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의 독서 메모 ] 123권-129권
금주의 독서 메모 #123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 책 이름 : 하늘로부터 키재기 ]
- 지은이 : 민성기
- 펴낸데 : 가톨릭신문사
- 출판일 : 1999.7.1 - 292p
- 내 용 : 민성기(요셉) 수사신부님의 순수(純粹)에 관한 묵상글(47편) 모음
- 지은이 프로필 : 1957년생, 부산대 사회학과 졸업, 1985.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입회, 1990년 종신서원, 1991년. 사제서품, 가톨릭대학교 석사학위, 부산교구 대연성당 보좌신부, 영국 캔터베리에서 유학, 대연성당 주임신부 등
저서로는 ‘그리고 나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주소서’ 등 다수, 역서로는 ‘백합의 향기’ 등이 있다. (1999년 기준/2004.10 선종).
[ 표지의 글 ]
그대는 얼음 조각을 해방시켜 본 적이 있습니까? 얼음 조각은 마실 것을 차갑게 해주고 두통을 가라앉혀 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요구에 응하고자 감옥속에 갇혀버린 물입니다. 나는 가끔 얼음가게에 가서는 얼음이 담긴 자루를 삽니다. 그리고 그 얼음을 가까운 연못에 풀어주어 얼음에게 자유를 주곤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물의 형제로 되돌아 가게 됩니다. - 매튜복스
[ 차 례 ]
[ 서시, 서문 ]
[ Ⅰ. 낯선 곳으로의 여행 ]
[ Ⅱ. 육화의 신비 ]
[ Ⅲ. 하느님의 하루를 만드는 일 ]
[ 서 시 ]
하늘로부터 키재기
세우려 한다 세우려 한다 한없이 세우려 한다
오르려 한다 오르려 한다 한없이 오르려 한다
재려 한다 재려 한다 한없이 재려 한다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한없이 세우고
한없이 오르고 한없이 재려한다
누가 더 높이 쌓았는지 누가 더 높이 올랐는지
한없이 쌓고 오르고 재려 한다.
사람은 땅에 사는 동물
사람은 땅으로부터 높이를 재는 동물이다
보이는 것의 기준은 땅이기에
허나 보이지 않는게 있다
사람들은 그를 하느님이라 불렀다
하느님은 하늘에 사시는 분
하느님은 하늘로부터 높이를 재는 분이시다
오늘에야 사람들은 불현 듯 하늘로부터 키재는 법을 알았다
하늘로부터 키 재기를 시작한다 난장이의 키가 커져 보인다
바벨탑은 낮아지고 난장이의 키는 커졌다
내리고프다 무너뜨리고프다
오, 케노시스! 갑자기 비가 내리고 세상이 바로 보인다.
[ 서 문 ]
- 아프리카를 여행했던 것이 꼭 꿈만 같습니다. … 10여 년 동안 순수(純粹)를 묵상해 왔습니다. … 내 속에 들어 있는 순수를 묵상하여 글로 형상화시켰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흔적을 이렇게 묶었습니다. 이 흔적들은 순수 즉 내 속의 나를 찾아가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나는 내 속의 나이지만 내가 아닙니다. 나와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나입니다. 나 속의 나는 나와 전혀 다르기에 나는 그를 남보듯이 바라봅니다. 그는 나에게 낯선 존재입니다. 그는 남이며, 순수이며, 바로 임입니다. 그렇게 임은 모순덩어리인 나 안에서 임 자신 즉 순수를 봅니다. 임이 내 안에 존재하기에 나는 순수해질 수 있습니다. 그가 내 안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기에 내가 숨을 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임은 내가 먹는 밥이고, 술이며, 하늘입니다. 임은 내가 호흡하는 하늘입니다. … (박두진 선생의 시 <하늘> 노래) … 하늘을 살고 싶어, 하늘을 호흡하며 묵상합니다. 지금은 무작정 산을 오르다 옹달샘을 만나 목을 축이는 심정입니다. 갈증을 삭이는 심정으로 목을 씻고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늘을 마십니다. 크게 숨을 내쉬고는 하늘을 호흡합니다. 그렇게 임을 닮으려는 열망으로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고 관상합니다. 내가 아프리카를 갔다는 것이 신기할 뿐입니다. 또 내가 이렇게 묵상할 수 있었다는 것, 이것 역시 신기할 따름입니다. 아프리카 여행이나, 이 묵상 모두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인 임이 손수하신 일일테지요.
# 모든 글들은 존대어로 씌여졌으나 일반어로 수정하여 메모함.
# 본문에 인용된 성구(聖句)는 가급적 2005년 새로 펴낸 가톨릭 공용 성경으로 수정함
# 검색 편의상 각 항에 일련번호를 부여함.
[ Ⅰ. 낯선 곳으로의 여행 ] -p 17
< 1. 꿈꾸는 식물 >
- ‘꿈꾸는 식물’은 이외수 선생의 소설로서 식물의 세계를 이야기 하고 있다. 식물의 세계, 그것은 남을 해치지 않으며 음악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고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같다. 우리 사회는 이산화탄소(CO₂)에 의해 산소(O₂)가 고갈되어 가고 있다. 돈과 권력과 섹스가 가득찬 비린내 나는 공기 속에서 식물은 자꾸 시들어만 가고 있다. 실용주의가 예술을 추방하고 시 정신을 학살했다. 이 실용주의와 물질문명의 흙탕물 속에서 한줄기 맑은 순수의 물줄기를 지키려는 식물인간들의 몸부림을 생각하게 그려낸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 악보를 읽을 줄도 모르고 나팔을 불 줄도 모르는 한 소년이 임시방편으로 나팔수의 땜장이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관현악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 소년이 지휘를 무시하고 기분나는 대로 신나게 불어 댄 그 나팔은 소리가 나지 않는 악기였다. 소리 없는 나팔, 소년은 소리 없는 나팔수였다. 소년은 소리 없는 나팔수로서 단원의 수를 채우는 역할을 충분히 해냄으로써 관현악단의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게 한 것이다. … 한해를 되돌아봅니다. 우리는 개성이 너무 강하여 전체의 조화를 흐트러지게 하지는 않았는지? 색소폰을 잡았으면 색소폰 소리를 낼 줄 알고, 클라리넷을 잡았으면 클라리넷 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하는데 악보에도 없는 괴성을 지르는 꼴불견을 하지는 않았는지? 역사는 소수의 엘리트로 꾸려나가는 듯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평범한 대중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나오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보다도 훌륭한 사람이 더 많다. 소리를 제대로 내는 악사가 되거나 아니면 조화를 깨뜨리지 않는 소리 없는 나팔수가 되고 싶지는 않는가?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 큰 소리를 내려했던 것은 아니었나 반성해 본다. 차라리 소리 없는 나팔수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따뜻한 가슴을 지닌 대중이 있기에 그나마 희망이 있다. 따뜻한 온기를 지닌 따뜻한 가슴 속에서만 한 포기의 풀잎, 한 그루의 나무가 자랄 수 있다. 말없는 대중인 민중은 서로가 가슴 속에 다른 식물을 키우고 있다. 그 식물을 진실한 마음으로 키운 자는 키운 자끼리, 먼 훗날 가슴을 맞댈 수 있어 좋다.
< 2. 萬(만) =空(공)=萬(만) >
-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의 미술회관을 끼고 있는 한쪽 귀퉁이에 돌로 된 조각품이 있다. 속이 텅 빈 비어 있는 손, 빈손이다. 무엇을 받으려고 그러는지 두 손으로 물을 받는 모양을 하고 있다. 작품의 주제는 ‘구원(salvation)’으로 표기되어 있다. … 어느덧 겨울이 도래했고, 언제나 그랬듯이 마로니에 공원으로 산보를 나갔다. 그 조각품, 빈손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다. 이때 나는 비로소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빈손은 비움, 즉 가난을 나타낸다. 그러기에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라는 말씀에서 꽉 찬 충만함, 풍요로움 즉 구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 돌 조각품을 이해했다.
- 빨마원 수녀님들의 종신허원을 위한 피정에 함께 했던 어느 날 아침 미사 때였다. 제대 앞으로 걸어 나오는데 제대 뒤편 양 옆에 표구가 된 한자말이 인상적으로 와 닿았다. 한쪽은 ‘空’이요, 다른 쪽은 ‘萬’이었다. 空은 텅 빔이요, 萬은 꽉 참이다. 비록 양옆으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空이 萬이요, 萬이 空이었다. 즉 같은 말(空=萬)을 달리 표현한 것이었다. …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이다. 성모님이 하늘로 승천하셨다. 승천은 가난의 표지이다. 승천은 영적 성숙의 결실이다. 승천은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이다. 정화의 시간을 거치고 조명의 시기를 거친 연후에야 비로소 다다를 수 있는 종착역이 승천이다. 정화와 조명의 시기가 바로 영성학에서 말하는 ‘어둔 밤’이다. 아기를 낳기까지의 해산의 고통과 괴로움을 감수 인내해야 하는 바로 광야의 삶이다. 결국 임신 기간을 지내면서 겪게 되는 그 어려움을 다 극복했을 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승천이다. … 우리는 오늘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태중에 모신다. 말씀을 잉태한 우리는 결국 묵시록의 여인처럼 어려운 상황 하에서도 아들을 낳아야 한다. 또한 성모님처럼 그리스도를 세상에 낳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느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가난해야 한다. 비워야 한다. 빈손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말씀이신 분, 그리스도 하느님을 세상에 존재케 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낙태시키지 않고 마침내 어려운 광야생활을 거쳐 그리스도를 세상에 탄생시킬 때 우리는 비로소 승천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승천은 가난의 표지이다. 승천은 영적 성숙의 결실이다. 우리 승천합시다! 마로니에 공원에 설치되었던 그 돌 조각품 빈손은 지금 제주도의 신천지 야외 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 3. 勿(물) 禁(금) >
- 성탄은 한 개인의 역사에 있어서 그리고 인류 공동체의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탄생의 의미를 지니게 한다. 역사는 시간과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걷도록 주어진 시간과 공간은 카이로스 시간이며, 조작적 공간이다. (카이로스=意思) … 우리는 오늘 자발적으로 광야로 들어간다. 예수께서 자발적으로 육화하시어 세상에 들어오시듯이, 예수께서 자발적으로 십자가상의 고독에로 들어가시듯이 우리는 오늘 자발적으로 광야로 들어간다. … 이 겨울에 시원한 여름을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여름’을 ‘열음’ 즉 ‘열다’, 열어젖히다‘로 풀이할 수 있다. ’열음‘이기에 산이나 계곡 그리고 바다에서 사람들은 옷을 훌훌 벗어 홀가분함을 느낀다. 다가올 여름에는 ’열음‘을 살아보자. 마음에 그어 넣은 모든 금을 지어버리는 참된 휴가, 참된 쉼을 살아 보자. … 사제서품을 발하면서 받은 말씀이 호세아서 2장 16절이다.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나서 다정히 말하리라” 하느님께서는 저를 광야로 불러내신다. 고독에로, 하느님을 바라보는 관상에로 나를 꼬셔내신다. 그렇게 사랑을 속삭여 주신다. 그래서 나는 지금 광야에 들어 있다. 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 경부선 열차를 타고 가면 낙동강을 끼고 있는 작은 역 ‘물금’이 나온다. ‘물금(勿禁)’은 말(말라는) 물에 금할 금이 합쳐져서 생긴 이름이다. ‘금하지 않는다(말라)’라는 의미로 뜻풀이 할 수 있다. 아무 것도 금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 하느님께서 초대하신다. 빈들로, 광야로, 물금으로 들어가자. 열고, 쉬자. 그리하여 속삭이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자. 그렇게 고독을, 관상의 삶을 살자. 그래야 통도사(단편소설인 ‘통도사 가는길’) 즉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 우리는 오늘 자발적으로 광야로 들어간다. 물금으로 향한다. 통도사로 가는 길목에서, 통도의 뜻이 무엇인가? 물금을 거쳐야만 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 통도! 오늘 우리는 통도사 가는 길목에 물금 즉 광야로 들어간다. 자발적으로! 오늘따라 우리를 광야로 끌어내시는 주님의 음성(호세 2,16)을 새롭게 듣게 된다. … 이 밤, 이 거룩한 밤에 우리는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노래하고 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새로운 새벽을 알리는 기쁨의 찬가를 부르고 있다. 예수님 시대에는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엄격히 구분되어 있던 단절의 시대였다. 위와 아래로 확연히 구분되어진 이원론적인 세계관이 지배하던 시대인 당시에는 두터운 장벽이 가로막혀 있었다. 신들이 인간이 될 수 없고 인간이 신이 될 수 없던 시대에 하느님이 인간이 되어 내려오신 사건은 엄청나게 큰 스캔들이었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상상을 초월하는 큰 사건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렇게 두터운 벽, 장벽을 허물어뜨리면서 인간이, 피조물이 되어 오셨다.
< 4. Co-incidence) >
- 내가 신학을 접하면서 관심을 기울였던 분야가 창조신학이었다. 영국으로 건너가면서 신비신학을 접하게 되었다. 이것은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신비신학을 접하면서 나는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되었다. 창조신학과 신비신학의 결합, 이 둘은 어느 것이 먼저라 할 수 없이 드러남과 드러나지 않음의 만남을 말해주고 있다. 나는 이러한 내 학문적 관심을 Co-incidence로 풀고 있다.
* Co-incidence 뜻 : 함께 발생함, 같이 존재함(공존)
-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에 일광산(日光山)이 있다. 정상의 바위에 걸터앉아 맞은편을 바라보면 또 하나의 봉우리가 나오니 그 봉우리가 586m의 아름다운 산, 달음산(月陰山)이다. 달음산은 우리나라의 모든 산 이름 중에서 설총의 이두(吏讀)문자로 된 유일한 산이다. 달음산은 음이요, 일광산은 양이다. 음과 양이 만난다. 일광산과 달음산에 오를 때마다 음양(陰陽)의 조화를 떠올리면서 보나벤투라 성인이 들려주는 Co-incidence를 묵상한다. … 보나벤투라 성인은 말한다. 극과 극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과의 만남,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과의 만남, 오목한 것과 볼록한 것과의 만남, 그렇게 서로 다른 둘이 만난다. 그리곤 하나가 된다. 이것을 성인은 ‘Co-incidence’라 불렀다. 그러나 둘이 하나가 되긴 하지만 어느 하나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흡수하지도 않는다.
- 프란치스코는 세상의 모든 만물을 ‘태양의 노래’ 안으로 초대한다. 서로 다른 종들이 한데 어우러져 노래 부른다. 그리곤 그들 모두와 한데 어우러져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찬미한다. 역사적 배경을 그대로 깔고 있는 태양의 노래는 지극히 상징적인 노래다. 태양의 노래 안에는 갈라진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용서와 사랑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그렇게 평화를 노래한다. 평화! 그것이 우리가 찾는 바로 Co-incidence이다. 멕시코시티 변두리에 위치한 아즈텍 문명에서는 달(月)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제단과 해(日) 신에게 드리는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 두 봉우리를 이루며 마주 서 있다. 달과 태양, 역시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나는 부산의 달음산에 오르면서 그리고 멕시코의 아즈텍 문명을 찾으면서 동양과 서양의 만남으로부터 Co-incidence를 본다. 아즈텍 문명의 신전을 이루는 특이한 돌로 만들어진 태양력 시계는 시침, 분침, 초침이 있어 움직이는 시계가 아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이 시계 안에 들어 있다. 태양을 상징하는 하느님 시간 안에 모든 피조물들이 공존하고 있는 형상이다. 인디언들이 그들 고유의 흙으로 태양의 형상과 달의 형상을 그려 넣은 토기를 받았다. 이 토기를 바라볼 때마다 Co-incidence를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는 태양의 노래를 부른다. 오늘도 우리는 일용할 양식으로 말씀을 먹으면서, 말씀 속에 숨어 있는 보물인 Co-incidence를 찾아내고, 그렇게 살아가자.
< 5. 이스마엘 >
- 창세기 21장에서는 아브라함의 난처한 입장이 이사악과 이스마엘의 묘한 관계로 묘사되고 있다.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상에 따라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으나 사람들은 자신들이 발명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자연을 핍박 약탈하고 자신의 탐욕을 충족시켜 왔다. 오늘날 이러한 현실을 꿰뚫어 본 ‘다니엘 퀸’은 ‘정신과 영혼의 새로운 혁명’을 알리기 위해 소설인 ‘이스마엘(lSHMAEL)’을 썼다. … 카인이 아벨을 살해한 동기가 ‘질투’였다면, 인류의 피조물에 대한 야수적인 살해 동기는 ‘소유욕’이었다. 인간은 자신이 지닌 자유의지와 이 선(善)을 확산하는데 쓰지 않고 탐욕을 충족시키는데 만 동원하여 왔다. 만족할 줄 모르는 현대인의 탐욕과 소유욕은 우리를 점점 더 파멸의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다. 한자말에 역시사지(易地思之)라는 용어가 있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뜻이다.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 항상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면서 사고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역지개연(易地皆蓋)이라는 용어도 이와 비슷하다. “소유의 개념을 가진 자들이 반성하고 지구의 모든 생태계를 보존하는 것만이 인류의 파멸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쓸쓸히 죽어간 고릴라 이스마엘의 유언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삶의 양식을 소유양식에서 존재양식으로 바꾸어야만 한다.
