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독서 메모

[ 금주의 독서 메모 ] 112권-115권

금주의 독서 메모 #112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 책 이름 : 영혼에서 샘솟는 아름다운 이야기 ]

- 지은이 : 닐 기유메트
- 지은이 프로필 : 로마 교황청 직속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전공, 예수회 신부인
그는 베트남의 달라트 신학대학에서, 아비장의 서아프리카 가톨릭대학에서,
그리고 아테네오 드 마닐라 대학의 료올라 신학부에서 10년 이상 신약성서를
가르침. 또한 케손시티의 산호세 대신학교의 영적지도를 맡음.
- 옮긴이 : 김미경
- 펴낸데 : 성바오로, 출판일 : 1995.01.25, 253p
- 내 용 : 하느님께 다가가게 해주는 25편의 짧은 이야기들

[ 표지의 글 ]

하느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1세기의 그리스도인은 신앙을
어떻게 증거할 것인가? 사람들은 영광의 시간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아무리
불완전하고 말썽 많은 어린애라도 완전무결한 로봇아이와 비교할 수 있는가? 유다는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자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 그리고 그의
많은 질문에 대해 무한한 사랑의 하느님, 말할 수 없이 매력적인 하느님을 묘사하고
있는 이야기를 통하여 대답하고 있다.

[ 차례 ]

1. 서류 인간 ~ 25. 평화 추구의 길

1. 서류 인간

* “과학 기술 시대의 절정기에 있는 우리는 인간의 이성이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는 것을 지켜 보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쓰임이 파괴적인가 혹은 건설적인가에는 전혀 무관심함을 알 수 있다.” - 프레그릭 손탁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니켈 애플솝, 하늘나라, 성베드로, 서류 나라,
서류 인간, 지구, 연옥, 지옥, 루시퍼, 생명책

- 니켈은 평생 여러 정부 기관에서 일하면서 가난한 과부, 불쌍한 노인, 불구자를 위해서 겨우 세 번밖에는 관료주의 법칙을 어겨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 어려움 없이 하늘 나라의 진주문을 통과하여 하늘나라에 받아들여지자 꽤 기뻤다. 그는 뿌듯한 마음으로 하늘나라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의 노련한 관료적 시각으로 보건대 하늘나라는 실망스럽게도 무정부 그 자체였다. 어디에도 서류 정리 체제가 없었고, 어디에도 계획이나 절차, 법칙 비슷한 것이나 규범 등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본 하늘나라는 질서 정연한 조직이라기보다는 흥청망청 대는 축제 마당 같아 그런 어지러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성베드로에게 가서 그런저런 불만들을 털어 놓았다.

- 성베드로는 수긍하는 듯 하더니 절충안을 내놓았다. “니켈, 당신처럼 빈틈없는 사람은 이곳의 일처리 방식이 좀 답답하다고 느낄 수도 있소. 하늘나라 일부를 당신 손에 맡기겠으니 그곳에 당신 마음에 드는 친구들만 데려와 살게 해도 좋소. 어쨌든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한번 해보시오.” 그는 이 제의를 받아드린 다음 ‘베드로 조약’이라 이름하여 개인 서류함에 철해 두고서 소행정 구역을 맡으러 나섰다. 그와 그가 새로 뽑은 지상에서 일평생 공무원으로 지냈던 사람들은 그들의 왕국을 ‘서류 나라’라 칭했으며, 스스로를‘서류 인간’이라 불렀다. 니켈은 순회 시찰을 위해 지구와 연옥을 거쳐 마지막 순회 구역인 지옥을 향해 출발했다. 지옥문을 들어선 순간 그는 너무나도 낯익은 광경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무원들이 줄줄이 컴퓨터 앞에서 앞에 앉아서 부지런히 관련 자료들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저장하고 있었다. … 퍽 유능해 보이는 간부 한 명이 따라오더니 유들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루시퍼라고 합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제야 니켈은 자기가 지옥을 옳게 찾아왔으며, 동시에 그것이 그의 서류나라와 똑같음을 깨닫고는 아연 실색했다. 애써 다른 점을 찾자면 한 차원 더 효율적이라는 것뿐이었다. 그는 서둘러 하늘나라 진주문으로 돌아갔다.

- 자신이 하늘나라에 만들어 놓은 서류 나라가 어떻게 지옥의 모습과 그렇게도 똑같을수 있을까? 한참이나 망설인 끝에 성베드로에게 물었다. “사람이 온 힘을 다해 법칙을존중하며 준수하는 게 뭐가 잘못된 것입니까?” 성베드로가 말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하늘나라는 법칙보다 사람을 더 한층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지옥에서는 사람보다 법칙을 더 중히 여기기 때문에 거기엔 서류 인간만이 존재하지요. 반면, 하늘나라에서는 법칙 보다는 사람을 더 중히 여기기에 이곳에는 사람다운 사람이 삽니다.” … 니켈 자신은 완벽한 서류 인간, 다시 말하면 원칙만 내세우는 극히 행적적인 관리인이었는데, 어떻게 하늘나라에 올 수 있었는지를 묻자 성베드로는 아무말 없이 커다란 생명책을 펴서 니켈이 지구상에 존재했을 때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는 곳을 보여 주었다. 한쪽 편에는 업무상의 결정사항이 있었는데, 관계된 사람들 각자의 형편은 완전히 무시하고 원리원칙대로만 처리한 것이었다. 맞은편에는 세 번의 법칙 위반 사항이 기입되어 있었는데, 그 사항이‘칭찬해 줄 만한 일’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베드로 성인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말해주었다. “자네가 과부와 노인과 불구자를 위해 세 번 법칙을 위반했기 때문에 그 보상으로 하늘나라에 입장이 허락된 것일세.”

2. 밝아 오는 저녁

* “나이 든 그리스도인들은 노년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임을 안다.”
- 알폰스 디켄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75세 노인, 아내, 유언장, 하느님, 해외여행,
아브라함

- 75세였던 그는 앞으로 살 날이 몇 년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그에게는 죽음이 찾아 올 것이고, 그와 그의 아내는 창조주 하느님께 돌아갈 것이다. 이 땅에 살고 갔다는 흔적으로 그들은 무엇을 남기게 될까?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고결한 삶을 기억할 것이고, 굉장한 부자였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불행이도 그에게는 그 많은 재산을 물려줄 자손이 없었다. 이 사실은 그들의 오랜 슬픔의 원인이었다.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래서 어느날 아침 그는 변호사를 불러 그의 유언을 받아 쓰게 했다. “모든 소유를 나를 도와 다년간 충실히 일해 주었던 총 관리인에게 맡기는 바, 아내가 나보다 오래 살 경우 관리인은 해마다 충분한 액수를 그녀에게 지급할 것” 그날 오후 그는 공동 묘지에 가서 자기와 아내가 묻힐 묘지를 넉넉히 사두고, 장례식 절차를 어떻게 할지도 여러 생각을 하다가 언뜻 잠이 들었다.

- 마침내 하느님이 그에게 말씀하실 기회를 잡으셨다. “너는 곧 멋진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러자 그는 “알고 있습니다, 주님. 그래서 장례절차도 미리 다 준비해 놓았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언제든지 저를 부르십시오.” 하느님이 껄껄 웃으시며 다시 말씀하셨다. “내 말을 잘 못 알아듣는구나 이 세상을 떠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여행을 떠나라는 말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가거라.” “뭐라고요, 주님? 제 나이의 늙은이들은 대개 아무 일도 못하게 된지 오래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른 지방으로 이주해 가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란 말씀이십니까?” 하느님은 초지일관이셨다. “나를 믿어라. 내가 너를 위해 멋진 계획을 세웠다. 나를 믿기만 해라, 알겠느냐?”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결국 그는 작은 일에서부터 하느님을 신뢰하는 버릇이 오래도록 몸에 베어 있었기에, 죽음을 각오해야 할 큰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는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좋습니다, 주님. 그렇지만 미리 말씀드리죠. 여행 도중에 저는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럴 리 없다. 너는 죽지 않는다. 사실을 말하자면 너의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네 앞에 놀라운 삶이 예비되어 있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벌떡 일어나 해외 여행에 필요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고향을 떠나 낯선 길을 나섰다. 내와 단 둘이서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친지와 친척들 모두가 얼마 못 가서 길바닥에서 죽을 거라고 입을 모았지만, 그는 하느님을 믿었기에 그들의 장담에는 귀기울이지 않았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아브라함이었다.

3. 마침내 꿈이 이루어지다.

*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토록 그리워하나이다.”
- 시편 42,1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루비도 왕국, 다이안 처녀, 왕자, 악마의 제안,
묵주, 죽음, 왕중의 왕

- 옛적에 루미도라는 전설의 왕국에 다이안이라는 시골처녀가 살았다. 그녀는 밝은 태양처럼 예뻤다. 그녀의 빛나는 미모는 보는 이들 모두를 황홀케 했는데, 그녀 스스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앞 다투어 그녀에게 구혼해 오는 주위의 총각들을 하나같이 못 본 체했다. 그녀는 그들의 청혼을 모두 퇴짜 놓았고, 늘 더 나은 신랑감만을 찾았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귀공자나 왕자, 심지어 루미도 왕국의 국왕(총각)과 결혼하리라는 은밀한 야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밤낮없이 국왕만을 애타게 그리워했다. 한 번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왕이 백마를 타고 그녀가 사는 마을로 지나갈 날만을 고대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당장 그녀를 왕비로 삼으리라는 로맨틱한 사랑의 꿈에 젖어 있었다.

- 하지만 왕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이웃 나라의 공주와 정략결혼을 해버려, 다이안은 꿈을 접어야 했다. 이제 그녀는 공작이나 후작과 결혼하리라 마음먹었으나 그녀가 사는 마을에 찾아와 그녀의 아름다움에 눈길을 보내는 공작이나 후작은 없었다. 그 동안 여러 해가 흘러 화사했던 그녀의 아름다움도 빛을 잃어 갔다. 이제 백작이나 자작, 심지어 남작까지도 괜찮다는 생각에 이르렀지만 그녀가 사는 마을에 찾아오는 이들은 없었다. 몇 해가 더 지나자 그녀의 아름다움은 완전히 사라졌고, 그녀는 평범한 얼굴의 중년 여인이 되었다. 이쯤 되자 기사가 청혼해 와도 기꺼이 응할 판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그녀에게 구혼하는 기사들은 아무도 없었다. 몇 해가 지나자 다이안은 이제 늙고 못생긴 할머니가 되었다. 왕비가 되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리라는 꿈이 산산이 부서진데 대한 씁쓸함이 마음속에 늘 남아 있었다.

- 이 무렵 한 가지 엄청난 소식이 전해졌다. 그녀가 아가씨였을 때 결혼 상대자로 점찍었던 왕이 나이 들어 죽자, 외아들인 왕자가 왕위 계승을 서둘러야 했다. 그런데 왕자가 신부감을 고르고나서 왕관을 쓰겠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물론 신부는 루미도 왕국에서 가장 어여쁜 처녀여야 했다. 젊은 왕자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찾기 위해 온 나라 안을 몸소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마침내 왕자는 다이안이 사는 마을을 통과하게 되었다. 왕자는 빼어나게 잘 생겨, 마치 젊은 신(神)처럼 환희 빛났다. 자연히 다이안의 마음은 온통 왕자에게 쏠렸고, 당장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왕자는 주름살투성이인 다이안의 얼굴을 본체만체 흘끗 한 번 보고 지나쳤을 뿐이었다. 평생을 고대해 온 그 대망의 순간이 이렇게도 허무하게 지나가 버린 것이다.

- 그날 저녁, 왕자의 눈길을 마주했던 그 기막힌 순간을 되풀이하여 생각하고 있을 때어두운 방 한구석에서 악마가 나타나더니 실로 어마 무시한 제의를 했다. “당신이 내게 당신의 영혼을 준다면, 내가 당신을 다시 젊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겠소. 물론 왕자는 당신을 보자마자 당신을 열렬히 사랑하게 되고, 당신은 그와 결혼하여 평생 행복하게 살게 될 거요.” 젊은 날의 멋진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는 유혹에 다이안은 기절할 뻔했다. 더구나 잘생긴 왕자와 함께 일평생 더 없는 행복을 맛보며 살게 되리라는 유혹은 뿌리치기가 어려웠다. 악마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었다. 사탄은 매우 영리하다고 흔히 들어 왔던 이야기였다. 타락하기 이전에 빛의 천사였던 루시퍼처럼 이 악마도 그렇게 명민한 지성을 부여받았을 것이다. 지금 이 악마는 순전히 자기 이익만 차리려는 속셈으로 거짓 약속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앞치마 주머니 속에 있는 묵주를 돌렸다.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늘 그녀가 하던 버릇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모습을 보자 악마는 즉시 힘을 잃고, 검은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악마가 가버리자 다이안은 슬픔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녀는 슬퍼서 가슴이 찢어질지경이었으며, 그날 밤 그녀는 잠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다시 눈을 뜬 그녀는 하늘나라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젊었을 때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용모의 아름다움에는 마음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왕중의 왕이신 하느님 품 안에 안겨 있었던 것이다.

4. 모래시계

* “몰아치는 운명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신뢰하는 것이다.” - 알폰스 디켄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암브로스 찰링워드, 하느님, 모래시계,
마지막 단 한 알의 모래알

- 암브로스는 사업계에서 성공한 실업가이다. 사실 그가 손을 대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 금세 번창했다. 신앙생활만 제외하고 그는 모든 일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이었다. 매우 건강한데다 권세와 명성을 손에 쥐고 있으며, 은행 잔고 또한 넉넉하여 미래에 대해 걱정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어느 날 밤, 하느님이 그의 꿈에 나타나심으로써 그 모든 호언장담이 일시에 무너져 내렸다. 하느님은 두 손에 고대의 모래시계를 들고 계셨다. 속이 들여다 보이는 모래계는 두 개의 칸이 중앙에 있는 좁은 관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위 칸에 가득담긴 모래알이 연결관을 통해 아래 칸으로 조금씩 떨어져 내렸다. 하느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암브로스, 여기 모래시계 하나가 있다. 위 칸의 모래알이 아래로 모두 떨어져 없어지는 순간이 바로 너의 목숨이 다하는 순간이다.” 눈을 떠보니 침대 옆 테이블 위에 꿈에 보았던 모래시계가 놓여 있었다. 이미 위 칸의 모래알이 아래 칸으로 조금씩 떨어져 내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모래가 어느 정도의 속도로 떨어지는지 판단하고자 필사적으로 모래시계를 주시하며 수심 가득한 얼굴로 온종일 떨어지는 모래알만을 지켜보았다.

- 어쩔 수 없이 그는 우선 신부님을 모셔다 고해성사를 보고, 친척 모두를 불러들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였다. 저녁 무렵이 되자, 모래알은 이제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이윽고 한 밤중이 되었다. 마지막 단 한 알의 모래알이 연결관 중간에 걸렸다. 유리관 표면에 작은 흠집이 나 있는 덕분에 거기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 마지막 모래알은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듯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그렇게 생사의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이 암브로스의 운명이었다. 그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며 온 밤을 지새웠다. 그런데 새벽이 되어서도, 다음날도 하루가다 가고 또 밤을 새웠지만 운명의 모래알은 그대로였다. 같이 있던 사람들 모두가 마음의 긴장으로 기진맥진하여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 낮과 밤이 다시 한 번 지나도 상황이 바뀌지 않자 집안 분위기는 다소 누그러졌으나 당사자인 암브로스는 신경이 마비될 상태에 이르렀다.

- 그날 밤, 거센 돌풍을 수반한 폭풍우와 집 전체를 뒤흔드는 지진이 있었다. 요동에 놀라 잠을 깰 때마다 암브로스는 노심초사하며 모래시계만을 노려보았으나, 그때마다 모래알은 떨어지지 않고 흠집난 유리관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그가 다소 안심이 되어 선잠이 들었을 때 하느님이 두 번째로 꿈속에서 나타나셨다. “지금 이 순간까지 너의 목숨을 지켜 준 것은 바로 나였다. 네가 그것을 몰랐을 뿐이다. 넌 네 목숨이 너의 건강에 달려있다고 생각했지, 권세와 돈만 있으면 안전하다고 믿었고,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이제 방금 알게 되었듯이 말이다.” 암브로스는 부끄러운 마음을 고백했다.“주님의 말씀을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날 이때까지 주님이 늘 제 곁에 함께 계셨으며 매순간마다 저를 새롭게 이끌어 주셨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 지금 이 순간부터 전 당신만을 믿겠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완전히 새로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 순간부터 그는 모든 일에 하느님만을 의지했다. 실낱같은 목숨이란 말이 사실이긴 하지만, 바로 그 실낱을 거머쥐고 계신 분이 다름 아닌 하느님이셨던 것이다.

5. 최후의 그리스도인 p39

*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바위)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마태 16,18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도그마3 행성, 할라나 블리츠(중년 여성), 그리스도인, 브래드 로공(정신 위생청장), 나르팀 블러(부관), 4복음서

- 도그마3이라는 행성에서 또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 발견되었다. 할라나 블리츠라는 중년 여성으로 병원 연구실에 근무하는 전문가였다. 그녀는 브래드 로공이라는 정신 위생청장으로부터 벌써 두 번씩이나 심문을 받았다. 이제 그녀에게는 그녀의 ‘미신’을 철회할 수 있는 세 번째 기회가 주어질 참이었다. 만약 이번에도 고집을 부린다면 그 벌로 대뇌 제거 수술을 실시할 것이다. 이 수술은 미신에 젖어 있는 정신을 근절시키기 위해 행하는 것이다. 이는 전두골엽의 특정 부분을 떼내어 버림으로써 종교적 사고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도록 만든다. 심문은 정신 위생청의 공식 법정에서 행해졌다. 브레드 로공은 피고인의 그릇된 신앙을 뿌리 뽑고자 마지막으로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 “이봐요, 할라나. 당신은 총명하고 많이 배운 데다 분별력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높은 여자예요. 전문 분야에 관한 과학 기술의 발전상을 최근 것까지 정통하고 있는 당신이 그리스도교라는 그 미개한 미신을 믿는단 말이요?” 그녀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고 기품 있게 증인석에 서서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정신 위생청장님이 저의 신앙을 함께 나누지 못한다는 사실이 애석할 따름입니다. 청장님도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훨씬 더 행복하실 텐데요.” 그녀의 대꾸에 브레드 청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끝까지 그렇게 어리석게 굴면 그런 병적인 생각을 계속하게 하는 일부 대뇌를 제거해 버릴 것이오. 그러면 당신 자신이 한 때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거요. 당신은 어떠한 이데올로기에도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되고, 개성도 말살될 것이 두렵지 않소?” 그녀는 자신의 정신세계가 그렇게 무참히 짓밟히고 절단된다는 생각에 잠시 움찔했으나 그녀는 곧 평정을 되찾았다.

-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제 ‘사고’능력을 없앨 수는 있겠죠. 하지만 청장님, 믿음은 두뇌의 소산이 아니라 마음의 응답이랍니다. 인격체로서의 제 밑바탕은 언제나 그리스도인일 겁니다. 제가 머릿속으로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제가 공식적으로 종교에 관한 한 죽은 사람이 되더라도 이것만은 알아 두세요. 정부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을 뇌사시킬 때마다 그 결과 열 명의 새 그리스도인이 탄생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청장님, 우리가 사는 행성뿐 아니라 은하계의 다른 여러 행성에도 그리스도인은 많습니다. 아무리 뿌리 뽑으려 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암흑시대를 견뎌 낼 것입니다.” 이렇듯 심문은 계속되었다. 청장의 젊은 부관 나르팀 블러는 소송 절차를 내내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는 신념이 굳고 동시에 생기 넘치는 피고의 됨됨이에 매료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과학적 지식이 그렇게 탄탄한 여자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품은 채 이 일에 임했다.

- 그는 의혹을 떨치지 못해 그녀가 피고인으로 체포되고 소송이 제기되는 동인 개인 소지품을 샅샅이 조사를 하다가 ‘4복음서’라는 소책자를 발견하고는 그리스도인의 정신 작용을 파악해 볼 요량으로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이면서도 왠지 넋을 잃게 하는 묘한 구석이 있었음을 접하게 되었다. 결국 마지막 심문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고 그녀는 결단코 신앙을 저버리려 들지 않았음으로 정신 위생청 직원들의 감시를 받으며 대뇌 제거 수술 의료 센터로 끌려갔다. 청장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은 데 대해 무척 상심하자, 부관 사무실에 들러 위스키를 마시면서 입을 열었다. “나르팀, 때때로 나는 우리가 저 그리스도인들을 모조리 제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그들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 곁에 붙어 다니리란 생각 말일세. 그러니까 최후의 그리스도인이란 결코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들의 존재를 없애고자 노력한다 해도 절대 최후의 그리스도인이란 있을 수 없다는 확신이 설 정도입니다. 저들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짓밟을수록 더욱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 같아요.” … 청장이 나가자 나르팀은 ‘4복음서’를 다시 꺼내들고 계속해서 읽기 시작했다. 이따금 그는 숨을 죽이며 “믿을 수가 없어”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난 그는 책을 덮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나자렛 예수라, 굉장한 사람이야.”

6. 영광의 순간

* “미련한 사람은 사소한 일을 찾으며, 그 일을 보고서는 그냥 행할 뿐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위대한 일을 추구하고 온 생애를 통하여 행할 바를 안다. 미련한 사람은 하나에 하나 더하기를 계속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백만 개를 목표로 해서 모든 것을 하나로 합칠 수 있는 사람이다.” - 로버트 브라운한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케이트와 버네사 두 자매, 버지니아호, 항해, 폭발
침몰, 구명보트

- 케이트와 버네사 두 자매는 함께 배에 올랐다. 그들은 두 섬 사이를 운항하는 기선 버지니아 호를 타고 마닐라에서 잠비아로 가고 있었다. 두 자매는 얼굴이나 체격 면에서는 매우 비슷했지만 서로의 인생관은 아주 달랐다.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마음가짐이나 복음서를 대하는 태도는 더욱 그러했다. 케이트는 이미 오래 전에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기고서, 성령께서 시키시는 그대로 주저함 없이 충실히 따르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날마다 그녀는 타인에게 후히 베풀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면서 남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줄 수 있도록 자신에게 능력을 비추어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버네사는 언니와 거의 정반대였다. 그녀는 언제까지나 영광의 순간, 즉 지상 최대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하느님께 불충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늘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헌신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끊임없이 저울질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소한 일들 속에서 자기 자신만의 유익, 만족을 찾았고, 자기 뜻에 따라 계획하고 선택했다.

- 항해 첫날 저녁, 태양이 지고 바다에 온통 어둠이 짙게 깔릴 무렵, 버지니아호에 엄청난 비극이 들이닥쳤다. 보일러실이 폭발하여 선체에 큰 구멍이 생겨 곧 배가 침몰해 버릴 게 분명해졌다. 승객들에게 이 소식이 전해지자 배 안은 일시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선장은 확성기를 통해 이 사건을 사실대로 밝혔다. 결국 선장은 몇 안 되는 사용 가능한 구명보트를 부녀자와 어린 아이들에게 우선 나누어 주기로 했다. 구명보트를 앞 다투어 차지하려고 기를 쓰는 모습은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다. 사람들의 몸부림에 떠밀려 두 자매는 따로 떨어지게 되었고, 자연히 각자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냈다. 버네사는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당장 공포에 질렸다. 늘 해오던 버릇대로 그녀는 무엇보다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바다에 구명보트가 내려지기가 무섭게 그녀는 가장 먼저 뛰어내려 필사적으로 올라탔다. 배 위에는 아직 어린아이를 안은 대부분의 부녀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 케이트는 반대로 주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데 여념이 없었다. 물론 그녀도 무척 두려웠다. 곧 마지막 구명보트가 바다에 내려졌고 선원들로부터 어서 뛰어내리라는 재촉을 받았다. 바로 그 순간 케이트는 모두들 소란을 피우는 통에 구석으로 밀려난 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바로 그 할머니를 구명보트에 태워드렸다. 물론 그녀는 침몰중인 배에 그대로 머물렀다. 칠흑 같은 어두운 밤, 바다 한복판에서 갈팔질팡하는 와중에 영광의 순간은 다가왔다. 눈부신 광채를 발하며 하늘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늘상 그 영광의 순간을 위해 힘을 아껴 두었던 버네사가 그 순간을 분간하지 못했으니 무엇보다 안 된 일이었다. 반면, 언제나 자기 자신을 이웃 사람에게 아낌없이 내어 주던 케이트는 그 영광의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빛냈다. 그녀는 감히 영광의 순간을 생각하지도 기다리지도 않았으나, 영광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맞이한 것이다.

7. 바르티매오

* “믿음이란 가장 고결한 열정이다.” - S.키에르 케고르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나(바르티매오), 아버지 티매오, 소경,
나자렛 사람 예수, 예리코 성, 치유

- “나는 어렸을 때 이름 모를 열병에 걸려 완전히 시력을 잃고 말았어,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나는 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며 지냈지. 아버지가 늘그막에 얻은 아들인데다, 위로 세 형들은 사업상 여행을 하느라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으니 자연히 아버지와 나이 어린 나는 사이가 각별했지. 일곱 살이 된 내가 눈이 멀게 되자 나를 아껴주시던 아버지가 이내 돌아가시는 바람에 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지. 그러니 자신을 돌보기 위한 비용을 충당키 위해서는 성문 앞에 앉아 구걸할 수밖에. 그 당시 하루하루를 살면서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단지 눈이 멀었다는 사실 자체였어. 어느날 나자렛 사람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거야. 죽은 사람도 살려내고 문둥병도 낫게 해주고 소경의 눈도 뜨게 해준다지 뭐야. 놀라운 권능으로 기적을 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날부터 나도 꼭 한 번만이라도 그 예수라는 분을 만나고 싶다는 갈망이 자꾸만 커져 갔어. 어느 날, 바로 그 예수라는 사람이 예리코 성에 오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자, 그 순간 내 가슴은 그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마구 뛰었지. 갈릴레아의 예언자 나자렛 예수를 에워싸고서 많은 군중들이 몰려오고 있는 거라고 누군가가 말해주더군. 나는 기뻐서 가슴이 울렁거렸어.”

- “아 드디어 기적의 예수님이 여기까지 오시다니! 그 순간의 뜨거운 감동을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워. 온갖 생각들이 일시에 밀려왔지. 눈을 뜰 수 있으리라는 희망, 혹시 예수라는 그분을 만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이 기회를 꼭 잡고야 말리라는 다짐, 예수님 앞으로 걸어갈 수 없는 처지에 대한 울분 등으로 만감이 교차했지. 어쨌던 나는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했어. 그러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란 미친 사람처럼 목청껏 고함을 쳐 대는 거였어. 기적의 치유자 나자렛 사람 예수께 나는 내가 생각해 낼 수 있 최고의 칭호를 덧붙였지. 메시아, 구세주라고! ‘다윗의 아들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제 눈먼 소경으로는 더 이상 살아가기 싫었어!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어. 바로 이 사람이다! 나자렛에서 왔다는 이분이야말로 나를 저주받은 어둠으로부터 구해 줄 수 있으리라. 그래서 나는 더 크게 소리쳤지. ‘다웟의 아들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어. ‘힘을 내시오. 어서 일어나시오. 그분이 당신을 부르십니다.’ 그때 그 순간의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워. 안내하는 이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재촉해서 예수님 앞에 나아갔지.”

- “나는 그분의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를 들었어.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랍니까?’ ‘랍비여,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지. ‘가시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습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다 보였어. 삼십 년이 넘도록 눈멀어 있던 내가 그 자리에서 시력을 되찾은 거야. 눈감짝할 사이에 나는 푸른 하늘과 많은 군중들, 그리고 그 큰 예리코 성문을 보게 되었어. 무엇보다도 기뻤던 일은 나자렛 사람 예수를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거지.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어. 숭고하면서도 온화하고 권능과 온유함이 묘하게 어우러진 얼굴…. 그리고 말로는 다 형언할 수 없는 것은 그분의 두 눈이었지. 지금도 내 마음 속에서 그분의 두 눈이 마치 두 개의 태양처럼 불타오르는 것 같았어. 벌써 육 개월 전의 일이야. 사람을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언도를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분이 그것으로 끝장났다고 생각하지. 제자들의 말에 그분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잖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분을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난 믿어. 낱낱이 증명할 능력은 없지만, 내가 눈 뜨던 날 보았던 그분의 두 눈이 무덤 속에서
썩어버린다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거야.”

8. 수고가 없으면 이득도 없다.

* “하느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실 때, 아낌없이 베풀어 주신 가장 큰 선물은, 하느님의 지선(至善)에 기장 합당하고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 인간의 자유의지였다. 예나 지금이나 오직 지혜를 가진 피조물에게만 이 자유의지가 부여되었다.” - 단테의 ‘신곡’에서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칸쿠디 행성, 말라보, 그의 아내 그릿누, 아기 로봇, 모조 인형 가게, 여점원

- 칸쿠디 행성에서는 결혼한 지 만 사년이면 아이를 낳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을 수 있었는데,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말라보와 그의 젊은 아내 그릿누는 인구 정책 당국으로부터 아이를 가져도 된다는 공식 통지를 받았을 때 뛸 듯이 기뻤다. 그들은 이제 생물학적 번식 방법으로 아이를 생산할 것인지 아니면 로봇 시장에 가서 아기 로봇을 구입할 것인지 결정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들은 ‘모조 인형 가게’라 불리는 로봇 상점에 갔다. 아기 로봇은 인간이 낳은 아이와 똑같이 움직이고 숨쉬고, 먹고 배설하며, 울고 웃고, 잠도 자고 장난도 쳤다. 한 여자 점원이 그들에게 다가와 설명했다. “현재 이용 가능한 최신식 합성 재료를 써서 인간의 모든 해부학적 조직을 그대로 복제할 수 있습니다. 물론 두뇌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인간의 두뇌는 너무나 복잡 미묘해서 아무래도 그 비슷한 것조차 제조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나머지는 전부 다 해냈어요. 우리 가게에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빛깔과 모양, 크기의 아기 로봇을 갖추어 놓고 있습니다. 행동 유형별 제품도 다양합니다.”

- 여점원은 행동유형별 제품을 설명하면서 불편한 점은 있다고 했다. “아기 로봇은 화를 내지도 않고, 실수도 하지 않습니다. 항상 순종하고 무슨 말이든 그 자리에서 다 알아듣지요. 예의범절도 완벽하고, 빗나가는 일이 없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나 애정의 표시 또한 빠짐없이 잘 합니다. … 회로의 프로그램에 이미 그들의 응답이나 행동방식이 전부 저장되어 있지요. 그것이 바로 자동 아기 로봇을 갖는 이점이지요. 인간이 낳은 아이가 가진 장점은 다 취하고, 성가시고 귀찮은 점은 다 피하는 겁니다.” 그릿누는 인간이 낳은 아이에게도 로봇에게는 없는 어떤 긍정적인 특징이 있을 거라고 이의를 제기하자 여점원은 머뭇거리며 답했다. “인간이 낳은 아이는 당신을 자유의지로써 사랑합니다. 자유란 프로그램 되어 있지 않은 상태를 뜻하죠. 하지만 자유 의지로써 당신을 싫어할지도 모릅니다. 자유의지를 갖고 행동하는 만큼 아무도 예측할 수 없죠. 인간이 낳은 아이를 키우는 것은 대단한 모험입니다. 반면 아기 로봇을 교육하는 것은 즐거움의 연속이죠.”

- 그들 부부는 다른 모조 인형 가게를 가 보았으나 어디서나 별다른 게 없었고 판매원들이 하는 말은 그 말이 그 말이었다. “아기 로봇은 결코 당신을 귀찮게 하는 일이 없으며, 가슴 아프게 하지도 안고, 실망시키지도 않는다!” 비슷한 말을 반복해서 듣고 나서도 결론이 나지 않자 부부는 아이를 낳지 않고 대신 아기 로봇을 구입할 경우, 어떤 종류를 살 것인지 따져 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 돌아가는 길에 어느 아버지와 자동 아기 로봇인 아들 섀나를 기르는데 곤욕을 치르는 모습으로 보고서는 그릿누가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모조 인형 가게에는 완벽한 제품을 쌓아 놓으라 하고,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진짜 아이를 낳아 길러요.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겠지만, 아슬아슬하긴 해도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을 거예요.”라고 하자 남편은 그만한 가치가 있을거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들은 자유의지를 가진 아이를 하나 낳아 키우는 모험이 주는 영원한 기쁨을 미리 맛보며 집으로 향했다.

9. 고양이의 앞발

* “하느님은 인간이 알아 볼 수도 있고, 혹은 알아볼 수도 없는 방식으로 문제의 사건에
개입하신다. 하느님은 늘 그렇게 행동하신다.” - 존 힉의 ‘하느님과 믿음의 세계’에서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느부 고양이, 주인 제프리 몰톤, 약혼녀 조셀린 로이스, 독약, 피하주사기, 수호천사, 판관기 삼손

- “고양이들은 온갖 역경에 익숙하지요. 우리 고양이들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답니다. … 저는 느부라고 불립니다. 느부갓네살의 별명이죠. 이는 저의 주인 제프리 몰톤이 그렇게 지어 주었지요. 주인은 의과대학생인데 성서에 고양이가 언급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좀 심한 유머 감각을 발휘한 거죠. 그렇게 무시 받은데 대한 보상으로 제게 구태여 성서에 나와 있는 왕의 이름을 붙여 주었어요. 우리 주인은 그 기다란 왕의 이름을 줄여 느부라고만 부르죠. 가끔 무슨 일로 잔득 화가 났을 때만 ‘느부갓네살 왕’이라고 부른답니다. … 우리 고양이들은 악성 루머에 시달리는 동물이예요. 우리가 이기적이라고 평판이 나있지만, 그것은 분별력과 자제력을 가지고 애정을 표현하는 우리를 잘못 판단한 거죠.”

- “제가 어떻게 해서 주인의 목숨을 구하게 되었는지 설명 드리지요. 앞으로 하게 될 이야기에 대하여 적절히 대비하기 위해서는 고양이에 대한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명심해 주셔야 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전혀 무관한 것 같지만, 유심히 생각해 보면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 고양이는 소리를 안 내고 걷습니다. 둘째, 우리 고양이의 원래 조상은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셋째, 우리 고양이들의 눈매는 매우 깊이가 있고 한없이 지혜로워 보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고양이는 신비의 세계에 정통한 동물입니다.” … 주인 제프리의 약혼녀 조셀린 로이스가 갑자기 약혼을 취소하고 2개월 만에 새 약혼자와 결혼을 해버리자 그는 그녀를 너무나도 열렬히 사랑했었기에 낙심하여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르렀고, 심한 우울증에 걸리면서 끝내는 암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어느 날 저녁, 병원에서 돌아 온 주인은 병동의 약장에서 몰래 꺼내 온 독약이 든 작은 유리병과 파하주사기를 책상위에 올려놓고 코트를 벗어 옷장에 걸어 놓을 때였다.

