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독서 메모

[ 금주의 독서 메모 ] 101권-105권

금주의 독서 메모 # 101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3.02.18.

[ 책 이름 : 작고도 큰 만남 ]

- 지은이 : F. 이오리오 로드리게스
- 지은이 프로필 : 브라질 마세이오 시 출생, 대학교수 재직, 알라고아스 주 연방
대학교의 철학과 졸업, 팔메이라도스 인디오스 교구의 주교로 성직생활. 저서로는
‘문학 연구’, ‘비평론’, ‘자유의 노래’, ‘내적인 힘’ 등 다수.
- 옮긴이 : 이승덕
- 펴낸데 : 성바오로, 출판 : 1996년 10월25일, 133p
- 내 용 : 인생에서 마주치는 만남을 통해 아름다움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40가지의 만남에 관한 묵상집

[ 표지의 글에서 ]

- 우정이란 상대방에게 서로 마음이 끌려 사로잡힌 것을 말한다. 친구란 서로 사로
잡고, 또 사로잡히는 체험을 함으로써 서로가 헤어질 수도 있는 자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언제나 상대방 곁에 있어 주고
힘을 합하는 점진적인 배려를 갖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친구는 언제나 상대방을
위해 시간을 낼 줄 알기 때문이다.

-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큰 만남’이 되지 않는 작은 만남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작고도 큰 만남’은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우리의 가슴 속에 우정을
남겨 놓지 않는 만남이란 없다는 것을 입증된 진리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에서
제시된 42개의 만남은 누구나 인생에서 마주치는 만남들이다. 이 만난들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에서는 보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가치 있는 것들이 많음을 알게 된다.

[ 머리말 ]

- 하느님은 인간의 모습을 취하셔서 우리와 만나고자 우리의 역사 속에 들어오셨다.
그렇게 그분은 남자와 여자, 죄와 덕,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등을 만나셨다. 그러한
그분의 만남은 우리에게 경탄스러운 사랑의 교훈을 남겨 놓으셨다. 만남은 우리 인간
에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이 책은 모든 만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줄 것이다. ‘작고도 큰 만남’이란 아무리 작은 만남일지언정
우리에게 우정의 씨앗을 남겨 놓지 않는 만남이란 없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남과 여, 감동과 고통 그리고
인간적 감정들을 접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셨다. 그 모든 길들은 그분을 만나게 되는
엠마오의 길이 되었으며, 그 길에서 하느님은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당신을 드러내신다.

[ 차 례 ]

1. 첫 만남 2. 우정과의 만남 3. 친구와의 만남 4. 인내와의 만남
5. 감정들과의 만남 6. 인간의 위대함과의 만남 7. 젊은이들 그룹과의 만남
8. 길과의 만남 9. 우울증과의 만남 10. 삶과의 만남 11. 체념과의 만남
12. 자리에 앉는 것과의 만남 13. 선입관계의 만남 14. 열등 콤플렉스와의 만남
15. 침묵과의 만남 16. 내 인생과의 만남 16. '아직 아니다'와의 만남
17. 침묵의 사막과의 만남 18. 부활절과의 만남 19. 내 인생과의 만남
20. 의식 및 상징들과의 만남 21. 자캐오와의 만남 22. 인간과의 만남
23. 죽음과의 만남 24. 믿음과의 만남 25. 복된 이들과의 만남
26. 행복과의 만남 27. 오해와의 만남 28. 두려움과의 만남 29. 생각과의 만남
30. 책임과의 만남 31. 결정과의 만남 32. 전자 유모와의 만남
33. 걷는다는 것과의 만남 34. 일관성과의 만남 35. 온정과의 만남
36. 아기 예수님과의 만남, 37. 하느님 아버지와의 만남,
38. 세 가지 탄식 소리와의 만남 39. 부활절 봄과의 만남 40. 내 믿음과의 만남

< 1. 첫 만남 >
- 첫 눈길이나, 첫 접촉으로 만남과 우정이 성숙될 수는 없다. 첫 만남은 언제나
첫 만남일 뿐이다. 그것은 전혀 모르는 곳을 지도도 없이 처음 찾아가는 사람과 비교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본다고는 하나 그가 보는 것이란 모두 표면적이요 혼란스런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일 뿐이다. 모든 첫 만남은 어느 미지의 지역에 대한 정찰활동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계속 만나게 될 그 사람의 주의환경과 내면을 속속들이
연구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의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레위(마태오)에게 자신의 제자가 되어 줄 것을 부탁했지만, 우리는 첫 만남을 통해
상대방을 꿰뚫어볼 수 있을 만큼 훌륭한 통찰력의 소유자가 아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주위환경과 내면세계를 올바로 아는 것이다.

-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보기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삶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우정들이 존재한다. 이 우정들은 지속적이고 발전적인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 까닭에 상대방의 신비스러운 모습을 존중할 줄 아는 기술이 그 무엇
보다 요구된다. 상대방의 성스러운 영역을 존중한다는 것은 하나의 좋은 삶의 기술이다.
아울러 그 상대방의 성역에는 자기 홀로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진지한 무엇이 있으며,
바로 그것이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준다. 결국, 우리 자신의 존재를
좀 더 꿰뚫어보면 볼수록 우리는, 첫 만남과 첫 감정을 초월하는 지속적이고도 발전적인
만남과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신비로운 내면세계를 조금이나마 알게 될 가능성을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다.

< 2. 우정과의 만남 >
- 친구란 상대방과 함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 길 자체를 바꾸는 능력
또한 갖고 있다. 우정이란 상대방에게 서로 마음이 끌려 사로잡힌 것을 말한다.
친구란 서로 사로잡고, 또 사로잡히는 체험을 함으로써 서로가 헤어질 수도 있는
자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언제나 상대방
곁에 있어 주고 힘을 합하는 점진적인 배려를 갖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친구는
언제나 상대방을 위해 시간을 낼 줄 알기 때문이다. 친구란 도덕적이며 정신적인
가치들을 깊고도 자연 발생적으로 함께 나누는 사이이다. 그렇게 때문에 친구란 우리의
믿음과 신임을 받을 자격이 있다. 친구는 상대의 품성을 인정할 줄 알고 상대의 약점
또한 받아들이며, 상대의 잘못까지 포용하고 그것을 고치도록 도와준다. 친구 이상으로
상대가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도 없다. 성서에 따르면 충직한 친구는 강력한 보호막과
같은 것이며 그 같은 친구를 발견한 사람은 보물을 발견한 것과 같다고 말한다.

- 우정이란 똑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그리하여 삶의
고귀한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이 쉬어진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우정이란 우리의 일상
생활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을
이루도록 이끌어 주는 그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이란
두 개의 육체 안에 있는 하나의 영혼이라고 말했으며,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플라톤’ 역시 우정은 두 사람으로 하여금 상대방의 안녕을 열렬히
바라도록 하는 상호 자비라고 했다. ‘키케로’는 우정을 인생의 태양이라고 불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제 너희들을 종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친구라 부르겠노라”(요한 15,
9-17 참조)고 말씀하시며 스스로를 우리의 친구라고 천명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서로서로 친구가 되도록 하기 위해 당신이 먼저 우리 인간의 친구가 되셨다.
인간의 우정은, 우리가 하느님의 우정을 가장 쉽게 체험할 수 있는 장소이다. 왜냐하면
우정과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 나라가 꽃피기 때문이다.

< 3. 친구와의 만남 >
- 친구는 서로를 팔거나 사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만이
친구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헌신하며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
만이 누군가의 친구가 될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은 소비사회에서는 그와 같은 친구를
갖는다든가, 또 누군가에게 진정한 친구가 된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팔고 사는 사회에서 친구를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친구란 오늘
헤어져도 다음 날 새로운 만남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더욱더 가까운 사람으로 만나는
그 누구인 것이다. 친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감동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며,
주는 것 이상으로 헌신하는 것이란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친구에게 무슨 부탁을 한다는
것은 그 친구로 하여금 바로 당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기회’를 주는 것이자, 당신을
위해 헌신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친구란 이처럼 자기 자신의 무엇인가를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상대방에게 주어야 한다.

- 어떤 친구를 더욱 긴밀한 사이로 유지하고자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당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며, 바로 그런 식으로 당신 역시 그를
위해 멋진 무엇인가를 할 ‘기회’를 찾도록 하는 것이다. 진정한 우정은 서로가 주고받는 데
있어서 양보할 줄 알면서 노력할 때 비로소 꽃이 피게 된다. 친구는 우리의 상황을 그대로
수용하고 우리와 빵을 함께 나눠 먹으며 같은 방향을 쳐다보며 한 길을 함께 가며, 자신의
선행으로 우리를 깨우치게 하고 또 우리를 기다림에 인내할 줄 알게 한다. 친구는 결코
못 본 척, 모르는 척하지 않으며,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는 데 있어서 자신이 무능한 척도
하지 않는다. 진정한 친구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든 항상 친구를
곁에 갖고 있는 이는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 4. 인내와의 만남 >
- 인내란, 가장 급박하고도 다양한 여러 의지 그에 수반되는 태도 결정을 서로 조화
시키지 않고는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 조화의 비결은 첫째, 확신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에 대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지속적이고도 점진적인 노력을 통해 그분의 온유함을 배우고
동화하길 원하신다면, 그것은 그분이 폭력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도 우리가 인내심을
발휘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그것은 완벽한 기쁨이란 바로 인내의
결실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며, 그 확신 이상으로 그분을 기쁘게 하고 타인들을 행복하게
하며, 우리에게 그 같은 큰 평화와 행복을 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주지시키고자
하기 위함이다.

- 또 다른 비결은 겸손이다. 어느 누구도 겸손이 하나의 진리임을 부정할 수 없다. 겸손
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인생의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겸손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고한 지배가 우선되어야 한다. 또 다른 비결은 생각을 부풀여서 생각
하지 않는 것이다. 단순한 일을 마치 무슨 비극인 양 확대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 참을성이
없으므로 인해 발생하는 일들은 대부분 아주 작은 불씨이거나 아주 바보스런 의견 충돌
등에서 비롯된다. 겸손의 가장 큰 비결은 뭐니 뭐니 해도 항상 하느님을 자기 자신에게
가까이 모시는 것이다. 하느님을 가까이함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저 일시적이고 유한적인
세상사를 정확히 볼 수 있게 하는 시각을 갖게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인내란 곧, 자신의
창조물들에게 희망을 갖고 계시는, 하느님의 인내의 결실이기도 하다.

< 5. 감정들과의 만남 >
- 감정이란 인간의 거의 모든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를 이룬다. 어떤 형태로든
감정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불협화음의 세계, 고통 받는 좌절의 세계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우리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들을 서로 잘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감정이 우리를 지배
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며 우리 자신이 우리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긍정적인 감정들은 강화되고 부양되고 발전되어야 하나, 부정적인 감정들은 경계되어야
하고 억제되어야 한다. 감정은 기쁜 마음으로든 싫은 마음으로든 어떤 행위를 실현하기
위한 준비단계인 내적 정신 상태를 나타낸다. 감정은 모든 것에 관련되며 또 모든 것을
연루시킨다. 그래서 감정은 어떤 감동이나 감격의 갑작스런 폭발이 아니며, 그렇다고
생물학적인 충동도 신경계의 흥분상태도 아니다. 그것은 현재 인간이, 자연과 하느님
그리고 다른 인간과 나누고 있는 어떤 종류의 약속에 대한 자기 존재의 표출행위인
것이다.

- 감정의 풍요로움과 그 힘은 우리 인간의 지각 행위의 성숙 정도에 따라 좌우된다.
실제로 느낌은 모든 형태의 경험, 즉 사물과 사건들에 대한 시각적, 촉각적, 미각적,
후각적인 모든 경험들을 포괄하는 감정들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기분 좋은
감정과 기분 나쁜 감정은 감각기관의 인지 행위에서부터 지와 의지의 가장 숭고한
운동에 이르기까지 항시 모든 느낌을 따라 다닌다. 우리는 감정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감정의 풍요로움이 바로 우리들 자신에 대한, 타인들에 대한 그리고 그 무엇보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만남이
우리들로 하여금 기분 좋은 감정은 잘 다독거려 가꾸게 하고 기분 나쁜 감정은 잘
통제하도록 바라야 한다.

< 6. 인간의 위대함과의 만남 >
- 이 세상에서 인간의 위대함만큼이나 경탄스러운 것은 없다.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은
우주적인 인식 차원에서, 그리고 자유의지의 차원에서 존재한다. 육체적으로 볼 때,
비록 인간은 허약하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정신, 자신의 존재를 밝혀 주는 빛, 그리고
유한과 무한의 지평선을 열게 해주는 분별력과 직관력 때문에 신비의 초월적 존재이다.
인간의 존엄성이야말로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미래를 자기 손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숭고한 존재로 만든다. 왜냐하면 그는 자유롭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영적이고 자유롭다는 것은 곧 책임감과 직결된다. 인간은 바로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자유에 의해 평가되며, 또 자기 자신의 행위들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이 우주의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는 분명 자기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 자유롭다는 것은 선택한다는
것이고 선택한다는 것은 판단한다는 것이며, 판단한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짐을 의미한다.

- 그 책임감에 대해 ‘가브리엘 마르셀’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내가 하는
행위나 말에 대해 책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내 자신을 인간이라고 확언한다.” ‘칼 라너’의
경우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추가하고 있다. ... 우리 사회는 인간의 절대적
가치를 존중해야 하며, 인간이 자기 자신과 타인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스스로를
책임지고 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 권리를 부정해서는 안 되며, 헌법이나 법률을 통해
그 인간을 불구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정부는,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 7. 젊은이들 그룹과의 만남 >
- 그룹생활을 통해 젊은이들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이고, 누군가에 의해 배척되고
버림받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함께 살면서 자신이 강압적인 감정들로부터
보호를 받음과 동시에 남의 관심을 받은 권리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단체 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 단장된 공원에서 피어나는 싱싱한 꽃처럼 자연스럽게
서로를 끄는 힘이 싹튼다. 그리고 가정이나 사회에 불만을 갖고 있던 젊은이들도
인간애에 대한 희망에 가슴이 부풀어 다시 활기를 되찾는다.

- 함께 어울리는 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은 남을 사랑하거나 종교적인 일을 하도록
서로를 부추키며, 때로는 남녀 두 사람을 묶어 주는 결혼에 이르기까지 한다. 그들
사이에서 서로 끌어당기는 힘은 취미, 이해관계, 상호 필요성, 이상, 가치관, 믿음,
종교 등이 서로 비슷할 때 생긴다. 때로는 서로를 보완해 주는 상대를 찾는다든가,
불안한 마음을 보호해 줄 상대를 찾는다든가, 무슨 일에 의문이 생길 때 결단력을 찾는
다든가, 또는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다 보면 그와 같은 결합이 충분히 이루어 질
수도 있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그룹이나 공동생활은, 현 소비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들이 인정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뿐 아니라 특히 젊은이들
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 8. 길과의 만남 >
-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인간과 동일시했던 부분은 바로 길을 걷는다는 것이었다.
길 걷기를 멈춰었다는 것은 무엇에 굴복하거나 아니면 최소한도 실패를 재촉하는
정적인 태도인 반면 걷는다는 것은 인생의 다이내믹하고 유익한 태도를 말한다.
그래서 인생이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움직이고 걷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길 걷기를 회피하지 않았다. 그분은 항상 길을 걷고
계셨다. 여기서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희망에 찬 시선 속에 자신이 다다를 지점의
대략적인 윤곽과 찾고 있는 목표물 및 행선지, 그리고 어쩌면 그 이상으로 희망찬
내일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인 으로서 순례를 한다는
것은 길을 찾는다는 것이요, 그 길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또 그것은
진리와 생명이신 그분을 만나려는 행렬에 참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분과
함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곧 하느님께 도달하겠다는 의지와 확신의 표현인 것이다.

- 자신이 선택하여 걷는 길에 몸을 맡기면 그 길이 조금씩 올바른 가치 판단력을 키워
줄 것이며, 그럴수록 함께 걷는 사람들과 손에 손을 잡고 도움을 나누며 서로를 아껴
주고 힘을 모을 때, 우리는 우리가 오로지 앞을 향해서만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의 여정을 어둡게 하는 밤의 장막은 거짓 죽음과 같은 것인 반면 매일
열리는 아침의 광명은 영광스런 부활과 같다. 그 광명은 길손에게 인생 여정의 매 걸음
마다 죽을 용기와 부활의 용기를 가르쳐 준다. 그 여정의 종착지에서 우리 인간에게
남는 것은 자신이 추구한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느낌과 혼자 걷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 길을 걸어왔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이미 자신이
정착한 곳에서 자기가 사랑의 일부가 아니라 진리의 길을 사랑하는 사람이자 완벽한
사랑 그 자체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 9. 우울증과의 만남 >
- 심리적 스트레스와 외부로부터 오는 압력에 대한 방어 메커니즘으로서의 우울증은,
여러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기가 죽어 있거나
절망해 있으면서 병을 앓는다. 또 움직이기 싫어하며 그의 말투는 느릿느릿해지고
무미건조하다. 또한 외부 세계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다.
우울증의 또 다른 증상은 음성적인 신경성 질환으로도 나타나는데 근육 떨림, 장경련,
목 막힘, 복통, 요통, 현기증, 시력약화 등이 그것이다. 우울증은 적게는 몇 주, 많게는
몇 달, 몇 년 동안 지속된다. 슬픈 상태에서 힘이 없고 완전히 기력을 잃거나 희망도
잃고 불면 또는 숙면에 시달리면, 그것은 분명 우울증에 걸려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또 맥이 빠지고 지나치게 피곤하고, 슬프고, 짜증나고, 사고력이 후퇴하고,
혼란스럽고, 정신집중이 어려우면 그것은 당신이 분명히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생의 한 순간 주위상황과 타인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를 맞추기 위해 부단히 싸우고 노력하였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내적 갈등과 욕망들을 균형 잡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그 싸움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이 살아온 생활방식을 견뎌낼 수 없어서
가던 길을 멈추고 바로 자신의 삶을 내던져 버린다. 그리고 회사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직업 활동과 가정적인 의무마저 내던져 버린다. 그래서 한번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그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다시 인생을
시작한다. 결국 우울증은 환자 자신이 저항할 수 있는 최고의 한계에 다달아 자기 자신의
인생 무게마저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울증은 또
다른 삶의 출발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환자의 주위사람들은 그 점을 인정해야 한다.

- 사람들은 우울증이 현대문명의 병이라 말한다. 그렇지만 인류 역사상 우울증을 겪는
사람은 항상 존재했다. 성서에도 의기소침에 대한 얘기로 가득차 있다. 예레미야 역시
우울증에 빠진 사람이었고, 아모스 그리고 대부분의 선지자들이 다 그러했다. 욥의
말들은 의기소침한 이의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무엇, 즉 우리가
믿었던 사람과 의지한 사람들을 잃어버리면 의기소침하기 쉽다. 그 중요한 것이란 자신을
그토록 아껴 주시던 어머니도 될 수 있고, 사랑하는 어떤 사람, 또는 생업, 그리고 때로는
자존심이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 죄의식을 갖게 하는 모든 것이 우리를 우울증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다행이도 우울증은 날카로워진 심리상태일 뿐 고질적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치료를 받든 받지 않든 반드시 해결책이 있다. 우울증은 시한적이어서 언젠가는
끝나며 환자는 바로 그 해결책을 찾게 된다. 아주 고질적이고 만성적인 우울증은 극히
드물다.

-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그 같은 증상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 대화를 해야 함은 물론이고, 그와 동시에 스스로가 죄를 지었다고
느낄 때엔 의식적으로라도 성직자와 대화하고 용서를 받기 위한 화해의 성사를 통해
치유 받아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바로 그러한 의기소침의 치료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울증은 큰 얘깃거리요 문제이나 그것이 결코 인생의 종말은 아니다. 그 병은
언제나 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이나 다른 영적 도움에 의해 결국 치료되고야 만다. 따라서
먼저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치명적으로 해로운 모든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그 같은 일은 시간을 요구한다. 그래서 많은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즉 마음을
정화하는 과정이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우울증은 새로운 인생을 위한 출발점이다.
우울증으로 은둔생활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유충이 나비로 변하는 것과 같은 어떤 정신
적인 변화를 느끼게 된다. 우울증은 이렇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 주기 때문에 분명
복되고 유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10. 삶과의 만남 >
- 인간에게 있어서 삶이란 은총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알렉산드로 만조니’는 삶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사람들에겐 삶이란 하나의 짐으로,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에겐 축제가 되도록 운명 지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임무로 주어진 것이며, 우리 각자는 바로 그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말이 인간의 개별적인 차원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어느 한 순간 우리 각자는 생명을 부여받았고 사람이 되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라는 존재에 대해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며 타인에 대해 나라는 존재를 확인
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산다는 것은 본질적인 자아를 잃어버리지 않고 타인과 공존
하는 것을 의미한다.

- 실제로 진화를 향해 가는 삶의 가치란, 우리라는 형제애의 결속이 나타날 때인,
존재의 다이내믹한 공유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각자는 자신의 삶을 최대한
가치 있게 하기 위해 자유롭게 투쟁하고 몰두하며 노력해야 한다. 비록 삶이란 무엇
인가라는 수수께끼를 무시한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 삶을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를
올바로 아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브라질의 낭만파 시인 ‘곤살베스 디아스’가 자신의
시 ‘타모이우족의 노래’에서 멋진 운율로 삶에의 투쟁을 노래한 것은 가히 높이 살만
하다. “울지 말아라. 내 아들아. 인생이 처절한 투쟁임을 슬퍼하지 말아라. 산다는 것은
투쟁하는 것이다. 삶은 전쟁이며 약한 자들은 패하고 강하고 용감한 자만이 칭송될
것이다.”

< 11. 체념과의 만남 >
- 무엇을 체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체념의 올바른 정신을 갖고 있지
않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바로 이 때문에 모아 둔 재산을 체념하는 척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을 내심 은밀히 탐하고 있 때문이다. 가식적인
체념의 표현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됨에 따라 생겨나는
고집스러우면서도 은밀한 후회 같은 것이다. 그래서 가식적인 체념은 어디까지나
절망의 표시에 지나지 않는다. 결혼을 헐뜯는 노처녀들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결혼을
안 하든 못 하든 분명 그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젊은이들을
호되게 비난한다. 그것은 그 젊은이들이 노인들의 나이에는 이미 벗어난 희망찬
미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혼자들의 경우 결혼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치부
하고 경멸한다. 그것은 그들 자신들이 결혼생활에서 원했던 만큼 행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오늘날 기분 나쁜 개혁주의자들, 신랄한 비평과 비난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회
각층 간에 반목과 불화 및 충돌을 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행위는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그렇게 격렬히 비난하고 있는 것들이 진정으로 자신들이 체념한 것이
었는가를 묻게 된다. 예로, 대농장 소유자들을 신랄하게 비난하다가 결국 자신도
큰 농장 하나를 산 어떤 사람도 있다. 전도서(코헬렛서)에서 표현하고 있는 체념은
가식도 허위도 없는 체념이요, 진정으로 솔직한 체념이다. 그리스도교인은 체념할
대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버린 것보다 더욱 값진 무엇인가를
얻었기 때문에 기존의 것을 체념한다. 결국, 공적인 안녕을 위해 정직하게 땀과 노동
으로 획득한 재산을 소유하면서 하느님의 길에 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시적일 뿐인 그 많은 재산을 체념한다는 것은 하느님 왕국이 갖고 있는 영원한
재산을 소유하는 것이 된다.

< 12. 자리에 앉은 것과의 만남 >
- 부부가 서로 마주 보고 자리에 앉아 자신들의 결혼생활을 곰곰이 생각할 시간을
갖지 않을 경우, 그들의 결합은 쇠퇴해지며 아울러 그것은 서로 자기의 개인 생활에
빠져 한 가정이 지녀야 할 모든 의무를 잊어버림으로써 물질적, 도덕적 혼란이 그들의
생활에 그대로 유입되게 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그래서 그 같은 생활의 틀을 깨고
가정의 파탄을 막기 위해서는, 부부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현재 자신들의 생활을
반추 해 볼 시간을 갖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과 고통, 그리고 복잡한 일상생활에서는 쉽게 말하기 힘든, 여러 비밀스런 얘기를
말하게 되는 것도 평화로운 분위기에서이며, ‘사랑의 적은 침묵’이라고 하는 말이
있듯이 마음 속 깊이 굳게 간직할 수 없는 얘기까지 말하게 되는 것도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있을 때이다.

- 그래서 둘이 마주 보고 앉아서 그때까지 자신들의 이야기, 즉 우정과 사랑, 연애
그리고 신혼 얘기를 서로 즐겁게 회상하는 것이 하루 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둘이서 마주 앉아 행복한 모습으로 자신들이 신혼 때 함께 만들었던 계획들을 다시
되새겨 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아울러 자식들에 대해서도 분명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만일, 가톨릭신자이든 개신교 신자이든, 교인이라면
자신들의 현 생활에 과연 하느님이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있는지, 또 그분이 감시자나
폭군으로서가 아니라 언제나 함께하는 친구로서 늘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지 등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러고도 둘 사이에 시간이 남을 때엔 각자가 선호하는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13. 선입관과의 만남 >
- 다른 사람들에게 선입관을 갖는 것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것은 없다. 현대인들은
거의 모두가 자신의 본 모습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남들로부터 받은 선입관에
따라 평가를 받는다. 즉 그의 본 모습이 현재의 소비사회 속에서 흔히 갖는 선입관에
의해 일그러져 버린 것이다. … 스스로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바리사이파
사람이 기도 중에 하느님께 “오, 하느님! 저는 저기서 기도하고 있는 세리하고는
다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바리사이파 사람의 우월감과 편견이 죄를
짓게 할 것이며, 반대로 세리와 같이 하느님의 창조물로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명예를 회복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하느님은 인간을 바라봄에 있어 그가 지니고
있는 선입관이나 겉모습을 보지 않으며 아울러 그 사람의 사상적, 정치적, 계급적
지위나 신분을 보지 않는다. 그분은 그 사람의 총체적인 모습과, 권리와 의무를
지닌 유일하고도 인격체 그 자체를 바라보신다.

- 남의 겉모양에 따라 평가하는 사람은 어떠한 과거나 현재도 초월할 수 있는
그 사람의 가치에 대해서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인간 그 자체를 믿으셨기에
모든 사람을 편견의 눈으로 보지 않으시고, 그들이 자기 자신의 주인, 즉 자신의 인생에
대해 스스로가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만드셨다. 예수님은 우리 하나하나를 믿으신다.
우리는 영원을 찾아 진리와 사랑과 성서와 승화를 받아들일 열린 마음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느님에게 있어서 가치 있는 것은 선입관이 아니라 바로 그 하느님의
이미지와 모습을 닮아 태어난 우리 인간인 것이다.

< 14. 열등 콤플렉스와의 만남 >
- 거의 모든 정상적인 인간은 열등감 속에 살아간다. 그런데 열등감을 콤플렉스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남보다 좀 더 앞서겠다는 마음, 좀 더 나아지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새로운 일로 무엇인가를 보상받고자 하는 마음 등등, 이 모든 것은 자기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어떤 열등의식을 보여 주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그 열등감
속에는 자신이 어떤 사람, 혹은 어떤 계층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의식, 또는 인생에 있어서의 성공할 기회가 남보다 적다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람 자체에는 어떤 병적인 것은 없다. 오늘과 같은 경쟁 사회에서는 그것이
다분히 정상이며, 오히려 그것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동기가 되며, 그 동기에의
실현을 위해 자신이 싸워 나가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콤플렉스는 다르다.
그것은 모든 종류의 심리적 억제와 본능이 교차하는 심리적 성향들의 집결지이다.

- 콤플렉스는 병리학적인 범주에 속한다. 혹독한 콤플렉스는 하나의 독과 같아서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만일 열등감이 그 사람을 향상되도록 자극하고 도와주는 것
이라면, 콤플렉스는 그와 반대로 그 사람을 의기소침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난 결코 기회를 갖지 못할 거야. 결코 아무것도 성공하지 못할 거야.”라는 실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열등 콤플렉스는 언제나 그렇듯 자기가 원하는 모습을 성취하지
못함으로써 야기되는 하나의 결과이다. 열등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실패에 낙담하여 타인에 대해 질투심을 갖게 되며, 성공 그 자체를 자기와는
무관한 남의 것인 양 생각한다. 또한 타인의 성공을 자기에 대한 개인적인 공격으로
간주하며 비슷한 사람을 지배하고자하는 욕심을 통해 어떤 보상을 받으려 한다.
열등 콤플렉스가 어떤 보상을 추구함에 있어서 번번이 금방 그 진실이 드러날
우월감으로 위장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 열등 콤플렉스와 그에 대한 보상행위는 도피와 잊으려는 노력, 그리고 알코올과
마약에 심취하는 행동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하느님께 의지함으로써 자신이
그토록 찾고 있던 내적인 평화와 균형을 이룬 사람들이 많이 있다. 또한 자신의 외모를
바꿈으로써 자신의 콤플렉스를 보상받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 우리 인간은
열등 콤플렉스를 이겨낼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각과 이미
굳어 버린 패배의식 및 불행의식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상상하고 꿈꾸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성바오로가 말했듯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또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
에는 우리의 심리적, 정신적인 자유를 가로막는 쇠사슬을 끊어 버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잠재력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잠재력을 알고 그것으로 하여금 우리의 콤플렉스를 정면
으로 대항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만일 자신이 패할 것이라고
상상하면 그는 패할 것이다. 그러나 이길 것이라고 스스로 믿으면 그는 이길 것이다.
우리 자신만이 자기의 콤플렉스를 이길 능력과 상대적으로 호전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 케네디 형제들의 아버지는 자기 자식들에게 다음가 같이 말했다고 한다. “너희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어라. 그러나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석공이 되겠다면
이 세상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석공이 되어라.” 자신의 한계와 능력을 올바로 인식하는 한,
무엇보다 하느님의 모습을 가졌다고 믿는 한, 우리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열등하다고
느낄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 믿음 속에서 우리 자신의 열등 콤플렉스를 이길 힘을 발견
하게 될 것이다. 성 바오로는 말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
습니까?(로마 8, 31).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필리 4,13).”

< 15. 침묵과의 만남 >
- 바쁘고 소음에 찌든 현대인은, 성급하고 산만하기 이를 데 없는 자신의 생활을
영위해 가면서도 이따금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을 올바로 수정하기 위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줄 깊은 은둔생활 속으로 침묵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 것이다.
누적되는 끊임없는 피로와 바쁜 나날들 그리고 연일 떠들썩한 사회 언론매체들, 쉴 새
없이 격변하는 현대 기술, 이 모든 것들은 현대인으로 하여금 거의 모든 인간 비극들이,
파스칼이 말했듯 자기 방에서 조용히 침잠(沈潛)할 줄 모른 데서 온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실제로 침묵에서나 고독 속에서도 항상 인간을 두렵게 하는 것은 어떤 낯선
사람과의 만남, 즉 바로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다. 침묵의 순간이,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인간의 사고력에 어떤 새로운 자극제가 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소음은 그저
무의미하게 흩어져 사라져 버리지만 침묵과 고요는 그 흩어지는 것들을 모으고 되살리고
압축하며 나아가 새로운 것을 지속적으로 창조한다. 그래서 ‘그레이트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침묵은 샘들이 솟아나는 곳이다.”

- 식물이 씨앗을 뿌린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은 채, 싹을 틔워 생산 활동을 하는 것도,
땅 속 깊은 곳에서 침묵 속에 이루어지듯 잉태하는 것도 존재의 깊은 내면 속에서 조용히
이루어진다. “만일 누군가가 하느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면 침묵하라.”
라고 ‘키에르 케고르’는 말했다. 그 이유는 침묵함이 없이는 결코 하느님의 진정한
메시지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액이 순환하여 나무가 싹트는 것도 모두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 하느님의 말씀이 영원한 탄생으로 이어지고 성령의 감응이 끝없이 존재하는
것은 모두 그 침묵 속에서다. 인간은 오늘날 소음과 소란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 세계의
발전 속에서 점차 퇴색되어 가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를 다시 되찾기 위해서
라도 침묵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쿠르테’ 신부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한 사회를
개혁하고 그 사회의 구성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침묵이다.”

< 16. ‘아직은 아니다’ 와의 만남 >
- 우주의 주인이신 하느님은 이 땅에 모든 형태의 인간이 공존하도록 허락하신다.
그분은 기다림의 하느님이시지 결코 급하게 심판을 하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의
자비는 벌을 내리시는 데 굼뜨시지만 용서하시는 데는 빠르시다. 하느님은 죄를
증오하나 죄지은 사람은 존중하신다. 나쁜 짓은 벌하시지만 나쁜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신다. 범죄를 인정하지 않으시나 범죄자에겐 자비를 베푸신다. 또 그분은 불경스러운
사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과천선하기를 기다리신다. 진정, 어느 누구도 자신의
행실 면에서 인생의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사람이 아니므로, 하느님은 그들에게
선입관을 갖거나 그 이름에 오점을 남기려고 하시지 않으신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
인간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여 자신의 인생역정을 끌어가기에,
그분은 성급한 심판을 내리지 않으신다.

- 하느님은 우리 인간이 항상 나아지고, 또 그 내면에 하느님 자신의 거룩한 영상이
비쳐지길 기대하신다. 만일 하느님이 지금 당장 우리를 심판하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에게 좀 더 오래 살 시간적
여유와 기회를 주신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다 만들어진 기성복이 아니기 때문이며
우리의 발전을 믿으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의 발전과 변화를 믿으신다.
매순간, 매번, 매주, 매달, 매년, 우리 인간이 나아지고 진보하여 번영할 것이라고 믿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분은 기다리신다. 그 이유는 부패하고 죄 많은 인류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우리를 심판할 때가 ‘아직 아니다’라고 믿으시기 때문이다.

< 17. 침묵의 사막과의 만남 >
- 우리는 침묵의 사막에서 세상사의 조화로움과 바로 우리 내면의 소리, 그리고
하느님의 황홀한 신비적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침묵 속으로 침잠할 때 하느님은,
우리에게 단순한 이치를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거시며 거의 무에 가까운 것으로 우리를
강하게 만드신다. 우리가 차의 소음과 경음기 소리, 그리고 타악기들의 소음에 뒤섞인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화시키고 더 새롭게 해주는 침묵의 샘을
필요로 한다. 비인간적이며 풍요롭지 못한 침묵들이 있다. 즉 고독으로 몰고 가는
침묵이 그것이다. 예를 들면 미침, 정신분열, 의기소침, 염세주의, 페시미즘의 고독
그리고 절망에 따른 고독, 대도시에서의 의지할 곳 없음으로 인한 고독, '가브리엘
마르셀'이 말한 ‘깨어진 세계’의 불안과 혼란 속에 내재해 있는 무서운 고독 등이 바로
그것이다. 풍요롭지 못한 그 같은 고독의 침묵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유쾌하고도
즐겁고 자연발생적인 침묵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 하느님께서 침묵의 사막에서 일하고 계심을 증명하는 예가 바로 예언자 엘리아이다.
엘리아처럼 하느님 앞에, 우리가 우리 자신의 나약함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
하느님이 사막에서 엘리아에게 구운 빵 한조각과 물주머니를 내려 주신 것처럼 우리는
침묵의 사막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그 음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침묵의
사막에서 잠시 머문 것도 헛된 일이 아니었다. 그분은 정기적으로 침묵의 사막을 음미
하러 그곳으로 가시곤 했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제자들을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멀리 떨어
지도록 인도하셨다. 세례자 요한도 바로 그 사막에서 메시아의 전령관으로서 일을 시작
했었다.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 균형 속에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혼잡한 도시와
농촌에서 백성과 함께 있어야 하며, 아울러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침묵의 사막에서
하느님과도 함께 있어야 한다. 아씨시의 성프란치스코도 바로 그렇게 행동했다. 그는
사물과 동물, 그리고 사람들과 대화할 줄 알았다. 그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틈나는 대로
침묵을 하며 그 같은 능력을 얻었던 것이다.

< 18. 부활절과의 만남 >
- 부활절이 되었다. 예수님은 채찍을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다시 살아나셨다.
인간이 그에게 만든 상처였지만 이제는 영광스러운 상처가 되어 그것과 함께 부활하신
것이다. 부활절이 왔다. 새로 피어나는 봄처럼 우리의 마음도 새롭게 단장하자. 고독의
마른 잎들을 제쳐두고 평온하고 발전적인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많은 상처들이 영광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보아 왔다. 치료된
상처들은 그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승리를 의미한다. 술 주정쟁이의 상처는
그가 회복되었을 때 치유되며, 마약에 중독된 이의 상처는 그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을 때 치유되며, 매춘부의 상처는 몸을 파는 행위를 중지했을 때 치유된다. 나아가
배신했던 이의 상처는 그가 사랑을 발견했을 때 치유되며, 죄지은 이의 상처는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 치유되며, 비겁한 이의 상처는 그가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치유된다. 그리고 간통한 여인의 상처는 그녀가 자신의 남편에게 충실한 이로 되돌아
왔을 때 치유되며, 배은망덕한 이들의 상처는 그가 가정으로 돌아왔을 때 치유된다.
아울러 도둑의 상처는 이제 그가 정직한 사람이 되었을 때 치유되며, 또 무신론자였던
사람의 상처는 그가 이제 진정한 하느님을 만났을 때 치유된다. 이 상처들은 그 사람이
역경을 딛고 다시 태어났음과 예수님의 부활을 의미하며, 그들은 봄처럼 다시 소생한
사람들이다.

- 우리의 말과 몸짓과 자세와 더불어 우리 자신이 봄처럼 다시 태어나자. 우리의
인생을 거듭나게 하고 그 인생으로 하여금 희망으로 가득차게 하자. 부활의 봄이
우리 마음속에서 장애물을 만나지 않도록 기도하자. 우리의 심장이 아주 조화롭게
뛰도록 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품 안에서 새로운 삶이 전개되도록 기도하자.
반항과 무관심, 야유와 복수 그리고 불안과 편견과 의혹들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비우자. 그리하여 쓸데없는 인색함 들을 사랑과 우애의 씨앗으로 바꿔
놓도록 하자.

< 19. 내 인생과의 만남 >
- 삶의 주위를 맴돌며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을,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 틈도 주지 않은 채, 그렇게 빨리 흐르는 시간을 보고 있다.
인생은 기도할 시간도 없는 빠른 세상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인생은 화살처험,
총알처럼, 자신도 아직 알지 못하는 곳을 찾아 떠나는 로켓처럼 빨리 흘러간다.
하지만 혼란과 소음, 미래가 없는 인생과 의기소침, 불안과 쇠약함 속에서도 우리는
깊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하며 생각을 잘 정리하여 행동을 계획하고 평화를 되찾아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게 될 때 더욱더 살 가치가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며, 아울러 그 삶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도 우리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면에
도달하여야 한다. 진정한 인생의 길을 포기한 사람은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것이며,
결국 그는 영혼을 버린 생명이 없는 어떤 물체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인생을 균형 있게 사랑하는 것이며, 아울러
희망 안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한다. 나는 무한(無限) 앞에서는
내 자신이 하나의 무(無)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무 앞에서는 하나의 전부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내가 전부와 무 사이의 단순한 어떤 중간적 존재라 하더라도 내 인생을
믿고 있다. 실제로 나는 나른한 오후에 눈꺼풀이 내려와 취침을 준비할 때도, 대자연의
그림자들이 밤의 접근을 온화하게 할 때도, 창백한 여명이 그날의 시작을 준비할 때도
난 삶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나는 매순간 나 자신과 기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모든 것 때문에 나는 삶을 사랑한다.

< 20. 의식 및 상징들과의 만남 >
- 오늘날 우리는 의식(儀式)과 상징적인 것들에 과민반응을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성스러운 의식들이 재 복구되어 본래의 생명력을 되찾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로
하여금 자신의 기쁨과 알력, 희망과 사랑, 고통과 긴장 그리고 개인적, 단체적 모순들을
재활시켜 표현하게 하고 아울러 그것을 칭송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오늘날의 소비 지향적 사회는 삶을 칭송하기 위해서보다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또한 삶을 기쁘게 영위하기보다는 무슨 계획들을
세우고 그 계획들을 실현하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한다. 의식적, 상징적 기념
행사들이 인생의 여러 순간들을 보다 의미롭게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개인적, 단체적 중요성을 갖는 일과 행사들이 무수히 많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 인간
사회는 기쁨 속에서든, 고통 속에서든 그 일과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성스러운 의식
이나 행위들에 의존한다.

- 건물기공식, 곡물 추수, 상량식, 결혼, 생일, 장례식, 새집으로 이사한 날, 새 차를
산 날, 친지가 도착한 날, 승진 등 인생의 이 모든 일들이 어떤 개인이나 어떤 단체들로
하여금 의식적인 기념을 집전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 종교적 전통에 따르면 성스러운
의식은 합리적이고 도덕주의적인 말과 연설을 초월한다. 의식은 인간과 사회를 삶의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 인도할 힘이 갖고 있다. 몸으로 부딪혀 해결해야 할 그 모든
실존적 긴장과 알력은 분명 어떤 의식을 요구한다. 오늘날에는 장례식이 죽은 이와의
이별을 기리는 데 있어서, 슬픔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에 가장 적절히 부합하는 의식
중의 하나이다. 의식은 그 자체가 어떤 초월자를 흠모하고 기릴 경우, 인간 존재의
가장 뿌리 깊은 알력을 터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식이 일반인 사이에 성스러운
어떤 종교적 행사로 인식될 때 그 의식은 하느님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매개체로서,
그리고 우리 인간이 그분 앞에서 어떤 특혜 받은 매개체로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 21. 자캐오와의 만남 >
- 여러 사람들 사이에 낙인이 찍히고 소외당한 자캐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억압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세리로서 그는 침입자 로마인들에게 아첨하는 이였다.(루카 19장
참조) 그는 본래 직책은 세금 징수원들의 우두머리였고, 무엇보다 부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민족의 배신자로서 낙인이 찍혔고, 세금을 지나치게 많이 걷고 갖가지 횡포를
부렸으므로 정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그러한 자신의 한계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가까이 할 수 없게 되자 그는 돌무화과 나무 위로 올라갔다. 예수님은
나무에 오른 자캐오를 보시고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말씀하셨다. “자캐오야, 어서 내려
오너라. 오늘 너의 집에 묵고 싶구나.” 예수님은 자캐오를 차별하지도, 벌하지도,
위협하지도 않으셨다. 다만 그를 믿을 뿐이었다. 예수님은 나쁜 사람으로 평판이 난
그를 편견으로 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에게 자기의 장점을 살리고 악을 극복할
수 있도록 멋진 ‘기회’를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그를 에고이즘(이기주의)으로부터
끌어내셨고, 남을 억압하며 안주하던 보금자리에서 끌어 내셨다.

- 예수께서 자캐오의 집에 머무셨다는 사실은 자캐오의 인생과 사랑, 그리고 그가
안고 있던 문제들과 그가 저지른 죄들, 또한 그의 내적 갈등과 거의 보이지 않는 내면
속에 머문 것과 같다. 그래서 곧 자캐오의 집은 하느님의 집으로 바뀐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를 사랑하고 믿었기에 그 역시도 사회로부터 올바른 대우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속임을 당한 사람들에게 봉사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사람으로
새 삶을 펼쳐 나갈 자캐오에게 있어서 자신의 과거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 재산의 절반을 주겠습니다. 그리고 …” 라고
말했다. 그의 내면세계에 메말라 있던 것처럼 보이던 샘들이 폭포로 바뀌어 그의
존재를 충만하게 하기 시작했다. 결국 하느님은 자캐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아직 남아
있던 사랑의 불꽃을 다시 피어오르게 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구원이 이 집에 들어 왔다.”라고 말씀하셨다.

- 우리는 남들을 낙인찍기 좋아하며 편견으로 그들을 보기 좋아 한다. 특히 그들이
상류층으로서 죄를 지은 사람일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와
반대로 사랑의 몸짓으로 그 같은 낙인과 편견을 초월하셨던 것이다. 그것은 그분이
죄와 그 죄를 지은 사람을 동일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약속하신
구원 속에 모든 인간을 포용하셨기 때문이다. 하느님에 의해 가치 있는 존재가 된
자캐오는 사회를 위해서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되었다.

< 22. 인간과의 만남 >
- 오늘날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진화를 통하여, 오랑우탄의 모습 등을 잃음으로써,
모범적인 동물로, 이 우주의 아주 멋진 존재로 탈바꿈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밑에서 위를, 부족한 것에서 충만한 것을 지향하는 하나의 충동으로 여길 뿐
더 이상 하느님의 은총이요, 선물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창세기로부터
하느님에 의해 불어 넣어진 불멸의 영혼 때문에 비로소 인간으로 대접받고 존재하는
것이다. ...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진흙이 아니라 영혼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인간이 지녔던 맹수 같은 사나움이나 원숭이의 입술, 그리고 여타 짐승의 꼬리가
진화에 의해 저절로 상실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동물성으로부터의
진화 속에 있는 것도 아니요, 하느님께로 올라가려는 모습에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인간은 승화된 어떤 야만적 존재이기 이전에 추락한 천사였다. 인간의 기원은 진흙
이나 원시림의 먼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대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던
에덴동산에 있다.

- 우리 인간의 기원은 우주의 힘에 의해 설명되어지지 않으며, 다만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설명되어진다. 그 이유는 우리 인간이 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이미지를 닮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인간은, 밑에서 위로 향하는 단순한 진화의
힘에 기원한 것이 아니라 지혜와 강한 의지력, 그리고 이 세상을 뒤바꿔 놓을 수 있는
지혜로운 사고력과 판단력을 조리 있게 펼쳐 나갈 수 있는 언어 구사능력을 주시고,
아울러 자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투영시키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창조행위의 결과인
것이다.

< 23. 죽음과의 만남 >
-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이 살아 계시는 동안 언제나 생명에 대해 높은 가치를 부여
하셨다. 그분은 환자들을 치료하여 그들이 자기의 길을 계속 걸어가도록 하셨을 뿐
아니라 죽은 이들을 다시 살려내시어 아름다운 삶을 다시 맛보게 하셨다. 언젠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인에 도착했을 때 숨진 어떤 젊은이의 장례 행렬을 하고 있는
일련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 옆에는 죽은 이의 용기 있는 어머니이자 과부인 한
여인이 울고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그 사람들에게 접근하셨다. 언제나
그러하듯 그분은 생명을 사랑하셨으므로 그의 그 같은 행동은 삶과 죽음의 비극적인
만남을 의미했다. 그분은 또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지녔으므로 우리 인간이
그 모든 것을 기대할 수 있는 분이기도 했다. 예수님은 아들을 잃은 여인에게 말씀
하셨다. “여인이여 울지 마라.”...“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예수님의 행동은 언제나 자신의 생각과 말에 일치한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셨다. (루카 7, 11-17 참조)

- 젊은이가 살아나자, 예수님은 그를 그의 어머니에게 인도하셨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죽은 이를
살려 내는 것이다. 홀로 남은 여인으로서 그리고 자식의 죽음으로 어떻게 위안을
받아야 할지 몰랐던 그 여인의 고통은 분명 그 죽은 아들의 회생을 통해 위안 받아야
마땅했다. 이처럼 하느님은 아프고, 배고프고, 가정도 없이 절망에 빠져 있는, 오늘
당장 내일 살아갈 것을 걱정하는 자신들의 백성들에게 항상 눈길을 떼지 않으셨다.
그 자체가 위대한 생명으로서, 매순간 우리 인간에게 영원으로의 도약판인, 생명을
부여하시는 분은 유일하게 바로 그 하느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죽음의
종교가 아니라 삶의 종교다. 오로지 하느님 말씀 안에서의 삶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종교이며 행복한 영생의 종교인 것이다.

< 24. 믿음과의 만남 >
- 오늘날의 세계에서 우리가 부딪치는 가장 다양한 도전들과 열망들 가운데는 믿음
이란 문제가 있다.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이 그 권위를 믿는 이에게 개인적으로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교적 믿음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에게로의 개인적인 동참을 요구한다. 그 같은 동참은, 이 세상 끝까지 그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의미한다. 그와 동시에 그 동참은 절대와 초월 그리고 거룩함과
우리와 대화하는 하느님의 상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약속을 의미한다. 아울러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우리의 본 모습을 직시하도록
하며, 그 본 모습 속에서 우리는 똑같은 믿음의 차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될
것이다. “보잘 것 없는 형제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믿음은 그것이 초자연적이든 시간적으로 유한한 것이든 그 모든 것을 포용한다.
믿는다는 것은 생명의 하느님, 우리가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그 사랑을 가까운 이에게 실천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또한 믿는다는
것은 절대적인 순종으로 하느님의 거룩하신 계획에 동참함을 의미하며, 그 같은
순종을 통해 그 계획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하느님의 여정에 다 같이 동참하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또한 믿는다는 것은 인간이 언제라도 하느님의 자비로운 은총에
열려 있는 창조물인 한, 그 창조물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믿는다는 것은
역사의 주체인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무엇보다 인간이,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자 여타 다른 인간들의 형제임을 스스로
깨달아야 하며, 더 정의롭고 우애로운 어떤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한다.

