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의 독서 메모 ] 116권-122권
금주의 독서 메모 #116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 책 이름 : 신앙인의 사색 ]
- 지은이 : 이병호(주교)
- 펴낸데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출판일 : 1995.02.15 - 223p
- 내 용 : 1980년대 ‘경향잡지’에 매월 연재되었던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의 글인
‘신앙인의 사색’ 36편의 글 모음
- 지은이 프로필 : 1941년 전북 완주 출생, 1969년 사제 서품, 1971년 정읍 천주교회 주임신부, 1975년 광주 가톨릭 대학 교수, 1976~1982년 프랑스 파리 가톨릭대학교 유학/신학석사, 신학박사, 1983년 광주 가톨릭 대학 교수, 1990년 주교 서품, 1995년 전주교구장 (1995년 기준)
[ 표지의 글 ]
- 사람들이 보통 운명이라는 이름의 보따리 속에 넣어 처리하는 것들에 대한 신앙인의 온당한 태도는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보따리를 풀고 거기 들어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정면으로 대하면서 신앙으로써 그 의미를 새롭게 찾아내는 일이다. 불행으로, 수치로, 심지어 죄악으로만 생각하던 일들 하나하나에서까지 하느님의 손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 책머리에 ]
- 믿는 일과 생각하는 일, 이 둘은 어느 정도까지 서로 반대 방향을 달린다. 그러나 한 단계 더 가서 보면 서로 만나게 되어있는 것이다. 어떤 신학자는 신앙의 눈이라는 표현을 썼다.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는 말이 있지만 참된 사랑은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믿음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고유한 눈을 뜨게 하여 특유한 방향감각을 가동시켜 생각하고 따지는 일을 밀어준다. 신앙은 신학을 요구한다. 신학이란 믿든 이가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들어서는 길목이다. 그런 뜻에서 모든 신앙인은 나름대로 신학도여야 한다. … 다달이 연재(경향잡지)해 가는 동안, 어설프고 서툰 표현에도 한 수 앞을 짚어가며 구두로, 편지로, 전화로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주셨던 독자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10년이 다 된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관심을 두시는 분들과 그분들의 요구에 따라 다시 책을 펴내느라 애쓰신 분들께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 1995.2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
[ 차례 ]
1. 세상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 – 12편
2. 운명이 아니라는 얘기 – 12편
3. 뭘 모르는 사람들 – 12편
[ 1. 세상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 ] -p9
< 01. 하느님은 오직 한 분 >
- “나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습니다.” 주일 미사에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사용하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의 이 첫마디는 수천 년 전부터 유다 백성들이 사용해 오던 신앙고백 양식을 신약의 교회에서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 6, 4)
- 인간에게 가장 큰 힘을 행사해 온 세력은 크게 식욕, 성욕 그리고 권세욕이다. 물론 이들은 개인과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가치를 지닌 면도 있지만, 그것이 본래의 궤도를 벗어날 때는 인간성을 근본적으로 망쳐놓는 무서운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실제로 아주 쉽게 물신숭배(物神崇拜), 성(性)의 절대화, 권력숭배라는 우상숭배로 변하곤 한다. 오늘의 우리가 ‘참된 신은 하느님뿐’임을 고백하는 것은 주로 이 세 가지 유형의 우상숭배에 대한 선전포고를 뜻한다.
-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인정하는 일은 그것이 어떤 정치적 의도도 숨겨가지고 있지 않다는 바로 그 이유로, 정치적으로도 뜻깊은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된다. 하느님만이 유일한 신이심을 고백함으로써, 우선 ‘하느님께서 보장해 주시는 개개인의 절대적 존엄성이 살아나고’ 다음으로는 정치나 종교 등 여러 분야에서의 모든 인간적 구조가 절대화하려는 경향에 제동을 걸어 이를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물질이 얼마나 쉽게 그 자체로서 절대시 되는지도 잘 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한때 하느님을 잊게 한 것도 바로 황금 송아지였다. 돈, 그것만 있으면 세계 어느 지역에서 더욱더 거들먹거리며 살 수 있다는 우리 사회에서 그것은 글자 그대로 ‘전능’이다. 무엇이나 다 얻을 수 있다. 하느님만 빼놓고.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으므로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 02. 전능하신 아버지이신 하느님 >
- 믿는다 함은,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고, 우리 이해의 범위를 뛰어넘는 사태 앞에서도, 하느님으로부터 어버이다운 보살피심이 중지되지 않음을 확신하는 일이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다.”(이사 55, 8)라고 말씀하시는 분께 전적인 신뢰를 두고, 그분께서야 말로 우리에게 참으로 유익하고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 자신보다도 더 잘 아시는 분임을 끝까지 인정하는 일이다.
-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어떤 부모보다도 더 참된 의미에서 ‘아버지’이시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기에 본래 의미의 아버지는 하느님 한 분뿐이시다.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마태 23,9)
- 신앙인은 이런 하느님을 닮아가는 사람이다. 하느님을 닮는다 함은, 그분의 방식대로 어버이가 되는 일이다. 패악한 인간에게도 어머니가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그를 보는 사람의 눈이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 어머니와 아버지의 눈길로 모든 사람을 볼 수가 있다면, 세상은 당장에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만사를 끝까지 참고 견디며,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만 보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견지할 것이다. … 아버지께서 보내신 아들이 세상에서 하신 일은, 사랑의 결핍증으로 굳어진 껍질 속에 갇혀 있던 어린이의 생명력과 생장력을 회복시켜 주는 일이었다.
- 우리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른다 함은, 우리로서도 그분의 그 일에 참여함을 의미한다. 그분을 만남으로 해서, 사람들의 막혔던 귀가 열리고, 굳었던 혀가 풀리며, 뻣뻣하던 사지가 유연해졌던 것처럼, 그 비슷한 일들이 오늘의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 우리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을 닮는다. 아직도 벌겋게 살아있는 자존심을 누르고, 먼저 한 발을 움직일 때, 우리는 그 나라에 들어간다.
-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의 이기적 성향보다 강하고, 그분의 전능은 우리로서 할 수 없는 일을 쉽게 이루어주실 수 있음을, 우리는 신앙으로 믿는다. … 우리 자신이나 주변 세상이 너무나 철저히 죄악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어도, 우리는 자신과 세상에 절망하지 않는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 03. 세상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 >
-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자 자기 앞가리기에도 서툰 태도로 살아갈 때에도, 마치 부대원들이 잠자고 있는 동안 적의 침투를 막기 위해 깨어 있는 초병처럼, 혹은 벼락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해 주는 피뢰침처럼, 항상 깨어서 세상을 붙들어주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기 때문에 세상은 파멸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슬라브족 사이에 속담 형식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잘 알려진 구소련 작가 솔제니친은 ‘마트리오나의 집’이라는 작품 속에서 그런 믿음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편으로부터 소박을 맞고 외로이 살아가는 마트리오나의 여인이 있었다. … 모든 이들에게 웃음거리였으면서도 남을 돕는 일이라면 항상 발벗고 나섰다. 우리는 그녀의 곁에 있으면서도 그녀야말로 속담이 말하는 바로 그 사람임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 사람이 아니면 한 마을이 서있을 수가 없다네. 한 마을뿐 아니라 한 도시도, 한 도시뿐 아니라 온세상도, 그 사람이 아니면 지탱할 수가 없다네”
-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 /산상설교, 참행복 ” (마태 5, 1-12). 세상의 상식적인 가치관에 비해 철저히 대조가 된 이 주장이 더구나 행복의 길(참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교회 안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 사람들의 상식적인 가치관과, 복음이 제시하는 가치관은 본래 이정도로 날카롭게 대조되는 것이었다. 이 두 가치관의 거리가 흐려지고 신앙을 각자 자기 좋은 쪽으로만 해석하여 받아들임으로 해서, 은총이 갖는 비싼 면(죄를 저주함)을 삭제하려는 경향이 현대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임을 신학자 ‘본 회퍼’는 간파하였다.
-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이른바 ‘애국애족’이나 ‘이웃에 대한 사랑’ ‘불행한 자에 대한 자선’ 행위를 내세우면서, 뒤로는 사리사욕과 비리의 쳇바퀴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이는 사람들의 상식적인 가치와 복음에서 제시하는 가치 사이의 거리가 어느결에 지워지고, 일부 종교인들이 약삭빠르고 처세술에 능할 뿐 아니라 원색적인 충동과 욕망의 표출에 있어서까지 세상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과 똑같은 가치 기준을 갖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는 습성에 기울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눈에 띄는 성과와 누구에게나 뚜렷이 드러날 일을 해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면 우리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 버려진 노인들이나, 보호자 없이 홀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모아서 가능한 대로 간호하고, 가망성이 없는 경우 임종을 도운 다음, 장례를 치러주는 일을 주로 하는 국제 선교단체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다. 그런데 장례를 치러야 할 때마다 신자, 비신자를 막론하고 주변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기꺼이 도와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시는 행복의 길이 지니는 참뜻을 겪어서 아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수없이 많다. 산상수훈이 아직도 복음이고, 십자가가 여전히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것은 주로 그런 사람들 때문이다.
< 04.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
- ‘그날 이후’는 핵전쟁의 가공할 실상에 대해 일반대중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이다. 그 영화가 끝난 후 각 분야의 전문가들 중심으로 토론회가 있었는데, 그 영화는 핵전쟁의 실상을 보여주기에는 너무나 미흡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핵겨울 현상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핵전쟁이 참으로 일어난다면 그에 따르는 참상은 거기 나타난 것보다도 훨씬 더 비참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가장 궁금한 점은 그런 일이 영화 속에서만 있는 일인가 아니면 언젠가 우리 우리 앞에 실제로 닥칠 수도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어느 전문가도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는 사람은 없었다.
- 1984년 12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반포된 ‘화해와 참회’는 여러 면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먼저 그 문헌의 서두에는, 오늘날 우리 교회 자체 안에서 간헐적으로 분열의 움직임을 느끼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과거 수백 년 동안 교회를 괴롭혀 온 그리스도교 교파간의 분열과 함께 그것을 언급함으써 그 심각성의 정도가 어떤 것인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인류의 역사나 교회사에 있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전에 없이 심각한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고, 이에 대해 손을 쓰지 않으면 엄청난 결과가 따르리라는 판단이 이번 문헌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교회는 최근 들어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여러 기회에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사람들의 주위를 환기시켜 왔다. 즉 분열과 반목의 자세를 해제하고 화해의 장으로 돌아올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한 것이다.
- 대인관계나 국제관계에서 일어나는 불화와 분열을 포함한 모든 악의 궁극적 원인은 사람 하나하나의 마음속 깊이 숨어있는 죄에 있다는 것이다. 소위 사회악은 이 근원적 악이 죄에서 파생하는 결과이지, 결코 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죄는 피조물인 인간이 자기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단절시키거나 삶에서 그 분을 제외시킴으로써, 그분으로부터 멀어지고 갈라져나가는 일을 무엇보다 먼저 의미한다. 따라서 죄의 용서를 받고 하느님과의 화해를 이루는 일이 다른 모든 화해의 첫거름이며, 이 단계를 무시한 채 사람들끼리의 관계만을 조정하고 타협해서 화해를 성취시켜 보려는 일체의 인간적 시도는 결코 참된 일치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악으로 드러난 개인의 죄를 진지하게 반성하고 용서를 받으며 회개해야 한다.
- “금세기의 대표적인 죄는 죄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데에 있다.”는 교황 비오 12세의 표현은 현대인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낸다. 고발해야 할 악은 너무나 크고 뚜렷한데, 그것을 책임져야 할 죄인은 어디에도 없는 셈이 된다. 개개 인간에게 자기 몫의 책임의식과 죄에 대한 감각을 소생시켜 주는 일이야말로, 복잡하게 얽힌 사회악의 매듭을 풀어가는 일이며, 무엇보다도 사라져가는 인간성을 다시 살려내는 일이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하며 자기의 가슴을 칠 때, 사람은 본래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목에 첫발을 들여놓는 셈이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세계평화니, 사랑의 문명이니 하는 거창한 일이 시작된다.
< 05. 싱거운 이야기가 싱겁지 않을 때 >
- 오늘의 삶을 특정 짓는 소위 ‘소비문화’라는 표현은 각종 플라스틱 제품 등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에만 해당되지 않고, 마음의 양식을 실어 나르는 그릇인 ‘말’에 대해서도 같이 해당된다. 그래서 옛날에 몇 십 년 또는 대를 물려가며 한쪽이 다 달아서 못쓰게 될 때까지 사랑을 받던 바가지와는 달리, 콜라 한 잔을 실어 나른 다음 곧바로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야 하는 종이컵처럼, 지금까지 인류역사 안에서 애지중지 갈고 닦아온 말과 개념들이 소비문화의 흐름에 떠밀려 별수 없이 쓰레기 같은 취급을 받기 일쑤다.
- ‘버림받은 이들의 어머니’로 알려진 마더 데레사의 말솜씨는 유별난 것도 아니고, 또 그 말의 내용이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분의 말의 내용을 요약하면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형제들입니다.” “빵없는 굶주림보다 사랑의 굶주림을, 옷없는 헐벗음보다 인간의 존엄성이 벗겨진 헐벗음을 기억합시다.”하는 정도다. 너무나 흔히 들어온 말들이며, 새로울 게 없는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런 말을 마치 처음 대하는 것처럼 깊은 감동을 느끼며 듣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분이 지금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그 말을, 마치 빵굽는 사람이 밀가루에 효소를 넣고 반죽하듯이, 자기의 삶에 다져놓고 반죽하는 듯한 일을 칠순이 넘은 지금까지 계속해 왔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 노파의 말과 표정 일체는 ‘증거’로서의 힘이 있었던 것이다.
- 증거란, 내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그걸 몸소 보았거나 겪은 사람이 내게 그 보고 느낀 바를 전달해 줄 때, 그는 내게 증거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 일체의 종교적 발언은 ‘증거’로서의 성격을 띠지 않을 때 별의미없는 것으로 남게 된다. 반대로 ‘증거력’이 있을 때, 그것은 세상의 어떤 구체적 대상을 가진 언어보다도 더 확실하고 더욱 절실한 말이 된다. 그때 비로소 싱거운 말들이 싱겁지 않게 된다.
< 06. 먹기와 믿기 >
- 사람은 동물과는 겉으로 비슷한 행동을 할 때에도 실상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먹는 일만 해도 그렇다. 동물은 단순히 육체의 활동에 필요한 열량을 보충하기 위해서 먹는다. 사람의 먹는 일은 그런 일에 더해 중대한 하나의 의미가 더 붙는다. 사람은 여럿이 함께 먹게 되어 있고, 식탁에 둘러 앉아 있는 사람들은 음식뿐 아니라 거기 참석한 모든 이들과 정신적인 교류, 사랑의 흐름도 같이 먹게 되어 있다. 동물과는 달리 사람은 마음의 교류가 차단된 채 식사를 하면 체하게 되어 있다. 입으로 음식이 들어갈 동안 귀로는 정신의 음식인 따뜻한 말이 들어가야만 식사는 인간적인 모습을 띤다. 식사의 모습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광경이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들이 다시 이어져 화해와 평화가 회복되는 것이다. 지금도 한때 마음이 상한 사람들이 다시 화해할 때에는 한잔하거나 식사를 같이하는 것이 보통이다. 성서에 의하면 평화와 화해야말로 구원을 나타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표현에 속한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도 식사가 수행하는 역할은 크다.
-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는 구원의 역사 전체가 어떤 의미로는 식사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고 식사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진행되다가 결국 그 이야기로 끝마쳐진다고 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 성서에 나오는 식사에 관한 내용들 예시 … 창세기 18, 6-8(빵을 굽고...), 요한 6, 41(하늘에서 내려온 빵), 요한 2, 1-11(카나의 혼인잔치), 루카 15, 2(죄인들과 식사), 루카 7, 34(먹고 마시자), 루카 22, 19(성찬례를 제정), 1코린 11, 26(이 빵을 먹고...), 루카 24, 30(빵을 떼는...), 묵시 3, 20(함께 먹고...)
- 식사는 그 강한 상징성과 함께 구원의 역사 전체에 걸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것이 성체성사 안에 수렴되어 신앙생활의 원천적인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그 의미를 간명하게 표현한다.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1코린 10,17)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일, 그것이 일상생활 속에서나 신앙생활 안에서 식사가 이루어주는 놀라운 효과이다. 예수님의 삶에서 식사가 그토록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도, 그분의 궁극적 관심사가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데에 있기 때문이었다.
- 예루살렘 초대신자 공동체생활에서 우리가 그것이 가능함을 확인한다.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소유로 내어 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한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같이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사도 2, 43-46) …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성서구절이 이 대목이었고, 그 공의회는 이 공동체의 모습이 수도자들, 선교사들, 사제들의 이상일 뿐 아니라, 하느님백성 전체의 이상이라고 선언하였다. … ‘한솥밥을 먹는 식구들’ - 우리 사회에서 가족들 간의 유대를 강조하기 위해 쓰이는 이 뜻 깊은 표현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이루는 모든 모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 07. 그저 그런 삶 속에서 >
- 오늘날 사람들에게 신앙생활의 모범으로 제시되기 위한 조건의 하나는 그 사람이 전통적인 의미의 영웅적인 인간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가능한 한 보통사람들과 닮은 점이 많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가 참된 삶의 한 면이나마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모범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뜻에서 현대인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모범적인 신앙인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1964년에 60세의 나이로 죽은 프랑스인 마들렌 드브렐이다. 그녀는 학창시절에 예술과 시 그리고 철학을 좋아하였다. 그런데 그녀의 주변 환경은 종교생활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쳐 일찍 신앙을 잃었다. 당시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신은 죽었다. 죽음이여 만세.”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내심에 큰 변화가 일어났고 억누를 수 없는 회개를 체험했다. 불신의 시련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그는 죽을 때까지 지속된 신념과 확신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 마를렌은 하느님께 완전히 사로잡힌 신앙인으로서 자신을 남김없이 그분에게 봉헌하고 싶었고 또 그렇게 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가르멜 수녀원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세속을 떠나서가 아니라 대중 속에 그대로 남아있으면서 그때그때 변화하는 상황 안에서 참된 영성적 가치가 있는 삶을 추구해 나가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 마를렌은 현대의 용기 있는 신앙인들로 하여금 은수자들이 사막에서, 관상수도자들이 수도원 담안에서 추구하는 바로 그것을 도시 한복판에서도 찾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거리의 인간들인 우리 역시 하느님께서 우리로부터 사랑을 받고자 하시는 만큼 그분을 사랑해 드릴 수 있음을 확신한다. 순간순간 우리에게 들려오는 부르심에 순종하는 행위 하나하나는 하느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며, 넓은 마음으로 그분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될 때, 삶은 그대로 축제가 된다.” … 도시 한복판, 북적대는 거리, 평범한 일상사에서 깊이 묻혀 살면서도, 은수자 못지않게 하느님을 가까이하며 살 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다시 한 번 깨우쳐 준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그것을 삶으로 증명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해 보여주고 있는 분들은 오늘 우리 주변에도 많이 있다.
< 08. 우리는 모두 나그네 >
- 구름(雲)과 물(水)처럼 아무데나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런 도인을 사람들은 운수(雲水)라 불렀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간에 일체의 재화는 부득이한 필요를 위해서 주어진 것인데도, 사람이 묘하게 그것들에 잡혀 더 귀중한 자유를 잃게 되는 일이 많다. 그래서, 나그네의 처지, 그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마음의 고향이 되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만사를 툭 떨쳐버리고 훌쩍 길을 떠나는 자신을 그렇게 자주 상상한다. 우리의 싸움, 우리의 욕망, 우리의 추한 모습은 어디엔가 매여 떠나지 못함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원래 채집과 수렵생활에서 유목생활이라고 하는 긴 세월을 거치면서 여기저기 흘러 다니며 살았다. 그런데 유랑생활에서 농경문화의 정착생활로 건너오면서 인간 세상에는 죄악이 만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랑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사람이 그 소유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밖에 없다. 꼭 필요한 것 외에는 모두 짐이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은 사막을 여행하는 동안 그날그날 하느님께서 주시는 만나로 만족하기를 배웠다. 일용할 양식으로 사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농경생활과 함께 한 곳에 정착하게 되고 자기의 소유를 끌고 다닐 필요가 없이 저장할 수 있는 창고를 짓기 시작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사람이 ‘필요한 만큼’이 아니라 ‘갖고 싶은 만큼’ 모아서 쌓기 시작한 것이다. 먹고 입는 등의 구체적 필요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지만 욕망은 한계를 모른다. 인간세상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여기서 비롯된다. … 가브리엘 마르셀에 의하면 묘하게도, 사람이 나그네로서의 자기 처지를 분명히 의식하고 있을 때에만 현세에서의 안정된 삶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달리는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이 가장 위험하고 불안정할 때는 말을 타고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자기 집 안방에 앉아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자세를 그렇게 잡을 때이다. 말을 탄 사람은 말의 움직임에 맞추어 몸의 균형을 잡아야만 안정된 자세를 취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인으로서는 가끔 자기가 여행 중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지금 우리 사회도 농업이 주종을 이루던 시대에 비하면 사람들이 직장 따라 이동하는 일이 급격히 증가된 것은 사실이다. ‘나그네’로서의 처지를 한층 더 뚜렷이 의식하는 일이 신앙인의 자유를 위해서 중요한 것만은 틀림없다 하겠다. 우리는 모두 “낯선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는” (1베드 2,11)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09. 물구나무서기 >
- 당시 예수께 대해 악의를 품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도 그분의 말씀이 얼마나 상식에서 벗어나고 따라서 받아들이기가 거북했을 것인지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 지금 굶주린 사람, 지금 우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고, 부요한 사람,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을 불행하다고 선언하시는 말씀(마태 5, 3-12 참조)을 필두로 하여, 그분의 가르침은 세상의 판단기준으로 생각할 때 온통 뒤죽박죽이다. 눈을 떳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봉사(시각 장애인)의 위치가 바뀌고, 부자와 거지의 처지가 전도되며, 첫째와 말째가 뒤바뀐다. 그분이 선포하시는 나라에서는 높은 자리에서 세도를 부리던 사람이 밑으로 내려지고 밑에서 비천하게 살던 사람이 들어높힘을 받는다. (루카 1,46-55참조) 이런 식의 말씀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그분의 눈에는 인간세상이 온통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위로 올라가서 아래에 있는 세상을 내려다본다고 상상해보자. 세상은 과연 거꾸로 보인다. 가장 높은 산은 가장 가까이 보이고 가장 깊은 계곡은 가장 멀리 보인다. 거기서 볼 때에는 산이 계곡이고 계곡이 산이다. 사람들도 거꾸로 서서 걸어가고 있다. 이 모든 요술 같은 변화는 그것을 보는 사람이 장소를 옮겨 잡았다는 한 가지 사실에서 온다.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그렇게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과 그 표현인 말이 결국 어디에 서서 본 것인가에 따라 그렇게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이다.
- 예수께서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위에서’오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의 언행은 사람들에게 적어도 ‘이상한 것’으로 나타나고 심하면 ‘미친 사람의 말’로 들린다. … 예수께서는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내용의 말씀을 하실 때마다 늘 덧붙이신 말씀이 있었다. “ 알아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그리스도교 신앙은 말밥통(말구유)에서 태어나 십자가에서 가장 치욕적인 모습으로 돌아가신 분, 그 삶의 시작과 종말뿐 아니라 전 과정에도 “머리 둘 곳조차 없이” 사신 분을 싸고돈다. 이 사실은 모든 세상의 가치들을 신앙 안에서 전도시키는 원천이다. 신앙인이 그리스도인으로 머물고 교회가 그리스도교로 남아 있으려면, 상식인과 세상이 떠받드는 가치들에 대한 태도에 근본적인 차이가 살아있어야 한다.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 오늘 우리가 당면하는 가장 큰 유혹은 세상 사람들의 ‘상식적인 가치와 삶의 방식’으로 밀려가려는 경향이다.
< 10. 멈추어 서서 >
- 옛부터 삶을 흔히 경기장에서 달리기시합을 하는 일에 비유해 왔지만, 요즈음처럼 이런 식의 비유가 절실하게 들리는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오늘날 생활에서는 ‘뛴다’는 일이 비유적인 의미로만이 아니라 본래의 뜻 그대로 습성처럼 되어버렸다. … 하나의 목표가 달성되면 또 다른 목표가 세워지기 때문에 미래를 향해 뛰는 발걸음은 끝까지 늦추어질 겨를이 없고, 그러는 동안에 인생은 황혼기에 접어들어 마치 삶은 먼발치에서 구경만 하다가 끝나가는 듯한 공허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는 허무하게 흘러 보낸 과거와 그 안에서 발견되는 자책의 요인들을 기억해 내고 괴로워한다.
- 동물과는 달리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아 현재의 삶을 보다 충실하게 엮어갈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인간은, 오히려 그 능력 때문에 과거나 미래중 하나에 집착하여 가장 소중하고 확실한 현재를 착실하게 짚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일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역사상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은 과거와 미래라는 양극단의 신기루에 속지 않고 현재를 단단히 움켜잡을 것을 강조해 왔다. … 과거에 집착하려는 경향에 대한 예수의 다음 말씀보다 더 인상적이고 충격적인 표현은 없다.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라”(루카 9,60). 미래에 대한 그분의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마태 6,34).
< 11. 하느님, 내 구원의 하느님 >
- 성서가 신앙의 영웅으로 제시하는 인물들에 관해서 읽을 때마다 우리는 꺼림직한 면을 발견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아브라함은 정착해 살고 있는 그곳 왕에게 자기 아내를 자기 누이의 동생이라고 속이다가 빼앗기고 말았다. 모세는 이집트인을 쳐 죽여 모래 속에 묻어버렸다. 다윗은 남의 아내를 탐내어 어떤 간계를 써 그 남편을 죽이게 하고, 그 여자를 탈취했다. 베드로는 가장 결정적인 시기에 이르러서도 스승을 세 번씩이나 배반했다. …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로서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을 주는 것은 “나는 실패작이다.”라는 느낌이다. 그것이 쌓이면 ‘죽음에 이르는 병’인 절망으로 변한다. 구원이란 죽음을 향해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사람의 발걸음을 생명 쪽으로 향하게 하는 일이다.
- 성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망 없는 처지에서 헤매고 있던 사람들이 위로부터의 손에 의해 전여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짜여 있다. 우리는 특히 신앙의 영웅들로 추앙되는 예시한 몇몇 인물들을 보았듯이, 그 모두가 예외 없이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은총이 아니었다면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을 인물들이었음을 우리는 확인했다. 신앙의 영웅들에 관해서까지 그 인간적 약점들이 조금도 에누리 없이 소개되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권능이 얼마나 깊숙이 인간의 약점과 죄악을 쳐 이기고 구원을 실현시켰는지를 소리 높이 외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약점이 오히려 자랑이 되고, “죄악이 만연한 곳에 은총을 한층 더 풍성하다.”(로마 5, 20)고 외칠 수 있는 나라, 그곳이 신앙의 나라이다. 같은 논리로 자신에 대한 절망이 철저한 곳에 하느님께만 의존함으로써 얻는 희망이 한층 더 순수하고 확실해지는 나라, 그것이 믿음의 나라이다. 우리 모두는 어차피 “구원자이신 하느님”(시편 51,14)께 의지하고서만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 12.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
- 표면의 세계에 밀려 같이 떠오르고 가라앉는 식의 삶에서 맴돌다가도, 우리는 가끔 표면을 뚫고 그 너머에 있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축복된 시간을 누린다. 하루의 삶을 조용히 되돌아볼 때, 한 해의 삶을 정리할 때, 그리고 한 삶을 다 살고 난 다음 세상을 하직할 때가 가장 참된 의미에서 그런 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2월은 일 년 중에서도 그런 성격이 짙은 기간이다. 이때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세상과 사람들은 평소에 느끼던 모습과는 다소간에 모두 다르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쳐 버리던 어떤 모습이 더 선명하게 부각되고 무엇보다도 내 삶에 있어서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 그리스도교 신앙이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아무리 착하고 완전한 사람이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성취할 수는 없다. 우선 누구의 경우에나 그가 구원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어놓으신 은총의 샘에서 그것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모든 성인들의 통공’에 관한 교리가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각자의 영적인 삶을 지탱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모두가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생명수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공로 이외에도 모든 신앙인들, 하느님의 백성 전체, 나아가서는 모든 선의의 사람들이 이루는 공로에 의해 보충되고 증가한다. … 신앙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들이 한데 모아져 모두의 것이 된다. 일생을 깊은 관상수도원에서 밤낮으로 고행과 기도로만 보내는 수도자들의 그 기도와 덕행, 물질적 정신적으로 넘기 힘든 시련에 직면해서도 이를 신앙인의 양심 때문에 지그시 참고 견디어내는 수많은 교우들, 사회의 소외계층이 당하는 억울함을 자기의 것으로 느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젊은이들, 그 외에도 선의를 가지고 일하는 무수한 사람들의 크고 작은 정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공로에 합류되어 거대한 탱크(누구라도 원하면 마실 수 있는 우유 저장고)를 채우고, 온 인류는 그 덕에 살아간다.
[ 2. 운명이 아니라는 얘기 ] - p73
< 13. 하느님의 연하장 >
- 우리는 지금 새로운 한 해를 맞고 있다. 예부터 삶은 자주 항해에 비유되어 왔지만, 이제 막 닻을 올리고 망망대해를 향해 또 하나의 긴 항해길에 오를 사람들로서,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원해 주고 싶은 말도 많고 빌어주고 싶은 축복도 여러 가지다. … 그래서 온갖 풍상을 다 겪은 노모와 같은 지혜와 자상함을 갖춘 자모이신 교회는 새로운 항해를 앞둔 우리에게 적절한 내용의 ‘좋은 말씀(복음)’우리를 무장시킨다. 해마다 1월 1일은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의 대축일로 고정되어 있고, 이날 미사에는 지금까지 생각해 온 바에 비추어 아주 의미심장한 복음을 듣게 되어있다. 루카복음(2, 16-21)을 통해서, 당장 이해할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한 마리아의 태도가 소개되고 있다. 말하자면 ‘젊은 노인’으로서 마리아의 모습을 통해서, 당장 이해할 수 없는 성서대목(목자들이 예수님을 뵙다)을 묵상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 일련의 사건들을 대하는 마리아의 태도를 두고 성서는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였다.” 라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의미 있는 말을 전해준다.
- 새로 시작하는 한 해의 첫날, 교회가 그런 마리아의 모습을 연하장에 찍혀진 그림처럼 보여주는 데에는 단순하고 의례적인 인사나 기원 이상의 대단히 깊은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교회를 통하여 전달된 하느님의 연하장에는 순풍에 돛단 듯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는 인사가 아니라, 폭풍과 파도를 정면으로 맞고서도 그에 휩쓸리지 않는 믿음의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기원과 함께 그에 필요한 은총까지도 실려 있는 것이다. “살아서 나는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 26)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믿음이 죽음의 파도마저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보증한다.
< 14. 운명이 아니라는 얘기 >
- 삶은 얼마큼 살고 난 사람들에게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기에게서 지워버리고 싶은 부분이 쌓여있게 마련이다. 불행을 몰고 온 사건들, 실패의 기억, 저지른 잘못, 그리고 그것들이 지금의 내 안에 남겨놓은 자국들이 그런 것들이다. 지워버리고 싶다는 것은 남 앞에 떳떳하지 못하다는 말이고 그것은 다시 수치심과도 통한다. 그런데 이 부끄러움의 감정은 묘한 것이어서 삶을 더욱 철저하고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예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 사람들이 자기 안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것들이란, 신체적 조건, 학벌, 가문, 사회적 지위 등 비교적 외부적인 것들로부터 하느님 앞에서 본 죄인으로서의 자기 처지라고 하는 극히 내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또는 부모로부터 타고난 각종 특징이나 본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일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한때 내 자유로운 선택의 범위 안에 들어 있었지만 지금은 내 손을 벗어난 일들까지 포함하여 지금의 나를 규정한 일체의 요인들을 가리켜 사람들은 흔히 운명이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 운명 앞에서 ‘체념’하는 일에 길들여져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이다.
- 사람들이 보통 ‘운명’이라는 이름의 보따리 속에 넣어 처리하는 것들에 대한 신앙인으로서의 온당한 태도는, 그 보따리를 풀고 거기 들어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정면으로 대하면서 신앙으로써 그 의미를 새롭게 찾아내는 일이다. 즉, 내가 불행으로, 수치로, 심지어 죄악으로만 생각하던 일들 하나하나에서까지 하느님의 손길을 찾아내자는 것이다.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이끌어내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의 지워버리고 싶은 부분들까지도 새로운 모습으로 피어나게 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분의 능력은 인간의 어떤 불행이나 실패, 좌절이나 심지어 죄악까지도 선으로 바꾸어주실 수 있다. … 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에게, 예수의 제자들은 그들의 전통사고방식에 따라 ‘죄’를 연상하며 누구의 죄 때문에 저런 모양으로 태어나게 되었느냐고 묻자, 예수께서는 “자기의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요한 9, 1-3). 우리 앞에 닥치는 온갖 고통과 불행은 우리의 좁은 눈에 나타나는 대로가 그 실상의 전부는 아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띌 수가 있다. … 운명의 보따리 속에 구겨 넣어 처박아 두었던 사연 하나하나를 하느님의 손으로부터 적극적인 태도로 자유로이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운명의 사슬에서 풀려나 자유의 땅인 아버지의 나라에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게 된다.
< 15. 환호와 저주사이 >
-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무엇보다도 그가 지니는 자유와 그 자유를 가지고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에 있다. 그렇다면 각자가 실제로 행사하는 자유와 떠맡는 책임부담 능력의 대소에 따라, 어떤 사람은 더 참다운 사람 쪽에 가깝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동물 쪽에 가깝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 성주간의 전례를 통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인간이 자유와 책임부담 능력을 상실한 군중으로 변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들을 대한다. 이 주간을 여는 주님의 수난 성지 주일의 전례에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하는 유다인 군중이 소개(루카 19,36-38)된다. 그런데 성금요일의 수난복음에서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하고 외치는 군중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분을 미칠 듯한 기세로 환영한 것도, 그분을 죽여 없애라고 주장한 것도 군중이었다.
- 결국 예수님은 인간으로서의 특권인 자유와 책임부담 능력을 포기하거나 상실한 군중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셨고, 그렇게 엄청난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조차 없다는 사실이 그분의 죽음을 몰고 온 전 과정의 비극성을 더할 수 없이 짙게 한다. 인간이 자유와 책임부담 능력으로 특정 지어지는 인간성을 포기하거나 잃었을 때, 그는 하느님을 죽이기까지에 이른다. 하느님은 사랑이실 뿐 아니라 진리요 정의이시다. 우리 사회에서 너무 자주 있는 현상이지만, 이 진리와 정의의 소리들이 여러 가지 이름을 둘러 쓴 군중들에 의해 가차 없이 짓밟혀지고, 그러면서도 누구 하나 그 과정에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군중 특유의 그 익명성 속에 숨어버리는 일 때문에, 성금요일의 역사는 오늘도 재현되는 셈이다. … 교회가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 되어야 한다함은 무엇보다도 군중화를 통한 인간의 자기 상실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대항하여, 참다운 공동체의 실현을 통한 인간성 회복과 그 본연의 사명이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군중으로 전락하느냐 참다운 공동체로 발돋움하느냐는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 달려 있다.
< 16. 얻은 것과 치른 것 >
- 어떤 선교사가 아프리카의 한 오지 마을에서 여인들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물을 길어 나르는 모습을 보고는 여인들의 그러한 고역을 해방시켜 주고자 본국 친구들의 협조를 받아 산중턱에서 물을 끌어들여 각 가정에 직접 연결하는 수도시설을 해주었다. 선교사가 본국에 몇 년 동안 가 있다가 돌아왔을 때 그는 실로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자기가 정성껏 설치해 준 수도시설이 형체조차 찾아볼 수 없이 파괴되고 여인네들이 다시 물을 길어 나르고 있었던 것이다 … 수도시설이 각 가정에 설치되고 얼마 동안은 사람들이 그 편리함에 감탄하며 만족해하였다.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그들은 처음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면을 깨닫게 되었다. 물을 긷기 위해서 그렇게 자주 밖으로 나와야 했던 아낙네들이 수도 덕분에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되자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살게 되었고, 이 사실은 그들의 삶을 변질시켜 가고 있음을 의식했던 것이다. 여인들이 마을의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 나를 때 그들은 단순히 물을 긷는 일만 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기회에 이웃사람들을 만나 일상생활에서 쌓이는 온갖 잡다한 사연들을 서로 털어놓고 교환함으로써, 물동이 가득히 새 물을 담아 갈 때에는 각자의 가슴 속에도 그에 못지않은 새 물이 담겨지곤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우물 중심으로 모여드는 일이 없어지면서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던 끈들이 하나씩 끊어지고, 문명과는 아무 관계없이 살던 숲속 동네에 난데없이 현대의 특징적인 고독과 스트레스라는 병통이 나타났다.
- 수도가 생기기 이전까지, 우물가는 세상 어디서나 요즈음의 생활에서라면 공원, 다방, 공연, 심지어 교회가 수행하는 역할의 일부까지를 떠맡은 ‘다목적 만남의 장소’였다. …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이, 우리 생활의 물질적 요구에만 초점을 맞추어 발전한 기능 위주의 물질문명에 접해서, 그 피상적 편의에 현혹되지 않고, 그것으로 해서 희생될 뻔한 더 중요한 가치를 수호하는 쪽으로 내린 결단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것이었다. 그들은 너무 늦기 전에, 얻은 것과 그것을 위해 치른 대가를 명확히 깨달았고, 걸맞지 않은 거래였음이 판명된 다음에는 즉시 사태를 바로잡을 만한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 하느님의 나라는 “묻혀 있는 보물”(마태 13,45)이요, “안목이 있는 사람에게만 눈에 뜨이는” 값진 진주이다(마태 13,45). 하느님 나라 쪽을 지향하고 있는 모든 가치들은 여느 사람들의 눈에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 보통이어서, 그걸 잃고도 오랫동안 그런 줄을 모르고 있을 수가 있다.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은 비교적 빨리 잘못된 거래를 깨달았고, 그 즉시 손을 써서 얻은 것에 비해 걸맞지 않게 비쌌던 대가를 되돌려 받을 수가 있었다.
< 17. 두려움 >
- 두려움은 살아있는 것들로 하여금 생명을 위협하는 세력들이 다가오고 있음을 미리 알려서 자기 생명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창조주께서 그들에게 장치해 주신 일종의 종합적 신호체제라 할 수 있다. 동물에게도 그들 나름대로의 공포나 두려움은 있다. 그런데 동물의 두려움은 그야말로 동물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만 정확하게 맞춰져 있다. 그럼으로 당장의 위험을 피했으면 그것으로 족하고, 그들은 앞으로 얼마동안의 안정이 확실해지는 순간 두려움도 깨끗이 걷히는 것이다. … 인간의 생명에는 동물적 생명 외에도 더 깊이에 그만의 고유한 정신적 생명이 또 있기 때문에, 생명유지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두려움도 거기에 상응하는 깊이를 지니게 되어 있는 것이다. … 정신적 존재로서 인간의 품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두려움은 질병, 사업의 실패 등 이미 너무 잘 알아서 걱정인 두려움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 성서는 말한다.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경외함)이 지혜의 시작이니라”(잠언 1, 7/ 시편 111,10 참조)
-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이야말로 인간의 위대성을 드러내는 두려움이다. 동물도 죽음과 거기로 이끄는 온갖 세력들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받아들일 만한 능력은 없다. 인간만이 그런 능력을 타고난다. 그런데 인간도 그 타고난 능력을 계발하지 않고 동물과 비슷한 수준에 그냥 머물러 있으면, 끝까지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을 모른 채 죽을 수 있다. 그 두려움은 노력해서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잠언의 저자는 말한다. “아들아, 지혜로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바른 판단에 마음을 두어라. 슬기를 찾아 구하고 바른 판단을 얻고 싶다고 소리쳐 불러라. 은을 찾아 헤매듯 그것을 구하고 숨은 보화를 파헤치듯 그것을 찾아라. ‘그래야 눈이 열려’ 하느님 두려운 줄 알게 되리라”(잠언 2,2-5).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이 중요한 것은 개인이나 사회 전체의 건강과 구원을 위해서 그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은 권력자로 하여금 그 권력을 남용하거나 절대화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또한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이 그걸 남용하거나 절대화하려 할 경우, 똑같은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은 그 권력에 깔릴 뻔한 사람들로 하여금 일체의 인간적인 두려움을 극복하게 함으로써 용기 있게 이에 대항할 힘을 준다. 백성이 주인이란 의미를 지닌 민주주의는 권력을 쥔 사람이나 그 권력에 복종해야 하는 사람들 모두가, 아니면 그중 한편만이라도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줄 알 때에만 실현성이 있는 제도이다. 근대 민주주의가 그리스도 문화권 안에서 발전하고 꽃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하느님을 알고 믿는 개인이나 단체도 큰 실수를 저지르고 남용하며 한 사회를 독재와 부정부패로 몰고 갈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내심 간직하고 있는 한 그들에게는 언제든지 정상에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 내지 힘인 일종의 복원력이 있다. … 우리가 일체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의 주인이 되며, 그런 사람들이 모인 사회 전체가 떳떳한 민주사회로 발전하고 말고는, 참으로 두려워할 대상에 대해서 가르쳐주신 말씀인 “그분을 두려워하여라”/루카 12, 4-7)가 우리 하나하나의 삶 깊숙이 들어와 그것을 지배하느냐에 달려있다.
< 18. 쪼그려 앉아있기 >
- 참으로 세상은 많이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속도에는 가속이 붙어, 물질문명에 한정시켜 놓고 볼 때 그것은 가히 아찔하다는 말로나 형용될 만큼 엄청나다. 많은 사람들이 최대한의 물질적 혜택을 입기 위해서라면 그런 방향의 추세는 불가피하고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의 그런 변화에 맞추기라도 하듯이 우리 마음까지 덩달아 바빠지고 그것이 습관으로 굳어져, 시간이 충분히 주어질 때에도 우리는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지 않으면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게 되어 버렸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도 덜도 말고, 사람이기를 그치고 기계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 막혔을 때 터주고 갇혔을 때 열어주며 허공을 맴돌 때 우리 삶을 참으로 충족시켜 주는 일, 그것을 일컬어 성서는 구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자임을 적어도 교리상식으로 우리는 믿고 있다.
-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알아보기 위해 그분의 태도를 더듬어 보자. 마태 15, 32-39(사천 명을 먹이시다)에서 예수님께서 서서 술렁대는 군중을 향한 첫 조치는 ‘땅에 앉으라.(땅에 앉히는 일) 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셨다. … 요한 8, 1-11(간음하다 잡힌 여자)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몸을 굽혀 앉으심) 그리고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하시자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나이 많은 자로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떠나갔다. … 우리 구원자의 말씀에 따르면 ‘앉아 있기’야말로 사람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단 하나의 필요한 일이다. 루카 10, 41-42(마리아와 마르타를 방문하시다)에서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앉아 있기)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 우리는 매일 아니면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안 된다면 한두 달에 한 번만이라도 하던 일들을 즐비하게 놓아둔 채 그냥 쪼그려 앉고 볼 일이다.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을 일체 끊고, 상당히 긴 시간을 그렇게 지내볼 일이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삶에 뚫어진 공허가 조금씩 메워지고, 삶이 내 곁을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삶의 고삐를 쥘 수 있음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신앙인으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잃어버렸던 자기를 서서히 되찾게 될 것이다.
< 19. 강 건너 불 ? >
- 상업용 핵발전소 가동 역사상 가장 엄청난 규모로 소련의 체르노빌에서 원자력사고가 발생(1986.4.26.)했다. 이 사고소식에 접한 세계 각국의 반핵운동가들은 “체르노빌은 어디에나 있다!”는 구호를 외치며 더욱 맹렬한 기세로 싸우고 있다. … ‘제3의 불’로 등장한 이래, 고갈되어 가는 에너지원을 대체할 수 있는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은 그 자체로 볼 때, 현실적으로 쉽게 거부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위험하고 사고가 날 경우에 피해를 입게 될 사람의 숫자가 엄청난 만큼, 종국에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경우에조차, 관련된 주민들의 의사가 존중되고 국민들의 충분한 토의와 검토를 거쳐서 최대한 안전이 보장된 연후에만 설치되어야 한다는 사리는 명백하다.
- ‘강 건너 불구경’ 이라는 말이 증명하듯이, 종래에는 모든 재앙 중의 재앙이라는 화재도 그것이 강 하나를 사이에 둔 곳에서 일어났을 때에는 위협을 느끼지 않고 ‘구경’만 할 수도 있었다. 비단 화재뿐 아니라 남의 불행 일반에 대해서도 거의 비슷한 태도가 그런대로 가능했다. 그런데 ‘체르노빌’에서 일어난 일종의 화재사건은 그 여파가 세계 구석에까지 미칠 만큼 광범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강이나 바다, 국경이나 체제, 사상이나 이념 등 사람들을 여러 모양으로 갈라놓던 종래의 울타리들이 아무 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사람들한테 남의 불행이 직접 내 불행으로 이어진다고 하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그것은 또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분야에서 그렇게 엄청난 재난이 빚어질 수 있다면, 그 힘을 의도적으로 살상목적에 맞춰 사용할 때 그 결과가 어떠할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 그토록 가공할 힘을 소유한 인간은 이제,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와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남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이제 개인 간의 관계나 사람들의 사적 생활에서나 문제되는 정도가 아니고, 사회와 인류문명의 기본바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인류의 생존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 뚜렷이 드러난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 사고는 인류역사의 진행방향을 전면으로 수정할 수 있는 호기가 될 수도 있다. … ‘체르노빌’의 사고를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유화의 물결, 그리고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더욱 뚜렷한 형태로 나타나는 사회동향은 한결같이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는 쪽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확인한다. 문제는 위정자와 국민 모두가 여러 일들에서 드러나는 ‘시대의 징조’들을 읽을 수 있는 감각이 얼마나 열려 있느냐 하는 점이다.
