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의 독서 메모 ] 11~2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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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독서 메모 011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0.12.13.

[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

- 마더 데레사 수녀 지음 / 앤터니 스턴 엮음/ 이해인 수녀 옮김 173p
- 종파를 초월하여 이 시대 모든 이들을 위한 마더데레사의 영성 생활 기도집
- 마더 데레사 프로필 : (1910.8.25~1997.9.5)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출생/
18세 나이 수녀/ 1948년 인도 캘커타의 슬럼가에서 <사랑의 선교회> 설립 -
빈곤자, 버림받은자 돌봄/ 1979년 노벨평화상 수상 등

[ 책 표지의 글에서 ]

기도란 우리가 하느님께 단순하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듣습니다.
우리가 그분께 이야기하면 그분은 들으십니다.
말하는 것과 듣는 것, 두 가지 방법으로 진행되지요.
기도란 그런 것입니다.
양쪽이 다 듣는 것, 양쪽이 다 말하는 것.
그대가 진정으로 기도하기를 열망한다면 침묵을 지키십시오.
침묵에서 얻어지는 하느님의 에너지는
곧 모든 일을 잘하기 위한 우리의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 머리말 ] - 래리 도시 의학박사

기도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 가운데 하나이다.
/
기도에는 여러 측면이 있다. 간청, 중재, 감사, 그리고 흠숭의 기도가 있다.
/
과학적 사고가 지배하는 현대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기도는 낡은 것이며,
기도와 과학은 도저히 조화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나
현대에 영성계의 대변자들과 과학계의 대변자들이 새롭고 놀라운 대화를 개시했으며,
이는 서로 다른 세 가지의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다.

첫째, 현대 과학자들 가운데서 많은 이들이 인간의 기도에 응답하는
최고 존재를 믿는다는 것이다.
둘째, 기도의 영향력에 대해 연구하는 의학자들은 기도하는 환자들에게서
기도와 명상의 탁월성, 그리고 긴장을 풀고 편안함을 누리는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했다.
세 번째는 의식의 흐름과 특성에 대한 최근의 과학 이론들이다. ....
인간의 의식이 어떤 중재의 기도를 통해서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
외부로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

/
현대 의학의 가장 뚜렷한 흐름 하나는 기도로 복귀하는 것이다.
최고 수준의 연구원들이 여러 의과대학, 병원, 그리고 연구기관들에서
기도가 치유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으며, 영성과 건강문제를
연결하는 전국 규모의 다양한 회의들이 일상적인 행사가 되고 있다.

[ 서문 ] - 앤터니 스턴 의학박사

우리 모두가 마더 데레사라고 알고 있는 이 여성은 매우 신심 깊은
가톨릭신자이자 예수그리스도에게 철저히 봉헌된 사람이다.
마더 데레사는 자신의 끊임없는 헌신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이고 널리 알려진 것은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에 대한 봉사이다.

/ ‘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에 있는 내용들은 전례적이고
공동체적인 기도라기보다는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기도에 더 가깝다.
/
염경기도와 우리 자신의 기도는 사랑으로 녹아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영신적 에너지의 호수로서 남을 끌어당길 수가 있다.
이것은 영혼들이 불탈 때 발산하는 감미롭고 심원한 에너지인 것이다.
 

(본문중에서 부분 발췌)  

[ 기도의 필요성 ]

우리가 기도하면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면 비로소 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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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다 기도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청하지 않고서는
사랑을 지닐 수 없으며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의 정도 또한 극히 적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그토록 자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말을 하면서도
가난한 이들에 대해서 잘 모르듯이
기도에 대해서도 늘 많은 말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기도할 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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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참되기 위해서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면 비로소 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종교에 속해 있든지 간에
우리는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어린이들 역시 기도하기를 배워야 하고
그들은 그들의 부모들과 함께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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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고통이 있습니다.
굶주림에서 오는 고통, 집 없음에서 오는 고통,
온갖 질병에서 오는 물리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외로운 것, 사랑받지 못하는 것,
바로 곁에 아무도 없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고통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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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우리의 주인이 되었을 때
우리는 참으로 빈곤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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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과 나는 고귀한 일을
하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런 목적도 없이 우리가 창조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 위대한 목적이란 곧 사랑하는 것,
사랑받는 것이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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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나는 대답했지요.
하느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도하십시오라고.
 

[ 침묵으로 시작하기 ]

입술의 침묵뿐만 아니라 마음의 침묵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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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없는 기도의 삶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되고
이 기도는 마음의 침묵에서 탄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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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의 침묵뿐만 아니라 마음의 침묵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어느 곳에서나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문이 닫혀 있는 곳에서도,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통해서도
노래하는 새들에서도, 꽃들과 동물들에서도.
경이로움과 찬미의 음성을
침묵을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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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인 침묵은 어렵지만
우리는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침묵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에너지를,
참된 일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침묵에서 얻어지는 하느님의 에너지는
곧 모든 일을 잘하기 위한
우리의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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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진정으로 기도하기를 열망한다면
침묵을 지키십시오.
 

[ 작은 어린이처럼 ]

어린이와 같은 단순함으로 기도하십시오.
더 많이 사랑하려는 순수한 열망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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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일과를 기도로써 시작하고
기도로써 마무리하십시오.
하느님께 어린이와 같이 다가가십시오.
기도하기가 어렵게 여겨지면 이렇게 아뢰십시오.

오십시오, 성령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어 제가 기도할 수 있도록
저를 이끄시고 보호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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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선교회 공동체 기도문 )

좋으신 주님, 위대한 치유자이시여,
당신 앞에 무릎 끓어 경배하옵니다.
모든 온전한 선물은
당신으로부터 비롯됨을 알고 있습니다.

비오니 제 손에 기술을,
제 생각엔 투명한 확신을,
제 마음엔 친절과 온유함을 주소서.
목적에 대한 꿋꿋한 신실함을 지니게 하시고
이웃이 겪는 고통의 일부나마 저의 것으로
들어 올릴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이것이 저에게 유익이 됨을 깨달을 수 있게 하소서.
제 마음에서 교활함과 세속적인 욕심들을 없애주소서.
어린이의 순수한 믿음으로
오직 당신께만 의지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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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일하는 동안에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일은 기도를 방해하지 않으며
기도 또한 일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그분을 향해 아주 조금만
마음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느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지금 저에겐 당신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단순한 고백도 훌륭한 기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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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프란치스코가 당신 자신과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평화의 기도를 지으셨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

, 거룩하신 주님,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할 수 있도록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할 수 있도록
사랑받기보다는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저를 도우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죽음으로써 새롭게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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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 자신을 비우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우리는 하느님이 채우실 방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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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겸손은
당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마주할 때
당신은 이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과 마주하면 그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지닌게 없음을 절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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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서 하느님을 찾지 마십시오.
그분은 먼 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바로 당신 가까이 계십니다.
항상 그분을 뵈올 수 있도록
등불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게 하십시오.
깨어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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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열매 맺기 위해서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기도여야만 하고
하느님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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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여는 것 ]

여러분에게 베풀어 주실
하느님의 사랑을 향해 마음을 여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을 다정하게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은 가둬두는 사랑이 아니고
나누어주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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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기도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우리의 몸과 오관을 초월한 단순성에 의해서 고양됩니다.
지속적인 열망은 기도 생활에 양분을 더하게 해줍니다.
성요한 비안네는
당신의 눈을 감고, 당신의 입을 닫고
그 대신 마음을 여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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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는 일의 종류, 또는 일의 분량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얼마만큼 사랑을 지니고 일을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사랑으로 일하시는 하느님께
우리가 사랑을 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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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기쁨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사랑을 비추어 주는 햇빛과 같습니다.
기도는 영원한 생명을 향한 희망입니다.
기도는 여러분 모두와 나를 위해 타오르는
하느님 사랑의 불꽃입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이것은 가장 훌륭한 사랑의 방법이니까요.
오늘 하루도 하느님의 사랑의 빛으로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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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이웃에게
당신이 감사를 표현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모든 것을 다 기쁨으로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가득찬 마음이야 말로
사랑으로 타오르는 데서 오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 침묵 안에 마무리하기 ]  

침묵의 열매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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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영혼들은 깊이 침묵하는 영혼들입니다.
침묵은 아름다운 기도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다섯 가지의 침묵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입술의 침묵, 마음의 침묵, 눈의 침묵, 귀의 침묵, 정신의 침묵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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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침묵의 벗입니다.
대자연을 보십시오.
나무들, 꽃들, 잔디가 침묵 속에 자라나고 있습니다.
하늘의 별님, 달님, 해님도 침묵 속에서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요?
그러한 침묵 속에서 하느님은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실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 영혼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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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열매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열매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열매는 봉사입니다.
그리고 봉사의 열매는 침묵입니다.
 

[ 기도의 열매 ]  

작을 일들에 충실하십시오.
당신을 키우는 힘은 바로 거기에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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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당신이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다함께
하느님을 위한 아름다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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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가끔 유능하고 재능 있는 사람이
엉망으로 되는 상태를 허락하십니다.
사랑으로 엮어진 것이 아니라면
훌륭한 일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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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열매는 순결한 마음입니다.
순결한 마음은 자유롭게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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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게 행하는 조그만 애덕의 가치를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가 많은 일을 함으로 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지니고
그 일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웃을 잘 안다함은
사랑한다는 것이며
또한 여러분 자신의 개인적인 봉사를
포함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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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급하게 주님의 낙원을 꿈꾸고 기다리지만
그 낙원이란 바로 지금 여기에 우리 손안에 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우리가 행복하다는 뜻은,
그분처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처럼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분처럼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분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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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열매는 믿음,
믿음의 열매는 사랑,
사랑의 열매는 봉사,
봉사의 열매는 평화입니다.

-----

참 기쁨이란
가장 깊고 고요한 데서 오는 내밀한 기쁨
그래서 우리의 눈에, 얼굴에, 태도에, 몸짓에
즉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그런 기쁨입니다.

-----

우리가 성화(聖化)되는 정도는
하느님의 은총과 더불어
거룩하게 되려는 우리의 노력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 거룩함에 도달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품고 있어야만 합니다.

-----

거룩하게 되십시오.
우리 모두는 거룩하게 될 능력이 있으며
그 비결은 기도입니다.

----

기도가 우리의 소중하고 힘 있는 무기라는
이 기쁜 소식을 우리는 온 세상에 퍼뜨립시다.

----- end.

 

금주의 독서 메모 012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0.12.20.

[ 눈물 ]

- 최인호 지음 / 서대경 편집(팀장) / 351p
* 최인호 유고집
* 최인호 프로필 : 1945년 서울에서 태생/연세대 영문학과 졸업/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입선 문단 데뷔 / 100여 편의 소설과 수필집 발표
/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불교문학상 등 수상

[ 책 표지의 글에서 ]

오늘 자세히 탁상을 들여다 보니 최근에 흘린 두 방울의 눈물 자국이
마치 애기 발자국처럼 나란히 찍혀 있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가장자리가
별처럼 빛이 난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마음에 알코올솜을 가져다
눈물자국을 닦았습니다. 눈물로 탁상의 옻칠을 지울 만큼 저의 기도가
절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탐스러운 포도송이 모양으로 흘러 내린
탁상 겉면의 눈물자국도 제게는 너무나 과분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발을 제 눈물로 적시고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드릴 수 있다면......
/주님을 생각할 때마다 내 눈에서도 홍수와 같은 눈물이
흘러내릴 수 있도록, 주여 나를 게파(바위)로 만들어 주소서.
/성모님과 십자고상이 있는 탁상 앞에 앉아 글을 씁니다.
탁상 위에는 지난 수년 동안 묵주기도를 올릴 때마다
흘렸던 눈물로 포도송이처럼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 1987년 8월, 벗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

이 편지를 받는 그대가 누구인지 아직 저는 모릅니다.
그대는 이미 제가 만났었던 사람인지, 친하였던 동무였는지,
아니면 오가는 길가에서 스쳤던 사람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어쨌든 내 사랑하는 벗이 되어 생전 처음 쓰는 이 편지를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 (세례성사<영세명 : 베드로>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된 이야기) .....

사랑하는 벗이여,
먼 후일 저는 그대를 위해 아주 긴 편지를 쓰겠습니다.
... 그때까지 사랑하는 벗이여, 안녕히 계십시오.
제 편지를 받으신 그대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임하게 되시기를 간구합니다.

[ 먼 후일 또 다른 편지 한 통이 벗에게 도착합니다 ]

사랑하는 벗이여,
2008년 여름, 나는 암(침샘)을 선고받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 나는 이 의식을 ‘고통의 축제’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암선고 후 선종까지의 일정 요약)
<요약> 2009년 10월 : 침샘암이 폐로 전이, 2010년 침샘암 재발,
2010년 10월 : 소설(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쓰기 시작,
2011년 : 네 번째 항암 치료 후 모든 검사 중단,
“ 눈을 뜨려고 해도 자꾸만 눈이 감깁니다.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참을 수 없는 절감감입니다. 하지만 나는 쓰고 싶습니다. 반드시
이 고통 속에서, 내게 주님을 찬양하는 글을 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소서.
성체(聖體)가 너무나 고픕니다.”,
2013년 9월 : 다시 입원, 2013년 9월25일 저녁7시 작가 최인호(베드로) 선종/
최 베드로가 주인공이었던 1인극 ‘고통의 축제’는 이로서 막을 내렸습니다.

[ 그리고 얼마 후, 약속대로 아주 긴 편지가 벗에게 도착합니다 ]

.... < 여러 상황의 주인공/주제들과 명언/성경의 말씀 그리고 본인의 기도들 > ....

< 마태오 복음 >
- “ 내가 세상 끝날 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
- 마태오 복음서의 가장 마지막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후손들인
우리에게 하신 신성의 약속입니다./
- “주님, .... 주님의 말씀처럼 항상 저와 함께 계시어 비틀거리며 갈팡질팡
소신 없는 이 변덕스러운 피조물을 주님의 뜻으로 정화시켜 주소서.
또한 악마에게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 빛의 갑옷을 입혀 주시어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사랑을 가르쳐 주소서.
사랑이야 말로 이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임을 온 마음으로 깨닫게 하소서.”

< 영국 태생 가수 에릭 클랩튼 >
- 자식의 죽음에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천국의 눈물’과 마약과 타락으로
물들어진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벗어나기 위한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 노래 작곡
- “주님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 당신이 가지신, 주님 부디 그 힘을 주십시오.
세상을 살아 갈 나는 아마도 너무 덧없이 살았나 봐요.
그래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나 봐요. 그러니 주님, 힘을 주세요.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오 주님 힘을 주세요.”

<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쓴 불멸의 희곡 ‘파우스트’ >
- 광야에 나아가서 40일을 단식후 악마와의 유혹에서 싸우시는 주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최대의 교훈은 악마의 실재입니다. 그러나 악마가
던지는 최고의 유혹은 악마 스스로가 외치는 자신이 부재입니다 악마는 분명히
실존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하나의 상징일 뿐이라고 끊임없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인들은 악마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마는 분명히 있습니다. ...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현대인에게 던지는
제4의 유혹, 그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악마는 없다.’

< 마틴 루터 킹 목사 >
- 1968년 4월, 미국 테네시 주의 멤피스 시에서 흑인 청소부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서 연설을 하던 흑인 지도자 ‘마틴 루터 킹’목사가 괴한이 쏜 총탄에 맞아
숨을 거둡니다. 킹 목사는 생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모든 성서의 핵심은 요한복음 3장 16절에 압축되어 있다.”
/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3,16).”
- “사랑하는 벗이여, ....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인 예수까지 우리에게 보내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한 사실을 보아서라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곧 사랑이십니다.

< 윌리엄 워즈워스의 유명한 시 ‘무지개’ >
- 무지개를 바라볼 때 가슴에 설레던 어린 시절의 감동이 만약 나이가 들어
사라져서 감동할 줄 모르는 무의미한 인생을 살게 된다면 차라리 죽는 편이 좋으며,
인생의 하루하루를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동심으로 살 수 있음이야말로
‘천성의 경건함’이라고 워즈워스는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 ‘워즈워스’가 노래한 ‘하늘에 걸린 무지개’야 말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하느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며 그것은 내가 어렸을 때도 그러하였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그리고 나 늙어진 다음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리스의 자랑 ‘니코스 카잔차스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
- 평생을 신(神), 영혼, 자유, 죽음과 같은 문제에 매달려 온 이 작가는
1953년 70세에 이르러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란 작품을 발표합니다.
-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루카4,13).
”여기서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는 그 한 구절에서 예수께
찾아 온 그 마지막 유혹은 무엇일까 고민한 그의 작가적 통찰력 ....
벗이여, 주님께 찾아온 악마의 마지막 유혹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혹시 ‘카잔차스키’의 기도문 속에 답이 있을까요.

< 영국의 문호 월리엄 세익스피어가 쓴 세계적인 명작 ‘햄릿’ >
- (햄릿에 나오는 명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쪽이 더 사나이다울까.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받아도 참고 견딜 것인가, 아니면 힘으로 막아 싸워 이길 것인가.”
-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마태3,15).”
-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도 햄릿처럼 항상 두 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하여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느님의 일이냐, 아니면 사람의 일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주님은 항상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을 선택하심으로써 우리들에게 그 정답을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여 보여 주신 것입니다.

< 기드 모파상의 소설 ‘목걸이’ >
- (프레스체 부인) “내게 돌려준 그 목걸이 갚느라 10년을 고생을 했단 말이에요?
이를 어째, 마틸드. 그 목걸이는 싸구려 가짜였어요.”
-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든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마태13,45).”
- 주님, 우리는 가짜 목걸이에 취해 아까운 인생을 허비하며 가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주님의 말씀이야말로 진짜 진주 목걸이입니다.

<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행복한 왕자’ >
- 사랑하는 벗이여,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처럼 철새 한 마리의 영혼도구원하시는
주님이 계신데 우리들이 더 이상 무엇을 두려워 하게 씁니까.

< 영국의 뮤지컬 작곡가 로이드 웨버의 작품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
- 예수님의 생애를 락 뮤지컬로 만든 기념비적 작품으로 지친 예수님을 품에
안고 부르는 여주인공 아리아가 유명합니다. ...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사랑을 노래하는 여인은 다름 아닌 ‘마리아 막달레나’입니다.
그녀는 매춘부였으며 죄인이었습니다.
- “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8,11).”
-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거리의 창녀를, 모든 제자들이 다 도망갔을 때도
자신의 무덤을 지켜보는 최후의 증인으로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부활의 기쁜
소식을 처음으로 전하는 복음 전파의 성녀로 변화시킨 당신은 누구십니까.
‘슈퍼스타’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노래처럼 그녀를 딴 사람으로 바꾸어
변하게 한 바로 그 남자,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그녀의 탄식처럼 저 역시 당신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마지막 걸작 ‘부활’ >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11,25).”
- 톨스토이의 표현처럼ㅁ ‘공명심, 권세, 이기심, 애욕, 자만심, 분노,
복수심, 쾌락’의 어둠 속에 갇혀서 우리들의 몸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들의
몸에서나 맡을 수 있는 악취까지 나고 있습니다.
-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우리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소서.
우리를 세속에서는 죽고 주님 품 안에서만 살아 숨 쉬는 작은 씨앗이 되게 하소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여 주시고 이렇게 큰 소리로 외쳐서 우리를 부활시켜 주소서.

< 화가 김환기의 점묘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 주님, 나의 하느님, 우리가 주님의 뜻을 밝히는 밤하늘의 별이 되어
그 어디에서 주님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잠든 우리의 손을 잡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여 주소서. “타리타 쿰(일어나라/마르5,41).”

< 알퐁소 도데 단편소설 ‘황금의 머리를 가진 사나이’ >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3,34).”
- 벗이여, 이제야 알겠습니다. 어릴 때 읽은 그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주님이었습니다. 피투성이의 황금머리를 가진 사나이,
그 사나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 영국의 무호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 주인공 수전노 ‘스크루지’
-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루카6,43).”
- 좋은신 주님, 좋은 열매를 꿈꾸기 전에 우선 우리가 좋은 나무가 될 수
있도록 은총 주소서. 우리를 좋은 나무로 변화시켜 주소서.
- 가장 좋은 나무는 바로 나무 십자가임을 깨닫게 하소서.

----- 이하 이야기 주제만 메모

< 근대 영국의 뛰어난 비평가이자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 >
- 우리가 아직 영혼의 눈을 뜨지 못하고 눈먼 자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자신의 의상, 즉 남에게 보이는 ‘나’를 벗어 버리지 못한 때문인 것입니다.

< 프랑스의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크‘ 희곡 ’의자들‘ >
-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 질 것이다(루카14,11).”

< 영국의 시인 ’프란시스 톰슨‘의 시 ’하늘의 사냥개 >
-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루카15,18).”라고
몸을 돌린 순간, 아버지는 아들을 용서하고 성대한 잔치를 벌여 줍니다.

< 20세기 최고의 시인 영국의 ‘T.S.엘리엇’의 시집 ‘4중주’ >
- 사랑은 기다림입니다. 밤은 낮을 기다리고 낮은 밤을 기다립니다.
그리하여 하루가 흘러가는 것입니다. 겨울은 봄을 기다리고 봄은
겨울을 기다립니다. 그리하여 일 년이 흘러갑니다. 일 년이 흘러가서
세월이 되며 세월이 흘러가서 영원이 됩니다. 삶은 죽음을 기다리며
죽음은 삶을 기다립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기다리며 인간은 하느님을 기다립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한다는 생각 없이 사랑하시고 하느님은 인간을
기다린다는 생각 없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이신 것입니다.

< 열 명의 나환자를 고쳐 주신 주님 >
- 이때 주님은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루카17,17).”고 한탄하십니다.

< 스웨덴의 경제학자이자 정치가 ‘다그 함마르셀드’ 전 유엔사무총장 >
- “지나간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가올 모든 것에 대하여 긍정합니다.”

< 러시아 소설가이자 언론인 ‘도스토엡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 “하느님은 존재한다. 하느님은 존재한다.”

< 미국 작가 스타인백의 대표작 ’분노의 포도‘ - 퓰리처상 수상작 >
- 하지만 주님, 우리들의 가슴에 분노의 포도가 주렁주렁 열릴지언정,
죄를 짓게 하지는 마옵소서.

<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 >
- “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 나는 남자이고 그대는 여자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하나이며
하느님께서 똑같이 창조하신 거룩한 사람입니다.

< 옛 그리스의 철인 ‘플라톤’의 작품 ‘향연’ / 성정식 여인의 아름다운 이야기 >
- 우리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은 플라톤의 말처럼 불완전한 반쪽이
나머지 반쪽을 찾아 한 몸을 이루는 길이며 주님의 말씀처럼 두 사람이 비로소
완전한 한 몸을 이루는 길입니다.

< 미국의 위대한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짧은 단편 ’에밀리에게 장미를‘ >
-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고 우리에게 맹세하십니다.
주님의 이 맹세야말로 영원한 약속이신 것입니다. ...
주님의 이 약속이 ‘에밀리의 장미’처럼 헛된 사랑의 맹세라면 우리는
지금 침대에 누워 썩어 가고 있는 죽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가엾은
에밀리와 같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 일연(一然)이 지은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서 ‘삼국유사’중 ‘조신의 꿈’ 설화 >
- 부부간의 50년의 세월이 깜박 불당 안에서 졸았던 하룻밤의 꿈인 것을 조신은
그제야 깨달았던 것입니다.
- 주님, 저를 늘 깨어 기도하게 하소서. 저를 겸손케 하시고 제 소망이 무서운
자애심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그리하여 기도 가운데 이 헛된 망상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하소서.

< 프랑스의 작가 ‘아나톨’ 작품중 ‘성모님의 곡예사’ > p 175
- 주님, 우리 모두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재능을 활짝 피울 수 있는 꽃이 되게 하소서.
이 지상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만발한 화원이 되도록 은총 주소서.

<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벽화 >
- 예수 그리스도는 구세주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구원의 역사는
시작된 것일 뿐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그분이 다시 오셔서 심판을 내려야만
구원은 비로소 완성될 수 잇을 것입니다.

<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명한 작가 베르나노스 >
-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모두 다 주님의 은총입니다.”

<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벽화 >
- 주님, 제 몸속에도 주님을 닮은 모습과 은전 서른 닢에 주님을 팔아넘긴
배반자 유다의 피가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제 몸속에 들어 있는 주님과
또 하나의 유다, 이처럼 모순 덩어리인 우리들을 주님이 흘리신
계약의 피로서 구원하여 주소서.

< 빈센트 반 고흐의 12장의 ‘자화상’ >
- 죽기 전 자화상을 완성하고 나서 고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자화상은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거짓말이다.”
- 오오, 나의 전부이신 주님. ........
그러하오니 주님. 만년필을 잡은 제 손위에 거짓이 없게 하소서.
제 손에 성령의 입김을 부디 내리소서.

< 금세기 최고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
- ‘건축이야말로 희생의 길’임을 강조했던 가우디가 남긴 20세기 최고의
걸작품은 “성가족교회(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일 것이다. 이 성당은 백년이
지난 지금도 완성되지 않았으며 완성될 시기가 그 언제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 우리의 몸은 하느님의 성령이 살아 계신 거룩한 성전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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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수업중 떠 오른 글의 소재>
- ... 소년은 그제야 그 상자를 열어 봅니다.
그 상자 속에는 십자가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 두 줄을 쓰는데 5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 주님. 이제야 알겠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바로
자애로우신 어머니, 성모마리아였음을.

< 엘 그레코의 그림중 ‘베드로의 눈물’ 작품 >
- 주님, 제 눈에도 주님처럼 눈물이 넘쳐흐르게 하소서.
주님을 생각할 때마다 베드로처럼 흐느껴 울도록 하소서.
눈물로 우리의 영혼을 정화하여 하느님의 영광 속에서 죽음의 동굴을 벗어나게 하소서.
- 우리의 용서는 ‘내가 너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용서받은 너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 1849년 덴마크의 사상가 키에르카고르가 펴낸 한권의 책 ‘죽음에 이르는 병’ >
-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은 절망이며, 절망이란 자기를 있게 한
하느님과의 관계를 상실하는 것이라 말하고 이 상실이야말로 죄라고 규정짓고 있습니다.
- 주님. 언제나 기뻐하겠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하겠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겠습니다.
주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 이솝이야기의 우화중 ‘여우와 포도’ 이야기 >
- 주님의 목마름은 물 때문이 아니라 평화에 대한 갈증 때문이라는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말씀처럼 저를 신 포도주에서 평화의 물로 변화시켜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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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이제야 알겠습니다. 최후의 유언으로“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는 말씀을 남기신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 곳은
바로 ‘내 마음(心)’임을.

- 저는 7번의 항암주사와 35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평생 처음 큰 수술과 큰 병을 앓고 보니 느낀바가 많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변화시켜 주기 위한 좋은 계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1897년 9월 30일 아침, 소화 데레사 성녀는 이런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둡니다.
“ 이 생명의 저녁에 나는 ‘빈손’으로 당신 앞에 나아가겠나이다.”
- 겸손은 자신과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버리고 온전히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나’를 없애고 주님으로 채우는 것이 바로 정화의 과정이며
주님이 주시는 은총임을 깨달았습니다.
- 사랑하는 벗이여.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억지로, 강제로 내 생명을 연장시키려
노력하지 말 것을 부탁합니다. 2013.1.1. 잠들려하기 전
- 괴테의 시문구. ‘산봉우리마다 휴식이 있으리라’처럼 나는 휴식을 취하였노라.

[ 2013년 9월 28일 아침, 명동성당 ]

- 오늘 우리는 지난 수요일 우리 곁을 떠나 하느님 품안에 드신 우리가 사랑하는
최인호 베드로 선생을 추모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암 투병 중에도 서울대교구 ‘서울 주보’에 옥고를 연재하시며
신앙인들에게 당신의 묵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누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선생의 글은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휴식이었고 힘이었고 깊은 감동이었습니다.
- 사람은 죽어 떠나도 사랑과 선행만은 남게 됩니다. 최 선생님이 저술하신 100권이 넘는
작품들이 이 세상에 사랑과 선행을 남길 것입니다.
- (최 선생님이 서울주보에 쓰셨던 글) “우리들이 이 순간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의 눈물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울부짖고 있는 사람과 주리고 목마른 사람과 아픈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주님! 세상을 떠난 최 베드로에게 천국 문을 열어 주시어
영원한 생명으로 받아 주소서. 아멘 – 정진석(추기경)

[...그리고 작가 최인호 베드로에게 편지들이 도착합니다 ]


- 고 최인호 베드로에게 편지를 보내주신 분들 (내용은 생략)
* 김인중(신부, 화가), 곽성민(신부), 허영엽(신부), 이해인(수녀, 시인),
김재순(샘터사고문), 김주연(문학평론가), 김형영(시인), 이장호(영화감독),
윤후명(작가), 김홍신(작가), 오정희(작가), 권영민(문학평론가),
정호승(시인), 하성란(작가), 조경란(작가), 김연수(작가)

[ 2013년 10월 7일 월요일 이른 새벽, 신문 한부가 배달됩니다 ]

강진형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53)는 지난달 25일 별세한
소설가 최인호 씨의 마지막 5년을 함께한 주치의다. 그는 일부러 빈소를
찾지 않았다고 했다. ‘나중에 묘소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
많은 죽음을 봐 온 의사이지만, 한 작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리는 듯했다. .... 이하 생략 .... 인터뷰가 끝난 뒤 헤어지는 길에 강 교수는
“최 선생님이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말고 뭔가 숨겨 놓으신 게
있을지도 몰라요.”라면서 웃음 지었다. 항암 치료받고 그 뒤에 몰래 써 놓으셨을 수도 있어요.
나중에 발견하라고. 천국에서 껄껄 웃으시겠지. “요놈들아, 놀랐지? 하면서.”
그의 말을 듣는 기자의 귀에도 고인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인터뷰 김지영 기자)

[ 2013년 10월17일. 맑은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이침,
두 손녀가 편지를 들고 오랫동안 비어 있던 편지함 앞으로 걸어옵니다 ]

- 할아버지께 ..... 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우리 꿈에서 만나요. 잘 자요. 좋은 꿈꿔요. 내일 봐요. 사랑해요. 할아버지!
- .....오늘은 할아버지의 예순여덟 번째 생신이다.
긴초 여섯 개, 작은 초 여덟 개, 할아버지가 한 번에 촛불을 껐으면 좋겠다.

(엔딩 글) 어느 날 늦은 오후, 누군가가 성당 감실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마침 이를 본 신부님이 기도를 마치기를 기다린 후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성체가 너무나 고픕니다.”



 

금주의 독서 메모 013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0.12.27.

[ 농사꾼 신부 유럽에 가다 ]

- 황창연 지음 / 255p
- 농사꾼 신부의 유럽 여행기

- 황창연 신부 프로필 : 1965년6월 경남 지리산 출생/ 1992년 수원가톨릭대학원 졸업.사제서품/
1999년 아주대 산업대학원 환경공학 석사 취득/ 2001년 <한국문인> 수필 부문 등단/
2005년 수원교구 사회복음화국 환경전담 신부/ 평창 성필립보 생태마을 사목

[ 책 표지의 글에서 ]

지난 여름 두 달 동안 5천여 명의 학생들에게 환경 교육시키랴, 성 필립보 생태마을 내방객
안내하랴, 틈나는 대로 밭에 나가 김매랴, 눈코 뜰 새 없었던 바쁜 일정을 잠시 접고 책 몇 권과
옷가지를 챙겨서 서쪽 멀리 로마로 떠나려고 한다. 올리브와 포도의 대륙, 기독교 문화가
꽃피운 대륙을 내 몸으로 직접 체험해 보고 싶어서 농사꾼에게는 과분한 여행을 떠난다.


[ 1부 농사꾼 신부 ]

< 흙에서 사는 행복 >
- 나는 하늘과 땅을 먹고 사는 농사꾼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과,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하늘물의 조화와, 붉은 황토를 뚫고 태양을 향해 솟아오르는 녹색
생명들에게 매료되어 농사꾼이 되려고 평창에 들어온 풋내기 농사꾼이다.

- 농약의 피해를 경고하기 위해 <침묵의 봄>이라는 유명한 책을 쓴 ‘레이첼 카슨’의
말대로, 흙이 죽으면 나무, 식물, 곤충, 새, 짐승들은 물론이고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는
사람도 죽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농약과 화학비료로
흙을 죽인다.

- 나는 흙에서 사는 행운아다. 내가 직접 황토 흙으로 지은 흙집에서 산다. ....
봉이 김선달이 우리 골짜기를 통해서 영월로 지나다녔다는데 그를 흙집에 맞아들여
술 한잔 나누고 싶은 집이다.

< 성 필립보 생태마을 >
- 성 필립보 생태마을은 연간 방문객이 1만 5천명 이상 되는 곳이다. 호텔도,
피정의 집도, 유기농장도, 성지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경치 좋은 곳에서
하루쯤 쉬어가는 쉼터이다. - 많은 이들이 생태마을에 대해 오해를 한다. 생태마을
(生態마을/Ecovillage)이 강원도에 있다는 이유로 생태(生太)마을인줄 알고
생태(生太)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황태는 없느냐는 문의 전화가 걸려오기도 한다.

- 이곳 땅이 약 2만 평 정도 되니 결코 작은 땅은 아니다. .... 처음의 땅은 8천 3백
평이었다.
(당초 평창 대건청소년재단 소속의 땅을 개발 제안/ 수원교구 청소년문화원장 승낙 제공)
수원교구청의 도움으로 7천 3백 평을 더 매입하고, 4천 5백 평의 농사짓지 않는
밭을 임대해서 현재의 2만평이 된 것이다.

- 생태마을 집은 해발 325m 위에 지어졌다. 사람이 기분 좋은 느낌을 받는 높이가
해발 300m에서 700m사이라고 한다. .... 해발 700m가 아토피, 고혈압, 당뇨, 간이
안 좋은 환자들에게는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한다. 스위스나 뉴질랜드
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휴양지들은 대부분 700m에 위치해 있다.

- 땅은 확보했으나 땅을 개발할 자금이 없었던 나에게 한 천사가 나타났다.
천사는 성 필립보 생태마을 이름의 주인공인 김창린(필립보) 신부였다.
(개인 소유 땅을 기증, 개발 자금화/ 평생 모아둔 장학금 기부) .... 나는 이 집의 이름을
김창린 필립보 신부님의 세례명을 따서 ‘ 필립보 생태마을’이라고 이름 지었다.

[ 2부 이탈리아에서 ]

< 갈리스도 까따꼼바 >
- 까따꼼바는 고대 로마 성벽에서 20분 정도 걸어 나가면 위치해 있는 곳이다.
평범한 평지로 보이지만 지하로는 무려 50리 길이 넘는 지하 무덤이다. 지하로만
이어진 지하 무덤은 총 20km로 지하 4층으로 이루어진 미로(迷路) 공동묘지이다.
그곳에는 수많은 그리스도인 시신이 묻혀 있었다고 한다.

- 313년 종교박해가 끝나자, 200년 동안 지하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신앙의 순교자들
시신은 8세기까지 지상에 있는 성당으로 옮기지기 시작했고 지하 무덤은 거의
1천 년 동안 잊혀져 있었다. 그렇게 잊혀졌던 지하 무덤은 16세기경부터 다시
발굴을 시작해서 세상에 공개되었고, 지금은 2천 년 전 선조들의 신앙생활을
추억하는 장소로 현대인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 이 까따꼼바에는 아홉 분의 초대 교황님들이 묻혔었고 그 중에 갈리스도 교황님이
묻혀 있어서 ‘갈리스도 까따꼼바’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까따꼼바에는 음악의
주보성인이신 체칠리아 성녀가 묻혀 있었는데, 본 시신은 다른 성당으로 옮겨지고
대리석 조각이 성녀를 대신해서 누워있었다.

- 지하 무덤은 단순히 그리스도인의 시신만을 모신 것이 아니라 로마 군인들의
눈을 피해서 성체성사와 세례성사를 거행한 장소였다.

< 라테라노 성전과 로마교구 교구청 >
- 라테라논 성전은 콘스탄틴 황제가 살던 궁전이었는데, 로마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전투에서 승리하자 황제는 궁전 옆에다 성전까지 지어서 성전과 궁전을 멜키아데스
교황에게 봉헌했고, 교회는 베드로 성전이 지어지기 전까지 거의 1천 년 동안 교황
궁정과 교황 착좌식을 거행하는 성전으로 사용했다. 현재는 로마교구 교구청으로
사용하고 있다.

<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
- 로마 시내에 있는 4대 성당(베드로, 바오로, 라테라노,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전)중
하나이다. ... 성당내의 돔이 예술이다. 그 높은 벽면(천장 높이 30m)에 그려진 그림들은
신앙의 힘과 예술, 의지와 끈기와의 합작품이다.
----- 22일간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여행에 동행해준 문희종 신부 소개 글 - 생략

< 가에타 성지 >
-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순간 성전 휘장이 갈라질 때 이곳 바위산도
갈라졌다는 곳이다.

< 베네딕도 수도원 >
- 베네딕도 성인의 유일한 규칙은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bora!)”이다.

- 몬테카시노 수도원은 베네딕도 성인이 직접 설립한 수도원으로 1천 5백 년이 넘는
수도원이다. 아득한 산꼭대기에 세상과 단절되어 있어서 요새 같아 보이는 곳에
수도원이 세워져 있다.

-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이 수도원을 요새로 삼아 심하게 저항하여 미군의
피해가 막대했다. 미군은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점령하고 난 뒤에는 전에 있던 수도원과
똑 같은 수도원을 지어 주기로 약속하고 폭격을 한 다음 점령했다. 폭격으로 산산조각난
수도원은 다행이도 1천 5백 년이 지났어도 설계도면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서
원형 그대로 복원될 수 있었다.

- 옛날이나 지금이나 봉쇄 수도원은 저녁 8시나 9시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 2시나
3시 사이에 일어나서 독서 기도와 아침 기도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 골로세움 >
- 콜로세움은 기원 후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건축하기 시작해 8년 만에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가 완성했다. 기원 후 70년경에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 10만
명이 넘는 유다인 포로를 데리고 와서 완성한 경기장이다. 유다인이 완성한 원형
경기장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한 것이다. 관중석을 둘러 싼 경기장의
높이가 50m이다. * 개선문과 로마 공회장 유적지 관람 포함

< 네오까떼꾸메나또 (NEOCATECUMENATO) >
- 교황청에서 허락한 기도회 모임이다. 전례는 제대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 중심이
아니고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교우들 중심이다. 독서자가 독서를 낭독한 후 독서에
대한 느낌을 말하고, 복음 낭독 후 성서 말씀 나누기도 교우들이 느낌을 말하며,
보편 지향기도도 자유로이 하는데 20여명이 기도를 한다. 신부의 강론은 2분도 채
안되고 나머지 시간은 교우들의 묵상 나누기였다. 기도회는 거의 두 시간이나 되었다.
미사가 끝나자 모든 참석자들은 제대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손을 맞잡고 본당신부와
함께 춤을 추면서 기도를 끝맺는다.

< 안식일 >* 오전에 미사 봉헌, 오후에 트레비 분수와 나보나 광장 관광

< 비티칸 베드로 대성당 >
- 광장 한가운데에는 오벨리스크가 있고, 광장 둘레에는 네 개씩 배열된 회랑(복도)
기둥이 있는데, 한가운데에서 보면 그 넓은 회랑의 기둥들이 네 개로 안 보이고 하나로
보인다. 천재 예술가 베르니니에에 의해서 설계된 것이다. 회랑 위에는 성인들과
교황들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광장 정면에 자리 잡은 성전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고, 둥그렇게 되어 있는 기둥들(총 284개의 대리석 기둥)로 둘러싸인 회랑은
예수님이 팔을 벌려 만민을 끌어안는 형상이다.