< 6. 말씀을 사는 사람들 >
- 주일, 나는 광안리 바닷가로 가는 길목에 있는 농아선교회(부산 수영구 소재)를 찾았다. 미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사시간이 되었다. 내가 그들의 말을 모르니 나는 내 방식대로 미사 경본을 읽어 나갔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그들은 내 말을 들을 수 없고 또 내가 하는 말로 응답을 할 수 없으니 대화가 되질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미사를 기쁘게 봉헌할 수 있었다. 강론도 훌륭하게 했다. 내가 전하는 하느님 말씀을 그들은 다 알아 들었다. 이는 중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하는 말도 알아듣고 그들이 하는 말도 알아듣는 봉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런 막힘없이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시오”라고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목소리가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나오고 있었다. 그날 루카가 전하는 복음(16, 19-31)은 ‘부자와 나자로의 비유’ 말씀이다. 지상에서의 삶과 하늘나라에서의 삶이 묘사되고 있다. 나는 이 비유 말씀을 도시의 작은 광야로서의 농아선교회와 비교하여 보고 싶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농아들은 말 그대로 농아들이다. 세상의 언어로서는 말을 듣지도 못하고 말을 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내가 그들 속으로 들어가 보니 내가 농아였다.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서로 말을 주고받는데 나만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나는 특별히 막힘이 없이 세상의 언어로 유창하게 말을 할 수 있었지만 그곳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아무리 말을 잘 해도, 유식한 표현을 써도 나는 벙어리일 뿐이다. 그러나 농아선교회의 봉사자들은 두 가지 언어를 다 말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 부자가 지상에서 화려하게 남부러움 없이 살았지만 그는 하늘나라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초라한 꼴이 되고 만다. 반면에 가난한 거지 라자로는 지상에서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부자는 세속적인 사람 즉 육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다. 우리는 가끔씩 라자로와 같은 불쌍한 사람을 만난다. 눈에 보이는 하찮은 거지처럼 우리가 쉽게 무시해 버리고 마는 영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신자 생활을 하는 우리 신자들 가운데에서도 부자와 라자로를 볼 수 있다. 또한 축성 생활을 하는 수도자와 성직자들 가운데도 부자와 라자로를 볼 수 있다. 나는 배부른 부자가 되기보다는 가난한 라자로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난하게 살아야 겠다. ‘하느님에게서 마음이 멀어져 사람을 믿는 자들, 사람이 힘이 되어주려니 하고 믿는 자들’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예레 5-7)이 되어야 하겠다. 그렇게 말씀을 듣고 말씀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행복하여라, 말씀을 듣고 말씀을 사는 사람들!
< 7. 시대의 표징 >
- 서울 혜화동에서 살던 신학생 시절에 곧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으로 산보를 가곤 했었다. 미술회관에서 ‘이화전’이란 그림전이 있어서 전시실을 둘러보는데, 유난히 눈에 띄는 추상화가 있어 무엇을 뜻하는지 안내하는 화가에게 물었더니 그냥 있는 그대로 ‘아, 이 그림은 밝구나, 이 그림은 어둡구나’ 정도면 되지 않겠느냐는 대답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클래식을 이해하십니까?” 묻자 “클래식을 들으면 잠이 옵니다”하고 대답했더니 그분이 하는 말이 “많은 대중들은 유행가를 즐겨 듣고 노래를 부르지요. 그러나 유행가는 오래 가지 못하고 다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고전음악인 클래식을 연구하고 듣고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록 얼마 되지는 않지만, 고전음악은 유행가와는 달리 예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전수되어 남겠지요.” 나오면서 생각했다. …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고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까지 진리는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소수의 어느 누눈가는 지금 이 시간, 그래도 진리를 따라, 진리를 찾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희망이 있는 것이다.
- ‘라인강의 진주’라 일컫는 뤼데스하임에 머물고 있었다. 성지주일에 겪었던 체험이다. 새벽에 나는 프란치스코 전교 봉사 수녀회 수녀님들과 함께 빙엔의 힐데가르드 성녀가 살았던 성 베네딕토 봉쇄 수도원에서 새벽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다. 성지 주일이라 성지가지를 흔들며 크고 아름다운 중세풍의 수도원을 구석구석 행렬했다. … 설레는 마음으로 봉쇄구역 안에 마련된 성전에서 미사를 드리는데 묘하게도 젊은 수녀님들로 가득차 있었다. 몇몇 할머니 수녀님들로만 양로원처럼 살고 있는 유럽 대부분의 수도원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미사후 외부 수녀님에게 “다른 수도원과는 달리 이곳 수도원은 어떻게 젊은이들로 가득차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시대의 표징이지요”라고 말했다. 빙엔의 수녀원은 처음에는 봉쇄수도원이 아니라 활동수도원이었다. 모든 것이 세속화되어 가고 수도자들이 하는 일과 활동을 사회제도가 대신하게 되면서 수도자들의 활동적인 삶이 빛을 잃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수도성소가 줄어들면서 수도생활의 위기가 오게 되었다. 오랜 고민과 기도 끝에 수녀님들은 자신들의 거취를 정하게 되었다. … 물질로서는 채울 수 없는 삶, 즉 영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 바램이 젊은이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면서 봉쇄수녀회로 입회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 이 땅의 사람들이 목메듯이 찾고 갈구하고 있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애착을 지니면서 그래도 대다수 사람들이 찾고 있는 일시적인 것이 아이라, 극히 소수이지만 영원한 것 즉 영적인 것을 찾으려는 사람들 무리 속에 들어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렇게 파격적인 삶을 사는 사람을 만나고프고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애착 없이 영적인 삶을 살고 싶다.
< 8. 클라라 >
- 클라라 성녀는 “하느님을 관상하는 것이 우리의 쉼입니다” 라고 말한다. 클라라는 ‘맑음’, ‘빛’으로 이름풀이 할 수 있다. 클라라 성녀가 살던 집은 앞문과 뒷문 두 개의 문이 있다. 그러나 뒷문은 사용한 흔적이 없다. 어느 날 밤, 클라라는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문, 뒷문에 서 있다. “어둠 저편의 세계, 내가 이문을 열고 이 문턱을 넘어선다면 낯익은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 질 것이고, 모든 것을 새로이 시작해야 하는 데 … ….” 낯선 곳으로의 여행! 클라라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그 뒷문을 열고 문턱을 넘어 어둠 저 편으로 떠나간다. 그렇게 클라라는 관상의 세계로 들어갔다. … 세상 사람들이 세 가지 굴레에서 속박되어 있는 일생을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다 마치곤 한다는 표현을 장자는 위자기(爲自己) 구공 (求功 구명(求名)이라 하였다. 오직 자기 한 몸을 위하여 공을 세우고, 명예를 얻으려고만 한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 한 것이다. 그래서 장자는 사람이 어디에건 구속됨이 없이 자유롭게 소요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무아(無我) 무공(無功) 무명(無名)을 살아야 하니, “至人(지인)은 자기가 없고 성인(聖人)은 공을 세우지 않으며 신인(神人)은 이름을 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지인무기 성인무공 신인무명”을 노래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우리는 가난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마태 5,8). 세상 모든 사람들이 관상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소수이지만 묵묵히 거북이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토끼는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거북이를 따라 잡을 수 없다. 삶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 8. 막달라 마리아 >
- 마르코 복음 16장(1-7 : 부활하시다)에서는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야고버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이다. 이들은 각기 ‘마음의 겸손’, ‘세상에 대한 이탈’ 그리고 ‘평화스러운 기쁨’을 상징한다. 무덤이 상징하는 것은 관상생활이다. 세상이 보기에는 숨겨진 것처럼 보이지만 차원이 다르게 세상을 살아가는 삶이 관상생활이다. … 무덤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즉 관상생활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덤 입구를 막은 큰 돌을 굴려내야 한다. 관상생활로 못 들어가게끔 머뭇거리게 하는 장애물인 큰 돌을 치우기 위해서 우리는 항구한 기도와 자주하는 단식을 해야 하며, 음식을 절제하고, 화려하지 않은 의복을 입으며, 엄격한 자제와 자발적 가난 그리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명을 행해야 한다. 우리의 힘으로 그 큰 돌을 치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세 여인은 무덤으로 가면서 “그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을 굴려낼 줄 사람이 있을까? 하고 말을 주고받는 여인들의 넋두리를 듣는다. 그런데 가서 보니 그렇게도 큰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들이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웬 젊은이가 흰옷을 입고 오른편에 앉아 있었다. 젊은이는 성령을 상징한다. 그 젊은이가 첫 번째 한 말은 ”겁내지 말라“였다. ‘흰옷을 입고 있다’는 것은 세상과는 다른 차원의 삶을 살고 있음을 상징한다. 관상생활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삶이기에 왠지 낯설고 괜히 겁이 난다. 그러기에 망설여진다. 그러나 관상생활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겁을 내는 우리에게 성령께서는 ‘겁내지 말고 들어오라’고 권고하신다. 결국 세 여인은 무덤으로 들어간다.
- 성령께서는 우리의 약한 점을 강하게 하시고, 하기 어려운 것을 손쉽게 이끌어 주시며 쓴맛을 내는 모두를 단맛으로 바꾸어 주신다. 그러니 관생생활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관상을 통하여 막달라 여자 마리아를 만나야 한다. 흰 옷을 입은 젊은이는 부활하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갈릴래아로 선포한다. 무덤 안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 즉 관상생활 그 자체로서는 하느님 계시는 하늘나라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활하신 하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무덤을 나와 서둘러 갈릴래아 땅으로 가야 한다. … 관상은 갈릴래아 즉 하늘나라로 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무덤에 들어간 사람들 즉 관상생활을 통해 갈 수 있는 곳이 하늘나라, 하느님 나라가 바로 갈릴래아다. 오늘의 갈릴래아는 바로 이곳에서 부활이 선포된 이곳 지역 공동체이다. … 오늘 이 복된 밤(부활성야)에 우리 모두에게 인간이 줄 수 있는 위로가 아니라 하느님만이 줄 수 있는 평화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 9. 마더 테레사 >
- 20세기를 대표하는 시 한편을 고른다면 T.S 엘리어트의 ‘황무지’일 것이다. …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는 말 그대로 황무지였다. 20세기를 상징하는 두 사람의 꿈과 삶 그리고 죽음을 바라본다. 하나는 ‘다이애나’요 또 다른 하나는 ‘마더 테레사’이다. 인류는 서로 다른 두 삶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고 있다. 다이애나는 우리가 이룰 수 없었던 꿈을 대신 이루어 준 신데릴라의 상징이다. 마더 테레사는 인간의 저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선한 의지를 구체적인 육화의 삶으로 산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다이애나는 자신의 신데릴라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마더 테레사를 필요로 했고, 마더 테레사는 또 다른 의미로 다이애나를 필요로 했다. 그렇게 둘이는 서로 다른 삶의 양상을 통하여 없는 이들을 위해 선을, 사랑을 베풀었다. 짧은 삶을 살았던 다이애나(1961-1997)의 죽음과 긴 삶을 살았던 마더 테레사(1910-1997)의 죽음을 20세기의 마지막 결혼이라 부르고 싶다. 하느님께서는 19세기의 인물로 소화테레사를 보여 주셨다. 그리하여 20세기는 소화테레사와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셨다. 그래서 교회는 소화테레사를 성인으로 시성했다. 주님께서는 소화테레사가 세상을 떠난 지 백년이 되는 때에 이 세기의 마지막 몇 년을 앞두고 마더 테레사를 불러가셨다. 그렇게 20세기의 인물로 마더 테레사를 보여 주신 것이다. 21세기는 마더테레사와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마더 테레사를 성인으로 시성할 것이다. (주 :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성됨) … 19세기의 소화테레사에서 20세기의 마더 테레사에로, 즉 봉쇄에서 선교에로의 방향 전환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21세기의 삶의 영성을 미리 읽어야 한다.
< 10. 시간 저편의 약속 >
-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려는 이는 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혀를 조심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도록 입술을 조심하여라.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찾고 또 추구하여라”(1베드 3,10-11). ‘테니스 가보드’는 ‘성숙사회’에서 “IQ(지능지수)의 향상과 동시에 EQ(감성지수)를 향상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오늘날 같은 생명 위기 시대에 절실히 요구되는 표현이다. 또한 ‘마치니’는 ‘인간의 의무’에서 “인간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걷고 있는 길’과 ‘걸어가야 할 길’이 그것이다. ‘걷고 있는 길’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해 왔지만 ‘걸어가야 할 길’은 변하지 않는 바로 인간으로서의 당위요 도리의 길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소명 받은 사람,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로서의 수도자들은 ‘걷고 있는 길’로부터 당연히 ‘걸어가야 할 길’을 걸어가야 한다. 시간 저편의 약속을 그리며 살아가는 수도자는 자기부정적 결단을 요청하시는 하느님 말씀인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를 묵상해야 한다. 수도자는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버려야 할 것으로 요청되는 것이 고향과 친척 그리고 아버지의 집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근원적인 터전인 가족의 유대를 끊어버리라는 것이다. 이것을 자기부정적 결단이라고 말한다.
- 결국 수도자로 불린다는 것은 자기부정적 결단을 요청하는 사건이요, 지연과 혈연 그리고 인연이라는 원시적 결속에 매이지 않고 땅의 질서를 넘어서는 것을 말한다. 땅의 질서를, 장자는 오직 자기 한 몸을 위하여 공을 세우고, 명예를 얻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얽매임으로부터 풀려나기 위해 무기(無己), 무공(無功), 무명(無名)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이를 장자는 ‘소요유’ 8편을 통해 노래한다. “지인(至人)은 자기(自己)가 없고, 성인(聖人)은 공(功)을 세우지 않으며, 신인(神人)은 이름(名)을 구하지 않는다.” 이를 사는 것이 부르심을 받은 자의 길이며 수도자의 길이다. 이를 복음적 권유로 알아들을 수 있으며, 이를 발하며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 서원의 삶 즉 수도생활이다. … 축성생활을 살아가는 이 땅의 수도가족들과 더불어 프란치스코 성인의 축복을 나누며 수도자의 길을 겸허하게 걸어가는 공동체가 될 수 잇도록 기도하면서 언제나 고민하는 글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남아 있는 길이, 가야 할 길이 그리고 우리들의 저녁이 아직도 저렇게 멀리 있습니다. 살아가는 일의 소중함. 우리에게는 아직도 남아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왜 고통이 되어야 하는지요. 우리에게는 아직도 남아 있는 시간 저편의 약속이 있습니다”(한수산 장편소설 ‘부초’에서)
< 11. 파격적인 삶 >
- 틀에 박히거나 획일적인 삶을 살지 않고, 경계를 따라 살지 않으며 경계를 억지로 만들면서 살지 않는 것이 물금(勿禁 :금하지 않음)을 사는 삶이다. 구약의 예언자 가운데 요나가 있다. 민족주의자이면서 애국자인 주인공 요나는 니느웨를 회개시켜 구원하라는 하느님의 신탁을 받는다. 니느웨는 요나의 나라와는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이다. 한국과 일본처럼, 포루투칼과 스페인처럼, 그리고 아일랜드와 영국처럼 서로 앙숙의 관계이다. 그런 적군의 도시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요나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수박에 없었다. 그러나 마음이 내키진 않지만 할 수 없이 요나는 니느웨에 가야 했고 외쳐야 했다. 그랬는데 요나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라도 하였더니 니느웨가 완전히 달라졌다. … 요나처럼 자기 뜻에 맞지 않는 일을 힘들게 하는 수도자들이 있다. 비록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기에 몹시 힘들어하면서도 행하는 성직자들이 있다. 그리고 평신도들이 있다. 그래도 요나처럼 하느님 말씀을 좇는 사람들이 있다.