< 25. 복된 이들과의 만남 >
- ‘복된 이들’로 알려진 산상설교의 서두는 성서와 세계 문학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중의 하나이다. 마태오 복음 5장과 루카 복음 6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목하신
행복의 길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 ” 복된 사람들이란 그 의미상으로 볼 때
우리의 마음가짐 또는 정신을 점진적으로 새롭게 하는, 지속적인 현재에로의 끈질긴
초대라 할 수 있다. 성서에 따르면 인간은 행복하기를, 더욱더 행복하기를 원한다고
한다. 이 같은 인간의 욕망은, 만일 그것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확실히 실현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렇게까지 강하게 우리의 본질 속에 심어져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그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심과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그 행복을 지금 실현할 수 있도록 도우러 오셨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과거라는 잿더미 위에 행복을 세우려고 한다. 그들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를 무너
뜨린 뒤에야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와 다른
방법으로 일을 추진하고 계신다. 그분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바로 지금 행복해 질
수 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슬퍼하는 사람들은…,
온유한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이 글귀에 쓰인 동사들은 모두 그 시제가 현재이며
그것은 곧 행복의 현재성을 잘 증명하고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보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구조 개선의 근본 바탕인 인간의 개혁을 염두에
두고 계신다. 우리 인간은 지금 당장 스스로를 개혁하여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26. 행복과의 만남 >
- 예수님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거짓을 감출 수가 없다. 그분 앞에서 우리는 앞뒤로
완전히 열린 한 권의 책과 같다. 그분 앞에서 우리는 불안하게 떨고 있는 하나의
나뭇잎이요, 자신의 거짓조차 통제할 힘을 잃어버린 왜소한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거짓된 모습을 벗어 던지고, 소심함과 두려움을 버리고 진실을 인정할
용기 있는 사람이 될 때 비로소 그분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며, 그분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 진리를 추구하는 길임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분에게 다가가는
사람은 진리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며, 가식이나 가면이 없는 진리의 본질 속으로
뛰어 들게 된다. 바로 거기에 지혜의 무궁한 샘이 있다. 우리가 그분께 접근할 때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진리를 찾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가
나타날 때만이 행복이란 것이 빛을 발한다.

- 만일 우리가 오로지 행복만을 찾아 그분께로 다가간다면 우리는 그 행복을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진리를 통해서만이 행복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우리가 발견하게 되거나 만들게 될 진실한 부차적 산물이다. 우리는 진리의
나무를 가꾸거나 보살피지 않고 곧장 그 나무의 열매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나무를 잘 가꾸고 보살피면 열매가 열리듯이 진리를 잘 보살피고 가꾸면 행복이 싹틀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행복이란 우리가 목표로 했던 진리나 원했던 목적을 달성할
때에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일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명상과
추종 속에서 그분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곧 그로 인해 행복의 열매를 맛보게 될 것
이다. 결국 행복은 찾고자 하는 진리의 발견 정도에 비례한다.

< 27. 오해와의 만남 >
- 모든 오해는 서로의 말과 행동을 잘못 해석하게 하는 아주 개인적인 동기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만일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이라면 부부나 형제, 친지 그리고
친구들과 같이 아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 사이에 우리가 종종 볼 수 있는
엄청난 오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가장 극단적인 몰이해나 오해는 서로를
아주 사랑하여 단 한순간이라도 오해가 생길 틈을 주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
난다. 만일 상호간에 오해가 발생할 때, 이기주의나 자기우월주의, 자만심 그리고
질투 등과 같은 오해의 근본원인을 정면으로 공격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고 그를 심판하거나, 대화를 해보지도 않고 그를 비난하거나 또는 개인
적인 이해관계의 충돌로 상호관계를 깨뜨리거나, 자신이 상상한 것을 마치 실제로
일어난 것인 양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기준으로 상대방의 존재방식을 심판하게 된다.

- '세르반테스' 소설의 주인공인 '돈키호테'는 자신을 어떤 위대한 기사로 착각,
'산초' 판사를 호위병으로 대동하고 괴물들로부터 그리고 도둑들로부터 마법에 걸린
여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하기로 결심한다. 요란한 옷차림에 자신의 말인
‘로시난테’를 타고 길을 나선 그는 자신의 오해로 이루어진 상상의 세계에 빠져, 가는
곳마다 사사건건 적을 발견하고 싸운다. 그러나 그는 결국 풍차의 날개에 부딪쳐 땅에
굴러 떨어지고 만다. 이와 같은 일은 단순한 장난을 모욕으로 여기고, 아주 작은 실수를
큰 적대행위인양 한없이 자기 자신을 오해의 구렁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난다.
...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할 시간은 너무나 짧으므로 쓸데없는 오해들로 그 아까운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될 것이다.

< 28. 두려움과의 만남 >
- 현대인들은 모든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으며 그 두려움을 갖는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까지 겁을 먹고 있다. 직장을 잃을 두려움, 병석에 누울 두려움, 배고픔에 대한
두려움, 암과 에이즈에 대한 두려움 등등. 또한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사고와 생활
그리고 인생을 헤쳐 나가는 방식에 깊이 연루시키는 두려움들도 있다. 그 두려움들은
인간의 행위와 사고에 골고루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부조리에 대한 두려움, 벌에
대한 두려움, 나아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가세한다. 무엇보다 현대인은 자기 존재의
부조리함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래서 왜 나는 존재하는가? 내 인생의 의미란
무엇인가?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가?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될까? 등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 현대인은 죽음을 견뎌내지 못한다. 소비 지향적 사회에서
교육을 받았고, 안락한 생활 속에서 각종 레저를 즐기며 살아온 현대인은 죽음의 비극에
대해 듣는 것 자체를 인내하지 못한다. 그는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그 같은 현실,
즉 죽음과 공존하며 살아가도록 교육을 받지 못했다.

-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이상으로 삶에 의미를 부여해 준 이는 없다. 따라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생의 부조리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분만큼이나 벌을 없앤
분도 없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성스러운 용서를 받을 조건을 갖고 있으므로 벌함에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용서하면 용서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이란 하나의 변화요, 이승에서
저승으로 넘어가는 과정일 뿐이다. 결국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의
힘을 의미하며 그와 동시에 오늘날 기계문명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로 하여금
부조리와 벌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게 하는 지탱점임을 의미한다.

< 29. 생각과의 만남 >
-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시각에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
생각은 녹음된 테이프처럼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아 나중에 행동으로 표출된다.
실제 우리 인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녹음된 테이프를 갖고 있다.
그 테이프들의 많은 부분은 우리의 문화, 유산, 경험, 사회생활, 종교적 믿음, 성문제
등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또 평생을 살아가며 선과 악을 녹음해 둔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를 혼란시키는 그 테이프들을 자꾸 반복하여 듣고 행동하고 있다. 하지만 분별력
있는 사람은 기존의 테이프들을, 우리를 고양시키는 새로운 가치들로 채워진 다른
테이프를 교체할 줄 안다. 필리피서(4, 8)에서 바오로는 “형제 여러분,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 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라고 하였다.

- 위대한 ‘이냐시오 데 로욜라’는 생각을 감시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
한가를 아주 잘 간파하였다. 그는 병원 침상에 있는 동안 낭만적인 영웅들의 이야기를
탐독하다가 성인(聖人)들의 삶을 읽기 시작했다. 거기서 그는 그리스도교에 나타나는
영웅들과 얼마 전에 읽었던 소설 속의 주인공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 영웅들이 보인 활약상을 읽은 뒤 그의 생각들은 공허하고 의기
소침하고 육적인 것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성인들의 생애를 읽고 난 뒤 그의
생각들은 한 차원 높아져 덕망과 미덕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이냐시오로
하여금 사물을 분별하는 능력을 향상시켜 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제자들로
하여금 사고의 원천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이 벌이는 행동양식을 확인하게 되었다.
만일 우리가 올바로 행동하고 처신하려고 한다면 생각을 조절하는 것 이외에 좋은 방법은
없다. 건전한 생각은 인생 여정에 있어서 광명과도 같다. 아직도 당신이 그 같은 경험을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즉시 시험해 보자.

< 30. 책임과의 만남 >
- 오늘날 소비사회는 우리 인간을 높은 책임의식과 고삐 풀린 무책임 의식이 공존하는
혼란스러운 길목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무책임이 만연해 있는 가운데서도,
많은 사회분야에서는 책임을 인정하려는 경향이 매우 널리 확산되고 있다. 책임감이란
자기 행위에 대한 인식행위이자 그 행위의 결과를 모두 수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것은 곧 우리 인간이 자기가 취하여 실천에 옮긴 결정들을 완벽하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그것은 자기가 의식적으로 취한 행동들에 대해선
충실히 그리고 용감하게 책임지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책임감이 우리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의 세계로 파고들어 그곳에 정착해 있어야 한다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그 책임감이 제2의 천성처럼 아예 우리 각자의 성격으로 탈바꿈되어야 한다.

- ‘요셉 베르네’는 인간의 책임 의식을 다음과 같은 3단계로 나눠 분석하였다. 먼저
책임감은 행동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심리적 의식(즉각적인 책임감)이 인간의 행동결과를
수용하는 단계(부차적 책임감)를 거쳐 그 행위에 의해 발생한 일의 도덕적 가치를 평가하는
단계(도덕적 책임감)로 발전하여 끝나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런 단계들은 책임감을
내면화하고 성격으로 굳히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책임감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가 하는
일을 인식하는 지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책임한 이들은 내적인 견실함과
개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아까운 시간을 허비해 가며 이쪽저쪽으로 줏대 없이 옮겨
다니며 산다. 그들에겐 시간에 대한 도덕적 관념조차 없다. 그들은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책임감을 내적으로 소화하여 자기의 성격을 굳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책임감을 내적으로 뿌리내리게 하고, 나아가 하나의
성격으로 자리 잡도록 끊임없이 감시하도록 하여야 한다.

< 31. 결정과의 만남 >
- 책임감 있는 사람은 항상 결정을 한다. 그래서 책임감 있는 지도자들이 내린 결정들을
항시 집행되고 수행되어야 한다. 실제로, 책임감 있는 사람은 성급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며, 그 대신 사전에 심사숙고하여 자신의 결정이 몰고 올 추후의 상황까지 세심하게
검토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순간과 장소에 적절하면서도 정확히 선택된 결정에 대해서는,
비록 그것이 자신에게 희생과 고행을 요구한다 할지라도 책임감을 갖고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알로’는 단호하고 결단력 있는 어떤 리더의 값어치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결정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남을 리드할 수 없다. 인내할 줄
모르는 사람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자신이 취해야 할 능동적인 부분에 대해 항상
두려움을 가지고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남의 밑에서 일하는 자들이며
그들의 행위는 상하관계에서 하위에 머무는 사람들의 처세이다.

- 우리는 일단 내려진 결심이, 시간을 두면서 정확한 결단을 내리려고 우물쭈물하는
것보다는, 또 어중간한 결단을 내리는 것보다는 훨씬 더 높은 가치를 갖는다고 확언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환상 속에서 우유부단한 자세를 취하는 리더들이나 온갖 가능성을
모두 검토하여 상황에 따라 기회주의적인 결정을 내리는 리더들을 따라서는 안 되며,
우리 자신들도 그 같은 사람들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그러나 결정만 했다고
다 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미 내린 결정을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어떤 결정이나 해결책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취해진 결정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결국 리더의 성공과 출세 여부는 자신이 분명한 의식 속에서 취한 결정을 실행함에 있어서,
얼마만큼의 추진력과 끈기를 가지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 32. 전자 유모와의 만남 >
- 오늘날의 사회 언론매체들, 특히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의 경우 정신적인 면과 도덕적인
면을 거의 등한시한 채 그저 환상에 불과한 프로그램만을 취급하며 사람들은 그 프로그램에
파묻혀 살아간다. 언론 매체들은 그 속성상 매우 빨리 전달되고 효과적으로 우리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므로 우리 현대인들은 그 언론매체의 횡포로부터 잠시라도 떨어져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이 그 같은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홍수 속에서도 외롭고
쓸쓸함을 느끼고 있다. 사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우리 인간을 하나의 음향세계 속에
가둬 버렸으며, 그 세계 속에서 우리 인간은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면서도 실제로는 접촉
하지 않는 아주 묘한 형태의 고독 속에 살고 있다. 전자 기계들은 대화를 하지도 느끼지도
않으며 사랑은 더욱더 하지 않는다.

- 가정의 경우도 대다수의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보채는 것을 피하려고 텔레비전을 틀어
준다. 선진국에서 전자 유모라고 비판받고 있는 텔레비전이 이미 그 같은 역할을 수행
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의 아동들은 이제 더 이상 과거처럼 부모나 유모들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자장가가 아니라 비디오 영상들에 완전히 내맡겨져 있다. 사실
부모들이 어린 자식들을 텔레비전에 맡겨 두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좁은 주거 공간 속
에서 아이들에게 자유로이 뛰어 놀 공간을 마련해 주지 못하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으나,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을 현란한 텔레비전 영상 앞에 묶어 둠으로써 오히려 부작용만
초래하고 있다. 전자 유모는 어느 누구를 사랑하지도 않으며 또 관심도 전혀 보이지 않는
기계에 불과하다. 그 전자 유모의 위험성은 바로 전자 유모가 안고 있는 대화 불가능성에
있다. 그 이유는 어떤 언어소통의 경우라도 대화가 없이 한편의 일방적인 전달만 있을
경우, 그것은 메시지를 받는 사람에게는 강압적인 정보누적을 야기하여 그에게서 비판적
이고 기계적이며 일방적인 어떤 반응을 유도하며, 결국에는 그들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획일적으로 만들어 어떤 생활방식을 그들에게 강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 33. 걷는다는 것과의 만남 >
- 육화(肉化)란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과 만나기 위해 걸어온 길이다. 요한복음(1, 14)에
따르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라는 문구가 있다. 하느님께서는
길을 열고 싶어 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길을 걷는 법을 가르치러 오셨다. “일어나
걸어라.” 그분은 이 세상의 마비 증세를 치료하시러 오신 것이다. 그분이 우리 인간세계에
오신다는 신호는, 천사 가브리엘을 움직이셔서 마리아에게 가게 한 데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리아는 급히 ‘아인 카림’ 산까지 올라 엘리사벳을 방문하였고 이내
자신의 뱃속에서 곧 태어날 생명체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결국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님은 세 목자들로 하여금 바위산을 떠나 자신이 태어난 베들레헴으로 오게
하는 새로운 걸음을 요구하셨다. 또한 동방 박사들도 모든 것을 버리고 갓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찾아 여행길에 올랐다. 이처럼 베들레헴의 아기 예수님은 그 사람들의 인생길을
바꾸어 놓았다.

-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성전으로 향했으며, 그 후에 이집트에서
나자렛으로 돌아왔다. 요한의 제자들이 아기 예수님을 확인하고자 길을 나섰다.
그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라.”라는 말로 초대를 받은 것이다. “오라.”라는 말은
“내 뒤를 따라 걸어라.” 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여러 지방과
도시를 돌아다니셨다. 그것은 하느님 말씀을 전파하기 하기 위하여 몸소 세상을 돌아
다니며 행하신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셨을 때에는 천사를 보내어 막달라 여자 마리아로
하여금 걸어가 그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세상에 알리게 하셨다. 그러자 요한과
베드로가 예수께서 묻혔던 무덤까지 달려 왔다. 베들레헴의 아기 예수님은 우리 인간
에게 걷는 길을 가르치셨다. 자기 제자들과의 공동생활을 포기해야만 했을 때 그들에게
“가거라,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라.”라고 하셨다. 그분의 제자가 되려면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되며 한 곳에 정착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 모든 백성이,
사랑으로 가득한 문명 속에서 그분을 따르는 제자가 되어 복음의 길을 걷는 것이다.

< 34. 일관성과의 만남 >
-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고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에게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일관성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믿음을 갖고 인생을 일관성
있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일관성은 사랑의 흔적들 중의 하나이다. 사랑하는 사람
만이 일관성을 갖는다. 그 대신 일관성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모순된 길을 살아가며
스스로가 그러리라고 확신하는 것을 부정한다. 예수님은 일관성 있는 믿음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셨다.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 21).

- 누군가가 예수님을 일관되게 믿는다면 그는 결코 예수님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믿음에 있어서 일관성이 없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엄성을 위축시키고야
만다. 그것은 그가 진실을 증언하지 않고 그저 말로만 진실을 믿는다고 할 뿐 실천에
옮기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일관성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한 말이나 약속을 지키지
않으므로 믿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스스로를 부도덕하게 만들며 그것을
빌미로 삼아 남들이 그를 부도덕하게 여기는 것을 변명하려 든다. 하느님 계획에 대한
성모 마리아의 일관된 자세를 들어 보자.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 38). 마리아만큼 하느님의 말씀을 믿으며 신앙생활의
일관성에 빛과 자극제가 되는 분도 드물 것이다. 교회는 일관되게 자기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믿는다.

< 35. 온정과의 만남 >
- 남자든 여자든 자신을 끊임없이 가꾸어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려면 자신의 풍요로운
잠재력을 알아내 그것을 균형 있게 사용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성의 동물인
우리 인간은 창조물 중 가장 완벽한 존재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장 복잡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 인간이 자기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을 총체적으로 균형 있게 이룩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이해관계 때문이라든가 사회나 사상의 잘못된 관행 때문에 자신의 어떤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情)을 인생의 기타 모든 일들과 조화
롭게 이끌어 나갈 때 우리는 바로 그 정의 진가를 경험할 수 있다.

- 정의 진가를 경험하는데 있어서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항상 존재한다.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우리 인간의 자아(自我)이다. 또한 우리 인간은 육체적 존재임과 동시에
정신적인 존재이므로 성욕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온정(溫情)이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연민의 자세’이자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자아의 부단한 확인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을 부드럽게 한다는 것은 세상을 폭력화하려는 것에 대한
대응책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온정이란, 우애의 끈에 대해 확신을 가질 때 느끼는 것
으로서 그것은 우리 인간의 생활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활동을 하거나
고통을 받거나 또는 기쁨을 느낄 때 인식되는 그 우애의 끈은 우리 인간을 개인적인
우애로부터 타인들, 동물들 그리고 생명이 없는 사물에 대한 온정으로까지 이끌어 간다.
정 속에서 차원 높은 온정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저 ‘즐기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하나하나 가꾸어 이룩해 나가는 그 무엇으로서 상호간에 정적(靜的)인 연결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온정은 언제나 책임감 있는 어떤 선(善)과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오늘날의 우리 세상처럼 무책임한 세상에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 36. 아기 예수님과의 만남 >
- 목수인 요셉과 나자렛의 마리아는 베들레헴의 어느 마굿간 짚더미에 놓인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리아는 그 아기 예수님을 팔에 안았으며 그 아기 예수님은 이 지구상의
모든 다른 아이들이 갖고 있는 얼굴과 용모를 갖고 있었다. 물론, 요즘 잘 알려진
이탈리아의 ‘하느님의 얼굴이 어떤 색이냐?“라는 노래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느님은
모든 종류의 얼굴과 모든 종류의 종족과 모든 계층의 색깔을 갖고 계시다. 즉 그분의
얼굴은 사랑의 색을 갖고 계다. ... 우리는 마리아와 요셉처럼 우리의 아이들과 자식들을
위해 시간을 낼 때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아이들을 낳을 시간만 갖고 있을 뿐
진정 그 아이들이 받아야 할 교육을 위한 시간은 할애하지도 않는다. 시간을 낸다는 것은
선호(選好)의 문제이다. 오늘날 우리는 여러 사유로 어린 자식들과의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함으로서 그들의 표정이 그토록 슬프고 일그러져 있다. 하지만 다행이도 행복하고,
미소를 잃지 않는 어린이들이 많이 있다. 그것은 자기들의 사랑의 열매인 그 어린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는 온정어린 부모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와 요셉에게, 그토록 많은
불행한 어린이들의 고통 받는 모습을 바꿔 줄, 아기 예수님의 새로운 얼굴을 우리에게
돌려 달라고 기도하자.

< 37. 하느님 아버지와의 만남 >
-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이렇게 단순명료한 말은, 이 지구상의 삶의 신비를 묻고
고민하는 우리 인간에 대해 설파된 모든 진리들 중 가장 중요한 진리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은 모든 의문에 대답을, 모든 희망에 빛을, 모든 목마름에 만족을 주는 진리이자 모든
창조물에 골고루 적용되는 하나의 진리인 것이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영원한 희망
속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신성한 근원적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즉 병들고 배고픈 이들의
인내와 생활방식에서, 그들이 “하느님은 아버지이시다.”라고 외칠 때 우리는 진리의
근거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우리는 희망에 부푼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하느님이 원하신다면 ….” 이란 표현 속에서도 그 진리를 엿볼 수 있다. 바로 하느님
덕분에 우리는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가질 힘을 얻게 된 것이다.

- 진정 하느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면 우리의 인생은 살아 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라면 언제나 당신의 자녀인 우리 인간의 여망에 부응하실
것이요,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의 삶과 죽음 앞에 당당한 버팀목으로 존재하고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라면 우리 인간의 자만과 불경을 용기와
침착함으로 깨쳐 나가야 할 것이고, 믿음으로 “나의 아버지 하느님, 당신은 모든 사물의
이치를 잘 알고 계십니다.”라고 기도해야 하며, 나에 대한 그분의 사랑의 표시이자 어떤
지시로 인식해야 할 것이고, 결코 대자연의 변동 앞에 무신론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늘이 요동하고 땅이 흔들리고 강물이 끓어 넘친다 하더라도 하느님은 나의 아버지이시다.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신성한 차원을 의미한다. 우리가 하느님을
아들들로서 그분을 믿고 따를 때, 우리 자신에게 광명의 순간들로 탈바꿈할 것이다.

< 38. 세 가지 탄식 소리와의 만남 >
- 고통으로부터 나오는 탄식 소리만큼이나 깊고 가슴 저미는 것도 없다. 로마서(8, 22-
26)에 따르면 바오로가 이 세상의 구원에 대해 언급하면서 세 가지 탄식 소리를 상기
시키고 있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성령이 하나의 탄식 소리를 내며 인간을 구원하려
한다고 말한다. 탄식 소리는, 마치 고통 받는 사람만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듯이 하나의
억눌린 외침이요, 무엇인가를 호소하는 듯한 외침이다. 압제자 앞에서는 외침이, 그 압제를
고발할 수 없음에 탄식의 소리를 낸다. 그리고 그 외침을 들어 줄 사람이 없을 때는 깊은
탄식 소리를 낸다. 탄식 소리는 핍박받는 사람들의 처절한 화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을 치료하기 전 탄식의 소리를 내었고, 그것은 인간의
고통에 대한 그분의 강한 동참을 의미했다. 사도행전(7, 34)에서처럼 하느님은 자기
백성의 탄식 소리를 듣고 계신다. 탈출기(3, 7)에서도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 라고 말씀하셨다.

- 우리도 역시, 대기와 강물, 바다, 초원, 도시 등의 오염에 구조신호를 보내는 자연의
탄식 소리를 듣는다. 만일 우리가 내적으로 침묵하면, 분명히 이 소란스런 세상사
가운데서 울려나오는, 창조물들의 깊고 조용한 신음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연이 신음하는 한 우리 인간도 무수한 신음 소리를 낼 것이다. 즉 고통 받은, 굶주린,
병든, 감옥에 갇힌, 살 집이 없는 등 인간의 생생한 탄식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이것은 결국 하느님의 영혼이 우리 인간의 내부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신음
소리를 들을 때 비로소 우리의 신음 소리 또한 정화되고, 틀을 갖추고, 완성될 것이며,
그 때가 되어야 우리는 다만 성령의 힘 속에 내적으로만 말할 수 있는 “Abba(아빠란
뜻의 아라메아어)”, 즉 ‘하느님 아버지’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외부에
있는 자연의 탄식 소리와 우리 존재의 내부에 있는 탄식 소리, 그리고 우리 존재의 심연
속에 내재하고 있는 성령의 신비한 탄식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 39. 부활절 봄과의 만남 >
- 부활절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이다. 나는 이 부활절에 나를 봄처럼 다시
태어나게 하는 그 어떤 의지와 힘을 느낀다. 인생의 황혼기에 떨어지는 낙엽을 거두고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그 어떤 의지와 힘을 느낀다. 그 힘은 내 삶의 몸체에서 새로운
가지와 잎과 열매가 다시 피어나게 한다. 이 부활절에 나는 희망의 미소를 짓는 푸르름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의 형제들에게, 죄와 재난에서 삶을 해방시키고 그 삶을 새롭게
할 때, 그 삶은 진정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주님의 부활절인
오늘 나는 내 안과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봄처럼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보고 싶다. 이는
생각하고 행동하고 봉사함에 있어서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 부활절이다!
비록 드높게 날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 속에서 몇 개의 낡은 깃털을 잃는다 해도,
길거리에 떨어진 메마른 가지와 나뭇잎들이 안타깝게 여겨진다 하더라도, 이제 우리는
다시 태어나 봄직하다. 내 자신이 삼위일체의 성전임을 깨닫고 인생을 향해 미소를
짓거나 고통을 슬퍼하는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봄직하다.

< 40. 내 믿음과의 만남 >
- 나는 하느님을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현재 살고 있고, 걷고 있고, 웃고 울고 일하며
기도하는 이 세상에서 행복하다. 왜냐하면 내 형제인 모든 사람에게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라고 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믿는다! 나의 성숙한 믿음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나를 구원해 주시고, 은총으로 내 형제가 되어 주시며, 부활로 나의
희망이 되어 주신 주님의 말씀과 사람이 되신 말씀을 믿는다. 하느님을 믿는다! 그분을
믿음으로써 나는 철학자들과 현인들이 만들어 놓은 이 세상의 모든 우상들을 부정하며,
진보와 과학이 만들어 놓은 모든 신화를 부정하며 극단주의자들이 약속하는 모든
유토피아를 부정한다. 나는 하느님을 믿는다! 나는 스스로 고양됨을 느끼며 내 자신이
하나의 인간임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의식적으로 책임을 지닌 인간임을 자부한다. 제한
없는 나의 믿음으로, 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영원을 향해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분을 믿기 때문이며, 유한한 시간 속에서 영광스런 부활과 영원한 삶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 하느님을 믿는다! 이 같은 확신은 의심할 여지없이 나로 하여금 희망 속에 웃으며
살게 하고, 비록 인생의 여정에서 고난이 있다 하더라도 언제나 주님의 맑디맑은 신비의
샘물에서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하나님을 믿는다! 나를 영원히 사랑하시는 주님과
함께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하느님을 믿는다! 그래서 당신의 말씀을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겠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 즉 주로 믿지
않는 사람들과 엮어 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집시 마을의 한 노파의 말이다. “당신 돈을
가져가시오. 우린 돈이 필요치 않아요. 우린 하느님을 원합니다. 우리에게 하느님을
주시오(Give us god)” 그렇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을 다른 사람에게 인도해야
하는 무한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나는 하느님을 믿는다!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내뱉는 숭고한 외침이지만 영원의 세계에서는 영원한 사랑의 행위가 될 것이다.

# 101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102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3.02.25.

[ 책 이름 : 나룻배 ]

- 지은이 : 권흥식 신부
- 지은이 프로필 : 1990년 가톨릭 신학대학 졸업, 1991년 사제 서품,
왕심리, 명동, 난곡동, 미아3동 보좌신부를 거쳐 인창동 주임신부로 사목 등
- 펴낸데 : 기쁜 소식, 출판 : 1999년 10월 15일, 135p
- 내 용 : 묵상 시집 (글(詩)을 통해서 나를 찾아 여행하기/89편)

[ 표지의 글에서 ]

내 인생은 한 척의 나룻배
당신은 노를 저으시는 어부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이는 대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그냥 흘러 가라 하신다
때로는 역류를 만나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소용돌이의 늪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 나룻배 돼라 하신다

[ 차례 ]

제1장 성령 세례 (32편)
제2장 대희년의 희망 (10편)
제3장 별똥별 (39편)
제4 장 신학교의 봄 (8편)

[ 책을 펴내며 ]

- 세상에서 가장 큰 불행은 불치병도 기억상실증도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원의식(身元意識)없이 잃어버리고 상실된 모습으로 철저히 자기로부터 소외된 채
살아가는 그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들의 삶은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인생 종착역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진전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삶이란 것이요, 우리 주의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은 그 여행을 돕기 위한 이웃이라 생각한다. …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는
재물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하느님 안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 사람이다. 그리하여
자기 소외로부터 해방된 사람이다. 하느님은 우리 생의 저 끝에서 돌아가야 할 자리이다.
하느님이 없으면 진정한 나도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언어로 표현되는
글을 통해서 나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어느 때 도착할지
모르지만 늘 새로운 곳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그 여행길이 예수님과 함께 한다면
필경 머지않아 나로부터, 나의 소외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총 89편 묵상시 중에서 38편만 발췌 메모함

제1장 성령 세례

< 아픔 >

고통은 하느님께 가는 길의 안내자
고통은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삶의 친구
아픔이 있기에 기쁨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고
아픔이 있기에 행복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고통의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아플수록 우리 영혼은 하느님께로 달려간다.
아픔은 하느님이 주신 또 다른 은혜

< 성서 묵상 >
다양한 문학의 장르로 그림을 그린 성서 전체 주제는
하느님의 사랑이야기 인간의 끊임없는 배신의 역사
그 반역에도 한결같으신 사랑으로 얼르시고 어루만지며
젖먹이 사랑으로 돌보시니 우주의 의미 존재의 의미
존재하는 모든 것과 살아가는 그 모든 것의 알갱이가
바로 여기 있구나.

< 지금 기도하라 >
마음이 두렵고 불안하다면 기도하라
걱정으로 가득하다면 지금 기도하라
기도는 죽음마저 초월케 하는 신비의 힘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운 것은 죄를 짓기 때문이다
죄는 하느님과 나를 끊고 다음으로 이웃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며
홀로 고립되게 한다.
칼융이 표현했듯 죄는 자기로부터 분리
기도는 자기 찾음의 처방전

< 손길 >
손은 마음을 사랑을 화해를 정을 전달하는 힘
잘못된 손놀림은 폭력이 되고 욕이 되지만
따스한 손길은 미(美)가 되고 치유의 은사가 된다.
손이 사랑의 언어가 될 때 살맛나는 세상이 된다.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병자들의 머리 위에 올려진
예수님의 손은 축복의 미학

< Esse ipsum >
하느님의 이름은 존재자체(存在自體/ Esse ipsum)
세상 모든 만물이 존재의 근원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니
있는 모든 것의 출원지는 하느님 그 이름은 있음 자체
無(무)에서 有(유)가 있을 수 없다
有에서 有 가 생출되니 有의 철학은 存在
인간의 죽음은 無가 有에로의 환원
존재 자체이신 하느님께로의 귀환이다.
그래서 신앙은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이 있다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有에서 無가 아니라
존재에로 넘어가는 희망이다.

< 절름발이 신앙 >
밥은 있는데 아무런 찬이 없다.
반찬은 즐비한데 곡기(穀氣)가 없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표현적 실행이 없고
실천은 있는데 진심이 없다.
기도는 하는데 애덕의 실천 봉사가 없다
행동은 있으되 하느님을 향한 마음이 없다.

< 카멜레온 >
마른장마에 갑자기 쏟아지는 비
감당할 수 없는 삶의 십자가 그 무게처럼
숨 막히는 대지의 열기를 식혔다.
그것도 잠시 고층 아파트들의 키 너머
먼산 구릉엔 언제였느냐 듯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걸쳐 있다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이상기후는
때로 어려울 때 하느님을 찾지만
그렇지 않을 땐 자신이 신(神)이 되는
변덕스러운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 나이 먹는 신앙 >
주름이 가득한 얼굴 백발의 노인
삶의 냄새 살아온 인생의 역사가
눈가에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기나긴 시간 초탈한 어느 비구니 수도승처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만을 묵묵히 주시한다
나이 먹는 신앙 어느 할머니 신앙의 어머니

< 예수 없는 십자가 >
성당 뒷산에 올라 내려다보니
사방엔 개신교 예배당의 예수 없는 십자가
빨간 전등의 십자가가 보인다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옆구리 찢겨진 상처 입으신 예수님은 없다
왜일까 어쩌면 그것은 그 십자가에 너 자신을 매달고
이웃을 위해 희생 헌신하는 예수되라함이 아닐까

< 기적 1 >
일상의 작은 변화지만
하느님의 눈으로 본다면 그 모든 것은 기적이 된다.
가을의 잎 떨구기 겨울의 한파
그 죽음의 시간을 지나 생명의 꽃망울이 잉태될 때
나는 기적의 의미를 느낀다

< 생명의 하느님 >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기도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생명을 주관하시는 영원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
살아계신 하느님의 의미
그 누구의 고통도 죽음도 원하시지 않으시는 하느님
그러나 때로 우리는 오해한다.
나의 고통과 아픔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그분의 뜻으로 원망한다.
모든 사람이 잘 살기를 바라시는
사랑의 주님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느님

< 죄 3 >
죽으면 살리라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의 잉태
그 속에서 또 다른 삶의 꽃이 피어난다
죄의 그늘이 회한(悔恨)이 될 때 삶을 위한 행진이 시작된다
떨어져 죽은 씨앗이 새로운 창조를 토해내듯
죄라는 죽음의 굴레는 부정의 긍정이라는 미래를 만든다
어둠속에 빛은 더 밝게 느껴지듯
죄의식은 하느님 안에 나를 보고 느끼게 하며
그분께 다가서게 하고 부정의 또 다른 긍정을 산출(産出)한다

< 포기는 희망 >
욕심에서의 해방 자유의 선택 포기
버릴 줄 알 때 채움이 있고 채움은 곧 축복이 된다
채움과 축복의 또 다른 이름은 포기
가득한 마음이 비워진 마음이 될 때
포기는 충만을 낳는다

< 어린 왕자와 예수 >
조그만 수레를 타고 떠난 어린 왕자
하늘나라 별에 좌정하고 계신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 어린왕자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세상에서 가장 질긴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뇨 하고 물으셨다.
어린왕자 곰곰이 생각 끝에 답하기를 고래심줄이요 아님 쇠줄 아닐까요
예수님 껄껄 웃으시며 인간의 고집스런 마음이 세상에서 가장 질기니라

제2장 대희년의 희망

< 메시아 콤플렉스 >
콤플렉스 그것은 불완전한 인간의 소치(所致)
그중 마귀 콤플렉스가 있다.
내가 아니면 내가 나서지 않으면
나만이 행복과 번영을 줄 수 있다는 오념(吳念)
언젠가 나라를 팔아먹은 죄인들이 너도 나도 나서며
이젠 내가 이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망언했다
노망이 따로 없었다. 혹시 당신도 그런 사념에 젖어
허우적러리는 것은 아닌지요
때가 되면 운운대는 8.15 특사
중죄인들이 보이지 않는 있음의 폭력으로 연결고리가 되어
억울 무고한 서민들의 애환과 그들의 삶의 무게를 짓밟고 있다
건망증 환자들의 유희랄 수밖에

< 우리들의 어머니 >
어두컴컴한 동굴 기분 나쁜 습기가 가득하다
여기가 어딘가 왜 여기까지 왔는가
억울하게 죽어간 혼들이 떠돈다
던저주는 먹이를 먹는 짐승 사육장
일본군에 끌려간 수많은 정신대 여인들
우리들의 어머니 순결한 몸을 던져 그들의 밥이 되었다
칼에 찔리고 담배 불에 지져진 처절한 육신의 죄 없는 형량
양육강식의 전쟁은 인간윤리마저 삼켜버리고
생체해부실험은 인간악의 시험 국가적 범죄
언젠가 세계적 양심 앞에 그 진실의 소리 앞에
인정과 회개가 있어야 하리라
우리들의 어머니를 위해 그 떠도는 넋을 위해

< 눈 가리고 아웅 >
아무도 모를 거야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 마음이 알고 있다면 마음 안에 계신 하느님이 알고 계십니다
하느님이 알고 계시다면 그것은 이미 세상에 폭로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바라볼 때 혹시라고 느낀다면
그 자체가 세상에 폭로된 것 아닙니까
당신을 속이지는 마십시오
세상 사람들을 바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냥 가만히 있을 뿐입니다 제3장 별똥별

< 별똥별 >
초생달 하늘가엔 참 별들도 많았다
넓다란 호수 위를 춤추는 달빛 물살
서늘한 바람에 물 비릿내가 성큼 코를 찌른다
오늘은 강태공
하느님이 주신 자연의 모습에 내 삶을 비추어 본다
고개들어 바라본 시골 하늘
별똥별이 찰라속으로 떨어진다
초분의 초 그것은 일순간도 못되었다 어디로 갔을까

< 나룻배 >
내 인생은 한 척의 나룻배
당신은 노를 저으시는 어부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이는 대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그냥 흘러 가라 하신다
때로는 역류를 만나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소용돌이의 늪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 나룻배 돼라 하신다
순리를 따라 물살 헤쳐가는 한 척의 배 나룻배
잘못된 생각과 욕심으로
당신의 노를 대신 저어 가려 하지 말라 하신다
뱃머리를 돌리고 흐르는 물길과 부는 바람을 억지 저항하며
자신이 쌓아 올린 돌출 바위에 부딪혀 길을 잃고
고독과 슬픔에 상처하여 자력(自力)에
병들어 지쳐 쓰러지지 말라 하신다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골짜기에 억류된 인생되지 말라 하신다
호수 위에 물줄기를 따라 흘러가는 내 인생은
한 척의 나룻배 당신은 노를 저으시는 어부

< 아버지의 일기 4 >
삶의 역사 피땀어린 투쟁의 시간들
성공과 삶을 안겨주고 5남1녀의 가장
신앙인으로 잘 살아 왔건만 남은 것은 병고구나
이제 칠순 99년 4월 5일 한식 전 날
아내는 먼저 주님 곁에 갔다 어이 먼저 갔는가
지병에 숨통이 막혀 죽음을 토하고
한많은 69년 세월의 물골을 막고 보나가 먼저 갔구나
그 어려운 시절 고생했던 내 님 먼저 갔구나
오늘 이 방은 가슴을 에이는 기억들로 가득하고
잘해주지 못한 순간들로 마음은 어지러운 춤을 춘다
용서하오 잘가시오 주님 곁으로 사랑하는 보나

< 어머니의 운명 >
나에게 찾아온 마지막이라는 슬픈 이별 어머니의 운명 소식
예상했던 일이지만 믿기지 않았다
고아가 된 기분 어이 운명을 돌이켜 반환할 수 있겠는가
하관을 앞둔 어머니의 시신 앞에 다가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너무 싸늘하게 식어버린 냉기
살아온 불효의 시간에 절로 눈물이 났다
세상에 태어나 어머니를 위해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

< 세상 존재 가능성 >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우주의 별
내가 딛고 서 있는 이 별은 축복받은 녹색별
하느님의 창조 그 생명력이 숨을 쉰다
무중력의 창공에 몸을 던진다
우주 한가운데 소외된 존재
피존재가 되어 지켜본 별들의 운행
자신만이 갈길을 가는 둥그런 선들이
아름다운 입체 현란한 미의 세세를 만든다
제 갈길을 가는 것은 세상 존재 가능성

< 베로니카의 낙엽 >
언젠가 떨어질 이 몸 곱게 물들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파란 하늘에 곱게 수놓다 바람불면 떠나겠습니다
곱게 물든 단풍 책갈피에 끼어넣듯 추억속에 간직하겠습니다
생명이 다하는 모습이 이토록 아름다운 줄 몰랐습니다
낙엽처럼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 아름다운 어느 노래 >
우리는 같이 가는 가는 길을 늘 혼자 간다고 생각합니다
바람부는 날 저 미루 나무 언덕에 혼자 있다 하여도
가슴속에는 누군가가 함께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힘들 때 혼자서만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곁엔 또다른 누군가가 같이 힘들어 하며 살고 있습니다
나는 비오는날 창가에 서서 그 사람을 생각합니다
나로 인해 그 사람이 나처럼 창가에서
나를 그리워하고 있다면 나는 행복할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누구입니까 사랑입니다
영원히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여름날의 비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 사람이 좋을 때보다 싫을 때 더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해야 합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용서하는 것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새 것보다 헌 것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끔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가 늙어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늙어 가면서 새 것이 됩니다
그리고 더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느낄 때
당신은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마음이 진정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이 세상에 없을 때 먼 훗날
우리를 그리워해 줄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은 창 밖에 비가 내릴 것 같습니다
그 누구의 가슴속에도

< Nostradamus >
사행시에 적힌 전쟁과 세상 종말
실제와 허상 서기 3797년
그 마지막 해는 너의 마음에 있다
네 마음이 석양이라면
이미 세상 종말은 네 앞에 있다

< 삶의 향기 >
우리의 삶은 계수나무
그냥 잎을 따 냄새를 맡으면 아무런 향기가 없다
구겨 찢어졌을 때 달콤한 향내난다
갈기갈기 찢겨 상처입을 때 기막힌 향기가 난다

< 변한 것이 없네 >
옛 시절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서 한 달
자동차로 압축된 시간은
우리에게 삶의 여유와 많은 변화를 준 것 같지만
인간 존재 자체는 변한 것이 없다
외적인 조건 환경이 변해도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 자연 예술 >
찌는 듯한 불볕 더위 쳐다 본 하늘 엷은 코발트
뭉게 뭉게 떠 있는 흰 구름 물오리가 뒤집어져 날으는 형상
잠시 후엔 독수리가 된다
자연이 붓칠한 그림이다
그 현장감은 천재화가도 흉내낼 수 없는 살아 있는 예술
우리 모두 분수를 알자 착각하며 살지 말자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자

< 108번뇌 >
인생 축약이라 부르는 스포츠
비좁은 땅 덩어리에선 사치라는 이름으로 손가락질 받는 골프
수많은 기회와 좌절 성공과 실패의 시비
마지막 종착역은 108미리 화이트홀
공교롭게도 불가의 108번뇌를 연상케 한다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때로 의미없는 게임을 하고 있다.

< 자신감 >
자신에 대한 믿음의 마음
할 수 있을까 가능할까
할 수 있다고 믿을 때 긍정에 가까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과정의 땀방울은 아름다운 것 그 자체로 성공이다
자심감 그것은 또다른 미지에의 도전
도전하는 사람만이 성취할 수 있다

< 언어이 유희 >
이치에 맞지않는 언어는 자기방어 수단
언어의 유희 언어의 장난에 불과하다
그렇듯한 속담의 인용 어긋난 퍼즐처럼 꿰맞추운 언어묘사
사랑과 진실없는 언어는 동물의 죽은 소리에 불과하다
바르게 말하자 내면의 진실을 표현하자

< 부자와 빈자 >
가진자는 가져서 외롭고 못가진자는 없어서 외롭다
부자는 더 많이 못가져서 하루 한날이 근심이고
빈자는 없이 살까 근심한다
많은 자도 부족한 자도 위를 바라보기에 행복하지 못하다

< 눈과 마음 >
눈은 마음의 동반자 눈은 마음의 대변인
때로 마음의 우산이 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친구가 된다
슬프면 눈물을 흐르게 하고 기쁘면 웃음 짓게 한다
부릅 뜬 눈은 마음의 화요 찡그린 눈은 싫은 마음
온화 상냥한 눈은 사랑의 마음
다가가고 싶은 친근의 미소 눈과 마음은 하나
시작부터 같은 내외양(內外樣)의 동질(同質)
사랑의 마음은 눈빛에 있다
마음가짐이 사람됨을 재는 잣대가 된다면
눈빛으로 보이는 그 모습이 바로 그 사람

< 술 >
술이 왜 술이냐고 물으니 술술 넘어가서 술이라나
술은 저마다 색깔이 있다 동서양의 구분이 있다
우리 민족의 술 막걸리 서민의 술 소주 유명한 안동 소주
중국위 마오따이 일본의 오사케 대체로 하얀 빛이다
스코틀랜드 위스키 불란서 꼬냑 독일의 맥주 대체로 진누런 빛이다
동양인은 술에서도 순결을 찾고 서양인은 색조(色調)를 찾는다
그 색조는 다양한 머리 빛깔과 눈의 색깔에 근원을 두고 있다
여인들의 온갖 화장술의 화려한 개발 칼러니즘의 발전은
그러한 이유에서 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동양은 흑과 백의 논리를 따진다면
서양은 다원 다양의 논리에 개방되어 있다

< 빗물 소리 >
물 흐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톡톡 분산되어 춤추는 소리
지붕 위 박자에 맞추어 튀겨가며
이내 다른 동지들과 합류하여 사랑으로 하나되는 군단
봄비 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떨어지는 곳이 어딘지도 가리지 않고
낯선 것과도 거리를 두지 않으며
자기를 주장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봄비가
어둠을 뚫고 하강하고 있다
소리는 하나가 아니다
떨어지는 소리 튀는 소리 흐르는 소리 자연의 소리
검은 구름 한점 없는 회색 빛 하늘이 비를 뿌린다
톡톡 찌륵찌륵 찌르륵

제4장 신학교의 봄

< 신학교의 봄 >
축구장의 땀흘리기로 시작된 신학교의 봄
수업시간은 병든 병아리들의 방아찧기
중식이 끝나면 저마다 놀이들을 즐겼다
유희하는 인간 선배들은 아성을 지르며
후배들을 윽박지르며 그 넓은 마당을 차지했다
학년대항 학장기 시합 때면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 시험 때가 되면 너도 나도 바빴다
10시 소등(消燈)은 화장실도 예외가 아니였으니
랜턴을 켜들고 쪼그리고 앉아 책장을 넘기는 사나이들도 있었다.

< 똘레 고개 >
수업시간 이따금 친구들이 하나 둘씩 사라졌다
터-엉빈 침실 옷장 없어진 봇짐 빈 책장
그 이름 공포의 똘레 리어커에 짐을 싣고 하나 둘 훌쩍이며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던 고개
지금은 어디서 무엇들을 하는가

< 낙산의 제자들 >
시험 때가 되면 당일 아침
시공교구 촌놈 몇은 항시 나와 함께 낙산을 빙글빙글 돌았다
내 입은 요약 주둥아리 낙제를 면했던 촌놈들
지금은 나보다 더 훌륭한 신부의 삶을 살고들 있다

< 바닥난 술 >
어느 산골 스레트 지붕으로 세워진 산중턱의 수도원
가끔 찾아오는 수도자들의 영적 쉼터가 되었던 성모동굴
그들은 들짐승의 맹수스런 냄새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밤을 지폈다
거주 수사들이 돌아오지 않았던 초 여름 어느 늦은 밤
홀로 수도원지기가 되어 인가 드문 어두운 산속에 묻혀 별을 세었다
가슴 앞은 치솟아 가로 막아진 어둠의 산
등 뒤엔 풀벌레 소리 별 하나에 술 한잔
수사들이 담구어 놓은 더덕주가 인사를 했다

# 102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103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3.03.04.

[ 책 이름 : 이역하늘 아래서 ]

- 지은이 : 이석현
- 지은이 프로필 : 동화작가이며 한국일보 캐나다 지사의 편집인 등
- 펴낸데 : 성바오로출판사, 출판 : 1990년 6월 30일, 186p
- 내 용 : 신앙 에세이 모음 (인생과 지혜에 대한 묵상/ 47편)

[ 표지의 글 ]

성아우구스티노가 “오! 주여, 우리의 마음이 당신에게로 완전히 돌아서기까지는
이 삶의 풍랑을 면할 길 없습니다.“라고 고백하였듯이 결코 고독이라는 병균은
우리 정신을 파고들지 못합니다. (본문중에서)

[ 책머리에 ]

인생을 한 사이클 살았다는 것은 또 하나의 전환점에 나섰다는 점에서 제나름 뜻이
있다 하겠다. 흐리고, 개이고, 직선과 곡선으로 얽힌 지구촌의 한 길섶에서 크신
섭리의 손 안에 살며 오늘 이 자리까지 대과 없이 닿는 것에 큰 소리로 “아멘!”하고
응답한다. 그 해거름길에 어떻게 남은 시간들을 소비할 것인지 은총에의 보답으로
나날을 보낼 방법에 골몰하기도 한다. 우선 ‘나’로부터의 완전 해탈–나를 비우고
고마우신 ‘님’이 한가득 내 안에 살으시도록 힘 다하는 것, 이것이 남은 염원이요
결의이다. 오늘에 이르는 길가에서 길벗이 되어주고 등받이가 되어주기도 한 여러
고마운 분들게 머리 숙이며 합장으로 보답한다. 일러서 ‘이역하늘 아래서’라 했다.
몸은 타국에서 살아 고국을 그리고, 넋은 귀양살이 나그네길에서 영원한 본향을
지향하는 절절한 망향의 넋두리–그 기도와 염원과 감사 일지라 스스로 생각하며 … .
(캐나다 토론토에서 이 세바스티안)

[ 차례 ] < 회귀선/코페르니쿠스의 교훈 > 등 총 47편

[ 1장 ]

< 1. 회귀선 >
- 상을 받은 것은 기꺼운 일이다. 노고나 업적에 대한 보답보다 한뉘(한평생)를
바친 전공을 평가받는 뜻에서 흐뭇한 일이다. ‘새싹 문학상’을, 그것도 해외에 나와
살면서 모국의 예술상을 받게 되어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로써 내가 좋아하는
어린이들에게 조금은 이바지해온 노력이 빛을 본 셈이다. 별로 자랑될 것은 없고
후회스런 일들이 수북한, 명암으로 점철된 인생 축도(縮圖) 반생을 살펴보아, 때로
환경적으로 악조건이나 역경이 없지 않았으나 내적으로는 은혜로운 생활의 연속
이었음을 깨닫겠다. 늘 고맙게 여기고 있다.