- 성전에는 높이가 20m가 넘는 큰 문 다섯 개가 있다. 그중 오른쪽 끝의 문은 25년에
한번 열리는 희년의 문이다. 성전 입구 바닥에는 186.3m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성당의 길이를 나타내는데 베드로 성전이 세상 모든 성전 가운데 가장 크고 길다.
최대 6만 명이 들어 갈 수 있는 성전이다. 성전 입구 오른편에는 미켈란젤로가 친히
서명까지 해서 제작한 피에타상이 있다. 판테온 신정에 있는 청동을 떼어 와서 만들었다는
베르니니의 작품 ‘천개(네 기둥을 세워 제대 위를 덮는 곳)’는 바위 위에 세워진 교회를
지키려는 듯 제대 위쪽에 서 있다. 성당 바닥에서부터 지붕 꼭대기(돔)까지 높이가
137m나 된다. 베드로 성전은 12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거쳐 지어졌다. 순교한 베드로
사도의 시신이 바티칸 언덕에 묻혔고 그 무덤 위에 교회는 세계 교회의 중심 성당을
지은 것이다.

< 바티칸 박물관과 시스티나 성당 >
- 바티칸 박물관도 볼 만했지만, 시스티나 성전으로 향하는 복도를 라파엘과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꾸며 놓았다. 시스티나 성전의 주인공인 미켈란젤로는
아흔 살까지 베드로 성전을 짓는데 온갖 정성을 다 들였다. 교황님의 지시로 예루살렘
성전과 똑 같은 크기(200여 평)로 지은 성전에 천장 벽화(프레스코화)를 그리고
나서는 목이 꺾어져 있을 정도로 혼과 정성을 들여 그림 그림이 ‘천지창조’이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섬유예술(타피스트리) 작품들이 벽에 걸려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장면을 표현한 작품도 있었다.

- 미켈란젤로의 최고 작품인 시스티나 성당 안에는 천지창조를 시작해서 구약의
대사건과 인물들, 신약의 예수님의 생애를 실감나게 그린 그림 안에는 391명의 인물이
시스티나 성전 천장과 벽면에 그려져 있다. 그림을 그리라고 명령한 교황은 율리우스
2세이다. 1508년 시스티나 성전 문을 걸어 잠그고 시작한 그림은 4년 만에 완성이 되었다.

< 산/ 대학 입학생 26만 명/ 내 맘에 꼭 드는 운전 문화 >
- 이탈리아는 산을 이용해서 산꼭대기에 집을 짓고 산다. 동양인들은 산을 신성시하는
반면 서양인들은 산을 이용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 해발 300m에서 살면 생체리듬에도 좋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해발 300m 정도가
되어도 올리브 밭으로, 밀밭으로, 목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 이탈리아에서 산에다 집을 짓고 성을 지은 이유는 땅을 개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 때문이었다.

- 이탈리아 사람들은 놀기 좋아하고, 춤추기 좋아하고, 웃고 떠드는 것을 참 좋아한다.
특히 밤중에 길거리에 앉아 친구들끼리 모여 술 마시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우리와 똑같다.

- 이탈리아가 우리나라와 다른 것이 있다면 가족 중심의 문화이다. 우리나라는
가족중심의 나라라고 하지만 이미 해체되었다. 우리나라는 온 가족이 바빠서 함께 할
시간이 없다.

- 이탈리아는 1년에 26만 명(2005년 기준)이 대학에 진학한다. 인구가 5천 8백만 명이니까
우리나라보다도 1천만 명 정도가 많다. 이탈리아는 공부를 꼭 하고 싶거나 목표가
분명한 학생들이 대학에 가지만 우리나라는 누구나 간다. 우리나라는 1년에 대학
진학생이 50만 명을 넘어 섰다.

- 이탈리아는 고속도로가 3차선인데도 제한속도가 130km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차가 150km로 달린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자기보다 빠른 차가 오면 서둘러 2차선으로
들어간다. 뒷차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기분 나빠하거나 신경전을 벌이지 않는다.

- 이탈리아 도로에서는 감시 카메라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음주 측정도 거의
하지 않는다. 자율적으로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 암브로시오 전례 >
- 십자가 현양축일 3일간의 축제중 토요일에 진행되는 첫날 전례(저녁기도)에 참석,
밀라노 추기경이 직접 거행. (암브로시오 : 밀라노의 주보성인) - 유럽의 오래된 전통 전례

- 십자가를 사랑하는 일은 신앙의 시작이며 십자가 없이는 부활도 없다. 현대의 믿는
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이유는 부활만 생각하는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 하느님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노래, 춤, 그림, 그리고 시(詩)일
것이다. 이 최고의 선물을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최고의 경배 행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십자가가 성당 하늘 천장에서 내려오고, 파이프 오르간과 합창단의 성가 소리가
감동적이다. 암브로시오 전례는 노래와 그림, 시의 조화가 오묘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 전례 참석 후 암브로시오 성당과 성모성당 관람

< 빈치아노여! 영원하여라! >
- 성모성당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림인 ‘최후의 만찬’이 소장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이탈리아 사람은 별로 없다. 2주일 전에는 예약을 해야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 경당 안에는 양쪽 벽면에 두 작품만이 그려져 있다. 앞쪽 벽면에는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었고, 뒤쪽 벽면에는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상 예수님’이 그려져 있었다.

- 천재 화가가 그린 그림 ‘모나리자’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를 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신기(神技)를 느낄 수 있다.

< 아레나 원형 극장 >
- 밀라노에서 베로나까지는 차로 두 시간 거리이다. 베로나 아레나 공연장은 로마의
전성기인 기원 후 120년에 시작해서 130년에 완공한 원형 경기장으로, 원래 검투사들의
경기장이었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야외 오페라 극장으로 탈바꿈해서 유명해 진 곳이다.

- 1913년 베르디(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8월 10일에 처음으로
아레나 무대에 오른 오페라 ‘아이다’는 20세기 초 세기의 공연이 된다.

- 아레나 공연장은 2만 5천 명이 한꺼번에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초대형 공연장이다.

< 카트리나와 9.11 테러 >
* 호텔 객실에서 TV(CNN) 시청, 9.11테러 4주년 특집과 허리케인 카타리나 피해 방송
- 이슬람 국가들이 석유 빼앗기고 종교적 주권 빼앗기고 민족적 주권이 빼앗겼다는
사실에 한이 맺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잔인한 방법으로 미국
힘의 상징인 월드무역센터와 국방부 건물 팬타곤을 무너뜨렸다. 비행기 자체를
폭탄으로 사용할 줄은 어느 누고도 상상하지도 못했다. 9.11테러가 일어난 지 4년이
지난 2005년 CNN 특집 방송에서는 월드무역센터에 비행기가 부딪히는 장면을 방영하지
않는다. 월드무역센터가 무너지는 장면을 볼 때마다 미국의 자존심이 무너진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이산화탄소를 줄이자는 교토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는 OECD국가 중에서
미국과 호주 두 나라이다. ... 66억 인구 중 3억밖에 안 되는 미국 사람들이 지구상의
이산화탄소 4분의1을 배출한다. 미국은 지구온난화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태도에
자연이 직접 들고 일어나서 경고를 하기 시작했다. 자연은 미국에 카트리나라는
경고장을 보냈다. 2005년 미국 남부지역에 몰아닥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 인류는 지구온난화현상에 대처할 수 있는 모든 지혜와
능력을 결집해야 한다.

< 해우소 >
- 유료 화장실, 물 내리는 장치 가지가지, 손 씻는 수도꼭지도 가지가지이다.
이탈리아에 비교해서 한국의 화장실은 예술적 수준이다. 화장실 문화와 화장실 인심은
우리나라가 이탈리아보다 넉넉한 것이 사실이다.

< 만년설 >
- 이탈리아를 떠나 프랑스로 가기 위해 알프스 산맥 상공을 지난다.
- 만년설이 다 녹아 없어질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알프스 산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강이 라인 강이다. 이 강은 스위스를 지나 독일과 프랑스를 가로질러
네덜란드를 통해 북대서양으로 흘러 나간다. 남쪽으로 이탈리아 포 강의 발원지이며,
동쪽으로는 다뉴브 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 만년설이 없어진다는 것은 강물이 말라 없어지는 것이고, 강물이 마른다는 것은
식수를 얻을 수 없고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이며, 결국 식량 부족 문제에 봉착한다는
것이다.

- 아프리카 대륙에는 킬리만자로 만년설이 유일하게 있는데 머지않아 녹아 없어질
전망이다.

- 인도, 파키스탄, 네팔, 티벳, 중국에 걸쳐있는 히말라야 산맥의 만년설은 엄청난 사람을
먹여 살리는 생명의 원천수이다. 총 길이가 2천 5백km나 되는 텐산 산맥은 중국 신장
자치구와 카작스찬과 키르기스탄에 걸쳐 있다. 톈산 산맥의 만년설은 3억 명에게
식수를 제공하고 있는데 매년 2km씩 녹아 없어진다고 한다.

- 북미에는 캐나다와 미국에 걸쳐 있는 록키 산맥 만년설이 장중하게 펼쳐져 있다.
남미에는 안데스 산맥 만년설이 남아 있다.

- 이러한 산맥들은 겨울에는 두터운 눈으로 쌓이고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빛에 눈이
녹아서 강물의 수원(水源)이 되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더욱이 만년설은 여름에 태양빛을 반사해 주므로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늦쳐 주는
효자 역할도 하고 있다.

- 만년설에 의지해서 사는 나라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금수강산이다. 산의 나무들은
물을 저장하는 댐이다. 게다가 산의 나무들은 홍수 조절도 하고 있다.

- 로마의 테베레 강은 우리 생태마을 앞에 있는 평창강보다도 좁은 시냇물 수준이다.
유럽인들은 한강 같은 강을 거의 볼 기회가 없을 것이다. 일 년 내내 강물이 마르지 않는
한강은 우리나라 산이 얼마나 울창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 제3부 프랑스에서 ]

< 한류/ 개똥/ 부러운 밤 문화 >
- 한류의 시작은 친절에서 시작되었으면 한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고개 인사 정도만 할 수 있어도 외국 관광객은 한국을 따뜻한 나라로
기억할 것이다. 한국을 아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같이 친절하고 따뜻한
한국인들을 만난다면 한류는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개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길거리에 개똥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사람마다 개를 자식 데리고 다니듯 다닌다. 심지어는 길거리의
거지도 개 한 마리는 옆에 두고 깡통을 끼고 구걸한다. ... 파리는 개똥의 거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프랑스인(브리짓 바르도 영화배우)이 개 잡아 먹는 한국 사람들을
야만이라고 한국 문화를 비난하는데 파리 사람들도 우리 못지않게 더럽고 무식한
개 문화를 보이고 있다.

- ‘푸아그라라’는 거위 간을 먹겠다고 거위들에게 옥수수를 강제로 먹여 기존의
간보다 열배나 커진 거위를 잡아먹는 프랑스 사람들을 동물 애호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 프랑스 파리 사람들의 부러운 문화는 밤거리 문화이다. ... 유럽은 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가톨릭 문화가 뿌리 깊이 박혀 있어 문화가 윤리적이다. 도시의 밤거리만
보아도 휘황찬란한 우리나라 명동 거리와는 천지차이이다. ... 로마와 파리 어딜 봐도
조명등이나 퇴폐적인 향락은 찾아보기 힘들다. 상점의 간판조차도 화려한 조명등이 없다.
... 친구들이나 노부부들이 함께 나와서 즐기는 것이 그들의 낙이다. 유럽의 밤
문화는 정말 다정하고 절제되어 있어서 배울 만하다. 우리나라에 유입된 외래문화는
대부분이 미국 문화이다.

< 로마, 파리 그리고 서울 >
- 2천년 동안 세계 교회의 중심이었던 로마를 순례하고, 유럽의 중심인 파리를
구경하고 났는데도 왠지 허전함이 밀려온다. ... 밋밋하게 펼쳐지는 끝없는 평지에
건물들만 뚝 솟아 있는 로마, 파리의 경치와는 달리 색깔이 있고 굴곡이 있어 지루하지
않는 서울,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들과 도심 한가운데를
유유히 흐르는 한강이 보고 싶어 졌다.

- 빌딩 숲 한가운데 여인의 가슴처럼 봉긋 솟아 있는 남산, 남쪽으로 우뚝 솟아
서울을 지키고 있는 관악산과 청계산, 이 두산 사이에 동생같이 귀엽게 서 있는
우면산, 나라 전체 기운을 모아 왕궁에 전해 주고 있는 인왕산이 있다.

- 푸른 하늘에 높이 솟아 있는 도봉산의 용모는 로마, 파리, 북경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장관이다. 북한산은 북풍으로부터 서울을 보호해 주는 넉넉함이 서려 있다.
계곡마다 흐르는 옥수(玉水)는 금수강산의 진면모를 서울 한가운데에서 증명해
주고 있다. 북한, 도봉산과 함께 서울 북쪽의 병풍이 되어 주는 수락산도 마주하고
있는 도봉산에 그 아름다움이 미치지는 못하지만 로마나 파리에 있었다면 세계적인
산으로 유명해 졌을 것이다.

- 불암산 역시 아름다운 돌산으로, 동쪽에서 떠오르는 따뜻한 아침 햇살을 서울로
맞아들이는 곳이다. 그 외에도 근사한 정자를 가지고 있는 아차산과 용마산은 한강과
어우러져 풍요로움을 더해 준다.

- 몽마르뜨 언덕과 남산을 비교하자면 소나무와 사철나무 수준이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남산은 서울 사람들의 연인이다. 세느 강은 한강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볼품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여러 왕궁을 구경했지만 경복궁과
창경궁의 자연적 아름다움을 따를 궁이 없다. 로마와 파리는 기로 직선이고 건물들도
직선으로 늘어지듯 지어졌으나 서울은 곡선으로 둘러싸여 있다. 궁의 선도 곡선이고
서울을 둘러 싼 산들도 곡선이다. 직선은 사람들의 선이고 곡선은 하느님의 선이다.

- 한국이 싫어서 이민 간다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로마와 파리를 둘러보며, 이용 씨가 부르던 ‘서울’이라는 노래가 단순히 애국심을
강조하기 위한 억지가 아닌 진정한 ‘우리의 서울’이라는 생각이 든다.

< 노인이 왕인 나라 >
- 로마나 파리에서 특별히 생소한 장면은 노인들의 활보이다. ... 이탈리아와 파리의
근사한 식당에는 어김없이 노부부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파리의 화려한
샹젤리제 거리에도 노인들이 활보를 한다.

- 노년이란 자식들 다 키우고, 노동력에서도 해방되어 여생을 즐기는 인생의
휴가철이다. 계절로 따져도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열심히 일하고 가을에 추수해서
광에다 먹을 것과 땔감을 준비해 놓고 맞이하는 겨울이 바로 노년이다.

- 효(孝)자를 잘 살펴보면 늙을 로(老)와 아들 자(子)가 합쳐져 있다. 아들이 늙은
부모를 업고 있는 형국을 효도라고 한다.

- 여성 평균 연령이 82세이다(2004년 기준). 불과 100년 전만 해도 평균 연령이
46세 였다. 21세기의 노인들 대개는 80세에서 90세까지 사신다. 75세 이하를
청노인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생각을 크게 고치셔야 한다. 자식들에게
재산 물려줄 생각 하지 말고 그나마 남아 있는 재산으로 인생의 휴가철인 노년을
행복하게 살 궁리를 해야 한다.

- 나이를 먹으면 세 가지가 고통스럽다. 첫 번째로 몸이 아프다. 두 번째로는 친구가 없다.
세 번째로는 결정적으로 돈이 없다는 것이다. 위의 세 가지 이유로 우리 부모님
세대는 대부분 불행한 노년을 보내고 계신다.

- 우리나라에 비해 연금제도가 잘 되어 있는 북미나 유럽 선진국의 노인들은 우리나라
노인들보다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것 같다. 나무는 뿌리가 튼튼해야 실한 열매를
맺는다. 어느 사회든 뿌리인 노인이 행복해야 중년층이나 청소년들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 태양은 두 번 아름답다. 뜰 때 아름답고 질 때 아름답다. 우리 인생도 태어날 때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고, 황혼도 아름다워야 한다. 황혼이 아름다운가 지루한가는
노년을 맞이하는 노인들과 자식들이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 가톨릭 국가이기를 포기한 프랑스 >
- 프랑스에는 더 이상 신학교나 수녀원을 지원하는 젊은 성소자(聖召者)가 없다.
불과 200년 전만 해도 세계로 선교사를 파견한 프랑스에 이제는 거꾸로 다른 나라
선교사들이 들어온다. 성 쉴피스 신학교는 이미 없어졌고, 가톨릭 대학을 채우는
신학도들은 우리나라, 베트남, 인도, 아프리카의 신학생들이다.

- 가톨릭교회와 2천년의 역사를 함께 해 온 프랑스 교회가 왜 이 모양이 되었을까?
노트르담 성당이 있고, 루르드 성모 발현 성지가 있으며, 무수히 많은 성인 성녀를
탄생시킨 나라가 프랑스였다. 그것은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 때문이다.

- 가난한 이들의 아픔을 외면한 교회는 프랑스 혁명을 통해 철저한 배격을 받고
교회 자산은 몰수당하게 된다. 기근이 심했을 때 교회 재산을 나누어 주었더라면
혁명이 일어난 지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가로부터,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초대교회의 정신으로 살지 못한 교회의
끝이 어떤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예가 바로 프랑스 교회이다.

- 다행이도 우리나라 가톨릭교회는 아직도 성장 초기의 교회 모습을 지니고 있어
200년 전 프랑스 교회처럼 엄청난 권력도, 재산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권력과 부의
징조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우선 성당이 대형화되기 시작했다. 활력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프랑스 교회를 보면서 한국 교회의 앞날을 걱정해 보았다.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늘 깨어 있어라!”(마태 13,36)

< 21세기는 여성의 시대 >
- 파리 가톨릭대학(신학교)에서 박사 학위 논문 심사를 하는데 여자가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이 여성이 신학 박사 학위를 주는 대학장(심사위원장)이었다.

- 여성 해방을 추구했던 68혁명(1968년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 일으킨 혁명) 이후 낙태를 합법화했고, 쌍방 합의 이혼법을 제정했으며, 강간을
범죄로 인정하여 강간자를 처벌하는 법을 제정했다. 앙시앵 레짐(프랑스 혁명 이전의
사회 체제) 시대는 여자를 가정의 부속물로만 여겼는데, 68혁명 이후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여성들의 4분의 3이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 21세기에 여성을 무시하면 어느 공동체든, 어느 사회든 망하게 되어 있다.
유일하게 여성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공동체가 있는데 그곳은 가톨릭교회이다.
남자들만의 잔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교회 내에서도 여성이 하느님의 나라
건설에 동등한 협력자로 자리 잡기를 기원해 본다.

< 떼제로 향하는 길 >
- 떼제는 프랑스 남부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프랑스의 고속열차인 떼제베
기차는 파리에서 떼제까지 450km의 거리를 1시간 40분 만에 주파(시속 약 300km)한다.

- 프랑스는 농산물 수출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다. 프랑스는 자연과 적당히
타협을 하면서 넉넉하고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 프랑스는 7부 능선 이상은 나무를 남겨 놓고 7부 능선 아래는 전부 개간을 해
놓았다. 산을 신성시 하는 우리 국민성은 산을 바라보는 시선이 개발의 대상이
아닌 흠모의 대상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산에 잡목 대신에 도토리나무, 밤나무,
감나무 등 유실수를 심어 흉년이 들 때는 산 어디를 가나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용감한 가족 >
-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떼제 공동체에 한국에서 온 가족(5명)이 있었다.
온 가족이 3개월 동안 유럽 성지순례를 하기 위해 왔다고 한다. 첫 번째 행선지가
떼제이고, 두 번째가 스페인 카미노 도보 성지순례, 세 번째는 성모님의 발현지인
루르드 성지순례, 네 번째는 슬로베니아 생태공동체 방문이란다. 특히 카미노 도보
성지 순례는 한 달 동안 프랑스 생장피에르포르에서 출발하여 아름다운 피레네 산맥을
따라 스페인 서북부 끝 산티아고 성당까지 무려 770km를 걷는 고난의 길이다.
매년 10만 명 이상이 카미노 도보 성지 순례를 한다.

- 그들은 소중한 철학과 신앙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진정한 행복은
경쟁사회에서 남을 이겨 더 가지고 더 누리는 삶이 아니라 이 세상 자연을 행복한
느낌으로 느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란다. 성지 순례가 끝나고 귀국하면
‘예수살이 공동체’에 들어가 단양에서 농사짓고 살 것이란다.

- 용감한 가족을 바라보면서 이 가정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소중한 것을 마음에
담아 가면서 살 줄 아는 가정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갔다.

< 떼제 공동체 >
- 떼제에 도착한 날이 로제 수사님이 운명을 달리한 지 꼭 한 달이 되는 날이다.
로제 수사님은 교회 일치 운동에 크나큰 기여를 하신 분이다. 세계 대전이 한창인
1940년에 공동체를 시작했다. 프랑스 남부지역 조그마한 동네 떼제라는 곳에
자리를 잡고 동네이름을 따서 떼제 공동체라고 이름 지었다.

- 종교와 언어와 인종을 뛰어 넘어 오로지 하느님만 찬미하는 떼제 공동체는
자기네 교회 내에만 하느님이 존재하고, 자기네 교회에 와야만 구원이 있고,
자기네 교회에서 기도해야만 하느님이 들어 주신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이들에게
하느님은 만민의 하느님이지 어느 누구의 전유물이 될 수 없음을 드러내 보여주는
공동체이다.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도 떼제는 사막을 지나가다가 만나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요한 23세 교황님은 떼제를 ‘봄소식’이라고
표현하셨다. 또 로제 수사님은 가톨릭 교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체를 영할 수 있는
특권을 교황님으로부터 부여받았다.

- 세계 각국에서 약 1천여 명이 와 있다. 방문객 대부분은 일주일 동안 머무르는데,
방 배정을 할 때 일주일 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봉사를 정한다. 청소, 설거지,
성가대, 언어 봉사 중 하나를 선택한다. 떼제의 시설은 아주 열악했다. 작은 방에
여섯 명이 2층 침대를 이용해서 잠을 잔다. 식당은 야외에 천막을 쳐 놓고 하며,
식사시간은 대침묵이다. 아침식사는 빵 한 조각에 차 한 잔이다. 이들은 가난한 생활을
스스로 찾아서 온 것이다. 불편한 생활을 하면서도 이들의 얼굴은 행복해 보인다.

- 떼제의 정신과 문화가 참 부럽다. 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각처에서
몰려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열악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성당에서 모여서
수사님들과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기도는 하루에
아침기도, 낮기도, 저녁기도로 3번 한다. 기도할 때마다 성당에는 1천 명 모두가
모인다. 여름에는 3천 명까지 모이기도 한다. 기도시간은 찬양과 성서봉독 그리고
침묵시간으로 이루어진다. 떼제 공동체의 큰 매력은 단순한 음악 성가에 있다.
성가는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등 각국 언어로 돌아가면서 부른다. 성서
봉독도 각국의 언어로 봉독한다. 떼제 기도의 특징은 강론이 없다는 것이다.
묵상시간은 10분정도로 참 좋은 시간이다.

- 오전에 일부는 성서 묵상 나누기를 한다. 오후에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대강당에
모여 자기 나라를 소개하고 민속노래를 부른다. 봉사하는 젊은이들이 스페인어, 영어,
프랑스, 독일어로 동시통역을 한다. 이렇게 젊은이들이 언어라는 도구를 가지고
인종과 종교를 넘어서서 이해와 일치와 우정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었다.

< 공동묘지 >
- 프랑스 사람들은 죽은 이들을 집 근처의 가까운 곳에 묻어 놓고 출근이나 퇴근길에,
또 사랑하는 이가 그리울 때 꽃 한 송이 들고 산책삼아 묘소를 방문한다.

- 가톨릭교회는 죽음을 깜깜한 어두움이나 고통의 세계 내지는 단절의 세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은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한 통과의례일 뿐이다. 성인들을
기념하는 축일은 성인들이 태어난 날이 아니라 성인들이 돌아가신 날로 정한다.
죽는 날이 천상 탄생일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축복이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여정일 뿐이다.

- 어둠이 있기에 찬란한 아침 햇살이 아름답듯이 죽음이 있기에 우리의 삶이 더
소중한 것이다. 죽음을 외면해야 하는 적이 아니라 생을 소중하고 따뜻하게 바라볼
수 이끌어 주는 친구이다.

< 떼제에서 맞이하는 추석 전야제 >
- 저녁이 되어 수사님이 초대한 식당에 들어서니 한국 가곡 ‘산울림’ 이라는
한국 가곡이 흐르고 있었다. “ 먼 산을 호젓이 바라보니 누군가 부르는 소리, 산 너머
노을에 젖는 네 눈가에 잊어던 목소린가....” 식탁 위에는 쌈장과 밥이 차려져 있었다.
밥 한숫가락과 쪼갠 마늘을 쌈장에 찍어 상추쌈을 싸서 먹으니 꿀맛이었다. 수사님이
차려 준 떼제의 추석 전야제 상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였다.

- 이국땅에서 반갑게 맞아 주신 현지 수사님(한국인)의 배려에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큰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민족애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하느님 앞에서 만민이 평등하다고 하지만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문화를 공유한다는 것은 특별한 끈으로 묶여 있는 것이다.

[ 제4부 독일에서 ]

<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
- 한국을 개 잡아먹는 나라, 남북이 갈라진 나라, 6.25 전쟁을 치른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치르고 난 뒤에는 우리나라의
위상이 많이 상승했다. 어느 공항을 가더라도 삼성이나 LG, 그리고 현대차의 광고
간판이 붙어 있다. 우리나라 상품가치(브랜드)가 한껏 상승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 이탈리아의 가정집에 가 보면 무엇이든지 간에 한국의 전자제품 하나는 꼭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한국산 텔레비전이 판매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인들을 애국자로 인정해 주고 그들 또한 정당한 가치로 행동해 주었으면 좋겠다.
... 독일의 한 젊은이 입에서 “ 대한민국! 짝짝~짝짝짝”이라는 구호를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 독일에 들어서니 이탈리아와 프랑스보다도 산에 나무들이 훨씬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산에 많은 나무가 많은 나라는 잘 사는 나라라는 공식이 과히 틀리지 않은
것이다. 또한 환경이 쾌적한 나라라고 해도 맞는 말이다.

< Enjoy Your Life ! (네 인생을 즐겨라! ) >
- 독일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달리 깔끔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분위기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가 우리나라보다 잘 산다거나 사회기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지만, 독일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잘 산다는 것이 한 번에 느껴진다.

- ‘네 인생을 즐겨라! (Enjoy Your Life !) 이 문장은 우리나라 어느 기업의 선전문구일
뿐만 아니라 미국에 가도 어느 간판에서든 발견할 수 있는 광고문이다. 듣기 좋고
보기 좋은 글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이 맺힌 문장일 수도 있다.

- 20세기의 위대한 문학인류학자이면서 신학자인 떼이아르 드 샤르댕 신부에 의하면,
신의 시대에는 신에게 눌려서, 왕정의 시대에는 왕에게 눌려서, 봉건주의 시대에는
영주나 귀족에게 눌려서, 자본주의 시대에는 기업주에게 눌려서, 가부장적 사회에는
남자에게 눌려서 인생을 즐길 겨를이 없었단다. 또 지난 시대에는 노예제도가 있어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유와 권리도 누리지 못한 채 인권을 유린당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 잘 사는 나라의 교회에도 ‘네 인생을 즐겨라!’는 구호가 깊숙이 침투되어 있다.
독일에는 신학생이 단 한명도 없는 교구가 생기고 있다. 물론 젊은 수녀 지망생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수도원에 들어가면 세상적인 기쁨을 포기하고도 훨씬 행복한 것들을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이다. 현대인들에게 있어 사제의 삶과
수도자의 삶은 인생을 즐기기에 어울리지 않는 삶의 형태이다.

- 나 하나만 인생을 즐기려는 이기적인 풍조는 국가적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인생을 즐기느라고 못사는 이웃들을 돌볼 겨를이 없다. 물질사회
안에서 ‘네 인생을 즐겨라!’는 풍조는 가난한 삶을 사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누리며 사는 것이 미덕이요 멋이라고 부추긴다. 가난을 지향하는
친환경적 삶의 정반대되는 선전문구가 바로 ‘네 인생을 즐겨라!’이다.

< 환경도시 프라이부르그(Freiburg) >
- 독일 교육도시 프라이부르그는 환경정책의 선두주자이다.
- 현지에서 안내된 장소는 다음과 같다.

1) 태양열로 이루어진 신도시
약 5만 평의 택지에 태양열로만 모든 전기시설을 이용하고 빗물을 재활용해서
화단에 물을 주는 환경 계획도시이다.
2) 성베드로와 성바오로 기념 성당성당
남쪽 벽면 전체에 태양광을 설치해 놓아 전력을 생산한다. 매달 2만 kw의 전기를
생산해서 전력회사에 비싼 가격으로 팔고, 전력회사로로부터는 화력 발전으로
생산된 값싼 전기를 사서 성당에 사용한다. 태양광 발전기에서 발생한 전기의
이익금은 페루의 어려운 본당에 지원하고 있다.
3) 생태교육기관(OKOSTATION)
현재 40만 명의 회원이 있으며 그 중 20만 명이 활동 회원이다. 환경교육을 실시하며,
조그만 생태공원이 아이들 교육장소이다. 아이들이 교육받고 싶은 내용을 투표로
해서 결정한다. 획일적이고 지시적인 교육방식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선택을 해서
교육을 받는다.
4) 프라이부르그 뒷산에 있는 대형 풍력 발전기
뒷산이라고는 하지만 해발 1천m가 넘는다. 산 정상 곳곳에 풍력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5) 도심 한가운데를 흐르는 인공 시냇물
폭이 50cm도 되지 않는 시냇물이 폭염으로 지친 여름날 도심을 시원스럽게 해 준다.
- 독일 사람들은 꿈을 현실로 만드는 저력이 있다. 세계대전만 일으키지 않았어도
세계 제1의 국가로 인정을 받았을 것이다.

< 북핵합의 극적 타결 >
-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에 독일 TV방송에서 ‘북핵 합의 극적 타결’이라는
소식을 보도한다.

- 북한이 아무리 도발적이고 위협적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대처해 왔다. 특히 북핵 문제에 있어서는 끝까지 대화로 문제를 풀어 나가겠다는
현명한 대처를 하고 있다. 힘자랑하고 싶은 미국을 말리는 나라가 바로 우리 남한
정부이고 우리 국민이다. 한없는 인내심을 가지고 미국을 설득하고 북한을 설득해서
핵무기 포기 선언을 이끌어 낸 것이다. 반드시 통일이 이루어져야 외세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통일은 전쟁이 아닌 평화통일이어야 한다.

< 저가 비행기 >
- 독일의 여행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교통편은 초저가 비행기편(라이언 에어)을
이용했다. 비행기 표에는 좌석번호가 없어 기내 아무 좌석이나 앉으면 된다. 비행기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유쾌해 보였다. 기내 방송을 하는 기장도 마치 관광지에서
관광 열차 운행하는 사람처럼 즐거운 목소리로 방송을 한다. 승무원은 작업복 같은
것을 입고 돌아다닌다. 기내에서 음료수를 제공하거나 신문을 주는 일은 없다. 좌석
앞에는 책을 놓는 탁자나 물건을 놓는 망도 없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는 연결통로를
대지도 않고 버스도 오지 않아 비행장을 가로 질러서 공항까지 걸어가야 했다.
특별하고 즐거운 비행이였다.

< 살기 좋은 조국 한국으로 >
- 돌아다니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새로운 세상을 느낀다는 것은 내 생명이 연장되는
느낌이다. 오래 산다고 생명이 연장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주라는 공간에 한 생명체로
태어나서 보고, 느끼고, 감동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은총이다. 하느님께서 신비롭고
오묘하고 풍요로운 분이시라는 것을 세상을 돌아다녀 보면 저절로 느껴지는 진리이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이 아름다운 별 지구에 대해 아직도 목마르다.

end.


 

금주의 독서 메모 014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1.01.03.

[ 희망의 속삭임 ]

- 필 보스만스 지음/ 최병억 옮김/ 133p
- 지성인을 위한 명상집
- 필 보스만스 프로필 : 1922년 벨기에 림부르크 출생/ 26세 사제 서품/
1957년 네델란드에서 '이름 없는 연맹' 운동 시작/ 1959년 연맹의 지부를
앤드워프에 설립하고 세계적 규모의 운동으로 전개

[ 책 표지의 글에서 ]

아마도 나는 너무나도 멀리서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나 봅니다.
행복은 마치 안경과 같습니다. 나는 안경을 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안경은 나의 코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게도 가까이!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한 대가
그것은 우리 스스로를 바치는 것입니다. 넘침도 부족함도 없이.




[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중에서 ]

- 사랑하는 그대, 친구들이여 ! 나는 그대들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대들이 소박하며 선한 사람들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거대한 사막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더 이상 생장할 수 없는 메마른 땅, 사막에는 기쁨이 없으며,
또한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를 위하여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사막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사막을 변화시키는 것은 물입니다.
물은 생명이요, 사랑은 살아 있는 생명수입니다.
그대들, 친구들이여! 거대한 사막으로 물을 퍼 나르는 한 사람이 됩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무기력한 개인이라고 느낄지라도
우리는 조그마한 오아시스 하나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 1. 친구여, 나는 그대를 좋아해 ]

-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하여 도움의 손길과 위로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사람을 좋아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만을 만족시키고자 하지 않으며
마음을 열고 자신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자리를 만들고
순수한 마음과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 어느 누구도 그대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대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평생 동안 자신이 단 한번 저지른 실수로 평가받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태도에 대하여 잘못된 그림을
그리고 이를 굳게 단정해 버립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지닌 성격 중에
일부가 나쁘다고 하여 그 사람이 나쁜 인간은 아닙니다.
기분 나쁜 하루가 나머지 삶 전체를 기분 나쁘게 하지는 않습니다.

- 하느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주셨습니다.

- “친구여, 나는 그대를 좋아해.”말하십시오.
더욱더 그 말을, 말로써 혹은 말없는 말로써.말하십시오.
그 말을.밝은 미소 한 번으로써 화해의 제스처 한 번으로써
악수 한 번으로써 칭찬의 한 마디로써 포옹과 키스 한 번으로써
그대 두 눈 속에 반짝이는 별로써.말 하십시오,
그 말을, 수없이 많은 조그만 관심과 친절함으로써.
나날이 새롭게, “나는 그대를 이렇게 좋아해.”

- 어두운 밤, 사람들에게 빛을 가져오기 위하여 빛나는 별을
찾아 나선 그대가 지쳐 있을 때,그때는 고요함속에 나지막이 앉으십시오,
그리고 고요함의 근원을 향하여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사물들의 핵심으로 그대가 충분하도록 깊숙이 들어설 때,
그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귀를 얻습니다.

-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곳에서는 도처 어디서나
하느님께서 활동하고 계시며, 하느님께서 현존하고 계십니다.
신앙이 있건 없건 사랑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사랑이신 하느님의 품(磁場)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 2. 행복하기 위한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

- 행복하기 위한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시간은 태양 아래의 정거장입니다.
결코 요람에서 무덤으로 가는 고속도로가 아닙니다.

- 행복하기 위한 날이란 오늘입니다!
그대가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오늘 이외에 다른 날이란 없습니다.
그대가 오늘을 살지 않을 때 그대는 하루를 잃은 것입니다.
내일의 걱정과 근심으로 그대의 영혼을 어둡게 색칠하지 마십시오.
어제의 온갖 고난으로 그대 마음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오늘을 사십시오.
....... 오늘을 그대의 제일 좋은 날로 만드십시오.
- 하나의 선물로, 주어진 선물로 하루하루를 받아들이십시오.
아침에는 너무 늦지 않게 일어나십시오.거울을 바라보며
그대 자신에게 미소를 지으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안녕!’ 아침인사를 하십시오.
그러면 그대는 이미 예행연습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인사할 수 있습니다.

- 아마도 나는 너무나도 멀리서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나 봅니다.
행복은 마치 안경과 같습니다. 나는 안경을 보지 않습니다.
안경은 그렇지만 나의 코 위에 놓여 있습니다.그렇게도 가까이 !

- 유머와 인내는 삶의 낙타입니다.
유머와 인내로서 나는 삶의 사막을 헤쳐 나갑니다.

- 그대가 모든 것을 어둡게 본다면
일출의 태양이 그대에겐 일몰의 태양입니다.

- 하루하루 나날을 새롭게 사십시오. 그대 자신은 새롭습니다.
다시 빛나는 태양의 아침을 기뻐하십시오.
그대의 두 눈으로 보며 그대의 두 손으로 느끼며
그대의 심장이 고동치기 때문에 기뻐하십시오. 그대 자신은 새롭습니다.
그대가 살아 있는 것을 느끼십시오. 오늘이 그대 남은 삶의 첫날임을 느끼십시오.
그대 자신은 새롭습니다. 사람들과 사물들을 맑은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그대가 아직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그대 삶의 길고도 짧은 여행길에서길가에 핀 꽃들처럼 소박하고
조그만 것들에그대가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 그대의 두 손으로 오늘을 움켜잡으십시오.
오늘이 그대에게 주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오늘의 빛을 오늘의 맑은 공기와 삶을 오늘의 웃음과 눈물과 놀이를
오늘의 경이로움을, 오늘을 받아들이십시오.

[ 3. 풍요롭게 하는 것은 소유가 아니라 기쁨입니다 ]

- 꽃 한 송이에, 웃음 한 번에 뛰노는
아이 하나의 모습에 기뻐할 수 있다면
그대는 백만장자보다 풍요롭고 행복합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꿈만 꾸는 모든 것을
가졌어도그에겐 아무것에서도 더 이상 기쁨이 없습니다.
자기 재산의 쇠사슬이 자신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그대를 풍요롭게 하는 것은 소유가 아니라 기쁨입니다.

- 삶의 본질적인 것들은 대가없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그대에게 무료로 거저 주어집니다.
그대 어머니의 품안, 노래하는 어머니. 태양과 우정. 식탁 옆의 의자 하나.
그리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따뜻한 포옹. 봄의 빛깔. 한 아이의 웃음.
새 한 마리의 지저귀는 노랫소리. 흘러가는 시냇물. 나무들의 싱싱함. 대양의 파도.
밤과 낮. 고요함과 정적. 제7일 일요일. 삶과 죽음. 지구 위에 사람의 존재.

- 웃음이 자유롭게 합니다. 유머가 긴장을 풀어줍니다.
웃음은 잘못된 심각함에서 그대를 구해낼 수 있습니다.
웃음은 외모를 위한 최상의 화장입니다.웃음은 내면을 위한 최상의 약품입니다.
유머는 사물들이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지 사태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그대에게 제공합니다.
웃음과 유머는 짐을 벗겨 줍니다. 웃음과 유머는 긴장과 눈물을 덜어 줍니다.
웃음과 유머는 답답한 문제들의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심각함으로부터,
질식할 것 같은 나날의 분위기로부터 해방시킵니다.
웃음과 유머는 영혼과 마음의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최상의 수단.
웃음과 유머는 기대하지 않던 삶의 기쁨으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 줍니다.

- 주님, 나를 자유롭게 하소서.여전히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물건들에 대한 갈망으로부터.나를 기만하여 더욱더 탐욕적으로 만드는
소유욕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소서.
나에게는 다이아몬드처럼 값진 두 눈이 있습니다.
휘파람을 불 수 있는 입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건강이 있습니다.
주님, 나는 풍족합니다. 나에게는 하늘에 태양이 있고
머리 위에는 눈비 가려 줄 지붕이 하나 있습니다.
내 두 손을 위해서는 일이 있습니다.
먹기 위하여 내게는 차려진 식탁이 있습니다.
사랑하기 위하여 내게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 나는 풍족합니다.

[ 4. 삶과 그대가 화해하십시오 ]

- 삶과 화해하십시오.그대가 그대 자신의 처지에 집착한다면
그대의 처지는 더 이상 바뀔 수 없습니다. 그는 다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조금이나마 행복하기 위하여 땅위에서 조그마한 하늘나라를 갖기 위하여
그대는 삶과 화해해야만 합니다.
그대의 삶과 더불어 그대 자신의 삶이 지금 오직 한 번뿐이듯이.