- 봉쇄생활을 하는 수사님 수녀님들이 참으로 하느님 안에 자유롭게 살고 계시다. 그들은 봉쇄수도원 안에서 기도를 중심으로 살아간다. 그들이 기도하는 곳은 성전이다. 바깥으로 나다니지 않는 봉쇄수도자들에게 세상의 모든 아픔을 하나하나 헤아려 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세상 곳곳의 아픔의 흔적들이 수도자들이 드리는 기도에 포함된다. 수도자들이 모여 기도할 때 성전에 계시는 하느님은 들으신다. 그러나 하느님은 봉쇄수도원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느님은 이 세상 어느 곳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시다. 하느님은 자유로우신 분이시다. 우리 하느님을 ‘통 크신 하느님’으로 만들어 가자.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희생이 내 안에서가 아니라 우리 가족 울타리에서가 아니라 그 울타리를 넘어 세상 곳곳의 수많은 아픔들을 위해 드려진다면 하느님은 기도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실 수 있게 된다. 결국은 내가 드리는 기도가 ‘통 큰 기도’인지 아닌지에 따라 하느님을 옭아 얽매느냐 아니면 자유롭게 하느냐를 규정하고 있다.
< 12. 다리 위의 하느님 >
-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여성시인인 ‘심보르스카’의 ‘다리 위의 사람들’이라는 시가 있다. “이상한 행성이다. 이 행성에 사는 사람들도 이상하다. … 중략 … 물결 위에 작은 배가 힘겹게 가고 있다. 물 위에 다리가 보이고 다리 위에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사람들이 총총걸음으로 가는 것이 역력하게 보인다. 검은 구름에서 방금 비가 세차게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것이 전부이고 그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구름도 색깔도 형태도 변화시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가 그치지도 않았다. 배는 동요하지 않고 떠내려간다. 다리 위의 사람들은 뛰어 간다.” 다리 위의 사람들은 다리 아래의 배와는 대조적인 모습으로 오늘의 현대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바쁘다 바빠!’ 무엇이 그렇게 급한지 총총걸음으로 가는 우리네들이다. 해결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다리 위의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장자가 말한 인간의 굴레(자유를 얽매는 일)를 생각하게 한다. … 축성 생활을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간절히 필요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애타게 부른다. “가난 못하면서도 가난할 수 있는 것은, 정결하지 못하면서도 정결할 수 있는 것은,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오, 하느님! 당신 때문입니다.”
< 13. 비타민 L >
- 필리핀은 1년 열 두 달이 여름이다. 물론 건기와 습기로 계절을 둘로 나누기는 한다. 이 여름에 나는 감기에 걸려 골골하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그 추위 속에서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 이 더운 날씨에 감기에 걸린 것이다. 왜 그럴까 하고 고민한 끝에 함께 사는 공동체 형제에게 말했다. “나에게는 비타민 L이 필요한가 봅니다” 비타민 L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에게 L은 Love 즉 사랑이라고 대답했다. 어쩌면 이국땅에서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랑인가 보다.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것, 그것이 바로 감기라는 증후로 표출되었는지 모른다. 사랑은 다른 이로 하여금 기쁨을 준다. 위로를 준다. 바로 살아 있는 존재는 바로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 위로를 주는 존재이다.
- ‘스모키 마운틴(SMOKY MOUNT-TAIN)’에서 미사를 드렸다. … “우리는 이곳에서 무엇을 바라봅니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쓰레기더미인가 아니면 지지리도 가난한 사람들입니까? 우리가 보는 것은 쓰레기더미이지만 참으로 우리가 꿰뚫어 보아야 할 것은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이곳 사람들의 몸짓입니다.” 쓰레기더미를 뒤지면서 깡통도 찾아내고 병도 찾아내고 플라스틱으로 된 요구르트병도 찾아낸다. 신문지도 찾아내고 주인 잃은 반지도 찾아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한 신념 그 하나만으로 매트로 마닐라의 한쪽 귀퉁이에 이렇도록 많은 쓰레기더미 위에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살아남기 위하여 꿈틀거리고 있다. 스모키 마운틴이라 불리는 이곳은 숨겨진 보물을 찾는 하나의 장소이다. 이곳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이네들이 갈구어내고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네들이 찾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들에게는 가장 필요 없는 쓸데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우리가 내팽개친 것들, 우리가 버린 것들이 이네들의 밥줄이고 생명줄이다. 중요한 것은 이네들의 살려고 하는 몸짓, 바로 살아 있는 몸부림, 꿈틀거림이다. 바로 이곳에서 매일매일 보물찾기가 행해지고 있다. 우리도 이네들처럼 보물찾기를 해야 한다. 이 보물은 생명이신 분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 14, Stand‘by 인생 >
- 필리핀에는 111개의 언어를 지니고 있는 각기 독특한 문화, 독특한 인종이 살고 있다. 수도인 마닐라를 중심으로 하는 필리핀의 가장 큰 섬인 루손 지방의 언어는 타가로그(Ysgalog)이다. 발다살 형제와 예수성심전교수녀회(MSC)의 도움으로 바사얀 지역의 선교여행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마닐라 공항에서 탑승하려는데 정해진 시간의 비행기를 놓쳐 버렸다. 그동안 애써 세운 인간의 계획이 처음부터 깨어지고, 하느님의 새로운 계획 속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 논스톱 노선을 놓쳤기 때문에 중간지인 세부로 가서 부투안으로 가야만 했다. 다음 비행기는 마닐라에서 출발과 도착 지연으로 세부에 도착하여 하루를 현지 성당에서 묵고 세부 공항으로 갔다. 부투안으로 가는 비행기 탑승표는 정규좌석표가 아니라 Stand-by표 였기에 제때에 갈 수 있을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오늘은 성목요일, 부투안에서 성목요일 주님 만찬미사를 드려야 하는데 … . 필리핀 사람들은 일년에 세 번은 꼭 고향을 찾는다. 우리네 명절인 추석과 설날처럼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 사람들의 명절은 부활과 성탄이다. 그러한 그네들의 민족 대이동 시기인 사순절 그것도 성주간의 성삼일에 민다나오 여행을 했으니….
- 대기하면서 가만히 앉아 신앙 차원에서의 Stand-by 삶을 생각해 본다. 성주간 특히 성삼일이 시작되는 오늘 성목요일에,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만찬에 함께 할 수 있는 표를 지니고 있는 열두 명의 인물 들 가운데, 나는 어느 편에도 속하지 못하고 있다. 혹 그 중의 한 사람인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여 빠져나갈 그 자리에 누군가가 들어가야 하는데, 유다 대신에 그 자리를 차지할 마티아처럼, 내가 마티아의 위치에 들 수 있을까? 첫 열두 제자의 자리에는 들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마티아의 자리에는 들 수 있어야 할 텐데 …. 이윽고 Stand-by 코너에서 그 여분의 자리를 차지할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기 이름이 불리기를 바라는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내 이름이 불리기를 … 아! 소중한 내 이름이여!” 기다리던 사람들, 그 가운데에서 자기 이름이 불리어진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표를 받아 들고는 개찰구로 뛰어 간다. 허나 그토록 마음 졸이며 기다렸던 내 이름은 끝내 불려지지 않았다. Stand-by 코너, Stand-by 카운터, Stand-by 인생, 뽑힌 사람들과 여전히 뽑히지 못한 사람들 …. 부투안행 비행기는 떠나버렸다.
< 15. 젊은 안드레아 신부의 고백 >
- 소설가 오정인 선생이 쓴 ‘젊은 안드레아 신부의 고백’은 사제로 서품된지 3년이 안된 저로 하여금 성직자로서, 수도자로서의 서원의 의미를 새롭게 깨우쳐 주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 몰두되었던 나는 결국 복음 말씀의 참된 뜻을 찾을 수 있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영우 안드레아 가톨릭 사제이다. 그는 사제서품 때 발한 청빈. 정결. 순명의 서원을 깨뜨리고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린 한 외로운 여인 차희를 선택한다. 영우와 결혼한 차희는 삶 즉 인생은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되고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차희는 어린 딸을 남겨 두고 백혈병으로 죽게 된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성직자로서, 수도자로서, 신자로서의 진실된 삶의 양식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주고 있다. 그렇게 하느님을 부정. 거부하고 원망하던 차희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대주교에게 편지를 띄운다. “안드레아의 하느님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황무지에 아름답고 훌륭한 열매의 포도나무를 심은 놀라운 신이십니다. 제게 그분의 사랑을 알게 해 준 안드레아를 부디 보살펴 주십시오. 저는 쓸모없고 버려졌던 황무지였습니다.”
- 대주교는 차희의 죽음으로 시름에 빠진 안드레아를 찾아온다. 그리고는 안드레아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한다. “안드레아, 자네는 서약을 파기한 것이 아닐지도 몰라. 청빈과 정결과 순명을 서약한다는 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이었겠는가? 그것은 진정한 서약을 온전히 지키기 위한 전주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겠나?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진정한 서약이란 결국 상처받고 하느님의 사랑을 모르고 외면하고 부인하는 영혼들을 정결히 씻게 하고 참회하게 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이루도록 인도하는 일이 아닐까? 쓸모없는 황무지에 포도열매가 열리도록 하는 그일…. 진정한 의미에서 하느님과의 거룩한 서약을 파기한 사람은 안드레아가 아니라 바로 대주교인 나일지도 모르지. 실로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네. 부끄러워.” … 그분은 황무지에 아름다운 열매의 포도나무를 심은 놀라운 신(神), 하느님이시다.
[ Ⅱ. 육화의 신비 ] -p93
< 16. 겉과 속 >
- 행동양식을 겉이라고 한다면 존재양식은 속이다. 행위는 존재를 따른다는 말이 있듯이, 어떤 존재(사람)이냐에 따라 그에 맞갖은 행동을 하게 된다. 겉으로 들어나는 것은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도시인은 용도별로 구분된 차가운 콘크리트의 세계에 갇혀 지낸다. 노동의 장, 거주의 장, 소비의 장, 교통의 장, 하나의 구분에서 다른 구분으로 즐거움도 없이 똑같이 불안에 싸인 채, 그림자처럼 왕래한다. 완전히 포장된 지역의 콘크리트 숲 속에서 사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연에서 소외되어 일종의 인공 고도(孤島)에서 불건전한 삶을 영위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포장면적이 많다는 것을 뽐내기까지 한다. …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흙을 볼 수 일이 거의 없다. 굴착작업이 있을 때에나 흙을 보게 된다. 이렇게 흙과 격리된 인간의 삶을 복되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은, 그리고 모든 생명체는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며, 흙이 베풀어 주는 것을 먹어야 살 수 있는데 말이다. … 도시가 반드시 차갑고 음산한 시멘트 블록만으로 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양한 색채를 지닌 식물이 멀건 회색 대신에 들어서야 한다. 도시 속에 푸르름을 조금이라도 되살아나게 해야 한다. 회색의 시멘트, 그 갈라진 틈바구니 속을 비집고 나오는 여린 풀, 작디작은 풀, 녹색의 푸르름을 경이롭게 바라본다. 이 작은 풀꽃들의 몸부림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에로 되살아나는 희망을 본다.
< 17. 대연동의 아이들 >
- 대연성당 뒷마당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그런데 어느 날 욕심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쫓아내고는 그 넓은 뒷마당을 주차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이들에게는 한마디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말이다. 그러나 이제 다시 주인이 바뀌었다. 깨어있는 어른들이 자동차보다 아이들을 생각한 것이다. 뒷마당을 아이들에게 돌려주기로 결정하면서 성당 뒷마당에서 아이들이 다시 뛰놀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공간을 3년 만에 되찾은 것이다. 대연동 성당의 뒷마당은 놀이터요 운동장이며 산책로요 공원이 되었다. 도시속의 공원이 된 것이다. … 오늘의 대연동, 그 많던 논두렁에는 주택 및 아파트 그리고 화려한 술집들이 들어서 현대화되어 가면서 덩달아 그 많던 놀이터들이 지금은 다 사라져 버렸다. 나도 어느덧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 여전히 대연동을 떠나지 못해 대연동에서 살고 있는 나는 오늘도 아이들 틈에 끼여 그들과 함께 뛰어 놀고 있다. 좁은 공터라도 있으면 돈이 되는 건물만 지으려고 하지 말고 농구대 하나라도 갖다 놓음으로써 아이들을 위한 놀이마당을 마련해 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도 대연동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
< 18. 지혜로운 사람 >
- 사람을 학명으로 ‘Homo–Sapiens(인류)’라 부른다. Homo는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모든 동물을 말한다. Sapiens는 지혜롭다는 뜻의 형용사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비록 땅에 매어 사는 동물이지만 여느 동물과는 달리 지혜롭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이 지혜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지혜는 하늘로부터 온다(야고 3,13-18 참조). 지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혜이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느냐?”고 물으시는 하느님께 솔로몬은 지혜를 청한다. 흑백을 가려낼 수 있는 지혜, 옳고 그른 것 즉 시시비비를 가려내는 지혜를 달라고 청한다. 이 지혜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깨닫게 하며 일상의 삶 가운데에서 보다 옳고 진실되고 아름다운 것을 늘 분별하고 선택하도록 하는 원동력이며 성령의 은혜이다. … (야고 3,13-18 : 하늘에서 오는 지혜) …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구체적으로 하늘나라를 살아야 한다. 하늘나라를 살기 위해서는 지혜로워야 한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사는 세상,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는 세상이 바로 이 땅에서 이루어져야 할 하늘나라, 하느님 나라이다. 오늘날 우리 백성들은 참으로 많이 깨어나고 있다. 고민하고 있다는 징표이다. 고민함으로써 조금씩 조금씩 의식화되어 잃어버린 지혜를 되찾아 가고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인간다움의 본질인 지혜를 되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 19. 둘레를 갖는 사람들 >
- ‘선(善)의 확산(擴散)’이라는 용어가 있다. 선은 그 본성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끊임없이 퍼져 나가야 한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동요 ‘퐁당퐁당’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퐁당 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멀리 멀리 퍼져라 건너편에 앉아서 나물을 씻는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질어 주어라” 돌이 던져진 그 자리에 동심원을 그리며 파문이 생긴다. 그 자리에서부터 동심원을 그리며 둘레를 가지며 퍼져 나간다. 그리고는 튀겨진 물방울은 건너편에 앉아서 나물을 씻는 우리 누나의 손등을 간질어 준다. 웃게 하며 기쁨을 준다. … 이 노래에서 돌은 사람의 운명을 상징한다. 던져진 하나의 돌은 주어진 운명을 말한다. 돌이 어딘 가에로 던져진 것이다. 세상 한가운데로 던져진 것이다. 운명처럼, 던져진 돌, 누구와 운명으로 만나는 돌, 그는 누구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좋아하거나 사랑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던져진 그 자리에서 울고 있다. 운명으로 맺어진 피조물, 생명이 있는 모든 피조물과 함께 그가 만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함께 울고 있다.
- 냇물에 던져진 돌이 둘레를 만들며 퍼져 나가는 것처럼, 살아 있는 존재는 둘레를 갖는다. 덕이 있는 사람, 가슴이 따뜻한 사람에게는 그 주위에, 그 둘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든다.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 가운데 살아 있는 존재라 일컬어지는 둘레를 갖는 사람은 다른 존재들을 향해 둘레(동심원)를 그리면서 따뜻함(복음, 선, 덕)을 전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돌이다. 하나의 운명으로서 돌이 되었다. 그 하나의 돌이 던져졌다. 하나의 운명으로서, 하나의 소명으로서 하느님께로부터 던져졌다. 던져진 돌은 동심원, 둘레를 갖는다. 둘레를 갖는 돌의 속성은 ‘살아있음’이다. 살아 있는 돌이라야 둘레를 갖는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또는 수도자로서 살아 있을 때, 살아 있는 존재로서 던져질 때 동심원을 일으킨다. 둘레를 갖는다. 그리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과 기쁨을 준다.
< 20. 침묵의 뿌리를 찾아서 >
(동시대적인 세계를 살기 위하여 – 멤피스/중국/캔터베리/ 사북/부산 대연동)
* 멤피스 – 흑인들/ 미시시피 강에서 * 중국 – 인민들/ 시황과 마오쩌뚱
* 캔터베리
– 투옥된 사람들/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 사북 – 민주항쟁/
조세희 제3 작품집 '침묵의 뿌리'에서 우리는 동시대적 사람이면서 동 시대적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도움을 청하고, 비동시대 사람이면서 비동시대적 세계를 살아가는 오늘의 사람들에게 비판을 가하는 작가 정신을 읽을 수 있다. 80년 그날의 사북 사건(민주화 항쟁 및 인권침해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가 80년대를 같이 살았으면서도 사북 사람들의 아픔. 고통을 알지 못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이면서도 우리가 몰랐던 많은 사건들 … 기억하고 그 침묵의 뿌리를 찾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 부산, 대연동 – 우리는 이곳 부산 대연동에서 동시대의 아픔을 겪었던 이들을 위한 성탄맞이 9일기도와 ’성탄에로의 초대 : 완전한 기쁨‘이라는 축제에 함께 하고 있다.