- 하느님은 사람의 고질화된 악습을 고치는 데 오묘한 방법을 쓰신다. 중병일수록
대수술이 필요하듯이 때로 따끔한 사랑의 매로 다스려 정신 차리게 하시며 깊이
뉘우쳐 깨닫도록 바로 잡아주신다. 지난해는 나에게 있어 외적으로 큰 시련의 해요,
내적으로는 내가 죽고 님 안에서 새 살이 돋아나는 은혜의 해였다. 예기치 않은
심장마비 재발로 다시 입원 생활을 거듭 겪어야 했다. 두 번이나 중병을 치르면서
육체적으로는 주눅이 들고 정신적으로는 원점으로 돌아와 재출발을 꾀하게 되었다.
생각의 보습으로 깊이 파고 내려가 ‘나’를 되찾은 것이다. 고통이나 시련은 보다
설득력 있는 설교다.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 따라 병을 앓는 것은 은총이 되어 준다.
불면과 통증으로 범벅이 된 여러 밤을 지난 뒤에야 내 속에 눈이 떠져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 30)는 세례자 요한의 말이 가슴 깊이
에서 샘솟는다. 사실 병을 앓고 난 뒤, 딴 사람이 된 느낌으로 오늘까지의 반생을
깊이 성찰할 기회를 가졌다. 결론적으로 남을 부러워함 없이, 심심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따분하지 않은 삶을 내 나름으로 흡족해 하며 살아왔다. ‘소띠’여서 일복을
타고난 탓인가? 그보다는 신앙생활의 덕인 것 같다. * 보습 : 농기구 *

< 2.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
- 4일간의 꾸르실료(복음화를 위한 단기교육)는 빙하기로 접근하던 내 영혼에 화산
그 분화구를 대어준 사건으로 내게 있어 획기적 나날이었다. 미온적이며 피동적인
타성의 신심에서 주께 무책임할 만큼의 의뢰심으로 ‘모든 것을 잘 안배 해주시겠지’
하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신앙태도로 나날을 물결 따라 바람 따라 지내온 것이 어제
오늘의 나의 내적 생활의 실상이다. … 이번 꾸르실료야 말로 나를 위한 주의 섭리였으며
“외견적 경이를 가지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시면서 위대한 감탄으로 보이는 것을
제시하신다”(성그레고리오)를 실감케 한 내적 혁명을 내 안에 일으켜준 은총의 시기
였음을 큰소리로 외치고 싶다. “Deo Gratios! Deo Gratios!”
* 데오 그라시아스!(Deo Gratios!): 하느님 감사합니다! *

- 날이 밝기 전 어두운 복도에서 성당까지 이어진 촛불행렬, 양쪽에는 손에 손에
묵주를 구울리며 늘어선 봉사자들, 울려 퍼지는 은은한 ‘마냐니따’노래는 신비로운
감회를 가슴 깊이 자아내며 시원한 눈물을 솟게 해 주었다. “먼동 틉니다 잠을 깨세요
동녘 하늘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한 이 새벽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눈을 뜨세요 꿈을
깨세요 어둠의 옷 벗고 광명의 갑옷을 어서 입으세요 이 좋은 아침 이 좋은 아침 성인
되라고 새벽인사를 우리 다 같이 기쁘게 나누며 감격에 잠긴 채 일어납시다 … 중략 …
저 하늘에서 별둘 따다가 드리고 싶어요 하나는 기쁨이, 하나는 사랑이 선물이 되게
선물이 되게” 나는 이번에 그리스도를 참으로 실감있게 체험했다. 지금도 가슴은 주의
실제를 느끼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지속성 있게. 이제 내 결의를 배부된
지침서 ‘길잡이’에 이같이 적었다 “사명감에 불타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주는
마음가짐.” 나는 즉흥적 작심이 아니라 이 결의를 굳게 다지고 있다. “데꼴로레스!,
데꼴로레스!” * 데꼴로레스!(De Colores!) : 빛과 함께! *

< 3. 죽음 저 너머 >
- 우리 역사상 두드러진 인물로 대조적 죽음을 보여주는 충신이 둘 있다. 현세의 임금을
섬기다 새남터에서 목숨 바친 만고의 충신 성삼문과 하늘임금을 섬기다가 순교한
신앙의 영웅 김대건 신부! 세종대왕 때의 집현전 학자요, 사육신의 대표인물인 성삼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새남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 막상 죽음에 눈앞에
두고서는 처절한 허무감에 사로잡혀 애끓는 유언의 시를 읊었다. “울리는 북소리는
죽음을 재촉하는데 고개를 돌리니 서산에 해가 저문다. 황천길에는 주막도 없다는데
오늘밤에는 누구의 집에 가서 자고 갈까” 이 얼마나 애절하고 캄캄한 비탄의 소리인가.
그런데 같은 새남터에서 똑같은 극형으로 죽음을 맞이한 김대건 신부는 개선장군의
승전가를 남겼다. “나의 마지막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은 귀를 기울여 들어주시오 이제
나는 하느님을 위해 죽습니다 바야흐로 내 앞에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죽은 후 행복을 얻고자 생각하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십시오” 땅위의 임금을
받드는 충신과 하늘임금을 받드는 신앙인의 최후는 이같이 다르다.

- ‘항상 죽음을 묵상하는 이는 인생에 실패하지 않는다’했다. 죽음이 결코 삶의 종말
이거나 영이별이 아니라 했다. 죽음이란 이승에서 저승 삶으로 옮아가는 과정(터널)에
불과하다고 인류의 스승 그리스도는 가르친다. …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길은 영생을
내다보고 그리로 매진하는 것이다. 인생은 괴롭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섶에는 고민과
두통거리의 가시밭이 내내 깔려 있다고 흔히들 넋두리한다. 그런데 성서는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1테살 5,16-18)라고
권한다. 주께서는 영생을 약속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요한 11,
25-26). 이 얼마나 큰 위안인가. 신앙생활이란 진흙탕 속에서 맑고 깨끗한 연꽃을
피우려는 노력이라고 본다. 뼈를 깎는 괴롬과 시련, 피눈물의 아픔 없이는 인생의 진미를
절감할 수 없으며 신앙의 참 가치를 터득하기 어렵다.

< 4. 바리사이의 눈 >
-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는 길가, 생활 현장에서 가끔 ‘바리사이의 눈’을 만나 당혹하고
속기도 하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히느라 한참 애쓰기도 한다. 스스로 의인
이라고 자처하는 자, 저만 옳고, 남은 다 틀렸고 시원찮고 남의 언행은 유치하고 허물
투성이로만 보이는 병적 저울눈의 소유자가 바리사이인이 아닐까. 나 자신도 가끔
‘바리사이의 눈’이 된 자기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선한 눈에는 모든
것이 선하게 비치고 속이 썩은 자는 남도 저처럼 썩은 줄로 곧잘 여긴다. ‘제 눈의 들보는
못 보면서 형제의 눈의 티끌을 탓하는 자’를 그리스도는 나무랬다. 많이 사랑한자, 많이
용서한 너그러운 이가 사랑을 곱으로 받고 후한 대접을 받는다 했다. 그런 이들이 넘쳐
나면 세상은 복지로 변하리라.

- 근세조선 건국에 이바지한 고승으로 태조 이성계의 상담역 이었던 무학 대사 박자초의
일화는 ‘바리사이의 눈’에 깨우침을 준다. 무학이 불문(佛門)에 들어가 수학하던 사미승
시절이었다. 무학이 장난삼아 “제 눈에는 스님이 꼭 돼지같이 보입니다.” 하자 스님은
“내 눈에는 무학이 부처님으로 보이는군.” 이라고 했다. 그러자 무학이 “어찌해서 소승이
부처님같이 보인다는 겁니까?”하니 스님이 대답하기를 “부처님의 눈에는 중생이 모두
부처로 보이고 돼지 눈에는 사람이 돼지로 보인다네.”라고 무학의 가슴을 번개같이 때렸다.
크게 깨달은 무학은 마음 고쳐 잡고 수학하며 도를 닦음에 힘 기울여 훗날 고승이 되었다.
그리고 성서에서 예리고로 가는 길가에서 강도에게 털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길손을
돌보아 주었던 ‘사마리아 사람의 눈’이 있고, 가끔 떠오르는 또 하나의 부정적인 눈인
‘유다의 눈’이 있다. 한갓진 시간이면 나를 응시하는 세 시선–위선, 교만(바리사이의 눈),
탐욕(유다의 눈), 애덕(사마리아 사람의 눈). 그 세 시선을 따갑게 받으며 갈팡질팡 지친
하루를 보내는 나의 길은 어느 방향으로 이어져 있는지 가끔 방향감각이 흐려 괴롭다.
헛짚은 인생길에 낭비된 목숨의 조각들–세속의 저울과 하늘 저울을 구별할 만한 슬기
하나는 닦아야 겠다.

< 5. 빛과 어둠 >
- 빛과 어둠(그림자)은 실낙원(失樂園) 이후 줄곧 사람을 따라다니는 양면성인 양 보인다.
이율배반의 두 원리를 가슴에 지녀서인지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못되는 중간 지점을
서성거리며 선과 악의 두 가능성 앞에서 항상 택일의 숙제를 안고 사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 빛에 따른 그림자같이 늘 타락의 가능성(유혹) 앞에 놓여 있는 것이 인생 길손의
실상이다. 소년 시절에 이미 선지자의 기름으로 도유되어 선택된 다윗같은 성왕도 순간의
여색에 현혹되어 충신 ‘우리야’ 용사를 사지로 몰아, 그 아내 ‘바쎄바’를 가로채는 일생
일대의 ‘천추의 한’을 빚었다. 모세를 따라 민족 대이동을 단행한 이집트 탈출–광야를
헤매는 장거리 여행중, 조금만 불편해도 노예생활 때의 일시 안일이 그리워 투덜대던 인심.
제가 저지른 범행을 뉘우치기는커녕 “천국의 종사리를 하느니 차라리 지옥의 제왕이
되리라”는 악담을 남기고 무한 벼랑에 곤두박힌 ‘루치펠’의 철저 교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대조적인 두 인물이 주목을 끈다. 순직하고 직선적이고 천심을 지녀 실수도 흔했지만 이내
원점복귀가 빠른 사도 베드로와 꿍심있고 두 얼굴을 지닌 박역자 유다가 있다.

- 빛과 어둠(행복과 고통)은 어찌 보면 이승의 2대 원리인 듯이 여겨진다. 필요악이란
말같이, 빛이 돋보이고 더 밝기 위해서는 어둠도 필요할 때가 있다. 고진감래란 말이
있다. 눈앞에 닥치는 괴로움들을 선하고 굳은 의지로 견디고 이겨 나가면 빛부신 새날이
오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둠(죄악)은 성인을 만드는 시금석 구실을
해주기도 한다. 여기에 고통의 신비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다웟왕이 그 산 보기이다.
정녕 그는 전화위복의 사나이였다. 성아우구스티노가 원죄(原罪)를 ‘복된 죄’라고 읊은
뜻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 허물이 아니였으면 하느님 아들이 인간 대열에 끼어들지
않았을 것이며, 그 인간 생명을 희생해주는 무한 사랑을 안겨주지 않았을 것이다.

< 6. 링게르의 향내 >
(1. 모놀로그) 예기치 않게 맞이한 지난해 한달 남짓한 병상생활에서 성서를 벗하고
기도를 곁들여 많은 것을 생각하고 적잖은 깨달음을 얻었다. 병들어 아픔이 나를
괴롭히자 자기를 깊이 되새길 기회를 가져 허겁지겁 지표도 모호한 채 말처럼 뛰어다닌
일들을 재검토하게 되었고, 몸의 자유를 잃으니 자유의 고마움, 싱싱한 대기의 상쾌함과
건강의 행복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아울러 불우한 이웃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절실
해진다. 이제는 ‘나’ 중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내 소원대로가 아니라 정말로
내가 해야 할 일, 주어진 길을 집중적으로 가게 해달라는 뜨거운 기도가 나온다.

(2. 발돋음) 심장 깊이 송곳을 꽂는 듯한 아픔, 사이렌 소리 요란하게 앰블런스는
‘토론토 닥터스 허스피틀’ 응급실에 나를 내려 놓는다. 코에는 산소 마스크, 팔에 링게르
바늘을 꽂고 얼키설키 심전도 줄에 연결된 몸은 거대한 마르모트가 된다. 통증이 잠을
빼앗은 긴긴 낮과 밤, 연옥에 살면서 ‘마지막 원수인 죽음’과 마주한다. 30여 년 전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죽음 또한 …하고 몇밤을 지새우던 인생에 눈뜰 무렵으로 되돌아
간 느낌이다. 병고를 겪으며 덮쳐오는 중압감은 지난날 내 인생의 적자 계산서, 시간과
머리와 능력의 한계를 외면한 어리석음, 부산한 일과의 되풀이로 이렇게 몸도 정신도
쇠잔한 패잔병! 그리고 인색함과 부덕함이 저려와 다시는 ’회칠한 무덤’(마태 23,27)이
될 수 없다는 자각이 심장에 낙인으로 박힌다. … 즐거운 일, 평탄한 길보다 시련을
통하여 깨달음이 오고, 영성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을 깊이 느낀다.

(3. 새살) 병고는 교만의 치료제가 되어주는 것 같다. 일상을 보내면서 겪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병고, 가난함, 고뇌와 소외감), 온갖 부조리와 불신과 배반의 시련에
시달리면서 사람은 성숙해지고 달관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 느껴진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고통은 지옥의
재현도 되겠고 성장의 발판, 필요악적 시금석이 되어준다는 것, 괴로움을 거쳐 우리는
시간이 묻혀준 세속의 때를 말끔이 씻고 한 단계 영계로 올라서는 것임을…. 퇴원을
앞둔 밤, 성체감실 앞에 꿇은 자세로 앙금으로 머릿속에 남은 한마디는 ‘마라나타!’
(주여 어서 오소서) 이제 새로 내딛는 삶–내 앞에 떠오르는 좌우명은 ‘나로 말미암아
세상이 조금이라도 밝아지고 명랑해지고 웃음이 더해 사람들이 좀 더 삶의 현장에서
보람을 안는다면 내 소원은 그것뿐.’ 세상일은 새옹지마, 세상만사 생각하기 탓.
행불행도 제 마음에 달려 있음을 새삼 느낀다.

< 7. 시편. 묵시록 묵상 >
(1. 자화상) 또다시 짐짝처럼 차에 실리어 입원–몸은 ‘심전도’ 줄과 링게르 튜브,
산소마스크에 연결된다. 예고 없이 병이 덮쳐와 몸을 묶어버리자 도리어 영혼은
대천사 라파엘에 이끌리어 언덕 위에 올라선 사슴–파괴자 아폴리온(묵시 9,11)의
굴레를 벗어나 일상에 나를 얽매던 요망한 바빌론(묵시 18, 2-3)에서 해방된다.
그때 문밖에서 두드리는 소리!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묵시 3,19). 그 크신 손의 사랑이 뜨겁게 느껴온다. 바쁜 나날을 미루고
이렇게 주어진 시간은 자신의 내부에 집중할 수 있는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이다.
여러 날을 병원에 누어 나의 아픔, 남의 아픔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저는 기우는 그림자처럼 스러져 가고 메뚜기처럼 쫓겨납니다”(시편 109,23).

(2. 트는 ‘도’) 어느 철인, 영웅도 모진 시련에 부대끼고 중병에 꺾이고 나면 ‘도’가
트고 영계의 신천지에 다시 태어날 계기를 만난다. 이에 바오로 사도의 격려는 적잖은
위로를 준다.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로마 5,20) 내린다고, 흔히 죄가
낳는 고통-그 고통이 더하는 데에 새 삶이 전개되는 역설적 신비를 본다. 내 가장
멀리 떨러져 있을 때에도 바로 곁에 계시고 팔 벌려 나를 기다리시며 약한 자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느님께서 이번 병으로 나에게 무엇을 섭리하시고 무엇을 기대하시는지
지금 병상에서 곰곰이 묵상하고 있다. 이에 나의 기도는 다윗을 따른다.
(시편 119, 68.71.105/ 시편 125, 1-2)

(3. 재밭을 딛고) 병들어 삶의 빛이 바래니 지난날 낭비된 시간들이 뉘우쳐진다.
젊어 한때는 바다를 휘젓는 괴물 레비아단(시편 74,14)의 심복 바이킹! 파도를 몰고
오대양을 누비고 말갈기(말 목덜미에서 등까지 난 긴 털)를 날리며 광야를 달리는
기사를 자처하기도 했으나, 이제 잠 잃고 불도가니를 지나면서 잿불처럼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은 또다시 다윗이 들려주는 노래. 평소에는 귓등에만 스치던 말씀이 지금은
북돋음을 준다. “사람이란 그 세월 풀과 같아 들의 꽃처럼 피어나지만 바람이 그를
스치면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아내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의 자애는 영원
에서 영원까지 당신을 경애하는 이들 위에 머무르고 당신의 의로움은 대대에 이르리라
(시편 103, 15-17). … 사람이란 어차피 제한된 환경 속에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숙명의 아들. ‘헛되고 헛된’(시편 127,2)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 시련이며 괴로움도 도약의 발판이 되어줌을 실감한다.

(4. 일어나 노래하리) 또 한 번 나를 살려주고 건강을 돌려준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들.
하지만 마음의 치유를 위한 심령 기도는 나를 성아우구스티노와 손잡게 한다. 그리스도
께서 나를 이토록 아껴 주시니 그를 위해 남은 목숨 즐겨 던지라는 의지가 굳어진
것이다. 결국 ‘우리 삶의 초점은 단 하나뿐, 다른 것은 모두 헛일’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루카 10,
41-42). 고통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나 지나고 보면 틀림없이 한 단계 올라선 슬기와
내적 깊이를 이 삶에 더해주는 소중한 체험이 된다. 순탄하게 뻗은 큰 길은 누구나
바라는 바이지만 때로는 험준한 계곡이며 벼랑이 의지를 굳히고 의욕을 불태우는 데
‘필요악’이 됨을 깨닫겠다.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로마 11,36). 정녕 모든 것은 섭리요 은총인 것이다. “주여, 앞으로는
내 이름 높이는 일이 아니고 당신을 증언하고 당신 사랑을 펴는 일에 전념하게 하소서.”

< 8. 부활 전야 >
- 이마에 재를 뿌려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창세기 3, 19)을 되새기는
‘재의 수요일’에 이어 사순절 동안, 병을 벗하며 죽음을 묵상한다. 해마다 사순절이면
깊은 인각(印刻)으로 가슴에 새겨지는 죽음이라는 명제, 가치 있게 죽기 위해 어떻게
살 것이며 피안에 투자하며 흑자로 살려면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인생
최대의 과제이다. 사람은 시련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굳어진다. “오, 병!
나의 자매여”하고 읊은 아씨시의 성프란치스코의 말대로 어찌 보면 아픔을 받았다는
것은 은총이기도 하다. 육체의 아픔을 치르고, 수난 묵상을 하며 ‘십자가의 길’ 어디쯤에
나는 서 있는가 생각해 본다. 고독한 시간이면 나를 달래주고, 길을 골라준 이는 예언자
이사야이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이사 40, 6-8). 이승 삶과
죽음이란 종잇장의 앞과 뒷면의 차이라는 생각으로 이렇게 퍼질고 앉아 민그적거리는
사이, 뼈깎는 오열의 밤(수난절)은 가고 ‘그리스도의 광명’-빛 부신 부활의 동이 저만치
터온다.

< 9. 오후의 기도 >
- 믿음의 길이란 ‘나’에 죽고, 세속에 대해 죽고, 죽어서 사는 것–그리스도와 함께
나날이 새로운 숨 쉼임을 알면서도 자칫 ‘내’가 앞서고 잔꾀가 꿈틀대는 어리석음.-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 가슴을 친다. 요즈음은 자기를 잃고 멍해질 때가 있다. 만리타국,
낯선 길목에 멍청이 서서 “너 무엇하고 있느냐?” 모든 것이 종합이며 초점인 ‘로고스’를
향한다면서 잡초만 캐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겠다. 이 오후 나의 기도는 빛이기에 앞서
‘소금되려는 열정을 주소서’. 기도 시간은 마음 비워 심령기도롤 뜨겁게 타오르며 하늘
초원에 산다.

- 신앙생활이란 누에 탈바꿈. 자기를 벗어나 선에로 빛에로 몇 번을 변신해야 하는데
고질된 습성과 아집, 악취미를 말끔히 씻어버릴 수 없는 나는 평생을 ‘자기의 노예’-
여기에 내 고민이 있다. 올곧게 살려고 애쓸수록 더해지는 걸림돌! 사람의 사람다운
한뉘란 자기와의 실랑이질. 결국 나와 나의 피나는 싸움의 연속임을 나이 들수록 더
절실히 깨닫는다. … 믿음의 길–주께로 나아가는 초기에는 ‘믿어 보자’고 마음먹었다.
날이 가면서 주의 길을 따르기로 약속하였다. 어제의 나의 신앙은 그 약속 이행과
의리(의무감)로 이어져 왔다. 눈이 떠진 이제는, 주의 길 실천이 즐거움으로 바뀌어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사는 일이 이토록 고맙고 흐뭇할 줄이야! “언제나 기뻐
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1테살 5, 16-18) 하신
말씀이 가슴에 살아온다.

< 10. 기적 주변 >
- 평탄하고 안일한 나날보다 역경과 시련이 사람을 내적으로 풍요롭게 해줌을 깨닫는다.
현실타개의 굳은 의지를 길러주며 한 단계 올라선 삶으로 밀어주는 ‘고마운 쓴잔’이
바로 역경이요 시련인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큰 위안을 주는 인물은 최악의 불운을
은총과 삶의 기쁨으로 바꾸어 놓은 ‘20세기의 기적’-귀먹고 눈멀고 벙어리인 ‘3불구의
여인’ 헬렌 켈러이다.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신앙의 힘으로 삶에의 긍정적 입장을 끝까지
지켜 하느님 사랑을 발견하기까지의 자아와의 피나는 투쟁 과정이 결코 수월하지 않았
으며 고개 넘어 고개로 엄습하는 실의와 좌절감은 처참 바로 그것이었다. 눈도 귀도 입도
막혀 완전 암흑과 침묵과 폐쇄의 삼중고에 억눌렸던 그녀가 뼈깎는 노력의 연속 끝에
급기야 읽고 말하고 저술까지 하게 된 과정은 결코 불가능은 없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펼쳐 보여준다. 더 내려갈 수 없는 비극의 극한 상황에서 치솟은 샘줄기! 헬렌 켈러의
삶은 활성적 사랑의 등불이 되어 역설적으로 하느님의 존재와 기적의 실재를 입증하여
‘그 어떤 역경에 짓눌려도 결코 절망 말고 털고 일어나라’는 고마운 채찍이 되어주기도
했다.

- 크리스천에게 메시아의 수난에 동참하는 생활을 일깨우는 사순절(시기)로 접어들었다.
‘선’을 보고 뒷걸음치는 자체가 ‘악’임을 사순절에 접어든 이 아침 새삼 일깨워준다.
나의 알파요 오메가인 어버이를 선반 위에 얹어둔 채 별것 아닌 인간적 노력에만 의존한
‘자기 의화(義化)’란 철부지의 시행착오임을 몇 번을 겪는 병중에 실감했다. “당신을
생각할 때 거리감이 남더니 다정한 미소에 가슴에서 얼음장이 녹아 흐릅니다. 손을
잡아 일으키시는 그 눈길 다시 대하니 세상이 온통 빛으로 변합니다. 사랑이란 항시
타는 목마름 당신을 앎이 깊어질수록 갈증이 심해 갑니다(검돌, ‘작은 기도’).

< 11. 예수 그리스도 >
- (작은 증언) 나보고 예수를 증언하란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의 주인공,
영원과 시간의 교차점에 우뚝 서서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고 집단의 풍토며 생활양식,
개인의 삶과 사고방식마저 180도로 돌려놓은 풍운아. 스스로의 선언같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루카 12,49) 온 자. 철저히 타협을 배격하고 현실 적응을 거부한 고집-그럼
으로써 철저히 손해보고 제명을 다 못산 바보스런 한뉘, 그러나 철석같은 신념! 심오한
가르침으로 하여 첫손 꼽히는 인류의 교사. … 공생활 3년간을 빈틈없이 심각하고 진지
하고 숨 가쁜 나날로 맞고 보내야 했던 그 고통. 분노를 터뜨리며 그가 가장 꼬집은
것은 위선과 교만, 남을 덮어주지 않는 미움-그래서 ‘회칠한 무덤’(마태 23,27)이라
꾸짖었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무서운 요구를 내세웠다. 때로는 준엄한 벼랑 같고
그런가하면 훈풍 감도는 화원 같은 수수께끼의 인물. 그의 주변에는 항상 불구자와 가난
하고 억눌린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의 가장 가까운 이웃은 사회의 활동무대에서 밀려난
불우한 사람들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기회 있을 때마다 들려준 설득력이 강한
말들, 깜짝깜짝 놀라게 한 초인적 행동, 모든 것을 꿰뚫고 마음마저 빨아들이는 광채 띤
시선, 한마디로 그는 신비의 사람!

- 세상의 어느 위인, 호걸도 이승을 떠난 수십 세기 후까지 추종자가 끊이지 않고 늘기만
하는 예가 없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위해 한생을 고스란히 바치고 목숨마저 아낌없이
내놓는 신봉자, 순교자가 날이 갈수록 기하급수로 늘고만 있음은 초자연적 현상이다.
오늘날 지구촌 어는 구석에도 그의 상징인 십자가가 없는 곳이 없고 인류의 과반수가
그의 뜨거운 제자이며 그의 영향 밖에 놓인 문화권이나 정신계를 찾아 볼 수 없으니
신이 아니고서야! 이것이 20세기를 통틀어 최대의 기적인 것이다.

< 12. 여백의 삶 >
- (고통의 신비) 바쁜 나날을 살아가면서 쉬는 시간, 휴일은 ‘10보 전진 위한 1보 후퇴’
격으로 필수여건이 되어 있다. 우리가 간혹 병을 앓는 것도 고달프고 지루한 인생길의
한 쉼표 같은 구실이 되어준다. 순조롭고 무미건조한 일상이 되풀이 사이사이에 때로
시련이나 역경을 겪고 넘어서면서 더 눈이 떠지고 성장이 오는 것임을 역사가 보여준다.
대자연의 순환에도 희망에 찬 봄 뒤에는 연옥같은 땡볕과 모진 비바람을 거쳐 성숙과
풍요의 계절이 보장되고 다시 죽음인양 강추위의 엄동설한을 견디고 나면 새봄을 맞이
한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격으로 질병은 사람을 심각하고 진지하고 겸허하게 만든다.
천하의 명도(名刀)는 수없는 불 속을 거치고 망치질로 다져지는 것이라고 했다. 질병은
사람에게 필요악일지도 모르며, 시련과 고통은 사람을 철학자가 되게 한다.

- 신앙이 있어 우리는 삶에 자신과 여유를 갖게 되며 또한 믿음의 눈으로 볼 때 고통은
지겨운 고역이 아니고 눈물이 비통한 절망으로 이어진 통로가 아님을 깨닫는다. 고통의
신비, 역경 속의 은총을 깨달을 때, 우리는 삶의 깊은 뜻을 깨닫고 도리어 감사의 정이
솟아오르기도 한다. 신의 손길, 그 오묘하고 신비로운 섭리는 흔히 평탄한 길, 순조로운
생활보다 풍운의 계절을 지나면서 더 실감나게 한다. “오늘 우는 이여, 내일은 웃으며
거두리라.”

[ 2장 ]

< 13. 내일에 산다 >
- 거듭 쏟아지는 백설과 더불어 긴긴 겨울잠에 빠지는 캐나다 대지. 여러 나라로부터
모여온 여러 민족, 거의 100을 헤아리는 각 이민 집단은 나름대로 용케도 조화를
이루며 말썽 적은 모자이크 사회를 꾸려가고 있다. 그중의 하나로 비중을 더해가는
한인 사회는 집단과 개인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여러 분야에서 행동반경을 넓혀가고
있음은 스스로 흐뭇하고 장하게만 여겨진다. 슬기롭게 현실에 적응하면서 선두주자로
이끌어 나가는 패기는 어느 사회에서나 소중한 ‘필요선’이다. 춘하추동의 대자연 변화와
비슷하게 쉴 새 없이 옮겨가는 시대 풍조와 환경조건에 따라 시달리는 ‘갈대 인생’
사람이 사는 곳은 그 어디에고 밝음과 어둠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 이민자들은 선주민
보다 하나 더 젊어진 멍에를 용케 견디며 앞길을 헤쳐 나가는 모습은 눈물겹도록 대견하다.

- “개방! 개방!”(open mind)을 목터지게 외치면서도 저마다는 속으로 얼음벽을 높이
쌓고 고독을 되뇌이며 미소와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있음을 본다. 사람의 동물성-그
악의와 짙은 미움이 빚어내는 먹빛! 먹빛이 풍기는 악취가 정신을 마비시키고 대낮에
길에 나서도 손끝이며 얼굴, 눈동자에까지 묻어드는 먹빛에 현기증을 겪는 것이 현대를
사는 생활인의 부정적 측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사람의 착함(성선설)을 고집하는
우리 앞에는 실망이 없다. 마음먹기 나름으로 희망과 위안과 행복이 바로 우리 주변에
깔려 있음을 알기에. 20세기 후반기의 현대사회는 ‘바벨(Babel)’의 재현을 실감케 하고
있으나, 그 위에도 하늘의 입김이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음을 확신하는 마음 든든함에서
새해에는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와, 모든 이 위에 가득한 행운이 하늘의 별떼처럼 깔리기를
염원한다.

< 14. 나그네 >
- 이번 캐나다 서부여행은 ‘인생은 나그네’란 말을 더욱 실감나게 한 며칠이었다.
“이른 새벽 길 떠나 늦저녁까지 하루해를 보내는 인생의 길손. 이승의 나그네길 다할
때까지 영원한 그 나라에 이르기까지”(로버트 브라우닝, ‘순례’) 어차피 사람 저마다는
어느 날 하루 지구 위에 들렀다가 우주시계로 따져 순간을 살고는 다시 훌쩍 떠나는
길손으로 숙명지어진 것. ‘나’라는 잡초 한 잎-언제 다시 심장병이 재발할지 모르는
위험성과 고질화된 당뇨병의 생명위험이란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으로 하루해를
맞고 보낸다. 이승살이를 한 사이클 겪는 동안 더구나 10년의 이민생활을 보내면서
스스로 “허송은 안 했다”는 자신이 서지 않아 낯이 뜨거워진다. 남은 시간들을 후회
없이 보내야겠다는 조바심으로 새로운 청사진을 서두른다. 나의 좌우명은 ‘평범,
그 속에서 비범을…’이다.

- 요즈음 세상이 가속으로 시끌하고, 가슴가슴에 고드름이 끼는 건 덜 익은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지구가 지치고, 가속도로 식어가는 건 똑똑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반면, 사랑 부재, 밝은 미소의 인색 탓이라 느껴진다. 말로만 외쳐
대는 정의! 실천을 외면한 사랑은 똑똑한 사람의 능사다. 그러기에 열매 없는 나무로
메아리만 클 뿐, 그러기에 참다운 사회개조, 인간복지가 미완성에 채 안타까움만 여운
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인간사회, 특히 이민사회 건설과 발전의 쌍두마차는 정의와
사랑! 그중에서도 사랑에 비중을 더 둘 때에, 복지사회는 훨씬 앞당겨질 것이다. 사랑도
정의도 말에 있지 않고 행동에 있음을 깊이 깨닫는다.

< 15. 현대판 고려장 >
- 입원 11일 만에 심장병 중환자실을 떠나 심장 보조맥동기 모니터를 가슴에 매달고
일반병실로 옮겼다. 룸메이트는 82세의 포르투칼인으로 왼쪽 팔다리를 못 쓰는 중풍
환자 카스트로였다. 실어증에 걸렸는지 말을 못하고 잠잠하다가는 갑자기 괴성을
지르고 웃었다, 울었다, 생각의 중추를 종잡지 못하는 노망기가 겹친 듯하다. 처지가
딱한 영감이었다. 주치의 말로는 여러 달 동안 입원 치료로 병세의 위험수위를 넘겨
더 치료할 것도 없고 하여 집에 가서 정양(靜養)하라고 구급차로 보냈더니 그날 밤
2시께 가족들이 환자를 도로 병원으로 실어 와서 몰래 현관문 안에 내려놓고는 뺑소니
쳐버렸더란다. 마지못해 다시 받아들여 반년 이상을 더 넘기고 있다고. 폐인이 된
어버이를 외면하여 남에게 떠맡기는 야속한 사람들! 이것은 현대판 서구식 ‘고려장’
임에 틀림없다.

- 카스트로는 딸이나 손자가 병실에 들어설 때마다 큰소리로 웃고 격하여 눈물도 떨어
뜨리고 식사며 세수, 오물 처리를 도맡아 시중드는 친절한 간호사가 다가오면 제 나라
말로 “따봉 따봉”(좋다)하고 외치곤 한다. 노인은 면회시간이 끝나 문병객들이 작별을
고하면 엉엉 울어버리기도 한다. 이 병실에서 지낸 지 9일 째 되는 날, 나는 입원 19일
만에 퇴원, 집에서 요양하게 되었다. 9일간 낯도 익었고 아내가 매일 방문할 때마다
꽃송이를 노인의 머리맡에 꽂아두고 과일을 깎아서 대접하는 등 친절히 대한 때문인지
퇴원한다고 마지막 인사를 했더니 말을 못하는 이 노인은 그만 통곡을 하고 말았다.
노인의 울음은 그치지 않아 죄짓는 기분으로 문을 나섰다. 마음 담아 살펴보면 불우한
이웃들이 많음에 새삼 놀란다.

< 16. 미소짓는 수녀 >
-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도된 수으리 수녀(‘미소의 수녀’의 뜻) 여인의 비극도
우리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지난 1960년대, ‘노래하는 수녀’,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수녀’로 세계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고 ‘도미니크’라는 노래로 베스트셀러를
차지해, 그녀의 음반이 날개 돋친 듯 인기 절정에 올랐던 장본인이 그 인기도에 편승
하여 자기도취에 빠지고 자만심이 부풀어 계율이 엄한 수도원을 박차고 환속해버렸다.
20년 후 한때 반짝하던 인기가 주저앉고 사람들의 관심이 썰물이 된 오늘, 그녀는
후회와 좌절과 실의와 우울증에 사로잡혀 애절한 고독감을 달랠 길 없어 스스로 삶을
중단해버리고 만 것이리라. 여기서 우리는 자기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대인의 참상,
20세기 노을의 한 구석을 보는 것 같아 침울해진다.

- 자기 우상화-스스로를 너무 믿고 자기 능력의 한계를 의식 못하는 맹목에서 지나
치게 자기에게 기대하여 좌절이 오고 절망과 비참이 싹트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갈대’의
실상이다. 이 사건에서도 우리는 ‘자기를 안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슬기인가를
배운다. 자살한 수으리 수녀도 선풍적인 인기가 불변의 것인 줄로 착각하고 자만심이
가슴 가득 부풀었으리라. 사람 저마다가 자기 나름의 아름답고 도도록(솟아 볼록함)
높은 별(이상)을 지니고 그 별을 더 밝게 더 크게 키워 나간다면 종말이 결코 불행해
지지 않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잊어서 안 될 것은 항상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이다 이 말을 귀담아 듣고 슬기롭고 충실하게 삶을 엮어 나가면 인생에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저 자신이 자기의 주인이 되지 말고 하느님을 주인으로 마음
깊이 받아들여 충실히 모시고 살 때, 그에게는 평화와 즐거움이 상주하며 사는 것이
더없이 기쁘고 값지게 여겨질 것이다. ‘미소짓는 수녀’도 이 길을 내내 지켰더라면
결코 좌절하지 않았을 것을 ….

< 17. 지렁이 야화 >
- “캐나다, 특히 토론토의 이민생활 등록은 지렁이 잡이로…”. 이말은 이곳에 정착하여
살고자 찾아온 한인들의 말이다. 그만큼 우리 교포들이 이역생활의 시작을 지렁이
잡이로 시작하는 예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별다른 기술이 필요 없고 경력이나 밑천
없어도 섭섭잖은 품값이 현찰로 지급되므로 우선 빵문제 해결을 위해 쉽게 손댈 수
있는 직종인 것이다. 이른 봄에서 늦가을까지 교외의 초원이나 골프장에 나가 초저녁
부터 밤새워 풀 사이를 누벼 지상에 나온 새끼 손가락만한 ‘나이트크럴러’를 집어내는
것이다. 캐나다의 지렁이는 크고 굵어서 마치 회충만하다. 어느 교포처녀의 체험담이다.
“처음 들에 나가 뿔뿔이 흩어져 새까만 풀밭에 나 혼자이구나 하고 생각하니 오싹
소름이 끼치더군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지렁이를 잡기 시작했지요. 굵고 징그러워
끔찍해서 잡을 수가 없었지만 ‘이건 돈이다. 천 마리에 18달러야’하고 고쳐 생각하니
징그럽던 지렁이가 돈으로 보여서 기를 쓰고 줍고 또 주었지 뭐예요. 출퇴근 차로 집에
오는 길에는 모두 꾸벅꾸벅 졸았답니다. 허리 아프고 무릎이 쑤시는 것도 일주일,
그 일을 계속하니 아무렇지도 않게 됐어요.” ‘이민 등록(?)’을 마친 그녀는 싱긋 웃는다.

< 18. 감탄한 일 >
- 캐나다 주민들에 대해 감탄할 일 몇 가지가 있다. 대륙성기질에서인지 안달하지
않고 참을성과 일에 대한 집중적 성실성 그리고 친절한 점을 꼽을 수 있다. 큰 가계
에서 물건을 사려고 줄을 서거나 관청이나 은행 등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군 소리
없이 참고 기다린다. 사무직원들도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아니다. 새치기도 용납 안 되거니와 남의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간섭도 안 하는
것이 상식화된 사회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등에서 만나면 낯선 사람끼리도 서로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나누고, 전차나 버스 타거나 내릴 때에는 운전사가 노약자나
지체부자유를 부축해 주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다. 대중교통 운전사들은 시간관념이
철저하고 책임감도 강하지만 자기 권리를 꼭 누릴 줄 안다.

- 이곳 사람들의 근무태도에는 탄복하겠다. 모두들 근무시간 중에는 한눈팔지 않고
알차게 충실히 업무에 열중한다. 그리고 65세 은퇴 전의 모든 사람이 남녀노소 거의
모두가 직장에 나간다. 집안 살림만 하며 직장에 안 나가는 주부들이 거의 없다시피
여성들도 일터에 나가 생활비 충당에 한몫 단단히 한다. 아이들도 주말이나 방학 때는
직업을 가져 자기 용돈이나 자전거 등을 스스로의 힘으로 구입하거나 장거리 여행비용을
모으기도 한다. 남녀 노인들도 식당의 그릇 닦기, 공장이나 가게의 보조원 등으로 일하는
것을 긍지로 여기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이곳에서는
실감이 난다. 어떤 직종에 종사하건 모두들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며 남들도 직종
이나 직위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좋은 풍습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주 5일간
근무로, 주말 2일간은 파티, 피크닉, 캠핑 등으로 철저히 피로를 풀며 즐긴다.

< 19. 캐나다에 많은 것 >
- ‘단풍의 나라’, ‘호수의 나라’, ‘눈의 나라’ 캐나다! 이 나라에 제일 많은 것은 물과
전기와 목재와 쇠고기일 것이다. 석유도 무진장 많다. 드넓은 초원이 많으니 목장이
많고 따라서 젖소와 육우도 많아 쇠고기와 우유가 싸다. 지대가 넓어 대도시에도
녹지대가 많아 공기가 맑고 수돗물이 얼음같이 찬 것도 특색이다. 그런데도 남녀노소가
모두 하나같이 아이스크림을 좋아해서 길을 다니면서 먹는 모습이 흔히 눈에 뜨인다.
물이 많아서 무료입장 수영장의 물을 하루에 두세 번씩 갈아대고, 전기가 많아서 이 나라
모든 건물은 여름에는 냉기(에어콘)가, 겨울에는 추운 줄 모르게 난방이 잘 되어 있다.
캐나다에서 잘되어 있는 것을 소개하자면, 이곳 공원 놀이터의 그네가 돋보인다. 어린이
들을 위한 그네는 개, 말, 토끼 등 회전목마와 같은 쇠로 된 모형동물이 발판으로 놓여
있어 어린이는 그것만 타면 안전하게 즐기게 된다.

< 20. 캐나다의 미신 >
- 사람 사는 곳, 그 어느 지방이나 나름대로의 미신이 있게 마련이다. 문화 선진국으로
자처하는 캐나다 백인사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신스런 생각들이 있다. 몇 가지를 추려
보면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사다리 밑을 지나지 말라” 사다리 아래를 지나가면
자기 머리에 무엇이 떨어져 다칠 위험도 있지만 이 나라에서는 사다리 밑을 지나가면
재수가 없다고 믿고 있어 사다리가 걸쳐 있으면 그 아래를 피해 지나간다. “밥먹자마자
누우면 소가 된다”고 엄포를 놓아 못 눕게 한다. “소금을 떨어 뜨리면 불길하다” 소금을
흘리거나 조금이라도 떨어뜨리면 불길해진다고 믿는다. 이것은 옛날 내륙지방에 살아
소금이 아주 귀한 생활실상에서 아끼고 소중히 여기자는 생각이 짜낸 미신으로 보인다.
“겨울을 깨면 불행”이 오고 “검은 새를 보면 불길해진다” 여성들이 채경이나 손거울을
떨어뜨리거나 실수하여 깨뜨리면 그날 운을 잡친다는 생각이다. 백인들 가정에서는
거울을 깨뜨리면 7년간 불행이 계속된다고 믿고 있어 아주 금기로 여긴다. 까마귀를
‘불길한 새’로 여기는 풍습은 동서양의 공통된 관념이다. 그리고 “검은 고양이는 아예
기르지 말라”는 금기조항이 있을 정도이다. 캐나다 사회에서는 영구차는 으레 검정색이고
유가족들의 상복이나 너울(미사수건 등)도 검정색이다.

< 21. 어른의 모국어 >
- 사람은 자기의 핏줄(혈통)과 더불어 모국어를 애용하고 길이 보존, 자녀의 후손에게
바로 전수해야 한다. 이는 민족적 긍지이며 숙명적 의무에 속하는 중대사이다. 더욱이
우리의 모국어인 ‘한글’의 경우, 세계적 우수 언어이며 뛰어난 문화어, 예술어인 점에서
더욱 존중, 애용하며 발전시켜 나갈 가치가 충분히 있다. 창제시의 천재적 창안으로
이루어진 그 과학적이며 조직적인 짜임새와 거의 못 적는 소리가 없을 만큼 완벽에
가까운 소리글(표음문자)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는 한글을 연구 검토한 독일,
미국, 일본 등 외국언어 학자들의 한결같은 공통 결론인 것이다. 모국어를 상실한 민족은
정신적으로 생명을 상실한 민족이다. 2천년간 나라가 없었어도 유대인들은 엄연한
언어와 문화를 극성스레 보존 전승했기에 그 민족은 불사신처럼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아무리 고귀한 보물을 소유했다 하여도 사장(死藏)한다면 가치없는 일이다. 전가의
보도(傳家寶刀)일수록 잘 갈고 닦아 필요한 때에 유효적절하게 활용하는 데서 진가가
드러나며 빛을 더하는 것이다.

- 한글을 올바르게 못 쓰는 이유는 몇 가지 있으나 근본 원인은 한글을 철저히 깨치려는
결심이 없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기비하 정신에 있다 하겠다. 내 것을 내가
아끼지 않고서 어찌 남이 소중히 여겨주기를 기대할 수 잇겠는가. 제 나라 언어가 어렵
다면 어찌 남의 나라 언어에 도전해 제것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더 늦기 전에 고국에서는
물론 이곳 한인 사회에서도 2세를 위한 한글교육 붐과 보조를 맞추어 어른을 위한 우리말
바로 쓰기 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 22. 소포 결혼 >
- 사람의 사람다운 값어치는 창의적 노력이며 지식 등에 앞서 양심과 도의 정신을
지녔기에 ‘만물의 영장’이다. 사람의 신의와 약속 중 가장 큰 것으로 신과의 맹세 다음
으로 으뜸 꼽히는 것은 결혼서약이라 하겠다. 결혼이란 타인과 타인, 두 남녀가 애정을
주고받으며 한뉘를 변치 말고 서로 위해 주자고 양심과 명예를 걸고 신 앞에 엄숙히
서약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일생 일대의 대사이다. 그런데 물질문명의 고도성장에 편승한
서구식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풍조에 피상적으로 물든 경박한 결혼관 탓으로 이곳 한인
사회에도 나날이 가정불화, 내외균열이 늘어 중대한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아내나
남편의 가출, 별거, 이혼사태의 격증이 그것이다. … 신중한 검토 끝에 백년해로하기로
스스로 결정했으면 신과 사람이 보는 앞에서 서약하여 출발한 것이니 상호 신의를 끝끝내
지켜 신성한 혼인서약을 준수해 나가야 마땅한 것이다. 중요한 결함 발생이나 혼인
정신 위배사항이 없는 한 이혼이나 별거는 중대한 배신행위요, 당사자 아닌 가족들, 특히
자녀에게 치명적 불행을 안겨주는 불상사이기도하다.

- 교포부부간의 불화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 하나의 큰 문제가
있다. 즉 소포결혼의 맹점이 부부간 파경의 대표적 원인이 되고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소포 결혼’이란 해외거주자가 모국으로부터 배우자감을 초청, 성례하거나 혹은 한국에
가서 결혼식을 치르고 배우자를 초청해다가 새살림을 꾸리는 것을 뜻한다.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 만족할 만한 사전검토를 못하는 허점이 있고 충분히 사귀어 볼 여건이 주어
지지 않은 채 편지거래와 ‘사진 선보기’로 모험삼아 결혼에 돌입하는 투기적 결단인
셈인데 결혼 후 애초의 기대와는 현격한 차이를 발견할 때 환멸과 짜증이 누적되기에
이른다. 한편 모국 거주자의 경우 흔히 결혼을 해외진출의 방편으로 삼는 사례도 적지
않으니 그런 결합은 오래 지속되지 못함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 부부사이에는 애정과
이해심이 앞서야 함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사랑이란 본질상 관용과 희생과 봉사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님을 부부서로가 깊이 자각할 때 결코 이혼이라는 막다른 길에까지
내닫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주체성, 한국적 전통미덕을 부부생활에서 더욱 잘 살리는
습성을 길러나가야 할 것이다.

< 23. 두 얼굴 >
- (주는 기쁨) 죠지 브라운대학에서 강의 중 여담으로 한 백인 선생이 “백인들은
두 표정을 가지고 있다. 대인관계에서 흔히 ‘아이앰 쏘리’니 ‘댕큐’라고 말하지만 그건
건성이고 속은 다르다”라고 하였다. 이곳에 눌러 살면서 그 말의 본뜻을 터득하게
되었다. ‘두 얼굴의 사회’에도 ‘착한 사마리아인’의 자상함과 같은 온정지대가 있음으로
하여 이 나라 사회는 축복을 더 받는 것이라 여겨진다. “십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
십년을 웃도는 세월 이민살이를 하면서 ‘주는 것이 받는 것’이란 생각이 가슴속에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받는 것은 고마우면서도 머릿속에 미결의 장(후유증)이 부담감
으로 남고, 주는 것은 개운하고 비잔결 같은 여운이 일어 곱으로 되돌려 받는 기분이
든다. 우리들 서로가 주기만을 힘쓰고 주고자 하는 생각이 넘쳐난다면 우리가 사는
고장은 훨씬 밝아지고 유쾌해질 것이다. 나아가 이 같은 풍조가 지구를 감돌 때 세상은
무척 살기 좋은 낙토로 개조될 것이다.