- “우리 고양이들은 신비의 세계에 꽤 정통하답니다. 평상시 제가 즐겨 앉던 책상 모서리에 앉아서 저는 주인의 일거수일투족을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런대 갑자기 주인의 수호천사가 나타난 겁니다. 그 천사는 권능과 지력을 떨치는 무시무시한 한 줄기 광선이었으며 위풍당당했어요. 한 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천사는 저에게 지엄한 명령을 내렸어요. ‘주사기를 부러뜨려라!’ 그 명령을 감히 거역할 수 없어 저는 즉시 피하 주사기로 다가가 오른쪽 앞발로 그것을 굴리기 시작했어요. 바로 그 순간 주인은 옷장 문을 닫고 뒤돌아서 제 쪽으로 한 발짝 떼다가 말고 제가 주사기를 가지고 노는 것을 보았죠. ‘느부, 안 돼!’ 주인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지만 때는 이미 늦었지요. 저의 기막힌 손재주 덕분에 주사기는 책상 밑으로 굴러 떨어졌고, 마룻바닥에 부딪쳐 산산 조각이 났고 독약은 사방으로 흩뿌려졌지요. 이 광경에 주인은 혼비백산하여 소리소리 질렀지요. ‘느부갓네살! 이 바보, 멍청이! 하는 꼬락서니하고는 …’ 저는 주인을 말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죠.”

- “주인은 너무 상심한 나머지 마룻바닥에 흩어진 유리병 조각을 성난 얼굴로 바라보고만 있었죠. 엎질러진 독약을 다시 주워 담아 재차 자살을 시도할 도리는 없었을 것이고, 다시 한 번 기회를 보아 병원에서 또 독약을 훔칠 수밖에 없었죠. 일의 결과는 수호천사의 추측대로였어요. 독약을 훔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한 번 주어졌을 무렵, 제 주인은 마음을 고쳐먹고 있었죠. 마침내 절망을 극복하고서 곧 예쁘고 착한 아가씨를 만나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게 되었어요. 제 주인의 목숨을 구한 요인은 정작 무엇인가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고양이 덕분인가? 천사 덕분인가? 아니면 고양이의 앞발인가? 하느님의 손길인가? … 하느님께서 한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저를 사용하신 것뿐이죠. 이에 코웃음 치는 사람들에게는 구약성서 판관기에 나오는 삼손 이야기를 상기시켜 드리고 싶군요. 주님의 영에 사로잡힌 삼손이 당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들을 천 명이나 쳐 죽였던 일 말이에요.”

10. 귀소 본능 p83

* “우리는 흔히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하느님께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이는 하느님이
우리의 본향이 라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뿐이다. ”
- 로즈메리 버드의 ‘기도의 여정’에서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넬슨 라몽트, 연어, 제비 등 박제품, 꿈속의 질문,
설교자 방송, 제롬 파커 신부

- 닐슨 라몽트는 실업계의 거물이자 한량이었다. 사는 게 따분하다고 느끼던 그는 철새나 물고기 등의 귀소 본능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관련된 책들을 읽기 시작하더니 강의도 듣고 관찰하더니 그 분야에 어느 정도 권위자가 될 정도였다. 또한 사냥과 낚시를 일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희귀하다고 싶은 것은 잡아서 박제한 다음 방 안에 온통 걸어 두었다. 물론 그는 박제품들을 특별한 자랑거리로 여겼고, 친구나 손님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그의 취미가 되었다. 그는 자기가 직접 잡아 박제해서 벽에 걸어 놓은 미끈한 연어를 가리키며 귀소 본능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 후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태어나 자랐던 그 고향 강을 잊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간다는 거야.” 그리고 수렵 기념물실로 데려 가서 몇 분씩 일장 강의를 했다. “이 새는 찌르레기란 새인데 눈가리개를 한 채 둥지에서 800km 떨어진 곳에 갖다 놓아도 제 집을 찾아간다니까. 다른 철새들도 실험을 해 봤는데 결과는 마찬가지야. 제비의 경우는 8,000km 떨어진 곳에 갖다 놓아도 제 둥지를 찾아간다고. 하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슴새, 레이산 알바트로스(신천옹)의 예도 들면서 귀소 본능의 대단함에 관해서 설명했다.

- 실업계의 거물로 놀고 먹는게 그의 일이었다. 해보고 싶은 것도 다 할 수 있었고,
즐기고 싶은 것도 다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금방 싫증나게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부자이면서 따분하기 짝이 없이 그럭저럭 하루하루를 보냈고, 열중하여 달려들 만한 근사한 일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은 옛날에 갔던 사냥과 낚시 여행을 재현하고 있었다. 남쪽나라에 가서 겨울을 지내고 되돌아오는 기러기의 V자형 대열을 향해 총을 겨눌 때마다 매번 비행 선두에 선 기러기가 “우리는 고향에 가는 길입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는 중입니까?”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연어를 발견하고 그물을 치려 할 때마다, “나는 고향에 가는 길입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는 중입니까?” 라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똑같은 장면이 점차 빠른 속도로 계속 반복되었으며, 결국에는 온 천지가 모두 한꺼번에 그에게, “우리는 고향에 가는 길입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는 중입니까?” 외쳤는데 마치 천둥치는 소리 같았다. 넬슨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심장은 펄떡펄떡 뛰었고, 온 몸은 식은땀에 젖어 있었다.

- 이 악몽을 시작으로 몇 주 동안 이어서 비슷한 악몽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넬슨은 꿈속의 동물들이 계속해서 반복하는 바로 그 질문을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절벽을 끼고 있는 해안가에서 자동차를 세우고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자나 깨나 머릿속을 맴도는 바로 그 질문이 또 떠올랐다. 잠시나마 강박 관념을 떨쳐 보려고 자동차의 라디오를 켰는데 마침 우연찮게도 한 유명한 설교자의 종교 생활 상담 방송이 나왔다. 그 설교자는 심각하고 감동적인 어조로 말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인생이란 헛되고 헛되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지요. 정처 없이 떠도는 집 없는 방랑자 같다는 느낌도 들겠지요.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진정 가야 할 곳이 있으니까요. 여러분들에겐 고향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바로 여러분의 고향입니다.” 설교자의 마지막 말이 번개처럼 넬슨의 머리를 스쳐갔다. 그는 최면에 걸린 듯 방금 전에 들었던 말을 되뇌었다. “하느님이 내 고향이라고?”

- 이 일을 계기로 넬슨은 왠지 하느님에 관하여 알고 싶다는 묘한 충동을 느꼈다. …
돌아가야 할 고향이 하느님이라는 생각을 심사숙고하다 보니 그는 점차 모든 일을 달리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는 이 수수께끼 같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마침내 라디오 방송을 했던 설교자를 수소문하여 면담을 요청했다. 넬슨으로 하여금 종교적 탐구 여행을 시작하도록 만든 사람은 제롬 파커 신부였다. 신부는 넬슨을 반가이 맞아드렸고, 출세와 소유, 쾌락만을 추구해 온 한 남자의 과거를 보다 깊이 이해하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우리 마음속의 깊은 갈망은 모두가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귀소 본능을 표현합니다. 대개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지만요. 인간은 누구나 안정감, 타인의 인정, 성공, 자부심, 사랑, 행복 등을 원하지요. 이 모든 것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권력, 돈, 명성, 쾌락 등을 꼽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조만간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우리들 마음속의 깊은 갈망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본래 우리 인간은 영원하고 무한하신 하느님을 지향하게끔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 어떤 것으로도 하느님께 그 근원을 두고 있는 우리들의 귀소 본능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 하느님께 향하는 우리의 본성, 곧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우리의 타고난 운명(의식적으로 종교적인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간에)이 우리가 가진 값진 보물입니다. 고난 이 열정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려 버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욕구 충족이나 지적 작업에 골몰하지요. 하지만 그런 경우에라도 타고난 귀소 본능은 마음 속 깊이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릇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뿐이죠.” 넬슨은 신부의 말을 열심히 들었다. 이제 그는 자신의 과거가 어떤 모양의 삶이었는지 깨달았다.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삶의 편린들이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았다. 면담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 온 넬슨은 신부의 자상한 가르침을 그대로 따랐다. 날마다 순간마다 기도하며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고,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삶의 원리인 행복한 삶의 참된 원리를 하나씩 배웠으며, 완전히 변화된 마음으로 이웃사람들을 대하였다. 한 마디로 그는 하느님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11. 영혼의 음악

* 소설가에 있어서 근본이 되는 최고의 작업은 엄밀히 말해서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 이름 없는 미소한 것들을 우리 눈에 보여 주는 것이다.
- 가브리엘 마르셀의 ‘존재와 소유’에서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음악, 천사 하모니, 하느님, 베토벤교향곡 제7번,
프란츠 조셉의 제105번, 몇 명의 음악들

- 음악이 저 멀리 공중으로 퍼지는 까닭은 음악이 본래 하늘나라로 올라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늘나라에 다다르면 음악의 천사 하모니가 나타나 하느님을 알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느님은 음악에 입 맞추신 다음 기쁨과 평화, 열정, 용기, 향수, 위로, 그 외 여러 가지 축복들을 주시어 다시 세상으로 보내신다. 내 이름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7번인데, 나 역시 하늘나라로 여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느님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음악에 조예가 깊으시다. 음악가를 창조하심으로써 음악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 나는 이미 하늘 나라에 수차례 올라가 보았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단의 연주에 의해서였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대해 상당히 익숙했으므로 아예 내 집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날 나는 한 번도 연주되지 않은 채 세상에 널려 있는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가져 달라고 하느님께 호소하였다. “주님, 저 아래 지구에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음악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 하느님은 매우 부드럽게 미소 지으시며 더없이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나도 그 문제에 대해 좀 알고는 있다. 사실 사람들이 잘 듣지 않는 음악 중에도 내가 특별히 아끼는 것이 있지. 예를 들면 프란츠 조셉의 제105번이나 ….” 더 듣지 않아도 하느님은 하이든이 작곡한 교향곡들중 어느 하나를 가리키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하이든은 104개의 교향곡을 작곡했을 뿐 제105번은 작곡한 적이 없다. 나는 하느님의 실수를 바로잡아 드리려고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주님, 하이든의 교향곡은 104개뿐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하느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빛나는 미소를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네 말이 옳다. 내가 사랑하는 프란츠 조셉의 교향곡으로 현재 알려져 있는 것은 104개뿐이다. 그런데 프란츠 조셉은 어느 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서 교향곡 하나를 작곡했단다. 작품집에도 싣지 않기로 했지. 그러고는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한 교향곡이라고 말하더구나. 나는 특별히 그런 음악을 아낀단다.”

- 하느님과 내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내 주위를 맴돌고 있던 천사 하모니에게 하느님이 말씀하시자 잠시 후에 내 옆에는 몇 명의 남자와 여자가 나타났다. 하느님은 한 사람씩 차례로 빛나는 옥좌 앞으로 다가오도록 손짓했다. 그들의 음악 이름은 칠레 출신의 세탁부인 콘치타 페르지 등이었는데, 이들 모두가 상상을 초월하는 매혹적인 음악으로 듣는 이의 영혼을 감동시켰다. 마침내 나는 입을 열었다. “지구상에 수많은 기악곡들이 한 번도 연주되지 않은 채 무시당하는 사실만 안타까워했는데, 그보다 몇백 배 더 아름다운 영혼의 음악 역시 아무도 들을 줄 모르는군요. 안됐어요!” 하느님은 그 빛나는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제7번 교향곡아, 너무 그렇게 애석해하지 말아라. 나는 빠짐없이 듣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여기 하늘나라에 온 이상 그들의 영혼은 침묵을 깨고 노래할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고 너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라도 인생 교향곡들은 영원무궁토록 울려 퍼지리라.” 하느님이 주신 평화와 위로를 품에 안고 다시 땅으로 내려 온 나는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다. 아무리 볼품없는 영혼일지라도 나보다 훨씬 위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음악에 귀 기울이지만 하느님은 사람들의 영혼에 귀 기울이신다.

12. 님의 입맞춤

* “기도할 줄 아는 사람만이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 토머스 머튼의 ‘관상 생활’에서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산드라 공주, 하느님, 성안 어두운 지하실,
포옹과 입맞춤

- 산드라 공주라 불리는 예쁜 아가씨가 하느님과 사랑에 빠졌던 일이다. 그녀가 잉태된 바로 그 순간부터 하느님은 남모르게 산드라 공주에게 끈질기게 구애를 해왔는데 드디어 그 일이 성사되었던 것이다. 하느님의 그 모든 노력이 성공을 거두어 산드라 공주가 마침내 하느님의 은밀한 사랑에 응답해 오자, 하느님은 이제 그분의 사랑을 공공연히 드러내시며, 그녀에게 정식으로 구혼을 받아 줄 것을 청하였다. …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주는 선물은 그 어떤 것도 진정한 기쁨이 되지 못한다. 오직 나의 입맞춤만이 네게 진정한 기쁨을 줄 수 있지. 나의 `두 팔로 감싸 안아 주는 것도 나의 입맞춤과는 너무도 다르단다. 지금 당장은 말해 줘도 네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나의 포옹이 너의 몸을 안아 주는 것이라면, 나의 입맞춤은 너의 마음을 안아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의 입맞춤은 바로 너의 영혼에 입 맞추는 것이다.” 처음에는 매일 영혼의 입맞춤으로 주님을 체험하였으나 어느 날부터 하느님의 ‘부재’ 기간이 점점 더 빈번해 졌고, 장기간에 걸쳐 포옹을 해주지 않자 그녀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그녀는 하느님을 만나는 지하실에 더 이상 가지 말아야지 하는 유혹을 받았으며, 때로는 마음속의 번민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어서 음울한 지하실에 앉아 울부짖기도 했다.

- 그런데 수개월을 그렇게 부재중이시다가 하느님은 돌연 나타나셔서 그녀를 이전보다 더 부드럽게 감싸 안아 주시며 토닥거려 주시곤 하였다. 그녀가 왜 이런 식으로 대하시는지를 묻자 “너로 하여금 내가 주는 진정한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너의 영혼에 입 맞추는 나를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해서이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기를 여러 해, 어느 날 그녀는 용기를 내어 하느님께 여쭈었다.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는 것은 무슨 뜻인 가요?”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오래도록 내가 너를 안아 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너의 마음속에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보도록 하렴. 그러면 어느 날 문뜩 깨닫게 되리라. 너의 영혼에 나의 입맞춤을 받고 내가 주는 진정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이다.” 그 후 여러 해가 지났다. 사랑하는 님의 수수께끼 같은 제안대로 산드라 공주는 자신의 마음속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녀는 커다란 발견을 하게 되었다.

- 오래도록 하느님이 그녀를 포옹해 주시지 않게 되면, 그녀는 그렇게 소홀한 대우에 대해 마음속으로 은근히 하느님을 원망하게 되고, 심한 경우에는 친구들이나 사소한 즐거움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위안을 찾곤 했다. 이는 분명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사랑하는 님에 대한 갈망을 흐려 놓는 일체의 모든 것, 모든 이에게서 벗어나야만 한다고 느꼈다. 그녀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 단 한 가지는 하느님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온전히 그분의 것이 될 수 없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게 된 공주는 몹시 두려워졌고, 하느님이 왜 다가올 일에 대한 말씀을 꺼려하셨는지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무소유의 삶, 세상 삶이 주는 즐거움의 포기 등 번민을 하다가 어느 날 몹시도 괴로운 마음의 투쟁을 끝내고, 마침내 그녀는 이 세상의 만족감을 버렸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이 세상 그 무엇도 아닌 하느님 한 분 뿐이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이 그녀의 영혼에 입맞춤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바로 그날부터 그녀는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알았다. 이제, 그녀는 성 안 어두운 지하실에서뿐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그녀가 사랑하는 님을 만날 수 있었다.

13. 하느님의 도시

* “죽음은 빛의 소멸이 아니다. 다만, 새벽빛이 밝아 오므로 촛불을 불어 끄는 것이다.”
-R.타고르의 ‘노년기에서 바라본 인생의 의미’에서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인력거꾼 라주 쿠마르, 성도 베나레스,
조카 아누아, 갠지스강의 물과 흙, 신비한 미소와 흰 연꽃

- 라주 쿠마르는 한평생 한 가지 염원으로 애를 태웠다. 죽기 전에 성도 베나레스로 순례 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그는 52살인데도 돈이 없어서 아직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고향 캘커타에서 그곳 성도까지는 거의 700km를 기차로 왕복 여행을 하려면 천 루피 이상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생 고된 노동을 쉬지 않았는데도 그는 여간해서 천 루피를 모을 수가 없었다. 벵골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어서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해야 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구두닦이를 비롯해서 넝마주이, 행상인, 잡상인 등을 전전했다. 현재는 거의 10년 동안 인력거(릭샤)를 끌고 있다. 그 모든 비인간적인 고역을 치르면서도 라주는 가능한 한 모든 기회를 포착하여 성도 베나레스에 대하여 알아볼 것은 다 알아 보았다. 세계 곳곳에서 인도로 모여 드는 경배자들은 갠지스 강물에 한 번만 들어갔다 나와도 모든 죄를 깨끗이 씻음을 받는다는 믿음, 그리고 성도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곧장 하늘나라로 올라간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렇게 몰려드는 것이다.

- 성도 베나레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그곳에 가고 싶다는 그의 열망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는 힌두 삼위일체(창조의 신 브라마, 파괴의 신 쉬비, 보존의 신 비슈누)께 단 한 번만이라도 갠지스 강물에 목욕을 하고, 성도에 있다는 1500개의 신전을 볼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간청했다. 자기의 꿈을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라주는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 빨리 필요한 돈을 모우기 위해 담배도 끊고 술도 참았으며, 비공식 사설 혈액은행에 찾아가 피를 팔 때도 있었다. 힘겨운 인력거를 끄는데다 피까지 팔았으니 그의 건강은 나빠질 대로 나빠졌다. 어느 날부턴가 그는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까지 써가며 돈을 모았지만, 라주의 저금액은 몇 년이 지나도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너무나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불쌍한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라주는 힘들여 번 돈을 누구에게나 아낌없이 내주었다. 성도 베나레스로 갈 비용이 마련될 날만을 고대하는 그였지만, 불쌍한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언제든지 내주었다. 세월은 흐르고 라주의 건강은 더욱 나빠졌다.

- 가엾게도 그 모든 정성과 바람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장한 인력거꾼은 성도 베나레스로 가는 기차표를 사는데 필요한 돈을 마지막 한 푼까지 간신히 마련해 놓았지만, 결국은 아파 드러누워 꼼짝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성도로 가는 긴 여행을 이제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는 아들처럼 사랑했던 조카 아누아를 불렀다. 그도 역시 삼촌처럼 베나레스로의 순례 여행을 꿈꾸고 있었다. 라주는 조카에게 말했다. … “저 돈궤에 내가 모아 둔 일천 루피를 가지고 너와 내가 꿈에도 그리던 성도 베나레스로 가거라. 네가 날 위해 기도해 주면, 신들이 날 어여삐 보아 주실 게다.” 조카 아누아는 그런 삼촌의 사심 없는 태도에 감정이 북받쳤고, 땅바닥에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글썽이었다. 3일 후 아누아는 베나레스를 향해 떠났다. 삼촌은 병상에 누운 채로 그를 축복하여 성수병에 갠지스 강물을 가득 담아 오라고 당부했으며, 또한 돌아올 때는 자루에 그곳의 흙을 가득 담아 오라고 부탁했다.

- 라주의 병세는 극도로 악화되어 친척과 친구들의 열렬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누아가 올 때까지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 라주가 마지막 숨을 거둔 때는 새벽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죽은 라주의 잿빛 얼굴을 슬픈 마음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두 이웃 사람은 그의 입술에 감도는 희미한 미소를 보았다. 그 신비스런 미소 외에도 그들은 라주의 가슴 위에 놓여 있는, 이슬을 머금어 촉촉한 활짝 핀 흰 연꽃 한 송이를 보았다. 이 지역에는 먼 곳까지 연꽃이 전혀 자라지 않는다. 그런데 연꽃은 방금 꺾어 온 것처럼 생생했다. 오늘날까지도 이 신비는 풀리지 않고 있다. 몇 주 후, 아누아는 약속한대로 성도의 흙을 담은 자루와 갠지스 강물을 담은 물병을 가지고 베나레스에서 돌아왔다. 그는 삼촌 라주가 미소를 머금은 채 숨져 있었다는 것과 금방 꺾어온 듯한 연꽃 한 송이가 가슴 위에 놓여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는 더 이상 그가 가져온 물이나 흙이 필요 없음을 알았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신비한 방법으로 고대하던 성도에 도착한 것이 틀림없었던 것이었다.

14. 에스 오 에스(S0S)

* 그는 곧 예수께 다가와서 “반갑습니다. 랍비!”하면서 입을 맞추었다. 예수께서 그에게 “친구, 무엇 때문에 왔는가?”하고 말씀하셨다.(마태 26, 49-50)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유다의 자살, 예수님 말씀

- 유다는 밧줄로 올가미를 만들어 자기 목에 걸었다. 아직도 예수님의 호된 꾸짖음이 그의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했다. “불행하구나, 인자를 원수에게 넘겨주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자신을 위해서 좋았을 것을!”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너무나도 분명히 기억했다.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눈빛은 너무나도 극적인 대조를 이루었다. 예수님의 눈빛은 전혀 책망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두 눈은 그에게 무언가를 간절히 호소하는 듯했다. 가혹한 눈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드럽고 슬픈 눈빛이었다. “예수님은 이미 내가 무슨 결정을 했는지 아셨던 거야. 그래서 어떻게든 내 마음을 바꾸어 보려고 하셨던 거지.” … “내가 어떻게 마음을 바꿀 수 있겠어? 속수 무책이었는걸, 그 망할 놈의 은전 서른 닢 때문에. 대제사장들에게 되돌려주려 했지만 그들은 한사코 받지 않았어. 무고한 사람의 피를 팔았으니 난 도리가 없었어. 그걸 중단시키기엔 이미 때는 늦었지. 내 손으로 죄 없는 사람의 피를 팔다니! 하지만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어, 너무 늦었어.” 절망한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공중으로 뛰어내렸다.

- 사람은 마지막 숨을 내쉬기 직전의 몇 초 동안에 자신의 전 생애를 죽 돌이켜 본다고 한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사람들이 흔히 그렇게 말한다. 유다도 그랬었나보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그 몇 초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 영원 같던 순간에 유다는 소년시절, 청년시절, 이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며 제자로서 생활했던 시절의 기억들을 더듬어 보았다. 가장 마지막 순간을 차지한 기억은 다락방과 겟세마니에서의 일이었다.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말씀이 그의 괴로운 마음속에 파고들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 그에게 저승의 암흑이 엄습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무의식에 잠겨 있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그분이 말씀하셨지. ‘친구, 무엇 때문에 왔는가?’라고. 그래 그거야. 그분은 나를 ‘친구’라고 부르셨어. 그분은 나를 마지막까지 ‘친구’라고 부르셨어….” 마침내 암흑의 죽음이 그를 집어삼키기까지 유다는 마지막 남은 모든 힘을 다해 ‘친구’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깜깜한 바다 한가운데 빠진 사람이 사력을 다해 살려 달라고 외치듯이 – 그러한 애원을 누가 모른 체 할 수 있겠는가?

15. 내 멍에는 편하다. p130

* “기도할 수 있을 때 기도하고, 기도할 수 없을 때는 억지로 하려 들지 말라!”
- 대수도원장 채프만의 ‘존 채프만 수사의 영적 서한’에서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대방석 부인, 브로데릭 수사, 기도, 자세

- 대방석 부인은 기분이 썩 좋질 않았다. 25년이 넘도록 무릎을 꿇고 기도를 거듭했지만, 그 결과 얻은 것이라고는 두껍게 못이 박힌 무릎과 관절염 초기 증상뿐이었다. 실망한 나머지 그녀는 근처에 있는 베네딕토회 수도원의 브로데릭 수사에게 상담을 청하였다. 이름처럼 그녀의 체격은 대단히 뚱뚱했다. 그녀는 기도하기가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그녀가 이때까지 늘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하자 수사는 과감히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다른 자세로 해보라는 것이었다. “누구나 인정하는 위대한 성인, 성녀들도, 우리 주님은 말할 것도 없고 모두 서서도 기도했고, 앉아서도 기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부인은 어안이 벙벙했다. “서서? 앉아서? 하느님 앞에서?” 수사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래요! 하느님이 우리에게 두 발을 주신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 두발을 딛고 서라는 뜻 아니겠어요? 그분의 앞이든 아니든 말이에요. 우리는 한 순간이라도 그분의 시야에서 벗어나 살수가 없어요.” 대방석 부인은 단 한 번도 그 문제를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슬기로운 수사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대방석 부인이 되물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어요. 하지만 아직도 혼동이 되는군요. 기도는 우리가 바치는 최고의 고행이 되어야 하지 않나요? 우리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함께 지는 시간이 아닌가요? 일반적으로 말해서 기도는 자발적으로 참아 받는 고통이며, 그리스도인으로 불리움 받은 우리가 삶의 핵심으로 삼아야 할 것 아닌가요?” 이 말을 들은 수사는 표정이 사뭇 심각해졌다. 사악한 악마가 그릇된 생각을 이용하여 인내로써 하느님의 길을 따르고자 노력하는 고귀한 영혼들을 낙심하게 하는 것을 죽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 분이 더 이상 악마의 괴롭힘에서 희생당하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며 확고부동한 어조로 말했다. “아닙니다. 기도의 목적은 고행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죠. 아주머니가 25년이 넘도록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면서 충분히 경험하셨겠지만. 그렇게 힘겹게 기도를 하다보면, 하느님보다도 아픈 무릎을 더 많이 생각하기 일쑤이지요.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기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불편한 자세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다른 자세를 취하여 기도를 더 많이 하는 것이 낳지 않을까요?”

-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일부러 자신의 몸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은 많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수반되는 고통은 다만 불가피한 부산물일 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셨듯이 그분의 멍에는 편하고, 그분의 짐은 가벼운 것이 정상입니다. 만일 그분의 멍에가 너무 무겁다고 느껴진다면, 우리 마음대로 그분의 멍에에 그분이 원하시지도 않는 것을 보탰다는 징표입니다.” … 그녀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수사님 생각은 제가 앉은 자세로 기도해도 된다는 말씀인가요?” “네, 한번 해 보세요. 대방석 아주머니. 사람마다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충분히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으세요? 아주머니의 경우엔 지금까지 하느님이 특별히 후히 부여해 주신 달란트를 소홀히 여기시는 것 같아요.” … 대방석이란 이름에 걸맞은 뚱뚱한 체격에 역행하여 무릎 꿇고 기도하기를 고집한 것은 사실 비뚤어진 그녀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날 이때껏 자기 방식대로만 하느님께 접근하려 했다. 자연히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튿날 아침, 대방석 아주머니는 25년 만에 처음으로 큼직한 흔들의자에 앉아 기도했다. 물론 그녀는 앉은 채로 하느님을 만났다.

16. 꼬마 도깨비

* “그리스도를 위하여 바보가 되는 것과 정말 형편없는 바보가 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 로버트 맥아피 브라운의 ‘하느님의 별명’에서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니콜라스 팰콘 신부, 꿈, 수호천사 이자켈(꼬마 도깨비), 주교관(冠)

- “주교의 관과 수탕나귀(수컷 당나귀)의 차이점을 아세요?” 한밤중에 잠을 깬 니콜라스 팰콘 신부는 두 눈을 비볐다. 문득 침대 발치에 못생긴 난쟁이가 날개를 펴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백설공주의 이야기에 나오는 일곱 난쟁이와 아주 흡사했다. 그것은 하늘나라에서 온 초자연적인 존재만이 낼 수 있는 빛을 발하는 투명한 물체였다. 질문에 답을 하라고 하자 신부는 누구인지, 하늘나라에서 왔는지를 물었다. “나는 당신의 수호천사이고 이름은 이자켈이며 내가 당신을 수호하는 꼬마 도깨비예요. 교리문답에 수호천사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고 하죠. 다치거나 병나지 않게 해주고, 영적인 시험을 견디게 해주지요. 불행하게도 대개의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 꼬마 도깨비들이 바로 그때 끼어드는 거예요. 인간들의 자만심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하느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보조 수호천사인 꼬마 도깨비를 딸려 주셨죠. 우리들이 하는 일은 영적인 풍선을 터뜨려 버리는 거예요. 팽창된 자아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죠.”

- 신부가 이때껏 한 번도 너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하자, 꼬마 도깨비는 “나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은 없었겠지만, 내 말은 들었을 거예요.”라고 하면서 그것도 자주 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신부는 그것이 언제였고, 몇 가지 예를 들어 달라고 했다. “당신의 보잘 것 없는 자아가 부풀어 올라 위험 수위를 넘으려 할 때마다, 그러니까 당신이 점잔을 뺄 때, 유들유들하게 굴 때, 독실한 체할 때, 근엄한 얼굴을 할 때마다 내가 끼어들어 말했어요.” 하면서 몇 가지 예(묵상시간에, 거지에 적선할 때, 양심성찰 시간에 등)를 들어 말해 주었다. 신부는 거북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자신의 마음가짐과 실제 행동을 그렇게 면밀히 대조해 보고 나니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신부는 무슨 뜻인지 알았다고 더듬거리며 말하자, 당신은 내가 처음에 물었던 주교관과 수탕나귀의 차이점에 대하여 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신부는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꼬마 도깨비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바보, 돌대가리 양반. 수탕나귀는 꼬리가 하나이고, 주교관은 꼬리가 둘이잖아요.”

- 수호천사가 말했다. “내가 이렇게 문득 나타난 이유를 당신도 알고 싶죠? ” “이유는 방금 로마 교황청에서 당신을 주교로 임명하기로 결정했어요.” 팰콘 신부는 이 소식에 너무 기쁜 나머지 어안이 벙벙했다. “주교라! 얼마나 자랑스러운가?”하면서. 신부는 자부심으로 잠시 제 정신을 잃었었다는 사실을 즉시 후회하면서 말했다. “이봐, 꼬마 도깨비! 로마 교황청의 제의를 사양하는 편이 낫겠어. 주교직에 오르면, 그리스도인다운 겸손의 삶을 살아가기가 지금보다 더 어려울 것 같아서 말이야. 나는 아직 그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안 되어 있거든” … “주교직을 사양하고 평사제로 남게 되더라도, 그것을 사양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마다, 당신의 영혼은 우쭐해할 거예요. ‘주교관을 사양했으니 나는 얼마나 겸손한가!’라고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어떤 삶을 살던, 어떤 신분에 속하여 있든 그런 종류의 유혹은 늘 따라다니죠. 그러니 주교 직분을 사양하지 마시고 그 책임을 맡으세요. 내가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 말을 남기고 꼬마 도깨비는 사라졌고, 그 훌륭하신 주교는 자만심이 부풀어 오르려 할 때마다 꼬마 도깨비의 도움으로 그 유혹을 대부분 극복할 수 있었다.

17.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 “사람들은 그들의 미래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첫 번째 임무는 계속해서 삶을 살아갈 것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단순히 되는 대로 목숨만 부지할 것인지, 아니면 괴로운 세상이지만 우주의 기본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여분의 노력을 다 할 것인지를 결정할 책임이 있다.” - 앙리 베그로송의 ‘도덕과 종교의 두 가지 원칙에서’에서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본시오 빌라도, 황제 칼리굴라, 영구 추방, 아내 프로클라, 유배지 브리테니, 자살 계획, 화해

- 모든 것이 끝났다. 그 날 오후 본시오 빌라도는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았다. 빌라도가 최선을 다해 자기 자신을 변호했지만 황제 칼리굴라는 그에게 브니테니로의 영구 추방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대 총독이었던 그는 황제의 관저에서 물러나 집으로 돌아와 먼저 그 참담한 소식을 아내 프로클라에게 알려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예상했던 대로 아무 말 없이 남편을 부둥켜안고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너무나 유감스러운 일이군요. 하지만, 최악의 사태(자살 명령)는 아니잖아요. 그나마 다행이에요. 어쨌든 과거의 일은 잃어버리고 미래의 일을 생각하세요. 용기를 내세요.” 그녀는 용기를 내라는 말에 각별히 힘을 주었다. 그는 아내에게서 물러나 자조섞인 음성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미래? 우리에게 무슨 미래가 있지? 브리테니는 북부 갈리아 지방의 변두리에 있다고. 신에게서조차 버림받은 땅이야. 이런 마당에 미래를 이야기해?” 그녀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당신을 위해 기도할게요. 하느님은 우리를 도우실 거예요.”라고 동정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그녀는 곧 자기 처소로 물러나 정성을 다해 기도하였다. 그녀는 이 지방에서 맨 먼저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 중의 하나였다.

- 빌라도는 생각에 잠겼다. 침실로 들어선 빌라도는 추방당한 앞으로의 자기 운명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브리테니의 살풍경한 늪지 외에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황제의 판결이 무효화될 가능성은 없다. 그는 이미 쉰 살이 훨씬 넘었다. 그는 유배된 땅에서 늙어 죽어 갈 것이 분명했다. 자살하면 만사가 깨끗이 해결되리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고, 당장이라도 그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다. 사실 힘 안들이고 간단히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다만 아내 프로클라를 이 세상에 남겨 두고 간다는 사실이 그의 결심을 주춤하게 했다. 그의 아내는 언제나 괴로운 그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진통제와도 같았다. 참으로 훌륭한 여인이고, 너무나도 고결하고 용기 있는 여인이다. 자신의 정치적 실책 때문에 아무 잘못도 없는 그녀가 화를 입어야 한다는 것이 그가 자살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목숨을 끊으면 아내는 유배를 가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다. 자살만이 자신뿐 아니라 아내를 위해서도 최선의 길이라 여겨졌다.

- 그의 자살 계획은 이미 기정사실이 돼 버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내와 작별인사라도 나누고 싶었다. 아내는 뒤쪽 별실에 있었다. 노예들을 죽일 때 쓰는 십자가 형틀을 작게 만들어 놓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십자가 위에는 한 남자가 나무로 조각되어 있었다. 빌라도는 그것이 자기가 몇 년 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나자렛 예수의 형상임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방에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아내는 기도를 멈추었다. 그녀는 여성 특유의 직감으로 당장 남편의 자살 계획을 감지했다. 빌라도는 일부러 쾌활한 체하려고 무심코 십자가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저 사람이 날 용서해 주리라 생각하오?” 그녀는 대답하기 전에 잠시 침착하게 하느님이 친히 인도해 주시기를 청했다. “용서해 드리고말고요. 십자가 위에서 고통당하시면서도 주위의 병사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신분일 걸요. 예수님은 말씀하셨어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소서. 사실 그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옵니다.’라고요.” 빌라도는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겠지만, 난 아니요. 난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고 있었소.”라고 하자 그녀는 “당신도 마찬가지로 몰랐어요.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 빌라도가 대답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그가 하느님의 아들인지 아닌지는 난 아직도 모르겠소. 하지만 어쨌든 그가 무죄한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해. 내가 지금 당하는 치욕이 그를 죽인 죗값인 것 같소.” 그녀의 애타는 마음이 하느님께 닿았는지, 한 가지 영감이 떠올라 열과 성의를 다해 이렇게 말했다. “나자렛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믿지는 않더라도 그분의 영혼이 죽음을 넘어 이 세상 어딘가에 계신다고는 믿으시죠, 그렇죠?”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고 생각하오.” “공정하게 말한다면, 죄 없는 사람을 십자가 형벌에 처했으니, 그분의 저주를 받아 마땅하지요. 하지만 만일 당신이 어느 특정 조건을 만족시킬 경우, 예수께서 기꺼이 용서해 주시겠다고 한다면 그 조건을 받아들이시겠어요.” 빌라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건만은 계속 신경에 거슬렸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사실 총리자리가 위태로워질까 봐 군중들의 뜻을 따랐던 것이다. 그 비열했던 짓을 물릴 수만 있다면…. 빌라도는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그러지, 그래. 내 죄악을 씻을 수만 있다면, 어떤 조건이라도 받아들이지.”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참 제자가 되려면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라고 가르치셨어요.” … “여보, 당신이 용기 있게 지금 져야 할 십자가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예수님은 기꺼이 당신을 용서해 주실 거예요.” … “그래요. 브리태니로의 유배의 삶을 살아내는 거예요.”