동시대인으로서의 오늘의 우리의 현존을 인식하고, 아픔을 함께하는 동시대적인 세계를 살아가기로 하자.
< 21. 콜룸부스는 아메리카를 침범하였다 >
- 하와이 대학교 앞에는 사회과학서점 ‘Revolution’이 있다. 그곳에서 취급하고 있는 것은 제3세계에 관한 아픔을 대변하고 있는 책, 잡지, 녹음테이프, 티-셔츠, 팸플릿 등을 전시하고 판매하고 있다. …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의식화를 다룬 몇 권의 소설책을 구입하고는 한쪽 끝으로 진열해 놓은 티-셔츠를 바라본다. 인디언들의 삶을 그려 놓은 티-셔츠에 ‘콜롬부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않았다. 그는 아메리카를 침범하였다’라고 새겨진 글귀가 보였다. … 솔제니친은 소설 ‘수용소 군도’에서 자신이 체험한 상황을, 소련의 현실을 이 소설을 통하여 서방세계에 고발하였다. 수용소 생활 중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벽돌 나르기’였다. 노역하는 시간이 되면 한쪽 구석에 쌓여 있는 벽돌을 다른 쪽 구석으로 옮겨 쌓아야 한다. 다른 쪽 구석에 다 쌓아 놓으면 다시 원래 자리인 처음 자리에로 다시 옮겨 쌓아야 한다. 옮겨 쌓고 또 제 자리로 옮겨 쌓는다. 그렇게 쉼 없이 하루 온종일을 옮겨가며 쌓는다. 아무런 의미 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혀 창조적이지 않는 일을 계속해서 해야 하는 무미건조함, 무의미한 짓거리를 아무런 의식도 없이 행해야 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피를 말리는 것이다. 사람은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이요, 무엇인가를 창조적으로 완성하는데 보람을 느끼는 데 말이다. 그래서 솔제니친은 이 ‘벽돌 나르기’를 고문중의 가장 큰 고문이라 하였다.
-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서 세계 2차 대전 중 일본군에 포로가 된 영국군들은 일본군의 명에 의해 군사요충지인 콰이강에 다리를 놓아야 했다. 비록 적군의 명에 의해 다리를 놓아야 했지만 영국군들은 열심히 다리를 놓았다. 온 힘을 다해 다리를 완성하고 다리 위로 차량과 전차가 지나갈 때 그들은 환성을 올린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하나의 다리를 건설한 것이다. 창조적인 일을 통해 그 힘든 작품을 완성한 것이다. 여기에는 적이니 아군이니 하는 어휘는 소용이 없었다. 단지 창조적인 일의 완성, 그것만이 영화 전편을 흐르고 있는 주된 정신이다. ‘벽돌 나르기’와 ‘콰이강의 다리’에서 벽돌은 같은 모티브로 등장하지만 서로 다른 이미지로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는 대단하다. …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이다. 실증주의와 물질주의로 가득찬 이 세상, 광야에서 외치는 것이 참으로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나 우리는 세례자요한처럼 외치고, 외친바대로 살아야 한다. ‘벽돌 나르기’를 해서는 안 된다. ‘콰이강의 다리’를 세워야 한다. 무의미한 일에 우리의 아까운 세월을 맡겨서는 안 된다. 우리의 세월이 역사가 되어야 한다. … 우리로 하여금 콜롬부스나 윤선도와 같은 침입자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콜롬부스의 아메리카(원주민인 인디언이 있었음)나 윤선도의 보길도(원주민이 있었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참된 의미의 사람, 참된 의미의 신앙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 22. 킬리만자로의 표범 >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산에 오른 표범
- 가수 조용필 선생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노래한다. (1-5절중 5절만 메모)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라라—라 라라—라 ---”
… 강한 자에게 아양을 떨고, 약한 자를 짓밟는 세상의 생리가 주로 썩은 고기만 뜯어 먹는다는 하이에나의 습성을 닮았다고들 한다. 육적인 생활에 길들여져 살아가는 오늘날의 현대인의 모습에 어린 왕자와도 같은 고독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주는 사람이 그리운 시절을 우리는 살고 있다. 영화 ‘레인 맨(Rain Man)’은 한 인간의 깨달음과 눈뜸의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주인공은 바로 동생이고, 형은 동생의 눈을 뜨게 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 줄거리 생략 …(동생은 어릴 적에 가출한 상태로, 형의 이름인 ‘레이먼드’를 혼동하여 레인맨으로 부름) 아버지는 죽기 전에 자신의 전 재산을 요양원에 기증하였다. 아버지는 탕자인 작은 아들에게 추구해야 할 참된 보물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방탕한 아들에게 남겨진 유산이 바로 ‘레인 맨’인 형이라는 것을 그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주인공인 아우가 자폐증인 형을 만나서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 태어나듯이 우리도 새롭게 거듭 태어나야 한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고 하늘나라를 상실한 우리에게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가 찾고 있는 ‘레인 맨’이다. 그러기에 십자가상에서 하신 예수님의 일곱 가지 말씀(가상칠언)은 바로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는 생명의 빗줄기이다.
* 가상칠언 : (1,2언) : 루카 23,34.43 /(3언) 요한 19,26-27/(4언) 마태 27,46/ (5언)
요한 19,28/ (6언) 요한 19,30/ (7언) 루카 23.46)
-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생명의 소리이며, 창으로 찔린 예수님의 오른 쪽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피와 물’이다. 하느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를 통하여 허물어져 가는 교회, 오랜 가뭄으로 메말라 있는 세상에 한줄기 시원한 빗물로 만물을,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레인맨을 선물로 주신다. 레인맨은 ‘니체’의 입으로 고백한 죽어버린 신이 아닌, 춤추는 신으로서의 하느님 그리스도이시다. 십자가상에서의 그 고통, 너무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고통에 못 이겨서 몸을 부르르 떠는 그 몸짓을 춤을 춘다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레인맨은 인간의 고통을 함께하는 ‘춤추는 하느님’이다. 레인맨은 십자가상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가수이다. 조용필 선생이 노래한 고독한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다. 킬리만자로의 그 높은 산정에 세워진 십자가를 무대로 하여 일곱 가지 고독을 노래하는 고독한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면서 수도자이다. 레인맨인 그리스도처럼,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처럼 우리도 레인맨이 되어야 하고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23. 시지프스의 신화 >
- 성판악에서 한라산 백록담을 향하여 걸어 올라가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풀섶을 헤치는 소리와 함께 한 마리의 짐승이 나타났다. 말로만 듣던 한라산의 노루를 가을 등반길에서 만났다. 그런데 노루는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그를 보았고 눈이 마주쳤다. 그래도 그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다시금 풀섶을 헤치며 울창한 숲으로 뛰어 들어갔다. 주위는 고요했다. 고독한 시간, 고독한 공간이었다. … 그날 산행 중에 만났던 한라산의 노루는 시인 이상이 고민했던 ‘거울 속의 나’라는 것을 나는 산을 오르면서 줄곧 생각했다. 그러면서 현실의 나와 ‘거울 속의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한라산의 노루는 ‘거울 속의 나’요 Co-incidence (공존)의 개념으로 지금까지 찾아 헤매던 고독한 예수 그리스도요 고독을 씹는 프란치스코였다. 고독은 하느님을 믿으며 하느님을 희망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프란치스코는 하루 24시간을 하느님과 함께 하였기에 그는 고독하였다. 그러기에 고독은 하느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아니 계신 곳이 없는 분이시다. …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동료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이나 우리가 체험하는 생활환경인 우리의 시간과 공간인 현실이 바로 하느님의 거처이며 하느님 현존의 영역이다. 즉 우리의 현실이 하느님과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통로인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삼라만상에 편재하는 삼위일체 하느님과 하나가 되었기에 마냥 기뻤고, 그분과 함께 하였기에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 시인 박노해, 그는 온 힘을 다해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면 다시 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마는 바위를 끊임없이 밀어 올리도록 처형된 신화 속의 한 인물인 시지프스이다. 그는 허망하고 쓸데없는 것인 줄 알면서도 자신이 배당받은 삶의 영역을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퍼 올리는 인간운명의 상징으로서 항상 깨어 있는 의식 안에서 사는 고독한 시지프스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희망의 뿌리 여섯은, 뿌리 하나: 건강한 몸 생활, 둘: 학습하고 메모하는 생활, 셋: 감성을 새롭게 촉촉하게, 넷: 새로운 인연, 다섯: 영성의 진보, 여섯: 나눔 그리고 참여와 연대이다. … 프란치스코가 모든 피조물의 신앙고백인 태양의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시인 박노해가 살았던 삶의 현실인 모든 시간과 공간은 하느님을 만나는 구체적인 영역이었다. 그렇게 시인 박노해는 감방 속에서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노래했다. … 고독을 씹는 프란치스코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통로인 현실에 충실할 때 우리는 고독한 프란치스코를 사는 것이며 영적 성숙에 이르는 문이요 길이며 정점인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시인 박노해는 ‘뱃속이 환한 사람’이라고 노래했다.
< 24. 육화의 신비 >
- 스쿠루지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다. 흠이 하나 있다면 육화의 신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느님이 인간이 될 수 있느냐며 육화는 허튼소리라는 주장이다. 부인과 자녀들이 성탄 전야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으로 떠나간 밤이었다. 아저씨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누어 있다가 그만 고개를 꾸벅거리며 졸고 있었다. 갑작스레 쿵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창문 쪽으로 다가가보니, 한 무리의 새들이 눈 속에서 떨고 있었고, 새들은 쉼터를 찾기 위해 창에 몸을 던지면서까지 몸부림을 친 것이다. “저들을 얼어 죽게 할 수는 없지”라고 하면서 도와줄 방법을 찾다가 조랑말이 들어 있는 따뜻한 헛간으로 피신시키기로 했다. 헛간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전등을 켰으나 새들은 들어 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모이를 보면 들어오겠지 하면서 한웅큼의 빵 부스러기를 가져다가 헛간을 향하여 뿌려 두었다. 그러나 새들은 모이를 보면서도 도무지 헛간으로 움직이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팔을 내저어 새들을 헛간으로 몰아도 보았으나 새들은 사방 팔방으로 흩어질 뿐 헛간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 순간 아저씨는 불현 듯이 이런 생각을 했다. “아주 잠깐만이라도 내가 저들처럼 새가 될 수가 있다면 저들을 안전한 것으로 이끌 수 있을 텐데 …”라고. 그 순간 성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묵묵히 종소리를 듣고 서 있다가 무릎을 꿇고는 고백하듯 말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당신이 왜 그렇게 하셔야 했는지를.” (Louis Cassels의 글에서/요약)
< 25. 하늘로부터 키재기 >
- 하이데거(독일 철학자)에 용어를 빌면, 자신을 잃고 평균적인 인간으로 퇴락된 상태의 인간을 ‘남’이라고 부른다. 남이 하기 때문에 나도 해야 한다. 남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야 하고, 남이 그렇게 행동하니까 나도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여기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고 ‘남’이다. ‘남’이란 누구도 아닌 인간, 각자의 독자성을 잃어버린 인간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남’이 아닌 ‘나’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함으로써 ‘나’를 찾아가는 과정, 본래 모습으로서의 나를 찾아가는 의식화를 살아야 한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인간을 두 가지 측면에서 보기로 한다. 첫째는 소우주(小宇宙)로서의 인간이다. 파스칼은 인간을 소우주라 했다. 우리의 몸은 오장육부로 되어 있다. 오장육부로 이루어진 한 인간 인간을 모두 모아 보면 지구가 된다. 인간이 모여 살고 있는 공동체로서 지구는 오대양 육대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지구를 더욱 더 확대하면 우주라는 더 큰 공동체가 된다. 우주 ->오대양 육대주의 지구 -> 오장육부의 인간으로 소급되어 내려가는 하나의 질서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은 소우주 즉 ‘작은 질서’로 이야기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인간을 학명으로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른다. ‘호모(HOMO)’는 하늘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지상에, 땅에 매여 사는 동물 모두를 일컫는다. ‘사피엔스(SAPIENS)’는 ‘지혜롭다’는 뜻의 형용사이다. 따라서 땅에 사는 동물은 동물이되 여느 동물과는 다른 차이(種差)가 생긴다는 것이다.
- 경상북도 영양군에 있는 입암(立岩)이라는 마을에서 부산 대학생들(가톨릭학생회)의 하계 봉사활동의 여정 중 마지막 날에 디모테오라고 하는 젊은이와의 대화이다. 그는 인사를 하고는 대뜸 나하고 키 한번 재보자고 했다. 그 젊은이의 키는 겨우 145cm였고, 나는 178cm로 무려 33cm나 차이가 났다. … 중략 … 그가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고, 우리는 어디에 사느냐고 묻기에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서 산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우리 인간은 땅에 발을 딛고 살기에 그 기준은 땅이지요. 다시 말해서 우리는 땅으로부터 높이를 재는 동물, 땅으로부터 키를 재는 동물이지요”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런데 하늘에 계시고 하늘에서 사시는 하느님은 어디서부터 키를 재실까요? 하늘로부터 키를 재시겠지요. 하느님께서 재는 기준은 바로 하늘이며 하느님은 하늘로부터 키재기를 시작하지요”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자, 수사님. 그럼 다시 한 번 키를 재볼까요? 누가 더 큰지요?”하였다. 이에 할 말이 없었다. 하느님 보시기에 그는 나보다 무려 33cm나 더 커진 것이다.
(‘하늘로부터의 키재기’ 시 – 서문의 서시와 동일)
-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11)라고 말씀하셨다. 작음, 작아진다는 것, 작아지는 것이야말로 하느님 앞에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자세이며 신앙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덕이다. 작아지고 작아질수록 그만큼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질 것이다. 나의 시간, 나의 공간, 우리의 시간, 우리의 공간을 비우면 비울수록,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면 여길수록, 세상의 눈으로 보아 바보가 되고 어리석어 보이면 보일수록, 하느님의 신비로운 역사, 하늘나라가 이 땅에 내려오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우리 안에 가득할 것이다. “우리 작아집시다. 우리가 작아질 때 예수께서 우리 안에 육화하실 것입니다.”
< 25. 상록촌 가는 길 >
- 이른 봄, 어느 날. 서울 성가소비녀회 수녀님의 요청으로 수사님들하고 양동 신탄리로 봉사하러 가게 되었다. 어렵게 수소문하여 기차를 갈아타 가면서 막상 양동에 도착해 보니 엉뚱한 곳엘 간 것이다. 신탄리로 가야하는데 상록촌으로 간 것이다. 상록촌은 양평을 지나 원주 조금 못가 양동 근방에 있는 나환우들의 정착마을이다. … 결국 한쪽 신탄리에서는 하염없이 일꾼들이 오기를 기다렸고, 한쪽에서는 뜻밖의 손님을 맞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일하러 왔던지라 수녀원에서 요청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우리를 이끄시는 분은 다름 아닌 성령이었다. 상록촌 원장 수녀님께서는 전날 밤 신통한 꿈을 꾸었다고 했다. 꿈은 돼지꿈이었는데 하얀 돼지 한 마리가 여러 검은 돼지들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꿈이었다. 그리고 수녀님들께서는 계속해서 9일 기도를 해 오셨는데, 그 지향은 바로 상록마을에서 부활대축일 미사가 드려지는 것이었다. 상록 마을이 생긴지가 27년이 다 되도록 상록촌에서 대축일 미사가 한 번도 드려지지 않았다는 안타까운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이미 예정되었던 신탄리로 가지 않고 발길이 상록촌으로 옮겨지게 된 것은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길을 잘못 들었다고 여겨질지는 모르지만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볼 때는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성목요일 최후의 만찬미사부터 시작해서 성금요일 십자가 경배, 부활성야미사 그리고 부활대축일 미사까지 여덟 명의 수사님들이 상록촌에서 3박4일을 지내게 되었다.
- 마을이 생긴지 27년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시고 커다란 돼지를 잡아 온 사람들이 신명나는 잔치를 열었다. 그리하여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수사님들이었기에 수사님들의 까만 수도복과 부활대축일의 사제의 하얀 제의에 의해 까만 돼지들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하얀 돼지의 꿈이 해몽되었고, 수녀님들의 9일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 후 그해 예수성탄 대축일에 다시금 상록촌에서 대축일 미사를 드리기로 약속하였다. … 중략 … 예수성탄 대축일 미사를 드리기로 한 그날, 상록촌으로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위험한 상황이 있었고, 지체되어 오후 7시가 돼서야 미사를 드릴 수 있었다. …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하느님을 멀리하며 살았기에 그렇게 위험한 순간이 닥쳤을 때 하느님 생각을 못한 것은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있지 못하고 하느님 생각을 소홀히 했으니 급할 때 하느님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라고 자문자답하였다. 앞으로는 평소에 열심히 하느님 생각을 하기로 다짐했다.