< 20. 성서와 신문 >
- 거의 3천 년 전에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사건(힘없는 농사꾼 나봇과 한 나라에서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는 아합왕 사이에서 일어난 이야기/1열왕 21)을 기록하는 성서 이야기와, 오늘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전하는 신문보도 내용(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자기의 정적 ‘베니그노 아키노’를 암살하게 함)이 그렇게 유사할 수가 없다. 두 경우 모두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액튼 경의 말을 입증하는 사례들이다. 물과 불은 생명을 키우는데 필요불가결한 것들이지만, 그것이 일정한 테두리를 벗어나면 가장 무서운 파괴력으로 변한다.
- 정의와 진리를 수호여 국민의 안녕을 확보하는 데 쓰이도록 부여된 권력이, 어떤 통제도 받지 않는 절대적 성격을 띠게 되면, 그것은 본래의 목적과는 정반대로 작용하여 부정의 근원이 되고 기만과 허위의 산모(産母)가 된다. 그리하여 본래는 정의와 진리를 지키고 밝히기 위해서 제정된 모든 제도와 기구들도 오히려 허위를 조작하고 은폐시키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앙인이면 누구나 예언자의 사명을 지닌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예언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중의 하나는, 하느님의 뜻에 비추어 현실을 바라보는 일, 어떤 유명한 신학자가 말한 바와 같이 ‘신문을 읽을 때는 성서를 읽듯 하고, 성서를 읽을 때는 신문을 읽듯’ 할 수 있는 감각을 지니는 일이다.
< 21. 이 땅의 키토브라스 >
- 키토브라스는 먼 사막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는 직선을 그으며 똑바로만 걸을 수 있었다. 살로몬왕은 그를 불러 산에 가서 돌을 깎는 석공으로 일하게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를 예루살렘을 통과하게 할 때 문제가 일어났다. 그가 가는 길에 장애가 되는 것이면 누구의 집이든 상관없이 모두 부숴버리고 길을 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그런 식으로 길을 내가며 그를 계속 걸어가게 하였다. 그렇게 걸어가던 중, 그는 마침내 가난한 한 과부의 오두막집 앞에 당도했다. 과부는 울며 제발 집을 허물지 말라고 애원하였다. 키토브라스는 감동하였다. 그는 몸을 비틀어 자기 체구를 가능한 한 작게 만들다가 갈비뼈 하나를 부러뜨렸다. 하지만 과부의 작은 집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그때 그는 “거센 말은 화만 돋우는데, 부드러운 말은 뼈를 부러뜨릴 수 있군요.”라고 말했다.
- 오늘날 우리 가운데 누가 부드러운 말에 감동하여 자기의 갈비뼈를 부러뜨리게 할 수 있겠는가? … 솔제니친의 작품(암병동) 속에서 올레그는 가난한 사람의 딱한 사정에 감동되어 자기의 갈비뼈 하나를 부러뜨리면서 그를 보호한 키토브라스를 생각할 때, 자기 앞가림에만 급급해 있는 자신은 차라리 늑대라고나 해야 마땅함을 깨달았다. … 산업화 과정의 주역이면서도 항상 이 사회의 그늘에 유폐되어, 하고 싶은 말 한마디 속 시원히 외쳐대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마치 다른 세상사람 바라보듯 해온 우리의 무관심과 소시민적 이기주의가 사태(한 가냘픈 처녀에 대한 고문과 ‘인면수심의 실로 천인 공로할 야만적 추행’/이돈명 씨 등 변호사 8인이 작성한 고발장의 표현)를 여기까지 용인해 온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부드러운 말‘을 외면하고 자신의 갈비뼈 안보에만 급급해 있었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인가는 갈비뼈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꺾이고, 나아가 인간성 자체를 내주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 22. 농부가 예언자로 변할 때 >
- 한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면, 그 안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만 충실하고 정치 따위는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누가 나서서 목청을 높여가며 “국민 각자는 자기의 자리에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라.” 하고 외칠 필요가 없다.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모든 이들은 제발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농부는 농사일에만 열중하고, 공무원은 맡겨진 사명에만 충실하며, 학자는 연구에, 학생은 학업에, 그리고 종교인은 ’종교적인 일‘에만 신경을 쓰며 살아가기를 누구나 바란다. 그런데 왜 종교인이 정치를 말하고, 학생들이 학원을 뛰쳐나가며, 공무원이 항명을 하고, 노동자가 일터를 박차고 나가며, 농부가 시위를 하는가? 왜 심지어 수도자까지 ’정치색 짙은‘ 발언을 하며 수도원 밖으로 뛰쳐나가는가? 그것은 이 나라의 돌아가는 모습이 비정상의 도를 너무 지나치게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 “나는 본시 예언자가 아니다. 예언자의 무리에 어울린 적도 없는 사람이다. 나는 목자요 돌무화과를 가꾸는 농부다”(아모 7,14). 한 농부로 하여금 땅을 파서 농사를 짓는다는 그 본연의 일과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나가 당대의 지도자들을 향해 호된 질책의 말을 퍼붓는 예언자가 되게 한 것은, 너무나 비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던 당시의 사회현실이었다. 우리는 지금 비정상의 정도가 극에 달한 사회에 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가 이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든 지간에 밖에서 돌아가는 일에 절대로 무관심할 수가 없다. 역사의 진운을 바로잡는 일에 자기 몫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자체가 노상강도를 만나는 사람처럼 심한 상처를 받고 쓰러져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발걸음이 어느 쪽으로 향하든, 그것은 하느님과 인간의 역사 앞에서 보이는 자기 나름의 결단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하나의 착한 사마리아인(루카 10, 29-37)이 되든가 역사를 외돌아가는(남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서만 행동하는) 속 좁은 직업인이 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 23. 부모와 자식사이 >
- 인간은 그를 낳아준 부모의 자식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각자는 부모로서도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영원한 거기에 상응하는 소명을 지니고 세상에 태어난다.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실현해야 할 소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아버지는 하느님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부모로부터 한 번 태어난 다음에도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3 참조).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요한 3, 6)이기 때문이다. … 인간은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님의 자녀로부터 영원한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자녀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 있으며, 그 과정에서는 때때로 심한 단절의 아픔이 따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픔이라면 새생명의 출산을 위한 산고(産苦)이며, 그것이 죽음이라면 새로운 삶으로 부활하기 위한 죽음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부모쪽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볼 때에도 이런 아픔과 죽음을 통해서만 인간의 영원한 소망은 실현된다고 하는 사실을 똑같이 확인할 수 있다.
- 아브라함이 위대한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해 주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은, 그 아브라함이 약속의 아들인 이사악을 자기 육정(肉情)의 테두리에 가두어두고 싶은 욕망에서 풀려나던 순간에 성취되었다. 그리하여 죽음을 통해서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성서 특유의 역설적 진리는 여기서도 가장 극적으로 증명되었는데, 이는 어떤 부자관계를 가장 단호하게 끊어버림으로써 참된 부자관계가 비로소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사악뿐만 아니라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소명을 띠고 온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모든 부모는 그 자녀들이 부모인 자기들마저 함부로 꺽을 수 없는 영원한 운명과 소명을 가진 존재들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도 아브라함처럼, 어떤 단절을 통해서만 자기 자녀들이 모두 참된 의미의 아버지이신 하느님 앞에서는 각기 고유한 운명과 사명을 지니고 있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 24. 문 >
- 사진을 만들어가는 과정 중의 하나인 음화(陰畵)는 참 묘하다. 거기서는 까만 머리가 하얗게 나타나고 하얀 얼굴은 반대로 까맣게 보인다. 아주 밝은 곳은 아주 어둡게 나타나고 좀 덜 밝은 곳은 좀 덜 어둡게 나타난다. 그것을 가지고 인화과정을 거쳐 사진을 빼내면 그 마지막 모습은 음화와 아주 정확하게 반대의 명암을 나타낸다. 루카 복음(루카 16, 19-31)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의 입장은 죽음을 사이에 두고 그 세부사항에 이르기까지 음화와 완성된 사진사이의 관계만큼이나 정확하게 뒤집힌다. 세상에서 거지 라자로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나마 주어먹기를 바랐었다. 그런데 죽은 다음에는 반대로 부자가 거지 라자로에게 손가락 끝으로 물 한 방울을 찍어다 자기 혀를 축이게 해주기를 바라는 처지가 되었다. … 죽음을 사이에 두고 정확하게 전도된 부자와 거지의 상대적 처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가장 의미심장한 표현이 있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 건너가려해도 가지 못하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건너오지도 못한다.” 부자는 생전에 그가 나자로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며 심정적으로나마 그를 한 번도 자기와 같은 인간으로 생각해 본 적도, 그렇게 대우해 본 적도 없었다는 점이다. 과연 그는 나자로를 자기 집 대문 밖에 그대로 둔채 한 번도 그 안으로 들여온 적이 없었다.
- 우리는 현세의 삶에서 참으로 많은 구렁텅이를 파고 담을 쌓고 금을 그어 남의 접근을 차단한다. 굳게 잠긴 대문은 그 가장 대표적인 장치이자 상징이다. 그 경계선을 중심으로 안에 있는 나와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철저하게 단절된다. 부자와 거지 라자로의 비유에서 드러난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 삶의 가장 큰 비극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 무관심하고 그들을 우리 의식의 테두리 박으로 밀어내 버리는 데에 있다. 우리의 그런 태도를 통해서 점점 더 밀려 나가는 쪽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그들을 멀리하기 위해서 장치해 놓은 울타리와 대문은, 다음 단계에 가서 우리 자신을 유폐시키고 묶어두는 장치로 둔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그 문을 활짝 열고 밖에 방치해 두었던 사람들을 자기가 사는 세계 안에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친히 밖에 방치해진 인간으로 이 세상에 들어오신 것이다. 비유 속의 거지 라자로는 누구보다도 먼저 예수님 자신의 처지를 시사한다. … “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 45). …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분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문밖에 서계신 것이다. “들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묵시 3,20)
[ 3. 뭘 모르는 사람들 ] - p149
< 25. 사마귀와 수레바퀴 >
- 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30분, 미국의 뉴멕시코 주 로스앨러모스에서 인류역사상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이 이루어졌을 때, 그 무서운 파괴력을 지켜보던 한 과학자는 울먹이며 말했다. “오, 하느님 우리는 지옥을 만들어내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20일 후인 1945년 8월 6일에는 일본 히로시마에 그 지옥이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 인구 34만 중 20만의 사상자와 이재민 10만을 내고 가옥 7천 2만 채를 완전히 태워버리거나 파괴시켰다. 영국의 철인(哲人)이며 반핵 운동의 기수이기도 했던 러셀은 “현대의 인간은 온통 핵무기로 된 창고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러셀이 죽은 후에도 인류는 숨 가쁜 속도로 그 핵창고를 더욱 무서운 모습으로 바꾸어가는 경쟁을 계속해 왔다. 그래서 지금은 미국과 (구)소련 그리고 여타의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것까지 합하면 그 파괴력의 총량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1백60만 배에 이른다.
- 만일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순간부터 매초당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했던 화력 전체에 해당하는 파괴력이 방출될 것이다. 그리고 전쟁 발발 후 몇 시간 동안에 죽어갈 사람의 수는 인류역사상 지금까지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의 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을 것이다. 또 첫 순간에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그들은 오히려 일찍 죽은 사람들의 처지를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핵무기들이 만들어낼 그 엄청난 죽음의 검은 보자기는 생태계 전체를 서서히 덮쳐, 마침내 생명체라고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핵전쟁으로 초래될 죽음은 인간과 자연의 한 단계나 몇몇 개체의 삶만을 종식시키지 않고, 인류와 자연의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철저히 파괴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인류가 체험해 온 죽음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것이 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어떤 이들은 그 경우의 죽음을 요한묵시록(20, 6)에 나오는 ‘둘째 죽음’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 교회에서는 해마다 1월 1일을 ‘평화의 날’로 지낸다. 바오로 6세 교황은 특별메시지를 통해 1968년 1월 1일을 평화의 날로 선포하고, 전세계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물론 그리스도를 믿는 전 신앙인들과 선의를 가진 사람들에게 모두 그 취지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한 이래, 그 제안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폭넓은 호응을 얻었고, 교회에서는 그 뒤 매년 1월 1일을 평화의 날로 지내고 있다. … 오늘날 평화의 문제가 인류에게 가장 화급한 과제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같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해결을 위한 첫 단계는 모든 사람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일이다. 미국의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 여사는 “현대의 가장 큰 죄악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무관심하고 알아보려 하지 않는 태도”라고 말했다.
- 손가락보다도 작은 사마귀 한 마리가 마차가 오는 길 한복판에 떡 버티고 서서 굴러오는 바퀴를 저지시키려 한다는 옛말이 있다. 인류니 세계니 핵전쟁이니 하면서 엄청난 문제를 들먹이고 그에 대해서 어떤 식으론가 손을 써보려는 우리의 시도는 바로 그런 사마귀의 어림없는 몸짓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하느님의 눈에는 엄청난 문제에 대한 개인의 힘이 세상이 평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를 수 있음을 우리는 믿는다. 소돔이라는 도시 전체가 멸망한 것은 다른 어떤 이유에서보다도, 거기에 의인 열 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창세 18, 16-32). 예수께서 다수의 인간들을 위해서 그들이 패망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소수인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비유를 쓰셨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 한줌의 소금은 많은 양의 음식을 부패에서 방지한다.” … “한 자루의 촛불은 방 전체를 밝힌다.” … 신앙이 갖는 신비중의 하나는, 물리적으로 볼 때 태산과 개미 한 마리 사의의 관계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 둘을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의 한 작가인 엘리자베스 러세르는 “스스로를 자기보다 더 높이 끌어올리는 모든 영혼은 실제로 세계를 들어 올리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 26. 두 바다 >
- 팔레스티나 남쪽에 있는 사해(死海)는 여러 면에서 유별나다. 우선 1천 평방킬로미터가 넘는 광대한 호수의 수면이 바다의 수면보다 392m나 낮아 지구의 표면에서 가장 낮은 지점을 이룬다. 또 겉보기엔 그렇게 풍부하고 아름다운 물속에 물고기라고는 한 마리도 살지 않는다. 생명의 기운은 물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정상으로라면 물이 모여 있는 강이나 바다는 동시에 생명체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독 사해만은 그 거대한 수량에도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살지 않고, 잘못해서 거기로 흘러들어 가면 즉사할 수밖에 없는 죽음의 바다가 되어 있는 것이다. 지구의 표면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해 있는 그곳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을 받기만 할 뿐 자신이 또 다른 곳을 향해서 그 물을 흘려보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물이 넘치지 않고 있는 것은 그 지방의 강한 태양열이 유입된 수량에 해당하는 수분을 증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받기만 하고 줄 줄 모르는 독특한 구조는 철저한 죽음의 바다가 되도록 한 것이다.
- 한편 사해로부터 북쪽으로 불과 1백여 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는 갈릴래아 혹은 겐네사렛 호수는 물고기가 대단히 많이 서식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요르단 강은 이 갈릴래아 해에서 흘러내린 물이 사해로 빠져나갈 때 이루는 물줄기다. 갈릴래아 해와 거기서 흘러나오는 물로 이루어진 요르단 강은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있다. 이렇게 볼 때 사해는 죽음의 물로서 세상에 유일한 경우이고, 갈릴래아의 지류인 요르단 강은 반대로 생명의 물로서 역시 지구상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예가 되어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하나가 받기만 하고 줄 줄을 모르는데 비해서, 다른 하나는 받은 것을 전혀 자기 안에 간직하지 않고 모두 다시 내어준다는 데에 있다. … 사랑은 자기의 것을 이웃에게로 흐르게 하는 것이다. 가장 큰 사랑은 자기 자신을 이웃에게 내주는 것이다(요한 15, 11-13 참조). 이것이 아무리 큰 주문이고, 이기적인 성향에 잡혀있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이상이라 해도, 결국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건너가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외에 달리 없다. 삶에서 확실한 것을 잡아낸 사람은 모두 이 진리를 터득해서 그걸 살아낸 사람들이다.
< 27. 아니다! >
- 어떤 죽음 앞에서는 산 사람들이 그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박종철 군(대학 3학년, 21세)은 1987년 치안본부 대공수사2단이라는 곳에서 민민투 수사와 관련, 고문으로 짓이겨져 피지도 못하고 떨어진 꽃이다. 경악, 분노, 통탄이라는 말로써 우리의 심경을 다 표현할 수는 없다. … 고문은 자기 방어의 능력이 전혀없는 상태의 인간을 서서히 으스러 뜨리고 그가 당하는 고통을 끝까지 지켜보지 않을 수 없는 종류의 살인(현장에서 죽지 않아도 그것은 살인이다)이라는 점에서 정상적인 인간성을 간직하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위이다. … ‘고문방지를 위한 제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민의 그런 요구는 하늘의 명령처럼 무겁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제도장치라는 것도 그것이 얼마나 가볍게 무시될 수 있는지를 너무나 똑똑이 보아왔다. 고문의 절대적 금지와 피의자의 이익에 반대되는 진술을 강요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헌법이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헌법 11조 2항). 헌법의 이 정신을 구체화하여 피의자나 피고인의 진술거부권(묵비권 행사)에 곁들여, 수사기관으로서는 이들에게 그런 권한을 알려줄 의무가 있는것으로까지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취조하는 경찰관쪽에서 범법자가 된다. 하물며 하기 싫다는 말을 어거지로 짜내고, 심지어 조작해 내기 위해서 고문을 하는 경찰관은 헌법, 형볍, 형사소송법을 모조리 위반한 중죄인이 된다.
- 인간의 위대함은 ‘그렇다’고 해야 할 때 ‘그렇다’ 하고, ‘아니다’고 해야 할 때, 결연히 ‘아니다’ 할 수 있는 능력에서 드러난다. 그런 뜻에서 삶을 동력선(動力船)에 비유할 때, ‘그렇다’는 모터에, ‘아니다’는 방향타나 제동장체에 해당한다. 앞으로만 갈 줄 알고 방향을 바꾸거나 멈출 줄을 모르는 개인이나 사회는 곧 암초에 부딪치고, 그렇게 되면 무명승객들뿐 아니라 선장도 마찬가지의 운명을 당한다. 우리는 모두 ‘아니다’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박종철 군은 우리에게 이 ‘위대한 거부’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 이 시대의 순교자이다. 우리가 이 능력을 회복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지킬 때, 그의 짧았던 삶은 가장 긴 삶으로 바뀔 것이며,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도 제외하지 않고 살리는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하는 셈이 된다. 우리가 믿는 주님께서도 다름아닌 위대한 거부의 순교자였다. 그분의 다음 말씀은 박종철 군을 통해서 우리 앞에 한 번 볼 수 있는 몸을 받아 나타났던 것이다. “너희는 그저 ‘그렇다’ 할 것을 ‘그렇다’하고 ‘아니다’ 할 것은 ‘아니다’ 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니라”(마태 5, 37).
< 28. 위대한 패배자께 >
- “나의 사랑하는 아내 벨다 … 차가운 바닷바람이 창문을 두드릴 뿐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병실. 오직 ‘포지티브’라 쓴 환자 등록 카드가 놓여 있는 머리맡의 식탁 앞에서 희뿌연 형광등만이 창백히 썩어가는 나의 육신을 지켜주고 있는 길고 긴 겨울 밤, 당신 벨다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그만 시트에 얼굴을 파묻고 맙니다.” … 배인봉 돈보스코 형제여. 이렇게 시작되는 형제의 신앙고백 수기 ‘내가졌습니다’를 이제 막 단숨에 읽었습니다. 참된 시인은 잉크로서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글을 쓴다고 합니다. 형제의 글이야말로 붓으로가 아니라 온몸으로 쓰셨음을 절절이 느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 형제여, 스스로 말씀하신대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것을 꺼려할 뿐 아니라 비밀스런 것을 들추려하지 않았는데”도 “나병환자라는 치욕적인 주홍글씨를 옷깃에 두텁게 달고” 자신의 “소중한 편지를 공개” 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 앞에 잊고 살던 자신의 처지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 “사랑하는 아내 벨라뎃다여! 나는 일 년 사이에 우리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미정이를 잃어야 했고,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당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한 것을 잃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할지 모르나, 나에게는 아내와 소중한 딸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된 것은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점이오.” … 형제여! 그렇게 해서 당신께서는 하느님을 외면하기 시작하셨고, 바로 뒤따라온 나병으로 하여 그 감정은 극점에까지 가있었습니다. 형제의 말씀마따나 질병, 고독, 가난, 치욕 등이 형제를 질식시키기 위해 모두 동원되고 있을 뿐, 하느님까지도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느끼셨을 때, 아무도 형제의 그런 태도와 느낌을 지나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형제께서는 이 세상의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는 영혼의 고독을 옛 아내의 대화를 통해서만 어루만져 가며 너무나 무겁게 내리누르는 삶의 무게를 간신히 지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굳어져 가는 마음., “모든 것이 귀찮고 모든 것이 싫어져 악마의 성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안주하고 싶어지는” 심정은 달리해 볼 길이 없어 “그 성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힘쓰기보다는 차라리 악마에게 몸을 맡기고 말았다.”고 하셨습니다.
- 그런데 그런 절망의 세월이 5년이나 쌓여갔던 한 해의 어느 비 내리던 저녁, “이제는 거부할 힘도 반항이나 분노를 일으킬 힘도 없으며 방황만은 더욱 싫다.”고 뇌이며, 늘 찾으시던 성모 동굴에 가셨을 때의 일에 대해 말씀하신 대목은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이 어떤 것인지를 너무나 잘 보여줍니다. … 중략 … “(그리고 그 순간 형제의 영혼 안에는 구원의 빗줄기가 스며들기 시작하였습니다.) … (그리고 신비스런 한 존재가 양심 속에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 (이렇게 해서) 온종일 병상의 짜증과 권태로운 시간이 기쁨과 환희에 차 휘파람을 부는 생활로 전환된 것입니다. 오, 사랑하는 벨라뎃다여! 나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를 다시는 내지 않겠소. … (이런 평화를) 쟁취하기까지 나병이라는 지독한 형벌, 그것이 비록 힘든 고통이었지만 버리고 찾은 은총의 선물만큼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 주님께서는 나의 내적인 치유 아니 영혼의 치유로 육체적인 치유를 부수적으로 주셨습니다. 오, 사랑하는 벨라뎃다여! 당신의 지극한 보살핌과 주님께 나를 인도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대가로 나는 감히 부활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형제의 싸움이 치열했던 것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음과 자신이 나환자가 되었다는 처참한 현실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 안에 ‘악마의 성’을 쌓아놓고 거기 주저앉고 싶은 강한 유혹과의 투쟁이었습니다. 어쩌면 삶은 누구에게나 그런 경향을 상대로 한 싸움의 연속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싸고 있는 딱딱한 껍데기를 깨지 못한 채 그 안에 갇혀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가장 답답하고 거북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죽기 전에 그 껍데기를 깨부숨으로써 ‘자유의 공기’를 숨 쉴 수 있는 행운은 아주 적은 수의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은총인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절구통에 넣고 찧어도 그 어리석음의 껍질이 벗겨지지 않는다.(잠언 27, 22).” 그런데 형제께서는 은총에 온전히 몸을 내맡기시고 하느님의 능력 앞에 패배를 선언하심으로써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승리를 획득하신 것입니다.
< 29. 콩나물 기르기 >
- 자극과 고통, 즉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요인들은 어차피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까지 침투해 들어와 있는 만큼 그것은 피한대서 완전히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완전히 피하고 싶어 하는 심리는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뱃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어른이 유아기의 상태로 퇴행하고 싶어 하는 심리와 온전히 같은 것으로 결국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데까지 이어진다. 이런 이치를 아주 잘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자주 먹는 콩나물이다. … 콩나물은 모든 생물체의 초기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그만큼 가장 덜되고 미개발된 생태에 머물러 있는 생물의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콩나물을 기르는 방식을 잘 지켜보아야 한다. … 따가울세라 햇볕을 차단하고, 추울세라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주며, 한 순간만이라도 목마를 겨를을 주지 않고 습기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물을 주어 버릇하면, 콩은 그 자체 안에 있는 생명력을 발휘할 기회를 가져보지 못하고 차츰 그 능력까지 잃어, 희멀겋고 유약한 모습의 기형으로 한 삶을 마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하나의 생명체를 일체의 스트레스 요인이 제거된 인공적인 공간에 두고 과잉보호를 해서 기른 결과의 대표적인 예가 콩나물이다.
- 요즈음 부모들은 바빠서 애들에게 적절히 신경을 서주지 못했다고 하는 죄책감을 조금씩은 다 가지고 있다. 이래저래 그들은 일종의 보상심리로 애들을 무분별하게 과잉보호를 하고, 적절한 제재나 타이름, 나아가서 필요한 경우에 매를 드는 일을 잊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애들을 위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교육하는 일이라기보다 콩나물을 기르는 일이다. 그래서 콩나물처럼 유약하고 기형적인 인간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 인간의 교육에는 매로 상징되는 어떤 견제, 어떤 단련, 당장에 힘들어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련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동양의 교육을 뜻하는 교(敎)자는 ‘인도하고 매로 때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약성서의 히브리말에도 교육을 뜻하는 말(무사르)은 지혜나 깨우침을 전달한다는 의미 외에도 질책과 벌을 통해서 바로잡아 준다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 지금 당장에 쓰고 단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사는 삶에는 미래가 없다. 콩나물은 지금 당장 먹어치우기 위한 것이니 그렇게 길러도 좋다. 그러나 우리에게 맡겨진 자녀들은 지금 당장이 아니고 그들의 앞날, 그리고 우리가 사라지고 난 다음, 나아가 인류 앞에 무한히 뻗혀있는 미래까지를 바라보며 교육해야 하기 때문에 우선은 쓴 약도 때로는 필요하다. 콩이 제대로 자라기 위해서나 사람이 정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나 간에,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필요불가결한 것이며, 문제는 주관적으로 어떻게 이에 대처하여 이를 성장의 기회로 삼느냐에 있음을 현대의 학자들은 발견해 냈다. 그래서 그들은 잘 처리된 경우의 스트레스를 순(順)스트레스, 그렇지 못한 경우를 역(逆)스트레스라고 부른다. 스트레스란 고통과 십자가의 현대판 명칭에 다름아닌 것이다.
< 30. 머리와 발 >
- 황희 정승에 관한 일화(하녀 둘이 서로 말다툼)에서 개인 간의 사소한 의견대립으로부터 온갖 형태의 파당싸움, 나아가 전 세계를 둘로 나누는 이념 투쟁에 이르기까지, 서로 내 쪽이 옳다는 주장 때문에 일어나는 충돌과 반복현상을 위한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삶의 문제에 관한한, 옳고 그름, 진리와 허위가 사물세계에서와 같이 그렇게 간단히 판별되는 것은 아니며, 판별 이전에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진리 그 자체도 단순히 있지 않으면 없다는 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일화는 말해준다. … 삶에 관한 문제는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옳은 대답이 동시에 여럿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 처지(處地)와 입장(立場)이라는 말마디들은 대단히 깊은 의미가 있다. 삶에 관한 어떤 사람의 주장이나 말을 참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선 자리에 내가 구체적으로 발을 옮겨 그의 처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뚜렷이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
- “인간의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그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은 그 나름대로 간단히 일축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사람의 머리로 돌아가는 일(생각, 사상)이 먼저고 그에 따라 그의 생활방식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한 사람이 구체적으로 사는 생활방식과 그가 딛고 있는 땅이 먼저고 거기에 따라 그의 머리 돌아가는 방식(사고, 방식)이 규정된다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하면 머리(생각, 사상, 주장)가 발(사회적 위치, 구체적인 삶)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발이 머리를 규정한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을 한다고 할 때, 그 이유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나는 그의 교육과정이라든가 사상편력을 추적해 보기보다는 그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과 그가 서 있는 땅, 그의 처지를 더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 … 지금 세상에는 누가 어떤 말을 할 때 사람들은 그의 머리를 쳐다보는 대신 그의 발을 바라보는 것이다. 종이에 써놓았을 때 똑같은 내용을 지니는 말도, 그 말을 하는 사람의 발이 어떤 땅을 딛고 있느냐에 따라 참말이 될 수도 있고, 이른바 이데올로기적인 언사 또는 자기합리화를 위한 말일 수 있음을 오늘날 사람들은 은연중에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 오늘날 한국사회의 병폐는 어디서보다도 말의 혼란상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대부분의 손꼽힐만한 대중매체들은 아예 진실을 저버린 지 오래고, 각계각층들은 다른 계층이 전혀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말들을 구사한다. 정부와 국민의 말이 다르고, 기업주와 노동자의 언어가 다르며, 기성세대와 젊은 층의 주장이 점점 더 크게 엇갈린다. 이런 현상은 교회내부에까지 그 여파가 밀려들어와 있는 것이 사실이다. … 그리스도 신앙인이란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인간세상에까지 내려오셨음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 사실을 ‘강생(降生/신이 인간으로 태어남)’이라고 하는 공간적 표현을 써서 나타내는 것은, 하느님의 원래 자리는 하늘이었는데 우리의 처지를 참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땅위에 붙어서만 사는 인간의 세계에까지 ‘내려오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런 뜻에서 그분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분이다. 무한의 거리를 가로질러 본래 이어질 수 없던 두 세계를 이어놓은 분이다. … 그분은 하늘에서 세상에 오신 다음에도 인간들 중 말째의 자리에까지 다시 내려가셨다. 말하자면 하느님의 강생은 두 단계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 우리의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머리 대신 발을 사용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그분을 흉내 내는 그만큼만 그리스도 신앙인이다.
< 31. 뭘 모르는 사람들 >
- “사람들은 맛있는 요리상을 앞에 놓은 듯이 희희낙락하고, 봄철에 누대(樓臺)에 오른 듯이 즐거워하는데, 나 홀로 고요하고 움직일 기척조차 없이 웃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구나. 힘이 빠지고 지쳐도 돌아갈 곳마저 없는 것 같네. 사람들은 모두 여유가 만만한데 나만 홀로 버려진 것 같구나. 나만이 바보의 마음을 가졌을까?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네.” 이것은 노자가 그 도덕경 20장에서 남긴 말이다. 세상살이에 재치가 있고 구태여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이 대강대강 지나치며 호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비해, 자신이 어린아이처럼 수완이 없고 바보처럼 뭘 모르는 모습을 그려 보여준 일종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지혜는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어리석은 것입니다”(1코린 4, 19).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까지 곁들이면 확실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눈이 열린 사람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사람다운 사람이란 으레 머리가 약간 돈 듯한 모습이게 마련인가보다. 특히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의 모습에서 멀어져가고 야수들이 우글거리는 숲속의 모습을 닮아갈수록 더욱 그런 것 같다. … 달리는 기차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의 눈에는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세상이 온통 쏜살같이 달음질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이 정상에서 벗어난 정도가 심할수록 그 안에서 얌전하게 가만히 있는 사람이 기준이 되어 바라보면 가끔 나타나는 정상인들이 크게 돌아버린 사람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르 3,21).
< 32. 웃음과 눈물 >
- 확실히 웃음은 사람에게만 있는 현상이다. 다른 동물에게서도 어떤 때 그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엄격한 의미에서의 웃음이 아니다. 웃음과 동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깊이와 차원을 지닌 존재로서의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현상 중 하나이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근본적으로 그 사유능력 또는 생각하는 힘에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어떤 존재가 실제로 생각하는지 안하는지를 밖에서 관찰만 해가지고는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거기에 비해서 웃음은 누구의 눈에나 뚜렷이 드러나는 현상인 것이다. 그래서 웃음은 처음 만난 존재가 사람인지 아닌지를 식별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판단기준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 이는 울음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울음 역시 인간에게만 있는 현상이다. 동물도 눈물을 흘리고 우는 듯이 보일 때가 있지만, 그것은 엄격한 의미의 슬픔을 나타내는 눈물이나 울음은 아니다. 기쁨과 함께 슬픔도 더 깊은 차원을 지닌 존재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또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는 표현이 있는 걸로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의 감정에 기쁨이나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감정 중에서도 기쁨과 슬픔은 가장 기본적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웃음과 눈물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 기본적 감정의 외적 표현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인간성의 바탕인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더 참답고 인간다운 사람일수록 속에는 그것이 더 생생히 살아있게 마련이다. … 순수한 마음을 보여주는 기쁨과 슬픔, 그 외적 표현인 웃음과 눈물도 인간의 마음이 비뚤어지면 같이 비뚤어지고 엇나간다.
- 누가 슬픔과 기쁨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정신적 건강 상태와 나아가 그 인간성이 손상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가장 확실한 지표의 하나이다. 반대로 인간성이 고장 난 사람은 이 슬픔과 기쁨, 눈물과 웃음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그것들이 자기 안의 마음이라는 기준을 떠난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마음과 외적 표현은 물과 기름처럼 각각 따로 놀게 된다. 그리고 그 증상이 심해지면 사람은 미쳐버린다. 정신분열증 환자가 보이는 대표적인 증세의 하나는, 웃고 우는 일이 객관적인 근거를 상실했기 때문에 같은 사람 안에서 이 두 가지 현상이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거짓웃음과 강요된 눈물을 거부하고 우리의 눈물과 우리의 웃음을 회복하는 일이다. 우리가 참으로 울어야 할 일을 발견하여 마음으로부터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때 우리는 기쁨과 웃음도 찾을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의 양식이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루카 6,21).
< 33. 듣기와 보기 >
- 책 속에서 우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낸 위대한 영혼들의 흔적을 만난다. 그런데 책을 통해서 우리가 다른 이들의 삶에 가 닿아보려고 하거나 인생의 궁극적 진리를 터득하려는 시도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그런 문제에 있어서, 사람의 말과 그 문자적 표현인 글은, 직접 경험을 대신해 주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남겨 놓은 글은 우리로 하여금 ‘간접’ 경험의 폭을 넓혀주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간접경험이라는 이 한마디는 엄청난 무게를 지닌다. 아무리 훌륭한 책을 많이 읽는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남의 인생만, 그것도 아주 어줍게, 구경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책에만 파묻혀 살면 우리는 자칫 삶의 무대에서 관객노릇만 할뿐 한 번도 직접 무대 위에 선 배역진으로서 실제로 살아보지 못하고 말 위험마저 있다. 우리말에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을 가리켜 총명(聰明)하다고도 말하거니와, 이것은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일이 제대로 되는 것, 다시 말해서 귀가 밝고 눈이 잘 보이는 상태를 뜻한다. 그만큼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 중에서도 듣는 일과 보는 일이 가장 대표적인 기능임을 말해준다. 그런데 성서에서는 흔히 ‘듣는다’는 말로써 하느님께 대한 간접경험을 가리키고, ‘본다’는 말로써 그분께 대한 직접체험을 지칭한다.
-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듣기’를 보충하고 완성시켜 줄 ‘보기’이다. 우리말에서는 직접 체험을 표현하기 위해 심지어 ‘맛’까지 ‘본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지만, 과연 고기의 맛을 설명으로써 알 수는 없고 ‘먹어보아야’만 그것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들은’ 바를 직접 ‘보는’데에까지 도달해야만 우리의 앎은 실제적인 것이 된다. 어디서보다도 신앙생활에서는 더욱 그렇다. 신앙인으로서의 우리 삶은 듣는 일과 보는 일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더 잘 보기 위해서 듣고, 들은 바를 더 잘 깨닫기 위해서 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듣기’와 더불어 ‘보기’이다. ‘듣기’가 빠진 ‘보기’는 자칫 우리를 주관적 환상에 빠지게 하고, ‘보기’가 빠진 ‘듣기’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껍데기만의 신심이나 율법주의, 한 마디로 바리사이적 태도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그래서 현세에 머물러 있는 동안, ‘듣기’와 ‘보기’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마치 새의 두 날개와 같다. 어느 한 날개만 부러져도 다른 날개는 아무짝에도 못쓰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남의 이야기를 듣는 일, 책속에서 무한정 진리를 찾는 일을 중단하고,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마태 6, 6)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 하느님을 보는 방법의 하나는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으면서 하느님만이 보시는 곳에 자신을 앉혀두는 일이다. 그리스도를 따른 이들이 행복한 것은 “많은 예언자들과 의인들이 보려고 했으나 보지 못한 것을 그들이 보았기”(마태 13, 16-17) 때문이다. 요한의 제자 두 사람이 예수를 따르고자 했을 때에도,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와서 보라”(요한 1,38-39 참조)고 간단히 말씀하셨다.
< 34. 신의 기쁨 >
- 하느님을 위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역사상 얼마나 끔찍한 죄악들이 저질러졌던가? 그 가장 단적인 예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이다. 그분은 당대의 신학자임을 자처하는 종교계의 지도자들이 나름대로 지니고 있던 신(神)관념에 비추어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죽음을 당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이 누구이며 그분이 즐기시는 바가 과연 무엇인가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올바른 신상(神像)을 지니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의 전 역사, 계시의 역사 전체는 투박하고 이교인들이 종교적 관념으로 오염되기도 했던 신관념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한 형태로 드러날 하느님의 참모습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해 가는 방향으로 신관이 정화되어 나간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결정적으로 또 완전히 드러내 보여주실 때까지는 사람들의 신상 중 어느 구석인가는 늘 비뚤어져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들은 비로소 하느님이 한마디로 “사랑이심”(1요한 4, 8)을 분명히 알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으로 가르쳐 주신 내용 중에서 유명한 ‘탕자의 비유’(루카 15, 11-32)는 그 가장 좋은 예의 하나이다. 하느님이 기뻐하시고 희열을 느끼시는 것은 멀쩡한 사람이 죽거나 멸망할 때가 아니라, 그와 반대로, 멸망했던 사람이 살아 돌아 올 때라는 사실이 더없이 인상적인 표현으로 나타난다. 예수께서는 죽었던 아들이 어떤 분이시며 그 즐기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 인간은 누구나 그 부모의 자식이며, 특히 하느님께서는 인간 하나하나에게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사람에게 가해지는 일체의 가혹행위는 하느님 자신의 심장에 칼을 꽂는 행위이며, 그런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희생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바로 잡음으로써 그 칼을 뽑아내는 일이다.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이고,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카 6, 6-8)
< 35. 말똥가리새와 짐승의 주검 >
- 1987년, 그동안 교주 행세를 해왔다는 여사장과 함께 자살한 32명의 시체가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세칭 ‘오대양사건’은 온 국민을 경악케 했지만, 특히 종교인들에게는 더욱 깊고 긴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종교인으로서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종교란 무엇인가? 또 사람들은 무엇을 찾아 그 문을 두드리고 있는가? 종교에 대한 대중적인 인기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예수께서도 대중적인 인기의 대상이 되신 적이 있었다. … 질병의 치유와 특히 빵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솜씨를 보고 밀물처럼 몰려들었던 군중은, 또 하나의 빵, 육체의 생명과는 다른 영혼의 생명을 위한 음식 이야기가 그분의 입으로부터 나오자, 이번에는 몰려들 때의 발걸음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썰물처럼 그분의 눈앞을 떠나갔다. 그리고 실망해 돌아가는 그들의 입에서는 볼멘소리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 6, 60)
- 썩은 고기를 먹고 사는 말똥가리새 떼가 하늘을 덮을 듯이 몰려왔다가 입에 맞는 음식을 찾아내지 못한 채 허공을 한 바퀴 선회한 다음 다른 곳을 향하여 날아가 버리듯이, 자신에게서 자기네 구미에 맞는 먹을거리를 찾아내지 못한 군중이 떠나가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시던 주님께서, 이번에는 군중과는 다른 사람들, 특별히 선택하여 당신 곁에 두시고 그 입맛을 바꾸는 훈련을 시켜왔던 열두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겠느냐?” … 가장 무겁고 긴 침묵의 일순이 지난 후, 베드로의 입을 빌려 표현된 열두 사도의 대답은 그 후 어떤 모양으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접하게 될 인류에게도 더없이 다행스런 것이었다.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요한 6, 68)
- 우리가 초기단계에서는 무엇을 찾아 종교의 문을 두드렸건 간에 신앙생활의 연륜이 쌓아갈수록 우리는 예수께서 가져오신 복음의 근본정신 그대로, ‘나’를 위하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남’의 위한 삶의 형태를 향해 조금씩이나마 자리를 옮겨가야 한다. 이런 근본적 태도변화와 함께,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 좋은 것과 궂은 것을 구분하는 우리의 판단기준에도 그만한 혁명이 이루어질 때에야 우리는 참으로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다. … 종교가 제 궤도를 벗어나면 세상에서 제일 추하고 사람들을 가장 철저히 파괴하는 세력으로 둔갑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타고난 이기적 성향과 거기에 따른 가치관에 근본적 혁명이 이루어지게 하는 쪽으로 기능을 할 때에만 종교는 제 모습을 갖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장자도 일찍이 말씀하셨다. “도를 깨우치면 소홀히 여겼던 가치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고, 늘 중요하게 생각하여 애지중지하던 것에 대하여는 그것이 사소한 것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는데, 이를 가리켜 참된 잊음이라 한다.”
< 36. 옛것과 새것 사이 >
- 예수회의 모니에 신부는 사제들을 위한 피정강론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똑같이 사시기 위해 오신 분이며 우리의 형제라는 사실하며, 우리는 그분께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 한다는 등을 강조하셨고, 그분은 그리스도교란 율법의 종교가 아니고 사랑의 종교임을 역설하셨다. 그리고 프랑스 교회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 중 하나였던 리오베 주교님의 말씀이다. “저는 구약성서 시대를 살았던 것입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한 걸음 더 물러나, 저는 그때까지 윤리적 감각만을 가지고 일종의 스토아 철학적 종교 속에서 살았던 거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복음의 정신은 내 안을 참으로 뚫고 들어오지 못한 형편이었던 것입니다. … 물론 내가 그전까지 받았던 교육과정 속에도 쓸 만한 요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마리아께 대한 참된 신심, 기도와 성체성사에 대한 취미 등이 그런 예들이지요. 그런데 거기에는 핵심이 빠져있습니다. 사랑이 결핍되었던 것이지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예수께서 오시기 전과 그 후의 시기는 하나를 어둠이라고 할 때, 다른 하나를 빛이라 할 만큼 근본적으로 다른 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년 성탄 밤미사에서 제1독서의 성서대목으로 채택하고 있는 이사야서(9, 1-2)는 이 두 시대 간의 차이를 대조해서 서술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 이들인가를 그림처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당신께서는 즐거움을 많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십니다. 사람들이 당신 앞에서 기뻐합니다. 수확할 때 기뻐하듯 전리품을 나눌 때 즐거워하듯” … 곡식을 거둘 때의 즐거움은 곧 농부의 것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이른 봄부터 찌는 듯한 여름을 거치는 동안의 피땀 어린 수고를 치르고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추수의 순간은 그때까지의 수고를 한 순간에 잊게 할 만큼 큰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복음의 정신을 그에 따르는 기쁨의 경험이 없이, 신앙생활이 그냥 의무감에 이끌려서만 유지되고 엄청난 위협을 곁들인 몇 가지 율법으로만 지탱되는 정도라면, 그것은 추수의 기쁨을 모르는 농부와 다름이 없다.
- 우리의 신앙생활이 참으로 그런 처지에 머물고 만다면, 우리가 아무리 하느님을 철석같이 믿고 종교행사에 빠짐없이 참가하는 신앙인이라 해도,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교 신앙인은 될 수 없다. 참된 신앙생활 안에는 특유함 맛과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 이 있게 마련이고, 다른 사람의 눈에는 띄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전혀 달리 보게 만드는 일종의 개안(開眼) 사건이 있을 수 있다.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인이란 나름대로 다 그런 과정을 거친 이들이다. …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 3). 이 말씀을 듣고 니고데모가 받은 충격은 그 한사람만의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만나기 시작하는 누구나 겪는 것이다. 성탄, 그것은 이미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과거의 한 사건일 뿐이지만,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야 할 우리에게는 바로 자신이 지금 당장 거쳐 지나가야 할 충격이다.
# 116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117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 책 이름 : 작은 손수레 ]
- 지은이 : 카를로 카레토(수사)
- 옮긴이 : 오영민
- 펴낸데 : 성바오로
- 출판일 : 2000.03.25 - 69p
- 내 용 : 카를로 케레토의 '보이지 않는 춤(365일 명상)'중 5월 묵상만 분책한 명상집
- 지은이 저서 : '사막에서의 편지', '주여, 왜?' 등
[ 표지의 글 ]
- 믿음 안에서 삶을 대하는 그의 영적인 생명력은 그 시대의 사고방식에 편승하지 않았다. 이 생명력은 복음의 삶에서 심오한 기반을 끌어 냈으나 그것으로 그치지는 않는다. 오늘날의 예언자와 같은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동유산이 되는 영적 세계와 삶을 권고했다. 카를로 형제의 메시지는 활기차고 풍요로운 전망으로 나타나는 '사막'의 강한 체험에서 확인된다. 사막은 나날의 모호함과 어둠을 감소시키고, 모호함과 어둠이 확실해지며, 삶의 불안을 가라앉하는 영의 심오함으로 스며드는 메시지 안에서 다시 제안되고 살게하는 하느님 말씀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게 한다. 이 책을 읽노라면 카를로가 계속해서 아낌없이 내주는 평화에 대한 새로운 염원의 감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5월 "믿으셨으니 복되십니다." ] (루카 1, 45)
< 1일. 하느님을 어지럽게 해드리는 것 >
- 해가 뜨기 전에 모래 언덕 위에 올랐습니다. … 수평선으로 갈라져 있는 모래와 하늘,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거기에 계십니다. 마치 모래와 하늘이 거기에 있듯이 말입니다. 당신은 그분과 즉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현존을 감각을 통해, 환상을 통해, 사고를 통해 찾는다면 당신은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의 미미한 도움만을 받을 것입니다. 반면에, 그분의 현존을 믿음을 통해 얻는다면 그분의 현존이 당신을 공중으로 떠받쳐 줄 것이고, 희망을 통해 하느님을 만지기를 갈망하면 당신이 그분의 빛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감을 느끼게 될 것이며, 그분의 사랑을 생활로 살게 되면 그분 자신이 당신에게 주실 관상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하느님을 어지럽게 해드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실 것입니다.