- 빌라도는 아내의 말이 놀라웠다. 아내가 내놓은 대안이 어쩐지 감상적인 정의감을 불러일으켜 묘하게도 그를 감동시켰다. 자기는 예수에게 죽음의 십자가를, 예수는 자기에게 삶의 십자가를 지운 셈이다. 어쩐지 그 나름의 죄의 보상이 될 것 같았다. 예수의 죽음뿐 아니라, 과거의 모든 악행에 대한 죗값을 치를 수만 있다면…. 그녀는 반쯤은 놀리듯이 짓궂게 미소 지으며 한마디 했다. “집행 유예 판결을 받고 나머지 인생을 산다고 생각해 봐요. 용기를 가지고 여생을 잘 살아간다면, 혹시 알아요, 깨끗이 용서받을 수 있을지?” “깨끗이 용서를, 깨끗이 용서를.” 그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완전히 용서받을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감내할 수 있으리라! 빌라도는 새삼스레 불타는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 지금 이 상황에서 내 곁에 신을 하나 더 두는 것도 해롭진 않겠지.”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마음속으로 침묵 중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녀가 남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걱정 마세요. 당신은 깨끗이 용서받을 거예요. 완벽하게 말예요.” 본시오 빌라도는 난생 처음으로 이 세상과 화해하고 악수를 나눈 느낌이었다.

18. 연옥 맛

* “천국 영혼의 기쁨을 제외하면, 연옥 영혼의 기쁨에 비길 만한 기쁨은
어디에도 없다.” - 제노아의 성캐더린의 ‘정화와 연옥’에서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아이라, 스테이시, 스테이시의 가족,
누님 셰를, 누님 아들 매트, 진 형

- 열성적인 신자라면 대부분 그렇듯 아이라와 스테이시도 신앙심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아이라의 나이는 쉰 살에 가까웠다. 그는 성공적인 사업가인데, 최근 관심분야를 바꾸어 신학 공부에 온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교회 봉사 활동도 열심이었다. 그는 기도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일 뿐 아니라, 건실한 시민으로 스테이시와 완벽한 대조를 이루었다. 스테이시는 늘 인생의 밝은 쪽을 보는 좀 태평스러운 사람으로 나이는 30대 중반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구역에 살았고, 서로 간의 타고난 상호 보완성으로 인하여 우정도 깊어만 갔다. 두 사람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신학 사상의 격변에 따라 제기되는 현행 문제를 거의 대부분 논의하다시피 했다. 두 사람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신학 사상의 격변에 따라 제기되는 현행 문제들을 거의 대부분 논의하다시피 했다. 논의 대상의 하나는 연옥 문제였다. 스테이시는 연옥 신앙을 반박하곤 했다. 성서에 연옥이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 연옥이 정말 있다면 그리스도의 구원이 불완전하다는 말 아니냐는 식이었다. 반면에 아이라는 연옥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었고, 스테이시의 반론에 대해 해명하고자 애썼다. 그때그때마다 아이라는 여러 가지 형태로 열변했다.

- 또 한 차례 연옥에 관한 토론이 있었는데, 이번엔 스테이시가 아이라에게 질문했다. “지옥과 연옥이 정확히 어떻게 다른가요?” “그건 밤이 낮과 다른 것과도 같다고. 지옥은 하느님에 대한 증오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지. … 연옥 고통은 지옥의 그것과는 성격상 완전히 달라. 연옥에서는 하느님을 향한 불타는 사랑 때문에 고통을 받지. 그들은 오직 하느님만을 갈망해. 그들은 연옥에 처한 것을 기뻐하는데, 그 까닭은 그들이 마침내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만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야.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오직 그들의 이기심을 버리고 그들을 깨끗이 정화시키는 것이지. 그것은 그분의 불타는 사랑을 가까이함으로써만 가능하지.” “연옥 영혼들이 정말 기쁨을 누릴까요?” 스테이시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온전히 응답하는 것이 그들의 열망인 만큼 그들은 점점 더 순수한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되지. 동시에 사랑의 하느님과 점점 더 조화 일치되어 마음과 뜻이 그분과 하나 됨을 느끼게 되니 기쁘지 않을 수 없지. 아이라의 관념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인정하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결정적으로 납득하는 계기를 맞았다.

- 스테이시가 전날에 있었던 일에 대해 털어 놓았다. “저의 가족은 남자 형제 둘, 여자 자매 둘, 저, 이렇게 다섯이서 가족회의를 열었어요. 누님 셰를은 말기 암 환자로 육 개월밖에 못 살아요. 누님은 과부인데 곧 죽게 되었으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 매트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된다며 누가 자진해서 아들을 양자로 받아 줄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 나를 포함해서 다 사정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여섯 명의 자식이 딸려 있는 진형이 힘도 안들이고 지극히 당연한 일처럼 셰를 누님의 애를 떠맡겠다고 자청했어요. … 진 형이 애를 맡겠다고 선뜻 말했을 때, 제 느낌은 정말 너무나도 창피했어요. 완전히 충격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뜨끔하다니까요.” 아이라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연옥 맛을 좀 본 모양이구먼. … 요전날 내가 연옥과 지옥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증오심과 사랑에 대해 말했었지. 오늘은 부끄러움을 가지고 연옥과 지옥을 구분해 볼까” … “지옥은 절망으로 뒤범벅된 부끄러움이지. 저주받을 부끄러움이라고나 할까? 반면, 연옥은 희망과 사랑으로 장식된 부끄러움이지. 복 받을 부끄러움이야. 착한 행실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행실과 견주어 보고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면 정말 큰일이고, 전혀 마음이 켕기지 않는다면 완전히 양심이 마비됐다는 증거겠지.”

- 아이라가 결론지어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연옥이 아주 즐거운 곳이 되는 걸세. 부끄러움을 즐거워하진 안겠지만, 그러한 부끄러움이 자기 영혼에 복되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는 거지. 사실 착실한 영혼이라야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부끄러워할 줄 알지. 연옥 영혼은 지난 삶의 과오에 대한 부끄러움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할 거야. 지상에서의 잘못을 스스로 책망하여 기뻐할 거야. 다시 말하면 오직 죄의 성향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랄거야. 과거의 삶을 뉘우치면 뉘우칠수록 우리는 죄악과 점점 더 멀어지고 하느님께 가까워짐을 느낄 거야. 하느님이 사악한 우리를 깨끗한 사람으로 정화시켜 주시고, 그분 앞에 설 자격도 없는 우리를 차츰 고쳐 주는 것을 보고 기뻐하게 될 거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제 연옥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 됐어요. … 연옥이란 복된 지옥이란 말씀이죠.”

19. 중심 축

*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1코린 10,31)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여 선생 마이르나, 수면장애, 꿈, 장난감들의 대화, 팽이 장난감, 친구 셜리, 기도회

- 학교 선생이며 세 아이의 엄마이고 아내인 마이르나는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지쳐서 충분한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어느 날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의사가 처방해준 독한 진정제(수면제)를 먹고 잠을 청하려다 아이들 놀이방의 전등이 켜져 있음을 알고 스위치를 끄러 갔다가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그녀는 잠이 들면서 마룻바닥에 널려 있는 아이들 장난감의 대화를 엿들었다. 물론 장난감들은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꿈꾸고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그 이상한 언어를 알아듣는다. 주인 마이르나가 어떻게 신경 쇠약을 면할 수 있는가에 대해 장남감인 양철로 만들어진 병정, 고무공, 소형 식탁 세트, 예쁜 인형, 전기기관차, 돛단배, 파치지게임, 공기돌, 곰 등이 나름대로 지혜를 짜내 한 가지씩 묘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계속해서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키는 여자인 팽이 장난감이 있었다. 사람의 손이나 끈을 이용해서 돌리면 뾰족한 끝으로 서서 빙빙 돌았다. 그녀는 말이 많지 않았다. 무대 중앙에 나가 춤출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는 새침한 발레리나처럼 ‘큐’신호가 있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을 듯이 언제나 구석에 앉아 있었지만, 어린 아이가 조그만 손으로 살짝만 돌려도 그녀는
멋진 춤을 추었다.

- 나무로 만들어진 말이 팽이에게 잠자코 있지만 말고 얘기를 해 보라고 다그치자, 팽이는 정말 말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뭐든 말해야 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팽이가 대꾸했다. “솔직히 난 할 말이 별로 없어. 내가 주인인 마이르나의 고민을 어떻게 알겠어?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비슷한 점이 없지는 않지, 그녀와 내가 움직인다는 점에서. 그것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하지만 그녀는 너무 많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반면 나는 중심축을 중심으로 회전할 뿐이지. 내가 운이 좋은 거라고 생각해. 내게 중심축을 만들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뿐이야.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방향 감각 없이 이리저리 돌았을 거야.” 팽이는 수줍은 목소리로 결론지었다. “어쨌든 정말 난 누구도 판단하고 싶진 않아. 하지만 마이르나가 그녀의 영혼에 중심축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면 ….”거기에 있는 장난감들은 팽이의 말이 무슨 뜻인지 당장 알아챘다. 사실 마이르나가 중심축을 찾기만 한다면 더 이상 정신없는 여자처럼 미친 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뛰지 않을 것이다.

- 마룻바닥에서 꾸부린 채 잠들었던 마이르나가 불편한 자세로 인해 근육이 저려 오자 별안간 눈을 떴다. 주위에 장난감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본 그녀가 어리둥절했다. 곧 놀이방에 전등을 끄러 왔었던 기억이 났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깜빡 잠들었던 모양이야.” 이어서 좀 전에 꾼 꿈이 생각났다. 바로 옆에 팽이가 있었다. 문득 그녀는 팽이를 세워 돌려 보았다. 팽이는 중심축을 중심으로 멋지게 빙빙 돌았다. 끝은 마룻바닥 한 지점을 지키며 중심을 잡고 있었다. 팽이는 힘도 안들이고 잘도 돌았다. “나도 너 같았으면 좋겠다! 내게도 중심축이 있었으면 좋겠어!” 이때 마침 친구 셜리로부터 기도회에 가자는 전화를 받았다. … 그녀는 돌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도가 바로 셜리의 균형 잡힌 삶의 비결인지도 몰라. 이상한 꿈에서 깨어난 즉시 우울한 기분이 싹 가시고, 이어서 전화가 오고, 기도 모임에 참석하라는 권유를 받은 것이 모두가 우연의 일치는 아니리라. 결국 나는 삶의 지표, 중심선, 중심축을 찾고 있는지도 몰라” 생각하며 기도 모임에 가기로 선선히 대답했다. 몇 주, 몇 달이 지나면서 셜리의 말이 정말 옳았음이 밝혀졌다. 마이르나는 이전보다 더 여러 가지 일로 분주했지만, 삶의 중심이 되는 관심은 단 하나뿐이었다. 모든 일을 통하여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와도 그녀는 느긋하고 기운 찬 삶을 살아갔다. 마침내 그는 삶의 중심축을 발견한 것이다.

20. 덤 p191

*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 5, 41-42)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조수아, 사탄, 무거운 짐, 지옥문

- 조수아는 농부였는데, 영리한 사람은 되지 못했다. 오히려 다소 얼간이 같은 면이 있었다. 하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일이든 덤으로 더해 주기를 좋아했다. 이 농부의 후한 마음 씀씀이를 본 사탄은 심술 맞게도 제동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조수아의 친절한 마음씨에 감동을 받기 때문이었다. 순수한 선행이 그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누가 알겠는가? 마침내 사탄은 조수아를 유혹하기로 결심했다. 사탄은 누가 보아도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여 농부의 관대함에도 결국은 한계에 부닥쳐 거절할 수 없도록 만들 작정이었다. 사탄은 조수아의 자그마한 농가 앞에 나타나 문을 두드렸다. 사탄은 천 조각으로 만든 커다란 자루 두 개를 등에 지고 있었는데, 그 속에는 검은 돌멩이가 가득 들어 있었다. 농부가 노크 소리를 듣고 문을 열자 사탄이 말했다. “나는 사탄이오. 지옥으로 가는 길이오. 이 저주받은 영혼들을 지옥까지 데려가는 중이오. 내가 일 년간 애써 거두어들인 것들이오. 일급 영혼들로 바위처럼 단단한 영혼들이오. 그런데 너무 무거워서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지옥까지 도착할 수가 없겠어. 좀 같이 들어다 주면 고맙겠는데 ….” 조수아는 늘 그렇듯 망설일 것도 없이 도와 드리겠다고 했다. 농부의 응대가 의외여서 사탄은 퍽 속이 상했다. 그렇게 끔찍한 일을 도와 달라고 부탁하면, 조수아가 움찔해서 단박에 거절하리라 짐작했던 것이다.

- 계획이 처음부터 빗나가자 초조해진 사탄이 농부에게 말했다. “난 시간이 촉박하오. 갈 길은 멀고, 오늘밤 정각 열두 시까지 이 영혼들을 지옥까지 안전하게 데려가지 못하면 이 영혼들이 죄를 뉘우치고 개심하게 될 것이오. 난 지금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오. 당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시간 안에 지옥에 못 갈 것 같소. 이 저주받은 영혼들을 나 혼자 짊어지고 가기엔 너무 무겁소.” 조수아는 악마가 무거운 짐 때문에 곤란해 하고 있으니 필히 도와주어야만 되겠다고 생각하고, 사탄의 자루 하나를 대신 짊어지고서 어두운 밤길을 망설이지 않고 기분 좋게 따라 나섰다. 두 개의 자루는 정말 무거웠다. 사탄은 얼마 못 가 기진맥진해서 그가 더 이상 친절을 베풀 수 없도록 만들 작정이었다. 짐은 갈수록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다. 쉬지 않고 계속 걷자 사탄도 녹초가 되었다. 조수아로 하여금 도움의 손길을 거두게 하려는 속셈이 수포로 돌아가자 비참한 기분에 더욱 더 지쳤다. 사탄은 조수아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쉬어가자고 하면서 둘은 아무도 살지 않는 오두막집에 들어가 짐을 내려놓았다. 조수아는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악마에게 집에서 가져온 치즈와 큰 빵 한 덩이를 내어주었다. 사탄은 힘들고 긴 여행으로 기운이 다 빠진 상태에서 따뜻해지고 배불리 먹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 지쳐 잠이 든 사탄을 보자 조수아는 저절로 측은한 마음이 생겼다. 그때 조수아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짐을 혼자서 지고 가기로 한 것이다. 조수아는 사탄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두 개의 자루를 집어 올려, 빠질 듯 아파오는 어깨에 둘러메고는 “잠에서 깨어나 내가 대신 짐을 져 준 걸 알면 놀라면서도 기뻐할 거야.” 하면서 지옥문을 향했다. 사탄이 쉬기 전에 알려 준 언덕마루의 커다란 동굴을 향해 차가운 밤길을 조금씩
쉬지 않고 나아갔다.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던 사탄이 퍼뜩 눈을 떴다. 조수아가 눈에 보이지 않자 사탄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 “시골뜨기 주제에 날 속이고 내가 낚은 영혼들을 훔쳐 달아나다니!”하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촌놈은 자루를 두 개나 메고 있고, 나는 빈 몸이니 뒤쫓아 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내가 잡은 영혼들을 되찾아 지옥문까지 시간 맞춰 갈 수 있을 거야.” 하면서 도망갔을 길을 생각하며 사탄은 왔던 길을 도로 ‘거슬러 가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농부를 따라잡기는커녕 반대로 점점 더 멀어졌다. 사탄이 조수아를 찾아 헛되이 되짚어 가는 중에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이리하여 악마에게 사로잡혀 지옥으로 가던 영혼들이 도중에 모두 풀려났고, 1년 후에는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21. 시계들의 회의

* “여러분 가운데에 누구든지 지혜가 모자라면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베푸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야고 1, 5)
* 이야기의 소재들(인물, 장소, 사건 등) : 국영백화점, 시계들의 토론, 카시오 시계,
세이코 손목시계, 분디 할아버지 시계, 모래시계

- 국영 백화점의 시계들은 늘 그렇듯 그날 밤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지난 몇 달 간 경기가 나빠 백화점의 거래가 시원치 않았다. 진열된 상품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팔려 나가서 나름대로의 삶을 펼치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었다. 그러던 중에 성격이 좀 활달한 카시오 시계가 약간의 기분 전환을 할 요량으로 한 가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토론을 좀 해봅시다.” 주제는 곧 결정되었다. 망설일 것도 없이 ‘인간과 시간의 관계’를 다루기로 했다. 이 주제를 가지고 여러 연사들이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제너럴 전자 벽시계, 카르티에르 시계, 로진 시계 그리고 계시기인 스톱워치, 타임레코드, 크로노그래프 등이 주제와 관련하여 다방면으로 연설을 계속했다. 순조로운 토론이 진행되는 도중에 갑자기 최신형 세이코 손목시계가 말문을 열었다. “ … 주제와 관련지어 볼 때, 가장 근본이 되는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어떻게든 시간을 최대한 ‘절약’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이 지적은 획기적인 것이었고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 세이코 손목시계는 서두를 이렇게 장식했다. “지난 수세기에 걸쳐 인간들이 여러 가지 시간 절약 장치를 고안해 내기 위해 얼마만큼의 심혈을 기울였는지 주목해 봅시다. 자동차, 비행기, 접시 닦는 기계, 전자레인지, 일회용 기저귀, 복사기, 팩시밀리, 세탁기, 자동 녹화기, 소형 카세트, 등등” “패스트푸드 역시 시간 절약을 위한 거죠.” 이때 두툼한 로렉스 시계와 날렵하게 생긴 오메가 시계도 한마디씩 덧붙였다. 세이코 시계가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 발명품들은 남자든 여자든 현대인들 모두가 마침내 과학 기술 시대를 현명하게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모든 일을 최대한 빨리 처리함으로써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여가 시간을 늘려 보고자 하는 마음이 내재해 있습니다. … ” 마침내 그가 말을 마치자, 듣고 있던 시계들은 깊은 감동을 받은 나머지 모두가 입을 모아 즉석에서 짧은 노래 하나를 따라 불렀다. 음악성이 다분한 볼로바 시계가 지은 것으로 가사는 이러하였다. “시계들이여, 오 충실한 시계들이여.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이가 누구뇨? 시간을 절약하는 사람이로다. 값진 금은보석처럼 시간을 아끼는 사람이로다 ….”

- 여기에 고급 분디 할아버지 시계가 세이코 시계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대의사를 발표했다. “… 잠자는 시간과 소화시키는 시간을 정하신 하느님이 그렇게 서두르는 것을 좋아하실 리가 없지요. 십 개월이나 되는 잉태 기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모두가 잠자는 듯한 기나긴 겨울, 영겁에 걸친 종의 진화 …. 시간은 아껴 둘 게 아니라 잘 써야 하는 것이죠.” 고도의 정확성을 자랑하는 니콘 크로노그래프가 이에 반대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헛되이 써 버린 시간은 되찾을 수 없잖아요.” 시간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에 니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묻자 “잘 쓴 시간은 맛을 본 시간이예요. 근사한 포도주 한 잔을 맛보듯이, 위대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이 말이죠. … 인간들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자연과 함께, 나아가 하느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요. 축제도 없고, 휴식이나 명상의 시간도 없고, 음악회에 가거나 시를 읽을 시간도 없고, 슬퍼하거나 웃을 여유도 없다면 삶이 어떻게 되겠어요?”

- 누군가가 아직도 아무 말 하지 않은 시계가 있노라고 지적했다. 그것은 아주 오래 된 모래시계였는데, 모두가 한 마디씩 의견을 내놓은 마당었으므로 그 역시 뭐라 말을 해야 할 입장이었다. 모래시계는 나이 든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과 시간의 관계는 세이코 손목시계와 분디 시계로부터 잘 들었습니다. 두 분은 서로 반대되는 관점이지만 두 분의 의견이 나름대로 다 옳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시간은 황금처럼’ 귀합니다. … ”
시간 절약과 시간 낭비의 딜레마를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모래시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간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정작 인간이 아껴둔 시간을 참으로 구원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시간을 잘 쓰는 것이 인간의 몫이라면, 거기에 완전한 사랑의 의미를 부여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시죠.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그분의 임무이지만, 예수님은 결코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모든 일을 차근차근 진행시키는 분이죠. 올바른 시간 사용법을 알고 싶으신 분은 그때 예수님께 물어보십시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쉴 것인가? 일 할 것인가? 놀 것인가? 예수님처럼 한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잠시 후 마법에서 풀려난 듯이 열렬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모래시계가 내놓은 해결책을 만장일치로 환영한다는 소리였다. 곧 이어서 앞에서 불렀던 짤막한 노래를 다시 한 번 합창했는데, 이번에도 마지막 구절의 가사를 새로 바꾸었다. “시계들이여, 오 충실한 시계들이여!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이가 누구뇨? 시간을 잘 사용하는 사람이로다. 나자렛 사람 예수처럼 시간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로다.”

22. 성실한 젊은이

* “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는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1코린 4,3-4)
* 이야기 소재(인물, 장소, 사건 등) : 세 형제, 수도원 피정, 양파 까기, 수도원장, 수사 조시온

- 소아시아 남부 리치아 지방에 위치한 마이라라는 번창하는 항구 도시에 세 형제가 살았는데, 모두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충실하기 위해 열심이었다. 제일 큰 형의 이름은 필로티모스, 둘째는 필로마코스, 막내는 필로테우스였다. 이들 세 젊은이들은 청소년기를 갓 벗어난 나이었지만 일찍 철이 든 편으로 인간의 마음 작용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이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그 성실함이라는 덕목을 최대한 향상시킬 수 있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바로 그러한 목적에서 큰형은 어느 날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자기 자신을 보다 더 잘 알기 위해서였다. 친구들은 좋은 점만을 강조하고 부족한 점은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그는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그 이후로는 자신의 성실함에 대해 일체 의심하지 않았다. 둘째는 친구들이 자기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에 친구대신 적대자들만 찾아다니며 자기의 좋은 점과 결점을 숨김없이 지적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흠집만을 골라서 강조하고, 장점은 지나가는 말로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갔다. 그 역시 적대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그 이후로는 자신의 성실함에 대해 일체 의심하지 않았다. 막내는 두 형들보다 훨씬 현명했다. 그는 친구와 적대자 양편 모두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늘 자기 자신을 내면의 거울 속에 가두어 놓고 이모저모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런 식으로는 절대 성실해 질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간파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그분 앞에서만 걷기로 다짐했다.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더 진리를 사랑하며 성실해질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성실의 문제를 하느님의 손에 맡겼던 것이다.

-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세 형제는 며칠 간 피정을 하려고 근처 수도원을 찾아갔다. 그러고는 여러 가지 영적인 문제에 관하여 수도자들과 면담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수도원에 도착하여 수도원장을 만난 형제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춰야 할 일반 덕목들을 보다 잘 실천해 보고자 하는 그들의 소망을 말하며, 어떻게 하면 보다 더 성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수도원장은 세 형제에게 격려의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하느님의 길로 가는 데 있어서 성실함이야말로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이죠. 그러나 사람은 자신이 성실하다는 속단을 어떻게든 피해야만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실로 복잡해서 자신의 판단만을 너무 믿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고 나서 부엌에 가서 며칠 간 요리 담당 수사 조시온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해보라고 말했다. 그 수사는 매우 현명하고 거룩한 수도자로 알려져 있었다. 조시온 수사는 그들에 대해 일언반구가 없었고, 그들 앞에 양파 한 무더기를 쌓아 놓고는 껍질을 벗기는 게 할 일이라고만 했다. “자기 자신의 죄를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눈물의 은총을 구하세요.” 형제들은 늘 그렇듯이 열심을 다해 양파 벗기기를 시작했고, 얼마 되지 않아서 뺨에는 하나같이 눈물이 줄줄 흘렀다. 잠시 후 돌아온 수사는 그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 수사는 세 형제에게 각각 이렇게 물었다. “당신의 죄를 성실히 통해하였소?” 큰형은 뺨을 흘러내리는 눈물이 분명한 증거라고 했다. 둘째는 양파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뿐이나 죄를 통회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셋째 막내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지금의 눈물은 회개의 눈물일 수도 있습니다. 저의 죄를 진정으로 참회하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단순히 양파 때문일 수도 있지요. 정말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 문제를 하느님 손에 맡기고 싶습니다. 그분만이 제가 성실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아실 테니까요.”… 어느덧 세 형제가 피정을 마치고 수도원을 떠날 날이 다가왔다. 그들은 저마다 수사들과 함께 하면서 영적으로 충만해졌음을 느꼈다. 수도원장은 작별인사를 하고서 멀어져 가는 그들을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고 서 있었다. 수도원장이 같이 서 있었던 조시온 수사에게 물었다. “저 형제들의 성실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기 자신의 성실함을 의심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로 성실한 사람 아니겠어요?” “막내 필로테우스가 믿음직스럽게 여겨집니다. 누가 알겠어요?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자신의 성실성을 의심하는 그야말로 참으로 성실한 사람임이 판명될 줄…. 물론,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씀이에요.” 수도원장도 눈웃음 지으며 맞장구쳤다.“물론, 하느님의 은총으로. ”

23. 현실적으로 삽시다

* “악을 행하여 선이 생기게 하자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어떤 자들은 우리가 그런 말을 한다면서 우리를 비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들은 합당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로마 3,8)
* 이야기 소재(인물, 장소, 사건 등) : 레이날드 H.굳윌, 꿈, 사탄과의 대화, 테러집단 인질,
희생양 총살

- 레이날드 H.굳윌은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적당히 열심인 그리스도인이기도 했다. 즉 이치에 합당한 한도 내에서 복음대로 살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이었다. 토목기사로서 순조롭게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그는 어느 누구 못지않게 자기의 신앙을 충실히 지켜 나갈 태세가 되어 있었다. 그의 사고 자체는 너무나도 평범하고 실제적이었던 것이다. 근본적인 도덕 원칙 등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보는 견지에서는 해결의 방도나 방안은 중요하지 않았다. 추구하는 목적만 달성할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정당한 수단, 방법을 철학적으로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론가의 구미에나 맞는 일이라며 공공연히 힐난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어느 날 밤, 그는 꿈을 꾸었다. 그는 어두컴컴하고 한산한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옆에는 음울한 표정의 남자가 검은 옷을 입고 앉아 있었는데, 그는 그가 사탄임을 직감하였다. 사탄이 “당신과 내가 공통점이 많다.”며 말을 걸어오면서 대화가 시작되었다.

- 사탄이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속삭였다. “당신이 본래 실제적이고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오. 당신과 나는 동일한 노선을 취하고 있소. 그러므로 우린 서로의 행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고, 그 특징들을 비교 검토하여 배워둘 점도 있을 거요.” 이에 토목기사는 마음이 좀 놓이자 화답했다. “난 그리스도인이니만큼 대화와 협력을 바라지요. 오늘날엔 공산주의자들과도 대화와 협력을 꾀해야 하니까요.” 이에 사탄은 “지당한 말이요. 협력과 협조는 밝은 미래를 여는 열쇠요. 그러니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는 것 말고, 되도록 일치점을 찾아봅시다. … 본래 우리는 목적하는 바가 전혀 다르오. 당신 같은 그리스도인 일당은 영혼 구원이 생의 전부겠지만, 우리는 영혼들을 지옥에 빠뜨리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하고 있소.” 사탄은 비밀스런 음모를 꾸미듯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불행히도 위에 계신 당신의 주 하느님은 언제까지고 목적과 수단을 분명히 구별하지 못하니 답답할 뿐이오. 올바른 목적을 위해서는 올바른 방법만 써야 한다고 고집하니…. 어리석고 한심하오. 아직 원시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했소.”

- 레이날드는 주춤했다. 그는 원칙적으로 주 하느님이 늘 올바르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악마가 하는 이야기도 그다지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었다. 석연치 않은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좋은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은가? 하며 그의 머릿속 혼란스러웠다. 레이날드가 이 문제에 대해 얼버무리면서 어쩔 수 없이 수긍을 하자 사탄은 회심의 미소를 띠면 선심을 쓰듯 말했다. “당장은 좀 의심이 가지만 그래도 주 하느님께 계속해서 충성한다 이 말이오? 당신의 말대로 목적과 수단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는 잊어버립시다. 현실적인 면을 고려하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지금 이 상황에서 서로 함께 협력하여, 서로 다른 목적일지라도 각자 뜻한 바를 성취할 수 있겠는지 말해 보시오.” “지금 당장은 구체적인 계획안이 없소. 하지만 TV나 라디오를 통해 흔히 보고 들을 수 있는 몇 가지 상황을 한 번 가정해 보기로 하죠. 그러한 경우에 당신이 당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소,”

- 잠시 생각에 잠겨 아무 말 없던 사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어떤 미치광이가 시한폭탄을 설치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몇 시간 안에 분명 그 시한폭탄은 터져 버리고 말텐데, 아무도 그 시한폭탄을 정확히 어느 지점에 설치했는지 알 수가 없소. 어떻게든 폭탄 설치 장소를 알아내서 폭발하기 전에 얼른 떼어 내어 수십 명의 목숨을 구해야만 하오. 이때 그 미치광이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 방법이든 괜찮다고 생각하오?” “물론이죠. 고문을 해서라도 알아낼 건 알아내야죠. 무슨 일이든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하니까요. 수십 명의 목숨이 달려 있는데 한 사람쯤 고통당하는 것이 뭐 대순가요?” “아주 좋소.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바요. 이번에는 정치적인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정부가 경제 상황을 허위 보도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오?” “물론 괜찮죠.” 사탄은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이런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오. 이단설을 퍼뜨리고 다니는 종교적인 광신자들을 일소하기 위해 그들 모두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일 수도 있소?”라고 묻자 “죽일 수도 있죠.”“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오. 또 다른 문제인데, 되도록 빨리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인구 밀집 지역에 폭탄을 투하하여 겁을 주는 방법은 어떻게 생각하오?” “꼭 살려 두어야 사람을 더 이상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죠.” “그 점 역시 동감이오. 사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도록 부추긴 것은 바로 나요.

- 그럼 이건 어떻게 생각하오? 어떤 테러 집단이 열 명의 인질을 잡고서 경찰더러 인질을 석방하는 대신 무고한 사람 하나를 총살하라고 한다면 당신 같으면 어쩌겠소?” “한 사람을 희생시켜 열 사람을 구한다? 물론 한 사람을 희생시켜야 겠죠.” 바로 그 순간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레이날드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는 일어나 현관을 열어보니, 군속 장관이 두 사람의 경찰을 양 옆에 하나씩 세우고 있었다. 신원을 확인한 후 그들은 레이날드를 쥐도 새도 모르게 경찰 본부로 끌려 갔다. 어떤 테러 집단이 한두 시간 전 열두 명의 인질을 잡아 놓고서 인질 석방을 조건으로, 전화번호부에서 무작위로 레이날드 H. 굳휠이란 이름을 골라내서 총살시키라고 억지를 부린다는 것이었다. 만일 이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한 시간 마다 한 명씩 인질을 죽일 것이라고 했다. 이미 두 명의 인질을 끌어다 죽였으며, 테러 집단은 한 치의 양보도 하려들지 않는다고 했다. 레이날드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불행한 일이지만 남은 열 명의 목숨을 구하려면 한 사람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총살형 집행 대원에 의해 질질 끌려가면서 레이랄드는 성수 그릇에 빠진 악마처럼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저주를 퍼부었다. “불공평해! 불공평하다고!” 사형 집행 후, 군속 장관 매스터슨은 음울한 표정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물론 불공평한 일이오, 굳윌씨.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소.”

24. 절름발이 발레리나

*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1요한 4,18)
* 이야기 소재(인물, 장소, 사건 등) : 청소부(소녀) 클라우디아 모포, 발레 교수 디비노

- 로마에 살면서 공공 사무실의 청소부로 일하는 여자들 중에서 클라우디아는 단연 눈에 띄었다. 그녀는 나이가 어리다는 점이 남달랐다. 국립 발레 학교에 정식으로 고용되어 일하던 그녀의 어머니는 과부로 어렵사리 살다가 나이 어린 딸 하나만 남겨두고 유산 한푼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던 것이다. 학교 관리인은 어머니를 여읜 그 소녀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 후임으로 자연히 그녀를 고용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발레 학교 학생들이 장시간 연습을 계속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클라우디아는 자기도 발레를 하고 싶다는 남모르는 열정을 키우며 애태우곤 하였다. 이 로마 소녀의 특이점은 바로 절름발이라는 사실이었다.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다시 없이 불행한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아무 없는 곳에서 남몰래 춤을 추었다. 절름거리며 추는 춤이었지만 클라우디아는 모든 것을 잊고 춤에 몰두했다. 어느 날 우연히 교수 한 분이 텅 빈 강당에 들어와 괴상한 동작으로 절름거리며 춤을 추는 소녀를 보게 되었다. 디비노라는 교수였는데, 발레단의 연출자이자 이태 최고의 발레 교수였다.