< 26. 선아의 꿈 >
- ‘지구는 한 가족’이라는 표현은 많이 쓰지만 ‘지구는 한사람’이라는 표현은 잘 듣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각각의 지체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룬다는 성서말씀에서 우리는 이 표현을 이해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있는 주제는 ‘구원의 보편적 성사’이다. 이 주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고귀한 선물이다. … 교회를 ‘구원의 보편적 성사’로 보는 오늘의 관점을 ‘지구는 한사람’이라는 표현과 관련시켜 ‘선아의 꿈을 통해 본 민족의 분단과 통일’이라는 아름다운 사건으로 연결시켜 함께 풀어 보려고 한다. ‘선아’는 열두 살의 나이로 ‘보나’라는 세례명을 갖고 있는 착하고 예쁜 어린이이다. 그런데 선아는 다리가 불편해 잘 걷지를 못한다. 그래서 선아는 꿈이 있었는데 여느 아이들처럼 마음대로 걸어 다니고 싶은 것이 꿈이었다. 선아는 성당에서 수녀님을 만나 간밤에 자기가 꾸었던 꿈을 비밀스럽게 이야기 했다. 선아는 꿈속에서 수녀님과 함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해서 행복했었다고 했다. 수녀님과 헤어지면서 선아는 “수녀님, 저 또 잠을 자고 싶어요!”하고 말했다. 다리가 장애인 선아는 마음대로 걸을 수 없었기에 잠을 자면서 다시 꿈을 꾸고 싶은 것이었다. … 처음 만났을 때 다섯 걸음을 옳게 걷지 못하던 선아가 이제는 열 걸음 이상을 어렵게나마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선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선아가 언젠가는 걸어 다니고 뛰어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의 현실을 장애로 인하여 마음껏 걷지 못하는 선아의 현실로 보고, 통일이 될 내일을 마음껏 걷고 뜀박질하며 뛰노는 선아의 꿈으로 비유해 본다. 선아는 민족의 분단과 통일의 상징이다.
- ‘지구는 한사람’이다. 역으로 이야기하면 이 세상 곳곳에 있는 한 사람 한사람을 모아 보면 전체 유기체로서의 지구가 된다. 그러므로 ‘지구는 한사람’이기에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유기체로서의 한사람이 된다. 결국 나는 하나의 지구요, 지구는 바로 내가 된다. 손가락에 가시가 들어가 아프면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처럼 세상 어디에선가 어느 누가 아프면 내 몸의 일부가 아플 때 온 정신이 곤두서는 것처럼 바로 내가 아픈 것이다. 이런 느낌이 없이 사는 사람, 이런 느낌이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살아 있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나, 세례를 받았지만 성사생활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다소 신앙은 있으나 신앙의 기초지식이 약한 사람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겉으로는 신앙이 투철한 것 같으면서도 신앙생활이 바깥에서만 겉도는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어쩌면 육체도 마음도 병든 사람일 것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 세상 모두를 특히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인간을 다 모으면 유기체로서의 하나의 지구가 되고, 지구는 한사람이기에 결국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러므로 나는 구원되어야 한다. … “여러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로마 15,7). 선아의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성 안토니오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처럼’ 시(p187)로 대신하고자 한다. < 27. 아버지 > * 김정현 장편소설 ‘아버지’를 중심으로 ‘사랑이란 서로가 지켜보고 느끼며 마음속에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선물로 받은 김정현 선생의 장편소설 ‘아버지’를 소임지에서 여러 일들을 정리하면서 틈틈이 읽어나갔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장면을 접하면서 나는 이 소설의 내용을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으로도 보았지만 바로 수도 생활하는 축성생활자로서의 나의 모습과 너무도 똑같은 모습을 발견하고는 참으로 놀랐다. 이 소설은 내 모습을 그대로 전하고 있었다. 이 소설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했다. 나는 신부(神父)이다. 신부를 라틴말로는 Pater라고 부르고 영어로는 Father(父)라고 부른다. 그렇게 보니 나도 아버지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을 감히 소설 속의 주인공에 걸맞는 호칭으로 ‘아버지’라고 불러 본다. … 내가 서울대학교 병원 원목실에서 일할 때이다. 본관과 별관, 어린이 병동 등 하루 종일 병실을 돌아본 후 진이 빠진 채로 원목실을 향해 걸어갈 때 나도 모르게 ‘사랑으로’(해바라기 노래)가 불려지고 있었다. 그때 불렀던 이 노래를 나는 오늘의 아버지들에게 바치고 싶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 ’
- 장편소설 ‘아버지’ 작품(문이당, 1996년, 302쪽)은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 소설 ‘아버지’를 누가 읽어야 할 것인가? 오늘을 사는 아내들이 꼭 읽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여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한량없는 사랑의 깊이를 읽기를 바란다. 그리고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픔들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또한 자기 살기에 바쁜 오늘을 사는 딸과 아들이 보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여 딸을 사랑하는, 아들을 사랑하는 한량없는 아버지의 사랑의 깊이를 맛들이기 바란다. 또한 이 소설 ‘아버지’를 오늘을 사는 아버지들이 꼭 읽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의 사랑을, 아버지를 사랑하는 딸과 아들의 사랑을 찾아내길 바란다. 또한 성직자 수도자들이 꼭 읽기를 바란다. 이 소설의 내용은 수도생활 및 사제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가족의 의미를 수도공동체로 바꾸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본당이라고 하는 공동체를 남편과 아내 그리고 딸과 아들이라는 관계로 소상하게 묘사해 놓은 것인지도 모르며, 탕자의 비유를 그대로 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우리를 초대하신다. 우리는 남편인 탕자요, 아내인 탕자요, 딸인 탕자요, 아들인 탕자요, 올바른 친구가 되지 못한 친구인 탕자이다. 우리는 이 소설 ‘아버지’를 통해서 잃어버린 우리들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아버지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아들로서, 친구로서 그리고 형제로서, 사람냄새가 나는 사람으로서 다시금 우리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 28. Open Communication >
- 청년 예수는 젊은이이다. 어느 날 수도원에 들르신 한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분은 대뜸 “신부님, 젊다는 게 무엇입니까?”하고 물으시고는 ‘젊다는 것’이란 귀한 말씀을 들려 주셨다 “늙은이와 젊은이를 구별하는 것은, 주려는 삶인가 받으려는 삶인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이도 어린 게 받으려고만 한다면 그는 늙은이입니다. 허나 비록 나이는 많이 먹었어도 주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그는 젊은이입니다.” 여기에 젊은이들의 선택인 청년 예수의 삶이 있다. 주는 삶, 나누는 삶, 함께 하는 삶이 바로 청년 예수의 삶이다. 함께 하는 삶, 이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며 공동체적인 삶이요 성찬의 삶이다. … 청년 예수이기에, 우리는 예수의 손길이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뛰어 들어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교회를 크게 두 가지로 유형화한다. 제도교회와 현장교회이다. 제도교회는 비대하다. 제도교회의 보수적인 특징상 교회에 나오는 신자들에 비중을 두어 사목한다는 것이 우리 교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현장교회는 제도교회가 지니고 있는 그 지역의 특수한 한계성에 따라 흩어져서 전하는 공동체 즉 흩어지는 현장교회이다. 현장공동체들은 작은 교회로서 제도교회가 미처 손을 쓰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흩어져 사는 교회이다.
- 청년 예수가 인간 해방의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노동, 즉 일을 해야 한다. 우리 교회가 소홀히 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청년 예수가 흩어져서 젊다는 의미를 드러내는 일 바로 노동을 해야 한다. 독일의 여성 신학자 ‘죌레’ 견해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첫째로 청년 예수는 젊은이라는 자기 표현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 두 번째로 교회가 진정한 모습을 지니기 위해서는 제도교회가 미쳐 손을 쓰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흩어지는 교회로서 청년 예수가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청년 예수는 Open Communication(열린 소통) 즉, 사회공동체적 실현을 위해 소외된 이웃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셋째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과의 화해 즉 창조질서의 보전을 위해 힘써야 한다. … 청년 프란치스코가 살던 시대의 교회는 귀족화되어 있었다. 오늘날의 중산층화된 교회라는 비판보다도 더 비판을 받아야 할 만큼 부유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 프란치스코는 당시의 가난한 사람들을 바로 읽을 수가 있었고 세상을 바로 볼 수 있었으며 결국 그들보다 더 가난한 자가 되기 위하여 작은 형제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청년 프란치스코는 스스로를 ‘가난뱅이’라 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하여 그들과 함께 가난한 자로서 가난하게 살았다. 이 세상의 모든 재화는 창조하신 하느님의 소유물이기에 하느님 이외의 어느 누구의 소유물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실천하며 살았다. 소유 양식의 삶이 아닌 존재 양식의 삶을 살았다. 그러자 세상사는 참된 맛이 살아났다. 세상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의 양식을 살았기에 이를 목말라하던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동생활(작은 형제회)을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벗이 되어 그들과 함께 살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상에 메이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해방되었다. 해방의 삶이 그들을 자유롭게 하였다. 여러분은 청년 예수인 젊은이다. 젊은이 답게 살아가자.
< 29. 진홍색 가슴의 새 >
- 아쉬운 한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기 위한 바램을 지니기 위해 신선대를 택하였다.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는데 산불경화원이 다가와서는 얼마 전에 불이 났다고 하면서 입산이 금지되었으니 돌아가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되돌아 내려오면서 수없이 걸려 있는 하얀 천위에 쓰여져 있는 ‘입산 금지’라는 깃발을 보았다. 올라갈 때는 예전처럼 으레 올라갈 수 있으려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올라갔다. 그런데 되돌아 나오면서 보니 하나 둘도 아니고 눈에 들어오는 것만 해도 수없이 많았다.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 송년의 밤에 ‘입산금지’라는 푯말을 가만히 생각해 본다. ‘입산 금지’ 이는 ‘들어가지 말라!’는 곳이다. 이곳을 얼마나 자주 드나들었는가를 반성해 본다. 나의 신분에 맞지 않게, 또 신앙인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깨뜨리면서, 사제로서, 수도자로서, 평신도로서 신부에 어긋난 짓을 행하지 않았는지, 한 가정의 일원으로서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자식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행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의 품위를 깨뜨림으로 인해서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고민하지는 않았는지. … 신선대를 돌아 오륙도 마을, 용호농장, 군부대, 바닷길로 이기대에 들어 수도원 땅에 있는 작은 산장의 소파에 앉았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집 ‘불과 얼음’을 펼쳐 읽어 내려가는데 가슴이 노란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그러자 불현 듯 캘리포니아 남부의 한 작은 마을에서 만난 ‘붉은 색 가슴새’가 떠올랐다.
- 영적으로 메마른 교포들을 위해 남부 캘리포니아 전역을 돌면서 영적 성숙을 위한 성서교실, 피정지도, 미사 등을 열정적으로 하다 보니 몸이 지쳐 가면서 몸 상태가 안 좋아 한 신자가 마련한 공간에서 2박3일의 휴가를 내어 쉬게 되었다. 호수가 바라다 보이는 언덕 위의 조용한 집이었다. 그때 70년대 후반에 읽었던 동화 ‘진홍색 가슴 새’가 머리에 떠올랐고 나는 그 동화내용을 노트에 적어 두기 시작했다. … (동화 이야기) … 그런데 난데없이 50여 마리의 새들이 떼를 지어 작은 정원으로 날아들어 왔다. 갑자기 찾아 든 새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해떨어지는 석양에 본 그들의 가슴이 온통 붉은 색으로 불타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데 동화에서만 읽었던 그 진홍색, 그 붉은 색 가슴을 지닌 새들을 만났으니 무척이나 놀랐었고,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동화 속의 새를 만난 것이다. 오늘 입산금지 된 신선대를 오르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하느님의 작은 계획안에서 신선대에 들어갈 수 없었으나 입산금지가 되지 않았다면 이기대를 갈 수 없었고 노란 새를 통해서 진홍색 가슴 새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한해를 가만히 돌이켜 본다. 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내 마음을 울적하게 했던 사람들, 나에게 좋지 않게 했던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이야말로 참으로 올해 한해를 하느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준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 모두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은총이요 선물이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 한해를 보내고 오늘도 숨을 쉴 수 있음에 감사드리자.
(1996년 송년미사에서)
< 30. 선량한 도둑 >
* “시몬느 베이유, 어느 날 나는 그녀를 ‘선량한 도둑’이라 이름 불렀습니다.”
- 시몬드 베이유, 물로 세례를 받진 않았지만 선량한 도둑의 십자가를 나누어지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여인이다. … 뜻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직접 피부로 느끼고 싶어 여행을 자주 한 그 여인은 이탈리아를 여행하게 되었다. 성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너무도 잘 알려진 평화의 마을 아씨시가 바라다 보이는 뽀르찌웅꿀라를 참배하였을 때 그녀는 성당의 제단에 엎드려 자신의 생애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를 드렸다. 천사들이 종종 방문하기 때문에 천사들의 성마리아 성당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성모 마리아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아무도 돌보는 이 없이 버려진 이 성당을 수리하고, 그의 종교적인 생활을 ‘작은’ 방법으로 시작하고, 행복하게 생을 마친 성당이며 특별히 이곳에 들어와 기도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하느님의 커다란 은총인 대사를 얻도록 마련한 성당이다. … 작은 형제회를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고 수도회의 보호자이며 특별수호성인으로 모신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습이 완연히 살아나는 뽀르찌웅꿀라에서 시몬드 베이유는 ‘뭔가 자기보다 위대한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프란치스코 성인이 이 성당에 들어와 기도하는 모든 미래의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과 성모님 마리아의 강복을 빌었던 것이 어쩌면 시몬드 베이유에게까지 이어져 내린 것이며 이는 하느님의 섭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녀가 이곳에서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을 종교적인 용어를 빌어 말하면 그리스도를 뜻밖에 깊이 체험한 카이로스적인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녀는 사랑과 순수성으로 이 세상을 노래하며 체험적인 깊은 삶을 살았다. 공장의 여공으로서의 인간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더불어’의 삶을 살았던 것은 시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보편성을 띠고 나타나는 사랑은 한결같이 프란치스코의 사랑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체험으로 그녀는 ‘자유와 사회적 압박의 제원인에 대한 고찰’, ‘공장일기’ 등을 저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현장 구석구석으로부터 그리고 그녀가 만난 대중의 얼굴 속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 카이로스(kairos) : right time, fullness time
- “그리스도가 내려와 나를 잡아 주신다”는 그녀의 삶과 체험에 관한 글을 읽노라면 어느새 프란치스코 성인과 더불어 성인의 ‘태양의 노래’를 떠올리도록 이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과 말년에 극심한 고통 중에서 그 고통을 끌어안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삶, 그리고 시몬드 베이유의 생애를 줄곧 묘사해 주던 고통과 그 고통을 끌어안는 지극히 아름다운 영혼의 울림은 한편의 시가 되어 피어난다. … 시몬드 베이유는 33살의 나이에 그녀가 “그리스도가 내려와 나를 잡아 주신다”고 말하였듯이 야곱의 사다리를 타고 고통을 고통으로서가 아니라 이타적인 사랑으로 살다가 사랑이라는 이름의 원천인 그리스도의 품에 안겼다. 인간의 고뇌를 통하여 세례를 받기를 확고한 신념으로 거부하였고, 결국 세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진정한 인간, 진정한 자유인 그러면서도 그녀의 매장 허가서에 ‘가톨릭신자’라는 글자가 씌어진 실로 진정한 가톨릭신자였다. 그녀가 살았던 삶의 괴로움을, 고통을 어루만져 준 것은 하느님의 손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리스도를 사랑하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 위에 이루어진 영적인 교회를 어느 누구보다 사랑했다. 그녀가 싫어한 것은 지상위로 높이 솟은 교회의 무게였다. 어쩌면 그녀의 영혼의 아름다움에서 풍기는 순수함처럼 교회의 순수함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녀를 ‘익명의 그리스도인’이고,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던 우도, 즉 ‘선량한 도둑’이라고 불러본다.