- 인류의 스승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정녕 어두운 뱃길의 등대가 되어 준다.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7)는 사상.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는 강조,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루카 6,29.30.35)는 아량, 그 사랑의 계명.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는 말씀은 인류 최고의
행복론이다. 그리스도의 사상은 인본주의 세계를 송두리 뒤엎어 새로운 가치관-하늘에의
좌표를 강력히 우리 앞에 제시한다. 그의 ‘사랑의 가르침’대로 오대양 육대주가 실현
한다면 지구는 고스란히 에덴 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사람의 두 얼굴, 속과 겉이 다른
이중성이 하나로 단일화 되고 원죄 이전의 심성으로 돌아갈 때, 우리 사회에는 따스한
봄 훈풍이 마음의 들에 금잔디를 깔아 줄 것이다.

[ 3장 ]

< 24. 고독이라는 병 >
- 사람의 행불행은 자기가 빚는 것이라 여겨진다. 체온과 체온이 붐비는 도심지
변화가에서 숨 쉬어도 고독에 사로잡혀 파아란 한숨을 일삼는 이가 있는가 하면,
로빈슨 크루소같이 단절된 상황에 놓여져도 흐뭇하고 충전된 마음의 소유자도 없다.
… ‘잠못드는 밤’을 사람에게 안겨주고, ‘죽음에 이르는 병’을 물려주는 가장 못 견딜
고질병은 ‘외로움’이다. 삶의 의욕도, 생기도, 희망마저 송두리째 싹둑 잘라먹는
‘정신의 암’이 바로 고독이다. 소외되고 낙후됐다는 열등의식은 살맛을 잃게 하는
무서운 병이다.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되었다는 자기 열외(列外)사상이 바로 고독감이다.
아무리 남의 땅에 얹혀사는 이민자라 하여도, 맞고 보내는 남과 밤이 그 아무리 고달
프고 힘겨운 오솔길의 연속이라 하더라도 이 ‘고독’이라는 병만 극복할 수 있다면
앞날이 밝게 트일 것이 자명하다.

- 고독이 정신이 끼치는 악영향 말고도 대인관계, 가정분위기, 본인의 육신건강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결과를 임상실험과 인생 상담 실무자들이 입을 모아 입증해주고
있다. 최근 미국심장학회에서 발표된 연구논문들에 의하면 외로움은 심장병과 여러
가지 병을 유발시키는 근본 원인으로써 인간 건강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고독이 생명을 줄이는 큰 요인이라는 것이다. 사회적인 인간관계가 건강과 직결된다는
얘기는 설득력 있는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미국 미시간 대학 연구팀의 발표에 의하면
사회적인 접촉도가 낮은 사람일수록 보통 사람보다 사망률이 2배 내지 4배 많음을
알아냈다. 우리 삶에서 고독이라는 치명적인 병을 추방하고, 원만한 대인관계와 이웃과의
깊은 유대감을 갖고 지내는 것이 현실을 행복하게 사는 생활인의 슬기이다.

< 25. 여심의 애환 >
- 에덴 시대의 인류 초기, 금단의 열매를 먼저 따먹은 인과응보인지 ‘한(恨)’과 여성은
오랜 옛부터 숙명적 동반자인 것 같다. ‘한’하면 먼저 한국 여성을 생각한다. 새장에
갇힌 새처럼 보이지 않는 제도며 인습의 올가미에 얽혀 죽어 살아야 했던 그 한뉘.
‘여자의 소리가 대문 밖에 나가면 집안이 망한다’ 하여 소리 한번 크게 못 내고 속으로
썩으며 조심조심 기죽어 살았다. 아들은 집안의 대를 이을 대들보라 최대한으로 위했고
딸자식은 ‘사돈집 식구’로 접어두어 딸을 낳으면 산모는 죄나 지은 듯이 쥐구멍을 찾아야
했다. 아들은 아무리 무식하여도 서당에 다녀 논어, 맹자, 중용, 대학과 시경, 서경,
주역 등의 학문을 닦게 했다. 아녀자는 아무리 똑똑해도 ‘마당 백리’의 집안일로 온종일
남성 뒷바라지를 시간으로 메우며 눈치와 조심성으로 한숨을 일삼았다. 여성은 남성에게
예속된 필수품 이상의 대우를 못 받고 무수한 낮과 밤을 눈물로 옷고름 적시며 지내야
했다.

- 여성 푸대접의 역사는 한반도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세계적인 것이다. 이웃나라
중국에서는 여성의 발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학대했다. 유럽에서는 성 탈선을
막는답시고 정조대를 채워서 억압했다. 수십 마리 암탉을 거느린 수탉처럼 남성이
바람은 더 잘 피우는데 남성에 대해서는 정조대니 칠거지악(七去之惡)이니 하는 제약이
없었음은 남성 우위가 이어져 내려왔음을 말해준다. 여성은 남성의 동반자인데 남성
편중의 모순을 깨고 동권, 동등의 진통이 일기 시작한 근대화 기류를 타고 지난 세기에
노르웨이 극작가 ‘헨릭 입센’이 연극 ‘인형의 집’으로 여성해방운동의 횃불을 들어 오늘
와서는 여성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음은 다행한 일이다. 그리스도는 남녀평등 사상을
강조하여 억압받는 여성의 편을 들었으며 대대로 그리스도교가 그 정신을 이어 주창해온
운동임을 아무도 부인 못한다.

< 26. 세계의 초점 >
- (한국의 황금기) 1984년은 ‘이 땅에 빛을!’ 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한국 가톨릭
200주년 축제와 유사이래 처음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을 맞이한 기념스러운
해였다. 더욱이 우리의 순교선열 중 103위 복자들의 합동 시성식이 로마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전 이외의 장소로는 처음으로 한국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올려졌고 또한
2천 년 세계 가톨릭 역사상 최다수 인사의 동시 시성이라는 면에서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신기록을 세워 1984년에는 세계의 초점이 되었다. 정말 흐뭇하고 어깨가 쫙 퍼지는
해였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제4위로 많은 성인 보유국으로 부상했다. 이곳 토론토
에서도 100여 명의 교우가 순례단을 모아 전세기편으로 이에 동참했는데 애초에 참가
신청을 냈으나 뜻하지 아니한 심장 발병으로 “퇴원 후 6개월 이상 여행을 삼가지 않으면
재발 위험이 있다”는 주치의의 권고로 기권하고 집에서 요양하며 서울에서 시성식이
올려질 무렵, 기념시(‘빛무리 송가’)를 낳는 것으로 대신했다.

- 사람에게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은 목숨이다. 그 목숨을 남 위해 버린 사람을 의인
이라 부른다. 한 목숨 나라 위해 바친 사람을 애국자로 칭송하여 길이 기린다. 그 목숨을
신앙 위해 내놓은 이를 우리는 순교자로 높이 우러른다. 이 진리의 증인들은 사람의
참 가치와 삶의 바른 목적과 사는 길을 굳센 믿음으로 입증해주었고, 최고의 임금에게
하나밖에 없는 한뉘 목숨을 고스란히 제물로 바쳐 개선장군인양 웃으면서 죽어간
정신계의 영웅이다. “안 믿겠다”는 한마디만 하면 살아날 것을 도리깨질한 그 절개,
그 용덕 앞에는 저절로 머리가 숙인다. ‘순교자는 복음 전파의 씨앗’이란 말대로 우리
종교는 2천년 동안 새로 들어가는 지역마다 먼저 피를 뿌리고 뿌리를 굳혀 자라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캐나다에서도 선주민들과 함께 들어와 피를 흘리고 복음의 씨앗을
뿌린 신부, 수사 등 많은 순교자중 성인품에 오른 분이 8명 있다.

< 27. 목자의 길 >
- (김수환 추기경의 인간상) 첫 인상에 무던하고 친밀감이 감도는 모습, 철저히 서민적
이고 향토색 짙은 정신계의 지도자. 세계적 인물이라는 아득 높은 추기경 자리에 있으
면서도 대하는 이들은 아무나 마음 편히 말을 건네고 싶어지고 가까이 사귀고 싶어지는
분이 김수환 추기경의 인간성이다. 김 추기경에게는 그 어떤 가식이나 정치적 제스처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철저하게 진지하고 겸손하고 자연스러운 그대로의 겸손-
그러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저절로 그 앞에 머리가 숙여지게 하는 자석 같은
덕성을 지녔다. 대하는 이에게는 신분의 높낮이나 젊었거나 늙었거나를 막론하고 어린이
에까지도 차별 없이 마음까지 송두리째 다 주고자 하는 정신자세가 엿보인다.

- 그의 좌우명 ‘pro vobis et pro multis(여러분 모든 이를 위하여)’를 보더라도
그리스도의 뒤를 보다 충실히 따르려는 김 추기경이 지배자, 영도자가 되기보다는
철저한 협조자, 봉사자가 되기를 스스로 굳게 속다짐하고 있음을 알겠다. 때로 몰아
치는 세파의 역스러운 어둠에 대하여 꼬집고 타매하기에 앞서 자기 가슴을 먼저 치는
온정어린 목자의 정신이 그의 교서나 담화에서 짙게 풍기고 있음을 본다. 그가 밤잠도
잊고 나라와 겨레의 평화와 구령(구원)을 위해 남모르는 극기와 고행의 희생을 일과
처럼 거듭하고 있음을 아는 이는 알고 있다. 이는 바로 그리스도를 고스란히 본뜬
주님의 제자의 참모습이라 하겠다. 그분의 환갑과 토론토 방문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시(1982.4.30. ‘김 추기경을 집에 모시고’)를 보탠다. 필자는 과거 두 차례 김 추기경을
상사로 모신 적이 있다. * 월간지 ‘가톨릭 시보’ 편집자, ‘가톨릭 청년’ 편집장, ‘소년’
주간으로 근무시 *

< 28. 동심 예찬 >
- 심장병으로 입원했을 때, 문병온 부모의 손을 잡고 병실로 들어서는 능금볼의 소녀가
싱글거리며 튜울립꽃 한 송이를 내민다. 나만 보면 동화며 옛이야기를 조르던 어린
소녀다. 꽃을 받으며 마주 웃고는 멍하니 생각에 잠긴 내가 안쓰러웠던지 소녀의 엄마가
한 마디 거든다. “동화아저씨 병원에 간다니까 기를 쓰고 따라나서면서 뒤뜰에서 꽃 한
송이를 꺾어 가지고 왔어요.” “헛허! 어린 것이 정성은…” 이날 나는 정녕 ‘어린이는
어른의 어버이’임을 실감했다. 어린 것의 티 없는 조그만 정성이 이토록 감동을 줄
줄이야! 순수한 선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한 설득력을 발함에 새삼 놀랐다.
어린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인생에게 더없는 축복이다. 살벌하리만큼 각박하고
긴장된 한 구석에 어린이의 맑은 미소와 재롱이 있어 마음을 데워준다.

- 참으로 ‘동심’은 삭막한 삶의 아늑한 쉼터라 하겠다. 가혹한 생존전선에 지쳐 위축된
신경을 구겨 안고 집에 들어서면 어린이의 아양과 어리광, 때로 직선적인 생떼가 도리어
귀엽게만 여겨져 하루의 피로가 봄눈같이 사그라진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 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 10, 14-15) 하며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준
그리스도는 누구보다도 어린이를 사랑한 동심 예찬자였다. 일찍이 어린이 애호가로
이름난 한국 어린이운동 선구자이며 ‘색동회’ 창설 주역인 방정환 선생도 수필 ‘어린이
찬미’에서 어린이를 가리켜 ‘하늘 뜻 그대로의 산 하느님’이라고 극찬하였다.

< 29. 행복한 사람 >
- 웃음은 사람만이 가진 특징이요 행복의 가능성을 짙게 지니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웃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갑자기 불치병 진단이
내려 입원한 친지의 입에서 평범하지만 삶의 핵심을 찌르는 고백에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아침저녁 병실과 복도를 쓸고 닦으며 명랑하게 휘파람 부는 저 영감이 부러워
죽겠어. 근심 걱정 다 털어버리고 가난하여도 유쾌하게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가.” … “내 반생은 늘 쫓기는 나날이었어. 계획에 쫓기고 생활에 쫓기고
자금난에 시달리고 초조하게 지내왔지. 한밑천 벌어 놓고 노후에는 플로리다로 옮겨
가서 여생을 편히 지내자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 와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 보니 모든 게
부질없는 짓이었어. 진정한 내 장래를 위해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잖아. 허망한 과거를
안고 무덤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후회 막심하네. 지금 더 크게 들려오는 휘파람소리!
하루하루를 저렇게 즐겁게 상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 “사는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가 최대 과제로 떠오른다. 그러나 아무리 불행한
처지를 당하더라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산다면 ‘행복의 여신’은 결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웃으면 마음이 밝아지고 사는 일이 유쾌해지며
그 밝은 파장이 주변 사람들에게 호감을 일게 한다. 웃은 기쁨으로 이어지고 행복의
줄을 끌어당기는 실마리가 되고 있음을 안다. “1소(笑) 1소(少) 1노(怒) 1로(老)”-
미소의 삶을 지닐수록 젊어지고, 노할수록 늙어진다 했다. 인류의 비극을 혼자 짊어진
듯한 찌푸린 표정으로 산다 해서 설음이며 괴로움이 물러가주는 것이 아니라면 밝게
긍정적인 삶을 맞고 보냄이 정신위생에도 좋고 인생을 건설적으로 즐겁게 사는 지름길이
되겠다. 눈앞에 닥친 일에만 너무 사로잡히지 말고 눈을 들어 푸르른 창공을 바라보며
낙천적인 생활태도를 지니고 먼 앞날에 행복의 꿈을 심고 키우면서 살아감이 슬기로운
이민자의 취할 길이 아니겠는가!

< 30. 웃으며 삽시다 >
- 꿈보다 해몽이란 말이 있다. 세상만사는 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진정한 마음의
행불행도 자기가 빚는 것인가 한다. 어려운 인생살이 괴롭다고 힘겹다고 넋두리만
일삼고 짜증낸다고 물러가 주지 않는다. 더 괴롭고 못 견디게만 될 뿐이다. 마음이
불안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멍에, 내가 져야 할 십자가라면
피동적이 아니라 진취적 능동적인 자세로 과감하게 걸머지는 도전적 삶이 아쉽다.
그 어떠한 견디기 어려운 역경에서도 미소를 머금은 삶을 엮어나가도록 의도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웃는 낯에 침뱉지 못한다‘고 밝은 표정, 밝은 삶을 지향하면
얽혔던 실다발 같은 일도 쉽게 풀리고 남들도 즐겨 도와주려고 한다.

(유머 1, 2, 3)
* 우산장사를 하는 큰아들과 얼음장사를 하는 작은아들에 대해 자식 걱정을 하는
늙은 어머니
* 재물에 한뉘를 건 K라는 사나이/ 싸리나무 회초리 다섯 개로 K의 병을 고쳐주어
10만 달러를 상금을 받은 놈팽이
* 가톨릭 학교의 소년들이 쉬는 시간에 집안 자랑(수녀, 수사, 신부, 주교님,
교구장이신 추기경, 하느님) … “우리 큰 형은 하느님이시란다, 너무 뚱보에다
꺽다리여서 보는 사람마다 ‘오, 마이 갓(Oh, My God)’하는 걸”

< 31. 5분 전, 5분 후 >
- (성실한 누룩) 고등학교를 갓 나온 젊은이가 작은 회사 서무부에 취직됐다. 그는
매일 어김없이 출근시간 5분 전에 나와 퇴근시간 5분 후에까지 회사에 남았다. 1년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 시간을 지켰다. 하루는 사장이 그를 불러서 물었다.
“자네는 매일 아침저녁, 의무가 아닌 청소와 정돈을 하곤 하는데 왜 그러는지 궁금
하네.”/ “아침에 직원들이 나와서 일하는데 기분좋으라구요. 저는 기술도 없고 학벌도
낮으니 이런 거라도 해서 봉사해야죠.” 작은 선행에 꾸준함으로써 주변의 누룩이 되는
마음씨는 기특한 보석이다. 세상에는 빛이 되려는 이는 흔해도 자기를 죽여 썩음을
막고 맛을 내는 소금 구실을 하려는 이는 아주 드물다. 소금이 되고서야 비로소 빛도
되는 것이다. 한편 ‘5분 후, 정각’에 출퇴근하는 얌체 사원이 있었다. 하루는 부장이
따졌다. “자네는 하루도 출근시간을 지켜 본 없는 만년지각생이면서 퇴근 시간은 왜
그렇게도 철저히 지키는가?”/ “출근 시간을 못 지키는 대신 퇴근시간만이라도 잘
지키면 덜 미안하거든요.”

- 할 일이 많다는 것은 힘겹기는 하지만 역설적으로 복스러운 일이다. 그만큼 쓸모
있는 사람이란 것이며 따라서 공헌도가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일이 보람 있는 일,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 경우에는 더욱 황금시간이 될 것이다. 인생의 활동무대에서
은퇴하여 의욕도 줄고 할 일없이 누적된 시간들을 보내기가 지겨워지면 정신의 노인병이
성큼 다가온다. ‘나’를, 나의 시간들을 줄 대상이 줄어들고 없어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사치이다. 애써 일을 찾아 하품 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남아 있는 시간들을 알찬 일로 메워야 한다. 찾기만 하면 나를 필요로 하는 일과
사람들-내 시간을, 머리를, 정을 필요로 하는 이가 꼭 있다. 한번밖에 오지 않는 ‘일회성
인생’을 허송할 수 없는 일이다. 무한정 주어진 시간이 아니다. 늙었다고 가진 게
없다고 여건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할 일이 없다는 것은 모자란 생각이다. 할 만한 일,
해야 할 일은 찾으면 얼마든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을 활용하는 자, 그가
인생을 잘 사는 사람”이라 했다. 우리들 저마다는 크건 작건 자기 나름의 정신적 기념탑
하나는 남기고 가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 32. 낙천가의 행복 >
- 사람이 웃음을 지녔다는 것은 다른 장점 못지않게 소중하고 고마운 일이다. 일찍이
동물이 웃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으며 홀로 영혼을 품은 ‘만물의 영장’만이 소유한
특징의 하나가 웃을 수 있다는 여유일 것이다. “웃는 집안에 만복이 깃든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듯이 옛부터 사람은 웃음을 행복의 표현으로 여겨오고
있다. 남미에서 캐나다로 이민 온 뚱보 영감 ‘죠’는 공사장에서 양다리의 모세혈관이
터져 ‘닥터스 호스피탈’에 입원중 심장 충격이 와서 심장병 중환자실로 옮겨 와 룸
메이트가 되었는데, 낙천적 성격으로 명랑한 분위기를 자아내곤 했다. 심장을 찌르는
통증 사이에도 호탕한 웃음, 곧잘 밝은 농담으로 주위 사람들을 유쾌하게 해주었다.
그의 가족상황도 불우하다. 아내는 일찍 세상을 뜨고 딸은 남자 친구 따라 밴쿠버로
가버렸으며 엄마 없는 가정의 살풍경 탓인지 아들마저 가출하고 말아서 죠 영감은 혼자
살고 있단다. 간혹 딸이 장거리 전화를 걸어오면 도리어 격려해주곤 한다고 한다.

- 남에게 짐스러운 존재가 수두룩한 세상에 자기 설움, 불우한 처지를 딛고 주변에
밝음을 옮겨주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어느 명설교, 거창한 선행보다도 강한
설득력으로 가슴을 울려준다. 가시덤불에서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장미! 진흙탕에서
청초한 꽃을 피워내는 연꽃을 생각케 한다. 가슴속 가시를 누룩으로 삼고 웃음을 펴는
삶은 인생에 더없이 필요하고 고마운 존재다. 윤기 없고 삭막하기까지 한 현대 도시의
인생사막에서 모두들 하나같이 필요로 하는 보다 존귀한 존재는, 남에게 희망을 심어
주는 사람, 웃음 옮겨 주는 사람이다. 역경 속에서도 웃을 여유를 잃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실망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웃는 이여! 행복하여라.

< 33. 잘 사는 길 >
- (나와 너의 함수관계) ‘아전인수(我田引水)’란 말이 있다. 사람은 흔히 주관적
경향이 짙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기 일쑤라는 뜻이겠다. 내가 괴로우면 만사가
귀찮고 짜증스러우며 내가 슬프면 모든 것이 비극적으로만 보이고 세상은 불행이
넘치는 연옥이라고 비관하기 쉽다. 마음이 트이지 못하면 ‘나’만 있고 ‘너’는 없으며,
‘도’가 트면 ‘나’와 ‘네’가 공존하고, 믿음에 투철해지면 ‘너’만 있고 ‘나’는 없는 삶을
즐겨 엮어가게 된다. 나만 내세우는 의식구조에서는 참된 사랑이 성립되지 않는다.
평화도 그림의 떡이다. 욕심과 교만이 위장하고 도사릴 뿐이다. 거기에는 사랑의
우아한 향기는 풍기지 않으며 행복도 그림자일 뿐이다. ‘나’와 ‘너’의 동등비중을 인정
하는 손잡는 사이에는 ‘이웃사랑’이 행복의 꽃을 피운다. 세상이 살맛나고 이승살이가
실낙 이전의 에덴으로 이어진다. 너만 있고 나를 없애는 삶은 천국을 이승에서 고스란히
사는 것이다.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적 지나친 자아의식으로는 세상이
개조되지 않고 평화며 복지는 구축되지 못한다. 매우 평범하면서도 매력이 강한 말은
‘사람답다’는 말이다. 창조신의 인간 창조 의도를 파악하고 그에 맞갖은 존재되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여기에 삶의 뜻과 인생 목적이 담겨져 있음을 알겠다. 사람답게 사는
길은 여러 가지이나 구심점은 하나, 어떤 마음을 지니느냐에 달려 있다. 사고방식,
의지, 지향, 그것을 모아놓은 것이 곧 마음인 것이다.

< 34. 심심풀이 >
- (지방색) 전국이 일일생활권에 들어간 오늘 “남도 사람이 어떻고 북쪽 사람은
어떻다”는 등 지리적 위치를 확대시하는 따위의 편견된 주장은 시대감각을 잊은
낙후된 의식구조의 소치라 여겨진다. 그러나 산세와 지세가 서로 다르고 기후 차와
생업의 영향 등으로 여러 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굳어진 지방풍습이며 특징이 없지
않아 전래된 한반도의 ‘8도 기질’을 알아둠도 상식에 보탬이 될 것이다. 함경도 사람들은
끈기가 있다고 해서 ‘진흙탕에서 싸우는 소 또는 개’(泥中鬪牛:이중투우)라 하고,
평안도 사람들은 과감하대서 ‘숲에서 뛰쳐나온 호랑이’(맹호출림:猛虎出林), 황해도
사람은 서글서글하고 근면하다 해서 ‘돌밭을 가는 소’(石田耕牛:석전경우)라 했다.
강원도 사람은 무던하여 ‘바위아래 늙은 부처님’(岩下老佛:암하노불)이라 하며, 경기도
사람은 좀체로 속을 보이지 않는다고 ‘거울 속의 미녀’(鏡中美人), 충청도는 느릿하고
양반 고을이라서 ‘맑은 바람 속의 밝은 달’(淸風明月:청풍명월), 경상도 사람들은
괄괄하여 ‘큰 산 높은 봉우리’(泰山峻嶺:태산준령), 전라도 사람들은 싹싹하여 ‘미풍
부는 밭머리의 수양버들’(風田細柳:풍전세류)로 일컬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지방색을
특정 짓는 정설은 아니고 예부터 전해 내려온 속설에 불과하다.

- (성씨) 사람의 성씨와 직업지위를 연결하면 미소를 자아내는 일이 많다.
* ‘부’씨 : 부사장, 부위원장, 부이사장 … * ‘임’씨 : 임신부…
* ‘성’씨 : 성요한, 성요셉…* ‘장’씨 : 장의사…, ‘원’씨/‘구’씨/‘전’씨 : 원회장/ 구회장/
전회장…,‘현’씨/‘신’씨 : 현회장/신회장… * ‘이’씨 : 이사장, 이기자…,
‘반’씨 : 반선생, 반목사, 반기자…, ‘남’씨 : 남회장, 남기자…,
‘여’씨 : 여선생, 여회장, 여기자…, ‘백’씨 : 백사장…, ‘노’씨 : 노선생, 노형, 노기자…,
‘우’씨 : 우기자, ‘배’씨 : 배기자, ‘주’씨 : 주기자, ‘안’씨 : 안기자가 되니 말이다.
망언다사(妄言多謝)!

< 35. 건망증 >
- (여유 있는 삶)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장 차이’라는 말이 있다. 잊어버리기를 잘하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얘기다. 건망증은 정신건강에 좋다. 자잘한 잡념을 떨어버리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건망증이 지나쳐 큰일을 그르치거나 중대한 약속을 어기게
되면 무책임하다고 신용을 잃고 만다. 그것이 심해지면 사회인으로서 구제불능의 바보
취급을 받게 된다. 책임감이 강하고 임무 완성 의지에 투철한 사람은 약속이나 숙제를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다. … 이민살이일수록 역경도 많고 넘어가야 할 어려운 고비들이
줄지어서 기다린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제 힘으로 밟고 넘어야 한다. 남에게 기대거나
기대를 걸었다가는 번번이 좌절을 겪게 마련이다. 각자는 결국 나 혼자인 것이다.
세상일이란 그 모두가 결심하기 나름, 마음먹기 나름이다. 어차피 내가 넘어야 할 산
이라면 마음 단단히 먹고 웃는 여유를 지니고 내디딤이 현명한 태도다. 조급할 것 없다.
한눈팔지 말고 꾸준히 최선 다하면 언젠가는 ‘쥐구멍에도 별들 날’이 오고야 만다.

- 인생의 길이란 결코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마음 느긋하게 휘파람 불며 난관을 극복해
가노라면 설움도 여경도 생각보다는 쉽게 겪어 나갈 수 있다. 낙관적 생활 태도를 갖자.
물질적 풍요가 우리의 정신생활에 여유를 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정신수양(신앙의 힘)이
마음의 여유, 삶의 운치를 보태주는 것이다. 세상만사 어차피 새옹지마, 멀찍한 앞날에
초점을 두고 주체성을 지니고 희로애락에 빠지지 말고 차곡차곡 미래지향적인 삶을 엮어
나가는 것이 슬기롭게 인생을 성공하는 비법이다. 부산한 생활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말며 한갓지게 쉴 때에도 머리는 지난 일의 반성과 앞날의 청사진 마련에 부지런
하라는 깨우침이다. 만사를 다 머릿속에 우겨넣으려 하지 말고 시시한 것들, 잡스런
것들은 내보내고 적당히 건망증을 유지함은 건전한 생활을 꾀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유머감각이 없으면 감정이 메마르고 사는 일이 각박해지기 쉽다. 시시한 시간낭비같이
보이지만 가끔은 야하지 않은 건전한 소화제(우스개)를 주고받아, 카타르시스를 꾀함이
정서순화면에서도 필요한 일이다.

< 36. 숫자 이야기 >
- (그리스도교의 숫자) 예부터 그리스도교에서 애용하고 있는 숫자들은 1과 3, 4, 7,
9, 40 등을 들 수 있다. 1은 절대, 유일신으로 상징으로 사용하고 3은 성부, 성자,
성령의 ‘3위일체’ 진리, ‘향주 3덕’인 신(信), 망(望), 애(愛) 등을 표시한다. 예수의
구세 활동(공생활)이 3년간이었고, 죽으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셨다. 그분은 12사도중
베드로, 야고버, 요한의 3 제자만 따로 데리고 중요한 자리에 가곤 하셨다. 가톨릭에서는
사람의 기능을 ‘3사 5관’으로 표현한다. 3사란 영혼의 세 가지 능력으로 깨달음, 기억,
애욕(애정과 욕심)을 말한다. ‘5관’이란 시력, 청각, 후각, 미각, 마음의 다섯 가지를
가리킨다. 성직자, 수도자들이 하느님 앞에 서약하며 지키는 복음 3덕으로 청빈, 정결,
순명을 꼽는다. 4란 숫자에는 4말과 4추덕이 있다. 4말은 죽음과 심판과 천국과 지옥의
종국을 뜻하는 것이다. 4추덕이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4가지 덕행으로 슬기와
의로움과 용기와 절제를 말한다. 가톨릭교회는 4 가지 특색이 있다. 하나요,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전래의 전통파 교회라는 것이다. 대림전은 4주간으로 메시아의 강림을
고대하며 마음준비를 하는 기간이다.

- 7이란 숫자는 하느님이 천지 만물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제 7일에는 안식을
취하셨다. ‘성령 7은’은 하느님의 ‘영’이신 성령이 신자들에게 내리는 7 가지 특은을
가리킨다. 슬기, 통달함, 의견, 굳셈, 지식, 효경, 두려워함의 일곱 가지이다. 사람이
죄짓는 근원으로 ‘7 죄종’을 지적한다. 즉 교만, 인색함, 성적 탈선, 분노, 탐욕,
시샘(질투), 게으름이다. 40이란 숫자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40년이 걸렸고, 모세가 십계판을 받기 위해 시나이산에
올라가 기도생활로 40일을 보냈으며 메시아가 오시기까지 40세기를 기다린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활 전에 40일간 단식기도를 했고 십자가에 숨진 후 40시간
만에 부활하셨으며 부활 후 40일간 땅 위에 머무셨다.

< 37. 젊은 벗에게 >
- 사람 사는 것은 신비라 했다. 안개에 싸인 먼 과거를 시발점으로 삼고 매일의 현실을
살며 웃고 찡그리고 때로는 이슬지기도 하면서 흘러 흘러 미지수의 내일을 지향하는
수수께끼의 존재! 그 속에서 자기의 실제를 찾아 발견하고 현 위치를 확인하고 나아갈
바 미래를 점찍고 발길을 고쳐 나가는 길손. 젊다는 것-무한대의 하늘에 맘껏 꿈을
펴보는 파랑새. 인생의 황금무대에 오른 젊은이의 나날은 진보보다도 귀한 것이니
빛다운 내일을 향해 순간순간을 알차게 메워 나가는 이가 정녕 슬기로운 젊은이. 살다
보면 실수가 있기도 하다. 더구나 젊은 날에는 의욕이 앞서고 성급해서 가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당연하다. 젊은이는 경험부족에다 생활슬기에 익지 않은 ‘인생의
미완성품’이니 시행착오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무서운 것은 잘못을 알고 나서도
진로수정을 안하는 외고집이나 ‘갈대’로 자처하며 쉽게 단념하고 좌절하고 절망에 사로
잡히고 마는 의지의 나약함이다.

- 젊은이는 총알 같은 패기가 있어야 한다. 옛 어른들이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고 한 대서 너무 꿈대기만 하고 뒷걸음만 일삼다가 두드리기만 하고 한발도
내딛지 못한 채 그만 돌다리를 깨버리고 마는 어리석음이라면 ‘애늙은이’라는 별명이
어울린다.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슬기롭게 검토하는 건 필수조건이다. 한번 인생계획을
세워 스스로 결정을 내렸으면 온 힘을 다하여 전진 또 전진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늘에
고향을 둔 믿음의 사람들이다. 우리 스승 그리스도의 말씀에 늘 귀를 열고 마음을 열면서
하나씩 차례로 실생활에 옮기는 신앙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생의 참 목적이란 따지고
보면 하느님과 더불어 숨 쉬고 움직이고 그분 안에서 사는 것. ‘내가 나를, 하느님이
나를, 내가 하느님을 어찌 보는가?’를 항상 마음에 새기면서….

< 38. 기인 이야기 >
- 이미 작고한 분들이지만 내가 가까이 사귀던 색다른 인물 네 분이 있었다.
* 꼬장꼬장하면서도 대쪽같이 언행이 뚜렷하신 분, 성실과 신의가 헌신짝 취급을
받기 일쑤인 이방인같이도 느껴지는 동화작가이며 수필가인 마해송 선생!(1905-1966).
* 냉철한 정의감, 그 뒤에 소녀도 못 따를 따스하고 오붓한 인정으로 뭇 사형수의 등대로
추앙받던 법관 김홍섭 판사(1915-1965). * 패기와 정의감으로 똘똘 뭉쳐져서 전에
‘한글 파동’ 때는 ‘한글 사수!’ 깃발을 들고 경무대로 1인 데모를 가겠다고 흥분해 하던
한글학자 서창제 선생은 감리교 목사직을 마다하고 가톨릭으로 개종, 평신도의 위치를
감수한 도통한 인물. * 시대를 30년은 앞질러 살던 정신적 멋쟁이, 언론인이자 문필가인
야인 김익진 선생(1906-1970).

- (마해송 선생의 일화) 풍자와 암시적 고발과 예언적 동화로 크게 두드러졌으며,
이땅 창작동화의 선구자인 그는 아동문학(동화)을 가지고 두 번 성인 문학상을 받은
유일한 작가. 아시아재단의 ‘자유 문학상’을 동화 ‘모래알 고금’으로, 한국 문인협회의
제1회 ‘한국 문학상’을 동화 ‘떡배 단배’로 수상하였다. … 가톨릭에 입교한 얼마 후에
수상한 ‘고마우신 선생님’상 기념품(부상)으로 받은 오르간을 자기가 세례 받은 성가
수녀원 성당에 기증하면서 “수녀님들의 맑은 노래와 함께 아침저녁 내 대신으로 하느님을
저 풍금이 찬미해줄 터이니 얼마나 기쁜가!”하며 흐믓해했다. 순전히 자기 혼자서 만든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이면서도 동화작가협회 이름으로 공표한 겸손, 서울 창경원의
‘어린이 헌장비’ 밑의 기초공사 바닥에 마 선생은 이 헌장을 하느님께 바치는 뜻으로
십자가를 묻어 두었다. …

- (야인 선생의 프로필) 북경대학에서 언어미학을 수학하였고 경주 고적의 예술적
안내인으로도 일인자였던 야인 김익진 선생은 기분이나 사고방식에 있어서도 30대를
뺨칠만한 청춘노옹(老翁)이었고 입버릇처럼 “늘 젊게 살라”고 강조하곤 했다. 육신의
나이를 무시하고 정신연령은 젊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분의 ‘세 가지 맙시다’는 색다른
주장이다. 첫째, 국산품 외국인이 되지 맙시다(외국인인 것처럼 행세하는 자). 둘째,
현대 생존 비현대인이 되지 말자(구습에 사로잡힌 자). 셋째, 3권 분립이 된 사람이
되지 말자(신념, 사고방식, 판단력이 일치하지 않는 자). … ‘3불고’ ‘삼피주의’ …
영원한 야인을 자처하던 천하의 걸인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의 본명을 자랑삼던 야인
김익진 선생.

< 39. 언어 공해 >
- 지금은 ‘말’의 시대. 노아의 홍수는 물리적 현상이었으나 오늘의 홍수는 인위적
악취나는 말들의 범람으로 사람을 질식시킨다. 말은 의사전달의 편리한 매체로 지식과
생각과 애증의 통로이다. 사람을 살리고 향취 있게 드높여주기도 하지만 비끗하면 날선
비수로 돌변하여 남의 심장을 도려내고 혼마저 좀먹으려 든다. ‘세치 혀가 사람을
죽인다’고 감정의 분화구! 말의 독기, 말의 해일이 해가림되어 지구의 날씨를 흐려
트리고 있다. … 민주주의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 상대적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살아가는 생활 슬기는 고의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 것.
그래야만 내 자유 인권도 떳떳하게 주장하고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이다. 주고받는 쌍방
통행이지 결코 일방통행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 통로가 ‘말’이요, 세상일 거의 모든 것이
말로 거래됨을 본다. 그래서 거치른 말, 독기 서린 말, 악담을 누르고 말의 정화 순화를
강조하여 문학이 구실하는 것이다. 언어미학이 강조되는 것이다.

- 아름다운 시, 서정적인 글이 사람의 감성, 그 정서를 살찌우고 가슴가슴에 머리에
천상적 향취와 가락을 심어줌을 본다. 같은 뜻이라도 ‘아’할 때가 다르고 ‘어’할 때가
다르며 같은 말이라도 담겨진 억양이나 표정에 따라 다르게 전달된다. 우리가 본능적인
감정폭발을 일삼는다면 그것은 동물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증거이다. 인격이라는 것!
정서를 가졌고 사상과 지성과 이성을 지닌 사람으로서의 품위와 교양이 강조되는 것은
나와 남의 심적 행복을 위해 필수 여건이기 때문이다. 언어예술, 영상예술, 음률예술,
행동예술이 높이 평가되는 것은 그 사상성과 서정성, 아름다운 감성을 드높여주기
때문임을 안다. 예술이 없다면 사람은 사막에 내쳐진 모래알, 벌판의 잡초로 삭막할
것이다. 말을 줄이고 누그러뜨리고 정화하는 일은 우리 가정을 주변을 사회를 밝게
즐겁게 만드는 첫 단계의 징검다리라 하겠다.

[ 4장 ]

< 40. 밤의 시 >
- ( 벽에 기대어 ) 등 10편의 시 모음
( 병 ), ( 길가에서-‘눈은 마음의 등불’ ), ( 해바라기 ), ( 해바라기의 노래 ),
( 로사리오 ), ( 나, 변신 ), ( 염원 ), ( 밤의 시 ), ( 밤 기도 )

- (벽에 기대어) 점점이 빛과 어둠으로 얼룩진 궤적, 포물선으로 허공에 그어진 내 인생.
풍랑이는 대양의 물거품 하나, 미래와 과거의 교차점에 멈추어 집약된 소원은 크신 손 안에
한 점 미립자로 살고 싶음이여! 기죽는 일상에도 잿불도 피는 믿음은 칠흑 같은 허물도
녹여버리는 하늘사랑. 그 사랑에의 송가로 남은 나날 메우리. 눈설 굳은 빙판길을 맨발로
오시는 당신께 신을 벗어드려, 내가 동상에 걸려도, 마음은 크리스마스이브의 백설인양
싱싱하여라. 오늘도 성당벽에 기대어 감실로 시선을 보내면 환한 웃음으로 다가오는
호스띠아! 당신 얼굴. 이제 내 삶의 기둥은 당신. * 호스띠아 : 성체/제병 *

(밤의 시) 일찍이 당신을 몰랐습니다. 이름만 외우며, 그 이름 변두리를 맴돌았습니다.
오늘 당신은 시련을 통하여 깊은 사랑을 일깨워주시니, 눈이 떠진 이제는 당신이 나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내 이어진 나날, 당신을 향하고 당신 빛을 잇는 일로 채우게 해
주십시오. 빛 어스름, 날씨 궂은 이승살이-내 평생을 진흙 속에서도 드맑게 연꽃으로
매일 힘 다해 “아버지!”부르며 살리. 직선으로 오르는 일과가 힘에 겨워도 내 소리를
당신에게 맞추며 뒷걸음 없는 길을 걷게 해주십시오.

< 41. 나의 시 조감도 >
- 문우들 사이에 ‘인생파 시인’이니 ‘별의 시인’으로 불리우고 있는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작문시간에 동시를 제출, 좀체로 받기 어려운 점수를 받아 학년 신기록을
세워 사기 충전했다. 이때부터 문학, 특히 시에 뜻을 두어 중학시절에는 일본 동경서
나오는 잡지 ‘소년 구락부’에 현상문예로 당선되면서 뜻이 굳어졌다. 남달리 독서에
열중하고 공상을 즐겨 상상의 날개를 맘껏 펼치며 시간을 잊던 소년시절–거기서 문인에의
토양이 다져졌으리라 스스로 느낀다. 동요, 동시, 동화시, 종교시를 즐겨 써온 천여 편의
자작시 중 ‘목숨’과 ‘두더지’를 가장 아끼는데 이는 인생 한뉘의 실상을 그린 작품이다.

(목숨) 먼동 트기 전은 하늘도 길도 멀었다. 손을 내밀면 닿을 듯, 닿을 듯 머언 하늘
열띠게 꽂히는 햇살에 숨이 막혀도 푸른 하늘 새기며 한양 걸으리라. 오늘도 이슬 밟고
길 떠나 별빛 흐를 때까지 걸었다. … (우리 엄마), (가을 산마을) …. 한때 고유 시형인
시조로 종교시를 시도하여 ‘새남터’ 등등을 낳았고 민속 서사시를 즐겨 써서 장편
‘종소리’, ‘거문고’, ‘강강수월래’, ‘탈춤’, ‘여덟 봉우리’, ‘성로의 잔꽃’ 등을 내놓았다.

(새남터) 새남터 모래벌에 먹빛 안개 번져갈 제 피얼룩 자국마다 아리아리 되사는 모습
종소리! 아아, 우렁차라 별빛 따라 흐르는가. 궁구는 돌틈서리 아롱아롱 뼈마디마다
앞서간 뭇어른의 믿음이랑 그 절개랑 어기찬 햇살 올올이 이 땅 두루 밝힌다.
두둥실 꽃잔치에 해오른 얼굴 얼굴 동녘 하늘 덩두럿이 열에 넷 크낙한 별
우러러 기리는 이날 만세소리 드높아라.

- 한국 문단, 특히 아동문학계에 있어 동화시를 가장 많이 지어 한국 최초의 동화시집
‘메아리의 집’(1966)을 내었는데 한국시절에는 ‘동화시’하면 나의 대명사로 지칭되기도
했다. 그밖에 낸 시집으로는 동요시집 ‘어머니’(1958), 동시집 ‘가을 산마을’, 종교시집
‘빛이 있는 곳’(1975), 시집 ‘들리는 소리’(1975) 및 시문집 ‘방향감각’(1979)을
세상에 선보였다. 10년을 넘어선 캐나다 이민생활에서 낳아진 수백 편의 시들 중에서
썰물처럼 살이 줄어들고 뼈가 말라드는 고된 접목살이를 엮은 자작시 ‘이민생활’이 가장
실감을 안겨준다.

< 42. 열병의 산실 >
- (나의 시 이야기) 씨앗 한 톨을 싹틔우기 위해 대자연의 온갖 정성이 집약되어
쏠리듯이 한 편의 시를 낳기 위해서는 시인의 열병스런 몰두가 절실함을 나이를 거듭
할수록 저리게 느낀다. 이럴 때쯤, ‘국화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하여 소쩍새도 천둥도
그토록 울었으리라’는 미당 서정주의 시가 떠오른다. 시란, 젊어서는 가슴으로 쓰지만
연륜이 거듭될수록 머리와 마음으로 쓰는 것인가 보다. 그래서 ‘석수(石手)처럼 제작
한다’는 말이 유행어가 된지 오래다. 즉 두고두고 깎고 다듬고 하는 대리석 과 맞선
조각가의 끈기와 성실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진정 생명 있는 알찬 시는 시인의 영혼
밑바닥에 어느 날 뿌려진 씨앗(시상)이 임산부에게서처럼 여러 시일 온갖 영양소를
받아 모체의 머리와 가슴, 그 속에서 급성장하는 것이라 우기고 싶다. 시 하나 하나는
시인의 생명, 그 조각이 아니겠는가! 생명을 다해 열중할 때 역작이 나온다는 신념을
굳히고 있다.

- 내 시의 산실을 공개하련다. 30대까지는 시상이 떠오르면 머릿속에서 얼마쯤
마무리고 놓치기 전에 수첩에 메모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40고개에 접어들면서는 거의
완성형으로 머릿속에서 익힌 뒤에 펜을 들곤 하였다. … 내게는 시짓기에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어떤 때에는 불시에 닥쳐온 격한 감동이 아무 거리낌이나 걸림돌 없이
한달음에 쪽 뽑아지고 후에 두 번 다시 손댈 데가 없는 순산일 때가 드물게나마 있고
한번 생긴 착상이 옹이배기 나무처럼 비비꼬이고 좀체로 마무러지지 않는 경우-이럴
때에는 마음을 앓게 마련이고 두고두고 씨름해야 한다. … 나의 시의 특색은 토씨
생략에 있다. 시맥의 단절되지 않는 한도 안에서 되도록 토씨를 빼버림으로써 이름씨나
꾸밈씨가 동사적 구실을 하고 시 자체가 박진감 있게 야무지게 다져진(긴박한 감동)
인상을 갖게 하자는 속셈에서이다. 40대에 접어든 뒤로는 ‘생각하는 시’에 더 흥미를
품게 되었다. 시인은 생명의 영원한 나그네! 샘솟는 꿈과 영영 메울 수 없는 속 깊은
향수를 달래면서 생명의 오리오리를 훑어내어 옷감을 짜는 직조사(織造士)! 오늘도
그들은 정녕 ‘무관(無冠)의 제왕’ 임을 자부하며 어쩔 수 없는 열병을 자원, 앓고 있다.

< 43. 성모의 밤 > 시
< 44. 나이애가라 폭포 > 시
< 45. 지옥을 뚫고 > 시
< 47. 공주와 마주 서서(레이크 루이스) > 시
< 48. 시공 저편(자스퍼의 아이스필드) > 시

< 성모의 밤 >
초록향 싱싱한 5월 언덕 장미다발로 수놓인 꽃잔치에 오십시오.
열두 자리 별들 아롱진 너울 쓰고 천사들 함께 여기 앉으십시오.
이 자리는 마음 가난한 이들 올올이 매괴구슬 엮어내는 “아베 마리아”
노래와 기도소리와 하늘빛 하늘 소리!
빛부시게 동이 트는 길로 이끌어주십시오.
손에 손에 촛불 혀가 닳도록 우리 부를 이름은 5월의 여왕 “하늘 어머니”

< 시공 저편(자스퍼의 아이스필드) >
에스키모의 이글루(얼음집)들 사이 툰드라(얼음벌)를 썰매 몰아
우리 조상 아담, 이브를 찾아 자스퍼 아이스필드에 들어선다.
창세 때부터 그대로 남은 빙하를 밟고
잔꾀로 얼룩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창조주의 체취를 맡으며
만고의 거인 “말 한마디 나누는데 천년이 걸린다”(트루게네프)는
고산 봉우리들을 멀리 보며 얼음벽 틈서리에 손을 들이밀면
오로라(극광)저편 에덴의 땅이 바라보인다.

#103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104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3.03.11.

