이는 교회안에서의 복음화, 영적인 문제로써 사목자, 신자 모두 책임이 있다. 점차 종교에 대한 의존도 벗어 나고 있다. 외적인 것보다 내적(정신적, 영적)인 면에서 위기를 느껴야 한다. 교회는 신앙인의 공동체로 지상의 교회는 완전하지 않으며 단지 완전을 향해서 갈 뿐이다.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양적으로는 팽창하였으나 내적으로는 부실하다는 것이다. 소공동체,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도 사회속에 있으므로 사회의 물질주의, 개인주의, 업적위주 등 영향을 받게 된다. 90년대 이전만 해도 본당의 봉사자는 영광으로 알고 봉사했으나 지금은 작은 봉사도 꺼리고 있다. 봉사정신이 희박해지고 있고, 마음이 동하지 않고 있다. 냉담자도 많아지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원초적인 신앙회복과 신앙의 본래모습을 회복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복음은 희랍어로 기쁜소식, 부활에 관한 소식으로 부활은 신약성서의 핵심이다. 부활체험후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사는 것이 아니라 물질세계를 넘어서는 초월의 체험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그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에 복음(기쁜 소식)을 전하게 된다. 교회의 핵심적인 내용은 복음, 부활이며 신앙의 핵심이기도 하다. 초대 공동체는 복음화의 모델이다. 사도행전 2, 42-47, 사도행전 4, 32-35, 사도행전 5, 12-16절에 초대교회의 삶이 잘 나타나고 있다.

복음화의 주요한 요소

① 가르침을 받음, 가르침
② 친교(사귐)
* 초대교회때에 형제, 자매로 부름
③ 빵을 나눔
* 전례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웃과 빵을 나눔이다.
* 사회복지는 복음의 가장 기초적인 것이다.
본당 기금의 1/10을 쓰도록 되어 있으나 안되고 있다.
④ 기도
* 영혼의 양식이다. 삶속에서 꾸준히 기도(화살기도, 아침기도 등)해야 한다.

위의 4가지 모습을 보고 신자들은 증가하게 된다.
이는 신자와 비신자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신앙과 삶은 밀접하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신앙 따로, 삶 따로는 문제이다.
“내가 신앙인이다”라는 자각의식이 필요하다. 신앙생활은 전쟁터와 같고 쉽지가 않다.

복음화 되기 위해서는
① 회개하여야 한다. (하느님을 바라본다)
② 열심한 신심생활(성사, 전례)
③ 자신에 대한 사명감
④ 내 자신이 복음화되어야 한다.

복음은 지식, 머리로서가 아니라 그 것을 받아드려서 살아가는 것이다.
< 별지 ‘신앙과 복음생활’ 참조 >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2주째
ㅇ 강의 일시 : ‘99. 9. 8(수) 20:00-22:00
ㅇ 강의 내용 : 복음의 가르침 (2)
ㅇ 강 사 : 이현주 목사 (개신교)

현재 충남 예산 예당저수지 인근에 거주, ‘76년도 성서공동번역작업에 참여함

어느 수도자의 집(방)을 방문하는 기회가 있었다.
방에는 침대하나, 책상과 라틴어로 된 성서, 벽에 걸린 십자가뿐이었다. 수도자들의 생활자세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개신교에서는 목사, 장로, 교회 지도층에 있는 인사 수백명이 모여 연1회 성대한 회의를 갖는다. 이 자리에서 기금(성금)전달을 성대하게 한다. 꼭 이렇게 가시적으로 나타내면서 도와주어야 하는지.... 성경에 “자선을 베풀려거든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그러면 하늘에서 갚아 주실 것이다.” “광고하지 말아라”라는 가르침도 있다. 어느 것이 복음에 가까운 삶인가 ? 인간은 들어내기를 좋아한다. 예수님께서 “자선을 베풀려거든 아무도 모르게 하느님만 알게 하라”하시며 예수님도 어렵게 사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따르려는 마음이 있는지 의심이 간다. 복음은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 복(福)도 되고 화(禍)도 된다. 신명기에 모세에게 율법을 사람에게 주시면서 “율법을 지키면 내가 너희에게 상금을 주겠고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주겠다” 하셨다.

복음은 어떤 사람에게는 듣기 좋은 소리도 되고 듣기 싫은 소리도 된다. 하느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이 지식만 가슴에 가득차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박수친 사람은 세리나 창녀였지 율법학자들은 아니었다. 일제말기에 독립운동을 하던 두사람이 도망가 동굴에서 살고 있었다. 8.15해방이 되었음에도 모르고 살고 있었다. 복음(기쁜소식)의 전달이 안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날 어느 분이 이들을 만나게 되어 기쁜 소식을 이들에게 전했다. 한사람은 이 소식을 믿고 따라 내려 갔으나 한사람은 의심을 하고 따라 내려가지 않았다. 믿음이란 이런 것이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 복음은 죽을 수도 있고 살수도 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비신자 할머니와의 대화중에서.......
“하느님이 말씀(소리)으로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보이지도 않는 하느님을 믿을 수 없다. 보이면 믿겠다” 고 하시는 할머니가 있었다. 잠시후에 “말에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하느님을 믿겠습니까?” “그러면 믿지요.” “말에 힘이 있음을 보여 주겠으니 잠시 일어 서십시오. 하느님이 보이십니까? 안보이시면 앉으시지요.” 할머니는 내말에 따라 서고 앉았습니다. 저는 할머니에게 아무런 힘도 주지 않았는데 할머니는 제말에 일어서고 앉았습니다. 말에 힘이 있음을 아셨지요. 말은 보이지 않으나 힘이 있습니다. 하느님도 보이지 않으시지만 힘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말로 세상을 만드실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할머니는 하느님을 믿게 되었다.

“칭찬 받고 싶으면 칭찬을 하라”
“돈벌고 싶으면 돈을 써라”
“욕을 먹고 싶으면 지나가는 아무에게나 욕을 하라”
“받고 싶으면 주어라”

어느날 힘들고 지쳐 보이는 사람이 먹을 것을 동냥하는데 돌려 보낸적이 있다. 돌아서는 뒷모습이 나중에야 그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시다라고 생각하였으나 이미 사라졌다. 힘들고 지쳐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이시다. (여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 가신 이유 두가지 ? 하나는 남이 싫은 말(세리나 바이사이파 사람들에게는)을 죽기를 각오하고 말씀하신 것이고, 하나는 겟세마니 기도에서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라고 했기 때문이다. 개신교가 改新교인지 個信교인지 ...... ? 개신교와 가톨릭이 합하는 것은 현실성도 없고 의미도 없다. 뿌리는 같고 가지만 많을 뿐이다.