-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지극히 친절한 사람이었다. 나이도 어린 청소부 아가씨가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나마 발레춤을 추어 보려고 애쓰는 것을 보자, 교수는 마음 속 깊이 동정심이 우러났다. … 소녀는 몰래 춤 추는 것을 들키게 되자 자책감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디비노 교수는 누구보다 이해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는 걱정과 염려로 떨고 있는 청소부 소녀에게 안심하라고 말하면서 무용 교습을 사사로이 받지 않겠느냐는 제의까지 했다. 그러한 친절에 그녀는 감격하여 몸둘 바를 몰랐고, 눈물이 그렁 그렁한 눈으로 호소했다. “하지만 교수님, 전 절름발이인 걸요. 전 결코 춤을 잘 추지 못할 거예요.” “그건 별 문제가 아니야. 네가 나의 가르침을 받고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난 백 퍼센트 만족할테니 말이다.” 이렇게 해서 기묘하기 짝이 없는 모험은 시작되었다. 세계적인 발레 교수가 절름발이 청소부 소녀를 발레리나로 만들려 하고 있다니!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클라우디아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불구인 자신의 추한 다리가 해낼 수 있는 일과 해낼 수 없는 일을 그녀는 너무도 잘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디비노 교수는 그녀를 훌륭한 발레리나로 만들기 위해 장시간 씨름을 하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 클라우디아는 노련한 교수의 가르침을 따라 열심히 발레를 연습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느리디느린 진보를 보일 뿐이었다. 그래도 교수의 넘치는 친절은 수그러들 줄 몰랐고 클라우디아의 마음 속에는 저절로 감사의 정이 싹텄다.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되어도 디비노 교수의 따뜻한 보살핌은 여전하였다. 오로지 그녀가 잘 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결국 그녀는 놀라운 인내심과 이해심을 가진 교수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교수는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다정다감함으로 그녀의 사랑에 화답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렇게 유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클라우디아의 발레 솜씨는 별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마음대로 춤이 추어지지 않아 절망감이 밀려와 참기 힘들 때면 그녀는 교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곤 했다. 그럴때마다 교수는 미소지으며 위로했다. “왜 그렇게 완벽하기만을 바라지?” “교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요.” “지금 이 상태로도 기쁜 걸”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형편없는 춤 솜씨 때문에 속상하다고 한마디 했다. 그런데 어느 때와 달리 교수는 심각한 얼굴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는 그녀를 놀라게 했고, 생각을 바꾸어 먹는 계기가 됐다.

- “네가 영원히 춤을 추지 못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단다, 클라우디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믿기만 하면 그런 것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을 텐데…. 네 자신을 기쁘게 하려는게 아니라, 나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라면, 바로 내가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을 가지고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잖아. 절름발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렴. 나를 위해 춤을 추기만 하면 된다. 네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네가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대만족이니, 안심하렴.” 이와 같은 현명한 충고는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 그 순간부터 그녀는 자신이 절뚝거린다는 사실에 대한 염려를 버렸다. 동시에 결코 위대한 발레리나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의 여지를 과감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제는 오직 디비노 교수가 가르쳐 주는 몸 동작을 따르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다. 사랑하는 교수를 온전히 신뢰하며 그분의 두팔에 온몸을 맡김으로써 그녀는 실로 금세 놀라운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교수는 언제까지나 완벽한 춤이 아닌 그녀의 진실한 사랑만을 바랐기 때문이며, 그녀 역시 더 이상 자신이 절름발이임을 개의치 않았으며, 아무리 형편없는 춤을 추더라도 교수의 사랑은 변치 않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두 사람 사이에 피어난 위대한 사랑이었다. 둘이서 함께 춤을 출 때 두 사람의 마음 속에는 이미 하늘나라가 다가와 있었다.

25. 평화 추구의 길

*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곧 길이기 때문이다.” - A.J 무스테의
‘종교적 평화주의의 다양성과 단점에 대한 숙고’에서
* 이야기 소재(인물, 장소, 사건 등) : 제이크 로스 하사, 보초, 모가디슈 변두리 지방,
친구 단 글로버

- 아프리카 동부의 작은 공화국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땅에서 어느 날 밤, 젊은 군인 제이크 로스 하사는 이런 저런 생각에 무거운 마음으로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대피소에 홀로 있게 되자 괴로운 상념들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의 눈앞에는 언제나 죽은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 단 글로버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두 사람은 미국 중서부 지방의 한 마을에서 함께 자랐다. 둘은 언제나 한 마음 한 뜻이었고, 말없이도 잘 통했다. 그들의 우정은 참으로 각별한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함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고, 둘은 괴로워해야 했다. 그것은 평화 시위운동이 언론의 초점이 되고, 중동 지역에 민족 분쟁이 산발적으로 일어나면서부터였다. 이때 단은 절대적인 비폭력주의의 노선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고, 한편 제이크는 직업 군인으로서의 길을 택할 것인가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둘 다 평화의 실현을 꿈꾸긴 마찬가지였으므로, 그 어느 때보다도 할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세계 평화를 성취하는 방법 면에 있어서는 둘은 안타깝게도 정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 제이크는 유엔 평화 군단과 같은 강력한 국제 군사 조직으로 강대국이 약소국을 착취하지 못하도록 제어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반면에 단은, 폭력은 어떤 형태든지 지속적인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확신했다. … 이와 관련해 많은 토론을 하였다 … 우연찮게도 둘은 동시에 소말리아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하는 임무가 달라 한 번도 만날 기회가 없었다. 도착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구조 작업 중에 단은 병들어 버려진 어린
아이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지뢰밭을 지나가야 했다. 지뢰밭을 무사히 통과하기까지 무릅써야 할 위험 부담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다가 까딱 잘못해서 무지막지한 지뢰밭 한 가운데를 정통으로 밟음으로써 장치된 지뢰는 용서 없이 폭발하였고 단의 봄은 산산 조각이 났다. 밤을 세워 보초를 설 때마다 제이크는 이렇듯 죽은 단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단이 죽은지 벌써 여러 달이 지났는데도 슬픔은 수그러들 줄을 몰랐다.

- 환하게 동이 트기 시작했다. 곧 교대로 보초를 설 사람이 왔고, 그는 막사로 가서 쉬면서 잠을 청했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가슴 저미는 마음속의 괴로운 생각들은 잠자리까지 이어져 해답도 없는 골치 아픈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역시 기관총을 들고 있는 예수님을 상상할 수 없었다. 모가디슈 거리의 젊은이들이 부러움과 적개심으로 뒤범벅이 된 눈빛으로 그의 기관총을 쏘아보며, 언젠가는 그들도 전투에 가담하여 원수를 물리칠 것을 고대하는 것을 그는 똑똑히 지켜보았다. 이런 식의 전쟁은 정말 또 다른 전쟁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렇지만 그는 당분간은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 사악한 세상에서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나마 피해서는 안 된다! 밤새도록 보초를 서며 늘 하는 생각은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나곤 했다. 죽은 친구의 얼굴은 여전히 눈앞에 어른거렸고, 둘러 맨 기관총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고 무겁게만 느껴졌다.

# 112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113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 책 이름 : 내가 받은 선물 ]

- 지은이 : The Random Acts of Kindness(뜻하지 않은 선행) 재단 엮음
- 지은이 프로필 : 1995년에 설립된 미영리단체. 친절한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이들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웹사이트를 통해 친절 실천에 대한 아이디어, 수업안, 기획안, 교사들을 위한 안내, 기획 안내, 홍보 안내 등을 무료로 제공한다.
- 옮긴이 : 성하은- 펴낸데 : 열린, 출판일 : 2003.05.10, 167p
- 내 용 : 사랑, 연민, 친절이라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단어들의 놀라운 힘에 관한 명언과 80여 편의 편지 이야기 모음.

[ 표지의 글 ]

- 아무리 힘든 날이라도 그녀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내 마음에 다시 생기가 돋는 것
같았다. 어떻게 늘 그토록 밝은 모슴으로 살 수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 머리말 ]

- 필자는 우연한 선행의 힘과 필요성을 확고하게 믿고 있습니다. 우연한 만남 속에서 베푸는 호의나 계획 없이 행하는 선행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일상 속에 깊게 뿌리박혀 있음을 증언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연한 선행이 그리스도적인 이유는 우연하고 무계획적이며 이타적이고 무의식적인 친절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가장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체계적이고 세심한 선행이 아무리 효과적일지라도 이들은 결국 하나의 제도나 법처럼 느껴집니다. 그분의 계획은 매순간 기회를 포착하고 활용하는 것으로, 어떠한 계획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든 계획을 버리고 그 순간에 가장 필요한 선행을 하는 것이 곧 그분의 계획에 올바르게 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왕국은 예기치 않은 선행과 자발적인 친절, 그리고 기대하지 않은 호의를 베풀 때 우리 가운데 있음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우연한 선행, 그것이야말로 여러분들이 베풀어야 할 친절입니다.

[ 연민의 도전! ]

- 2천 년 전,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사랑과 연민 그리고 선의로 인해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이다. 유일한 존재인 인간으로서 그와 같은 사랑 속에 담겨 있는 아량과 목적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우리같이 살과 피로 이루어진 하잖은 존재가 그런 위대한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최소한 이처럼 특별한 희생을 우리의 이정표로 삼을 수는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발을 내딛으면서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을 마련해 주셨다. 또한 가장 이타적인 사랑과 선행의 선례가 되었다.

- 우리 앞에는 새로운 정보와 기회 그리고 수많은 선택이 놓여 있다. 일상생활을 헤쳐 나가다가 보면 우리는 흔히 인간을 창조하신 그 위대한 이유와 모든 피조물들이 지향해야 하는 목적을 잊어버리곤 한다. 우리 앞에 놓인 것만 바라보고 우리 가까이 있는 것만 돌보며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경계 없는 사랑처럼 우리 또한 일상을 헤쳐 나가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일을 위해 창조되었음을 끊임없이 마음속에 되새겨야 할 것이다.

- 우리의 삶은 우리가 존재하기 오래전부터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이미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그분의 삶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분의 모범을 따라 살 수 있도록 부름 받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에 시작된 그 일이 오늘날 우리의 손에 맡겨졌다. 우리는 거룩한 사랑과 하느님의 선하심이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을 받았다. 그 선물을 무시해 버리거나, 아니면 우리에게 부여된 거룩한 임무를 반영하고 빛내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우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인간의 약점을 극복하고 우리의 사소한 걱정들을 뛰어넘어 마음을 열고 생명의 근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 상태로는 너무 벅찬 임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의 선례를 통해 우리는 삶을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이상적인 지침을 받은 것이다. 그가 아무리 타락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들을 사랑과 친절로 대하라. 사랑과 친절이라는 간단한 지침을 따른다면 그릇된 길ㄹ로 빠지지 않을 것이다.

- 신앙을 위한 노력과 진실된 헌신을 기울여야 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좁은 길을 고수하려는 갈망 속에서도 이 간단한 메시지를 잊어버리는 것은 곧 우리의 길을 잃는 것과 다름없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사랑. 연민. 친절은 우리의 발걸음을 밝혀주는 그리스도의 횃불이다. 우리는 이 횃불을 떨뜨려서는 안 되며, 사랑. 연민. 친절이라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단어들이 사실은 놀라운 힘을 지닌 신의 도구임을 기억해야 한다. 사랑의 ‘힘’이라고 하면 거친 육체적 힘이나 정치권력, 군사력이나 부자의 경제능력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힘은 모두 헛된 것이다. 진정한 힘은 친절과 연민의 행위에서 일어나며 이웃과 하느님의 목적 안에 우리를 더 가까이 묶어준다.

- 우리가 사는 시대는 아주 특별하다. 우리는 인류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영광스런 임무를 받았다. 하지만 이 임무는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나오는 깊은 가르침을 기억하고 우리의 삶에 적용할 때 완수할 수 있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사랑과 친절이 넘치는 세상을 이룩할 수 있고, 우리 스스로 멸망을 택하는 아마겟돈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선택은 분명하지만 그 도전은 힘겨워 보인다. 하지만 우리 손에는 사랑. 연민. 친절이라는 횃불이 있고, 그 횃불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비추어 주는 한 우리는 성공할 것이다

[ 사랑, 연민. 친절에 관한 편지들 #01~#79]

< 검색 편의상 일련번호는 메모자가 임의 부여함. >

01. “형제애는 늘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징표다.” – 매튜 헨리
* 나는 몬태나주의 작은 농장에서 일곱 형제와 함께 자랐다. … 노부부의 배려로 농장에 발을 디딘 지 78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그날 이후 그들이 내게 베풀어 준 것을 잊지 않고 살아왔다.

02. “행복은 물질적인 부가 아니라 정신적 부에서 옵니다. 행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에서 옵니다. 우리가 만일 다른 이들에게 행복을 안겨주려고 노력한다면 그 행복은 반드시 우리에게로 돌아 올 것입니다. 기쁨을 얻고자 한다면 기쁨을 나눠주세요. 기쁨을 간직하고 싶다면 기쁨을 퍼뜨리세요.” - 존 템플턴
* 나는 평생 평신도 봉사직으로 극빈자와 노숙자들을 위해 일해 왔다. … 예수님께서는 누군가가 우리에게 무엇을 구한다면 ‘주어라!“라고 말씀하셨다. 불필요한 가정을 세우거나 그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따지거나 또는 남용이나 사기 등을 상상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주는 것이다.

03. “나는 혼자이지만 늘 하나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는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 헬렌 켈러
* 어느 쌀쌀한 금요일 밤이었습니다. … 하느님의 사랑은 차고 앞의 눈을 치우는 것만큼이나 나누기 쉬운 것입니다.

04. “그녀는 가난한 이들에게 손을 펼치고, 불쌍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준다.”
- 잠언 31, 20
* 나는 늘 자신을 성실한 신자라고 여겨왔다. … “당신을 그렇게 쳐다보면 안 되지만 얼마나 내 동생을 닮았는지, 잠시라도 그 애가 살아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답니다. ”

05. “우리가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것은 우리가 죽을 때 갖고 갈 것입니다.”
- 피터 마린
* 우리 가족은 일 년에 한두 차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글라이드 기념 성당을 찾는다. … 어느 날, 열 살 남짓 된 어린 소녀가 내게 다가와 꽃 한 송이를 건네주었다. 지금까지 난 그 꽃을 간직하고 있다. 나는 그 소녀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06. “친절은 어둠의 장막을 거두는 하느님의 비둘기다. 은빛 날개를 펴고 지상을 스쳐 지나며 황금빛 두 눈은 어둠을 부수고 땅 위에 평화를 다시 부른다.” - 짐 트랜(10세)
* 우리 오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공군 p-47정찰기 조종사였다. … 수백 명의 참배객들이 침묵을 지키며 묘지를 거닐고 있었다. 내가 오빠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한 벨기에 여인이 다가와 두 볼에 입을 맞추고는 나의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매달 이 묘지를 찾아와 오빠와 당신을 위해 기도드릴게요.”

07.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 루카 6,38
* 크리스마스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 축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 그리고 진심으로 베푸는 것의 의미를 깨닫도록 이 아이들을 내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마음속으로 조용히 감사기도를 올렸다.

08.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진정으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심지어 그분은 당신의 생명까지 바쳤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친절과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때 여러분은 예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 제프리 우드(9세)
* 제가 여덟 살 때 생긴 일이에요. … 어디선가 공이 갑자기 날아와 제 얼굴을 맞혔어요.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가장 친한 친구가 얼음주머니를 들고 총알같이 달려왔어요.

09.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서로 경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돕기 위해서다.” - 윌리엄 M.킨에어드 * 나는 30년간 우리 주에서도 명망이 높은 공보 활동 사무실을 운영했다. …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모두 용서하실 수 있다면 나도 물론 당신을 용서할 수 있어요.”

10. “인생에서 가장 중대하고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는 바로 ‘네 자신은 타인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 마틴 루터 킹 주니어
* 텅 빈 도로 위에는 폭설이 내리고, 나는 딸의 학교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두르고 있었다. … “고맙지만 돈은 필요 없어요. 꼭 뭔가 주고 싶다면 당신도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세요.” 그 후 나는 청년의 말을 잊지 않고 실천하며 살았다.

11. “하느님이 여러분에게 친절을 베풀 듯 여러분도 친절을 베풀어야 합니다. 쓰레기를 줍는 것부터 시작하여 친절을 베푸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답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겠죠? 여러분도 여러분 나름의 친절을 베푸세요.” - 카라 린 머피(7세)
* 최근에 나는 친절한 행위가 단지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이 세상으로부터도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12.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바다를 건널 필요는 없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뛰어들어 뭔가를 변화시키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선교다. 당신이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바를 바로 이곳에서 실천하라.” - 바비 메이슨
* 크리스마스 시즌이 끝나갈 무렵 나는 백화점 한가운데 서 있는 ‘소망의 크리스마스트리’ 앞을 지나게 되었다. … 내 나름대로 친절을 행하려고 할 때 점원이 우연하게 내게 친절을 베풀었다.

13. “친절한 한마디는 짧고 쉬워 보일지 모르나 그 메아리는 영원하다.” - 마더 데레사* 나는 작년에 베트남을 방문했다. … 돌아오는 날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기사가 내게 베트남전에 참전했었는지 물었다. “그렇소” 라고 답하는 순간 나는 슬픔과 죄의식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요금을 건네자 택시기사는 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한때 우리는 적이었지만 이제 우리는 친구요.”

14. “아무리 지성과 재능이 칭송을 받는다 하더라도 눈물 한 방울을 닦아주거나 갈라진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는 없다. 친절만이 그럴 수 있기에 …” - 존 M.드레셔
* 나는 일생동안 다른 사람의 친절을 통해 축복을 받아왔다. … “아가씨, 웃음이 참 아름다워요. 자주 웃도록 해요!” 그 한마디는 지금까지 내가 들은 말 중에 가장 아름다운 말이었다.

15. “하느님은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를 실천할 수 있도록 충분한 능력과 힘을 주신다.” - 존 러스킨
* 아주 어릴 적부터 내 꿈은 유명한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 그때서야 내가 할 일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정열이 넘치지만 방황하는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것임을 비로소 깨우쳤다. 나는 그동안 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한 채 눈이 멀어 있었던 것이다.

16.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선을 행합시다. 계속 하노라면 거둘 때가 올 것입니다.”
- 갈라 6,9
* 내 나이는 46세이고 장애인에다 이혼을 했으며 두 아이와 함께 산다. … 나는 딸이 참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가족이 기도 중에 우리 가족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17. “감사하는 것만으로 빚을 갚을 수는 없습니다. 다른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 때 비로소 빚을 갚을 수 있습니다.” - 앤 모로우 린드버그
* 나는 뷔페 코너가 마련되어 있는 식료품점에서 일한다.… “네가 준 것을 열 배로 돌려받으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실현되기라도 한 듯 나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18. “하느님은 우리에게 두 개의 손을 주셨다. 하나는 받기 위해, 다른 하나는 주기 위해. 우리는 모아 담기 위해 파놓은 저수지가 아니라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수로다.”
- 빌리그래햄
* 아주 작은 기적 덕분에 딸의 가장 친한 친구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 그녀는 주립대학 입학허가를 받았으나 가정 사정으로 주립대학을 포기하고 직장에 다니며 야간대학을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성당에서 누군가가 그녀의 사정을 듣고는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며칠 뒤 주립대학에는 4년에 걸쳐 갚게 될 그녀 명의로 된 수백 통의 신용기금 증서가 도착하였다. 그녀는 신용기금을 받고 웃음과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19. “당신이 하늘나라의 시각에서 보는 성공의 의미를 알고 싶고 하느님의 시각에서 보는 위대함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브로드웨이의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마시오. 오히려 예수님이 겸손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수반에 떨어뜨리는 물방울, 천사들이 그 겸손함에 숨죽이는 물방울 소리에 귀 기울이시오.” - 폴 리스
* 우리는 때때로 하느님의 잣대에 맞추어 아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천사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천사보다 더 뛰어난 존재, 곧 인간이다. 다만 그들은 타인을 위해서 그들이 베푸는 것이 결국은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을 뿐이다. 애나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

20. “진실되고 사랑스러운 한 인간의 영혼이 다른 영혼에게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거룩하다.” - 조지 엘리엇
*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 요즘도 나는 인사하는 노인이 서 있던 길을 지나며 그의 집을 향해 손을 흔들곤 한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미소를 안겨주었는지 알기를 바란다.

21. “사람을 섬긴다고 생각하지 말고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기쁘게 섬기십시오.”
- 에페 6,7
* 작년에 나는 어린이들을 위한 장난감 자선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다. … 학교에 들어서며 15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함께 선물을 포장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한 일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날 밤, 여러 사람의 착한 마음과 작은 정성이 한자리에 모인 것을 보고 나는 깊이 감동했다. 그런 기회가 내게 또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22.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 마태 25,40
* 여러분도 나처럼 절망스런 상황에 빠졌을 때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마 기적뿐일 것이다. …나는 감동을 받아 멀뚱히 서 있었는데 그때 노부인이 말했다. “우리에게 이렇게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마워요.” 나는 울음을 터뜨리며 그들을 껴안고 감사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낫다는 말을 들어왔지만 이 노부부를 만나고서야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23.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가능하게 하는 질문이 있다. ‘얼마나 현명하고 깊이 있게 배려하느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군가를 배려할 줄 안다.” - E.스탠리 존스
* 몇 년 전 나는 방황의 늪에 빠져 있었는데, 나를 구해 준 축복받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 남루한 옷차림의 한 남자가 길가에 머리를 처박고 쓰러져 있었다. 나는 자연스레 그가 술에 취해 있다고 단정 지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곁을 지나치려 할 때, 식사를 함께 했던 동료가 그 사람을 인도 위로 일으켜 세우고 경찰에 신고를 하였다.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나를 둘러싸고 있던 두꺼운 장막이 완전히 걷히고 나의 부끄러운 모습이 드러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내 마음과 눈을 다시는 가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24. “더 똑똑해 지려고 노력해봤자 아무 소용없어요. 여기 있는 여러분 모두 똑똑하니까요. 단지 조금 더 친절하려고 노력하세요. 아주 조금이라도 더….”
- F. J. 포크스 잭슨 박사
* 나에게는 아주 친절한 수호천사가 있다. 나는 두려움에 떨거나 문제의 해결책을 찾지 못하거나 화가 나거나 긴장이 될 때 그에게 전화를 건다. 이 특별한 친구는 분명히 하느님의 사랑의 표징일 것이다. 그녀는 늘 이야기를 경청하고 깊이 동감해 줌으로써 답답한 마음을 순식간에 풀어준다.

25. “선물은 그것을 주는 자의 눈에 박힌 요술 보석과 같아서 그가 눈을 돌리는 곳마다 안 되는 일이 없다.” - 잠언 17,8
* 나는 뉴햄프셔 북부의 작은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다. … 최근에 야간근무를 마치고 가장 늦게 퇴근한 적이 있다. 밤새도록 차에 쌓인 눈을 치우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고 짜증이 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차 위의 눈이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그때 내 옆에는 차 위의 눈을 치워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해 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친절이 친절을 낳는다는 말을 다시 생각하며 나는 미소를 머금고 집으로 향했다.

26. “보상을 바라지 않고 남몰래 행하는 선행은 아주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 앤 모로우 린드버그
* 나의 직업은 무역 회계사다. … 나는 장부와 함께 아직 1만 5천 달러의 미수금이 있음을 부인에게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헤롤드는 늘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었어요. 그가 유언을 남겼더라면 이 빚을 모두 탕감해 주라고 그랬겠죠? 그래요, 이것이 그의 유언이었을 거예요. 그이는 죽기 전에 반드시 그랬을 거예요.”

27. “인생은 이 세상에서 딱 한 번 살 수 있는 것. 내가 베풀 수 있는 친절과 내가 할 수 있는 선행이 있다면 지금 즉시 하리라. 다시는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르므로….” -‘위대한 도착’에서
* 1980년대에 워싱턴 시에서 일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아침마다 지하철을 타고 패라것 서부역에 내렸다. … 누군가가 이름다운 목소리로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맑은 테너 목소리로 아카펠라처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물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아침마다 “굿모닝 아메리카”를 외치던 바로 그 남자였다. 하지만 오늘은 두 눈을 감고 길 한 켠에 비켜서서 우리 모두에게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주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낯선 남자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늘 마음에 간직하고 살았다.

28. “인간은 초월적인 것과 위대함, 아름다움, 그리고 진실함을 위해 창조되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세상이 이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보다 충실히 맞이하게끔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데스몬 투투 대주교
* 몇 년 전 미국 남부에서 교회 방화사건이 연달아 일어났을 때, 놀랍게도 많은 백인과 흑인 공동체가 손을 잡고 서로 돕기 위해 나섰다는 사실에 감동받은 적이 있다. … 검은 잿더미가 된 교회가 새 교회로 완성되었을 때 마을의 두 공동체는 합동으로 예배를 드렸다. 하느님은 예측하지 못한 기묘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커다란 선물을 안겨주신 것이다.

29. “필요한 곳을 찾아 채워라.” - 루스 스태포드 필
* 어느 여름날, 나와 동생이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우리는 아무 할 일 없이 잔디밭에 누워 있었다. … 이웃의 엉망인 정원을 아름다운 뜰로 몰래 바꿔 놓는 일 등 우리의 작은 모험은 이웃들에게 훈훈한 웃음을 선사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정원을 더 열심히 돌보기 시작했고, 또 우리 형제는 용돈을 벌게 되었다.

30. “사람을 도우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대인들에게 한가한 시간이란 그렇게 많지 않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는 시간은 하느님이 주신 보물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 스테픈 포르토시스
* 내 친구 중에 청소년 사업을 하면서 특히 자신이 담당하는 고등학생들에게 헌신적인 사람이 있다. … 어느 날, 아이들은 그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돈을 모아 감사패를 선물했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훌륭한 봉사자”

31. “상냥한 말은 꿀송이 같아 영혼에는 달콤하고 몸에는 생기를 준다.” - 잠언 16,24
* 아주 작은 행동이 얼마나 큰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 잠시 후, 나는 그 학생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조금 전 나의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그 아이는 지금까지 어른들은 결코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한 학년이 다 지나도록 그 학생은 더 이상 말썽을 피우지 않았다.

32. “너무 빨리 베풀어 버린 친절이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순간이 지나면 이미 너무 늦어버리기 때문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 우리 아들 루스는 얼마 전 교통사고로 열다섯 살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 루스는 현금 300달러가 든 지갑을 주었다. 이 사실을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말했고 곧 지갑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지갑 주인은 노신사로, 루스의 행동이 젊은 세대에 대한 신뢰를 되살려 주었다며 감사카드와 함께 30달러를 선물했다.

33. “다음날 새벽 예수께서는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고 계셨다.” - 마르1, 35
* 운전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어떤 남자가 친절에 대해 말하면서 친절 행위가 얼마나 놓치기 쉬운지 이야기를 꺼냈다. … 출근할 준비를 마친 뒤 햇살이 비치는 거실에 앉아 하느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모든 것에 감사를 드리고 오늘 하루 마음을 열고 살겠노라며 굳게 다짐했다. 그날은 오랜만에 상쾌한 하루를 보냈다. 모든 사람과 사물들이 더 없이 맑게 느껴졌다.

34. “축복하는 이는 자기도 흡족해지고, 마실 물을 주는 이는 자신도 흠뻑 마시게 된다.” - 잠언 11,25
* 나는 캐나다의 작은 도시에 있는 한 복지시설의 사회활동 담당자다. … 최근에 연 바자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그만 모든 수익금을 도둑맞고 말았다. 우리는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우리가 절망하는 사이에 이웃 주민들과 공동체가 발 벗고 나서서 무엇인가 행동을 취했다. 우리는 여러 사람들의 정성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결국에는 도둑맞은 기급보다 훨씬 많은 돈을 도움 받았다.

35. “하루하루 베푸는 친절행위는 작은 빗방울처럼 모여 거대한 바다를 이룬다.”
- 림 슈메이
* 어느 5학년 학생의 글이다. “내가 베푸는 친절은 작지만 아름답습니다. 매일 내가 이야기를 나누는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그것은 어렵지 않지만 하느님과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36. “우리는 우리가 마음을 쏟을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 존 러스킨
* 사교성이 없는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늘 고역이었다. … 나는 일 년 동안의 자원봉사자 끝에 양로원에 정식 채용되어 노인들과 함께 함께 생활한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아무래도 고독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인도하기 위한 하느님의 가르침이었던 것 같다.

37. “성당의 제단이 아니라 환자들의 병상에서 나는 가장 위대한 설교를 들었다.”
- M. R 드한
* 내가 20대 중반 무렵, 49세에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 “당신은 이렇게 젊은 나이에 당신을 죽도록 놔두시는 하느님에게 화가 나지 않아요?” 청년은 내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더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하였다. “죽음을 기다리는 지금, 나는 하느님의 사랑이 내 곁에 머물러 있음을 느껴요. 내 마음속에는 이제 증오를 위한 자리는 없어요. 오직 사랑만이 있을 뿐이죠.”

38.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함으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 1요한 3,18-19
* 마더 데레사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 가운데 한 분이다. … 언젠가 마더 데레사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어떻게 자신을 그토록 희생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수녀님은 자신의 모든 일은 희생이 아니라 하느님께 받은 성스러운 특권이라고 대답했다.

39. “주님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라고 우리에게 친절을 베푸신다.” - 조윗 박사
* 나는 롱아일랜드에서 암 환자를 비롯한 불치병 환자들의 병동에서 일한다. … 우리가 환자의 생일 축가를 부르기 시작하자 그녀는 손에 쥔 이불을 놓고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그녀의 생일, 우리가 베푼 작은 친절이 그녀에게 커다란 선물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40. “데이지 꽃이 고개를 숙여 한 방울 이슬을 햇빛으로부터 보호하듯 작은 돌봄이야말로 진정한 돌봄이다.” - 윌리엄 워즈워스
* 이사야서는 “어린아이가 그들을 이끌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우리 아이들이 그 말씀을 그대로 내가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 두 아이는 옆집 할머니를 도와드린 것을 마치 다음 주에 디즈니랜드에라도 놀러 가는 것처럼 즐겁게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은 즐거운 일이라고 늘 배워 왔지만, 머릿속에서나 그렇지 진실로 마음속에서 기뻐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일상에 묻혀 살다 보면 우리는 쉽게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면을 잊고 살아가기 쉽다. 그토록 기뻐하는 두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잊어버린 나의 이름다운 모습을 조금이나마 되찾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41.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 중요성을 인정하고 매진할 때 우리 앞에 나타난다.” - 앨런 로이 맥기니스
* 예전에 라디오 선교방송에서 ‘죄짓다’의 원래 의미가 ‘이정표를 잃다’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무용수인데 무용수에게 ‘이정표’는 무대 위에 그려진 점들로 특정 순간에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나타낸다. 따라서 방송을 통해 들은 죄의 개념은 나에게 충격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나의 이정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을 향해 나를 내던질 수 있게 하며 평생 느끼지 못했던 기쁨을 내게 안겨준다.

42. “사랑과 친절의 힘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 제임스 오트리
*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일생 동안 각자에게 일어난 아름다운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 잠시 열띤 토론을 나누고 우리는 얼마 전 끔직한 일을 당해 뉴스에까지 나온 한 가족을 위해 30분간 침묵기도를 드리기로 결정하였다. 너무나 아름다운 경험이었기에 우리는 정기적으로 모여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 화살기도를 드리기로 뜻을 모았다.

43.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해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그분의 자녀중 하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입니다.” -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 어버이 날이었다. … 사랑스러운 어린 두 아들은 공원에 가자고 졸라댔다. 나는 피곤하고 외롭고 우울하기까지 했다. 내 곁에는 나의 기분을 북돋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얼마 전 이혼한데다가 우리는 차도 돈도 낙도 없었다. 공원으로 가는 길에 꽃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누군가가 나를 부르며 뛰어 오는 청년이 있었다. “어버이날 축하드려요!” 청년은 내 손에 카네이션 꽃다발을 쥐어주고는 돌아서서 꽃가게로 다시 달려갔다. 나는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서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는 젊은 천사가 내게 안겨준 선물을 기쁘게 바라보았다.

44. “풍요한 사랑은 풍요한 삶이다.” - 무명씨
* 우리는 할머니의 아흔 번째 생신 잔치를 성대하게 치렀다. … 나는 할머니에게 가족들을 가리키면서 말씀드렸다. “할머니, 하느님이 할머니 데려가시는 걸 잊으신 게 아니에요. 하느님은 단지 이 세상에 남아 영원히 할머니를 사랑하는 이 모든 가족들에게 할머니가 인사 한마디 없이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뿐이죠.” 할머니는 흐뭇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키셨다.

45. “친구란 언제나 사랑해 주는 사람이고, 형제란 어려울 때 도우려고 태어난 사람이다.” - 잠언 17,7
* 최근에 일어난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나는 누군가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물론이요 들어주는 사람에게도 좋은 일임을 알게 되었다. … “미안해. 다시 한 번 얘기해 주지 않을래?” 나의 행동은 왠지 장난 같아 보였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 실제로 조금 전과는 나의 근심과 상관없이 친구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46.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 사도 20,45
* 많은 경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이웃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은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이다. … 나는 패스트푸드점 앞에서 구걸하는 그에게 햄버거를 하나 더 사서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햄버거 포장지를 뜯다 말고 어린아이를 안고 길가에 앉아 있는 여자 거지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는 햄버거를 건네주었다.

47. “호의는 배려 받는 사람이 그 선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지 못해도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 레베카 맨리 피퍼트
* 우리 가족은 텍사스에 있는 어느 학교에서 일자리를 구해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돈이 거의 다 떨어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내 수중에는 4달러밖에 없었다. …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밝게 웃으시며 내게 돈 봉투 하나를 건넸다. 이것으로도 부족한 듯 교장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챙겨 주셨다. 그들이 보여준 호의를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48.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 1요한 4,20
* 1960년대, 집에서 멀리 떨어진 튜크 대학에서 박사학위 공부를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 나와 한 친구는 신실한 믿음 때문에 여러모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기숙사 1층에 사는 의대생들은 정기적으로 술을 마시러 외출을 했는데, 술에 취해 돌아오는 길에 꼭 우리 방문을 두드리며 하느님에 대한 온갖 욕설을 퍼붓곤 했다. … 나는 하느님께 그들의 마음을 보살펴 달라고 기도드리면서, 아내가 구워준 초코칩 쿠키 한 상자를 들고 나를 괴롭히는 학생들의 방으로 찾아갔다. 충격을 받은 듯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한 채 받으며 뭐라고 웅얼거렸다. 그 후 그들은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다.

49.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 1요한 4,7
*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던 중 1km 정도 앞서 가던 트럭 한 대가 갑자기 휘청거리더니 길가 도랑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네 사람은 젊은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응급조치를 해주었다. 나는 그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좋은 뜻을 가지고 사랑과 선의를 나누는 사람들이 서로 관계 맺으며 우리사회를 만들어 나간다.