- 지나간 과거를 닫아 버리는 문이란 오로지 용서뿐입니다.
오로지 용서로써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용서의 모든 말과 행동이 평화를 낳습니다.

- 생명을 주는 것들의 운명은 바로 그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곡식의 씨앗처럼, 씨감자처럼, 과일의 씨앗처럼
그리고 모든 종자의 조그마한 씨앗들처럼. 그 씨앗으로부터 새 생명이 자라나며
서서히 죽어 가며 밀려나고 잊혀집니다. 그렇게 언제나 선한 사람은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생명을 생기게 한 모든 것에서 자신은 서서히 생기를 잃고 죽어가며
고요함속으로 밀려난다는 것을. 왜냐하면 자신은 소용없게 되기 때문에.
이에 생명과 더불어 화해하는 것이 참된 삶의 기예(技藝)입니다.
이 화해 속에 자신의 죽음에 대한 완전한 인정 속에
가장 풍요한 열매가 숨어 있습니다. 삶에 대한 심원한 기쁨의 열매가.

[ 5. 축복이 있으라, 비폭력주의자들이여 ]

- 축복이 있으리라, 비폭력주의자들이여.
그들은 폭력의 악순환을 우정과 사랑의 순환으로 돌려놓습니다.
그들은 거친 암석을 둥글고 매끈하게 만드는 강물과도 같습니다.
강물의 흐름과 함께 돌은 굴러갑니다.보다 부드럽고 온유한 힘으로
그들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 폭력을 위하여 그대는 증오를 배워야만 합니다.
비폭력을 위하여 그대는 사랑을 배워야만 합니다.

- 어두움을 어두움으로써는 몰아낼 수 없습니다.
오로지 빛으로써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증오를 증오로써 치유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사랑으로써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 그대의 말을 조심하십시오.
말이란 많은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힘센 무기입니다.
그대의 혀로, 그대의 커다란 입으로 그 누구도 경멸하지 마십시오.
가혹한 한 마디, 악의 있는 한 마디, 엉터리 거짓말 한 마디가
깊은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대의 말을 사랑으로 가득차게 하십시오.

- 그대의 빵을 나누십시오.
그러면 맛이 더욱 좋아질 것입니다. 그대의 행복을 나누십시오.
그러면 행복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 우리가 살아남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제 달리 살아야 합니다.
다른 가치들을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돈과 안락보다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발전시켜야만 합니다.
우리는 비로소 형제처럼 나눌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처럼 살 수 있을 때.

- 그대는 세상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오직 자신만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백 년 동안이나 폭력으로 강제적인 힘으로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려고
시도했지만 모두가 헛수고였습니다.이는 역사상 대단히 허망한 일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변화할 때만이 다른 사람들도 스스로 변화할 것입니다.

[ 6. 오로지 사랑 안에서만이 그대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

- 사랑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제도, 정당, 사회구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란 추상적인 인류가 아니라
바로 그대 옆에 살아 있는 구체적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 그대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연약하고 가장 큰 죄인이라도
사랑이 있다면 그대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대가 병들고 실패하여
충격 받고 거절당하여 쓰러진다 할지라도 사랑이 있다면 그대는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대가 커다란 호화저택이 아니라 지붕 한쪽만이 있는 오두막에 거처할지라도
사랑이 있다면 그대는 고향에 있습니다.그대가 그대 소유물이란
아무것도 없으며그대 은행계좌에는 돈 한 푼이 없을지라도
사랑이 있다면 그대는 부유합니다. 그대 마음속에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 조그마한 사랑은 한송이 꽃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한 방울의 물이 될 수 있습니다. 조그마한 사랑은
한 사람을 치유시킬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을 치유시킬 수 있다는 것은
잃어버린 용기를 되찾도록 그를 돕는 것입니다.

- 오로지 물만이 사막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물은 생명입니다. 사랑은 살아 있는 물입니다.

- 기쁨을 주기 위해서는 스스로 기쁨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싶다면스스로 불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다른 이를 돕고자 하는 사람은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이 땅 위에 평화를 창조하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어야 합니다.

- 하느님의 사랑은 한 인간의 육체 안에서, 한 인간의 마음속에서,
인간 나자렛 예수님 안에서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만져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되십니다.
사람이 사랑 안에서 서로에게 사람이 되기 위하여.

- 사랑이란 사람의 창작품이 아닙니다. 사랑은 하느님의 창작품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일생에 걸쳐 고향을 찾고 있습니다.
사랑만이 그대가 영원히 거주할 수 있는 집입니다.

[ 7. 자연과 맺는 우정 ]

- 울어라, 어머니 대지여,그대가 가져온 삶 때문에 오직 참담한 심정으로.
당신의 품안에서 고요하고 포근하게 당신은 삶을 따뜻하게 하였습니다.
당신은 수천만의 농산물을 열매 맺게 하였습니다. 수억의 동물들이 당신의
피부위에서 초원의 푸르름 속에서 대양의 깊은 곳에서 뛰놀았습니다.
셀 수 없이 수많은 새들과 나비들, 곤충들을 당신은 나무숲과 풀밭에서
뛰놀게 하였으며 창공에서 춤추게 하였습니다.울어라, 어머니 대지여!
인간이 그대에게 저지른 수치스러움 때문에오직 참담한 심정으로.

- 지구 – 경이로운 거주지.
인간들과 동물들과 식물들은 같은 공기를 호흡하며, 같은 태양아래 살아가며
같은 어머니인 지구의 같은 열매들로서 영양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모든 약탈은 인간 자신에 대한 약탈입니다. 동물을 학대하고
멸종시키는 것은 인간 자신에 대한 범죄입니다. 오늘날 동물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내일 인간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구의 자연균형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의 경이로운 거주지-지구를 메마른 황무지로 만들고 있습니다.
비록 동물들은 말을 할 수 없을지라도 자신들의 살 권리에 대하여 온몸으로
절규하고 있습니다.

- 한 그루의 나무와 친하고 싶다면
나무가 그대에게 보여 주는 것을 잘 바라보십시오.
그대는 그의 풍요로움과 그의 가난함을 보게 될 것입니다.
봄날에는 그이 깨어남과 눈부신 꽃피어남을 여름에는 그의 열매를
가을에는 그의 쇠잔함을 겨울에는 그의 죽음을.
한 그루의 나무와 친하고 싶다면 그의 뿌리를 다치게 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무는 늘 빈사상태에 있을 것입니다.
이는 한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다 할지라도 꽃은 피어납니다.
누가 자신을 먹는지 묻지도 않고 나무는 열매를 맺습니다.

- 자연의 구석구석에는 놀라운 사랑이 스며 있습니다.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고요함 속에서 세심하게,
그리고 사랑으로 한 송이 꽃을 바라볼 시간을.

- 자연의 구석구석에는 사랑의 비밀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곳곳에 스며 있는 사랑의 비밀은 환상적이라고 느낍니다.
하루에 103,000번이나 되는 내 심장의 고동, 거져 무료로.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루에 20,000번 나는 숨을 쉼니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137㎥의 공기, 그에 대해서는 내게 계산서가 청구되지 않았습니다.

- 풀 한 포기는 화학공장 이상의 무엇입니다.
풀 한 포기는 이 세상의 가장 복잡한 모든 화학공장들과 실험실을 능가합니다.
가장 복잡한 화학반응을 수행합니다. 그렇지만 풀 한 포기가 어떻게
그러한 일을 하는지, 사람은 오래도록 아직까지 모르고 있습니다.

- 우리는 새로운 길을 가야만 합니다. 씨앗의 길을.

- 강물은 깊은 숲 속 어딘가에서 하나의 원천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폭풍은 나뭇잎들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더불어 시작합니다.
불은 하나의 불꽃으로부터, 밀밭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조그마한 씨앗 한 알로부터.

- 자연 속의 모든 것은 빛을 향하여 나아간다는 생각이
그대에겐 떠올라 있습니까? 가장 조그마한 씨앗조차 땅 속의
어두움으로부터 빛을 향하여 자라납니다. 아무리 두텁고 울창한 숲이라 할지라도
모든 나무들은 자신의 나뭇가지를 빛으로 향하여 뻗어 갑니다.
모든 꽃들도 개화의 꽃받침을 태양의 빛으로 향합니다.

-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빛을 찾아 헤맵니다.
오늘날 그렇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왜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요?

[ 8.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 ]

- 사람들이 밝히는 불빛이 그 빛을 잃고 세상의 소리가 침묵할 때
그때 우리는 별들을 봅니다. 그때 우리는 다시 침묵의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별들이 밤에는 있습니다.
어두울수록 별들은 빛나고 희망이, 하나의 출구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대는 더 멀리 바라봅니다. 그대는 또다시 위를 바라봅니다.
위기가 모든 것을 어둡게 하였을 때 빛의 아이들은 하늘에 별들을 점화할 것입니다.

-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그것은 가능합니다. 함께 기쁨으로 오십시오. ...
고뇌에 찬 근심으로부터 깨어나십시오.
그것은 가능합니다. 빛으로 향하십시오. ...
새들과 꽃들로 가득한 새로운 아침으로 향하여 일어나십시오.
그것은 가능합니다. 빛으로 가득한 새로운 지평선의 새로운 봄으로 향하십시오. ...
기쁨 없는 그대 존재의 기나긴 겨울에서 깨어나 밖으로 나오십시오.

- 이웃에게로 가는 길은 단 하나뿐입니다. 마음의 길.
다른 길은 모두 우회로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것은 다른 마음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 거울 속을 한 번 들여다보십시오.
그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십시오.
그대는 그대의 얼굴뒤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대의 얼굴은 그대 내면의 거울입니다.
그대의 얼굴이 더 이상 웃음을 띠지 않을 때
그 뒤에서는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대의 마음은 병들어 있습니다.
차가운 얼굴은 차가운 마음에서 오고
떫은 얼굴은 삶을 떫게 만듭니다.
마음을 건강하게 하십시오.
마음으로부터 미소를 띠십시오.
길에서, 일터에서, 사무실에서, 차 안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그것은 간단합니다. 웃는 것을 그대가 아름답게 생각하기에
웃는 것은 그렇게도 간단합니다.

- 세상을 개선하고자 하거든 우선 자기 자신에게서부터 좋게 시작하십시오.

- 그대를 위해 소망합니다.이 세상의 불행을 딛고서
나날이 새로 떠오르는 아침 태양처럼 나날이 새로운 용기가 솟아오르기를.

- 새로운 시대가 태어납니다. 태어남은 아픔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많은 고통과 산고를 동반합니다.우리에게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어디가 상처인지를 아는 사람들 고통의 원인을 알고,
온유하고도 올바르게 상처를 어루만지는 사람들이.

- 우리는 지구라는 같은 배를 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함께 항해해야만 합니다.

[ 9. 소박한 사람 ]

- 단순하고 소박한 사람.소박하게 사는 것.
창공을 바라보고 태양을 쳐다보며 꽃들을 봅니다.
그리고 밤에는 별들을.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고, 뛰어 놀고
기쁜 일을 하고 꿈을 꾸고 환상곡을 듣고 만족합니다. 삶은 축제가 아닙니다.
조그마한 것들에 대한 기쁨. 언제 어디서나
이것으로 그대는 조금이나마 행복할 수 있습니다.

- 사람의 행복 – 나는 그 깊은 원인들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찾아냈습니다. 그 원인은 금전에 있지 않습니다.
소유에도 있지 않고 호화 사치품에도 있지 않습니다.
무위(無爲)에도 있지 않고 사업에도 있지 않습니다.
행위(行爲)에도 있지 않고 향락에도 있지 않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에게서는 언제나 그 원인으로서 깊은 안식처,
조그마한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기쁨
그리고 단순하고도 커다란 소박함을 나는 발견하였습니다.

- 소박한 사람들 –경이로운 사람들
과장됨이 없이 자신들로부터 사랑이 흘러나와
사랑의 흐름이 세상으로 전해지는 사람들.
우리들 삶의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우리들의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

- 작은이여, 그대가 내게는 커다랗습니다.작은이여,
그대는 결코 넉넉하지 않습니다.그래도 그대에게는 주기 위한 두 손이 있습니다.
그대는 언제나 웃기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합니다.
작은이여, 그대는 소박한 사람입니다.그 때문에 그대가 내게는 커다랗습니다.

- 삶이란 사람들과 사물들을 품에 안는 것.
그들을 다시 놓아 버리는 것.그래서 사람들과 사물들이 하느님이 지켜보는
면전에서푸르름을 자랑하고 꽃을 피우는 것.삶이란 감사하는 것.
사람들과 사물들 안에 그렇게도 소박하게 주어진 빛과 사랑에 대하여
따뜻함과 다정함에 대하여.삶이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선물로 보는 것.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선물이 되게 하는 것.아무것도, 아무도 소유하지 않으며
밤하늘에 흐르는 모든 별 하나마다에 소리쳐 환호하는 것.

- 한 송이 꽃이 피어날 수 있는 곳에서 어느 날 수천의 꽃들이 피어납니다.

< 필 보스만스와 이름 없는 연맹 >
필 보스만스는 1922년 벨기에의 림부르크에 태어났으며,
1948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네덜란드에서 3년간
‘이름 없는 연맹 (Bond zonder naam)’에서 이름 없는 운동을 하다가
1959년 이 연맹의 지부를 앤트워프에 설립하고 세계적 운동으로 전개해 나갔다
.‘이름 없는 연맹’은 모든 이념과 당파, 종교를 초월한 ‘마음의 문화’를 위한
모든 사람의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운동이다. 또한 이 연맹은 장애인, 환자, 노인,
재소자, 전과자,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 집 없는 여성, 부랑자 등 사회적인
모든 약자들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실천적인 운동을 펴고 있다.
현재 ‘이름 없는 연맹’은 인구 천만의 벨기에에만 약 30만 명의 회원을 두고 있고,
17개국에서 이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 end.


 

금주의 독서 메모 015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1.01.10.

[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 ]

- 정진석 추기경 지음/ 220p
- 진리에 대한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 주는 책
- 정진석 추기경 프로필 : 1931년 서울 수표동에서 출생, 1961년 사제서품,
1970년 주교 서품, 청주교구장, 서울대교구장 역임, 2006년 추기경 서임,
15권의 교리법 해설서 저술 및 다수의 저서와 역서 집필


[ 책 표지의 글에서 ]
의심과 증오로 말미암아 불화의 갈등이 증폭되고 분열과 다툼이 떠나지 않는
소란스러운 이 세상에서 진리의 빛을 따라 걷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짙은 안개
속에서 윤곽만 보듯이 어설프게 알고 있는 진리를한층 더 명확하게 깨달으려
정진하는 분들에게 말벗이 되고 싶은 심정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밤이 길고 어두울수록 새벽을 여는 빛은 더욱더 밝을 것입니다. 진리와 선에서
비롯되는 평화와 생명을 갈망하는 모든 분들에게 밝은 언덕(명동)에 쏟아지는
한줄기 천상의 햇빛이 비추기를 기원합니다.



[ 달력과 우주의 질서 ]


< 달력 >

- 음력(陰曆/Lunar Calender)과 양력(陽曆/Solar Calendar)
* 4대 인류 문명 발생지 :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 (BC 25세기),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 (BC 30세기),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강, 티그리스 강 유역 (BC 35세기),
중국의 황허 강 유역 (BC 60~50세기) * 달력/음력 : 달의 규칙적 변화를 기준,
달을 기준으로 한 음력 태양력/양력 : 낮과 밤의 길이가 계절에 따라 규칙적으로
변화하는 해를 기준

* 음력의 한 해는 364일, 양력의 한 해는 365일 지구가 태양을 한 번 공전하는
실제 시간은 365.242일 오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음력에서는 19년에 일곱 번의
윤달을 집어 넣고, 양력에서는 4년마다 하루를 추가함.

* 율리우스력 : BC 45년에 로마 제국의 집정관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집트
천문학자의 의견에 따라 태양력을 제정. 이는 365일을 1년으로 하고 4년마다
하루를 윤일(閏日)로 두었으며, 유럽전역에서 16세기까지 사용하였다.

* 그레고리우스력 :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종래의 율리우스력에서 오차가
발생하자 이를 개정함. 즉 4년마다 윤일을 두지만, 100년 단위의 해에는 윤일을 두지
않고, 다만 400년의 배수가 되는 해에만 윤일을 둠. 이는 3323년 만에 단 하루만
오차가 생길 정도로 정확하여 오늘날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
에서 채용하고 있다.

-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능력
정확한 달력 체계를 인간이 고안하여 실생활에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진실을 입증하고 있다. 첫째, 우주 안의 모든 천체들 중 적어도 태양을 비롯하여
태양계에 속하는 모든 행성들과 위성들이 규칙적으로 질서 정연하게 운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우주의 천체들이 아무 원인 없이 우연히 질서 정연한 운행을 한다고
주장할 수가 없다. 지성을 가진 어떤 존재가 질서 있게 운행되는 우주를 창조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진실이다. 셋째, 우주 안의 모든 피조물중 오로지 인간만이 신비한
우주의 질서를 인식하고, 적어도 태양계에 속하는 천체들의 운행 규칙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하여 정리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 우주의 기원 >

- 천문학의 초창기
*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 이라고 설명했다.

* 갈릴레이(1564~1642)는 1609년에 직접 제작한 천체 망원경을 사용하여 태양계를
관측하고,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지지하였다.

- 우주론의 발전 과정
* 라플라스(1749~1827)는 가스 성운의 냉각과 수축에 따라 태양계가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 허블(1889~1953)은 ‘도플러 효과’의 이론에 근거하여 우주가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1980년대에 몇몇 학자들이 ‘대폭발 이론’을
주장했다.

* 태초에 에너지가 응축된 한 점이 폭발하여 우주가 생겨났고, 그때부터 우주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팽창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학설이 1989년 이후 정설로 인정되고
있다.

- 대폭발 이론 (big bang theory) ....

< 시간과 공간 >

- 철학의 설명
* (시간) 물체의 존재를 나타내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 (공간) 물체의 모든 내용물을 제거한 뒤에 빈자리를 뜻한다.

- 물리학의 설명
* (시간) 물질과 운동을 설명하는데 사용된다.우주는 계속 변한다. 만일 우주에 변동이
전혀 없다면 시간이 있을 수 없다. 우주의 모든 물체는 시작이 있고 변화하다가 소멸된다.
무생물인 우주의 별들도 그러하다. 생명체 역시 탄생하고 성장하다가 사멸한다. 이러한
변화를 표시하는 것이 시간이다.

* (공간) 물질이 존재하고 여러 가지 현상이 일어나는 장소를 뜻한다. 우주 안의 모든
물체(무생물이거나 생물이거나)는 끊임없이 위치 변동과 화학변화를 계속하고 있다.
계속 팽창되는 우주 안의 모든 천체들의 위치도 변한다. 이 모든 것은 4차원으로 표시될
수밖에 없다.

< 하느님의 존재 >

- 하느님 존재 인식
* (지성의 능력) 이성을 가진 인간은 하느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몇 가지의 길을
발견하였다. 즉 우주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자연 과학의 연구 결과로 “우주와 인간은
창조주의 작품일 수밖에 없다.”는 일관성 있고, 설득력 있는 논증을 통해서 하느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 (최초 원인과 최종 목적)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원인 없이 저절로 우연히 생겨날 수는 없다. 그런즉 본시
없었던 우주를 존재하게 한 원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대폭발 이론이 진실이라면
그러한 대폭발을 일으킨 원인이 없을 수 없다. 그 원인은 우주기 있기 전부터 존재해야
이치에 맞다. 그러니까 그 근본 원인은 영원으로부터 스스로 존재하여야 한다.

* (인간의 갈망) 태어나 자라며 병들고 죽는 미소한 인간이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초월하는 절대적 가치(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희생정신, 윤리적 선에 대한 정의감,
인간 능력을 초월하는 양심의 소리, 참행복과 영원한 생명 및 자유에 대한 갈망 등)를
염원하는 인간 영혼의 근원은 오직 절대자인 하느님일 수밖에 없다.

- 우주 창조
* (우주는 하느님 작품) 우주의 창조주 하느님 하느님은 자연(우주)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분이시다. 따라서 초경험적 존재인 하느님은 인간이 그 존재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하느님은 스스로 어떤 분이신지를 인간에게 조금 알려 주셨다.
이것을 계시(啓示)진리라고 한다. 시작도, 끝도, 변화도 없는 하느님은 과거나 미래가
없고, 항상 현재이다. “영원하시고 무한하시며 전능하신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하셨다.”
라는 주장이 창조론이다.

* (제작, 창작, 발명) 제작은 어떤 재료를 사용하여 물건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창작(창조)은 재료를 사용하여 자기의 생각이나 기술 등으로 새로운 것을 처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아직까지 없던 어떤 물건이나 방법을 새로 만들어 내거나 또는 인류
사회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것을 고안(考案)해 내는 일을 발명이라고 말한다.

* (물질) 우주의 재료는 물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질은 창조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 (우주 창조) 하느님은 말씀 한마디로 우주 만물을 존재하게 하셨다. 재료 없이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은 전능하신 분이 만물을 존재하게 하셨다는 뜻이다.
전능이란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본시 없었던 우주가 현존하는
것은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하신 결과이다.

* (자연법) 우주와 인간을 대상으로 한 학문의 연구 결과로 인식하게 된 진리를 자엽법
이라고 말한다. 자연법 중에는 물리 법칙, 윤리 법칙, 미(美 )의 법칙이 포함된다.
물리 법칙은 물질계 전체의 질서 중에 과학자들이 알아낸 것이다. 윤리 법칙은 자유를
부여 받은 인류에게만 적용되는 질서이다. 그리고 미의 법칙은 음악, 미술 등 순수 예술
분야에 관한 질서이다.

- 하느님의 섭리와 진화론
* (안배와 섭리) 하느님은 창조하신 우주가 잘 유지되어 본래의 목적대로, 궁극적인
완성에 이르도록 보살피신다. 이것을 하느님의 섭리라 부른다. 특히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창조한 하느님께서 각 인간을 그 사람의 구원의 목적에로 인도하는 질서와
은혜를 ‘하느님의 섭리’라고 말한다.

* (진화하는 생물과 진행 중인 창조) 하느님이 피조물을 완전에로 이끄시는 배려를
하느님의 섭리라고 말한다. 진화론에서 말하는 생물의 진화도 하느님의 섭리 안에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느님은 언제나 각 사람의 영혼을
그가 잉태되어 때 창조하신다. 그리고 우주가 계속 팽창(인간의 언어로)중이미로
하느님의 우주 창조가 과거에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 2. 환하게 빛나는 사람 ]

< 사람의 특성 >

- 도공과 도자기
* 도공은 같은 흙을 가지고 서민들이 평소에 사용할 소박한 그릇을 만들기도 하고,
특수 목적으로 사용할 고급 제품을 만들기도 하며,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걸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도자기가 생명의 기운을 받는 불가마의 화력과 온도가 적당할 때
비로소 도공의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온다. 세계 최고의 수준의 경지에 이른 도공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제품이 나오면 자기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아낌없이 파기해 버린다.

- 만물의 영장인 인간
* (사람의 기원에 관한 학설) 인간이 이 지상에 나타난 것은 대략 16만 년 전이라고
한다. 생명체가 지상에 나타난 다음에도 한참 후에야 지성을 가진 인간이 나타난 것이다.
지구의 46억 년 역사를 1년으로 환산하면 한 해의 마지막 날 오후 여덟 시가 되어서야
나타난 것이다. 과학자들의 이러 한 설명은 성경과도 모순되지 않는다. 성경에 보면
하느님께서 우주 창조 때 무생물부터 시작하여 생물을 존재하게 하셨고, 마지막 순서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쓰여 있다.

* (자의식을 가진 인간) 인간은 물질과 영혼으로 이루어진 (자의식을 지닌) 독특한
존재이다. 인간은 하느님과 물질을 중개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니만큼 인간은 우주를
창조해 주신 하느님께 만물을 대표하여 감사와 찬미를 바칠 수 있는 중개자이다.

* (만물의 지배자인 인간)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닮은’사람을 만드시고 만물에
대한 지배권을 인간에게 주셨다. 실제로 인류는 지구상의 모든 물질과 생물을 지배하고
마치 주인처럼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지구의 한정된 자원을 소수의 사람들이 독점하고
무절제하게 낭비하는 경향까지 있다.

< 사람의 개성 >

- (육체와 영혼) 인간의 육체는 92개의 원소로 이루어진 60조 개의 세포들로 구성
되어 있다. 물질로 구성된 육체가 비물질의 영혼과 결합됨으로써 하나의 인간을 이룬다.
스콜라 철학에서는 육체를 사람의 질료(質料)라고 하고, 영혼을 사람의 형상(形相)
이라고 표현한다. 영혼은 사람의 감각으로는 알 수 없는 신령한 존재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육체가 평범한 물질로 환원되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 이 점에서 사람은
‘하느님 모습을 닮은 존재’라고 일컬어진다. 바로 이것이 인격과 인권의 기초이다.

- 인격과 인권인간은 어떤 물체가 아니라 어떤 인격이다. 인간은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의 주체가 되며, 자유로이 자신을 내어 주고 다른 인격들과 친교를 이룰 수 있다.
심리학에서의 인격은 개인의 지정의(知情意) 및 육체적 측면을 총괄하는 전체적
통일체를 뜻한다. 윤리학에서의 인격은 도덕적 행위의 주체로서의 개인을 말한다.
법학에서는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인격이라 말하고, 이 점에서
자연인과 법인을 구별한다. 종교학에서는 신성(神性)을 가진 분의 신격(神格)에 대응
하는 의미로 인성(人性)을 갖춘 품격이다. 인권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를 말한다.

* (개별적으로 창조된 사람) 사람은 그 육신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지만, 영혼은 하느님
으로부터 직접 받는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어느 인간이든지 그가 잉태되는 때 그 영혼을 창조하신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탄생은
개별적인 창조이다.

* (고유한 사명)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은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각기 다른 사명을
부여하고, 그 사명 수행에 필요한 재능을 부여하고 창조하셨다는 뜻이다. 그리고 각
사람은 각각 다른 지식이나 습성을 습득함으로써 서로 더욱 달라 진다. 그리고 나에게
맡겨진 사명을 빨리 깨닫고 이를 완수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내 인생의
존재 이유와 목적일 것이다.

* (인간의 존귀한 지위)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우수한 작품이고 각각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도록 선택된 존귀한 존재이다.

< 위인과 의인과 인기인 >

- 위인
* (비범한 업적을 이룬 사람) 도량이나 재간이 뛰어나서 많은 이들이 감탄할 만큼
특출한 업적을 이룬 사란을 위인이라고 칭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종과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여 인류에게 인생의 바른 길을 밝게 비추어 주는 보편적 진리를 일깨어
준 성현(聖賢)들이 진정한 의미의 위인들이다. * (한국의 엄마들) 엄마들은 오로지
가족들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희망을 안고 투철한 희생정신으로 어떠한 고난이라도
극복하였다. 한국 엄마들은 자녀의 미래만을 보람으로 여기고 온갖 쓰라림을 견디어 낸
위인들입니다.

- 의인
의사상자/義死傷者 의리와 지조를 굳게 지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을
의인, 의사 또는 애국 열사라고 말한다. 국가에서는 살신성인을 몸소 실천한 분들을
의사자 또는 의상자로 선정하고 국가 유공자에 준하는 예우를 해 주고 있다.

- 인기인(人氣人)
* (희망을 주는 별들) 타고난 천재적 재능과 남다른 노력으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들은 온 국민에게 행복한 기쁨과 희망을 담뿍 안겨 준 별들이다.

* (스타들의 환희와 비애) 우리는 인기 배우나 가수, 체육인 등을 별에 비유하는데,
그들은 인기가 많아질수록 일거수일투족이 낱낱이 공개돼 때로는 괜한 오해를 받기도
한다. 또한 더 밝은 별이 나타나 자신의 빛이 가려지고 사람들에게 잊혀질까 염려한다.

< 인생의 무대 >

- (배우가 맡는 배역) 연출자는 자기의 판단에 따라 각 배우의 배역을 정해 준다.
배우는 자기의 배역에 대해서 연출자의 뜻을 따라야 한다. 단역을 맡게 된 배우가
그 배역에 불만을 갖고 주연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릴 수는 없다.

- (단 한 번의 무대) 셰익스피어가 말하였듯이 이 세상은 커다란 무대이다. 인생의
무대에서는 각 사람이 배우들이고 하느님이 연출자이다. 살아 있는 동안 무대 위에서는
주연도 있고 조연도 있으며 단역도 있지만, 죽어서 무대 아래로 내려가면 모두가
평등하다. 명배우가 되려면 연출자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 (연출자의 평가) 주연을 맡았다 하더라도 반드시 명배우의 명예를 얻는 것은 아니다.
그 반면에 단역을 맡은 배우라도 연출자의 뜻을 잘 소화해서 연기를 잘하면 명배우로
칭찬받는다. [ 3. 인터넷과 의사 표현 ]

< 인터넷 >

- 20세기의 위대한 발명품
* (인터넷) 인터넷은 1969년 미국에서 군사용으로 개발되었다. 이후 연구 단체의
학술용으로 사용되던 것이 1990년대에 들어서 산업용으로 개발되면서 크게 확산
되었다. 우리나라는 1994년 6월 20일 KT가 ‘코넷’이라는 이름의 아시아 최초 개인
상용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다. 1998년 초고속 인터넷이 등장한 후 인터넷 환경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현대를 ‘지식 정보화 시대’라고 할 때 인터넷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 (네티즌) 통신망을 뜻하는 네트워크(network)와 시민을 뜻하는 시티즌(citizen)의
합성어이다. 생활의 편리와 유용함을 주는 인터넷은 네티즌의 자제력과 자정 능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 인터넷의 효과
* (인터넷의 특징과 순작용) 유연한 새로운 정보를 실시간으로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실시간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새로운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다양한 의견과 정보를
제시하고 여론을 형성하기도 한다. 인터넷 상거래와 전자화폐가 보편화돼 시간과
공간적 제한 없이 재화를 거래할 수 있다. 상품정보 수집이 용이하다.

* (인터넷의 부작용) 익명성을 무기로 상대를 헐뜯고 비방하거나 근거 없는 소문으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다. 익명성에 숨어 저질 정보와 음란물을 유포하거나 범죄에
악용하기도 한다. 매체로서의 인터넷은 인터넷 중독, 스팸메일, 유해 사이트의 범람
등도 문제이다. 올바른 가치관과 다양한 인간관계를 형성해야 할 청소년기에 인터넷이
부모 자녀간의 대화를 가로막고 있다.

< 사람의 청각과 청각 >

- 휴대 전화
* (가시광선)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광선을 가시광선이라 말한다. 즉,
(무지개 색) 적색, 등색, 황색, 녹색, 청색, 남색, 자색을 볼 수 있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광선, 즉 복사선, 자외선, 적외선 같은 것을 비가시광선이라고 말한다.
동물 중에는 사람이 못 보는 광선중의 어떤 것을 인식하는 동물도 있다.

* (가청 음파) 보통 사람의 귀로 들을 수 있는 범위의 음을 가청음이라 말하고,
들리는 범위의 음파를 가청음파라 부른다. 사람은 대략 매초 주파수 20~2만 헤르츠(hz)
까지의 음파를 들을 수 있고, 가청음의 크기는 0~130폰(phon)사이의 음이다.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초음파라 부른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휴대전화에서 사용되는
전파는 초음파이다.

- 하느님의 속삭임
* (영적 라디오 수신기) 사람이 하느님의 속삭임을 들으려면 각자가 마음의 라디오
전원을 켜야 한다. 그리고 그가 다이얼과 볼륨을 하느님의 주파수에 잘 맞추고 있어야
하느님 사랑의 메시지를 잘 들을 수 있다.

* (양심 : 하느님의 원격조정장치-리모컨) 양심은 인간의 가장 거룩한 핵심이다.
양심은 하느님이 세상에 사는 각 사람을 원격 조정하시기 위하여 각 사람의 마음속에
설치하신 리모컨으로 비유할 수 있다. 사람은 양심을 통해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양심의 소리는 언제나 선을 사랑하고 실행하며 악을 피하라고 말한다.

< 사람의 의사 표시 >

- 사람의 말
* (말과 글) 사람이 자기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방법에는 표정이나 몸짓, 손짓이나
눈짓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도 한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말과 음성으로 하게
된다. 말은 그 표현하는 과정에서 그의 인품이나 인격 수양의 정도 그리고 그의 지식
정도나 성향, 취미까지도 알아차리게 된다. 말의 내용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전달하거나 영구히 보존하기 위하여 글자라는 부호로 나타내는 의사 표시가 글이다.

* (의사 표시의 효과) “말하기 전에 백 번 생각하라.” - 유럽 속담“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 우리나라 속담 “말은 행복을 불러들이는 문이 되기도 하고,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 되기도 한다.” 칭찬이나 축복의 말은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
기쁨을 안겨 준다. 비난이나 저주의 말은 듣는 이에게 불쾌한 감정을 초래하게 된다.
지킬 수 없는 것을 약속하거나 지킬 마음 없이 약속한 말은 거짓말이다.

- 말의 효력
* (말은 에너지) 격려나 위로 또는 칭찬하는 말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자발적으로 선행을 하도록 유도하는 힘이 있다. /“좋은 옷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좋은 말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중국 속담/“말은 칼보다 더 큰 상처를 낸다.”
- 영어 속담/“칼의 상처는 아물어도 말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 몽골 속담/
사람의 말도 일종의 에너지로 일단 발설된 말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라 시간이
지나도 소멸되지 않고, 우주 어디엔가 보존되어 있을 것이다.

* (말의 영속성) 말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축복이나
저주의 말을 듣는 사람 에게는 그 말이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 인품의 표현
* (평소의 말버릇) 말은 사람의 인품을 반사하는 척도이다. 품위 있는 말, 고상한 말,
아름다운 말 한마디가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반면에 저속한 말 한마디가 그 인품에
대한 존경심을 사라지게 한다.

* (칭찬과 험담) “나쁜 사람은 남의 단점을 말하기 좋아하고, 좋은 사람은 남의 장점을
칭찬하기 좋아한다.” - 중국속담/ 남의 장점만 찾는 사람은 늘 자기 마음이 평화로운
덕분에 얼굴 표정에 환한 미소가 배어 있다. 남의 단점만 찾는 사람은 늘 불평하고
짜증만 내는 까닭에 인상이 험상스럽게 된다. 무학 대사가 태조 이성계에게 응답한 말
“부처님 눈에는 모든 것이 부처님으로 보이고, 돼지 눈에는 모든 것이 돼지로 보인다.”

- 평소의 습관
* (어떤 실화) 품위 있는 말만 하는 가정에서 성장ㅇ한 사람은 큰 복을 받은 사람이다.
* (저속한 말) 사람이 말을 타락시키지만, 저속한 말도 사람을 타락시킨다. 분노와
증오, 경멸의 말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평화를 깨뜨린다.

< 참말 >

- 진리
* (일반적 의미의 진리) 진리란 실재하는 것의 긍정이며 실재하지 않는 것의 부정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판단과 실재와의 일치가 진리이다.

* (우주의 질서) 창조주께서 우주를 창조하셨을 때에 정하신 질서(영원한 법)가 진리이다.
진리는 그 자체로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영원한 법 중의 일부를 인간이 이성으로
파악한 것을 ‘자연법’이라 말하고, 하느님의 계시로 알게 된 진리를 계시진리라고 말한다.

* (그리스도교적 진리)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의 뜻 또는 그분의 가르침을 진리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다.(요한 14,6)

- 야고버 사도의 교훈
*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미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창조된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같은 입에서 찬미와 저주가 나오는 것입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이래서는 안 됩니다.”

< 진리와 진실에 관한 격언 >

* (설득력) “가죽 채찍으로 때리지 말고 진리로써 굴복시키라.” - 중국 속담/ “그릇된
논리는 한 다리로 길을 걷는 것이고, 진리는 두 다리로 걷는 것이다.” - 중국 속담

* (사필귀정) “진실은 물속에서도 가라앉지 않고, 불 속에서도 타지 않는다.”
-알타이족 속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남이 안다.” /“거짓은 빨리 퍼지지만,
진실이 반드시 따라잡는다.”

* (침묵과 말)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기다리며 침묵하지만, 허풍쟁이와 바보는 때를
놓친다.”(집회20,7)

* (거짓말) “한 가지 말이 부실하면 백 가지 일이 허위다.” - 중국 속담/ 인간의 말은
진리와 합치된 경우에 진실하다고 말한다. 진리와 합치되지 않은 말이 거짓말이다.
사람은 진실만 말해야 한다.

[ 4. 길과 자유 ]

< 기계와 운전 규칙 >

- 좋은 시계와 불량품
* (좋은 시계) 정확한 시간을 알려 주는 것이 좋은 시계이고, 시계의 존재 이유와
목적이다. 모든 기계는 제작자로부터 부여 받은 목적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좋은
제품이다.

* (제작자와 불량품) 시계가 시간을 잘 맞추도록 제작할 책임은 시계 제작자에게 있다.
불량 시계에 대한 책임은 그 제작자에 있다. 모든 기계는 물리 법칙에 따라서만 작동
한다. 어떠한 기계라도 그 사용자는 제작자가 정해 놓은 운전 규칙을 지키는 범위
안에서만 그 기계를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

- 미(美)의 법칙
* (피아노 연주자) 피아노 앞에서의 연주자가 자기 마음대로 건반을 두드리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그는 악보를 기억하고 그 악보대로 건반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 (작곡가) 명곡을 작고하려는 작곡가는 오직 화음 법칙을 지키는 범위안에서만
작곡하여야 한다. 그가 화음 법칙을 지키는 한 자유자재로 작곡할 수 있다.

< 길과 탈선 >

- 길과 신호등
* (도로)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보행하는 사람은 도로 교통법을 지켜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 (항로와 등대) 선박들이 안전하게 운행하려면 국제적으로 정해진 해도(海圖)에 따른
항로와 선박 운항 규칙(바다의 교통법)을 지키면서 운행하여야 한다.

* (항공 등대와 항공 무선 표지소) 비행기가 안전하게 비행하려면 국제적으로 정해진
항로를 따라 가야 하고, 항공 규칙(하늘의 교통법)을 지켜야 한다. 돌발 사태에 대비
하여 비행기들은 지상에서 쏘아 주는 방향 정보도 받고, 인공위성을 이용하는 위성
항법장치(GPS)도 사용한다. 방향정보는 지상의 항공 무선 표지소에서 24시간, 360도
방향으로 쏘아 준다.

- 탈선
* (기차의 탈선) 기차는 절도위에서만 자유로이 운행된다. 철도를 벗어나 탈선하면
꼼짝도 못한다.
* (천체의 궤도 이탈) 천체가 궤도를 벗어나면 서로 충돌하거나 중력의 균형이 깨짐
으로써 폭발하여 파멸하고 만다.

< 사람의 길 >

- (본능) 생물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존을 위한 길잡이가 본능이다. 생물이
창조주가 정해 주신 본능을 어기면 그 생물은 죽는다. 인간 이외의 생물은 본능을
어길 자유가 없는 까닭에 창조주의 뜻을 어기는 죄를 범할 수 없다. 본능은 일반적
으로 자기 보존 본능, 종족 보존 본능, 단체 본능, 적응 본능 등으로 구분한다.

- 도덕성의 척도
* (식욕) 생존 본능에 직결되는 것이 식욕이다. 식욕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도덕성의
한 가지 척도이다. 식사하는 태도를 보면 그 인품을 가늠할 수 있다.

* (소유욕) 자아 확장 본능에 직결되는 것이 소유욕이다. 무절제한 욕구를 본능적
으로 제어하는 장치가 없어 분수에 넘치게 재물을 모으는 사람도 있다. 타인과
공동체를 위하여 재물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인격자이다.

* (성욕) 종족 보존 본능에 직결되는 것이 정욕이다. 인간만은 소유욕과 성욕이
본능에 의하여 조절되지 않고, 자유 의지에 의하여 스스로 조절되도록 창조되었다.
인간만이 소유욕과 정욕을 스스로 품위 있게 조절할 자유와 책임을 지니고 있다.