(참고)
성서 공동번역서 용어 조정문제 예
* 개신교는 바울, 천주교는 바오로를 -> 바울로
* 개신교는 하나님, 천주교는 천주님을 ->하느님으로
가톨릭은 하느님으로 쓰고 있는데 개신교는 아직도 하나님으로 쓰고 있다.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3주째
ㅇ 강의 일시 : ‘99. 9.15(수) 20:00-22:00
ㅇ 강의 내용 : 사목과 선교
ㅇ 강 사 : 가톨릭대학교 교수(기획처장) 임병헌 신부

4세기경에 교회가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 오게 된다. 그 이후 정착하면서 국교화, 세속화 되고 국가와 교회가 혼돈의 상태로 제도적인 틀속에 안주하게 된다. 이 제도적인 틀을 변화시키고자 연구도 하기 시작한다. (이냐시오 성인/예수회). 16세기에는 종교개혁이 있게 되고 17-18세기에 기존에 대한 반작용으로 르네쌍스와 계몽주의가 나타나면서 神중심에서 人間중심의 인본주의로 변화된다. 자연과학의 발달로 산업에 변화가 생기면서 교회는 수세로 몰리게 된다. 신과 인간과의 대결현상도 나타난다. 1969년 아폴로 우주선 발사를 계기로 인간이 승리라도 한듯하였다. 진보주의와 낙관주의로 인간이 인간사회를 지배할 것처럼...., 의학의 발달로 인간은 죽지 않을 것처럼.... 20세기에 극치를 이룬다. / 체르노빌 사건 등 러시아가 무너진후 핵발전은 무지개 빛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환경문제, 핵문제, 인간성의 문제를 안고 2000년으로 넘어가고 있다.

19세기에 신 신학운동과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제2차 바티칸공의회(개방공의회)를 개최한다. 4세기경은 역동적, 능동적인 신앙이었으나 그 이후 20세기까지는 수동적 신앙이 되었다. 당시 성스러운 것은 모두 성직자의 몫이었고 그렇지 않은 것은 신자들의 몫이라 생각했다. 이전의 교회는 은총의 보고(寶庫)로 성직자는 수도꼭지라는 성사를 통애서 물이라는 은총을 신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2 V.C)이후 교회의 구성은 하느님 백성이라는 개념으로 변화되었다. 이전에 신부와 신자는 각기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었고 수사들이 이의 중개역할을 하였으나 공의회이후 신부나 신자, 수사 모두는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협의의 성직자는 구원의 중재자로서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 하기 위한 자이다.“당신야말로 그리스도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신자이며 하느님의 백성이다. 18-19세기에 무신론이 대두되었다 “신은 죽었다.....” 실존적 무신론 세상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은 교회의 성사이다. 현대사목은 세상과 격리, 구분하지 않고 세상 한복판에서 행한다. 해방과 개인주의가 공존하고 있다.
사목의 주체는 세상속에서 하느님을 중재하는 모든 이들이다. 복음을 선포하는 모든 이들이다.

컵에 물이 반이 있는 것을 보고 두가지 관점에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물이 왜 반컵밖에 없는거야” 하나는 “여기에 귀한 물이 반컵이나 있네” 이 생각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우리는 컵에 물이 반이 담긴 것을 보고 어떻게 대할 것인가 ? 삶의 현장에서 보면 10명중 8명은 비복음적 생활을 하고 1-2명은 복음적 생활을 한다. 사목과 선교란 하느님 백성으로서 세상 한복판에서 구원을 중재하는 삶을 말하며, 주체는 하느님 백성이다. 언론이 가지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교회내에서 언론매체에 종사하는 사람이 적거나 없다는 것은 큰 불행이다. 각자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삶의 현장에서 선교를 해야 한다. 선교란 기쁜 소식, 부활사건,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복음화는 상호 호혜적인 의미가 있다.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선교를 해야 한다.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4주째
ㅇ 강의 일시 : ‘99. 9.21(화) 20:00-22:00
ㅇ 강의 내용 : 가톨릭 사회교리
ㅇ 강 사 : 가톨릭대학교 교수 이동익 신부

가톨릭 사회교리에 대한 책자소개
① 교회와 사회
* 15개 문헌 수록,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발간
*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 가톨릭 교회의 사상
② 사회교리학교
* 신자, 수도자 대상 1, 2, 3단계로 구성, 가톨릭 사회교리
③ 인간 교회의 길
* 1, 2권 : 문헌수록, 3권 : 실천교리 수록/ 가톨릭출판사 발간
* 1, 2권은 8개 주제, 3권은 6개 주제수록/ 3권은 미발간

“사회교리”라할 때 따분하다(딱딱하다)라는 인식이 있다.
사회교리는 그리스도교 사회론, 사회윤리를 말한다. 사회교리는 구원을 전제로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교리는 라틴어 “Dogma"로 교리, 교의를 말하고 교리란 신앙의 신조, 불변의 진리로 사회교리와는 구분된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노동하는 인간“에 대해 제3세계는 환영하고 정부시책에도 영향을 주었으나 선진국에서는 환영받지 못하였다. 교회는 정치, 경제문제에 대하여 전문가는 아니다. 미사중 강론에 사회적문제를 가지고 강론하는 것은 사회적 교리이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사회교리라 볼 수 있다. 19세기말에 사회교리가 대두된다. 교회는 사상의 발전, 신학의 발전, 사회발전에 따라 민감하게 움직인다. 교회의 역사안에서 큰 관심을 있는 것을 연구하다 보면 그 시대상을 알 수 있다.

한국천주교회는 순교자의 피위에서 세워진 교회이다. 박해시대의 신앙생활에 순교의 영성이 가미되어 교회의 발전을 이룬다. 325년 Sunday (일요일, 주일)가 선포되고 종교자유와 함께 안식일 다음 날 휴일을 지내게 된다. 종교의 자유와 예배의 자유가 있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은 신앙생활의 나태이다. 이를 위해 제반 규정들이 만들어 지고 교회법이 만들어 진다. 11세기경에 의무축일은 무려 연중 164일이나 되었다. (현재 한국의 의무축일은 연중 5일이고 주일이 아닌 의무축일은 8.15, 1.1, 12.25일이다.) 이 당시는 신학의 발달시기로 천상의 학자라 불리우고 신학을 집대성(요약)한 유명한 신학자 “토마스아퀴나스”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리스도교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신학이 발달하였으나 이슬람문화와 충돌하게 된다. 중세기교회의 암흑시기도 있었다. 신과 종교, 교회가 철저히 인간을 배제했다. 잃었던 인간을 되찾고자 계몽주의 사상과 인간중심의 휴머니즘 사상이 일게 된다.

진정한 휴머니즘은 크리스챤 휴머니즘이며 진정한 인간의 표상은 예수그리스도이다. 세계사, 종교사, 교회사는 산업화로 큰 변화를 맞게 된다. 19세기초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변화되면서 노동력과 생산수단의 변화로 농민들이 도시로 이동하면서 인구의 도시집중화, 가정의 붕괴현상이 나타난다. 사랑, 봉사, 희생...등 초자연적 가치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등장하게 된다. 많은 노동자들이 부당착취 인식과 반작용으로 사회주의가 나타났으며, 당시 삶의 여건때문에 교회를 떠나가기 시작하면서 교회는 위기를 맞게 된다. 1891년 교황 레오13세의 “노동헌장(Rerum novarum)"이 반포된다. 이는 노동자들의 인간적인 삶을 위해 쓰여진 문헌이다. 사회교리는 교회적 입장에서 보면 교회가 살아 남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신자적 입장에서 보면 이는 신자들의 사회속에서의 행동지침이라 할 수 있다. 사회교리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수많은 도전에 대해 판단과 행동을 위한 지침이라 할 수 있다. 사회교리는 반드시 다음 원리에 의해 판단한다.