[ Ⅲ. 하느님의 하루를 만드는 일 ] -p221
< 31. 얼떨결에 >
- 경주 남산을 다녀오는 길에 콜베 돌봄터를 찾았다. 차를 끓이는 동안 잠시 산보를 했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십사처가 세워져 있어 얼떨결에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1처에서 4처까지는 보이지 않아 그것도 얼떨결에 제5처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제5처, “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키리네 사람 시몬은 군중들 속에 휩싸여 있다가 사람들에게 밀려 얼떨결에 예수님 앞에 나오게 되었다. 참으로 얼떨결에 그는 힘이 부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게 되었다. 전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얼떨결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된 것이다. 얼떨결에 그는 그 일로 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름에서 세세대대로 이름이 불리워지는 영광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 기도할 마음이 없었는데 산을 오르다 십사처를 보게 되었고, 정말 얼떨결에 십자가의 길을 할 수 있었다. 마치 얼떨결에 수도회에 입회하고 수도자가 되고 사제가 된 나의 삶처럼 말이다. 키리네 사람 시몬이 얼떨결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되고, 제베데오의 두 아들이 예수님이 마시게 될 잔을 마시게 된 것처럼 말이다.
-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방법은 참 다양하시다. 얼떨결에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왕 부르심을 받았으니 열심히 하느님을 따라 살아가자. … 우리가 하느님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우리를 빠뜨리기 위해 우리 앞길에 파놓은 ‘구덩이’(예례 18,20)이나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 ‘숨겨둔 그물’(시편 31,5)이 있다하더라도 주님께서 우리의 “피난처‘(시편 31,5)이시니, 우리 영혼을 하느님 아버지 손에 맡긴 채 마실 잔을 마시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자. 최민순 신부님의 시로 힘을 얻으면서 우리의 길을 계속 걸어가자. ”주여 오늘의 나의 길에서 험한 산이 옮겨지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 고갯길을 올라가도록 힘을 주소서/ 내가 가는 길에 부딪히는 돌이 저절로 굴러 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 넘어지게 하는 돌을 오히려 발판으로 만들어 가게 하소서/ 넓은 길, 편편한 길 그런 길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좁고 험한 길이라도 주와 함께 가도록 더욱 깊은 믿음을 주소서,
< 32. 복지에서 성지로 >
- 서울 미리내 극장에서 상연된 시대 풍자극 ‘복지에서 성지로’를 본 것은 오랜 전이다. 이 연극은 부산의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 작품이었다. 형제복지원은 그 이름과는 달리 죽음의 수용소였다. 짐승에게도 할 수 없는 짓을 원생들에게 자행했으며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였다. 참다못한 원생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정부당국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그러나 숨겨진 비리들이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여론화되었고, 여론에 밀린 정부는 복지원의 환경을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원생들을 대전에 있는 성지원으로 이동시켰다. 그러나 성지원 역시 이름만 그렇지 형제복지원과 똑같은 죽음의 수용소였다. 결국 원생들은 생명을 위해 몸부림쳤지만 복지(福祉)에서 성지(聖地)로 장소만 옮겨졌을 뿐 여전히 혹독한 참상을 겪어야 했다. 이것이 연극 내용의 요지이다. … 우리는 매주일, 아니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느님 말씀을 듣고, 깊이 있게 묵상을 하면서도 여전히 우리는 별반 변함없이 살고 있다. 이 연극이 고발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 상태는 단지 복지에서 성지로 허울만 바뀔 뿐 어제나 오늘이나 별반 달라짐이 없이 살고 있다. 이제 여행을 떠나자. 단지 복지에서 성지로 장소만 옮기는 허울 좋은 영적 침체의 여행이 아니라 ‘하느님의 작품’으로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기 위해 악을 멀리학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찾는” (1베드 3,10-11) 영적 성숙을 위한 여행을 떠나자.
< 33. 인기 있는 사람은 천기가 부족하다 >
- 프란치스코가 하느님 성령으로부터 받은 사명은 “프란치스코야, 허물어져가는 내 교회를 일으켜 세워라”는 말씀이었다. 프란치코는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다미아노 성당과 뿌르찌웅꿀라 그리고 베드로 성당을 하나씩하나씩 세워나갔다. 성령께서는 프란치스코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성당 건물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하셨으나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세상 건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띠는 것이었다. … 프란치스코는 복음에 따라 가나하게 사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해 줄 권위있는 분을 만나기 위하여 아씨시에서 로마로 순례여행을 떠났다. 그가 가난한 형제들과 함께 교황님을 알현하였을 때, 고위성직자들은 거룩한 교회에 거지들이 들어오는 것을 못마땅해 하며 그들을 쫓아내 감옥에 가두었다. 쫓겨난 직후 교황님은 잠깐 사이에 꾼 꿈을 통하여 당시 교황청인 라테라노 대성전이 비스듬히 기울어지며 쓰러지는 것을 보게 되고, 쓰러지는 그 성전을 가난한 프란치스코가 어깨로 떠받치며 일으켜 세우는 것을 보게 된다. 꿈을 통하여 계시를 받은 교황은 프란치스코와 형제들을 다시 불렀다. 그리고는 형제들을 받아들였다. … 눈에 보이는 건물밖에 볼 수 없었던 프란치스코는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교회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성령께서 자신을 파견한 그 말씀, “프란치스코야, 허물어져가는 내 교회를 일으켜 세워라” 하신 말씀을 올바로 알아듣고 실천하게 되었다.
- “인기(人氣)’가 있는 사람은 ‘천기(天氣)’가 부족합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기운을 받으며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기운이 모자란다는 뜻으로 이해하였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위로를 찾으면 찾을수록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게 된다. 이의 참된 해결책은 무엇인가? 이제 우리는 성전 보수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교회(수도원) 보수의 숨은 상징적인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외적인 건물에 관심을 기울이던 우리의 마음을 이제 영적인 성전인 내 영혼을 찾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었다. 바로 지금이 회개의 때이다. 지금 바로 이 시간부터 우리는 육적인 삶이 아니라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사라 없어질 인간적인 위로나 인간이 주는, 세상이 주는 평화를 구하지 말고 하느님께로 돌아가자.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위로, 성령이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듯이, 우리를 광야로 내보내달라고 기도하자. 끊임없이 기도하고, 기도가 될 때까지 기도해 나가자. 인기가 있는 사람은 천기가 부족하다. 인간의 기운으로 삶을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기운이 메말라서 참다운 삶을 살 수 없다.
< 34. 널빤지로 꾸민 집 >
- 어느 날 참 고마운 분을 만나게 되었다. 그 분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 했고, 똑같은 내용을 계속하여 이야기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나에게 말했다. “신부님은 왜 말을 듣지 않으시는지요? 신부님은 말씀을 듣긴 들으시지만 말씀이 가슴에만 머물러 있지 저 깊은 아래까지는 내려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신부님 내려가십시오. 저 아래 깊이에까지” 나는 그래도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다고 생각해왔는데, 말을 듣지 않는다니 하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분의 말이 맞았다. 그 이후로 내 모습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나름대로 “나는 말씀을 듣지 않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내 생활을 돌아다보았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는 책들은 어떤 종류의 책인가?, 왜 나는 그 책들을 읽으려 하는가?’, ‘나는 기도하고 있는가, 진정으로?’, ‘나는 왜 사는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했다. ‘하느님을 위해서?’ ‘신자들을 위해서?’ 모두 아니었다. 순전히 나 자신을 위해서 살아왔다.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닌데 하면서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 우선 소홀히 했던 기도를 새롭게 하기 시작했다. 공동체 형제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 갔다. 성체 앞에 있는 시간을 더 늘려 나갔다. 그리고 제대 위에 올라가서 미사를 집전하기보다는 제대 아래 내려 와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참례를 했다. 소설책이나 시집을 읽지 않고 외국에 관한 생각들을 하지 않았다.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씀을 살기 위해 말씀을 읽고 들었다. 그리고 말씀을 묵상했다. 그랬더니 무언가 들리기 시작했고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늘을 살고 있다.
- 신학의 두 줄기는 토미즘과 프란치스칸이즘이다. 토미즘은 도미니코 수도회가 주류를 이루고, 프란치스칸이즘은 프란치스코회가 그 주류를 이룬다. 토미즘은 이성을 강조하며 대표적인 신학자는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프란치스칸이즘은 의지를 강조하며 대표적인 신학자는 보나벤뚜라와 두누스 스코투스이다. 이성과 의지, 이 둘은 오늘날까지 서로를 보충하면서 신학의 양대 산맥을 형성해 오고 있다. … 보나벤뚜라는 연구하는 사람이면서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심오한 지식을 지녔으면서도 지극히 겸손하였는데, 그에게 있어서 지혜는 하느님을 더 사랑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 “유다인들은 표징(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1코린 1,22-23). 표징(기적)을 바란다는 것은 기도하지 않고 있다는 표지이다. 기도는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표지이며, 하느님과 함께 있으니 기쁠 수밖에 없다. … 주님께서는 우리의 성전을 다시 새롭게 단장하라고 하신다. … * 널빤지(판벽)로 꾸민 집 - 하까 1, 2-11(하느님의 독촉으로 성전 재건을 시작하다)
< 35. 사람들 사이에 집이 있다 >
- 성전에서 솟는 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 죽은 것을 살리는 물, 세상에 생명을 주는 물은 성전에서 흘러나온다. 생명이 넘치고 병이 치유되는 그 원천에는 하느님이 계신다. 기계에 녹이 쓸면 그 녹을 제거해야만 한다. 녹을 제거하지 않으면 기계는 기계로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고물이 되고 만다. 우리에게도 녹이 낀다. 그 녹은 피로이다. 피로가 쌓이면 삶에 의욕을 잃고 스트레스만 더하게 된다. 이 육체의 피로는 잠을 충분히 자거나 목욕탕에서 땀을 흘리거나 가벼운 운동 등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성인병의 대부분이 마음에서 오는 병이라고 한다. 지위가 높아지고 풍족한 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에는 채울 수 없는 어떤 허전함, 공허감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공간은 어느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공간이다. 이를 ‘실존적 공허’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현대인에게 발생하는 온갖 병의 근원은 바로 뻥뚫린 마음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인간 어느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이 공간,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이 공허감을 채울 수 있는 분이 오직 한 분 계시니 그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이시다. … 히브리인들은 하느님이 시온산에 머물러 계신다고 믿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예부터 시온산에 올라가 기도했다. 자신의 병이나 고통, 억울한 일이나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고민거리가 생기면 시온산에 올라가 하느님께 하소연하고 탄원했다. 그때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 오늘의 시온산은 성전이다. 우리는 성전에서 성체 앞에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기도하자. 참으로 하느님의 위로를 받고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고 싶으면 히브리인들이 시온산에 들러
하소연 원망 푸념 넋두리를 하였듯이 오늘의 시온산인 성전에 들러 하느님께 투정도 하고 넋두리도 하자. 그러면 하느님께서 탄원하는 히브리인들의 기도를 들어주듯이 우리의 기도도 들어주실 것이다. … 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은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계신 곳 즉 성전이 가장 높은 곳이다. 우리는 성전을 들러 하느님께 기도드리자. 성모님께서 성전에서 예수님을 봉헌하시고 성전에서 찾으셨듯이 우리도 성전에 들러 예수님을 찾자. 그리고 성전에서 나의 고통을 나의 어려움을 하느님께 호소하고 감사의 기도도 드려야 한다. … 사랑하는 가족들이여, 성전에서부터 물이 흘러나온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 즉 하느님 말씀은 세상의 죽은 것을 살고, 곪아 터진 것을 새것으로 나게 한다. 우리는 성전에서 나오는 이 물을 받아 마셔야 한다. 구원의 물을 마셔야 한다. 성전에서부터 우리 삶을 시작하자. 성체가 모셔져 있는 성전에서 성체이신 하느님을 묵상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살아 있는 성전이 되어야 한다. … 성전에서 성체조배를 위한 묵상, 고독, 관상을 즐김으로써 우리 자신의 모습이 변하게 되어 결국 우리가 살아 있는 성전이 된다. 그리하여 살아 있는 성전인 내가 가는 곳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마다 복을 전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갖고 싶지 않은가? 그 섬이 되고 싶지 않는가?
< 36. 자캐오 >
- 예수님은 “나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들어가고, 세리인 자케오의 집에 들어갔다. 이와 똑같이 이제 나는 너의 집에 들어간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덧붙이시기를 “마리아처럼 내 발치에 앉아라. 자캐오가 한 것처럼 내 얼굴을 가까이 보려면 책상에 마주 앉아라”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마리아와 자캐오의 모습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있고, 자캐오는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높이에까지 올라간다. 우리는 어떠한가? 마리아를 닮기가 쉽지 않고, 자캐오의 길을 가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마리아와 자캐오를 따라 사는 삶이 되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결코 만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 저는 기도할 때 “주님, 제가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실 수 있다. 예수님을 알 때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를 노래로 할 수 있다. 예수님은 큰일을 앞두고 꼭 기도하셨다. 기도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하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초대받고 싶어하신다. 귀기울이자. 기도하는 마음으로!
< 37. 족보 이야기 >
- 상징적 . 신비적인 해석으로 성경의 족보이야기를 묵상해 보자. 아브라함은 하느님께로 향하는 여행을 떠난다. 그의 첫 번 이름은 아브람이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바뀐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이름이 바뀐 것이다. 결국 마태오가 전하는 ‘족보이야기’(마태 1,1-17/루카 3,23-38))에 나오는 인물들은 각기 다른 사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으로 상징되는 한 인간이 영적으로 성숙해 나가는 과정을 각기 다른 이름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한 개인이 미성숙한 상태에서 성숙한 상태에로 변화해가는 과정에 따른 영적인 성숙도를 나타낸다. 결국 아브라함은 성숙을 거듭하여 마침내 영적 성숙의 정점인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 태어난다. 영적 성숙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족보의 인물들의 뜻풀이와 민수기 33장(이집트에서 요르단에 이르는 여정)에 나오는 지명들의 뜻풀이를 비교해 볼 때 그 의미가 일치함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마태오가 전하는 족보 이야기는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다윗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갈 때까지, 그리고 그때부터 그리스도까지를 각각 14대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표현하고 있다. 성서 신학에서 말하는 14는 1+4로 풀 수 있고, 그 결과는 5이다 5는 오감을 뜻한다. 즉 오감을 지닌 인간을 말한다. 인간은 오른손과 왼손 두 개의 손을 가지면서 각각 다섯 개의 손가락을 갖고 있다. 한쪽은 육적인 오감을 상징한다면 다른쪽은 영적인 오감을 상징한다. 육적인 오감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그리고 촉각이며, 영적인 오감은 상상력, 느낌, 직관, 보편적 양심, 그리고 영감이다. 인간은 두 손을 다 사용해야 한다. 즉 육적인 오감과 영적인 오감을 잘 다스려 하느님께로 향하는 영적 성숙을 도모해야 한다. 결국 마태오, 루카의 족보 이야기와 민수기의 여행 이야기는 한 영혼이 하느님께로 가까이 다가가는 이야기이다. … 그러므로 마태오 복음 사가가 족보이야기에서 바라고 있는 결론은 한 인간 영혼이 단계적인 발전을 해 나감으로써 영적으로 성숙해 나가는데, 영적 성숙의 완전한 모범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게 된다. 결국 족보를 통해 펼쳐짐으로 영적 성숙의 중요한 단계들을 함축해 나가다가 결국 인간 성숙의 완성이며 표본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마무리 된다. 그렇게 영적으로 성숙된 인간은 루카의 족보이야기에서 보듯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가 만나는 각각의 영혼을 하느님께로 이끌어 올라가는 역할을 하게 된다.
< 38. 야곱의 사다리 >
- 야곱의 사다리 이야기는 창세기 28장(10-22)에 나온다. … 야곱의 우물로 물을 길으러 온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대화를 나눔으로써 영적으로 변화된다. 이를 정화-조명-일치의 삼단계로 살펴본다. 물을 달라고 요청하는 예수님을 처음 바라보는 여인의 눈에는 예수님이 유다인으로 보인다. 이는 정화의 단계를 사는 여인이다. 그리나 예수님과의 만남이 그녀를 변화시킨다. 영적인 눈이 열리면서 예수님과의 대화는 계속되고 예수님을 유다인으로 보던 여인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보게 된다. 이는 조명의 단계를 사는 여인이다. 대화는 계속된다.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한다. 이는 일치의 단계를 사는 여인이다. 이렇게 사마리아 여인은 정화(묵상/평화)-조명(기도/진리)-일치(관상/사랑)의 단계를 한계단씩 조금씩 올라간다. 결국 절망 상태에 있던 야곱이 꿈에 나타난 영적 성숙을 상징하는 사다리를 통하여 희망의 상태로 변하여 가듯이 사마리아 여인도 영적 성숙을 꾀하는 스승으로서의 예수를 만남으로써 영적인 삶을 살게 된다. 우리가 야곱이나 사마리아 여인처럼 영적으로 성숙해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기도를 해야 한다. 야곱이 기쁨에 겨워 외쳤던 하늘의 문,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기 위한 열쇠는 기도이다. 다음은 영적독서와 함께 하는 묵상이다. 그 다음으로 관상이다. 영적 성숙이라는 관점에서 성서를 묵상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성서묵상이다.