[ 책 이름 : 이스라엘 성지 ]

- 지은이 : W. Braun (사진작가)
- 옮긴이 : 동정성모회 우리성서모임
- 펴낸데 : Jerusalem Sami Awwad, 출판 : 1994년/2000년, 174p
- 내 용 : 이스라엘 성지 화보집(사진과 성지별 요약 소개)

[ 표지의 글 ]

Three Religions(세 개의 종교) -
One city(한 개의 도시) - Three Prayers(세 가지의 기도)

* 검색 편의상 장소별 일련번호를 메모자가 부여함. (페이지순)
* 1990년대에 편집된 화보집(사진과 내용)으로 현재 기준시 약간의 변경사항이 있을 수 있음.
* 내용중 성구(聖句)와 장소, 인명은 2005년에 승인된 한국교회 공용번역본으로 일부 수정.
* 본 책자의 화보는 메모상 방대(이미지 과대용량)하여 일부만 인용하고 소개내용만 메모함.
화보(사진)는 2012년 10월에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성지순례하면서 촬영한 사진 모음을 링크하여
대신함. (메모 끝 부분에 바로가기 링크)

[ 차 례 ]

1. 이스라엘 성지 2. 올리브 산 3. 주님의 기도문 기념 성당 4. 예수 승천 성당
5. 도미누스 플레빗 성당 6. 러시아 교회 7. 동정녀 마리아 무덤 8. 겟세마니 성당
9. 겟세마니 동산 10. 유대인의 공동묘지 11. 키드론 계곡 12. 실로암 못
13. 히즈키야 터널 14.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 15. 시온산 16. 성모 영면 성당
17. 다윗왕의 무덤 18. 최후의 만찬 기념 성당 19. 베타니아 20. 라자로 성당
21. 예루살렘(Jerusalem) 22. 예루살렘 성벽 23. 모리야 산의 바위 24. 엘 악사
25. 솔로몬의 마굿간 26. 서쪽 벽 27. 성 안나 성당 28. 벳자타 못 29. 안토니오 요새
30. 홍예문 31. 시온 수녀원 32. 비아 돌로로사(수난의 길) 33. 주의 무덤 성당
34. 갈바리아 35. 정원 무덤 36. 성채 37. 제2 성전 시대 38. 아인 카림
39. 성모 방문 기념 성당 40. 고문서고 41. 의회 42. 메아 셰아림 43. 샤갈의 유리화
44. 베들레헴(Bethlehem) 45. 성탄 성당 46. 베들레헴의 별 47. 라헬의 무덤
48. 헤로디움 49. 마므레 50. 헤브론 51. 아브라함 회교사원 52. 막펠라 동굴에 있는 무덤
53. 나자렛(Nazareth) 54. 성모영보 성당 55. 마리아의 우물 56. 카나 57. 히틴 쌍봉
58. 티베리아 59. 갈릴래아 호수 60. 타브가 61. 카파르나움 62. 산상 수훈 기념 성당
63. 필립보의 카이사리아 43. 막달라 65. 이즈르엘 계곡 66. 다볼산(타보르산)
67. 므기또 68. 카르멜산 69. 하이파 70. 아코 71. 카이사리아 72. 텔 아비브
73. 야포(요빠) 74. 예리코 75. 유혹의 산 76. 요르단 강 77. 사해 (The dead sea)
78. 쿰란 79. 에쎄느파 80. 쿰란의 유적 81. 마싸다 82. 야곱의 우물 83. 사마리아인
84. 시나이 산 85. 홍해/에일랏

< 1. 이스라엘 성지 (The Holy Land) >

- 성지는 지중해의 동쪽 맨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레바논, 동쪽으로는
시리아, 남쪽으로는 시나이 사막에 접해 있다. 성지는 약 14,000평방마일의 작은
땅이지만 인류 역사에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해 왔다. 고대에는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를
이집트에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교량이었고 현대에 와서는 이곳이 3개 일신교의 탄생지
이고, 3개 대륙의 교량역할을 하는 중동의 일부이기 때문에 항상 평온한 날이 없었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의 유적이 남아 있고, 예로부터 동과서가 만나는
곳이었으며, 많은 예언자들이 태어났고 예수가 탄생한 곳으로서 그분들의 불멸의
가르침과 율법을 통해 3대 일신교인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가 일어나 인류가
선과 도덕에 눈뜨게 된 곳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이곳이 경전의 땅이고 과거의 영광이
있는 땅이며,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예수가 사셨고 고난을 받으셨으며 그분의 거룩한
말씀을 듣고 그분의 기적을 목격했던 땅이고, 회교도인들에게는 예언자가 하늘로 올라간
땅인 것이다.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순례자들이 세계 각지로부터 이 역사와 믿음의 땅,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이곳을 직접 보기 위하여 온갖 고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오고
있다. 믿음과 사랑의 이 땅은 또한 전쟁과 피와 고통의 땅이기도 하다.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전쟁과 폭동이 끊일 날이 없어, 이 성스러운 땅은 피로 물들어져 왔다.
세계 어느 곳에도 이 성지보다 더 극적인 역사를 지닌 곳은 없을 것이다. 고고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성지는 기원전 9000년경부터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지만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지방으로부터 가나안에 도착했던 기원전 1950년 이전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성지의 역사적 개요
(BC 1250 여호수아가 요르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현 팔레스티나)을 정복하고 12지파를
세움 ~ 현재) 생략.

< 2. 올리브 산 (The mount of olives) >

- 올리브산은 키드론 계곡 건너편,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해 있다. 예루살렘보다
약 91m 높은 그 정상에서 바라보는 예루살렘의 아름다운 정경과, 사해까지 펼쳐진
언덕들과 동쪽으로 보이는 모압산맥은 장관을 이룬다. 올리브산은 유대인과 그리스도
교인에게는 의미가 있는 곳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이곳이 예언자 하까이, 즈카르야,
말라키가 묻힌 곳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의
현장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그리스도가 승천하였고 예루살렘 붕괴를 예언
하였으며 그의 제자들에게 주의 기도를 가르치셨다. 예수는 명상과 기도를 위해 이곳을
찾았으며 그에게 안전한 장소가 되지 못했던 예루살렘을 벗어나 이곳 나무 밑이나
동굴 속에서 여러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 3. 주님의 기도문 기념 성당 (The church of the pater noster) >

- 주님의 기도문 기념성당은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주님의 기도문을 가르치고,
예루살렘의 완전한 파괴를 예언하고, 재림과 세상의 종말을 예고했던 바로 그 장소에
세워졌다(마태 24,1-3). 베들레헴의 아기 예수 탄생 동굴과 예루살렘의 성묘를 기념
하여 화려한 건축물을 세웠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세운 교회는 614년에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12세기에 십자군에 의해 재건되었다. 십자군이 패한 뒤 교회는 파괴
되고 그 자리는 이슬람교들의 손에 들어갔다. 1868년에 오렐리아 드 보씨 공주가
그 땅을 사서 프랑스에 헌납하였다. 1875년에 그녀는 까르멜수녀원 건물을 세웠다.
교회 안과 수녀원 벽에는 주님의 기도문이 62개 국어로 쓰여 있다. 오렐리아 드 보씨
공주는 수녀원에 묻혀 있다.

< 4. 예수 승천 성당 (The chapel of the ascension) >

- 사도행전(1, 9-12)에 예수가 그의 제자들을 올리브라는 산에 불러 축복을 준 뒤
승천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곳 올리브 정상이 승천한 장소로 믿어지고 있다.
올리브산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걸어도 괜찮을 거리에 있는 가까운 거리라고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과 약 900m 떨어진 이곳은 안식일에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4세기에 비잔틴 교회가 이곳에 세워졌으나 614년에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후 12세기에 십자군에 의해 다시 교회가 세워졌다. 현존하는 작은
교회가 십자군에 의해 세워진 것이며 교회의 뜰에는 예수가 승천할 때 디딘 것으로
보이는 돌을 볼 수 있다. 현재 이 교회는 회교도의 소유가 되어 있으며 벽은 아치
건조물로 장식되어 있고 둥근 탑이 지붕에 얹혀 있다.

< 5. 도미누스 플레빗 성당/ 예수 눈물 성당 (Dominus flevit) >

- “주님이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에 이르러 그 도성을 보시고는
그것을 두고 우셨다(루카 19, 41). 예수가 눈물을 흘린 이 장소는 십자군에 의해서
비로소 주목받게 되었다. 그들이 퇴각한 후 교회는 파괴되었다. 1891년에 세워진
이 교회의 겉모습은 흐르는 눈물이 연상되도록 설계되었다. 제단은 예루살렘의 시가지를
배경으로한 화려한 창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 6. 러시아 교회 (The russian church) >

- 7개의 양파 모양의 첨탑을 가진 막달라 마리아 러시아 교회는 정교한 옛 모스코바
교회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으로 되어 있다. 1888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3세가 그의
모친을 추모하기 위해 건축하였으며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이곳은
백러시아 수녀들에 의해 관리되어 왔으며 지하실에는 알렉산더 왕의 여동생인 엘리자벳
페드로바나 대공비(大公妃)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그녀는 볼셰비키에 의해 1918년
시리아에서 죽음을 당했으며 예루살렘에 묻히고 싶다는 그녀의 소원대로 이곳으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 7. 동정녀 마리아 무덤 (The tomb of the virgin mary) >

- 성모님이 예루살렘에서 죽었고, 키드론 계곡에 묻힌 것으로 알려져 왔다. 비잔틴
교회가 있었던 그 자리에 십자군이 현재의 교회를 세웠다. 또한 이곳은 마리아의 무덤과
승천이 있었던 장소로 알려져 있는데, 성모 마리아의 승천은 1950년 가톨릭 교리로
선포되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이 교회를 관리해 왔으나 1757년 그리스인과
알메니아인의 소유가 되었다. 시리아인과 콥트교인, 아비시니아인들이 다소간의 권리를
행사하고 있으며, 이슬람교도는 이곳에서 참배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 8. 겟세마니 성당 (The church of gethsemane) >

- 379년에 예수의 기도와 고뇌에 의해 성스러워진 겟세마니 동산에는 비잔틴 시대 때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졌다. 이 교회는 614년 페르시아인들의 침입 때 제일 먼저
파괴당한 것 중의 하나이다. 12세기에 십자군에 의해 재건된 이후 다시 파괴된 채
버려져 오다가 지금의 교회가 1919년에서 1924년에 세워졌다. 예루살렘에 있는
건축물중 가장 아름다운 교회중의 하나인 이 교회는 16개국이 건축에 참가했기 때문에
‘여러 민족의 대성전’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천정과 그림에는 참가했던 나라의 문장이
새겨져 있으며 특히 천정은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고 화려한 창들은 투명한
설화 석고로 만들어졌다. 중앙에 있는 제단 앞에는 예수의 고난을 상징한다고 전해지는
돌이 놓여 있으며 바닥에 깔려 있는 모자이크 일부는 비잔틴 시대 교회의 모자이크이고
나머지는 그것을 똑같이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화려한 건물 정면에는 복음사가가
복음서를 쥐고 있는 모습의 동상이 서 있으며 성당 벽에는 예수가 자신과 세상의 고통을
하느님께 바치는 장면을 묘사한 모자이크가 있다.

< 9. 겟세마니 동산 (The garden of gethsemane) >

- 겟세마니 동산은 성지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곳 중의 하나이다. 이곳은 올리브산
기슭에 위치하며 오늘날에도 2000년 전의 모습과 같다. 키드론 계곡을 사이에 둔
맞은 편 언덕에는 도시가 번창해 왔지만 이곳은 예수가 살았던 시대 이후로 전혀
변화가 없이 그 모습을 유지해 왔으며 올리브 나무들도 그때의 것인 것 같다. 사도
요한은 이곳을 키드론 개울 너머의 동산이라고 불렀으며 예수가 즐겨 찾는 곳이었다.
“예수께서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루카 22, 39). 이곳에서 예수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고난의 밤을 지낸 곳으로 다가올 운명에 대해 고뇌하면서도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을 결심한 곳이기도 하다.
“아버지께서 원하신다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 42).

- 이 기도가 끝난 뒤 유다가 대사제들이 보낸 무리들과 함께 와서 그를 배신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를 버리고 도망갔다.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라는
즈카르야의 예언이 실현되었다. 이어 예수는 가야파의 집으로 끌려갔고 다음 날
십자가에 못 박혔다. 겟세마니 동산에는 그 수령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여덟
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있다. 어떤 식물학자들은 이들의 나이가 300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티토가 A.D 70년경에 예루살렘 외곽지대의 모든 나무를
잘라 버렸다고 한다. 이 나무들이 이 시기에 용케 살아남았다면 예수시대의 바로
그 나무들일 것이다. “이 올리브 나무는 죽지 않는다”(플리니). 이 나무들은 지금도
열매를 맺고 있다.

< 10. 유대인의 공동묘지 (The jewish cemetery) >

- 올리브산 기슭에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유대인의 공동묘지가 있다. 많은 유대인
들이 죽어서 여호사팟 골짜기 근처에 묻히기 위하여 이곳으로 왔다. 주님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이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요엘 4, 1-2).
그리스도인들과 회교도들도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묘는 계곡 서편
쪽에 자리 잡고 있다.

< 11. 키드론 계곡 (The Kidron valley) >

- 키드론 계곡은 예루살렘과 올리브산 중간에 있다. 예수가 황금문을 통과하여
성전에 가려면 이 계곡을 지나야 했을 것이고, 그가 자주 찾았던 베타니아에 있는
라자로의 집에 갈 때, 그리고 겟세마니에서 밤을 지새우기 위해 올리브 산을 올라
갈 때도 이곳의 길을 이용했을 것이다. 예수는 그 역사적인 성목요일 저녁 그의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함께 이 계곡을 지나 겟세마니 동산으로 갔었고
그곳에서 배신당하여 대제사장 가야파의 집으로 끌려 갈 때도 이 계곡을 지났던
것이다. 키드론 계곡에는 압살롬 왕과 여호사밧의 무덤을 비롯하여 야곱과 즈카르야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무덤들이 있다. 키드론 계곡은 마지막 심판이 일어날 장소로
전해지고 있다. 이 믿음으로 인해 유대인과 그리스도교인 그리고 이슬람교인들의
거대한 공동묘지가 여기에 위치하게 되었다.

< 12. 실로암 못 (The pool of siloam) >

- 히즈키야왕때 터널을 만들어 기혼샘으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이곳에 모이게
했으며 이곳 실로암 못은 저수지의 역할을 했다. 예수가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고 눈을 씻게 하여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장소가 이곳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인
들에게 성스럽게 여겨진다. “그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요한 9, 7).
5세기 이르러 이곳에 교회가 세워졌으나 614년에 페르시안인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지금까지 재건되지 않고 있다.

< 13. 히즈키야 터널 (Hezekiah‘s tunnel) >

- B.C 700년에 예루살렘의 히즈키아 왕은 침략을 일삼던 아시리아인들로부터 물의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성곽 밖에 있던 기혼샘에서 성내의 실로암 못까지 물을 끌어
들이기 위하여 돌을 깎아내어 터널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터널은 아시리아인들의
눈에 띄지 않게 위장되어 있었다. 이 후 침략해 온 아시리아인들은 식수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그 도시를 정복하지 못하고 철수해 버렸다고 한다. 동정녀의
샘으로 불리기도 하는 기혼샘은 이스라엘의 가장 오래된 수원 중의 하나이다. 여부스
사람들도 이러한 터널을 만들었고 터널과 연결된 갱도를 통하여 물을 공급받았는데
다윗은 이 터널을 이용하여 도시에 침입해 들어가 여부스 도시를 점령했다. 이곳
기혼샘에서 솔로몬이 왕으로 등극했다(1 열왕 1,33 ; 38; 45).

< 14.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 (St. peter in gallicantu) >

- 일명 닭우는 사도 베드로 성당. 키드론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이 교회는 1931년
대제사장 가야파의 집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장소에 승천수도회가 세운 것이다.
제자에 의해 배신당한 예수가 겟세마니 동산에서 끌려와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첫 공판을 받은 곳이 이곳이다(마태 26, 57-63 ; …). 그리고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3번 부인할 것이라는 예수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알고 사도 베드로가
통곡한 곳도 이곳이다. 승천수도회가 이곳을 발굴해 본 결과 이곳이 가야파의 집터임을
확증했다. 또한 교회 왼편에 옛 계단이 발견되었는데 이 길은 예수시대의 것으로
믿어진다. 이 길은 겟세마니에서 윗 도시로 들어가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에 이 길을
예수의 발이 밟았을 것이 분명하다. 예수 시대에는 이곳은 예루살렘 성안에 있었다.

< 15. 시온산 (Mount zion) >

- 시온산은 성으로 둘러싸였던 옛 도시의 남서부에 있다. 한때 고대 예루살렘의
성내에 있었던 적도 있었으며 그리스도교인, 유대인, 그리고 이슬람교도 모두가 이 산을
성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리스도교인에게는 이곳이 최후의 만찬이 있었던 곳이고
동정녀 마리아가 죽은 곳이며, 유대인과 이슬람교도들에게는 그들 모두가 경배하는
다윗왕의 묘지가 있는 곳이다.

< 16. 성모 영면 성당 (The basilica of the domision) >

- 성모 영면 성당은 시온산에서 가장 위용 있는 건물이며 이곳은 동정녀 마리아가
죽은 곳이다. 1100년에 십자군이 이곳에 큰 교회를 세우고 ‘시온의 성모 마리아’
라고 불렀다. 1219년 회교도가 이 지역을 점령하고 이 교회를 파괴했고, 이 부지는
1898년 터키에 의해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에게로 넘어갔다. 그 후 빌헬름 2세로부터
이 땅을 넘겨받은 베네딕토 수도회가 1910년 이 교회를 지었다. 이 교회의 뒤쪽에는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모자이크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으며 바닥의 모자이크에는
삼위일체의 상징과 사도들, 그리고 12궁이 묘사되어 있다. 지하실에는 임종에 이른
동정녀 마리아의 석상이 있다.

< 17. 다윗왕의 무덤 (The tomb of king david) >

- 이곳은 유대인들이 서쪽벽 다음으로 성스럽게 여기는 곳이다. 1172년에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듀델라의 랍비 벤자민에 의해 이 장소가 확인되었다. 돌로 되어
있는 이 무덤은 수놓아진 베로 덮여 있고 토라의 은관이 진열되어 있다.

< 18. 최후의 만찬 기념 성당 (The last supper)

- 이곳은 예수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진 곳이다(마르 14,12-16 ;
루카 22,7-13). 바로 이 장소에서 예수가 부활한 후 제자들 앞에 그 모습을 두 번
보였고(요한 20,19-29), 제자들이 성령을 받기도 했다(사도 2,1-4).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본거지가 시온산에 있었으며 그들은 1세기 무렵 이곳에 교회를 세웠다.
이 교회는 전쟁터에서 벗어난 지역인 관계로 A.D 70년과 A.D 135년에 일어났던 전쟁
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비잔틴 시대에는 더욱 확장되었다. 이 교회가 초대교회라는
점이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온 것이요, 주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라는 이사야서 예언과 결부되어 ‘성스러운 시온’ 교회로 불리워졌다. 시온산의 이름도
이 교회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614년에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12세기에
십자군에 의해 2개의 교회가 연결된 형태로 재건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1176년에
아래 경당이 다윗의 무덤이 자리했던 곳으로 확인되었고 1552년 터키인들에 의해
그리스도인들이 윗 경당에서 쫓겨난 이후 이곳은 뾰족탑이 세워지고 회교도의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지는 이슬람교 사원으로 변모되었다.

< 19. 베타니아 (Bethany) >

- 올리브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를 향해 3.2km를 가면 이 곳
베타니아 마을이 나타난다. 4세기 이후로 이 마을은 라자로(엘 아제리에)를 연상시키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 곳에 예수가 사랑했던 라자로와 그의 여형제 마리아, 마르타의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그의 집이나 다름없었던 라자로의 집에 자주 들렸다.
여기서 예수는 마르타에게 올바른 삶에 대해 들려주었다.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38-42). 또한 이곳에서 예수는
죽은 라자로를 살리는 기적을 행했다(요한 11,1-44). 나병환자 시몬의 집도 여기에
있었으며 이곳에서 마리아는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어 주었다. (마태 26,1-13 ;…).

< 20. 라자로 성당 (The church of nazarus) >

- 라자로의 무덤위에 2개의 비잔틴 교회가 세워졌다. 그중 하나는 지진으로 파괴되었고
또 하나는 614년 페르시아인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곳에 세워진 세 번째의 교회는
12세기 십자군에 의해 건축되었다. 라틴 제국의 멸망이후 이 교회가 있는 베타니아는
회교의 소유가 되었으며, 이 부지가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유가 된 것은 불과 1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1949년 그들은 옛 건물들을 헐고 발굴작업을 한 결과 이 자리에
있었던 성당들과 십자군시대의 성당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4세기경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모자이크와 조각난 성전 기둥들이 발견되었고 1952년에 세워진 이 교회 앞마당에 진열
되어 있다. 라자로의 무덤은 동굴안의 돌을 깎아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22개의 계단을
걸어 내려가야 라자로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어두운 동굴에 이르게 된다. 당시의 통로는
경사가 아니고 평탄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회교도가 교회와 무덤 사이에 사원을 건축
하면서 이 통로를 막아 버렸다. 이 무덤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17세기에 와서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 21. 예루살렘 (Jerusalem) >

- 험악한 산간지대에 우뚝 솟아 있는 예루살렘은 3000년 동안이나 세계 모든 도시를
거느렸던 여왕으로 군림해 왔다. 비록 자원 면에서 풍부하지 못한 열악한 지대이지만
하느님으로부터 유일신의 보루로 선택되었다. 이 불모지대에서 사상가들과 예언자들,
그리고 그리스도가 지상 불후의 법칙, 윤리적이고 우애적 사랑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타오른 새로운 믿음의 불길로 우상 숭배와 타락에 빠져있던 수많은 인간들은
정의의 지배와 신앙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온 것이요, 주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지상 인구 절반의 종교적 수도이다.
유다인들에게 이곳은 화려했던 과거와 희망찬 미래의 터전이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가 지상 마지막 활동을 한, 즉 예수가 죽고 다시 부활한 장소이다. 또한 회교도에게는
예언자 마호멧이 승천한 곳이다.

- 믿음과 평화의 도시이고 가장 성스러운 도시인 예루살렘은 또 한편으로 폭력과 전쟁
그리고 유혈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 오랜 역사동안 이 곳 후손들은 칼에 의해 무참히
희생되어 갔다. 세계 어디에도 이곳만큼 많은 전쟁이 있었던 도시는 찾아 볼 수 없다.
예루살렘 시내와 그 주변을 걷는다는 것은 곧 피의 바다 위를 걷는 것과 다름이 없다.
지금까지 이 도시는 50여 차례나 포위당했으며 36차례나 넘게 주인이 바뀌었고 10차례나
파괴되어 왔다. 예루살렘의 기원은 과거의 연 기속에 사라져 버렸다. 이 도시가 언급되기
시작한 시기는 아브라함시대로 평화를 의미하는 살렘으로 성경에 등장한다. “살렘 임금
멜키체덱도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였다”
(창세 14,18). B.C. 10세기 다윗이 여부스로부터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수도로 삼았고
계약의 궤를 도시 안으로 옮겨 왔다.

(역사 요약)
* B.C. 965-922 : 솔로몬이 도시를 화려하게 꾸미고 성전을 세움.
* B.C. 587 : 바빌론에 의해 도시가 점령당하고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유대인들은
바빌론 땅으로 끌려가 노예생활을 함.
* B.C. 538 : 유대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성전을 재건함.
* B.C. 332 : 알렉산더 대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함. …
* B.C. 63 :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음.
* B.C. 37 : 헤로데가 유대의 왕으로 즉위, 위대한 건설자였던 그는 예루살렘 성을 쌓고
성전을 다시 세워 솔로몬 시대보다 훨씬 웅장하고 아름답게 도시를 정돈함. 이 도시는
예수 생애의 배경이 됨.
* A.D. 70 :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의 반란 뒤에 티투스 황제에 의해 파괴되어 예수의 에언
(루카 19,20-41)대로 이루어짐. …
* A.D. 330 :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예루살렘을 그리스도교 도시로 재건.
* A.D. 614 : 페르시아 군이 예루살렘을 점령. 모든 교회를 파괴함.
* A.D. 636 : 예루살렘이 아랍으로 넘어가고 그 후 500년 간 지배받음.
* A.D. 1099 : 예루살렘이 십자군에 의해 탈환되고 라틴 왕정이 들어섬.
* A.D. 1187 : 살라딘이 이끄는 회교도에게 다시 정복됨.
* A.D. 1517 : 터키인들에게 정복당함. 이후 400년간 지배를 받음.
* A.D. 1917 : 영국 알렌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의 통치를 받음.
* A.D. 1948 : 유대-아랍 간의 전쟁 중에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요단 관할 지역으로
분할됨.(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 선포)
* A.D. 1967 :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이 요르단 관할 지역을 점령함. 이로써 예루살렘은
분단에서 벗어남. …

< 22. 예루살렘 성벽 (The walls of jerusalem) >

- 현존하는 예루살렘의 성벽은 여러 시대를 통해 이루어진 과거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성벽이 현재의 모습처럼 최종적으로 재건된 것은 1542년 터키의 슐레이만 황제
때였다. 이 성벽의 둘레는 4km이고 높이는 12m 정도 된다. 34개의 탑이 있고 8개의
성문이 있다. 동쪽으로는 성 스테파노 성문과 황금문(1530년 터키군이 봉쇄), 서쪽
으로는 자파성문, 남쪽으로는 오물 성문과 시온 성문, 북쪽으로는 뉴 게이트, 다마스커스
성문, 헤로데 성문이 있다.

< 23. 모리야 산의 바위 (The rock of mount moriah) >

- 모리야 산의 바위는 화려한 건물의 둥근 천정 아래에 있다. 이 바위는 길이가 13.5m
이고, 폭이 10.8m, 그리고 높이가 1.8m가 된다. 이 바위가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쳤을 때 제단으로 이용한 돌로 알려져 있다. 회교도들은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바친 것이 아이라 이스마엘을 바쳤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또한 마호멧이 밤에
이곳에서 승천했다고 믿고 있다. 십자군 시대 때 순례자들이 이 바위를 깨어서 그 조각
들을 가져다 기념품으로 파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 바위 둘레에 금속판을 둘렀다.
이 금속판은 1959년에 나무 난간으로 대체되었다. 이 바위가 위치해 있는 대사원의
내부에는 아름답게 장식된 지붕과 풍부한 색깔의 스테인드글라스, 화려하게 장식된
모자이크 벽이 어울려 매력적인 색채를 연출하고 있어 경건한 기도분위기를 한층 돋구어
준다.

< 24. 엘 악사 (El Aksa) >

- ‘멀리 떨어진 사원’이라는 뜻의 이 사원은 대사원 남쪽에 위치하며 이 사원은 대사원을
세웠던 압드 엘 말리크의 아들인 칼리프 왈리드에 의해 709년에서 715년 사이에 세워
졌다. 수 차례 파괴되고 재건되었기 때문에 옛 모습을 찾아 보기는 힘든 이 사원은
비잔틴 교회가 있었던 기초 위에 세워졌고 바로 인접한 곳에 솔로몬 궁전이 있었다.
예루살렘을 십자군이 장악하고 있었을 때 이 사원은 라틴 왕전의 궁전으로 사용되었으나
후에 성당 기사들의 본거지로 개조되었다. 대사원에서는 개별적인 기도만이 행해지는데
반해 이곳 엘 악사는 사원에서는 집단 기도만이 행해진다.

< 25. 솔로몬의 마굿간 (Salamon‘s stables) >

- 헤로데왕이 성전을 재건할 때 성전 남동쪽 가장자리에 가장 큰 아치들과 기둥들로
받쳐진 연단을 만들어 성전 터를 두 배로 넓혔다. 이 지하의 구조물이 솔로몬의 마굿간
이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신빙성이 없다. 헤로데 시대에 이곳이 마굿간으로 이용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십자군에 의해서 그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말고삐를
묶을 때 쓰이는 돌에 난 구멍을 지금도 볼 수 있다.

< 26. 서쪽 벽/통곡의 벽 (The western wall) >

- 일명 ‘통곡의 벽’이라고 하는 이곳은 유대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곳이며 파괴된
그들 성전의 마지막 흔적이다. 이 서쪽 벽은 헤로데가 B.C. 20년에 솔로몬의 성전에
이어 두 번째 성전을 세울 때 건축된 것이다. A.D. 70년에 티투스 황제는 성전을 모두
파괴하면서 이 벽만을 남겨 두었다. 그는 후대에 이 웅장한 건물을 파괴할 수 있었던
로마 병사들의 막강한 힘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로마시대에는 유대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비잔틴 시대에 들어오면서 일 년에 한 번씩
사원이 파괴된 날이면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것이 허용되었는데 이날 그들은 이 벽으로
몰려가 흩어져 버린 그들 민족과 부서진 성전을 보면서 슬피 울곤 했다고 한다. 이 이후로
그들은 이 벽은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어져 왔으며 이 벽 앞에서 기도하는 관습이 수 세기
동안 지켜져 왔다. 1948년에서 1967년까지는 요르단 관할 지역이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출입이 금지되었었다. 6일 전쟁 후 이곳을 다시 회복한 유대인들에게 이곳은 기쁨과
참배의 장소가 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수천 명의 참배객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공간이
마련되었다.

< 27. 성 안나 성당 (The church of St. anne) >

- 십자군이 예루살렘에서 철수했을 때 그들이 세운 교회는 30개가 넘었다.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당시 교회들의 훌륭한 건축 구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이 교회는 A.D. 1100년에 볼드윈 1세 왕비에 의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것이다.
이 교회는 마리아의 출생지이자 그의 부모 요아킴과 안나의 집이 있었다는 지하실 위에
세워졌다. 십자군 패망후 살라딘이 이 교회를 회교 신학교로 개조했다. 1856년 크리미안
전쟁이 끝난 후 술탄 압둘 마지드는 이곳을 전쟁 때 도와준 대가로 나폴레옹 3세에게
선물하였다. 그 후 교회는 복원되고 아프리카에서 포교하는 백의신부(白衣神父)들이
소유하게 되었다.

< 28. 벳자타 못 (The pool of bethesda) >

- 이 연못은 예루살렘 동쪽 성 스테파노 성문 안에 있는 성 안나 성당 옆에 있다.
이곳은 예수 시대에는 북쪽 성벽 밖이었으며 성전으로 들어가는 양 문 근처였다.
이곳의 물은 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믿어져 병자들이 모여 들었다. 38년 동안 앓던
병자를 예수가 이곳에서 고쳤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곳을 성스럽게 여긴다
(요한 5). 수백 년 동안 묻혀있던 이 연못 대부분이 최근에 백의 신부들에 의해 발굴
되었다. 이 연못은 가로, 세로가 각각 105m, 60m인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으며
깊이가 7.5m 정도가 된다. 4개의 주랑이 각면에 있고 5번째의 주랑은 연못을 둘로
나누고 있다. 이것은 연못에 다섯 개의 주랑이 있었다고 했던 사도 요한의 말을 확증하는
것이다. 이 연못 중의 하나는 성전의 제물로 바칠 양을 씻는데 이용되었다. 비잔틴
시대였던 5세기에 세워지고 614년에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던 거대한 성전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 자리에 십자군이 다시 교회를 세웠다. 지금은 교회의 정면과
정문만이 벳자타 연못이 있었던 자리 옆에 남아있다.

< 29. 안토니오 요새 (The antonia fortress) >

- 헤로데 왕이 두 번째의 성전을 세울 때 성전 북서쪽에 있던 성을 다시 크게 쌓았다.
그는 이 요새를 그의 친구 마크 안토니의 이름을 따서 안토니오 요새라고 이름 지었다.
이 요새는 4개의 웅장을 탑을 가진 거대한 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안의 건물은
궁전 규모였고 모든 편의시설을 다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희랍어로 ‘리토스트로토스’
(돌 포장)라고 불렀던 이 요새 내부 서쪽에 있는 포장된 넓은 뜰은 로마 군인들이
훈련을 받거나 열병식 또는 놀이를 할 때 이용되었다. 이 성은 예수의 마지막 생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성금요일 이른 아침에 대사제들과 지도자들에 의해 가야파의
집에서 이곳 안토니오 요새로 끌려 온 예수가 갖은 수모와 채찍질을 당하고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형을 받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 이 요새는 A.D. 70년에 티투스 황제에 이해 파괴된 후 돌더미와 그 자리에 들어선
건물들에 의해 묻혀 버렸으나 그 후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현재 안토니오
요새가 있었던 자리에 회교 학교와 프란치스코 수도원, 시온 수녀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 이슬람교 학교의 뜰은 예수의 공판이 있었던 곳이며, 프란치스코 수도원에는 2개의
소성당이 있는데 하나는 예수가 매질당한 자리를 기념한 플라제라시오(매질) 소성당
이고 또 하나는 예수가 십자가형을 언도받은 자리를 기념하는 콘담나시오(선고)
소성당이다. 시온 수녀원 지하실에는 매우 인상 깊은 돌포장이 보존되어 있다.

< 30. 홍예문 (The arch of the ecce homo) >

- 원어로는 ‘엑체 호모’의 문이다. “보라 이 사람을‘이라는 본시오 빌라도의 말을
뜻하는 이 문은 예수의 수난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며 A.D. 125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예루살렘이 로마 도시로 재건될 때 만들어진 3중문 가운데
하나이며 현재 시온 수녀원 건물에 속해 있다. 빌라도가 이곳에서 ”보라 이 사람을“
이라고 소리쳤다는 설도 있고 이 말을 할 때 그가 디뎠던 돌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는
설도 있다.

< 31. 시온 수녀원 (The convent of the sisters of zion) >

- 이 수녀원은 스트라스부르크 출신 알퐁소 라티스본느 신부에 의해 세워졌다.
이 신부는 1855년에 예루살렘에 건너와 홍예문 근처의 땅을 사서 이 부지를 정돈한
후 1859년에서 1864년 사이에 이 수녀원을 세웠다. 1931년에서 1937년에 걸쳐
고들레느 수녀와 예루살렘 성서 연구소의 벵상 신부가 이 지역을 발굴했다. 그 결과
2000년 전에 사도 요한이 기록한 돌포장 길을 찾아냈다. “예수를 밖으로 데려가게
하고 빌라도는 ‘돌포장’이라 하는 곳에 있는 재판석에 앉았다”(요한 19,13).
희랍어로 리토스트로토스라는 돌로 포장된 자리에서 예수의 판결이 있었다. 빌라도는
재판석을 조금 떨어져 있는 안토니아 성문 밖 군중 가까이 옮기고 예수에게 채찍질을
가하게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보라 이 사람을.” 그리고 난 후 손을 씻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최종 판결을 내렸다. 예수 시대에는 평평한 땅이었던 이곳은
예수가 정죄 받은 곳이며, 십자가로 향하는 수난의 길과 고통의 길의 출발점이다.

< 32. 비아 돌로로사 (The via dolorosa) /수난의 길 >

- 비아 돌로로사는 본시오 빌라도로부터 판결을 받고 난 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그가 못 박힐 장소인 갈바리아로 향한 길이다. 이 수난의 길에는 열네 군데의 가슴
아픈 장소가 있다. 그 중 9곳은 복음서에 나오고 5곳은 역사적으로 전해 오는 곳이다.
처음 두 군대는 안토니오 성에 있으며 일곱 군데는 이 길 위에 있고 나머지 다섯
군데는 거룩한 무덤 성전 안에 있다. 이 곳 수난의 길에서는 매주 금요일 오후 3시에
프란치스코 회원이 이끄는 행렬을 볼 수 있다.

< 33. 주님의 무덤 성당 (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

-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터’라는 곳으로 나가셨다. 그곳은
히브리말로 골고타라고 한다”(요한 9,17). 골고타 언덕 위에 있는 주의 무덤 성당은
그리스도교인들이 가장 성역시 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고,
그의 무덤도 이곳에 있다. 예수가 못 박힌 곳은 당시에는 성 밖이었으나 “도성에서
가까운 곳이었다”(요한 19,20).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지 11년 후인 A.D. 44년에
헤로데 아그리파 왕이 새로 성벽을 세워 이 지역이 도시 안에 위치하게 되었고 이 교회가
세워진 324년에는 이곳이 성 안의 중심 지역이 되었다. 19세기 중엽 인접해 있는 러시아
호스피스에 있는 교회의 동쪽과 북쪽에서 고대 성벽의 잔해가 발견되었다. 유대 율법에
따르면 성 안에 사람을 묻지 못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교회 경내에서 무덤들이 발견된
것은 이곳이 그 당시에 성 밖이었다는 것을 확증하게 되는 것이다. A.D. 135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뿌리 뽑기 위해 갈바리아와 예수의 무덤이
있던 곳에 쥬피터 신전을 세웠다. 예수의 탄생지인 베들레헴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그의 증오의 행위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그가 그 자리를 확인하고 보존해 주었기 때문에
초대 그리스도교인들이 그 곳을 지키게 되었고 마침내 200년 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쉽게 그 장소들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 326년에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세워졌던 신전은 헬레나 모후에 의해 파괴되었고
성경에 쓰여진 대로 갈바리아와 예수의 무덤은 훼손되지 않은 채로 발견되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명과 그의 어머니 헬레나 모후의 감독으로 화려한 성전이 갈바리아와
무덤 위에 세워졌다. 콘스탄티누스 시대의 이 웅장한 기념 성당은 614년에 페르시아인
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그 후 대 수도원장 모데스투스가 작은 규모로 재건하였으나
1009년에 칼리프 하킴에 의해 교회가 재건되었고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1149년에 현존하는 교회가 세워졌다. 여러 번의 증축과 재건 작업이 있었지만 그 교회의
중요한 원래의 모습은 현재까지 유지되어 왔다. 1852년에 터키가 선포한 ‘현상유지’법에
의해 현재 이곳은 6개 종파가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 34. 갈바리아 (Calvary) >

- 갈바리아는 지면에서 13.5m 솟아 있는 큰 바위 덩어리이다. 갈바리아는 해골산이라는
뜻으로 해골처럼 생긴 지형 때문에 그런 이름이 생겨난 것 같다. 현재 갈바리아 정상에는
2개의 경당이 있다. 이중 한 경당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 있으며
로마 가톨릭이 소유하고 있다. 이 교회 부지 삼분의 일이 갈바리아 바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모 통고 제대 밑에 있는 돌과 아담 기념 성당 내부 바닥에 있는 돌이 바로 그것이다.

< 35. 정원 무덤 (The garden tomb) >

- 많은 사람들은 다마스커스 성문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을 예수가 못 박히고
묻히신 곳이라고 믿고 있다. 1883년 영국의 찰스 고든 장군이 두개골처럼 생긴 이 지역을
본 후 이 곳이야말로 진정한 갈바리아라고 주장했다. 1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돌을
깎아 만든 무덤이 이 주장을 강하게 뒷받침했고 당시 저명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1892년에 설립된 한 단체가 자금을 조성하여 이 무덤과 주변의 땅을 사들였고
상주 경비원을 고용하여 이곳을 관리하게 하였다. 이 정원 무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묻히신 곳의 환경이 어떠하였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곳은 단순함과 그리고
평화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기도와 명상을 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이다.

< 36. 성채 (The citadel) >

- 다윗의 탑이라고 불리우는 이 성채는 예루살렘 서쪽 방어기지로서 헤로데 왕에 의해
세워졌다. 그는 이곳에 있는 3개의 큰 탑의 이름을 그의 형제와 친구 그리고 그가 죽인
부인의 이름을 따서 각각 파사엘, 히피쿠스, 마리암네라고 지었다. A.D. 70년에 티투스
황제가 침입했을 때 이 성을 파괴하지 않고 보존했다. 그는 이곳을 로마 제 10여단의
병영으로 사용하는 동시에 로마군의 힘과 영웅심의 산 증거로 후세에 남기려고 했다.
헤로데 시대의 거대한 돌들이 기초부분에 아직도 남아 있다. 이 성은 12세기와 14세기에
십자군과 중세 이집트 노예 기병에 의해 보수되었으며 현존하는 건축물의 대부분은
1540년 술레이만 대제에 의해 복원된 것이다. 이 성채는 일찍이 다윗 왕이 세운 요새
위에 헤로데가 그의 궁전으로 건설했기 때문에 ‘다윗의 탑’으로도 불리워진다. 여름이
되면 ‘다윗탑의 돌’이라고 불리는 빛과 음악의 공연이 이곳에서 펼쳐진다.

< 37. 제2 성전 시대 (The second temple period) > - 제2 성전의 모형

- 이것은 헤로데 당시의 예루살렘 모형이다. 이 모형을 위해 연구, 조사하고 제작하는
데에 7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50분의 1로 축소되어 제작되었으며 크기는 4분의 1
에이커에 이른다. 예수 당시의 예루살렘 시가지가 정확하게 묘사된 모형이다.

< 38. 아인 카림 (Ein karem) >

- 올리브 나무들과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언덕들 사이에 자리한 그림 같은 아인 카림
마을은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세례자 요한 태어난 곳이다. 또한
마리아가 요한의 모친이자 그녀의 사촌인 엘리사벳을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루카 1,
39-46). 그러나 성경에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만났던 곳과 세례자 요한이 태어난
곳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단지 “길을 떠나 유다 산골 고을로 서둘러” 갔다고만 되어
있다. 이 마을에 살았던 즈카르야가 성전의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가까웠을
것이다. 몇몇 지역이 거론되어 왔었는데 고고학 자료와 전해 내려오는 기록에 의해
아인 카림이 바로 이곳임이 확증되었다.

< 39. 성모 방문 기념 성당 >

- 성 루카가 서술한 대로 연못이 있는 이 매력적인 마을은
예로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음에 틀림이 없다. 5세기에 즈카르야의 집의 한
부분이었다고 생각되는 동굴과 요한이 태어났다고 하는 장소 위에 요한의 이름을 딴
성당이 세워졌으나 파괴되었고, 십자군에 의해 재건되었으나 그들이 떠난 후 또 다시
파괴되었다. 현존하는 교회는 1885년에 프란치스코회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또
한 성당은 2층으로 된 마리아 방문 기념 성당인데,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였을
당시 임신 중이던 엘리사벳이 살던 집터 위에 세워졌다고 한다. 이 성당은 5세기경에
세워졌으나 여러 번 파괴되고 복구되었다. 1938년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이층
성당이 세워졌으며 이 성당 맞은 편 담벽에는 마리아가 하느님을 찬양해 불렀다는
‘마니피캇’의 내용이 41개 어로 새겨져 도자기판으로 부착되어 있다.

< 40. 고문서고 (The shrine of the book) >

- 양파처럼 생긴 작은 박물관은 사해 두루마리가 담겨 있었던 항아리의 뚜껑을 본떠서
만들어졌다. 에쎄느 공동체는 그들 자신은 빛의 아들이며 나머지 민족은 어둠의 아들로
믿고 있었다. 하얀 색의 성전입구에 있는 검은 벽의 대조된 색깔은 이러한 그들의
생각을 반영해 준다. 그리고 검은 대리석 벽은 이스라엘 민족이 2000년 동안 짊어진
무거운 짐을 상기시켜 준다. 동굴을 상징하는 이 고문서고에는 쿰란과 마싸다에서
발굴된 문헌들과 바르코흐바의 서신을 포함한 여러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 41. 의회 (The knesset) >

- 이 의회 건물은 건축하는데 700만 달러가 소요되었고 예루살렘 붉은 돌로 건축
되었다. 영국의 제임스 드 로스칠드 가문의 자금으로 세워졌으며 낙성식은 1966년에
있었다. 5만권 이상의 책이 소장되어 있는 1급 도서관을 포함하여 각종 시설이 완비
되어 있다. 연철로 만들어진 이 건물 입구는 이스라엘의 유명한 조각가 팔롬보의
작품이다. 입구 맞은편에 있는 16피트 높이의 메노라(일곱 가지 큰 촛대)는 이스라엘
공화국의 상징이다. 유대 역사관을 나타내고 있는 이 상징물은 영국의회에서 기증 한
것이다. 이스라엘 의회는 4년 마다 실시되는 국민투표로 선출된 12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 42. 메아 셰아림 (Mea shearim) >

- 1875년에 세워진 이 지역은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 정교회의 본거지이다. 동 유럽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은 자신의 생활양식만을 고수하면서 유럽의 거주
지역에서 입었던 복장을 아직도 입고 다니고, 주위의 세상일에는 무관심한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 많이 산재해 있는 작은 기도실과
회당에서 보내는데, 이는 토라와 그 율법을 가르치는 이 지역의 회당과 학교들이
축복을 받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 43. 샤갈의 유리화 (Chagall Windows) >

- 하사다병원에 있는 조그만 유대교 회당에는 토라에 기록된 이스라엘 12지파의
그 상징들을 묘사해 놓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르크 샤갈의 12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보존되어 있다.

< 44. 베들레헴 (Bethlehem) >

- 베들레헴(히브리어로 빵의 집, 아랍어로 고기의 집)은 예루살렘 남쪽 8km 떨어진
해발 780m 되는 언덕 위에 있다. 이곳의 인구는 약 3만 명인데 이 불모의 땅을
경작하는 주민은 드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올리브 나무와 진주조개 껍질로 만든
성물을 만들어 순례자에게 팔아 생활한다. 베들레헴은 아주 오랜 도시이고 그 역사는
아브라함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성경에는 라헬의 죽음에 관련되어 이 도시가
등장한다. “라헬의 몸을 풀게 되었다. 난산이었다. 마침내 라헬은 죽게 되어 숨을
거두면서 아기 이름을 벤야민이라 불렀다. 라헬은 에프라타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가에 묻혔다. 야곱은 라헬의 무덤에 비석을 세웠다”(창세 35, 17-20). 또한
베들레헴은 롯과 모압사람들, 보아스의 낭만적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있다. 엘리멜렉과
그의 부인 나오미는 흉년이 들어 두 아들과 함께 모압 지방으로 갔다(룻기 1,1).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이 죽은 후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베들레헴
에서 룻은 보아스를 만나 결혼했다. 룻은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고 이로써 베들레헴은
다윗 가족의 본적이 된 것이다. 다윗의 자손인 요셉이 호적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갔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다윗은 그곳에서 태어났고 이 유대의 광야에서
양떼를 지키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후 그는 사무엘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아
왕위에 올랐다.

- 로마제국에 속한 모든 지방의 인구조사를 실시하라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명에
따라 마리아와 요셉이 나자렛에서 고향으로 돌아옴으로써 예언자의 예언이 이루어
지게 되었다. “요셉도 갈릴래아의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대자방에 있는 다윗의 고향으로
올라갔는데 그 곳은 베들레헴이라 한다. 요셉은 다윗 가문의 일족에 속했던 것이다.
요셉은 자기와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거기
머물러 있는 동안에 마리아는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았다. 마리아는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방에는 그들이 들 만한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
1-20). 구약에서 신약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된 이 사건 이후로 이곳 베들레헴은
수백만 그리스도교인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 되었으며, 성스럽고 소중한 곳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곳 석회석 동굴 위에는 수많은 옛날집들이 자리 잡고 있다.

- 200년 동안 이 동굴들 위에 하드리아누스가 세운 신전은 그리스도교를 로마제국의
공식 종교로 선언했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모친 헬레나 모후에 의해 파괴되었다.
헬레나 모후는 325년에 성지를 방문하여 3개의 교회를 세웠다. 첫 번째 교회는
예루살렘에 있었던 예수의 무덤 위에 세웠고, 두 번째 교회는 예수의 탄생지인
베들레헴에, 그리고 올리브산에 세 번째 교회를 세웠다. 대대로 내려오는 그리스도교
인들의 전설과 자료들을 기초로 이 지역들이 발견되었다. 그리스도교인들의 전설에
따르면 예수가 태어난 곳은 마을 동쪽 끝에 있는 하드리아누스 신전 밑에 있는 동굴이었다.
신전을 없애고 손상되지 않은 채 발견된 동굴 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모자이크와
대리석,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된 웅장한 교회를 세웠다. 529년에 나블루스에서 온
사마리아인들이 비잔틴 제국에 반란을 일으켜 베들레헴을 비롯한 다른 도시들을
노략질했다. 이때 이 성탄교회는 약탈당하고 방화되어 심하게 손상되었다. 예루살렘의
대주교들은 성 사바스를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게 보내어 이 교회를 재건하기 위한
도움을 청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세운 교회가 현재 우리가 베들레헴에서 보는
바로 그 교회이다.

- 수 세기를 거치는 동안에 내부의 아름다움이 손상되기는 했지만 원형은 그대로
보존되어 왔다. 614년에 페르시아인들의 침공이 있었을 때 모든 교회들과 수도원들이
파괴되었지만 이 교회만은 그 위기를 면했다. 이 교회에는 예수를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들의 모자이크가 있었는데 그들이 옛 페르시아인의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후 훼손이 많이 되었던 이 교회는 십자군 시대에 보수되었다. 오래된 대리석 바닥은
교체되었고 삼목재로 만들어졌던 지붕은 납으로 대체되었다. 벽에는 대리석이 붙여졌고,
성당 천정은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되었다. 1100년 크리스마스날 라틴왕정의 초대
왕인 볼드윈이 베들레헴의 이곳 교회에서 즉위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즉위할 것을
거부한 이유는 그곳에서 예수가 가시로 된 면류관을 썼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에 즉위한
볼드윈 2세도 1109년에 이곳 베들레헴에서 즉위했다. - 그 지방에는 목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들에서 지내며 밤에 자기들의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 한 분이
그들에게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들을 에워싸듯 비추자 그들은 몹시 겁을 먹고 두려워
하였다.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이제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복음을 여러분에게 알립니다. 오늘 다윗의 고을에 여러분을 위해 구원자가
나셨으니 그분은 그리스도 주님이십니다”(루카 2). 성경에는 목동들이 있었던 정확한
장소가 기록되어 있진 않으나 베들레헴 동쪽 3.2km 쯤 되는 들판이라고 옛부터 전해져
오고 있다.

< 45. 성탄 성당 (Church of the nativity) >

- 이 교회의 외관은 수수하여서 마치 중세 요새처럼 보인다. 건물 정면은 3개의 수도원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원래 3개의 문이 있었으나 2개는 막아서 벽이 되어 버렸고 중앙
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낮고 좁은 문만이 남았다. 두 번이나 문을 축소한 것은 약탈자들이
말을 타고 이 교회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처마의 장식과 십자군 시대
교회의 뾰족한 아치가 특이하다. 이 교회는 길이 51m, 폭 24m로 십자가형으로 되어
있으며, 이스라엘의 붉은 돌로 만들어진 4줄의 돌기둥들로 내부가 5등분 되어 있다.
4세기 때 세워졌던 교회의 모자이크 조각들이 성당 바닥에서 1936년에 발견되었다.
기둥들 위쪽 벽에 모자이크 조각들이 있는데 십자군 시대의 벽장식이다. 성탄 동굴 위에
위치한 아름다운 희랍정교회 중앙 제대 장식은 레바논 삼(杉)목재를 손으로 깎아 만든
것이다.