50. “우리가 그리스도의 빛으로 우리 주위를 비추지 않는다면 세상을 뒤덮고 있는 어둠의 장막은 더욱더 넓어질 것입니다.” - 마더 데레사
* 나는 야간대학을 다니는 5년 동안 보험회사에 근무하였다. 매일 늘어나는 회사 측의 요구와 과중한 업무로 나의 일생중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다. … 아무리 힘든 날이라도 동료인 그녀가 지나가면 각자의 마음에 다시 생기가 돋는 것 같았다. 어떻게 늘 그토록 밝은 모습으로 살 수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51.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 서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이다.” - 올리버 웬델 홈즈
* 고등학교에서 보낸 마지막 해는 내게 아주 힘든 시기였다. …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크로스컨트리 경기에서 상대편 고등학교의 제이슨이라는 아이와 대결을 벌이게 되었다. 결승점에 이르러 나는 마지막 스퍼트를 냈고, 제이슨보다 9m정도 앞서게 되었다. 하지만 결승점을 얼마 안 남기고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땅바닥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땅바닥에 쓰러져 정신이 몽롱한 채 숨을 고르려고 애쓰는 동안 제이슨이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일으켜 세우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함께 묵묵히 다시 뛰기 시작했다. 제대로 뛰지 못하는 내 곁에서 제이슨은 천천히 보조를 맞추며 뛰고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결승점에 들어 왔다. 나의 실수와 제이슨의 우정은 나의 인생관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52. “하느님,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에 뛰어들어 그 어려움을 우리의 것처럼 느끼고 행동하게 하소서.” - 에이버리 브루크
* 대학교 3학년 때 베트남 참전 기념비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 벤치에 앉자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그의 곁에는 지팡이가 하나 놓여 있고 무릎에는 점퍼가 놓여 있었다. 그는 다리가 하나뿐이었다. 그의 조용한 시선 뒤에는 머나먼 기억 속에서 흘러나오는 분노가 숨어 있었다. … 그가 눈물을 흘리는 동안 나는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지팡이를 손에 쥐어 주고 비석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기념비에 머리를 대고 울었고, 내 눈에 고인 눈물을 보고 그는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녀석은 내 동생이었어. …” 그는 단지 떠나기 전에 돌아서서 내게 말했다. “나를 기억하고 싶다면, 내 이름은 손이야. 그리고 나의 기억은 저 기념비 안에 영원히 깃들어 있을 것이네.”

53. “평화를 부르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 평화의 천사가 됩시다.”
- 라지에의 성녀 데레사
* 우리 아버지는 경찰 수사관이었다. 정년을 맞아 은퇴한 이후에 아버지는 좀도둑이 많은 한 상점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 하루는 열 살 남짓한 아이를 잡았다. 그 아이는 주머니에서 훔친 물건과 함께 햄스터 한 마리가 나왔다. 이 아이는 햄스터에게 사줄 돈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한참 동안 훈계하고는 다음날 상점에 와서 노래를 부르라고 명령했다. 이튿날 아이가 상점으로 들어오자 아버지는 우리 집 창고에 있던 작은 새 장을 아이에게 선물했다. 나는 아버지의 넓은 아량과 작은 호의가 미래의 범죄를 막는 것보다도 훨씬 큰일을 해낸 것이라고 믿는다.

54.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십시오.” - 랄프 왈도 에머슨
* 나는 주어진 일들을 서둘러 처리해야 하는 성격을 가진 전형적인 ‘A형’ 인간이다. 몇 년 전 갑작스레 어깨를 다치는 바람에 모든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다. … 성당의 교우 한 분이 나를 찾아왔다. 그녀도 나와 똑같은 병을 앓은 적이 있다며 자신이 하던 운동요법을 가르쳐 주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운동을 하자 어깨가 한결 나아지고 기분도 상쾌하였다. 그녀는 나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의 소중한 몸을 결코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한 사람의 친절로 인해 나의 어깨 통증은 결국 축복으로 변하게 되었다.

55.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 1요한 4,8
* 젊은 시절에 어느 여인과 사귀면서 나는 아주 파렴치하게 군적이 있다. … 어느 날 밤, 그녀와 몇 시간 데이트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연료가 바닥나고 말았다. 멀리서 낡은 트럭 한 대가 다가오더니 내 앞에서 멈췄다.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가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분은 25km나 떨어진 주유소까지 나를 데려다 주고, 또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다시 데려다 주었다. 새벽 1시가 다 된 시간, 할머니는 길을 떠나며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한다네!” 그 할머니가 베푼 친절과 그분이 해 주신 한마디 말씀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56. “사람은 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산다.” - 조지 맥도날드
* …. 캘리포니아의 한 여인이 주지사에게 15년 전 자신의 딸을 살해한 범죄자의 사형 집행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여인은 하느님께로부터 명을 받고 범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몇 차례 면회하고 나서 그의 사형이 결코 옳은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사랑으로 증오를 이길 수 있는 희망이 아직 우리 가운데 있음을 새삼 꼈다.

57.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은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 - 마태 7,13-14
* 나는 그리 크지 않은 법률 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사무실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잭은 가까이하기 어려운 친구였다. … 하루는 잭이 내게 찾아와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묻자 요즘 딸과의 문제로 고민 중이라고 솔직히 털어놓고 말았다. 우리는 한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관심과 지혜가 나의 문제들을 조금씩 풀어주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나는 마치 변호인이 분석하듯 대해 왔는데 딸과의 관계란 이성으로 똘똘 뭉친 법정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와는 전혀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감정의 문제였다. 잭은 내게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잭은 분명히 우리와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때처럼 다름 모습의 그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58. “궁극적으로 우리의 존재는 우리의 사랑과 비례한다. 사랑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은 곧 사랑이다.” - 윌리엄 슬론 커핀
* 나는 주일날 성당에서 오르간을 연주한다. … 어느 날 나는 두 장례식의 연주를 맡았다. 오전에는 우리 지방에서 가장 부유하고 유력한 인사의 장례식이었고, 오후에는 마을의 가장 가난한 구역에서 살았던 마음씨 고운 할머니의 장례식이었다. 오전의 장례식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장례식에는 마을에서 모여든 수많은 인파가 성당 문 밖에까지 서 있었다.

59. “재능은 고독 속에서 스스로 자라나고 성격은 인생의 역정 속에서 생성된다.”
- 괴테
* 우리 성당에서는 매년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준다. 나는 고등학교 내내 나와 단짝 친구인 조디 와 서로 번갈아가며 수석을 차지했다. 졸업 때는 내가 장학금을 차지했다. 하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장학금이 필요했던 조디 때문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 용기를 내어 그녀를 찾아갔다. 조디는 마치 자신이 장학금을 탄 것처럼 기뻐하며 나를 축하해 주었다. “나도 타고 싶었지. 하지만 나대신 네가 탔잖아. 그러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어?” 걱정 마. 나에게도 무슨 수가 생길 테니. 자신의 욕심을 접고 함께 기뻐해 준 그녀의 말에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60. “타인을 위해 일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이기심은 한여름 뙤약볕 아래 이슬처럼 증발할 것입니다.” - 데일 카네기
* 나는 고등학교 생활이 무척 힘들었다. … 아버지는 나를 꾸짖을 때마다 정확하게 나의 문제점을 지적하셨다. 나는 무엇이 정말 중요하고 무엇이 부차적인 것인지 전혀 분별하지 못한 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여름방학을 맞이해 아버지는 대학 등록금을 대주지 않겠다고 협박하며 자원봉사활동에 보냈다. 내가 맡은 일은 정신지체아를 위한 산악 캠프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함께 산행을 하는 것이었다. 캠프장에 도착한 아이들은 모두 알 수 없는 희망의 에너지로 가득차 있었고, 그 에너지는 이내 내 마음까지 움직이게 했다.

61.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 마태 7,12
* 어느 날 학교에서 같은 반 여자 아이가 넘어지는 바람에 책가방을 땅바닥에 쏟고 말았다. … 다른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놀려댔고 나도 따라 웃었는데 갑자기 교리 시간에 배운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말이 떠올랐다. 나는 웃음을 멈추고 줍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이는 방긋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62. “커다란 기쁨의 불길은 예상치 못한 불씨로 인해 밝혀진다.” - 사무엘 존슨
* 어느 날 벤치에 앉아 몬테레이 성당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 그때 어떤 청년이 불쑥 다가와 내 앞에 우두커니 섰다. 갑자기 온몸이 오싹해 졌다. ‘강도일까? 나를 때릴까?’ 온갖 상상을 하면서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자 청년은 허리를 굽혀 “할머니도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는 내게 아프리카 데이지 꽃 한 송이를 주었다. 난 너무 놀라 얼떨결에 “고마워요”하고 대답하였다.

63. “당신이 친절을 베풀면 베풀수록 당신의 삶은 풍요해 질 것입니다.” - 탕 툭 윙
* 나는 기도할 때 하느님께서 과연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 귀담아 듣고자 노력한다. 새로운 도시로 이사할 때 하느님께서 내게 세탁기가 필요한 가난한 가족에게 나의 세탁기를 주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새 세탁기를 살 돈이 없었으므로 그 말씀을 무시하려다 결구에는 전화를 걸어 주변에 있는 어려운 가정을 찾아 세탁기를 주고 말았다. … 이사를 가서 중고 세탁기를 사려고 여러 군데 수소문한 끝에 마음에 쏙 드는 건조기까지 달린 세탁기를 싼값에 샀다.

64. “아름다운 마음은 세상의 뛰어난 두뇌를 모두 모은 것보다 낫다.” - 에드워드 리턴* 고등학교 때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안나였다. 3년 내내 우리는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고, 당시 안나는 세상에서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 3학년이 되자 안나는 술 마시는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그녀의 성격은 점점 거칠어졌다. 내가 진정한 친구라면 그녀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애정 어린 충고를 한다는 것이 그만 섣부른 잔소리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심하게 다투었고 우정은 깨지고 말았다. … 그녀의 편지를 받았다. 내용은 짧고 분명했다. 15년 동안 안나 또한 나를 잊지 않았으며, 내가 진실한 친구였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는 것이다. 글을 읽는 중에 굵은 눈물이 흘렀다.

65. “친절의 씨앗을 뿌려 기쁨의 곡식을 거두십시오.” - 촤 괏 무이
*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기회는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선물이자 상이다. 나는 이 사실을 평생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왔다. … 언젠가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갑자기 독감에 걸린 나는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부인은 나를 간호해 주었다. 물수건으로 땀을 닦아주고 화장실까지 부축해 주는가 하면, 재미있는 이야기로 나를 기쁘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그 순간은 내게 최악인 동시에 최고의 비행이었다.

66. “친절한 행위를 통해서는 벙어리도 말을 할 수 있고 귀머거리도 알아들을 수 있다.” - C. N. 보비
* 최근 1년 반 동안 나는 아주 적은 돈으로 세계 일주를 하였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친구들이 놀라워하며 내게 물었다. “언어도 모르고 돈도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나라를 여행할 수 있었지?” …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쉬운지는 참으로 놀라웠다. 언어의 장벽은 그리 높은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있었다. 친절은 하느님의 사랑처럼 온 인류의 공통어이다.

67. “누군가를 끌어올려 줄 때 말고는 사람을 내려다보아서는 안 된다.”
- 제시 잭슨 목사
* 몇 년 동안 슈퍼마켓에 갈 때마다 길 건너 벤치에서 사는 노숙자 여인과 마주치곤 했다. 그녀는 나에게 말 한마디 걸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가 깨끗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그녀를 피해 다녔다. … 하루는 그녀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며 인사 소개했다. 그 후 우리는 만날 때마다 서로 미소를 짓고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나누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슈퍼마켓에 갈 때마다 그녀의 미소와 인사가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 “작년 추수감사절 때는 하느님께 감사드릴게 하나도 없었어. 하지만 올해는 당신을 보내줘서 고맙다고 기도드려야 할 것 같아.”

68. “모든 것을 살피고, 보다 관대하게 대하고, 조금씩 바꾸십시오.” -교황 요한 23세
* 나는 내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길 꺼린다. 나의 지난 삶은 너무나 힘들었고 생각만 해도 질리기 때문이다. 오늘날 내가 원하는 것은 나의 미래를 조금씩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일 중에서 자주 이야기 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클레르를 만난 것이었다. 그녀를 만났을 때 내 인생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녀의 직업은 길거리 부랑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돕는 것이었다. 클레르는 나를 발견하고 음식과 머물 것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가장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한 나의 인격을 존중해 주었다. 그녀는 단지 친절했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나를 그야말로 인간답게 대했으며, 나 또한 놀랍게도 나 자신을 인간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나의 진정한 인생은 클레르를 만나고 나서부터 시작되었다.

69. “한 사람의 신앙이나 소명을 이해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사람의 행동은 이해하기 쉽다.” - 이안 맥클라렌
* 증조할아버지는 펜실바니아 출신으로 남북전쟁 당시 젊은 장교였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아버지는 조지아의 목화 농장을 징발하여 야전병원으로 바꿔놓았다. 그는 농장 여주인에게 곧 전투가 시작될 테니 피하라고 일렀지만 그녀는 거절하였다.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곳에 남아 부상자들을 치료하렵니다.” … 사흘 밤낮동안 그녀의 목화밭은 군인들의 붉은 피로 물들었고, 그녀는 상처 입은 북부군 병사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간호했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은 모든 부대원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가장 잔인하고 야만적인 전장에서도 한 사람의 작은 친절이 세상을 밝게 비춰줄 수 있음을 가르쳐 주었다.

70.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함으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 1요한 3,18-19
* 나는 인생이란 하느님과 인류를 섬기는 것이라고 진심으로 굳게 믿는 부모 밑에서 자라났다. … 어느 날, 이웃집 잔디밭에서 새 한 마리를 돌보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았다. 새는 유리창에 부딪쳐 다쳤는데, 아이는 신발 상자로 집을 만들어 새를 눕혀놓고 열심히 간호하고 있었다. 부상당한 새를 조심조심 들어 올리는 아이의 모습이 맑은 종소리처럼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나는 무엇인가를 돌보는 것이 인간의 본성임을 깨달았다. 그 어린 아이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사랑을 마음속에 담고 살아가는 것이다.

71. “누구든 마음속 깊이 열어젖혀야 할 영혼의 뚜껑이 있다. 만일 그 뚜껑을 열면 우리의 영혼은 사방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이유는 서로의 뚜껑을 열어주기 위해서다.” - 세실 윌리엄스 목사
* 내 친구 중에 형편이 아주 어려운 사람이 있었다. 어느 해인가 그녀의 부모님이 돈이 없어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주일학교에서 친구에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고, 친구는 그 이야기를 자신의 부모님에게 전했다. … 크리스마스 미사를 드리는 동안 주일학교 부모님 몇 명이 모여 그녀의 집으로 가 거실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운 다음 그 아래에 선물을 놓아두었고, 냉장고에는 음식을 가득 채워 두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의 가족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해 크리스마스는 그녀의 가족에게 최고의 크리스마스였다.

72. "여러분이 가진 것을 주는 것은 진실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을 전부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주는 것입니다." - 칼릴 지브란
*나는 세 아이의 어머니로 얼마 전에 대학을 졸업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받은 수업은 어느 훌륭한 교수님의 사회학 강의였다. 그 수업의 마지막 숙제는 ‘미소를 지으세요.’이었다. 밖에서 사람들에게 미소 짓고 그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적어오는 것이었다. … 나는 카운터 아가씨에게 아침 메뉴 세트 두 개를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을 들고 거지들이 앉아 있는 구석진 자리로 걸어갔다. 쟁반을 그들의 식탁에 놓은 뒤 나는 꽁꽁 언 두 사람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것은 내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음식이 아니에요. 하느님이 시켜서 그냥 갖다 드린 것뿐이에요. 맛있게 드시고 희망을 가지세요.”라고 말했다. …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기 위해 하느님께서 베푸신 선물임을. 우리는 비록 성당을 다니지 않지만 신앙인이다. 그날 나는 거지의 푸른 눈을 통해 하느님의 달콤한 사랑이 뿜어내는 맑은 빛을 경험했다.

73. “사람은 누구든 섬길 수 있기에 위대해 질 수 있다.” - 마틴 루터 킹 주니어
* 나는 저 소득자들이 사는 아파트에 산다. 이웃들은 대부분 미혼모로 매일매일 살아가기 위해안간힘을 쓴다. … 우리들 가운데에는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보내주신 것이 분명한 남자가 있다. 그는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갖고 있다. 그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며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는 우리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아침에 일터로 떠나고 돌아올 때마다 밝은 인사를 나눈다. 그는 늘 이웃들을 도우려 하고 모두에게 헌신적이다. 그는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도 그를 사랑한다. 그는 우리 곁에서 우리에게 웃어줌으로써 우리가 근심과 고통 말고도 무엇인가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항상 깨우쳐 준다.

74. “웃음은 어떤 고통도 가볍게 해주며 어떤 스트레스도 풀어준다. 웃음을 나누는 것은 건강을 위한 선물이다.” - 바바라 존슨
* 지난 5년간 나는 양로원에서 지냈다. 비록 늙고 거동이 불편하지만 다행히 다른 데는 별 문제가 없다. … 작년에는 양로원을 찾아온 사람들 중에 성당에 다니는 부인이 아이와 함께 왔다. 아이는 어머니가 다른 할머니를 보살펴 주는 동안 내게 와서 “할아버진 왜 그렇게 늙으셨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아이에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고, 그냥 살다 보니 이 꼴이 되고 말았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아이와 함께 신나는 대화를 했다. 그 아이는 쭈글쭈글하게 늙은 한 노인과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눈 티 없이 순수하고 솔직한 아이였다.

75. “친절, 집을 나설 때는 반드시 친절을 챙겨 나가세요.” - 응 헤이 디
* 나는 5학년입니다. 얼마 전 엄마가 타이프를 치면서 “할 일이 너무 많군”하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어요. 나는 설거지도 해야 하고 집안 청소도 해야 하는 것을 알고 소매를 걷고 접시를 닦기 시작했어요. 내가 일하는 것을 보고 엄마는 기뻐했습니다. 난 뭔가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참 기뻤습니다.

76. “누구든지 나를 받아들이듯이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곧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 마태 18,5
* 25년 전에 만성 기관지염을 앓고 있는 18개월 된 어린 아기의 엄마였다. 툭하면 밤중에 아이를 업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곤 했다. … (병원 입원비 20달러가 없어 응급 입원 치료가 거부된 상황) 나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그때만큼 자신이 초라하고 고독하게 느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 아들이 20달러 때문에 죽어야 한다니! 하는 수 없이 아이를 안고 나가려는 참이었다. 어느 평범한 여인이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더니 20달러를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제 이 아이를 진찰해 주실 수 있겠죠?”하고 말했다. 여인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돌아섰을 때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우리 수호천사의 이름도 모르지만 이 여인이 갑자기 나타나 베푼 친절이 우리 아들을 살렸을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나의 신뢰를 되살렸다.

77. “형제들을 꾸준히 사랑하십시오. 나그네 대접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도 모른 사이에 천사를 대접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 히브 13, 1-2
* 어느 날 우리가 사는 남부 앨라배마 쪽으로 허리케인이 몰려온다는 뉴스를 들었다. 차에 짐을 싣고 북상하다가 몽고메리에 도착해서 태풍 피할 곳을 찾았지만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우리는 갈 곳이 없었고 또 가족 모두가 모텔에서 잘 처지도 안 되었다. 한참 걱정을 하고 있는데 교회에서 만난 부인이 말을 꺼냈다. “저, 우리가 얼마 전에 집을 샀는데 아직 이사를 하진 않았어요. 그곳에서 잠시 지내지 않겠어요?” 우리는 그곳에서 허리케인이 물러갈 때까지 3일 동안 머물렀다. 집과 물, 난방, 가구 그리고 음식까지 배려해 주고 부인은 작은 사례금도 거절하였다. 우리는 어려움에 처한 낯선 사람들에게 지극한 친절을 베푼 그녀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다.

78.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정신은 사랑의 실천에 있다.” - 데이빗 O .멕케이
* 내가 아는 어느 여고생은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그들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다. 어느 날 심하게 다툰 뒤에 아버지는 딸을 내쫓아 버렸다. … 자초지종을 들은 교장 선생님은 그 학생을 보살펴 주기로 하였다. 교장 선생님과 그 가족의 도움으로 그녀는 무사히 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그 후 여학생은 결혼을 했고, 지금은 아기의 어머니가 되었다.

79.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들은 나눠도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나눌수록 배로 늘어난다.” - 윌리엄 H. 덴포트
* 어느 날 밤, 남자 친구와 함께 우리 집에서 네 블록 떨어진 그의 집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전거 옆에 웅크린 모습으로 쓰러져 우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사고가 난 줄 알고 즉시 달려갔다. … 너무나도 외롭고 두려워하는 모습에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제가 안아 드릴까요?” 그녀는 말없이 내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어섰고 나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속삭였다. “당신은 정말 특별한 사람이랍니다.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든 당신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임을 잊지 마세요.” “고마워요. 당신은 천사예요. 그리고 나도 이제 천사가 된 기분이에요.”라고 그녀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헤어지기 전에 오늘밤 자신을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하나 하라고 그녀에게 일러주었다. 그녀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고는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갔다.

80. 감사의 글
*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글은 사람들이 ‘뜻하지 않은 선해 재단(The random Acts of Kindness)’에 보낸 편지와 전자우편에서 따온 것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이 책을 가능하게 해 준 지구촌의 모든 가족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수잔 앨버슨’ 등 50여 분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 113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114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 책 이름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

- 지은이 : 강길웅
- 지은이 프로필 : 강길웅 신부는 1962년에 대전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12년 동안 교직생활을 했다. 그 후 1976년 광주 가톨릭 신학대학에 입학, 1982년에 사제서품을 받고 전남 노안 본당, 호남동 본당, 함평 본당 주임신부를 역임했다. (1992년 2월 기준)
- 펴낸데 : 생활성서사, 출판일 : 1992.02.24 - 174p
- 내 용 : 월간 <생활성서> ‘사제의 일기’ 칼럼에 썼던 글과 다른 지면에 발표되었던 글들의 모음집

[ 표지의 글 ]

- “(대)머리 학사님이라니, 이게 어디 보통 머리냐?” 하면서 우리나라 대통령도 대머리였고 사장도 대머리가 많다는 것을 역설하면서 뭔가 훌륭하고 지체 있는 사람은 머리가 벗겨지게 되어 있다고 한마디 연설을 했더니, 늘 잘 나서는 꼬마가 가소롭다는 듯이 위아래를 흩어보더니만 “우리 동네 엿장수도 대머리요!” 하면서 소리치는 것이었다.
- 본문 중에서

[ 추천의 말 ]

- … 저자 특유의 익살스러움과 솔직하고 박진감 있는 표현은 정감어린 남도 사투리와 잘 조화되어 폭소를 터뜨리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하고 진리를 이끌어 주는 힘을 가진 살아 숨 쉬는 글이라 생각이 듭니다. 아무쪼록 이 책이 믿는 이들에게는 신앙생활에 그 깊이를 더하고,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자신의 삶을 숙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사제생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히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 1992년 1월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 차례 ]

- ‘유행가 체질’ 등 50편의 칼럼(사제의 일기)

# 일련번호는 검색 편의상 독서메모자가 임의 부여함.

< 01. 유행가 체질 >
- 나는 주로 ‘그대’니 ‘사랑’이니 하는 단어가 들어가는 대중가요를 좋아한다. 예를 들면 ‘그대는 나의 인생’이 있고 ‘사랑이여’나 ‘사랑의 미로’가 있으며 ‘친구여’도 있고 ‘J에게’와 ‘열애’도 굉장히 좋아한다. 노래도 역시 듣기 나름인데 어떤 노래고 주님을 그 안에 모시고 보면 그분과 연관되지 않는 것이 없으며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하나의 기도요 찬송이 되는 것이다. 지난 사순절 어느 날, ‘십자가의 길’ 기도 때에 분심이 많이 들기에 ‘그건 너’라는 노래의 뒷마디를 반복해서 불렀더니 그렇게 은혜로울 수가 없었다. “너 때문이야” 하는 말은 모두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 02. 오메, 창피항거! >
- 신부가 사소한 교통법규 하나 지키지 못하고 운전자로서의 예절을 갖추지 못할 때 어떻게 교회법을 존중하고 윤리법을 지키며, 상식적인 일이나마 양심을 존중할 수 있다고 하겠는가? 시골로 오면서 다시 차를 갖게 되었을 때는 좀 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못 되어서, 정말 고의는 아니었는데 국도에서 과속으로 걸렸다. 공교롭게도 내 앞에는 목사가 걸려 딱지를 떼이고 있었고 내 뒤에 걸린 차도 무슨 교회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으니 성직자 세 명이 줄줄이 다발로 걸려든 것이었다. “오메, 창피항거!” “하느님, 성직자들로부터 회개하게 해주셔요!”

< 03. 뭔 죄가 있을랍디여! >
- 어떤 할머니가 고백실에서 죄는 고백하지 않고 기도문만 길게 낭송하는 것이었다. 뭘 혼동하고 계시는가 싶어 그 동안 죄 지은 것을 차근차근 고백하라 했더니 이 할머니, “뭔 죄가 있을랍디여!” 하시더니 성사 본지 오래되서 그냥 들어왔으니 신부님이 알아서 용서해 달라는 것이었다. (성찰하는 내용으로 문답을 해보니) 기도는 안한 날이 더 많았고 아들, 며느리, 미운 마음으로 집에서 욕바가지 꽤나 긁어댔으며 이웃 사람들과 싸움하고, 욕질하고 하루도 성하게 계신 날이 없는 분이시다. 게다가 주일까지 서너 번 빠지셨단다. “죄는 혼자 몽땅 지어놓고 죄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하니 할머니 또 “늙은 것이 뭘 알랍뎌!”하시면서 깔깔 웃으신다. … 솔직히 반성해 보면 우리 할머니들보다 더 나을 바 없는 것이 본당 신부의 주제다. 주여, 성탄절이 가까이 왔나이다. 혼자만 죄 없는 척하지 말, 우리 모두는 죄인이며 주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어야 할 인생임을 깨닫게 해주시어 오시는 주님을 경건한 마음으로 영접하게 하옵소서.

< 04. 안 취하면 소죄 >
- 어느 명절이었다. 그날만은 유난히 아무도 취하지 않았는데 유독 나만 혼자 취해서는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유행가란 유행가는 다 들춰가면서 소리를 지르니, 걱정이 되신 회장님이 이러시면 안 된다는 것을 “명절날 안 취하면 소죕니다. 소죄!”하며 행패를 부렸던 기억을 하면 지금도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진다.

< 05. 예수님, 언제까지 허둥대야 합니까? >
- 나는 지금도 가끔 미사에 늦는 꿈을 꾸곤 한다. 새벽3시나 4시에 눈을 떴다가는 한숨 더 잘 수 있다고 맘 놓고 다시 드러눕는 때는 미사에 늦어서 허둥대는 꿈을 꾸게 된다. 오늘도 그랬다. 미사시간(6시)에 20분이나 늦었는데도 수녀님들은 ‘나 몰라라’하며 인터폰도 안 해준 것이 굉장히 서운했는데 눈을 뜨고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새벽 5시였다. “예수님, 제 나이도 이제 오십입니다. 언제까지 허둥대야 합니까?”

< 06. 면접 얘기 좀 합시다 >
- 성탄면접 때는 으레 신앙 문제뿐만 아니라 교무금 문제까지도 곁들여서 교회의 살림에 대한 걱정을 함께 나누게 된다. … 사업에 실패한 젊은이가 찾아와서는 “신부님, 교무금을 다섯 배로 올리겠습니다.”라고 소리쳤다. 말인즉슨, 자기가 하느님께 인색해서 무슨 복을 받겠느냐면서 난 이제 확신하고 있으니 받을 복에 대해서 미리 감사하고 싶다고 했다. 참 별난 사람도 있어서 신부가 모처럼 소리내어 웃어볼 때도 있다. 신앙은 봉헌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편에서는 축복이다. 축복과 봉헌은 한 가지 동일 행위의 양면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축복은 봉헌이 전제되며 봉헌은 축복이 뒤따른다. 따라서 신앙의 은혜를 알아야 진실한 신앙인이다.

< 07. 머리 학사님 >
- 본당 꼬마들은 나를 ‘대머리 학사님’이라고 부른다. 생긴 대로 불러 주는 것이기에 그 들도 즐겁고 나도 기쁘다. 그러나 그들이 뭔가 마음이 틀어진 상황에서는 ‘대’자를 빼고 그냥 ‘머리 학사님’이라고 부른다. … 어느 날, 꼬마들이 ‘대머리’, ‘머리 학사님’이라고 놀려대자 그들을 불러 일장 훈시를 했다. “머리 학사님이라니, 이게 어디 보통 머리냐?”하면서 우리나라 대통령도 대머리고 사장도 대머리가 많다는 것을 역설하면서 뭔가 훌륭하고 지체있는 사람은 머리가 벗겨지게 되어 있다고 한마디 연설을 했더니, “우리 동네 엿장사도 대머리요!”하면서 소리치는 것이었다.

< 08. 신부님도 성질 좀 고치쇼! >
- 판공성사 때 고백실에서의 일이다. 한창 바쁘고 급한 때 한 아주머니가 들어와서는 처음부터 뜸을 들이더니 더듬거리다가는 횡설수설하는데, 도무지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따위로 성사 준비해서 되겠어요?” 모질게 한마디하면서 심하게 나무랬더니 이 자매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부님도 그 성질 좀 고치쇼!”하면서 함께 큰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아니, 지금 누가 성사 보고 있는 거요?”하면서 한마디 쏘아댔지만 우리는 결국 소리내어 웃고 말았다. 착하고 어질게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타고난 품성도 고와야 하며 사소한 일에 분노하지 않는 인내와 지혜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점에서 부족해도 한 참이나 부족하다.

< 09. 내 동생 인숙이 >
- 나는 7남매 중의 둘째로서 차남이며 ‘인숙이’라는 여동생은 여섯째로서 차녀이다. 나이 차이는 열세 살로 지금 그의 나이는 서른여섯이다. … 우리는 동생의 병(간질) 때문에 기도를 많이 했었다. 그러나 54일 기도가 몇 번이나 돌아도 성모님은 꿈쩍도 않으셨으며, 예수님 또한 남의 일보듯 그렇게 철저히 외면하시는 듯했다. 빚도 많이 졌었다. 병원이란 병원은 다 돌아다니려니까 금새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 … 인숙이는 약을 중단한 열 살 때부터 폐인이 되어 식물인간이 되었으며, 먹고 배설하고 발작하는 일 이외에는 그저 누워만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여동생이 지금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부모의 사랑 속에서 여전히 온몸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다. … “인숙아, 네가 오빠를 신부로 만들었다!” 내가 마흔 살에 신부가 되었을 때 친척들이 먼저 인숙이에게 달려가서 들려준 말이었다. 사실이 그랬다. 인숙이와 나와는 보이지 않는 많은 연결이 하느님 앞에 있었다. 지금도 동생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성직자인 내 삶과 분명히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 10. 예수님 참으로 용하십니다! >
- 새벽부터 생안달을 하며 머리를 쓰고 몸부림을 친 것이 말짱 헛일이요 도로아미타불이었다. (수녀 한 분에게 편지 쓴 것을 찢어 버리는 등) 이젠 세상만사가 다 귀찮았다. 그리고 남은 것은 악밖에 없었다. 어떤 놈이고 걸리면 한 방 날리고 싶었는데 문득 예수님이 생각이 났다. 하필 거기서 예수님이 나오다니! 기도도 아침에 다 바쳐서 바칠 것도 없는데 내 성질 뻔히 아시면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신 것이었다. 징하다. 징혀! 할 수 없이 성당에 끌려가 그 양반과 눈싸움을 하니 웬지 마음이 평화로웠다. “예수님, 어떻게 그 감실에 혼자 진득하니 계신지, 참으로 용하십니다.”

< 11. 내가 살던 신학교 >
- (입학시험) … 나는 서른네 살에 신학교에 입학했다. 머리마저 벗겨지고 얼굴 또한 거무스름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40대 중반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공동침실), (교련), (타종당번), (어떤 편지), (왕개미), (술), (시험), (서품) … 신학교 6년간의 생활은 결코 긴 세월이 아니다. 내 짧은 생애에 이보다 더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은 다시 또 없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 신학생의 목표는 신부로서의 서품이지만 서품 그 자체, 신부 그 자체로서는 가장 큰 목적이 되어서는 아니 되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에 그렇게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옷을 아무렇게나 벗고 나가는 젊은 신부를 보면서 ‘무엇 때문에 너는 서품을 받았더냐?’라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 보기도 했다. 좌우간 82년도 1월에 신부로 서품되었으니 내가 사범학교를 졸업한지는 만 20년만의 일이요 나이는 마흔이었다.

< 12. 강론 짧게 하시쇼! >
- 주일 미사를 마치고 나오시던 할머니가 의미 있게 내 손을 꼬옥 쥐면서 이 더운 날씨에 미사 드리고 강론하시는 일이 얼마나 고되냐는 인사말씀에 나도 그냥 “예, 좀 힘이 들어요.”하면서 대답을 드렸드니, 이 할머니 그것 보라는 듯이, “그렁께 강론을 짧게 하시쇼!”하더니만 손을 한 번 더 흔드는 것이었다. … 한번은 어떤 노인이 “신부님의 강론은 하나도 안 졸려!”하시기에 기분이 괜찮아진 내가 “오늘 어떤 말씀이 좋았나요?”하고 물으니까, “나는 듣기만 했지 알지는 못해라우”하시면서 바쁘게 돌아서는 것이었다. … 어떻게 하면 어린이, 노인 모두에게 귀가 펑 뚫리도록 시원스럽고도 감동적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해 줄 수 있을까? 강론을 하다보면 쉽고도 쉬운 주님의 말씀을 전해 줄 수 있을까? 강론을 하다보면 쉽고도 쉬운 주님의 말씀을 더 어렵고 까다롭게 변화시켜서 전하려고 하니,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가 피곤하고 답답하게 되는 것이다. 주여, 내 입을 열어 주소서. 주여, 신자들의 귀도 열어 주소서.

< 13. 백담사에서 오셨습니까? >
- 나는 신학교에 입학하기 오래전부터 이미 대머리였다. … 찬바람이 부는 겨울날,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중앙의 시베리아 벌판을 지나면서 감싸 주는 그 포근하고 따스함이란 대머리가 아닌 자들은 그 깊은 사정을 알 리가 없는 것이다. 솔직한 고백이지만, 내가 대머리라 해서 일직이 고민을 하거나 또는 머리털을 좀 나게 하기 위해서 어떤 시도를 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나는 생긴 대로가 좋았으며 머리 감기 편하고 또 이발비가 들지 않으니 편리한 때가 많았다. 서품 이후 한 번도 이발소에 간 일이 없었다. 다만 여름의 뜨거운 햇볕과 겨울의 찬바람은 모자 하나로 다 해결되었다. … 그런데 전 아무개라는 사람이 홍두깨처럼 등장하면서부터는 나라 안의 모든 대머리들이 수난을 겪어야 했다. “대머리를 까부수자”라는 구호도 있었고, 언제부턴가는 “백담사에서 오셨습니까?”라는 신자들의 너스레를 받기도 했다. “예수님, 머리 벗겨진 것도 죕니까?”