< 39. 기도 >
- 사랑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무엇일까? 기도! 기도가 아닐까? 카를로 카레토 수사님은 이를 확신하고 “기도는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며, 사랑하는 자들을 돕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완전한 형태의 활동이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기도는 활동이다. 기도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바로 기도이다. 그러기에 기도해야 한다. 기도란 사랑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가장 완벽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 이제 기도해야 한다. 기도한다면 하루를 못 만나면 어떻고, 일주일을 못 만나면 어떻고 아니 일 년을 못 만나면 어떻는가? 기도가 무엇인지를 안다면 만나고 못 만나고는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애타하고 힘들어 하고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기도에 완전히 들지 못하고 있다는 표현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가장 완벽한 활동이 기도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 40. 기적 >
- 사람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일컫는다. 호모는 하늘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지상에 사는 동물을 말하며, 사피엔스는 지혜롭다는 뜻의 형용사이다. 따라서 사람은 여느 동물과는 달리 지혜롭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지혜를 믿음 즉 하느님을 아는 것으로 푼다. 사람들이 기적을 바라는 것은 기도하고 있지 않다는 표지이다. 기도란 하느님에게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기도란 하느님과 이야기하면서 사귀는 친밀한 우정의 나눔이다. 기도하지 않기에 하느님과 우정을 나누지 못하니 기쁘지 않다. 하느님 안에서 기쁨을 찾지 못하니, 하느님 아닌 다른 것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기에 매사에 만족하지 못하고 투덜거린다. 그리곤 무언가 새로운 것, 신기한 것을 찾는다. 기적을 바란다. 기적을 바라는 것은 하느님이 아닌 엉뚱한 것에서 하느님을 찾으려고 하는 잘못된 신심이다. 기적을 바라는 것은 하나의 욕심이요 욕망이다.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내 마음에 거하시는데, 기도하지 않으니 하느님과 함께 있을 수 없다. 그러니 다른 것에 마음을 쓰고, 끊임없는 애착 속에 살게 된다. 애착 속에 살지 않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 41. 가난 >
-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하지만 가난이 무엇인지, 가난을 사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난은 “저는 피조물입니다”라고 하는 신앙고백이다. 내가 가난하다는 것은 어느 무엇도 내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며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 하느님이시기에 결국 하느님만이 주인이시라는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피조물이라고 부른다. 이는 ‘유형무형한 만물’ 즉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모두를 일컫는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 그리고 추상적인 용어 모두를 포함한다. 용서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만들어 놓으신 보이지 않는 피조물이다. 용서는 피조물이기에 내 소유가 될 수 없다. 용서는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될 수 없다. 용서는 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것이니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기에 프란치스코는 “어떤 일 때문에도 분개하거나 흥분하지 않는 하느님의 종은 진정코 아무 소유도 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결국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리면서(마태 22,21)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는 사람은 복됩니다”라고 권고한다. 또한 태양의 노래에서 “당신 사랑까닭에 남을 용서해주며 … 평화로이 참는 저들에게서 주여, 찬미 받으소서.”라고 노래를 부른다. 용서는 가난의 표지이다. 우리가 용서할 때 “저는 피조물입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사람이며 하늘나라를 사는 사람이다. 가난을 사는 사람이다.
< 42. 형제는 하느님의 선물 >
- 같은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컬어 우리는 ‘형제’라고 부른다. … 엄마가 차려주신 밥상의 반찬들이 어느 하나 우리 몸에 해로운 것이 없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만날 수 있도록 마련해 준 사람들은 어느 누구하나 우리에게 해로운 사람이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다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우리의 영적 성숙을 위해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나는 하느님의 자녀이며 하느님께서는 나를 극진히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만나는 다른 사람들 역시 하느님의 자녀이며 하느님께서는 역시 그들도 극진히 사랑하신다. 밥상에 올라 온 음식을 편식하지 않고 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을 선물로서 다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선물로 보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깨어난 사람 즉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다. 여전히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다. 형제는 우리가 미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형제는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선물이다.
< 43. 보물 찾기 >
- ‘사랑의 캠프’에 초대 받아 ‘사랑’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모임의 동무들은 지체장애인들이었다. … 그날 밤 일어난 이상한 한 사건을 통해 나는 내가 말한 ‘사랑’이라는 강의가 너무도 추상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참으로 부끄러웠다. 바로 그 사건을 통해 나는 사랑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다. 땀이 흐르는 무더운 여름 밤에 초등학생으로부터 시작해 대학생에 이르기 까지 그네들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시원하게 목욕을 한 것이다. 한 동무가 욕실 가운데 앉혀진다. 그러면 둘레에 빙 둘러 앉은 동무들이 그에게 물을 끼얹고는 때를 밀어주고, 비누를 칠해주고 그리고는 물을 끼얹어 준다. 한 동무가 다 씻고나면 자리를 바꾸어 앉는다. 그렇게 번갈아가면서 서로가 서로의 몸을 씻겨 주었다. 그 ‘사랑 캠프’에서의 사건은 8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나의 마음 속에 진한 감동으로 살아 있다. 살다보면 이상한 일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이상한 일들을 통하여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매일의 삶 안에서 이러한 이상한 일을 많이 찾아보자.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찾는 ‘보물찾기’처럼, 우리 주변의 이상한 보물들을 많이 찾아 보자. 그런데 요즈음은 아무리 찾아도 이상한 보물이 보이질 않는다. 이는 보물을 찾으려고만 하지 숨겨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 아니 내가 그 보물을 숨겨두어 보자.
< 44. 5-3=2, 2x2=4 >
- 사랑, 참된 사랑이기 위해서는 오해(誤解)와 이해(理解)와 같은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정이 있게 된다. 이러한 참된 사랑을 깨닫을 때까지의 과정을 ‘5-3’과 ‘2x2’라는 단순한 산수를 통하여 찾아보자. … 이 단순한 도식 안에는 우리가 실천하기에는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어떤 깊은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5-3=2, 2x2=4이다. 이를 뜻풀이 해보자. 5-3=2.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생겼다고 하자. 이 오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숫자 ‘5’ 이다. 이 오해는 바로 나 중심으로 생각할 때 생긴다. 그러므로 나 중심적으로가 아니라 바로 그 상대방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기를 적어도 세 번(3)을 생각해 준다면 그 사람을 ‘2’ 즉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해가 생기면 역지사지로 생각하기를 3번하면 2해가 되고, 이해를 거듭하면 즉 2x2하면 ‘4’ 즉 사랑의 상징적인 의미인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4를 사랑할 4자로 풀었다. 사랑(4)하는 사람을 위해서 죽을 수 있을 때(4) 그것이야말로 참 사랑인 것이다.
< 45. 노랑꽃은 왜 노란색일까? >
- 이외수 선생은 자신의 소설 ‘꿈꾸는 식물’에서 “노랑꽃은 왜 노란색일까?”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노랑꽃은 노랑색을 싫어하기 때문에 노랑색을 낸다”라고 했다. … 무지개 색인 빨주노초파남보 … 빛은 다양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 모든 색깔이 다 모이면 색깔이 없는 눈부신 빛이 된다. 어느 하나 거부함이 없이 모든 색깔을 받아들이는 사물은 색깔을 띠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색깔을 다 받아들이면서도 유별나게 어느 하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물은 고유의 독특한 색깔을 낸다.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게 되고 거부되어지니 그 빛은 안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바깥으로 반사돼 버린다. 결국 사물은 그렇게 자기가 거부하는 색깔을 띠게 된다. … 생명의 빵인 성체는 색깔이 없다. 순수 그 자체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모든 것을 받아들이시기에 아무런 색깔도 내지 않는다. 우리가 성체를 모셔 하느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 세상 어느 한 사람이라도 거부당함이 없이 다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생명의 빵을 받아먹고 살아가는 우리는 세속에 사는 사람들처럼 누구는 좋아하고 누구는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다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
< 46. 걸어보지 못한 길 >
- 오늘, 새해 아침에 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친근한 시 한편을 함께 묵상하고자 한다. 이 시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아름다운 시 ‘걸어 보지 못한 길’이다. 에드워드 토마스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친구이다. 그는 똑같은 시각에 늘 똑같은 길을 산보하였다. 그날도 그는 예전처럼 똑같은 길로 프로스트와 함께 산보를 하였다. 갑자기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하면서 말했다. “왜 나는 매번 똑같은 길만 고집하였던가? 가 보지 않은 길도 많은데 ….” 그 친구의 푸념을 한편의 시로 만들어 발표한 것이 이 시이다. “단풍 든 숲속에 두 가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 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나은 듯도 했지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사람이 밟은 흔적은 먼저 길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도 없고 두 길은 그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 먼저 길은 다른 날 걸어보리라! 생각했지요. 인생길이 한 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다시 보기가 어려우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라고.”
< 47. 하느님의 하루를 만드는 일 >
- 인간이 지상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두 개의 확실한 단언을 내릴 수 있다. 하나는 우리의 다가올 미래는 현재의 활동과 경험을 통해 우리의 과거가 될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는 죽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유한하고 그 유한성이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 우리는 많은 죽음을 본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이 자기의 죽는 때를 알고 있다고들 한다. 어떤 사람이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한다든가 혹은 갑작스레 착한 일을 한 후 죽으면 으레 사람들은 “죽으려고 그랬구나”하든지 아니면 “그래, 죽을 준비를 하였구나”하고 얘기하는 것을 듣는다. … 어느 날, 나는 “30분후 내가 죽는다면?”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달라는 야단스러운 청탁을 받았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그것이 무슨 유언장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30분을 무수히 지나 보내고 나서 이런 생각을 했다. 30분이란 시간, 시간이란 이름을 비록 인간이 지었다고는 하나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평범한 생각이 들게 되었고 운명의 장난같이 30분에 30분을 계속하여 살아가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어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의 삶은 매순간마다의 시간을 바로 한없이 죽고 한없이 부활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30분 후에 죽는 것이 아니라 매 30분의 시간을 어떻게 죽고 어떻게 부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다.
- 우리의 삶을 좌우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에 그 분이 인간이 되시어 살았던 삶을 나도 이제 이번 기회를 통하여 새롭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30분에 30분을 계속하여 수난과 부활의 삶을 다짐하면서 ‘하느님의 하루를 만드는 것’에 나의 30분을 바쳐야겠다고 말이다. … 나의 30분을 하느님의 하루를 만드는 일에 바치려면 나는 틀림없이 하느님 보시기에 마음에 드는 좋은 일을 해야 한다. 평화의 정신으로 야곱의 사다리를 마냥 끝없이 올라가야 할 것이다. 스스로 즐겨 사다리를 내리는 자도 있을 것이다. 추악한 것에 대하여 욕망이 격한 나머지 생각에서 감각으로, 감각에서 물질로, 물질에서 더러움 속으로 내리구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마지막 30분의 시간을 쥬벨이 말한 야곱의 사다리를 오르려 한다. 그러면 세상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밝아질 것이다. “말이 생각을 닮으면 닮을수록, 생각이 영혼을 닮으면 닮을수록, 영혼이 하느님을 닮으면 닮을수록 그 모든 것은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나의 30분을 영혼이 하느님을 닮도록 끊임없이 수난의 고통과 부활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 내가 받았던 물음을 물어 보겠다. “30분 후 내가 죽는다면?”
< 후기 >
- 종신서원을 발하던 1990년 2월에 나는 ‘솔아 솔아 푸르는 솔아’를 노래했습니다. 이 노랫말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詩, ‘하늘로부터 키재기’는 1985년 서울 혜화동에 살던 신학생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성 안토니오의 詩,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처럼’을 우리말로 옮겼을 때가 1986년 대구 범어동에서 수련기를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밤을 새우며 다듬고 다듬어 다음 날 끝기도 후 형제들 앞에서 들뜬 마음으로 그 역시(譯詩)를 낭독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이 두 편의 시가 내 수도생활의 묵상용 화두였습니다. … 신학생 시절, 갈멜회의 동갑내기 신부 벨라도는 창경궁을 거닐면서 말했습니다. “요셉아, 나이 마흔 될 때까지는 나서지 마라. 침묵해라, 공부해라, 세상이 너를 필요로 할 그때까지 … 그 사이 세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어느새 불혹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 묵상 글들을 책으로 묶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책으로 묶는 것은 어제의 삶에 애착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희망은 과거를 정화하기에 오늘의 고백으로 내일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하느님께 나아가는 영혼의 여정’을 관상하는 보나벤투라 성인처럼 낯선 곳으로 영적 여행을 떠나는 벗들에게 이 묵상집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꼰벨뚜알 프란치스코회 민성기 요셉 신부
금주의 독서 메모 #124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 책 이름 :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
- 지은이 : 폴란드 자비의 성모 수녀회
- 옮긴이 : 여진주
- 펴낸데 : 아베마리아출판사
- 펴낸이 : 하 안토니오 신부
- 출판일 : 2004. 2.26 - 95p
- 내 용 : 성녀 파우스티나의 삶과 사명,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 기도 등
[ 표지의 글 ]
-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은 세상의 운명을 그리고 인류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그 어떤 외교술이아 정치, 그 어떤 인간의 능력이나 기술로도 온 인류에게 예기되어 온,
파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 이 사태에서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은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 프란치스코 마샤르스키 추기경
(표지의 사진)
[ 순서 ]
1.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말씀
2. 성녀 파우스티나의 삶과 사명
3. 하느님 자비에 대한 신심
4. 성녀 파우스티나의 일기에서 발췌한 기도문(1-15)
5. 성녀 파우스티나의 중재를 통하여 은총을 얻기 위한 기도
[ 1.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말씀 ]
-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최고도로 계시된 자비의 신비를 선포하고 이 신비를 생활에 옮기는 일을 교회의 주요 임무 중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으며, 어느 시대에나 그렇지만 특히 이 현대에 그렇게 간주한다. 자비의 신비는 신앙인들의 공동체인 교회에서만이 아니고 인류 전체에게, 인간이 스스로 영위할 수 있는 생활과는 차원이 다른 생활의 원천이 된다. 인간은 자기 내부에서 삼중의 욕정이라는 억압적인 세력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 교회는 십자가에 달리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에게서 계시된 하느님의 자비의 진리를 선포하며, 여러 가지로 이 진리를 고백한다. 그뿐 아니라 교회는 사람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자비를 실천하고자 노력하며, 이 실천이 오늘과 내일의 보다 낫고, 보다 인간다운 세계를 위하여 연대감을 갖는 데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회는 인류를 덮어 누르면서 인류를 위협하는 여러 형태의 일에 에워싸여 있으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외치는 기도를 한시도 잊지 않으며, 역사상의 어느 시대나 그렇지만 더구나 지금 같은 위태로운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인간의 양심이 심하게 속화될수록, ‘자비’라는 말의 의미 자체를 감지하지 못하게 될수록, 하느님께로부터 떠나 자비의 신비에 거리를 두면 둘수록 교회는 큰소리로 자비의 하느님께 호소할 의무와 권리가 있는 것이다. - 회칙(자비로우신 하느님) 14,15항
[ 2. 성녀 파우스티나의 삶과 사명 ]
- 2000년 4월 30일 로마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우리 시대를 위한 하느님 자비의 사도로 불리는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를 시성하셨다. 이로써 교황은 온 세상과 교회 앞에서 성녀 파우스티나에게 하느님 자비의 신비를 선포하고 삶으로 옮기는 일과 세상을 위해 그 자비를 탄원할 임무를 그녀의 소명으로 부여했다. - 성녀 파우스티나는 1905년에 폴란드의 우츠 근처에 있는 글라고비에츠에서 어머니 마리안나와 아버지 스타니슬라우스 코발스카 사이의 10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성녀는 어린 시절부터 기도에 대한 열정과 일에 대한 근면성, 그리고 순종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민이 특별했다. 가난으로 인해 초등학교 3학년도 채 다니지 못한 그녀는 이미 십대에 남의 집 가정부로 일하기 위해 집을 떠나야 했다. 20세기에는 자비의 성모 수녀회에 입회하여 마리아 파우스티나 수녀로서 주방, 정원사, 문지기의 소임을 하며 매우 평범하게 보이는 13년을 보냈다. 그런데 그 안에는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라는 비범함이 숨겨져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훌륭한 성인이 되기를 열망하였다. 자신의 삶을 죄인들을 위해 희생으로 내어 놓고 예수님과 함께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겠다는 목표를 향해 시종 일관 노력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수도자로서의 그녀의 생애는 비범한 신비적 은총과 더불어 고통의 흔적도 나타난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나는 내 예언자들로 하여금 내 백성에게 천둥번개를 휘두르게 했다. 그러나 오늘은 너를 통해 모든 인류에게 내 자비를 보낸다. 나는 인류를 벌하지 않고 치유하고 내 성심 가까이로 데려오고 싶다”(일기 1588)는 놀라운 선언을, 비범한 단순함으로 하느님께 무한히 의탁했던 바로 이 수도자에게 하셨던 것이다.