< 2일. 뿌리 >
- 나의 집안이 신자 가정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신앙의 분위기에서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기도하고 하느님을 두려워하기를 배웠으며 성당에 자주 나가고 불경한 말을 삼가고 전례에 참석하고 성탄이 다가오면 구유를 만들곤 했습니다. 나는 전통적이고 아주 정적이며 창조적 열정이 부족한 내 유년시절의 신앙생활을 돌이켜볼 때 대단히 유효한 가치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즈음도 나는 신앙과 문화,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기도와 평화, 교회와 가정, 환상과 현실, 하느님과 인간 등의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 놓은 조화에 짐짓 놀라게 됩니다. … 나의 가정은 내가 믿음과 희망의 기초를 마련하도록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 3일. 어린아이가 된다는 것 >
- 하느님은 결코 우리의 삶에서 떠나 계시지 않고 그러실 수도 없으십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 있고 그분 안에서 움직입니다. 하느님의 바다에서 항해하기를 터득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신앙행위가 필요한지 모릅니다. ‘하느님 안에서’ 이 항해를 생활화하기를 터득하고 폭풍우가 휘몰아쳐도 평온하게 남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 다윗은 이런 극적인 항해를 알고 있었고 그의 어린 영혼은 오직 나약함으로 무장한 골리앗의 강력한 힘에 거슬러 싸우기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다섯 개의 돌로 거인을 쳐 이기는 장면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자신의 하느님, 안에서 살고 있고’ 자신이 신뢰하는 분이 바로 그 하느님 곧 결코 패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되고 골리앗이 낙담할 때 다윗은 그 사실을 기억하며 자신의 삶 전체를 걸고 노래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파아란 풀밭에 이 몸 뉘어 주시고, 고이 쉬라 물터로 나를 끌어 주시니 내 영혼 싱싱하게 생기 돋아라.”(시편 22) 그리고 그는 그가 어른이 되어 나아가는 길이 더 힘들어지고 믿음이 불안할 때도 이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탁월한 믿음은 영적 유년기를 필요로 합니다.
< 4일. 사물 저편을 보십시오 >
- 과거로 돌아가 어머니의 태중에 있는 당신을 상상해 보십시오. 자궁 속에 갇혀서 손과 발과 당신의 존재로 당신의 어머니와 접촉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녀를 감지하고 느끼고 만지지만 그녀를 보지는 못합니다.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 당신 어머니의 배는 당신의 ‘창세기’입니다. 그 안에는 이해하지 못한 채 받아들여야 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창세기’를 밝혀 주는 것은 오로지 당신이 볼 수 없는 실체를 볼 수 있는 눈인 믿음과 시간이 밝혀질 확신의 희망입니다. … 때가 되어 묵시록의 섬광이 빛나게 되면, 당신은 모든 피조물과 함께 모친의 자궁에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하느님을 마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초월자이신 그분을 당신 사랑의 손가락으로 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물들과 역사와 우연의 복부 속에 그리고 생성의 역동성에 살고 있습니다. 오직 세상의 종말만이 사물 저편에 있는 신적 초월성을 우리에게 열어 보여 줄 것이고, 우리는 그때에 비로소 하느님을 마주 보게 될 것입니다.
< 5일. 패하지 않는 것 >
-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마치 생명이 하느님의 선물이고 역사가 하느님의 선물인 것처럼 말입니다. … 내가 믿을 때 나는 하느님과 이야기하고, 내가 믿을 때 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내가 믿을 때 나는 하느님을 보게 됩니다. 나는 믿음으로써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되고 새로운 영역, 곧 하느님의 영역에 들어갑니다. 나는 믿음으로써 하늘을 통과하여 볼 수 없는 곳으로 여행을 합니다. 내 인간 본성의 무게를 극복하고 나의 나약성을 뛰어넘어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믿음은 이처럼 그 위대성과 발전 가능성에 있어서 한계가 없는 특별한 것입니다. 믿음은 나로 하여금 두려움을 이기고 죽음을 뛰어 넘게 합니다. 성 요한의 말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입니다.”(1요한 5,4-5)
< 6일. 도약 >
- 나는 세상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생활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생활은 본질적으로 어둠 속의 도약이며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볼 수 없는 하느님에 대한 도약입니다. 캄캄한 우물 앞에 서서 ‘눈을 감고 뛰어내려라.’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일 바닥이 없다면? 아무도 받쳐주지 않는다면? … 믿음은 하나의 시련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두시는 관심은 우리가 이 믿음의 행위에 잠겨 있는지를 보시는 것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창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오기를 애타게 바라보는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분은 군중 사이를 헤집고 헐떡이며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 아들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아버지와 같으십니다. 믿음이 사랑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결국 믿음이 으뜸이라는 사랑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히브 11,6)
< 7일. 시험 >
- 성숙한 믿음의 행위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엄한 인격적 행위입니다. 하느님 백성인 우리가 이 믿음의 행위의 가장 위대하고 참된 모형으로 삼는 내용은 성서에 있으며 아브라함의 시험에 관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창세 22,2). 바로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제안된 순수한 믿음의 도약입니다. 인격적 행위요 죽음의 행위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런 형태의 제안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 하느님께서는 극형을 요구하셨습니다. 오! 아브라함이 차라리 그 칼을 자신에게 돌려대는 일이었다면 더 쉬웠을 텐데! 순수한 믿음의 행위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가장 사랑하는 것을 바치는 죽음의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사랑만이 죽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 8일. 우리 가운데 >
- “배는 이미 뭍에서 멀리(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쪽으로 가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4-27). 이것이 바로 믿음의 본질이고, 하느님과의 새로운 관계이고,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확신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시고 죽음이 그분에 의해 극복되었으며, 영원한 생명이 존재하고 우리가 불사불멸하리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믿는 것, 희망하는 것,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 신비스러운 싸움이 일궈내는 최대의 걸작입니다.
< 9일. 스승 >
- 하느님의 신비 앞에서 소리 지르지도 않았고 천사 가브리엘을 유령으로 착각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하느님의 일을 온화하고도 침착하게 맞이한 인간이 있으니 곧 나자렛의 마리아님입니다. 마리아님은 믿음에 대한 시험에서 합격하셨습니다. …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진정, 나는 마리아님을 내 믿음의 스승으로 생각합니다! 그토록 침착하고 용감한 그녀의 태도에 나는 마냥 넋을 잃고 맙니다. 나 같으면 수많은 설명을 요구했을 테고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 앞에 죄인으로 살아가야 할 생각에 몹시 동요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리아님은 신적 부성(父性)의 신비를 감추기 위해 미혼모의 역할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참으로 크나큰 믿음! 진정 우리의 나약함을 극복하는 그 희망! 진정 새로움을 체험하여 하느님의 존재를 우리 안에 실현시키는 그 사랑!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가질 때 패하지 않음을 느낍니다. 믿음으로써 두려움이 극복됩니다.
< 10일. 부활 >
- 폭풍우가 숲을 파괴하고, 지진이 땅을 흔들고, 불길이 당신 집을 삼키는 것을 보게 될 때 당신은 스스로에게 말할 것입니다. “숲은 되살아나고, 땅은 안정되리라 믿는다. 나는 내 집을 다시 지으리라.” 죄가 당신의 목을 죄어 질식해서 죽게 되었다고 느낄 때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말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니 나는 내 죄에서 다시 일어나리라.” … 세상이 하느님의 패배로 끝난 것으로 보이고 무질서, 폭력, 테러, 전쟁의 소용돌이가 난무하는 것을 느끼며 온 땅이 혼돈상태에 있는 것으로 생각될 때 당신은 자신에게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정 구원을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으며 그분의 구원이 이미 우리 가운데 있다.” 당신의 부모, 자녀, 배우자, 소중한 친구가 죽어 가는 당신 앞에 있고, 당신이 그들과 헤어져야 하는 참담한 고통 속에서 그들을 응시하게 될 때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그리고 그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다시 봅시다. 용기를 내십시오.” 이것이 부활을 믿고 있다는 뜻입니다.
< 11. 부활을 믿는다는 것 >
-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실에는 뭔가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의 경우에는 죽어가는사람을 살리는 것을 의미하고, 루터 킹의 경우에는 죽음에 맞서는 것을 의미하며, 떼제 공동체의 원장인 슈츠 아빠스의 경우에는 자신의 수도원에 희망을 안겨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려 있는 모든 나병 요양소는 부활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모든 평화조약은 부활에 대한 믿음의 행위입니다. 받아들인 모든 책임은 부활에 대한 믿음의 행위입니다. 당신이 원수를 용서해 주고, 배고픈 이의 굶주림을 덜어 주고, 힘없는 이를 돌보아 줄 때 당신은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당신이 결혼할 용기를 가지고, 태어나는 자녀를 받아들이고, 가정을 꾸밀 때 당신은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믿음의 생활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며, 형제를 믿는 것을 의미하며, 아무에게도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형제로, 마리아님을 어머니로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 12. 작은 손수레 >
- 당신은 이상한 작은 그림 하나를 보게 됩니다. 그 그림은 마리아님의 팔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가 그려져 있는데, 그 어린아이는 요셉이 그를 위해 나무에 조각해 만들어 준 장난감처럼 보이는 작은 손수레를 손에 꼭 쥐고 있습니다. 본래 4세기의 한 익명 작가가 그린 그림에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작은 새였던 것을 내가 대치시켜 놓았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비오 12세 교황은 나를 로마로 불러 청년 가톨릭 액션을 지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그 일은 작은 일이 아니어서 나는 자주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리는 것 같았고 그럴 때마다 고뇌가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나는 상당히 유명한 그 그림의 복제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내게 매우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작은 새를 우리 가문의 이름을 상징하는 작은 손수레로 대치하기 위해 충동을 느꼈던 것은 압니다. 나는 그 어린아이의 그림을 그리면서 마리아께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리아님, 보살펴 주십시오. 나는 당신 아드님의 손에 들려 있는 장난감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습니다. 특히 어려움 중에 있는 지금은 더 그렇습니다. 그러니 보살펴 주십시오.” 나는 로마에서 고뇌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으나 마음이 답답할 때면 그 평온한 그림을 떠올림으로써 평정을 되찾았고, 그 날을 평화로이 마칠 수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말하자면 어려운 순간을 닥쳤을 때, 내 생각은 늘 예수님께서 나무로 된 당신의 작은 손수레를 꼭 쥐고 계신 그 그림 위에 머물렀습니다. 그 수레는 험난한 세상길을 삐거덕거리며 지나가는 또 다른 수레의 상징이었습니다.
< 13. 아베… >
- 나는 그녀와의 생명력 넘치는 만남을 이루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내가 ‘예(禮)’를 바쳐야 하는 그런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녀는 내 마음의 자매셨고, 내 여행길의 동반자셨고 내 신앙의 스승이셨습니다. …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내가 내 신앙의 행진을 온통 걸어서 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다행이도 나는 어둠 속에서도 떨지 않았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때에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비록 내가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한 그 ‘밤’을 체험했던 곳이 사막이었지만, 바로 그곳에서 지낸 수년간의 시간이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내가 죽게 될 때, 여러분이 내 무덤을 찾아오고 여러분이 하느님 나라의 지체들 간의 통교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내게 여러분이 이런저런 악에서 치유될 수 있도록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의 믿음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하십시오. 그것이 기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선물입니다. 자, 나는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베마리아.
< 14. 믿음의 용기 >
- 간음을 했다고 해서 투아레그족의 캠프에서 살해된 미혼모 사건 이후 나자렛의 마리아님과 나의 관계는 훨씬 더 친밀해졌습니다. 갑자기 그녀가 내 자매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 비극적 사건을 루카 복음에 접근시켜 보았을 때, 비로소 마리아님이 천사의 요구를 받아들이시고 그녀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셨던 용기를 온전히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미혼모의 역할을 받아들이셔야 했던 것입니다. 누가 그녀를 믿었겠습니까? 어느 누가 집에 돌아와 “ 내 뱃속에 든 이 아기가 하느님의 아들이에요.”라고 이야기하는 어린 소녀의 말을 곧이듣겠습니까? … 마리아님은 믿음 안에서 그 불가능한 일에 대한 해결을 하느님께 맡겨 드릴 용기를 가지셨던 것입니다. 즉 그녀의 믿음은 순수했습니다. … 우리는 다음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즉 성서는 대상(隊商)들이 살고 나귀들과 양떼가 풀을 뜯는 대초원과 사막사이에 있는 바로 그 땅에서 씌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의 의견을 물을 줄 압니다. 왜냐하면 하늘이 삶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 15일. 신비를 받아들이십시오 >
- 나는 마리아님께서 내게 선물하신 묵상을 맛들이고 싶었습니다. … 믿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늘 당신을 초월해 있고 당신의 보잘 것 없는 한계를 넓혀 주는 그 신비를 받아들이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분을 육신으로 잉태하시기는 간단하셨겠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그분을 신앙으로 잉태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 믿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면, 믿지 않는 것은 분명 죽음입니다. 모든 희망을 거슬러 희망하는 것이 영웅적 행위라면, 희망하지 않는 것은 죽음을 초래하는 고통입니다. 사랑하는 것이 피를 대가로 한다면, 사랑하지 않는 것은 지옥입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
< 16일. 왜 믿으셨습니까 >
- 확실히 신앙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당신의 형제들인 우리에게뿐 아니라 당신에게도 어둡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 땅 위에서는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수고보다 더 큰 수고는 없습니다. 당신은 그 사실을 아십니다. 당신의 사촌인 엘리사벳이 당신에게 “당신은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믿도록 도와주시니 당신은 복되십니다. 당신은 예수님 탄생의 모든 신비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니셨고 무한히 위대하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작게 드러나는 그 사건에 당신의 육신을 내놓을 용기를 가지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당신은 그 무한한 신비의 무게를 견뎌 내셨습니다. 당신은 영원하신 그분의 빛 앞에서도 두려움에 떨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초월성이 어떻게 인간의 더러움 속에 강생할 수 있겠냐고 당신에게 속삭였던 사탄의 냉소에 대한 두려움에도 쓰러지지도 않으셨습니다. 참으로 큰 용기입니다. 당신은 오직 당신의 겸손하심의 도움으로 그와 같은 빛과 어둠의 충돌을 견뎌 내실 수 있었습니다.
< 17일. 보지 않고서 >
- 예수께서 토마스에게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을 때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암시하고자 하신 것이 아닐까요? 아마도 당신이야말로 보지 않고서도 믿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당신은 복되신 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우리 신앙의 스승이십니다. 당신은 믿기 위해서 볼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당신은 부활하신 당신 아들을 믿으셨고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보지 않고서 믿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나도 보지 않고 믿기를 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도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내가 믿을 때 나는 결코 패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1요한 5,4)
< 18일. 제가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 그리스도님의 부활을 보는 것은 눈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입니다. 눈이라는 것은 표징은 볼지 몰라도 너무나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현존을 믿음을 통해서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분이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실 때에야 비로소 그분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루카 24,31 참조) 하느님과의 만남은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믿음은 어둠에 싸여 있습니다. 희망은 고통스럽습니다. 사랑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마리아님, 제가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당신의 믿음을 제게 주소서.
< 19일.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
- 사랑을 위해 최대한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더 내 자신에게 신경쓰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내가 자신을 잊어버리면 잊어버릴수록 더 내 일들이 잘 되어 갈 것입니다.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당신의 사랑이. 전쟁이 있는 곳에 평화가. 폭력이 있는 곳에 온유가. 복수가 있는 곳에 용서가. 부유함이 있는 곳에 사랑이. 가난이 있는 곳에 즐거운 환대가 있게 하소서. 공포가 있는 곳에 안정이. 슬픔이 있는 곳에 즐거움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곳에 믿음이. 절망이 있는 곳에 평화가. 죄악이 있는 곳에 은총이. 냉담이 서려 있는 곳에 열의가.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이.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이. 공허함이 있는 곳에 충만함이.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이. 착취가 있는 곳에 책임이. 사기가 있는 곳에 봉사가. 난폭함이 있는 곳에 온유함이. 왕국이 있는 곳에 봉사가 있게 하소서.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 20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
- 하느님의 뜻은 하나의 실체입니다. 그분은 세상만물을 창조하셨고 구원을 제정하셨으며 인간을 그리스도님과 일체를 이루는 숭고한 계획을 통해 들여 높여 신적 본성에 참여시킴으로써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리실 것을 생각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뜻은 위대한 계획들을 세웠을 뿐 아니라, 아주 사소한 계획들까지도 그 위대한 계획들을 지향하도록 함으로써 아무것도 그분의 지혜와 능력을 벗어날 수 없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은 모든 사물에, 모든 상황에, 인간의 모든 결정에 존재합니다. 마치 본능과 자연의 법칙을 통해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모든 것에 존재하듯이 말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더 나아가 사랑과 진리와 선으로 가득한 그분의 뜻에 따르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분의 뜻은 내 안에 존재하며 활동함으로써 내 뜻으로 하여금 항상 더 투명하고 선하고 위대한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도록 합니다. … 우리는 그분에게 순명할 때 인간 안에서 오직 그분을 보게 됩니다.
< 21일. 열쇠 >
- 나는 체험에 비춰 자주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일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만들어 내려고 애를 썼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 그러나 하느님을 만들어 낼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미 존재하시며 우리가 침묵하거나 기도할 때 그분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우리 가까이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단순하신데 우리가 그분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 가까이에 계신데 우리가 그분을 멀리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현실적 사건들 속에 계신데 우리가 그분을 꿈에서 불가능한 유토피아에서 찾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진짜 비결은 어리고 단순한 마음과 정신적 가난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의 내적 경험과 부와 간교함에 의해 좌절됩니다. … 하느님을 보고 못 보고는 우리의 눈에 달려 있습니다. 즉 만일 단순한 눈이라면 그분을 보겠고 악의에 찬 눈이라면 그분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믿음이라는 직관적 능력을 주시어 인간의 여정을 인도하시고 밝혀 주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을 모든 사람에게 부여하십니다.
< 22일. 비유와 상징으로 >
- 하느님의 존재는 그분의 걸음걸이를 느끼는 사람과 단순한 사람, 선한 사람, 진실한 사람에게는 분명합니다. 단순하지 못하고 선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하다는 것은 죄인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의 존재는 죄인에게는 분명하지 못합니다. 적어도 상황에 따라 분명하기도 하고 분명하지 않기도 한 하느님을 나는 비유 속의 하느님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심에서 그 본성적인 방법을 계속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비유로 말씀하시며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마태 13,13) 비유 속의 하느님은 상징들의 베일(망사 가리개)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 그분은 걸어가시기도 하고 당신의 삶 속으로 들어오시기도 하고 나타나시기도 하고 사라지시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분은 당신이 결코 한 곳에다 붙잡아 둘 수 없는 그런 분입니다. 또 그분은 예고되지 않은 역사 속에, 열리지 않은 배아(胚芽) 속에 감추어 계십니다.
< 23일. 그분을 찾았지만 >
- “사랑하는 임에게 문을 열어 드렸건만 당신은 간데없어 나는 넋을 잃었소. 당신을 찾았건만 만날 수 전혀 없고 당신을 불렀건만 대답 하나 없었소. … 혹시 내 임 만나거든 여쭈어 다오, 임 그리다 나는 병들었다고.”(아가 5,6-8) 나는 살아오는 동안 어째서 하느님께서 이렇듯 괴팍한 행동을 하시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어째서 그분은 이렇듯 오랫동안 침묵하십니까? 문을 두드려도 왜 열어 주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나중에 인내로이 여정을 밟아 오면서 나는 처음에 느꼈던 그런 어려움에 짓눌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단식투쟁을 하는 사람의 의지로 그분의 문을 두드리고 무엇보다도 특히 복음을 참되고 냉정한 것으로 믿음으로써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했고, 하느님의 행동방식을 깨닫기 시작했으며, 그분의 조용한 발걸음을 분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내가 문을 열었을 때 그분이 도망가시더라도 더 이상 놀라지 않았습니다. 문을 여는 것은 그분의 몫이었지 항상 조급함으로 가득차 있는 내 몫이 아니었습니다. 죄는 아담의 조급함입니다. 그런데도 나의 소유욕이 그분을 위한 참된 사랑보다 더 강합니다.
< 24일. 가난한가 부유한가 >
- 하느님의 자비가 가난한 사람에게 이끌리는 것이 사실이라면 죄인은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사람이기에 그분의 자비를 가장 많이 끌어당깁니다. … 인간은 하느님께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만큼 더 행복하고 그분에게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만큼 더 초라해집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벗어나는 죄는 흥미로운 것도 아니고 기쁨, 충만감, 평화를 주지도 않으며 계속해서 당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죄인이야말로 진정 하느님의 동정을 유발시키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 복음 전체가 루카 복음에 나오는 비유, 즉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를 이야기하는 그 비유 속에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 귀환은 하느님의 승리이고 하느님의 기쁨 그 자체입니다.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사랑에 대한 그의 갈증이 해소됩니다. 나는 우리가 자신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느님을 알아 모실 때 모든 사람이 구원된다고 확신합니다.
< 25일. 어린 아이처럼 >
- 시련 앞에서 평온하게 머무를 수 있기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거저 받고 있는 모든 삶은 바로 이 승리와 이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 우리가 할 일은 활기찬 노력이고 우리 신심의 건물을 차곡차곡 쌓는 것이며, 오직 하느님께로부터 비롯하는 신앙의 선물에 우리와 우리의 노력에 달려 있는 지속적인 신앙행위를 통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협력을 요구하십니다. 신앙행위들을 통해 다윗은 신앙적으로 더욱 강해졌고, 유딧은 더욱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고, 요셉은 더욱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앙의 행위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께 대한 신뢰 속에서 사는 데 익숙하도록 합니다. … 사랑으로 충만한 팔에 안겨 그의 탄생을 원하고 생각했던 사람의 보호 아래 잠드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야말로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의 가장 완벽한 요약이며, 하느님의 신비 속에 살고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평화의 바탕을 이루는 신뢰를 가장 적절하게 드러내 주는 일이다.
< 26일. 하느님 앞에서 >
- 나는 일찍이 그분에게 감싸여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분은 ‘항상 현존하는 현존자’로서 내가 걸었던 숲 속에서 나뭇잎들을 통해 나를 지켜보셨고 내 머리 위에 살아 움직이듯 걸쳐 있는 구름을 통해 나를 지켜보셨습니다. … 나는 하느님 안에서 마치 공중의 새처럼, 불 속의 장작처럼, 어머니 품 안의 아기처럼 느꼈습니다. 맨 마지막 상징적 표상이 가장 강하고 가장 사실적이었으며 지금도 내 안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진정, 나를 품어 안는 여인의 모태야말로 온 우주의 모티브요,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게 하는 자리이며, 하느님께서 나를 당신 자녀로 만드시는 행동방식에 대한 표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분 안에서 살고 숨 쉬며 생명력을 지닌 그분의 현존을 누립니다. 비록 아직은 성서가 이야기하는 대로 ‘얼굴을 맞대고’(1요한 3,2참조) 그분의 거룩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때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아직은 때가 이릅니다.
< 27일. 하느님만이 >
- 선택된 백성의 역사는 하느님께서 온갖 상황에서 끊임없이 “너는 나를 믿느냐?”는 물음을 던지시는 소수 인간들의 역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나는 강한 팔로 이집트 종살이에서 너를 끌어내 왔고 너를 마른 땅으로 인도했으며 너를 천생 만나로 양육했으며 바위에서 샘솟는 물로 너를 마시게 한 하느님이다. … 그런데 너는 나무와 은으로 우상을 만들어 섬겼고 너의 하느님인 나를 저버렸다.” 이것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져 온 역사요, 이스라엘의 역사요 우리의 역사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을 회개시키는 일을 위해서는 위대한 설교가들이 있다고 확신하고는 하느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우리의 기도를 아무런 기대도 걸지 않고 바치는 청원기도처럼 쓸모없는 것으로 전락시켜버립니다. 이와 같이 이상한 풍토에서는 기도와 모순과 타협이 뒤섞여 있는 빈약한 우리의 신앙생활이 신앙과 감성적 성향의 허울 좋은 희미한 빛 속에서 하느님과 세상 사이에 등거리를 유지하며 흘러가게 됩니다. … 하느님만이 계시고, 하느님만이 아시며,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 28일. 때가 올 것입니다 >
- 하느님의 계획들이 있습니다. 이 계획들은 중요합니다. 인간의 계획들이 있습니다. 이 계획들은 중요하지 않거나 적어도 하느님의 계획들과 일치를 이루는 한에서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선하는 쪽은 하느님이시지 인간이 아닙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강생의 때가 이르도록 결정하지 않으셨다면 마리아님 자신도 그리스도를 보시지 못한 채 기다림 속에서 돌아가실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분이 오셔서 ‘오너라’ 하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면 그 갈릴래아 사람들은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계속하며 가파르나움의 회당에 다녔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믿음을 통해 배워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즉 하느님에 대한 기다림입니다. 이 기다림은 결코 작은 노력이 아닙니다. ‘계획을 세우지 않고 침묵 가운데 이루는 기다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할 행위입니다. 마침내 ‘부르심의 때’, 말을 해야 하는 때, 결실의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때에 우리가 자신이 그 놀라운 일들의 주역이라고 생각한다면 눈이 먼 것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놀라운 일은 하느님께서 이렇듯 비참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를 도구로 이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 29일. 어떤 정원 >
- 황무지에 정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타락하기 전 인류였습니다. 그 정원은 수세기에 걸쳐 일손이 닿지 않고 갖가지 혼란으로 파괴되었습니다. 이제 그것은 황무지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노동 없이는 맨 처음의 정원 모습을 되찾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흘려보내신 물이 다시 지하로 유입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할 일은 그 물을 지상으로 끌어 올리는 것입니다. 또 운하를 만들고 땅을 파고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는 것입니다. 인간은 정원을 다스리는 법, 즉 계절과 씨앗의 질, 물, 햇빛 등을 따라야 하나 이를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일을 합니다. … 그분은 정원을 만드셨고 오랫동안 가꾸어 오셨으며 진짜 정원사이시기 때문에 이미 앞서 그 정원을 잘 알고 계신 분에게 의탁하는 것이 모름지기 가장 합당하고 유익하고 참되고 값진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자신의 피로써 그 정원을 되사신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믿음의 결핍 때문에 그분을 생각하지 않고, 그분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 그분을 바라보지 않고, 그분의 뜻을 받들지 않고, 그분을 찾지 않습니다. 믿음은 세상을 충만케 하시는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을 뜻합니다.
< 30일. 그분의 거처 안에서 >
- 오늘날에는 믿는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시대의 명백한 표징입니다. 문화의 타락이 믿음을 황폐화시켰고 문명의 전이가 그 믿음에 고통을 가했습니다. 하느님을 더 쉽게 부정적인 측면에서 인식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하겠습니다. … 특별히 오늘날 같은 ‘묵시록’의 때에는 요한의 책이 기도하기 좋은 책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 나는 목마른 사람에게 생명의 샘에서 솟는 물을 거저 주겠다.”(묵시 21,6) 그리고 외로움에 두려워 떠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묵시 21,3). 또 고통을 당하여 떠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4-5). 그러나 진정 묵시록이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을 밝혀 주는 가장 훌륭한 책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시는 하느님, 돌아오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태도에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공동체는 에페소에서 “마라나타” 곧 “오소서, 주 예수님, 오소서!”(묵시 22,17-20참조)라고 기도했습니다.
< 31일. 친교 >
- 거룩한 친교는 믿음으로 시작되고 믿음으로 끝납니다. … 거룩한 생활이 천국으로, 친교로, 지속적인 기도로 바뀔 것입니다. … 이미 지상에서 생활한 친교의 생활은 하느님 나라의 예표요 참된 평화입니다. 그 생활은 사랑의 충만함입니다. 여러분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하겠습니다. *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내 하느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하고 기도해 보십시오. * 일하러 가서 피곤하고 도움이나 내적 평화가 필요할 때는 “내 아버지, 당신께 저를 맡깁니다.”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 현실과의 충돌, 형제들과의 충돌로 고통을 당할 때는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고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 예수님의 수난을 몸으로 체험하며 고통을 느낄 때는 “주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힘주어 말씀해 보십시오. * 여러분의 생활이 어둡고, 여러분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의 맥을 느끼지 못하실 때는 “주님, 당신은 저의 목자이십니다.”라고 용기 있게 말씀해 보십시오. * 죽음에 임박하여 여러분의 미사를 거행할 때 십자가에 계신 성자를 바라보며 ‘아멘’이라고 하십시오. 그 순간 여러분은 혼자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의 하느님이 마치 여러분의 일생 동안 함께하셨듯이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바로 그때 참 생명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 117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118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 책 이름 : 연옥 영혼을 위한 십자가의 길 ]
- 지은이(편역) : 성바오로수사회
- 펴낸데 : 성바오로
- 출판일 : 2004.05.20 - 55p
- 내 용 : 연옥 영혼들을 위한 십자가의 길 14처별 기도서
[ 십자가의 길 기원 ]
- 예수님이 당하신 수난과 죽음의 길에 대한 묵상을 가장 먼저 시작하였고, 게쎄마니 동산 또는 빌라도의 관저에서 갈바리아에 이르는 십자가의 길을 가장 먼저 찾았으며, 우리 구세주께서 가신 죽음의 길을 수도 없이 따라 걷곤 하던 사람은 바로 구세주의 어머니이시다. 우리의 어머니이시다. 교회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그분이 거쳐 가신 고난의 장소들을 찾곤 하셨던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게서 비롯되었다. 성모 마리아는 당신이 이 기도를 바치셨음을 성녀 비르지타에게 환시 중에 확인해 주셨다.
- 마리아는 터키 에페소에서 지내시던 시절에 집 뒤 언덕에 직접 십자가의 길을 설치해 두시고 그곳을 오가시며 끊임없이 묵상하곤 하셨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신심은 12, 13세기에 널리 퍼졌다. 십자군으로 참전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할 수 있는 장소들을 찾아보았고, 유럽으로 돌아와서는 그 장소들과 관련된 장면들을 돌판에 새겨 적당한 자리에 설치했다. 그리고 그 지점들을 ‘작은 예루살렘’이라고 부르며, 그 앞에서 기도와 묵상을 했다. 또한 벨기에 앤트워프에 있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은 수도원 묘지에 성모 마리아의 일곱 가지 고통을 표현한 7개 처를 세워 놓고 기도와 묵상을 하기도 했다.
- 프란치스코회는 1342년에 예루살렘 성지를 보존하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관심을 신심을 촉진하는 일이 주요 임무들 가운데 하나였다. 십자가의 길은 많은 수도원들과 성당들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널리 성행했다. 그리고 처들의 숫자도 일정하지 않고 다양했으나, 클레멘스 12세 교황 때인 1731년에 오늘날과 같이 14개 처로 확정했다. 연옥 영혼들의 대변자인 성 레오나르도는 특별히 ‘십자가의 길의 선교자’로 알려질 정도로 열렬히 이 기도를 권장하였다. 미사성제와 더불어서 십자가의 길은 세상을 떠난 가까운 가족 친지나 친구들의 영혼을 도울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이고 유용한 수단이다.
[ 에페소 성모님의 집 ]
-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에 사도 요한은 성모 마리아를 터키의 에페소로 모시고 갔다. 성모께서는 그곳에서 지상 생애의 마지막 9년을 지낸 것으로 추정된다. 가경자 안나 카타리나 에머리히(1774-1824)가 받은 계시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던 1891년에 에페소에서 성모께서 지내시던 집이 발굴되었다. 독일 베스트팔리아 태생으로 오상을 받았고, 환시를 보았으며, 예언을 하기도 한 에머리히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생애’라는 저서에서 성모님의 십자가의 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집 뒤 조금 떨어진 언덕에 일종의 십자가의 길을 만드셨다. 그분은 우리 주님께서 돌아가신 뒤 아직 예루살렘에서 지내고 계시던 시절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갈바리아에 이르는 길을 주님과 함께 괴로워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따라 걷곤 했다. 아드님에 대한 사랑이 극진한 나머지 늘 아드님의 고통을 묵상하지 않고는 살아가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 나는 그분이 새로운 거처에 도착하신 직후부터 이 길을 걸으며 묵상하기 위해서 날마다 집 뒤에 있는 언덕을 오르시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성모님 혼자서 걸음수를 재면서 다니셨고, 여러 번 거듭해서 걸음수를 재신 끝에 우리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되새기기에 적당한 지점들을 정하셨다. 그리고 이 지점들에 돌을 세워 표시하거나 또는 이미 나무가 서 있는 곳에는 나무에다 표시를 하였다. 그 길은 숲으로 이어졌는데, 성모님은 이 숲 안에 있는 언덕 하나를 갈바리아로 정해 표시해 놓으셨고, 다른 언덕에 있는 작은 동굴은 그리스도의 무덤으로 정해 표시를 해 놓으셨다. 마침내 열두 지점에 표시를 하신 다음에, 성모님은 시중드는 사람과 함께 그 장소를 찾아가셔서 침묵 중에 묵상하곤 하셨다. 처음에는 글씨가 새겨진 평범한 표석들 외에는 각 지점을 나타내는 그림이나 고정된 십자가가 없었으나, 계속하며 방문하며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았더니 그곳이 점점 아름답고 찾기 쉽게 바뀌어갔다. 나는 성모마리아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곳을 찾아와서 땅에 엎드려 입을 맞추곤 하는 것을 보았다.”
- 요한 23세 교황은 1961년에 에페소 성모님의 집을 찾는 순례자들에게 전대사를 허락했으며, 이것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1967년에는 바오로 6세 교황이, 1979년에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해마다 수많은 신앙인들이 개인적으로 에페소에 있는 성모님의 집을 순례하고 있다. 그리고 순례자들은 수많은 치유와 은사를 체험하고 있다.
[ 연옥 영혼과 십자가의 길 ]
- 십자기의 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에 이르는 수난과 죽음의 길을 가신 고통스럽고 비통한 여정을 나타낸다. 교회는 연옥 영혼들이 고통이 따르는 정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희생함으로써 그들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능력과 특전을 갖고 있다. 예수님의 성심이 그러하였듯이, 우리도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피 흘리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십자가의 길을 바쳐야 한다. 그러면 연옥 영혼들이 보내는 감사의 보답이 우리에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축복으로 돌아올 것이다. 깊이 통회하는 마음으로 이 기도를 바치자. 갈바리아의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는 그리스도 곁에서, 성자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을 관상하시며 우리와 죄인들을 염려하시고 인류를 위해 기도하시는 동정 마리아의 모습을 떠올리자.
< 시작기도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예수님, 이 세상 무엇보다도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제가 죄를 지음으로써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기에 저의 온갖 죄들을 미워하나이다. 저는 십자가의 길을 기도함으로써 얻는 값진 대사들과 열매들과 공로들을 연옥 영혼을 위하여 바치고자 하나이다. 특히 이 세상에 있을 때에 저와 가깝게 지냈거나 각별한 친분을 맺었던 영혼들을 위하여, 또한 제가 특별히 기억해야 할 영혼들을 위하여 바치고자 하나이다. 저와 연옥 영혼들의 자비로운 어머니이신 마리아님, 이 십자가의 길을 저와 함께 걸으시며 하느님께 전구해 주소서.
(제1처로 가며)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 제1처 >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깊은 절을 하며)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기도)구세주 예수님, 죄도 흠도 없는 당신이 저를 영원한 죽음에서 구해내시기 위해서 십자가 죽음을 선고하는 이방인의 판결을 받아들이셨나이다. 저에게 은총을 내리시어 죄를 멀리하게 하시고, 언젠가 받을 당신의 심판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 주님, 이미 심판을 받고 연옥에서 단련중인 불쌍한 영혼들을 기억하소서. 그들은 당신의 자비를 힘입어 지옥을 면했으나, 당신의 의로운 심판에 따라 자신의 죄를 기워 갚기 위해 아직도 연옥에서 벌을 받고 있나이다. 너그러우신 예수님, 그들을 천국에서 내치신 당신의 판결을 거두시고, 그들에게 천국문을 열어 주소서.
(잠시 묵상)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 주님, 영원한 안식을 그들(아무)에게 주소서.
ⓞ 영원한 빛을 그들(아무)에게 비추소서.
(제2처로 가며)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 제2처 >부터는 각 처별 (기도) 내용만 메모함 / 이외 내용은 <제1처>와 동일
< 제2처 >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기도) 구세주 예수님, 당신이 지신 거룩한 십자가는 생명의 나무요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문이며, 또한 우리 구원의 징표요 유일한 희망이 되나이다. 언젠가 제가 세상을 떠날 때 이 십자가를 지니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저를 기억하시고 구원해 주소서. 주님, 당신 종의 표시인 십자가를 간직하고 세상을 떠난 연옥 영혼들을 생각하시며, 아직까지 연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그들을 모르는 체하지 마소서. 당신은 십자가로써 죽음을 이기셨으니, 그 승리의 권능으로 연옥 영혼들을 해방하여 주시고 영원한 삶과 행복으로 이끌어 주소서.
< 제3처 >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기도) 구세주 예수님, 결국은 우리 죄의 무게에 짓눌려 당신이 넘어지고 마셨나이다. 첫 번째로 십자가 아래 넘어 지신 그 공로로 제가 언제나 착하게 살며 당신이 앞서 가신 길을 충실히 따를 수 있도록 인내심을 주소서. 주님, 연옥 영혼들이 이승에서 사는 동안에 당신의 은총을 무시하고 남용을 한 탓에 지금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 그들은 이제 죄에 물들지 않은 영혼만이 하느님을 뵈올 수 있음을 깨닫고 있사오니, 자비를 베푸시어 그들의 죄를 모두 씻어 없애 주소서. 당신의 고통을 슬퍼하시는 어머니 마리아의 전구를 들으시어 그들을 연옥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
< 제4처 >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기도) 구세주 예수님, 당신은 우리 구원을 위한 수난의 길에서 고통과 슬픔 가운데 어머니 마리아를 만나셨나이다. 제가 죽음을 맞이할 때에 예수님과 마리아님의 귀한 이름을 입술과 마음으로 기억하게 해주소서. 더없이 감미로운 예수 성심이여, 더욱더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소서. 마리아의 성심이여, 우리의 구원을 위해 빌어 주소서, 연옥 영혼들의 자비로우신 어머니, 그들을 위로해 주시고 기억해 주소서. 또한 그들을 위하여 저의 보잘 것 없는 공로를 당신 손에 맡기오니 당신 아드님 공로에 보태어 아버지 하느님께 받쳐 주소서.
< 제5처 >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기도) 구세주 예수님, 힘들고 고통스런 길에서 우연히 만난 시몬이 당신의 십자가를 받아들였나이다. 저도 시몬처럼 십자가를 받아들이겠나이다. 십자가를 기꺼이 끌어안고 당신과 함께 가겠나이다.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어려움과 고통들을 참고 견뎌냄으로써 당신을 도와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소서. 주님, 지금 연옥에서는 많은 영혼들이 지난날 이승에서 자신에게 다가온 십자가를 받아들이거나 나누어 지지 않았음을 뉘우치고 있나이다. 이제 잘못을 뉘우치는 그늘을 너그럽게 보시고 그들이 아직도 기워 갚아야 할 잠벌을 없애 주소서.
< 제6처 >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
(기도) 구세주 예수님, 당신은 땀과 피로 얼룩진 당신의 얼굴을 닦아 드린 베로니카의 선행과 친절을 받아들이시고, 그 보답으로 베로니카의 수건에다 당신의 얼굴을 새겨 주셨나이다. 저도 당신의 고통을 덜어 드리기 위하여 제 삶을 바치오니, 제 영혼에 당신의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죽음에 대한 기억을 영원토록 새겨 주소서. 주님, 가엾은 연옥 영혼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값진 당신의 피로써 그들을 구해 주시고 당신의 모습을 그들 안에 새겨 주소서. 그들을 모든 죄에서 자유롭게 하시고 하늘나라에 들어가 영원토록 당신 얼굴을 마주 대하며 지내게 하소서.
< 제7처 >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기도) 구세주 예수님, 힘겹게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길에 또 한 차례 넘어지셨나이다. 인류의 죄악을 대신한 당신의 십자가에 제가 지은 죄들이 더해져 무겁게 짓누른 까닭이나이다. 이제 그 죄악들을 미워하며 제 삶을 고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다시는 제가 당신의 십자가를 짓누르거나 당신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주님, 이승에서 살면서 지은 온갖 죄악들로 말미암아 지금 연옥에서 고통과 단련을 받고 있는 영혼들을 기억하시고, 십자가 아래 두 번씩이나 넘어지신 고통으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온유하신 예수성심이여, 연옥 영혼들을 어여삐 보소서.
< 제8처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기도) 구세주 예수님, 당신은 극심한 고통 중에도 오히려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시며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식들을 위하여 울어라.”하고 말씀하셨나이다. 당신의 위로에 힘입어 저도 당신의 사랑을 저버린 배은망덕을, 지난날에 생각하지 못했거나 마음이 굳어진 까닭에 소홀히 한 것들을 아파하며 울게 하소서. 주님, 지금 연옥에서 보속하고 있는 영혼들, 특별히 제가 잘 아는 사람들의 영혼을 기억하시고 위로해 주소서. (잠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한다) 그들을 위하여 함께 뉘우치고 기도하오니, 그들이 이승에서 살면서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 제9처 >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기도) 구세주 예수님, 당신의 십자가를 무겁게 내리 누르는 저와 인류의 죄악을 감당하느라 기진하시어 세 번씩이나 넘어지셨나이다. 인류 구원을 위한 이 공로가 제게도 베풀어지기를 간청하나이다. 저를 죄의 세력에서 구해 주시고 당신의 은총 안에서 살게 해주시며, 제가 죄중에 죽음을 맞이하는 불행을 당하지 않도록 보살펴 주소서. 주님, 연옥에서 속죄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영혼들을 기억하시고 그들에게 도움과 자비를 베푸소서. 그들을 행복과 평화 넘치는 하늘나라로 이끄시어 마침내 그곳에서 영원토록 당신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소서.
< 제10처 >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기도) 구세주 예수님, 당신은 저와 인류를 위한 사랑에서 옷 벗기는 수모를 마다하지 않으셨나이다. 저에게 거룩한 겸손과 정결을 허락하소서. 저를 당신 아닌 피조물에게 끌리는 위험한 경향에서 구해 주시며, 제가 현세적인 것에 대한 탐욕과 집착을 버릴 수 있게 하소서. 주님, 연옥 영혼들은 이승에서 누리던 부와 명예와 권력이 아니라 행적에 따라 심판을 받았고, 그리하여 지금은 속죄의 벌을 받고 있나이다.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고통을 덜어 주소서. 또한 그들을 용서하시어 성인 반열에서 떨어져 있지 않게 해주시며, 끝없이 당신이 주시는 행복을 맛보고 누리게 해주소서.
< 제11처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묵상합시다.
(기도) 구세주 예수님, 죄 없으신 당신께서 저와 인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나이다. 언젠가 제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고통을 당할 때 성체로 오시는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소서.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보시며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을 당하신 어머니 마리아의 전구를 들으시어 가장 필요한 때에 저의 고통을 덜어 주소서. 주님, 이승에서 겪는 그 떤 고통보다 더 힘든 시련을 지금 연옥에서 견디고 있는 영혼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의 수난 공로로 그들이 고통을 감내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나아가 영원한 안식처에 들게 하소서.
< 제12처 >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기도) 구세주 예수님,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처절한 고통 끝에 마침내 죽음을 받아들이셨나이다. 이 고통을 통하여 제가 철저하게 준비하고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 그 때에 제 영혼을 당신 품에 받아 주소서. 죽음과 그에 따르는 온갖 고통과 아픔을 그리스도인답게 받아들이고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면서 떠날 수 있게 하소서. (잠깐 무릎을 꿇고 묵상한다) 주님,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회개한 우도를 위로하신 사랑으로 불쌍한 연옥 영혼들을 기억하소서. 이 영혼들을 영광스러운 하늘나라로 부르시어, 모든 천사들과 성인들과 더불어 영원무궁토록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 제13처 >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기도)
구세주 예수님, 더 없는 고통을 겪으신 끝에 숨을 거두신 당신이 이제 어머니의 품에 안기셨나이다. 저도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당신처럼 성모님의 품에 안겨 죽음을 맞이하게 하소서. 또한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을 받는 자리에도 성모님을 보내시어 제 곁에 머무르며 저를 지켜보며 격려하게 해주소서. 저승에 가시어 당신을 기다리던 의인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신 주님, 지금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연옥 영혼들도 기억하소서. 그들을 죄악의 사슬에서 풀어 주시고, 하느님의 참 자녀로 지내는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허락하소서.
< 제14처 >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기도) 구세주 예수님, 당신의 수난과 죽음의 공로, 그리고 부활의 영광에 힘입어 간청하나이다. 저의 영혼이 영벌의 장소로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시며, 저를 연옥불에서 구해 주소서. 또한 제가 성모님과 모든 성인과 더불어 하늘나라에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당신을 흠숭하고 사랑하게 해주소서. 주님, 연옥 영혼들을 위해 바치는 우리의 기도를 보시어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그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소서. 그들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평화를 누리도록 허락하소서. 당신의 자비로 그들이 영원토록 지복직관을 누리게 하소서.