< 14. 한잔 먹자, 강길웅! >
- 어렸을 때부터 술지게미의 유별난 맛에 길들여진 내가 본격적으로 술을 입에 댄 것은 중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 때였다. 사실 나는 지난 삼십여 년 동안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런데도 나 자신은 ‘중독자’라는 사실도 모르고 그렇게 마시고 흥청대며 비틀거려왔다. 나는 술에 대한 전과가 많다. … 난 사실 어렸을 때부터 신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중학생 때 생후 1년도 안된 동생이 몹쓸 병에 걸려 치료를 하다 빚만 몽땅 짊어지게 되자 부모님이 사범학교로 나의 진로를 결정했으며 내가 본래의 꿈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나이 서른이 이미 넘어 서 있었다. 신부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나를 그 축복의 자리에 불러 주셨으며 내가 술을 끊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공부도 쉬웠고 세월도 빨랐다. 그러나 중간의 어느 날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 잔 마신 것 때문에 둑이 온통 무너지게 되었다.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기에는 실로 역부족, 사람의 이성으로도 안 되며 신앙의 힘으로도 부족했다. …

- 내가 술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외국인 신부님을 통해서였다. 그는 나와 똑같은 알코올 중독자였으나 나보다는 훨씬 전에 해방이 된 자유인이다.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치유가 되었으며 오랜 노예생활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묶인 것을 알아야 해탈을 한다 했거늘 자신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던가! 실로 하느님께 감사드렸고 그 신부님께 감사드렸으며 그동안 술꾼인 나를 참아 주고 이해해 주고 용서해 주었던 모든 분들께 감사의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 잔 먹자, 강길웅!’ 이것은 내가 오랫동안 가슴팍에 달고 다닌 명찰 아닌 명찰이었다. 그러나 그 못된 것을 떼고 나니 태양은 분명히 다시 떴으며, 새로운 세계가 내 앞에 환하게 열리고 있었다.

< 15. 카메라 소동 >
- 언젠가 카메라를 하나 샀다가 큰 곤욕을 치른 일이 있었다. 어떤 물건이나 기계는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었다. 시골 본당에서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곤란한 일이 생기는데 그 중의 하나가 사진 찍는 일이었다. 세례나 견진예식 등이 있을 때 기념사진을 찍어 줘야 하는데 시진관은 먼 곳에 있고, 빌려 쓰는 것도 한두 번 아니라 미안하기도 해서 마음을 오지게 먹고 중고 카메라 하나를 샀다. … (카메라를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고, 카메라로 인해 여러 분심과 불안이 생김) 며칠을 시달리다가 카메라를 그냥 다른 사람에게 주어 버렸다. 드디어 카메라가 내 손에서 떠나게 되자 나는 그때 비로소 자유가 어떤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무소유(無所有)의 행복이 이것이구나!’하는 깨달음과 함께 그 홀가분하고 평화로운 마음은 결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것이었다. 처음 신부 될 때의 결심은 가난한 신부가 되는 것이었지만, 살다가 보면 필요 없는 군더더기 같은 것들이 늘어나기도 한다.

< 16. 멍 수녀님! >
- 성은 멍씨가 아닌데 다만 그분의 재주가 신통치 못하여 이에 답답함을 느끼신 본당 신부님께서 “멍청이”라 부르는 데서 나온 이름이었다. 원래 그 수녀님은 드러내 놓을 만한 것이 없었다. 그저 재주가 있다면 “멍 수녀!”하고 불러도 늘 생글생글 웃는 그 미소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멍 수녀님을 굉장히 좋아했다. … 그곳 원장 수녀님은 나이는 멍 수녀님보다는 훨씬 적으나 대단히 똑똑하고 재주가 반짝반짝하는 분이었다. 그러나 너무 독선적이고 직설적인 언행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신자들이 상처를 받게 되었고 그래서 신자들은 ‘똑 수녀님’을 싫어하고 경계하게 되었다. 결국 멍 수녀님은 본당 신부님과 원장 수녀님의 합동작전으로 먼 곳으로 쫓겨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 세상은 재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재주는 자신의 눈을 감기게 할 뿐 아니라 스스로 위선의 탈을 뒤집어쓰게 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세상을 바보처럼 사시지만 그 속에 사랑이 있고 평화가 있으며 그리고 그리스도의 최고의 덕인 겸손을 사시는 멍 수녀님을 생각하면서 닮지 못하고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도 해본다. 멍 수녀님, 사랑해요!

< 17. 새벽 두 시의 은혜 >
- 지금 시각은 정확히 새벽 2시 10분이다. 벌써 언제부터 새벽 2시에 잠을 깨는 버릇을 가졌는지 모른다.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난 종종 새벽에 일찍 눈을 뜨는 습성이 있다. 기억해 보면, 첫 번째는 나이 서른넷에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일이다. 두 번째는 ‘노안’이라는 가난한 시골 본당에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세 번째는 호남동에서 첫 단식을 하고 났을 때의 일이다. 네 번째는 내가 진행성 알코올 중독이라는 것을 알고 술을 끊었을 때이다. 좌우간, 새벽에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정말 신이 나는 일이다. 다른 사람 다 잠들었을 때에 나 혼자만 깨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주님이 나와 단 둘이만 있고 싶어 하신다는 착각 때문에 더 감미로운 것이다. 사실 주님은 늘 그 시간에 나와 함께 계셨다. 하느님께서 나에게만 거는 기대와 꿈이 있으시다는 것을 나는 자주 묵상한다. 새벽 2시에 잠을 깬다는 것은 은혜로운 일이다. 그렇다고 그때 아주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한숨을 더 잘 수 있기 때문에 고마운 일이다.

< 18. 괜히, 성사 보라 하지 마십쇼!>
- 주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은 일요일과 월요일이다. 내게는 주일이 장날이기 때문에 미사 중에 강론하는 것이 즐겁고 신자들 만나는 것이 기쁘며, 월요일은 또 나에겐 휴일이기 때문에 등산가는 것이 신나며 극장가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 월출산 산행을 마친 나는 갑자기 영화 생각이 나서 귀가길에 목포로 돌아 극장을 찾았더니 마침 ‘사랑과 영혼’이 막 개봉되어 상영중이었다. 이 영화는 내가 광주에서 놓쳐버린 것이었는데 그날 목포에서의 해후는 실로 놀라운 기쁨이요 은혜였다. 늘 그랬듯이 나는 연속 두 번을 관람했으며 전에 막연한 감정으로만 듣던 ‘언체인드 멜로디’가 그렇게 감미롭고 애절하며 영혼의 아름다운 목소리인 줄은 정말 몰랐었다. 문제의 그 멜로디는 러브신에서 흐르게 된다. “그대의 손길이 그리웠소.” 죽은 자가 산 자를 터치하고픈 그 갈망을, 내 영혼이 하느님을 갈구하는 목소리로 계속 착각했다. 좌우간 그날 신나게 울었다. “예수님, 러브신 볼 때 전 딴 생각 안했습니다. 괜히 성사 보라 하지 마십쇼!”

< 19. 노미나시오 >
- 주교님으로부터 처음 노미나시오(인사발령)를 받았을 때는 기도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드렸다. 하느님께 드릴 감사는 가난하고 힘든 본당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하느님은 바로 그곳에서 나를 보내 셨으며 나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본당에서 일한다는 기쁨과 은혜로써 살았다. 그곳은 무척 가난했다. 냉담자, 조당자도 많았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하느님의 은혜가 철철 넘치는 곳이었다. 어두운 곳에서 그리스도의 빛이 밝게 빛나듯이 힘든 곳에는 언제나 하느님의 특별한 애정이 빛나곤 했다. … 사제의 길은 묘한 것이어서 어렵다고 생각하면 쉬운 일이 옆에서 감싸 주고, 쉽다고 생각하면 의외로 어려움에 부딪히곤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려울 땐 하느님께 매달리니 쉬울 수밖에 없고 편할 때는 하느님을 덜 찾으니 어려움을 만나는 것이다.

< 20. 나는 과연 무엇인가 >
- 탈무드에 나오는 얘기다. 깜깜한 데를 어떤 사람이 걷고 있었다. 그런데 저쪽에서 눈먼 소경이 초롱불을 들고 걸어왔다. 그래서 그는 “당신은 소경인데 왜 초롱불이 필요합니까?” 하고 물었다. 소경은 “내가 이것을 갖고 걸으면 내가 걷고 있는 것을 눈 밝은 사람들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초롱불을 들고 다닐 눈먼 소경은 누구인가? ?…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외쳤다. 무엇을 제법 안다고 소리소리 지르지만, 기실 아무것도 모르는 소피스트들에게 “네가 얼마나 무식하냐?”를 알아차리라는 주장이었다. 오늘 우리가 백 번 들어 마땅한 외침이다. 잘사는 것도 좋고, 권력과 명예로 세상의 주님노릇 하는 것도 기쁨이요 영광이리라. 그러나 우리가 과연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한번 쯤 생각하면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고, 참 삶의 길은 어떤 것인지도 밝힐 줄 알아야겠다.

< 21. 놀 줄 모르는 신부도 신분가요? >
- 신앙이란 첫째로 기쁨이다. 아무리 희생과 극기로 자신을 죽이는 일이라 해도 그 본질은 기쁨이다. 예수님이 내 삶의 곳곳에 자리 잡고 계시기 때문에 슬퍼도 슬프지 않으며 아파도 아프지 않는, 기쁨이 넘치는 생이 있는 것이다. 물론 기쁨이 지나쳐서 술주정을 하거나 흥청대며 추태를 부린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특히 바울로 사도는 “술 취하지 말라”고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 사순절이 되면 온 교회가 단식을 하고 희생을 하다가도 부활절에는 본당마다 돼지를 잡고 술을 장만하면서 기쁨을 나누게 된다. 기쁨을 드러내는 데에는 마시고 춤추는 일이 빠질 수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지순례를 다녀오는 신자들도 부활의 기쁨을 나눌 수 있어야 정상인 것이다. 농담 한 번 더하면 “놀 줄 모르는 신부도 신분가요?”

< 22. 또 올랑가 안 올랑가? >
- 전임지에서 마지막으로 떠나 올 때의 일이다. 성당 마당에서 그네를 타고 있던 빵학년이 달려와서는 “신부님, 가능가?”하고 묻기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니까, “또 올랑가 안 올랑가?” 하면서 내 손을 잡는 것이었다. 나는 본래 어린이를 좋아한다. 특히 빵학년을 좋아한다. 빵학년이란 미취학 어린이에게 내가 즐겨 쓰는 애칭이다. … 도시 본당에 온지 이제 석 달, 나는 아직도 이곳 호남동 빵학년들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 가끔 성당에 있는 유치원 놀이터의 험악스런 울타리를 볼 때마다 어른들은 왜들 그렇게 너그럽지 못한지, 유치원생이 아닌 다른 꼬마들이 좀 놀기라도 하면 그게 그렇게 아깝고 싫다는 것인지 공연히 민망스러울 때가 있다. 교회가 무엇인가? 어린이는 나라의 새싹이요 교회의 장차 일꾼이라 하는데, 말은 그러면서 어린이들이 교회에서 설 땅은 어디에 있는가? 생각 같아서는 빵학년을 데리고 데모라도 하고 싶다.

< 23. 예수님,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
- 나는 남들처럼 꿈에 어떤 표징을 바라보지는 못한다. 가끔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있기 전에 꿈에 그 암시가 주어진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차원 높은 꿈이 담겨지질 않는다. 노상 꾼다는 것이 말짱 개꿈뿐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난 본래가 잠꼬대가 심한 사람이라 누구랑 함께 자려면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난번에 등산 갈 때는 꿈속에서 ‘순자씨’(?)를 찾는 바람에 내 소리에 내가 놀라 잠을 벌떡 깨게 되었다. 다행히 옆자리의 형제들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어서 위기는 모면했지만 까딱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꿈속에서도 주둥이가 자주 방정을 떤다. “예수님, 꿈속에서 주님 이름 한 번도 못 부른 것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 24. 어떤 연분 >
- 어떤 형제의 초대를 받아 횟집에서 식사를 할 때의 일이다. “아따, 신부님도 그 시계 좀 바꿔 차시쇼!” … 문제의 내 손목시계에는 대통령의 휘장인 봉황이 그려져 있었는데 사건의 발단은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이쪽 지역에선 충분히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물건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교육 공무원으로서 46년 동안 봉직하고 퇴직한 아버지에게 국가에서 준 선물이었다. 그러나 그 시계도 20년을 차고 나니 문제가 자꾸 생겼다. 이를 보고 신자들이 몇 번 새 시계를 구해 주긴 했으나 ‘조강지처’ 같은 고물시계를 결코 버릴 수가 없었다. … 서울에 다녀오는 길에 집에 들러 하룻밤을 자게 되었는데 그때 굴러다니는 시계를 발견하게 되어 노랭이 아버지한테서 공짜로 얻었다. 시간이 아주 잘 맞아 내 맘에 쏙 들게 되었다. 남자와 여자 사이뿐만 아니라 사람과 물건사이에도 어떤 연분이 있고, 궁합이 맞는 물건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 시계와 만년필이 그것이다. “예수님, 상본에 보면 예수님이 지팡이를 가지셨던데, 제 말이 맞죠?”

< 25. 미련하고 과격한 이유는 >
- 언젠가 어떤 책에서 “폭음과 폭식은 훈련되지 않은 거지습성에서 온다.”는 내용을 읽고 크게 공감한 일이 있다. 나는 ‘절제’라는 것이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다. 이는 잘못된 식사습관에서 오는 것이었다. … 나 같은 인생이 사제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크신 은총이다. 그런데 그 먹고 마시는 훈련이 되어 있지 못해서 마셨다하면 인사불성이요, 먹었다하면 과식이니, 그 때문에 감정도 행동도 절제가 되지 못해 하느님과 신자들 앞에 송구스러울 때가 많았다. 잘못된 습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그것은 암보다 더 지독한 것이며 병명을 알면 다행이나 모르면 평생 고치지를 못하니 불행히도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게 된다. 새해가 밝았다. 태양이 떴다고 누구나 다 태양을 보는 것은 아니며 눈이 있다고 누구나 다 밝은 세상을 사는 것은 아니다. 새 마음이 없고, 새 결심이 없으며, 새로운 성찰이 없으면 그는 늘 참혹한 굴속에서 몸부림쳐야만 한다. “주님, 음식의 절제를 주옵소서.”

< 26. 먼 신부님이 고로코롬 말씀하신대요 >
- “새끼가 에미보다 낫구나” … “먼 신부님이 고로코롬 말씀하신대요?” 농담이 간혹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시원스레 허물어 버릴 때가 있다. 그리고 아주 빠른 시간에 사람과 사람을 가깝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러나 농담은 항상 위험한 것이다. 흔히 상대방의 약점이나 자존심을 건드릴 때가 많기 때문이다.

< 27. 난 이제 입을 씻었습니다 >
-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술을 끊었었다. 그것은 나와 주님과의 약속이었으며 그리고 성소를 목에 건 자존심이기도 했다. 그런데 꼭 2년 후, 방학 때 어떤 임원의 강압에 못 이겨 꼭 한잔을 마신 것이 화근이 되어 2년을 계속 마셔야만 했다. 중독자에겐 술의 조절이 자기 의지로서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또한 이성을 거기에 결부시켜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알코올 중독은 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독자를 나무라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더 이상 자기조절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감기에 걸린 자에게 “왜 기침하느냐?”고 나무랄 수 없는 같은 것이다. 그래서 주위에서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제일 좋은 방법은 ‘단주친목모임’에 참석하는 것이다. … “지금도 술을 많이 마시세요?” 라는 질문에 “난 이제 입을 씻었습니다.”

< 28. 죽여 주옵소서! >
- 자랑할 것이 있다면 오로지 자기의 약점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다시 음미해 본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주님 앞에 넘어졌던 베드로의 약함도 묵상해 본다.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가 아니라면 인간의 존재는 과연 어찌될 것인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난 교리시간에 ‘가라반달의 성모’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성모님의 주요 메시지 중의 하나는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이 발현이 비록 교회의 공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슴에 와 찌르는 것이 많이 있었다. 주여, 죽여주시옵소서. 끈질기게 솟구치는 교만을 꺾어 주시옵고 두꺼운 위선의 꺼풀도 벗겨 주시옵소서. 절제 없는 분노와 시기심을 깨뜨려 주시옵고 거짓된 변명과 인간적인 욕망을 부수어 주옵소서.

< 29. 수련장님 >
- 살다보면 누군가에 업혀서 편한 길을 걷기도 하며, 걷다 보면 발밑에 누군가의 아픔이 깔려 있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인생을 살 때가 많았다. 혼자 걷기 힘든 길을 누군가에 업혀 갈 때도 있었으며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내 아픔을 대신하여 신음하는 것도 보았다. 신학교에서도 그랬으며, 수련장님이 늘 내 곁에 계신 그 때도 그러했다. 나는 벌써 연구과생이며 수련장님은 여전히 건강하시다. 여든이 가까우신 데도 성서연구, 환자방문, 레지오활동 등 얼마나 힘차게 생활하시는지 모른다. 마치 사도 바오로의 삶처럼 성령의 은총이 충만한 생활을 하고 계신다. 젊은 신학생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김성용 신부님의 글 중에서)

< 30. 예수님, 없었던 것으로 하세요 >
- 언젠가 웬 아주머니가 “신부님은 무슨 재미로 사세요.”라는 질문에 “빨래하는 재미”라고 준비 없던 대답을 했다. 사실 나는 매일 빨래를 한다. 빨래라야 겨우 가벼운 내복정도뿐이지만 그러나 빨래는 분명히 내 일과요, 취미요 그리고 일종의 자존심이 걸린 내 트레이드마크다. … 사람들은 신부가 빨래 얘기하는 것을 우습게 여길지 모르지만 그것은 아주 실례되는 말씀이다. 땟물 흐르는 옷을 빨아서 헹궈 널고 말려서 서랍에 개켜 넣을 때의 그 개운하고 상쾌한 맛은, 빨래를 안 해본 사람은 알 턱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피정이요, 고백성사의 은혜처럼 영적인 내용도 다분히 함축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빨래하기가 싫었다. 감기 때문인지 찬물에 손대기가 영 싫었다. 빨래가 무슨 웬수 같았으며 팔자 사나운 생각도 들었다. “예수님, ‘빨래 좋다’는 얘기는 취소하겠습니다. 없었던 것으로 해주세요.”

< 31. 두 물통 >
- 똑같은 사건이라 하더라도 바라보는 눈의 각도와 열려진 신앙의 크기에 따라서 은혜가 될 수 있고 불편한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신앙은 진실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밝고 예쁜 안경을 제공해 주건만, 눈을 떴다고 하는 자들은 안경을 오히려 성가시고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있으니 하느님 앞에 송구스러울 때가 있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켜 준다”는 말이 있다. 우리도 그런 것이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일이 우리를 지켜주며, 우리가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십계명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그 의미를 아직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저 어둡고 불안한 그늘 밑에 갇혀 있는 것이 된다.

< 32. 사제관 주민등록부 >
- 세대주 : 강길웅(남 47세) 주임신부, 동거인 1 : 박마리아(여 47세) 주방장, 동거인 2 : 김 안나(여 27세) 환자, 동거인 3 : 이동현(남 7세) 농아, 동거인 4 : 이미애(여 9세) 농아, 기타 동거가족 : 개 3마리 … 어느 수사님의 표현대로, 우린 모두 ‘문제아’끼리 모인 ‘별난 가족’이다.

< 33. 쉬었다 가세요 >
- ‘나이트클럽’이란 곳엘 두 번 다녀온 일이 있다. … 세상은 지금 뭔가에 잔뜩 굶주리고 목말라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고기에다 술에다 질펀하게 먹고 마시며 흥청대면서도 실제로는 심한 갈증과 굶주림 속에서 메말라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한다.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 언젠가 극장엘 갔다가 혼자만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만 길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래도 성당은 코앞에 있으려니 하고 걷다 보니 웬 아가씨들이 길 양편에 죽 늘어서서는 “쉬었다 가세요!”하면서 혼을 다 빼놓는다. 누가 볼까 참 미칠 지경이었다. 난 여적 내 본당 바로 근처에 이런 여자들이 있는 줄은 몰랐었다. “쉬었다 가라!” 그때 문뜩 사마리아 여인이 생각이 났다. … 호남동 성당은 참 묘한 곳에 위치해 있다. 아니, 세상을 복음화 시키고 구원의 길로 이끈다는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자리요, 오히려 이상적인 위치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성당 주위가 깨끗해지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들이 비록 살기 위한 명목으로 ‘죄’를 선택하고 있지만 그들 안에 비춰지는 그리스도의 빛은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 34. 어떤 은혜 >
- 하느님께서는 내가 서제가 되기 이전에 벌써 여러 가지 은혜를 주셨는데 그 중의 하나가 가난이었으며 또한 심한 중환자가 있어서 그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 그런지 지금도 아픈 사람과 없는 사람을 보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실로 큰 은총이다. … 사제 서품을 받고 처음 부임한 본당에는 다행히 나환자 정착 마을의 공소가 있어서 얼마나 반갑고 기뻤는지 모른다. 100세대가 조금 넘는 곳으로 천주교 신자들만의 단일 마을로서는 상당히 큰 공소였다. 나환자 공소를 자꾸 방문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 그런데 자주 방문하시는 본당 신부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나는 즉각 공소 사목회에서의 음식 접대를 중지시키고 매 주일 한 가정씩 돌아가며 식사(소찬)를 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리고 4년 반 동안에 그 100세대를 세 번 이상 돌았다. 각 가정에서 준비한 음식은 아주 성찬이었으며 마을은 그때마다 잔칫날이었다. 그러다 보니 신앙에 불이 댕겨져서 공소가 크게 성장하였으며 마을과 사람 사는 분위기도 크게 바뀌게 되었다.

- 나는 지금도 진정한 도움이란 물질의 도움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다 크고 소중한 것은 진정으로 참된 이웃이 되어 주는 것이며 그들을 존경하는 것이다. 물론 배고픈 사람에겐 당장 밥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무작정 밥만 준다고 도와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참된 도움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거기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일어서도록 협력을 하는 것이다. 과부 설움은 과부가 알듯이 없는 설움은 없어 본 사람만이 알고 아픈 심정은 아파 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그분이 하느님이시다.

< 35.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
- 한번은 사범학교 때 막역한 친구와 함께 시골에 놀러간 일이 있었는데, 그때 산을 넘다가 굴속에서 사는 어떤 영감님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가 문둥이였는지 아니면 보통 거렁뱅이였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상한 감명을 받은 나는, 나도 언젠가는 그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게 되었다. 그러자 듣다 못한 그 친구는 “그 낭만에 초쳐먹는 소릴랑은 하덜 말거라!” 하면서 한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기이한 인생관을 가졌던 것처럼 보인다. 잘 먹고 잘사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후미진 곳에서 외롭게 사는 삶을 이상하게 동경했으며 실제로 섬마을 선생이다, 광부생활이다, 수도원이다 하면서 인생을 돌고 또 돌곤 했었다.

- 사랑하는 친구가 세상을 떠난 지는 벌써 10년이 넘는다. 산 다는게 무엇인지, 그 ‘낭만에 초쳐먹는 생각’이 요즘 들어 자주 떠오르곤 한다. 내가 처음 신부가 되었을 때는 본당 신부 꼭 6년만 하고 수도원에 다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어느새 햇수를 잊어버리고 6년이 넘어 올해가 벌써 10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나이도 이제 오십 줄에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영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작년 언제가 모 수도원을 찾아갔을 때, 주교님의 허락만 계시면 기꺼이 받아주겠다는 대답을 얻고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를 어떻게 대주교님께 말씀드리느냐 하는 대목에서 앞이 콱 막혀 버렸다. “그 혀 꼬부라진 소리 좀 작작 하거라!” 죽은 그 친구가 내게 자주 퍼붓던 말이다. “예수님, 저 술 안 마셨습니다. 정말 술 취한 말이 아닙니다.”

< 36. 장가 안 가시길 잘했어요 >
- 시내버스를 탔을 때의 일이다. 버스 뒷자리에 여고생들이 모여 웃고 떠들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본의 아니게 이런 말을 엿듣게 되었다. “우리집 한심이는 허락 안 할 거야.” 후에 안 일이지만 ‘한심이’는 자기 아버지를 부르는 학생들의 은어였다. 집에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도대체 한스럽다해서 딸들이 지어낸 이름이었던 것이다. … 도시 본당에 있을 때 젊은 부인들이 나를 대놓고 놀린 일이 있었다. “신부님은 장가 안 가시길 잘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말의 뜻은 내가 성격이 괴팍해서 만일에 결혼했더라면 그 마누라는 사흘마다 보따리를 싸고 도망갈 채비를 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즉 내겐 남편이나 아버지가 될 자질이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아무나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며 아무나 남편이 되는 것이 아니다.

- 부모에겐 자식이 보물이요 자식에겐 부모가 보물이며, 남편에겐 아내가 보물이요 아내에겐 남편이 보물인 것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위대한 보물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에 자기 가정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아무리 돈이 좋고 권력이 좋으며 명예가 좋다 해도 가정은 그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다. 물론 그것들과는 차원이 다르고 가치기준이 다르지마는 어떤 경우에서건 가정을 무시하는 사람은 그만큼 무시당하는 존재 그 이상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 요즘 흔히 ‘청소년 문제’ 운운하며 어른들이 걱정을 하고 있지만 그게 모두 청소년들의 문제가 아이라 바로 어른들의 문제요, 부모들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자녀는 부모의 얼굴인 것이다. 밥을 주고 돈을 준다고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며 진정으로 존경하고 사랑할 때 부모가 되고 어른이 되는 것이다.

< 37. 예수님, 절 받으십쇼 >
- 꼭 30년 전의 일이다. 난 본래 신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빚을 먼저 갚고 신학교에 가라시는 부모님의 말씀 때문에 사범학교에 들어가 선생이 되었다. ‘인숙이’라는 여동생은 얼굴도 예뻤는데 돌도 안 되어 경기(驚氣)를 한 번 것이 그대로 병이 되어 속수무책이었다. 몇 년 동안 기도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으며 고치지도 못할 병을 고치려고 병원비와 약값을 대느라 빚만 산더미처럼 지게 되었다. 식구가 많았던 우리는 아버지 혼자의 봉급으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정말 거지같이 살았으며 돈 때문에 비굴해져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았었다. … 빚을 다 갚는 데는 그 후로 10년이 걸렸으며 동생은 올해 나이 서른일곱이니 식물인간으로 의식 없이 지난 세월만 해도 30년이 넘는다. 밤이 아무리 길어도 새벽은 꼭 온다.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우리에게 필요 없는 눈물을 흘리게 하시지는 않는다. 빚을 다 갚고 나서야 인숙이를 은총으로 여기게 된 것이 부끄럽기만 하다. 1992년. 선생이 된 지는 만 30년이요, 신부가 된 지는 꼭 10년이다. 감회가 크다. “예수님, 절 받으십쇼.”

< 38. 무폼 >
- 원래 생긴 것이 없어서 그런지 난 처음부터 멋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다. 이런 나를 보고 어머니는 ‘무품’이라고 하셨는데, 해석하자면 폼이 없는 것이다. 신학교 때 다른 신학생들이 샴푸를 쓰는 것을 보고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 적이 있다. 그땐 난 비누로 감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샴푸나 화장품을 쓰는 신부님을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신부에게 멋이란 무엇인가? 목욕 자주하고 옷 깨끗이 빨아 입으면 됐지 다른 뭐가 있을까마는, 다만 내 못난 소가지 땜에 진정한 멋이 흐려질까 걱정도 된다.

< 39. 신부님, 나 어서 죽게 해줘요! >
- 봉성체를 다니노라면 불쌍한 노인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마을 이름이 노안(老安)이라서인지 아흔이 넘으신 분, 아흔이 가까우신 분들이 수두룩하니, 진정 ‘가실 날’을 은총으로 아시는지 어서 죽기만을 고집하신다. “그도 살아 계신 것이 은총입니다.” 듣지도 못하시는 노인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소리치지만 할머니는 그저 “신부님, 나 어서 죽게 해줘요”라는 말씀만을 거듭하신다. “하느님이 불러서 가시지 우리 맘대로는 못 가셔요”라고 소리를 질러 보지만 할머니를 달래는 신부의 마음도 답답하기만 하다. … 노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은총이다. 그러나 삶 모두를 은총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더 큰 은총이 필요하다. 가난과 질병, 고통과 눈물, 이 모든 것들이 은혜의 십자가인 줄 알지만은 그 십자가의 삶을 산다는 것은 죽고 싶을 정도로 고달플 때가 있는 것이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도 기억해야겠지만 아직 세상연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분들에게도 존경과 사랑의 도움이 있어야 하겠다. “나 어서 죽게 해줘요!” 죽고자 하는 노인 마음에는 살고자 하는 염원이 더 큰 것이다.

< 40. 어떤 십자가 >
- 탄광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하루는 꿈을 꾸는데 내가 어떤 산 위에 서 있었다. 산줄기 맨 끝의 봉우리 위에 웬 십자가가 붕하니 떠 있었다. 참 기묘한 일이었다. 나는 괜히 흥분하기 시작했다. 꿈에서일망정 성모님의 치맛자락이라도 한 번 보았으면 하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는데 그 막연한 소망이 실제적인 사건으로 현실화되고 있었다. 나는 그냥 감격했으며 십자가를 향해서 기도하고 있었다. “제발 저에게로 와 주세요.” 기적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십자가는 드디어 바람을 타고 나에게로 떠오고 있었으며, 그 실체는 점점 확대되어 크게 보여지기 시작했다. 십자가는 점점 가속화되어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데 자꾸만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도망갈 궁리를 하게 되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십자가에 살짝만 부딪혀도 나는 요절이 나고 말 것 같았다. 그러나 내 위를 1cm 간격으로 통과하고 있었다. 꿈을 깨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이불 속에서 웅크린 자세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며칠 뒤에 갱 안의 작업장에서 하마터면 전차에 깔려 죽을 뻔했던 것을 불과 1cm의 차이로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고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신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던 나는 비관과 절망 속에서 살았다. 방탕한 생활도 했고 합법적으로 죽을 수 있는 길만을 찾았었다. 그러나 ‘십자가의 꿈’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고 나는 탄광에서 수도원으로, 그리고 다시 신학교로 옮겨 신부가 되고야 말았다.

< 41.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 은혜 >
- 언젠가 괴물 같은 피정을 무섭게 받을 때의 일이다. 거기선 신부의 권위고 뭐고 없었고, 처음부터 시계를 뺏더니만 이리저리 뺑뺑이를 돌려 가며 달구치는데 사람 참 미칠 일이었다. 난 원래 물을 갈아 먹으면 한 사흘은 화장실을 못 가는 묘한 습성이 있었다. 드디어 사흘째 되는 날 기별이 왔다. … 드디어 화장실에 도착하여 시원하게 배설시킬 수 있었던 그 감격, 그 은혜. 피정이란 결국 오물을 버리고 하느님의 성령으로 새롭게 무장하는 것이 아니던가. 많은 피정을 했었지만 그때의 그 형이하학적 은혜의 피정만큼 나에게 감동으로 남아 있는 피정도 없다.

< 42. 미안한 얘기 >
- 예비자도 아니요 사목회 부회장의 ‘얼척없는’ 질문이다. “신부님, 거 믿으나 안 믿으나 착하게만 살면 천당 가는 것 아닙니까?” … 피정지도후 마침미사를 바치는데 독서자는 사목회장이었다. 이분이 독서대에 올라가서 한참을 꿈지럭거리더니만 “골로에 의한 독서”하고 비로소 입을 여는 것이었다. 그 회장님은 ‘골로사이서(콜로새)’라는 성서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 세례식을 준비하던 예비자 한 사람이 어떤 임원을 찾아가서 “파스카가 뭔지 아느냐?”하고 물었더니, 성서에서 나오는 이스라엘의 땅 이름이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었다. … 미사가 뭔지도 모르고 성당에 나오는 신자들도 많으며 성서 한 번 읽어 보지 못하고 사목회 임원 노릇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게 다 누굴 탓할 일이 아니요 신부 자신들의 문제이긴 하지만, 자기가 모르면서도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으니 더욱 한심한 것이다.

< 43. 강급행과 박완행 >
- 우리 본당에 보좌신부님이 오셨다. 광주교구에서 시골에 보좌가 있는 곳은 오직 함평뿐으로서 이는 우리 신자들이 기도해서 얻은 하느님의 축복이었다. 그런데 그 보좌 신부와 나는 여러 가지로 대조적이기 때문에 신자들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가십거리가 되고 있다. … 어느 형제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 보좌 신부는 성호경 한 번 긋는 데 40초가 족히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신자들이 우리 둘의 성을 따서 나는 ‘강급행’이요 그분은 ‘박완행’이다. 나는 성질이 아주 급한 편이다. ‘땡’하면 에누리가 없다. 매사에 늘 서두르기 때문에 주위를 온통 불안하게 만들 때가 자주 있는 사람이다. 반면에 보좌신부는 아주 느긋한 분이다. 그분은 시간을 초월한 분이며 어떤 격식보다는 마음이나 속 진실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며 아주 편하게 대해 주시는 분이다. 그리고 그분의 자상함에는 친근감을 안 느낄 수가 없다. 한마디로, 우리 신자들은 비포장만 타다가 아스팔트를 만나 신앙의 은혜가 얼마나 부드러운가를 이제 막 체험 중에 있는 것이다.

< 44. 존경하는 신부님께 >
- 새해를 맞이하면서 문득 신부님 생각을 합니다. … 신부님은 자신의 것은 모두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 주시는 그 가난함과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쓰시는 겸손함과 그리고 남모르게 성당에 홀로 앉아 오래오래 기도하시는 그 모습은 숱한 사람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존경하는 신부님! 주님은 정녕 낮아지는 사제를 통해서 당신을 더욱 드러내시며, 자신의 것을 모두 비울 수 있는 이에게만 그분의 것을 채워주십니다. 그러나 한 사제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올해는 사제로서 다시 태어나는 해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은은하게 드러나는 신부님의 사제직을 본받아,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는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 따라 저 자신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매달아 보겠습니다. … 신부님,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세요. 혹 미끄러지거나 넘어져도 일어서는 용기를 가지라고, 일어섰다고 생각할 땐 다시 또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 지혜를 가지라고, 아직도 의지가 약하고 굳셈이 부족한 저를 타이르고 가르쳐 주세요.
… 새해 아침에 강길웅

< 45. 못 말린다, 못 말려 >
- 5월에 은퇴 신부님을 모시고 설악산과 백암온천에 3박4일 일정으로 효도관광을 다녀왔다. 거기에는 본당 수녀님과 자매님 몇 분이 동행했다. … 은퇴신부님과 동행하면서 나왔던 자매님들의 말들 … “못 말린다, 못 말려!”, “정말, 못 말려!” 여행은 정말 즐겁고 재미있었다. 어른을 모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른 중심으로 모셔야 하는데 젊은 우리가 자기 뜻대로 하려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신부님, 가을에 다시 갑시다!”