- 밑에 동굴로 이어지는 가로 10m, 세로 3m의 사각형으로 생긴 두 개의 입구가 있다.
그곳에는 48개의 등불이 켜져 있다. 은색별에 라틴어로 “Tic Maria Virgine Jesus
Christus Natus est”(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 라고
새겨 놓아 예수가 태어난 곳을 표시하고 있다. 오른쪽에 예수가 태어난 당시의 구유가
놓여있고 그 위의 벽은 초와 램프의 연기에 시커멓게 그을려 있다. 당시의 동굴 천정
부분은 4세기 때 석조로 대치되었다. 벽은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석면을 입혀 놓았는데
이것은 1874년 프랑스 대통령 맥 마흔이 기증한 것이다.

< 46. 베들레헴의 별 (The star) >

- 중앙 제대 밑에 있는 동굴에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은색별이 있다.
그리스도교의 모든 전설이나 예술품은 별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마태오는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을 방문했을 때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마태 2).

< 47. 라헬의 무덤 (Rachel‘s tomb) >

- “라헬은 죽어, 에프라타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가에 묻혔다. 야곱은 라헬의 무덤에
비석을 세웠다. 그것이 오늘날까지도 서 있는 라헬의 묘비이다” (창세 35,19). 묘위에
조그만 둥근 건축물은 15세기 때 만든 것이다. 이 묘는 그리스도교인이나 회교도,
유대인 모두에게 성역시 되고 있으며 이 지역 여인들이 아기를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곳이기도 하다.

< 48. 헤로디움 (Herodium) >

- 이곳은 베들레헴 동쪽으로 8km 떨어진 황야에 있는데 원추형의 산 정상이 마치
화산처럼 생겼다. 분화구처럼 보이는 곳은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며 헤로데왕이 세운
요새화된 궁전의 잔해가 남아 있다. 산마루에는 궁전과 층으로 되어있는 정원,
수영장이 있고, 정상에 세워진 성채로 이어지는 순백색의 대리석 계단이 200개나
된다. 요세푸스는 헤로디움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 많은 건축물과 편의시설,
화려함과 규모를 보고 있노라면 이곳은 사람의 왕을 위한 성이 아니라 마치 도시
같은 느낌이 든다.” 헤로데는 예리고에서 죽었으나 보석들로 장식된 순금의 관에
넣어져 이곳 헤로디움에 묻혔다. 카르보 신부는 이탈리아 정부의 자금으로 지금까지
헤로디움을 발굴해 오고 있다. 4번의 발굴작업(1962-1967) 동안 이곳 외성의
흔적과 탑들 그리고 목욕탕들이 발견되었지만 헤로데의 묘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 49. 마므레 (Mamre) >

- 조카 롯과 헤어진 후 아브라함은 마므레에 이르러 하느님을 위한 제단을 세웠다.
이곳에서 그는 그의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일러준 세 천사를 만났다
(창세18). 아브라함은 그의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떠났으며(창세 14, 13-14),
하느님께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지 않도록 간청했었고(창세 18,23-32), 이곳에서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되었다. 7세기 이후로 잊혀져 왔기 때문에 여러 지역이
옛 마므레로 거론되었다. 1926년 독일의 한 학회가 ‘친구의 언덕’이라는 곳을 발견
하여 여러 시대(헤로데, 하드리아누스, 비잔틴, 아랍시대)에 세워졌던 건축물 잔해를
발견했다. 이로써 이 지역이 마므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50. 헤브론(Hebron) >

- 예루살렘에서 32km 떨어져 있는 이곳은 해발 900m 고지에 위치해 있다. 산악지대
이지만 관개시설이 잘 되어있고 경사가 층으로 잘 정돈되어 있는 비옥한 땅이다.
그래서 과수를 재배하기에 아주 적합한 지역이다. 이 지역 에스콜 골짜기에서는 양질의
포도가 생산되고 있는데 이곳이 바로 모세가 사람을 보내 염탐하였던 곳이다(민수 13).
아름다운 과수원과 수풀로 둘러싸인 헤브론은 토기사업과 손으로 불어 만드는 헤브론
유리와 양가죽 코트로 유명한 곳이다. 이러한 유리와 토기는 옛날과 똑같은 방법으로
지금도 만들고 있다. 헤브론은 팔레스타인에 있는 도시 중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
이다. 성경에는 B.C. 17세기 무렵에 세워졌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해몬드 박사에 따르면
성곽이 없는 도시 중에 가장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해온 도시라고 한다. “아브라함은
천막을 거두어,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으로 가서 자리 잡고 살았다. 그는
거기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창세 13,18).

- 그의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은 헷사람들에게 장지를 사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방인이며 거류민으로 여러분 곁에 살고 있습니다. 죽은 내 아내를 내어다 안장할
수 있게, 여러분 곁에 있는 묘지를 양도해 주십시오”(창세 23,4). 아브라함은 헷사람
에브론과 그들 풍습대로 흥정한 끝에 4백 세겔을 주고 막벨라굴을 샀다(창세 23,8-16).
그래서 이곳 막벨라굴은 사라와 아브라함, 이사악, 리브가, 레아와 이집트에서 옮겨온
야곱이 묻히게 된 가족 묘소가 되었다. 다윗이 왕으로 즉위한 후 7년 6개월 동안 이곳
헤브론을 수도로 정했고 그 후 그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그곳을 전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았다.

- 헤브론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태어나고 자기 아버지에게 반기를 든 곳이기도 하다
(2사무 15,10).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에 유배되었을 때 이 도시는 이두매아인들의
지배를 받았으나 유대인 마카비우스에 의해 탈환되었다. 이곳은 티투스황제에 의해 예루
살렘이 파괴되기 이전에 이미 로마 장군 체레알리우스에 의해 점령되어 불태워졌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회교도들이 지배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하느님의 친구’로 경배 받던
아브라함과 연관된 이 지역을 그들의 네 번째 성지로 정했다. 12세기에 와서 이곳은
십자군에 의해 다시 탈환되었고, 그 후 라틴 주교가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 그 후 살라딘이
지배했고 1517년에 터키의 소유로 넘어가서 400년 동안 그들의 통치를 받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1917년에 연합군에 점령되었다. 헤브론은 유대인의 4대 성지중의
하나이며 현대에 와서 유대교육의 중심지가 되었다.

< 51. 아브라함 이슬람교사원 (The mosque of abraham) >

-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웠던 헤로데왕이 헤브론의 막펠라 동굴 위에 이 아름다운
성전을 세웠다. 큰 돌을 놓아 만든 이 성전의 기초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이 돌
중에서 어떤 것은 길이가 무려 6m가 넘는다. 이런 돌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서벽’에서도
볼 수 있다. 지상에서 12m까지의 바깥쪽 벽은 B.C. 1세기경, 즉 헤로데 시대 때 건축된
것이고 그 윗부분은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 그리고 이집트 노예기병에 의해 건축된
것들이다. 막펠라 동굴 남쪽 부분에 위치해 있는 회교사원은 원래 비잔틴 교회의 잔해
위에 십자군이 세운 교회였다. 이 사각형 건물(길이 40m, 폭 30m)은 헤로데 왕에 의해
지어진 유대성전이었는데 4세기 때 비잔틴 교회가, 그리고 7세기에 이슬람교사원이
들어 섰다가 십자군에 의해 교회로 개조되었고, 또 다시 살라딘에 의해 이슬람교사원으로
개조되었다.

< 52. 막펠라 동굴에 있는 무덤 (The tombs in the cave of machpela) >

- 막펠라 동굴 위에 있는 회교사원의 건물은 주로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것이다.
사원 바로 밑에는 6명의 족장과 부인의 무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회교도들은
이 무덤을 최고로 성역시하며 무덤 내부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아브라함과
이사악, 야곱의 무덤은 초록색과 금색의 천으로 덮여 있고 사라와 리브카, 레아는
진홍색 천으로 덮혀있다.

< 53. 나자렛 (Nazareth) >

- 성지 중에서도 가장 성스러운 도시 중의 하나인 이곳은 해발 370m에 위치해 있다.
언덕들로 둘러싸인 이곳은 성모영보가 있었고 예수가 자란 곳이다(루카 1,26-35).
여기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이곳에서 예수는
다른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거리와 언덕에서 뛰어 놀며 그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르코 복음(6,3)에서 그를 ‘목수’라고 부른 것으로 미루어 보면 그는 이곳에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30년을 목수일을 하며 지냈다. 나자렛의 좁은 거리와 언덕들은 30년
동안 이곳에서 지냈던 예수 당시의 모습과 같을 것이다. 이웃마을 카나에 사는
나타니엘이 나자렛 예수의 소문을 듣고 “나자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어요?”
라고 놀라워했던 것을 보면 예수시대의 이 작은 마을은 평판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예수는 그의 고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루카 4,24). 예수를 해치려고 했던 첫 번째
사건도 이곳에서 일어났다. 회당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의 비판과 엄한 설교를 듣고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그래서 그들은 들고
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몰아냈다”(루카 4,28-29). 그 언덕은 오래전부터
‘추락산’ 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그 일이 있은 후 예수는 나자렛을 떠나 가파르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 나자렛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물이 나오는 우물
(마리아의 우물) 때문에 예로부터 사람들이 모였을 것이다. 예수시대에는 마을보다는
크기 때문에 항상 도시라고 불렀다. 이 도시에서는 극적인 역사적 사건은 없었다.
A.D. 66년에 베스파시안 장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바르 코흐바의 항거가 실패한 후
갈릴래아 지방으로 피난했던 유대인들이 정착하게 되었다. 629년 헤라클리우스 황제는,
614년에 있었던 전쟁에서 페르시아를 도왔다는 이유로 그들을 이곳에서 추방했다.
십자군 시대에 이르러 이 도시는 부흥하기 시작했다. 갈릴래아의 태수 탄크레드는
이곳에 교회와 수도원을 재건했다. 그 후 1187년에 살라딘에게 점령당했고 1263년
칼리프 바이바르스에 의해 파괴된 후 400년 동안 이슬람교도의 지배를 받았다.

- 1620년부터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으며 점차로 커지기 시작했다.
현재 이곳 주민의 대다수는 이스라엘 국적을 지닌 아랍인들이다. 바르 코흐바 대반란
이후 유대인들이 거주했던 나자렛에 4세기 이전에는 그리스도교인들이 들어갈 수
없었다. 5세기 초에 성모영보가 있었던 동굴 위에 교회가 들어섰으나 614년에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파괴된 것 같다. 그 후 탄크레드가 교회와 성당을 로마 건축양식
으로 재건하였으나 십자군이 세운 성당은 1263년 바이바르스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다.
1730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작은 교회를 세웠으며 1877년에는 더욱 확장되었다.
그 후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성모영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던 곳에 걸맞은 성전을
세우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마침내 1960-1968년 사이에 그 꿈이 실현되었다. 그들은
중동지방에서 가장 웅장한 성전 중의 하나를 완성시킨 것이다. 이 공사를 하기 전에
그들은 부지의 발굴 작업부터 시작하여 역사 속에 사라졌던 수많은 유물들을 발견하였다.

< 54. 성모 영보 성당 (The church of annunciation) >

- 이 웅장한 성당은 건축의 대가인 이태리의 건축가 무지오가 설계한 것이다. 그는
한 교회 위에 또 하나의 교회를 얹어, 안에서 서로 통하게 설계함으로써 옛 교회의
유적을 고스란히 보존케 하였다. 아래 성당의 외벽들은 십자군 시대에 지은 성전 터가
혼잡한 거리에 위치해 있으므로 서쪽으로 몇 야드 옮겨졌을 뿐 그 터의 모양을 그대로
따라 세워졌다. 두 성당의 높이가 24m, 길이가 39m이다. 건물의 서쪽과 남쪽 벽면은
육화와 성모영보를 묘사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고, 우아한 돔은 높이가 51m이고
돌로 강화된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지붕은 구리로 덮고 작은 뾰족탑에는 등을 얹어
놓았다. 성모영보 동굴은 옛마을의 남쪽 끝이었던 곳에 위치해 있는데 이 동굴이 성모
영보가 있었던 자리라고 예부터 전해져 오고 있다.

< 55. 마리아의 우물 (Mary‘s well) >

- 마리아의 우물은 성지 중에서 가장 신빙성이 있는 장소 중의 하나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에도 이곳은 이 마을의 유일한 우물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자렛
어린이들이 그랬듯이 틀림없이 예수도 그의 모친 마리아를 따라 이 우물에 물을 길러
왔었을 것이다. 산에서 솟아난 물줄기가 도관을 타고 이곳에 흘러와서 오랜 옛날부터
이 지역 여인들의 손을 적셨다. 희랍정교회는 마리아가 이곳에서 물을 긷고 있을 때
성모영보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이곳에 기념 성당을 세웠다.

< 56. 카나 (Cana) >

- 몇 지역이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카나로 거론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나자렛에서
티베리아로 가는 길목에서 6.4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곳이 가장 유력한 곳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카나는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던 첫 번째 기적을 행했던
곳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지역이다(요한 2,1-11).
카나에는 이 기적을 기념하는 2개의 교회가 세워져 있다.

< 57. 히틴 쌍봉 (The horns of hittin) >

- 이곳의 지명은 두 개의 뿔처럼 생긴 이곳 지형에서 생겨났다. 1187년 살라딘이
십자군에게 치명타를 가해 200여 년간의 라틴왕정을 무너뜨린 곳이 바로 이곳이며
이로 인해 유명해졌다. 이 전쟁에서 2만 명의 그리스도교인들이 전사했고 루지그래앙
왕을 포함한 무려 3만 명이 포로가 되었다. 십자군이 가지고 있던 성 십자가 나무는
빼앗겨 다마스커스로 보내졌다. 이 전쟁의 패배로 십자군의 본거지는 차례차례 무너졌다.

< 58. 티베리아 (Tiberias) >

- 갈릴래아 호수 서쪽에 자리한 이곳은 지중해면 수면보다 205m 낮으며 A.D. 26년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세워졌는데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따서 티베리아로
명명되었다. 헤로데왕은 이곳에 아름다운 궁전과 극장, 금과 대리석으로 빛나는 성전을
지었으며 병을 치료하는 탁월한 효험으로 전 로마제국에 이름나 있던 이곳 온천 위에
공중목욕탕을 세웠다. 티베리아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로 정평이
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요세푸스에 의해 ‘대자연의 야망’이라고 묘사된 곳이기도
하다.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유대인들에게 성스럽게 여겨져 왔었다. 바르코
흐바의 반란 이후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은 이곳으로
이주하여 제2의 예루살렘을 건설하였고, 이 후 위대한 율법학자들이 활동하게 되었다.
A.D. 200년에 미슈나가 편찬되었고 4세기 말경에 예루살렘 탈무드가 완성되었으며
히브리 언어에 모음과 구두법이 소개된 것도 바로 이곳이다. 많은 율법학자들이 이곳에
묻혔다. 위대한 사상가이자 카이로의 살라딘 궁전 의사였던 율법학자 마이모니데스
(1135-1204)는 그의 대부분의 생을 카이로에서 보냈지만 1204년에 그가 죽고 난
후 그의 시신은 이곳으로 옮겨져 매장되었다. 또한 기적을 행했던 사람으로 정교회
유대인들에게 크게 존경받고 있는 2세기경의 율법학자 메이르도 이곳에 묻혀 있으며
이외에 호로비치를 포함한 많은 랍비들이 여기에 묻혔다.

< 59. 갈릴래아 호수 (The sea of galilee) >

- 이곳은 길이 21km, 폭 11.2km, 깊이 39-7m, 둘레 51.2km 정도 되는 호수로
지중해면 보다 206m 아래에 위치해 있다. 이 갈릴래아 호수는 티베리아 호수로
불리며 또한 하프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히브리어로 하프라는 뜻인 키네레트 호수
로도 불린다. 이 호수에는 잉어, 정어리, 메기, 숭어가 풍부하며 지금도 물고기를
어망으로 잡는다. 수면은 깨끗하고 고요하다. 예수 시대 때는 모든 교통의 중심지로
교통이 편리하고 땅이 기름졌으며 아름다운 경치와 온천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었고 또한 많은 사건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이 호수 주변에는 아홉
개의 도시가 있다. ‘자연의 야망’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아름다운 호수가의 언덕과
생동하는 골짜기에서 예수가 ‘하느님의 나라’를 가르치기 시작한 곳이다. 예수가
성서에 기록된 대부분의 활동과 가르침, 그리고 기적을 이곳에서 행하셨다. 베드로,
안드레아, 요한과 그 밖의 제자들을 부른 곳도 이곳 호수가에서였고(마태 8,1-4),
베드로의 배에서 군중들을 가르쳤고(마르 3,7-12 ; 루카 5,1-3), 풍랑을 잠재우고
(마태 8,23-27), 호수 위를 걸으시고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친 곳(마태 15,29-30)
도 이곳이었다. 예수가 12사도를 뽑은 곳은 호수 가까이 있는 산에서였다
(마르 3,13-19).

< 60. 타브가 (Tabgha) >

- 타부가라는 이름은 일곱 개의 샘이라는 뜻의 희랍어 ‘헤프타페콘’에서 나온 것이다.
물이 많이 나는 이곳은 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5000명을
배불리 먹였다고 전해진다(마르 6,36-44 ; 마태 14, 13-21 ; 요한 6, 1-6).
4세기와 5세기에는 연이어 비잔틴 교회가 이곳에 세워졌다. 1936년에 발굴된 비잔틴
교회의 유물 중에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잘 보존된 모자이크가 있다. 제대칸 바닥에는
빵 바구니 양 옆에 물고기가 있는 모자이크가 있고, 또한 성당 바닥에는 호수지역의 새,
물고기, 짐승, 꽃들을 묘사한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있다. 1934년에 비잔틴 교회 터에
새 교회가 세워졌고, 약 180m 떨어진 곳에 ‘그리스도의 식탁’이라 불리는 큰 바위에
현무암으로 베드로 수위권 기념 성당이 같은 해에 세워졌다. 이곳은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 아침 음식을 차려주고 베드로에게 세 차례 “내 양들을 돌보아라”
(요한 21,15-17)하고 사목권을 위임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 61. 카파르나움 (Capernaum) >

- 가파르나움은 요르단강 상류에서 갈릴래아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4km 떨어진 곳이다. 이곳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목이라 병영과 관청이 있었다. 당시
이곳에는 다마스커스에서 비단과 향료를 가져오고 게네사렛 지방의 과실을 가져가는
상인들로 붐볐다. 예수는 자기를 환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치기까지 한 일이 있었던
나자렛을 등지고 가파르나움으로 가, 그 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았다. 그 후 가파르나움은
20개월 동안 그의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복음을 전했고 많은 기적을
통해 그의 사랑과 전능을 보여 주었다. 가파르나움에는 베드로의 집이 있었는데 예수는
이곳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예수는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 주고, 베드로의
장모의 병을 고치고, 백부장의 하인을 낫게 하였고,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통해 내려
보내진 중풍환자를 고쳐주고, 야이로의 딸을 되살리고, 한 여인의 하혈병을 고쳐주고,
소경 두 사람의 눈을 뜨게 하였고, 왕궁관리의 아들을 낫게 하였고, 오그라든 손을 펴게
해주었고, 그에게 온 수많은 사람들을 낫게 했다.

- 그러나 이런 여러 일을 행했던 예수는 꾸짖기 시작했다. “너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
까지 오를 성 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마태 11,23-24). 결국 은혜를
모르는 가파르나움은 예수의 예언대로 되었고, 이 도시의 흔적은 오랜 세월동안 찾을
수 없었다. 오늘날 가파르나움은 호수가에 쌓여 있는 돌무덤뿐이다. 1905년 두 명의
독일 고고학자가 이 지역의 발굴에 나섰고, 1926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마무리 되었다. 이들의 발견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이 지역에 있었던 회당의
유물들이다. 이 회당은 드나들던 회당의 기초 위에 4세기에 새로 지은 것이다. 이곳의
돌에는 로마 시대의 상징을 비롯하여 고대 유대인들의 상징들인 다윗의 별과 수양의 뿔,
계약의 궤와 메노라 촛대 그리고 유대 땅의 상징인 종려나무가 새겨져 있다. 이 상징들은
첫 번째 회당이 세워졌을 때 만들어진 것도 있을 것이고, 이 후 다시 재건될 때 새겨진
것도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곳에서 예수가 기적을 행하고, 가르쳤고, 기도
했기 때문에 이곳을 성스럽게 생각한다.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이 후 발굴작업을 계속
하여, 5세기 경 이곳에 세워졌던 한 교회의 부지가 성 베드로 집터라는 의견을 제시
하기도 했다.

< 62. 산상 수훈 기념 성당 (The mount of the beatitudes) >

- 이곳은 예수가 불멸의 산상 수훈과 진복팔단을 행한 장소로 전해지고 있다. “행복
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 ”(마태 5).
1937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주변의 아름다운 호수를 배경으로 하여 이 산상에
산상수훈 기념 성당을 세웠다.

< 63.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Caesarea philippi) >

- 예수가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까지 왔던 일이 있다. 지금의 이름 바니아스는
희랍의 신인 판의 신전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희랍어로 ‘파니아스’라고 하는 말이
변음된 것이다. 이곳은 헤로데 왕에 의해 아름다운 도시로 꾸며 졌으며 그의 아들
필립에 의해 가이사리아로 명명되었다. 이곳에서 베드로가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 64. 막달라 (Magdala) >

- ‘탑’이라는 의미의 막달라는 티베리아에서 북쪽으로 6.4km 떨어진 곳에 있다. 현재는
조그만 어촌에 불과 하지만 예수 당시에는 상당히 중요한 도시였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4만 명의 주민과 230척의 배가 있었다고 한다. 요세푸스는 로마로 투항하기 전에 이 도시를
방어했던 독립군 지휘자였다. 이 도시가 티투스에게 함락되었을 때 6000명의 유대인이
죽었으며, 건강한 청년 6000명이 네로에게 넘겨져 코린토 운하공사에 동원되었고, 3만
명이 노예로 경매되었다. 막달라는 막달레나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예수로
부터 병과 악귀의 물리침을 받은 후 예수의 충실하고 헌신적인 추종자가 되었다(루카 8,2).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갈바리아산에 따라 가고, 예수 부활 첫날에 예수의 무덤을 제일
먼저 찾았으며, 부활한 예수를 제일 먼저 본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요한 20, 1-14).

< 65. 이즈르엘 계곡 (The valley of jezreel) >

- 이즈르엘 계곡은 북으로 갈릴래아 산맥에서 시작하여 남으로 사마리아 산맥까지
펼쳐져 있으며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계곡이다. 각 면의 길이가 24km, 24km, 32km인
삼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 현재와 마찬가지로 과거에도 비옥하기로 이름나 있었던
이곳은 ‘이스라엘 빵바구니’로 불린다. 비옥한 땅과 더불어 전략적으로 중요했던 이
지역은 고대에서부터 많은 싸움이 벌어졌던 유명한 전쟁터 중의 하나로 국가의 운명이
걸렸던 싸움이 무려 20번 이상이나 있었다. 이곳에서 그리스, 로마, 아랍, 십자군,
터키가 싸웠고 최근에는 1차 세계대전 중에 알렌비 장군의 영국군이 이곳에서 싸웠다.
…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루카 12,27).

< 66. 타보르산 (Mount tabor ) >

- 해발 570m인 이 산은 이즈르엘 평야 위에 480m나 우뚝 솟아 있으며 갈릴래아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인 산이다. 시편 89장에 다윗은 “타보르와 헤르몬이 당신 이름에
환호합니다 ”라고 노래하였다. 고대로부터 이 산은 북방민족들과 경계를 이루고 있었
으며 예언자 데보라의 예언대로 바락이 가나안 군대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던 하느님
영광의 산 증거로서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성스러운 산이었다. 산기슭에 있는 아랍 마을
‘다보리예’는 여 예언자 드보라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특히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성스럽게
여겨지는 이 산은 예수가 당신 모습을 변화시켰던 곳이다(루카 9,28-36). 길이 1170m,
폭 405m의 산정 둘레에는 13세기 때 회교도들이 세운 요새의 흔적들이 있으며 1924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이곳에 있었던 교회를 보수하고 재건하여 새 교회를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변모 기념 성당’이다. 정상에는 십자군 교회뿐만 아니라 옛 요새와 수도원
들의 흔적을 볼 수 있으며 이곳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경관은 장관을 이루고 있다.

< 67. 므기또 (Megiddo) >

- 므기또는 이즈르엘 벌판의 남쪽 가장자리에 있다. 일명 ‘바다의 길’로 불리우는 이 길은
이곳 벌판에서 시작하여 길고도 좁은 골짜기를 통과하여 해변에 위치한 샤론 평야에까지
펼쳐져 있다. 이 좁은 길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 므기또는 전략적인 거점이며 이집트 등의
남쪽나라와 북쪽의 시리아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지중해 연안의 비옥한 땅을
차지하려는 사람들과 북쪽과 동쪽에서 침입해 오는 서방 민족들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므기또를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전투는 불가피했었다. 이집트인,
가나안인, 팔레스타인인, 이스라엘인, 아시리아인, 그리스인, 로마인, 페르시아인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인들이 이곳에서 전투를 벌였다. 1917년 알렌비 장군은 전략적인
중요성을 알고 므기또를 대 터키전의 작전본부 기지로 정했다. 이곳에서 수많은 전투가
있었기 때문에 이곳은 전쟁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이 세상의 마지막 운명을
결정 짓는 싸움이 이곳 므기또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므기또는 고대 이집트의 기록에 최초로 등장한다. … B.C. 10세기에 솔로몬은 특별
과세를 거둬들여 도시를 재건하고 요새화했다. 그 후 이곳은 당대 번성했던 도시중의
하나가 되었고, 그의 왕국의 방어벽 구실을 했다. 이곳에서 유대의 왕 아하즈야가 예후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위대했던 요시아왕이 이집트왕 파라오 느고가 유프라테스로 진격하는
것을 저지하다가 전사했다. “부하들은 죽은 왕을 병거에 모시고 무기또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와 그의 무덤에 안장하였다”(2열왕 23,30). 므기또는 1926년까지 시카고 대학의
학회에 의해 발굴되었다. 약 16,000평의 땅을 발굴한 결과 20개의 도시가 위아래 수직
으로 겹쳐져 있는 유적지들을 발견하였는데 각 도시의 유적들은 각 층마다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은 450필의 말과 150대의 전차를 수용할 수 있었던
솔로몬의 마굿간과 식량저장소, 부서진 성벽, 시대 별로 발견된 집들과 성문들의 기초이며
아주 절묘하게 다듬어진 상아는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것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진 수로시설이 있는데 수직 갱도를 40m나 파내려간 다음 그곳에서부터
65m 정도 떨어진 성벽 바깥쪽 샘까지 터널을 만들어 물을 끌어 들였다. 그리고 샘은
침입자들이 발견하지 못하도록 흙으로 덮어 위장해 놓았다.

< 68. 카르멜산 (Mount carmel) >

- 카르멜산은 높이 540m, 길이 25.6km, 폭 6~8km 정도 되며 지명은 하느님의
포도밭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가렘엘’에서 유래되었다. 과거에 포도밭으로 덮혀 있었던
이 땅은 비옥함으로 항상 이름나 있던 지역이다. 일년내내 푸른 빛을 유지하고 있는
이곳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매혹적인 곳이며 예로부터 아름다움의 상징처럼 되어 있었고
예언자들의 은총이 가득한 곳이었다. 이 산의 정상에는 예로부터 여러 신들이 모셔졌다.
이곳에서 예언자 엘리야와 바알의 예언자들이 겨루었는데, 그들의 주문은 실패하고
예언자 엘리야의 기도는 응답을 받아 하늘로부터 주님의 불이 내려 번제물이 타 버렸던
장소이다(1열왕 18). 그리고 해안쪽에 있는 카르멜산 기슭에는 엘리야가 아합왕의
노여움을 산 후 피신했던 동굴이 있다고 믿어지고 있다(1열왕 19,8-13). 유대인 뿐만
아니라 회교도와 그리스도교인들도 이 장소를 아낀다. 그들은 모두 엘리야를 그의
일신교의 영웅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13세기때 이곳에 엘리야를 수호성인으로 모신
카르멜 수도원이 설립되었다.

< 69. 하이파 (Haifa) >

-20세기 초에 인구 약 만명이었던 이 도시는 현재 인구 22만 5천명으로 이스라엘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했다. 지중해 연안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만(灣)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이스라엘의 주요 항구와 가장 큰 공업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이스라엘에서
가장 매혹적인 카르멜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도시의 기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단지 유대교 율법책에 A.D. 3세기 때의 이 도시가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조금만 마을이었던 이 도시는 전쟁을 포함한 역사적인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으며
십자군과 아랍, 터키, 영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1898년 시오니즘의 창시자 ‘테오도로
헤르츨이’가 하이파가 앞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언한 후 수 천명의 사람들이 이주해
들어와 오늘날 이스라엘의 주요도시로 변모하였다. 이 도시는 약 2백만명의 바하이교도
들의 중심지이다. 이 바하이교는 1844년에 페르시아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지도자들이
아코로 추방되었엇다. 그들은 전 인류의 형제됨과 모든 종교의 통합과 세계 공통어를
주장하며 하느님이 보낸 마지막 선지자는 그들 종교의 창시자인 ‘바하울라’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이 도시를 성도로 여기고 있으며, 이곳에 아름다운 성전을 지었다.

< 70. 아코 (Acre) >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위 하나인 아코는 아세르지파의 마을이었던 아코라는
이름으로 성경에 등장한다(판관 1,31). 이곳은 원래 가나안인의 땅이었으나 바다를 통해
이즈르엘 평야를 침입하려고 했던 페니키야로 넘어갔다. B.C. 3세기경 그리스인들이
이곳 지명을 ‘프코레마이스’로 바꾸었는데 사도 바오로가 예루살렘으로 가던중 이곳을
들렸을 때의 지명이 바로 프롤레마이스였다(사도 21,7). 오랜 세월동안 여러 민족의
손이 거쳤던 아코는 십자군 시대 때 일대 변혁을 맞이했다. 1104년 볼드윈 1세는
항구를 확보하기 위해 이 도시를 점령하고 이곳을 요새화하였으며 팔레스타인 지역의
로마 왕정의 주요 전진기지로 만들었다. 그 후 아코는 방문하기 위해서 또는 기도하기
위해서, 싸우기 위해서 성지로 들어오는 모든 유럽인들이 거쳐가야 했기 때문에 가장
큰 항구로 번창해 나갔다. 1187년 히틴에서 싸움이 있는 후 이 도시는 살라딘에게
넘어갔고 2년 후 큰 전쟁 끝에 그리스도교인들이 이 도시를 다시 점령하였다. 그리고
십자군은 아코를 그들 왕정의 수도로 삼았다. 이 후 아코는 1291년 술탄 알 아시라프의
공격이 있기까지 100년 동안 크게 번성했다. 그는 20만 군대로 이곳을 포위하여 잔혹
하게 주민들을 죽이고 도시를 불태워 버렸다. 1291년 아코가 술탄에 함락됨으로써
1099년에서 1291년까지 200년간 계속되었던 십자군의 라틴 왕정은 마감되었다.

- 술탄은 서방세력이 이 지역에 들어오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아코를 완전히 파괴
시켰다. 1775년 아코는 그의 잔혹성으로 인해 ‘백정’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흐메드
알 야자르에 의해 재건되었다. 1799년 나폴레옹은 이 도시를 포위하였으나 당시
알 야자르와 시드니 스미스경의 지휘하에 있었던 영국함대의 방어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다. 이로 인해 나폴레옹은 동양제국의 꿈을 버리고 이집트로 퇴각하였다.
1832년 이집트의 아브라함 파샤가 이 도시를 장악했으나 8년 후에 터키의 유럽
동맹군의 포격을 받고 이집트로 물러갔다. 이 후 아코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하이파 그늘에 가려져 버렸다. 현재 아코는 새로 이주해온 유대인이 주로 거주하고
있으며 소수의 회교도와 그리스도교인들이 있다. 유적으로는 17번의 전쟁으로 남은
십자군과 터키인들의 흔적뿐인데, 이중 성 요한의 자선기사단의 큰 식당으로 생각되고
있는 성 요한의 지하실이 십자군 시대 때의 중요한 유적이다. 터키 시대의 유적으로는
알 야자르에 의해 건축된 성채가 남아 있다. 이곳에는 십자군 시대의 성당자리에 현재
이스라엘에서 가장 웅장한 회교도 사원이 들어서 있다. 이 사원 옆에는 사원을 지었던
아흐메드 알 야자르와 그의 후계자 슐레이만 파샤의 묘가 있는 둥근 지붕의 건물이
서 있다.

< 71. 카이사리아 (Caesarea) >

- 지중해 연안에는 ‘스트라토의 탑’으로 불렀던 페니키아의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이곳에 B.C. 20년에 헤로데 대왕이 카이사리아 도시를 세웠다. 당대의 건축가들과
조각가들이 동원되어 12년간에 걸쳐 완공된 이 도시는 팔레스타인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하나이자, 당시 가장 주목 받는 항구의 하나가 되었다. 이 도시는 화려한
궁전들과 공공건물, 시장, 웅장한 대리석 신전, 원형경기장으로 아름답게 꾸며졌다.
헤로데왕은 이곳에 큰 배가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는 인공부두까지 설치하였다. 큰
돌로 바다를 매립하여 폭 60m의 반원형 부두를 만들고, 로마 황제 아우구스티누스
케사르의 이름을 따서 이곳을 카이사리아라 불렀다. 헤로데왕이 죽은 후 로마의 통치를
받게 된 카이사리아는 그 미관 때문에 로마 총독들의 거주지로 선택되었다. 이곳에
살았던 본시오 빌라도는 과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건너갔고, 그 곳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의 이름이 새겨진 돌이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 카이사리아는 약 500년 동안 팔레스티나지역 로마정부의 수도 역할을 담당했다.
복음전파자인 필립보는 이곳에서 살면서 복음을 전하였는데(사도 8,40), 이방인으로
첫 번째로 개종한 고르넬리오에게 복음을 전하고(사도 10,41), 사도 바오로가 2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면서 아그리빠를 비롯하여 여러 높은 사람들에게 부활한 예수를
증거했던 곳도 이곳이다(사도 26). 그리고 A.D. 66년에는 유대인들과 로마의 원조를
받은 시리아인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였는데, 이 때 2만 명의 유대인이 무참히 살육
당했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거센 유대인의 반란이 일어났지만 결과는 예루살렘과
제2성전의 파괴로 끝났다. 69년 베스파시아누스가 이곳에서 황제로 즉의했고, 3세기에
유명한 그리스도교 학자 오리게네스에 의해 그리스도교 학문의 중심지로 변하였다.
카이사리아는 638년부터 회교도의 지배하에 들어갔다가 1102년에 십자군에 의해
탈환되었다. 1252년 프랑스 루이 9세는 이 도시에 성벽을 쌓았으며 뚝을 쌓아 올리고
해자(垓字/주위를 둘러서 판 못)를 둘렀다. 1291년 이집트의 바이바르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이것이 카이사리아의 종말이었다. 이 도시는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해변의
모래 언덕에 파묻혀 갔다.

- 1956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고고학자들은 이곳 카이사리아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화려했던 이 도시의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중 중요한 유물로는 로마 시대 때
만든 반원형 극장으로 지금은 많은 부분이 보수되어 음악회 공연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19km 떨어진 산까지 연결되어 있었던 수로들이 발견되었으며, 2만 명의 관중들을
수용할 수 있는 있었던 길이 300m의 경마장과 본시오빌라도의 이름이 새겨진 돌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그 유명한 로마 총독임을 증명
하는 증거이다. 루이 9세에 의해 만들어진 성벽은 폭이 9m되는 해자와 이 해자로부터
9~14m 높이까지 올라오는 경사진 뚝으로 이루어져 있다. 십자군 시대 때 이 도시의
면적은 43,000평이었으나 로마 시대 때는 그 여섯 배나 되었다.

< 72. 텔 아비브 (Tel-Aviv) >

- ‘봄의 언덕’이라는 뜻의 텔 아비브는 1909년 황량한 모래 언덕 위해 세워졌으며 현재
40만의 인구를 가진 이스라엘 제2의 도시이다. 인구의 대부분인 유대인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이곳은 상법, 공업, 그리고 문화의 중심지이다.

< 73. 야포 (Jaffa) >

- 야포(요빠)는 텔아비브 남쪽에 있으며 인구 6만이다. 텔아비브와는 달리 3600년
전부터 역사에 등장해 왔으며, 초기 이집트와 아시리아인들의 문서에 기록되어 있다.
“요나는 주님을 피하여 타르시스로 달아나려고 길을 나서 야포(요빠)로 내려갔다”
(요나 1,3). 이곳은 고대로부터 이 지역의 중요한 항구였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
이었다. 이곳을 통해 솔로몬의 성전을 세울 때, 그리고 즈루바벨이 성전을 다시 지을 때
사용한 레바논의 삼목재가 들어왔다. 사도 베드로가 타비타를 살리고(사도 9,36),
하느님이 사도 베드로에게 나타나 이교도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라고 일러준 곳도
이곳이다. 오늘날 이곳은 화랑과 보석상, 그리고 보석 가공소로 붐비는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 74. 예리코 (Jericho) >

- 예리코는 북쪽 헤르몬산과 남쪽 아카바만 사이 450km에 달하는 거대한 지역에
땅의 균열로 생겨난 요르단 계곡에 위치해 있다. 이 땅의 균열은 케냐와 탄자니아를
지나 모잠비크까지 이른다. 이 저지대중 제일 낮은 지역인 사해는 지중해면 보다
390m가 낮은 지대로, 지상에서 제일 낮다. 예루살렘에서 40km 정도 떨어져 있고,
해발고가 낮은 요르단 계곡은 덥고 아열대성 기후를 가지고 있다. 요르단 계곡 중간에
태양이 내려 쪼이는 갈색 사막의 한 가운데에 카펫처럼 자리 잡고 있는 푸른 숲이
있는 곳이 예리고이다. 예로부터 이곳은 비옥하고 기름진 땅으로 오렌지, 바나나,
대추야자가 풍성한 것으로 이름나 있으며 ‘종려나무 도시’로 불렸다. 이곳은 여름에는
매우 덥고 건조하지만 겨울과 봄에는 각종 꽃들의 향기로 진동한다. 땅이 기름진
이곳은 B.C. 7000년 내지 B.C. 10000년대 문명의 요람지였으며, 지금까지 발견
된 도시중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도시로 생각되고 있다. 1952년부터 1956년
사이에 캐서린 캐년에 의해 발굴된 자료를 근거하여 볼 때, 수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도시의 잔해가 계속 쌓여 높이 약 24m, 넓이가 약 12,000평이나 되는
‘텔(Tell)’이라고 하는 언덕을 구축했다. 발굴작업의 결과, 이곳은 시대별로 쌓여진
지층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밝혀졌다.

- 예리코의 역사 기록은 B.C. 13세기경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된 땅에 도착함으로써
시작된다. 이곳은 여호수아가 요르단 강을 건넌 후에 처음으로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
정복된 도시이다(여호 6). 여호수아는 예리코성을 불태우고 함락시킨 후 후세에
이곳을 재건할 사람들에 대해 저주를 내렸다(여호 6,26). 몇 세대가 지난 후 베텔사람
히엘이 예리고를 재건하려 했을 때 이 여호수아의 저주가 그에게 내려졌다(1열왕 16,34).
이 후 예언자 엘리사는 주민들의 간청에 의하여 샘터에 가서 소금 한 줌을 던져 넣어
이곳 샘물을 정화하였다(2열왕 2,19). 예리코의 푸른 오아시스의 생명수인 이 샘은
역사를 통해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예언자 엘리사의 이름을 따서 ‘엘리사의 샘’이라고
불렀다. 이 샘은 옛 예리코에서 길 건너편에 있으며 당시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 이용
되었기 때문에 과월절에 예루살렘으로 떠나곤 했던 예수가 여러 차례 머물렀을 것으로
추측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들에게 수난과 부활을 세 번째로
예고(마태 20, 17-19)하신 장소도 필시 이곳이었을 것이다. 이곳 예리코에서 소경을
눈뜨게 했고(루카 18,35-42), 키가 작은 세관장 자캐오가 예수를 보기 위해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예수가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겠다.”(루카 19)라고 말한 곳도 이곳이다.

< 75. 유혹의 산 (The mount of temptations) >

- 예수는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후 곧 유혹을 받았다.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서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영에 의해 광야로 인도되어 …(루카 4,1-13 ;
마르 1, 12-13). 성경을 포함한 그 어디에도 예수가 사십일 동안 유혹을 받았던 장소가
정확히 나타나 있지 않다. 옛 예리고성 뒤에 솟아 있는 과란타나산은 예수의 첫 번째와
세 번째 유혹을 당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산의 정상은 악마가 온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예수에게 주겠다고 유혹한 최후의 시험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 산 동쪽 편
중턱에 예수가 기거했던 것으로 알려진 동굴 위에 6세기에 교회가 세워졌다. 이 교회는
13세기 때부터 버려져 있었는데, 1874년 희랍정교회가 이 자리에 수도원을 세웠다.

< 76. 요르단 강 (The river jordan) >

- 눈 덮인 헤르몬산 아래에서 시작하여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요르단 강은 특이한
물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강의 직선거리는 단지 104km 밖에 되지 않지만 꼬불꼬불
돌아 흐르기 때문에 총 길이가 256km나 된다. 이 강은 헤르몬산 네 곳에서 지하수가
솟아 요르단 강이 형성되어, 사해로 흘러 들어가기 때문에 알 우르단(내려오는 강)
이라는 뜻을 가진 요르단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평균 폭이 30m 되는 요르단
강은 구약 시대뿐 아니라 신약 시대에도 성스럽게 여겨졌다. “낙타털로 만든 옷을
걸치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르고, 양식으로 메뚜기와 들꿀을 먹는 요한이 나타나
요르단 강변에서 설교를 하고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때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갈릴래아로부터 요르단 강으로 찾아 오셨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즉시
물에서 올라오시니 마침 하늘이 열리고 또한 그분이 보시니 영이 비둘기처럼 내려와
당신 위에 이르렀다. 이 때 하늘에서 소리가 울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하였다(마태 3, 마르 1, 루카 3).

- 예수가 세례를 받은 곳은 예리고에서 동쪽으로 약 8km 떨어진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예수가 이 강에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스러운 강이
되었으며, 예로부터 그리스도교인들이 경건한 마음과 믿음으로 이 강물에서 몸을
씻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요르단 강에 와서 하얀 가운을 걸치고 목욕을 한 뒤 이 옷을
그들의 수의로 사용하기 위해 집으로 가지고 간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장소 근처에서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민족이 강을 건너 침입해 들어갔다(여호 3,13-17).
예언자 엘리야가 불 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곳도 이 근처이다. “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면서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2열왕 2,11).

< 77. 사해 (The dead sea) >

- 사해는 길이 75km, 폭 16km, 수면 면적이 900㎢이고 최대 수심은 380m 정도
된다. 지중해면 보다 390m 낮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지상에서 가장 낮은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어떤 생물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죽은 바다, 즉 사해
(死海)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의 바닷물은 세계에서 가장 짠 물로 되어 있는데
보통 바닷물 염분농도가 4-6%인데 비해 무려 5배나 많은 26%의 염분농도를 가지고
있다. 요르단 강을 비롯한 여러 지류로부터 황과 질소성분을 함유한 수만 톤의 물이
쏟아져 들어와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고 이곳에 고여 있기 때문에 화학물질 침전
현상이 생겨났다. 이런 풍부한 광물이 포함된 사해는 병의 치료에 독특한 효험을
나타낸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곳에는 10억 미터톤에 달하는 염화칼슘과 마그네슘,
나트륨, 칼륨 등이 용해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의 비중은 1166으로써 사람의 몸이
물속에 가라앉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혀 몸동작을 하지 않아도 물 위에 떠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 78. 쿰란 (Qumran) >

-1947년 사해 서쪽 지역에서 길 잃은 양을 찾아 헤매던 한 베두인 사람이 이 시대
최대의 발견인 그 유명한 사해 두루마리를 발견했다. 모하메드 에디브라는 이 아랍
양치기는 잃어버린 양을 찾던 중 어떤 동굴에 무심코 돌을 던졌다. 그러자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에 놀란 양치기는 이 동굴에 마귀가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무서워서
도망쳐 버렸다. 다음날 그의 사촌과 같이 다시 동굴에 들어간 양치기는 그 안에서
8개의 항아리를 발견했는데 그 중 몇 개는 뚜껑이 덮여 있었다. 이것을 바깥으로
가져와 금이 들어 있기를 기대하며 열어 보았으나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글자가
쓰어진 가죽뭉치만 있는 것을 보고는 실망해 버렸다. 총 7개의 두루마리가 들어
있었는데, 양치기는 그것을 칼릴칸도라고 하는 시리아 정교인에게 가지고 가서 팔아
넘겼다. 칸도는 그 중 4개의 두루마리를 예루살렘에 사는 시리아 정교회 대주교에게
보였다. 대주교는 4개의 두루마리가 히브리어로 쓰여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즉각
사들였으며 두루마리가 매우 귀중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미국으로 건너가 이겔
야딘이라는 교수에게 25만 달러를 받고 팔았고, 그 후 이스라엘로 옮겨졌다. 이 거래는
야딘의 아버지인 엘리자 슈케닉 교수가 베들레헴에서 나머지 3개의 두루마리를 이미
사들인 후였다. 이 두루마리들은 현재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박물관에 있는
고문서고에 보관되어 있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곳은 가로 세로 0.3m, 7.2m인
이사야의 두루마리이다. 이 후 요르단 왕국 암만 박물관장 하딩교수의 성서 연구소장
드보 신부와 많은 베두인 사람들은 두루마리의 높은 가치를 알고 사해 서쪽 지역을
뒤지기 시작했다. 1952년 이 지역 30개가 넘는 동굴에서 900개가 넘는 두루마리를
발견하였으며 꿈란에서 9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4호 동굴에서 가장 많은 필사본을
발견하였다. 그 중에는 가죽과 파피루스에 쓰여진 두루마리 외에 구리에 쓰여진 것도
두 개 있었다.

< 79. 에쎄느파 (The essenes) >

- 요세푸스와 플리니우스에 따르면 사해의 두루마리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에쎄느파
사람들이라고 한다. 에쎄느파 사람들은 당시 부패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사해 주변의
뜨거운 사막으로 이주했던 종교적 집단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버리고 이곳 사막에서
기도와 학습, 명상과 자선, 시 등에만 몰두하는 엄격한 생활을 했으며, 모든 재산을
수도원에 헌납하고 완전한 집단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이들을 가리켜 요세푸스는 ‘완벽한
공동체’라고 묘사했다. 기원 100여 년 전에 꿈란지역에 정착한 그들은 B.C. 31년에
있었던 지진으로 이 지역이 파괴되어 이곳을 떠나야 했다. 30년이 지난 뒤 다시 돌아온
그들은 작은 마을을 재건하고 재정착했다. 이들은 A.D. 68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유대인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진격하던 티투스의 군대에게 무참히 살해당하고
말았으며 로마 군대가 몰려 왔을 때는 그들의 소중한 보배인 성서를 주변 동굴에 급히
숨겨야만 했다. 어떤 것들은 사람의 발길이 잘 닿을 수 없는 절벽 동굴에 숨겼는데
1947년 우연히 발견될 때까지 뜨거운 사막이 그들의 비밀을 2000년 동안 지켜주었던
것이다.

< 80. 쿰란의 유적 (The ruins of qumran) >

- 에쎄느 종파의 개인 거처는 수도원 본부 근처의 오두막과 천막, 또는 동굴이었다.
이 수도원 본부가 발견된 후 1951년에서 1956년 사이에 발굴작업이 있었다. 이 결과,
크고 거칠게 다듬어진 돌로 만든 길이 36m, 폭 27m의 건물 터가 발견되었다. 이 건물
북쪽 방향에는 3층 높이의 방어탑이 세워져 있었고 식당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길고
좁다란 방에서 도기 접시들이 발견되었다. 식당 옆에 있는 방에는 1600개가 넘는
도자기 그릇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부엌이었던 것같다. 가장 흥미를 끈 것은 긴 의자와
책상이 있는 기록실이었다. 이곳에서 청동이나 진흙으로 만든 잉크병이 발견되었는데
청동 잉크병에는 잉크가 굳어 있었다. 이 중심 건물 주변에는 이들의 마굿간과 도자기를
굽던 장소, 방앗간과 수로를 이용하여 산의 빗물을 끌어서 저장했던 7개 저수지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 이 지역 동쪽에는 약 1100개의 무덤들이 모여 있는 공동묘지가 있다.