< 마침기도 >
-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구세주 예수님, 당신의 은총에 힘입어 이제 십자가의 길을 마치나이다. 당신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의 값진 열매가 저를 위해서도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도 헛되이 버려지는 일은 없게 하소서. 고통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님, 제가 간청하는 바를 당신 아드님의 성심께 전달하시어, 제가 은총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시며, 그곳에서 제가 사랑하는 모든 산 이와 죽은 이와 함께 영원한 복을 누리게 해주소서. 늘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며 누구에게나 사랑을 아낌없이 주시는 너그러우신 성심이여, 불쌍한 연옥 영혼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들을 심판하실 때 가혹하게 하지 마시고, 당신의 값진 피로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을 재우소서. 당신의 천사들을 보내시어 연옥 영혼들을 빛과 평화와 생명이 넘치는 곳으로 인도하게 하소서. 아멘.
+ 주님, 영원한 안식을 그들(아무)에게 주소서.
ⓞ 영원한 빛을 그들(아무)에게 비추소서.
+ 예수 성심이여, 그들(아무)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그들(아무)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 ‘연옥 영혼을 위한 십자가의 길’에 도움이 되는 기도들 ]
< 십자가의 길을 바치기 전에 >
(기도)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우신 하느님, 제 마음의 어둠을 밝혀 주소서. 제 안에 올바른 믿음, 확실한 희망, 완전한 사랑을 심어 주시며, 또한 감성과 지성을 심어 주소서. 주님, 그리하여 당신의 거룩하고 참된 계명을 실천할 수 있게 해주소서.
(성 프란치스코)
(시편 130) 주님, 깊은 곳에서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주님, 제 소리를 들으소서. 제가 애원하는 소리에 당신의 귀를 기울이소서. 주님, 당신께서 죄악을 살피신다면 주님,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당신께는 용서가 있으니 사람들이 당신을 경외하나이다. 나 주님께 바라네. 내 영혼이 주님을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리기보다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네. 이스라엘아, 주님을 고대하여라.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으니 . 바로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원하시리라.
(화살기도)
* 다윗의 자손이시며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르신 양부이시며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의 배필이신 성 요셉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모든 성인 성녀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으소서.
* 아버지, 당신 손에 제 영혼을 맡기나이다. *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소서.
[ 연옥 영혼에 관한 성서 말씀 ]
*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요한 6,40)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나이다.” (요한 11, 25-27)
*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로마 8, 10-11)
*
그밖에 시편 23 ; 26 ; 51 : 130장, 이사 25, 6-9, 2미카 12,42. 44-45 ; 마태 27, 45-54 ; 로마 5, 5-11 ; 마르 15, 33-39 ; 16, 1-6 ; 루카 7, 11-17 ; 필립 3, 20-21을 보라.
[ 연옥 영혼들에 관한 성인들의 관심 ]
< 성 토마스 모어 >
- 사랑하는 친구들과 선의의 모든 남녀 그리스도인들, 여러분의 마음을 열고 우리에게 자비를 보여 주십시오. … 우리는 마음대로 발 하나도 불구덩이에서 빼어낼 수가 없고 손으로 얼굴을 가려 불길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몸져 누어서 하루가 닷새와도 같은 나날을 갈망 속에 지낸 적이 있다면, 우리 영혼이 타오르고 끓어오르는 어둠의 불구덩이에서 며칠씩, 몇 달씩, 몇 년씩 잠 못 이루고 쉬지도 못하면서 견뎌야 하는 밤이 얼마나 길고 지겨운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 성 레오나르도 >
- 만약 당신이 한 영혼을 연옥에서 구해낸다면, 당신은 확신을 가지고 “천당은 나의 것이다.” 라고 말해도 될 것입니다.
<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
- 저는 제 수호성인을 보았는데, 그 천사가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하였습니다. 한 순간, 저는 넘실대는 불길이 어슴푸레 바라보이는 곳으로 들어섰는데, 거기에는 수많은 영혼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기도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직 우리만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그때부터 나는 고통 받는 영혼들과 더욱 가깝게 친교를 맺고 있습니다.
< 제노아의 성녀 카타리나 >
- 연옥 영혼들은 크나큰 기쁨과 크나큰 고통을 한데 묶어 줍니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없애지 못합니다. 천당에서 성인들이 누리는 평화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평화도 연옥 영혼이 누리는 평화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연옥 영혼들은 이렇다 할 보장도 없이 필설로 형언할 수 없고 지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
- 연옥 영혼들은 자기들에게 대사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신자들의 기도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신자들의 전구는 강력합니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연옥을 비워 놓아야 합니다.
< 성녀 비르지타 >
- (환시 중에 연옥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이 고통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고 상을 베푸소서. … 주 하느님, 자기들의 고통으로 우리를 돕는 그들에게 백배의 상을 주심으로써 당신의 전능한 권능을 보여 주시고, 당신의 거룩한 빛이 우리를 비추게 하소서. (천사들이 기도하는 소리를 듣고) 이 세상에서 기도와 선행으로 고통당하는 연옥 영혼들을 돕는 이들에게 복을 내려 주소서.
< 가경자 마리 단티나 >
- 나의 딸이여, 십자가의 길이 연옥 영혼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기도임을 알고, 이 값진 기도를 계속 바쳐야 한다.
< 성녀 제르트루다 >
- 영원하신 아버지, 모든 영혼들을 위해서, 세계 곳곳의 죄인들을 위해서, 보편 교회 안의 죄인들을 위해서, 저희 고향과 가족 중의 죄인들을 위해서,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봉헌되는 미사들을 통해 한 마음으로 당신 아들 예수님의 고귀한 성혈을 당신께 봉헌하나이다. 아멘.
[ 연옥 영혼에 관한 교황님 말씀 ]
< 요한 23세 >
-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신앙과 감사의 유대로 우리와 맺어져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에 동반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들이 받아 마땅한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들을 영예롭게 하는 데 보탬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죽은 이들을 위해 바치는 그리스도교 기도의 정신이며, 이는 그리스도인 삶과 행위에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바오로 6세 >
-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앙인들, 곧 이 세상에서 순례의 길을 가고 있는 이들과 죽어서 정화의 단련을 받고 있는 이들, 그리고 천국에서 복을 누리고 있는 이들 사이의 통공을 믿습니다. 이들 모두가 모여서 하나의 교회를 이룩하며, 우리는 이 친교 안에서 하느님과 성인들이 자비 넘치는 사랑으로 끊임없이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믿습니다. 일찍이 예수께서도 “구하라,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요한 바오로 2세 >
-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죄악의 흔적들이 없어져야 합니다. 우리 영혼 안에 있는 모든 불완전한 것들이 완전해져야 합니다. 이 일은 틀림없이 연옥에서 이루어집니다.
[ 십자가의 길을 바침으로써 대사를 얻으려면 ]
-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면서 십자가의 길을 바치는 신자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 십자가의 길은 14처가 설치되어 있는 곳(성당, 경당, 또는 옥외)에서 바쳐야 한다. … 14처가 설치된 장소에서 기도를 바칠 수 없는 사람들, 즉 병자, 여행자, 죄수 등은 특별히 축복된 십자가를 사용하여 기도함으로써 대사를 받을 수 있다. 듣지 못하거나 말을 못하는 사람은 마음으로 십자가의 길을 바치면 대사를 받을 수 있다.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대사를 자신을 위해서 받을 수도 있고 특정한 영혼에게 돌려줄 수도 있다. 이 은혜를 연옥 영혼들에게 돌리면 일반적으로 하느님만이 아시는 방법에 따라 전달된다. 십자가의 길을 요구되는 조건에 맡게 바친다면, 이 기도를 바칠 때마다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 대사의 열매는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의 자세와 성의에 좌우된다.
[ 전대사를 받기 위한 조건 ]
*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14처 전체를 순서에 따라 중단하지 않고 바쳐야 한다. 만약 전체를 바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각 처마다 10년 한 대사를 받을 수 있다.
* 은총 상태에 있어야 하며, 죄가 없어야 한다. 소죄라도 있으면 한 대사를 받는다.
* 독서 메모자 추가 * - 수원주보 참조
< 위령성월(11월) 전대사 >
-
기간 : 11.1~8
- 전대사를 받기 위한 방법
1) 고해성사, 성체성사, 교황님의 기도 지향 바치기(매일미사 참조)
2) 묘지를 참배하여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하여 기도 바치기
3) 주님의 기도와 사도신경 바치기
# 118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119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 책 이름 : 빈자리 ]
- 지은이 : 최기산
- 지은이 프로필 : 1948.4. 서울 흑석동에서 출생, 1975.12. 사제 서품,
부평1동 보좌 신부, 1977.8~김포, 인천 해안, 인천 심곡1동 주임 신부,
1987.2. 인천교구 사목국장, 1990.~ 미국 데마레스트 한인 천주교회 주임 신부 (1990년 기준)
- 펴낸데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출판일 : 1991.12.20 - 197p
- 내 용 : 월간지 <경향잡지>의 ‘빈자리’ 난에 5년간 매월 실렸던 60편의
작고 소박한
우리들의 삶 이야기 모음
[ 표지의 글 ]
-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쫓기듯 허겁지겁 사는 우리들에겐 부족한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으나 그렇다고 다 충족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루가 불만이요 삶이 불평등해 보입니다. ‘빈자리’는 소리 높여 무엇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지는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조심스럽게 느껴지는 하잘 것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높은 이상만을 좇아 살아가고 싶지만 아침에 잃어버린 백 원짜리 때문에 온종일 언잖아 하는 우리들에게 ‘빈자리’는 좋은 벗이 되어 줄 것입니다. 작고 소박한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 각 이야기에서 인용되는 성경(성서)의 성구(聖句)는 2005년도에 한국 교회 공용으로 승인된 성경의 내용으로 수정하였음. -메모자 주기
[ 책머리에 ]
- 지체 높은 분이 오셨기에 잔치를 벌였는데 빈자리가 많으면 큰 실례이다. 그럴 때 집 주인은 빈자리에 앉힐 사람들을 빨리 데려와야 한다. 그때는 그 자리에 있기에 자격이 좀 부족한 사람에게라도 낄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진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경향잡지>라 하면 한국 천주교회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나라 잡지 역사에도 큰 몫을 담당했으리라 미루어 짐작한다. 그간 수많은 신학자들과 문필가들이 <경향잡지>를 빛냈을 것이고,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경향잡지>를 통해 주님께 향한 믿음을 키우고 소망과 사랑의 열매를 풍성히 맺었을 것이다.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민중에게도 삶의 참 의미를 제시하는 <경향잡지>에 ‘빈자리’라는 난을 얻어 5년 동안 썼다는 것이 꿈같고 부끄럽기만 하다. 귀한 분들이 엮는 잡지에 오직 빈자리를 채웠을 뿐이며, 빈틈을 메웠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제 이를 한데 모아 책으로 꾸며 주신다니 너무나 감흡하다. 모쪼록 이 책으로 어느 한 영혼이라도 예수님을 좀 더 사랑하게 되었으면 그보다 큰 영광이 없겠다. …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예수)밖에 없습니다”(사도 4.12). - 미국 뉴저지 테마레스트에서 최기산 신부
[ 1. 첫 번째 해 ]
< 1월. 잘살아 보세 >
- (이야기의 요점) “그 집안은 부자예요. 우리 본당에선 제일 잘 사는 집일 거예요.” 집안에 들어서자 파리에 왔는지 뉴욕에 왔는지 여간 헷갈리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벽에 걸린 십자가는 너무 초라하였다. 주인 여자의 쌀쌀맞은 얼굴에선 냉기만이 춤추고 있었다. 과연 그 집은 잘사는 집인가? 잘사는 기준은 돈이 아니다.
- 우린 잘 산다는 의미를 다시 새겨야 한다. 잘 사는 집은 무엇보다도 가족이 열심한 신자이어야 한다. 성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보글거리는 된장찌개랑 김치가 전부인 밥상을 받고서도 감사하는 기도가 있고 웃음이 넘치는 집이 잘 사는 집이다. … 마해송 씨는 아내를 ‘안해’라고 했었다. 집안의 해란 뜻이다. 집안의 해가 반짝일 때 온 가정을 두루 비춘다. 구름에 가린 해가 어찌 가정을 비추겠는가? 남편은 대범하고도 온화하며 가정에 헌신함으로써 잘 사는 집을 만들 수 있다. 새해엔 진짜 살사는 집을 만들어야 한다. 주님이 주인으로 계셔야 잘 사는 집이다. 진짜 잘사는 비결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다.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콜로 3,12-14).
< 2월. 개꿈 꾸지 맙시다 >
- (이야기의 요점) 많은 종교인들이 개꿈을 꾸면서 살아간다. 욕심을 없애 달라는 것이 아니라 채워 달라고 기도하고 …. 종교인은 많아지는데, 날이 갈수록 세상이 험악해 지는 것을 보면 교회나 절간에서 하는 생각과 사회에서 사는 모습에 거리가 있으니 말이다.
- ‘이루어 질 수 없는 꿈’ 이것을 소위 ‘개꿈’이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소망이 있다. 꿈을 갖고 있다는 것은 젊음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의 큰 소망 중에 제일 큰 소망은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 하늘나라의 영원한 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만이 갈 수 있다.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입니다. 살인자는 아무도 자기 안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1요한 3,14-15). 신자들 가운데는 부모, 형제, 자녀를 미워하면서도 천국엔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개꿈’을 꾸는 사람이다. … 개꿈 꾸며 살아서는 안 되겠다. 개꿈은 머리만 아프고 잠만 못 자서 피곤 만 할 뿐이다. 개꿈 꾸지 맙시다. 여기 개꿈 꾸면 안 된다는 성경 말씀이 있다.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미 경고한 그대로 이제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 3월. 신부님, 아들 났어요 >
- (이야기의 요점) 3대 독자에게 시집가서 1년마다 딸을 낳아 다섯을 둔 체칠리아 씨. 속 터지는 며느리 심정은 모르고, 시어머니 왈, “얘야, 이러다간 우리 대 끊기겠다.” 아들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 “신부님, 아들 났어요.” 체칠리아 씨의 복음(기쁜 소식)이었다.
- 가정방문을 했을 때 체칠리아 씨의 시어머니가 너무한다는 생각을 했으나, 신자도 아닌 그분에게 무어라 할 수도 없어서 예수님께 기도만 하고 왔었다. … 아들을 낳자마자 나에게 전화한 것은 너무나도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몰라서였다. 그가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그간의 수모와 불안, 근심, 초조, 삶의 지루함을 송두리째 씻어버릴 수 있는 걸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곳이 기쁜 소식이며 체칠리아 씨에게 있어서 복음이었다. … 우리는 예수님을 복음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정말 체칠리아 씨와 같은 기쁨의 탄성을 지르며 살고 있는가? 사순절은 회개하는 시기라고 한다. 과연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은 나의 복음인가? 예수님을 믿고부터 나의 인생에 새로운 질적 변화가 왔는가? 나의 인생이 생기 넘치고 불꽃을 튀기며 약동하는가? 필리피서(2,1)엔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눈다면, 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복음의 의미를 묻고 있다. 아직도 예수님이 나에게 기쁜 소식이 아니라면 이번 사순절엔 기필코 그분을 기쁜 소식으로 깊이 체험하기 위하여 회개해야겠다. 삶의 의미를 예수님에게서 발견하는 성스러운 부활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 4월. 돈으로도 안돼요 >
- (이야기 요점) “너는 안 돼.” “나도 돈 냈는데 왜 안줘.”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을 이미 알고 있는 요한, 성당에서만은 그것이 통하지 않으니….
- 하루는 요한(5살)이가 헌금을 하러 엄마와 함께 나와서 동전을 헌금함에 넣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날 영성체 때 그는 또 나왔다. 그리고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너는 안 돼.” 하니까 실망한 표정으로 비켜나가면서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는데 “엄마, 나도 돈 냈는데 왜 안 줘”하며 엄마를 마구 치는 것이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을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돈만 내면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는 세상을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당에서만은 그것이 통하지 않으니까 답답했던 모양이다.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있다. 믿음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예수님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영생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믿으나마나일 것이다. … 회사를 경영하는 ‘윤’이라는 사람이 있다. (직원들을 혹사시키고, 불량식품을 만들어 떼돈을 번 사람) …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길은 돈으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 윤사장의 경우엔, 정직하게 사업을 해야 하고 고생하는 가난한 직원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줘야 비로소 예수님께로 가까이 가는 것이다. 겸손히 자신을 점점 작아지게 할 때 크신 예수님은 주인으로 오실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태 16,26).
< 5월. 하느님, 진지 잡수세요 >
- (이야기 요점) “하느님, 진지 잡수세요” 진범이는 하느님을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멋진 기도인가! 어른들의 기계적인 기도나 혹은 거창한 기도보다 얼마나 진정한 기도인가!
- 예수님은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 10,15)고 하셨다. 어린이에게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예수님이나 하느님은 멀리에 계신 분이라고 생각하여 큰 소리로 길게 기도해야 그분의 귀에 기도 소리가 전달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어른들의 생각이다. 진범이(막내 아이)처럼 단순하고 천진스러운 마음으로, 하느님은 멀리가 아닌 가까이 계신 분으로 생각하여 대화를 나눌 때 이미 그는 천국을 살아가는 것이다. 식사 때마다 진범이의 기도를 생각해 봐야겠다.
< 6월. 당신은 행복합니까 >
- (이야기 요점) “아래층 젊은 부부가 연탄 장사를 하고 있어요. 그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행복이 탐나서 부럽기만 해요.” … “연탄 팔아 봤자 얼마 남습니까? 어떤 때는 한심한 생각이 들어요. 언제 내 집을 갖나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행복은 자기 앞에 있는데 ….
- “당신은 행복합니까?” 행복은 가까이에서 나에게 손짓하고 있다. 주어진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인생에서 승리하는 사람이다. 루카 복음(17, 11-19)에는 나병환자 열 사람이 예수께 가서 나음을 받았으나 감사한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는 말씀이 있다. 그는 평생을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홉 사람은 감사할 것을 잊어버렸으니, 또 다른 어려움이 생기면 또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 행복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감사한 사람은 좀 어려운 일이 생겨도 감사할 것이 너무 커서 조그만 불행 같은 것은 다 잊어버렸을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감사함을 발견하는 일, 이것이야말로 행복의 비결이다. 당신은 행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감사할 것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찬연히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감사함을 느낀다면 그는 평생을 감사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숨을 크게 쉬어 보라. 그리고 감사해 보자. 공기를 주셨으니 감사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1테살 5,18).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살아야겠다.
< 7월. 꼬리를 치자 >
- (이야기 요점) 세상에 자기 분수를 잘 깨달은 여자치고 자기보다 좋은 조건의 남자가 관심을 보일 때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예수님은 미남이신데다 가문으로 따지면 하느님이 아버지시오, 재물로 따지면 이 세상이 다 그분의 것이요 …. 우리는 그런 그분 앞에 나서서 꼬리를 쳐야 한다.. 그러면 ….
- 우리는 천주교 신자로서 신랑이신 예수님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예수님은 문 밖에 서서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신다고 했다. 그분은 미남이신 데다가 가문으로 따지면 하느님이 아버지시오, 학식으로 따진다면 남의 속마음뿐 아니라 과거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아시고, 오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아시며, 미래에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까지도 아신다. 재물로 따지자면 이 세상이 다 그분의 것이요, 그뿐인가, 저 세상도 다 그분 것이다.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 우리는 그분 앞에 나서서 알록달록한 꼬리를 쳐야 한다. … 문을 활짝 열어젖뜨리고 예수님을 만나서 씩 웃어 보자. 그러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웃음으로 나를 대하실 것이요, 예의바르게 나를 맞아 달콤한 사랑의 꽃을 피워주실 것이다. 얼마나 그리운 님이신가! 잠시라도 못 뵈면 오금이 쑤시도록 우리를 사로잡으실 것이다.
< 8월. 보신탕 >
- (이야기 요점) 부활 전야제에 살던 신자들은 막걸리와 개고기를 먹으면서 예수 부활을 축하했다고 한다. 이것이 계기가 됐는지 지금도 구교 신자들이라면 개고기 못 먹는 사람은 드물다. 외국인들은 그런 우리를 식인종 취급할 것이다. 하지만 ….
- 천주교와 보신탕은 옛부터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황사영의 백서’에는, 경술년에 부활절은 다가 왔는데 산속에 숨어 있는 신자들이 부활의 기쁨을 나눌래야 나눌 것이 없어서 옥수수로 술을 빚고 개를 잡아서 안주를 장만했다고 한다. 부활 전야제에 그들은 희락 삼종경을 신나게 합창하고는 바가지로 막걸리를 퍼서 한 순배씩 돌린 다음 안주로 개고기를 먹었다는 것인데, 이렇게 하기를 밤새도록 하며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축하했다고 한다. 이것이 계기가 됐는지 지금도 구교 신자들이라면 개고기 못 먹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 마르코 복음(7, 18-23)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처지만을 생각하고 자기의 생각을 정당화한다. 나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세계를 좀먹는 사고이다. 이것이 국가를 좀먹고 가정과 교회를 좀먹는 사고이다. 나만이 옳다는 사고 때문에 끊임없이 전쟁을 유발시킨다. 이것은 국가와 국가간에 뿐 아니라 개인과 개인 사이에도 끊임없는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 넓은 마음, 모든 것을 내 손안에 놓고서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 하겠고, 모든 이의 실수는 곧 나의 실수라는, 미래와 과거를 온통 한 순간에 섭렵하는 큰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이 여름에는 더욱 큰마음의 소유자로 변화하여 모든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바다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었으면 한다.
< 9월. 극과 극 >
- (이야기 요점) 문제는 어째서 한쪽은 예수 믿는 것에 대한 확신과 떳떳함, 용맹스러움이 넘쳐서 거리에까지 그 열기가 흐르고, 한쪽은 의자 밑으로 자꾸만 기어들어 가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 믿는 것이 무슨 죄 되는 일인가? 1백 년 간의 박해로 주눅 들었다면 하루 빨리 피해의식을 버려야 ….
- 9월은 순교자의 달이다.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다 버린다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10,32-33)의 말씀을 보자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며,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이 말씀이 순교자의 달을 맞아 새롭게 들린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슨 죄 되는 일인가? 왜 주눅이 들어야 하는지? 왜 자꾸 숨기려고 하는가? 신자라면 예수 믿는 것에 대해 신나고 즐거워야 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여서 모든 이에게 뻐기고 싶어 해야 한다. 예수 믿으면서도 어깻죽지에 힘이 빠진 사람들은 이번 순교자의 달에 새로운 힘을 얻어서 으쓱대며 거만 좀 부려야겠다. 주님을 향하여, “오! 주여 당신 없인 못 삽니다. 당신만 믿습니다. 당신만을 사모하고 당신만을 의지합니다. 당신만을 기대합니다.” 이런 표현이 자연스러워야, 순교자의 달을 보람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 10월. 안수 기도와 요한이 >
- (이야기 요점) “왜 왔니?” “신부님에게 안수 기도 받아야 돼요.” “왜 안수 기도를 받으려고 하니?” “머리가 아파요.” “왜 머리가 아프니?” “비 맞고 다녔더니 머리가 아파요.” 나는 그 녀석의 머리에 손을 얹고 진심으로 기도하였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해 본 것도 드물 것이다. “꼭 낫게 해주세요.”
- 나는 예수님께서 분명히 그 녀석을 낫게 해주시리라고 믿었다. 이러한 확신은 불신의 세계를 살아가는 나에게 아주 귀한 선물이었다. … 신부님에게 기도를 받으면 자기 병이 나을 것이라는 확신, 그 확신이 가져다 준 용기, 얼마나 따지기를 좋아하는 어른들의 신앙에 귀감이 되는가? 세상의 큰 파도 속에서 헤매던 어른들에게는 마태오 복음 6장에는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먹고, 마시고, 입을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33-34). 등의 말씀들이 있다. … 온갖 곡식이 영글어 가는 계절, 한 해가 영글어 가는 10월에 우리의 믿음도 영글었으면 좋겠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10, 14-16).
< 11월. 관세음보살 – 예수 믿어요 >
- (이야기 요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염불과 목탁 소리가 났다. 그 집은 “예수 믿어요.” 하며 땡전 한 푼 안들이고 쫓아냈다. 성당에 나오기를 일 년에 한두 번으로 끝내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먹고 있었다. 화엄사 마당에서 찬송가를 부르다가 쫓겨 난 사람도 마찬가지다.
- 획일 원리에 젖어서 남은 다 도둑이고 악마요, 자기는 성인이고 천사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 남은 다 빵점이고 꼴찌요, 자기는 다 백점이고 일등이라는 고집을 부려서는 종교인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고가 종교인들 사이에서 판을 치는 한 어찌 현명한 중생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여 그들을 구제할 수 있겠는가? 종교인이 종교인일 수 있는 것은 땡전 한 푼 안 드리고 스님을 쫓던 그 사람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화엄사 마당에서 찬송가를 부르다가 혼쭐이 나서 얼굴 빨게 가지고 쫓겨 난 그 사람들처럼 되어서도 안 된다. “남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 예수님의 이 말씀은 길이길이 마음속 깊이 새겨 둘 교훈이다.
< 12월. 위선과 진실 >
- (이야기 요점) 군 부대에서 그분은 이웃 사랑에 대한 강의를 하셨는데, 가난한 이웃들이 우리나라엔 너무 많으니 서로가 아껴서 나누자고 했습니다. 병사들은 넋을 빼앗겨 호소력 있는 그 강의에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양복은 외제였고, 타고 온 차는 외제차였습니다.
- 겉 다르고 속 다른 생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생활, 그래서는 안 되기에 한 해를 보내면서 자신을 돌아봐야 하겠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이사리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마태 23,13).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이 땅의 정치인, 경제인, 문화인들이 위선적인 삶을 살지 않을 것이고, 이 나라가 하느님 나라로 변화될 것이기에 우리의 임무는 막중하다. 사회 정의를 외치는 우리의 삶이 떳떳하면 할수록 이 땅의 민주발전은 더욱 앞당겨질 것으로 믿는다. 떠들썩하던 한 해도 이젠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 모든 것은 다 변하지만 오로지 하느님 한 분만은 변함이 없으시다. 옷깃을 여미고 그분에게서 조금이라도 멀어져 있다면 다시 그분께로 돌아서야겠다.
[ 2. 두 번째 해 ] p47
< 1월. 모든 일에 신중해야지 >
- (이야기 요점) 이게 웬 운명의 장난이던가! 그 여자를 보는 순간 나는 “악!”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그리고는 걸음아 날 살려라고 도망쳐 나왔다. … “선임 하사님! 틀렸습니다. 곰보에요. 곰보요!” 다음날부터 우리 엉덩이는 수시로 불이 났다.
- (월남 전장에서) 휴가를 간다니까 정작 나보다 더 흥분한 것은 선임 하사(중사)였다. 그는 나에게 만년필을 쥐어 주며 꼭 그 여자 집에 가서 전하고, 그 여자 얼굴을 자세히 보고 오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는 생면부지 여자와 편지로 열애를 하고 있는 터였다. 휴가를 끝내고 부대에 들어갔는데, 제일 먼저 나를 본 사람은 이 중사였다. 그는 튀어나와 “야! 잘 다녀왔냐. 선물 잘 전했겠지?” 하고 물었다. 나는 다짜고짜로 “선임 하사님! 틀렸습니다. 곰보예요. 곰보요!” 그 순간 그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리고는 나가 버렸다. 다음날부터 우리 엉덩이는 수시로 불이 났다.
- 나는 그런 일이 있은 뒤부터 “어떤 일에도 신중해야지.” 이것을 나의 생활신조로 삼고 있다. 내가 신중히 생각해서 “참 멋있었던데요.” 하고 한마디 했다면 그는 이국의 전장에서 힘든 줄 몰랐을 것이고, 그가 막상 귀국해서 그 여자를 만났을 때 실망한다 해도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누다보면 신체적인 미를 넘어 영혼의 미를 발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 새해가 시작되어 모든 이가 꿈을 한 아름씩 간직하고들 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 신중해야겠다. 너무 감정에 흐른다거나 너무 이성에 치우쳐 인간미를 상실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듣기는 빨리하고 대답은 신중히 하여라. 네가 이해했거든 이웃에게 대답하여라. … 현명한 이들의 말은 균형 잡힌 저울이다.”(집회 5,11; 21,25)
< 2월. 기쁜 삶 >
- (이야기 요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기쁜 일이 있어야 웃지? 지금 우리가 기쁠 때야? 하지만 신앙은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과 사랑을 준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려울수록 더 깊고 그윽한 기쁨이 하느님께로부터 나온다.
- 일본은 경제 대국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얼굴이 슬퍼 보였다면 무슨 이유일까? 내 나름으로 판단해 보면, 그들은 하느님을 믿지 않고 철저히 자신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물질이란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하나의 수단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행복의 대명사는 아니다. 어쩌다 북한 사람들의 사진을 보거나 텔레비전에 비친 그들의 모습을 보면 아주 강한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도전적이면서 강한 모습에서 기쁨 같은 것을 보기는 힘들다. 그들도 하느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 적어도 성당에 다니는 우리는 기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기쁨은 희망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인데,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그분에게서 큰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자와 성직자는 더 기쁜 얼굴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더 가까이 모시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 주어진 삶의 터전에서 신앙이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과 사랑을 준다는 것은 만고 진리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희망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 곳에서 희망을 주셨다. 그것은 구약의 역사가 증명한다. 우리 선조들이 죽음의 형장에서도 얼굴엔 영롱한 기쁨의 빛이 역력하여 보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려울수록 더 깊고 그윽한 기쁨이 하느님께로부터 나올 수 있다. 나의 소유물에서 오는 기쁨보다 더 아름다운 기쁨을 예수님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한다. “사람의 마음은 그의 얼굴을 좋게도 나쁘게도 바꿔 놓는다. 행복에 쌓인 마음의 기운은 밝은 얼굴에 나타난다”(집회 13, 25-26).
< 3월. 확실히 합시다 >
- (이야기 요점) 고속도로에서 화장실에 간적이 있었다. 그 화장실 변기 앞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확실히 합시다.” … 신자가 된다는 것은,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다짐이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고, 어정쩡하고 분명치 않은 형태는 더럽고 냄새나서 남에게 피해를 준다.
- “확실히 합시다.” 이것은 참으로 좋은 말이다. 마태오 복음(5,37)에는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였다. 어정쩡하지 말고 분명히 하라는 말씀이다.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고 한다든지, 양다리를 걸치고서는 눈치코치나 보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요한 묵시록(3,15-16)에는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고 하였다. 이 말씀들 또한 확실히 하라고 촉구하신다. 신자가 된다는 것은,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다짐이다. 새로운 인생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고자 하지 않는다면, 신자가 되어도 신앙이 주는 위로나 희망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명령대로 살겠습니다.” 이렇게 다짐하면서 세례를 받는 것인데, 그리스도의 명령이란, 세상에서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며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 “확실히 합시다.” 확실하지 않으면, 더럽고 냄새가 콜콜 나고 남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 4월. 메주자(mezuza) >
- (이야기 요점) 최후의 만찬을 하시던 다락방엘 가려는데 마침 문 앞에 이상한 막대기가 붙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마다 그것을 만지고 키스까지 했다. 안내자는 그것이 ‘메주자’라고 하였다. 호텔 방마다 그것이 붙어 있었다. 메주자가 무엇인가?
- 메주자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안내자는 말했다. ‘메주자’는 어느 유다인의 집에나 대문에 메달아 놓고 있으며, 그 안에는 신명기(6, 4-9)의 말씀을 종이에 싸서 넣어 둔 것이라고 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 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 이 말씀을 읽고 보면 과연 그들이 메주자를 집집마다 달아 놓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호텔에 가서 봐도 호텔 방마다 메주자는 붙어 있었다. 그들의 철저한 신앙 세뇌 행위가 어찌 보면 너무한 것 같기도 하지만, 자식들에게 하느님의 크신 뜻을 뼛속 깊이 아로새겨 준다는 데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 나는 십자가를 문 옆에 매달아 놓고는 나갈 때 들어갈 때 계속 만지기로 했다. 그러면서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고 입으로 중얼거린다.
< 5월. 묵주와 묵주기도 >
- (이야기 요점) 5월이 되면서 신자들에게 묵주기도를 많이 하라고 강조할 양으로 강론대에 선 신부님(외국인 신부), 처음엔 순리대로 잘 나갔다. 하지만 본론에서 “신자 여러분, 5월엔 특히 맥주를 많이많이 해야 합니다. 맥주는 참 좋습니다. 날마다 하면 좋습니다. 아침, 저녁에는 물론 점심에도…”.
- 5월은 성모성월이다. 하늘은 곱고 아지랑이는 손짓하며 삼라 만상이 활기를 되찾는 호시절이다. 새들은 짝을 찾아 날개짓을 하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새들뿐인가! 사람도 예식장마다 붐비고 제주도는 원앙의 꿈이 가득 넘친다. … 신부님이 강론중에 맥주를 많이많이 해야 한다니까 신자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신부님이 ‘묵주’를 ‘맥주’로 발음 했던 것이다. … 1858년 성모님은 루르드에 발현하셨다. 1917년에는 파티마에 발현하셨다. 그때마다 성모님은 로사리오(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치라고 당부하셨다. 죄인들의 회개와 공산주의의 회개를 위하여 바치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지금은 그때보다 더욱 많은 로사리오 기도가 요청되는 시대가 아닐까 한다. 묵주가 많이 팔리는 것에 비례해서 묵주 기도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어 죄인들의 심장이 두근거려지고 그래서 회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6월. 눈물 >
- (이야기 요점)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눈물이 나오는 것은 아마도 이제야 철이 든다는 것이 아닐까? 남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생각하고 남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찾고 싶다.
- 성경에 예수님께서 웃으셨다는 말씀은 없어도 우셨다는 말씀은 나온다.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누이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는 “그래! 실컷 울어라.” 말씀하시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셨을 것이다(요한 11, 35 참조). 연민에 넘친 눈물,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며, 이 사회를 아름다운 하느님의 나라로 만드는 도구이다. 특히 이 사회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의 눈물보가 툭 터져 버렸으면 좋겠다. 시편 6편 6절은 바로 내 눈시울을 적셔야 한다고 말한다.
< 7월. 사승과 수도승 >
- (이야기 요점) 도를 닦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남을 의식하여 자기가 하는 일에 몰두하지 못할 때 그것은 수양이 덜 됐다는 표시다. 문을 닫는 자 그는 수도승(修道僧)이요, 문을 여는자 그는 사승(師僧)이다. 거기에 차이가 있다.
- 볕이 따갑고 후덥지근한 날씨에 여승들이 도를 닦는 절에서 많은 여승들이 대웅전에 질서 있게 앉아서 기도하고 있었다. … 수도승 중에는 구경꾼들의 시선을 무척 신경 쓰여 하는 이도 있었다. 창피한 생각이 들었던지 아니면 분심이 들었던지 한 수도승이 옆문을 닫았고, 또 한 수도승이 정면 창문을 닫았다. 곧 이어 한 수도승이 나머지 문마저 닫아 버렸다. 기웃거리며 구경하던 사람들은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사승이 다시 문을 여는 것이 아닌가? 그는 밝게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여유만만하였다. 볼테면 보라는 거였다. … “배움이란 무엇인가? 도를 닦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남을 의식하여 자기가 하는 일에 몰두하지 못할 때 그것은 곧 수양이 덜 됐다는 표시다. 문을 닫는자 그는 수도승이요, 문을 여는자 그는 사승이다. 거기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 우리는 자신있는 신앙인, 당당한, 여유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할 때 성호경조차 못하는 신자는 아직 수도승의 경지밖에 이르지 못했다. 문을 닫고 어둠 속에서 자신을 웅크리는 연약한 사람, 부끄러운 초심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 3,8-9). 바올 사도는 자신의 체면이나 부끄러움 등을 쓰레기로 여기라고 호소한다.
< 8월. 신입생의 소감 >
- (이야기 요점) 어린이를 나라의 보배, 인생의 꽃이라 한다. 우리의 현실이 어두운 것은 어른 때문이다. 어른들은 저마다의 욕심을 버리고 어린이처럼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인생살이가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면, ”아름다움이, 나의 꿈을 이루고 있어요.“ 해야겠다.
-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아나운서가 여자 어린이에게 물어 보았다. “학교에 입학한 소감이 어때요? 어디 한 번 말해 보세요.” 그 여자 아이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런 대답을 하였다. “아름다움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 아나운서는 똑같은 물음을 남자 어린이에게도 하였다. 남자 어린이는 똑똑이 말했다.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 어른이라는 사람들, 머리만 커지고 입만 커졌을 뿐 고작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좀더 아름다운 것이 아닌, 오히려 추악한 것들을 생각하고 말하기에 세상은 불행투성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아, 어린이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배워라 거짓말 하지 마라. … 사업하는 사람들아, 이기심과 욕심을 버려라. … 문화인들아, 아름다움과 진실을 자주 엮어 이땅에 진리의 꽃을 피워라. … 종교인들아, 말과 행동을 같게 하고 자기의 구원만이 아니라 인생들의 구원을 걱정하고, 이 세상에서 이미 저 세상의 아름다움을 사는 신비스러운 삶의 모습을 보여라. … 어른들도 누가 “당신의 인생살이가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면, “아름다움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나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어요.”하는 대답을 할 수 있어야 겠다.
< 9월. 낮은 건물 낮은 사람 >
- (이야기 요점) 국회의사당이 슬레이트로 지은 형편없는 건물이라면, 청와대도 슬레이트로 지은 낮은 건물이라면, 누가 국회의원이 되고, 누가 대통령이 되려 할까? 교회도 마찬가지, 호화 건물엔 하느님께서 사시기 힘들다. 우리가 비록 높은 데 살아도 낮은 자로 살도록 노력해야 ….
- 이스라엘 시온산에서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작은 동산에 크네셑 공원이 있다. 그 안에 작은 건물이 있는데, 볼품없이 낮게 지어진 국회 의사당이 있다. 안내자는 “이스라엘에서 국회의원을 하려면 겸손하게 봉사해야 하니까 낮게 지은 것”이라고 했다. … 서울에 가서 국회 의사당을 볼 때마다 이스라엘 국회 의사당과 자꾸만 비교를 하게 된다. “저기 저 건물이 굉장하니까 저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눈독을 들이면서 들어가려고 하지, 슬레이트로 지은 형편없는 건물이라면 누가 들어가려고 할까?” … 정치인들이 혹시라도 봉사할 마음보다는 한자리를 차지하여 위세를 떨치면서, 겸손이 아닌 마음껏 교만의 악취를 풍겨 보겠다는 썩어 빠진 생각이 있다면 고쳐야 마땅할 것이다.
- 교회는 어떠한가? 교회도 마찬가지다. 중세기의 교회들은 하늘에 하느님께서 계시다고 생각하여 되도록 교회 탑을 높이 하여 하느님과 더 가까이 만나기를 염원했었다. 그래서 유럽의 교회들을 보면 그 높이가 하늘을 찌를 듯 하지 않은가! … 요즈음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하늘 높은 곳에 계시지 않고 낮은 곳에 계시다고 생각한다. 이 땅에 우리와 함께 계시다고 생각하여 교회를 지어도 낮은 교회를 짓는다. 어떤 경우에는 탑도 세우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낮은 곳, 호화롭지 않은 수수한 곳에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교회 건물도 소박하게 지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 질 것이다”(루카 14,11). 스스로 낮아져서 봉사할 마음을 가질 때 그는 높은 사람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예수님은 오늘도 말씀하고 계신다.
< 10월. 판단은 신중히 >
- (이야기 요점) 시원이는 바지에다 실례를 하고 말았다. 조금 지나자 왕이 사람들과 나타났다. 지린내가 온 방안을 진동시켰다. 다음날부터 왕은 시원이를 모함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믿어야 했다. 현장에서 그 사실을 봤기 때문이다.
- 나쁜 왕이 있었다. 나빠도 얄밉게 나쁜 사람이었다. 법망을 교묘하게 피하면서 남을 괴롭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적이 하나 있었는데 정의로 무장한, 바른 말로 팩팩 쏘아주는 사람이었다. 그를 사람들은 ‘시원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왕이 시원이를 웃으면서 초대했다. 맥주를 거나하게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시원이는 기분이 좋았다. 얼마 뒤 왕은 화장실엘 간다며 나가서 문을 잠가 버렸다. 시원이는 얼마가 지나 화장실엘 급히 가려고 문을 여니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만 바지에다 실례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마신 술로 인해 잠들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 지나 왕이 사람들과 나타났다. 시원이는 아직도 몸을 가누지 못하였고, 지린내가 온 방안을 진동시켰다. 다음날부터 왕은 시원이를 모함하기 시작했다. … 이 세상에 무죄하면서도 죄인으로 판단 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우에 악의 수법에 걸려 든 선한 사람들을 악인이라고 험담하며 그를 질책하는가? 남을 판단하는 일은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마태 7, 1-2). 이 생각하는 계절에 하느님만이 판단의 오류가 없으심을 깊이 깨달아, 함부로 남을 판단하는 잘못이 없기를 진심으로 빈다.
< 11월. 여인의 갱년기 >
- (이야기 요점) 허리둘레가 40인 여인네도 예수님의 일장 훈시에 그만 녹신녹신하게 되어 집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다정이 미소 짓는다. 처졌던 자식의 어깨가 펴지고, 한잔 걸친 남편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어화 좋다. 내 마누라. 최고야, 최고!”
- 어떻게 하면 자신의 마음 문 앞에 못 박아 놓은 갱년기의 문패를 떼어 버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신감을 가지고 어둠을 헤치고 광명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외교인이라면 족집게 무당을 찾아 가는 등 여러 가지 해결책을 찾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신앙인은 그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어찌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면서 그럴 수 있겠는가! 그러하기에 여기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허전하고 고독한 사람, 괜히 심통이 나고 세상이 다 귀찮아지는 사람, 비관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는 사람. 그는 성당엘 가야 한다. 혼자 조용히 앉아서 예수님께 말씀을 드린다. “예수님, 제가 왔습니다. 갱년기에 묘약을 주신다기에 왔습니다. 화끈한 약을 주십시오.” 예수님은 말씀이 없으시다. 그래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 이제 예수님을 성가시게 해드려 보자. 바로 예수님의 이름을 자꾸만 부르는 것이다.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의 이름은 어찌나 힘이 센지 마귀란 놈도 질겁해서 도망을 쳐버렸던 사실을 성경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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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예수님 이름을 부르다 보면 들리는 소리가 있다. “… 네 이웃을 위해 아낌없는 희생을 하여라. 너는 행복할 것이다. … 미소가 없는 곳엔 진리도 없단다. 너는 네 남편 네 자식을 위해 뽑힌 사람이다. 자, 웃어라. 그리고 네 웃음을 남편과 자식 그리고 이웃에게 줘라. 너의 갱년기는 사라질 것이며 감사와 기쁨의 생활이 될 것이다. 가라.” 예수님의 일장 훈시에 그만 녹신녹신하게 되어 집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다정히 미소 짓는다. …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시간을 잘 쓰십시오. 지금은 악한 때입니다 ”(에페 5, 15-16).
< 12월. 상처를 딛고 새 출발을 >
- (이야기 요점) 아내는 아차 하는 순간에 줄을 놓쳤다. 따라오던 남편이 어! 어! 하는 순간에 노한 흙탕물은 아내를 삼켜 버렸다. 업혀 있던 아이도 없어졌다. 그는 털썩 주저앉아 넋을 잃고 말았다. 아내와 자식이 그와 영원히 헤어져야 한다면 하느님은 ….
- 신앙인은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고 한다. 새로운 삶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믿으며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희망한다. 이별은 잠시라고 믿는 것이다. 그 외로운 사람, 상처가 한도 끝도 없고 가슴에 피멍이 들어 있는 사람에게 힘을 내라고 하고 싶은 것이다. 상심한 마음을 그대로 내년까지 가지고 간다면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이 세상엔 속절없이 죽어간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잃은 사람들이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이 주는 위로가 아니다. 술로 고통을 달래려면 어리석은 것이다. 숱한 고통의 가시밭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자가 되시려고 예수님은 고통을 함께하셨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울어 주신다. 고통 있는 자여, 예수님께 돌아오라. 그리고 내년엔 새 희망을 가져 보자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 14,1). “긴장을 풀고 마음을 달래라. 그리고 근심을 네게서 멀리 던져 버려라. 정녕 근심은 많은 사람을 망쳐 놓고 그 안에는 아무 득도 없다 ”(집회 30,23).
[ 3. 세 번째 해 ] p85
< 1월. 본능과 본능의 대결 >
- (이야기 요점) 사람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한다. 좌우지간 동물은 동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동물적 본능을 소유하고 있으며 본능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사람다운 사람이고 그렇지 못할 때 동물과 같은 수준 이하가 되는 것이다.
- 새롭게 시작하는 새해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왔다. 아홉수를 넘긴 사람들은 특히 새해가 의미로울 것이다. 새해엔 어떤 일들이 내 인생을 수놓을 것인가? 새해엔 기분 좋은 일들이 있을 것인지 아니면 짜증스럽고 속 터지는 일들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오로지 하느님 품에 나 자신을 완전히 의탁하는 수밖에 없다. 장기나 바둑엔 많은 수가 있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뾰족한 수가 하나뿐이다. 하느님께 내 인생을 맡기는 수, 그렇다면 그는 분명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승리할 것이다. 새해엔 인간답게 살아야겠다. 본능을 억제하고, 이성을 앞세움 힘찬 전진을 한다면, 우리의 한 해는 아름다운 시간들이 아롱다롱 우리의 전존재 영역을 휘감고 돌고 돌아 행복한 삶이 될 것이라 믿는다. … 흔히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다. 누가 복을 주는데 많이 받으란 말인가? “새해엔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을 많이 받으세요.” 복을 많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느님뿐이시다.