< 46. 억지 휴가의 말로 >
- 본당의 월동준비 공사로 사제관 수리로 강당에서 잠을 자다가 감기가 덜컥 걸렸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휴가를 선언하고 1주일 여행길에 올랐다. 대전 고향 집을 거쳐 목사가 되었다는 제자를 만나고, 춘천 수도원에 있는 15년 지기 친한 수사님을 만났다. 몇 달 동안 잘 막아논 둑에 소주를 댓병으로 부어내니 안 터지고 무사할 리가 없었다. 이틀 동안 주해(酒害) 속에서 허덕이다 다시 대전을 거쳐 광주로 내려와 보니 공연한 휴가를 억지로 가졌다가 술 때문에 성사감만 몽땅 짊어지고 온 것이 되어 본당에 들어설 때는 여간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순교자 성월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소양강 댐에서 술 먹은 김에 젊은 비구니의 손을 잡아 보자 어린애처럼 환하게 웃어 주던 그 모습과 이틀 동안 기사로 친절을 베풀어 주던 자매님이 다정한 모습으로 문득 삼삼하게 떠오르는 일이 생긴 것이다. “하느님, 이건 소죈가요 대죈가요?”

< 47. 대모님, 우리 대모님! >
- 도시 본당에서의 일이다. … 사람들은 참 이상할 때가 많다. 자기가 못하는 좋은 일을 남이 하면 본받고 배워야 하는데 그런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욕하고 비난하면서 깎아 내리려 한다. 도대체 신앙인들마저 잘못된 아집에 사로잡혀 헤어 나오지 못하고 다른 사람마저 그 구렁텅이로 끌고 들어가려 하니 민망스럽기도 하고 한심스러울 때가 있다. … 한 번은 어떤 자매가 레지오에 입단할 것을 굳게 약속해 놓고는 첫 주회가 열리는 날 오전에 찾아와서 불쑥 한다는 말이 “못 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니, 본인이 시간도 있고 또 신앙도 배울 겸해서 자청한 일인데 “어쩐 일이냐?”고 했더니 대모님이 하지 말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 대모는 ‘희생’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는 분이었다. “내 신앙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 그의 고집이었다. 주일에 결코 빠진 적은 없는데 신앙생활을 참 묘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 묘한 것은 신부님 말씀은 어길 수 있어도 대모님 말씀만은 결코 어길 수 없다는 대녀들의 대답이었다. 양들이 목자를 믿지 못하고 따라주지 않을 때 심사는 착잡해지고 영 괴로워진다. “대모님, 신부 좀 살려 줘요!”

< 48. 예수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 어쩌면 그날은 내 사망일이었다. 우리 본당의 세 자매들이 광주 ‘명상의 집’에서 3박 4일 코스로 강도 높은 피정을 하고 있었다. 피정 중간에 한 번쯤은 찾아 주는 것이 인사다 싶어 다섯 명의 남녀가 광주를 향해 함평을 출발한 것은 새벽 두시였다. 내가 직접 핸들을 잡은 새벽의 기상 조건은 양호했다. 전날 오전에 눈이 조금 왔으나 다 녹았으며 가끔 센 바람이 지나가긴 했다. 도로에 모래가 뿌려진 것을 처음 발견하게 된 것은 나주로 들어서는 고개부터였다. 남평이란 곳에서 광주로 올라가는 고갯길에서 차는 순식간에 지그재그로 사정없이 미끄러지면서 언덕 밑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핸들을 꼭 잡았으나 때는 이미 늦었으며 마지막이다 싶어 주님의 이름을 부른 채 눈을 감아 버렸다.

- 우리 모두가 세차게 흔들리면서는 아무것도 안 보였으며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다만 눈을 떴을 때는 연옥도 아니요 지옥도 아니란 것을 알았으며 한 명만이 약간의 부상을 입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무사했다. 실로 하느님의 자비요 구원이었다. 우리가 차 밖으로 나왔을 때 도로는 엄청난 빙판이었으며 베스타는 막판에 뒤로 홱 돌아서 난데없는 전신주에 받쳐 마치 깡통처럼 완전하게 찌그러져 있었지만 그것이 은혜요 감격이었다. 시각은 새벽 세시 십분이었다. “예수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돌아선 나는 새로운 부활을 바라보면서 어두운 새벽을 헤쳐 나오고 있었다.

< 49. 얼척없는 인생 >
- 금년 사제 피정 때의 일이다. … 피정은 안양에 있는 ‘라자로 마을’에서 있었다. 지금은 행정구역이 의왕시로 바뀌었지만 나환우들 마을에 훌륭한 피정의 집이 있어서 전국에서 찾아드는 곳이다. … 첫날 저녁기도 후에 피정비 15만원을 내라는 교구청 신부님의 말씀이 있었다. 생각하니 참 큰일이었다. 10만 원인 줄 알고 봉투에다 그렇게 준비했는데, 용돈과 합쳐서 피정비를 채우고 나니 단돈 200원이 남게 되었다. 좀 전에 800원짜리 1단 묵주를 하나 사고 거슬러 받은 것이었다. 피정에 돈 쓸 일은 거의 없었으나 막상 호주머니가 텅 비고 나니 갑자기 불안해져서 피정이 제대로 되지를 않았다. … 이튿날 미사는 환우들 성당에서 드렸다. 원장 신부님의 출장으로 날 보고 대신 미사 드려 달라는 교구청 신부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의 환우들은 나를 잘 알고 있었다. 7년 전에 그곳에서 두 달간 휴양을 했기 때문에 긴 세월이 지났어도 우리는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미사 후에는 성사를 달라시는 할머니들의 부탁이 있어 잠시 고백실에 들어섰더니 한 분씩 들어와서 성사는 안 보고 한다는 말이 “신부님 얼굴이 많이 야위었다”면서 봉투들을 주는데 아무리 사양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쾌 많은 돈을 받았으니 참 묘한 일이다. “하느님, 저 같은 놈을 전라도 말로 ‘얼척없다’고 합니다. 아시죠?”

< 50. 소 같은 신부님! >
- 나는 말을 함부로 하는 버릇 때문에 곤란을 겪는 일이 가끔 있다. 조금만 생각하고 말하면 될 것을 가지고 앞뒤 가리지 않고 그냥 막 쏟아 내기 때문에 사제의 품위고 뭐고 사정없이 곤두박질할 때가 있다. 성급하고 미련한데는 약이 없는 것이다. “너, 애기 낳았냐?” 시집간 지 넉 달도 안 된 부인에게 전화로 불쑥 던진 말이었다. 그러자 상대방은 이제 시집 왔는데 뭐 벌써 애기나면서 신부님도 별말씀 다 하신다며 눈 흘기는 소리를 하였다. 아무리 주례를 서줬다 해도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너’라니, 그리고 결혼한 지 1년이 된 것도 아니고 겨우 서너 달이 되었는데 말이다. ‘그러면 안되지’ 하면서도 그 버릇이 잘 고쳐지지 않으니 스스로 한심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 어떤 신부님은 자신의 고약스런 말버릇 때문에 자갈을 입에 물고 6개월이나 사셨어도 고치지를 못하셨다는데, 이래저래 성질 급한 인생들은 긁어 부스럼 만들고, 사서 고생하는 일을 밥 먹듯 하고 있으니 세상에 이런 바보도 없고 이런 천치도 없을 것이다. … 성당 마당에서 놀던 아이들이 속도 모르고 달려와서는 “신부님, 신부님!”하고 매달리기에 웬 수작이냐 싶어서 못 들은 척했더니, 애들이 돌아서면서 “소 같은 신부님!”하면서 한마디를 흘리는 것이었다. “누가 그랬어?”라 하자 한 아이가 나서서 “신부님이 그랬잖아요. 말해도 대답하지 않는 사람은 ‘소 같은 사람’이라고요.” …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이다. 그리고 자기가 뿌리고 가꾼 대로 거두는 것이다. 내가 이 모양인데 누구를 탓하겠는가!

#114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115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 책 이름 : 가장 소중한 당신에게 ]

- 지은이 : 생활성서사 엮음
- 펴낸데 : 생활성서사, 출판일 : 1998.01.01 - 205p
- 내 용 : 부부 사랑 편지 32편 모음(엮음)

[ 표지의 글 ]

- 사랑하고 인내하며 하나로 닮아가는 두 사람! 아내와 남편이 함께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마움과 사랑의 마음, 서운함과 상처받았던 마음, 외로움, 고독 등 평소에 대화로 표현하기엔 힘들었던 마음들이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는 이 책 어디에서나 그 언젠가의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 추천의 글 ]

- 함께 사는 부부끼리 편지를 쓴다는 것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할 말이 있으면 말로 하면 될 것이지 편지는 무슨 편지입니까? 그런데 부부라는 관계가 그런 게 아닙니다. 서로 할 말, 못 할 말도 있고 또 해야 할 말이 있어도 차마 입을 뗄 수도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편지를 쓰면 여러 가지 이득이 있습니다. 첫째로, 방해받지 않고 자기의 말을 끝까지 다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면서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기 자신의 사고나 감정을 정리하게 됩니다. 셋째로, 무엇보다도 편지를 쓸 때는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말할 때보다 솔직히 자기표현을 할 수 있어서 자기와 배우자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 이 책의 편지들은, 어떻게 부부들이 미운 정 고은 정을 쌓으며 살아가는지 솔직하고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이 책에 적힌 경험들에 공감하면서 자신들도 어떻게 부부 서로의 사랑을 키워나가고 신뢰를 구축해나갈지를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이 책을 모든 부부의 필독서로 추천합니다. - 서경윤 신부

(ㅇ : 夫(남편), * : 婦(아내), … : 중략 -> 표시는 메모자가 부기

< 01. 늘 내 곁에 한빛으로 > 계 안토니오 & 안 히야친타 부부

ㅇ 사랑하는 히야친타! 오늘 야근이 제법 한가한 덕분에 하얀 종이를 마주하고 당신에게 글을 쓸 수 있어 참 좋구려. … 때로 당신은 자신의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 나를 두렵게 하오. 내 사랑을 간섭이나 참견으로 오해하고, 부담스러워하고, 순간순간 나에게서 도망치려 할 때 나는 몹시 외로웠소. … 이제 서로에게 보여주는 사랑에 인색하지 맙시다. 힙겹고 고통스러워도 모든 것을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넉넉한 마음으로 우리 함께 성가정을 만들어갑시다. 늘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하오. - 당신의 남편 안토니오

* 사랑하는 안토니오! 당신 없는 빈 밤을 거세게 불어대는 바람이 찾아왔습니다. 늘 제 곁에 계시면서도 때론 손길이 닿지 못하리만큼 멀게만 느껴지는 당신! 바람과 함께 당신을 생각하며 온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무거운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저에게 고마워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자상함을 속박과 간섭으로 오해하고 미워했던 철없는 아내입니다. … 조심스레 당신께 한 가지 청을 올립니다. 당신이 당신이어야 하듯 내게도 필요한 나만의 자리를 마련해 주십시오.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성숙에 필요한 나만의 자리를 허락해주십시오. 하지만 당신이 원하실 때면 언제든지 그 자리에 있겠습니다. 안토니오! 주님의 손길이 우리에게 머물러 있는 한 당신께 대한 저의 신뢰와 사랑도 다함이 없을 것입니다. 늘 내 곁에 한빛으로 있어주십시오. 당신을 사랑합니다. - 당신의 아내 히야친타

< 02. 어느새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구려> 오 빈첸시오 & 김 페루페투아 부부

* 사랑하는 빈첸시오에게. 잠시 술을 끊은 당신이 참으로 장합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손녀 주현이를 안고 있노라면 향긋한 느낌이 뼛속 깊이 스며드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가 되었다는 사실은 가끔 저를 서글픔에 젖게 합니다. … 어느 부부라도 언젠가는 결국 헤어져야 하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아직도 많습니다. 봉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당신의 건강을 살피는 일이 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너무나도 바빴던 이 한 해를 보내면서 불안한 느낌을 떨쳐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떨려오는 가슴을 가눌 길이 없군요. … 사랑하는 빈첸시오! 새해에는 꼭 시간 내서 여행을 떠납시다. 정녕 우리는 지금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너무 짧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가 여기 있습니다. - 당신의 아내 페르페투아

ㅇ 사랑하는 당신에게. 새벽길을 재촉하는 나에게 당신은 오늘도 당근주스를 내밀었소. 평생을 두고 당신에게 진 빚을 언제나 갚을 수 있을는지. 여보! 어느새 우리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구려. 괜스레 허전한 느낌이 자꾸만 밀려옵니다. … 천만금이 든다 해도 당신의 손등에 핀 저승꽃만은 없애주고 싶지만 지나간 세월을 어떻게 한다지요? 여보! 이 세상에서 못 갚으면 저 세상에 가서라도 당신에게 진 빚을 갚으리다. 오늘따라 허전하고 씁쓸한 기분에 한 잔의 술이 간절하게 생각나오. 바쁘겠지만 당신과 나만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소주 한잔 합시다그려. 그것이 또 우리의 큰 위안이 아니겠소 – 사랑하는 남편 빈첸시오

< 03. 말없이 일을 결정했을 때> 이 베드로 & 정 로사 부부

ㅇ 사랑하는 로사! … 오랜만에 남편 노릇도 할 겸 또 당신을 놀래게 해줄 양으로 녹즙기를 사서 당신 앞에 내놓는 순간, 그 무슨 날벼락이었던지? 기뻐하기는커녕 상의도 없이 혼자 결정해 사왔다고 화내는 당신을 보면서 나는 멍해지고 어이가 없어졌습니다. 선심 한번 쓰는 척해서라도 당신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데, 나의 속마음은 몰라주고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 것 같아 너무나 야속하고 섭섭했습니다. … 이제, 우리 부부가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 개방적이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의지해야겠다고 결심하니 풍요로운 가을 들녘을 바라볼 때처럼 뿌듯함을 가눌 길이 없군요. 사랑하는 로사! 지금부터라도 책임 있게 행동하고 당신에게 더욱 관심을 쏟으면서 지혜롭게 살아가렵니다. - 당신을 사랑하는 베드로

* 추석인 어제, 온종일 식구들을 데리고 본가와 처가를 두루 다니면서도 짜증스럽거나 피곤한 기색 없이 기쁘게 보낸 당신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 ‘오랜만에 선심 쓰는구나’하는 생각에 마음 설레고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풀어보니 생각지도 않은 물건을 의논도 없이 무턱대고 사들고 온 당신이 못마땅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 그러나 야채즙을 손으로 갈아주는 나의 모습이 안타까워 나를 위해 사랑하는 마음에서 사게 됐을 거라고 생각하니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속 좁은 내가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사랑하는 베드로!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퇴근할 때는 한 아름의 선물보다도 더 풍성한 환한 미소를 머금고 들어 올 당신을 그리며 녹즙기 전원 스위치를 켭니다. - 당신을 사랑하는 로사

< 04. 생일을 기억해 주었을 때 > 홍 바오로 & 박 세실리아 부부

ㅇ 사랑하는 세실리아! 낙엽이 구르는 차가운 늦가을. 나의 생일이었소. 당신이 밤새워 장만한 푸짐한 생일상을 받고, 결혼해서 36년 동안 당신의 생일을 한 번도 기억해 주지 못한 나는 마치 부조금 없이 남의 잔칫상에 앉은 것 같은 느낌에 마음이 자라목처럼 움츠러들었소. … 어느덧 하나 둘 늘어난 당신의 주름살, 나의 깊은 사랑으로 어루만져 지난날의 얼룩진 삶을 기워 갚고 싶소. 이제 또 한 번의 생일을 기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당신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주어진 이 하루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감사의 눈물이 쏟아졌소. 이제는 어두웠던 지난날을 되풀이하지 않기로 마음 다지면서 당신의 앞날에 하느님의 은총이 듬뿍 내리기를 빌고 또 빌겠소. - 당신의 남편 바오로

* 사랑하는 바오로!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 되면 남편으로부터 선물을 받는다든가, 외식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이 이 세상 모든 아내들의 바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단 한 번도 내 마음에 흡족한 선물이나 외식의 기회를 마련해 준 적이 없었습니다. … 외로움과 서글픔에 눈물이 팽돌았지만 나는 고상 앞으로 달려가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이 세상 누구 하나 제 생일을 기억해 주지 않더라도 전 외롭지 않습니다. 당신만은 나의 외로움을 알아주실 테니까요.” 그때 옆에 있던 당신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내게로 와서 손을 꼭 잡고 함께 기도하며 용서를 빌었지요. … 얼마 뒤 나는 성모상 앞에서 “사랑하는 세실리아에게”라고 쓰인 쪽지와 함께 조그마한 선물상자를 발견하고는 가슴이 뭉클하고 목이 꽉 메어왔어요. … ‘바오로가 살아서 내 곁에 있는데,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나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함과 어떤 값비싼 선물을 받은 것보다 더한 마음의 풍요로움을 느꼈습니다. 당신께 사랑을 드리며. - 당신의 아내 세실리아

< 05. 결혼기념일을 기억해 주었을 때 > 황 멜키아데스 & 권 데레사 부부

* 사랑하는 멜키아데스! 내 인생의 장이 바뀐 지 어언 17년! 처음 결혼해서는 결혼기념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당신의 사랑을 기대했지만 당신은 그날을 무심하게 잊고 보냈지요. 게다가 나의 생일까지도 무심히 지나칠 땐 어찌나 섭섭하고 화가 났던지… 몇 년 전 결혼기념일에 당신과 아이들의 손을 잡고 우리가 결혼식을 올렸던 부평1동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던 것이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에 감사드리고 우리 인생의 중간을 점검하며 속으로 ‘더욱 헌신하며 살리라’고 다짐했습니다. 결혼기념일이 되면 나를 기쁘게 해주려고 애쓰는 당신에게 한없는 사랑을 느낍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기념일뿐만 아니라 365일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정말 가슴 뿌듯하고 기분 좋은 날입니다. - 당신의 데레사

ㅇ 사랑하는 데레사! 우리가 결혼한 지도 벌써 17년이나 되었군요. 어렵게 살다보니 삶의 의미마저 잃어버리고 바쁜 생활 속에서 어디 결혼기념일을 제대로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소? 그런 가운데에서도 결혼 15주년에 당신이 나에게 보여 준 모습은 정말 흐뭇하고 멋있었다오. 그날 밤늦도록 우리 둘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었던 일이 새삼 그리워지는군요. … 결혼기념일을 기억시켜주던 당신의 따뜻한 마음이 고맙고, 특히 결혼 15주년 때의 우리들 모습은 아름다운 추억이었소. … 앞으로는 결혼기념일을 기억하도록 굳게 결심하오. 나의 이러한 약속을 당신에게 선물로 드리오. 이 선물이 나와 당신을 사랑의 고리로 연결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이글을 맺고자 하오. - 당신의 멜키아데스

< 06. 당신을 난처하게 만들었을 때 > 전 파비아노 & 강 글라라 부부

ㅇ 여보! 10여 년의 긴 로맨스 시절과 14년의 결혼생활 동안 당신을 난처하게 만들었던 때가 너무 많아서 먼저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는 구려. … 지난봄, 당신의 모임에서 제주도 여행을 간다며 나의 동의를 구했을 때가 생각나는구려. 그때 나는 내가 아끼던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 때문에, 여자들만 하는 모임이므로 허락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잘라버렸지요. … 며칠 후 당신의 넋두리처럼 “그동안 회비가 많이 모여 별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었고, 교통편과 숙소도 어렵사리 예약해놓았는데 내가 펑크를 내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까지도 계획을 취소하게 돼 입장이 몹시 난처했었다” 라고 했을 때 내가 당신을 너무 신뢰하지 못한 게 아닌가 되돌아보게 되었소. … 사랑스런 나의 글라라! 요즘 아무리 바쁜 생활이라지만 가까운 기회에 시간을 내어 당신과 단둘이 오붓하게 여행 한 번 꼭 다녀오도록 합시다. 아름다운 추억을 한 아름 엮으면서 말이오. - 당신의 파비아노

* 사랑하는 파비아노! 얼마 전 누님 댁을 돕자는 일로 당신과 다투었던 때를 상기해 봅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내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당신을 무척 난처하게 했습니다. … 평상시 당신은 내가 어떤 실수를 했을 때 나의 단점을 책망하거나 예리한 지적으로 상처를 주기보다는 관대하고 온화하게 대해주셨지요. 나는 당신의 그 선량함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자신을 되돌아보았답니다. 옹졸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당신의 입장은 전혀 개의치 않고, 당신과 누님과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혈육이라는 것도 까맣게 잊은 채 감정대로 행동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 나의 부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당신의 마음에 상처를 드린 점 용서 청하면서, 그런 나의 행동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포근하게 감싸주신 당신께 감사하는 마음과 사랑을 드립니다. 우리 생활의 한 부분이 뻥 뚫리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언제나처럼 누님 댁을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답니다. - 당신을 사랑하는 글라라

< 07. 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 박 스테파노 & 이 세실리아 부부

* 사랑하는 스테파노! … 언제나 자상한 남편이지만 가끔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그건 당신의 성격 중 무책임하고 소극적인 면 때문입니다. 더욱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서커스단에서나 볼 수 있는 피에로처럼 당신이 혼자 말하고 웃는 마이크맨이 되는 것입니다. … 대화란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인데 당신이 목청 높여 강의하는 것처럼 혼자만 이야기할 때면 옆에 있는 부인들은 ‘또 시작이구나’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다른 화제를 꺼냅니다. 아무리 신호를 해도 막무가내로 말 많은 남자로 변신하는 당신.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가락으로 두 귀를 막고 싶도록 부끄러웠습니다. … 내게 미운 느낌, 화난 느낌, 불안한 느낌이 엄습해오는 것은 내가 당신의 아내라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며 또하 나의 가치인정도 충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부의 사랑이 모닥불처럼 다시 타오를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당신께 나의 느낌을 전합니다. - 당신의 아내 세실리아

ㅇ 사랑하는 세실리아! … 철두철미하고 근면한 당신 덕분에 우리 집안은 늘 깨끗하고 싱싱한 분위기였소. 그러나 당신의 그 철저하고 정확한 성격 때문에 식구들이 당신의 용서를 받고 이해를 얻기란 참 힘겨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소. … 당신이 너그럽게 이해하지 못하고 나의 형제들이 제삿일에 소홀히 하고 도와주지 않는다고 섭섭함을 표현했을 때는 정말 불안한 느낌이었소. … 가난한 살림 때문에 부모님 살아 계실 때 고생시켜드렸던 일이 제삿날이면 생생하게 떠올라 제사상이라도 정성껏 차리고 기도함으로써 자식된 도리를 다하고 싶었기에 당신의 짜증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소.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당신의 성격을 이렇게 말하고 나니 나의 가슴은 후련한 느낌이오. 다시금 솟아나는 나의 뜨거운 사랑을 당신에게 보내오. - 당신의 남편 스테파노

< 08. 이 점만은 고쳐주었으면 > 민 요셉 & 강 율리안나 부부

ㅇ 사랑하는 율리안나! … 나 자신도 부족하고 고칠 점이 많으면서 당신에게 이 점만은 꼭 고쳐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려니 쑥스럽고 계면쩍은 느낌이 듭니다. … 당신이 익히 알고 있듯이 내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표현방법이 서툴고 습관적으로 화를 내기 때문에 당신을 실망시킬 때가 많은데, 내가 흥분하고 격해 있다고 판단됐을 때는 타고 있는 불에 기름 붓듯 맞받아치지 말고 그 순간 당신이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이야기해 준다면 나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더욱 미안한 마음을 가질 것 같습니다.
- 당신을 사랑하는 요셉

* 사랑하는 요셉! … 당신의 급한 성격, 직선적인 행동과 건성으로 듣는 습관적인 태도는 나를 끝없이 고독하게 합니다. 목소리가 크고 하고 싶은 말은 그 자리에서 다 하는 성격이기에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나를 믿고 하는 행동이라고 이해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새순을 잘라버리는 것과 같은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내가 기억해내는 것은 우리가 좀 더 깊고 긴밀한 관계 안에서 완전한 기쁨을 맛볼 수 있기 위함입니다. 더욱 완전한 사랑의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우리 함께 노력합시다.
- 당신을 사랑하는 율리안나

< 09. 당신에게 바라는 세 가지 > 임 베드로 & 정 카타리나 부부

ㅇ 사랑하는 카타리나! …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세 가지를 들라면 집안일 잘하기와 행동을 빨리하고 고집 덜 부리기가 우선이오. … 하나는 일을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정리정돈하면 좋겠다는 내 바람은 당신은 늘 한쪽 귀로 흘려듣는 것 같았소. 두 번째로 당신의 느린 행동이 무척이나 부정적 느낌을 불러일으킨다오. … 세 번째로 당신의 고집은 정몽주 고집이오. 목숨 걸고라도 옳은 일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이니 말이요. … 이렇게 당신이 나의 바람을 잘 알면서도 들어주려는 노력이나 자세를 보이지 않을 때 가장인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소속감이 결여된 것 같아 씁쓸함을 맛보곤 한다오. 이 겨울이 깊어가고 새해가 되면 우리도 한 살쯤 더 성숙해질까 기대해봅니다.
- 당신의 남편 베드로

* 사랑하는 베드로! … 좀 더 성숙한 생활로 발돋움하기 위해 당신에게 우선적으로 바라는 세 가지 중 첫째는 긍적적인 말대답입니다. 내가 하는 말에 반응을 확실하게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또 하나는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 세 번째는 무슨 일을 하려면 미리 의논하고 시작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 어쩌면 우리는 서툰 일 속에 파묻혀 살다 보니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더 많아지는지도 모릅니다. 바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완성될 때 무시당한 느낌, 외로운 느낌, 소속감이 불충분한 느낌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당신의 있는 그대로를 더 사랑합니다.
- 당신의 아내 카타리나

< 10. 내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 정 안드레아 & 홍 세실리아 부부

ㅇ 사랑하는 세실리아! … 당신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 것보다 내가 당신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이 더 많으니 이 미안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소. 오늘은 신혼초 부엌 없는 단칸방에서 서툰 솜씨로 차린 당신의 저녁상을 받으며 했던 “당신 없이는 세상을 살 수 없고, 당신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당신에게 이 편지를 띄어 보내오. 급변하는 현대 생활이 아무리 우리를 괴롭히더라도 세상을 열심히 살아갑시다. 지금 내 안에서는 평화로운 천국으로 가는 외나무다리를 당신과 조심스럽게 건너가고 있는 희망적이고 가슴 벅찬 느낌과 그 다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두렵고 걱정스러운 느낌이 교차하고 있다오.
- 당신의 남편 안드레아

* 사랑하는 안드레아! … 급하고 참을성 부족한 당신의 화난 모습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지만, 그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진 것 같은 모욕감과 무시당한 느낌은 생각할수록 외롭고 슬프게 다가와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둘만이 있는 시간이 되자 나는 당신에게서 위로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혼자서 잠만 자고 있었지요. 마음의 상처는 점점 더 커갔고 당신에게서 사랑받지 못한다는 슬픔에 내 자신이 시들어가는 풀잎마냥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 그래도 희망을 가져봅니다. 작년보다 금년에, 또 어제보다 오늘, 당신은 나의 이야기를 더 많이 받아들여준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좀 더 세월이 흐른 후면 서로가 말이 더 이상 필요 없을 만큼 가까워져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 당신의 아내 세실리아

< 11. 당신을 위해 내가 고쳐야 할 점 > 정 그레고리오 & 장 아숨타 부부

ㅇ 사랑하는 아숨타! … 얼마 전에도 당신의 피곤함을 생각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손님을 초대한다고 식사를 부탁한 일이 있었지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했는데 당신의 뜻밖의 거절로 말다툼까지 하게 되어 갑자기 내 체면이 휴지 조각처럼 구겨지는 참담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 당신과 대화중에 나의 일방적인 결정이 당신을 속상하게 하였고, 갑작스런 손님 접대가 부담스러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작은 일에 분노하고 당신의 의사에는 아랑곳없이 성급하게 행동했음을 사과드립니다. 자주 반복되는 이러한 일들로 인해서 가끔 다투게 되는 것은 나의 성급한 결정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더욱 친밀감을 느끼고 살아가기 위해서 모든 일을 당신과 함께 상의해서 결정하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 당신의 그레고리오.

* 사랑하는 그레고리오! … 학창시절, 당신과 함께 캠퍼스를 거닐며 서로 사랑을 나눌 때 저는 결혼하면 참으로 예쁘고 착한 아내가 되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제가 꿈꾸었던 것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생활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저는 자주 불평과 불만으로 짜증스럽게 행동했지요. … 예쁘고 착한 아내가 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이기심과 욕심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를 괴롭히고 또한 당신을 불편하게 했던 못난 나 자신을 생각하니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 곧 들어오리라 생각했던 당신은 저녁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고, 아무 연락도 없이 밤늦게 술이 얼큰해서 들어오는 등 … 그런 중에도 낙천적인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고 스스로 마음을 어둡게 하였음을 후회하였습니다.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인데 사랑과 인내로써 받아들이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제 당신에게 더욱더 사랑받는 아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당신의 아내 아숨타

< 12. 나를 칭찬해 주었을 때 > 김 바오로 & 최 오틸리아

* 사랑하는 바오로! … (가족의 신앙여건상 대세 권유가 어려웠던 상황) 이럴 때는 차라리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는 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권유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수없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아버님 돌아가시기 전에 꼭 대세라도 받게 해드리자. 아버님은 당신 말을 제일 잘 들으니까 서서히 아버님을 설득시켜보자”하셨지요. 저는 주님께 매달리면 반드시 도와주시리라는 확신으로 열심히 기도하면서 매일 찾아가 조심스럽게 설득하여 마침내 아버님은 대세를 받으시고 임종경이 끝남과 동시에 운명하셨습니다. 그때 당신은 여러 사람 앞에서 처음으로 “당신 너무 수고했소. 아버님이 대세를 받으신 건 기적이오. 아버님은 당신 같은 딸을 두어서 참 복이 많으신 분이오”하며 칭찬해 주었을 때, 당신에 대한 고마움이 가슴속에 밀려들며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역시 당신밖에 없구나 싶었고 어렵고 험난한 길에서 든든한 동반자를 만난 듯한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 당신의 오틸리아

ㅇ 사랑하는 오틸리아! … 오랜만에 만난 형제들 모임에서 당신은 “바오로는 지금까지 매일 저녁기도를 드리고 성서를 읽고 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예수님을 닮으려고 애쓰는 것 같아요. 바오로는 비록 내 남편이지만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에요”하며 나를 칭찬하는 말을 들었을 때 쑥스럽고 부끄러웠지만 기분은 좋았다오, 당신이 나를 존경한다는 말에 피곤은 말끔히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졌소. 당신이 부족한 나를 존경한다는 그 말이 ‘빈말이 아니고 진심이다’라는 생각이 들자 당신이 더욱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졌소. 그리고 이 세상에서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존경 해주는 당신이 언제나 내 곁에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무척 행복했었소. 힘과 용기도 생겼고 …
- 당신을 사랑하는 바오로

< 13. 당신에게 답답함을 느꼈을 때 > 남 마티아 & 김 세실리아 부부

ㅇ 여보! 부부란 서로 한 몸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기에 삶 속에서 크고 작은 기쁨과 괴로움, 답답함을 누구보다 자주 교환하며, 서로를 믿기에 ‘이렇게 해도 이해해주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무심코 한 행동들이 서로의 마음에 흠집을 남기게 되는 것 같소. 또한 상대방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독단적일 때 서로는 답답함을 느끼며, 이러한 일들이 계속될 때 갈등의 골은 깊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오. … 이따금 당신이 놓아둔 물건도 못 찾고 쩔쩔매는 것을 보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긴요한 전화라든가 공문들을 잊어버리고 전해주지 않을 때는 정말 화가 나도록 답답하오. 게다가 이런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지도 않고 오히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라느니 “당신하고 살면서 이렇게 되었으니 이게 다 당신 탓이다”라고 말대꾸할 때면 당신이 타인처럼 멀게만 느껴지고 마치 둥지를 잃은 새처럼 외롭고 쓸쓸할 뿐이었소. - 당신의 남편 마티아

* 사랑하는 마티아! 나는 원래 성격이 급하고 절도 있게 행동하려 하기 때문에 당신도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 얼마 전, 당신과 내가 아주 중요한 만남이 있었는데 약속시간은 다 되어 가고 급기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느 분과 같이 외출했다는 것 외엔 당신이 어디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나는 실망감과 허탈감에 젖어 맥 빠진 상태로 돌아서야 했습니다. 약속은 까마득히 잊은 채 전화 한 통 없이, 이토록 애타게 찾아 헤매는 나 또한 아랑곳없이 누군가와 편안히 즐기고 있을 당신이 야속하고 얄미웠으며 친한 친구로부터 따돌림당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무심코 행한 사소한 행동들이 서로에게 큰 고통이 될 수도 있고 뜻하지 않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당신의 아내 세실리아

< 14. 이럴 땐 섭섭해요 > 김 요한 & 송 프란치스카 부부

* 사랑하는 요한! … 당신을 이해하면서도 내가 아파 누웠을 때 회사일을 더 우선으로 하는 당신을 볼 때면 못내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땐 엄살이라도 부릴까 하여 당신 퇴근 시간에 맞춰 자리 깔고 누워 있노라면, 당신은 한술 더 떠 내 옆에 같이 누워 끙끙대며 아픈 척하셨지요. 참으로 얄밉고 야속했지만 아프다 하면 사 들고 오는 ‘복숭아 깡통’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올 것에 기대하지 말라고 귀에 못 박히게 얘기하는 당신이 때로는 믿음직하게 나의 큰 그늘이 되어 따가운 햇볕을 가려주는 정자나무와도 같은 느낌입니다. 각양각색의 과일 통조림이 만병통치약인 양 사 들고 와 어딘가 아픈 줄도 모르고 무조건 먹으라고 권할 때면 어처구니없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보다 나의 작은 미소를 원하는 당신에게 포근한 웃음을 보냅니다. - 당신의 사랑 프란치스카

ㅇ 사랑하는 프란치스카! … 당신이 가끔 짜증스런 표정으로 이웃집 누구네 남편은 아내가 아팠을 때 보약을 사서 달여주었다느니, 아침에 설거지까지 다 해주고 출근을 한다느니 하면서 부러운 듯 이웃의 생활을 우리와 비교하며 얘기를 할 때는 자존심이 상해서 무척 화도 나고 섭섭한 생각마저 들었소. 당신의 투정을 애교로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냈던 것이 이제 와선 후회스럽구려. … 어려움과 마음 상하는 일이 많겠지만 늘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행복한 가정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도와주고 피차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이해하도록 노력합시다.
- 당신을 사랑하는 요한

< 15. 아들의 성소를 생각하며 > 정 야고버 & 유 유스티나 부부

* 사랑하는 야고보! 저는 지금 백설로 뒤덮인 야트막한 산이 보이는 엠마우스 피정의 집 창가에서 이 글을 씁니다. … 올해 우리는 특별히 장남 라우렌시오에게 더 깊은 곳으로 그물을 던질 수 있는 용기 주시기를 구하면서, 반드시 만선의 기쁨을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출항해야 하겠습니다.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그분께 의탁하며 힘차게 정진하기로 해요. … 가장 큰 봉헌은 순명이라고 하신 신부님의 말씀처럼 라우렌시오의 삶의 방향이 어떻게 주어지든지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는 순명의 그릇을 예비하며 살기로 해요. … 그분은 꼭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거에요. - 당신을 사랑하는 유스티나