① 공동선의 원리 ② 보조성의 원리 ③ 연대성의 원리 ④ 인간의 존엄성
1. 공동선의 원리
공익에 공동선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 유기체로서의 공동체인 지체의 원리.. 한지체는 같이 아파한다. 공익은 사익을 우선한다.
2. 보조성의 원리
도움(Subsidium ; 로마군대의 용어, 전방부대에 도움과 지원을 하는 후방부대)
무작정 도움을 주는 원리는 아니다. 국가는 노동자를 위해 어떤 도움을 줄것인가 ?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 보조성에 충실히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결재에서 대결은 보조성 원리에 충실히 하는 것이다. 지도자들이 때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도 보조성의 원리이다.
3. 연대성의 원리
연대(Solidarity ; 라틴어 ‘결합하다’ )는 개인성과 사회성의 결합이다.
개인성을 배제시키지 않는 상태에서의 연대성이 필요하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참된 인간됨의 교리라 할 수 있다. 인간답게 살도록 도와 주는 것, 끌어 주기 위한 것이다.
*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고르바쵸프를 만나고 나면서 동부 위성국가가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가톨릭교회가 기여한바 크다. 소련 군부, 위성국가가 무너지면서 사회주의가 몰락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몰락이 곧 자본주의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4. 인간의 존엄성
상기 1, 2, 3의 원리를 떠 바쳐주는 인간의 존엄성

< 별지 ‘사회교리 요약 ’ 참조 >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5주째
ㅇ 강의 일시 : ‘99. 9.29(수) 20:00-22:00
ㅇ 강의 내용 : 언론관련 교회문헌 해설
ㅇ 강 사 : 한국언론학회 회장,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박영상 원장

(1992년 교회문헌중 “새로운 시대” 사목훈령(문헌) 번역)
현대는 정보화 시대로 산업시대와 구분된다.
정보사용으로 인간 삶의 질이 변화되고 있다. 교회내에서도 정보와 사회의 영향으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다. 100여년전 교황 레오 13세의 노동헌장(노동사목) 이후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사회교리가 대두가 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V.C) 이후이다.
① “매스 미디어에 대한 일반교령” (‘63) ; Inter mirifica (상징적 내용)
② “ 일치와 발전” (‘71) ; Communio et progressio (실질적 내용)
-> 산업사회
③ “ 새로운 시대” (‘92) ; Actatis Noval
-> 정보화 사회 / 매스미디어의 역할
가톨릭은 새로운 시대, 정보사회시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
Actatis Noval -> Gloval Village (지구촌화)
지구촌화에 대한 異見에는 “지구촌화는 다양성이 인정된 통합이 아니다.” 라고도 한다. 지구촌화는 참다운 공동체, 모두가 하나되는 지구촌 개념이다.
Areopagos / 사도행전의 내용처럼 매스미디어는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사도행전 -> 우상숭배 어떻게 타파할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진리를 추구하여 인간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교회내에서는 Mass Communication이 아닌 Social Communication으로 쓰인다.
공유하고 친교와 통교의 수단으로서의 Social Communication이다.
교회의 기본정신은 사랑이다. 하느님은 사랑이므로 이를 Communication으로 나눌 때 참된 사랑이 되며 하나가 될 수 있다.

1. 복음화를 위한 통교수단
① 신앙의 빛으로, 그리스도 정신으로 살아감
② 인간 스스로 정화, 회개
③ 복음을 복음으로 받아 드리도록 분위기, 환경조성
④ 궁극적 진리 내면화, 실천하는 과정
⑤ 하느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노력
바오로 5세 교황 문헌에는 깊고 심오함이 있다.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자” 는 말씀에 담긴 메시지는 사랑이다.
새로운 언어를 바탕으로 사랑의 문명을 만든다.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역동적, 핵심적 역할이다. 여기서 새로운 언어란 화해와 일치의 언어로 인간답게 만드는 수단이다.

2. 미디어의 역할
① 문화, 사회적 역할
* 전달된 사실자체가 인간 삶의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단순정보 제공은 의미가 없다.
* 권위, 권리행사가 제대로 되어야 한다.
*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

② 경제, 정치적 역할
* 미디어가 마땅이 해야할 일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 극심한 경쟁논리, 상업적 논리, 이윤 극대화 문제, 메시지의 질 저하
* 다양한 목소리 반영장치 / 다양성이 구현될 수 있는 포괄적인 틀 필요
* 미디어는 Gloval Village를 위해 기여할 수 있다.

3. 미디어의 화합
* 그리스도 육화의 신비를 대입했다.
그리스도=하느님 -> 육화
* 사람의 눈 높이에 맞는 Communication
* 인간속에서 인간의 삶을 높힐 수 있는 방향으로
* 예수님은 3년간의 공생활을 통해 누구든지 만났고 그들의 편에 서 있었다.
보편성과 쌍방성의 이야기를 하셨다.
* 율법은 유대인의 신앙이고 지침이지만 예수님은 이를 새롭게 해석하고 완성하셨다.
(대안제시)
* 권위를 지켰다.
* 사랑으로 충만한 삶
* 교회에서는 Communication으로 인간 완성, 성숙한 시민으로 거듭 태어나게 하 는 계기를
만들고 이를 위해 앞장서야 한다.

4. 교회 Communication
지상에서 복음화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 기관으로서의 미디어, 어떻게 할 것인가 ?
① 사람과 문화에 봉사하는 미디어가 되어야 한다.
② 세상과의 대화에 봉사하는 미디어가 되어야 한다.
* 나를 지키고 너를 지키고 창문을 통해서 세상을 보듯이

③ 인간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미디어가 되어야 한다.
* 복음화 수단으로서의 미디어가 사용되어야 한다.
* 연대성은 함께 있음의 뜻이나 교회에서의 연대성이란 가깝던 멀던 많은 인간들 에 대한 동정심, 피상적인 느낌을 갖는 것이 연대성이 아니라 남을 위해 자기 를 희생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연대성이다.
④ 교회의 일치에 봉사하는 미디어가 되어야 한다.
⑤ 새로운 복음화에 봉사하는 미디어가 되어야 한다.
* 새로운 복음화는 문화적인 다양성을 인정하고 인간 삶을 중시하는 것이 새로운 복음화이다.
5. 매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과제
① 직접선교에 연연하지 말고 기도 많이하고 묵상을 많이해야 한다.
② 교회는 부단히 매체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대화하여야 한다.
* 사목방향도 매체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설정하고 추진하여야 한다.
③ Communication 권리를 수호하여야 한다.
그래야 Social Communication이 이루워 질수 있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기관의 자유가 아니다. 개인표현의 자유가 있어야 하고 이 를 확산하여야 한다.
6. 대안으로서의 매체
기사, 프로그램을 통해서 인간이 어떻게 진솔하게 살 수 있을까?
* 새로운 시대의 평가/정보화시대 Communication Technologe 가 증가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문헌은 미국적인 냄새가 많이 나는 아쉬운 점이 있다.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6주째 (제1강의)
ㅇ 강의 일시 : ‘99.10. 6(수) 20:00-21:00
ㅇ 강의 내용 : 바른 기도
ㅇ 강 사 : 성심여자고등학교 교장 김영자 수녀