- 양심
* (사람의 길잡이)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르고 착한 마음을 양심이라고 한다.
양심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 주는 길잡이이다. 도덕적인 가치를
판단하여 선을 명령하고 악을 물리치는 통일적인 의식이 양심이다.

* (양심 성찰의 필요성) 사람은 선과 악을 분별해야 하는 때마다 자기 양심의 목소리를
잘 듣고 따르기 위하여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 (사람의 도리) 사람이 지켜야 할 윤리 즉 실제의 도덕규범이 되는 원리를 ‘사람의 길’
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사람의 도리’를 벗어나면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된다. 어느
누구도 인륜 도덕을 어길 자유는 없다.

< 자유와 자유 의지 >

- 자유
* (육신의 자유) 남으로부터 구속, 강제, 지배를 받지 아니하는 일을 자유라고 한다.
이는 육체의 자유를 두고 하는 말이다. 법학에서 자유란 법률의 범위 내에서 완전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 자유는 법질서
아래에서 지속된다.” - 라틴어 속담* (영혼의 자유) 영혼은 비물질이므로 감옥에
가두어 둘 수 없다. 육신이 감옥에 갇혀 있더라도 정신의 자유는 아무도 속박할 수 없다.
양심의 자유는 아무도 속박할 수 없다. 여기에는 신앙의 자유도 포함된다.

- 자유 의지
* 윤리학에서는 외부의 구속이나 제약을 받지 아니하고 스스로 어떤 목적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는 의지이다. * 심리학에서는 두 가지 이상의 동기에 대하여 선택과 결정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의지로 내적 자유라고도 한다.

* 철학에서는 정신이 목적을 가지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의지이다.
* 법학에서는 작위(作爲)나 부작위에 대하여 자유로운 정신 상태의 의지이다.
* 종교에서는 인간이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의지이다.

- 인간의 고유한 능력
* (선택의 자유)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자유 의지로 자제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로
창조되었다. 자유는 이성과 의지에 바탕을 둔 선택 능력이고, 인간 행위의 고유한
특징이다.

* (자유의 증진) 각 사람은 자유 의지에 따라서 자신의 삶을 이루어 나간다. 인간의
자유는 진리와 선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하는 힘이다. 인간은 선을 행하면 행할수록
더욱 자유로워진다. 인간은 창조주를 자유로이 따름으로써 완전한 행복에 이른다.

< 자유와 책임 >

- 선악의 분별 능력
* (지적 능력) 양심이 올바로 판단하려면 우선 옳고 그름을 정확히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 (고의성) 인간은 자기 행위에 대하여 자유 의지에 의한 고의성의 한도만큼 책임을
진다.

- 책임의 경감이나 가중
* (책임의 경감이나 면제) 정신적, 사회적 요인들 때문에 자유가 장애된 상태에서
행한 행위에 대해서는 인책성이나 책임이 경감되거나 면책될 수 있다.

* (책임의 가중) 자유의지로 치밀하게 계획한 범죄일수록, 범죄가 흉악하고 잔인
할수록 더욱 엄중한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 자유의 권리
* (인간의 존엄성)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 창조하시어 인격의 존엄성을
주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책임 있는 존재로 인정
받을 천부적 권리를 지니고 있다.

* (자유권) 국가 공권력에 의해서도 자유를 침해당하지 아니하는 권리가 자유권이다.
이 자유권은 민주주의 헌법에 의해서 보장된다.

* (자유인) 진선미(眞善美)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뜻을 항상 받들고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자유인이다.

[ 5. 덕망 높은 삶 ]

< 선과 악 >


- 선악의 기준
* 사람만이 창조주가 부여한 목적을 따르거나 거역할 자유가 있다. 그렇기에 인간에게만
성악의 문제가 있다.

- 선행
* (선,善) 착하고 올바르고 어질고 좋은 것을 선하다고 말한다. 윤리학에서는 도덕적
생활의 최고 이상을 말한다. 종교에서는 진리와 정의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즉, 창조주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존재 이유이고, 목표이기 때문이다.

* (선행) 착하고 어진 행실을 선행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과 남에게 선익이 되게 하는
행위가 선행이다. 창조주 하느님의 뜻을 준행하는 것이 선행의 기준이다. 선행의
실천에는 무상의 영적 기쁨과 윤리적 아름다움이 수반된다.

- 악행
* (악) 착하지 않고 올바르지 아니한 것을 악이라고 한다. 윤리학에서는 양심을 좇지
않고 도덕률을 어기는 것이다. 철학에서는 가치 관념에 있어서 적극(積極)에 대한
소극의 의미를 말한다.

* (악행) 사람의 길을 탈선한 악덕한 행위이다. 악행은 창조주께서 부여해 주신 목적을
어기고, 자기 자신과 남에게 해악을 끼치는 행위이다.

< 도덕 >

- 예의염치(禮義廉恥)
* 예(禮)는 사람이 지켜야 할 법도를 넘어 서지 않음이고, 의(義)는 자기 욕심에
얽매이지 않고 올바르게 행하려고 진력하는 자세이다. 염(廉)은 사악함을 몰래
감추지 않음이고, 치(恥)는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을 말한다. ‘예의를 안다’는
것은 가정에서나 공동체에서나 상대방을 존중해 주는 자세를 말한다. ‘염치를 안다’는
것은 그릇된 욕심을 자제하지 못하거나 유혹을 과감히 물리치지 못하였을 때 남에게
들키지 않았더라도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뉘우치는 자세이다.

- 덕행과 덕망
* (덕과 덕행) 마음이 올바르고 인도(人道)에 합당한 일을 덕이라고 한다. 인격이
갖추어져서 남을 경복(敬服)시키는 힘을 덕이라고 한다. 선행의 습관을 덕행이라고
한다. 일상생활 전체가 선행과 연관되어 있는 삶을 사는 것을 덕성 있는 삶 또는
덕망 높은 삶이라고 칭송한다.

* (덕망과 영광) 덕망(德望) 있는 사람은 국민들로 부터 신망을 받는다. 영광은
덕망의 그림자이다. “덕이 있으면 명예가 저절로 따른다.” - 라틴어 속담‘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 덕망이 있는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면 세상이
태평하고 만백성이 축복을 받는다는 뜻.

< 도덕의 원칙 >

완전한 생명, 진리, 정의, 자유, 사랑은 스스로 존재하는 창조주의 속성으로 사람만이
이러한 속성에 참여 할 수 있다. 이 점이 인간의 특성이고 도덕의 원칙들이다.

- 생명
*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생명이다. 생명에 유익한 것이 선이고, 생명에 해로운
것이 악이다.

- 진리
* 자연법이 진리의 기초이다. 진리는 이성을 가진 인간만이 누리는 소중한 가치이다.
이것은 하느님, 그리고 우주의 질서 및 인류공동체와 각 사람의 생의 의미를 깨닫는
가치이다. 진리와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 선행이다. 모든 사람은 언제나 진리를 추구
하고 존중하며 책임 있게 증언하여야 할 특별한 의무가 있다.

- 정의
* (정의의 의의) 정의는 올바른 도리라는 뜻이다. 지혜와 용기와 절제가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덕이다. 정의는 하느님께 속하는 것은 하느님께 드리고 이웃에게 속하는 것은
그에게 주려는 꾸준하고 굳건한 의지이다.

* (사회 정의) 사회 정의는 사회 통념상 올바른 도리를 말한다. 사회 정의는 인간의
탁월한 존엄성을 존중함으로써만 이루어 낼 수 있다. 인간은 사회의 궁극 목적이며
사회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부정과 불의를 척결하고 진리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하여 헌신하는 행위가 선행이다.

* (정의와 사랑) 정의는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의는 사랑이라는 더욱 깊은
힘에 열려 있어야 한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다.

- 자유
* (자유의 의의) 자유는 정당하게 허용될 수 있는 것을 행하는 권리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는 만큼 자유는 소중한 가치이다. 인간의 도리를 지키는
한계 안에서 각 사람은 자유를 누린다.

* (자유의 제약) 악행의 자유는 없다. 허위에는 자유가 있을 수 없다. 자유는 공동체의
공익을 위하여 제약될 수 있다.* (자유의 행사) 자유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행사된다.
자유를 행사할 권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분리될 수 없으며 도덕적,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 (사랑) 사랑의 깊은 샘에서 진리와 자유와 정의의 가치들이 생겨나고 자란다. 사랑은
정의를 전제로 하는 동시에 정의를 초월한다. 정의는 사랑 안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 복된 삶 >

- 행복한 사람
* (일상생활) 선한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다. 칭찬의 말을 건네는 사람, 자원해서
희생할 줄 아는 사람, 진솔한 대화를 하는 습관이 있는 집, 하루를 반성하는 습관을
들인 사람들은 행복하다.

* (시련의 극복) 절망을 극복하고 재기한 사람, 시련을 당했을 때 단련으로 강해짐을
깨닫는 사람, 자신의 처지를 이겨 내는 사람은 행복하다.

* (노년의 행복) 장애를 극복하고 자기가 희망한 목표를 달성한 사람, 노후까지
건강하게 사는 사람, 인생을 살아서 언제 죽더라도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행복하다.

- 참 행복
* (인간의 갈망) 재산이나 육체의 안락, 인간적인 명예나 권력, 학문이나 과학기술이나
예술 등 인간의 훌륭한 업적이 유용한 가치가 있는 것임은 분명하나 인간이 갈망하는
참행복은 있지 않음에도 인간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참행복을 갈망한다.

* (깨달음) 참행복은 첫째, 우리 마음에 있는 악한 본능(욕심)을 정화하고, 둘째,
진선미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깨달으며, 셋째, 그로서
깨달은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올바르게 사는 것이다.

< 죄의 근원 >

- 선행의 습관을 덕행이라고 말하고, 악행의 습관을 상습 범죄라고 말한다. 덕행의
삶을 방해하는 악, 즉 ‘죄의 근원’들이 있다. 사람이 유혹에 빠지기 쉬운 죄는 사람마다

조금씩은 다르기는 하나 대체로 정욕, 탐식, 나태, 분노, 교만, 시기, 탐욕이다.

- 교만(驕慢), 교오(驕傲), 오만(傲慢)
* 교만은 자기의 우월성을 도리에 어긋나게
탐하는 마음이다. 교만에서 이기주의, 불순종, 고집, 자만심, 허영 등의 죄가 생겨난다.
교만과 반대되는 것이 겸손이다.

- 인색(吝嗇), 탐욕(貪慾)
* 인색은 세상 물질을 무질서하게 애착하는 마음이다. 인색에서 불안한 마음, 빈궁한
사람에 대한 무자비한 마음, 거짓말과 사기 등의 죄가 나온다. 인색에 반대되는 것이
낭비(浪費)이다. “탐욕은 불행의 원인이다.” - 세네카.

- 정욕(情慾), 성욕(性慾)
* 정욕은 이성의 육체를 탐내는 마음이다. 성욕은 성적 쾌락에 대한 무질서한 탐욕을
말한다. 성적 본능은 종족의 보존과 번식을 위한 것이니만큼 좋은 것이나 무질서한
성적 쾌락의 탐욕에서는 여러 가지 형태의 성범죄가 나온다.

- 탐식(貪食)
* 탐식은 음식을 무질서하게 탐하는 것이다. 식욕은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본능이다.
탐식은 건강을 크게 해치기도 하고, 정신과 육체를 둔하게 하며, 만사에 게으름을
피우게 한다. 특히 탐식 중에서도 음주는 불행의 씨앗이다.

- 분노(忿怒)
* 분노는 무질서한 복수심이다. 상당한 이유가 있어서 정도에 알맞게 견책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이다. 무질서한 분노는 원수에 대한 불의하고 과격한 복수를 뜻한다.
분노에서 욕설, 모욕, 악담, 구타, 살상 등의 죄악이 나온다.

- 시기(猜忌), 질투(嫉妬)
* 질투는 우월한 사람을 시기하고 증오하는 감정을 말한다. 질투는 교만에서 나온다.
질투로부터 불의한 미움, 비방, 불평 등의 죄악이 나온다. 진투에 반대되는 것이
인격존중, 경천애인(敬天愛人)이다.

- 태만(怠慢), 나태(懶怠)
* 본성적 태만(육체적 태만)은 육신의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이다. 태만에서 인생에
대한 염증, 정신 산만, 시간 낭비 등의 죄악이 나온다. “악마는 게으른 손에 할 일을
준다.”-영어 속담

[ 6. 함께 사는 사회 ]

< 관현악단 >


- 악기(樂器)
* (각 민족의 고유한 악기) 우리나라의 국악에는 향악(鄕樂), 아악(雅樂), 당악(唐樂),
속악(俗樂) 등이 있다. 음악을 연주하는데 쓰이는 기구를 통틀어 악기라고 한다.
주법 상으로는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로 분류된다.* (악기의 종류) 관악기(管樂器)는
입으로 불어서 관내의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는 내는 악기이다. 나무로 만든 것은
목관 악기, 금속으로 만든 것은 금관 악기이다. / 현악기(絃樂器)는 현을 마찰하거나
손가락 등으로 뜯거나 채 등으로 쳐서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찰현 악기, 발현 악기,
타현 악기의 세 종류가 있다. / 타악기(打樂器)는 나무, 가죽, 금속을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 건반 악기는 피아노나 오르간 등 건반을 이용하는 악기이다.

- 악단, 합주와 합창단
* (합주) 여러 연주자들이 음악 연주를 목적으로 조직된 악단이다. 두 개 이상의
악기들로 동시에 연주하는 일을 합주 또는 협주라고 한다. * (합창)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서로 화성을 이루면서 2부, 3부, 4부 등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선율로 노래
하는 일을 합창이라고 한다. 합창은 혼성(混聲)과 동성(同聲) 합창으로 나뉜다.

* (관악대) 다양한 관악기들을 부는 연주자들이 합주하는 단체를 말한다.
* (현악대) 현악기를 탄주(彈奏)하는 이들이 합주하는 단체를 말한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세 종류의 현악기를 탄주하는 것을 현악 3중주(string)라고 한다.

* (고적대) 피리와 북으로써 이루어진 행진용의 음악대를 말한다.
* (관현악단)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건반 악기 등 여러 가지 악기들을 함께 연주하는
이들이 합주하는 단체를 말한다.

- 관현악단의 지휘자
* 악단의 모든 단원들이 한마음으로 연주하도록 이끌어 가는 책임자이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앞에 서기 전에 연주할 곡에 관하여 뚜렷한 음악적 비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지휘자는 모든 소리에 귀 기울여 더 좋은 소리로 변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
역할이다. 지휘자는 단원들이 각자의 재능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파트너십을
만들어야 한다.

< 상호 이해와 협조 >

- 상호 이해
* (다양성의 조화)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조화롭게 피어 있으면 더욱 아름답다. 비가
온 다음 하늘에 영롱한 일곱 가지 색깔의 무지개가 뜨면 보는 사람마다 탄성과 함께
기쁨과 희망을 느낀다.

* (상호 의존) 세상에 혼자 자라는 나무는 없다. 혼자 피는 꽃도 없다. 내가 사는 땅과
하늘, 햇볕과 물, 나무와 새도 나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 상호 협조
* (상호 배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공동체 생활을 원만히 하려면 각자가 상대방의 장점과 단점을 인정하여야 한다.
바다엔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조경 수역(潮境水域)이 있다. 이런 곳에는 다양한 어종이
풍부하게 모여서 살고 있다.

* (의견 차이와 타협) 어떤 모임이든지 특정한 동질성을 바탕으로 모이지만, 참석자들의
의견이 각양각색인 경우가 흔하다. 사람들은 평소 남과 의견이 따른다는 점에 대해
불편해하거나 심지어 적대감을 갖기도 한다.

< 사회생활 >

- 격변하는 현대
* (농경 사회) 농경사회에서는 가구마다 모든 기본 생활필수품을 자급자족하였다.
자급자족 사회의 상부상조하는 미풍양속이 분업화된 산업사회에서는 점차 소멸되고,
치열한 생존 경쟁을 위한 알력과 투쟁이 일상사가 되었다.

* (산업 사회) 산업 혁명으로 어두운 사회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 사회가 몹시 불안
하였다. 빈부 격차의 사회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경제학, 사회학, 사회 심리학 등 새로운
분야의 학문이 등장하였다. 민중의 사회 안정을 도모하기 위하여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새로운 사상 체계가 나타났다. *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1948년 UN에서
독립된 국가로 승인을 받았다. 불과 50년이 채 못 되는 기간 동안에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변하였다. 국민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겨를이 전혀 없이 사회 전체가
너무나 돌변하였다. 대가족이 단시일 만에 핵가족으로 해체되면서 가정교육이나 가풍
등 미풍양속이 완전히 무너졌다.

- 급격한 도시화
* (청결유지의 필요성), (교통질서), (공중 예의)
- 원만한 사회생활
* (다양한 직업들), (상충과 타협의 슬기), (준법정신) < 공동선과 공권력 >

- 공동선
* 공동선이란 “그 공동체와 각 구성원이 그의 완성을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를 뜻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공동선의 추구를
요구한다. 공동선은 각 구성원에게 개인의 이익과 공익이 상충하는 경우에 현명하게
처신할 것을 요구한다. 국민의 공동선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것이 국가의 임무이다.
그리고 인류 가족의 공동선을 위하여 국제 사회의 기구가 필요하다.

- 공동선의 세 요소
* 첫째, 공동선은 인간을 인격체로 존중할 것을 전제로 한다. /둘째, 공동선은 그
공동체의 사회적 발전, 즉 정신적, 물질적 선익의 증진을 요구한다./ 셋째, 공동선은
평화 곧 올바른 질서 유지와 안전을 지향한다. * 공동선은 개인과 공동체의 정당방위의
근거가 된다.

- 권위
* 권위는 인격에 기초하여 타인을 강제하여 복종시키는 권세와 위력을 말한다. 무릇
인간 공동체가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권위가 필요하다. 만일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권위가 없다면 공동체를 유지할 질서가 잡히지도 않고 결국에는 해체되고 만다.
* 사회 정의는 공동선과 공권력 행사와 관계된다.

- 공권력
* 공권력은 국가의 단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공권력의 역할은 가능한
한 사회의 공동선을 보장하는 것이다. 공권력은 국가의 단일성을 추구하고 또한
공동선을 달성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합당한 방법들을 사용해야 비로소 정당하게
행사된다.

[ 7. 에너지와 사람의 힘 ]

< 물질의 힘 >


- 에너지
* (여러 가지 에너지) 물체가 물리학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에너지라고
말한다. 에너지는 그 형태에 따라 운동 에너지, 위치 에너지, 열에너지, 전자기 에너지,
질량 등으로 구분된다. / 전기 에너지는 물을 활용한 수력발전소, 석탄 등을 활용한
화력 발전소, 원자력을 이용한 원자력 발전소, 태양광을 이용한 태양광 발전소, 바람을
이용한 풍력 발전소, 바다의 조수를 활용한 조력(조수, 파력) 발전소가 있다.

* (물리력) 물질이나 물체의 힘이다. 물리력은 압력, 중력, 인력, 척력 등으로
구분된다. 물리력은 전력, 마력, 동력과 같이 물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뜻하기도 한다.

- 에너지 보존의 법칙
* 물이 낙하하면 위치 변동에 따른 운동에너지가 발생한다. 이 에너지는 수력 발전기를
통하여 전기가 나온다. 이 전기는 차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 전열기를 통하여
열에너지가 나오고, 전등을 통하여 빛 에너지를 발생한다.

* 여러 종류의 에너지들은 상호 교환이 가능하다. 그리고 자연과학자들은 우주에 존재
하는 모든 에너지의 총량은 변함이 없다고 하는데, 이를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 생물의 체력
* 동물이나 사람 육체의 근육이 작용하는 것을 힘(체력/육체의 힘)이라고 한다.
동물 세계에서는 힘 있는 동물이 육체의 힘으로 다른 동물을 지배한다.

< 사람의 힘 >

- 능력과 실력
* (능력) 일을 감당해 내는 힘이 능력이다. 남보다 뛰어난 재능, 예능, 체능 등은
천부적 소질이다. 탁월한 능력의 소질을 타고난 사람이 그 소질을 최대한도로 단련하여
인간의 능력 한계의 극점까지 발휘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도록 힘쓴 사람들은
성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 (실력) 개개인이 갈고 닦은 실제의 역량, 즉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을 실력이라고
한다. 실력도 능력처럼 다양하다. 학술계, 운동선수들, 사업계, 연예인들, 정치가들,
국제사회 별로 필요한 실력들 요구된다.

* (힘 있는 사람) 여러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힘 있는 사람이다. 인간 사회에서는
체력 또는 완력 이외에도 재력과 권력이 타인을 조정하여 일을 시키거나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언변, 필력, 학력이 좋은 사람은 남을 설득하는 힘이 뛰어 나다.

- 인격자의 힘
* (정신력) 사람에게는 육체의 힘뿐 아니라 정신력도 있다. 지력이 왕성하여 기억력,
판단력, 추리력, 상상력, 구상력 등이 뛰어난 사람도 있다. 의지력이 강하여 순발력,
추진력, 지구력, 조직력, 포용력 등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도 있다.

* (마음까지 움직이는 힘) 권력, 무력, 금력 등으로 타인의 육체를 지배할 수 있지만,
타인의 정신과 마음은 지배할 수 없다.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거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은 권위, 인품, 존경심, 신뢰심, 희생심, 사랑 등이다.

* (진정한 힘) 사랑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희생이 내포된 사랑은
더욱 힘이 있다. 자신의 사생활을 희생하면서까지 타인에게 사랑의 기쁨을 주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힘이 있는 사람이다.

- 사랑의 찬가

* (사랑의 우월성) 바오로 사도가 설교한 ‘사랑’ (1코린 13,1-13) “ ....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

* (사랑의 행동)“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 (사랑의 영속성) “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 평화와 전쟁 >

- 평화
* 인간 생명이 존중되고 증진되려면 평화가 필요하다. 평화는 질서의 안정이다.
평화는 정의의 업적이며 사랑의 결실이다.

- 정당방위
* 정당방위를 위한 무력 사용은 중대한 결정이므로 도덕적 정당성의 엄격한 조건들을
엄밀하게 따라야 한다. 무력을 쓰는 정당방위는 정당한 전쟁으로 인정되는 전통적
조건들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둘째, 셋째, 넷째. ...

- 군비 경쟁
* (무기 사용의 유혹), (무기 비축), (신형무기)

- 평화 유지 노력
* 개인들과 국가 간 사이에 만연된 불의와 불신에 기초한 군비 경쟁, 문화 분야에서의
교만한 우월감과 이에 대한 반감과 시기심, 경제 분야의 지나친 불공정과 불평등한
교역 관계가 평화를 위협하며 전쟁의 원인이 된다. 국제 사회에서 특히 강대국들
간에 적극적으로 군비 축소에 힘씀으로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 8. 행복한 가정 ]

< 배우자의 선택 >


- 사돈 간의 올바른 자세
* (신중해야 할 선택) 결혼 상대방에 대하여 학벌, 재산, 사회적 지위 등을 철저하게
조사하는 행위는 이기주의적 심보이다.

* (정략결혼) 비정한 정략결혼들이 결국은 처참한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 올바른 배우자 선택
혼인할 배우자는 먼 장래를 고려하면서 선택해야 한다. “결혼식은 한 시간이고, 고민은
한 평생이다.” - 속담. 결혼 생활을 희망하는 남녀는 자기 이익만 찾는 이기심을 극복
해야 한다.

* (혼인 당사자의 배우자 선택) 행복한 혼인의 첫째 기준은 이혼할 가능성이 전혀 없을
만한 배우자와 결혼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나가는 데에는 그 당사자의 성실한 노력,
꾸준한 인내, 남을 배려하는 봉사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 “배우자는 눈으로 선택하지
말고 귀로 고르라.” - 러시아 속담

* (자녀의 배우자 선택) 장성한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의 배우자를 선택할 때 그들에게서
태어날 아이들의 가정교육이 어떻게 수행될 것인지를 예측해야 한다. 가정에서의 인성
교육의 중요한 임무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 혼인 >

- 혼인은 남녀가 부부가 되는 일을 뜻한다.
*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 평등한 인격체로 결합된 부부는 서로 신뢰하고 존경해야
한다. 또한 상대방으로부터 신뢰받고 존경받을 수 있도록 처신해야 한다.

* (평생 서약) 혼인은 기한부로 맺는 동거 계약 또는 쌍방의 합의하에 취소할 수 있는
계약이 아니다. 당사자중 한편이 죽을 때까지 취소할 수 없는 평생 서약이다.

- 혼인의 목적
* (공동 운명체) 혼인은 한 쌍의 남녀가 부부가 되어 가정의 행복과 자녀의 출산 및
교육을 지향하는 공동 운명체를 이루자는 서약이다.

* (자녀의 출산과 교육) 부부는 자녀를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인
책임감으로 출산하여야 한다. 자손이 인류 발전을 위해 크게 이바지할 수 있도록 양육
하여야 한다.

* (세상의 빛) 혼인 생활의 모범을 보여 주는 부부는 세상에 기쁜 소식을 가장 웅변적
으로 증언하는 것이다. < 행복을 위한 부부의 노력 >

- 부부의 행복은 서로가 함께 노력해야만 성취할 수 있다. (실과 바늘의 비유)
- 상호 이해와 수용
* (상호 이해) 혼인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보완해서 평생 공동체인
가정의 발전을 도모하고, 두 사람의 유전자를 이어 받은 자녀를 낳아 기를 수 잇도록
보장하는 제도이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진다.” - 중국 속담

* (상호 수용) 남녀가 서로 모자라는 것을 상호 보완해서 좀 더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을
한다. 행복한 부부생활은 서로가 이기심을 버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존중하는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만 이루어 질 수 있다.

- 상호 신뢰와 존중
* (상호 신뢰) 남녀가 화목하게 부부로 살려면 우선 서로가 믿고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신의를 지키고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 부부는 서로 인격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서로가 상대방의 좋은 점을 찾아 칭찬하고, 자기 허물은 인정하고
사과한다. 부부가 서로의 자존심을 지켜줘야 한다.

* (동고동락)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서로 격려하고 배우자의 뜻을 존중하며 산다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생각이나 원의나 취미나 식성 등 모든 면에서 닮아가게 된다.
“금실이 좋은 부부는 모습까지 닮는다.” - 속담

- 부부의 대화
* (애정 표현) 남편이 아내에게 다독이는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를 외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듯이 마음이 외로우면
사랑을 먹어야 한다.

* (합리적 의견 교환) 각 사람의 성격이나 의견 차이는 우선 말로 표현된다. 부부가 서로
상대방의 뜻을 존중하고 자기의 주장을 포기하는 일은 쉽지 않으나 일단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하는 습관이 들면 쉬울 수 있다. 자기주장을 할 때 아무리 흥분되더라도 말의 품위를
지켜야 하고 음성이 날카롭지 않아야 한다.

< 부모와 자녀 >

- 자녀 출산
* (산아 제한 정책) 1960년대의 한국인 1인당 국민총생산(GNP)는 100달러 미만이었다.
그 당시 정권은 가난을 극복하려고 새마을 운동과 국민들의 호응 속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순조롭게 달성하였다. 그 당시 경제 발전을 최우선시한 정권은 가난을 극복한다는
이유로 가족계획이라는 미명 아래 임신 중절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이 비윤리적인
정책을 황금만능주의에 물든 다수의 국민들이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면서 생명존중의
의무를 저버리고, 인공유산을 자행하였다. “자녀는 둘도 많다.”는 정책 선전의 결과 오늘날
우리나라 출산율은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1.19명이 되었다.

* (한국 출산율) 우리나라 2009년 합계 출산율은 1.0명으로 밑돌 가능성이 있다. 현재
인구가 유지되려면 출산율이 2.1명은 되어야 한다고 한다. 한국인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과중한 사교육비와 보육비 부담, 임신, 육아 여성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풍조 때문
이라고 한다.

* (산부인과 병원) 우리나라에서 분만 시스템이 붕괴되면 위험률이 높은 출산을 감당할
수 있는 의사도 드물게 된다고 한다.

* (인공 낙태의 실상) 우리나라에서 지난 50년 동안 해마다 신생아 수의 두 배가 넘는
150만 건의 인공 낙태가 자행되고 있다고 추산 하고 있다. 우선 태아도 사람이다. 태아는
수태된 때부터 국법으로 분명하게 인정되고 있다. 우리나라 민법상 부친의 사망이나 실종
후 300일 이내에 출생한 유복자도 당당히 유산을 받을 권리가 있다. / (태아 살해는)
태아는 아무 죄도 있을 수 없는데 살해되고 있다. 태아의 실행 명령자가 바로 그 엄마
이다. 사람의 태아는 엄마의 배 속에서 살해된다. 무죄한 태아는 조각내어져 살해된다.

- 떨어질 수 없는 천륜
* (행복과 명예의 공유/명예와 불명예의 공유) 자녀는 자신의 부모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부모와 자녀 사이는 행복과 명예 또는 불행과 불명예를 공유할 수밖에 없다.

* (명성공한 인생) 부모와 자녀는 명예나 행복을 공유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명예와 행복을 위해서뿐 아니라 자기의 선조와 자손의 명예로운 행복을 위해서도 모범적
인생을 살아가도록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 부모와 자녀의 의무
* (부모의 의무) 자녀 출산뿐 아니라 자녀들의 윤리 교육과 영적 양육은 부모의 기본적
이고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며 의무이다. 부모는 자녀들을 자기들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 보아야 하고, 독립된 인격을 갖춘 고귀한 인간으로 존중해야 한다.

* (자녀의 의무) 자녀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애정과 효성과 신뢰로써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여야 한다. 그리고 역경과 노년의 고독에 있는 부모를 봉양함으로써 부모의
행복에 크게 이바지해야 하는 것이 자녀의 도리이다.

< 부부의 분쟁 >

- 부부 결별의 원인
* (배우자의 외도)결혼 생활을 계속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배우자의
외도이고, 그 다음이 성격 차이와 가정 폭력 등이다. 가정의 위기는 암과 비슷하다. 일찍
발견해서 부부간에 대화가 되면 문제가 해결되지만, 병이 깊어지면 치료가 힘들게 된다.

* (황혼 이혼) 결혼한 지 2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 건수가 10년 전보다 두 배나 증가
했다. 황혼 이혼을 청구하는 할머니들의 가장 흔한 하소연은 ‘남은 여생만이라도 인간
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황혼 이혼은 일시적인 감정에 의한 ‘충동 이혼’이나 ‘홧김
이혼’이 아니라 심사숙고형 이혼이다. 황혼 이혼은 대부분 여자가 청구한다.

* (가정 법원의 조정실) 이혼율이 급격히 늘어난 우리나라에서 무분별한 이혼 소송의
남용을 예방하고자 가정 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조정절차(이혼 숙려제)를
밟도록 조정실 제도를 설정(2008.6)하였다. 부부가 가정법원에 협의 이혼을 신청할
경우 자녀가 있을 때는 3개월, 없으면 1개월간 생각할 시간을 준 뒤 이혼 의사를 다시
확인받도록 하는 제도이다. 부부의 가장 큰 불행은 이혼이고, 이것이 또한 인생에 가장
큰 불행이다.

* (이혼한 부모의 자녀) 이혼하는 부모는 그들의 자녀에게 가장 큰 비극을 강요하는
지극히 무자비한 가해자이다. 또한 그 자녀는 그 비극을 피할 수도 없고 대항할 수도 없는
지극히 억울한 피해자이다. * (이혼하면 행복할까요?) 정신병적인 폭력, 습관적인 도박
등 치유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심각한 경우에는 별거하는 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이혼한 사람 대부분이 후회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 행복한 가정
* 엄마 품에 안겨서 젖을 먹는 아이,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서로 격려하는 부모의 슬하
에서 자라나는 아이들, 어떠한 경우라도 부모의 속을 썩이지 않는 자녀를 둔 부모, 가족이
잠시만이라도 모여 진솔한 대화를 하는 습관이 있는 집, 자녀들이 성장하여 사회에 공헌
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람, 귀여운 손자 손녀들이 훌륭한 인물들로 성장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노부부,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백년해로하면서
후회 없는 삶을 마칠 수 있는 부부는 행복하다.

[ 9. 생명의 터전인 가정 ]

< 행복한 아기 >


- 모유 수유의 행복
* (초유의 우수성) 제 몸의 젖으로 새끼를 먹이며 기르는 동물을 포유동물이라고 한다.
초유는 동물이 새끼를 낳은 후 수일간 만 나오는 젖이다. 사람도 포유동물이다. 아기
엄마가 분만 후 며칠간 분비되는 초유(初乳)는 아기의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단백질,
무기질, 비타민, 면역 물질을 완벽하게 함유하고 있다. 1960년 이전까지는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모두 초유를 먹었으나 주변 여건이 모유 수유에 합당하지 않아서
신생아가 초유를 먹을 수 있는 확률이 매우 낫다. 현 시대에 엄마의 초유를 먹는 아기는
인생의 시작부터 축복받은 아기이다.

* (사라의 행복) 엄마의 젖은 생명을 전달해 주는 하얀 피이다. 엄마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이었는데 천사의
예고에 따라 9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사악을 낳았다. 사라는 너무 감격하여 주님을
찬미하였다.

* (엄마와 아기의 행복) 아기는 엄마의 심장 박동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어서 행복한
표정으로 엄마의 젖을 먹는다. 아기는 엄마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을 때 가장 행복하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가 엄마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한다.

- 모유와 우유
* (젖동냥) 우리나라에서는 1961년에 처음으로 우유를 생산하여 판매하는 공장이
생겼다. 엄마 젖이 부족해서 젖배를 곯는 아기를 둔 집식구는 젖먹이가 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젖동냥을 해서 아기를 살려 냈다.

* (분유 선호 풍조) 1950년 한국 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서구 문명이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에도 우유를 먹는 관습이 생기기 시작했다. 분유 수입회사는 산모의 미모
유지에도 필수적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그리고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은 아기
에게 젖을 먹일 여건이 좋지 않아 분유를 먹일 수밖에 없는 사회 풍토가 되었다. 다행
스럽게도 최근에 모유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모유를 먹이는 엄마들이 늘어나고 있어
고무적이다. 엄마의 젖은 아기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창조해 주신 완전식품이다.

< 아기의 인성교육 >

- 인생의 첫 스승
* (아기의 말 배움) 젖을 떼면서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기는 엄마에게 “이게 뭐야?”
하고 묻는다. 그리고 여러 날 동안 똑같은 질문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말을 배운다.

* (세 살 때 버릇) 아기는 태어나서 2년 이내에 뇌의 기틀이 형성되고, 3년 이내에
미래의 인품이 형성된다고 한다. 조급한 성격이나 신중한 성격, 그리고 품위 있는
인격이나 고상한 성품이 세 살 이내에 형성된다고 한다. 사람의 됨됨이는 세 살 때
벌써 그 기본 틀이 형성된다는 것이 진실로 입증되는 경우가 흔하다.

- 아기의 지성 교육
* (철이 든 아이) 아기가 엄마에게 “왜?”라고 묻기 시작하면 그 아이가 철이 들기
시작하여 기초 수준의 분별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표시이다. “왜?”라고 묻는 아기의
질문에 대하여 부모가 그러한 현상이 있게 된 원인과 그에 수반하는 결과 등에 관하여
충분히 반복해서 설명해 주면 그 아기의 전인 교육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 (부모의 잔소리)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의 자제력, 자발적 계획
수립, 독자적 판단력, 능동적 실천력 등 성숙한 의지력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잔소리 보다는 격려해 주고 칭찬하는 말을 자주 해야 한다.

- 아기의 덕성 교육
* (버릇을 익히는 시기) 아이는 부모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 부모가 먼저 잘하는
행동과 잘못하는 행동을 구별하도록 차분하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

* (인정받기 위해 사는 인생) 사람은 인정받기 위해서 산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칭찬받기를 원하는 것이 인생이다. 상대방을 이해하여야 용서할 수 있게 된다. 부부간
부모와 자녀 간에서도 이해하여야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하여야 포용할 수 있으며
칭찬할 수 있다. 사람은 부모, 형제자매, 이웃들과 민족과 국가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해서 산다.

< 대안 학교 >

- 대안 학교의 설립 과정
* (대안학교의 필요성) 정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따로 모아서 수업하는
대안 학교 제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 (주민의 반대) 대안학교의 설립에 반대하는
그 지역 내의 사람들이 시위가 있다. 이유는 “학교에서 퇴학당한 불량 학생들이 이
고장에 와서 자녀(손자, 손녀)들에게 피해를 입히면 누가 책임지겠느냐?”는 것이다.

- 불량 학생의 가정
* (부모의 편에서) 불량 학생들은 가난하거나 가정환경이 안 좋은 아이들일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하게 되는데 뜻밖에도 그들의 부모들은 절대 다수가 교수, 의사, 변호사,
목사 등 고등교육을 받은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 (자녀의 편에서) 지능이 뛰어난 그 학생들의 이상야릇한 태도에서 부모에 대한
극도의 반항심을 교활하게 위장하고 있는 것이 역력히 보였다./ 그 학생들의 자기들이
이렇게 반항적인 아이로 자란 이유가 바로 부모의 이중인격 때문이고, 따라서 그
권위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부모의 위상 >

- 나약한 아버지
* 부성(父性)의 기원은 일부일처와 가부장 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농경 사회의
가부장 제도가 산업화 사회로 되면서 무너졌다. 즉 아버지는 가정의 최고 권위자, 자녀의
교육자의 자리에서 밀려나고, 점차 가족의 생계만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추락했다.
아버지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는 부성상을 찾아내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 부모 코칭
* (부모의 본인 파악) 전문가들은 부모 코칭의 출발을 부모 스스로 자신을 파악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한다. 자신이 어떤 부모인지부터 알아야 대안을 세울 수 있다는 뜻이다.
자녀와의 갈등은 부모가 자신의 성격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 (자녀 코칭 요령) 전문가들은 요즘 부모들이 자주 하는 실수로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자녀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답을 제시’한다. 둘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방임내지는 방치’한다. 셋째, ‘조급하게 어떤 것도 기다려 주지 못해서’
자녀 교육을 망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해결 방법으로 코칭 대화법, 코칭 훈육법,
학습 코칭 등을 제시한다. 코칭 대화란, 자녀의 감정을 잘 끌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대화하는 것이다. 코칭 훈육법은 자녀의 자존심을 키워 주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학습 코칭은 동기 유발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누구에게나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부모와 자녀들이 믿고 자신감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10. 찬란한 황혼을 바라보며 ]

< 쓸쓸한 노년 >


- 해로하는 부부
* 평생토록 고락을 함께 해온 노인 부부이다.

- 노인의 수넴 처녀
* (다윗과 수넴 처녀), (노인의 수발을 든 처녀), (눈먼 딸의 간호)....

- 간병인과 호스피스
* 오늘날에는 노인 부부가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에, 그 환자를 돌볼만한 가족이 없게
되었다. 가족 대신에 병자를 간호하는 간병인이 필요하다. 호스피스는 삶의 마지막
여생을 보내는 환자들의 고통을 함께하고 신체적, 정서적, 영적으로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과 안락을 최대한 베푸는 봉사활동을 말한다.

< 죽음의 수용 단계 >

- 일반적으로 암에 걸렸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으면 대개 거부, 분노, 타협, 절망,
수용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거부) “나는 암에 걸릴 리가 없다.” - (분노)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암에 걸려?”- (타협) “설마 나는 아니겠지?” - (절망)
우울증에 빠짐 – (수용) 마지막으로 현실을 수용함.

- 암 환자의 깨달음
* (현실 거부) 꿈에도 예상치 않았던 불행이 갑자기 닥치면 누구든지 본능적으로 충격과
공포, 분노심을 먼저 느낀다. 우선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정함으로써 일시적으로나마 마음의
평화를 되찾으려 한다. * (삶에 대한 애착) 삶에 대한 애착이 새삼스럽게 솟구친다.

* (죽음의 수용) 하루 이틀 잠을 설치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한다. 차근차근
심사숙고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시작된다.