< 2월. 거리의 천사 >
- (이야기 요점) 역사는 쉼 없이 흐른다. 흐르는 역사 속에 말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인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에게 가치 있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며 따사로운 인간애를 실천하는 것이다.
- 우리 교구 청년회에 소속된 아가씨중 두 명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들은 제일 가난한 지역에 가서 조그만 방을 빌려 아이들을 돌보아 준단다. 그곳은 가난한 ‘꼬망동네’라서 부부가 함께 벌어먹고 사는데, 문제는 딸린 서너 살의 어린 자식이라는 것이다. 자식을 묶어 놓고 나가야 하는 그 어미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는가? 이들에게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나타나서 이이들을 돌보아 주고 있다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 오늘도 거리의 천사들은 어린이들의 코를 닦아 주며 같이 놀아 주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겐 많은 이가 가치롭게 여기는 사치, 방종, 부와 명예가 무가치하며, 그들에게 가치로운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며, 따사로운 인간애를 실천하는 일이다. 수많은 종교, 종교인이 들끓는 이 나라는 나날이 도덕적인 타락이 심화되어 갈등과 미움이 뒤범벅이 되고 있다. 이는 이론만 있을 뿐 실천이 없기 때문이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 1,22).
< 3월. 돈 돈 돈 >
- (이야기 요점 ) 밤낮으로 하느님이 최고라고 교회는 가르친다. 침이 마르도록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을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해도 하느님을 얕보는 신자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속된 말로 간이 부풀어 오르는 추세인 모양이다.
- 어느 조사에서 한국인의 의식 구조에 재미있는 물음이 있었다. “당신 인생에 최고로 관심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한 응답자 대부분은 첫째 돈, 둘째 건강이었다. 그런데 똑같은 물음을 신앙인들에게만 하였는데 역시 돈과 건강이었다. 하느님께서 왜 이리도 푸대접을 받으셔야 할까? … 성당에선 하느님이 최고라고 밤낮으로 가르친다. 주일엔 강론으로, 피정이나 모임에서는 침이 마르도록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을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아무리 가르쳐도 하느님을 얕보는 신자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속된 말로 하면 간이 부풀어 오르는 추세인 모양이다. … 현대 신자는 술 마신 사람처럼 간이 부어서 까부는 것 같으나 그것은 정말 위험천만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리도 외쳐 부르던 성경 구절이 있는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덕을 구하라.” “하느님이냐 재물이냐?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 “황금을 좋아하는 자는 의롭게 되지 못하고 돈을 밝히는 자는 돈 때문에 그릇된 길로 들어서리라. 많은 이들이 황금 때문에 파멸하였고 멸망이 그들 앞에 닥쳤다.”(집회 31,5-6).
< 4월. 왜 성당에 다니니 >
- (이야기 요점 ) 밥 먹으러 식당에 가는 사람에게 “당신 왜 식장에 가시오?” 물어 보면 정신 나간 사람이다. 밥 먹으러 가는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우리 신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성당에 왜 가는지를 잘 모른다. 조금 돈 사람들이 많단 말이 되겠다.
- 성당에 다니는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다니는 것이다. 둘째, 인간을 하느님 계신 곳으로 인도하시려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 다리를 인간 세상과 하느님 나라 사이에 놓으셨다. 우리는 그 다리를 건너 하느님 나라에 가게 되었다.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라면 우리는 죽었던 몸이다. 그러나 그분의 십자가 공로로 우린 이제 영생을 하느님 나라에서 지내게 되었다.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셋째, 구원받으려면 십자가를 지고 자기마저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 것들, 그것이 물건이든, 사상이든, 인간이든 주 예수님보다 먼저일 수 없다. 먼저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필리 1,2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 6,14).
< 5월. 기분 나빠요 >
- (이야기 요점 ) 사람은 누구나 칭찬해 주거나 알아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자기가 인정받고 싶으면 남을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면 된다. 내가 누구를 칭찬해 주면 그는 나가서 만나는 사람에게 나의 장점에다 보너스까지 얹어서 선전하게 마련이다.
- 남에게 말 한마디 산뜻하게 해주는 버릇을 들여 보자. 특히 가정에서 사랑의, 칭찬의 말 한마디는 중요하다. 행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부드러운 말, 칭찬하는 말, 희망을 주는 말 한마디를 매일 한다면 그는 매일 엄청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며, 그 실천으로 행복은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동시에 나에게 다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겠다. “부드러운 말씨는 친구들을 많게 하고 우아한 말은 정중한 인사를 많이 받게 된다”(집회 6,5). “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에페 4,29). 이 성경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 모두 실천한다면 아름다운 그리스도인 가정,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이며, 모든 외교인들이 우리를 부러워할 것이다. 사랑의 길은 그리 먼 것만은 아니다.
< 6월. 내 신장은 안돼요 >
- (이야기 요점 ) 피를 나눈 형제끼리도 사랑하기가 이렇게 힘들단 말인가! 동생은 죽어가고 있는데 … 비정한 인간의 욕심은 썩어가는 냄새를 풍기면서 이름뿐임 믿음, 이름뿐인 사랑을 외쳐 댔던 것이다.
- 진씨 부부는 금실 좋기로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진씨는 4대 독자로 태어나 외롭게 지내다가 장가를 가서 5형제를 두었다. 세월이 흘러 자식들은 막내만 남기고 모두 혼사를 치렀고, 성당에도 열심 다녔는데 며느리들도 모두 신자가 되었다. … 그런데 막내아들이 신부전증이라는 병에 걸렸다. 신장에서 오물을 걸러 줘야 전신의 피가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며 건강을 지킬 수 있는데, 피가 썩어갈 판이니 하는 수 없이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의사는 신장을 이식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오래 못 산다고 하였다. 형제가 많으니 누구 한 분이 희생해야 한다고 하면서 신장은 하나만 있어도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이 없으며,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이 사실이 전해지자 부모와 형제들이 모여 가족회의를 여는데 회의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누구 하나 선뜻 자기 신장을 내놓겠다고 나서는 형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 주 토요일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여 제일 신장이 좋은 사람의 것을 떼어 주도록 한다.” 이런 결론을 내린 뒤 헤어졌는데 그날 밤 4형제는 모두 술집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의 뇌리 속에는 “어떻게 하면 내 신장이 나빠질 수 있을까?”하는 생각뿐이었다. … 4형제는 연일 두고 술 퍼마시기에 바빴다. … 진씨가 있었던지 없었던지 알 바 아니고 진씨네 자식들처럼 살아가는 신자라면 어찌되겠는가 하여 일필하였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0).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7).
< 7월. 술 술 술 >
- (이야기 요점 ) 신자라면 절대로 술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술을 지배하는 자가 되어야 술 마실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신자는 하느님 나라를 탐하는 사람이다. 악주가 아닌 약주를 드는 신자이어야 한다.
- 미국의 통계에 의하면 제일 많은 이혼 사유가 술주정이라고 한다. 이는 미국이나 우리나라가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술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 가정이 너무나 많다. 못된 짓을 하고 아내를 쥐잡듯하는 준호 아버지(이야기 속의 악덕 부동산 업자)의 그 악한 근성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 신자라면 절대로 술의 노예가 되어선 안 된다. 술을 지배하는 자가 되어야 술 마실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신자는 하느님을 탐하는 사람이다. 성경에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수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갈라 5,19-21). “술 마시는 것으로 남자다움을 과시하지 마라. 술은 많은 사람을 망쳤다. 만취는 미련한 자의 화를 돋우어 넘어뜨리고 기운을 떨어뜨려 그에게 상처를 입힌다” (집회31, 25.30). 그러나 집회서 31장 27절에는 “술을 알맞게 마시면 사람들에게 생기를 준다”고도 되어 있다. 악주가 아닌 약주를 드는 신자이어야 하기에 이르는 말이다.
< 8월. 부부의 행복 >
- (이야기 요점 )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손한 자세를 지닐 때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기에 겸손해지기를 이 땅의 모든 부부에게 바라며 그로써 행복해지기를 빈다.
- 부부가 불행하게 되는 것은 언제부터일까? 많은 이가 말하기를 부부가 서로의 눈길을 피하기 시작할 때부터라고 한다. 왜 눈길을 피할까? 볼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천사의 눈처럼 생각되던 그의 눈이 가자미눈처럼 보이고, 앵두같이 보이던 입술은 두더지 입술처럼 보일 때 그를 어찌 보겠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지금까지의 부정적인 사고, 자기 긍정적인 사고를 버리는 일이다. … 행복한 부부로 사는 길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손한 자세를 지닐 때이다. 그러므로 서로 겸손해지기를 이 땅의 모든 부부에게 바라며 그로써 행복해지기를 빌 뿐이다. 자신의 장점보다 단점을 보자. 그리고 상대방에게 미안해 하자.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필리 2,3).
< 9월. 깨달은 사람 >
- (이야기 요점 ) 깨달은 자의 삶은 새로운 삶이다. 신자가 됐다는 것은 깨달은 사람이다. 무엇을 깨달은 사람인가? 구원받았음을 깨달은 사람이다. 깨달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천주교 신자는 깨달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구원이라는 문제는 인간의 소관이 아니며 하느님의 전권이므로 인간이 감히 이러쿵저러쿵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뿐만 아니라 불교, 이슬람교, 유다교를 믿는 신앙인은 물론 익명의 그리스도인도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야말로 폭탄선언을 하였다. 물론 예수님의 구속 공로 때문이다. 이러한 선언은 성령의 감도로 이루어졌음이며 배타적인 사고로 일관하던 구습을 완전히 떨쳐 버리게 됐다는데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아시아 인구 5%만이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그들만 구원받고 95%는 자의든 타의든 지옥의 뜨거운 불속에서 영생을 살 것이라는 논리는 하느님의 자비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 천주교 신자는 구원받았음을 깨달은 사람으로서 삶을 살아야 한다. 즉 기쁘게, 감사하며 기도하며 살아야 한다. “저희는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누가 스승님께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로써 저희는 스승님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요한 16,30). 깨달은 다음에 믿음도 있는 것이다.
< 10월. 영적 자유 >
- (이야기 요점 ) 그리스도인은 모든 면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발가벗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빈 마음이 되어야 한다. 마음 안에 빈자리가 있어야 한다. 어린이와 같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 자유란 육신에게만 필요하고 유익한 것은 아니다. 영적인 자유는 어찌 보면 더 필요하다. 정신적인 자유는 육적인 자유에 버금가는 것이다. … 인간은 자유를 원한다. 속박은 육적이건 영적이건 싫어한다. 그러면서도 특히 영적인 속박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미움과 시기심을 없애야 한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미움과 시기, 욕심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채 살고 있는가? 영적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이여, 자유를 찾으라. 사랑과 용서, 겸손과 봉사 등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다. 정신적 자유도 행복과 직결된다. … (이야기 요점 내용) … 요즈음 우리 주변엔 우리를 자유스럽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는 것들이 있다. 텔레비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사람, 그는 자유 시간이 없다. 그에겐 기도할 시간이 없다. 그에겐 대화할 시간이 없다. 그에겐 인간의 깊은 의미를 성찰할 시간이 없다. 텔레비전은 좋은 것이긴 하나 거기에 우리의 밤 시간을 온통 다 빼앗기는 속박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루에 몇 시간만이라도,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자유를 찾아보자. 쾌락도 그렇고 욕심도 그렇다. 거기에 매어 있어서는 안 된다. 자유스러운 그리스도인이어야 주님을 만날 수 있다. “자유인으로서 행동하십시오. 그러나 자유를 악행의 구실로 삼지 말고, 하느님의 종으로서 행동하십시오”(1베드 2,16).
< 11월. 로만 칼라 >
- (이야기 요점 ) 요즘 로만 칼라를 한 목사님을 자주 볼 수 있다. 로만 칼라란, 로마 가톨릭 즉 서방 가톨릭교회 성직자들의 정복이다. 그러므로 로만 칼라를 한 사람은 로마 가톨릭 사제라는 표시가 된다.
로만 칼라의 하얀 색은 순결을 의미하며 이는 가톨릭 성직자가 독신으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과 통한다. 그러기에 가톨릭의 성직자뿐만 아니라 수도자가 하얀 칼라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개신교 목사가 로만 칼라를 한다는 것은 “나는 개신교 목사이긴 하나 로마 가톨릭 신부이기를 원합니다. 목사가 된 것에 대해서 긍지를 갖지 못하며 신부이기를 원합니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작 목사임을 드러내는 표시가 필요하다면, 노랑 칼라 아니면 빨간 칼라로 목사의 고유한 복장을 만들어서 하고 다녔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냐하면 적지 않은 가톨릭 신자들이 혼란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 12월. 상대적 빈곤 >
- (이야기 요점 ) 이 세상에 누구든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임을 고마워하며 살 때에, 자신의 처지에 대해 긍정하며 살 때 행복할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자기 인생을 떳떳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의 인생을 살아가는 삶도 있다.
- 없으면 없는 대로 초연하게 인생을 살 수는 없는 것일까? 같은 계급의 공무원 사이에도, 이재에 밝은 어느 부인이 부동산 투기를 해서 자가용 굴리며 사는 것을 볼 때, 봉급만 다소곳이 바라보면서 사는 가정은 상대적 빈곤감에 휩싸여 가정불화가 생기기도 한다. 하느님께 지능 지수 100을 받았으면 받은 만큼 노력해서 살며 만족해야 한다. 이 세상에 누구든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임을 고마워하며 살 때에, 자신의 처지에 대해 긍정하며 살 때 행복할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자기 인생을 떳떳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의 인생을 살아가는 삶도 있다. “남이 그러니까 나도 그래야지. 나는 못하니까 신경질 난다.”는 생각으로 항상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든 일에 불만스럽고 빈곤감에 젖어 살아도 주님을 믿는 사람은 무엇인가 달라야 한다. “나는 비천하게 살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2-14).
[ 4. 네 번째 해 ] p123
< 1월. 잠 >
- (이야기 요점) 유스티노 씨에게 최고의 관심은 건강이었다. 혈압으로 쓰러진 경험이 있던 터라 걱정치 않을 수 없었다. 정월 첫 주일에도 어김없이 복음이 낭독된 뒤에 털버덕 자리에 앉아 꿈 여행을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강론 서두를 듣는 순간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났다.
- “오늘은 여러분의 건강에 대한 강론을 하겠습니다. 인간의 건강이란 첫째가 그 영혼에 있습니다. 영혼이 건강하면 육신의 건강은 자연히 뒤따릅니다. 영혼의 건강이란 사랑받는 상태입니다.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을 때 아픔은 없습니다. 사랑해 주는 상대방이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라면 더 더욱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육신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내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마음의 건강입니다. 마음속에 근심, 걱정, 욕심, 미움, 시기 등이 도사리고 있으면 여러분의 마음은 아픕니다. 그 결과 육신도 아픕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이런 것들을 빼내고 사랑, 기쁨, 평화, 용서, 친절 등으로 채우십시오. 여러분의 힘이 부족하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을 분명히 사랑으로 평화로 가득해 지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육체는 빛날 것이며 힘이 샘솟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임 신부는 잔잔한 목소리로 15분간을 강론하였으나 유스티노 씨는 결코 졸지 않았다. 사람은 관심을 두고 있는 일이 있을 때 잠 잘 수 없다. 성당에 가기만 하면 마치 병든 닭처럼 조는 사람, 그는 예수님께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 대화하면서 조는 사람이 있겠는가?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마태 26,41). 금년 한 해는 깨어서 살아보자. 빛이신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나아갈수록 잠은 오지 않는다.
< 2월. 참는 사랑 >
- (이야기 요점) 준섭이는 늘 엄마를 가엽게 생각하고 살았다. 그래서 학교만 다녀오면 집안 청소를 말끔히 하고 형에게 밖에서 있었던 얘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곤 했다. 해가 지고 나면 녹초가 되어 들어오시는 엄마를 마중 나가 반갑게 맞이하였다.
- 준섭이는 심한 열감기에 걸렸다. 학교에서는 기침이 심해지면서 걱정되었다. “집에 가서 엄마가 오실 때까지는 제발 멎어야 할 텐데 ….” 준섭이는 기침을 어떻게 하면 멎게 할 수 있을까 하고 골똘히 생각하였다. 기침이 나오려고 할 때 숨을 들이쉬어 보니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에도 기침은 멈추지 않았고, 수업이 끝나자 교실에 혼자 앉아서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을 담임선생님이 보고 “얘, 너 무얼 하고 있니?” 묻자, “기침을 멎게 하려고요. 고생하시는 엄마(노점상)께 걱정 끼쳐 드리면 안 되잖아요.” 이에 준섭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선생님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엄마를 사랑하기에 터져 나오는 기침을 참는 준섭이의 모습에 가히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 13,4.7)
< 3월. 수돗물과 생수 >
- (이야기 요점) 어떤 이들은 수돗물도 없어서 못 마시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수돗물은 물 같지 않아서 마시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인간 사랑을 외치며 정의 사회 구현을 외치는 사람이라면 대중이 벌컥벌컥 마시는 수돗물을 마실 수 있어야 한다.
- 민주사회는 돈 있는 사람은 잘 마시고, 잘 먹고, 잘 입고 잘살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아무리 그런 자유가 있다 하더라도 자기만의 안일과 행복만을 최고로 여기며 산다면 그 곳은 인간이 사는 사회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날이 갈수록 더 심화되는 느낌이 든다. 어떤 이들은 수돗물도 없어서 못 마시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수돗물은 물 같지 않아서 마시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인간 사랑을 외치며 정의 사회 구현을 외치는 사람이라면 대중이 벌컥벌컥 마셔 대는 수돗물을 마셔 댈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그렇다고 자기에게 생긴 물을 모두 내다 버리라는 얘기는 아니다. 수돗물을 마시면서도 대중과 호흡을 함께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그 마음 안에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가 마시는 수돗물은 생수보다 더 맛있고 영양 있고, 값진 물이 될 것이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 1,22).
< 4월. 표리부동 >
- (이야기 요점) 적어도 가톨릭교회만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는 진실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오늘 각 성당에 오셔서 강론대에 서신다면 무엇을 강론하실까? 무엇을 질책하실까? 삶을 뒤엎으시던 그 분노는 없으셔야 할 텐데!
- 율법학자, 바리사이파 사람은 표리부동의 귀재들이었던가 보다. 정부가 국민을 속이고 이제까지 살아 온 우리 한국, 그래서 북한은 인간 살 데가 아니라고 매도해 왔지 않았는가. 물론 북한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교회 지도부는 예수님의 참뜻을 속이고 있지는 않은 것인지? 적어도 가톨릭교회만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는 진실이 있어야 할 것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같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마태 23,27). “그가 네 앞에서 달콤한 말을 하고 네가 하는 말에 탄복하리라. 그러나 나중에 그는 제 말을 바꾸고 네가 한 말로 말썽을 일으키리라. 나는 많은 것을 미워했지만 그에 대한 미움에는 미치지 못한다. 주님께서도 그를 미워하시리라.”(집회 27, 23-24).
< 5월. 사목자의 고민 >
- (이야기 요점)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산아 제한 때문에 성당을 회피하고 냉담하고 있을까? 사목자들은 신자들을 향해 야단만 칠 형편이 못 된다. 지옥불이 두렵지 않느냐고 호령만 칠 수도 없다. 위로의 말을 해줘야 하고 마음의 상처를 가시게 해야 한다.
- 우리나라에서 1년에 약 140만 명 정도의 태아가 살해되고 있다고 한다(‘90년대 초 기준). 참으로 엄청난 숫자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600만 명이나 살해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만도 4년 동안 600만 명의 생명이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1년에 죽어 가는 어린 생명들 중 천주교 신자의 자식은 몇이나 될까? 불행스럽게도 연구 조사에 의하면 낙태에 관한 한 신자나 비신자나 그 비율이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나오고 있으니 슬프고 슬픈 일이다. … 이러한 사실에 누구도 분노하는 이가 없다. 정부는 오히려 장려하는 편이다. 교회도 강력한 대응을 못하고 주기법만 사용하라고 허공에 대고 외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산아 제한 때문에 성당을 회피하고 냉담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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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는 낙태한 사람, 불법으로 산하제한한 사람들을 나쁜 사람들이라면서 지옥 불이 두렵지 않느냐고 호령만 칠 수도 없다. 위로의 말을 해줘야 하고 마음의 상처를 가시게 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위로의 말을 했다가 교회가 낙태를 묵인한다는 인상을 줄 위험이 있어 그렇게 만도 못한다. 사목자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기에 호되게 야단을 치면서도 기왕지사 낙태한 사람들에게는 하느님께서 고해성사로 용서해 주셨으니 더욱 열심히 살아가며 죽은 생명을 위해서도 기도하기를 일러주는 것이 현실이다. … 각 교구마다 카나 강좌나 행복한 가정운동을 위한 프로그램이 확산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사회 통념에 의한 산아제한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차선책이라도 강구하여 적어도 낙태만은 막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할 수는 없겠는가 하는 아쉬움을 가져 보나 한 신부의 뜻과는 거리가 먼 것이 현실이다. 순명은 그러기에 어렵고 힘든 것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3/신명 5,17).
< 6월. 까만 미사보 유감 >
- (이야기 요점) 요즘 웬 바람이 불었는지 까만 미사보가 출현하여 기세를 올리고 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세례 받은 것에 한이 맺혀 옛 인간이 되고 싶다는 표시인가? 나는 계속 죄짓고 살겠소 하는 뜻이란 말인가?
-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11장)에서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여자의 머리는 남편이며 모든 사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대의 이슬람교도들이 머리를 가리고 다니는 이유는 이러한 종교적인 이유에서일 것이다. …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 특히 우리나라 여성들은 전례 때에 열심히 미사보(미사 수건)를 쓴다. 이는 머리를 가리기 위해서다. 옛날엔 세례를 받고 나면 새로 탄생한 인간임을 상징하는 뜻으로 하얀 옷을 입혔다. 과거의 더럽던 인간의 죄가 씻겨 새하얗게 되었음을 상징한 것이다. 세례식 때에 미사 수건을 여인이나 남자의 머리에 얹으며 새사람이 되었음을 명심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 뒤로 여자는 하얀 미사보를 계속 쓰고 전례에 참석한다. 이렇게 부활에 동참한 인간, 순수한 인간의 품의를 상징하는 뜻으로 쓰는 미사보라면 마땅히 그 색깔은 흰색이어야 한다.
- 사실 까만 수건을 쓰는 사람은 멋깨나 부리고 손을 휘적거리며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겐 어쩌면 까만 수건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까만 수건을 쓰고 다니는 여인들이여! 새사람이 되었음을 새롭게 인식하고 부활의 모습을 잊지 말아 주시오라고 간곡히 부탁할 뿐이다. … 까만 미사보에 목숨을 건 여자라면 장례 미사 때나 쓰면 될 것이다. 물론 까만 미사보 반대는 교회의 생각이 아니며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라는 사실을 밝혀 둔다. 외국의 가톨릭 신자들은 미사보를 잘 안 쓴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세계 제일이 아닌가 한다. “슬기로운 이가 지혜로운 말을 들으면 그것을 찬미하며 자기 말을 덧붙이지만 호사하는 자가 그 말을 들으면 그것이 싫어서 등을 돌린다 ”(집회 37,16).
< 7월. 화장실에서 라면을 >
- (이야기 요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 옆에서 하루 종일 동전을 받으며 살아가는 그 여인이 지금 성당에서 쏟아져 나오는 신자들의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느님은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만나러 갈 수 있는 분 ….
- 공원의 정취를 마음껏 누리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도에 들어서니 오른쪽에 화장실이 있었다. 그 옆에 돈을 받는 여인이 있었는데 내 눈에 스치는 그 여인의 모습은 무척 피곤한 기색이었다. 나이는 오십 중반쯤 되어 보였다. 그때가 늦은 저녁시간이었는데 그제서 냄비 하나를 들고 열심히 먹고 있었다. 라면이었다. … 안쓰러운 생각을 하며 성당 앞에 이르니 저녁미사가 끝났는지 신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었다. 울긋불긋 화려하게 옷들을 차려 입었다. 뒤이어 자가용 행렬이 계속 꼬리를 물었다. … (이야기 요점 내용) … 성당이란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다니는 곳, 가난하여 시간이 없는 사람은 감히 넘볼 수 없는 귀족들의 파티쯤으로 생각할 까? 하느님은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만나러 갈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지나 않을까?
- 한국 가톨릭교회는 지금 누구를 위하여 복음 선포를 하고 있는가? 중산층을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도, 정작 더 많이 시간을 할애해야 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구체적인 선교 전략이 없는 것 같다. 이는 참으로 슬픈 일이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연구조사를 보더러도 요즘 가톨릭 신자들의 생활수준이 중산층화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엔 가난한 사람들이 구호물자를 얻으려고 성당에 많이 나왔다. 세월은 바뀌었다. … 옛부터 가난한 사람의 마음만이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참 마음밭이 형성되어 있기에, 열심한 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교회는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소외시킨다면 앞으로의 교회는 빈껍데기만 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루카 18,24).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지 말아라”(집회 4,14).
< 8월. 가정에서 사랑을 >
- (이야기 요점) 성당에서 신부가 가정방문을 왔다며 들이 닥쳤다. 마누라는 너무나도 겸손하였다. “네 그렇지요. 제가 뭐 압니까? 부족한게 많아서요.” 이 세상에 이토록 겸손하고 친절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신부가 나간 뒤 남편은 소리쳤다. “성당 집워치워.”
- “성당 집어치워. 가기만 해봐라.” 휴가중에 쉬고 있던 남편은 무척 화가 나 있었다, 남편에게는 아무렇게나 하면서 신부에게는 쩔쩔매며 있는 친절을 다 베푸는 것이 무엇인가 잘못돼도 한 참 잘못됐다. 연하인듯한 신부에게는 깍듯이 대하면서, 자기를 우습게 보는 마누라를 정상적인 여자로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편은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비참하다고 생각하였다. 자존심은 한없이 뭉그러져 있었다. … 오늘날 성당에 다니면서 열심히 활동을 하는 여인들이 많다. 물론 남자도 많은데 성당에서만 착한 사람, 훌륭한 사람이란 소리를 들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가정에서 먼저 사랑이 가득한 아내, 남편이어야 한다. 가정에서 훌륭하고 자상한 우리 엄마, 아빠란 소리를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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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가정 생활이 싫어지고 남편이 혹 아내가 보기 싫어서 성당에서 소일하려고 나간다는 오해를 받기 쉽기 때문에, 어머니로서의 임무, 아내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한 다음 성당에도 열심히 다녀야 할 것이다. … 가정은 중요하다. 하느님께서 사랑하라고 짝지어 주시고 자녀를 주셔서 아름다운 가정 공동체를 형성하라고 하셨다. 가정에 아픈 시어머니, 아픈 며느리, 아픈 아내, 아픈 남편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아픈 사람에게 정성을 다해야 한다. 성당 활동은 잠시 중단해도 괜찮을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단체들이 각 본당마다 큰 봉사를 하고 있다. 참으로 좋은 일이다. 그러나 봉사를 미끼로 가정을 소홀히 한다면 잘못이다. 신부에게 잘해 줄 생각말고 먼저 당신과 한솥밥을 먹는 식구들에게 잘해 주시라는 것이 본당 신부의 바람임을 알아야 한다.
< 9월. 모유와 성 폭행 >
- (이야기 요점) 오늘의 성 폭행이 만연하고 있는 이유, 특히 젊은이들이 저지르는 성 폭행의 이유는 어머니들이 모유(母乳)를 먹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되게 웃기는 주장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 얘기를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이들도 많을 것이다.
- 성폭행이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이들은 텔레비전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사회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어른들이 보이는 표양이 문제라는 의견이다. 웃기는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어 가고 있는 증표라고 궤변을 늘어놓기도 한다. 나의 주장은 간단하다. 논리적으로 깊이 따질 필요도 없이, 오늘의 성 폭행이 만연하고 있는 이유는, 특히 젊은이들이 저지르는 성 폭행의 이유는 어머니들이 모유를 먹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요즈음 소를 키우는 데는 성장 촉진제가 필수적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주사나 혹은 먹이는 방법으로 사용하는데 그 촉진제 덕분에 소들은 굉장히 크고 뚱뚱해진다고 한다. 이러한 소들한테서 나오는 우유는 성장 촉진제가 들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요즘 우유를 먹는 아이들은 키가 크고 몸집이 우람하다. 어린이들만이 아니다. 너무 덩치가 커서 군에 못 가는 청년들도 있다. 소젖을 먹고 자랐으니 분명 소의 기질이 있을 것이다. 보신탕이나 뱀탕 등으로 동물들을 많이 먹으면 그 동물의 속성을 닮을 수 있는 것이 의학적으로 설명되기에 돈을 투자하여 먹는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육식을 좋아해서인지 야성적이며 털도 참 많이 났다. 그런데 채식만을 하는 어떤 사람은 온순하기 이를 데 없으며 털도 없이 매끈하다.
-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우유를 먹고 자란다. 그러므로 소가 가진 형질을 자기도 모르게 지녔을 것이다. 소는 성에 대해서 완전히 개방적이다. 위아래가 없는 것 같다. 그러기에 동물이다. 동물의 성은 충동적이기에 희생이나 절제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젊은이들이 저지르는 성 폭행은 근원적으로 어머니들이 모유를 먹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것은 어머니로서, 여성으로서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 “나의 아름다움을 위해 젖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은 한두 사람의 의견이 아니다. … 계속 소젖을 먹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날, 여기엔 절제와 희생이 없는 성의 폭행만 난무할 것이며 동물 농장이 될 것이다. 생물학적으로도 어린 시절(1~3세)에 한 인간의 됨됨이가 거의 형성된다고 배우지 않는가! 모유를 먹여 키우는 우리의 후손들이야말로 아름다운 미래를 건설할 것이다. 어머니들이여! 모유를 먹입시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필리 2, 3-4).
< 10월. 대자보의 효력 >
- (이야기 요점) 경찰 두 명이 업무차 학교를 방문하려고 운동장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이때였다.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 몇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야 저기 나쁜 놈들 온다.”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은 순식간에 도망쳐서 보이지 않았다.
- 답동성당과 마주하고 있는 인천 가톨릭회관은 길게 시멘트벽이 둘러쳐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그 벽에 대자보가 나붙기 시작하더니, 사회가 시끄러울수록 투쟁적인 구호와 빨간 글씨의 선동적인 문구가 벽면에 빈틈없이 붙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세월의 흐름을 나타내는 ‘역사의 벽’이기도 하다. … 광주 사태(광주 민중 항쟁)에 관한 사진을 붙여 놨을 때였다. … (이야기 요점 내용) … 요즘은 벽면이 깨끗이 청소되어 있다. 나는 이 사건을 대하고 교육이 얼마나 중요하며, 교육 방법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였다. 물론 광주 민중 항쟁에 대한 진실을 어린이들에게 밝히는 것이야 당연하다고 보겠으나, 너무 잔인한 모습만 본 어린이들의 가슴속엔 경찰과 군인은 모두가 나쁜 놈이라고만 생각하는 결과를 낳게 했기 때문이다. 비극을 대물림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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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를 통한 교육 효과를 보면서 길거리에 널려 있는 영화 포스터나 간판들이 얼마나 어린이들의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깨달았다. 벽보에 “우리 서로 사랑하자.” “사랑하고 이해 깊은 사람들, 아름다운 나라를 건설한다.” 등의 긍정적인 문구를 계속 붙여 놓는다면 큰 효과가 있을 줄 안다. … 현대 사회는 매스 미디어의 홍수 시대다. 그 위력은 대단하다. 텔레비전 프로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싸움이나 투쟁 등의 난폭성보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자주 시청자들에게 보내 줘야 한다. 교사들이 의식화 교육이나 이념 교육보다는, 사랑과 진실을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키우는 데 최선을 다해야 우리에겐 미래가 있을 것이다. 길거리의 대자보나 플래카드도 “사랑하자.”고 써 붙여야 할 것이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8,5).
< 11월. 성소 육성과 산아 제한 >
- (이야기 요점) 신자 중에서 적어도 자녀를 두 명 이상 낳는 겨우 셋째 어린이부터는 교회가 교육비를 책임진다는 계획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물론 수도회도 여기에 전적인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 자녀가 많을 때 성소자도 많은 법이다.
- 자식을 하나 둘 낳는다는 것은 한 개인의 자유이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정당한 산아 제한을 할 것인가가 큰 문제로 대두된다. 또한 이 문제는 교회의 장래와도 직결되기에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식을 하나나 둘 낳아 신학교나 수녀원 보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보낼 사람도 있을 테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성소는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 뻔하다. 요즈음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신학교가 텅텅 비고 수도원은 아예 문 닫았거나 거미줄이 여기저기 쳐져 있으며, 그로 인해 가톨릭교회는 생동감을 잃어가고 있다고 한다. 패기 넘치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주님 말씀을 힘차게 전하며 젊음을 불태워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때문이다.
- 한국 가톨릭교회는 교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성소 육성에 거시적인 안목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오늘에 자족하며 거드름을 피우다간 우리도 머지않아 서구와 같은 쓰라린 경험을 할 것이기 때문이며, 이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책임 회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제안을 하고 싶은 것이다. … (이야기 요점 내용) … 그러므로 이러한 계획은 교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가톨릭교회의 선교가 어느 종교보다도 매력적인 점수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오늘의 젊은 신자들이 자녀를 하느님 뜻대로 많이 낳을 수만 있다면 미래는 가톨릭 신앙이 더욱 이 강산을 충만히 채울 수 있을 것이며, 이 민족을 주님 품안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 “바리사이가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40-41).
< 12월. 가톨릭 신자의 신원 >
- (이야기 요점) 대머리인 내가 대머리 약을 판다고 가정하고 “이 약으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어쩌고저쩌고 ….” 아마 그 약은 절대로 팔리지 않을 것이다. 웃기는 사람 다 보겠다며 혀를 차고 나갈 것이다. 가톨릭 신자라면 매일의 생활이 기쁜 사람이어야 한다.
- 복음은 기쁜 소식이다.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복음을 깨달은 사람, 기쁜 소식 때문에 매일의 생활이 기쁜 사람이어야 한다. 찌든 얼굴로 미움과 시기, 탐욕, 이기심, 방탕, 근심, 걱정, 좌절로 살아가고 있다면 외교인들이 비웃을 것이다. 우리가 만일 병든 닭처럼 맥없는 모습으로 비실대며 살아간다면 그 누가 우릴 부러워할 것인가? 먼저 우리가 기쁘게 살아가면서 비신자들을 기쁨으로 초대해야 한다. 그러면 왜 신자로서 기쁨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예수님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 신자들에게 있어서 기쁘게 사는 것이 첫째로 중요한 것이라면 둘째는 예수님으로부터 힘과 위로를 얻고 사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신자라면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 감사함이 큰 사람은 계속 감사할 것이 많아지는 법이다. 우선 나와 내 가족의 건강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건강을 귀히 보면서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다면 숨 쉴 수 있음도, 한국에서의 삶도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겐 세상이 온통 감사함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신자는 하느님께만 감사해서는 안 된다. 내 주변의 모든 이웃들, 그들 때문에 내가 살 수 있음을 생각하고 감사해야 한다. 감사와 기쁨, 위로와 힘, 모두가 예수님에게서 옴을 날마다 확인하자.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 5. 다섯 번째 해 ] p161
< 1월. 영적 설계를 하자 >
- (이야기 요점) 예수님만 따라 그분의 손을 잡고 걸어가면 안전할 것이다.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대로 걸어가면 안전하다. 아름다운 새가 노래도 불러 줄 것이다. 향기 짙은 꽃들도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반길 것이다.
- “너희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다. 만군의 주님의 명령을 지킨다고 그분 앞에서 슬프게 걷는다고 무슨 이득이 있느냐?’ 오히려 이제 우리는 ‘거만한 자들이 행복하다고 말해야 한다.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번성하고 하느님을 시험하고도 화를 입지 않는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어떤 사람은 “맞아!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느니, 슬퍼하는 이가 행복하다느니,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 뺨을 내놓아야 한다느니 하는 얼토당토않은 대목이 많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법하다. … 우리가 살아가는 있는 오늘, 세상은 악의 저항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듯 보이고 느껴진다. 악한 세력은 삶의 우리의 삶 구석구석까지 침투하여 우리를 부른다. “무엇 때문에 고생하면서 성당을 다녀! 자유를 찾으라 이 말이여! … 등등” 우리는 이런 감언이설에 속아서는 안 된다. 악한 세력의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베드로 사도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 여러분의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1베드 5,8-9). 또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에페 6,11-18).
- 우리는 길을 찾아, 길을 따라야 한다. 그 길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이르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고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만 따라 그분의 손을 잡고 가면 안전하다.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대로 걸어가면 안전하다. 어머니 마리아의 품을 떠나서도 안 될 것이다. 아침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하루 일과를 말씀드리고, 어려울 때 등을 밀어 주실 것을 부탁드리는 신자여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복된 나날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성령의 열매도 가득 맺어 모든 이가 찬탄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며, 나뿐 아니라 내이웃들에게 빛과 소금의 역할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 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주님 나와 함께 언제나 계실 것이기에 두려움 없도다.
< 2월. 절하는 마음 >
- (이야기 요점) 우리가 믿는 하느님, 그분은 우주 만물이 흠숭해야 할 지존하신 분이시다. 온몸으로 흠숭해도 부족하기에 우리의 최고 정성인 절이라도 드리는 내뜻을 갸륵히 여기시는 분은 내일부터라도 그리 해보시기 바란다.
- 세계 7~8억이나 되는 이슬람교도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알라 신에게 존경과 흠숭의 표시로 절하며 기도를 드린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원에는 의자라는 것이 없다. 그런가 하면 불교의 스님들도 무릎이 다 해어지도록 수시로 절을 드린다. 산사에 가끔 가보면 경향 각지에서 몰려온 신도들이 여러 모양으로 절을 드린다. 사찰에도 의자가 없는 이유이다. 유교 전통에서도 절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죽은 이에게도 산 이에게도 절을 드리며 존경과 애정을 표시한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불교와 유교가 끼친 영향 때문인지 절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정초가 되면 가족이 모여 조상에게 제사 지내고 어른들에게 절 드리는 것이 미풍양속이다.
- 우리나라 사람은 웃어른을 처음 만난다든가 오랜만에 만나면 존경의 표시로 절을 드린다. 이것이 한국적 최고의 존경의 표시라면, 최고의 존경과 흠숭을 받으셔야 할 하느님께 한국인으로서는 절을 드려야 마땅할 것이다. 날마다 나는 하느님께 절을 드리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을 가다듬고 성부께 성자께 성령께 세 번 절을 드리면서 기도를 드린다. 성부께는 “하느님 아버지 문안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깁니다. …” 성자께는 “주님, 나의 주님, 제 손을 잡아 주세요. 오늘 하루 주님 이름 자주 부르며 주님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 성령께는 “성령님, 오늘 저를 비추시어 사랑 안에 살아가며 은사와 열매로 충만한 가운데 이웃에게 봉사하게 하소서.” … (이야기 요점 내용) … “그들은 별을 보고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마태 2,11-12).
< 3월. 전례는 통일돼야 한다 >
- (이야기 요점) 개인의 의견이 아무리 훌륭하더도 교회가 공식적으로 허락하지 않는 한 원칙은 원칙대로 지켜야 한다. 만일 저마다 갖고 있는 생각을 전례에 마음대로 적용한다면 뒤죽박죽이 될 것이며 자기 마음에 맞는 전례를 찾아 주일마다 먼 곳까지 가는 개신교회의 상황이 일어날 것이다.
- 어느 본당의 주임신부의 병원 입원으로 대신 미사드릴 기회가 있었다. … ‘말씀의 전례’ 시간에 독서자가 봉독을 시작하자 신자들도 모두 함께 봉독하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일이라 너무 당황하였다. 독서뿐만 아니라 복음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복음을 낭독 시작하자 신자들도 모두 따라 읽었다. 나는 속으로 “뭐가 뭔지 모르겠군!” 하며 중얼거렸다. ‘주님의 기도’ 때가 되었다. 내가 높이 손을 들고 기도를 시작하자 신자들도 손을 높이 들었다. … 천주교회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공통된 전례일 것이다. 부산이나 제주도 등 타지에 가서 미사 참례를 하더라도 전례가 달라서 불편을 느껴서는 곤란한 일이다. … 말씀의 전례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지 읽는 시간이 아니다. 물론 신자들이 성경을 갖고 다니지 않고 읽지도 않으니까 읽게 하려고 그런 방법을 썼을지 모르나 삼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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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다른 본당에서 본당 신부님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는데, 그 분이 미사를 마치면서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기쁘게 생활합시다.”는 것이었다. 미사가 끝났으니 나가서 평화스럽게, 기쁘게 살라는 것도 맞는 말씀이긴 하다. 그러나 이 파견은 너무 개인주의적인 파견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우리가 미사를 봉헌하고 나서는 그 충만한 기쁨을 혼자서만 간직하지 말고 이웃들에게 전파해야 한다. 복음은 세상 끝까지 전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 (이야기 요점 내용) … 필요하다면 전례의 토착화를 위한 제안을 정식으로 제출하여 소단위 모임에서 그 예식을 사용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좋다는 교회의 공식 인준이 있은 다음 전교회가 통일적으로 사용하도록 해야 혼란이 없을 것이다.
< 4월. 무게가 모자랐다 >
- (이야기 요점) 하느님보다 자신의 얕은 지식과 이론을 앞세우는 신자도 있다. 하느님보다 인간을 더 앞세우는 인본주의자도 있다. 하느님보다 해괴한 종교 이론이나, 꿈, 환시 등을 앞세우는 신자도 있다. 이런 신자는 ….
- 바빌론 왕 벨사살이 만조백관을 불러 만찬을 하던 중에 갑자기 사람의 손가락 하나가 나타나 벽에 “므네, 므네, 드켈, 미라신”이라고 글씨를 썼는데 읽지도 해석하는 이가 없었다. … 그 뜻을 해석하기 위해 다니엘이 왕 앞에 불려 나왔다. 하느님의 사람인 그는 그 글자를 이렇게 해석하였다. “저 글은 므네 므네 드켈 브라신인데 그 뜻인즉 ‘므네’는 하느님께서 왕의 나라 햇수를 세어 보시고 마감하셨다.‘는 뜻입니다. ‘드켈’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시니 무게가 모자랐다.’는 뜻입니다. ‘브라신’은 ‘왕의 나라를 메대와 페르시아에게 갈라 주신다.’는 뜻입니다.” 다니엘의 해석은 정학하였으니 벨사살 왕은 그날 밤 살해되었다. 무게가 모자란 왕의 최후는 참 비참하였다.
- 영적인 면에서도 무게가 많이 나가야 건강한 사람이다. 지금 하느님께서 나를 저울에 달아 보신다면 무어라 하실까? 내 신앙은 얼마나 무거울까? 내가 저울에 올라섰을 때 ‘드켈’이라 하시면 난감한 일일 것이다. 무거워지기 위해서는 영적 양식을 많이 먹어야 한다. 영적 양식이란 하느님 말씀이다. 성경에 맛 들이는 신자, 그는 무게가 점점 올라갈 것이다. 기도 잘하는 신자, 그 또한 무게가 불어날 것이다. 성사 생활에 충실한 신자, 그 역시 무게가 몰라보게 불어날 것이다. 요사이 영혼의 무게가 너무 모자라는 신자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날마다 영적 저울에 나 자신을 달아 보자.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무게를 늘려 보자. 그래야 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만이 뽑혀 갈 수 있는 영생의 하늘나라에 참여케 될 것이다. 바빌론 왕 벨사살은 우상을 섬겼기에 무게가 모자랐다. … (이야기 요점 내용) … 이런 신자에게는 ‘드켈’이라는 글씨가 그의 방문 앞에 쓰여질지도 모르니 서둘러서 하느님께 부복하여 순명을 약속해야 한다. “악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지혜 2,22).
< 5월. 야단맞아 싸 >
- (이야기 요점) 성당엘 가는 신자들 중에는 존경받기 위해서 가는 사람도 있다. 목을 뻣뻣이 세우고 당연히 대우받아야 할 사람으로 생각하는 신자들이 있다. 그런 신자들은 대부분 학식이 많다거나 재물이 많아 사장 소리를 듣는 사람, 본당의 터줏대감으로 오랫동안 회장님 소리를 들은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 고색 창연한 대성당이 있었다. … 이 멋진 성당을 곁에 두고도 매주일 자동차로 두 시간씩이나 달려가서 미사 참례를 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핵물리학자가 있었다. 그 본당 신부는 대머리까지 벗어진 연세가 지긋하신 분인데, 어찌나 신자들에게 야단만 치는지 인기가 없는 분이었다. 어떤 신자에게는 냉담하기까지 할 정도로 불같이 성질을 부리면서 나무랐다. … 하루는 그 물리학자의 친한 친구가 “이봐, 옆에 성당을 두고 왜 자넨 멀리까지 가나? 자넨 참 이상하군!” 물었다. 그가 말했다. “이봐, 난 말야 야단맞아야 해. 난 죄인이거든 그런데 옆에 있는 본당엘 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우러러본단 말야. …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나는 하느님 앞에 죄인일 뿐이야. 난 야단을 맞아야 돼. … 난 하느님 앞에 훌륭한 사람이 아니야. 난 여러 형제 자매 앞에서 훌륭한 사람이 아니야. 그래서 난 힘들지만 그리로 가네. 야단맞으러 말야.” … (이야기 요점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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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당에 가는 것은 칭찬만 듣기 위해서는 아니다. 강론이란 근본적으로 회개의 외침일 것이다. 격려와 칭찬은 달콤하다. 그러나 갸날픈 인간을 만든다. 야단맞는 것을 당연시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그 물리학자의 경지가 높아서일 것이다. 우리들 주변엔 부정적인 사고로 세상을 원망하고 가정을 원망하고 부모와 남편 아내 자식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평과 불만, 원망은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아들은 교훈을 사랑하지만 빈정꾼은 꾸지람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오만은 싸움만 일으키지만 충고를 듣는 이들에게는 지혜가 있다.”(잠언 13,1 ; 13.10).