떼제(그리스도의 일치를 위한 모임)의 찬미기도 노래중
◎ 주를 찬미하-나이다
◎ 주는 좋으신-분
◎ 주를 찬미하-나이다
◎ 할렐루-야

잠시묵상
기도 (수녀님기도)
기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기도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개인의견 발표
수도회 규칙에 따르면 매일 한시간반 정도 성찰과 기도생활을 해야 한다.
기도에는 흠숭과 찬미, 감사, 청원이 포함된다.
찬미는 노래로 할 수 있으며 기도로서 할 수도 있다.
기도를 어떻게 쉽게 할 수 있을까?
문장으로 된 기도도 좋은 기도이다. 이는 교회의 기도이며 일치를 위한 기도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좋은 사람은 옆에만 있어 주어도 좋은 것으로 옆에있는 존재 자체가 좋은 것이다. 하느님은 그 자체가 평화이다. 내안에 있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말씀드리고 싶은 때가 있다. 때로는 하느님께 감사할때도 원망을 할 때도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만나고 싶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깊을수록 더 잘 알게되고, 더 사랑하게 되고, 더 기도를 하게 된다. 기도를 게을리 하면 벌을 주시는데 기도 안하는 것 자체가 벌이다. 만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도는 사막과 같은 맛이 없는 기도라도 꾸준히 하고 인간적 실망이 있더라도 기도가 지속될 때 발전이 있다. 기도는 일부러라도 기도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기도의 장소, 시간, 자세에 대하여.....
기도의 모범은 예수님이시다.
성서에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의 기도 ... 주의기도를 묵상하면 아버지에 대한 체험도 할 수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마디 마디 묵상도 좋다.
“나의 용서를 필요로 하는 분은 누구이며, 나는 누구의 용서를 받아야 하는가?” 를 묵상하면서...

기도장소에 대하여.....
(성서에) 예수님은 기도를 하시기 위해 “산으로 들어 가셨다.”
“외딴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다.”, “골방으로 들어가서 ...”라는 기록이 있다.
기도하는데에 방해를 받지 않는 장소, 한적한 곳 ... 자연, 들, 성당 등이 좋다.
이러한 곳에서도 기도를 하다보면 주위는 조용한데 내 마음속이 시끄러워 진다.
이를 지나면 내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 생각해야 할 중요한 소리가 들린다.
그것이 기도의 주제이다. 내안의 소리를 들을 때 분심은 사라진다. 훈련이 필요하다.

기도시간에 대하여.....
시간약속을 하고 하느님과의 만남을 가져야 한다. 하루 10분 또는 30분이라도 매일 기도하도록 해 본다. 아침, 저녁 10분씩이라도 매일 기도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나의 기도 예) 기도하기가 어려울때에는
“매일미사의 그날 복음만이라도 읽거나, 영어로 된 성서복음의 한문장이라도 외우고 자자”라고 하면서 기도를 한다.
성서에 예수님은 “먼동이 트이기전 외딴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다.”
“밤을 새우며 기도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느님과 만남을 약속하고 일정시간 하느님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기도자세에 대하여.....
로마서의 스테파노 기도자세에서 “무릎을 끓고..”청원기도를 하고, “모두 무릎을 끓고 ....”라는 기도자세가 있다.
장궤틀에서의 기도자세는 경배하는 기도의 자세이다.
기도는 자세가 편해야 한다. 훈련도 필요하다. 가부좌 자세, 양반 자세 등
누워서도 할 수 있으나 잠들지 않을 상태라야 한다.
기도 시작할 때 들려오는 소리 다 듣고, 멀리서부터 가까운 소리 다듣고 나면
내 마음의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러면 묵상할 중요한 주제가 떠오른다.
성인의 전구를 통해서도 기도한다.
“...함께 바쳐 주소서.” “.. 빌어 주소서.” 라고......
기도의 형태에는 묵상기도 (대화의 기도)와 관상기도가 있다.
반성의 기도도 필요하지만 오늘의 하루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기도생활 필요하다.
관상기도는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느끼면서 하느님안에 머무르는 것이다.

기도에 관한 책 소개
“그대” (성바오로 출판사) 기도의 초심자에게 도움을 줌
그다음 “ 하느님께 이르는 길” 권장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6주째 (제2강의)
ㅇ 강의 일시 : ‘99.10. 6(수) 21:00-22:00
ㅇ 강의 내용 : 가톨릭 신앙과 나의 삶
ㅇ 강 사 : 월간 샘터 주간 정채봉 교수

예수님은 사람가운데 누구를 좋아하실까?
신부님과의 대화내용중에서....
나의 길을 따라 같이 살겠다는 친구를 교리반에 안내하였다. 신부께서 “자네가 잘살아 천당을 가면 친구도 천당에 갈 수 있고, 자네가 잘못 살아 지옥에 가면 친구도 지옥에 가게 된다. 그러니 잘 살아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간암/악성종양으로 100일정도 병원입원 금년 2월에 퇴원)
병원에서 심각한 상태라는 진찰과 사후정리를 생각하면서 “그동안 기도생활을 잘 못했으니 예수님 마음에 드는 생각이라도 해보아야 겠다.”고 하면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잘 안되었다. 예수님께는 미안해서 기도도 못할 것 같아 성모님께 전구하기로 했다. 30-40분간의 진찰후 잠시 잠이 들었는데 강이 있는 초원의 잔디위에 누어 있는 꿈을 꾸었다. 어쩌다 깨보니 주위에 있던 분이 “이 상황에서 잠이 옵니까?” 라고 말하기 까지 하였다.
(“간장종기”라는 내용으로 천주교 서울주보에 게재중)

예수님은 누구를 좋아 하실까. 그러면 싫어하는 자는 누구이실까?
바리사이파, 독사의 자식들, 율법학자들, 기득권자, 모세율법학자, 형식, 권위주의자. 자기 깨달음이 전혀 없는 이들... 예수님은 자랑하는 것,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셨다. 예수님이 좋아하신 분은 베드로 였다. 우둔하였으나 교회의 반석이 되었으며 주님께 의지한자였다. 베드로도 문제는 있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3번이나 부인하였고, 시온산에서 모세와 엘리아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이야기할 때 “주님, 이곳에 집을 짓고 살아 봅시다....”, “저들을 7번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 베드로는 성격이 단순했으며, 천진하면서도 화끈했다. 루가복음의 고기잡이 기적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무릎을 끓고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가 주십시오” 단순하면서도 직감력이 있었다. 감복, 회개하는 모습도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알게 되었던 여자로 성서학자는 “행실이 좋지 못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의 발을 머리카락으로 자진해서 씻겨 드렸다. 최고 공경의 모습으로 화끈했다. 예수님은 단순성과 끊고 맺는 것을 분명히 하는 이를 좋아하신 것 같다. 여자에 대해서는 매력이 있는 여자를 좋아하신 것 같다. 나설 수 있는 과단성을 높이 평가했다. 호박꽃도 꽃은 꽃인데 매력은 없는 것 같다.

예쁜 조화는 처음에는 아름다워 보이나 향기가 없어 곧 싫증을 낸다. 꽃은 향기가 있어야 매력이 있다. 루가복음에 마르타(언니)와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루가 10, 38-42) 마르타는 예수님을 접대하기 위해 분주하였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만을 듣고 있었다. 예수님은 마르타에게 “ 너는 일에 마음을 다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교회 공동체에서 봉사자들은 이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르타는 시중드는 관계로 많은 걱정으로 예수님에 대한 관심이 적을 수 밖에 없었다. 말씀을 듣는 것은 뒷전이었다. 마리아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것이 매력이었다. 마리아는 님을 향한 한마음이었으나 마르타는 다양성이 있었다.