< 81. 마싸다 (Massada) >

- 사해의 서해안으로부터 약 4km 되는 유대의 광야에 마싸다 암반 요새가 우뚝 솟아
있다. 길이 800m, 넓이 198m, 높이가 사해 해면에서 600m이고 깊은 협곡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산줄기와 분리되어 있다. B.C. 2세기 중엽에 알렉산더 안네우스
대사제가 처음으로 마싸다 정상에 요새를 세웠다. 그 후 B.C. 40년에 헤로데 대왕이
자신의 말대로 유대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싸다 정상에 거대하고 웅장한
요새를 만들었다. 그는 또한 안토니우스에 의해 자신이 폐위될 경우에 대비하여 거처로
사용하려고 그 곳을 화려하게 꾸몄다. 이 요새의 내부에는 창고들과 병영, 병기고,
빗물을 저장하는 저수지와 왕궁의 각종 편의시설들이 있었다. 이 성은 뛰어난 건축술의
걸작품이었다. 마싸다는 유대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는 성지가 되었다. 이곳은 포로가 되기보다는 죽음을 택한 장소로서
용기와 영웅심의 상징이 되었다.

- A.D. 70년 로마군이 팔레스티나 전 지역을 함락시키고 예루살렘을 초토화시켰을 때
엘레아자르 벤 야이르가 거느린 유대 열혈단이 마싸다로 진격해 가서 로마 수비대를
무찌르고 그 곳을 점령했다. 그 후 예루살렘에서 도망쳐 나온 소수의 유대 열혈단원들이
합류하였고 그들은 대로마 항쟁을 계속하기로 결의하고 이곳 마싸다를 기지로 삼아
전투를 벌였다. 72년에 로마의 실바 장군은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요새를
함락시킬 결심을 했다. 그는 그의 최강의 장병들로 편성된 제 10여단을 포함한 예비
군대와 식수, 식량을 운반할 수천 명의 포로들을 거느리고 이곳으로 진격해 왔다. …
수개월 동안 로마군은 요새에 공격해 들어갔으나 방어가 완강하여 번번이 실패했다.
마침내 로마군은 이동식 사다리를 만들고 파성추(城 파괴 병기)로 성벽을 공격하여
성벽이 뚫리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요새 종말의 시작이었다.

- 요새의 지도자였던 엘레아자르 벤 야이르는 다음날 아침이면 요새가 함락될 것을
알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역사상 가장 극적인 연설을 했다. “인간의 고통은 삶이지
죽음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한번 죽습니다. 이는 겁쟁이든 용감한 이든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가 저들의 노예가 되는 치욕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아내가 능욕당하고 우리 자식들이 노예 생활을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 손 안에 자유가 있고 우리 손안에 칼이 있을 때 우리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죽음을 결행합시다. 영광스럽게 아내와 자식들에게 둘러싸여 자유인으로
죽읍시다. 서둘러야 합니다. 적에게 승리의 기쁨을 넘겨 주지 말고 결연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우리들의 시체를 넘겨줌으로써 영원한 명예는 우리들의 것이 될 것입니다.”
적에게 항복하기 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960명의 영웅적이고도 극적인 종말의
상황을 요세푸스(당시 유대인 출신의 정치가이자 역사가)는 기록하였다. “ … 마지막
으로 남은 한 사람은 시체들을 둘러보고 모두 죽은 것을 확인한 후 불을 지른 다음
그의 가족 곁에 가서 자결했다.”

- 그 다음날 새벽 요새를 공격하던 로마군은 적의 대항이 없자 당황했다. 그들이 성안에
들어섰을 때 눈앞에는 시체뿐이었고 5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숨어 있었던 두 여인으로
부터 이야기를 듣고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 요세푸스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적으로부터 얻어내려 했던 승리의 기쁨은 사라지고 모든 로마군인들은 유대인
들의 마음속에 깃든 기품과 굳건한 미덕을 기렸으며, 거룩한 명분을 위해 죽음도 마다
하지 않은 그들의 행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로마군에게 이 승리는 빈껍데기뿐이었다.”
1955년과 1956년에 이겔 야딘 교수와 여러 나라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마싸다
정상 전 지역에 대한 발굴 작업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이 때 많은 중요하고도 흥미를
끄는 유물들이 발견되었고 많은 학자들 간에 전설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었던
요세푸스의 기록 중 일부가 사실임이 확인되었다.

< 82. 야곱의 우물 (Jacob‘s well) >

- 그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랬듯이 메소포타미아에서 돌아온 야곱은 그리짐산과 에발산
사이에 있는 계곡에 왔다. 그는 이곳의 땅을 사서 천막을 치고 그의 자녀와 양떼들과
그 자신을 위해 우물을 팠다.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마실 물을 청한 것이 바로
이곳인데(요한 40, 사도 요한은 이곳에서 거룩한 대화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를 했다는 기록은 옛 유대기록과 그리스도교인들의
전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우물의 크기는 직경 2m, 깊이 27m이며 물은 연수이다.
4세기경에 이 우물을 중심으로 교회가 세워졌으나 529년에 있었던 사마리아인들의
반란 때 훼손되었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복구되었다. 이 후 다시 파괴당한 이 교회는
십자군에 의해 재건되었고 1187년에 살라딘에 의해 또 다시 파괴되었다. 1860년에
이르러서야 희랍정교회에서 폐허가 된 이 교회를 인수하여 복원하였으며 1914년에
새 교회를 세우기 위한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중단되고 아직 재개되지 않고 있다.

< 83. 사마리아인 (The samaritans) >

_ 나블루스에 사는 240명과 호론에 사는 160명이 전부인 사마리아인은 지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기이한 종파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2500년 동안 순수한
피를 보존해 오고 있다. 같은 민족이었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이 결별한 시기는
바빌론에서의 포로생활에서 풀려나 돌아 온 이후부터이다. 유대인들은 추방을 명한
사마리아인들의 피가 아시리아인들과 섞였다고 보고 유대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돕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사마리아
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증오심을 안은 채 유대인들로부터 독립하여 그리짐산에
그들만의 성전을 지었다. 그들은 성서에서 모세 5경만을 믿고 있으며 양가죽에 기록된
그들의 모세 5경의 고대 필사본은 그들이 가진 것 중에 가장 주목받는 것이다. 그들은
모세 5경이 3600년 전 모세의 형 아론에 의해 직접 씌어졌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학자들은 그들의 책이 A.D. 12세기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마리아인들은 가난하며 어떤 사람들은 정신박약에 걸려
있는데 이는 그들의 근친결혼에 기인한 것같다. 매년 과월절에 그들은 그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그리짐산 정상에서 양을 제물로 바친다.

< 84. 시나이 산 (Mount sinai) >

- “하느님께서는 시나이 산에서 모세와 말씀을 다 하신 다음, 당신 손가락으로 쓰신,
돌로 된 두 증언판을 그에게 주셨다”(탈출 31,18). 시나이산 기슭의 떨기 속에서
불꽃이 일었다고 예부터 전해지는 곳에 카타리나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다. 전 그리스도
교인들에게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는 이곳은 예로부터 순례자와 고행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수도원의 이름은 알렉산드리아의 귀족 출신 성녀 카타리나가 B.C.
5세기경 순교한 후 천사들에 의해 그녀의 시신이 이곳 근처의 카타리나산으로 옮겨
졌다는 전설 때문에 카타리나 수도원으로 되었다. 현재 희랍정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이곳은 1500년 동안 한 번도 훼손된 적이 없는 유일한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독특하고
소중한 초기 이콘들과 3000여 종의 필사본들이 소장되어 있어 고스란히 보존된
그리스도교 역사를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 85. 홍해/에일랏 (The red sea/eilat) >

- 고대로부터 홍해는 아시아와 극동 아프리카와 서방지역을 이어 주는 주요 길목
이었다. 북으로 헤르몬산에서 남으로 아카바반도에 이르기까지 계속 뻗어 있는
균열 때문에 홍해 연안의 수심은 매우 깊으며 이로 인해 이곳은 이상적인 항로일
뿐만 아니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푸른색을 띠고 있다. 산호초가 풍부한 이 깊은
물속은 1000여 종이 넘는 이름 모를 아열대 물고기들의 보금자리이며 스킨 스쿠버와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의 천국이자 때 묻지 않은 보고이다.

참고 : < 신약 시대의 팔레스티나 지도 > - 한국 교회 공용번역본 성경에서

(2012년 성지순례사진 바로가기 클릭) -> 이집트 성지순례(1부) ..... 이스라엘 성지순례(2부)

# 104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105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3.03.25.

[ 책 이름 : 하느님을 만나는 길 ]

- 지은이 : 수도공동체의 ‘기도 학교’ 수사
- 엮은이 : 작은자매전교회
- 엮은이 프로필 : 1951년 이탈리아의 쿠네오에서 가스파리노 신부가 창설한 수도회.
1963년에 한국 진출. 예수의 생활과 같이 가장 가난한 이들 가운데에서 살기를 원하는
형제자매들의 선교단체이다. 현재 진주에 있는 본원을 비롯한 3곳의 분원에서 한국
지부장 지베리아 수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 펴낸데 : 성바오로출판사, 출판 : 1990.07.15, 178p
- 내 용 : 25년간 ‘기도 학교’에서 얻은 경험의 나눔 (‘기도학교’의 길잡이)

[ 표지의 글 ]

기도가 전부는 아닙니다. 모든 것은 기도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기도가 사랑이라는 것을 가르치시고자
했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사랑이란 무엇보다도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에
기도에는 많은 말이 필요 없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말없이, 고통 중에, 일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나 사랑할 때에만 침묵이 기도가 되고, 사랑할
때에만 고통이 기도가 되고, 사랑할 때에만 노동이 기도가 됩니다. 기도의 효능을
저울질할 수는 결코 없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에 성장한다면, 악을
끊어버림에 성장한다면 하느님의 뜻에 충실함에 성장한다면, 그것이 기도의 효력임을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 앞에서 침묵하기를 배우는 사람은 기도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침묵에 견디기를 배우는 사람은 기도
하기를 배우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하느님께 기도의 은혜를 매일매일 청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 머리말 ]

이 책은 학술적인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나온 것이다. 25년 동안 우리의 ‘기도 학교’에서
얻은 경험의 일부를 나누고자 한 것이다. ‘기도하는 것을 배우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실제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 이 책은
이런 질문들에 대해 단순하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대답하고자 한다. … 우리에게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것을 함께 나눔으로써 기도를 새롭게 발견하는 데에
여러분과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 차 례 ]

1. 기도의 필요성, 2. 기도는 사랑하는 것이다. 3. 기도의 단계
4. 기도를 위한 10 가지 규칙 5. 통회하는 것 6. 청하는 것
7. 감사기도 8. 사랑하는 것 9. 시편기도 10. 기도에 대한 인터뷰

[ 몇 가지 실제적 권고 ]

< 기도의 배움터를 열기 위하여 >
- 작은 기도 학교를 열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결심
하여야 한다.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생활을 전하는 것이기에 다만 열심히 항구
하게 기도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기도의 길을 걷는 것은 힘겨운 일이기에
적당한 소그룹으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사람의 힘이 다른 사람의 약함을 메꾸어
줌으로써 끝까지 나아가게 한다. 그룹은 정확한 이정표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개인적으로 우선 15분간 기도하도록 하고 그 다음 30분간, 또 더 나아가서는 한 시간
동안 기도하도록 할 것이다. 공동으로 뚜렷하게 그 목표를 정하는 것은 강한 사람을
위해서나 약한 사람을 위해서나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서로를 나아가게 한다.

- 그룹에 있어 생활나누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의 어려움에 대해서 나누고
다 같이 해결책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기도에 대해서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만으로 충분치 못하다. 그들의 어려움을 숨김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지도자는 그들의 어려움에 알맞은 답을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도는 성령의 은혜이다. 기도 학교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하고 그 각자를 위해 성령의 빛을 항구하게 청해야 한다.

[ 1. 기도의 필요성 ]

< 예수께서는 기도에 대해 많이 말씀하셨다 >
- 말과 행동으로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믿음으로 청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느님께서
항상 들어 주신다고 약속하신다. 예수께서는 당신께 믿음으로 부르짖으며 도움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그리고 기적을 행하시면서 까지 대답하셨다. 또한 예수께서는
기도에 대한 참다운 가르침을 주셨다. * 기도할 때 빈 말만을 하지 않도록 가르치셨고,
이 빈 말에 대해 단죄하셨다.(마태 6,7) *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 기도하는 것을
절대로 하지 말도록 가르치셨다.(마태 6,5) * 기도하기 전에 먼저 용서하여 줄 것을
가르치셨다.(마르 11,25) * 기도에 있어 항구하라고 가르치셨다.(루카 18,1)
*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마태 21,22)

< 예수께서는 기도하기를 간절히 권고하셨다 >
-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생활의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하기를 권고하셨다.
어떤 문제는 우리 힘에 겹다는 사실을 아시고 우리들의 미약함을 위해 기도하기를
권고하셨다. (마태 7, 7-11) * 예수께서는 기도를 핑계 삼아 문제를 회피하라고 가르
치지 않으셨다. 달란트의 비유는 인간은 받은 모든 은혜를 이용하여야만 하고, 한 은혜
라도 땅에다 묻어버리면 하느님 앞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명백히 말하고 있다.
* 그리스도께서는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기도에 잠겨드는 자를 단죄하였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하고 말씀하셨다.

< 예수께서는 악을 방지하기 위해 기도하라고 명하셨다 >
- 예수께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루카 22,40)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기도하기를 명하셨다면 기도는 인간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된다는 표시
이다. 기도 없이 생활 수가 없다. 능력만으로는 부족하고 또한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충분히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인간은 어떤 순간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직접적으로
하느님의 능력을 받아들여야만 할 때가 있는 것이다.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의
모델로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셨다 > 이 기도(마태 6,9-13 ; 루카 11, 2-4)는
그 자체가 기도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한 완전한 길이다. 크리스천들(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신자)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기도로 매일 이 기도를 바치고 있다. 입으로 읊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묵상해야만 하는 기도이다. 이는 하나의 기도라기보다는 기도를
위한 지표라고 해야 한다. 예수께서 친히 분명하게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 가르
치기를 원하셨고 또 우리를 위해 그분께서 친히 만드신 기도문을 우리에게 주셨다면
분명히 이 기도가 중요하다는 표시인 것이다.

< 예수께서는 밤을 새우시며 기도하셨다 >
- 예수께서는 기도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 예수께서는 기도하시기 위해 가끔 사랑의
행위를 보류하셨다.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마르 1,35). * 밤을
새우시며 기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루카 6,12). * 예수님은 자신에게 기도가 아주 중요한 것이었기에
장소와 알맞은 시간을 신중하게 택하셨고 어떠한 일이든 제쳐두고 먼저 기도하셨다.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마르 6,46).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버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루카 9,28).
* “다음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마르 1,35). *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겟세마니에서의 기도이다. “그런 다음 앞으로 조금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셨다”
(마태 26,39). * “예수님께서는 다시 가셔서 …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
(마태 26,44). * 예수께서는 십자가상의 비탄 속에서도 남을 위해 기도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 예수께서는 절망 상태에서도 기도하셨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 시편 22,2). *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면서 숨을 거두셨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 시편 31,6).

< 기도의 필요성에 대한 반증 >
- 크리스천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 명하시는 그 사랑을 실천할 수가 없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아무도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그리스도의 이 계명을 실천할 수 없다. 이 계명을 지킬 때라야만 크리스천
이라 할 수 있다. 이 사랑의 계명은 우리의 능력을 능가하며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
즉 우리 존재, 우리 생활 전체의 참여를 요구하고 이는 우리 인간의 능력보다 우위에
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능력을 자신의 생활 속에 이용하는 것을 배운 사람들이다.

< 두 가지 증언 >
- 생리학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알렉시스 카렐’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 기도는 인격
도야를 위해 인간의 가장 내적인 기능들의 최종적인 완성을 이루게 하는 꼭 필요한
원숙한 행위이다. 기도만이 인간 성장에 힘을 주고 육신과 지혜와 영혼을 조화된 일치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인간에게 미치는 기도의 효력을 과학적인 면으로 증거하길
원했던 심리학자 ‘윌리암 파커’는 “기도는 인간의 인격 회복과 재생을 위해 제일 중요한
수단이다.” 라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기도가 어떠한 나이, 어떠한 때,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당신의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유명한
책을 쓰기도 했다.

[ 2. 기도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

< 그러면 기도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
- 기도의 스승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모델로 주신 주님의
기도를 살펴봄으로써 기도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아듣도록 하는 것은 기도에 관한
그리스도의 생각을 알기 위해 제일 빠른 길인 것 같다. ‘주님의 기도’는 사랑의 기도이다.
이 기도는 일곱 가지의 청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청원은 모두 청원의 행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의해 기도가 사랑임을 알 수 있다. 기도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예수께서는 기도를 아들이 아버지에 대하여 지니는 애정의
관계처럼 가르친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 아버지 당신은 모든 이로부터
환대와 찬미와 사랑을 받으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 아버지 각 사람의 마음속에서
생활하시고 다스리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
“아버지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신 그리스도의 표양에
따라 우리도 실제적인 사랑을 가지게 하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
아버지 저와 그리고 모든 형제들에게 영육에 필요한 당신의 힘을 주소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 아버지, 우리를 용서하시는
동시에 우리 마음이 모든 형제들을 용서하게 하소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 아버지, 당신 사랑에서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 기도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
- 기도하시는 그리스도를 연구함으로써 기도의 본질에 대해 어떤 부분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기도하는 것은 청하는 것이다. * 겟세마니에서 예수께서 간구하셨다. “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 십자가상에서 예수께서는 탄원하시고
구하신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
니다”(루카 23,34). * 십자가상에서 예수께서 읊으셨던 시편 22편도 간절한 청원의
기도이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
*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의 가장 긴 기도는 최후만찬시에 하신 일치의 기도이다. 그
기도 역시 청원기도이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의 표양을 볼 때 기도하는 것이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느님께 구한다는 것이다.

- 기도하는 것은 또한 감사드리는 것이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하고 돌아왔을 때 예수
께서는 감사의 기도를 하셨다. (마태 11,25-26) * 예수께서는 감사드리며 기도하셨다.
예수께서 빵의 기적을 행하실 때 “하늘을 우러러 감사(찬미)를 드리셨다”(마태 14, 19)
… 감사의 기도는 히브리인들이 즐겨 사용하던 기도였다. 히브리인의 어머니들은 자기
자녀들에게 빵 한 조각이라도 먹기 전에 감사드려야 한다고 가르쳤다. 히브리인들의
진실한 신앙교육을 받은 예수께서는 모든 경건한 이스라엘인들이 지키던 종교적인 이
규칙을 지켜야 하셨다.

< 성서를 살펴보자 >
- 성서의 각장에는 기도의 인물들이 산재되어 있다. 그 인물들의 태도와 말을 통해서도
기도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첫째로 성서 속에 기도로 꾸며진 책은 150편의
기도를 수집하여 구성된 시편집이다. 이 책은 이스라엘인들의 공식적인 기도서로서
아주 오래된 기도가 포함되어 있고 성령의 감도를 받은 기도도 포함되어 있다. 시편은
4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 감사와 찬미의 시편 * 흠숭의 시편 * 청원의 시편 * 용서를
청하는 시편. 그러므로 성령의 감도에 따라 씌어진 이 책을 봄으로써 성서가 우리에게
기도를 청하거나, 혹은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그것만이 아니라 흠숭하는 것이고 또한
용서를 청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모세는 이렇게 기도한다.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마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탈출 32, 12-13). “이집트에서 여기에 올 때 까지 이 백성을 용서하셨듯이, 이제
당신의 그 크신 자애에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십시오”(민수 14,19).
다윗은 이렇게 하느님을 흠숭한다. “주 하느님, 당신께서는 위대하시고 당신 같으신
분은 없습니다. 당신 말고는 다른 하느님이 없습니다.”(2사무 7,22). 솔로몬이 기도하기를
“ 주 저희 하느님 …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1열왕 3,23). 그 다음 솔로몬은 이러게 흠숭하고 용서를 청한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위로 하늘이나 아래로 땅 그 어디에도 당신 같은 하느님은 없습니다. …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부디 당신께서는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어주십시오. 들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1열왕 8,23-30).
유딧은 다음과 같은 말로써 하느님께로 향한다. “당신은 오히려 미천한 이들의 하느님,
비천한 이들의 구조자, 약한 이들의 보호자, 버림받은 이들의 옹호자, 희망 없는 이들의
구원자이십니다”(유딧 9,11). 이사야가 기도하기를 “주님, 너무 진노하지 마소서.
저희 죄악을 언제까지나 기억하지는 말아주소서. 제발 굽어보소서. 저희는 모두 당신의
백성입니다”(이사 64,8). 성서에는 또한 사무엘의 어머니인 안나의 기도와 같은 침묵의
기도도 있다.

- 결론적으로 성서를 정독해 보면 기도의 본질이란 인간이 하느님 앞에 있을 때 느껴지는
그 필요성에 따라 가장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형식으로 하느님과 통교하는 것이다. 즉,
죄인이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이 드리는 감사의 기도,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이 드리는 청원의 기도, 하느님의 위대함과 선하심을 관상하는
사람이 바치는 흠숭의 기도이다. 결국 기도란 하느님과의 친밀하고 살아있고 진실하며
깊은 통교의 관계를 말한다. 즉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는 관계이고 말없이 마음과 생각
으로 표현되는 침묵의 관계이기도 하다.

[ 4. 기도의 단계 ]

< 성장의 과정 >
- 기도에는 성장과정이 있다. 어린이가 글 쓰는 법을 인식하지 못할 때도 있으나 확실한
과정을 거쳐 배우게 되듯이 기도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방법이 있고 그 방법을 적용시킬
줄 안다면 성장과 발전이 단계적으로 조화 있게 이루어진다. 기도를 되는 대로 하는 것은
무분별한 일이다. 경험은 우리에게 기도의 성장과정에는 다섯 단계가 있다고 말해 준다.
이는 올라가는 산에 비유할 수 있다.

* 첫째 단계 : 기도가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나쁘게 형성된 좋지 못한 기도,
즉 기도 아닌 기도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식의 기도를 단죄하셨고 거부하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마라”(마태 6,7). 그런데도 이런
식의 기도를 많이 드리고 있다. 아무렇게나 드리는 묵주기도, 급하게 드리는 미사,
습관화된 영성체와 고해성사 등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만연되어 있다. 사실 빈 말만의
기도는 기도의 암이라 할 수 있다. 용기를 필요로 한다. 첫 치료는 그것에 대한 공포를
갖는 것이다. 자신이 병자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병에서 치유될 수 없다.

* 둘째 단계 : 기도할 때 하느님과 함께 이야기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하는 말에 대해
약간의 조심을 하는 것이다. 독백은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자신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것이다. 누구와 통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더불어 말하는 자가 다른 이와 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흔히 사용하고 있는 기도 방법이지만 이것은 위험스러운 기도방법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기도하는 자는 많이 기도한다는 착각 속에 있고 실제로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기도는 우리들의 결점들을 결코 개선시켜주지 않는다. 병을
치료해 주지도 못하고 오히려 양심을 무디어지게 한다.

* 셋째 단계 : 하느님과 함께 대화를 할 줄 알 때 비로소 기도한다고 말할 수 있고
참된 기도의 길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이 들으시고, 우리를 보시고, 사랑
하시며, 답하시는 살아있는 한 인격체로 받아들여질 때 참된 기도의 기도에 들어선
것이다. 이때야 우리 또한 그분 앞에 비로소 존재하게 되고 그분과 참으로 통교하며
그분께서도 우리와 참으로 통교하실 수 있다. 기도가 뜨거워지고 믿음으로 그분께
우리의 문제를 맡기며 그분의 말씀을 듣게 된다. 이 기도의 길을 성실히 걷는 것을
배우는 것이 문제이다. 이것은 정신집중을 필요로 하는 문제이기에 집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느님은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분이 아니다. 하느님은 순수이성이시고
순수한 얼이시기에 나 자신을 영적이고 생각하는 자 되게 할 때만이 그분께 도달할
수 있다.

* 넷째 단계 : (들음) 기도의 절정은 셋째 단계에 있지 않다. 들음에 도달해야 한다.
습관적으로 듣는 기도를 할 줄 안다면 기도의 높은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가끔 잠깐
동안만이 아니라 항구하게 이 경지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정화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고 교만을 꺾어버릴 줄 알아야 한다. 진실하고
참다워야 한다. 자신에게 진실을 말하고, 진리 안에 머물고, 우리 자신 안에 거짓된
면들을 밝혀내는 것이다. … 정상적으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자에게 그와 통교하기 위해 다섯 가지 통로를 이용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정신
(하느님께서 깨닫게 하신다), 의지(하느님께서 원의를 주신다), 감동(하느님께서 우리
들에게 감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느낌을 주신다), 상상(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
하시기 위해 우리들의 상상력을 이용하신다), 기억(하느님께서는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회상하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그 영향을 미치게 해주신다)이다. …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싶다면 하느님의 기록된 말씀, 즉 성서가 있다. 이것은 기도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 다섯째 단계 : (사랑) 이 기도의 단계는 기도의 절정이다. 기도가 사랑으로 바뀌어져
가장 순수하게 되었을 때고, 기도의 생활이 되었을 때이며, 기도가 그분의 뜻에다
완전히 자신을 내 맡기는 것이 되었을 때이다. 기도가 하나의 행위, 하나의 내어드림
이나 봉헌이 될 때를 말한다. 그분을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고, 순박하게 바라봄으로
모든 것을 느끼고, 모든 것을 하고, 모든 것을 바칠 때이다. … 산의 정상이다. 산의
정상에 도달했다 해도 보통 또 다시 내려오게 된다. 산의 정상에서 그 아름다움을
누리고 나서 미약한 우리는 내려오지만 성인들은 그곳에 머문다. 그러나 정상에 대한
회상은 항상 남아 있어서 필요할 때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에
대해 말해 준다. 그 절정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하느님의 큰 은혜를 입고 있는 것이다. 항상 여기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성인이다.

- 우리는 우리들의 기도에 탄력을 주기 위해 정상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들의 생활이 사랑, 전부 사랑, 다만 사랑이 되어야 한다. 강에도 상류와
하류가 있듯이 기도에도 이런 현상이 있고 밀물과 썰물이 있으며 또한 사계절이 있다.
그러나 가능한 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기도의 스타일을 가져야만
한다. 듣는 기도일수록 더욱더 부유하고 사랑의 기도일수록 더욱더 보배로운 기도이다.
기도는 겉꾸밈이나, 좋은 생각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내용이 충실한 것들로,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철저히 순명함으로 되어 있다.

< 초보자를 위한 기도 >
- 자신이 초보자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소년이 어른
처럼 행세하고자 하고 어린이가 어른의 의복을 입고자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기도에 있어 그의 능력 이상으로 하려고 하는 사람은 넘어지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기도에 있어 자신에게 좌절감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기도에 있어
누구 초보자인가를 살펴본다.
* 기도의 중요성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사람.
* 기도할 때 못 견디도록 싫증을 느끼는 사람.
* 기도문과 암송기도 없이는 기도할 수 없는 사람.
* 기도를 크리스천 생활에 있어서 첫째가 아니라 여러 가지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기보다 하나의 의무로 생각하는 사람.
* 쉽게 기도를 그만두는 사람.
* 기도를 견딜 수 없는 하나의 짐으로 생각하는 사람.
* 기도를 하느님과 협상하기 위한 돈이나, 행복을 가져다주는 도구처럼 사용하는 사람.
* 기도를 자신의 의무의 도피로 찾는 사람.
* 언제나 기도의 위로를 갈망하는 사람.

- (참다운 기도에로 향하고자 하는 초보자를 위한 조언) 매일 하느님과 함께하기 위해
15분간의 시간을 내고 어떤 기도문도 사용하지 말고 하느님께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
이 문제에 있어 제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저에 대해 기쁘십니까? 제가 무엇을 잘못
하고 있습니까?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라고 말씀드리면서
그날의 제일 급한 문제 안에 깊이 들어가도록 한다. 매일 15분간 하느님의 빛 속에서
우리 자신의 의무를 살피는 이 독특한 치료가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 안에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서서히 들어가도록 단련시켜 준다. 이 15분간의 참다운 기도에 대한
근본적 요점은 깊은 묵상, 결정, 청원이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기초를 세워야 하고
(깊은 묵상), 그 다음 벽을 쌓고(결정), 그리고 지붕이 없다면 반드시 지붕을 올려야
한다(청원). 반성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리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했다고 해도 충분
하지 않다. 반성은 기도할 때에 깨닫게 된 시급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구체적이고 확고한 결정을 짓는 데에 도달하게 해야 한다.
그 다음 청원하는 것이다. 결심한 것에 하느님의 힘이 함께 하도록 하느님의 힘을 간구
해야 한다. 벽만 있는 집에 살 수 없고 지붕도 있어야 한다. 청원 없이는 우리들의 결정이
허사로 돌아갈 수 있고 15분간 힘들게 이룩하였던 것들을 일순간의 나쁜 의지로 허물어
버리게 할 수도 있다.

[ 4. 기도를 위한 10가지 규칙 ]

- 학교와 스승 없이도 기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지만 잘못 배울 위험도 있다. 지도자와
알맞은 방법을 받아들이는 자는 보다 확실하고 빠르게 잘 배울 수 있다. 기도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10가지 단계가 있다. 그러나 외워야 하는 규칙이 아니라 실제로 체험해야
하는 단계들이다. 따라서 기도의 이 체험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첫 달에는 15분 동안
기도하도록 하고 그 다음 조금씩 기도시간을 증가시키는 것이 좋다. 혼자서보다는 소그룹
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 첫째 규칙 >
- (기도는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이다. 즉 ‘너’와 ‘나’의 관계이다) 기도의 첫 규칙은
기도에 있어서 ‘만남’을 실현시켜야 한다. 두 인격체의 만남, 즉 나의 인격과 하느님
인격과의 만남이다. 참 인간들의 만남이다. 기도란 하느님의 현존에 몰입하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느님, 현존하시는 하느님,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 사랑이신 하느님. 자주
기도가 힘들게 느껴지는 원인은 기도하는 동안 두 인격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흔히 나 자신도 부재중이거나 하느님 역시 멀리 계시는 분으로 여겼기에 친교를 이루지
못한 까닭이다. * 실제적인 조언 : 기도에 있어 많은 말을 사용하기 보다는 몇 마디 안 되는
말이면서도 뜻 깊은 말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과 같은 말로 충분하다.
“아버지! 구세주이신 예수님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 둘째 규칙 >
- (기도란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지고, 성령으로 지탱되는 하느님과의 다정스러운 친교이다)
하느님은 순수 이성이시고 순수한 영이시기에 성령의 도움을 받은 이성이 아니고서는
그분과의 친교를 이룰 수 없다. 기도는 환상적 노력이 아니다. 정신과 마음은 하느님과의
친교를 위한 직접적인 수단이다. 상상만 하고, 나의 문제에만 잠겨 있고, 빈 말만하거나
읽기만 한다면 그분과의 친교를 할 수 없다. 생각할 때와 사랑할 때에만 그분과 친교하는
것이다. 성령 안에서 생각하고 사랑할 때에 친교하는 것이다. 성바오로께서는 어려운
이 내적 일을 도와주시는 분이 성령이시라고 가르친다(로마 8,26). * 실제적인 조언 :
기도할 때 자신을 바라보기보다는 그분을 바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성령의 도움을 청하지
않고는 절대로 기도를 시작하지 말고, 피곤한 순간이나 무미건조한 순간에 성령을 간구
하자. 기도한 후 성령께 감사하자.

< 셋째 규칙 >
- (기도를 위한 가장 간단한 길은 감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지혜로운 자로 창조하셨기에 고마운 마음을 가지길 요구하신다. 우리는 고마운
마음을 가질 줄 모르는 사람을 대할 때 분개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단련해야
한다. 이 단련을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 없고 하느님께 대한 진정한 감사의 마음을
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감사의 기도는 신앙에의 위대한 단련이고 하느님께 대한 의식을
우리 안에 가꾸는 단련이다. 감사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더욱더 잘 표현하는 어떤 헌신적인 행위가 뒤따랐는지 확인해야 한다. * 실제적인
조언들 : 하느님께서 베푸신 제일 큰 은혜가 무엇인가에 대해 자주 자문하는 것이 중요
하다. 아마도 그것은 생명, 지혜, 신앙일 것이다.

< 넷째 규칙 >
- (기도는 무엇보다 사랑의 체험이다) 기도에는 많은 단계가 있으나 무엇보다 기도란
사랑의 체험인 것이다.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은 기도이지만 제일 좋은 기도라고는 할 수
없다. 제일 좋은 기도는 사랑하는데 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실행할 바로
그때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느님께서 그의 사랑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 주실
수 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마태 12,50). * 실제적인 조언 : 주여, 저에게서 무엇을 원하십니까? 주여, 저에게
만족하십니까? 주여 이 문제에 있어 당신의 뜻은 무엇입니까? 이와 같은 질문으로 기도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사랑할 때 비로소 기도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
에게 기대하는 것이나,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 마음에 드는 구체적인 어떤 것을 드릴 때,
사랑하는 것이다. 참다운 기도는 항상 기도후 생활에서 시작된다.

< 다섯째 규칙 >
- (기도란 하느님의 권능을 우리의 미약함과 비겁함 안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것을
뜻한다. 우리 매일의 현실(의무, 어려움, 부족)을 살펴보고 하느님 뜻에 진실되이 비교해
보는 것,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그대로 우리의 의무와 어려움을 지고 나가기 위해 겸손되이
신뢰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힘을 청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힘을 다 발휘할 그때
라야만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힘을 우리에게 주신다. * 실제적인 조언 : 역경에 처했을 때
우리의 어려움들 안에서 하느님의 힘을 체험하고자 한다면 우리 기도에는 깊은 묵상,
결심, 청원의 세 가지 단계가 있어야 한다. 사랑은 말이나 한숨을 쉬거나 감상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찾고 헌신적으로 실천하는 데에 있다. 기도는 행위를 위한
준비이고, 출발이며, 행위를 위한 빛과 힘이다. 우리 행위를 하느님의 뜻을 진실되이
찾는 데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시급한 일이다.

< 여섯째 규칙 >
- (순박한 현존의 기도 혹은 ‘침묵 기도’를 위해서는 깊은 집중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신 집중이다. 순박한 현존의 기도는 깊은 기도에로 향하게
하고 정신 집중을 쉽게 해주는 정신 건강을 위한 단련과도 같다. ‘순박한 현존’의 기도는
하느님 현존 안에 머물기 위한 지적인 노력이기보다 의지적인 노력이다. 단 한가지 생각,
즉 하느님의 현존 안에 있다는 생각에 집중하면서 상상을 끊어야 한다. 하느님께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기에 힘든 기도이다. 이 단련을 성체 앞에서나 조용한 곳에서 눈을 감고
우리를 감싸고 있는 그분의 현존에 잠겨서 하는 것이 좋다.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는
‘계속 분심 가운데’ 있는 자에게 이 기도를 권고한다. ‘순박한 현존’의 기도는 우리들의
기도에 있어 근본적인 악을 깊이 생각지 않는 경솔함을 고쳐주는 아주 효과적이고 힘이
있는 방법이다. 간디도 일찍이 “기도가 없는 많은 말보다는 말이 없는 기도가 더 좋다”고
하였다. * 실제적인 조언 :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집중이 어려워질 때 단순한 몇 마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유익하다. “아버지. 구세주이신 예수님. 성부, 성자, 성령.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러시아의 한 순례자가 ‘예수의 기도’라고 이름 붙인 호흡의
날숨과 들숨에 맞추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한 기도도 많은 도움이 된다.

< 일곱째 규칙 >
- (기도의 핵심은 듣는 것이다) 듣는 기도는 기도에 있어서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듣는 것은 사랑이기 때문에
기도의 핵심이다. 듣는 것이란 하느님을 기다리는 것이요 그분의 빛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다정스런 마음으로 듣는다는 것은 그분께 응답하고자 하는
의지를 포함하고 있다. 듣는 것이란 마음에 걱정되는 문제에 대해 하느님께 겸손되이
묻거나 또는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의 빛을 받기를 청하는 것이다. 보통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은밀히 말씀
하시며 당신이 원하실 때 답해 주신다. 그분께서 원하실 때, 보통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말씀하신다. * 실제적인 조언 : 모든 분심을 멈추게 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면서 기도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여 이 상황에서 저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주여, 이 복음의 페이지를 통하여서 어떤 것을 저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십니까?”

< 여덟째 규칙 >
- (육신도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육신이 기도할 때 정신은 즉시 그와 조화를
이루어 보편적으로 이와 반대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나 육신은 흔히 기도하고자 하는
정신에 대해 저항한다. 그러므로 집중에 도움이 되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육신에서부터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의 규정을 따르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등을
곧게 펴서 장궤하여 어깨를 펴고, 팔에 힘을 빼어 아래로 늘어뜨리고 눈을 감거나
성체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다. * 실제적인 조언 : 혼자서 기도할 때는 팔을 높이
쳐들고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도 좋다. 엎드려서 기도하는 것도 집중에 큰 도움이 된다.
고통스럽게 만드는 자세들이 기도에 도움이 되지 않듯이 너무 편리한 자세도 기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세 그 자체를 기도라고 할 수는 없지만 기도에 도움이 되거나
지장이 되기에 자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아홉째 규칙 >
- (기도에 있어서 장소, 시간, 육신은 내면세계에 강하게 흔적을 남겨 주는 3가지
외적 요소들이다) 예수께서 기도하시기 위해 시간(마르 1,35)과 장소(루카 6,12)를
아주 중요시 하셨다면 우리도 역시 기도하기 위한 시간과 육신의 자세(마태 26,39),
그리고 우리가 선택하는 장소를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표시이다. 성스러운
장소가 모두 다 집중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집이나 혹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곳에 기도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야 한다. 물론 어디서든지 기도할 수 있지만
어느 곳에서든지 똑같이 쉽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간도
조심해서 택하여야 한다. 보통 정상적으로 아침과 저녁과 밤 시간이 집중하기에 더 쉬운
시간이다. 일정한 시간에 기도하도록 습관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 실제적인 조언 :
좋은 습관이 기도의 모든 장애들을 제거해 주지는 않지만 기도를 훨씬 쉬어지도록
한다. 건강이 좋지 못할 때는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의 습관을 택하기 위해서 제일 좋은 스승은 경험이다.

< 열째 규칙 >
- (우리에게 ‘주님의 기도’(마태 6,9-13)를 가르쳐 주신 그리스도께 대한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서도 이 기도가 우리 크리스천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이 기도는 외워야
하는 기도가 아니라 묵상하고 생활화해야 하는 기도이다. 기도라기보다는 기도의
길잡이이다. 자주 ‘주님의 기도’를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유익하다. 서두에 있는
두 마디(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이미 기도에 대한 두 가지 중요한 규칙을 내포
하고 있다. * 우리 : 기도할 때 형제들을 많이 생각하도록 우리를 깨우쳐 주고 항상
우리와 함께 기도하시는 그리스도와의 일치에로 우리를 일깨워 준다. * 아버지 :
무엇보다도 하느님께로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하고 신뢰심을 불러일으킨다.

-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 ‘주님의 기도’는 기도에 대한 다른 중요한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다. 먼저 하느님을 바라보아야 하고 그 다음 우리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 한 시간
동안의 ‘주님의 기도’를 묵상한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이 도움이 된다.* 첫째 15분간 :
기도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 ‘우리 아버지.’* 둘째 15분간 : 흠숭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그 나라가 임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 셋째 15분간 :
청원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넷째 15분간 : 용서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 5. 통회 하는 것 ]

< 통회의 기도 >
- 나의 생애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는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을 제거하고 나에
대한 그분의 계획을 전적으로 충실히 실행하는 것이다.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깊이 알아야 한다. 내 생활 속에 있는 모든 가식을 벗어던지고, 나 자신
속에 비뚤어진 모든 면을 바로잡고 고쳐야 한다. 회개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알아야만
한다. 이는 사랑의 요구이며 그분께 대한 나의 사랑이 구체적인 것이 되는 단계이고
그분의 뜻에 충실하기를 원한다면 이 단계에 도달해야 한다. 통회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된다.

< 나 자신을 깊이 살펴봄 >
- 나 자신을 알고 싶으면 나 자신에 대해서 진실해야 한다. 기도란 무엇보다 정직
하겠다는 약속을 자기 자신과 하는 계약이어야 한다. 기도는 자신의 악을 똑바로
바라보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그래서 그 악을 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그리고 그 악을
고칠 수 있는 길을 찾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친밀한 자녀관계,
바로 이것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인간은 조화된 존재가 아니다. 인간
에게는 생물학적(몸), 심리학적(정신과 육신을 연결해 주는 역할), 정신적(가치있고,
생각하고, 원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요소)인 영역의 세 가지의 기본적인
것이 있다. 이 요소들은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지만
이와 반대로 서로 영향을 미치며 또한 자주 해를 입히면서 계속 충돌하고 있다.
육신적인 것은 하느님 앞에서 취해야 할 인간의 윤리적인 태도를 손상시키기까지
하는 것은 아니나, 심리적인 면을 괴롭히는 악과 정신적인 영역을 함정에로 이끄는
악이 문제이다. 이 악들은 하느님의 뜻에 따르려 하는 인간의 자세와 인간의 윤리적인
태도에 규제를 가하는 악들이므로 신중히 다루어야 한다.

- 우리가 이 악을 잘 알지 못할 때는 우리들의 기도 생활은 좋은 기초가 없는 상태이다.
이는 근본 문제, 즉 하느님의 뜻 앞에서의 우리들의 실제적인 태도를 살펴보지 않았다
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너무 쉽게 빠지는 이 악들은 우리들의 자유를 빼앗고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방해한다. 이 악들은 우리들의 기도에 있어 첫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 악들에 대해 많이 기도하여야 한다. 이것으로부터 출발해야만
진정 영적인 성숙을 이룰 수 있고 진정한 회개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 다섯 악마 >
- 심리학자인 ‘윌리암 파크’는 우리들의 심리는 그가 악마라고까지 칭하는 다섯 가지
악으로 둘러 싸여 있다고 한다. 그 악들이란 미움, 두려움, 죄의식, 열등감, 자기 연민
이다. 그는 우리들의 심리를 괴롭히고 우리에게 큰 고통이 되는 문제는 거의가 다
이 다섯 가지 염증의 뿌리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악들은 심리적인 우울증, 불안,
신경성질환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하였다. 자신들의 환자들을 살펴 본 결과 위궤양, 천식,
편두통, 관절염, 심장병, 두드러기와 같은 병이 신경성으로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심리를 파괴하는 이 원초적인 악을 밝히지 않고 그 증세만 치료한다는 것은
무익하다. 기도가 바로 이 악을 밝혀 보게 한다.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한 신중하고 간단한
몇 가지의 테스트는 윌리암 파크가 네델란드 대학에서 대부분 구한 것이다.

* 미움 테스트 :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때 복수심을 품는가? 쉽게 험담하는가? 자신을
높이기 위해 남을 짓밟는가? … 등 22가지,
* 두려움 테스트 : 어떤 사명을 받을 때의 첫 반응이 물러서려고 하는가? 나에게 창피스럽게
느껴지는 일을 쉽게 포기하려는 유혹을 느끼는가? 권위 있는 사람과 장상 앞에서 수줍어
하는가? … 등 15가지
* 죄의식 테스트 : 용서받지 못한 어떤 것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나간 나의
과거에 있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어떤 것이 있는가? 절대로 다루고 싶지 않은
주제가 있는가? … 등 12가지 * 열등감 테스트 : 다른 이들과 같이 있기 보다는 혼자
있기를 더 좋아하는가? 다른 이들 앞에서 긴장하거나 혹은 너무 내성적인가? 다른 이들의
비평이나 혹은 다른 이들과의 비교에 있어 지나치게 감수성이 예민한가? … 등 10가지
* 자기연민 테스트 :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는가? 배척을 당할까봐 두려워
하는가? 인정을 못받을까봐 두려워하는가? … 등 9가지

< 정신적인 악 >
-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면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심리적인 면을
살펴 본 후 정신세계를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악도 살펴보아야 한다. 인간의 모든 정신
생활은 생각하고, 원하며, 사랑하는 것에서 볼 수 있으며, 이 정신적인 활동은 지력
(사고력), 의지, 마음이다. 인간을 모든 것 위에 드높이는 이 감탄할 만한 세 가지의
인간 기능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뛰어난 위대함인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이것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도 주셨다. 기도는 모든 무기 가운데
가장 힘 있는 무기이다. 기도는 하느님께서 기다리시는 그 인간이 되기 위해 지력과
의지 그리고 마음을 건강하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영적 활력소이다. 정신세계에
있어서 근본적인 악은 깊이 생각하지 않음 혹은 정신 집중의 결핍 그리고, 약한 의지,
항구하지 못하고 불충분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보배를 파괴하기 때문에 아주 큰 악들이다.

- 심리를 괴롭히는 악들은 바로 우리들의 깊이 생각하지 않음과 의지의 무기력함과
사랑의 결핍으로부터 가중되기에 결국 폭발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지력과 의지,
그리고 마음을 파괴하는 이 세 가지 악을 제거한다면 우리들의 심리를 괴롭히는
대부분의 악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도는 우리들의 깊이 생각하지 않음을
고쳐주고 약한 의지를 강하게 해주고, 관대하지 못한 사랑을 치유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매일 우리들의 문제 중 거의 대부분이 정신 집중의 부족과 자제력의 부족 그리고 우리
들의 표면적인 사랑에 의해 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우리 생활 중의 거의
모든 것이 사고력과 의지력과 사랑의 힘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성인이란 사고력이 깊고 의지력이 강하며 헌신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하느님의 힘으로 회개하여야 한다. 근본적으로 통회의 기도란 바로 이런 것이다. 기도는
회개의 길이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할 때만 회개할 것이라고 희망할 수 있고 보통
하느님의 힘은 기도를 통하여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하느님께서는 기도를 들어 주신다 >
- 이것은 근본적인 진리로, 이 확신이 우리 안에 깊이 뿌리박혀 있지 않으면 회개하는 데
있어서 확고하게 나아갈 수 없다. 예수께서는 기도의 자세에 관한 뚜렷한 규칙을 주셨다.

*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루카 11,8). 예수께서는 좋은 이웃에게 계속 청하면 항상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신다.
우정으로서가 아니라 귀찮아서라도 줄 것이다.
*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루카 11, 9-10). 예수께서 기도에 대하여 분명히
가르치시는 첫 개념은 청하는 것에 항구하라. 청한 것을 얻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항구
하게 청하라. 완강하게 청하라. 참다운 신앙으로 꼭 들어주시리라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청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에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루카 11, 11-12). 인간사에서도 아버지께 청한다면
항상 들어 허락된다고 예수께서 가르치신다. 하느님 아버지께 어떤 좋은 것을 청한다면
청하는 그것보다 더 주실 것이며 모든 좋은 것들을 다 주실 것이다.
*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루카 11,13). 이 진리를 깨닫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 어떻게 할 것인가? >
- 첫째 : 믿는다. 청한 것을 이미 얻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청하는 것이다. 하느님께 은혜를
청함에 있어서도, 그 청을 들어 주심에 있어서도, 시간을 요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나의 기다림에는 청을 들어 허락하시리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예수
께서는 우리가 기도한 후 하느님께 절대적인 신뢰심을 가져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믿고 기도한다면, 하느님의 개입은 확실하지만, 또한 둘째 단계를 밟지 않으면
안 된다.