< 6월.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망 >
- (이야기 요점) 사람은 너나할것없이 사랑받고 싶어 한다. 인정받고 싶어 한다. 패선이라는 단어가 대중화되는 이유도 거기 있으며 미용실이 번창하고 화장품 회사들이 재벌이 될 수 있는 이유도 거기 있다.
- 예루살렘에 갔을 때 카나의 혼인잔치가 있었던 ‘카나 성당’에서 보았던, 잊을 수 없는 수녀님의 미소와 친절을 몇 번이고 회상하였다. 그분의 맑은 눈, 천진스러운 미소, 친절한 자세, 겸손한 모습에 반하고 말았다. 처음 보는 외국 수녀님이었지만 마치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연상케 하고도 남았다. 그 수녀님은 나뿐아니라 그곳을 지나는 순레객들의 피곤한 발걸음을 산뜻하고 가뿐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나는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는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도록 노력할 것을 굳게 다짐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조석지변인것처럼 잘 지켜지지는 않았으나 조금씩 나아지는 감을 느낀다. 그리하여 처음 시도한 것은 미사가 끝나고 나서 친절히 악수하는 일이었다. … (이야기 요점 내용) … 남이 내게 반말을 하는 것이 듣기 싫으면 나도 남에게 반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남이 내게 거만하게 행동하는 것이 싫다면 나도 남에게 거만하게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하루아침에 성인군자가 되는 것은 아니기에 하나씩이라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내지 않습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1코린 13장 참조).
< 7월. 아픔도 은총 >
- (이야기 요점) 오늘도 감사할 것이 없는 양 서성거리는 신자들이 있다면 아팠던 과거를 회상해 보기 바란다. 오늘 괜한 불평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신자가 있다면 처절했던 과거의 고통들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 요 며칠 동안 나는 몸살감기에 열이 나며 목이 붓고 가슴이 답답하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그제야 나는 깊이 깨우친 바가 있었으니 건강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하는 것이다. 아파 보고서야 건강이란 하느님의 크신 은총이며, 하루하루의 삶이 은총 속에 이어짐을 감격하게 된다면 아픔도 은총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신부님은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은총이며 행복이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맞는 말이다. 육신이 멀쩡하며 밥 잘 먹고 술 잘 마시는 사람도 무엇이 그리 불만인지 항상 부정적인 경우를 본다. …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교만하기 그지없었다. … 그는 예리하며 공격적이며 투쟁적이던 모습에서 잔잔하고 온화하며 누구든지 무엇이건 받아들이겠다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목숨을 건진 것도 하느님의 은총이고, 이제 새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교통사고로 그의 얼굴은 상처를 입었고, 뼈에 금이 가는 고통을 당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큰 은총이었다. 우리는 나날 속에서 많은 고통과 부닥치는데, 그 고통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거기엔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은총을 건지기만 하다면 부러울 것이 없는 인생으로 새 출발을 시작할 수 있다. …(이야기 요점 내용) …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야고 1,2). 하느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함께 계심을 깨닫는다면 고통을 체험하지 않아도 감사하며 살 텐데 인간인지라 그러지 못해 탈이다.
< 8월. 바보 만세 ! >
- (이야기 요점) 이 세상 지혜는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어리석은 것이다. 바보 신자가 많은 한 교회는 교회의 본 모습을 계속 지켜 나갈 것이지만 지혜로운 신자가 많을수록 교회는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 요즘 세상엔 정상으로 사는 사람은 바보 소릴 듣는다. 신자도 하느님 뜻대로 살려고 하면 바보 소리 들을 것이 뻔하다. “이봐! 여긴 세상이야. 천상이 아니라고. 성경대로 어찌 살 수 있다고 그래. 원수를 짓밟아야 살지.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을 내주는 것은 불가능해. 왼쪽 뺨을 내주기는커녕 그 녀석의 손모가지를 부려 뜨려야 하는 세상이야.” … 주일에 성당에 와서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가정에 돌아가서는 세상의 지혜에 기준을 맞추고 사는 신자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이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1코린 3,19). … (이야기 요점 내용) … 바보, 바보 만세!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 하느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1코린 1,18 ; 20-21).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콜로 3,1-2).
< 9월. 신앙인과 인본주의 >
- (이야기 요점)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 유령 괴물이 있는 듯하니 에수님 없는 신자, 예수님 없는 교회, 예수님 없는 단체가 많은 듯하다. 예수님은 머리요 우리는 지체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다 가지임에도, 나무 없는 가지들이 살아서 움직인다고 하니 기막힌 노릇이다.
- …(이야기 요점 내용) 신앙인이면서도 인본주의적인 사고가 더 강하여 하느님보다는 인간의 능력을 뢰하고 살아가는 신자라면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입니다.’ 하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허세를 부리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야고 4,14-16). … 어떤 때는 답답하기만하다. 기도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리는 농부를 보십시오. 그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립니다.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야고 5,7-8)라는 성경 말씀에 귀기울여야 한다. “인간은 무엇인가, 무슨 가치가 있는가? 그의 선함은 무엇이고 악함은 무엇인가? 인간의 수명은 기껏 백년이지만 영면의 시간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다. 바다의 물 한방울과 모래 한 알처럼 인간의 수명은 영원의 날수 안에서 불과 몇 해일 뿐이다. 이 때문에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인내심을 보이시고 그들에게 당신 자비를 쏟으신다”(집회 18, 8-11). 오늘날 인간의 알량한 지혜와 지식, 능력을 과대 평가하여 마치 신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 버린 신앙인이 있다면 성인 아우구스티노의 “하느님께 복종하는 사람만이 참 자유를 얻으리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 10월. 친아버지와 의붓아버지 >
- (이야기 요점) 우리가 날마다 하느님을 찾지만, 아버지라는 생각이 없으면 우리는 외롭고 불행하다. 잘못해서 아버지께 야단맞고도 다음날이면 아버지의 인자한 손길이 나를 어루만지며 사랑해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그녀는 남편이 후두암으로 사별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중 3년이 지나 재혼하면서 부부관계는 대체로 좋았으나 문제는 자식들이었다. … 인간이 살아가다 보면 언제나 좋은 일만 있겠는가! 언제나 참을 수만 있겠는가! 어느 날 계부가 아이들에게 야단을 쳤다. 그 뒤론 아이들이 더 더욱 계부 눈치를 살피고 우울해했다. 친아버지였다면 야단맞아 눈물을 줄줄 짜더라도 다음날이면 환희 웃으며 야단맞은 노여움이 씻은 듯이 달아날 것이고, 아빠 손을 잡으며 방긋이 웃을 것이다. 그러나 계부에겐 그럴 수가 없었다. 계부가 두렵고 더욱 어려울 뿐이다. 신앙인들 가운데 하느님을 마치 계부인 듯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은 듯하다. 가까이하기 어려운 분, 무서운 분이라고 생각한다. 야단맞을까 걱정한다. … (이야기 요점 내용) … 꼬마가 아버지의 무동을 타고 깔깔 웃으며 걸어가는 모습은 우리와 하느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러해야 함을 일깨워 준다. 언제라도 나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깨닫기만 한다면 우린 행복할 것이다. 하느님을 우리의 친아버지로 사랑하자. “주님을 찬송하여라. 좋으신 분이시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시편 118,1).
< 11월. 행복을 잡아라 >
- (이야기 요점) 우리가 하는 걱정들은 보통 미래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그 미래에 대한 걱정은 ‘만일’이라는 미련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만일’ 내게 시간을 허락하신다면 무엇무엇에 대해 나는 어떻게 하겠다고 걱정해야 한다.
-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과 부정적인 사고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과는 차이가 있다. …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세상을 산다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 (이야기 요점 내용) … 하느님을 생각하다 보면, 걱정은 사라질 것이다.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요한 14, 1-2). 신자들은 성당에서 멋지게 시편 23편을 노래한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 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 … ” 그러나 입술로는 걱정할 것 없다 외치면서도 가슴엔 걱정이 태산 같아서 얼굴은 수심에 잠겨 있는 신자도 있을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이 자신의 소망에 못 미친다 하여도 그 상황 아래서 긍정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 … 나의 모든 현실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분명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나만 믿으라”고 하셨음을 기억하자. “슬픔에 너 자신을 넘겨주지 말고 일부러 너 자신을 괴롭히지 마라. 마음의 기쁨은 곧 사람의 생명이며 즐거움은 곧 인간의 장수이다”(집회 30, 21-22). 행복은 나의 선택에 달렸다. 행복을 잡자. 오늘 이 순간에 이 환경에서.
< 12월. 빈자리 >
- (이야기 요점) 세례를 받은 사람은 자기를 버린 사람이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이미 없어진 나만을 위해 산다면 안될 말이다.
- 요즘 너무 개인적이고 구복적인 신앙 생활을 하는 신자가 많아지는 것 같다. … 나만 행복하기 위해서 신앙을 가진다면 이기주의자의 한풀이에 불과하다. 나만 기쁘고 행복해서 무얼 어쩌겟다는 것인가! 물론 신앙인라면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나 그걸 전부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참된 신앙인이 되려면 남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갔다오면 항상 엄마가 성당 가고 없어서 자기들이 알아서 밥을 꺼내 먹는다고 하면, 자녀들은 성당을 엄마를 빼앗아 간 원수처럼 여길 것이다. 병 들어 누워 있는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지은 더운밥 한 그릇 먹고 싶어도 성당 나간 며느리 보기가 힘들다면, 죽을 준비도 잘되지 않을 것이다. 모름지기 신자는 가난한 이웃과 고통받는 이웃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세계는 걱정하지 못해도 내 조국에 대한 걱정 정도는 할 수 있는 신자라야 더 더욱 훌륭할 것이다. 근자에 우리 사회의 불안을 틈새를 비집고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는 신흥 종교들은, 종말을 설교하면서 한 개인의 신앙을 고양시키려고 애쓴다. 거기에 현혹된 부녀자들은 나만 좋은 데 가면 그만이라는 순 이기적인 생각으로 가정까지 헌신짝처럼 버리기 일쑤다. 그들은 현실을 떠난 삶, 곧 환상이나 꿈 등의 신비스러운 것들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 (이야기 요점 내용) …
- 철야 기도나 피정은 나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더 굳게 고양시켜 이웃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희생하고 봉사하고 사랑할 것인가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결심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 어떤 극단론자들은 미사는 빠지면서도 기도회는 나가서 손뼉치는 경우를 보았다. 기도중에 최고의 기도는 무엇인가? 성체를 모시는 기쁨을 모르는 그의 믿음은 어느 길을 걷고 있는 것인가? 많은 신자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비우고 방황하는데 어서 그들 모두가 ‘빈자리’를 채워 ‘찬자리’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빈자리’의 대단원을 마친다.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이고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카 6,8)
#119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120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 책 이름 : 별 이야기 5 ]
- 지은이 : 임상호
- 지은이 프로필 : 한국문인협회 경기도지회 부회장, 한국 시 대사전 작품 수록,
광명시장상 수상, 예총 공로상 수상, 올해의 작가상 수상, 경기도 문학상 공로상 수상,
문화예술유공 경기도지사 표창, 광명문학 대상 수상, 광명예술 대상 수상, 한국작가문학상 우수상 수상(2023.10.29.), 광명신용협회 이사장(2012년~현재)
- 펴낸데 : 등대지기
- 발행일 : 2023.11.11 - 128p
- 내 용 : 성담 임상호의 별 이야기 제5 시집
(1. 여정, 2. 섭리, 3. 연정, 4. 사모, 테마별 총 103편의 시 모음)
- 지은이의 서적 : 자서전 <바람 앞에서 촛불을 켜다>,
개인 시집 ‘별 이야기, 2, 3, 4’ 발간
[ 표지의 글 ]
파고 또 파고, 캐고 다시금 캐내어도 빛을 발하는 영롱한 단어 하나 찾기마저 고단한 이 문학이라는 장르에 두려움 모르는 듯 감히 덤벼들어 등단 이후 벌써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 만큼 글과 씨름하며 살아온 세월임에도 아직도 톡톡 튀거나 맛깔스런 글을 잉태하지 못함도 마냥 부끄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봄이 되면 버릇처럼 끊임없이 한 알의 씨앗심어 애지중지 가꾸어 고은 향 지닌 한 송이 붉은 꽃이 피어나기만을 노심초사 바라는 농부의 마음과도 같습니다. 지금껏 그랬듯 저를 일깨워 따뜻한 격려로 붓을 들어 글 짓는 일에 매진하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용기와 격려를 주신 고마운 분들에게 부끄러움 무릅쓰고 새 글을 전해드린다는 마음만으로 오늘도 별이 뜨고 달이 잠들 무렵까지 이 고독하고 험난한 파도를 헤치며 돛을 올려 다시금 항해의 길을 떠납니다. - 본문 발간사 중에서
[ 가을의 중심에 서서 … ] - 발간사
발갛게 달아오르는 임의 얼굴처럼 익어가는 계절의 중심에서 천리만리 펼쳐진 대자연의 모든 만물이 곱게 채색되는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이 빼어난 가을을 예찬하고 싶어집니다. 누리를 비추는 고즈넉한 한조각 눈썹달에서 은빛 찬연한 빛을 발하는 작은 별들까지 생각과 말로는 이 곱디고움을 형언할 수 없어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계절 속에 묻히고 맙니다. 덩달아 한 획, 한 줄로 이어지는 낱말이 모여 계절의 진수에 버금갈만한 글을 태동하고 싶어 안달이 날만큼 욕심을 내어보지만 머리를 쥐어 짜내보아야 어찌할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글쟁이로서의 참담한 굴욕마저 느끼게 됨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 (표지의 글 내용) … 종심을 훌쩍 넘겨버린 황혼의 나이에 그것도 ‘죽음의 병’이라는 폐암 4기를 ‘긍정’이라는 짧은 단어 하나만 믿고 헤쳐 나왔듯이 앞으로도 보이지 않는 장벽을 넘어 꿋꿋이 나아갈 것입니다. ….
- 별빛 내려와 곁에 머무는 가을밤에
… 성담(星譚) 임상호
# 각 부(테마)에는 25~27편(총 103편)의 시(詩)가 실려있으나 각 부(1-4)별 5편씩만을 발췌하여 메모함. - 독서메모자
[ 제1부 여정(旅程) ] p11
- 발길 닿는 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떠나는 삶
< 불씨를 지피다 >
싸늘히 식어만 가던 인생 여정의
끄트머리에서 또 다른 생의 전환점을 만난다.
가늠조차 하지 못한 인연이라는
끈을 부여잡고 시작하는 사랑의 시발점.
조심스레 불씨 지펴 생의 마지막 희열을 향해
꺼져가던 불 지핀 사랑이 과연 운명처럼 불꽃을 피울까.
안개에 쌓인 미지의 세계 조심스레 내딛는 발걸음은
결코 맞잡는 손 놓치지 않고 종착역까지 잘 가려나.
< 희망을 찾아서 >
새로운 항해의 깃발을 올리고
저 거친 세상의 희망 찾아 풍랑을 거슬러 나아가리.
육신이야 비록 늙어 보잘것없지만
새로움 추구하는 정신은 여전히 남아있다네.
이제 다시는 비굴과 좌절의 시간 벗어나
끈질김의 나래를 펴고 창공 드높이 날아가리.
굳게 닫았던 어둠의 흔적도 아랑곳없이
새로운 미지의 세계 향해 끊임없이 노 저어가리.
< 인생의 길 >
우리가 이토록 못 견디게 세월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까닭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곁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따라 아스라이 초승달이 창공에 머물러 오랫동안 함께 하고자
저리 떠 있어 나 몰라라 하며 버리고 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단 달이나 별 따위보다 더 정겨운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고운 내 사랑하는 임이
나와 숨 쉬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죽는 순간까지 함께 하자합니다.
타인처럼 만나 어릴 적 동무같이 대해주고
죽고 못 살 연인처럼 서로를 아끼고
힘들 때마다 고비마다 용기 내라며 북돋아 준 고마운 사람.
버릴 것 없는 우리 인생의 매 시간마다
아니 그 짧은 찰나의 순간까지도
머나먼 길동무처럼 동행이란 행복을 깨우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그친 이 저녁 어제 몽우리 진 분꽃이
저녁노을에 화답하는 작은 나팔을 불어대기 시작합니다.
태어나 마지막 가는 발길 아쉬움은 더러더러 있었겠지만
그래도 더없이 행복하였던 인생 여정이 여기서 멈춥니다.
< 황혼의 시절 >
하루를 마감 짓듯 태양은 숨고
저녁놀은 서녘 하늘에 꽃처럼 피고 지는구나.
푸르던 잎새도 덩달아 곱게 물드는 시간
떨어지는 낙엽의 마지막 길 동행하며 거닐고 싶네.
이제는 어느덧 이별의 순간 젊음의 시절 내려놓고
뉘엿뉘엿 해 지듯 인생 여정의 황혼 길을 간다네.
< 겨울처럼 >
세 번의 폐암 선고후 마치 낙엽 떨어져 벌거벗어 부끄러운
나무처럼 무성하던 머리카락이 존재도 없이 뽑힌 날.
수척해진 몰골이 불쌍하다는 듯
물끄러미 쳐다보던 사람들이 죽음을 예고하던 날.
그러나 죽은 듯 고요하기만 하던 얼음장 그 밑에선
누구도 점칠 수 없던 고귀한 생명이 움트고 있었다.
이제 다시는 그 아픔 딛고 주먹으로 눈물 훔치던
아픔의 기억은 다시없으리라. 두 번 다시 영영 ….
[ 제2부 섭리(攝理) ] p43
- 인간사 모두 하늘이 미리 정해준 길 따라 가는 삶
< 대장간 >
얼마나 더 맞아야 될는지
후려치는 손에 달려 말도 못할 운명.
벌겋게 달아오르면 연이어
두들겨 맞는 일이 이제는 이력이 났다.
때로는 둥글게 어느 때는 모나게
흠씬 맞고서야 태어나는 호미나 도끼.
인생도 온몸 구석구석
푸른 멍이 들고난 뒤라야 참 사람이 된다네.
< 창조의 세계 >
고요를 깨고 낯익은 풀벌레 소리 귓가에 은은히 들려오면
반딧불은 때맞춰 어둠의 숲을 환상의 무대로 수놓는다.
구름에 덮여있던 초승달이 삐죽 얼굴 내밀어
여명의 숲을 밝히면 선잠 물린 나그네의 발길은
미지의 세계로 분주히 움직인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들의 바쁜 움직임에
서서히 눈을 뜨는 만물이 다른 모습으로 채비를 갖춘다.
꽃을 피우는 시각에 맞추어 향기를 전하고
태양은 북소리에 장단 맞추듯
순간순간 동쪽 하늘을 장엄하게 붉음으로 물들인다.
어제와 같은 듯 사뭇 다른 각양각색의
생명체들은 저마다의 터전을 찰나처럼 바꾼다.
만물은 마치 그 누구의 명령에 따르는 듯
무질서 속에 질서를 유지하며 새로움을 창조한다.
< 덧없는 세월 >
하늘은 푸르다가도 급히 먹구름에 덮여 존재를
잃은 듯 세상을 어둠에 싸이게 만든다.
때론 비가 내리고 어느 때는 진눈깨비나
흰 꽃 같은 함박눈이 나비처럼 춤사위를 펼친다.
무언의 침묵 속에서도 덧없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꽃이 피고 지고 낙엽 떨어뜨린 나목의 앙상함도 보인다.
사계의 자유분방함에 환희와 애절함이 반복되면
우리는 기우는 태양 뒤에 황혼의 노을을 맞는다.
세월의 덧없음에 먹지 않아도 좋을 나이는
한 살, 두 살 먹게 되고 골을 패듯 주름만 깊어진다.
그래도 어쩌랴 이 풍진 세상 덧없을지라도
동반의 마음으로 한걸음 희망을 찾아 나서야겠지.
먹구름 벗겨지고 맑고 푸른 하늘이 보이면
일곱 빛 곱디고운 무지개도 보는 날이 오겠지.
< 스승 >
모처럼 산에 오르는 길에 눈에 익은 정경을 음미하며
자연에 대한 예찬에 마음이 쏠린다.
흔한 연두에 초록뿐이랴 발아래 앙증맞게 피어난
이름조차 생소한 하얀 야생화들의 무리.
햇살조차 피해 간 깊은 숲에는 낯선 이의 방문도 반기며
코를 자극하는 향기에 영혼까지 취한다.
한발 또 한발 내딛는 미지의 세계는
어쩌면 신이 만든 조화에 경이로움의 탄생이 절로 나올 뿐이다.
모난 성격마저 바뀌게 만드는 오묘한 조약돌에서
푸른 이끼를 뒤집어쓴 기이하게 생긴 바위까지.
자연은 소중한 친구이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스승이라 여기며 산을 내려온다.
< 그때는 >
머리숱이 없다한들 결코 울지 않았지요.
그때는 간난아이였으니까요.
거울을 보며 한 올의 머리카락일지라도
잘 다듬었지요. 그때는 사춘기였으니까요.
함박눈이 머리 위에 수북이 내려도
그게 그거였어요. 그때는 백발이었으니까요.
이제는 모든 것이 아쉬운 순간이지요.
그 시절은 다시 올 수 없는 추억으로 가버렸으니까요.
[ 제3부 연정(戀情) ] p73
-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영원한 갈증
< 인연 >
밤하늘 고개 들어보면 수많은 은빛 반짝이는 무리들 중
하나의 별빛인 줄 알았지요.
그저 부딪치거나 얼핏 스쳐 지나가버릴
우리 살아가는 수많은 인연중 하나인 줄 알았지요.
봄이나 여름, 가을, 겨울 사계의 계절이 수없이 반복되듯
내년이면 다시 찾아올 흔한 세월인 줄 알았지요.
손가락 세워보니 일 년이라는 해가 찰나처럼 지나가듯
그냥 그렇게 잊혀도 괜찮은 사람인줄 알았지요.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 가슴에 스며든 첫사랑 같이 진정 소중한 사람이었지요.
몸은 떠나가도 비록 영원을 약속하지 않았어도
기억 속에 오래도록 머물러 우리의 짧은 삶이 다하는 날까지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지요.
< 당신 >
작은 문틈으로도 빛이 새어들면 밝아지듯
어둡던 마음도 이내 밝아집니다.
시들어가던 화분의 꽃도 한 모금의 수분으로
고개 들어 미소 짓듯 타는 갈증도 사라집니다.
당신이라는 그 짧은 단어 하나는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어 새처럼 창공으로 솟구칩니다.
당신! 생각만으로 빛이 되고
단어만으로 꽃이 피고 상상만으로 새가 됩니다.
< 사랑이란 >
그깟 손 한번 잡았다고 아니 팔장까지 끼었다고
서로의 감정이 통한 줄 착각하지마라.
어쩌다 입술 한번 부딪쳤다고
행여 사랑하는 사이라고 여기지 마라.
기껏해서 두 사람이 하나 된 듯
맘과 몸이 통했다 하더라도 온전하진 않았다.
사랑이란 그저 바라만 보아도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질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 어둠을 깨우다 >
돋을 별 하나 여명을 밀어내어 찬란한 아침을 만들 듯
당신의 어둠을 풀어내어 희망을 열려합니다.
수심의 그늘아래 눈물짓는
애련의 얼굴에서 보다 나은 내일을 열려합니다.
절망 속에서 한 송이 고운 향 지닌 꽃이 피어나면
당신이 사는 세상도 아름다운 일곱 빛 무지개가 뜰 것입니다.
< 야누스의 여인 >
언제 보아도 마냥 반가운 미소로
만인들의 여인처럼 살아가는 너
말 못 할 슬픔은 가슴 깊은 곳에
고이고이 파묻은 채 오늘을 산다.
가끔은 절여진 상처를 꺼내어보지만
애절한 슬픔은 아직 아물지 않았다.
겉의 상처는 아물면 떨어지지만
가슴의 상처는 핏방울 송골송골 맺힌 채
늘 아픔으로 남아있다.
[ 제4부 사모(思慕) ] p101
- 사무쳐 목메게 불러보아도 대답없는 이름
< 봄꽃 >
따사로운 봄바람이 나뭇가지에
맴돌 듯 찰나 같이 멈추던 날 엄마 닮은 꽃이 피었지
하루 이틀 여전히 화사한 웃음지며
마치 나를 반기듯이 아침을 그렇게 수놓았지
푸르던 하늘이 잿빛으로 감싸던 오후
여름날 장대비처럼 쏟아져 그 곱던 꽃은 지고 말았지
엄마는 꽃과 같이 가시고
허전함은 가슴깊이 남아 다시금 봄을 기약하네.
* 꽃이 피던 봄, 하늘로 가신 어머니
< 조각난 기억 >
굽이굽이 산모퉁이 돌고돌아 아름들이 느티나무 보이면
옛이야기 들춰내도 질리지 않는 고향이다.
뉘엿뉘엿 해 너머 가며 구름과 함께 만든 붉은 노을에
마음 뺏길 즈음 굴뚝엔 파란 연기가 피어 오른다.
가마솥 걸린 아궁이에 청솔가지 넣으며
저녁 준비에 한창인 어머니의 정겨운 모습도 보인다.
잊힌 세월 탓에 지금은 모든 게 홀연히 사라졌어도
마음속 깊은 곳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네.
< 깊고 너른 >
지금의 나는 메마름과 황폐함뿐인 언저리에서
종일토록 맴맴맴 맴을 돌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내게도 청보리밭처럼
알싸함과 풋풋함으로 꾸며진 젊음의 세계도 있었다.
원천의 세계로 점점 좁혀 가면
한 마리 피라미 같은 모습으로 더 깊고 보다 더 너른 강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던 꿈많은 유년 시절도 있었다.
지금의 나는 모두를 흝고 지나가 기우는 황혼을 겨우 예찬하며
애써 스스로를 자위하는 늙은 몸을 겨우 지탱하지만 ….
< 종심(從心) >
엊그제 같던 세월은 강산이 벌써 일곱 번이나
오가건만 나는 어이해 어린아이와 같구나.
오십줄에 세상 떠난 아버지 나이보다
스무 해를 더 살았어도 철부지와 같다네.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한 줄의 편지 대신
눈물로 어리광을 부리니 여전히 젓 먹이로세.
* 종심 : 일흔 살을 달리 이르는 말
< 세월 >
구름 노니는 듯
졸졸 시냇물이 흐르듯이 세월이 갑니다.
덧없이 가는 세월이 때로는 더디고 또 어떨 때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갑니다.
어서어서 가라던 시간은
이젠 가지마라, 가지마라 해도 아쉽게 가버립니다.
연륜에 따라 사뭇 다르듯이
물쓰듯 써버린 소중한 세월이 못내 그립습니다.
다시 시간이 갑니다. 금쪽같은 세월이 가면
덩달아 사랑하는 사람도 곁을 떠납니다.
#120 독서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121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 책 이름 : 영원의 길목에서 ]
- 지은이 : 김성배
- 펴낸데 : 성요셉출판사
- 출판일 : 2004.11.15 - 127p
- 내 용 : 가톨릭신문의 ‘복음 생각’난에 연재되었던
김성배 신부의
묵상 글(20편) 모음
[ 머리글 ]
- 흐르는 시간과 함께 덧없이 지나가는 것이 인생이지만 하느님께서 함께 하실 때 인생은 더 이상 무상하지 않게 된다. 영원하신 하느님과 함께 인생을 살 때 덧없는 인생의 모든 순간들은 영원한 생명을 키우는 요람이요 영원한 행복을 가꾸는 터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 없이 사는 인생의 모든 순간은 암흑과 절망의 무덤 속에 삼켜질 뿐이다. 하느님을 떠나면 인간의 모든 희망은 처참하게 무너지고, 인간의 모든 시도는 허무한 것이 되고, 인간의 모든 성취는 쓰레기에 불과하게 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하느님과 함께 인생을 산다는 것은 매 순간을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뜻한다. 무정하게 흐르는 시간을 영원하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다. 더 완전하게 하느님과 함께 산 시간일수록, 더 철저하게 사랑으로 산 인생일수록 영원한 생명을 더 찬란하고 더 아름답고 더 행복한 것으로 만들게 된다. 세상에서 잠깐 사이에 지나가는 인생을 사랑으로 산 사람들이 내세에 하늘에서 영원한 사랑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영원한 사랑이 되어 영원히 하느님을 누리는 지복을 얻게 된다. … 부족하기 짝이 없는 사람의 글이지만 이 글(2000년 전후 5개월간 연재)을 통해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하느님을 더 잘 알고 사랑하게 된다면 그 이상의 보람이 없겠기 때문이다.
[ 1. 인생은 혼인 준비 ]
< 묵상 복음 : 마태 22, 1-4 (혼인 잔치의 비유) >
- 우리의 세상살이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 일생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우리의 일생은 탄생으로 시작하고 죽음으로 끝난다. 탄생에서 죽음까지 우리에게 살아가라고 주어진 시간이다. 우리에게는 극히 한정된 시간이 주어졌고 세상에서 오직 그 시간만을 살 수 있을 뿐이다. … 덧없이 흘러가는 우리 인생의 끝은 죽음이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면서 동시에 시작이다. 죽음은 현세의 덧없는 생명의 끝이고 내세의 끝없는 생명의 시작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덧없이 지나가는 우리의 일생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저 세상에서 만나는 우리의 운명이 영원히 행복할 수 있고 영원히 불행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세상에서 사는 일생을 통해서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혼인잔치의 비유를 통해서 하늘나라를 설명하신다. 이 비유에 비추어 보면 죽음이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영원한 혼인 예식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사는 우리의 일생은 하느님과의 영원한 혼인을 준비하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무한한 사랑이신 하느님과 일생을 통해 하느님과 결합할 자격을 갖춘 사람의 영혼이 영원히 갈라질 수 없는 혼으로 결합되는 것이다. 하느님과 결합된 영혼은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의 기쁨을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누리게 된다. 이때 인간은 지극히 복되신 하느님의 생명을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끝없이 누리게 되는 것이다. … 저 세상에서 사람을 하느님과 갈라서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 죄뿐이다. 죄는 인간을 하느님과 갈라놓고 사람들 사이도 서로 갈라놓는다. 죄는 본질적으로 사랑을 거부하는 행동이다. 하느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 죄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하느님께서 계시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과 손해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기쁨과 슬픔을 헤아리지 않고, 자신의 만족과 불만을 돌아보지 않고, 조건 없이 아낌없이 주는 것이다. 이런 사랑을 실천할 때 사랑이신 하느님을 우리 안에 모셔 들이게 된다. 사랑을 지닌 영혼만이 사랑이신 하느님과 결합할 수 있다. 일생을 사랑으로 살 줄 안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얻는다. 사랑으로 살지 않은 모든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이고 사랑으로 하지 않은 모든 행동은 무가치한 행동이다.
[ 2. 하느님께 바쳐야 할 세금 ]
< 묵상 복음 : 마태 22, 15-22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 >
- 하느님은 영원한 생명이시다. 하느님의 생명은 사랑이다. 하느님은 영원히 완전한 사랑으로 끊임없이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사랑은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자신을 주는 것이다. 사랑이 완전할수록 주는 것도 완전하다. … 하느님의 넘쳐흐르는 사랑은 하느님의 영원한 기쁨을 나누어 줄 또 다른 대상을 원하셨다. 그래서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창조하셨다. 사람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인 자유의지를 하느님께 선물로 받았다. … 사람이 세상에 사는 기간은 자유의지를 시험받는 기간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당신의 뜻을 따르라고 요구하신다. 이는 사랑하는 존재가 되라고 요구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만이 완전하고 선하고 의롭고 거룩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한다. 사랑이 완전할수록 순종도 완전하다. 하느님의 모든 계명은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이 세상의 생애를 하느님의 계명에 따라 삶으로써 사랑하는 존재가 될 줄 아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원한 기쁨을 주신다.
-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는 침략자인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가지고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 복음서에 소개되는 가장 완고한 죄인들인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예수님께 질문을 한다. 예수님께서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고 답변하신다. 이 말씀으로써 시간의 한계 안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영원을 향해 끌어올리신다. 로마황제에게 바쳐야 할 세금보다 하느님께 바쳐야 할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세금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하느님께 바치는 세금은 자유의지라는 하느님의 최상의 선물을 가지고 하느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는 죄는 하느님께 바쳐야 할 세금을 탈세하는 행위가 된다. 죄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듦으로써 사랑이신 하느님을 상실하게 한다. 사람이 하느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는 것이고 하느님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로마황제에겐 세금을 바치면서도 죄를 뉘우치지 않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로마황제의 법을 어기는 데 따라오는 일시적 벌은 두려워하면서도 하느님의 법을 여기는 데 따라오는 영원한 벌은 두려워 할 줄 몰랐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하느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더 노력한다.
[ 3.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 ]
< 묵상 복음 : 마태 28, 16-20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다) >
-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다. 혼자서는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이 고독을 느끼는 것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신 안에 자기 자신이 채울 수 없는 결핍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고독이다. … 인간은 자신이 결코 채울 수 없으면서도 채워지지 않으면 절망할 수밖에 없는 허무의 심연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으며, 유한한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무한한 갈망을 가진 존재이다. 이 갈망이 만족되지 않는 한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 그래서 이 갈망을 만족시켜 줄 대상을 찾고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사람이 혼자서 세상에 있는 것을 모두 다 소유한다 하더라도 사람의 무한한 갈망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 무한한 갈망은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다. …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사랑에서 나오는 순수한 호의로 하느님의 한없이 행복하고 영원한 생명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시기 위해 사람들을 창조하셨다. 사람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음으로써만 무한한 갈망이 채워지고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완전한 행복을 얻게 된다.
- 불행하게도 사람은 하느님을 버렸고 그래서 길을 잃게 되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느님을 등지고 떠나 하느님께 가는 길을 버리고 악의 길을 선택한 이래 사람들의 인생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인생이 되었다. 하느님을 떠난 사람은 하느님을 잃어버린 상실감을 피조물을 통해서 채우려 하게 된다. 명예에 집착하면 할수록 교만을 키우게 되고, 재물에 집착하면 할수록 탐욕을 키우며, 감각적 쾌락에 집착하면 할수록 더 자극적인 쾌락을 원하게 된다.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 더 깊이 자신을 타락시키게 되고 그 끝에서 만나는 것은 허무와 절망의 심연이다. 한없이 자비로우신 성부께서는 하느님을 떠나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인간을 구원하라고 성자를 세상에 보내셨다. 이제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 가르침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는 기쁜 소식이 인류에게 선포된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명령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이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신자들에게 맡기신 가장 중요한 사명이다. 사람의 영원한 운명이 여기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6,16).
[ 4. 자신을 알면 겸손해진다 ]
< 묵상 복음 : 마태 23, 1-1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다) >
- 사람은 누구나 자기완성을 추구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완성된 생명을 주신 것이 아니라 완성시켜가야 하는 생명을 주셨다. 사람의 자기완성은 각자의 자유에 맡겨진 과업이다. 사람은 스스로 원하는 데로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더 높고 완전한 형태의 생명으로 완성시킬 수도 있고 더 낮고 무가치한 생명으로 추락시킬 수도 있다. 우리가 바르게 살면 살수록 우리의 생명은 고귀해지는데, 전제 조건은 바르게 아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바르게 알아야 할 대상은 우리 자신이다. 사람은 자신을 알면 알수록 겸손해지고, 자신을 모르면 모를수록 교만해 진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를 안다는 것만큼 얻기 어려운 지혜도 없다. 이는 사람이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뿌리 깊은 교만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무엇이고, 내가 어떤 존재인지는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의 지혜로 비추어져야만 비로소 드러난다. 교만은 하느님의 지혜가 우리의 마음을 비출 수 없게 차단한다. 하느님의 지혜는 겸손하고 단순한 영혼들만을 비추어 준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에겐 은총을 거두신다. “하느님께서는 교만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십니다”(1베드 5,5).
- 교만은 우리의 마음을 밝혀주시는 하느님의 빛을 차단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어둠 속에 잠기게 한다. 이 어둠 속에서는 모든 진실이 은폐되고 왜곡된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안에서는 장점만을 보고 남에게서는 허물만을 본다. 모든 공은 자기에게 돌리고 모든 탓은 남에게 돌린다. … 자기의 선행은 드러내고 악행은 감추면서, 남의 악행은 드러내고 선행은 감춘다. 교만은 이렇게 사람의 정신을 눈멀게 만듦으로써 진실을 볼 수 없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이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1요한 1,8). 하느님의 무한한 빛이 사람의 마음을 더 밝게 비출수록 사람은 자기의 허물과 결점을 더 잘 보게 된다. 사람은 성덕이 높아질수록 모든 사람 아래로 더 깊이 자신을 낮춘다. 사람이 자신을 참으로 알게 되면, 자신은 칭찬받을 자격도 존경받을 자격도 없고, 남보다 우월할 어떤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아무도 지배하지 않고 아무 위에도 군림하지 않으며 모두의 종이 되어서 모두를 섬길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커지고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높아지며, 자신을 비천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더 고귀해 진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5. 죽음을 준비하는 삶 ]
< 묵상 복음 : 마태 25, 1-23 (열 처녀의 비유, 탈렌트의 비유) >
- 인생을 사는 지혜는 미래를 준비할 줄 아는 데 있다. 우리는 오늘 살고 있지만 오늘은 내일을 향해서 가는 날이다. … 사람 앞에는 각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운명이 놓여 있다. 사람은 자기 미래의 운명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가질 수 있는 존재이다. 모든 사람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 축복과 저주”(신명 30, 15.19)가 놓여 있다.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서 흘러가는 오늘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운명을 더 행복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써야 하는 시간이다. … 우리는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인생을 살지만 미래를 더 멀리 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결코 멈추는 법이 없이 내일을 향해 흘러가는 시간을 살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미래로 미래로 끊임없이 흘러가서 마침내 끝에 가서는 끝이 없는 미래에 자리를 내어 주게 된다. 이렇게 해서 더 이상 날들이 오고 가지 않는 날, 결코 저무는 법이 없는 영원한 날을 맞으며 우리의 일생이 끝나게 된다. 우리의 일생은 과거로 물러가 사라지지만 일생을 산 결과는 끝이 없는 내일에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
- 사람이 이 세상의 시간에서 내세의 영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죽음이다. 죽음은 사람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죽음은 우리가 산 일생전체가 사실 그대로 낱낱이 드러나고 밝혀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완전한 정의가 일생을 산 결과에 따라 각자에게 영원한 행복과 영원한 불행 가운데 하나의 운명을 결정해 주시는 순간이다. 이때 각자에게 돌아온 영원한 운명은 자기가 일생을 산 결과이기에, 자기가 선택한 운명이고 자기가 만든 운명이기도 하다. 죽음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두려운 현실이다. 준비된 채로 맞은 죽음은 일시적인 생명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축복의 문이 되고, 준비되지 않은 채 맞은 죽음은 영원한 죽음으로 들어가는 저주의 문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생을 사는 동안 다른 어떤 일보다도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손님이다. 오늘도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죽음을 맞고 있다. 죽음이 찾아오는 데는 순서가 없다. 젊음도, 건강도, 재산도, 이 세상의 어느 것도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에서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매일을 그날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 인생을 사는 최선의 길이다. 오늘 복음에서 에수님께서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늘 깨어 있는 사람은 항상 영원을 바라보는 사람이고, 언제나 죽음에 대비한 준비를 하면서 세상을 사는 사람이다
[ 6. 두 개의 인생길 ]
< 묵상 복음 : 마태 25, 14-30 (탈렌트의 비유) >
- 사람은 세상에서 있어야 할 자리가 있고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늘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우리가 수행해야 하는 일상의 의무들은 나보다 남을 위한 일들이고,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일들이다. 그러기에 지금 내 처지에서 주어진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사랑의 행위가 된다. 우리가 의무에 충실하다는 것은 사랑에 충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가 하는 일의 가치는 일의 크기가 아니라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랑의 크기로 결정되는 것이다.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일도 사랑으로 행하면 비범하고 위대한 일이 되고, 비범하고 위대한 일도 사랑 없이 행하면 무가치한 것이 된다. 인생의 가치는 오래 살고 얼마나 큰일을 했느냐에 있지 않고, 얼마나 사랑하며 살았느냐에 있다. … 세상의 모든 불행의 근본 원인은 사람들이 사랑을 버리고 이기적인 삶을 택하는데 있다. 이기주의자는 자기 자신만을 배타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자기 명예만을 추구하고 자기이익만을 돌보며 자기만족만을 구한다. 사랑은 모든 선이 흘러나오는 원천이고 이기주의는 모든 악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 오늘 복음에 소개되는 탈란트의 비유는 사람이 인생을 통해 두 가지 인생의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요구받고 있으며, 현세에서 어떤 길을 선택했느냐에 따라서 내세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그 하나는 자기를 버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선택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버리고 이기주의를 선택하는 길이다. 사랑은 자기의 이해관계와 자기의 감정을 뛰어 넘어서 상대방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다. 탈란트의 비유에서 주인에게 받았던 돈을 배로 불려서 되돌려줄 줄 알았던 종들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일생을 산 사람들을 가르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모든 것을 이용해 이익을 만들어 내길 기대하신다. 이 이익은 우리 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증가되는 것이다. … 그러나 주인에게 받았던 돈으로 이익을 내지 못했던 종은 하느님의 사랑을 버리고 자기 자신만을 배타적으로 사랑하는 이기주의자를 가르친다. 사랑으로 사는 인생은 선을 생산하고 이기주의자로 사는 인생은 악을 생산한다. 현세에서 하느님께 받은 시간과 소유일체를 이기적 자기만족만을 위해 허비한 사람들은 내세에서 하늘나라의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던져 버려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하늘나라는 영원한 사랑의 나라이다. 자기를 버리고 사랑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얻는다.
[ 7. 심판의 기준은 사랑 ]
< 묵상 복음 : 마태 25, 31-46 (최후의 심판) >
-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시간은 돌아 올 수 없는 과거로 사라지면서 끝난다. 이렇게 한 번 지나가면 영원히 과거 속에 묻혀 버리는 것이 시간이다. … 시간은 영원을 위해서 존재한다. 영원 안에서만 비로소 시간은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시간의 끝에 있을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심판하시는 분은 영광을 떨치며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으신 예수님 자신이다. 심판 받는 사람들은 우리자신을 포함해서 세상창조이래 최후의 심판 때까지 세상에서 살았던 모든 사람이다. 최후의 심판을 위해서 영광스럽게 재림하신 예수님 앞에 모든 사람들이 부활한 육체와 결합된 영혼을 가지고 모이게 된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의인들과 죄인들을 서로 갈라놓아 각각 오른편과 왼편에 자리 잡게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정의가 원하는 데로 최후의 심판을 행하신다. …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서 하느님의 완전한 행복을 끝없이 누리게 된다. 반면에 죄인들은 “영원한 불 속에서” 형용할 수 없는 절망과 비탄과 고통만을 끝없이 겪게 된다.
- 덧없이 지나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지만 세상에서 행하는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는 이렇게 영원한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시간은 사라지지만 그 속에서 행한 우리의 업적이 각자의 영원한 운명을 만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심판의 기준은 사랑이다. 사람은 사랑하는 존재로 창조되었고 따라서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모든 계명은 한 마디로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사랑에서 나오는 행동은 선행이 되고 사랑을 거역하는 행동은 죄가 된다. 사랑은 항상 남의 행복을 원하고 남의 행복을 위해서 행동하게 한다. …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사랑은 보상을 바라지 않고 조건 없이 주는 사랑의 전형이다. 사랑이 부패하면 이기주의자가 된다. 이기주의는 사람을 교만한 사람으로,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쾌락주의자로 타락시킨다. 이로 인해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불행에는 전혀 무관심한 채 자기의 이기적인 만족만을 추구하는 냉혹한 사람이 된다. 인생을 사랑으로 산 사람은 하느님께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되고, 인생을 이기주의로 산 사람은 하느님께 영원히 단죄 받게 된다. “누구나 자기 좋은 것을 찾지 말고 남에게 좋은 것을 찾으십시오”(1코린 10,24).
[ 8. 회개로 준비하는 성탄과 대희년 ]
< 묵상 복음 : 마르 13, 33-37 (깨어 있어라) >
- 금년의 대림시기는 ‘주님의 특별한 은총을 담고 있는’ 2000년 대희년을 목전에 두고 맞이하기에 여느 대림시기와 다르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성탄의 준비도 대희년의 준비도 그 준비의 핵심은 회개에 있다. 마음의 진정한 회개 없이 맞는 성탄은 의미 없듯이 진실한 참회의 정신으로 준비하지 않고 맞는 대희년은 의미가 없다. 대희년은 기쁨의 축제이다. 우리는 대희년을 참된 기쁨 속에서 맞이하고 보내야 한다. …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지고의 행복은 하느님의 기쁨을 누리는데 있다.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선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그의 길을 동행하시며 당신의 기쁨으로 그의 마음을 채워 주신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고 하느님을 떠나서 악의 길을 걷는 사람의 경우에는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을 버리고 떠나신다. … 죄는 찰나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하느님을 버리고 악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버리면 사람은 모든 것을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기쁨을 주는 모든 선을 한없이 완전하게 소유하고 계신 분이고, 사람은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죄인의 처지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이 없고,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다. 우리가 용서받는 길은 회개하는 길밖에 없다. 죄는 하느님을 버리고 악을 선택하는 것이고, 회개는 악을 버리고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아무리 큰 죄인일지라도 그 사람에게 용서를 베풀어 주기만을 간절히 바라신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용서를 베푸실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인 회개를 애타게 기다리신다. 그리고 일단 진실하게 뉘우치는 마음을 보시면 한없이 기뻐하시며 그 영혼을 찾아 오셔서, 죄를 용서하시고 당신의 기쁨을 돌려주신다. … 대희년이 진정한 기쁨의 축제가 되려면 진실한 회개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은 기쁨 속에서 대희년을 맞고 보내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있어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때’는 세상을 심판하러 주님께서 재림하는 날이다. 이 마지막 날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주님의 경고는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회개하라는 절박한 호소이다.
