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다산 정약용 생가 와 묘 (2008.1.23 MT중 wsy촬영)/ 경기도 기념물 제7호




소재지 :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산75-1

다산 정약용 묘 (경기도 기념물 제7호)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실학의 대가였던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 선생의 묘소이다. 16세에 이익(李瀷)의 학문을 접하면서 민생을 위한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이후 새로운 학문인 서학에 흥미를 가졌다. 정조 13년(1789)에 문과에 급제한 후 홍문관 수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형조참의를 지내면서 규장각의 편찬 사업에 참여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다. 또한 정조 16년(1792)에 거중기를 제작하여 수원성을 축조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순조 1년(1801) 신유박해 때 경상북도 포항 장기로 유배된 뒤에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강진으로 옮겨진 후 순조 18년(1818)까지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선생은 귀양살이 중에도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고, 고향인 양주에 돌아와서도 여생을 오직 저술에 몰두하여『목민심서』·『경세유표』등 5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현재 묘역 에는 선생과 부인 풍산 홍씨가 합장되어 있는데, 표 앞에는 묘비 ·상석·향로석이 마련되어 있으며, 좌우에는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려주는 망주석 1쌍이 있다. 후에 묘 뒤로 담을 둘렀으며, 묘비도 1기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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