악마들의 집요한 공작터는 매스콤이 아닌가 생각한다. 기자, 연출자가 범죄를 취재, 연구하다 보면 개인이 파괴될 수도 있다. 포르노 연출자, 사이비 교주 ......... 이들이 악마로 변할 수 있다.
좋은 사람, 좋은 연출로 새로운 삶을 계도하는 이는 좋은 사람으로 된다. 샘터에서 20여간 떠나지 않고 종사하고 있는 것은 작은 행복, 보람 때문이다. 사발돌리는 곡예사 이야기........
이리 저리 사발을 돌리며 곡예를 하는 곡예사가 어느 11월에 비바람이 불고 장이 안서서 길을 걷다가 어느 수도원 수사신부와 동행하게 되었다. 곡예사가 신부에게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하니 신부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며 살아 갑니다.” 하자 곡예사가 “나는 곡예사로 사발 돌리는 일을 합니다. 나도 수도사가 될 수 있습니까?” 묻고, 될 수 있다고 하자 곡예사는 수도원으로 따라가 생활을 하게 되었다. 수도사들은 나름대로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조각하는 이, 성경을 쓰는 이, 기도하는 이, 밥을 하는 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이, 악기를 다루는 이, 등등 ...
그러나 곡예사는 할 일이 없어 놀고 먹었다. 미사후면 사라지는 곡예사를 본 수도사가 수도원장에게 보고하였다. 두분은 뒤를 밟아 보기로 하였는데 미사후 끝나면 다시 성당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제대에서 이리 저리 사발을 돌리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다 돌리고 나서는 “저는 주님께 이 재주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내일 다시와서 더 좋은 재주를 보여 드리겠습니다“하고 나서는 것이었다. 수도사는 제대에서 감히 춤을 추고 있다니 하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수도원장의 생각은 그것이 아니었다.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주님의 기쁨을 위해 하는 곡예는 훌륭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성모님은 열심히 한자에게 치마자락으로 땀을 닦아주신다.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7주째
ㅇ 강의 일시 : ‘99.10.13(수) 20:00-22:00
ㅇ 강의 내용 : 성지, 성인을 통해 본 한국의 가톨릭 신앙
ㅇ 강 사 : 시인, 신앙유산연구회 회장 이충우 안드레아

성지 해미의 읍성 서쪽 성문앞에 “순교자의 비(碑)”가 있다 이 비는 해미개천에 있었던 것으로 이 비는 당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자리개질용으로 썼던 돌이다. 이 비는 순교사적 의미로 볼 때 귀중한 것이었으나 그동안 방치되다가 최근에 정상 보전되고 있다. 이곳 해미는 내포지방으로 인근에 덕산, 예산, 아산, 당진고을 등이 있다. 당시 이곳 고을의 원님은 모두 문관이었으나 해미만은 무관이었다. 해미는 서해지역의 왜군(왜구)을 막기위해 책임을 지고 있는 서해 경비사령부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무관은 당시 사형집행권이 있었으며, 순교당시 내포지역의 천주교신자들을 해미로 데려가 사형을 집행하였다. 사형집행은 활로 쏘거나, 매질을 하거나, 웅덩이를 파서 매몰하거나 자리개질을 하여서 죽였다. 순교는 학살과는 다르다. 순교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 개인의사에 따라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었다. 순교자는 바로 증거들이다.
해미에서 웅덩이에 매몰되어 죽은 일부 신자들은 서있는 상태로 죽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시신을 발굴해 보니 일부를 제외하고는 뼈가 서있는 상태대로였다고 한다. 이는 타의에 죽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기로 하고 웅덩이에 빠져 신앙을 증거하면서 선채로 죽은 것임을 말한다. 신앙유산 답사는 보이는 외적인 것보다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영적인 것이 포함되어야 가치가 있다. 순교자는 예수님을 가장 닮은 사람들이다. 한국의 순교자는 보통 1만여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름이 밝혀 진 것은 1,370여명이고 5천여명 이상은 이름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무명 순교자는 순교자의 영성만을 남겼을 뿐이다. 무명순교자가 많은 것이 한국의 특징이다.

하느님께서는 왜 한민족에게 1만여명의 순교자를 내게 했을까? 최양업 신부는 충북 진천 동골에 본당(최초의 본당)을 두고 전국적인 사목활동을 하였다. 6-8월 3개월은 배티부근에서 거주하셨다. 이분은 땀의 순교자로 말하고 있다. 배론성지와 배티성지관할 교구에서 시복시성을 추진중에 있다. 교황께서도 3000년기에 “오늘의 세대에도 순교자는 많이 나와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또 다른 순교를 원하고 계심을 뜻한다. 21세기에 순교자의 정신으로 살지 않으면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땀의 순교는 인간의 힘으로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순교이나 피의 순교는 하느님께서 선택해서 내신 것이다. 순교는 영생을 얻기 위한 지름길이다. 한국에는 미신이 많고 풍수지리설, 관상, 점 등을 많이 본다. 천주교 신자이면서도 이를 행하는 이들도 있다. 배교자는 동료의 이름을 대었지만 무명 순교자는 절대로 동료의 이름을 대지 않았다.

비신자가 천주교에 대해 이해 못하는 두가지를 들은 적이 있다. 하나는 삼위일체, 또하나는 성모 마리아의 잉태에 관한 것이다. “삼위일체는 성부와 성자가 있고 이를 Communication하는 성령으로 이들은 하나이다”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한국 순교사
1784 : 천주교회 창립 (정조8년/甲자년)
1794 : 신해박해
1801 : 신유박해 (순교자들의 반이 이때 순교)
1831 : 조선교구 설정
1839 : 기해박해
1846 : 병오박해
1866 : 병인박해
순교자 집안은 자손, 증손까지 대대로 순교한 경우가 많다.
한국 103위 성인은 기해, 병오, 병인 박해때 순교하였다.

“ 나무가지를 자른다고 새싹이 돋아나지 않겠는가? ”
“ 박해의 광풍이 세면 셀수록 복음의 씨앗이 멀리 날아 간다”

순교자를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진단학회에서는 병인박해때만 8,000여명이 순교하였다고 하고, 매천야록에서는 1-2만명, 한국개년사에서는 수만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무명 순교자의 수가 많은 이유중의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은 기록을 잘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 천주교 신자로서는 기록할 상황도 아니었다. (숨어 살아야 하고, 알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록할 수도 없었다) 당시 사형당하는 사람들에게는 壯啓文, 현재의 조서를 쓰게 되어 있었으나 당시 순교자들에게는 先斬後啓(먼저 죽이고 장계문을 씀)하였기에 기록이 제대로 안되었다.
한국에 무명순교자가 많은 것에 담은 메시지는 기록하고, 보전을 잘하라는 것이다.