- 바로 나의 죽음
*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것이 죽음이고, 가장 불확실한 것이 죽음의 때이다.” - 속담.
언제 죽더라도 품위 있게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준비를 하면서 사는 사람이 정말로 지혜
로운 사람이다. / 수년 동안 파킨슨병에 걸리셨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선종
하시기 직전에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라고 말씀하셨다. 노환으로
입원하셨던 김수환 추기경님의 마지막 말씀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였다.
죽음 앞에서 그런 말을 하려면 삶을 제대로 살아야 한다.

-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1950년부터 1953년까지 37개월 동안 치러진 한국전쟁 중에서)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자기의 인생이 덤으로 주어진 것으로 여기며 살게 된 청년이 적지 않았다. 그 후
60년이 지나는 동안 하루하루를 자기 인생의 마지막 날로 여기고 시간을 아껴 가며
산 사람도 있다.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는 죽음을 늘 의식하고
준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깨달은 것이다.

< 죽음의 준비 교육 >

- 사람의 앞모습과 뒷모습
* 삶과 죽음은 인생의 양면입니다. 삶이 몸의 앞면이라면 죽은 뒷면이다. 사람의 앞면은
꾸밀 수 있으나 사람의 뒷면은 꾸밀 수 없다. 자기의 눈으로는 바르게 볼 수 없는 뒷모습은
오로지 타인만이 볼 수 있다. 뒷모습이 어여쁜 사람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훌륭히 살면 영원히 산다.”, “훌륭한 죽음은 전 생애를 명예롭게 한다.” - 영어 속담/
사람은 죽은 다음에야 그 사람의 참모습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죽은 후 오랜 세월이
흘러서도 그 사람을 기억하고 평가가 지속되는 경우에만 그 사람이 위인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덕망은 장례식 다음에 향기가 난다.”, “덕행은 장례 후에도 살아 있다.” - 라틴어 속담

* 가톨릭교회에서는 죽은 지 5년이 지난 다음에도 그의 생애에 대해 사람들의 칭송이
계속되는 사람이라야 신앙인의 모범으로 공경할 수 있다고 교황이 선언하는 시복(諡福)
절차를 제기할 수 있다.

- 죽음 준비가 삶의 준비
* 죽음은 나이순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늘 남의 일처럼만 여겨지는 사고와 중병이
언제든 나의 일이 될 수 있다. 호스피스 봉사자들은 “제대로 산 사람만이 잘 죽을 수
있다.”고 말한다.

- 유서 작성
* 유서에는 죽는 자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마지막 말이 담긴다. 따라서 자기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작성하는 유서에는 본인의 삶에 대한 자세, 믿음이나 이념, 후손에게 주는
교훈, 유산 분배 등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유서 앞에서 사람은 겸허해지고 맑아진다.
미리 유서를 작성해 보면 평소에 깨닫지 못하고 살던, 여러 가지 면에서 반성할 점이
뚜렷이 눈에 보이게 된다. /부모에게 쓰는 유서/배우자에게 쓰는 유서/ 자녀에게 쓰는
유서/ 공동체에게 쓰는 유서.

- 장기 기증
* (장기 기증과 조직 기증) 사망 후 영혼과 분리되어 소멸될 자기 신체의 한 부분을
타인에게 기증한다는 것은 매우 숭고한 자선 행위이다. 장기 기증은 고상한 사랑의
실천인 동시에 자기의 삶을 연장시킨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장기는 뇌사의 경우에만
기증할 수 있다고 한다. 일반 사망의 경우에는 혈액공급이 중단되기 때문에 장기는
다른 사람에게 이식할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조직은 사망한 후 최대 여덟 시간 이내에는
타인에게 이식할 수 있다고 한다.

* (크나큰 사랑의 표현) 김수환 추기경님은 선종 전에 서약했던 대로 사후에 각막을
기증하셨다. 일반 사망에서 흔히 기증되는 조직이 각막이다. 천주교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는
‘사후 각막을 기증하고 뇌사 시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서약서를 접수하고 있다.
“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 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 김수환 추기경 선종 >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김 추기경님의 마지막 말씀은 유명인의 유언이라기보다는
너무 평범하다 하겠지만 곱씹어 볼수록 많은 뜻을 남겨 주신 말씀이다. 가장 평범하면서도
인간 삶에 가장 핵심적인 말씀을 남겨 주신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남기신 사랑과
감사의 메시지를 우리 사회 전체에 아름답게 펼쳐지기를 기원해 본다.

- end.



 

금주의 독서 메모 016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1.01.17.

[ 50가지 성탄 축제 이야기 ]

- 안셀름 그륀 지음, 서명옥 옮김/ 208p
- 50가지 성탄 축제 이야기/명상록 모음
- 지은이 프로필 : 1945년 독일에서 출생, 성베네딕도회 뮌스터 슈바르작 수도원
소속 신부, 영성가, 수많은 영성 강좌, 강연, 저술을 통해 혼란과 피폐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가을 햇살 같은 따스함을 선물하는 사람.

[ 책 표지의 글에서 ]
거룩한 시작에 대한 갈망은 대림의 영적 의미이며 새로운 출발은 성탄절의
본질적 정서다. 우리를 구속하는 옛것은 사라지고 삶의 상흔들도 우리를
어쩌지 못한다. 마구간, 동방박사, 크리스마스 트리, 별, 꿈 등, 성탄과 함께
떠 오르는 50가지 주제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가슴 저미는 향수와
유년의 추억들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른다. 성탄 축제의 오랜 상징들과
그 현대적 의미를 심층심리학적 방법으로 쉽고 재미있게 풀어 주는
안셀름 그륀의 보석 같은 명상록이다.



[ 01. 대림 – 다다름 ]

- 대림은 ‘다다름’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다다르기를’ 기다린다.
2000년 전, 탄생을 통해 예수가 오셨고, 오늘 우리 내면에 그리스도가 오시고,
세말의 영광 속에 그분이 오실 것이다. 우리는 대림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도착하심을, 우리 마음에 다다르심을 축하한다.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신다는 것을, 그분이 우리 가슴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대림시기는 그대가 자신에게 다가가도록, 그럼으로써 매 순간, 그리고
그대의 시간이 끝나고 그리스도께서 영광 속에 오실 세말에도, 그리스도께서
그대에게 오실 수 있도록 초대한다. 그러면 그대는 영원히 그분과 함께
그대 자신에 머무르면서, 그대가 추구하는 목표에 이르게 된다.

[ 02. 기다림 ]

- 기다림은 늘 대림시기에 요구되는 덕목이다. 기다림은 가벼운 흥분을 동반한
긴장을 야기한다.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강한 자아를 발전시키지 못한다.

- 대림시기는 기다림을 통해 그대 마음이 넓어지고, 기다려진 사람으로서 그대가
다시 일어서도록 인도한다. 그대는 귀중한 존재다. 많은 이들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대가 진실하게 살도록 하느님께서 그대를 기다리고 계신다.

[ 03. 그리움 ]

- 대림절은 그리움의 시기다. 그리움은 대체로 사랑과, 그리움으로 넓어지는
마음과 관련이 있다. 인간의 본성은 하느님을 그리워하게 되어 있다. 그리움은
중세인 들에게 높은 고딕식 건물을 짓게 했다. 이런 건축 양식은 그리움의
산물이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이다. 모든 예술은 전에 없던 것, 온전히 다른
것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다.

- 그리움은 우리의 편협한 세계를 열어젖힌다. 우리 위로 지평을 열어 둔다.
그리움에 접할 때 그대 마음은 넓어 질 것이다. 비록 그대를 둘러싼 모든 것이
답답해도 그대는 자유를 느낄 것이다. 그리움은 삶을 넓히며, 그대를 생명의
샘가로 인도할 것이다.

[ 04. 깨어 있음 ]

- 대림은 깨어남이다. 하느님의 오심은 잠에서 깼을 때, 삶의 환상들을 버릴 때
감지된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잠에서 깨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음’을 삶의
기본자세로 삼는 것이다. 깨어 있는 사람은 매 순간을 의식적으로 체험하며,
온전히 현재를 살고, 생기에 넘친다.

- 대림시기에는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 슬기로운 처녀나 충실한 종처럼
깨어 있어라는 성서의 권유를 자주 듣는다. 주님께서는 소문 없이 오시므로
우리는 밤에도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서 매 시간 그분이 오신다 생각하고 있을
때만 그분을 집으로 모실 수가 있다. 깨어 있을 때 비로소 우리 마음을 사로
잡으시려는 하느님의 신비에 민감해진다.

[ 05. 이슬 ]

- 보이지도 않고 알아 챌 수도 없이, 이슬은 밤중에 메마른 농토위에 내린다.
따뜻한 아침 햇살을 머금은 이슬방울은 마치 귀한 진주 같다. 그리스인들에게
이슬은 사랑의 상징이며, 페르시아인 들에게는 처녀의 상징이다. 사랑의 이슬은
황량하고 메마른 가슴을 비옥하게 한다.

- 낮의 열기가 삶을 메마르게 한다면, 밤에는 만물을 새롭게 하는 하느님의
이슬이 내려 우리를 청량하게 만든다. 그 이슬은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을
일깨운다. “저녁에 눈물 흘려도, 아침이면 기쁘리라.” (시편30,6) 이슬은
영혼에서 지난날의 근심을 씻어내고 새것처럼 보이게 한다. 하늘이 이슬을 통해
의인을 비처럼 내려주시면, 그대 또한 바르고 의롭게 살 수 있다. 정직하고
올곧게. 그러면 그대 마음은 하느님 사랑의 이슬로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될 것이다.

[ 06. 사막 ]

- 대림은 사막에서 우리가 마실 샘을 발견할 것을 약속한다. 그 샘은 우리의
사막을 비옥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사막은 공허와 무의미와 유혹과 시련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야훼와 당신 민족 사이의 첫사랑의 장소이기도 하다.
사막은 하느님을 체험하고 만나는 곳이다. 사막에서 하느님은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신다.

- 그대 또한 대림시기에 사막으로 들어갈 용기를 내기를, 그리고 하느님이
그대 가까이 계심을, 그분께서 그대를 당신 손에 받쳐 들고 계심을, 천사의
인도로 사막을 통과하기를, 그대와 하나 되어 그대 안에 사시고자 그대를
기다리고 계신 하느님을 그대의 사막 한복판에서 체험하기를.

[ 07. 단식 ]

- 단식은 광야에 잘 어울린다. 모세는 광야에서 40일을 단식했다.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하느님을 체험하기까지 40일을 먹지 않고 광야를 헤맸다. 예수도
광야에서 단식하셨다. 단식은 광야 체험을 돕는다. 중세 수도원에서의 대림
시기는 제2의 사순시기 같았다. 사람들은 단식으로 주님의 오심을 준비했다.
단식은 영혼과 육신을 정화한다.

- 단식은 문제를 혼자 해결하지 못하겠다는 무력감의 표현이다. 무력감을
느낄 때는 나 자신을 하느님께 맡김으로써 평정과 자유를 체험한다. 대림시기
동안 하루쯤 의식적으로 누군가를 위해 단식해 보라. 단식 중에 그대는 그와
하나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08. 바르바라 가지 – 겨울 꽃 ]

- 여러 지방에서 성녀 바르바라 축일(12.4)에 벚나무 가지를 잘라 꽃병에
꽂아 두는 풍습이 있다. 성탄절이 되면 그 가지가 꽃을 피운다. 바르바라
가지는 바로 겨울의 한복판에서도 새 생명이 꽃피게 되리라는 희망을 공고히
한다.
- 그녀는 임종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성작과 함께 그려진다. 우리 그리스도인
들에게 바르바라 가지는 겨울 추위 속에서 새 생명을 꽃피운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언제나 풍요롭다는
희망의 상징이다.

[ 09. 니콜라오 ]

- 니콜라오 축일(12.6)은 어린이 축제다. 그는 러시아에서 마리아와 더불어
가장 공경 받는 성인이다. 니콜라오는 어려운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남몰래
도와주는 자애로운 아버지 상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으로 통한다.

- 니콜라오는 그대의 부성적인 면과 모성적인 면을 고루 발휘할 수 있는
용기를 줄 것이다. 그대 안에는 든든한 후원자로서 삶에 용기를 심어주는
원형적 아버지 상이 있다. 또한 다른 이들에게 안전과 고향을 제공하고,
그들을 양육하며 상처를 치유하는 어머니 상도 있다. 니콜라오 축일에 과자를
선물하는 관습은 대단히 뜻이 깊다.

[ 10.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

- 대림시기 중간 즈음 가톨릭교회는 성탄의 중요한 일면이 드러나는 축일을
지낸다. 이 축일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 대축일(12.8)이다.

- 독일 몇몇 가톨릭 지방의 마리아 상 순회 풍습이 최근 많은 교구에서 새롭게
활기를 띠고 있다. 마리아 상이 어느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모셔질 때 두 가정은
소박한 전례를 치른다. 하루 동안 그 집 상석에 모셔지는 마리아 상은 우리
모두가 마리아로서 대림절 그날에 하느님의 말씀을 잉태했음을 일깨워준다.
마리아 상 순회의 풍습이 우리의 모듬살이를 힘겹게 하는 혼탁을 정화하고,
우리 모두 안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나신다는 희망을 굳건히 하기를!

[ 11. 대림환 ]

- 화환은 고대에도 승리와 명예의 표지로 인식되었다. 대림환은 주님에 대한
경의의 표지다. 대림환은 네 개의 초로 만들어 진다. 네 번의 주일마다 하나씩
초에 불을 붙여 나갈 때마다 성탄의 기대도 커졌다. 4라는 상징수는 정방형,
즉 모든 정돈된 것의 총체다. 둥근 화환 위에 켜진 4개의 초는 대립의 통일을
의미한다. 원과 정방형이 하나가 된다.

- 성서는 4를 거룩한 수로 이해한다. 낙원에는 4개의 강이 발원하고, 각각
네 상징을 가진 네 복음사가가 있다. 하느님의 이름 ‘야훼’도 4개의 철자(히브리어)로
기록된다. 4는 변화를 예비하는 수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40년을 광야에서 떠돌아야 했다. 예수께서는 40일을 단식하셨다.
성탄을 준비하는 4주간은 변화를 기다리는 시간을 상징한다. 대림절 매 토요일에
조촐한 예식을 갖추고 그대의 대림환에 촛불을 켜는 것도 뜻 깊은 일이다.

[ 12. 촛불 ]

- 대림시기에 우리는 즐겨 촛불을 켠다. 불빛 속에서 안식을 얻기 위함이다.
초에는 두 요소가 있다. 첫째 요소는 불꽃이다. 이는 하늘로 오르기 때문에
정신적인 것을 상징한다. 촛불은 우리의 기도를 상징한다. 성지 순례자들이
제대나 마리아 상 앞에 촛불을 밝히는 관습은 널리 애호되고 있다. 이는 초가
타는 동안 기도가 계속된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 둘째 요소는 타서 없어지는 밀랍이다. 초기 교회에서는 초가 하느님이면서
동시에 사람인 그리스도의 상징이었다. 밀랍은 사랑으로 우리 위해 몸 바치신
그분의 인성을, 그리고 불꽃은 그분의 신성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림,
성탄초를 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 육화의 신비를 기억한다.

[ 13. 밤 – 성탄전야 ]

- 예부터 밤은 두려운 존재였다. 밤이 주는 이미지와 위협의 공포를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편안한 밤의 예식’이 필요하다. 밤은 왠지 위험하고 위협적인
것이어서, 예부터 사람들은 밤을 거룩한 것으로 변화시키려 했다. 그리스도께서
무덤의 어둠을 이겨내셨으므로 부활절은 밤에 기려졌다. 또 성탄이란 이름은
‘축성된 밤’에서 비롯되었다.

- ‘축성한 밤’의 상징은 악마의 밤을 두려워 한 게르만인 들에게 내려진 해방과
치유의 대답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밤을 변화시켰다. 빛이신 그분께서
밤을 영원히 밝히신 것이다. 깨인 의식으로 성탄의 빛을 그대의 우울한 밤,
무의미의 밤, 불면의 밤에 간직하라. 그대의 밤도 성탄이, 축성된 밤이, 거룩한
밤이 된다고 상상하라.

[ 14. 위로 ]

- 대림절에는 위로의 말을 자주 듣는다. 위로(Trost)는 신의(Treue)에서 나왔는데,
내면의 견고성을 의미한다. 하느님께서 날 위로하시면, 나는 살 자신을 얻고,
그러면 내 있는 곳은 아늑한 곳, 신뢰의 장소, 집처럼 있을 곳이 된다. 위로는
힘을 잃은 내게 발판을 제공한다. 다시금 힘과 의연함을, 내가 설 견고한 땅을 준다.

- 대림시기는 그대가 결코 혼자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린다. 그대의 어둠 속에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비추시는 빛으로 들어오신다. 그대의 고독 속에 하느님께서는
그대와 함께 있고 함께 느끼며, 그대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위로자로 오신다.
그대의 고독이 하느님 가까이에서 변화되었음으로, 슬픔의 장소가 아늑해지고,
그대 고향 같은 위로의 장소가 된 것이다.

[ 15. 고요 ]

- 대림은 고요의 시기다. 내 마음은 하느님을 그리워한다. 하느님 안에서만 정말로
편안해진다. 하느님을 기다리며 바라보기 위하여 대림시기에는 고요의 시간을
즐기라. 대림시기뿐 아니라 성탄절에도 고요가 필요하다. 고요 속에서만 하느님이
내 안에 탄생하실 수 있음을 아는 까닭이다. 하느님은 내 마음이 고요해졌을 때만
내려오신다. 하느님의 탄생은 침묵의 내밀한 공간에서 일어난다.

- 침묵은 내 안에서 하느님을 느끼는 전제조건이다. 침묵할 때 나는 나 자신의
심연으로 내려간다. 이 심연에 이르는 길은, 나의 어두운 밤, 불안과 고독의 밤을
통과한다. 이때 나는 왕좌를 떠난다. 그곳은 내가 확실하게 통치했고 내 삶을
좌지우지 결정한 자리였다. 그리고 영혼의 저 밑바닥까지 나를 굽힌다. 내 안의
하느님은 거기서만 태어나실 수 있기 때문이다.

[ 16. 탄생 ]

- 성탄절에는 하늘 아기의 탄생과 더불어 우리 자신의 탄생도 축하한다. 우리는
예수의 탄생에서 우리 자신의 출생 과정도 기린다. 새로 태어나지 않고는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고,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없으며, 우리 본질에 이를 수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다스리시며, 우리가 사람의 권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져 전적으로 우리 자신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새로 태어남은
우리의 영적 과정에서 늘 필요하다.

- 성탄절에 우리는 예수의 탄생을 통해 하느님이 우리 마음 안에도 탄생하심을
기뻐한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태어나시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과 낯설어진다.
하느님의 그대 안에 태어나시면, 그대는 참된 자아, 왜곡되지 않은 하느님의
모상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대의 삶은 진실로 온전하고 새롭게 빛날
것이며, 몇 번이고 새로 길어낼 수 있는 생명수가 그대 안에 샘솟으리라.

[ 17. 아기 ]

- 성탄절에 하느님은 아기로 이 세상에 오셨다. 한 여인의 모태에서 약하고
의지할 데 없는 아기로 태어나셨다. 아기에게는 요란스럽지 않게 살며시 다가
가야 한다. 그대, 하느님에 대해서 큰 소리로 말하지 말고 아이에게처럼 아주
부드럽고 낮은 소리로 말하라. 아이에게는 유식한 대화가 필요 없다.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면 족하다. 이렇듯 하느님께 마음을 열기만 하면,
그대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 “오늘 하느님께서 내 안에 아기로 태어나셨으니 나는 새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 레오 교황. 너무 늦은 시작은 절대로 없다. 성탄은 그대에게
과거의 짐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신 있게 새로 시작할 용기를 준다.

[ 18. 사람 되심 ]

- 성탄절에는 하느님의 사람 되심을 기린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인간이
하느님처럼 되려는 욕망을 접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인간의 신격화는
신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하늘이 내려 새겨진 델피
(아폴로의 신탁으로 유명한 그리스의 옛도시)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라는
이 경구는 교부들과 초기 수도승들에게 사람됨의 결정적인 조건이었다.

- 나를 사랑함으로써,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을 사랑한다.
자신을 거부하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저항이다. 그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 생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만 그대는 하느님이
생각하신 그대 모습대로, 그대를 부르신 목적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

[ 19. 육화 ]

- 하느님은 사람이 되시면서 육신을 취하셨다. 말씀(로고스)이 육신이 되신 것은
하나의 신비다. 교부들은 이를 ‘조개 속에 자라는 진주’라는 상징으로 표현했다.
마리아는 신성한 진주 예수그리스도에게 육신을 입힌 조개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시고..” 라는 사도신경의 구절은 의미심장하다.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육신을
취하셨다. 우리는 영원한 말씀이 영을 통해 육신이 되셨음을 고백한다. 영에서
육으로의 이행이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신비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사람됨의 신비이기도 하다.

- 하느님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육신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 얼굴에서
하느님의 모습이 빛날 수 있다. 하느님이 그대 육신을 변화시키시면 육신은
하느님의 빛을 세상에 되비추는 진주가 되리라. 그때 그대는 어느 교부의 말처럼
“귀한 하늘의 진주, 형언할 수 없는 빛이신 주님”을 몸속에 지니게 된다.

[ 20. 마구간 ]

- 그리스도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 마구간에는 두엄과 오물, 짚과 건초가
범벅이 되어 있다. 몇 번씩이나 청소를 해도, 금세 거름이 쌓인다. 거름은 비료로
쓰인다. 이는 우리 내면을 상징한다. 우리 마음 역시 순수하지도 깨끗하지도
무균질도 아니다. 거기는 오물 투성이다. 예수의 탄생으로 마구간에는 빛이
가득하다. 만물을 드러내는 빛이 아니라 그냥 있는 대로 있게 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이다. 하늘 아기 곁에서는 그대 안의 모든 것이 허용된다. 더럽고
버려지고 짓밟히고 비루한 것도 거기서는 초라하지 않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얻고, 그분의 사랑에 의해 변화될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 그대 마음의 어둠과 혼돈 속으로 들어오심으로써 그대안의
모든 것이 변화된다는 것, 바로 그것이 마구간이 주는 위로다. 아기가 바라는
것은 포근한 잠자리지 절대 무균의 침대보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 생긴
모습 그대로가 바로 그리스도의 집일 수 있다는 것을, 그분이 그대와 세상을
위해 태어나실 마구간임을 믿어라.

[ 21. 동굴 ]

- 동방교회의 미술에서는 바위 동굴이 탄생 장면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미
사도 시대에 베들레헴에는 탄생 동굴이 있었다. 성서 외경은 예수가 동굴에서
태어나셨다고 전한다. 동굴은 어머니의 모태를 상징한다. 동굴은 악령이 사는
위험한 장소였다. 빛이신 그리스도가 이 동굴에 오시면, 동굴은 영원한 축복의
샘이 솟는 장소로 변화된다.

- 대개의 성모 성지는 바위동굴(인공)로 되어 있다. 프랑스 루르드 순례자들은
벨라뎃다가 성모를 보았다는 그 동굴에서 물을 긷는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부권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리아와 거룩한 동굴을 통해 모권에 대한 갈망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동굴에서 태어난 그리스도는 모권 숭배 전통이 예지했던
바를 실현하신다.

[ 22. 구유 ]

- 베들레헴에서는 동굴 위에다 집을 세웠다. 동굴은 마구간으로 쓰였는데,
그 안에 바위를 깎아 함지(바가지)와 구유(먹이 그릇)를 만들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예술가들은 구유를 매우 다양한 형태로 표현했다. 동방에서는 관(棺) 모양의
돌구유가 흔하다. 비잔틴 예술이나 서방에서는 제대형 구유가 있다. 이는 성체
성사를 뜻한다. 베들레헴은 “빵의 집‘이라는 뜻이다. 중세의 구유는 대부분 나무
구유였다. 중세 이래 사람들은 구유를 예쁘게 꾸미고 있다.

- 온 세계가 아기에 경배하기 위하여 구유를 순례한다. 이러한 ‘구유신심’의 기원은
1223년 성 프란치스코가 그레치오의 숲에서 동료 수사들과 신자들과 함께 지냈던
성탄 구유축제에서 비롯되었지만, 도미니코회 수녀원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 있던
‘아기 흔들어 재우기’ 풍습에서 유래되기도 했다.

[ 23. 소와 나귀 ]

- 루가 복음서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예수의 탄생을 묘사하는 곳에는 꼭 소와
나귀가 존재한다. 소는 유대인들의 멍에처럼 묶여 있는 율법을, 나귀는 우상숭배의
짐을 지고 다니는 이교도를 상징한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멍에와 짐에서 해방시킨
하늘 아기가 바로 소와 나귀 사이에 누워있다. 전설은 소와 나귀가 아기의 언 몸을
입김으로 녹였다고 전한다. 소와 나귀가 입김으로 하늘 아기를 따뜻하게 한다는
것은 인간 내면의 자연적, 본능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을 덥히고 키울 수 있다는 것,
생명력이 없는 정신력은 차갑게 경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고집스레 앞만 멍하니 응시하는 소, 짐에 못 이겨 쓰러지는 나귀는 삶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우리는 고집스레 앞만 보고 제 갈 길을 간다. 그리고 한정
없이 자신에게 과중한 짐을 지우고 있다. 이런 율법신앙 속으로 아기 그리스도가
태어난다. 아기는 법을 모른다. 자연발생적인 사랑으로 모든 법칙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아기는 우상숭배의 무거운 짐을 느끼지 않는다. 사랑의 자발성과 존재의 가벼움.
성탄은 바로 이 두 가지를 선물한다.

[ 24. 객사 ]

- 마리아는 예수를 구유에 뉘었다. “방에는 들어 갈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루가2,7).
객사(客舍)는 전장의 군대가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되어 안전하게 숙영할 수 있는
장소를 말한다. 객사는 숨어 안전하게 머물면서, 제집처럼 있을 수 있는 곳이다.
외지인들의 보호처이며 여행자들의 숙소다. 우리는 마리아와 이방의 길 위에 있다.
언제까지나 여기 머무를 수는 없는 순례자들이다. 모든 객사는 일시적인 고향일 뿐,
결코 영원한 고향이 아니다. 하느님이 영원한 거처로 우리를 맞아들이실 때라야
비로소 집다운 집에 드는 것이다.

- 성탄시기에 그대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누구일지 떠오르는가. 어떤 식으로
그들에게 쉴 곳을 내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묵을 곳을
마련해 줄 것인지에 대한 묘안은 다름 아닌 그대 마음속 객사의 모습에 달려 있다.

[ 25. 마리아 ]

- 성탄 이야기의 중심에 마리아가 있다. 마리아에 관한 진술에는 모두 다섯 개의
동사가 쓰인다. 말하자면 그녀는 낳았고, 감쌌고, 뉘었고, 마음에 새겼고, 곰곰이
생각했다. 아기를 낳았으므로 마리아는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생명을 낳는다.
그녀가 낳은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로고스)이자 영이다. 마리아는 아기를 감싼다.
아기를 돌보는 것이다. 그녀는 아기에게 온기를 주어 이 세상 추위로부터 지켜주는
어머니이다. 마리아는 아기를 구유에 눕힌다. 마리아는 아기에게 편안한 자리를
마련한다. 마리아는 해산 후 이 모든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것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다고 되어 있다.

- 화가들은 성탄화를 그릴 때 마리아와 아기를 언제나 중심에 배치했다. 마리아는
아기를 품에 안고 있거나 사랑스럽게 입을 맞추고 있다. 이콘에서는 마리아가
예수에게서 눈을 돌려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다. 중세 그림에는 더러 마리아가
구유나 바닥에 누운 아기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경배하고 있다. 루가가 다섯 동사로
표현한 것을 화가들은 이런 그림으로 표현한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강생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를 마리아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 26. 요셉 ]

- 요셉은 6세기 이후에나 성탄화에 등장하는데, 중세 후기의 성탄화에는 자주
등장한다. 요셉은 가장으로서 목욕물을 데우고 불을 지피고 밥을 짓는다. 흔히
그는 신발을 벗고 있다. 요셉의 바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림들이 많다. 그는
바지를 벗는 중이거나 이미 벗은 상태이다. 아기 예수의 벗은 몸을 덮어 주려는
것이다. 성서에서는 특히 마태오가 요셉을 자세히 그린다. 루가에게 마리아가
탄생 이야기의 중심이라면, 마태오는 요셉의 눈으로 탄생을 본다. 마태오
복음서에는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거듭 꿈과 더불어 서술된다. 꿈속의 천사는
그때그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요셉에게 설명하고, 행동 방침을 구체적으로
지시한다.

- 하느님이 우리 안에 태어나시려면 우리에게는 마리아의 모성뿐 아니라 그녀의
믿음이 필요하다. 아기와 어머니를 지키는 요셉도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 행동력과
규율과 순종으로, 마리아가 아기를 품에 안을 공간을 지키는 남성성이 필요하다.
우리 안에 하늘 아기를 낳아줄 어머니의 모태는, 위험에서 지켜줄 남성의 힘을
필요로 한다.

[ 27. 목자 ]

- 목자는 메시아 탄생의 첫 증인이다. 목자의 이미지는 부정과 긍정의 시각이
있다. 랍비 문헌에는 사기꾼 혐의나 경멸스런 목자로 아주 부정적으로 나와 있다.
유대와 그리스 전통에는 목자에 대한 긍정적인 상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선조들은
목자였다. 모세와 다윗도 그러했다. 무엇보다 하느님 스스로가 풍성한 풀밭 위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시다. 하느님은 그 백성에게 메시아가 될 목자의 탄생을
약속하셨다. 여러 문화권에서 목자는 신중하고 배려 깊은 아버지상을 상징한다.

- 목자들은 자기 양들을 돌보고 주의를 기울인다. 목자들은 밤과도 친하거니와
동물들과도 친하다. 그들은 생명력 있는 것, 본능적인 것, 충동적인 것을 직감 할 줄
안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메시아 아기의 탄생을 알리자 즉시 길을 떠나 아기와
어머니를 보고는 하느님을 찬미하며 돌아갔다. 화가들은 목자들의 경배를 특별히
사랑스럽게 그렸다. 그들은 굳은살투성이의 손으로 기도하고 있으며, 거친 얼굴은
때로 애정 어린 모습으로 환히 밝아진다. 목자들은 구유에 누우신 아기에게 드리려고
저마다 가진 것을 들고 왔다. 이 목자들을 보라. 그 모습에서 그대 자신을 발견할 수
없겠는지. 지금 있는 그대로 구유 곁에 가라. 그 아이에게 드릴 선물에는 재능도
업적도 필요치 않다. 텅 빈 두 손이면 족하다. 빈손에 그대의 진실을 담아
아기에게 드려라.

[ 28. 천사 ]

- 성탄 사화에서 천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아들의
탄생을 알린다. 어떤 천사는 목자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천사들의 하늘 군대가
나타나 성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어떤 천사는 요셉의 꿈에 거듭 나타나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났으며 그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천사 없는
성탄화는 상상할 수 없다. 천사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며, 도움과 치유의 하느님이 가까이 계심을 보여 준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며,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그들의 길을 지켜주며, 꿈속에서
말을 건낸다. 천사는 또 하나의 심오한 현실을 전해 주는 사절단이다.

- 성탄의 표징인 많은 천사들 중에는 분명 그대에게 정해진 한 천사가 있을 것이다.
바로 그대를 위해 구원자가 태어나신다는 그 큰 기쁨을 그대에게만 전하기 위함이다.
그분은 삶의 질곡에서 그대를 풀어줄 메시아이며, 그대가 삶을 성취하도록 그대
편에서 도와주실 주님이시다.

[ 29. 꿈 ]

- 마태오 복음서에서의 꿈은 예수의 탄생에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요셉은 꿈에서야
자기 약혼녀와 그녀의 잉태에 얽힌 신비를 안다. 꿈은 그가 마리아와 새로 태어난
아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바르게 지시해 준다. 동방박사들도 꿈에 귀 기울인다.
별과 꿈이 새로 태어난 왕에게 가는 길을 알려 준다. 성탄에 일어난 사건은 백일몽이나
환상이 아니다. 충만한 삶과 새로운 시작에 대해 우리가 품는 모든 꿈의 실현이다.

- 성탄은 그대의 꿈들을 새삼 믿도록 한다. 꿈이 무상한 것만은 아니다. 그대 태어
날 때 하느님이 만드셨던 그 본원적인 모습이 그대 삶의 한밤중에 별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다. 그대는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다. 그대 안에서도 성탄의 기적은 일어난다.
그대의 마구간은 경배의 장소가, 그대의 밤은 환한 대낮이 될 것이다. 불안은 신뢰로,
냉기는 사랑으로 변할 것이다.

[ 30. 성탄의 평화 ]

- 땅 위의 평화는 성탄 소망의 핵심이다. 천사들은 들판에서 성탄 노래를 부르며
하느님을 찬양한다.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사랑받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가2,14). 예수의 탄생을 통해 하늘에 계신 하느님에게나
어울릴 광채가 땅 위에 나타난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영광이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면,
하느님과 인간사이의 분열은 해소되고 평화가 도래한다. 하느님과의 평화는 사람들
끼리의 평화도 가능하게 한다. 자신에게 만족하고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게
되면 형제자매와도 평화롭게 지낼 것이다.

[ 31. 크리스마스 트리 ]

- 16세기 이래 독일에서는 성탄 때 전나무를 치장해서 세워두는 관습이 있었다.
전나무는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아서, 예로부터 엄동에 굴복하지 않는 삶의
신비한 힘을 상징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원래, 악령을 막기 위해 성탄절과 주님
공현대축일 사이의 열두 밤동안 푸른 나뭇가지를 집안에 걸어 두었던 풍습에 기원을
둔다. 악령을 쫓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사람과 동물이 늘 푸른 식물의
생명력을 전달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촛불로 겨울밤의 어둠을 밝혀 그 불빛으로
악령들을 쫓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성탄 나무는 촛불을 밝힌 늘 푸른 나무로서,
그리스도를 집안으로 모셔와 불안과 불화를 질투의 모든 악령들을 그 집안에서
쫓아내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성탄 전나무를 ‘생명의 열매’가 열리는
낙원의 나무로 여겼다.

- 크리스마스 트리의 보편적 상징에는 중요한 특징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하늘과
땅의 결합이다. 성탄절에 하느님이 하늘과 땅의 경계를 없애시자 땅에서도 하늘이
보였다. 잘려진 가지에서 새순이 돋는 나무의 상징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양향을
미쳤다.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우리 안의 생명이 영원히 승리하여 어떤 혹한에도
밀려나지 않을 것이며 남녀 간의 투쟁이 서로 간에 극복될 것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남성과 여성의 대립은 의미가 없으며, 모든 이는 자신들의 신적 본성 안에서 하나가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반짝이는 금줄과 장식 구슬과 초로 꾸민 늘 푸른 나무,
크리스마스 트리를 통해서 하는 약속이다. 성탄 장식에 쓰는 전나무 가지는 독특한
향기를 풍긴다. 이는 하느님이, 신비가 친히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예감이다.

[ 32. 선물 ]

- 아이들에게는 성탄 선물 잔치도 중요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선물 스트레스에
빠져 있다. 선물이 서로에게 의무가 되었다. 남이 나에게 더 큰 선물을 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도 성탄절에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아주 뜻 깊은 일이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전통이다. 로마에서는 새해에 선물을 주고받았다. 중세에는 니콜라오
축일이나 성탄 때 그랬다. 하느님이 성탄절에 우리에게 선물을 주신 것은, 우리도
뭔가를 선물하라는 뜻이다. ‘선물하다’(독일어: 쉥켄)는 원래 ‘누구에게 마실 것을
주다’라는 뜻이다. 선물한다는 것은 목마른 사람에게 갈증을 잠재울 뭔가를 따라
주는 것이다.

- 현대인의 대부분이 사랑의 표현이라는 선물을 갈망할 것이다. 선물에 내 마음을
담아 다른 사람에게 건네면, 그것이 그의 갈증을 달래줄 것이다.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다는 것은 사랑의 징표이며, 생기 넘치는 관계의 표지다. 손수 그리거나 만든
것을 선물하면 어떨까. 그대의 선물이 사랑에 목마른 그이의 갈증을 축일 수 있도록.

[ 33. 스테파노 ]

- 성탄 다음날은 스테파노 순교자 축일이다. 하늘 아기는 아직 구유에 누워 있는데,
그 다음날 벌써 박해자들의 어리석은 분노가 언급되었다.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땅으로 인도하신 그 사랑이 스테파노를 땅에서 하늘로 들어 올리셨습니다.”
- 루스페의 풀젠티우스(532). 루가는 스테파노를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라 한다.
그는 참된 그리스도 신자의 표상이다. 하느님의 영광이 구유의 가난과 비천에서
빛나듯, 스테파노도 죽음 앞에서 하늘의 열림과 하느님 오른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본다(사도7,55~). 성탄 복음은 사랑을 통해 입증되어야 한다. 그 사랑은 우리도
핍박으로 몰아넣을 것이며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할지도 모른다.

- 전설에 따르면 스테파노는 헤로데의 마구간지기였다고 한다. 동방박사들처럼
그도 베들레헴에서 빛나는 별을 보았고 그것을 새로운 왕, 그리스도의 징표로 해석
했다. 그래서 헤로데는 그를 돌로 쳐 죽이게 했다. 비록 성서적 근거는 없다하더라도
이런 전설은 구유와 십자가, 성탄과 스테파노의 순교를 나름대로 잘 접목시키고
있다. 그는 세속 왕의 권력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메시아 왕의 권능은 믿었다. 바로
그것이 헤로데의 불안을 야기했고 적대감을 부추겼다. 결국 돌이 날아 왔고 그는
죽었다.

[ 34. 요한 ]

- 요한(사도, 축일 12.27)은 그리스도의 육화에서 하느님의 치유, 구원 행위를
본다. 인간의 질병과 위기는 하느님으로부터의 소외, 생명의 근원으로부터의 단절
에서 비롯된다. 예수의 육화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인간, 하늘 샘물을 마실
수 있는 인간, 영원한 생명과 그리스도의 사랑에 충만한 인간이 된다. 신적인 생명이
없으면 사람은 자신의 내면과 멀어진다.

- 요한의 중심 메시지는 ‘생명’과 ‘사랑’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하느님은 예수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참되고 충만한 새 삶을 우리에게 선물하셨다. 예수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났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4,16). 하느님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물고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 머무십니다”(1요한4,16). 이것의 요한의 성탄 메시지이다. 사랑은 이미
성탄절 구유의 아기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드러났으니, 그 사랑의 신비를 그대
안에서 체험하면 그대는 이미 하느님을 체험한 것이다.

[ 35. 죄 없는 아이들 ]

- 5세기 이래 교회는 죄 없는 아이들을 기념(축일 12.28)했다. 이들은 헤로데가
유대의 새 왕을 제거하려고 무참히 죽인 아이들이다. 이 축일의 첫째 뜻은 저항할
능력이 없고 의지할 데 없는 아이들이 거대한 통치자 헤로데를 그렇게 두렵게 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죄 없는 아이들이 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미처
말문도 안 열린 그들이 온 생명을 바쳐 그리스도를 알렸다는 신비다.

- 이 축일은 그대 안의 죄 없는 아이를 만나게 한다. 그 아이는 그대가 순수하고
투명하며 참되게, 그대 내면의 자아와 하나 되어 살아갈 용기를 줄 것이다.
그대 안의 죄 없는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입증할 것이다. ‘에고’의 흔적은 점차
흐려지겠지만 그 아이는 이 세상에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새겨 갈 것이다.

[ 36. 성가정 ]

- 성탄 후 첫주일에 교회는 성가정 축일을 지낸다. 그리스도교 가정공동체의
표양이 될 이 성가정을 그림 그림 중에는 격에 맞지 않은 것들이 많다. 너무
목가적(牧歌的)이고 조화롭게만 보인다. 성서가 보여주는 예수의 가정은 좀 다르다.
사회와 동떨어진 어느 마구간에서 극도로 가나하게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태어나면서 헤로데의 추격으로 위협받고, 열두 살 난 예수는 사흘이나 찾아 헤맨
부모가 걱정하든 말든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하고 있다. 예수는 부모가
바라는 대로 빈틈없이 행하는 ‘착한’ 소년은 아니었다.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돌아가 순종하며 지낸다.