[ 9. 생명의 길 죽음의 길 ]
< 묵상 복음 : 마르 1, 1-8 (세례자 요한의 설교) >
- 인생의 모든 여정은 오직 한 번 지나가는 길이고, 인생의 모든 순간은 오직 한 번 주어지는 시간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걷는 모든 길은 마지막 길이고, 우리가 사는 모든 시간은 마지막 시간이다. 쓸데없이 허비한 시간은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시간이다. … 사람의 인생에는 걸어야 할 길과 걸어서는 안 될 길이 있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선택할 수 있는 두 개의 길이 제시되어 있다. 이 길은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 앞에 생명과 죽음을 놓아 두셨다. 그리고 각자가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선택하도록 하셨다. ‘생명은 빛이고 죽음은 어둠이다. 생명은 사랑이고 죽음은 증오이다. 생명은 자유이고 죽음은 예속이다. 생명은 기쁨이고 죽음은 고통이다.’ 하느님은 생명이시다 하느님의 생명은 완전하고 영원하다. 하느님의 생명은 빛이고 사랑이고 자유이고 기쁨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모든 사람에게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당신의 빛과 사랑과 자유와 기쁨을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되기를 바라신다.
-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는 사람의 사랑이 만날 때 서로간에 결합이 이루어진다. … 사람은 자기를 버림으로써 생명을 얻게 되어 어둠과 증오와 예속과 고통에서 벗어나서 빛과 사랑과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자신을 내어줄 줄 모르는 사람들은 이기주의 안에 자기를 유폐시킴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를 버리지 않음으로써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은 하느님과의 결별을 선택하는 것이고 하느님과 결합할 자격을 상실하는 것으로, 이는 필연적으로 죽음을 초래한다. … 사람이 자유롭게 하는 모든 행동은 하느님께 영향을 미친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행동은 하느님께 영광과 기쁨을 드린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행동은 하느님께 모욕과 고통을 끼쳐 드린다.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사랑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계명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1요한 5,3). 하느님의 계명은 하느님께서 생명의 길에 세워 놓으신 안내 표지판이다. 사람은 언제나 하느님의 계명에 비추어서 자기가 가고 있는 길이 생명의 길인지 죽 주셨다음의 길인지를 점검해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는 회개로써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라는 세례자요한의 설교를 듣는다. 죽음의 길을 버리고 생명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회개이다. 생명을 주러 오시는 주님은 회개하는 마음으로만 맞을 수 있다.
[ 10. 빛과 어둠 ]
< 묵상 복음 : 요한 1, 6-8 ; 19-28 (세례자 요한의 증언) >
- 사람이 자신을 알면 생명을 얻고 자신을 모르면 생명을 잃는다. 그러기에 자신을 아는 지혜만큼 사람에게 가장 소중하고 필요한 지혜도 없다. 그러나 자신을 아는 지혜는 가장 얻기 어려운 지혜이기도 하다. 자신을 아는 지혜는 사람이 가장 애착하는 자기만족을 버려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감추어져 있는 것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죄의 속성 자체가 어둠 속에 제 모습을 감추고 숨는 데 있다. 죄는 사람의 생각이 접근할 수 없는 어둠 속에 제 모습을 감추고 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죄를 식별하는 감각이 있다.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을 감지하는 감각이 살아 있을 때 죄를 식별하는 감각도 살아 있게 된다. 사람은 자기의 생각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두 신비의 영역이 대면하고 있다. 하나는 ‘사람이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1티모 6,16) 하느님의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짙은 어둠 속에 자신을 감추고 있는 악의 영역이다. 사람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빛을 받아야만 이 두 신비의 영역을 볼 수 있게 된다.
- 마음의 눈이 하느님의 빛으로 밝혀질 때, 사람은 하느님과 자기 자신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느님의 빛 속에서 자신을 볼 때는 자기의 비천함을 보기 때문에 겸손과 자기 이탈의 정신을 얻게 된다. 동시에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보기 때문에 하느님을 더 완전히 믿고 바라고 사랑하게 된다. 여기에 영성 생활의 요체가 있다. 이렇게 해서 자신을 아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단절되면 죄를 식별하는 감각을 상실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죄중에 있으면서도 자기는 죄인이 아니라는 터무니없는 확신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자기의 참된 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거짓된 자화상을 만들어 낸다. 이 자화상의 자기는 지혜롭고 유능하고 위대한 의인이 된다. … 죄는 회개함으로써만 용서받는 길이 열린다. 회개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자기의 죄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속에서 죄를 식별하는 감각이 죽으면 그 사람은 회개가 불가능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죄는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 모든 죄의 근원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교만과 자애심이다. … 오늘 복음에서는 주님을 세상의 빛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회개하여 생명을 얻고, 이 빛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죄인으로 단죄를 받는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요한 3, 19-20).
[ 11. 하느님의 종과 욕망의 노예 ]
< 묵상 복음 : 루카 1, 26-38 (예수님의 탄생 예고) >
- 선행은 감춰 둘수록 더 아름답게 빛난다. 반면에 드러내서 알리려고 하면 그 아름다움을 잃는 것이 선행이다. 자기 스스로 드러내서 알리는 선행은 선행의 가치를 잃게 된다. …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선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자기의 선을 보고 그 선의 참된 주인이신 하느님을 찬미해야지, 그 선이 자기의 것인 양 자기를 자랑해서는 안 된다. 자기의 선을 보고 스스로 자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남에게 칭찬 받고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교만이다. 교만은 모든 선을 부패시키는 독이다. 교만으로 오염된 선은 부패해서 선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 그러기에 사람이 참으로 선하려면 자기가 선하다는 것을 모르면서 선해야 한다. … 하느님께서는 선을 아는 것도 악을 아는 것도 위험했기 때문에 선과 악을 모르게 하셨다. 사람이 악을 모르면 악을 원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악을 알게 되면 선보다는 악을 더 원하게 된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악을 알지 말라고 금하셨다. 아담과 하와가 선과 악을 모르는 동안은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했다. 이렇게 하느님의 종으로 머무는 동안은 사람이 일체의 욕망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탄은 선과 악을 알도록 유혹한다. … 악을 알게 된 사람은 하느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악을 맛본 사람은 하느님의 종이 아니라 교만과 탐욕과 육욕이라는 욕망의 노예가 된다.
-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신다. 성모님의 이 순종은 하와의 불순종을 무효화시켰고 구세주를 세상에 모셔 오게 했다. 모든 피조물 중에 성모님만이 유일하게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시다. 피조물로서 하느님께 받을 수 있는 모든 선을 완전하게 받으신 유일한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모님은 당신이 그렇게 위대한 선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모르신다. 성모님은 선도 악도 전혀 모르면서 선하셨기에 완전히 선하셨다. 그러기에 절대적인 순결과 겸손과 가난을 지님으로써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에 합당한 유일한 분이시다. 성모님은 인간의 일체의 욕망과 감정을 완전히 지배하여 하느님의 뜻에 복종시킨 하느님의 완전한 종이시다. 완전히 겸손하고 순결하고 가난한 성모님의 마음은 하느님의 완전한 거처가 되신다. 우리 모두 성모님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으로 하여 하느님을 우리 마음에 영접해 드리도록 하자.
[ 12. 행복한 가정의 조건은 사랑 ]
< 묵상 복음 : 루카 2, 22-40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다,
시메온과 한나의 예언) >
- 사람들 눈에는 격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강해 보인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고, 잘 참고 견디는 사람은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통이나 슬픔 또는 모욕을 평온한 마음으로 참아 견디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강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참고 견디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참을성이 강한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힘이 있는 강한 사람이고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힘이 없는 약한 사람이다. 참는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상대에게 내어 주는 것이다.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조건 없이 아낌없이 주는 것이 사랑이다. 그러기에 사랑은 자기를 버리는 것이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참된 사랑은 자기를 버리는 희생위에만 꽃필 수 있다. 사랑의 크기는 희생의 크기로 측정된다. 참는다는 것은 자기를 희생한다는 것이다. … 참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다. 참아야만 자기 기분에 상관없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친절할 수 있다. 참아야만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을 수 있다. 참아야만 무례한 사람에게도 예의 바르게 대할 수 있고, 사욕을 품지 않고, 화를 내지 않고, 원한을 품지 않을 수 있다.
- 사랑은 강하다. 사랑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력해진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고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주게 한다. 한 마디로 사랑의 능력은 무한하다. 사랑은 바로 하느님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하느님은 전능하시다. 하느님의 전능하신 능력은 무한히 사랑하시는 능력이다.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참된 힘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만이 사람을 착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서 무한한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 자체가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온전히 사람에게 내어 주시기 위해 당신자신을 버리고 비우시는 사랑의 극치이다. 하느님의 사랑에 완전히 자기를 바치는 사랑으로 응답한 분들이 계셨다. 이 분들이 바로 오늘 복음에 소개되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부모로 선택하신 성모님과 성요셉이시다. 예수님은 지상생애의 대부분을 예수님, 성모님, 성요셉으로 이루어진 성가정에서 보내셨다. 성가정은 완전한 가정생활의 모범이시다. 성가정에는 서로 상대방을 위해서 자기를 아낌없이 희생하고 바치고 내어주는 사랑만이 있었다. … 가정의 모든 불행은 사랑의 결핍에서 온다. 사랑은 성실하게 사랑하는 남편, 충실하게 사랑하는 아내를 만든다. 사랑은 애정 깊게 보살피는 부모, 효성 지극한 자녀를 만든다. 사랑은 결점을 참아 주고 잘못을 용서하고 요구하지 않고 준다.
[ 13. 버리고 떠나야 하느님을 만난다 ]
< 묵상 복음 : 마태 2, 1-12 (동방박사들의 방문) >
- 마음이 순결하면 눈빛도 순결하고 마음이 불결하면 눈빛도 불결하다. 마음이 가난하면 눈빛도 가난하고 마음이 탐욕스러우면 눈빛도 탐욕스럽다. 마음이 겸손하면 눈빛도 겸손하고 마음이 오만하면 눈빛도 오만하다. 마음이 온유하면 눈빛도 온유하고 마음이 냉혹하면 눈빛도 냉혹하다. 그러기에 사람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을 선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악한 눈으로 세상을 본다. 선한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선한 세상이 눈에 들어오고 악한 눈으로 세상을 보면 악한 세상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게 된다. …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을 한없이 초월하시는 분이시다. 지극히 높으시고 무한히 부유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을 한없이 낮추시고 비우시어 사람이 되셨다.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철저하고 완전하게 당신을 낮추고 비우기를 원하셨기에 탄생의 장소도 마구간을 선택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기 위하여 선택하신 가정도 가난한 가정이었고,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신분도 ‘목수의 아들’이라는 비천한 신분이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육체를 취하시기 위하여 선택하신 어머니는 지극히 순결한 동정녀인 성모님이셨다.
-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당신을 알아보고 맞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생명과 사랑과 영광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가난하고 비천하고 순결한 모습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어 알리시는 하느님을 알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겸손하고 가난하고 순결한 사람들뿐이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알아보고 경배를 드렸던 목동들이 그랬고 동방박사들이 그랬다. … 오늘 복음에서 동방 박사들이 별의 인도로 예수님을 찾아뵙고 왕을 상징하는 황금과 하느님을 상징하는 유향과 구속을 위한 고통을 상징하는 몰약을 예물로 드리며 경배한다. 하느님을 뵙는다는 것은 사람에게 지고의 기쁨이 된다. 동방박사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기에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다. 인생의 여정은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여행이다. 하느님과 만나는 지고의 기쁨에 이르기 위해서는 일체를 버리고 떠날 줄 알아야 한다. 피조물에 대한 일체의 무질서한 집착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난다. 그리고 하느님께 순종하는 사랑이라는 황금과 기도의 향과 희생이라는 몰약을 예물로 준비하는 사람만이 하느님께 도달하기 위해 일체를 버리고 떠날 수 있다.
[ 14. 인생은 추억이다 ]
< 묵상 복음 : 요한 1, 35-42 (첫 제자들) >
- 사람의 인생은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살아온 세월의 추억들이 그 사람의 인생을 만든다. 사람이 살아온 시간은 과거로 사라지지만 그 시간을 살아온 삶은 사리지지 않고 기억 속에 남는다. 기억은 사람이 자기의 삶을 갈무리하는 창고이다. 사람이 이 기억이라는 창고를 어떤 추억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사람이 기억을 선한 추억으로 채우면 선한 인생을 살게 되고 악한 추억으로 채우면 악한 인생을 살게 된다. 그리고 사람은 스스로 원하는 추억을 선택해서 기억 속에 간직할 수 있다. 사람이 무엇을 기억하고 있느냐에 따라 의인이 되기도 하고 죄인이 되기도 한다. 사람이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의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은혜를 잊고 감사할 줄 모른다면 불의한 사람이 된다. … 사람이 잊어야 할 것을 기억하고 기억해야 할 것을 잊는 까닭은 이기적인 자아를 중심으로 기억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 자기의 요구만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기적인 인생을 살게 된다. … 사람이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가 되면 그 사람의 영혼은 사랑이 고갈되어 메마르고 황폐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이 없이 사는 인생은 사막보다도 더 적막하고 황량한 것이 된다.
- 영원한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을 닮아서 사랑하는 존재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사람은 사랑하는 존재로 창조되었기에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사람은 두 개의 사랑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사랑하게 된다. 하나는 자기를 잊게 하는 하느님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을 잊게 하는 자기 사랑이다. … 사람은 이기적인 사랑에 집착할수록 하느님으로부터 더 멀리 이탈하게 되고 하느님을 떠난 인간은 생명과 사랑을 잃고 죽음과 증오만을 얻게 된다. 사랑하는 존재로 창조된 인간에겐 사랑할 수 없는 고통보다 더 가혹한 고통은 없다. 사람이 자기를 완전히 잊고 하느님만을 기억하며 살 때 사람의 모든 생각은 하느님께 집념하고 온 마음은 하느님 사랑에만 집착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자기의 명예와 자기의 이익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느님을 만족시켜 드리겠다는 일념으로만 살게 된다. 예수님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그것은 사랑의 시대로 오늘 복음에 소개되는 예수님의 첫 제자들처럼 자기를 잊고 하느님께 바치는 사람들의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여기에 인간의 구원이 있고 자유와 해방이 있고 지복이 있다.
[ 15. 시간과 영원을 위한 사람의 운명 ]
< 묵상 복음 : 마르 1, 14-20
(갈릴래아 전도 시작,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심) >
- 삶은 일생을 사는 동안 끊임없이 변한다. … 사람이 세상에서 시간적으로 계산되는 일생을 산다는 것은 사람이 일생이란 기간 동안 변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의 일생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죽음으로 인생을 마칠 때 사람은 일생동안 스스로 이룩한 변화를 가지고 영원 속으로 들어간다. 이 때 일생동안 자기를 어떻게 변화시켰느냐에 따라 사람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 …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은 마음에서 나온다. 선한 마음에서는 선한 행동이 나오고 악한 마음에서는 악한 행동이 나온다. 사람의 마음을 선하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람의 마음은 사랑으로 채워질수록 선해지고 사랑이 결핍될수록 악해진다. 사람의 마음은 본래 사랑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그릇이다. 하느님께서는 위대한 사랑의 계획을 가지고 사람을 창조하셨다. 사람이신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사람의 마음을 채워주셨다. 본래 사람은 하느님께서 시간과 영원을 위해서 마련해 주신 축복받은 운명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사랑의 길을 버리고 악의 길을 걸음으로써 이 축복받은 운명을 상실하게 된다. 사랑이야말로 사람이 소유해야 할 소중한 재산이다. 이 사랑이라는 재산을 증식시키기 위해서 사는 인생만이 의미가 있고 가치 있고 보람이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지나가고 사라지지만 사랑과 사랑의 업적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기 때문이다.
- 하느님 자신을 선물 받은 사람은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을 자신 안에 지님으로써 하느님과 결합된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더 할 수 없이 고귀한 품위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사람 안에 반영된 당신자신의 모습을 보시고 무한한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하신다. 사람이 하느님과 결합해 있는 동안은 사랑을 지닐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느님을 떠나 자기 자신과 피조물을 더 사랑하게 되면 타락하여 사람의 마음에는 사랑도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사랑을 상실한 사람의 마음은 교만과 탐욕으로 채워져서 거치고 냉혹하게 된다, 이렇게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사람은 사랑이신 하느님과 결합한다는 지극히 복된 운명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잃어버린 이 축복 받은 운명을 되찾아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라는 두 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이 나라는 이제까지 갈 수 없는 나라였지만 이제는 갈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교만과 탐욕을 버리고 회개하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 들어간다.
[ 16. 말이 갖는 힘 ]
< 묵상 복음 : 마르 1, 21-28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다) >
-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말을 들어 보면 된다. … 정직한 사람의 말은 단순하고 솔직하다. 그러나 위선적인 사람의 말은 교활하고 가식적이다.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깊이 헤아리고 멀리 내다본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의 말은 피상적이고 즉흥적이다. 이기주의자의 말은 거만하고 냉정하다. 그러나 자기를 비운 사람의 말은 겸허하고 너그럽다. 자제할 줄 아는 사람의 말은 고상하고 신중하다. 그러나 자제할 줄 모르는 사람의 말은 경박하고 수다스럽다. 이렇게 사람의 말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의 말을 통해서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다. …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고, 사람의 말에 진정한 권위와 생명을 주는 것은 그 사람의 성덕이다. 같은 내용의 말을 하더라도 누가 그 말을 하느냐에 따라 감명 받는 정도가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이 거룩하면 거룩할수록 그 사람의 말은 남을 감화시키는 더 큰 권위와 힘을 갖게 된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을 감복시키는 절대적인 권위와 사람을 성화시키는 완전한 능력을 갖고 계시다. 성자께서는 성부와 똑같이 무한한 지혜와 사랑을 지니신 지극히 거룩한 하느님이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이신 성자께서 사람이 되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사람이 된 하느님이시고, 또한 하느님이 된 사람이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것은 모두 사람의 것이 되었다.
-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경탄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다. 이 사람들이 경탄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이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에게는 인간적인 권위를 인정받을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예수님은 그저 부지런히 노동을 해야 겨우 생계를 유지했던 비천하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일 뿐이셨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서 마음깊이 감복하게 하는 권위를 느꼈던 것은 그분의 말씀이 그 분이 지닌 완전한 성덕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이었기에 하느님의 완전한 거룩함이 담겨 있었고, 그래서 듣는 이들의 마음에 깊은 감명과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마음이 악한 사람은 한없이 선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 죄를 버리고 하느님께 마음을 돌이키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 그러면 하느님이신 성자께서 그 사람 안에 오셔서 당신의 생명을 주심으로써 당신의 지혜로 그의 정신을 채우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그의 마음을 채우신다. 이렇게 해서 사람을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어 하느님의 무한하고 영원한 지복을 유산으로 상속받게 된다. 찰나의 만족만을 주는 명예와 재물과 쾌락이라는 보잘 것 없는 소유를 버리고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사람들이 영원히 하느님을 누리는 지복을 얻게 된다.
[ 17. 사랑과 미움 ]
< 묵상 복음 : 마르 1, 40-45 (나병 환자를 고치시다) >
- 서로 용서하는 사랑이 없으면 세상에는 불화가 그칠 날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사람들은 모두 크든 작든 결점을 가지고 있어 서로 간에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그러기에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는 겸손과 자기가 받은 상처를 잊어버리고 용서하는 사랑이 있을 때에만 사람들 사이에 평화가 있을 수 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결점은 이기주의에서 나온다. 사랑은 받기를 바라지 않고 주기를 원하며 주기 위해서 기쁘게 자기를 포기한다. 이기주의는 주기를 싫어하고 받기만을 바라며 받기 위해서 남에게만 포기하기를 원한다. 이기주의는 남을 해치고 희생시키고 괴롭히더라도 내가 이롭고 만족하고 기쁘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기주의는 사람의 마음을 메마르고 황폐하고 거칠고 냉정하게 만든다. 사람을 이기주의자가 되게 하는 것은 교만과 탐욕이다. 우리의 마음은 모두 많게든 적게든 이기주의에 물들어 있다. … 이기주의는 남이 자기에게 주는 상처는 민감하게 느끼면서도 자기가 남에게 주는 상처에는 둔감하게 만든다. 그래서 남을 괴롭히는 자기의 결점은 보지 못하고 남의 결점만을 보고, 자기 탓을 할 줄 모르고 남의 탓만을 하며, 자기의 결점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가 비판받는 것을 두려워하며, 자기는 칭찬받기를 바라며, 자기의 허물이 드러나는 것은 두려워한다. 이렇게 이기주의는 사람의 마음에서 사랑을 고갈시키고 미움과 분노와 시기와 같은 사랑에 대립되는 감정을 불어나게 한다.
- 사랑은 남이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남의 행복을 보고 기뻐한다. 그러나 미움은 남이 불행해지기를 바라고 남의 불행을 보고 기뻐한다. 사랑은 남을 이롭게 하는 행동을 하게하고, 미움은 남을 해롭게 하는 행동을 하게 한다. 사람은 일체의 감정을 버리고 사랑의 감정만을 지닐 때 의인이 된다. 반면에 사랑에 대립되는 감정을 지닐 때는 죄인이 된다. 사람이 의인이지 죄인지를 드러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이다. 말이 사랑에서 나올 때는 남을 이롭게 하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되지만 미움에서 나올 때는 남을 해치는 가장 잔인한 무기가 된다. 사랑에서 나오는 말은 진실하고 교훈을 주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희망을 준다. 미움에서 나오는 말은 속이고 미혹(迷惑)하고 비방하고 중상하고 실망시킨다. … 오늘 복음에서 나병환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치유를 받는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하게 명령하셨지만, 이 사람은 자기의 기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이 사실을 널리 알렸다. 그래서(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들자)
예수님은 활동을 못하시고 외딴 곳에 머무셔야 했다. 이 사람은 자기의 기쁨만 생각하는 이기심 때문에 해서는 안 될 말을 함으로써 은인이신 예수님께 피해를 입히고 만다. 이제 우리도 말로써 남을 헐뜯고 중상하고 해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보자. “사람들은 자기가 지껄인 쓸데없는 말을 심판 날에 해명해야 할 것이다.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의롭다고 선고받기도하고,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단죄받기도 할 것이다”(마태 12, 36-37).
[ 18. 육체의 병과 영혼의 병 ]
< 묵상 복음 : 마르 2, 1-12 (중풍 병자를 고치시다) >
-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람의 생명이 있고 난 다음에 필요한 것이지 생명을 잃고 난 다음에는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애착 중에 가장 강한 애착이 생명에 대한 애착이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갈망 중에 가장 강한 갈망이 살고 싶다는 갈망이다. … 사람은 본래 생명과 기쁨을 누리도록 창조되었기에 고통을 거부하고 죽음에 저항하는 것은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반응이기도 하다. 사람은 본래 죽음과 고통을 모르는 생명, 기쁨과 행복만을 누리는 축복 받은 생명을 하느님께 선물 받았었기 때문이다. 능력과 지혜와 사랑이 한없이 완전하신 분이 하느님이시고 하시는 모든 일은 결함이 없이 완전하다. 하느님께서 무한하신 사랑으로 사람을 창조하실 때도 결함이 없이 완전한 생명을 사람에게 주셨다. … 그리고 사람의 마음도 정신도 결함이 없이 완전하게 하셨다. 이렇게 축복 받은 완전한 생명을 가지고 세상에서도 고통이 없는 생애를 살면서 하느님께 받은 생명을 더 완전한 것으로 완성시켜 가게 하셨다. 그리고 일생을 마친 다음에는 일생동안 완성시킨 생명에 어울리는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셨다.
- 하느님께로부터 고통도 죽음도 없는 생명, 악을 알지도 원하지도 않는 완전한 생명을 선물 받은 사람은 악을 알고 원하도록 권유하는 악마의 유혹에 빠져 죄를 지음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비참하게 훼손시키고 만다. 이제 악해진 사람의 생명은 병고에 시달리며 세상을 살다가 죽음으로 인생을 마쳐야 하고, 저 세상에서도 하늘의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없는 비참한 생명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사람의 영혼은 교만과 탐욕과 육욕이라는 욕망의 사슬에 묶여 죄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육체의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보다 하느님을 상실하게 함으로써 영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가 비할 데 없이 더 심각하게 우리의 생명을 해친다. 육체의 죽음은 일시적인 고통을 줄 뿐이지만 영혼의 죽음은 영원한 고통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손상시킨 사람의 생명을 다시 완전한 것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다. 이제 죄를 버리고 회개하는 사람들의 생명이 예수님에 의해서 다시 완전한 것으로 회복된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 한 사람을 치유시켜 주신 기적을 전하고 있다. 예수님은 병의 치유를 청하는 이 사람에게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육체의 병보다 영혼의 병이 더 비참한 것이고 따라서 병의 치유를 청하기 전에 먼저 죄의 용서를 청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신 것이다. 사람은 육체의 건강만큼 영혼의 건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회개하는 것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교만과 탐욕과 육욕을 버리고 겸손하고 가난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하신다.
[ 19. 무가치한 단식과 가치있는 단식 ]
< 묵상 복음 : 마르 2, 18-22 (단식논쟁-새것과 헌것) >
- 영원하신 하느님의 의지는 한없이 완전하게 사랑하는 능력이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마음은 무한한 사랑의 열정으로 충만하고 따라서 하느님은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헤아릴 길 없는 무한한 사랑의 바다이시다. … 무한한 사랑이신 하느님과 결합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의지와 결합함으로써 완전한 사랑에 이르게 된다. 사람이 자기의 욕망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에 더 완전히 순종할수록 사람의 의지는 하느님의 의지와 더 완전히 결합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가 하느님의 뜻을 버리고 교만과 탐욕과 육욕이라는 삼중의 욕망을 따르면 타락하게 된다. 타락한 사람의 의지는 사랑의 능력을 상실하고 약해져서 욕망의 노예가 되고 만다. 그러면 사람은 배타적으로 자기만족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자가 된다. 교만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게 된다. 교만한 사람은 모든 일을 하느님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한다. 탐욕에 빠진 사람은 마음이 인색해져서 받기만을 좋아하고 베풀 줄 모른다. 또한 육욕에 사로잡힌 사람은 육체의 감각적 쾌락에만 탐닉함으로써 자신을 짐승이하의 수준으로 타락시킨다. 절제되지 않는 육욕만큼 사람의 영혼에 위험하고 해로운 것도 없다.
- 사람이 완전한 사랑에 이르려면 욕심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십자가의 길은 완전한 사랑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서 속죄와 성화를 위해 사람에게는 자발적인 고행이 필요하고 그 전형적인 수단이 단식이다. 오늘 복음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단식을 실천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제자들이 왜 단식을 하지 않느냐고 질문한다.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제자들이 단식할 때가 아니지만 당신의 수난이후부터는 제자들도 단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대로 제자들은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면서 고행과 단식을 실행했다. 제자들의 단식은 그들을 더 거룩하게 했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단식은 그러지 못했다. 그 이유는 제자들은 사랑을 가지고 단식을 했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사랑이 없이 단식을 했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하는 고행은 사람의 마음을 겸손하고 가난하고 순결하게 만들지만 사랑이 없이 행하는 고행은 오히려 교만을 더 키우게 된다. 고행은 속죄와 성화를 위해 필요하지만 고행의 가치는 고행자체의 크기가 아니라 고행을 하는 사랑의 크기로 결정된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 가치를 주는 것은 사랑이다. 기도도 선행도 고행도 하느님께 받은 특은조차도 사랑이 없으면 무가치하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 2-3)
[ 20. 기도는 영혼의 휴식 ]
< 묵상 복음 : 마르 2, 23-3, 6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다.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시다) >
- 우리 안에는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나’가 서로 대립하여 싸운다. 하나는 자기의 욕망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르려는 ‘영적인 나’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뜻을 버리고 자기의 욕망을 따르려는 ‘육적인 나’이다. ‘영적인 나’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만을 보고 듣고 알고 맛보고 행하고자 한다. 또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느님께 기쁨과 만족을 드리겠다는 소원만을 지닌다. 반면에 ‘육적인 나’는 자기의 욕망이 요구하는 것만을 보고 듣고 알고 맛보고 행하고자 한다. 하느님의 뜻과 사람의 욕망은 서로 상반되는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 욕망을 따르면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게 되고 반대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면 자기의 욕망을 버려야 한다. … ‘육적인 나’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의 교만과 탐욕과 육욕을 만족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사람을 악하게 타락시킨다. 이로 인해 하느님을 떠나서 자기 자신과 피조물에게만 집착하게 만든다. 우리의 인생은 ‘영적인 나’와 ‘육적인 나’사이의 투쟁이다. 이 투쟁의 결과에 따라 사람은 죄인이 되기도 하고 성인이 되기도 한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성덕에 이르기 위해서 따라야 할 유일하고 완전한 분이시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길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 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 사람에게 ‘영적인 나’와 ‘육적인’사이의 투쟁은 영원한 운명이 걸린 가장 중요한 싸움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 싸움은 하느님의 도움 없이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힘겹고 지루한 싸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기도이다. … 기도는 사람의 정신과 마음이 무한한 빛과 사랑의 바다이신 하느님께 잠겨 드는 것이다. 이 때 사람의 정신은 하느님의 빛으로 밝혀지고 사람의 마음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뜨거워진다. 그리고 사람은 하느님의 빛속에서 하느님의 완전하심과 자기 자신의 비천함 그리고 피조물의 무가치함을 더 밝게 보게 된다. … 사람이 기도하는 빛과 사랑의 바다에 잠기게 되면 자기를 더 완전히 버리고 낮추게 된다. 이렇게 해서 ‘육적인 나’는 더 완전히 죽게 되고 그럴수록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은 더 강해지고 완전해진다. …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굶주린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먹고 또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치유시켜 주신다고, 예수님을 공격하는 대목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비록 안식일을 지키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지만 사랑이 없는 기도였기에 이 사람들의 기도는 죽은 기도였다. 굶주린 사람과 병든 사람을 동정할 줄 모르는 냉혹한 마음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행동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이신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
# 121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122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 책 이름 : 이 사람을 보라! ECCE HOMO ]
- 지은이 : 해피 가톨릭 캠페인
- 펴낸데 : 에우안겔리온
- 출판일 : 2006.5.22 - 125p
- 내 용 : 가톨릭교회(천주교)에 관심이 있거나 입문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에 대한
기본적 가톨릭교회의 소개와 ‘행복’에로의 초대 안내서
[ 표지의 글 ]
참 소중한 당신. ‘행복’의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행복합니다. 마지막 돌아갈 곳이 어딘지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 행복합니다.
돌아갈 곳이 어딘지 알아 그 길을 닦으며 가는 사람.
참 소중한 당신. 당신을 이 행복에로 초대합니다.
[ 차례 ]
1. 예수는 어떤 인물이었는가?
2. 성경은 믿을 만한가?
3. 하느님?
4. 고통은 왜?
5. 가톨릭교회는?
6. 가톨릭신자는 무엇을 믿는가?
7. 성당에 다니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8. 성당에 다니려면?
# 본 글은 모두 존대어로 쓰였으나 대부분 일반어로 수정하여 메모함.
# 본 책은 가톨릭 신자들의 재교육차원에서 도움이 될 수 있기에 일독을 권장함.
[ 1. 예수는 어떤 인물이었는가? ] p2
< 1-1. 그의 무엇이 우리를 찡하게 하는가? >
- ( 연민의 사나이 ) 예수의 공적 활동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마태 9,35). 예수가 기적을 행하도록 움직인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측은히 여기는 마음’ 곧 연민(compassion)이었다. 한마디로 예수의 성품은 연민 그 자체였다. 이 연민은 그야말로 충심에서 우러나는 공감이요 착한 마음에서 솟아나는 연민이었다. 이 ‘연민’이 병자들과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로하시며 병을 고쳐 주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도록 예수를 내몰았다. 이 연민으로 나인 고을 마을에서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루카 7,13) 하시며 죽은 아들을 다시 일으켜 주시고, 죽음의 형벌이라고 불리며 격리된 나병환자(마르 1,41)들과도 거리낌 없이 마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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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심(聖心)의 궤적 ) 예수의 삶은 연민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예수는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되고 작은 사람들을 아껴주었다. 약자, 병자, 천한 사람들로 따돌려져 멸시받던 사람에게 다가가 영육을 돌보아 주었다. 끝내는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고 한 말씀대로 목숨을 바쳐 그 사랑을 내어 주었다. 이렇게 성심의 궤적은 우리를 깊은 묵상에로 내몬다. … 사랑으로 끓는 예수님의 가슴을 우리는 이를 일컬어 ‘예수 성심’이라 한다.
< 1-2. 성공의 네비게이터 예수? >
예수는 많은 것을 가르쳤지만 삶의 지혜 곧 처세 원리도 가르치셨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지혜롭게 사는 것인지, 성공의 비결을 제시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소개한다.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 7,13) : 이 말씀은 천국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영성적인 권고인 동시에 세상을 성공적으로 사는 비결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외길을 가는 사람들, 어려운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0,39) : 살려고 아등바등 세상의 복락을 위해 이기적으로 처신하는 사람은 결국 신뢰와 신용을 잃는다. 궁지에 처할 때에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러나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은 환란이 닥칠 때 주위의 손길이 도와준다.
-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 : 이 말씀은 예수께서 주신 메시지 중에 그 교훈의 가치가 황금처럼 귀하여서 황금률(黃金律)이라고 불리는 구절이다. 공자께서도 비슷한 말을 하였다. “스스로 하기를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 또한 링컨은 노예 해방을 위한 남북전쟁을 이끌면서 “나는 노예가 되기 싫다. 그러므로 나는 노예를 부리기도 싫다.” 는 말을 하였는데 이 말들은 모두 예수님의 말씀과 통하는 말이다. 남에게는 까다롭게 별것을 다 요구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기 때문에 불만, 불화, 불의가 생긴다. 내가 남에게 요구하는 것을 내가 먼저 해주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된다. 결국 내가 기대했던 것들이 상대방으로부터 되돌아온다.
-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3-44) : 희생심과 봉사 정신이 있으면 반드시 주변의 인정을 받고 그에 합당한 자리를 얻게 된다. 위만 바라보고 아랫사람을 섬길 줄 모르는 사람은 일시적으로는 통할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자리에 오래 머물 수 없다. 특히 직위 중심에서 역할 중심으로 인사 정책이 바뀌어 가고 있는 요즈음에는 더욱 그러하다.
< 1-3. 과대망상증 환자? 하느님의 아들? 무엇이 맞는가? >
- (재판의 현장) 정신병자를 제외하고 역사상 어떤 인간도 자신을 ‘하느님’ 또는 ‘하느님의 아들’이라 주장한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 주장을 예수가 했다. 예수는 거짓말을 했는가? 아니면, 과대망상증 환자였을까? 아니면, 진실로 하느님의 아들이었는가? 바로 이 물음이 최초로 제기된 2천 년 전 역사의 현장으로 함께 가 보자. … (마태 26, 57-66 : 최고 의회에서 신문을 받으시다) 참조 … ‘가야파’라는 대사제가 다시 물었다. “그대가 진정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인가?” 재판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도 숨을 죽이고 예수의 대답을 주목했다. 마침내 예수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 당신이 말한 대로 내가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다. 이제 앞으로 사람의 아들이 권능의 보좌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볼 것이다.” 대답을 듣자마자 대사제는 소리를 질렀다.“우리 모두가 예수가 신성모독 발언을 하는 것을 방금 다 들었소. 한낱 인간인 주제에 스스로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다니 이렇게 참담할 수가! 여러분이 보기엔 어떻소?” 가야파는 군중들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예수를 유죄로 인정해 죽이라고 외쳐댔다. 예수는 처형을 당할 때까지 자신이 하느님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거짓말을 했을까? 아니면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일까?
- (예수는 거짓을 말했는가?) 예수는 법정에서 ‘거짓’을 인정하면 잔인한 형벌인 십자가형은 면할 수도 있었다. 아무리 지독한 거짓말쟁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거짓말에 목숨을 바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최후의 숨을 몰아쉬면서도 자신이 유일하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절대로 굽히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그는 흔들린 적이 없었다.
- (예수는 과대망상증 환자였는가?) 정신병자는 말에 조리가 없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그 병의 증세를 보인다. 하지만 그의 가르침과 행동에는 일관성이 있었다. 복음서들을 비교해 보면 놀라우리만치 조리 정연함이 드러난다. 예수는 자신이 하느님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반대 세력이나 비판자들로부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예수는 적대자들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꼼짝 못하게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에게는 정신병자의 종잡을 수 없는 혼란이 발견되지 않았다.
- (그렇다면 예수는 정말로 하느님의 아들이었는가?) 예수가 거짓말쟁이도 아니요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정신병자도 아니었다면, 마지막 남은 결론은 하나이다. 결국 예수의 주장은 진실이라는 하나의 대안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는 자신이 주장한 대로 정말로 하느님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회심하기 이전에 오랫동안 무신론자였던 C.S.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 여러분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이었고, 지금도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미치광이거나 그보다 못한 인간입니다. …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니 어쩌니 하는 선심성 헛소리에는 편승하지 맙시다.”
- (베드로의 변증) 사도 베드로(예수의 수제자)는 수 천 명이 모여든 예루살렘 광장에서 다음과 같이 예수의 정체에 대해 증언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내 말을 들으시오. 나자렛 예수는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여러분이 보는 앞에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 가지 기적과 놀라운 일과 표징을 나타내셨습니다. … 이 예수를 여러분은 악인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으며 우리는 다 그 증인입니다.”(사도 2,22-32). … 베드로의 연설을 풀어서 말하면 이런 의미였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 … (마태 13,13/ 마태 13,9/사도 2,22 참조). … 이 사람이 누구인가? 문둥병자를 낫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소경을 보게 하고, 악령을 쫓아낸 이 사람, / 물 위를 걷고 풍랑을 잠재운 이 사람,/ 죄인과 창녀와 세리들에게 새 삶의 길을 열어 준 이 사람,/ 물고기 두 마리 빵 다섯 개로 한꺼번에 5천 명을 먹인 이 사람,/ 죽은 사람을 살려 낸 이사람,/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인가? ,
< 1-4. 예수는 정말 부활했는가? >
- (부활 어떻게 믿나?)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가 예수의 부활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 우리는 부활의 확실한 역사적 정황 증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제자들 대부분이 부활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이다. … 둘째, 박해자가 부활 체험을 통해 회심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 박해자 사울의 예, 갈라 1,13-16). 셋째, 유다인의 핵심적인 신앙적. 사회적 규범이 부활신앙으로 인해 완전히 새롭게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 넷째,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사건이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우리를 위한 부활이었다) 이렇듯 예수의 부활은 자명하다.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로마 10,9). 예수의 부활은 우리를 위한 부활이었다. 우리를 일으키기 위해 먼저 예수께서 일으킴 받은 것이다. 이제 그대가 일어나야 할 때이다. 죽음에서, 절망에서, 체념에서, 전신마비의 무기력에서 ….
<< 참 소중한 당신께 >>
참 소중한 당신, 아마도 당신께서도 한번쯤은 그분의 정체에 대해서 물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는 누구지?” 알려 드린다. 예수는 단지 2000년 전의 인물이 아니다. 오늘 살아계신 분이다. 당신이 마음의 문을 열면 언제고 만날 수 있는 분이다. 당신께 도움이 될까하여 다음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는 실화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눈에 덮인 중국 오지를 의심에 잠긴 한 사진사가 말을 타고 가고 있었다. 그는 말 등에서 “오, 오, 주여! 주의 얼굴을 한번 보기만 하면 저는 믿겠습니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마음 어디서 “사진을 찍어라” “사진을 찍어라”라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곳은 눈이 녹기 시작하여 이곳저곳에 검은 땅이 나타나 보기에 흉한 들판이었다. 그러나 마음에 들려오는 명령을 따라 그는 말에서 내려 그 장면을 카메라에 잡았다. 집에 돌아와 그 필름을 현상했더니 거기에는 온유와 사랑이 넘치는 그리스도의 얼굴이 찍혀 있었다. 이 사진과 이야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 2. 성경은 믿을 만한가? ] p23
< 2-1. 성경은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
- (벤허와 다빈치 코드) ‘벤허’는 20세기에 나온 영화 가운데 불후의 명작이다. 원작자 루이스 월리스는 1827년 미국 인디애나 주지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장성하여 변호사가 되었고 남북전쟁 때에는 북군의 장군이 되었다. 어느 날 한 친구와 대화를 하던 루이스는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 아닌 사람의 아들임을 밝히는 소설을 쓰기로 작정하였다. 메시아니 초능력적인 인물이니 하는 허구를 다 벗기고 순수한 인간 예수를 조명하는 것이 그의 집필 목적이었다. … 그는 성경을 읽으며 예수의 생애를 추적하고 탐구하는 동안에 성경의 진실성을 믿게 되었고,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시인하게 되었다. 예수의 부활도 믿게 되었다. 월리스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고스란히 소설의 주인공에게 투영시켰다. 1880년 출판한 ‘벤허’가 바로 그것이다. … 본인의 애초 의도는 예수에 관한 성경의 진실을 부인하고 예수가 한낱 인간임을 입증하려는 것이었으나, 연구과정에서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오자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사실 그대로 수긍하는 양심이 있었던 것이다.
- ‘다 빈치 코드’를 쓴 댄 브라운은 이 책에서 의도적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비껴 다니거나 조작과 왜곡을 일삼았다. 그는 자신의 적그리스도인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객관적 진리는 애써 피해 다니고 이미 거짓으로 입증된 자료들을 수집하여 책을 썼던 것이다. ‘다 빈치 코드’가 ‘거짓’ 일색이라는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는 댄 브라운 자신이었다. (책 ‘다 빈치 코드의 족보’ - 라은성. 차동엽 공저 참조)
- (성경은 누가 언제 썼는가? )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책은 성경이다. 성경 안에는 천지창조 이야기에서부터 전쟁이야기, 사랑이야기, 시, 격언 등 모든 문학이 총망라되어 있다. 성경은 40명 이상의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오늘날 성경 저자들이 쓴 원문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지구상에 남아있는 고대의 모든 책들이 다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사실은 ‘성경은 사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인쇄기술이 없었기에 손으로 옮겨 적었는데 이를 사본이라 한다. 성경은 오랫동안의 구전(口傳) 전승 기간을 제외하고도, 기원전 900년경부터 기원후 100년까지에 걸쳐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기록되었다. 그리고 경전 목록 확정과 편집과정까지 합하면 약 1600년이 걸려 완성된 책이다. 이렇듯이 성경은 여러 세기에 걸쳐서 성령의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그래서 성경은 책인 동시에 인간의 책이기도 하다.
- (진실성의 근거는 무엇인가?) 첫째, 수많은 사본의 숫자가 진실성을 입증한다. 오늘날 학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구약성경 사본은 11,000개, 신약성경 사본은 그리스어와 라틴어 번역본을 합해 13,000개가 넘는다. 시이저가 쓴 갈리아 전쟁의 필사본의 수가 고작 10개, 타키투스의 연대기는 다 모아도 겨우 20개뿐임에 비할 때, 구약과 신약 성경 필사본 수가 고대의 어떤 책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곧잘 있어 왔다. 사본들의 숫자를 확인하고 냉철한 판단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둘째, 원본과 사본의 시간 간격이 짧다는 사실이 진실성을 입증한다. 학자들이 원본 성경과 그 사본들의 저작 연대를 비교해 본 결과 성경의 역사적 신뢰성이 훨씬 더 정확한 것으로 나타났다. 1947년 사해 사본의 발견으로 성경학자들은 구약성경 원본과 그 사본 사이의 간격이 불과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이에 비할 때 플리니우스 세쿤두스의 ‘박물지’의 경우 원본과 가장 오래된 사본 간에 750년의 시간 격차가 있다. 역사상 사본의 권위가 가장 높은 2번째 책은 호머의 ‘일리아드’ 원본과 사본 간에 400년의 시간차이가 있다. 이렇게 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고대의 다른 문학작품과 비교해 볼 때 원본이 쓰인 시대와 가장 가까운 필사본을 가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처럼 원본의 기록과 오늘날 읽는 사본과의 시간 간격이 짧다는 것은 세월의 흐름에도 본문의 왜곡 가능성이 그만큼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경은 원래 저자들이 썼던 그 성경과 똑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놀라운 통일성) 성경은 1,600여 년에 걸쳐 40명 이상의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그러나 연대가 다른 다양한 저자들에도 불구하고 통일된 하나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고 있는데 “죄에 빠진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그것이다. 다른 연대, 다른 지역, 다른 저자들, 그리고 한 가지 주제와 완벽한 조화! 이것이 얼마나 기적적인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결론)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성령의 감도를 받아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다. “예언은 결코 인간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 하느님에게서 받아 전한 것입니다.”(2베드 1,21). 성경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기록된 책이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2티모 3,15-16).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마태 5,17-18).
< 2-2. 가짜 복음서들은 무슨 목적으로 생겼는가? >
- (또 하나의 스캔들, 유다 복음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TV와 인터넷을 통해 <유다복음서>를 전면 공개(2006.4.9.)했다. AD 130-170년 무렵 영지주의의 한 분파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영지주의란 인간의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전적으로 악하다는 이원론을 내세우는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다. 이 복음서는 “예수가 유다와 나눈 계시에 대한 비밀스런 이야기”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 책은 ‘유다의 예수 배반’이 사실은 예수가 인류구원이라는 과업을 완성하기 위해 유다와 모의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유다의 배반이 없었다면 인간의 구원을 이루려는 신의 계획도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등 제자의 배반을 합리화하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이미 서기 180년대에 크게 영향력을 행사했던 교부 이레네오의 <이단논박>이라는 책을 통해 이단적인 책으로 판별된 책이다. 약 150년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이 <유다복음서>는 그리스도교 저술이 아니라, 1945년에 나일강 유역에서 일시에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서와 마찬가지로 영지주의 신봉자들의 저술이다. 그러기에 ‘신비한 문서’일뿐 성경이 아니다.