ㅇ 사랑하는 유스티나! … 지난 설날 라우렌시오가 선물로 전해준 편지를 읽는 당신의 눈가에 이슬처럼 눈물이 맺히던 모습이 떠오르오. 하지만 올 한 해 역시 당신은 잘 견뎌내리라 믿소. 아이들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지 않소? 그분의 구원사업에 기꺼이 봉헌합시다. 다만 우리는 늘 기도하면서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그분의 계획을 그르치지 않도록 뒷전에서 제자리를 지킵시다. 무슨 일에나 적극적인 당신이기에 나의 이런 말이 무책임하다거나 무성의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소만 이러한 자세가 바로 완전한 의탁이며 온전한 봉헌이 아니겠소? - 당신의 남편 야고버

< 16. 아이를 꾸짖을 때 > 권 미카엘 & 주 엘리사벳 부부

ㅇ 사랑하는 엘리사벳! 항상 나에게 보여주는 당신의 따뜻한 사랑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 옛말에 “자식은 품 안에 있을 때가 자식”이라 하지 않았소? 우리 아이들이 조금 더 커서 저희 나름대로 생각을 굳혀갈 때면 당신의 꾸중은 금방 한계점에 다다르게 되고 아이들과의 대화도 벽에 부닥칠 것이 뻔하리란 생각이 드는군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우리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무리한 요구라 생각합니다. … 이젠 우리의 마음을 좀 더 자유롭게 하고 아이들과의 관계도 더욱 가까워지도록 꾸지람을 조금씩 줄여가도록 노력해봅시다. 우리 서로가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아이들과의 사랑도 깊어져야 함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 당신을 사랑하는 미카엘

* 사랑하는 미카엘! 햇볕의 따사로움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 평소 아이들 공부에는 관심 없게만 보이던 당신이 어쩌다 아이들을 꾸짖는 모습이 왜 그렇게 밉살스럽던지. 화를 내며 아이들을 꾸짖는 당신의 모습이 마치 타인처럼 느껴졌고, 겁먹은 얼굴로 당신 앞에 앉아 있던 안드레아 역시 결코 내가 보고 싶어서 했던 아이들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 서로가 마음이 편치 않아 등을 돌리고 있었을 때, 그래도 당신이 먼저 감정을 정리한 후 내 등을 토닥거리며 “여보, 미안해!” 하고 차분하게 말을 걸어왔을 때는 먼 길에서 돌아와 따뜻한 안방에 누웠을 때처럼 포근했습니다. 서로가 신뢰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진정 아름다운 것이며 이것만큼 우리 부부와 가족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믿어 주고, 인정해 주고, 사랑하려는 의지가 서로에게서 느껴질 때 새로운 자각과 희망의 세계가 열린다는 것을 당신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 당신의 엘리사벳

< 17. 자식에게 대하는 나쁜 버릇 > 윤 타데오 & 안 막달레나 부부

ㅇ 사랑하는 막달레나! … 조용한 시간, 당신에게 조심스레 말했을 때 당신은 도리어 “당신 같은 성격 때문에 애들 버릇 다 버려 놓는다”라며 쏘아붙였지요. 그 순간 당신이 마치 낯선 사람처럼 느껴져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았었소. 갑자기 멍해진 내 안에 찾아든 적막감. 나는 마치 미풍에 너풀거리는 등불처럼 불안한 느낌마저 들었소. 이 모든 것이 ‘당신 탓’이라고 생각하니 당신이 밉고 원망스러웠소. … 앞뒤 생각 없이 내 방식대로 말했던 것이 당신을 화나게 한 것 같아 미안하오. 당신이 슬프면 우리도 슬프고, 당신이 기쁘면 우리 모두도 기뻐한다오. 이제 우리가 자신만을 생각하기보다 서로를 걱정하고, 비난하기보다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살아가도록 노력한다면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가정이 될 것이오. 나도 당신 마음에 들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소.
- 당신을 사랑하는 타데오

* 사랑하는 타데오! 내가 조금 더 잘 수 있도록 조용히 일어나는 당신의 자상함을 느끼며 하루를 기쁘게 시작합니다. … 인정 많고 순박하고 항상 잘 웃는 당신과 속좁은 내가 부부로서 사는 데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이제는 함께 함으로써 오는 편안함이,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었을 때와 같은 느낌이랍니다. 그러나 당신이 아이들을 너무 지나치게 격없이 대할 땐 불만스럽기도 합니다. … 인정 많은 사람이기에 아이들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것이 이해되긴 하지만, 언제나 야단치는 쪽은 나라서 엄하고 나쁜 엄마로 소외받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내가 아이들을 야단칠 때면, 큰소리 내는 걸 싫어하면서도 내 편에 서서 엄마의 입장을 말해주고 아이들과 나 사이의 서먹함을 없애려 애쓰는 당신을 볼 땐 안도감이 생깁니다. 1년 365일 한결같이 따뜻하게 집안을 지켜온 당신에게 나의 사랑을 전합니다. - 당신의 아내 막달레아

< 18. 아이들을 우선으로 했을 때 > 원 그레고리오 & 정 세실리아 부부

ㅇ 나의 세실리아! 갑자기 추어진 아침입니다. … 며칠 전 퇴근길이었지요. 속히 허한 게 뭔가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어져, 막 저녁을 지으려는 당신에게 “여보, 내가 지금 속히 허한데 우리 원조 돼지족발이나 먹으러 갑시다’라고 군침을 삼키면서 말했지요. 그런데 당신은 ”좀 참았다가 주일에 애들이랑 함께 갑시다“하며 일언지하에 나의 말을 묵살해버렸지요. … 나는 건강해 보이는지 내 건강보다는 아이들 건강에 더 신경을 쓰면서 보약을 해먹인다 어쩐다 서두를 땐 슬그머니 화가 나기도 합니다. 물론 좋은 일이고 고맙게 생각되긴 하지만 나보다 아이들을 우선하는 것 같아 왠지 서운하고 섭섭한 느낌이었습니다. … 당신이 계속해서 아이들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해도 나는 당신을 탓하기는커녕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리라는 것입니다.
- 영원한 당신의 그레고리오

* 사랑하는 그레고리오! … 함께 외출할 때면 당신은 ”밑반찬은 해 놓았느냐?“, ”아이들에게 할 일을 잘 일러두었느냐? “하며 내 일을 거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애들 것 잘 챙겨 주라고 말할 땐 정말 슬그머니 화가 난답니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을 잘 알고 있어요. 유난히 정이 많은 당신이기에 아이들만 두고 집을 비운다는 게 마음도 안 놓이고 미안해서라는 걸 말이에요. 이런 느낌을 갖는 나 자신이 행복한 투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사실, 허전하고 외로운 느낌은 잠시뿐, 내 마음 한구석은 흐뭇함으로 가득 차고 있으니까요. 아이들과 내게 언제나 따스한 사랑으로 채워주는 당신이 고맙고 무한한 행복을 느낍니다. - 당신을 사랑하는 세실리아

< 19. 중년을 살아가며 > 김 스테파노 & 김 마리아 부부

* 사랑하는 스테파노! 요즘 입버릇처럼 직장에 출근하기 싫다는 당신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몹시 불안해집니다. … 쉰다섯 살의 젊은 할아버지! 기운 내세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하여 교단에 섰던 것처럼 넉넉히 60세까지 일할 수 있는 당신임을 믿으니까요. 이제까지는 교회 일에도 내가 나섰지만, 앞으로는 당신이 봉사에 앞장선다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오늘의 이 편지가 당신께 작은 위로가 되고 우리 부부 남은 인생 여정에 작으나마 변화의 기회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 말씀대로 모든 일에 감사하고 또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합시다. - 당신의 아내 마리아

ㅇ 사랑하는 마리아! … 나는 요즘 들어 직장을 그만두고 식구들과 같이 지내고 싶은 욕심이 간절해졌소. 당신이 지어주는 밥 먹고, 조깅을 하고, 테니스도 치고, 또 저녁에는 식구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고, 가정기도도 같이 바치고 싶고 … 어제 당신 편지 읽고 곰곰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내 생각이 잘못되었던 것 같소. 다시 잘 견뎌보도록 노력하겠소. 건강이 허락하는 한 더욱 열심히 봉직하고 끝마무리 잘 하도록 당신도 도와주오. … 이제 우리도 노년을 서서히 준비합시다. 건강하고 깨끗하게 그리고 하느님 마음에 드는 자녀로서의 삶을 살도록 기도합시다. 특히 당신의 건강이 걱정되는구려. 봉사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우선이니, 우리 식구 모두의 행복이 당신 건강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요. 언젠가 나도 직장을 마무리 지으면 당신과의 약속대로 봉사자의 길을 선택하겠다고 다짐하오. - 당신의 남편 스테파노

< 20. 내 부모님께 잘해주었을 때 > 김 루가 & 김 율리안나

ㅇ 사랑하는 당신에게. 무척이나 무더운 날씨군요. 짜증 나기 쉬운 하루였지만, 출퇴근 길 당신의 미소는 시원한 바람처럼 한여름의 더위를 잊게 해주었습니다. … 늘 요구가 많고 푸념이 많으신 어머니라고 내가 갖은 핑계로 피하려고 하면 당신은 ”여보, 잘 생각해봐요. 당신은 어머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에요. 그래서 당신이 나에게 소중하듯이 어머님도 소중해요“ 하면서 꾸준히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했지요. … 고부간의 심한 갈등 때문에 무척이나 괴로웠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평화스러운 가정이 됐는지 신기할 정도로 우리 집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주님께 감사하고 당신에게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받아주고 인정해 주기에 느끼는 뿌듯한 만족감 속에서, 당신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이 너무나 좋고 아름답기만 합니다.
- 천사의 마음을 가진 당신을 사랑하는 루가

* 사랑하는 루가! 당신이 혼자 계시는 친정어머니를 찾아뵙거나 생신이나 기념일에 말없이 어머니 곁에서 시간을 보낼 때면 형언할 수 없는 큰 고마움을 느낀답니다. 당신처럼 말 없고 무심한 사람이 어떻게 어머니를 찾아뵐 생각을 다 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당신이 대견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 그럴 때마다 당신에게나 시댁 식구들에게 더욱 정성을 다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댁 식구들에게 전화 한 통이라도 더 하게 되며, 시어머님을 더욱더 따뜻하고 자상하게 보살펴드려야지 하고 다짐하게 됩니다. 어머님께 더욱더 세심한 배려와 사랑을 드리겠어요. 어머님을 사랑합니다. - 당신을 사랑하는 율리안나

< 21. 가을의 국화를 볼 때마다 > 김 펠릭스 & 양 베아타

ㅇ 사랑하는 베아타! 찬 서리 모진 바람 헤치고 피어난 가을의 국화를 볼 때마다 당신을 보는 듯 눈길 돌리기가 아쉬워집니다. … 제사나 명절 등 큰일이 있을 때 어머니께서 하시던 몫을 도맡아 처리하는 당신의 성숙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면서 칭찬해주고 싶었지만 무뚝뚝하고 표현력이 부족한 내가 안타까울 때도 많았답니다. … 요즘은 침묵을 미덕으로 여겼던 생각에서 벗어나 조금씩 칭찬이라도 할라치면 큰 활력을 얻은 듯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당신을 보며 ‘여자는 나이가 들어도 애기구나!’ 싶고 조금은 덜 계면쩍으니 나도 많이 변하고 있나 봅니다. 우리 이제 서로에게 후회 없는 며느리, 사위가 되어 봅시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칭찬이랍니다.
- 어느새 성숙해버린 여인의 남편으로부터

* 사랑하는 펠릭스! 어느덧 한 해가 지나고 새해를 맞이하니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풍요로움을 느낍니다. … 친정 식구들에게 내 입장이 떳떳해지고 부모님께서도 침이 마르도록 사위를 칭찬하시던 일을 생각하면 당신이 사랑을 듬뿍 받는 것 같아 뿌듯해집니다. 지금은 딸보다도 사위를 더 아끼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나도 시부모님께 더욱 잘해드려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 당신이 모범을 보인 그런 효도를 나도 살고 싶답니다. 점점 각박해지는 사회 속에서도 희생이 따르는 사랑을 실천해 가려 애쓰는 당신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또한, 우리 사랑의 열매가 무르익어서 양가의 부모님과 모든 이에게 또 다른 사랑의 밑거름이 되어드리길 바랍니다.
- 영원한 당신의 동반자인 베아타

< 22. 육신의 고통을 이겨나가며 > 고 세례자요한 & 박 율리안나 부부

ㅇ 사랑하는 율리안나! … 이번 8주간 성령쇄신봉사자 교육을 받으면서 당신에게 더욱 미안함을 금할 수 없었소. 좌골신경통으로 잘 걷지도 못하면서 성령봉사자로 진도, 해남 등지까지 다녀오곤 하던 당신을 난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핀잔만 주었지요. 당신이 성령봉사활동을 할 때 뒤에서 열심히 밀어주었더라면 지금쯤 건강한 몸으로 하느님의 충실한 도구로서 일하고 있을 텐데, 투병생활을 하고 있으니 내 마음이 더욱 아프오. 하루빨리 나아서 나와 함께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을 열심히 합시다. 주부는 가정의 태양이니 어서 완쾌하여 당신의 빛을 그늘진 곳 없이 골고루 비추어 주오. 당신의 말대로 이제 운전면허증을 따왔으니 어서 일어나서 나와 함께 성당 일 부지런이 합시다. 병든 이, 소외된 이, 가난한 이와 함께하는 삶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을 따라 완덕의 길을 끝까지 함께 걸어갑시다. - 당신의 남편 세례자요한

* 1978년. 성령봉사자로 소명을 받고 저는 어린 두 아이들을 당신께 맡긴 채 봉사활도을 다녔지요. … 친정의 어려운 일을 돕느라 생긴 빚 때문에 마음 괴로워하면서도 탁 털어놓지 못하는 나를 모른 척 덮어주시고 감싸주신 당신, 유방암 수술과 치료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나를 온갖 정성으로 보살펴 주신 당신, 한쪽 가슴이 없어 목욕탕에도 못 간다고 물을 데워 자상하게 등을 밀어주며 위로해주시던 당신은 정녕 하느님께서 저에게 보내주신 수호천사이십니다. … 그토록 바라던 성소의 길을 두 아들이 다 못 갔지만 자신들의 삶을 착실하게 살아가도록 성모님께 봉헌하고, 당신과 나는 하나 되어 주님께 힘을 주시라고 기도드리고 의탁하며, 매일 매순간 주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며 살아갑시다. - 당신의 아내 율리안나

< 23. 나를 위해 기도할 때 > 송 요한 & 신 스텔라 부부

* 꽃샘추위가 길더니, 이제 화창한 날씨에 노란 개나리가 환히 웃는 계절입니다. … 거실의 성모상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기도하는 당신을 보았을 때 나는 눈물이 핑 돌며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무릎 꿇고 고개 숙여 기도하는 당신의 경건한 모습에서 당신의 깊은 사랑을 느꼈기에 빨리 나아 당신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 약을 먹어도 열이 내리지 않아 신음하는 내 모습이 불쌍하여 기도하고 싶었고, 아이들에게 엄마의 빠른 쾌유를 위해 같이 기도하자고 청했던 당신. 당신이 나를 위해 온 정성을 바쳐 헌신한다고 생각하니 신혼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행복함을 느낍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일에 온 마음을 다하고 싶은 스텔라가 당신에게 뜨거운 사랑을 드립니다.
- 요한이 사랑하는 스텔라

ㅇ 사랑하는 스텔라! … 침실로 돌아왔을 때 고상 앞에서 기도하는 당신을 본 순간 직감적으로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혼자서 기도하는 당신 모습이 무척 쓸쓸해 보였습니다. 오늘 화분을 정리할 때 당신이 말해준 이런저런 주문도 공동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당신의 정성이었건만 화를 잘 내는 내 성질 때문에 당신의 고운 마음에 상처 준 것을 후회합니다. 사랑하는 스텔라! 나를 위해 기도하는 당신의 모습을 통해 내가 당신을 외롭게 하였음을 깨닫고 당신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문을 열게 해주었음에 감사합니다. - 당신의 요한

< 24. 나에게 거칠게 대했을 때 > 박 아우구스티노 & 손 레오니아 부부

* 사랑하는 아우구스티노! 얼마 전, 시계를 하나 사야겠다는 내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주일에 아이들과 함께 나가려고 딸아이를 통해 돈 얘기를 비췄지요. 짜증스레 거절하는 당신의 말에 흠칫 놀라 물러서 있는데, 나를 필요 없는 일이나 하고 다니는 여자로 몰아붙였습니다. 그때 나는 무안하고 난처해서 무슨 말로 답변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났고 모욕감과 당혹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 이튿날 식탁에서 큰딸애가 조심스레 그 얘기를 꺼내자, 당신은 웃으면서 월요일에 지불할 돈이 많아 고민하고 있었는데 돈 얘기가 나와 순간적으로 그런 거친 언사를 했으며 진심으로 미안해하였습니다. … 당신의 계면쩍은 표정을 보며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나의 부족함을 탓했습니다. 이 부족함이 당신을 더 화나게 했다는 생각에 당신께 정말 미안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족함은 오늘 나를 사랑하는 당신께로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 당신의 레오니아

ㅇ 사랑하는 레오니아! … 그날따라 전날 현금이 모자라 겨우겨우 어렵게 처리하고 난 뒤라서 지치고 허탈감에 빠져 있던 참이었소. 이제 내게 대한 당신의 애정은 손톱만큼도 남아 있지 않고 나를 돈벌어오는 기계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것 같아 분하기도 하고, 믿던 사람한테 배신당한 듯한 참담함 마음이 들기도 했소. … 당신에게 했던 심한 말들이 미안스럽구려. 조금만 더 내게 마음의 여유가 있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다오. 서로 나누지 못했던 마음들을 이렇게 쓰고 나니 당신이 더욱 사랑스러워짐을 느낀다오. - 당신의 아우구스티노

< 25. 알코올중독이라는 사슬을 끊고 > 신 프란치스코 & 민 프란치스카

* 사랑하는 프란치스코! 성모성월은 우리 부부에겐 더한층 깊은 의미가 있는 달이지요. … 당신이 알코올중독이란 병은 커다란 충격이었지만, 그러한 마음의 갈등을 없애주신 본당 신부님, 수녀님을 우린 잊을 수가 없을 거예요. 하느님은 교만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알코올중독이란 병을 통해 겸손을 알게 해주셨고, 치유와 함께 그 가족병에서 헤어날 수 있는 지혜도 주셨습니다. … 당신의 힘을 덜 수 있도록 공무원으로서 나의 직업에 긍지를 갖고 14년간 무사히 일해올 수 있게 해주셨음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내 직장생활에 외조해준 당신께도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하루하루 더욱 충실한 삶이 되길 기도드립니다. - 당신을 사랑하는 프란치스카

ㅇ 나의 프란치스카! 14년 전 오월, 결혼식 준비로 마음 설레던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초등,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악몽처럼 힘겹게 지나온 시간들을 우리는 하느님을 찾음으로써 헤쳐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 사업의 실패로 매일 술에 젖어 사는 나 자신을 생각하면 당신이 능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지요. 지난 일 년간을 알코올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퇴원 후엔 단주 모임에 열심히 나가면서 비로소 나 자신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 열심히 기도하고 성서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를 진정으로 간청하였더니 악마의 늪에서 건져주셨고 지금의 직장으로 인도해주셨으니 그분은 얼마나 오묘하십니까? … 우리를 위한 주님의 뜻을 알고자 열심히 기도하면 꼭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고, 아직도 부족한 우리의 신앙,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주어야 할 신앙을 위해 우리 열심히 기도합시다. - 당신의 프란치스코

< 26. 당신이 존경스럽게 보일 때 > 박 유스티노 & 허 유스티나 부부

ㅇ 사랑하는 유스티나! 며칠 헤어져 있는 동안 당신이 몹시 보고 싶었소. … 하는 일도 없이 힘들어하고 피곤 해 보이는 사람들과는 달리 혼자 몸으로 할 일이 많으면서도 언제나 밝고 생기 있는 모습으로 내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당신이 내게는 하느님이 주신 은총의 선물이라오. … 어려움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해야 할 일에 헌신적인 당신이 마음속으로 존경스러웠소. “누가 어진 아내를 얻을까?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다”라는 잠언 속의 현숙한 아내를 얻는 남편이란 바로 나를 두고 하는 얘기처럼 생각되었소. 당신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간직하고 부부로서의 소속감을 더욱 친밀히 느끼며 우리가 함께하는 결혼생활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싶소. …
- 당신을 사랑하는 유스티노

* 사랑하는 유스티노!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서 일만으로도 힘들었을 텐데 선물까지 준비해온 당신이 참으로 사랑스럽고 고마웠습니다. … 매사에 저를 우선으로 하고 제 생각을 더 존중해 주는 당신의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갈증을 느낄 때 시원하게 마신 물이 즉시 온몸에 스며들 듯 당신의 그 사랑이 제 마음에 스며들어 당신과 하나가 된 진한 일치감을 느낍니다. 또한, 당신의 그 사랑이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 제 자신의 감성, 심성, 관계 안에서의 자유로움까지 조금씩 다듬어지고 성장해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 저녁엔 당신이 좋아하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당신을 초대하겠습니다.
- 당신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유스티나

< 27. 첫 만남의 추억 > 김 00, 장 00

* 그때 내 나이 스물한 살. 숙맥 같은 나는 오로지 공부에 대한 목표 말고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그런 나에게 남자란 너무나 동떨어진 존재였다. 게다가 뇌종양으로 오랜 투병 생활을 해왔고, 합병증세로 인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말 하자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때였다. … 맨 처음 우연히 마주쳤을 때의 그는 자그마한 키에 앙상한 체구 하며 어디 하나 마음을 끌 만한 구석이 없었다. 그 사람이 나와 식구들의 거센 반대와 모욕과 수모에도 불구하고 세상 끝까지라도 따라올 듯 줄기차게 편지를 보내고 찾아오고 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막무가내로 반대하던 식구들을 설득시키고 나마저 그에게 관심을 갖게 한 것은 어쩌면 매일같이 전해지는 그의 편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 정확하게 나의 모습을 지적하고 있는 편지를 보며 당황하고 약이 오르면서도 ‘내가 그랬었나?’ 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나는 엉겁결에 거의 함락되다시피 하여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 나의 병고로 인해 사별을 전제로 한 생활이었던 만큼 정신적 갈등도 많았고, 철부지라 살림이라곤 전혀 할 줄 모르면서도 툭하면 친정행에다 국내외 여행으로 그를 어렵게 했다. … 처녀 시절에 놓친 나의 시간들을 보상받고도 넘칠 정도의 뜨거운 사랑을 그에게서 받아, 이제야 철이 들고 조금은 성숙해진 내가 되었다고나 할까. - 장 00

ㅇ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71년 늦여름, 그가 내 가계에 물건을 사러 왔을 때이다. 끈이 긴 가방과 치렁거리는 머리, 까무잡잡한 피부와 새까만 눈동자, 이지적인 스물한 살의 풋풋함에 반해 말을 건넸지만, 용무 외의 다른 말은 들은 척도 안 했다. 호의를 베풀며 다가가려 했지만, 냉소만 남기고 그는 가버렸다. … 궁리 끝에 뒤를 밟아 집을 알아낸 후 매일 편지 공세를 펴는 한편 주일이면 아예 집 앞에서 진을 치고 종일 기다리곤 했다. 그러나 내가 보냈던 숱한 편지들도 처음엔 식구들에게만 읽혀졌을 뿐 정작 본인은 받지도, 보지도 않았고 관심조차 없었단다. 그에게 쏟은 막대한 시간과 정성, 허기진 정열 등을 생각하면 화가 나기도 하고 밉기도 했지만, 다시 그가 보고 싶어지고 언제 미워했던가 싶게 그리움은 더해져 이젠 평일에도 그 집 앞에서 살다시피 했다. 양쪽 식구들과 동네 사람들로부터 정신 나간 놈이란 소리도 들었고 스스로 생각해도 바보 같았다. 어느 날, 내 몸에 이상이 생겨 편지를 쓰기도 만나러 갈 수도 없었다. 그러기를 두 달, 웬 여학생이 찾아왔다고 했다. 순간 그가 머리에 스치는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어 한걸음에 달려나갔다. 그는 내게 충격적인 말을 던졌다. 그날 외국에 갈 계획인데 마지막 인사하러 왔다는 것이다. 그의 곁엔 큰 가방이 두 개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가방 하나를 들고 내 방으로 뛰어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 그가 펄펄 뛰고 울부짖으며 발버둥 쳤지만 나는 이것이 마지막이란 각오로 버텼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혜화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지금은 한 아들과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살고 있다. - 김00

< 28. 새해 아침의 소망 >

ㅇ 사랑하는 글라라! … 이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새해 소망을 당신께 전합니다. 새해에는 결혼 전 연애 시절처럼 로맨스를 창조하며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진정 바랍니다. 당신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는 일, 아이들에겐 좀 더 부드러운 아버지, 외출시 재촉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느긋한 남편, 지금까지 자주 잊어버리고 챙기지 못했던 결혼기념일이나 당신의 생일을 잊지 않고 나의 사랑이 담긴 선물을 주는 일 등등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건강, 늦은 귀가, 회사 문제 등으로 당신이 걱정하지 않게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새로운 한 해 동안도 당신의 고운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기를 기대하고 바랍니다. - 당신을 사랑하는 타르치시오

* 사랑하는 타르치시오! … 새해에는 당신과 아이들에게 자상한 아내, 너그러운 엄마가 되기로 다짐합니다. 당신의 철저한 시간관념과는 달리 항상 늦는 나의 못된 습관도 고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가장 소중한 가정에 충실하고 교회와 이웃에 도움 주는 역할을 지혜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의탁합니다. 당신과 한 몸을 이루도록 짝지어주신 하느님의 소명대로 늘 대화 속에 사랑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새해 아침에 당신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나니 이른 아침 까치 소리를 들은 것처럼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에 마음이 설렙니다.
- 당신을 사랑하는 글라라

< 29. 당신이 얄미울 때 > 전 가브리엘 & 김 비비안나 부부

ㅇ 사랑하는 당신에게! … 당신과 함께 후회없이 살아온 지난 25년의 결혼생활, 당신은 나에게 늘 편안함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에는 당신이 정말 야속하고 얄미웠습니다. 나는 간밤에 온몸이 땀에 젖은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모두 깊이 잠든 시간이기에 그냥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정신은 더 또렷해지기만 했습니다. 그런 나 자신을 주체할 수 없어서 냉수도 마셔보고, 마루에 혼자 앉아 담배도 피워보았습니다. 예전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장시간 창 밖을 내다 보기도 하고, 심호흡도 해보고 … 그런데 등 돌리고 누워 꼼짝 않는 당신이 야속하고 얄미웠습니다. 내가 이렇게 잠 못 들고 아파하는데 느끼지도 못하는 당신에게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아침에는 당신에게 냉랭하고, 딱딱하고, 사무적으로 대해 영문도 모르는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 지금 이 편지를 쓰면서 내가 왜 그토록 사랑하는 당신에게 서운해하고, 얄미워하고, 화가 났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건 당신에게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기억합니다. 너그럽고 따뜻한 나의 말 한마디가 응어리진 아픔도 고독감도 한순간에 봄눈 녹듯 풀어준다던 당신의 말을. 내 사람, 당신을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합니다. - 당신을 사랑하는 가브리엘

* 사랑하는 당신! …가끔 친지나 아는 분들 집에 초대받아 식사하면서 당신이 그 집 음식 솜씨를 입이 닳도록 칭찬하고는 당신도 좀 배우라고 할 때마다 당신이 얼마나 야속하고 얄미웠는지 모릅니다. 그분들을 치켜세워 주느라고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꼭 나를 빗대어 말해야 하느냐고 당신께 대들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또 그 순간 당신의 진심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생각하니 배신감마저 느꼈습니다. … 이런 작은 일들로 당신이 얄미워질 때는 당신한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사랑받고 싶은 것처럼 당신도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신을 외롭게 해드린 때가 많았음을 용서해 주세요. 당신은 정말 성실하고 사랑 많은 나의 남편입니다. 당신의 따뜻한 사랑에 언제나 감사드리며. - 당신의 사랑 비비안나

< 30. 당신이 가깝게 느껴졌을 때 > 한 요한 & 이 데레사

ㅇ … 당신에게 집안의 잡다한 일은 모두 맡기고, 그중에 한 가지라도 도와줄 생각도 않고,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소. 또 한편으로는 손톱이 망가지고 떨어져 나가는 것도 아랑곳없이 집안의 모든 일에 손길을 주려고 노력해 온 당신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했으며, 그토록 가깝게 느낀 적이 없었소. 24년 전 한창 데이트할 때 당신의 손을 생각해보았소. 유난히 작고 예뻐서 잡기만 해도 가슴 뿌듯하고 세상의 행복을 내 손 안에 넣은 듯 기쁨을 주던 손 … 어느 틈에 나는 당신의 손에 대한 추억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무관심한 사람이 되어있으면서도 당신만을 사랑한다고 큰소리를 쳤으니, 하지만 이 편지를 통해 당신에게 꼭 말해주고 싶소. “당신 손은 예전에도 고왔지만, 지금은 더 아름답소”라고. - 당신의 요한

* 가을 하늘이 오늘 아침엔 유난히도 파랗고 투명하게 보입니다. 나의 요한! … 추위가 가시자 이번에는 온몸에 땀이 흐르면서 답답해져 이불을 걷어내려 하자 당신은 “금방 땀을 식히면 오히려 해롭다”며 다시 이불을 덮어주고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지요. “몸이 많이 피곤할 때 균형을 잃어서 오는 오한인데 그냥 두면 몸살이나 큰 병이 된다”며 바라보는 당신 시선이 정말로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일찍이 당신이 이토록 가까이 있음을 느껴본 적은 없었습니다. 창밖의 빗소리마저 우리 부부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 듯했고, 당신의 이 깊은 사랑 속에서, 혼인성사로 맺어주신 높으신 분의 깊은 뜻을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늘 가까이 있기에 당신에게 소홀했던 때도 많았지만 오늘 이 밤의 깊은 감동이 앞으로 우리 부부의 인생 여정에 새로운 활력을 주는 추억으로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 당신을 사랑하는 데레사

< 31. 아끼시던 반지 > 오 00 고부(시어머니 & 며느리 오 베로니카)

* 사랑하는 며느리에게. 가장 가까이에서, 사랑과 희생으로 집안을 돌보는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인 네게 새해를 맞아 이렇게 부족한 글이나마 쓸 수 있어 기쁘구나. … 그동안 우리 가정은 주님 보시기에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성가정을 이루도록 서로 노력하며 살자꾸나. 가족들 사이에 먼저 대화가 있어야만 오해의 씨가 싹트지 않고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사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옛부터 고부간의 갈등이란 없을 수 없다고 하지 않더냐. 나도 ‘나는 며느리 얻으면 사랑하면서 살아야지’했는데 그게 쉽지 않더구나. 그건 아마 서로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서로를 이해하고 터놓고 나누며 산다면, 한 핏줄은 아닐지라도 너와 나의 인연은 강한 끈으로 맺어지지 않겠느냐. … 그래도 우리는 주님을 믿기에 뉘우치는 회개의 은혜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드려야 한다고 배웠지. 순간순간의 잘못들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면 얼마나 슬프고 마음 아픈 일이겠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삶을 기쁘게 살자꾸나. 늘 밝은 얼굴로 우리 가정을 이끄는 네가 고맙고 든든하구나. 우리 가정을 작은 성전으로 생각하면서 하루에 한 번 온 가족이 손잡고 기도할 수 있도록, 며느리인 네가 이끌어 주었으면 한다.
- 시어머니가

* 어머님! 저는 어렸을 때 큰며느리가 되고 또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에 결혼하는 게 꿈이었는데 모두 실현되었어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를 두고, 남들은 시어머니가 아무리 잘해주셔도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라고들 이야기하지만 어머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며느리인 저를 친딸처럼 대해주셨지요. 결혼해서 몇 개월이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제가 부모님께서 해주신 패물을 몽땅 처분한 적이 있었지요. 물론 그것은 생활이 몹시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부모님 모르게 처분했지만, 어찌 그걸 모르셨겠어요. …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어머님께서 아끼시던 반지를 저의 결혼 패물로 주셨다지요. 어머님께서 소중히 아끼시던 그 반지를 내가 없애버렸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이제 제가 어머님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저의 따뜻한 마음과 정성으로 어머님을 외롭지 않게 해드리고, 어머님의 마음에 드는 며느리가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 매일 기도가 끊이지 않고, 묵주를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으시는 어머님, 저도 어머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열심히 기도하고, 우리 가정에 언제나 웃음꽃이 만발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며느리 베로니카

< 32. 타는 한 자루의 초가 되어 > 김 스테파노 & 구 요세피나

ㅇ 사랑하는 요세피나! 오늘도 나는 당신의 끊임없는 사랑 속에서 나의 삶을 일궈나가고 있습니다. … 나와 세 아이들까지 떼굴떼굴한 네 명의 남자들만 모여 사는 우리 집 살림을 해내야 하고 내 건강마저 신경 써야 하는 당신은, 마치 우리 넷을 위해 자기를 태우는 한 자루의 초와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어쩌다 귀한 음식을 애써 장만해 놓았는데, 불행히도 내가 저녁을 먹고 들어오면 그 음식을 냉장고에 잘 넣어두었다가 이튿날 내가 와야만 꺼내놓았습니다. 이때마다 아이들은 투덜대지만 나는 왠지 가슴이 뿌듯했고 뒤돌아 살며시 웃는 당신 얼굴을 쳐다볼 때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내 것 같았고 이 가정을 책임지고 바르게 이끌어 나가야겠다는 의무감과 희망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여태껏 우리 가정을 위해 자신을 비우며 살아온 당신에게 나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생활을 다시 한번 뉘우치는 마음으로 돌아보며, 이제부터는 오직 당신만을 위해 타는 초와 같이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 당신을 사랑하는 스테파노

* 나의 사랑하는 스테파노! 힘든 회사일 속에서도 저를 생각하며 기쁘게 보냈다는 당신의 말씀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한평생을 자상한 아버지같이, 어떤 때는 뜻이 맞는 친구같이, 때론 비바람 막아주는 바위같이 저와 함께해온 당신을 생각하면 가슴 뿌듯한 고마움뿐입니다. 떼를 쓰기도 하고, 답답하게 굴기도 하고, 칼날같이 싸늘하게 대했을 때도 변함없이 저를 사랑해 주며 웃어 넘겨준 당신의 그 인내에 감사드립니다. … 당신의 깊어진 주름살과 희끗희끗한 반백의 머리를 보며 한없는 사랑의 눈물을 흘립니다. 모두 당신과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큰소리치며 살아온 저의 지난날들이 어리석게 느껴지고 후회가 됩니다. 이제 우리의 삶이 이어지는 순간까지 행복을 가꾸며 살아가기로 다짐합니다. 고마움 가득 담아 이 글을 당신께 드립니다. - 당신의 아내 요세피나

# 115 독서 메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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