- 성탄은 온전한 가정이 정말 있는 것처럼 그대를 기만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가정을 약속하려 한다. 가정이 거룩해 지는 것은 하느님의 신비가 그 안에
내재하고 가정 구성원 모두가 자기만의 신비를 간직하기 때문이다. 그대 자신과
배우자와 아이들의 신비를 마음 깊이 되새기기만 한다면, 비록 더러 낯섦과
거리감이 있다 해도 그대의 가정을 내 집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신비가 깃든
곳만이 제집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그대 가정에도 하느님의 신비가 깃들어
있음을 감지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37. 태양 ]

- 동방 교회가 성탄절을 1월 6일로 정한 것은 3세기였다. 로마 교회는 4세기에야
고유한 성탄 축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로마 교횐 주님 탄생 축일을 12월 25일로
옮겼는데, 그날은 로마인들이 ‘무적의 태양신’ 그리스도를 로마의 태양신으로
대비시켜려 했다. 그리스도는 ‘정의의 태양’이다. 정의가 하느님에게서 왔고 정의
자체가 신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탄생으로 진정한 태양이, 결코 지지 않는
태양이 떠올랐다.

- 진정한 태양 그리스도가 우리의 운명을 구원으로 돌려놓으셨다. 성탄 때까지는
어둔 밤이 길어지듯이 역사에서도 사탄의 밤이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일출의 사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자, 어둠의 마력은 깨어졌다. 그래서 성탄 전례는 태양의
상징을 빌려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어둠을 비추고 신적인
사랑의 온화한 빛으로 우리를 감싸시지만, 우리 안의 모든 죄와 굳은 것을 태워
없애기도 하신다. 그럼으로써 우리 안의 모든 것이 그분으로 인해 빛이 되게 하신다.

[ 38. 별 ]

- 성탄 장식에 별을 빼놓을 수 없다. 성서에서 별은 동방박사들의 경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았고 그 별의 인도를 받았다. 그들은 별을 정확히
아는 천문학자요 점성가들이었다. 고대에 토성은 이스라엘의 별, 안식일의 별이었고
목성은 왕의별이었다. 기원전 7년에 이 두별의 기묘한 합(合)이 있었다. 로마에서는
이 기이한 별자리가 평화의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상징으로 해석되었지만 바빌론
에서는 단연 메시아 왕림의 표징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 교부들은 예수를 다른 별에 비유했다. 그 별은 같은 하나의 별이지만 새벽에는 샛별,
초저녁에는 금성이라 부른다. 샛별은 밤의 전달자 노치펠이다. 초기 교회는 우주의
실제성을 진지하게 받아 들였다. 사람들은 샛별의 밝은 빛에 매혹되었다. 교부들은
이러한 우주적 체험을 그리스도와 관련지었다. 그리스도는 샛별의 신비로 충만했다.
탄생과 더불어 그리스도는 샛별로 떴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샛별이라는 안젤루스
실레시우스의 시는 참으로 탁월하다. “어둔 밤의 샛별 세상을 기쁨으로 채우네. 나의
예수 들어오시어 내 마음의 보석상자 비추신다네.”

- 성탄절은 우리도 다른 이들의 밤을 밝히고 고향 느낌을 선물하는 별이 되게 한다.
성탄의 별은 말한다. 그대는 지상의 사람일 뿐만 아니라 천상의 사람이기도 하다.
별은 그대 안에 빛나지만 그대를 넘어 나와 그분을 가리킨다. 그분은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의 깊은 소망을 채우시는 분이다.

[ 39. 섣달 그믐 ]

- 보통은 12월 31일로 한 해가 끝난다. 교회는 그리스도 앙 대축일로 전례주년의
끝을 삼는다. 한 해 동안 이룬 것과 받은 것에 대해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미흡한 것과 빚진 것은 하느님께 내맡겨 그분의 자비로 풀어버리도록, 마음속에
묵은해를 다시 떠올려 보는 것이다. 지난 일들을 하느님 앞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들은 그저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만드는 나이테처럼 우리의 일부가 된다.

- 어떤 사람에게는 해 바뀜을 축하하는 소동이 필요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고요가 필요하다니. 로마인들과 게르만인들은 소음으로 악령을 몰아내려 했다.
요즈음 불꽃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의식 없이 즐기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마 모를 것이다. 그들은 적의 권세에 대한 두려움을 소음으로 속여 넘기고 악령들을
쫓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할지는 의문이다. 젊은이들은 침묵 중에
시간의 신비를 캐면서 새해를 조용히 자기 안에 받아들이고 싶은 욕구를 자지고 있다.
적막 속에서 그들은 시간의 신비를 직감한다. 시간은 붙들어 둘 수 없다! 침묵하면서,
온전히 순간에 머물러 있도록 해보자. 시간과 영원이 하나라는 예감이 들 것이다.
이 때 우리는 하늘과 땅, 시간과 영원, 하느님과 인간이 하나 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 40. 새해 ]

- 새해 첫날(1.1)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다. 아기를 낳은 동정녀는,
하느님을 통해 이 세상에 등장한 어떤 새롭고 변질되지 않은 것을 상징한다.
하느님이 뭔가 새것을 이루셨다는 것. 이것이 메시아 동정녀 탄생이 주는 메시지다.
새해에 우리가 바라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다.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새것이 이미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대를 매 순간
새롭게 하여 그대 안에 새것을 일구시는 하느님의 영이 그대 안에 있다. 새로운
시작의 둘째 의미는, 새롭게 시작하기를 원한다면 그대는 삶을 스스로 떠맡아야 한다.
그대가 받은 교육과 성향과 운명이 삶을 결정했다고 한탄하지 말고, 스스로 삶을
책임져야 한다. 하느님은 새로운 씨를 그대 밭에 심으셨다. 그 씨가 싹을 틔워
그대 안에 새것, 예상치 못한 것, 기대치 못한 것, 놀라운 것이 피어나도록 밭을
경작하는 일은 이제 그대의 과제다.

[ 41. 소망 ]

- 옛 로마에서는 관리와 명망가들이 새해 인사를 주고받는 관습이 있었다. 요즘
사람들도 ‘기쁘고 복된 성탄’과 ‘좋은 새해’와 ‘새해에 복 많이 받기를’ 서로 기원한다.
새해에는 서로에게 좋은 것을 기원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소망도 품는다.
우리는 새해가 더욱 좋은 해가 되기를, 건강히 잘 지내기를, 우리 안에 새것이
싹트기를 바란다.

- 우리의 소원을 하나하나 말하다 보면, 하느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이 정말
고마운 것이라는 걸 자주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세상을 새로 창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이미 소원 속에 숨어 있다. 동시에 우리 사는 이 세상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깨닫는다.

[ 42. 동방박사 ]

- 마태오는 동방박사들이 예수 탄생 후 동쪽에서 예루살렘으로 왔다고 전한다.
별이 그 탄생을 알려주었기로, 그들은 새로 나신 유대의 왕을 찾으려 했다. 아마
그들은 별을 연구하고 꿈을 해석하는 바빌론의 점성가들로, 페르시아의 승려 계급에
속하며 초자연적인 지식에 빼어났을 것이다. 마태오와 교부들은 이 동방박사의
경배를, 온 세상의 지자(知者)와 현자(賢者)들이 그리스도를 찾아와 경배하고
선물을 드리는 것으로 이해했다.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연구하고 경험을 축적하든,
그것이 점성술이든 해몽이든, 마술이든 밀교의 비책이든, 그 모든 것에는 육으로
나타나신 하느님, 하늘아기에 대한 그리움이 깃들어 있다.

[ 43. 삼왕 ]

- 서방 예술과 민간신앙은 동방박사들을 거룩한 삼왕으로 만들어, 성서를 심층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예술은 삼왕을 세 연령층(청년, 중년, 노년),
혹은 세 대륙(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에 상응시켰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우리
자신에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는 청년의 생기에도, 중년의 창조력에도, 노년의
지혜에도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생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
모든 것이 늘 새로 시작되어야 하고 움직여야 한다. 목표는 왕다운 사람,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남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며 자신과 일치를 이루는 사람, 왕의 존엄을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삼왕의 존엄이 드러나는 것은 그들이 왕권의 표지를
벗어버리고 하늘 아기 앞에 끓어 엎드린 바로 그때였다.

- 민간신앙에서 거룩한 삼왕은 여행의 주보성인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들은 먼
여행에서도 길 잃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위험투성이 우리 인생길의 동반자라고도
하며 해코지하는 악령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달라 청하기도 한다. 또 병자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 44. 넷째 왕 ]

- 옛 러시아 전설은 다른 세 왕과 함께 길 떠났던 넷째 왕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 넷째 왕은 왕자 아기께 드릴 선물로 빛나는 보석 세 개를 가지고 갔다. 그는 네 왕
가운데 가장 젊었고, 그래서 누구보다 더 깊은 그리움이 가슴속에 불타고 있었다.
(넷째 왕의 전설 : 빛나는 보석 3개를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해 각각 나누어 준다.
그리고 어느 항구에서는 빚을 갚기 위해 식구들 앞에서 갈레선<노예나 죄수가 노를
저었던 전함>의 노예로 끌려가는 어느 아버지를 대신하여 오랜 세월을 노예로 일한다....)

- 자유의 몸이 된 그는 꿈속에서 다시 그 별을 보았고 음성을 들었다. 한밤중에
일어나니 빛나는 별 하나가 그를 큰 도시의 성문으로 인도했다. 군중에 휩쓸려 도달한
곳은 세 개의 십자가가 서 있는 언덕이었다. 그의 별이 가운데 십자가에 위에 빛나고
있었다. 고통당한 모습을 보고 “순간, 깨달음이 번개처럼 왕을 전율케 했다. 여기가
내 평생 순례해 온 그 목적지였구나. 이 사람이 바로 그리움에 병들게 했던, 인간들의 왕,
세상의 구세주시구나. 이분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을 통해 나를 만나셨구나.”
그때 그의 손바닥에는 보석보다 빛나는 핏방울 세 개가 떨어 졌다. 예수가 부르짖으며
돌아가실 때 왕도 따라 죽었다. 죽으면서도 그의 얼굴은 주님을 향해 있었고, 별빛
같은 한줄기 빛이 그 얼굴에 서려 있었다.

- 이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감동스럽다. 아마 그대에게도 성탄의 신비에 대해 뭔가를
말해줄 것이다. 자주 그대는 빛나는 별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그대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으로 삶에 임하고, 또 그대에게 자비가 흘러넘친다면,
언젠가는 그대 안에도 별이 빛날 것이다. 그대가 사랑하고 그들의 그리움에 그대가
응답하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서 하늘 아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 45. 헤로데 ]

- 마태오의 예수 탄생 사화에서는 헤로데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 헤로데는
점성가(동방박사)들에게 경배 후 알리기로 명령하였는데 되돌아오지 않은 것을 알고
몹시 분노하여 베들레헴 일대에 사는 두 살 밑의 모든 사내아이들을 죽이라 명한다.
헤로데는 당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하늘 아기의 적일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이 태어나시는 것을 방해하는 적이기도 하다. 헤로데는 감정, 관계, 직업을
포함한 모든 것을 혼자 좌지우지하고 주변 사람들을 통제함으로써 자신의 지배권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대표한다.

- 틀림없이 그대는 그대 안에도 어떤 헤로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이야기는
그대 안의 헤로데를 폭로하는 것인데, 그것은 그대가 그대안의 그를 죽이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대가 그의 존재를 시인할 때 비로소
그대는 그와 화해할 수 있고, 그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 46. 황금 유향 몰약 ]

- 동박박사들은 보물 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아기에게 바친다. 예부터
이 세 선물의 의미는 여러 관점에서 해석되어 왔다. 2세기에 리옹의 이레네오는
황금은 아기의 왕다운 위엄을, 유향은 신성을, 몰약은 십자가상의 죽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칼 러너에게는 황금은 우리의 사랑을, 유향은 우리의 그리움을,
몰약은 우리의 고통을 의미했다. ‘황금 성인전’의 해석은 또 다른데, 황금은 마리아의
가난 때문에, 유향은 마구간의 악취를 없애기 위해서, 몰약은 아기의 몸을 튼튼하게
하고 해충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바쳐졌다고 한다. 또 황금은 신성을, 유향은 경건한
영혼을, 온갖 더러움에서 보호해 주는 몰약은 순결한 몸을 상징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옛 사람들은 그 선물에 자기들의 온갖 상상을 투사시키는 데 기쁨을 느꼈다는 것이다.

- 황금은 늘 매혹적이다. 황금은 구유에 누운 아기의 신성뿐만 아니라, 우리 영혼의
금빛 광채도 가리킨다. 유향은 여러 문화권에서 기분 좋은 방향제로 쓰인다. 하늘로
피어오르는 유향은 하느님께 오르는 우리의 기도와, 일상을 넘어서는 우리의 그리움을
상징한다. 그리움은 유향처럼 하늘로 피어오른다. 고대인들에게 몰약은 낙원의
풀이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그리워하는 낙원의 상태를 가리킨다. 몰약은 동시에
우리 상처의 치료제이다. 몰약을 선물함으로써 우리는 상처를 하느님께 내보인다.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 인생사의 숱한 상처들을 바치는 것이다. .... 그대의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선물을 찾아 하늘 아기께 바쳐라. 그리곤 제일 마음에 끌리는 상징에
그대를 맡겨라. 그것이 그대를 아기에게 인도할 것이다.

[ 47. 주님 공현 ]

- 초기 교회는 주님 공현 축일로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에 응답했다. 디오니소스는
포도주의 신이었다. 축제 전날 밤(1.5~1.6사이) 디오니소스 신전에 갖다 둔 물 항아리
세 개가 이튿날 아침이면 포도주로 가득 찬다. 초기 교회의 주님 공현 축일은 아기에게
경배를 드린 동방박사뿐만 아니라, 예수의 세례와 가나의 혼인잔치도 함께 기억하는
날이었다. 하느님의 영광은 세 차례에 걸쳐 나타났다. 온 세상에(동방박사들의 경배),
피조물의 구성 요소에(요르단 강에서의 예수의 세례), 그리고 인간의 사랑에
(가나의 혼인잔치). 이는 철학과 태양신 아이온의 숭배, 그리고 디오니소스 축제로
표출된 그리스인들의 그리움에 대한 응답이었다. 주님 공현 대축일에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이 우리 몸에 나타남을 기린다.

[ 48. 주님 세례 ]

- 주님 세례 축일에 우리는 하느님 강생의 또 다른 측면을 기린다. 주님 세례 축일에
축성되는 성수는 하느님의 생명의 샘이 우리 안에도 흐르고 있음을 기억하게 한다.
예수의 세례는 그대 자신의 세례를 기억하게 한다. 그때 그대는 놀라운 전례를 통해
그리스도교적 삶의 신비 속으로 봉헌되었다. 그대는 그리스도처럼 왕으로, 예언자로
그리고 사제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대는 왕이다. 다른 사람에게 이끌리지 않고
스스로 사는 사람이다. 그대는 예언자다. 자기만이 표현할 수 있는 뭔가를 자기 존재로
알리는 사람이다. 그대는 사제다. 하느님과 세상을 결합시키고, 세속적인 것을 신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인간으로서의 삶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다.
그대는 세례를 받았다.

[ 49. 가나의 혼인잔치 ]

- 초기 교회는 주님 공현 대축일(1.6)에 이미 가나의 혼인잔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요한은 예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행한 표징을 들어 육화의 신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면 그분은 우리와 결혼하는 셈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육화를 통해 이런 사랑(거지처럼 변장한 왕)을 탁월한 방식으로 실천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거지가 되셨고 아기가 되셨다. 당신의 신적인 사랑을 영원토록
우리에게 베푸실 때, 우리가 너무 작게 느끼지 않도록 해주시려고.

- 예부터 결혼이란 기쁨과 두려움의 감정이 뒤섞인 것이었다. 두 사람이 만나 영원히
함께 간다는 것,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여전히 하나의 신비다. 하느님의
육화를 통하여 우리 삶이라는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었다. 우리의 삶이 새로운 하늘의
맛을 얻는 것이며 바로 그것이 우리를 ‘취하지 않는 명정(酩酊)’에 들게 한다. 육화를
통해 하느님은 우리 인간과 거룩한 혼인으로 영원히 결합하신다. 그리하여 사랑에
무능했던 우리도 스스로 사랑이 된다.

[ 50. 주님 봉헌 ]

- 5세기 이후 예루살렘에서는 성탄 후 40일에 고유한 축제를 지냈는데, 이름하여 만남의
축일 혹은 정화의 축일이라 했다. 로마에서는 이날을 예수께서 성전에 나타나신 날로
기념하였고, 민간신앙은 이 축일을 마리아와 관련지어 성모 정결례 축일이라 불렀다.
과거에는 이 축일이 성탄시기의 끝이었다. 전례 개혁은 성탄시기를 단축하여 요즘은
주님 세례 축일이 끝이다. 로마에서는 주님 봉헌 축일에 장엄한 촛불행렬이 거행되었다.

- 성탄절에 세상을 비추었던 그 빛을 위해 그대 삶의 새 공간을 열어 두라. 이제 성탄의
빛이 그대를 일상으로 보낸다. 그대의 일, 가정생활, 교회 공동체, 정치 참여에 이르기
까지, 삶의 전 영역을 그 빛으로 밝혀야 할 과제가 그대에게 주어졌다. 시므온의 찬가처럼,
성탄의 빛은 오늘날에도 이방인들을 비추어야 한다. 오늘날에도 그대 안팎의 세상이
사랑의 빛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래서 만인이 자기의 가장 깊은 소망을 충족시킬 구원을
목전에 두고 보아야 한다.

[ 50+. 50항목 이외도 본문에 나오는 주요 상징들 ]

- 게쎄마니, 공간, 나무, 말, 메시아, 몰약, 부정, 뿔, 사계절, 사자, 산, 성작, 세라핌,
셰키나, 스케입고트, 시간, 십계, 십자가, 아자젤, 야훼, 양, 에덴, 올리브, 용, 유향,
적그리스도, 천막, 카오스, 케루핌, 코스모스, 태양, 풍요의식, 황금, 후광


-end.


 

금주의 독서 메모 017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1.01.24.

[ 내 영혼의 리필 ]

- 리처드 P.존슨 지음, 한정아 옮김 옮김/ 222p
- 젊게 사는 12가지 방법 (내 영혼에 활력을 주는 12가지 방법)
- 지은이 프로필 : 노인 상담학 박사 / 미국 노인사목협회 이사장 역임 등

[ 책표지의 글에서 ]
우리에게도 영혼이라는 정원이 있다.
그 정원을 잘 보살피고 가꾸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영혼의 정원을 따뜻이 보살피고 가꾸면
우리 영혼은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의 물을 마실 수 있다.
이 생명수는 영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고,
이를 토대로 우리는 더욱더 성장할 수 있게 된다.

[ 시작 글 ]

< 내 영혼에 활력을 주는 12가지 방법 >

1. 나이듦에 대한 시각을 바꿔라.
2. 어디에서나 사랑을 찾아라.
3. 함께함을 기뻐하라.
4. 현재에 살아라.
5. 진정한 자아를 찾아라.
6. 용서하라.
7. 분노와 마음속의 소용돌이를 잠재워라.
8. 아낌없이 베풀어라.
9. 신앙에 기뻐하라.
10. 삶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라.
11. 감정의 포로가 되지 말라.
12. 삶의 균형을 유지하라.

[ 1. 나이듦에 대한 시각을 바꿔라 ]

- (방법에 대한 정의) 나이듦에 대한 시각을 영적 발전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시각으로 얼마나 전환했는가?
- 우리가 주님 안에서 늙지 않고 영적 활력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나이듦에 대한 관점이 물질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자신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나이듦을 허락하셨다.
- (나이듦을 바라 보는 태도) 모든 행동의 근원은 태도이다. 어떤 것이 행동으로
옮겨지기 전에는 항상 그에 대한 태도가 먼저 생긴다. 그 다음에 인식과 사고
과정을 거치게 되고, 여기에 감정이 복합되어 결정을 내리게 되며, 그리고 나서
행동으로 옮겨지게 된다. 태도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나이듦은 풍요로운 삶을
허락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이듦이 빈손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슬퍼하거나
허무해하지 말고 오히려 성장과 발전의 중요한 단계라고 생각하며 기뻐해야 한다.

- (나이듦을 다르게 바라보라는 소명을 받았다) 몸이 우리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영혼이 있다. 나이듦을 ‘형태’의 관점으로만 바라본다면
큰일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눈으로 나이듦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이듦을 올바로
이해하고 싶다면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는 네가 자신의 존재를
바로 알 수 있게 되기를 나이듦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나이듦은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나이듦은 다른 어떤 것도 가르쳐 줄 수 없는 인생의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
- (꼭 필요한 상실) 잃지 않고는 성장할 수 없다. 유아기를 잃어버려야(포기해야)
청소년기로 넘어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인생의 어느 단계든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무언가를 잃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노년기에 가장 많은 상실을 경험한다. 따라서 노년기야말로 인생의 다른 어느
시기보다도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 (나이듦과 영적 성숙이라는 역설)
나이듦은 내적 성장이다. 이는 인성과 영혼의
발전이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노년기의 인생드라마는 인성 발달과 영적 발달 면에서
펼쳐진다. 나이 듦은 ‘축소(신체 쇠약) 속의 성장’, ‘분열(몸) 속의 조화’, ‘혼란(삶)
속의 평화’를 이루는 과정이다. 상실은 비극이 아니다. 슬퍼할 것도 아니다. 상실은
하느님을 좀 더 잘 알게 되는 기회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이란 상실을 통한
성취 과정이다. 걱정을 잃고 믿음을 얻는 과정이다. 두려움을 잃고 자신감을 얻는
과정이다. 분노를 잃고 용서를 얻는 과정이다. 악한 마음을 잃고 사랑을 얻는 과정이다.
나이듦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역설은 영적 활력을 유지시켜 주는 길이 된다.

- (문 손잡이) 첫 번째 방법의 상징은 ‘손잡이’이다. 노년기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혼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문을 열어야 한다. 새로운 문을 연다는 것은
나이듦의 목적에 관한 새로운 생각과 태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문을
닫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한다. 닫아야 할 문은 자기 자신에 대한 예전의 생각들이
들어 있는 마음의 문이다. 우리가 성숙하고 ‘늙지 않는’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늙은’ 자아를 잊어버려야 한다.

[ 2. 어디에서나 사랑을 찾아라 ]

- (방법에 대한 정의) 세상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찾으려고
얼마나
노력하는가?
- (공깃돌) 두 번째 방법의 상징은 공깃돌이다. 엄청나게 많은 행동 중에는 도덕적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행동(빨간 공깃돌)과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좋다’고 생각하는
행동(분홍색 공깃돌)이 있다. 놀랍게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분홍 공깃돌이 아닌
빨간 공깃돌 세상에 살고 있다고 대답한다. 방송 뉴스에서는 사랑의 소식이 아닌
증오와 두려움과 악한 소식만을 전하고 있다. 그 많은 분홍 공깃돌은 보지 못하고
빨간 공깃돌만을 보고 전하고 있다.

- (사랑과 두려움) ‘사랑은 두려움을 버리는 것’의 저자인 제럴드 잼폴스키 박사는
인간의 모든 행동은 사랑의 고백이거나 사랑의 요청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사랑이야
말로 모든 행동의 원동력이라는 뜻이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은 세상 어디에서든
사랑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세상의 상황이 사랑의 존재를 의심
하게 할 때에도 그들은 ‘이 일을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하면 될까?’
하고 자신에게 묻는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들은 모든 것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찾을 수
있고,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건강 상태와 상관없이 언제나 영혼이 밝은 빛을 발하고 있다.

- (두려움이 노화를 부추긴다) 인간의 모든 감정은 사랑과 두려움으로 나뉘어진다고
말한다. 두려움은 생각을 마비시키고 감정을 억누르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인식을
흐리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를 옥죄며 억압한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어두운 방안을
걸으면서 어둠만 바라보는 것과 같다. 세상은 우리에게 최선의 길을 가르쳐 주기보다는
무엇을 하지 말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다. 이런 가르침은 ‘하지 마
가르침’ 혹은 ‘두려움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우리 몸에 부정적
충동과 생각, 감정, 인식이 더 많이 들어간다. 그러면 노화도 더 빨라진다.

- 우리가 세상을 ‘분홍 공깃돌’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면 자신의 몸과 몸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세포에 ‘사랑 안에서 살아라’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라고 한다.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의 몸에 ‘생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과
죄책감을 비롯한 온갖 부정적 감정을 갖는다면 몸에게 ‘죽음’의 명령을 전달하게 되고
결국 노화가 더 빨라지게 된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항상 기뻐하라”고
가르쳤다. 신약성서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365번이나 나오고 있다.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삶을 이 세상의 시각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눈으로, 사랑의
눈으로 보기 위하여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는 편견과 기존의 생각들을 버리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는 의미이다. 사랑은 이 세상과 온 우주의 원동력이다. 사랑은 이
세상을 돌아 가게 하는 힘이다.

- (젊음의 샘) 젊음의 샘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우리 마음속에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샘의 이름은 사랑이다. 사랑이 바로 젊음의 샘이다. 여러 의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인간의 생각과 감정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가르침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가르침이다.

- (나이듦은 하느님의 선물) 나이듦은 하느님 사랑의 선물로 이해하면 영혼이 점점
더 젊어질 것이다. 실제 나이와는 아무 상관 없이 비관적 마음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비판에서 관심으로, 고통에서 기쁨으로 변해가는 점점 더 젊어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남의 잘못을 찾으라고 충고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을 찾으라고 가르치신다.

- (어떻게 사랑을 찾을까?) 나는 사랑을 찾는 좋은 방법은 선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선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사랑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선을 ‘구체화된 사랑’
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을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희망, 자비, 믿음, 인내, 포용력,
활력, 검소함 등 무수히 많다. 이 모두는 사랑 안에서 행동하는 그리고 사랑이 되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두려움을 찾는다면 두려움을 얻게 될 것이다. 사랑을 찾는다면
사랑을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얻게 되는 지혜이다. 세상 모든
곳에서 사랑을 찾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사랑을 찾는다면 젊음의 샘을 발견한 것이다.

[ 3. 함께함을 기뻐하라 ]


- (방법에 대한 정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면서 그 안에서 얼마나
기쁨을 느끼는가?

- (함께함 : 이 세상 여정의 핵심) 활기차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질인 젊음 혹은
‘늙지 않음’이란 우리의 실제 나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소산이다. 젊은
나이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젊음은 젊은이처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혼의
젊음은 개인의 업적과 경험의 총합이 아니라 깨어 있는 의식과 태도, 가치관에서
나온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웃과 친교를 나누라는 소명을 받았다. 그리스도 가르침의
핵심인 사랑은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의 정도에 달려 있다. 다른 사람들과 친교를
나누며 삶을 함께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이 세상 여정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핵심적
교훈이라할 것이다. 우리는 자기방식으로 하느님의 모든 자녀들과 삶을 나누며 살아
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나이를 먹어 성숙해지면서 영혼의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고,
또한 자신이 늙지 않고 점점 더 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 (함께함이 주는 축복 : 건강과 성공) 외로움과 우울증은 노년기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의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질병과 친교 부재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세 가지 요인이 있는데, 이는 스트레스와 긴장과 질병이다.
스트레스 중에는 ‘유스트레스(eustress/좋은 스트레스)’라고 하는 유용한 것도 있고,
‘디스트레스(distress’라고 하는 나쁜 스트레스도 있다.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유스트레스 덕분이다. 아침에 경험하는 극심한 교통혼잡은 디스트레스로
피로감과 불쾌감을 부추긴다. 이런 디스트레스를 통제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긴장으로
변한다. 긴장을 그대로 두면 질병으로 발전한다. ‘마디와 코사바’는 스트레스가 긴장
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네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도전 의식이다.
세상을 위협적인 곳이 아니라 도전해 볼만한 곳으로 본다. 두 번째는 통제력이다.
자신을 무기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 번째는 헌신이다. 세상에서 고립되었다는
느낌을 갖지 않는다. 네 번째는 함께함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 기업관리자와 경영자들의 개인 성취도를 조사한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를
보면 다른 사람과 건설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 즉 ‘함께함’이 스트레스를 해소
하는 주요 수단으로 밝혀졌다.

- (자기 몰두를 경계하라) 자의든 타의든 점점 주변에서 소외되기 시작하면 자기자신
에게만 관심이 집중되기 쉽다. 점점 더 자신에게만 몰두하게 된다. 노인들에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는 상대방 노인에게는 몸의 건강 상태를 묻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에 화제가 자연히 건강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이 훨씬 더 낳다. 노년기의 삶에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요인들에
대한 연구조사에서 자신의 생활과 두려움, 기쁨, 슬픔 등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막역한 친구가 노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더욱더 건강하게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 (함께함이란) 첫째, ‘함께함’이란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둘째, ‘함께함’이란 타인의 감정을 따뜻하게 이해해 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셋째,
‘함께함’이란 타인을 칭찬할 수 있는 능력이다. 넷째, ‘함께함’이란 기꺼이 타인이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는 능력이다. 결국 ‘함께함’이란 기꺼이 그 사람과 함께 삶을
나누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고, 진정으로 그를 알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 ‘함께함’이란 타인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함께함’이란 올바른
평가와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사랑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사랑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바로 우리 이웃이다. ‘함께함’이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훌륭한 선물을
제대로 평가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함께함’이란 타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그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함으로써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자원봉사 활동이 이타주의적 활동의 전형적인 예이며, 우리가 거둘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함께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타주의는 순수한 사랑의 행동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그 자녀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최근에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건강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 (함께함은 소외감을 막아 준다) 이웃과 함께하는 삶은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인생의 활기와 행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
하는 것은 영적 발전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웃과의 친교는 정서적 안정과 건강을 준다. 이웃과 함께함을 즐기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삶의 질을 한층 더 높여 준다.

- (데이지) 세 번째 방법의 상징은 데이지꽃이다. 데이지는 소박하지만 심오한 사랑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꽃이다. 데이지 꽃들은 중앙에 있는 눈과 연결되어 있다. 게다가
꽃잎들끼리도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전체적으로 완벽한 ‘함께함’의 원을 이루고 있다.
우리도 이웃과의 친교를 통하여 사랑의 원을 이루어야 한다는 면에서 데이지꽃과
다르지 않다. 다른 꽃잎인 이웃과 친교를 이루면서 동시에 꽃의 눈인 하느님께 연결
되어 있지 않은가!

[ 4. 현재에 살아라 ]

- (방법에 대한 정의) 현실을 인식하고 현실에 충실함을 나타내는 정도.

- ‘현재에 살라’는 네 번째 방법의 상징은 오렌지색이다. 오렌지를 먹는 데는 그냥
먹는 것과 감각적으로 음미하면서 먹는 것이 있다. 오렌지를 꿀꺽 삼켜 버리지 말고
먹고 있는 순간의 기쁨을 느끼며 먹어야 한다. 인생도 오렌지를 먹는 것과 같다.
실리적 방법으로 살 수도 있고, 감각적인 방법으로 살 수도 있다.

-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시간, 바로 지금)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시간은 바로 지금뿐이다.
그리고 오늘 바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더 현명하게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 방법을 배우는 유일한 길은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다. 인생의 멋진 선물인
‘현재’라는 순간은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 인생은 ‘바로 지금’의 연속이다.

- (과거에 대한 생각은 죄책감을, 미래에 대한 생각은 두려움을 낳는다) 과거에
몰두하다 보면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낄 때도 자주 있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자신의 과거의
산물이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포로는 아니다. 현재에 살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온 마음을 쏟겠다는 의도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두려움은 과거를 미래에 투영
함으로써 생기는 감정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다.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앞으로
느끼게 될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현재의 삶을 방해한다면 문제가 있다. 앞으로 고통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현재의 삶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오늘의 현실은 사랑이다) 그리스도는 오로지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활동하신다.
하느님께 속해 있는 우리의 참 자아는 어제나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 존재한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나는 사랑이었다”나 “나는 사랑일 것이다”가 아니라 “나는
사랑이다”라고 말씀하셨다.

- (인생 회고) 인생 회고는 정신건강에 좋을 뿐만 아니라 중년기와 노년기의 우울증을
치료하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은 인생을 회고하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느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고 그 계획이 실현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하느님은 궁극적이고 영원한 현재이시다. 그리고 우리의 사명은
이 영원한 현재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깨닫고 그분과 친교를 맺는 것이다.

- (완점함과 절망의 대결) 인생의 마지막 단계인 노년기는 완전함과 절망의 대결이다.
완전함은 궁극적으로 성스러움과 통한다. 완점함과 성스러움의 반대되는 개념은 분열
또는 절망이다. 노년기에 들어선 사람들은 두가지 형태의 절망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심술궃음’이다. 이런 절망을 품고 있는 사람은 늘 화가 나 있다. 모든 것을 비난하고
고압적이고 융통성이 없으며,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말에 대해 절대적인 확신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사람들은 타인을 위협하고 두려움을 갖게 한다. 또다른
형태는 ‘자기 혐오’이다. 자기를 혐오하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 좋은
일은 하나도 없었다며 회한에 젖는다. 인생 회고를 통하여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완전함이다. 인생회고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완전하게 해주는 원칙들을
인식하게 되고, 또한 자신의 삶은 그 자체로 완전하고 따라서 성스럽다는 사실을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게 된다.

- (자신의 욕구도 중요하다) 현실에 충실한 삶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는 자신과 타인의
욕구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매순간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중요한 선택을 하고 있다. 우리가 매순간 선택할 수 있는 17가지 항목은
다음과 같다. 1. 성령-세상 2. 용서-저주 3. 평화-혼란 4. 자유-구속 5. 천국-지옥
6. 의미-허무함 7. 분별-맹목 8. 배움-존재 9. 내적 삶-외적 삶 10. 깨어 있음-잠들어
있음 11. 사랑-잘못 12. 그리스도의 빛-세상의 어둠 13. 화합-분열 14. 기쁨과행복-
두려움 15. 진리-거짓 16. 행복-올바름 17. 가치-무가치

-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 순간을 자신이 바라는 대로 채울
선택권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을 배움과 치유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고, 혼란과 고통의
시간으로 만들 수도 있다. 모든 것을 현재의 연장으로 해석하여 순간마다 현재 속에
살 수도 있고, 반대로 현재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나 앞으로 일어날 일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며 살 수도 있다. 결국 모든 것이 선택의 문제이다. 오늘이 우리 세상의 중심이
되게 하자. 과거는 과거에, 미래는 미래에 머물게 하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로
하시고 하느님께서 이 영원한 ‘지금’ 속에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실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여기에 우리의 평화가 있고, 사랑이 있고, 우리
활기찬 영혼이 있고, 우리 젊음이 있고, 우리 영원이 있다.

[ 5. 진정한 자아를 찾아라 ]


- (방법에 대한 정의) 세상의 관점에서 본 자기 모습이 아니라 성스럽고 진실된 자아를
발견하고 ‘소유’하게 되는 정도.

- (성숙함이란 무엇인가?) 젊음은 실제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 삶에 사랑과 기쁨을
주는 영적 활기이고 신선함이며 정직함이란 태도이다. 이와 같이 젊음은 몸이 아닌
마음의 상태, 즉 태도이기 때문에 젊음을 선택할 것인가 말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렸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 성숙해 감에 따라 자신의 젊음을 드러내는 태도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된다. 성숙이란 ‘머리’의 논리만큼이나 ‘가슴’의
논리를 중시하는 선택 과정을 말한다.

- (자긍심 부족이 노화를 촉진한다) 영혼에 활력을 주는 기본 요소중 하나는 자긍심이다.
자긍심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한다. 반대로 자긍심이 강한 사람은 자신은 가치있는 사림이고 사랑스럽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어찌 됐건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하느님의 자녀
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사랑스럽고 가치있는 존재이다. 자긍심이 부족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모두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고, 노화가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다) 우리는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생각은 자신과
나누는 대화이다. 자긍심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겸손하면서도 긍정적이고 자신감을
높여주는 말을 들려준다. 자신과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가 자긍심을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이 세상이 아닌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자아이다.
여기에 이 세상이 주는 두려움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진리가 있다. 진실로 자신의
성스러운 자아와 일치를 이루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진리와 아름다움에 기뻐서 황홀
상태에 빠지는데 이런 깊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영광’이라 부른다. 영광에는 세가지
구성요소가 있다. 첫 번째는 빛이다. 우리 모두는 세상의 빛이다. 하느님을 닮은 자녀
들이기 때문에 빛을 발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아름다움이다. 우리에게는 세상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능가하는 매력과 아름다움이 있다. 세 번째 요소는 지위이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다. 우리는 우주의 어떤 창조물보다도 높은 지위에 있다.

- (자신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다섯 가지 방법/ 실천 방식) 기도, 묵상, 그림그리기,
이야기 쓰기, 일기 쓰기이다. 첫 번째 방법은 기도이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영원하신 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묵상이다. 묵상은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이다. 하느님께 우리의 생각을 말씀드리고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대화의
시간이다. 세 번째 방법은 그림 그리기이다. 그림 그리기를 통해 의식의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잠재의식 속에 있는 혹은 의식 이전에 있는 자신의 존재를 만나볼 수 있다.
네 번째 방법은 이야기 쓰기이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의식세계에서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내면의 자아에 접근할 수 있다. 다섯 번째 방법은 일기 쓰기이다. 영적 통찰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나중에 일기를 다시 읽어보게 되면 생활습관과
마음의 흐름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 (거울) 영혼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한 다섯 번째 방법의 상징은 거울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은 자아성찰의 적절한 상징이다. 우리는 물질적 차원을
넘어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성스러운 자아를 발견하고 기뻐할
때 인간을 변화시키는 하느님의 크신 능력에 온전히 자신을 맡길 수 있을 것이다.

[ 6. 용서하라 ]


- (방법에 대한 정의) 용서의 본질을 이해하고 생활에서 실천하는 정도.

- (몸 마음 영혼의 관계 ) 몸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병이 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마음의 태도가 원인이 되어 병이 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족간의
관계, 친구 관계, 야망, 희망과 두려움, 세상의 기대 등 많은 것들이 신체 기능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 (건강을 해치는 세균) 비난, 심판, 비판, 분노와 원한은 병을 일으키는 주범이며
영혼의 활기를 훔쳐가는 도둑이다. 이런 감정들은 몸의 곳곳에 독소를 퍼뜨리고
영혼이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못된 세균들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용서가 가장
중요한 자기 보호 수단이다. 용서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평화롭고 더 완전하며 더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 (끊임없이 용서하라) 용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인간은 용서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하느님만이 용서를 하실 수 있고, 우리의 모든 잘못과 죄를 용서하셨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마음의 문을 열어 용서의 가능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뿐이다.

- (용서가 아닌 것) 우선은 용서는 잘못을 한 사람에게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둘째,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죄를 뉘우치고 보상을
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용서가 아니다. 셋째, 용서는 우리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넷째, 용서는 화해가 아니다. 우리는 용서와 화해를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용서한다는 사실을 용서받는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용서는
우리 자신과 하느님 사이의 일이다.

- (조건없는 용서) 조건없는 용서는 가장 순수하고 완전한 형태의 용서이다. 우리는
자신이 이런 용서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조건 없는 용서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하느님이 부르시는 데로, 아무 조건 없이 완전한 용서를
향해 나아갈 수는 있다.

- (용서의 원칙) 용서를 통하여 마음의 짐을 벗어버리고 평화를 얻기 위한 네 가지
원칙을 소개한다. 첫 번째, 자신에게도 잘못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 들여라.
두 번째, 원한을 버려라. 세 번째, 사랑하겠다는 적극적 결단을 내려라. 네 번째,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라.

- (용서의 실질적 혜택) 용서의 혜택은 첫째, 용서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시킨다.
둘째, 용서는 용서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소모하는 에너지를 다른 좋은 곳에 쓸 수
있게 해준다. 셋째, 용서는 더욱 풍요로운 삶을 허락한다.