- 둘째 : 협조한다. 첫째는 하느님의 능력을 믿고, 둘째는 우리도 소매를 걷어 붙이고
하느님의 능력에 우리의 모든 협조를 기울인다. 보통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협력 없이는
활동하시지 않는다. 만일 우리와 같이 행하시지 않고 그냥 하느님께서 다 해주신다면
우리를 타성에 젖게 하기에, 좋으신 아버지라고 할 수가 없다. 효과 없는 기도는 항상
믿음 또는 협조 이 둘 중에 어느 하나가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내 기도가 신뢰심이 충만한 기도이며 동시에 내가 전적으로 하느님께 적극적인 협조를
하고 있다고 어떻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가? 그래서 기도할 때 있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규칙들을 제시한다.
* 우리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받아들여라. … 내가 극복해야만 하는 어떤 나쁜 버릇을 다만
좋은 방법을 통해서 항구하게 열심히 투쟁한다면 고칠 수 있다.
* 기도에 항구하라. … 기도 없이 생활할 수 없을 만큼 기도의 필요성을 느껴야 한다.
즉 모든 투쟁의 길에서 하느님과 같이 걷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 하느님께 간청할 때는 분명하게 하라. … 정확하게 청한다는 것은 우리가 청하는 그것을
참으로 원한다는 뜻이다. 순간마다 충실하고, 처해진 상황을 보아 행동한다면 아무리 큰
문제라도 대처할 수 있고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보다 더 나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 기도할 때는 체계적으로 하라. … 체계적으로 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한다는 표시이다.
객관적인 눈으로 우리의 병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이미 병을 제거하기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치료와 회복을 향한 첫 걸음이다. 병의 주원인이 되는 것을 가려낸 다음,
그것에 대해 기도로써 치료하도록 한다. 이때 병을 제어하고 조정하는 도구는 ‘생각하고
원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사용할 줄 알만큼 습관
들여야 한다. 매일 기도 때마다 지성, 의지, 마음 즉 사고력, 의지력, 사랑하는 능력을
새롭게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것이 참다운 통회의 기도이고 회개의 기도이다.

[ 6. 청하는 것 ]

< 청원과 중재의 기도 >
- 복음서에는 그리스도의 이 가르침을 더 확실히 설명해 주는 뚜렷한 사실들과
이 청원과 중재의 기도에 대한 완벽한 신학적인 내용이 들어 있다. 중재와 청원 기도에
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7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믿음으로 기도하다) 예수께서는 무엇보다 믿음을 요구하신다. 청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믿음으로 청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믿음으로 가득찬 기도를 할 때 하느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고 가르치신다. 기도의
열쇠는 믿음이다. 믿음으로 청하라고 그리스도께서 강조하신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도에
있어 부족한 것은 거의 항상 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청하기 위해서는 깊은
숙고와 하느님과의 친밀한 분위기 조성을 필요로 한다. 하느님께 대한 깊은 확신과
우리 자신의 미약함과 무능함에 대한 내적인 깨달음을 필요로 하며 겸손이 필요하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기도할 때에 믿고 청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마태 21,22). 기도의 효과에 대한 한계를 긋지 않으셨다.

- 마르코 복음사가는 우리가 진정한 믿음으로 청하였는지에 대해 알게 해주는 한 가지
중요한 면을 덧붙인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르 11,24). 믿음으로 구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아버지처럼 대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치유의 은사를 받은 유명한
‘캐더린 쿨만’은 치유를 위해 어떻게 믿음으로 청하는지의 물음에 “여러분의 병을 보지
말고 하느님을 보아야 한다. 여러분의 병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 하느님께로 눈을
향하라!”라고 대답하였다. 일단 하느님께 맡긴 문제는 더 이상 생각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기도 때 청한 것은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면서 행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2. 항구하게 기도하다) 예수께서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루카 11,9) 라고 말씀하셨다. 항구성은 믿음의 표현이다.
기도에 있어 항구한 것은 거의 항상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청을 들어주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항구성은 희망의 표현이다. 청하는 데 있어 확고부동할 때는 거의
항상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라고 희을 갖기 때문이다. 항구성은 항상 하고자 하는
마음의 표시이기에 또한 사랑의 표시이다. 그러나 때로 하느님께서는 더디게 대답
하신다. 왜냐하면 문제를 숙고하게 하고, 문제 앞에서 우리들이 성숙하게 하며, 더욱더
겸손해지게 하고, 하느님께 대한 신뢰심이 많아지게 하며, 청하는 문제에 있어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을 하도록 하며, 흔히 우리들의 책임감에 대한 새로운 빛을 주며, 강한
의지를 단련시켜 주고, 신앙을 굳게 하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찾아온 친구의 비유
(루카 11, 5-8)는 기도의 항구성에 대한 좋은 비유이다.

(3.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할
것을 강조하신다. 교회는 항상 그렇게 기도하였다. 즉 전례적으로 중요한 기도중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라는 예수님의 이 권고 말씀을 따르지 않는 기도는
없다. 예수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신 성서 본문들이다. 요한 15,16/
요한 16,23-24/ 요한 14,12-14/ 요한 16,25-27. 이들 성서 본문의 문맥을 살펴
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란 ‘예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명령으로,
예수님의 권위로, 예수님의 인격으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과 더불어, 예수님을
통하여’란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연역해 낼 수 있다.

-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이유들이다. * 우리는 자녀들이며 형제들이다. 하느님이
정말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또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진정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과 방법으로 청하는 것이다. * 인간에게 있어 최대의
기쁨이 된다. * 인간이 원하기만 하면 항상 인간의 필요성에 응하신다(신앙의 권능).
* 그리스도에게 청하는 것이다. 당신께 청하는 것은 아버지께 청하는 것과 같다고
하신다. * 우리들의 청원을 아버지께 청하기에 앞서 그리스도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술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기도에 대해 인준하시지 않고,
책임감을 가지고 하는 기도에 대해서만 인준하는 것이다.

(4. 기도하기 전에 먼저 용서해 주다) 예수께서는 깨끗한 마음으로 아버지께 나아가길
요구하신다. 기도는 우리에게 쏟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마음이 올바른 사랑의 상태에 있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시지 못하신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기도하기 전에 해야 할 중요한 규범을 말씀해 주셨다.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마르 11, 25),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너희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 5,23). 예수께서는 용서를 기도의 서막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
하게 가르치신다. 기도하기 전에 애덕의 옷을 입으라고 하시는 것과도 같다. … 기도는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자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아무 도구도 없이 샘물을
길을 수 없듯이 하느님의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5. 다른 이들과 함께,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다) 예수께서는 항상 복수형으로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셨다. 기도의 모델인 ‘주님의 기도’는 모두가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이 사실은 자신의 개인적인 필요성을 위해 하느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예수께서
받아들이시지만, 하느님께로 향하는데 있어서 항상 형제들과 같이 가는 것이 좋다는
것을 뜻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워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
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예수께서는 이 말씀
으로 공동 기도의 효력을 밝혔다. 공동체는 우리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한다. 예수
께서는 그의 생애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이들도 당신과 함께 기도하길
원하셨다. 즉 겟세마니 동산에서 당신과 함께 기도하도록 베드로와 야고버와 요한을
택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길 원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특별히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으며, 제자들로부터 탄생하게 될 교회와 우리들을 위해 기도
하셨다. 이 외에도 예수께서는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명하셨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이 기도할 때에 아무도 제외시켜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의향이다.

(6. 필요한 모든 것을 청하다) 예수께서는 어떤 문제와 어려움에 대해서만 기도하고
다른 것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라고 가르치시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나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다고 분명하게 거듭 가르치셨으며 하느님께서 들어
주신다고 하셨다. 이와 관련한 말씀들이다. <마르 11, 24, 마태 18,19, 요한 14,13,
요한 15,7, 마태 21,22, 요한 15,16> … 신뢰심에 가득 찬 기도는 믿음을 호흡하게
하는 폐와도 같다. 우리를 하느님 곁에서 생활하게 하고, 하느님께서 우리 가까이
계시게 하고, 하느님의 현존에 깨어 있게 한다. 하느님과의 다정한 관계, 즉 실제적이고
참다운 관계를 갖도록 해준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성 아오스팅은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 자는
생활하는 법을 배운다.”고 하였다.

(7. 성령을 청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 가장 비범한 것을 구하라고 가르치신다.
모든 선의 총괄이고 무한한 선 자체이신 성령을 구하라고 하신다.
* (우리가 주인이다) 하느님 은총의 관리자들은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는 성령을 맞이할
수도 있으며 거절할 수도 있고, 수긍할 수도 있고 부정할 수도 있으며 성령께서 자유
스럽게 활동하실 수 있도록 해드릴수도 있고 그 활동을 억제할 수도 있다. … 우리가
어떠한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맞아들이고 또는 성령을 거절하는
것이 우리 수중에 달려 있으며 우리의 기도에 좌우된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인간
들이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어도 기도만은 빼앗을 수 없으며, 기도로써
우리는 항상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과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 (모든 것을 가지다) 성령을 소유함으로써 모든 것을 소유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성령을 구함으로써 모든 것을 구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구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넓고 광대한 기도는 다시없다. 겸손이 필요한가? 사랑이 필요한가?
힘없이 기도하는가? 기도에 대해 더 많은 사랑을 청해야 겠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기도의 스승인 성령을 구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다. 성령을 구하는 기도만큼 깊이
있게 아버지께 올릴 수 있는 기도란 없다.
* (언제, 어떻게, 어디서?) 어떤 순간이라도 원하기만 하면 기도는 가능하기에, 어떤
때라도 성령을 우리 가까이 모실 수 있다. 우리들의 생활에 있어 전 생애를 결정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 있다. 이 순간은 더 잘 보고, 알고, 결정하기 위해 우리 가까이에
성령을 모셔야 하는 특별한 때이다. 성체는 다만 성당에 있지만 성령께서는 어디서나
어떠한 환경 속에서나, 언제든지 현존하신다. 기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성령께서는
진실하고 열성적인 기도에 항상 응답하시기 때문이다. 성령을 청하기 위해서는 꾸며진
기도문이 필요치 않다. “아버지, 예수님을 통하여 저에게 성령을 주소서!”라는 짧은
기도만으로 충분하다.
* (누구를 위해) 성령은 우리와 모든 이를 위한 것이다. 많은 형제들이 우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들을 위해 성령을 구한다면 그들에게 참으로 모든 것을 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도와 줄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 잘못된 길을 들어선 친구를
위해, 악습에 젖은 사람을 위해, 중대한 책임을 가진 이들을 위해, 우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교황님과 주교님들을 위해, 정치가와 신문기자들을 위해, 사회와 경제
문제를 이끌어 가야 하는 이들을 위해, 과학자와 예술가들을 위해, 보도매체에 종사하는
이들을 위해 성령을 구하자. 성령을 간구하는 것은 흔히 우리에게 협동정신과 공동
책임감을 불러일으킨다.

[ 7. 감사기도 ]

< 예수께서 이 점을 지적하셨다 >
- 예수께서는 우리들이 감사할 줄 모른다고 지적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루카 17,17). 열 사람의 나환자중 한 사람만이
감사하기 위해 온 것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다. 하느님에게 받았다면 받은 줄을 알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을 안다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감사하는 마음은
올바른 마음과 지혜의 당연한 결과이다. 올바른 마음을 가진 자와 깨달을 수 있는 자는
감사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감사하라는 뚜렷한 계명이 없다. 왜냐하면
이 계명은 바로 인간이면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압에 못 이겨 한 감사의
행위는 의미가 없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우리 모든 이가 이 아홉 중에 속한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는 잘못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라는 그리스도의 이 쓴 지적은 감사하기 위해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위해 나로 하여금 대신
감사하도록 자극시켜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감사를 드릴 줄 모르는
나병에서 해방될 것이다.

< 성서 전체에서 이렇게 초대하고 있다 >
- 히브리인들의 전통적인 기도서와 성서의 시편들은 모두 감사의 기도로 짜여 있다.
계시된 이 자료들은 다음 사실을 알려준다. 하느님께서 감사의 의무에 대해 이토록
감사함은 바로 인간에게 아주 필요한 것이며 감사하는데 큰 발전이 있고, 감사하는
가운데 행복이 있으며, 감사하는 가운데 인간이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감사함
으로써 인간은 균형을 잡을 수 있으며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도록,
그리고 하느님께 속한 자로 생활하도록 자기 자신에게 제안하는 것이다. 성서 전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일깨워 주는 것은, 인간이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이
의무를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는 위험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성서 전체에서 감사하는
것에 대해 말해 주는 것은 아마도 믿음에로 향하는 ‘지름길’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감사하길 배운다는 것이 하느님과 우리들과의 관계를 생명력 있게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서 전체에서 감사에 대해 강조한다면, 이것은 아버지의
무한한 자비에 대한 계시와 또한 그의 자녀가 되게 하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계시를
받아들임에 있어서 감사드리는 것만큼 인간을 준비시켜 주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 모든 이가 할 수 있는 기도 >
- 말로써 감사드릴 수 있고 또한 말없이 감사드릴 수도 있다. 감사하기 위해서는
기도문이 필요치 않으며 몇 마디 말로도 충분하다. 몇 마디의 말과 하느님의 선하심에
대한 몇 가지 생각으로 충분하다. 감사하는 것은 가난한 이들의 기도이다. 어떤 식의
기도라도 준비와 단련과 알맞은 환경과 많은 열성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감사하기
위해서는 준비할 필요도 없으며 모든 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기 때문에 배워야
할 필요도 없다.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자 하는 자이면 하느님을 찾기 시작하는 그 순간
부터 즉시 이 기도의 길에 들어서서 끝까지 갈 수 있다. 말이 필요 없고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인자하신 아버지라는 개념만 가지면 되고 나머지는 저절로 되는 것이다.
회개한 이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에게 감사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으로
충분하다. 한 번도 기도해 본 일이 없는 자라 할지라도 이러한 방법으로 기도할 줄 안다.

- 감사기도는 꽃이 핀 들판에서 꽃을 꺾는 것과도 같이 즐겁고 다양성 있는 기도이다.
감사드리는 것은 하느님의 은혜를 찾아내도록 자부(自負)한다. 하느님의 은혜를 찾으면
찾을수록 더 많이 찾게 된다. 어린이들에게 기도의 맛을 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감사의
문턱까지만 그들을 이끌어주면 충분하다. 감사하는 것은 절대로 피곤하게 만드는 기도가
아니다. 항상 새로운 면이 있고, 생각하게 하고, 보게 하며, 말하게 하는 좋은 면이 있다.
이것 때문에 모든 이와 모든 연령과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또 모든 영적 준비에 있어
알맞은 기도이다. 감사하는 것은 체계를 초월하는 기도이기에 체계 없이 하는 기도이다.
순박하면 순박할수록 더욱더 잘 감사드릴 줄 안다. 또한 휴식을 취하게 하는 기도이기도
하다. 사고력을 쉬게 하고 마음을 넓혀 준다. 정신으로 피곤할 때 감사하는 것은 참으로
합당한 기도이다. 왜냐하면 정신을 쓰지 않게 하고 억누르지 않으며 부담을 느끼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 단련 >
- 감사하는 기도의 단련은 방법이 필요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다른 모든 단련과 같이
쉬운 것에서부터 어려운 것에로 나아가야 하며 높은 차원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즉
우리에게 있어 가장 고통을 주는 모든 것에 대해서도 감사할 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산의 절정에 도달하는 것이다. 산의 절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절정에 이르는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만 한다. 우리가 우리들의 문제를 ‘좋은 것과 나쁜 것’
두 부분으로 구별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고 정당치 못한 것이라고 즉시 말해야 한다
. 믿음이 있는 자에게는 ‘어려운 것’이 있을 수 있지만 좋지 않은 것은 없다. 왜냐하면
밤이나 낮이나 구름낀 날씨나 맑은 날씨나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이 섭리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생애에 있어 어떠한 기쁨이라도 감사드리지 않고 그냥 지나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감사기도의 첫 단계이다.

- 감사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하느님은 인자하시고, 하느님은 아버지이시며, 하느님께서는
무한히 자상하게 우리를 생각하신다는 이 확신을 얻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어느 날 모든
기쁨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림으로써 기쁨을 거룩한 것으로 만들겠다는 이 결심을 굳게
지키도록 해보자. 더욱 깊이 의탁하는 자세로 하느님께 신뢰를 드리게 되고, 우리들의
믿음이 날로 더 굳세어질 것이다. 이 단련은 우리의 믿음을 성숙하게 하며 그 믿음은
항상 그렇듯이 우리가 관대해지도록 해준다. 믿음은 마치 꽃을 지탱해 주는 줄기와도 같이
사랑에로 항상 준비시켜준다. 살아있는 믿음이라면 반드시 그 응답이 있다. 즉 사랑을
가지게 된다. 단련은 조직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하면서도 감사드릴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정신집중을 요하지 않는 것의 모든 노동을 감사기도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 어려운 것에로 향하자 >
- 좋은 것에 감사드리기는 쉽다. 고통과 어려움, 슬픔과 자신의 실수에 이르기까지 감사
드리는 것은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이다. 불쾌한 것과 고통에 대해서까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진실로 사는 법을 배운 사람이다. 삶이란 언제나 잘한 것과 잘못한 것,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로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은 기쁨과 고통, 더위와 추위, 평화와 폭풍
속에서도 항구히 생활할 줄 아는 사람이다. 크리스천은 생활의 폭풍우 속에 절대로 깊이
말려들지 않고 또한 말려들었다 할지라도 다시 헤쳐 나온다. … 항구하게 감사한다면 그
어떤 실패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할 동기가 하나뿐 아니라 더 많이 발견될 것이고,
결국에는 감사가 승리를 거둘 것이며 벽은 무너질 것이다. 즉 확고하고, 피눈물이 날지라도
참된 감사이며 우리 자신을 해방시켜 주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감사일
것이다. 특별히 그러한 순간에 감사의 권능을 깨닫게 된다. 그런 후에야 감사하길 배운
자는 진실로 사는 법을 배운 자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때 비로소 신앙의 모든 힘과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기 때문에 참신앙이 탄생하게 된다.

[ 8. 사랑하는 것 ]

< 마음의 기도 >
- 마음의 기도는 더 깊이 기도하는 방법으로 성경의 기원만큼 오래된 방법이고 성경의
제일 깊은 부유함에 뿌리를 박고 있다. 기도는 하느님을 향해 성숙에로 나아가는 여러
가지 단계를 거치는 하나의 길로 상상할 수 있다. 어떤 이는 기도의 절정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도 하지만 깊은 기도만이 생활에 제일 깊은 기쁨을 준다. 어떤 이는 자극이
부족해서이거나, 혹은 무지 때문에 기도의 길에 있어서 발전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느님
께서는 우구나 다 확고하게 걸어가도록 초대하신다. 깊은 기도가 어떤 특정인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부르심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온 마음, 온 힘, 온 전력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명하시기 때문이다.
(신명 6,5)

< 정의를 내리도록 해보자 >
- ‘마음’이라는 단어로 우리가 뜻하고자 하는 의미를 명확히 해보자. 인간의 친밀함,
자기 존재의 제일 깊이 숨겨진 내면이고, 자기 존재의 충만함이 있는 장소,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이 인간을 만날 수 있는 그곳이다. ‘시겔’은 “마음은 인간 존재의
핵심을 가리키고 지성과 의지의 능동적인 기능의 뿌리이며 영적 생활의 출처이자
수렴되는 종점이다. 인간의 영적 정신적 생활이 솟아나는 깊고 숨겨진 샘이며 그것을
통해서 인간의 생명의 참 원천에 가까이 나아가며 그 원천과 친교한다”고 했다. …
마음의 기도란 기도할 때 우리 존재의 제일 깊은 내면, 우리 안에 있는 ‘신적 불꽃’
(세례를 통해 각 신자가 지니게 되는 주입된 덕)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 마음의 기도란 말, 생각, 상상을 따로 제쳐둔 채 우리 존재의 제일 깊은 내면을
그분께 열어 보이면서 오로지 사랑하도록 하면서, 하느님 앞에 깊은 내적 침묵으로
자신을 순박하게 두는 것이다. 이 기도는 순박함을 요구한다. 외적, 내적인 깊은 침묵을
요구한다. 사랑하는 데에 있다. 마음의 기도란 완전한 내적 침묵, 사랑하는 침묵에
들어가는 것이다. 마음의 기도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우리를 통해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후꼬’신부는 “그분은 사랑으로
나를 바라보시고 나도 그분을 사랑하면서 바라본다.”라고 표현하였다.

< 이해하기 어려움 >
- 마음의 기도는 성서만큼 오래 되었고 거의 모든 성인들에 의해 실천되어졌고 사막의
교부들은 이 기도에 대해 정통한 이들이었으며, 성인들은 이 기도를 널리 소개하는
분들이었다. 그러나 흔히 이 기도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순박함의 기도, 침묵의
기도, 단순한 바라봄의 기도, 내적 기도, 사랑의 기도, 관상 기도 등. 사막의 교부들
외에도 이 기도를 널리 알려진 성인들을 기억하면,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십자가의
성요한,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 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 후꼬 신부 등이 있다.
러시아의 은수자는 마음의 기도를 항상 행했다. 마음의 기도란 결국 우리 안에 계신
삼위의 생명에 대한 응답이다.

< 두 가지 이유 >
- 마음의 기도에 대해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동기들 때문이다.
하느님께 도달하기 위한 보다 올바른 길은 총명함이 아니라 사랑이다. 사랑은 인간의
가장 부유한 내적 기능이며 제일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나은 것을 드려야 하므로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나은 이 사랑을 드려야 한다.
…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크리스천 신비가들 중 가장 큰 인물인 사도 요한이
말했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을 사랑이 되게 할 때 하느님과의 동일성 안에 즉시
들어가게 되고, 인간의 부족한 지혜로 도달할 수 있는 데보다 훨씬 더 높이 인간을
옮겨다 주는 그분의 빛나는 궤도에 들어가게 된다. 사랑하는 자만이 어떤 것들을 이해할
줄 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랑만이 이해력에 날개를 달아 주기 때문이다. 사랑 없는
지력은 제한되어 있고, 사랑 없는 지력은 어려운 것들을 파악하기에 부적당하다.

< 성서적인 바탕들 >
- 마음의 기도는 보다 아름답고 중요한 성서말씀들 중 한 구절인 이 말씀이 깊이 뿌리
내린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하느님께서 기도하기를 명령하시지 않고 사랑하기만을 명하시는
그것이다. 쉐마(이스라엘의 기도)를 구성하는 이 유명한 말씀은 경건한 히브리인들이
하루 두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서서 하느님께 마음을 들어 올리며 드리게 될 이스라엘의
가장 주요한 기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마음 기도의 근본을 보다 정확하게 표현한 이는
성바오로이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5),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다”(1코린 3,16),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고 계십니다”(갈라 4,6),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로마 8,26-27).

- 예수께서도 마음의 기도에 관해서 말씀하셨다. (마태 6,7-8), (요한 4,23-24),
(루카 10,41-42), (마태 26,36), (마태 26,40), (마태 26,41), (마태 26,43),
(요한 14,23). … 예수께서 당신 생활의 보다 고통스러운 순간, 겟세마니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청하셨는가에 대해 복음서의 구절들이다. (마태 26,36),
(마태 26,40), (마태 26,41), (마태 26,43). 마음의 기도란 사랑 안에 우리를 새롭게
하는 사랑의 노력이다. 예수께서 이 노력에 대해 큰 상급을 약속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 더 깊이 추구하자 >
- 마음의 기도는 사랑하면서 우리 존재의 모든 능력으로 하느님 앞에 머무는 것이다.
보다 높은 수준에서 마음의 기도를 생활한 사람은 십자가 아래의 마리아이셨음을 생각할
일이다. 자기 생애에 있어 그렇게도 비극적인 그 시간 동안 마리아는 무엇을 하셨는가?
아무것도! 단지 그곳에 있었을 뿐이다. 마리아의 고민은 바로 자신의 무능력함, 무기력
함이었다. 마리아는 십자가형을 당하는 아들과 완전히 동화된 상태로 그곳에 계셨고
당신의 사랑을 다해 그리스도의 고통으로 짓눌린 상태에 함께 계셨다. 그리스도를 대신
하기를, 그리스도 대신에 당신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기를 얼마나 원하셨을 것인가.
그 순간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셨겠는가. 아마도 그전에는 한 번도 그렇게 사랑하지
못했을 만큼 사랑하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 아래에 있는 마리아는 마음의 기도의
참다운 스승이시다.

< 진리의 문 >
- 마음의 기도에 들어가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진리의 문을 지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안에 진리를 건설해야 할 필요가 있고, 우리의 상처를 지적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
자신을 깨끗이 해야 하고 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 안에 들어가야 하고, 질서 있게
만들기 위해 우리 몫을 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약하기 때문에 울면서 투덜거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통회가 아니다. 통회한다는 것은 벗어나는 것을 뜻하며, 통회한다는
것은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통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속하는 것이다. 항상 저지른 잘못에 대해 거의 완전히 즉석에서 보속할 수는 없다.
어떤 보속은 아주 복합적인 것일 수도 있다. 깊은 숙고, 책임감, 구체성 그리고 가끔은
사려 깊음을 요구한다. 그러나 합당한 방법으로 보속할 수 없다면 보속에 대한 구체적인
첫걸음을 내딛기를 결심으로써 시작할 수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물론 기도이다. 만약
손해를 끼쳤다면, 어떤 의무를 망쳐 놓았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손해를 입힌
그 사람을 하느님 손에 맡기는 일이며 완벽한 보속을 할 수 있는 힘을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며 힘, 빛, 책임감을 청하는 것이다. 이것은 벌써 보속하는 것이다. … 진리의 문을
지나감(우리 안의 모든 거짓을 뽑아 냄)없이는 마음의 기도를 결코 시작하지 않는 것이
더 사려 깊은 것이다.

< 약간의 기법 >
- 마음의 기도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깊이 생각할 점이 몇 가지
있다. 마음의 기도는 너무 소심한 사람에게나 자질구레한 데까지 신경 쓰는 사람이나,
감상주의자에게는 권할 만한 것이 아니다. 마음의 기도는 건강이 안 좋을 때는 적당하지
못한 기도이다. 그 이유는 마음의 기도가 많은 노력과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건강이 안 좋을 때에는 침착하고 조심성 있는 구송기도와 감사기도를 권하는 것이 훨씬
낫다. 마음의 기도가 다른 모양의 기도들을 없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보통으로 초보
단계에는 구송기도와 듣는 기도, 마음의 기도를 교대로 하는 것이 좋다. 초보의 단계
에서는 마음의 기도를 15분 이상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초보자에게는 무미
건조하고 피곤스럽다. 1시간의 성시간 동안의 몇 분간, 성시간 중간이나 끝맺는 시간에
이 기도를 삽입할 수 있다. 하느님의 은혜로 이 기도가 단순해지고 마음을 끌기 시작할
때라야만이 지장 없이 더 길게 기도할 수 있다.

< 일본인처럼 >
- 진주를 생산하기 위한 일본인의 기법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일본인 잠수부들은
면도칼로 진주조개의 입을 열어 모래 한 알을 집어넣고 닫는다. 이 석회질의 알맹이는
진주조개의 분비작용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하고 진주를 보다 많이 생산하도록 촉진한다.
마음의 기도도 이와 비슷하다. 즉, 하고자 하는 의지의 자극으로 우리를 능가하는 어떤
것(우리의 진주인 우리의 사랑)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기도를 쉽게 만드는
한 기법을 제시한다. 우리를 돕고 우리의 침묵을 지탱하는 단순한 한 마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말 한마디들로 충분하다. 아버지! 예수님! 구세주! 성령! 무한한
사랑! 성부! 성자! 사랑이여! … ‘모래 한 알’ 즉 짧고 농도 짙은 내용의 기도를 사용하
는 것이 유리하다. 보다 긴 기도는 침묵을 깨뜨리고 상상력을 방해하기에 한 마디로 된
기도가 아주 효과적이다.

< 적절한 순간 >
- 우리의 하루 가운데에서 마음의 기도에 적절한 특별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영성체
후이다. 습관적으로 하는 영성체는 우리 모두를 걱정시킨다. 마음의 기도는 이 나쁜
습관을 버리게 하기 위해 보다 알맞은 약일 수 있다. 이 순간은 전례가 침묵을 요구하는
순간이며, 우리 안의 성체의 현존이 우리에게 열성적이고 개인적인 응답을 요구하는
순간이며, 정신 집중이 비교적 쉬운 순간이다. 깊이 몰입하는 것, 알맞은 자세를 취하는
것, 그리고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 안에 잠겨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예수’라고
부르는 기도가 침묵을 도울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사랑하면서 그분께 참으로
실재해 있기로 결심하는데 있다.

< 호흡에 리듬을 맞추는 것 >
- 동양의 모든 스승들은 우리 안에 깊은 집중력을 형성해 내기 위해 호흡에 주의력을
집중하는 방법의 유용성을 강조한다. 사막의 교부들도 사용하던 기법이고 재발견해야
할 기법이다. 충분하고도 규칙적인 호흡을 허락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 예를 들면 허리를
완전히 곧게 펴고 가슴을 펴고, 두 팔을 길게 늘어뜨려 장궤한 자세를 취하거나, 등받이
없는 의자 혹은 등받이가 곧은 의자에 앉아 상체를 완전히 똑바로 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호흡이 규칙적이고 충분하면 집중은 보다 쉽다. 그리고 우리를 더 도와주는
한마디의 말, ‘아버지’ 혹은 ‘예수’를 외우면서 자신의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라고 충고
한다. 눈을 감고 이 단련을 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본다. 호흡에 리듬을 맞추어야 하는
기도의 기법이 유익하다면 사용돼져야 하고, 무익하다면 사용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병든 기도를 고치는 데 이용될 수 있는 모든 것에 큰 가치를 두어야 한다.

< 사랑의 불꽃 >
- 불을 지피기 위해 불씨 한 점이면 충분하다. 마음의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하느님의
사랑에 집중해 보자. 그리고 온 마음으로 너에 대한 그분의 개인적인 사랑에 대한 감사를
아주 솔직하게 표현해 보라. 이것을 정직하게 책임감 있게 하라. 말들로 충분하지 않고
온 마음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기도해 보라. “아버지, 저를 위한 당신의 개인
적인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벌써 저를 사랑하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영원토록 저를 사랑하실 것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당신을 생각지도 않을 때 당신을 모르고
있을 때에도 당신께 냉담할 때에도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에도 당신이 저를 사랑
하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제가 유다처럼 될지라도 저를 사랑하실 것이기에 감사
드립니다. 당신은 저를 저인 그대로 받아주시고 이 순간 저를 사랑하시는 것에 감사드립
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그분의 사랑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셨던 여러분 생애의
한 순간에로 되돌아가도록 해보라. 그러면 하느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이 사랑의 표현을
하느님께 정말 온 마음으로 드리면서 마음의 기도에 각별한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9. 시편 기도 ]

< 앵무새처럼 … >
- 성아오스팅은 크리스천이 기도할 때 시편을 앵무새처럼 사용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씀하셨다. “앵무새와 언치새는 때때로 그들이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사람들로부터
말하는 법을 배운다. 이와 달리 우리 인간은 유일하게 지성을 가지는 특은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우리가 노래하는 시편에 맛들이도록 해야 한다. 만일에 이렇게 한다면
노래가 참기도가 되고 우리들의 기도가 들어 허락될 것이다.” 기도할 때 우리가 기도의
맛을 느껴야만 우리들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게 된다. 그리고 기도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만
그 맛을 느끼게 된다. … 시편은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의 사상을 담고 있다. 시편은
우리 크리스천 신앙을 솟아나게 한 종교적인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시편에는
현재의 사고방식과 아주 거리가 먼 표현법들, 개념들, 비유들, 어휘들이 쓰이고 있다.
이 모든 어려움들은 시편을 깨닫고 사용하는데 있어서 작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맞게
이 어려움을 극복한다면 시편의 기도가 우리에게 그 영양을 공급시켜 줄 수 있지만 그
어려움을 무시해 버린다면 시편은 절대로 기도가 되지 못할 것이다.

< 되는 대로 수집한 것이 아니다 >
- 교회는 이 시편들을 성령의 감도를 받아 쓴 노래라고 한다. 이것이 아마 시편의
생명력을 설명하는 충분한 이유일 것이다. 즉 인간적인 시가 아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다른 것과 바꾼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만약에 바꾼다 해도 무엇으로 바꿀
수 있겠는가? 인간적인 시와 감도를 따라 쓴 시와는 마치 그림에 있는 불과 실제적인
불과의 차이처럼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느님 말씀과 인간의 말과의 차이는 마치 밤과
낮이 다르듯이 서로 다르다. 그뿐만 아이라 시편은 공동체의 노래이다. ‘트라윌’의
말에 의하면 다만 공동체 안에서만이 시편의 완전한 뜻과 음률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민요를 노래하는 대신 읽거나 낮은 소리로 암송한다면 완전히 그 맛을 망쳐버렸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시편은 대중을 위한 노래이고, 기도 중에 있는 대중을 위한 노래이다.
이 두 가지 특성을 빼어버린다면 시편의 제 맛을 잃게 될 것이다.

- 또한 시편은 계시를 가득히 포함한 노래이다. 모든 구원 역사에 대한 요약이다.
시편은 전달해야 할 계시의 메시지와 우주적인 계시의 메시지를 내포하며, 또한 개인을
위한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 시편은 예수님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오리게네스’는
그의 시대에 이렇게 가르쳤다. “예수 그리스도 전에는 구약 성경이 마치 물과 같은 것
이었고 지금은 포도주와 같은 것이다.” 시편은 그리스도 신비의 빛 안에서 보아야만
그 깊고 완전한 뜻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세상 끝날에야 비로소 이 빛이 충만하게
드러날 것이다. 성서가 담고 있는 뜻은 그리스도 이후에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었고 세상
끝날에야 더욱더 잘 이해될 것이다. 그리스도 없는 시편은 역사적인 모순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모순일 것이다.

< 시편은 시이다 >
- 시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말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로 인해 우러나는
감정에 담겨 있다. 그러므로 시편 기도에는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급히 서두르는 마음은 시편을 말살시키고 경솔함은 시편의 감정을
죽인다. 하느님께 대한 감정은, 이것을 표현할 수 있고 일으킬 수 있는 사랑과 침묵의
분위기가 없으면 솟아나지 않는다. 그리고 시편은 셈족(유다계)의 시이다. 유다인은
서양의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개념화하는 일이 결코 없고 명상할 뿐이다. 유다
시인은 마음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한 폭의 그림으로 그 감정을 묘사하는 화가와도
같다. 유다인 시는 음률과 싯귀절이 그 근본 바탕을 이룬다. 싯귀절은 어떤 개념을
표현하므로 번역되어질 수 있으나 음률은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음률은 개념들이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어울려가며 그 감정에 생동감을 준다. 시편은 항상 노래로 불리워
져야 할 것이다.

< 시편에 대한 다른 어려움, 히브리어의 빈약함 >
- 히브리어는 빈약한 언어이고 동의어가 적을 뿐만 아니라 한 단어가 많은 뜻을 포함
하고 있기에 번역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어려움이 많지만, 개념에 있어 예기치 않은
다른 빛을 가질 수 있는 언어이다. 히브리어는 연결이 잘된 문장이라기보다 반복되고
중복되는 문장이 많기에 정확성은 없지만 그 대신 강하게 표현된다. 전치사가 적기에
분명하지 못하고 접속사도 적다. 그리고 동사에는 과거와 미래의 시제 밖에 없기에
행동에 대한 시간적 확실성이 없다. … 시편은 마치 사금(砂金)과도 같다. 하느님의
사금은 절대로 집 가까이에 있지 않으므로 금을 찾기 위해서는 멀리까지 가야 한다.
그래서 포기해야 할 것이 있고 수고해야 하며, 그리고 금모래에서 금을 가려내기 위해
키질을 하느라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일해야 한다. 시편은 경솔한 이들을 위한 기도의
양식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편이
인간적인 부족함과 빈약한 용어들로 둘러싸여 있기를 원하신 것은 좋은 것이다. 시편은
생각하기를 귀찮게 여기는 사람과 소심한 자들을 위한 기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게으른
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마음이 소심한 자는 길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 히브리 시는 노래이다 >
- 낭독하는 것이 아니다. 거의 항상 춤을 추면서 하는 노래이다. 히브리 시는 공동체적인
표현의 노래이다. 시편 기도에는 공동체가 참여한다. 혼자서 시편을 가지고 기도했다
할지라도 공동체의 힘이 그 기도를 지탱해야 할 것이다. 시편은 다른 이들과 함께 다른
이들을 위한 기도여야 한다. 시편은 공동체적인 정신, 즉 교회에 대한 인식을 길러주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시편은 기도를 위해 다 준비된 음식이 아니라 오히려 요리해야
할 음식이다. 쉽게 말하면 시편은 기도의 씨앗이며 기도의 자극제이다. 그러므로 시편이
기도의 꽃봉오리를 맺게 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될 위험이 아주 크고, 보통 잘 이해되지
못한 시편이나 합당하게 사용되지 않은 시편은 기도의 꽃봉오리를 맺지 못한다.

< 질문에 답함 >
- ‘감도를 받은’(시편과 같은) 기도와 개인적인 기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감도를
받은 기도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고 개인적인 기도는 인간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예수께 그들에게 기도문을 하나 지어주시기를 청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제자들에게 그냥 “자유기도를 하라, 또는 여러분들에게 떠오르는 대로 하라”고 하실
수도 있었지만 하나의 기도문을 정해 주시고 그 ‘감도를 받은 기도’를 제자들에게 맡기
시길 원했다. 히브리 전통과 크리스천 전통은 개인적인 기도를 장려하는 가운데서도
감도를 받은 기도로 기도하는 것을 수 세기 동안 한 번도 그만 두지 않았으며, 3000년
동안이라는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성이 감소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성령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본회퍼’는 “시편은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는 것을 배울 수 있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시편의 말씀을 읊으시면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이다. 한 크리스천
공동체가 시편을 잃어버린다면 비할 수 없이 귀한 보배를 잃어버리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보배를 다시 발견한다면 더할 수 없는 큰 힘을 얻게 될 것이다.

[ 10. 기도에 대한 인터뷰 ]

- 수도공동체의 한 연로한 형제와의 인터뷰 (질의응답)

(존대어를 일반어로 수정하고 발체하여 메모함)

* 정말 기도가 모든 것이라고 확신하는가?
- 그렇다. 기도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해야 된다는 것을 말한다. 하느님의 권능 없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능력으로 놀랄만한 능력을 발휘한다.

* 기도가 무미건조하고 어려울 때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방법이 있는가?
- 기도는 달콤한 사탕이 아니다. 영신적인 탐욕에 주의해야 한다. 투쟁이 올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희생함으로써 사랑하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가끔 기도를 무미건조하게 만드신다.
우리의 잘못이나 우리가 만드는 어려움에 조심해야 한다. 가끔 우리 스스로가 기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기도가 무미건조할 때 나는 이러한 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 기도에 있어 나를 가로막는 것은 하느님이 멀리 계시다는 느낌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 그렇다. 흔히 하느님은 멀리 계신다. 이것은 보통 있는 일이다. 기도는 사랑의 증거
이기에 인내심이 필요하다. 인내심이 없는 자는 기도에 있어서 참된 발전이 없다.
마치 높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인내심이 있다면 도달할 수 있다. 한걸음, 또 한걸음
으로 높은 산을 오를 수 있다. 인내할 때 하느님께서는 가까이 오시고 기도의 첫 열매인
당신과의 첫 우정에서 오는 기쁨을 맛볼 수 있게 해주신다.

* 기도의 중심에 가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느낄 때 어떻게 하면 좋은가?
-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멈추자. 평온한 마음을 가지고 자세를 바꾸거나,
독서를 하든지, 소리 내어 하느님께 말하거나, 가능하다면 성가를 부르든지 한다.
혼자라면 팔을 들고 기도하든지, 혹은 이마가 땅에 닿도록 엎드려 기도하자. 당신의
경솔함을 이기기 위하여 수많은 방법이 있다. 마음에 드는 방법이나 제일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고 느꼈던 것을 택하고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도록 하자.

* 기도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
- 기도는 하느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자신을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억지로
만들어 낼 수 없다. 가장 건전한 방법이란 무릎을 꿇고 이 은혜를 간청할 수밖에 없다.

* 기도가 다만 자기 암시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이라고 말하겠는가?
- 어떤 이들은 기도할 때 자기 암시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 기도이다.
기도라 할 수 없다. 참다운 기도는 아주 구체적인 것이고 자기 암시와 정반대이다.
만약 진정으로 기도한다면, 즉시 실제적으로 나아가게 되고 당신 자신에 대해 정직해야
하고 검은 것은 검고 흰 것은 희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신중하다.

* ‘기도문을 외우는 것’과 기도하는 것과 차이가 있는가?
- 그렇다. 밤과 낮과도 같은 차이, 흑과 백과 같은 차이, 물과 포도주와 같은 차이가
있다. 기도는 말장난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의 관계이고, 우정의 관계이며, 기도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 여러분들이 가르치는 방법으로 기도한다면 너무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 기도하려 하고 많이 기도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기도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고자 한다면,
몇 가지 실제적인 방법에 대해 먼저 말해야 한다. 그러나 다음에 중요한 것은 그 사람
자신이 실제로 자전거를 타보는 것이다. 넘어지고 다치고 하면서 특별한 방법 없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게 된다.

* 기도 때 성령께서 인도하시도록 너무 가만히 있는 것은 탈선할 위험이 없을까?
- 물론 성령께서 기도의 길을 인도하신다. 그렇지만 성령께서는 우리들이 하고자
하는 마음까지 밀쳐놓도록 하시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기도의 길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적어도 근본적인 몇 가지 방법을 알아야만 한다. 지도자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스승 없이도 기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순박한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도우심
으로 혼자서 기도의 제일 높은 단계에까지 도달한다. 각 수도 단체마다, 각 본당마다
어디서나 기도학교가 생겨나는 것이 필요하다.

*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영적 가난함을 강하게 느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 기도에는 사계절이 잇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 겨울이라면 봄을 기다린다.
이것이 전부이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영신적인 생활은 인내의 생활이다. 인간은 인내심
없이 과학이나 예술이나 사회적인 활동에 있어서 아무런 위대한 일도 할 수 없다.
이 지상의 위대한 모든 것은 모두가다 인내의 열매이다.

* 습관적으로 하는 기도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 정신 차려야 한다. 기계적으로 하는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다. 생명력이 없는 기도는
오히려 우리를 기도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 기도하기 시작하면 즉시 자신의 비참함에 빠져 버리는데 이것이 좋은 현상인가?
- 그렇다. 정상적인 것이다. 기도한다면, 진정으로 기도한다면 참으로 당신 자신을
만나야 하고 당신의 비참함에 맞부딪쳐야만 한다. 머리 숙여 그것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 하느님께 진정으로 용서를 청하는 것이다. 바리사이는 보라는 듯이
하느님 앞에 섰고, 이와 반대로 세리는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느끼고 하느님 앞에
다만 정직만을 드러냈다. 예수께서는 세리를 두고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돌아갔다”고
말씀하셨다.

* 기도 때 분심이 파리 떼처럼 몰려와 모든 것을 망쳐 버리는데 이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 평정을 잃지 않도록 하자. 우리는 파리 떼를 항상 막을 수 있다. 청소를 깨끗이 하고
파리약을 뿌리면 된다. 분심에 대해서도 살충제가 있다. 기도를 더 능동적으로 하자.
기도문은 제쳐 놓고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하느님과 마음과 마음으로 이야기하자. 성가를
부르자. 자세를 변화시키고 장소를 바꾸어 보자. 더 희생을 요하는 자세를 택해 보자.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투쟁하는 것이고 걸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이 악 속에 빠져 있지 않은지 살펴보자. 악에 빠져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 한 번도 기도하지 않은 사람이 찾아와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 감사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당신의 하루 일과 중에 받았던 하느님의 은혜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생각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감사드려 보자. 기도를 처음 시작
하는 이들뿐 아니라 우리도 역시 자주 하느님의 가장 큰 세 가지 은혜에 대해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생명, 지혜, 신앙이다.

* 기도가 나에게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 게으른 순간이 자주 있다. 이럴 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 투쟁해야 한다. 기도는 사랑의 증거이므로 힘이 들어야 한다. 힘든 것은 당연하일이다.
어느 하루는 더욱 힘들고 어느 하루는 덜 힘들다. 자연스럽게 밀고 나가야 한다. 힘든
것에 놀라지 말자.

* 기도 때 하느님의 말씀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가 ?
- 기도 때 자주 해야 할 것이 바로 하느님 말씀을 사용하는 것이다. 기도 때 제일 중요한
책이 성경이며 적어도 복음서이다. 복음서는 기도에 있어서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도움이다. 기도는 항상 하느님의 말씀과 융화된 것이어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
으로 가득찬 기도일수록 더욱더 부유하다.

* 계속적인 기도에 있어서, 각자가 많이 다르듯이 기도에 있어서도 다른 여러 가지
길이 있지 않겠는가?
- 확실히 그렇다. 각자에게 각자 자기의 길이 있다. 내적인 사람은 자기 절제와 숙고로써
계속적인 기도를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외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아마
계속적인 애덕이나 감사로써 그 길을 찾는다. 약간 감정적이거나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사람은 아마 주님과 친밀한 대화로써 그 길을 찾을 것이다. 체계적인 사람은 아마 짜여진
기도문을 계속 반복하는 것으로 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각자가 자기 자신의 취향과
능력에 따라 알맞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 기도하는 법을 택하는데 있어서 우리들의 기질도 고려해야 하는가?
- 그렇다고 생각한다. 기도를 위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자전거를 사용해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빠르게 잘 나가는 경기용 전거를 주셨다. 어떤 사람에게는
다 부서진, 짐을 싣는 자전거를 주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자전거로 경기에 나가서
이기라고 하시지는 않는다. 또 어떤 이에게는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세 발 자전거를
주셨다. 중요한 것은 페달을 밟는 것이다.

* 공동으로 하는 기도가 더 좋은가? 혹은 개인적으로 하는 기도가 좋은가?
- 둘 다 좋다. 우리는 개인인 동시에 또한 사회적인 동물이다. 개개인이 사회의 공동체를
이루는 산세포이고 개인인격체들이다. 우리는 공동기도와 개인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개인기도는 공동기도를 위한 등잔의 기름이다. 기름 없는 등불을 켜지지
않는다.

* 기도할 때 성부께 향하는 것보다 그리스도께 더 향하게 되는 것은 자주 나를 혼란시킨다.
또 성령께만 향할 수도 있다고 하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 기도는 항상 삼위일체적인 차원에서 해야 한다. 즉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를 흠숭하는 것이다. 교회가 항상 이렇게 기도한다. 성령은 인격이다. ‘너’라는
인격이시기에 성령과 나의 친밀한 관계는 정당한 것이다. 모든 것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지 않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필립보, 나를 보는 자는 곧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 어떤 신학자가 “기도하는 그곳에서 세상의 역사가 결정된다”고 하는 역설에 대한 생각은?
- 기도하는 그곳에 교회가 있고, 활동하시는 그리스도가 계시며 하느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기도하는 기도의 단체는 복되다. 그곳에서는 하느님을 숨쉴 수 있고
또한 하느님의 빛이 발하게 된다.

* 묵주기도에 대한 생각은? 이 기도가 전통적인 빈말만의 기도라고 생각하시는지?
-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마리아께 대한 신심’이란 교서에서 아주 훌륭하게 이에 대해
말씀하셨다. 로사리오 기도가 관상적인 기도가 못될 때 ‘영혼 없는 육신’과 같다고 하셨다.
로사리오 기도를 관상 기도가 되게 해야 한다. 각 단의 신비를 깊이 숙고하고 관상하도록
하지 않으면 여러 신비로 나누어 놓은 것은 소용이 없다. 묵주기도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원모습에로 되돌아가는 것, 묵주기도가 대중의 관상적인 기도가 되게 하는
것이다.

* 왜 남을 위해 기도해야 하며 또한 무슨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 교회는 남을 위해 기도할 것을 항상 가르쳐 왔다. 성바오로 사도께서는 초세기
신자들에게 이 의무에 대해 항상 강조하셨다. 예수님 역시도 남을 위해 기도하셨으며
심지어 원수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명령하셨다. 내가 다른 사람의 문제에 대해
마음을 쓰면 쓸수록 나는 나의 사랑의 수준을 높이고 나의 사랑은 그 문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 밤 성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회에서는 밤기도에 대해 항상 중요시하였으며 예수님
께서도 역시 밤에 기도하셨다. 밤기도는 새롭고 특별한 면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밤기도는 더욱 깊이가 있고 더 많은 희생이 있으며 친밀감을 더욱 느끼게 한다. 여러분이
기도에서 얻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밤기도를 해보라. 하느님께서는 밤 성시간에 마음이
약하시다. 해 보면 알게 된다.

* “성가는 갑절의 기도이다”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그렇다. 성가를 기도화하는 것에 자신을 양성해야 한다. 성가가 기도가 되지 못할 때
산만해지기도 한다. 노래하는 동안 하느님과 우리들과의 친밀함의 깊이를 파악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노력 없이는 성가를 기도로 변화시키는 것에 쉽게 도달할 수 없다.

*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은 영성체 때라고 생각되는데
이에 대한 말씀은?
- 우리들은 영성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순간은 없다. 단 한번이라도 영성체를 소홀히
하는 것은 대죄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 크나큰 선물을 계속해서
낭비하는 슬픈 습관에 젖어 있는지 모른다.

- # 105 독서 메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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