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 예수고난회 명상의 집 (2008. 5.3 wsy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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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자료중에서)


독서 : 모리스 젱델 [ 나날의 삶을 하느님께]
개인으로 읽고 묵상 후 가장 마음에 와닿은 부분을 다시 읽음으로 나눈다.

우리는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어떤 자리를 드려야 할까요?
하느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우선 하느님, 참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우리의 잘못은 하느님을 하늘에 계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와는 너무나 멀어서 아무 관계도 맺을 수없는 하늘에 계시게 합니다.
하늘 높은 곳의 옥좌에 앉아 계시는 하느님이 지상에 내려와 돌아다니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확실히 어리석게 생각되겠지요. 그래서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으시지요.
그러나 하느님은 별 저편에 있는 옥좌에 앉아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옥좌가 진정한 하늘이며, 그 옥좌는 바로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저 멀리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제나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 현존하십니다. 육화란 하느님께서 지금까지 안 계시던 이 지상에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느님 앞에 인류가 비로소 존재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하느님 앞에 없었지, 하느님께서 안 계신 적은 없습니다.
저분은 하느님을 어디서 찾습니까? 하느님이 어디 계신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인간의 삶 속에서가 아니고는 다른 어디서도 하느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바로 사람의 영혼을 통해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한 인간의 이런 투명함은 주님의 살아 있는 표징이므로 이런 투명한 인간을
통해서가 아니고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한 인간에게, 그 사람의 양심에게 우리를 하느님께 이끌어 달라고 청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 모두는 바로 그것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이미 수도 없이 경험해서 잘 알고 있듯이, 자신의 성격이나 소유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참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그만큼 우리는 노예 상태가 되기를 멈춥니다.
우리가 오로지 하느님을 바라보는 눈길이 될 때, 그때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됩니다.
그 한 순간만인라도,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로운 미소를 전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매달리는만큼 참으로 인격체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만큼 우리는 참으로 인간이, 피조물이 됩니다. 저는 어린이들과 이야기할 때,
종종 자석의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여러분이 쇳가루를 얹어 놓은 종이위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자석을 들고 있다고 합시다. 자석을 종이에 어느 정도 가까이 대고 있으면,
자석을 움직이는 대로 쇳가루가 움직입니다. 자석을 움직이면서 종이 위에 무엇이나 원하는
대로그릴 수 있지요. 그러나 자석을 쇳가루에 대면 쉿가루는 자석에 달라붙습니다.

하느님이 끌어당기시는 힘은 자석의 경우와 같습니다. 자화(磁化)과정과 같지요.
우리가 하느님의 자성(磁性)을 띠어 가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하고
자유로워지고 인격체가 됩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기 시작합니다.

성인들의 경우에는 이런 자화 현상이 더욱 가까이서 일어나며 더욱 끊임없이 그 자석에
매달립니다. 예수님의 경우, 그분의 인성과 자석 사이에는 이미 아무런 거리도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하게 느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신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포기하는
일이 이루어 졌습니다. 예수님은 인성의 관점에서 볼 때, 당신 자신을 잃어버린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자신에게 집착하시거나, 하느님께 거역하시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신비는 곧 가난의 신비요, 무한한 포기의 신비임을 말해 주며, 그 신비는 하느님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가난함과 일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그분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다다르려면 우리는 자신에게서 떠나야 하며,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는 이 가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런 사랑의 투명함이 없이는, 우리는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도 우상으로 만들어
버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으로 자신을 바치는 순수한 삶을 통해서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는 그 만큼 우리는 그분을 알게
됩니다. 이런 완전한 가난함에 들어가고 하느님의 자성을 띠어 가는 일에 언제나 더욱 완전히 자신을 맡김으로써,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가르침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침묵 속에 그리고 모든 것을 빼앗긴 형태 속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 무한한 현존, 빛의 현존이시기에 우리는 자기에 대해 포기함으로써만 이 무한한 가난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맡겨졌으며 우리의 사명은 그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뒤에, 눈에 보이는 역사에서 떠나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접촉할 만큼 깨끗하지가 못합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는데도 말입니다. 그리하여 승천 이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통해서만 눈에 보일 수 있게 되셨습니다. 저 육화가 우리를 통해서 연장된다는 것은 가장 놀랍고 멋있는 사실입니다. 바로 그것이 교회의 모든 신비입니다.

따라서 우리 각자는 다른 이들에게 보여 주어야 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하느님께 가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화된 신성이므로 눈에 보여야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우리를 통해서만 눈에 보이게 됩니다. 우리가 완전하게 되고 싶은 마음이 없고 노력하기에 지쳐 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신뢰하셨다는 이 사실은 엄연히 남아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요." 라고 말한 사람에게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고 계십니다" 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들에게는 여러분밖에는 다른 그리스도가 없는데, 그것은 그들이 유일하게 여러분을 통해서만 그리스도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찾을 것이며 , 주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사랑스런 분이 되시는 만큼 그들은 주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될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복음의 기쁜 소식입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부르심이며, 그것이 우리의 손 안에 주님을 맡기시는 무한히 관대한 부르심입니다.

자기의 구원을 성취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 없이는 당신을 드러낼 수 없으시다는 사실을 어떻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주위에서 우리만이 주님의 얼굴을 보여 줄 수 있으며 , 다른 이들이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 달라고 청할 권리가 있다는 이 사실을
어떻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나 자신이 지니고 있는 온갖 결점에도 나는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는 사명을 맡고 있습니다.
육화의 신비가 우리를 통해서 계속된다는 것, 그리고 각자가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라는 것, 바로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예수님의 신비를 열어 보여 주는 빛의 문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만들어졌다. " 라고 성아우구스티노는 말했습니다 그것은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 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빛과 그리스도의 현존이 되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분께서 우리 위치에서 하셨을 일을 하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주님의 행위를 계속하고,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내어 주고 소모되고 먹히고, 다른 이들에게 자양분이 되기위 해서 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실수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신비 속에 들어가 그 신비를 살고 다른 이들을 위해 주님의 모습이 되어감으로써 우리 신앙은 더욱 굳건한 기초 위에 세워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갖고 계신 이 무한한 신뢰감보다, 우리 안에서 우리가 주님과 같이 되게
하시는 이 동일성보다 더 아름답고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모든 위대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완전히 힘이 빠져 지쳤을 때도,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늘 필요로
하십니다.

결국 우리는 언제나 오늘날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유일한 기회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 않고도 우리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여 줄 수 있다면, 드디어 '때' 가 완성되고 세상은 구원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적어도 오늘, 온전히 당신을 증거하게 될 몇몇 영혼을 찾으실 수 있게 되시길 기도합시다.

우리의 일상 생활 안에서, 주님이 우리 손에 맡겨져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결국, 오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육화되고, 우리 가운데 사시게 될 가능성은 바로
우리에게 달려 있음을 생각하면서, 매순간 용기와 열정을 새롭게 하도록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