- (다리) 영혼의 활력을 지켜주는 여섯 번째 방법의 상징은 다리이다. 용서라는
다리를 이용하여 우리는 고통과 불신과 두려움의 강물을 건널 수 있다.

- (사랑을 실천하라) 우아하게 나이 들어가며 평화롭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은
분노를 인정하고 이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들은
분노를 남을 공격하는 대신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 7. 분노와 마음의 소용돌이를 잠재워라 ]

- (방법에 대한 정의) 마음의 평화와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정도.

- (분노는 인간의 성숙한 감정이다) 분노는 인간의 중요한 감정이다. 분노의 목적은
다른 강한 감정과 마찬가지로 ‘동기 부여’라고 할 수 있다. 분노는 우리가 평소에는
하지 않는 행동을 취하도록, 혹은 평소에는 마음속에 깊이 담아두는 감정을 표출하도록
자극을 준다. 분노의 두 번째 목적은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친밀해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세 번째 목적은 타인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다. 네 번재는 다른 감정들, 특히
상처를 숨기는 것이다. 분노의 또다른 목적은 우리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다. 분노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표현하고 남들에게 의무를 강요하는 효과적 수단이다. 분노의 목적은
남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여 유익한 방향으로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분노는 자신이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고 통제할 능력이 있을 때, 오래 머물지
않고 사라질 때, 누구도 다치지 않를 때에만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 (맨홀 뚜껑) 마음에 분노를 쌓아 놓고 있는 것은 빨리 늙으려고 애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분노를 오래 간직하고 있으면 남을 절대로 용서하지 못하게 되고, 이는
건강에도 매우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영혼에 활력을 주는 방법의 상징은 맨홀 뚜껑이다.
아주 오랫동안 분노의 감정을 맨홀안에 집어 넣고 뚜껑으로 덮어 놓으면 받는 압력이
점점 높아진다.

- (분노와 두려움) 분노는 노화를 촉진시킨다. 분노는 치명적인 독성을 가지고 있는
에너지이다. 분노를 해결하지 않고 마음에 오래 품고 있으면 이 분노가 우리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공격에 대한 방어태세를 유지하게 하므로 몸 안의 활기가 점점 줄어
든다. 오랫동안 마음에 원한을 품고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닫아버리는 것과 같다.

- (분노를 버리는 방법) 분노를 비롯한 마음의 소용돌이를 잠재우기 위한 세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잘못과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구별한다. 둘째, 잘못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극복한다. 셋째, 조건없이 용서한다.

[ 8. 아낌없이 베풀어라 ]

- (방법에 대한 정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얼마나 일을 하는가?

- (주는 것이 받는 것) 아무 조건없이 남을 돕는 사람들은 삶에서 커다란 기쁨을
발견한다. 이런 사람들은 영적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더욱더 젊어지고 있다. 심리학계는
이런 이타주의를 ‘사회친화적인 행동’이라고 했다. 사회친화적 행동이란 다른 누군가를
돕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와 문화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 (이타주의에 대한 연구)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봉사활동이
봉사자들의 건강에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주는 것’이 ‘받는 것’으로 바뀌는
데에는 직접 얼굴을 대면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외감은 두려움과 긴장과
근심 걱정을 부추기고, 이런 부정적 감정들은 노화를 촉진한다. 남에게 베풀고 친교를
맺는 것이 실제로 노화를 더디게 한다. 활동적이고 성급하며 경쟁심이 강한 사람들은
통계적으로 볼 때 심장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치료방법으로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 (노화과정에 대한 연구)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직접 돕고, 자신을 개방하고
남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 보다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며 더 오래
살고 더 생산적인 삶을 산다. 우리 몸의 건강 증진 시스템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 때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 (베풀 때의 느낌) 연구조사에서 ‘사회친화적 행동’에 따른 느낌에 대한 응답들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남을 도울 때 기분이 좋고 자신에 대해서도 더 좋게 느낀다.
둘째, 남을 도울 때 내가 더 강해지고 더 활기에 찬 것 같다. 셋째, 주위가 따뜻해
지는 기분이다. 넷째, 남을 도울 때 더 침착해지고 우울한 기분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다섯째, 내 자신을 더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여섯째, 남을 도울 때 내 몸의 통증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 (사랑은 세상의 법칙을 넘어선다) 세상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내어 주면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사랑은 분명히 세상의 법칙을 넘어선 곳에
있다. 주면 줄수록 커지고 풍요로워지는 유일한 선물이 사랑이다. 하느님으로부터
우리가 받은 선물을 남에게 베풀지 않으면 그것을 잃게 된다.

- (무엇을 어떻게 베풀 것인가) 노년기는 인생에서 도전이 많은 힘든 시기이다.
그렇다고 나이가 듦에 따라 우리의 자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힘, 민첩함,
민감한 감각 대신에 지금은 결단력, 이해력, 인내심과 지혜가 있다. 한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우리가 자신을 남에게 내어주는 과정에서 자신감과 긍지를 잃어서는
안된다. ‘주는 것’이 아무리 숭고하고 사라에 넘친 활동이라도 때때로 이 활동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 (정년 퇴직자들이 할 일) 노년기를 맞은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새로운 목표
설정이나 목표 부재이다. 아무 목표없이 휴식을 위한 휴식만을 취하는 것이 생활의
전부가 되면 남에 대한 관심과 세상을 보는 인식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대단히
활동적인 사람이라도 그런 생활을 하다 보면 모든 것이 시들해 지고, 결국에는 더
빨리 늙고 병들게 된다 남을 돕는 것은 정반대의 역할을 한다. 사람을 약하게 하고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하고 완성시킨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10,8).

- (포장된 선물) 영혼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한 여덟 번째 방법의 상징은 아름답게
포장된 선물이다. 포장을 풀어보면 상자안에는 이름만 쓰여진 카드 한 장이 들어
있다. 이것은 우리가 하느님께서 세상에 주신 선물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하느님
자비와 사랑의 강물이 되라는 소명을 받았다. 이 소명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을
내어주어야 한다. 이 말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재능을 다른 사람과 나누라는 말이다.
이렇게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우리 자신도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 9. 신앙에 기뻐하라 ]

- (방법에 대한 정의)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에 대해 확신하는 정도.
- (신앙 : 젊음의 원천) 신앙은 영적 활력의 원천이다. 신앙은 젊음의 원천이다.
신앙은 우리 안에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것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며,
이 믿음은 노화 과정을 영혼의 모험으로 변화시킨다. 신앙은 영혼의 요람이다.
우리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더욱더 발전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신앙이라는 힘이다. 진정한 신앙은 좌충우돌하는 인간 욕망과 마음의 의혹을
잠재우고 두려움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인적 확신이다.
신앙은 우리가 영혼이라는 정원에 심고 돌보아 온 ‘씨앗들’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게 해준다.

- (신앙이 자라나는 시기 : 노년기) 세상은 늙어감이란 유(有)에서 무(無)로 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신앙은 이러한 세상의 소리를 잠재우고 어떠한 고통에도 하느님의
뜻이 있으며, 죽음은 이 세상의 차원을 넘어선 삶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신앙이 없다면 삶에는 아무런 목표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신앙이 그만큼
중요하다. 신앙이 없으면 절망밖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 (어린이 같은 마음) 신앙은 행복을 경험하게 해준다. 어린이가 부모에게 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듯 우리도 하느님께 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영혼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한 다른 어떤 방법도 신앙이 없으면 실천에 옮길 수 없다.
신앙과 함께 이런 방법들을 실천할 때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 (신앙과 마음의 행복) 마음의 건강상태를 보여주는데는 네 가지 단계가 있다.
첫 번째는 ‘신경과민’이다. 신경과민은 우리가 삶을 즐기는 것을 방해한다. 두 번째는
‘온전함’이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나가고 있지만 정신적인
성장은 멈춘 상태에 있다. 세 번째는 ‘건강’이다. 정신이 건강하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육체적, 감정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모든 일을 잘 해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정신 건강 상태의 가장 높은 단계는 ‘영적 깨달음’이다. 다른 말로는
‘신앙’의 단계라고도 한다. 영적 깨달음의 단계에 있는 사람은 영혼의 진정한 현실과
영혼의 활력과 영혼의 젊음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영적 깨달음을 얻고
현실을 바로 보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사랑을 찾고 사랑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랑이야 말로 진정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 (신앙을 실천할 때) 노후의 경제생활에 대해서 계획을 세워놓은 사람은 꽤되겠지만
삶에 대한 계획을 세워놓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삶을 이끌어 갈 계획은
하느님께서 세워 놓으셨다.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 들이고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계획을 버리고 신앙의 힘으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 (돛단배) 아홉 번째 방법의 상징은 돛단배이다. 배가 나아가기 위해서 돛이 필요하듯
신앙은 영혼의 성숙을 위해 꼭 필요한 돛과 같다. 우리에게 힘을 주는 신앙을 영적
발전을 위한 돛단배로 여겨야 한다. 우리 또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신앙의
돛을 높이 올리고 나이 듦이라는 아름다운 섬을 향하여 힘차게 항해해 나가야 한다.

[ 10. 삶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라 ]

- (방법에 대한 정의) 우리 인생의 깊은 의미를 볼 수 있게 해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인식의 정도

- (선은 사랑의 실천) 우리는 선을 추구함으로써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선은 ‘사랑의 실행’이다.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을 할 때 선을 실천하는 것이다.
친절하고 관대하고 인내심 있고 희망에 차 있고 남에게 자비를 베풀고 서로 신뢰하며,
신앙이 있고 포용력 있고 동정심을 가지고 행동할 때 선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한다. 늘 깨어 하느님을 찾아야 한다.

- (인생의 의미에 대한 혼동) 삶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기만의 독특한 정서
혹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인생의 의미를 찾는 유일한 방법은 삶의 목적을
갖는 것이다. 삶의 목적이 생기면 삶의 의미는 자연히 갖게 된다. 삶의 목적은 특정한
일에 대한 사명, 목표, 노력, 방향에서 온다. 우리 삶의 목적은 자신의 능력보다 더
큰 무엇으로 삶의 방향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정년 퇴직 후 노년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은 삶의 목적과 의미를 몸과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는 것에서 찾으면
된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몸과 마음을 다하여 자비를 베푸는 힘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말씀하신 예수께로부터 온다.

- (다이아몬드)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하느님의 일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은
우주를 움직이는 힘이다. 희망, 자비, 신앙, 자선, 활력, 포용력, 검소, 인내, 겸손 등은
사랑의 결과이다. 우리는 사랑을 볼 수 없지만 사랑에서 나온 행위, 즉 결과를 통해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영혼에 활력을 주는 열 번째 방법의 상징은 다이아 몬드이다.
다이아몬드의 주된 용도는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 광석은 햇빛 속에서 찬란한
무지갯빛을 발한다. 다른 어떤 것도 다이아몬드처럼 화사한 빛을 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자신이 다이아몬드라면 우리가 행하는 선한 행동은 다이아몬드의 평면이다.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의 빛이 우리의 선한 행동이라는 평면을 통해서
굴절되어 세상에 반사된다.

- (인성 개발의 토대) 신구약 성서에는 신앙과 자비, 희망, 신뢰, 포용력, 인내 등과
같은 구체적인 선행의 중요성이 자주 언급된다. 성서에서 보여주듯 선한 행동들은
영적 성장의 튼튼한 토대가 된다. 모든 선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 원천은
같다. 그 원천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다.

- (선은 그대보다 더 값지다)
하느님은 선에 대하여 세상이 줄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더 큰 보상을 해주신다. 선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왕국을 주시는 것이다.
이 하느님 왕국의 선물중의 하나가 마음의 젊음이다. 선에 대한 대가 중 또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 적극적으로 함께하신다는 깨달음이다. 하느님 사랑이
우리의 선행을 통하여 세상을 바꾸어 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가치있는 삶인가를 분명히 깨닫게 해준다.

- (삶의 궁극적 실패) “인생의 궁극적 실패는 죽음이 아니라 인생의 도전을 받아
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버니 시걸 박사). 나이듦의 과정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위험 부담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노년기를
맞이해야 한다. 우리가 삶의 매순간마다 자신의 다이아몬드 표면을 갈고 닦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신앙의 힘으로 발걸음을 내딛고 희망에서 동기를 얻으며, 평화를
찾고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독특한 방식으로 하느님 사랑의 빛을 발할 능력을 개발할
것이다.

[ 11. 감정의 포로가 되지 말라 ]

- (방법에 대한 정의) 나이 들어감에 따라 부닥치는 모든 사건과 관계없이 상황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관리할 수 있는 정도이다.

- 우리는 모든 것을 느낀다. 느낌은 생각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다. 느낌 중에는 우리
영혼을 새롭게 하고 마음에 영감을 주며 정신을 맑게 하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실망
이나 낙담같이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들도 있다.

- (무대) 열한 번째 방법의 상징은 무대이다. 느낌은 삶이라는 드라마를 펼쳐나가는
힘이다. 느낌이 있을 때는 삶의 모든 일과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적극적 관계를
맺고 인생 드라마를 펼쳐가게 된다. 감정이 없는 삶은 마치 사막과 같다. 세상 어디
에서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지만 느낌이 없는 삶은 아름다움을 찾기 힘든 무대가 된다.
자신의 느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 두려워서 감정을 억누르기만 하면 자신의 삶의 무대에서 제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된다.

- (느낌은 표현을 갈망한다) 우리의 감정은 항상 표출되기를 갈망한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다. 반면에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고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감정을 바깥으로 표현하지 못하면서
마음속에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마음에는 감정을 저장하고 청소하는 비장과 같은
장기가 없다. 마음속에 쌓인 감정들은 관절이나 폐, 내장, 머리, 목, 어깨, 허리,
위 혹은 심장으로 간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결국 몸에 병이 나게 된다. 감정에 대한
부정적 심리 반응중의 하나는 감정을 다른 곳에 전위(轉位)하는 것이다. 전위는 자신의
감정을 다른 물건이나 일에 표출하는 것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격이다. 또 다른 심리 반응은 자신의 느낌을 남에게 투사(投射)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에게 ‘책임전가’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감정에 대한 심리 반응 중에 반동형성
(反動形成)이라는 것도 있다. 속으로는 반대의 입장이면서도 무조건 칭찬하고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 (느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느낌을 다루는 긍정적인 방식은 다섯 단계로 된다.
1. 느낌에 이름을 붙인다. 바로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2. 느낌을
인정한다. 마음 안에 있는 느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3. 느낌을 길들인다.
느낌을 길들이거나 통제하는 것이다. 4. 느낌의 표현 방식을 선택한다. 특정한 느낌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을 살펴보고 선택하는 단계이다. 5. 느낌을 표현한다. 특정한
느낌을 표현할 다양한 방식에 대해서 살펴보고 난 다음 가장 적절하다는 판단이 되는
것을 골라 실천에 옮겨야 한다. * 우리에게는 자신의 느낌을 표현할 의무에 덧붙여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해야 할 의무도 있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어떤 느낌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도 건강한 표현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 (느낌은 결정을 내리라고 요구한다) 느낌의 수행은 믿음, 인식, 생각, 느낌, 결정,
행동의 여섯 가지 기능(단계)이 있다. 건강하게 생활하는 사람은 잘 돌아가는 바퀴처럼
이 단계를 모두 밟아 결정에 도달하고 결정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중간에 바퀴가 헛도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느낌의 단계에서 결정의 단계로 옮아가지
못하여 행동으로 느낌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울증을 경험할 수도 있다.

- (우울증) 우울증은 심각한 질환이며 특히 노년기에 많이 찾아 온다. 우울증은
생물학적 원인을 포함하여 다양한 원인으로 생긴다. 우울증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느낌의 단계에서 결정을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감정 파악과 인정으로 시작되는
환자 중심의 심리 치료는 결정과 행동 단계에 이르러서야 서서히 효과를 보이기
시작한다. 마음의 문을 열어 변화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감정을 보살피기 시작할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 (마지막 한마디) 분명히 알아 두자. 인생은 드라마이고 우리는 매일 삶의 무대에
올라가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삶을 충만하고도 완전하게 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등불을 됫박 속에 숨기지 말고 남들이 볼 수 있도록 등경 위에 매달아놓으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등경을 무대 위에 올려 놓아라.”

[ 12. 삶의 균형을 유지하라 ]

- (방법에 대한 정의) 삶의 다양한 분야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역량, 삶의 각
분야에 대해 똑같이 열과 성을 다할 수 있는 역량.

- (우리 안에 있는 지혜) 노화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보면 성숙 과정이고, 영적
측면에서 보면 깨어남의 과정이다. 몸이 나이를 먹으면서 쇠약해지는 것이 본질이다.
그러나 마음은 나이를 먹으면서 인식의 폭이 넓고 깊어지며, 더 정확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고 점차 깨어나게 된다. 우리 영혼은 경험을 축적하고 깨어나는 마음과
협력하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삶의 질을 높여주는 ‘지혜’를 창조해 낸다.

- (돌아가는 접시) 열두 번째 방법의 상징은 서커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접시
돌리기이다. 돌아가는 접시가 우리 인생과 비슷하다. 인생의 균형이 잘 맞으면
특별히 애를 쓰지 않아도 인생이라는 ‘접시’는 잘 돌아간다. 삶의 균형이 깨지면
접시가 흔들리듯 우리는 흔들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저 계속 살아가는
데에도 엄청난 힘이 들어 인생을 즐길 여유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 (삶의 균형이란 무엇인가?) 인생은 여섯 개의 접시를 돌리는 서커스와 같다.
여기서 말하는 여섯 개의 접시는 우리 삶을 구성하는 여섯 가지 분야를 가리킨다.
1. 직업 2. 가족, 사회, 개인, 신앙, 여가 생활이다. 삶의 균형을 잃은 사람은 여섯
가지 생활 분야 중 어느 한두 가지 분야에 모든 시간과 힘을 다 쏟아붓고 있다. 이렇게
어느 한 분야에 집중하다 보면 나머지 분야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여가 생활에 더 많은 힘을 쏟기를 바란다면 다른 분야에 들어갈 에너지를
가져와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이 여섯 가지 분야(총 100%)중에서 어디에
얼마를 할당할 것인가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

- (삶의 균형과 질병) 어느 한 분야에만 집중하여 균형이 깨진 생활을 하면서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각종 질환의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청장년기에는 특정한
분야에 에너지를 더 많이 쏟아야 할 경우가 있다. 그러나 노년기에 접어들게 되면
삶의 각 분야에 들어 갈 에너지를 재분배하고 균형을 꾀할 좋은 기회가 생긴다.
이전까지는 불가능하던 삶의 균형을 이룰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휴식하는 것도
좋다. 여가 생활을 충분히 즐기는 것도 좋다. 다만 휴식과 여가생활에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붓지는 말았으면 한다. 휴식과 여가생활만으로는 삶의 균형도 삶의
기쁨도 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 (풍요로운 삶이란) 우리는 늙어가면서 몸과 마음과 영혼의 균형을 맞추어 나가게
된다.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성장해 가기 위해서는 몸뿐 아니라 영혼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이제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중장년에 주로 일러난다. 에너지를 재분배하게 만드는
경험이 축적된 것을 우리는 ‘지혜’라고 부른다. 지혜는 성숙화 과정의 결실이자 선이다.
삶의 결과와 그 결과인 지혜는 이제까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삶의 균형은 지혜를 낳고, 지혜는 영적 활력의
주요 요소이다.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은 모든 감각과 지시과 영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균형잡힌 삶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풍요로운 삶이고,
그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다

-end.



 

금주의 독서 메모 018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1.01.31.

[ 성서의 상징 50 ]

- 미셸 크리스티안스 지음, 장익 옮김/ 179p
- 성서 안에서 쓰이고 있는 50가지의 주된 상징들 설명
- 지은이 프로필 : 1928년 벨기에 출생, 순심회 사제, 일본내 성당 주임 역임,
성서와 교회사 강의, '성서백주간' 지도 담당 등


[ 책 표지의 글에서 ]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나는 속마음을 들여다본다"(1사무 17,7)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느님 스스로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표징을 통해 드러내십니다.
강생한 말씀이신 예수님야말로 그런 상징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능률과 가시적 성과만 좇느라
그러한 산 상징세계에 대한 감각을 잃어가며 그저 삶에 시달린 나머지
마음의 고요와 순진한 눈을 되찾기 어려워진 것일까 묻게 됩니다.

성서는 추상적인 언어보다 비유나 상징으로
참 생명의 길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성서 그 자체가 전부 하나의 거룩한 상징입니다.



[ 1. 기름 ]

- 이집트와 이스라엘 등 지중해 둘레의 나라들은 올리브나무가 많은 지역이다.
그 열매로 올리브 기름을 짜서 여러 용도로 쓰고 있다. 목욕을 하고 나서 몸에
올리브 기름을 바르곤 한다. 약, 요리, 등잔의 기름으로도 쓴다. 올리브 기름은
‘생명의 풍요와 충만’의 상징이었다. 올리브 기름에 향료를 넣어 향유를 만들었다.
신약성서에서는 손님에 대한 최고의 환영의 표시로 그 머리에 향유를 바르는
장면이 보인다(마르 13,3-9).

- 올리브 기름과 향유는 종교의식에도 쓰인다. 사제, 왕, 예언자 등의 임명식에는
향유(聖香chrisma)를 온 몸에 발랐다. 하느님의 힘과 하느님의 영이 그들 위에
가득 내리도록 기원하는 훌륭한 의식이었다. 그리고 기름부음 받은 분을 메시아
(도유된 자)라 일컬었다. 신약성서는 나자렛 사람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기름부음
받은 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세례와 견진 때에 성향유로 도유된다.
또 병들었을 때는 병자도유의 성사를 받는다. 사제와 주교의 서품식에도
성유를 쓴다. 기름이라는 하느님의 훌륭한 선물을 받아 그 그윽한 향기를 통하여
하느님의 힘과
성령을 받는다.

[ 2. 알파와 오메가 ]

-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은 그리스어 알파벳의 첫 자(Α)와 끝자(Ω)이다.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나타낸다. 이사야서 44장 6절에는 “이스라엘의
임금이신 구세주,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시작이요, 내가 마감이다.
나밖에 다른 신은 없다’”고 했다. 요한 묵시록 1장 8절에도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하고 말씀하셨다”
라고 쓰여 있다. 하느님만이 처음과 마지막을 지배하신다.

- 중세의 가톨릭 교회와 동방교회 성당의 제단 위에는 온 우주의 지배자로서
‘만유의 지배자’인 그리스도의 모습을 곧잘 그리곤 하였다. 이 그리스도의 후광
안에 알파와 오메가 두 자가 새겨져
있는 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모든 것의 시초이며 완성이라는 의미이다. 부활초에
나타나는 십자가에도 알파와 오메가 두 자가 새겨진다.

[ 3. 희생 ]

- 어떤 문화권이든지 종교에는 신 또는 제신(諸神), 신령 등에게 공물(供物)을
올리는 관습이 있었다. 신 등에게 무언가를 바치는 대신 특별한 혜택 또는 용서
또는 가호를 비는 행위이다. 공물은 지역의 문화에 따라 그 형태가 여러 가지이다.
농경민족은 주로 과일이나 곡식이나 야채를 바쳤고, 유목민이나 가축을 기르는
민족은 주로 짐승을 바쳤다. 이스라엘 사람은 유목민족이 아니라 가축을 치는
농민이었다. 짐승을 봉헌한다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을 산 채로 신에게 바치는
일이라서 희생(犧牲)이다.

- 희생에 관한 매우 상세한 기록을 남긴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루가복음 2장 24절에
보면 예수님의 양친이 아드님을 주 하느님께 드리기 위해 비둘기를 희생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스라엘에 있어 희생의 또 하나의 요소는 피흘림이었다.
피는 곧 생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하느님께 올리는 특별한 봉헌물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빵과 포도주에 의한 신비적인 희생이 되어 오늘날 교회가
드리는 예배의 중심이 되었다.

[ 4. 인(도장) ]

- 어느 나라에서든 인감(印鑑)이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우리들이 서류에
날인하듯이 인감은 공식으로 문서를 정당화하는 데 쓰였다. 아주 옛날에는
용지 대신 얇은 점토판을 썼다. 거기에 내용을 적고 인감을 찍어 구어서 굳혀
이를 증거로 남겼다. 바빌로니아 지역에서는 오늘까지도 그러한 점토판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인감은 주로 흔히 손가락에 낀 반지라든가 목걸이에 달린 팬던트
(보석과 같은 장식) 모양을 뜬 것이었다. 아직도 교황님의 인새(印璽)는
반지의 형태로 되어 있다.

-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과 우리를 굳세게 해주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사명을 맡겨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사람으로
확인해 주셨고 그것을 보증하는 인호(印號)로 우리의 마음에 성령을 보내주셨
습니다(2고린 1,21-22)”라고 말했다. 하느님 당신이 우리들의 마음에 인장을
찍어 우리를 당신의 것으로 삼으셨다는 말씀이다. 세례와 견진 때에 사제 또는
주교가 영세자나 견진자의 이마에 성향유를 바르는 것도 하느님의 인장을 찍어
그 교우가 하느님의 것임을 드러내 준다.

[ 5. 황소의 뿔 ]

- 고대 종교의 주된 목적은 희생, 공물, 기도 등을 제신에게 바침으로써 되도록
풍성한 수확과 다산을 얻는 일이었다. 이러한 종교행사를 풍요의식이라고 한다.
중동아시아에서는 축산농업이 경제의 토대를 이루었다. 가축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동물은 소였던만큼 황소가 자연히 풍요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에집트,
가나안 등지에서는 황소의 우상을 숭배했다. 사마리아 신전에 모신 신은 황금으로
만든 황소였다. 이 황소는 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야훼)을 구상화한 것으로
본래 진정한 의미의 우상숭배는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상(像)을 금한다는 십계명
중 둘째 계명을 거스른다하여 예언자들은 사마리아 신전을 우상숭배의 거점으로
보아 맹렬히 비난했다. 황소의 숭배를 비난하는 한편 성서 안에는 그럼에도
황소의 뿔이 ‘하느님의 힘의 상징’으로 곧잘 쓰였다.

- 황소의 뿔에 기름을 담아 그 기름을 사제에게 붓는 의식이 있었다. 이것은
사제에게 하느님의 힘을 태어준다는 의미이다. 예루살렘 성전 제단의 네 모서리에도
뿔이 달려 있다. 황소 자신에게도 뿔은 역시 소중한 무기이다. 그 뿔로 소떼를
적으로부터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황소의 뿔은 하느님의 힘, 우리들을 지켜주는
상징이 되었다.

[ 6. 띠 ]

- 옛날에는 바지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남녀 모두가 통으로 된 옷을 입었다.
그리고 기장을 조절하거나 행동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허리에 띠를 맸다. 띠는
사람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가르는 역할과 함께 모양으로 몸을 꾸며 ‘왕이나
권력자의 품위내지 힘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띠는
권위와 직분의 표시였다. 바오로가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굳건히
서서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로 가슴에 무장을 하고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알리는 준비를 신으로 신고 있어야 합니다” (6,14-15) 라는 말도 마음가짐을
촉구하고 있다. 요한 묵시록은 “등경 한가운데에 사람같이 생긴 분이 서
계셨습니다. 그분은 발끝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1.13) 하며 메시아의 권위와 권력을 금띠로서 나타내고 있다.

- 조선의 왕조시대에는 벼슬의 품계와 위의를 나타내는 관복 정장에 쓰던
사모관대(紗帽冠帶)에도 반드시 띠를 띠게 되어 있었다. 가톨릭 교회는 예로
부터 띠를 매우 소중히 여겨 왔다. 수도자도 사제도 언제나 띠를 매고 있었으나
요즘 와서는 별로 쓰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 7. 수탉 ]

- 수탉은 모든 동물중에서도 가장 일찍 새벽을 알리기에 온세상 문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쳐 왔다. 성서 안에서도 수탉은 그 상징의 하나가 되어
풍요를 말하는 징표 노릇을 한다. 한편 싸우러 나서는 자존심을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의 팔라스 아테네 전쟁의 여신 곁에는 수탉이
서 있다. 조금 더 신비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수탉의 소리는 어둠(죄와 죽음)을
몰아 내고 빛(선과 생명)을 일으킨다고 여겨 악에서 깨어나는 마음과 죽음에
대한 승리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 “비록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
습니다”(마태26,33) 하며 맹세하던 베드로는 수탉이 울기 전, 즉 어두운
밤중에, 예수라는 사람은 아는바 없다고 잡아떼며 세 차례나 배신을 한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고 베드로는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아 가슴을 치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초대교회 신자들의 묘석에는 수탉 그림이 새겨져 있는 것이
가끔 보인다. 이것은 죽음에 대한 부활의 상징이다. 유럽 교회의 종탑
꼭대기에 서 있는 수탉(베드로의 수탉)은 풍향을 가르키는 동시에 ‘언제나
깨어 있도록’, 그리고 ‘그리스도의 빛을 알리는 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도록’
우리를 재촉하고 있다.

[ 8. 열쇠 ]
- 성서의 세계에서는 적어도 4천 년 전쯤부터 열쇠가 사용되었다. 지중해
지역의 대부분 도시는 그 도시를 에우는 성벽의 문을 열쇠로 여닫았다.
신약성서에서는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어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 16,19)하신 말씀이 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이 말씀은 오늘의 베드로 후계자인 교황님이 교회 전체에 대해 지니는
권한을 뒷받침한다.

- 그리스도교 성화에는 예수님이 십자가라는 열쇠로 천국문을 열고 계시는
모습이 가끔 보인다. 베드로에게 천국의 문 열쇠가 맡겨졌다는 마태오 16장
19절의 말씀은 어느새 하나의 그리스도교 민중신앙이 되어버려 베드로
성인이 실제로 천국문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들 생각한다.

[ 9. 하나, 둘, 셋 ]

- 시간과 공간은 수(數)에 따라 분류되고 질서가 잡힌다.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존재 자체의 원리는 수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어떤 문화에서든지
수에는 제 나름의 의미가 있게 마련이다.
<하나> ‘하나’라는 수는 특히 한 분이신 하느님을 가르킨다. 모든 것의
근원은 하나였다. 그러므로 하나는 ‘일치’를 표시한다. <둘> 인간이 죄를
범한 결과 그 ‘하나’가 무너졌다. 선과 악, 남과 여, 삶과 죽음 등 모든
것이 둘로 갈리어 이 세상에는 분열이 생겼다. 전형적인 분열의 이야기가
바로 바벨탑의 설화이다. 그때까지 온 세상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 말로
이야기했었는데 오만의 죄의 결과로 온갖 언어가 생겨나 서로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둘’은 ‘분열’을 의미한다. 원래의 ‘하나’를 되살리는
것이 구원의 목적이기도 하다.
<셋> ‘셋’도 대단히 중요한 숫자이다. ‘셋’은 사물과 시간의 시작과 가운데와
마침을 가르킨다. 신기하게도 힌두교, 불교 등 대부분의 종교에는, 특히
그리스도교에는 ‘삼위일체’가 있다. 성서 안에서도 ‘셋’이라는 수는 귀중한
것으로 ‘셋’과 ‘세 차례’는 하느님의 세계‘를 가르킨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만군의 주 하느님”(이사 6,3) 하며 천사는
찬미한다. ’셋‘의 예를 들면 노아의 아들은 셋(셈, 함, 야벳), 구원사의
대조상은 셋(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등이고, 신약 성서에서도 삼위일체뿐
아니라 예수님이 세 차례의 유혹을 받기도 하고 사흘 동안 무덤에 묻혀
계시기도 하였다. 전례에서는 세 번 되풀이가 예사로 되어 있어 자비송,
감사송, 평화의 찬가 등 모두 세 차례씩 부른다.

[ 10. 넷 ]

- 거의 모든 문화에서는 ‘넷’이 자연을 표시한다고 여긴다. 예로부터 인간은
사방(四方)이 있음을 깨달으며 살았고 지구의 온대지역에서는 사계절이 있다.
‘넷’과 자연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리스의 한 철학자는 ‘모든 것은
토수화풍(土水火風) 4대 원소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쳤다. 성서에서는
“에덴에서 강 하나가 흘러 나와 그 동산을 적신 다음 네 줄기로 갈라졌다”
(창세 2,10)고 적혀 있다. 에제키엘 1장과 요한 묵시록 4장에는 하늘의
하느님 옥좌 둘레에는 네 마리 생물의 모습이 있어 전자연, 전세계의 힘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였다. 신약성서의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 4복음서는
곧 세계 사방에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복음서이다.

- 요한 묵시록 4장 7절에 나타나는 네 생물의 모습은 복음사가 각자의 상징을
이루고 있다. ‘마태오’의 상징은 인간 또는 인간의 얼굴이다.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임을 말하는 계보로 시작된다. ‘마르코’의 상징은 사자이다.
마르코 복음서는 시작이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설교로 광야의 왕이라
할 사자가 그를 상징한다. 루가의 상징은 황소이다. 사제 즈가리야가 지성소에
들어가 향을 피우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그를 상징하는 황소는
제단에서 바쳐지는 번제물을 가르킨다. ‘요한’의 상징은 독수리이다. 요한
복음서의 첫마디는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로 시작된다. 마치 독수리가
하늘 높이 날듯이 처음부터 드높은 하늘의 하느님 곁에까지 우리를 데리고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렇듯 네 복음서는 전세계의 구원의 상징이 되었다.

[ 11. 다섯 ]

- 모세오경은 구약성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신약성서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다섯 개의 빵으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다섯 명의 슬기로운 처녀와 다섯 명의 어리석은 처녀들의 비유,
그리고 다섯 달란트를 종에게 맡기고 길을 떠난 주인의 이야기가 있다. ‘다섯’
이란 수는 성서에 곧잘 쓰이고 있는 수인데도 그 유래는 전문가들도 분명히 모른다.

- 어쩌면 열의 반이 다섯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간이 자기 손과
발에 손가락 발가락이 다섯씩 달려 있음을 인식한 것과도 깊은 관계가 있을
듯하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계명을 주셨을 때 그 석판은 둘로 쪼개어 거기에
십계를 적어 주셨다. 한 쪽에 계명이 다섯씩 새겨졌던 셈이다. 십계명 처음의
반인 다섯 계명은 하느님과 어버이에 대한 계명으로 인간의 종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고, 다음의 반인 다섯 계명은 인간과 인간사이의 계명으로 인간의
행적인 관계를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천륜과 인륜으로 나뉘어 있다.

[ 12. 여섯 ]

- ‘일곱’은 완성을 의미하는 수인 만큼 ‘여섯’은 무언가 하나 모자라는 뜻을 띤다.
요한 묵시룩에 보면 “ 영리한 사람은 그 짐승을 가리키는 숫자를 풀어 보십시오.
그 숫자는 사람의 이름을 표시하는 것으로서 그 수는 육백육십육입니다”(13,18)
666은 반(反)그리스도, 즉 그리스도인의 적을 일컫는다고 여겼다. 당시 로마
황제 ‘네로’를 말한다는 설이 있다. 히브리 말에는 본래 숫자가 없어서 알파벳으로
수를 나타냈다. 히브리 말로 네로의 이름을 세어 보면 바로 666이 된다는 것이다.

- 묵시록은 결국 누구라고 명시하지 않은 채 그 인물이 세상 마칠 때에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가장 나쁜 인간으로서 심판받으리라고 말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쁜 수인 6을 666이라고 세 차례나 겹쳐 놓음으로써 가장 악한
적 그리스도를 말하려 했을 것이다.

[ 13. 일곱 ]

- ‘일곱’은 성서 안에서 가장 중요한 수이다. 성서가 집필된 시대에는 지구를
중심으로 일곱 개의 행성이 있다고 여겼다. 해도 달도 모두 행성의 하나라고
생각하여 행성의 이름들이 그대로 일 (日/해), 월(月/달), 화, 수, 목, 금, 토라는
요일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성서가 일곱이라는 수를 쓴 곳은 곳곳에 있다.
하느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어내시는 일을 마치고 강복하신 것은 이렛날이었던
연유로 이스라엘은 일주일간을 7일로 정했다. 레위기에는 칠 년마다 농사짓던
밭을 묵히는 규정이 있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일러주신 등잔대도 일곱 개의
등잔을 얹는 일곱 개의 가지가 있었다. 여호수아가 예리고를 쳐들어가던 날 성을
일곱 바퀴 돌아 이렛날에 기적적으로 요르단의 이 거점을 함락시켰다.

- 신약에서도 ‘일곱’이 나오는 모습이 있다. 용서해 관해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대답하신다. 요한 묵시록에는
거의 각 장마다 일곱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일곱가지 죄의 뿌리(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라든가 성령의 일곱 특은 (지혜, 통찰, 의견, 용기, 지식,
효성, 경외), 일곱성사(세례, 견진, 성체, 고해, 병자, 서품, 혼인) 등이 있다.
성서에서는 일곱(7)이 ‘행운’이 아니라 ‘완성’을 나타낸다. 일곱은 하느님의 세계인
‘셋’과 자연의 세계인 ‘넷’을 합친 ‘완성’을 나타낸다.

[ 14. 여덟 ]

- ‘여덟’은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수이다.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 물에 빠지지
않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여덟 사람뿐이었다. 홍수로 인류를 멸망시킨 하느님은
노아를 택하여 여덟 사람만을 구제함으로써 새로운 인류를 시작하셨다. 그리스도
교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3)로
시작하는 진복팔단의 행복선언이 나온다. 역학(易學)의 팔괘(八卦), 사람의 팔자
(八字), 불교에서의 팔정도(八正道) 등도 있다. 덧붙이면 ‘아홉’이라는 수는
성서에서 별뜻이 없다.

[ 15. 열 ]

- ‘열’은 인간의 손가락의 수효이다. 원시인들은 손가락으로 물건의 수를 헤아렸을
것이다. 옛날부터 열은 십진법의 기본이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높으신 하느님의 사제인 살렘왕 멜키세텍에게 드렸다고 씌어 있다.
또 레위기에는 이스라엘의 땅에서 수확한 것의 십분의 일은, 그것이 곡식이든
과일이든 가축이든, 주님께 바친다는 규정이 적혀 있다. 기독교에서는 십일조를
헌납하는 제도가 아직도 상당히 유효한가 보다. 신약성서에서는 열명의 처녀 이야기,
예수님께서 열 명의 나환자들을 고쳐주신 기적 이야기가 있다. 열은 열로 똑 떨어져,
보태지도 빼지도 못하는 수이다.

[ 16. 열둘 ]

- 성서에서 ‘열둘’은 일곱에 못지 않은 ‘중요한 수’이다. 일년에는 열두 달이 있고,
하루에는 12시간이 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십이진법을 취하기도 했고, 오늘날의
우리들도 열두 개를 묶어 한 다스라고 한다. 야곱의 열두 아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부족의 시조가 되었다. 대사제가 지성소에 들 때 입는 흉배에는 열두 개의 보석
(열두 부족의 이름)이 나란히 박혀 있었다. 열왕기 상권에는 소예언자도 호세아,
요엘, 아모스 등 열두 명이다. 에수님은 이스라엘 부족의 수를 의식하여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 등 열두 사람을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의
책임자(12 사도)로 뽑으셨다. 덧붙여. 니케아 신경도 열두 신조로 이루어져 있다.

[ 17. 열셋 ]

- ‘13일의 금요일’ 하면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으나 성서에서는 ‘열셋’
이라는 수에 아무 의미도 없다. 후일, 그리스도교 세계에서는 열셋이 불길 한 수가
되었다. 그것은 최후 만찬 때 열두 사도와 예수님을 합치면 열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열세 사람의 한 명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형당하셨기 때문에 열세
사람의 모임이라는 것은 불길하게 여기지게 되었다. 이에 더하여 그리스도께서
처형되신 날이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13일 금요일은 더더욱 불길한 날로 느껴지게
되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의 미신일 뿐이다.

[ 18. 서른 ]

-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나이 서른이 되면 ‘어른 세상에 드는 나이’에 이르렀다고
본다. 에를 들면 서른 살이 되어야 비로서 선생(랍비)이 되어 사람들 앞에서 가르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예수님께서도 서른이 되시고 나서야 공생활에 들어가신 것이다.