한국성인 103위중 프랑스인이 10명, 한국인이 93명이다. 프랑스인들은 기록을 잘했었다. 이로 한국인의 시복.시성때 이들의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일본에도 성인이 있다. 성인은 26명(한국인3명), 복자 205명(한국인12명)이다. 한국성인에 외국인일 지라도 한국에서 순교하였으면 한국성인이 된다. 한국 103위 성인중 88명은 서울에서, 15명은 지방에서 순교하셨다. 직계후손은 거의 없으며, 현재 최경환 성인의 5대손 최기식 신부(미문화원 사건관련)와 남종삼 성인의 후손 남평우교수(한양대)만 있을 뿐이다. 서울에서 순교한 88명중 순교지로 구분하면 서소문에서 44명, 새남터에서 11명, 당고개에서 9명이 순교하였으며, 24명은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순교의 영성 (유인물로 제공된 자료)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순교자들의 삶을 묵상할때마다 떠오르는 성서말씀입니다. 우리 조상 순교자들은 예수님과 너무도 닮았습니다. 생명을 빼앗는 폭력에 저항하지 않고 자신을 성부께 봉헌한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혹독한 고문은 당하면서도 한마디 불평이 없었고 신음소리조차 없었습니다. 오직 깨끗한 양심과 착한 심성으로 현세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그들에게 그런 용기와 신념을 주었을까요? 사람은 이 세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하느님 나라를 굳게 믿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하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저마다 신앙을 갖게 된 어떤 계기가 있습니다. 그런 계기는 저절로 생긴 것 같지만 알고보면 우연치 않게 어떤 높고 가이없는 분의 작용이 있었다는 신비를 느끼게 됩니다. 순교자들의 행적을 살필 때 마다 우연치 않은 신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조상 순교자들은 신앙을 알게 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모두 박해자의 칼날 앞에 피의 순교를 당한 경우입니다. 각자의 믿음과 용기인 것 같지만 성령의 힘,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선택이 아니면 불가능했습니다. 우리들이 지금 살고 있는 시대는 박해시대가 아닙니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가 확립되어 있지만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자면 그 어느 시대 못지 않게 순교의 영성이 요구된다고 봅니다. 순교의 영성, 즉 순교정신을 이해하기 위해 유럽 수도원에서 일찍이 묵상하고 실천했다는 순교 방법을 색깔로 설명해보겠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자 자신이 가장 애호하는 것을 포기하는 행위를 백색순교라 불렀으며 고통을 극복하고 속죄하는 행위를 녹색순교라고 일컬었습니다. 엄밀한 의미의 순교는 피를 흘린 적색순교입니다. 그러나 순교의 영성을 본받아 신앙쇄신의 계기로 삼기에는 피의 순교가 얼른 와닿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생활의 실천덕목으로는 괴리감마저 느낍니다. 이와달리 박해를 받지 않는 일상생활에서도 자신들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양심을 성찰하고 욕심을 버리는 일은 얼마든지 접근할수 있고 실천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신앙인들이 영성을 본받기 위해서는 땀의 순교인 백색, 녹색순교정신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조상 순교자들처럼 순교의 특은을 간구하면서 삶의 노력으로 가능한 땀의 순교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순교자의 꽃’이라는 제목의 졸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순교자의 꽃

소리없이 피었다가 이름없이 떨어진 꽃
무명에서 더욱 밝아오는 님이시여
순교자의 꽃이라 부르리라.

때가 되면 반드시 다시 핀다는 믿음
그 신앙의 무게로 환하게 되고
그 신앙의 깊이로 조용해 지는

빨간색은 피의 순교
십자가에 매달린 피눈물의 절규
“주님께 저를 맡기나이다”

흰색과 푸른색은 땀의 순교
온전하게 비운 마음으로
갖은 고생 기꺼이 받아들인 참회의 땀방울

피땀 흘러 고이고 맺히듯
적색 백색 녹색으로 만발한
수많은 꽃 모두 순교자의 꽃입니다.

우리네 조상들처럼 적색 순교 못되어도
순교의 영성 받을어 특은 간구하오니
백색순교와 녹색순교의 삶
순교자의 꽃으로 피우리다
이충우 안드레아

신앙생활에서 순교자를 공경하고 성인품에 오르도록 기도하는 일은 신앙인의 본분입니다. 후손들이 조상들을 받들어 모시고 목격과 증언과 증거물을 토대로 조서를 꾸며 교황청에 제출하지 않으면 성인 성녀는 탄생하지 않습니다. 103위 순교자만 성인 반열에 올랐고 그밖에 1만여 명 순교자 가운데 절반수에 해당하는 5천명 가량은 어디서 태어난 누구이며 이름이 무엇인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입니다. 무명 순교자에 대해서는 행적조차 알길이 없으니 그 시대를 살았던 신앙인들이 제 몫을 했다고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는 2천년 당시의 복음사가와 기자들이 직접 본대로 또 목격자의 증언을 들은대로 기억해 놓았기 때문에 오늘날 빛을 보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할수 있는 초인적 용기는 그들안에 현존하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느님을 사랑을 자칫 잊고 삽니다. ‘순교자의 꽃’ , 바로 그것은 사람들의 망각을 깨우쳐주는 하느님 사랑의 지표인 셈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수많은 순교자가 배출됐고 또 무명 순교자가 왜 그렇게 많을까 하고 묵상해본적이 있습니다. 그처럼 순교자가 많은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신과 사주팔자 그리고 풍수지리에 현혹되기를 잘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잊기 쉬우므로 이를 깨우쳐주심이 아닐까요. 또 무명순교자가 많은 것은 순교자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신앙유산을 잘 보존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우리 조상 순교자들은 불굴의 용기와 의로운 행동으로 가정과 사회공동체에서 모범을 보였으며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 도왔습니다. 나 혼자 희생됨으로서 다른 사람을 구할수 있다는 그들의 순교영성을 본받아 현세의 삶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2천년 대희년을 앞둔 이번 순교자 성월을 맞아 우리 모두 신앙쇄신의 결의로써 세상을 바로 잡자는 제언을 드리는 바입니다.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8주째
ㅇ 강의 일시 : ‘99.10.20(수) 20:00-22:00
ㅇ 강의 내용 : 한국 가톨릭 교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ㅇ 강 사 : 시흥동 주임신부 박기호 신부

그리스도의 사상은 나눔과 섬김의 두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예수님은 “ 섬기러 왔다.....”고 했고, 가르침도 그러하였다. 권위주의는 지배욕과 독점의 특성을 갖고 있다. 종교는 보수적인 모습으로 비쳐지는 면이 있다. 봉건사회에서 군주들의 상징인 왕관, 주교의 모자, 사제의 사각모, 로만칼라, 수단 등..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수적일 수 있으나 신자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보수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교회는 보수적이면서 진보적인 것, 진보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 종교는 원칙을 고수하기 때문에 원래가 보수적이다. 복음적인, 사상적인 보수를 통해서 현재와 미래에 창조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권위주위는 세속주의(소유, 지배, 명예욕..)의 반영이다. 우리는 섬김과 나눔을 통해서 예수를 따라야 한다. 권위적이다라고 할 때 내가 잘못 이해해서 그렇게 평가할 수도 있다. “사제가 권위주의적이다”라고 할 때는 사제가 그에 상응하는 세속주의에 물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제의 덕목중의 하나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돈문제는 세속주의의 반영이다. 마음을 비우는 확실한 방법은 돈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이다. 어느 학장의 이취임식에서 “70평생 어려서부터 교회에 몸을 담고 살아오면서 돈으로부터는 자유로웠으나 마지막까지 자유롭지 못한 것은 명예이었다”고 한다. 사제로서 가장 추하게 보이는 것은 명예를 추구하는 모습이다.
(박기호 신부 사제서품시 나와의 약속내용 )“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내 몸을 아끼지 말자”

교회에 세속주의가 반영되고, 나아가서는 상업주의까지 번지는 현상, 이는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시고, 교회가 강조하는 것은 처음에 “하느님 나라” 였다. 그 이후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 강조보다는 “예수가 그리스도이다”라고 믿는 것을 강조하였다. 현재의 교회는 성사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성사생활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고 하느님 나라에 갈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교회의 권위주의가 내재되어 있다. 성사생활에서 예수그리스도로, 하느님 나라로 옮겨가야 한다. 교회는 인간의 능력보다 성령의 역사에 의지하는가 ? 아니면 효율과 업적에 급급하고 있는가를 식별해야 한다.