- (가짜 복음서들) 1945년 이집트에서 많은 복음서 두루마리들이 발견되었다. 거기에는 토마복음서, 필립보복음서, 마리아복음서, 유다복음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학자들은 이들의 내용을 검토해 본 결과 이들이 ‘영지주의 문서’라는 결론을 내렸다. 초세기부터 교회는 이 영지주의가 “예수는 가짜 인간일 뿐이다. 선한 존재인 신은 절대로 악에 기원을 두고 있는 육체를 지닌 인간이 될 수 없다”는 허황된 사상을 퍼뜨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단으로 간주해 왔다. 이런 이유로 영지주의 문서들은 가짜 문서로 취급되고 있다. 본래 영지주의 문서들은 예수의 활동들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일어난 후 100년 내지 150년이 지난 시점이다. 심지어는 4-6세기에 기록된 것들도 있다. … 영지주의 복음서들은 성경목록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성경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외경(外經)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들은 위경(僞經) 곧 가짜 성경인 것이다.
- (영지주의 ‘가짜’복음서와 공관 복음서의 차이) 영지주의 복음서들이 역사의 기록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역사에 무관한 데 비해, 신약은 그 자체로 철저히 역사의 기록이다. 루카는 역사가들이 중요한 사실들을 다룰 때 쓰는 엄밀한 방법을 사용하여 그의 복음서를 기록했다. 그는 기존의 문서와 자료를 활용하고, 목격자들에게 세부적인 사항들을 확인했으며, 자신의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차례대로 기록했다. 루카가 정확한 역사의 기록자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는 사도행전이다. 사도행전에는 도시, 바다, 선박, 지리적 세부사항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나온다. 사람들이 검증된 역사 기록인 정경을 제쳐두고 굳이 영지주의 복음서들을 믿으려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신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시대정신 때문이다. 신적 존재에 의존하는 기도가 아니라 스스로 수행을 통해서 직접 신적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사상, 다양한 교리들을 받아들이고 싶은 욕구, 여권신장주의의 압력 등이 영지주의 복음서에 열광하도록 하고 있다.
< 2-3. 성경은 과학과 상반되는가? >
- (진리는 상충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성경과 과학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와 과학은 긴 세월의 우여곡절 끝에 근래에 들어와서 화해관계에 들어섰다. … 교회는 이제 더 이상 사실로 받아들여진 우주에 대한 정보가 창조 신앙에 적대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교회의 공식입장은 이러하다. “모든 학문 분야의 탐구는, 그것이 참으로 과학적 방법을 따르고 윤리규범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절대로 신앙에 대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세속 사물이나 신앙의 내용은 다 함께 하느님 안에 그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사목헌장 36항). 신앙에 바탕을 둔 종교와 합리성에 입각한 과학은 서로 보완적 관계를 가질 수 있다. 둘 다 진리라면 서로 일치하게 되어 있다. 다른 한 쪽이 거짓인 경우에만 충돌하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진리는 진리와 상충하지 않는다”라고 천명한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다. 과학도 신학도 모두가 하느님 안에 근거하고 있으며, 창조주이며 구원자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한 것이다. 신학이 하는 일은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삼라만상, 곧 우주를 완성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른 최종적인 의미를 추출해 내는 것이다.
- (고유의 영역들) 현대인은 마치 과학이 모든 지식과 정보를 준다고 믿지만 과학적 방법으로 알 수 없는 것은 많다. 사실상 과학은 근원적 지식이 아니라 기능적 지식을 주기 때문이다. 근원적 지식은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인간의 역사와 운명에 대해 알려주는 것을 말한다. “무엇이 선하고 아름다운가?”, “어떤 삶이 참으로 의미 있는 삶인가?” 이런 지식에 대하여는 신학이 답변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것은 과학 영역 밖인 것이다. 과학과 성경은 모순의 차이에서 볼 것이 아니다. 대등한 차원으로 비교하고 다룰 수 없다는 것이다. 신앙은 신앙의 영역에서 존중되어야 한다.
- (인간의 과학과 더 많은 과학)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을 했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이다. “약간의 과학이 사람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더 많은 과학은 그를 하느님께 다시 돌아가게 만든다.” 어설픈 과학은 신앙을 해친다. 부족한 과학이 진리를 그르친다. 제대로 된 과학은 오히려 창조 신앙을 풍부하게 해주고 이해의 폭을 넓게 해준다. … 무신론자였고, 인류 역사상 가장 탁월한 과학자로 평가받는 아인슈타인은 과학을 통해서 창조주 하느님을 만났던 것이다.
<< 참 소중한 당신께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이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시편 23, 1-4/가톨릭성가 54번) 참 소중한 당신! 시편 23장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많이 외었던 시편이었고, 지금 우리들도 많이 알고 있는 시편이다. 이처럼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어려움을 이겨낼 용기와 힘 그리고 평화를 누릴 수 있다.
[ 3. 하느님? ] p44
< 3-1.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어떻게 감지할 수 있는가? >
- (하느님이 어디 계시는가?)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느님을 우리는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바로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들에게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 (이야기 하나) 어느 대학의 수업 시간이었다. 신의 존재에 대한 여러 역사적 사상들이 검토되고 있었다. 한 학생이 칠판에 이렇게 적었다. ‘God is no where!’ (신은 아무데도 없다) 그랬더니 다른 학생이 나아가 w자를 앞으로 옮겨 띄어쓰기를 했다. ‘God is now here!’(하느님은 지금 여기에 계신다) 그곳에 있던 학생들은 그 기막힌 반전에 모두 감탄하였다. … (이야기 둘) 어느 날 수도원 원장은 모든 제자들에게 새를 한 마리씩 나누어주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여 오라”고 했다. 얼마 후 모든 제자들이 새를 죽여 가지고 왔으나 한 제자만이 산 채로 가지고 왔다. 그 이유를 묻자 “원장님, 저는 아무도 안 보는 곳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어디를 가도 하느님께서 저를 보고 계셔 새를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창조물들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신다.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로마 1,20).
- (하느님의 존재 증명) ‘하느님의 존재 증명’은 대표적으로 ‘존재론적 논증’과 ‘목적론적 논증’ 그리고 ‘우주론적 논증’이 있다. 존재론적 논증은 중세 신학자 안셀모의 주장으로, 하느님이란 개념의 정의가 하느님의 존재를 함축한다는 것이다. 목적론적 논증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제창했다. 모든 만물의 질서와 아름다움에는 그 배후에 어떤 설계자가 있음을 암시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이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암시하는 데까지는 나아간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우주론적 논증이란 이 세상의 만물은 다 그 원인을 가지고 있는데, 그 최초의 원인자가 바로 하느님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일리는 있지만 끝까지 하느님을 부인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통하지 않는다. 우리가 전제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이 증명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공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공기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부분이, 우리가 듣지 못하는 부분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때, 우리의 믿음도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어리석은 자 마음속으로 ‘하느님은 없다’말하네”(시편 14,1). 눈을 씻고 대자연의 자태를 유심히 바라본다면, 우리는 오늘도 삼라만상을 통해 사랑의 손길을 내밀고 계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 3.2. 왜 ’하느님‘만 섬기라 하는가? >
- (복되어라, 하느님을 믿는 사람) 십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이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이다. 여기에는 “우상을 섬기지 마라”는 것이 포함된다. 왜 하느님만 섬겨야 하는가? 그것은 하느님께서 든든한 빽이시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가장 절실하게 체험한 사람이 바로 다윗왕이었다. … 다윗뿐 아니라 하느님의 신실하신 도움을 겪은 다른 믿음의 사람들도 증언한다.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예레 17,7-8).
- (복되어라, 우상에 속지 않는 사람) 우상은 허수아비이다. 허수아비는 가짜 형상이고, 거짓이며, 아무런 내용도 힘도 없는 눈속임이다. 그러므로 헛된 우상이나 잡신 등을 신격화하여 섬기거나 공경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또 하느님이 아닌 것에 의지하여 점술이나 사주 등으로 무엇을 알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거짓 기적이나 예언 등에 현혹되는 일과 인간 권력을 절대화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 모두가 허수아비요 헛것이다. 하느님만이 참 하느님이며 실제로 존재하며 살아 계시며 참 도움의 손길을 베추시는 유일한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
<< 참 소중한 당신께 >>
- 아무리 멀리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고, 벗어나고 싶어도, 따라오고 뒤쫓아오니 벗어날 수가 없는 존재가 바로 하느님이다. 하느님을 저버린다는 것은 모든 것에 저버림을 당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하느님은 가이없는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참 소중한 당신, 당신께서 이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시기를 바란다.
[ 4. 고통은 왜? ] p54
< 4-1. 하느님은 왜 악이 발생하도록 용인하시는가? >
- (하느님이 침묵하시는 까닭)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께 푸념하듯이 물음을 던진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계시다면, 왜 내게 이런 일들을 허락하시는가?”, “전능하신 하느님이 계시다면, 왜 내게 아무런 도움을 주시지 않는단 말인가?” 또 사회적으로 엄청난 불의와 부조리가 자행되는 것을 묵과하시는 하느님의 처신에 우리는 묻는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 맞아?”, “전능하신 하느님이 왜 저런 끔직한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가?” … 예) 아우슈비츠에서 600만 명의 유다인이 학살되는 비극, 광주 5.18 민주 항쟁이 벌어지도록 묵인, 대구 지하철 참사를 막아 주지 못하는 등 … 왜 전능하신 하느님이 세상의 극악한 폭력에 대하여 침묵만 하시는가? 이 물음을 가장 뼈저리게 던진 이들이 바로 유다인 이었다. 그러나 유다인이 발견한 대답은 하느님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순간에 못 본 체하고 침묵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고통의 현장에서 고통 받는 이와 함께 고통을 당하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 (고통 받는 하느님) 그렇다면 하느님은 그 고통을 해결해 주시지 않고, 오히려 인간과 함께 고통을 받으시는 이런 어리석음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하느님의 이 외견상의 무능을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첫째,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태초에 사람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주실 때 이미 ‘사랑의 모험’을 감행하셨다는 점이다. 자유의지를 주실 때 이미 인간의 ‘거절’, ‘거부’, ‘배반’을 각오하고 주셨다는 말이다. 사랑의 극치는 자유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하느님을 배반하였다. 그 배반과 모반을 감수하는 과정에서 하느님은 무능하고 무력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 자유의지를 박탈하지 않는 한 하느님은 그러실 수밖에 없다. 다만 속앓이를 하시고 함께 아파하시며 고통을 감내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이상 그것을 박탈하지도, 간섭하지도 않으신다. 이것은 걸작 인간을 만드신 하느님의 자존심이다. 하느님께서는 본래 인간을 하자 없이 완전한 존재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를 존중하신다. … 아우구스티노에게 하느님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씀을 주셨던 것이다. “나는 너의 허락 없이 너를 존재케 했지만, 너의 허락 없이는 너를 구원할 수 없단다.”
둘째,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속성상 함께 아파하실 수밖에 없으시다는 점이다. … 하느님께서 스스로 고통을 모르면서 인간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것은 오히려 하느님을 인간과는 무관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 나치 시대에 암살범으로 몰려 처형당한 본회퍼 목사는 “고통 받지 않는 하느님은 인간을 고통에서 해방시키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겪으셨던 고통 가운데에서,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에 동참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놀라운 구원 섭리가 드러났다. 이것은 사랑의 역설이다.
- (사랑의 전능)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세상의 권력을 쥐고 있어도, 자식 앞에 부모는 무력자이다. 결국, 자식이 하자는 대로 자식의 말을 들어준다. … 하느님은 사랑 때문에 오히려 무능한 존재로 보이기도 한다. 더없이 무능하고 무력한 모습으로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매달리신 십자가에서 세상을 능가하는 하느님 ‘사랑의 전능’이 드러난 것이다. 즉 사랑이시기에 인간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으신, 수모와 능력조차도 능히 감당해 내시는 하느님의 전능이 십자가를 통해서 드러난 것이다. 이제 인간의 불행은 하느님의 불행이며, 인간의 울부짖는 소리는 하느님의 울부짖는 소리이다. 그러므로 “왜 나를 이렇게 …”라고 울부짖을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볼 줄 알아야 한다.
< 4-2. 팔자를 고칠 수 없는가? >
- (예수를 만난 사람들)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람은 팔자대로 살아간다’는 운명론에 젖어 살아왔다. 이런 사고방식은 ‘이 도망 저 도망 다해도 팔자 도망은 못한다’ 는 우리의 옛 속담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 예수께서는 “‘하실 수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9,23)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을 굳게 믿고 그분 안에서 꿈을 꿀 때, 그분은 그 소망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예수를 만난 ‘가난한 사람들’은 기쁜 소식을 들었다. ‘눈먼’ 이들은 보게 되었고, ‘억압받은 이들’은 해방되었다. ‘절름발이’가 걷게 되었고, ‘나병환자’가 멀쩡히 치유되었다. 예수를 만남으로써 ‘팔자’가 바뀌게 된 것이다.
- (이 시대의 증언) 미국에 가면 1,400개의 점포를 가진 도미노 피자가 있다. 이것을 만든 사람은 타미라는 고아였다. 그는 성요셉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입양되어 중학교에 갔으나, 얼마 후 문제아로 퇴학을 당해 내쫓겨야 할 때 그를 사랑으로 돌봐주었던 수녀가 그에게 격려의 말을 했다. “하느님은 절대로 너를 버리지 않으신다. 큰 별을 따도록 해라” 그는 평생 이 말을 마음에 간직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그는 우선 먹고 살기 위하여 피자 가게에 취직했고 열심히 일했다. 나중에 따로 피자 집을 낸 것이 성공하여 1,400개의 점포를 갖게 된 것이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대의 생애를 하느님께 맡기고 한번 크게 승부를 걸라!” 우리는 믿음 안에서 반드시 변화와 위로와 힘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은 이른바 ‘운명적인 굴레’, 곧 팔자조차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날마다 새로운 인생에 도전해 보자. 꿈을 꾸고, 믿고, 기도하며, 날마다 무한한 가능성을 향하여!
<< 참 소중한 당신께 >>
참 소중한 당신. 도종환 님이 고난 중에 읊조린 노래 하나가 가슴에 저며 온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지금 풀벌레 울음으로도 흔들리는 여린 촛불입니다/ 당신이 붙이신 불이라 온몸을 태우고 있으나/ 제 작은 영혼의 일만팔천 갑절 더 많은 어둠을 함께 보내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 우리는 고난 저편에서 박송죽 님의 노래 ‘첫눈 뜬 새벽같이’도 함께 합창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과 땅 어울려/ 품어 안은 그분의 사랑 안에/ 저마다 지복(至福)한 잔치마당/ 생명의 촉수 높은 초록 빛/ 환희의 숨결"
… 참 소중한 당신 이것이 우리와 함께하는 하느님의 다채로운 용안(容顔)이다.
[ 5. 가톨릭교회는? ] p 65
< 5-1. 왜 가톨릭을 세계종교라 부르는가? >
- (천주교와 가톨릭) ‘가톨릭’하면 사람들에겐 먼저 무엇이 떠오를까? 명동성당, 김수환 추기경, 마더 데레사, 교황, 바티칸, 베드로 대성전, 수녀님, 신부님, 미사보, 장엄하고 엄숙하게 미사 드리는 모습 등이 스쳐갈지도 모른다.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실학파, 절두산, 새남터, 정약용, 김대건 신부, 안중근 의사, 지학순 주교, 민주화운동, 정의구현사제단, 등등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가톨릭’은 천주교(天主敎)에 속한 모든 것을 떠오르게 한다. 이는 가톨릭이라는 단어가 곧바로 천주교와 동일어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가톨릭(Catholic)은 로마의 주교인 교황과 일치해 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에게 주어지는 공식적인 호칭이 된다. 천주교는 공식적으로는 ‘로마-가톨릭교회’라 불린다. ‘가톨릭’은 그 약칭인 것이다. ‘가톨릭’은 천주교 신앙을 가르키기도 하고 천주교회, 천주교 신자, 천주교 사상 등 천주교회에 속한 모든 것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가톨릭’은 흔히 프로테스탄트 교회 내지 다른 그리스도교의 종파들과 구별되는 뜻에서 이해된다.
- (세계 종교 가톨릭) 가톨릭은 ‘보편적(普遍的)인’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보편성’은 모든 시대, 모든 장소, 모든 사람들에게 유효하다는 것을 뜻한다. 가령 어느 시대에는 통했지만 다른 시대에는 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없다. 또 어느 지역에서는 인정받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보편적이 것이 못 된다. 그리고 어떤 민족에게는 진리로 받아들여지지만 다른 민족에게는 진리로 수긍되지 못한다면 그것도 보편적인 것이 못 된다. 그러므로 보편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유한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어야 하며,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가톨릭’의 요건이다.
< 5-2. 교황은 누구인가? >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현재는 프란치스코 교황) 2005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선종(4.2)하셨다. 이 소식은 전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킨 빅뉴스였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세계 언론은 ‘교황중의 교황’(영국 더 타임즈), ‘베를린 장벽 붕괴와 공산주의 패망의 주역’(러시아 코메르산트), ‘죽음을 대하는 법을 가르쳐준 위대한 스승’(독일 디벨트), ‘인류 가슴에 화해.용서 새긴 사도’(한겨레) 등의 표현으로 격찬하였다.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은 그를 ‘세계의 목자’로 칭송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고, 존경 받는 ‘위대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교황’으로서 그를 역사의 무대에 등장시킨 것은 예수께서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들에게 주셨던 약속 말씀이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 18-19).
- (교황과 천국의 열쇠) ‘하늘나라의 열쇠’를 우리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 대한 예수의 호된 질책(마태 23,13)과 연결시켜 이해할 필요가 있다. … 예수께서는 베드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 열쇠를 맡기시며 ‘매고 푸는’ 사명을 주셨다. 예수는 당신의 ‘후계자’가 아닌 ‘대리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중심, 푯대, 보루의 역할을 할 절대적 리더십이 언제나 교회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인간이 걸핏하면 분열하는 특성을 갖고 있었기에 ‘구심점’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주셨고 교황직을 세우셨다. … 예수께서 세우신 교황직은 인류를 위해, 우리를 위해, 나를 위해 있는 것이다. 교황은 우리에게 예수의 음성이 되어 주시며, 예수의 사랑이 되어 주시며, 우리가 영적 및 윤리적으로 서 있어야 할 삶의 바위(petra)가 되어 주신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를 ‘종들의 종’이라 부른다.
< 5-3. 신부님, 수녀님은 왜 결혼을 안 하는가? >
- (성경의 권고) 성경 전체에 하느님의 일꾼으로 특별히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독신’을 권하는 말씀이 많이 나온다. 예수께서는 몸소 독신의 모범을 보이신 것은 두말 할 것도 없고, 하늘나라를 위해 독신으로 살 것을 권장하셨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처음부터 결혼하지 못할 몸으로 태어난 사람도 있고 사람의 손으로 그렇게 된 사람도 있고 또 하늘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을 받아들일 만한 사람은 받아들여라”(공동번역 마태 19,11-12). 이 말씀은 자발적으로 숭고한 목적을 위하여 독신생활을 지망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한 격려이다. 바오로 사도 역시 일생 동안 독신으로 살았고, 또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였다. “혼인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혼인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사도들도 베드로 외에는 결혼하였다는 증거가 없으며, 베드로도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는 아내와 별거하였다. … 예수께서는 독신을 강요하신 것은 아니지만, 말씀과 행동으로 이를 권장하셨으므로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를 점차 성문화하기에 이르렀다. 초대교회 때는 결혼한 사람도 성직을 맡아 볼 수 있었지만, 한 번 사제직에 서품된 후에는 별거하였다.
- (온전한 봉헌) 성직자뿐 아니라 가톨릭의 남녀 수도자들도 하느님을 전심전력으로 섬기기 위하여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지낸다. 남녀 수도자들 역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성화만을 위하지 않고 남을 위한 봉헌, 요양원, 양로원, 고아원, 감화원 등은 물론 각종 교육, 문화, 전도, 구제사업에 엄격한 수도 규칙을 지켜가며 일생을 독신 생활로 봉사한다. … 독신 생활은 사제의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는 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봉헌됨을 의미하며, 하늘나라에 바쳐진 역설적 사랑을 증명하는 하나의 증표이다.
< 5-4. 왜 중국은 ‘사랑의 선교회’를 초청했는가? >
- (중국의 초청) 마더 데레사 수녀가 창설한 ‘사랑의 선교회’ 총 원장으로 마더 데레사의 후계자인 니르말라 조쉬 수녀는 최근 아시아뉴스와 가진 회견에서 “중국 정부가 우리에게 와달라고 요청했다”며 수녀회 측에서는 기꺼이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종교 단체를 공식적으로 초청한 것은 역사적으로 초유의 사건이다. 이는 ‘사랑의 선교회’가 이미 세계 곳곳에 서 펼쳐왔던 사랑의 봉사를 중국정부도 그만큼 인정한다는 이야기이다. 사랑의 선교회가 중국에 분원을 설치하게 될 경우, 마오쩌뚱 이후 최초로 중국 본토에 진출하는 국제 수도회가 될 전망이다.
- (사랑의 선교회 창립자 마더 데레사) 마더 데레사는 인간의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선한 의지를 구체적인 육화의 삶으로 산 그리스도의 상징이며, 그리스도의 흔들림 없는 증거자로 살았던 분이다. 이런 마더 데레사의 삶을 보고 한 이슬람 사제가 이렇게 고백했다. “그동안 나는 줄곧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의 예언자라고 믿어 왔습니다. 오늘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분은 놀라운 사랑으로 이러한 일을 하도록 이 자매에게 큰 기쁨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더 데레사의 영성은 특히 우리를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기꺼이 내어 주신 예수, 성체(聖體)로 오시는 예수께 깊이 뿌리를 박고 있다. 그녀는 우리에게 권한다. “그분은 우리가 전해야 할 진리, 우리가 살아야 할 생명, 우리가 비추어야 할 빛,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랑,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 우리가 함께 나누어야 할 기쁨, 우리가 발산해야 할 평화, 우리가 우리의 가정과 이웃과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을 위해 해야 할 희생입니다.” 이는 단지 권고가 아니었으며, 그녀의 삶이었다.
<< 참 소중한 당신 >>
참 소중한 당신. 평화를 선물로 전합니다.
“어머님, 오늘도 당신 앞에 섰습니다. 기쁜 일 있어 아뢰러 왔어요. 어머님, 오늘도 당신 앞에 섰습니다. 슬픈 일 있어 아뢰러 왔어요. 기쁨도 슬픔도 당신께 다 봉헌하면 제 마음에 넘치도록 평화를 담아 주시는 어머님!” (‘성모님께’에서)
이 평화는 언젠가 어머님의 아드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평화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참 소중한 당신. 당신께 평화를 빕니다.
[ 6. 가톨릭 신자는 무엇을 믿는가? ] p81
< 6-1. 가톨릭은 정말로 마리아를 믿는 종교인가? >
- (무엇이 우상인가?) 우선 ‘우상(偶像)’이라는 말을 바로 알아야 한다. 탈출기(20, 4)의 말씀에 의하면 우상은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신상(神像)을 말한다. 본래 ‘형상 없는’ 하느님을 어떤 ‘모습’ 속에 고정시키는 것, ‘제한 없는’ 하느님을 어떤 ‘틀’ 속에 가두어 두는 것, 그것이 우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존재했던’ 어떤 사람을 기념하여 석상이나 동상을 만드는 것은 우상이 아니다. 역사 속의 주인공 예수님을 기억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상들은 우상이 아니다. 마리아의 실제 모습을 추정하여 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도 우상이 아이다. 성상(聖像)과 성화(聖畵)도 우상이 아니다. 만일 성상이나 성화를 하느님 자리에 갖다 놓았다면 우상이 될 수 있다. 마리아를 하느님 자리에 놓고 숭배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이다. 그러나 일부 개신교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가톨릭은 마리아를 신(神)으로 숭배하지 않는다.
- (흠숭과 공경의 차이) 우리가 숭배하는 것은 오로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뿐이다. 마리아는 다만 공경(恭敬)할 따름이다. 공경하되 다른 성인(聖人)들게 드리는 공경보다 더 정성껏 공경한다. 그래서 하느님께는 ‘흠숭지례(欽崇之禮)’를 드린다 하고, 마리아께는 가장 존경한다는 ‘상경지례(上敬之禮)’ 그리고 성인들에 대한 공경은 ‘공경지례(恭敬之禮)’라 한다. ‘흠숭’과 ‘공경’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유일한 중재자 되시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마리아가 구원의 길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는 우리가 예수께 나아가도록 도와주신다. 마리아는 우리가 예수께 나아가는데 장애가 아니라 안내자요 동반자다. 굳이 성모님을 통하지 않아도 되지만, 통하지 않으면 그만큼 전구의 은혜를 못 누릴 따름이다.
< 6-2. 과연 죄는 있는 것인가? >
- (죄는 없다?) 사람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누구든지 그 양심 때문에 괴로움을 겪게 되어 있다. 그것을 우리는 죄의식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요즈음 뉴에이지에서는 죄 자체를 부인하는 가치관을 유행시키고 있다. 앤드류 마리아가 쓴 ‘지혜의 발자취’에 나오는 한 토막 이야기는 이런 주장이 사탄의 소행이라고 말한다. … 사탄은 지옥회의를 소집해서 악마들에게 일렀다. 연간 공적을 보고하도록 했고, 공이 가장 큰 악마에게는 상을 내리겠다고 했다.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악마 1호는 “저는 수많은 인간들을 육욕의 죄에 빠뜨렸습니다”, 악마 2호는 “저는 수많은 인간들을 오만의 죄에 빠뜨렸습니다”, 악마 3호는 “저는 수많은 인간들을 탐욕의 죄에 빠뜨렸습니다”라고 보고했다 마지막으로 악마 4호가 일어나 말했다. “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죄 같은 아예 없다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이때 사탄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참 잘했다. 악마들에겐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업적이니라. 인간들에게 죄 같은 건 아예 없다고 믿게 만드는 말이다.” 재미있는 일은 오늘날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이 실제로 있다는 사실이다.
- (죄는 있다) 죄는 성경에서 죄를 뜻하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서는 어떤 기준(하느님 또는 계명)을 벗어난 행위를 말한다. 또 한자로 죄(罪)의 의미는 천륜과 인륜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죄’의 성립에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척도가 되는 하느님의 존재여부, 그리고 천륜과 인륜의 보편타당성 여부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존재하신다. 부인하는 이들도 있지만 인류의 절대다수가 이를 믿어 왔다. 또한 양심, 계율, 천륜과 인륜 등을 동서고금의 사람들이 인정해 왔다. 오늘날 비교종교학의 연구 결과는 이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래서 죄는 있다. “죄는 없다”고 하는 주장은 기만이다. 대소의 차이가 있을 뿐 , 어느 누구도 죄(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 죄의 결과로 인간은 본래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로마 3,23). 인간의 비극은 죄를 없앨 방도가 없다는데 있었다. … 본래 있는 피부색과 가죽의 점을 없앨 수 없듯이 인간에게서 죄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이다.
< 6-3. 죄를 고백하면 정말 용서받을 수 있는가? >
- (용서의 제사)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오신 분이 예수였다.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에는 단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저의에서, 오직 사랑으로 일관된 고결한 인생을 오히려 폭도요 반역 죄인으로 모함한 소위 지도자들의 질투와 흉악함이 걸려 있었다. 거기에는 절대 정의가 불의에 의하여 재판 받는 가장 억울한 부조리가 걸려 있었다. 예수는 이런 죄악의 모든 쓰레기들을 십자가와 함께 짊어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셨다. 또한 예수는 이 죄들을 모두 짊어지시고 십자가 제물이 되셨다. 십자가형은 ‘용서의 제사’였다. …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어 가시면서도 당신을 죽이는 바로 그 사람들에 대한 용서를 위해서 기도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회개한 우도(右盜)에게도 용서를 선언하셨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4,43). 이는 인간적인 판단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용서의 선언이었다.
- (용서의 제도화) 십자가 제사로 용서를 완성하신 예수께서는 이제 부활하신 후 사도들에게 나타나시어 성령을 보내주시면서 그들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맡기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가톨릭교회는 예수의 이 명령을 받들어 세례성사와 고해성사라는 제도를 구비하였다. 먼저 세례성사를 통해서 사람은 원죄와 본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다. 즉, 아담으로부터 이어 받은 죄의 성향인 원죄와 세례받기 전까지 지은 모든 죄를 세례를 통하여 용서받는 것이다. 그 이후 고해성사를 통하여 그때그때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다.
< 6-4. 기도와 명상은 무엇이 다른가? >
- (차이) 연인 둘이서 함께 있으면 서로 마음에 있는 사랑과 정과 생각을 제한 없이 나눌 수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기도이다. 탄원 기도, 청원 기도, 통회의 기도, 감사 기도, 묵상 기도, 관상 기도 등 모두가 사실은 기도하는 이와 하느님 사이에 이루어지는 내밀한 나눔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둘이 함께 있으면서 상대방의 존재를 무시하고 내 안으로 기어들어가 자신 안에 있는 자아(自我)와 독백을 나누는 것이 명상(瞑想)이다. 기도와 명상의 차이를 분명이 알아야 한다. 명상은 자신 안의 어둠에 들어가 자신 안의 가짜 자아(假我)를 털어 내고 진짜 자아(眞我)를 찾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므로 명상은 그리스도 없이, 하느님 없이, 성령의 비추임 없이 하는 자아 성찰에 지나지 않는다. 명상은 독백(獨白)이요 독행(獨行)이요 독거(獨居)이다. 때문에 명상은 엄밀히 말해서 기도가 아니다.
- (묵상은?) 묵상(?想)은 명상과는 다르다. 묵상은 성경 말씀이나 어떤 가르침의 내용을 붙들고 침묵 속에서 되새김하면서 소화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나 명상은 오로지 자아만을 상대로 한다. 이에 비할 때, 기도는 반드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과 함께, 성령과 함께하는 사랑의 나눔이다. 기도는 대화요 동반행(同伴行)이요 동거(同居)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없이 기도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 안에 당신과 더불어 사시도록 초대하고 항상 그분을 의식하며 기도하고 살아야 한다. 예수께서 당신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가 되기를 빈다.
<< 참 소중한 당신께 >>
참 소중한 당신.
“당신을 만난 기쁨이 하도 커서
제가 죄인임을 잠시 잊더라도 용서해 주시겠지요?
주님 당신을 사랑하는 기쁨은
참으로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기도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처럼’에서)
참 소중한 당신. 당신께서 이 기쁨을 맛보기를 바랍니다.
[ 7. 성당에 다니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 p97
< 7-1. 자녀의 인성교육 >
- (우수한 민족의 비결)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을 꼽으라면 당연히 유다민족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세계적인 인물가운데 유다인이 많기 때문이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 300여 명중 30%이상이 유다인일 정도로 유다인은 머리가 좋은 민족으로 소문나 있다. 미국의 유다인은 550만 명으로 전체 미국 인구의 2.5%에 불과하다. 그러나 억만장자 중에 23%가 유다인이다. 비즈니스계뿐만 아니라 교육계, 법조계, 언론계는 물론 할리우드까지 장악하고 있다. 미국의 교수 중에 25~35%가 유다인이다.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는 유다인은 천재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교육에 의해 우수한 민족이 된다는 것이다 그 비밀의 열쇠는 가정에서의 성경과 탈무드 교육에 있다. … 유다인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말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지혜다. 지혜는 시련을 당할 때 이를 극복하는 길을 가르쳐 준다. 지혜는 가난한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준다. 지혜는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명예를 선물한다.” 유다인은 자녀가 세 살이 되면 벌써 하느님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이 율법이 바로 유다인을 세계 1등 민족이 되도록 만든 비밀이다. 인성 교육을 통해서 지혜를 얻고, 선악을 구분하는 능력을 키운 후, 마지막에 탈무드식 논쟁으로 IQ를 개발하는 것이 유다인의 3차원식 명재교육이다.
- (유대교의 유산) 이스라엘에서는 아이에게, 배우는 것이 즐겁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학교를 그 어떤 곳보다 재밌고 즐거운 곳으로 만들고 있다. … 유다인들은 지식은 날마다 발전해 가지만 지혜는 옛날과 차이가 없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다인들은 수천 전에 만들어진 ‘성경’과 ‘탈무드’를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 교회의 모태는 유다교이다. 그리스도 교회에는 유다교회로부터 물려받은 성경이 있다. 그러므로 성당에 나와서 성경을 기반으로 한 교육을 받으면 인성교육과 영재교육을 기대할 수 있다.
< 7-2. 건강한 실버 >
- (웰빙과 웰다잉) 웰엔딩(well ending) 또는 웰다잉(well dying)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웰빙(well being)이 ‘잘살기’ 또는 ‘참살이’의 의미라면 웰엔딩이나 웰다잉은 ‘잘죽기, 참된 죽음’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인생의 마무리를 밝고 아름다우며 품위 있게 한다는 의미이다. 웰빙의 완성은 웰엔딩이다. 밝고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서는 먼저 노년의 삶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자신의 종교를 갖고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수명이 약 7년 정도 긴 것으로 나타났다. 즉 행복을 누리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은 인생의 그 어느 시절보다 노년기에 가장 큰 힘이 된다. 현역에서 은퇴하면서 사회적으로 설 자리를 잃게 되고 신체적으로 노쇠해질 뿐아니라 주변 사람들과의 사별로 심리적으로도 약해질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때 신앙생활은 다음 세상에 대한 소망을 통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게 하고 위안을 주며, 내적인 힘과 충만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신앙은 노년의 상실로 인한 우울증을 극복하고 자존심을 회복하며 하느님으로부터 삶의 에너지를 공급받는 축복이다.
- (가톨릭교회가 제공하는 제2의 인생) 미국 맨체스터의대의 데이비드 스노든 박사는 수녀들이 다른 여성 집단에 비해 장수하는 것에 착안하여 미국 수녀들을 대상으로 노화연구를 했다. … 연구한 결과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 사는 수녀들의 경우 인종, 성장환경, 개성 등이 다 달랐으나 오래 살면서도 건강한 수녀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이다. … 거룩한 노년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는 신앙적인 수련과 영혼의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가톨릭교회는 노인복지와 제2의 인생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노인대학 등)들이 준비되어 있다. 각 본당과 기관들을 통하여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
< 7-3. 평화 행복 >
-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세요”) 2005년 4월2일,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세요”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창문 밖에 묵주기도 소리가 끝나는 순간, 창문 쪽으로 오른팔을 들어 올리며 강복하고 ‘아멘’ 입술 모양을 취하고 숨을 거두셨다. 그의 마지막 유언대로 교황 역시 참 평화와 참 행복을 누리셨다.
- (예수께서 주시는 평화 행복) 예수를 진정으로 신뢰하면, 문제의 한복판에서도, 고통의 절정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이것이 예수께서 주시는 평화이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5,27). 이런 평화의 체험은 신앙인만 누리는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가 누리는 체험이다. 예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행복을 선언하셨다. 그분은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알고 계시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비결도 알고 계셨다. 그리고 이를 제자들에게 선포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마태 5,3-5) … 톨스토이는 그의 ‘참회록’에서 그가 예수를 믿기 전에 고독감과 공허감을 느끼면서 한때 인생과 불행을 순간적으로 끝장내려는 유혹을 느끼기까지 했으나 그는 예수를 만난 이후 평화와 행복을 되찾았다. 사람의 본성은 연약하기에 누구나 창조주 하느님을 떠나서는 마음의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없다. 가톨릭교회에 나오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참 평화와 행복을 누리게 된다.
< 7-4. 인생 문제의 해결 >
- (오프라 윈프리의 깜짝쇼)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쇼의 19번째 시즌을 시작하면서 토크쇼 방청객 276명 모두에게 새차 한 대씩을 선물하는 ‘깜짝 쇼’를 연출했다. … 폰티악 G6의 대당 가격은 한화로 3,200만원으로 276대의 총 가격은 92억 원, 이들 차량은 제너럴 모터스사가 협찬했다. 토크쇼의 이날 제목은 ‘아무리 터무니없는 꿈이라도 이루어진다’였다.
- (영원한 해결사 예수) 예수는 ‘깜짝쇼’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해결사이다. 그리스도라는 말 자체를 우리는 내용적으로는 ‘구원자’라고 번역할 수 있고, 실제적인 의미로는 세상만사의 ‘해결사’내지 ‘답’이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모두 자신이 고통이나 어려움 중에 있을 때 기도를 하여 응답 받은 체험이 있다. 예수께서 약속해 주셨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1,28). 이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는 것은 신앙인 각자의 몫이다. 우선, “예수님을 통해서 건강(치유)을 얻었습니다”라고 증언하는 이들이 있다. 통계적으로 비신앙인보다 신앙인이 더 건강하고, 신앙인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인이 가장 장수를 누린다고 한다. 이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사람을 낙천적으로 만들어 건강하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예수님에게서 능력을 얻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이들이 있다. 복음 말씀은 단지 말이 아니라 능력이다. 말씀으로 세상이 창조되었고, 말씀으로 악령이 추방되었고, 말씀 한 마디로 사람들이 치유되었다. … 누구든지 복음을 자신의 마음에 받아들인 만큼이 능력을 체험한다. 이 능력을 통하여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을 이루게 되고 성공의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7-5. 영원한 생명 >
- (파스칼의 게임) ‘팡세’의 저자 파스칼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신념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답답한 심정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죽은 다음에 천국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어차피 확률이 1:1이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확률은 똑같다. 서로 반대의 경우가 사실이라면 결국 손해는 누가 보게 되는 것인가? 천국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 세상을 ‘함부로’ ‘엉망으로’ 살았는데 죽어서 보니 하느님도 있고 천국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사람인가, 아니면 천국이 있다고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하느님도 천국도 없는 경우의 사람인가? 결국 누가 낭패를 맞이하게 되겠는가?” 그리스도인은 “죽으면 하느님 품으로 가서 영원한 삶을 누린다”고 믿는다. 이 세상에서 살아 온 행실(믿음)에 맞갖은 천국. 연옥. 지옥이라는 영원한 삶을 누린다는 것이다.
- (예수를 통해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 천국의 삶은 ‘영원 생명’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육신의 부활은 성경적인 의미에서의 전인적(全人的) 부활을 의미한다. “이 썩을 몸은 불멸의 옷을 입어야 하고 이 죽을 몸은 불사의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썩을 몸이 불멸의 옷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불사의 옷을 입게 될 때에는,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렸습니다”(공동번역 1코린 15,53-54). 인간의 영혼만 훌쩍 떠나서 갑자기 고상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살던 ‘아무개’의 인격, 인간성, 전인간이 부활하되 썩을 몸이 ‘불멸의 옷’, ‘불사의 옷’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3차원의 존재가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의 존재로 바뀌어 영광스럽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누리게 되는 것이 영원한 삶이다. ‘새로운 피조물’(2코린 5,17)로서 창조주이시며 구세주이신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과 기쁨에 참여하는 것이다.
< 7-6. 세 가지 선택 >
- (세 가지 선택) 한 사람의 일생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선택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이며, 둘째는 직업을 선택하는 일이며, 셋째는 세계관을 선택하는 일이라고 한다. 배우자를 잘 선택해야 한다. 누구를 택하느냐가 한평생의 가정생활의 행. 불행을 결정짓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직업을 잘 선택해야 한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가 그 사람의 사회생활의 유형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세계관을 잘 선택해야 한다. 세계관이 어떠냐에 따라 그 사람이 이고 사는 하늘이 바뀌기 때문이다. 여기서 배우자와 직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세계관이다. 세계관은 우주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말한다. 곧 우주를 본래 있었던 것으로 보느냐 창조주 하느님의 피조물로 보느냐를 결정짓는 것이 세계관이며, 그 결과 이 세상에서의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 동물처럼 막 살 것이냐 아니면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고상하게 살 것이냐 하는 노선을 택하는 것이 세계관이다. 이렇게 볼 때 세계관은 가치관과 종교관과도 관계가 있다. 오늘은 당신의 세계관이나 다름없는 종교관을 새롭게 점검하는 매우 중요한 날이다.
- (어느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간혹 이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종교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환상이다. 심약한 사람들이 그것에 의지하며 위로를 삼는다” 이들은 21세기 첨단 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종교는 곧 일종의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또한 종교를 비판적으로 몰아붙이는 이들도 있는데,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종교는 다 거짓이야, 고달프고 고통스러운 현실의 삶에서 무책임하게 도피하기 위해 천국이라는 신기루를 만들어 놓고 무지몽매한 민중을 호도하는 것이 바로 종교다. ‘민중의 아편’아닌가?”, “도대체 이 바쁜 세상에 종교가 무슨 소용인가? 성당에 나가고 절에 다닌다고 쌀이 나와,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나? 내 할 일이 줄어들어?” 그리고 왜 굳이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지를 묻는 이들도 있다. “… 영원한 삶을 위하여 나쁜 짓 안하고 착하게만 살면 되는 것 아닌가? 꼭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 것인가? 하느님을 믿는 것과 부처님을 믿는 것, 알라 신을 믿는 것은 무엇이 다른 것인가?”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확고히 믿는 이들도 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저 베푸시는 구원의 은총을 이미 풍요롭게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은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 소중한 당신께 >>
참 소중한 당신. “은총을 내려 주시는 구나. 야속하다 싶을 만큼 묘하게 표 안 나게 내려 주시는 구나. 슬쩍 떠보시고 얼마 있다가 이슬을 주실 때도 있고 만나를 주실 때도 있고 밤중에 한밤중에 잠 못 이루게 한 다음 귀한 구절 하나를 한 가닥 빛처럼 내려주실 때도 있다. 무조건 무조건 애걸했더니 이 불쌍한 꼴이 눈에 띄신 모양이다. 얻어맞아도 얻어맞아도 그저 고맙다는 시늉만을 했더니 말이다.” (성찬경 ‘황홀한 초록 빛’에서)
참 소중한 당신. 언젠가 당신도 이 은총을 깨닫기를.
[ 8. 성당에 다니려면? ] -P119
< 8-1. 여기 물이 있다. >
-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살아남는 것이 삶의 윤리인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우리는 비정한 인과응보의 세계에서 성공하는 법을 배운다. “뿌린 대로 거둔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제 무덤 제가 판다.” 이 법칙들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진실들은 결국 진실로 판명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법칙에서 소외된 사람들, 이 법칙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위해 다른 법칙을 준비하셨다. 조금만 마음을 열고 귀 기울여 보면 은총의 속삭임이 함성처럼 파고든다. * 죄 받아 마땅한 내가 용서를 받았습니다. * 진노를 받아 마땅한 내가 사랑을 받았습니다. * 이자까지 쳐서 빚을 갚아 마땅한 내가 모조리 탕감 받았습니다. * 호되게 책망 받아 마땅한 내가 다리가 휘도록 차려진 잔칫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자격 없는 이들에게 값없이 조건 없이 베풀어진 잔칫상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오너라. 여기에 물이 있다. 너희 먹을 것 없는 자들아, 오너라. 돈 없이 양식을 사서 먹어라. 값없이 술과 젖을 사서 마셔라”(공동번역 이사 55,1). 당신을 은총의 잔치에 초대합니다.
- (하느님께서 먼저 부르십니다) 당신 스스로가 성당에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당신을 부르신 것입니다. 누군가를 통해 당신을 성당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요한 6,44). 이처럼 당신을 성당으로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영(靈)을 성령이라고 합니다. 이 성령께서 당신 안에서 믿음이 생기도록 마음과 지혜를 열어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준 다음과 같은 약속의 말씀에 의지하십시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로마 8,15).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당신은 차츰차츰 하느님을 ‘아버지’와 같은 분으로 체험하게 되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 8-2. 가톨릭에 입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 (가톨릭에 입교하려면) 가톨릭에 관심이 있거나 입문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가톨릭교회는 여러분을 맞이하기 위하여 언제나 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가 되려면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으려면 가톨릭의 교리와 교회생활에 대하여 소정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 교육을 “예비신자 교리”라고 하며, 성당에서 신부님이나 수녀님 그리고 교리교사들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간은 대략 6개월에서 1년 정도(주 1회)입니다. 가톨릭교회 즉 성당은 각 지역 교구별로 마을이나 지역 공동체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톨릭에 입교하시려면 자기가 거주하는 곳을 관할하는 성당(본당)에 먼저 찾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성당을 찾아가야 할지 모르는 분은 가톨릭 사이트 ‘본당 단체 찾기’를 검색하시면 알려드릴 것입니다. 성당을 찾으셨으면 사무실이나 신부님, 수녀님 혹은 주변에 계시는 가톨릭 공동체 형제, 자매님께 본인의 입교의사를 밝히고 도움을 청하십시오. 친절하게 여러분을 인도해 드릴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가 되고 싶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예비신자 교리’를 받기 어려우신 분은 ‘통신 교리’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가톨릭은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의 은총을 누리는 종교입니다. 진리 안에서 행복을 찾아 영원히 누리게 되기를 빕니다. 더 이상 미루지 마시고 와서 보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 참 소중한 당신께 >>
“행복합니다. 마지막 돌아갈 곳이 어딘지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 행복합니다.
돌아갈 곳이 어딘지 알아 그 길을 닦으며 가는 사람” (김형영 ‘행복합니다’에서)
참 소중한 당신. 당신을 이 행복에로 초대합니다.
[ 생명의 전화번호 ]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믿으시려면 아래에 있는 번호로 전화하시기 바랍니다. 집에서 가까운 성당을 안내 받으실 수 있습니다.
# 122 독서 메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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