[ 19. 마흔 ]

- ‘마흔’은 성서의 세계에서 한 세대를 나타내는 수이다. 시나이에서 방랑하던 40년은
이집트를 탈출한 세대의 사람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시나이 반도에 머문 기간을 의미
한다. 그 40년에 걸쳐 이스라엘 사람들은 상상도 못했던 고난을 통해 교육을 받아야 했다.
이로부터 40이라는 수가 ‘고행기간, 시련기간’을 뜻하게 되었다. 창세기에는 노아의
홍수가 40일 동안 온 땅을 뒤덮었다고 하였고, 모세도 시나이 산 위에서 40일 주야를
머물고나서 하느님의 율법을 반포하였다. 예수님 자신도 공생활의 준비로 40일간의
단식을 하셨다. 같은 뜻으로 교회도 40일간의 사순절을 제정하여 지내면서 부활을 준비
하는 것이다.

[ 20. 천 ]

- ‘천’이라는 수는 천 개라는 의미 외에도, 성서에서는 아주 ‘많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성서에서 쓰는 히브리어에는 천 이상의 수를 가르키는 말이 따로 없다. 히브리 말로는
만은 십천, 십만은 백천, 백만은 천천 ... 이런 식으로 나간다. 성서에서의 ‘천’에 관해서는
번역 그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마저 있다. 요한 묵시록이 그 예로서,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각각 일만이천(십이 천)명이 구원의 날인을 받았다고 했다. ‘열둘’이란 상징적인
수이다. 이스라엘에 12지파를 일으키고 에수 그리스도께서 12사도를 뽑으신 것은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이, 그리고 신자 공동체인 교회가,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 열둘을 천으로 곱하여 일만 이천(히브리 말로는 12천)명으로 함으로써 요한 묵시록은
12지파 하나하나가 모조리 구원된다는 것, 다시 말해 구원된 사람의 수는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여호와 증인들이 말하듯이 그저 글자 그대로 일만 이천명만이 구원받는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12지파에서 각각 일만 이천 명씩의 사람들이 구원받는다는 말은 12x12
x1,000이므로 모두 합해 144,000명이 된다. 우리말 묵시록에는 그대로 ‘십사만 사천 명’
으로 옮겨(번역) 놓았으나, 이것은 열둘의 제곱의 천배. 다시 말해 구원 받는 사람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는 말이다.

[ 21. 할례 ]

- 아시아, 아프리카, 호주 등지의 여러 민족은 할례(割禮)를 행한다. 할례란 남근의
귀두부 포피를 베어내는 수술로서 아주 옛날부터 있어 왔다. 할례의 목적은 학자들도
잘 모르는 듯하다. 아이를 더 많이 낳는 소원이나 위생의 이유 이외에도, ‘어른이 되는 표시’로
보아 왔다. 대체로 사춘기가 시작되는 열두 살쯤에 할례를 받는다. 할례는 종교적인 의미도
있다. 하느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계약의 표시로 할례를 명한 이래 전통적인 의식으로
이어져 유대인 사내아이는 생후 여드레째에 할례를 받게 되었다. 그리스와 로마 제국에서는
할례를 금했다.

-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할례를 폐지하고 그 대신 세례를 베풀기로 하였다. 그래서 본례
세례는 유대교의 할례를 본받아 갓난아기에게 베풀게 된 것이다. 47년에 열린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할례는 필요없다고 규정하였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할례의 여부에
관계없이 오직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만이 중요하다”라고 바오로는 가르쳤다. 그래서
할례를 그만둔 결과 모든 민족들이 그리스도를 수용하기 쉽게 되었다.

[ 22. 하느님의 어린양 ]

- 가축중에서도 가장 인간에게 의존하는 동물은 양이라고 한다. 태어나는 데서부터 먹고
마시는 데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보살핌 없이는 죽어버린다고 한다. 하느님께 대하여 인간이
신뢰하고 의지하는 마음의 상징으로 양이 자주 등장한다. 양보다도 더 힘없는 것은 어린양
이다. 요한의 복음서와 묵시록에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일컫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해마다 과월절이면 이집트에서의 탈출을 기념하여 어린양을 잡듯이,
예수님이 우리들을 위하여 희생되셨기 때문이다. 양인 우리들이 어린양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되었다는 뜻이다.

- 구약성서에서 사자는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강력한 구세주의 상징이었다. 구약의 사자가
신약에서는 어린양으로 변했다. 이 어린양의 모습에 그리스도교의 모든 의미가 담겨있다.
즉, “나는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왔다”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대로
이다. 미사 때에 성체를 사제가 빵을 쪼개는 의식은 우리들을 위해 죽음을 맞으신 예수님의
몸이 부서짐을 뜻하는 상징이다. 이때 노래하는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이라는 평화의 찬가는 살해되신 한 생명을 함께 받아 모시는 인간의 더할 수 없는
탄원(歎願)이다.

[ 23. 구름 ]

- 어떤 민족이든 산 위에는 신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의 준봉 올림프스도
예외가 아니어서 제우스를 비롯 그리스의 열두 신들이 거기에 살았다고 한다. 높은 산은
종종 구름으로 덮혀 있기 때문에 신이 구름 안에 숨어 있다는 믿음도 생기게 되었다.
구약성서에서 보면 하느님께서는 구름을 타고 어디로든지 가실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구름은 또한 ‘하느님의 현존’을 나타낸다. 특히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이이 되시어 그들을 이끄시고 밤이면 불기둥으로 그들을 비추어 주시어 이스라엘은
밤낮없이 행진할 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 신약성서에서도 구름은 하느님 현존의 표시이다. 예수님의 모습이 거룩하게 바뀌었을 때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17,5)고 하였고,
승천하실 때도 “예수께서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는데 마침내 구름에 싸여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셨다”(사도1,9)고 말한다. 성서는 이처럼 자연의 현상이 구름에
견주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마치 눈에 보이듯이 우리에게 드러내 준다.

[ 24. 사막 ]

- 중동을 여행하다보면 사막이 자아내는 신비적인 매력, 해질 무렵 색색으로 변해 가는
사막의 아름다움이 인상적이다. 사막에는 엄연히 죽음의 일면도 있다. 모래바람에 굶주림과
목마름, 뱀과 전갈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야말로 이러한 사막의
무서움을 체험해 온 민족이다. 탈출기에 적혀 있듯이 사막을 지나간 40년 동안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 고통과 시련의 시대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고행에 의하여 정화되기도
하였다.

- 하느님의 창조를 나타내는 중요한 말 두 마디가 있다. ‘카오스(chaos)’와 ‘코스모스
(cosmos)가 그것이다. 카오스는 천지창조 이전의 혼돈 상태를, 코스모스는 질서정연한
우주를 가르킨다. 하느님의 창조는 카오스를 코스모스로 바꾸어 놓는 일이다. 이런 의미
에서 사막은 ’카오스의 상징‘이 되었다. 하느님께서 내리신 벌의 무서운 힘은 코스모스를
도로 카오스로 돌려놓는 데에 있다. 또한 카오스를 코스모스로 되돌려놓기도 하는데 이것이
구원의 의미이다. 세레자 요한은 사막에서 살았던 수행자였고, 예수님은 사십일 동안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받고 이를 물리쳤다. 수도자와 열심한 신자들의 영상을 살펴보면
사막은 오늘도 ’시련과 정화‘의 상징이다. 정화의 사막을 거치지 않고서는 하느님과의
일치에 이를 수 없다.

[ 25. 잔 ]

- 성서에서 잔은 ‘사람의 운명을 나타내는’는 비유가 되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그 칼집을 도로 꽂아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이 고난의 잔을 내가 마셔야 하지 않겠
느냐? ’하고 말씀하셨다”(요한18,11). 이 잔은 예수님께서 받으실 고난과 죽음의 운명의
잔이다. 십자가 수난전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루가22,42)하며 올리브 산에서 참담한 기도를 바치신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고 그들에게 돌리시며 ‘너희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마태26,27)하시며 죽음의 잔을 당신의 십자가상 희생의 표시로
삼으신 것이다.

[ 26. 소금 ]


- 소금은 음식의 맛을 맞추는 기본이다. 음식을 소금에 절여 보존하기도 하고 때로는
소금이 정화하는 역할도 한다. 소금없이는 인간이 살 수 없다. 그리스도교에서도 소금에는
‘정화’의 의미가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히 이전까지는 셀케수와 성수에 소금을 넣었다.
이는 물이 썩지 않도록 하는 배려에서였다. 우리나라에서 소금이 정화의 힘을 지녔다는
의식이 모처럼 있느니만큼 세례 때에 성수 축별(祝別)에 소금을 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토착화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간 느낌이다.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데도 쓸데 없어 밖에 내버려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5,13).
신자를 소금에 비유하여 이 세상에 모범이 되는 삶을 살 줄 모르면 안된다는 교훈이다.
로마시대에는 소금으로 보수를 지불했다. 그것을 ‘쌀라리움(sal=salt)’이라고 일컬었다.
오늘날 우리네 말로는 월급쟁이를 ‘샐러리맨’, 즉 ‘소금을 타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다.

[ 27. 모퉁이의 머릿돌 ]

- 건물의 네 귀퉁이에 놓는 모퉁이의 머릿돌이 집의 주된 버팀이 된다. 머릿돌에는
대체로 건물주의 이름이라든가 어떤 성인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 최근에는 기공 연월일도
남기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겨레를 세우실 때에 “보아라, 내가 시온에
주춧돌을 놓는다. 값진 돌을 모퉁이에 놓아 기초를 튼튼이 잡으리니 이 돌을 의지하는
자는 마음 든든하리라(이사 28,16)”고 하신다. 이스라엘이 주변 민족에게 굴욕을
당했을 때에도 역시 “집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우리 눈에는
놀라운 일, 주님께서 하신 일이다(시편118,22)”라는 위로의 말씀을 듣는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여러분이 건물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이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
온 건물은 이 모퉁잇돌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점점 커져서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된다(2,20)”. 오늘날에도 성당을 세울 때 우선 모퉁잇돌을 축별하여 새로운 교회의 토대로
삼고 있다.

[ 28. 성령 ]

- 옛날에 성령을 히브리 말로 ‘루아호(ruach)’라고 하여, 움직이는 공기, 즉 바람을
의미했다. 고대인들은 바람을 신의 숨으로 생각했다. 바람은 신의 노여움 또는 신의
너그러운 마음씀을 둘 다 드러내는 것으로 여겼다. 성령강림에 있어 성령이 바람의 형태로
표현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느님의 숨은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다. 창세기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2,7)고 하였다. ‘하느님의 숨’이라고 하면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하느님의 힘이고 숨을 거두시면 숨지게 하는 힘을 나타낸다.

- 다신교에서는 만물 안에 영 또는 신이 깃들어 있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교에서도
만물 안에 하느님의 영이 머무르신다고 믿고 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신의 내재’라고 한다.
하느님의 숨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감싸고 계심을 더 깊이 실감해야한다. 불안한 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하느님 영의 수호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은 마음 든든한 일이다.

[ 29. 동산(정원) ]

- 그리스인들은 정원을 낙원(paradeisos)이라고 불렀다. 그 어원은 페르샤말로 ‘에어싼
땅’이었다고 한다. 정원은 점점 아름다워져 예술의 경지로까지 승화되어 갔다. 바빌로니아의
공중정원 등이 특히 유명하다. 창세기에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을 마련하신 하느님께서는
그 동산 한가운데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돋아나게 하셨다”(2,8)고 한
저 동산은 실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약속하신 행복의 상징’이다.

- 요한 복음(18,1)에 보면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게쎄마니 동산에서 밤을 지새우면서
거기서 십자가의 운명을 면하였으면 하는 유혹을 받으셨다. 그리고 요한 복음(19,41)에
의하면 예수님의 시신은 십자가 근처의 동산으로 옮겨져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에
의해 묻히셨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도 동산이었다. 요한은 여기서 그 오묘한 의미를
내비치고 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새 아담으로서 다시금
에덴동산으로 되돌아오셨다는 것이다.

[ 30. 타우 ]

- ‘타우’는 히브리 말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이다. 그리스 말의 ‘오메가’와 마찬가지로
‘끝’이라는 의미이다. 고대 히브리어 말의 타우는 T의 형태로 쓰였는데 영어의 대문자 T와
똑같다. 성서에 나오는 타우(T)는 십자가와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우연히 십자가의 모양을
하고 있어서 교부시대부터 타우는 ‘십자가의 상징’으로 쓰여 왔다. 요한 묵시록이 말한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이 도장을 찍을 때까지”(7,3)라는 대목의 도장은 타우의 뜻으로
요한이 썼을 것으로 본다.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에서는 지금도 타우(T) 자를 십자가의
상징으로쓰고 있다.

[ 31. 피 ]

- 성서의 배경은 목축을 생업으로 하는 세상이어서 양이나 다른 가축의 고기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식품이었다. 예로부터 ‘피는 곧 생명’이라는 생각이 늘 있었다. 피를 흘리면 생명체가
죽기 때문에 피야말로 생명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서 생명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이므로 성서의 세계에서는 피가 특별히 하느님께 속하는 것으로 여겼다. 희생 제물을 바칠
때 그 고기는 먹어도 되지만 피는 제단위에 흘렸다. 피는 하느님의 것이엇으므로 피를 흘리는
일은 하느님의 생명을 되돌려드린다는 의미를 지녔다.

- 인간은 언제나 죄를 짓기 때문에 그만큼 하느님께 대한 빚과 보은의 책무가 쌓여 간다.
옛날 사람들은 희생을 통해, 즉 동물의 피를 흘림으로써, 그 빚을 갚았다. 이것이 바로 구속
(救贖)이라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특히 어린양의 희생이 그러했지만 신약시대에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피를 흘림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우리들의 모든 빚을
구속해 주셨다.

[ 32. 지팡이, 홀 ]

- 지팡이와 홀(笏)은 둘다 나무와 관계가 있다. 어느 문화에서나 나무는 생명의 상징으로
되어 있다. 유럽에서는 전나무가 특히 신령한 나무로 여겨져 왔다. 사람은 나무에서 가지를
잘라 그것으로 지팡 또는 홀을 만들어 쓰면 그 나무의 영검(신령한 힘)을 얻는다고 믿었다.
마법의 지팡이가 그 흥미로운 예의 하나이다. 성서에도 이런 의미의 지팡이가 곧잘 등장한다.
탈출기에 보면 모세는 지팡이를 가지고 이집트 왕 앞에서 온갖 기적을 행한다. 나일 강의
수면을 지팡이로 쳤더니 물이 피로 변했고, 하늘을 향해 지팡이를 쳐들었더니 이집트 땅
전체에 우박이 썯아졌다고 하였다. 민수기에서는 아론의 지팡이에서 꽃이 피어 편도(아먼드)가
열리더라는 이야기가 있고, 모세의 지팡이로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오게 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 모든 임금은 살아 있는 신의 대표자로 여겼다. 임금이 신의 힘을 실제로 쥐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손에 든 홀이다. 이렇듯 홀은 ‘왕의 권위의 표시’가 되었다.
성서에서 지팡이는 ‘나그네의 표시’였다. 마르코 복음에는 “여행하는 데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였다. 이것은 지팡이인 하느님의 힘으로 하느님께만 의지하라고
예수께서 선교길에 나서는 제자들에게 타이르신 말씀이다. 성서에서는 하느님과 그리스도가
착한 목자로 불린다. 그래서 성화에 그려진 착한 목자는 손에 지팡이를 짚고 있다.

[ 33. 천사 ]

- 이슬람 신도들은 “코란이란 천사 가브리엘이 예언자 마호멧에게 입으로 전해 준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와는 달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성서란 하느님 말씀으로서 하느님의
감도를 받은 많은 사람의 손으로 씌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성서는 단번에 씌어진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걸쳐 형성된 것이다. 성서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문화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저기 주변 민족문화의 영향도 그 안에 보인다. 천사
케르핌과 세라핌 역시 페르샤와 바빌로니아의 천사신학 영향을 짙게 받은 결과이다. 여기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주변 문화에서 얻은 사상인 이상 이런 천사신학은 하느님의 말씀일
수 없다고 결론을 굳이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랫동안 천사들의 존재에 대해
교회가 지녀온 믿음의 역할을 지금도 소중히 여기고 싶다.

- 천사인 케루빔이란 실제로 존재하던 천사라기보다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그 위엄과 위대
하심’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여긴다. 세라핌도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존재이지만 그밖에도 우리들의 불순한 데를 태워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하느님의 성스러움
앞에서는 너무나 더러운 인간을 정화해 주는 것이 세라핌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천사신학은
그 이후 그리스도교 안에서 발전하였다. 마침내 천사들은 대천사, 천사, 케루빔, 세라핌 등
아홉 무리로 나뉜다는 설이 나왔다.

[ 34. 동방박사들의 예물 ]

- <황금> 태양과 황금은 서로 깊은 관계가 있다. 금은 찬연히 빛날 뿐만 아니라 휘귀하고
녹슬지 않고 썩지도 않아 어느 나라에서든지 금은 곧 신의 색으로 여겼다. 불교에서는 금색을
불사(不死)의 색으로 보아 불상을 금동으로 만들거나 목각불상이라도 금박으로 입혔다.
임금은 태양신의 후손이라고 생각해 왔다. 황금은 ‘임금의 상징’이 되어 동방박사들은 갓
태어난 왕 예수 그리스도께 황금의 선물을 바쳤던 것이다.
- <유황> 어는 문화권에서나 종교행사에는 향을 쓰는 관행이 있었다. 향을 피운다는 것은
곧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향의 연기가 위로 피어 오르듯 우리들의 기도도 하느님
앞으로 올라 간다. 향은 하느님께 직접 바치는 표시이지만 하느님과 관련이 있는 것인 성체,
제대, 제물, 사제 및 하느님의 성전인 신자들에게도 분향한다. 동방박사들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께 기도와 찬미를 바치는 마음으로 유향을 예물로 드렸다.
- <몰약> 몰약은 향기와 쓴맛이 있어 옛날부터 향료 또는 의약으로도 쓰이고 아울러 시체의
방부제로도 쓰여 왔다. 구약시대에는 사제나 왕에게 부어주는 기름에 몰약을 넣었다.
몰약은 또한 ‘메시아와 왕의 특별한 향기’로 통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은 갓 태어나신
메시아께 드릴 선물로 이 몰약을 택했던 것이다. 현재의 성향유는 올리브 기름에 몰약을
탄 것이다. 주교, 사제, 견진자, 영세자에게 성향유를 바르는 것은 몰약의 좋은 향기가 기분을
좋게 해 주듯이 성향유를 받은 이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의 향기를 풍겨주기를 기원하는
뜻에서이다.

[ 35. 이름 ]

- 이름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독자성과 특별한 힘’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서 그 이름을 알면
어느 만큼은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명함을 내놓는 것은 이런
뜻의 자기소개라 할 수 있다. 성서에는 어떤 사람에게 새로운 사명을 부여할 때 그 사람의
이름을 바꾸어 주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본래 이름은 ‘아브람’이었다.
이는 ‘아브=아비’, ‘라함=많은’이라는 뜻으로, 하느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시어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삼으리니, 네 이름은 이제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라 불리리라”
(창세17,5)고 하셨기 때문이다.

- 또 하나의 커다란 예는 예수님 자신이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자렛 마을의 마리아를
찾아와서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루가1,31)하고 고한다. 그리스
말로 발음하면 ‘예수스’ 이지만 히브리 말로는 ‘요슈아’가 되어 ‘야훼께서 구하신다’는 뜻의
이 이름은 예수님의 사명을 잘 드러내 준다. 천주교에서는 세례를 받을 때 영명으로 새 이름을
받는다. 대체로 성인의 이름들 중에서 하나를 택하는데 이것도 같은 뜻에서이다.

[ 36. 무지개 ]

- 무지개를 뜻하는 독어나 영어는 ‘비(온 뒤의) 활’이라는 뜻이다. 아랍 지방의 전설에
의하면 우박화살을 쏘는 날씨의 신이 하늘에 두고 간 활이 무지개가 되었다고 한다. 더 좋은
풀이는 무지개가 하늘(신의 세계)과 땅(인간의 세계) 사이에 걸려 있는 다리라는 것이다.
성서에서는 인간의 죄에 지치신 하느님께서 의로운 사람 노아와 그 가족 말고는 온 인류를
홍수로 멸하신 다음 다시는 이런 일을 안하시겠다는 표시로 인간에게 보여주신 것이
무지개였다. 무지개는 노아의 방주에서 날려 보낸 비둘기와 더불어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 37. 알몸 ]

- 영어로 알몸을 가르키는 말이 두 마디 있다. ‘뉴드(nude)’와 ‘네이키(naked)’이다.
뉴드는 인간의 위엄을 드러내 보이는 품격 높은 나신을 가르키고, 네이키는 벌거벗어 보기에
딱한 인간의 몸을 가르킨다. 창세기에 “아담과 하와는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2,25)고 했듯이 이들 내외는 벌거숭이었다. 하느님과 사람사이, 지아비와 아내사이에는
어떤 간격도 없었다. 이것이 뉴드의 의미이다.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리
었다”(3.7)고 하였으니 아담과 하와는 죄를 범한 결과 차마 그대로 바라볼 수 없는 제 몸의
상태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네이키의 의미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알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셨다. 십자가상의 그리스도가 허리에 천을
두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실제 로마인들은 범인의 수치를 폭로하기 위하여 벌거벗긴
채로 십자가에 처형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가 빚은 비참을 당신 한 몸에
받음으로써 우리들을 본래의 뉴드 인간으로 되돌려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의 모습은
‘네이킷의 수치’로부터 ‘뉴드의 존엄’으로 변용시켰음을 뜻한다.

[ 38. 비둘기 ]

- 옛날부터 비둘기는 연예와 사랑의 상징이었다. 동방세계에서는 사랑의 여신의 상징이
온통 비둘기가 되어버렸다. 창세기 8장에 비둘기가 나온다. 땅위를 뒤 덮고 있던 홍수가
빠지기 시작하자 노아는 비둘기를 날려 보내어 지면에서 물이 다 빠졌는지 여부를 확인
하려고했다. 두 번째 비둘기를 날려 보내자 부리에 올리브 잎을 물고 되돌아와 이를 본
노아는 물이 지상에서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올리브 잎을 물고 있는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으로 되었다. 하느님과 인간이 다시 서로 사랑하게 된 결과 평화가 온 것이므로 사랑이
곧 평화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 신약 성서에도 비둘기는 매우 귀중한 상징이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 위에 내려오시는
것이 보였다. 그 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 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태3,16)라는 구절이 나온다. 후세의 화가들은 성령을 비둘기 모양으
로 표현하고 있다. 성서에 나오는 비둘기는, 전령으로 띄우는 비둘기나 흔히 보는 요란한
비둘기와는 달리, 자그마하고 평화의 상징답게 예쁘장하고 순한 비둘기이다.

[ 39. 빵 ]

- 식물학자들에 의하면 밀은 파레스티나(이스라엘)가 원산지인 식물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태어나 자라신 나라의 주식은 당연히 빵이었다. 성서에서는 빵은 곧 양식이라
는 것을 알게 된다. 주님의 기도에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빵(우리말로는 양식)을 주시고”
라고 되어 있다.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지 못하고 주님의 입에서 떨어지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명8,3)는 말씀은 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삶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나이 반도를 헤매고 있을 동안 하느님께서는 하늘로부터 빵이 비 오듯 내리게 하셨다.
그것이 바로 ‘만나’이다. 이를 ‘하늘의 빵’, ‘천사의 빵’이라고도 부른다. 신약에서는 예수님
께서 따라오는 군중을 측은히 여기시어 다섯 개의 빠을 축복하여 모두 배부르도록 나누어
먹이셨다(마태16,9). 요한은 예수께서 주신 이 빵을 새로운 만나라고 부르고 있다. 그 당시의
빵은 얇고 둥그랬다. 인도 요리를 하는 식당에서 내놓는 ‘난’이라는 것과 비슷하다.

-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실때가 왔다.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이를 축복하신
다음 쪼개어 모두에게 주시며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하고 말씀하신 이래,
이제 그 빵은 ‘예수님의 몸’이 되었다. 우리를 위하여 쪼개진 빵이 된 것이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먹음으로써 예수님과 깊이 결합된다. 음식이 소화되어 우리 일부가 되듯이
우리들도 조금씩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면서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게 된다.

[ 40. 빛 ]

- 창세기 서두에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하시자 빛이 생겨 났다”(1,3)고 씌어 있다.
성서 안의 빛이란 그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빛이 아니라 정신적인 빛인 것이다. 우선
하느님의 속성이 빛이어서 ‘하느님 자신의 빛’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빛은 행복, 사랑, 평안, 질서 등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요소를 두루 포함하고 있다. 그 반대의
것은 어둠과 죄악 등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다.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의 첫째 본분은
하느님과 더불어 카오스를 코스모스로 만드는, 즉 이 세상의 어둠을 밝이는 일이라 하겠다.

- ‘빛’이라는 생각은 유대교나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에 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 후광이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성인들, 다양한 제신과 부처님의
그림이나 조각에는 후광이 있다. 12월 25일은 본래 미트라(mithra)교에서 지내는 태양
탄생 축제의 날이었다. 이것을 그리스도교에서는 그리스도의 강생과 결부시켜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의 탄신을 경축하는 날로 잡았다. 요한 복음에는 “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8,12)라고 하였다. 신자인 우리들이 세상의 빛이 된다는 것은 부활성야 축제거행에서
아름답게 구현된다. 세상 안에는 지금 어둠을 의미하는 온갖 악이 횡행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빛이 승리할 것을 우리는 믿고 있다. 그것이 세상의 완성이다.

[ 41. 돼지 ]

- 유대교에서는 부정(不淨)을 대단히 꺼린다. 부정 중에는 죄의 결과가 낳는 도덕적인
부정뿐 아니라 위생상의 부정도 포함되어 있다. 구약성서 레위기에는 부정에 관한 많은
규정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그중에서도 돼지(멧돼지)를 가장 부정한 짐승으로 취급했다.
어쩌면 돼지가 진창을 좋아하고 지저분한 것을 먹기 때문일 것이다. 베드로의 둘째 편지
에서도 “돼지는 몸을 씻겨 주어도 다시 진창에 뒹군다”(2,22)는 속담이 나온다. 지금도
유대인들과 그들의 전통을 이어 받은 회교도들은 절대로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 만약
먹으면 살인과 마찬가지로 무거운 죄가 된다.

- 마태오 복음에는 사람에게 들렸던 마귀들이 예수님께 와서 “우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들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8,31)하고 간청하면서 저만치에서 먹이를 찾아
다니던 돼지떼를 가리켰다고 한다. 마태오 복음의 “진주를 돼지에게 던져 주지 말라”(7,6)는
속담도 귀중한 것을 아무 값어치 없는 돼지에게 주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마르7,19)고 선언하셨다. 더러운 것은 도덕적인
죄악뿐이고 다른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지어내셨기 때문에 깨끗하다는 말씀이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덕분에 맛있는 돼지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 42. 뱀 ]

- 뱀은 옛날부터 그 생김새나 움직이는 모습이 온갖 짐승 중에서도 가장 끔직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뱀을 곧잘 ‘악’으로 연관시킨다. 반면 뱀은 햇볕을 좋아하는 생물이라서
‘빛’의 세계에도 속한다. 또 뱀은 그 눈총만으로도 다른 짐승을 움츠리게 하는 힘이 있어서
‘죽음’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껍질이 낡으면 온 몸을 뒤집어 허물을 벗기 때문에
뱀은 또한 ‘부활과 치유’의 상징이기도 하다. 뱀은 성서안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창세기에서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한 것은 뱀이었다”(3,1)고
하였다. 뱀은 또 그 끝이 둘로 갈라진 혀를 가지고 있어 그
이중적인 혀를 놀려 하아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유혹했다.

- 창세기(3,14), 민수기(21,4-9에서도 뱀에 관한 말씀(불뱀, 청동 구리뱀)이 있다.
요한 복음(3,14-15)과 마태복음(10,16)에도 있다. 광야에서 있었던 이야기 가운데
뱀이라는 존재 안에 두 가지 상반되는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죽음’의 상징
이었던 뱀이 ‘구원’의
수단이 됐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문화권에서도 ‘부활과 치유’의 상징이던 청동뱀이 이제는
십자가 (기둥)에 달리신 구세주 그리스도의 상징이 되었다. 동양에서 길조로 여겨 중요하게
취급하는 상징적 영물인 ‘용’이 성서에서는 뱀과 동일시 되어 요한 묵시록에는 오히려 악마의
상징으로 나온다. 성서 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선과 악의 상징이던 뱀이 결국 ‘선과 악’를
동시에 상징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 43. 장막 ]

-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를 떠나 40년 동안 시나이 반도에서 유목민처럼 천막생활을
했다. 지금도 중동 아시아에서는 일부 베드윈족이 천막에서 자리를 옮기며 살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많은 천막들 한가운데에는 하느님의 장막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느님의
장막에는 성궤가 있고 그 안에는 주님의 십계명을 새긴 석판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신비롭게 그 장막안에 현존하고 계시다고 믿었다.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머물고 계시다는 깊은 안도감을 품고 있었다.

- 장막이라는 상징은 예수님의 육화(肉化)의 심오한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우리들도 곧잘
떠돌지만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들과 함께 움직이고 함께 다녀 주십니다. 아무리 위험한
곳에 가더라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머물고 계시기에 하나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우리들의 ‘인생의 상징’도 장막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은 나그넷길”이라고 하듯이 우리들의
세상살이도 일시적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천막생활이나 다를 바 없다. 죽는다는 것은
천막을 접는 것과 같다. 그랬다가 영원의 세상에서 그 천막을 다시 펴서 치는 것이다.
동경 대성당은, 세상의 여러 성당이 그렇듯이, 천막의 모양으로 지어졌다.

[ 44. 도성 ]

- 가나안은 예부터 여러 민족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북쪽의 바빌로니아나 남쪽의 이집트
제국으로부터 도망나온 사람들이 가나안에서 살고 싶어 했다. 이스라엘 역시 밖으로부터
들어온 민족이었다. 이렇게 북이나 남에서 흘러 들어온 이민족에게 위협받으면서 살아온
가나안 사람들은 당연히 성곽으로 굳게 에운 도시를 지었다. 농민들은 도성 밖으로 나가
농사를 지었지만 위험이 닥쳐 오면 도성 안으로 피신해 들어오곤 했다. 따라서 도성은 모든
이에게 안도감을 안겨주는 곳이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장악하고부터는 예루살렘을 그 어떤
도시보다 한층 더 중요시하게 되었으며, 하느님의 성전이 이곳에 있었다. 하느님께서 그 안에
사시는 도성, 하느님이야말로 자기네들을 지켜주는 도성의 가장 훌륭한 임금님이셨다.

- 이 하느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차차 무너져 가고 있었다. 이스라엘에 사는 신심깊은 사람들
간에는 이 세상의 예루살렘보다는 영적인 예루살렘을 꿈꾸는 마음이 점점 더 뿌리내리게
되었다. 그것은 군대나 성벽으로 이루어지는 그런 성채가 아닌 오직 하느님만이 자기네들을
지켜주시는 새로운 세계였다. 이 하느님의 도성은 역사가 그 종말에 다다를 목적이다.
성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神國)’이라는 유명한 책을 지었다. 바로 로마제국의 지배가 무너져
가던 무렵 폐허가 된 도시의 신자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안심하십시오. 새로운 하느님의
도시가 이제부터 이 세상에 세워질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세계’입니다.” 이 하느님의
도시를 세우는 것은 우리들 자신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교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세울 새로운
세계야말로 바로 하느님의 도성이다.

[ 45. 바른편과 왼편 ]

- 성서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세계를 말하기 위해 쓴 것인 만큼
사람이 살던 시대의 사고방식이 거기 반영된 것은 당연하다. 바빌로니아 사람들과 아시리아
사람들의 지신 ‘벨(Bel)’은 바른손에 햇빛, 왼손에 달빛을 두고 잇어 바른편을 왼편보다
중시한 것을 알 수 있다. 바른편은 햇님, 왼편은 달님이 된다. 여기에는 바른편이 남성,
왼편이 여성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이슬람교나 흰두교 나라들에서는 밤을 먹을 때 오직
바른손만을 쓰기로 되어 있다. 하느님도 바른손 왼손을 가지셨다고 생각했다.

- 예수님 자신도 하늘에 오르신 다음 하느님 바른편에 좌정하셨다는 말씀(마르16,19)이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 하느님 나라의 모든 권위와 권력이 주어졌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주님의 승천은 예수님께서 온 우주의 왕으로 좌정하신 즉위식이기도 하다. 성부의 바른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은 우리들의 기도를 아버지께 전구해 주신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에서 모든 나라 백성을 한데 모아 바른편에는 복받아 천국을
상속할 사람들을 갈라 놓고 왼편에는 저주받아 영원한 불에 들어갈 자들을 갈라놓으셨다고
말한다. (25,31-46) 예수님의 십자가 양편에 달려 있던 우도와 좌도를 연상해 볼 수 있겠다.

[ 46. 문 ]

- 문은 도읍 또는 성, 신전 등을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특별히 견고하게 만들었다.
여러 가지 적 가운데서도 특히 악령을 두려워했다. 악령 따위를 물리치기 위해서 이집트에서는
문 양쪽에 사자상을 놓았다. 이 전통이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가 신전 앞은 으레 사자나
해태가 지키게 하였다. 절의 문간 양쪽에 서 있는 사천왕상도 악령을 물리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로마에는 문을 지키는 ‘야뉴스(janus)’라는 신이 있었다. 이 신은 이중얼굴이 있어 안과 밖을
동시에 지킬 수 있었다. 서양에서는 지금도 ‘야누스 얼굴을 한 사람’이라는 말이 쓰이는데
안팎이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다. 로마에는 야누스 신전이 따로 있어서 신전의 문이 닫혀
있을 때는 평화를, 열려 있을 때는 전쟁을 표시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시대는 마침
‘팍스 로마나(로마의 태평)’시대였으므로 문은 줄곧 닫혀 있어 평화의 임금이신 탄생에 걸맞은
시기였다. 에전에는 전쟁에 이기면 임금을 위해 개선문을 세웠다.

-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오면 구원받는다”
(10-9) 고, 당신 스스로가 문임을 말씀하신다. 묵시록에는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머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3.20) 라고 하신다. 유럽에서는 대성당 문 위에 열쇠를 들고 계신
예수님상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하늘문을 여는 열쇠를 가지고 계시다는 뜻이다. 이는 바로
베드로에게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16,19)고 하신 말씀에 의해 그에게
하늘문 열쇠가 맡겨졌다고 생각하게 된 연유이다.

[ 47. 염소 ]

- 구약과 신약 성서 모두에 가끔 염소 이야기가 나온다. 양치기들은 대체로 양과 어울려
염소도 쳤다. 그들에게 염소는 소중한 짐승이었다. 그 젖이 매우 영양가가 높아서 치즈 만들기에
적격이었다. 성서에 나오는 염소의 털은 검정색이어서 그 털로 만든 천막 역시 검은빛이었다.
비가 오면 천막천이 방수 역할을 해낸다. 성전의 지성소 앞에 치는 천막 역시 염소털로 짠
것이다. 염소는 양보다 성질이 거칠고 그 먹이도 다르다. 양은 목초를 뜯어 먹지만 염소는
나뭇잎이나 잡초 따위를 즐겨 먹는다. 싸움도 잘하고 도망치기도 잘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양과 염소를 갈라 놓을 필요가 있다.

- 마태오 복음에서 “사람의 아들이 모든 민족들을 앞에 불러 놓고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그들을 갈라 양은 바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자리잡게 할 것이다.”(25,32) 바른편은
축복받은 사람들, 왼편은 저주받은 자들의 상징이므로 염소의 이미지는 아무래도 좋지 않다.
염소는 성미가 사나운 짐승이라는 인상 때문인 듯 하다. 염소는 ‘속죄양’을 뜻하기도 하다.
이말은 오늘 ‘남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는 자’ 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글자 그대로 우리들의 속죄양이 되셨다. 우리들 모두의 죄를 지고 악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

[ 48. 레바논의 삼목 ]

- 팔레스티나 북서부에 지중해안 따라 뻗어 있는 레바논 산맥은 비가 많이 와서 송백류의
삼림으로 덮혀 있었다. 특히 이 지역의 레바논 삼목(杉木)은 당당하게 솟은 상록의 거목으로
향기가 높고 벌레도 타지 않아 태고로부터 영원한 생명의 상지으로 통했다. 레바논 삼목은
하느님 영광의 상징이 되었다(이사35,2). 또한 구원의 상징으로도 표현하고 있다(에제17,23).
아가서(5,15)에 나오는 신부는 레바논의 삼나무같은 젊은 애인이 그립다고 노래한다.
에제키엘(31,1-14)은 이집트 왕의 몰락을 비유로 예언하고 있다. 예부터 삼목은 빼어난
재목으로 왕궁이나 성전, 지성소나 성궤(화려하게 장식된 나무상자)로 쓰여 왔다.

[ 49. 당나귀 ]

- 당나귀는 정말 쓸모가 많은 짐승으로서 자동차로 못 가는 데라도 당나귀라면 갈 수 있고
퍽 무거운 짐도 나를 수 있다. 짐승치고 그 모양은 별로 잘 생기지 않았고 목소리도 곱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단히 겸손한 동물이다. 어린아이들이 타도 아무 위험이 없다. 말은 그 반대로
멋진 모습에 키도 크고 자존심이 강하며 생기에 차 있다. 그래서 말이 임금님, 귀족, 군인,
부자들의 탈것이 된 것이다. 말은 성질을 잘 부려서 탈 때에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을 모두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새끼나귀를 타고 오신 이유를
알만 하다. 에수님은 나귀를 타심으로써 우리들에게 깊은 교훈을 남겨 주셨다.

- 예수님은 분명 구세주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이다. 우리들의 영도자이시다. 그러나
왕도(王道)는 다름아닌 섬김에 있음을 가르쳐 주셨다. 자존심이 강한 말을 타지 않고
겸손하고 온순한 당나귀를 일부러 택하신 것이다. 당나귀의 모습은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가치관’을 가르쳐 준다. 우리 또한 조금이라도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당나귀처럼 서로서로에게
봉사해야 한다.

[ 50. 독수리 ]

- 사자가 백수의 왕이듯 독수리는 모든 새의 왕이다. 사자는 땅 위에 사는 짐승의 왕으로서
땅을 상징하듯, 독수리는 하늘 높이 나는 독수리는 하늘을 상징한다. 그리스 신화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에다 사자의 몸통을 가진 전설상의 괴물인 ‘그리폰’이 나온다. 그는 제우스의
상징이 되어 역시 하늘과 땅을 다 합쳐 만물을 지배하는 존재로 여겼다. 로마 황제가 죽어
그 시신을 화장할 때는 황제의 혼을 천국까지 이끌어 주도록 독수리를 날려 보냈다. 성서에서도
독수리는 중요한 새이다. 성서에서 독수리는 ‘힘과 이내’의 상징이다. 이사야서에 보면
“주님을 믿고 바라는 사람은 새 힘이 솟아나리라. 날개 쳐 솟아오르는 독수리처럼 아무리
뛰어도 고단하지 아니하고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아니하리라”(40,31)고 하였다. 신명기
(32,11/19,4)와 예레미야서(48,40)에도 독수리에 관한 말씀이 나온다. 하느님은 독수리처럼
날래게 하늘로부터 내려오시어 이스라엘(우리들)의 적을 덮치신다.

- 독수리는 ‘복음사가 요한’의 상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까닭은 요한에 의한 복음서
첫머리에 나오는 말씀만이 마치 하느님 옥좌까지 솟아오르는 독수리 같기 때문이다. 유럽의
여러 성당에서는 그리스도와 요한의 상징으로 독수리 그림이나 조각이 자주 눈에 띈다.
대성당의 독경대도 독수리 모양을 하고 있어서 흡사 독수리의 두 날개 위에 성서를 펴놓고
거기서 성서를 봉독하는 격이 되어 있다. 오늘날에도 나라의 문장(상징적인 표지)에 종종
독수리가 나타난다. 미합중국이나 독일연방공화국 등의 경우가 그렇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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