교회 사제의 권위주의와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
1. 사제와 가까운 사이가 되도록 한다.
나의 견해를 빠르고 확실하게 전달하는 통로가 된다.
2. 듣는 귀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귀가 닫힌 사제와는 아무 소용이 없다.
전면으로 문제 제기, 직접적으로 권유, 충고를 한다.
사제에게 충고 -> 주의 -> 추방 ....
3. 복음적인 정신으로 일관되게 주장하여야 한다.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면서 교회가 권위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 의문이다.
교회자체가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21세기, 새로운 세기를 맞이할 수 있도록 좀더 나눔과 섬김의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하자.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9주째
ㅇ 강의 일시 : ‘99.10.27(수) 20:00-22:00
ㅇ 강의 내용 : 한국, 한국인, 한국교회
ㅇ 강 사 : 두 봉(杜峰) 주교

杜 峰 (두견새의 두,막을 두/ 산봉우리 봉) <선종하신 오기선 신부 작명>
전 안동교구장 / 현 고양시 행주공소 거주 / 프랑스 올리앙 출신

아시아 지역은 선교가 안되거나 잘되고 있는 지역으로 구분된다. 일본은 열심한 신자가 극소수이고 전교가 안된다. 대만은 중국아닌 중국으로 전교가 전혀 안된다. 홍콩도 안된다. 필리핀은 인구의 80%가 신자이다. 싱가폴은 한국과 비슷한 상황으로 신자들이 많고 전교가 잘된다. 분단된 나라는 우리나라뿐으로 북한은 무신론이다. 이문희 대주교는 중국에 대해서 “중국은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중국사람들의 속을 모르겠다. 중국을 이해할려면 중국음식을 모두 먹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였을 정도이다. 한국사람(주교)이 국제모임인 주교단 연합회에 잘 안나갈려고 하는 이유가 있다. 언어문제도 있으나 한국사람은 다르다(특이하다)라는 외국인의 인식도 작용하는 것 같다.

한국신부들은 한국사람들끼리만 어울리고, 모이면 술을 많이 마신다. 그리고 한국사람은 부담스럽다라고 느끼는 면도 있다. 한국은 축복받은 나라다. 한국역사를 보면 박해와 침략도 받았으나 30-40년만에 이렇게 발전한 나라는 세계에 없다. 6.25 이후 휴전된 1953년을 지나서 1954년에 한국에 왔다. 당시 상황은 비참하고 어려웠다. 집, 도로, 먹을 것이 부족했기에 구호물자가 공급되었다. 북한을 방문(병원 신축 기공식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현재의 북한은 40년전 우리나라의 모습과 같은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은 놀라운 발전을 하였고 한국교회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다. 레지오를 비롯한 M.E, 꾸르실료, 빈첸시오 아바울로회.. 등 단체가 많이 발전하였고 한국에는 성소자가 많고 예비자도 많은 편이며, 각 교구마다 전교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발전은 어찌보면 기적이다.

한국인이 외국인과 다르점은 이러한 것들이다.
① 즉흥적인 판단을 한다.
② 눈치가 빠르다.
③ 느낌, 감정이 대단하다.
④ 행운을 많이 바란다.
안좋은 점들일수도 있으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렇게만 볼수는 없다.

경제적으로 볼 때 무리를 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차입투자, 투기.... / 한국인은 간이 큰가 보다.“하면 된다”, “ 안되면 되게 하라” 라는 배짱도 있었기 때문이다. 서양은 천천히 발전하려 한다. 잘못될 까 조심스럽게 일을 추진한다. 루가복음 14, 28절 이하의 말씀. (인용) 한국인들은 이 성서의 말씀대로 곰곰하게 일을 처리하려 하지 않는 듯 하다.

“너희 가운데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모든 것을 버려라...” 신앙생활도 투기일 수 있다. 이것 저것 다 따지면 신앙생활 제대로 하지 못한다.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에게 “투신하라 !”라고 강조했다.
자기 몸을 낙화산과 함께 하늘에 던지듯이, 다이빙으로 물속에 던지듯이 투신하라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 ....믿고, 모든 것을 버려라..” 주님은 무리를 요구를 하고 계신다. 신앙생활은 내 자신을 내어 놓는 것이다. 한국신자들은 정성껏 그리고 무리를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단체활동, 봉사, 성전건축기금 내는 것 등... 지나치는 것이 하느님 앞에는 좋다. 한국교회는 참으로 묘한 교회이고 축복받은 교회이다.

언론인들은 긍정적인 태도, 견해, 주장을 하기를 권장한다. 저녁 8시나 9시 뉴스를 보면 보도내용들이 너무나 부정적, 실망적, 불안적인 내용들이 많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 이러한 시간대에 좋은 뉴스로 방송을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부정적인 내용으로 가득찬 뉴스들을 방송하여야 하는지 안타깝다. 긍정적인 보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북한을 방문해서 늦게까지 TV를 본적이 있다. 남한과 북한의 뉴스를 비교할 때 어느쪽이 더 좋은 뉴스인지...? 생각해 보게 됬다. 북한뉴스는 조선인들에 대한 긍지를 갖도록 하고 있다. 어렵다고 하면서도 남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한국뉴스를 접하면 “한국은 한국이 아니다”라고 생각될때가 많다. 한국의 뉴스는 한국인이나 외국인이 한국을 비관적으로 보게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행주공소는 한국의 첫 번째 본당인 약현성당, 그리고 명동성당에 이어 3번째 본당이다. 행주본당은 1910년에 설립되었고, 이전에는 수색본당 소속으로 있었으나 지금은 능곡본당 지역내에 속해 있다. 행주본당(공소)은 평일 새벽 6시30분에, 주일은 10:00에 미사가 있다.
(월중 주1회는 주일미사없음)

 



가톨릭 언론인 신앙학교 - 제10주째
ㅇ 강의 일시 : ‘99.11. 3(수) 20:00-22:00
ㅇ 강의 내용 : 2000년 대희년을 배웁시다.
ㅇ 강 사 : 가톨릭대학교 교수 박영식 신부

2000년 대희년을 세계적으로는 여러해 전부터 많은 준비를 하고 있으나 한국은 덜한편이다. 한국교회 차원에서의 희년에 대한 설명도 부족한 편이다. 이스라엘 역사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사이에서 이루어진 역사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과의 관계를 지속할 수 없게 되어 낙원에서 쫓겨 난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땅, 미지의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은 땅을 주신다는 약속이고 구원의 말씀이며, 땅은 생명을 뜻한다. 아브라함의 역사도 순종과 불순종의 역사이다. 아브라함의 후손(히브리인)들이 많아 지면서 이집트를 탈출하게 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는 말씀에 따라 사막에서 40년을 보낸다. 이때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십계명을 주신다. 이는 쌍무계약(군주와 지방군주간에 보호와 충성을 하는 조건의 계약)으로 하느님이 모세를 통해 계약을 맺는데 강조하신 것은 “ ... 말씀을 지키면 생명을 주겠다.” “ 지켜야 살수 있다”하셨으나 이를 지키지 않았다. 레위기26장에 “ ...지키지 않으면 땅이 너희를 벳어 낸다”고 기록되 있다. 팔레스티나에는 많은 신들을 섬겼는데 이들은 자기들이 모시는 신들이 땅을 주신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구약성서는 다음 세가지로 구분된다. ① 율법서(토라) ② 예언서 ③ 성문서
이스라엘에 왕정이 생기면서 불순종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이때에 예언자들이 나타난다. 예언자들은 미래의 사건을 예언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스라엘이 성전파괴등으로 한때 바빌론으로 유배생활(약5천여명 추정)을 하게 되는데 유배된 사람들은 “하느님 말씀을 지켜야 한다”고 깊이 반성한다. 50년이 못되어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만 남아 있던 이스라엘인과 알력이 심했다. 버리고 간 땅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레위기 25장에 희년이 선포된다. 종을 해방하고, 땅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빚을 탕감해 준다. 7년마다 안식년을 지냈는데 7년을 7번인 49년을 지난해에 희년을 선포한다. (여기서 7은 완성을 의미하는 숫자) “ 땅은 하느님의 것이다. 어느 누구도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다. 레위기 25장 8절이하에서 희년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나온다. 성서밖에서도 희년과 같은 것이 있었는데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 근동지방에서 사면법이 있었다. 이는 임금(군주)가 선포하는 것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면 땅을 차지하고, 전리품을 획득해서 나누어 주었고, 때가 되면 빚을 탕감하고, 종을 풀어 주었다. 군주들은 왜 이렇게 했을까? 흉년, 부자와 가난한자 등의 문제로 사회적, 경제적 상황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인들이 바빌론으로 돌아오고 세월이 흐르면서 불순종이 다시 시작되고 예언자들이 나타나 이를 경고하였으나 거부하였다. 기원전 3세기에 예언자들의 모습은 사라지기 시작하고 지혜흐름이 시작한다. 이는 행복한 삶, 행복으로 이끄는 길이다. 지혜문학은 현인들의 가르침으로 잠언, 전도서, 집회서, 지혜서 등이 있다. 성서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쓰여졌는데 오늘의 성서는 히브리어로 쓴 성서이다.예수그리스도와 제자들 이후의 교부들은 크게 두가지 주류를 이룬다. 하나는 안렉산드리아류로 성서를 자구, 자의적으로, 있는대로 해석하고, 또하나는 안토오키아류로 성서를 우의적, 종교적, 영성적, 정신적으로 해석한다. 레위기에서는 속죄일에 해방법을 선포한다. 기원전 4세기에 이스라엘인은 죽으면 천당, 지옥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셔올’이라는 어둠의 세계, 죽으면 내려가는 곳으로 생각했다. 기원후 박해받고, 순교한자들은 순교로 하느님 품안에 들어 간다는 희망으로 기꺼이 죽음을 택했다. 지혜서 등 묵시문학이 발생하면서 내세에 대한 희망을 다룬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회개하여야 한다. 하느님에게로 향하는 기쁨, 말씀(토라)을 따라야 한다. 회개를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이 희년의 의미이다. 1300년경부터 그리스도교에서 희년을 선포한다. 처음에는 100년에 한번이었다가 50년, 33년으로 지내다가 최종 25년에 한번으로 결정 되었으며, 특별한 기념의 해에는 별도로 정해 특별 희년도 지낸다. 2000년 대희년의 선포는 정기 희년에 해당한다. 우리는 어떻게 희년을 맞이해야 하는가? 인간 내부로부터 새로 태어나야 한다. 속죄하고, 하느님과 화해하고, 아버지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와의 만남, 하느님 만남의 기쁨은 이웃 만남의 기쁨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기쁨을 느끼는 것이 대희년의 본질적인 개념이다. 희년에는 단식과 순례 등이 등장하게 된다. 12월24일 성탄전야미사에 베드로 성전의 문을 열고 십자가와 촛불을 들고 들어 가는데, 들어 가기전에 회개하여야 한다. 희년의 은사로 잠벌을 면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문으로 들어간다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희년에는 단식을 하게 된다. 단식은 음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 쾌락, 분노, 거짓, 헛맹세 등을 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기도와 사랑이 동반하면 자선은 스스로 하게 된다. 남에게 요구하기전에 먼저 남에게 먼저 희사해야 한다.

희년은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와 만나는 해이며,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해이다. 구체적으로는 성체안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루가복음 19장에서와 같이 자케오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삶이 변화되는 것이다. 오늘 내가 새로운 자케오로 태어나는 것이다. 하느님과 땅, 백성이라는 삼각관계에서 계약,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한다. 가톨릭 교회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한다. 구약에서의 희년, 신약에서의 해방은 내적으로 스스로 변화되는 삶이다.
※ 대희년 관련 서적 소개 “청동문을 열어라” <박영식 신부저/ 가톨릭출판사>

 



강 사 Profile/ 비 고 (가나다 순)



o 김영자 (마리아)/ 51세/ 학교법인 성심여자고등학교 교장/ 3273-4135

o 두 봉 주교 (杜 峰)/ 전 안동교구장, 프랑스 올리앙 출신, 1954년 한국 선교사로 오심
(주소 : 경기도 고양시 덕행구 행주외동 194) 0344-974-1728

o 박기호 신부/‘91년 서품, 현 시흥4동 성당 주임신부/ 895-5813

o 박영상 교수/ 한국언론학회 회장,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o 박영식(요한 신부)/ ‘82년 서품, ‘96년 로마 성서대학교에서 성서학 박사학위 취득
로마 우르바노대학교에서 구약성서의 지혜문학 강의
현 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국내에서 불모지로 알려진 “지혜문학”에 정통한 학자로
7권의 저서와 11권의 번역서 출간/ 032-340-3182, 349-0573

o 이동익 (레미지오)/ ‘83.7월 서품, 신부 현 가톨릭대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
현재 평화신문 신앙상담 및 대한매일신보에 컬럼 연재중 “생명의 관리자” 등 다수 출판
740-9731

o 이충우 (프란치스코)/ ‘38년, 전북 익산/ 한국외대 불어과 졸업
한국일보 부국장, 평화신문 편집국장 역임‘89년 시인 등단, 가톨릭문우회 회원, 신앙유산
연구회 회장, “경성제국대학”,“다시 찾는 한국의 성 지”,“천주학이 무엇이길래” 등 다수 펴냄
719-9960

o 이현주/ ‘44년, 충북 충주/ 서울 감리교 신학대 졸업, 목사
“너희가 나를 알게 되리아”,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네”,
“마르코, 마태오, 요한복음 묵상” 등 다수 출판/ 0458-335 -4301

o 임병헌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신학사, 오스트리아 인스부룩 대학 신학석사
독일 프라이부르그 대학 신학박사, 가톨릭대학교 교수(기획처장) 종교학과, 교의신학

o 정채봉 (프란치스코)/ 53세, 전남 광양/ 동화작가,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월간샘터 주간 가톨릭 서울주보에 “간장종지” 연재 저서 “그대 뒷모습”외 40여편
763-8965

o 허영엽 신부/ 성서 못자리 전담신부




메모자 : 1기 수료자 wonpe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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