- 성녀 파우스티나의 사명은 다음과 같다.
1) 성서에 드러나 있는 우리 신앙의 진리, 즉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당신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베푸신다는 진리를 모든 인류와 심지어 극악한 죄인들에게까지 상기시키는 것.
2)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의 새로운 형태를 전달하는 것.
3)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의 기본 정신을 따라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을 신뢰하며 이웃에게 적극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복음정신으로 쇄신된 삶을 위한 위대한 운동을 시작하는 것.
- 이상과 같은 사명을 수행하고, 특히 죄인들을 위한 희생으로 참아 받았던 폐결핵과 여러 고통들로 쇠진해진 파우스티나 수녀는 35세의 나이로 1938년 10월5일 크라코우에서 성스러운 향기 속에 선종하셨다. 1993년 예수 부활 대축일 후 첫 주일인 4월 1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로마의 성 베드로 광에서 그녀를 복녀로 선언하셨다. 그 다음날 공개적 알현 동안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시성 :2000.4.30)
- “하느님께서는 복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의 영성적 부요함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해 오셨습니다. 그녀는 하느님 자비의 위대한 메시지와 창조주께 자신을 완전히 봉헌하게 하는 동기를 세상에 남겨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당신과의 신비적 만남을 통하여 그리고 관상기도라는 특별한 은총으로써 그녀가 당신의 자비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뚜렷한 선물을 그녀에게 주셨습니다. 복녀 파우스티나는 감사하게도 ‘놀라운 신비’이며 ‘성부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신비’인 하느님의 자비심에 대한 위대한 신비를 세상에 상기시켜 주었는데 그것은 오늘날 우리 각자에게 그리고 온 세상에 매우 필요한 것입니다.”
[ 3.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 ]
* 성 파우스티나에게 주어졌던 형태들에 따름 *
1) 하느님의 자비에 따른 신심의 핵심
< 의탁 >
- 의탁은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태도이다. 그것은 단지 망덕(望德)뿐 아니라 살아 있는 믿음과 겸손과 인내 그리고 죄에 대한 통회도 포함된다. 그것은 모든 상황에서 단순하게 천상 아버지의 자비로우신 사랑과 전능에 끝없이 의탁하는 어린 아이의 태도이다. 의탁은 하느님의 자녀가 지녀야 할 신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의탁 없이는 이 신심이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우리들이 우선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흠숭의 방법이 바로 의탁이기 때문이다. 의탁의 태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에 대한 다른 형태의 실천이 없이도 이미 하느님의 자비를 받을 수 있는 은총의 정신임을 보증해 준다.
-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나의 자비에 의탁하는 영혼들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은총들을 베풀기를 원한다.”(일기 687) “모든 영혼들이 이곳에서 생명을 얻게 하여라. 그들에게 큰 의탁으로 이 자비의 바다에 가까이 오게 하여라. 죄인들은 의로움을 얻고 올바른 사람은 더욱 선해질 것이다. 누구든지 내 자비에 의탁하는 사람은 임종의 시간에 나의 신적 평화로 가득 찰 것이다.”(일기 1520) 의탁은 이 신심의 핵심 또는 정신일 뿐 만 아니라 은총을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말씀하셨다. “내 자비의 은총은 하나의 그릇, 즉 의탁에 의해서만 전달될 수 있다. 더 많이 의탁할수록 더 많은 은총을 얻을 것이다. 나의 자비를 무한히 신뢰하는 영혼들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된다. 왜냐하면 나는 내 은총의 모든 보화들을 그들에게 부어 주기 때문이다. 그들이 많이 청하는 것이 나는 기쁘다. 그들에게 더욱 더 많이 주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이기 때문이다.(일기 1578)” “내 자비에 의탁하는 영혼은 참으로 복되다. 내가 친히 그 영혼을 돌보기 때문이다.”(일기 1273) “내 자비에 의탁한 어떤 영혼도 실망하거나 부끄러움을 당한 적이 없다. 나는 내 선함을 신뢰하는 영혼들을 특히 좋아한다.”(일기 1541)
< 자비 >
- 자비는 모든 인간 존재에 대하여 우리가 가져야 하는 태도이다.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말씀하셨다. “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자비의 행위들을 나는 요구한다. 너는 언제 어디서나 이웃에게 자비로워야 한다. 그것을 회피하거나, 변명하려하거나, 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웃에게 자비를 실천할 세 가지 방법을 주겠다.
첫째는 행동으로, 둘째는 말로써, 셋째는 기도로써 이다. 이 세 단계 안에 자비의 모든 것이 다 담겨져 있다. 그것은 나에 대한 사랑의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영혼은 내 자비에 찬양과 경배를 드리게 된다.”(일기 742)
- 이웃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의 태도 역시도 은총을 얻기 위한 조건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자비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심판 날에 나의 자비를 얻지 못할 것이다. 오, 영혼들이 영원한 보화를 쌓는 방법을 안다면 그들은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실천한 자비가 내 심판을 누그러뜨렸기 때문이다.”(일기 1317)고 말씀하시면서 복음의 말씀을 상기시키셨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흠숭하는 사람들이 매일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의 자비의 행위를 실천하기를 열망하셨다.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말씀하셨다. “내 딸아, 내 성심은 자비, 그 자체라는 것을 알아라. 이 자비의 바다로부터 온 세상에 은총이 흘러넘친다. … 나는 네 마음이 나의 자비의 거처이기를 원한다. 그리고 네 마음을 통하여 이 자비가 온 세상에 흘러내리기를 바란다. 네게 다가 온 모든 영혼들은 영혼을 간절히 갈망하는 나의 자비에 의탁하도록 하여라.”(일기 1777)2)
(책 표지의
상본/Image)
[ 하느님 자비의 상(Image) ]
< 해설 >
- 하느님 자비의 상(Image)은 파우스티나 수녀가 1931년 2월 22일에 보았던 환시에서 기인한다. 그 환시에서 예수님은 그러한 상(Image)이 만들어지고 그 아래에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라는 글을 넣기를 강하게 열망하셨다. 이 상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여 주고 있으며 그분의 손과 발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흔적이 있다. 그리고 옷에 가려진 그분의 꿰뚫리신 심장으로부터 두 가지의 붉은 색과 엷은 빛이 발산되고 있다. 그 의미에 대해 여쭈어 보았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엷은 빛줄기는 영혼을 의롭게 하는 물을 나타내고, 붉은 빛줄기는 영혼의 생명인 피를 의미한다. 이 두 빛줄기는 십자가에서 창에 찔린 내 심장이 열렸을 때 내 깊은 자비에서 흘러나온 것이다.”(일기 209) 다시 말해 이 두 빛줄기는 성사들과 예수님의 찔리신 옆구리에서 탄생한 교회, 그리고 성서에서 물을 상징하는 성령의 선물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이 보호 속에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정의의 손길도 그들을 붙잡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일기 299)라고 말씀하셨다.
- 이 상본은 하느님의 위대하신 자비를 보여 주고 있는데 그 자비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 안에서 완전히 드러나며 교회 안에서 성사를 통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난다. 이 상본은 은총을 얻기 위한 그릇이며 세상으로 하여금 하느님께 의탁하고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꼭 필요한 일임을 상기시키는 표지이다. 이 상의 아래 부분에 씌어진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라는 말은 의탁의 자세를 말해 준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상본은 내 자비의 요구를 상기시킬 것이다. 아무리 강한 믿음이 있어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일기 742) 이 상본에 대한 공경은 자비의 행위와 함께 바치는 믿음을 가진 기도에 기초를 둔다. 예수님께서는 이 상본을 공경함으로 얻게 되는 여러 가지 약속들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구원의 은총, 완덕에 이르는 은총, 행복한 임종의 은총, 그 밖에 필요한 은총들과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그분께 의탁하며 청하는 현세의 축복들이다.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릇을 하나 주는데 그들은 그 그릇을 가지고 자비의 샘에서 은총을 길으러 올 것이다. 그 그릇은 바로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라는 말이 씌어진 이 상(Image)이다.”(일기 327)
- “이 상본으로 나는 영혼들에게 많은 은총을 베풀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영혼들이 이 상본에 나오도록 하여라.”(일기 570) “나는 이 상본을 공경하는 영혼들이 멸망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이미 이 땅에서, 특히 임종의 시간에 원수를 누르고 승리할 것 또한 약속한다. 내가 친히 그들을 내 영광으로써 지킬 것이다.”(일기 48) “자비의 불꽃이 나를 태우고 있다. 나는 이 자비를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않을 때 나에게 얼마나 심한 고통을 주는지! … 앓고 있는 인류에게 나의 자비로운 성심에로 가까이 들라고 말하여라. 그러면 나는 그들을 평화로 채울 것이다.”(일기 1074) “인류가 신뢰를 가지고 내 자비에 의지할 때 까지는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다.”(일기 300) “내 자비에 대하여 세상에 말하여라. 모든 인류가 나의 헤아릴 수 없는 자비를 깨닫게 하여라. 이것은 마지막 시대에 대한 표징이다. 이것이 지나면 정의의 날이 올 것이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그들이 내 자비의 샘에 의지하게 하여라. 그들을 위해 쏟았던 내 피와 물의 공로를 입게 하여라.”(일기 848) “나는 공정한 심판관으로서 오기 전에 먼저 내 자비의 문을 활짝 연다. 내 자비의 문을 통과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내 정의의 문을 통과해야만 한다.”(일기 1146)
< 하느님 자비에 대한 의탁의 행위>
오, 지극한 거룩한 예수님, 주님의 선함은 무한하시며 주님 은총의 보화는 다할 길 없습니다. 저는 주님의 모든 업적들 위에 계신 주님의 자비에 끝없이 의탁하나이다. 저는 완덕을 향해 나아가고 노력하는데 있어서 제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봉헌합니다. 저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자비의 행위들을 함으로써, 특히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그리고 위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병자들,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애씀으로써 주님의 자비를 전파하기를 원합니다. 오, 예수님, 그럴 때에 저를 주님 자신의 것으로써 그리고 주님의 영광으로써 지켜주소서. 저는 때때로 두려움에 떨며 저의 연약함을 깨닫기도 하나 동시에 주님의 자비에 끝없이 의탁합니다. 오,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무한한 자비의 깊이를 알게 되도록 이끌어 주시어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주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에 신뢰를 두며 영원히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아멘.
3) 하느님의 자비 축일
< 부활 후 첫 주일 >
-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비 축일이 부활 후 첫 주일에 거행되기를 원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구속이라는 부활의 신비와 이 축일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이날의 전례는 하느님 자비의 신비 안에서 가장 완전하게 그분을 찬양한다. 자비축일은 하느님의 자비에 대하여 흠숭을 드러내는 날일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특별히 죄인들을 위한 은총의 날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는 이 축일에 위대한 약속들을 덧붙이셨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은 이날 영성체 할 때 얻게 되는 은총이다. 그 약속은 바로 죄와 벌에 대한 완전한 용서의 약속이다. 다시 말해 이 은총은 세례성사에서 우리가 받은 것과 동일하다. 이 축일의 위대함은 모든 사람, 심지어 바로 그날 회개한 사람이라도 그들이 청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부합되기만 하면 어떠한 은총도 얻을 것이라는 사실에 있다.
-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 상(Image)이 부활 대축일 후 첫 주일에 장엄하게 축성되기를 바란다. 그 주일은 자비의 축일로 제정될 것이다.”(일기 49) “내 자비의 축일이 모든 영혼들, 특히 불쌍한 죄인들의 피신처, 은신처가 되기를 바란다. 그날 나의 부드러운 자비의 심연이 열릴 것이며, 내 자비의 샘으로 다가 오는 영혼들에게 은총의 전 대양(大洋)을 쏟아 부을 것이다. 고해성사를 받고 성체를 영하는 영혼은 죄와 벌의 완전한 용서를 얻을 것이다. 그날 은총이 흘러내리는 거룩한 수문이 모두 열린다. 지은 죄가 아무리 악하다 하더라도 죄인들이 내게 다가오는 것을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여라.”(일기 699) “내 자비의 축일은 온 세상을 위한 나의 위로의 심연에서 나왔으며(일기 1517), 나의 부드러운 자비의 광대한 심연에서 확증된다.(일기 420)
< 축일을 위한 준비 >
- 이 축일을 위한 준비는 성금요일부터 시작하여 하느님 자비의 5단 기도를 9일 동안 바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파우스티나 성녀의 일기에는 또 다른 9일기도도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녀가 개인적으로 바칠 기도를 일러 주신 것이며 그녀 자신에 관한 약속들이 부가되어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파우스티나 성녀가 했듯이 이 9일 기도를 열정적으로 바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기도문을 포함시켰다.
< 하느님의 자비 축일 9일 기도 >
-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이 9일 동안 나의 자비의 샘으로 영혼들을 인도하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거기에서 힘을 얻고 원기를 회복하며, 그들의 고된 생활에서, 특별히 죽을 때에 필요한 모든 은총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 날마다 너는 나의 성심에로 다른 영혼들을 데려오고 나의 자비의 바다에 잠기게 하여라. 그러면 나는 모든 영혼들을 나의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하겠다. 날마다 너는 나의 쓰라린 수난의 힘에 의지하여 이 영혼들을 위해 나의 아버지께 은총을 간청하여라.”
* 기도의 내용(지향)은 각 날마다 다름.
( 첫째 날 ) “오늘은 모든 인류를, 특별히 모든 죄인들을 내게 인도하여라. 그리고 그들을 나의 자비의 바다에 잠기게 하여라. 이렇게 함으로써 너는 잃어버린 영혼들이 몰아넣은 크나큰 슬픔 속에 잠긴 나를 위로하게 될 것이다.”
(기도) 지극히 자비로우신 예수님, … … . 아멘. (하느님 자비의 5단 기도를 바침)
( 둘째 날 ) “오늘은 내가 사제들과 수도자들의 영혼을 인도하여라. 그리고 그들을 나의 깊은 자비의 심연에 잠기게 하여라. 그러면 그들은 나에게 이 극심한 수난을 인내하도록 힘을 준다. 수로를 통하듯이 그들을 통하여 인류 위에 나의 자비가 흘러가게 된다.”
(기도) 지극히 자비로우신 예수님, … … . 아멘. (하느님 자비의 5단 기도를 바침)
( 셋째 날 ) “오늘은 열심하고 충직한 영혼들을 모두 내게로 인도하여라. 그리고 그들을 나의 자비의 바다에 잠기게 하여라. 이 영혼들은 십자가의 길에서 내게 위로를 주었다. 그들은 쓰라린 바다 한가운데서 위로의 물방울이었다.”
(기도) 지극히 자비로우신 예수님, … … . 아멘. (하느님 자비의 5단 기도를 바침)
( 넷째 날 ) “오늘은 나를 믿지 않는 이들과 아직도 나를 알지 못하는 이들을 내게로 인도하여라.”
(기도) 지극히 동정심 많은 예수님, … … . 아멘. (하느님 자비의 5단 기도를 바침)
( 다섯째 날 ) “오늘은 갈라진 형제들을 내게 인도하여라. 그리고 그들을 나의 자비의 바다에 잠기게 하여라. 나의 쓰라린 수난 중에 그들은 나의 몸과 마음, 즉 나의 교회를 잡아 찢었다. 그들이 교회 일치로 돌아올 때 나의 상처들은 치유되고 그로써 나의 수난의 고통은 감소된다.”
(기도) 지극히 자비로우신 예수님, … … . 아멘. (하느님 자비의 5단 기도를 바침)
( 여섯째 날 ) “오늘은 온순하고 겸손한 영혼들, 그리고 어린이와 같이 단순한 영혼들을 내게 인도하여라. 그리고 그들을 나의 자비의 바다에 잠기게 하여라. 이 영혼들은 내 마음을 아주 많이 닮았다. 그들은 내가 비통한 고민 중에 빠졌을 때 나를 굳세게 해주었다. 나는 그들을 나의 제단에서 밤새워 기도하는 지상의 천사들처럼 보았다. 나는 그들 위에 은총의 폭포를 쏟아 주겠다. 겸손한 영혼만이 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 나는 겸손한 영혼들을 신뢰하며 돌보아 주겠다.”
(기도) 지극히 자비로우신 예수님, … … . 아멘. (하느님 자비의 5단 기도를 바침)
( 일곱째 날 ) “오늘은 특별히 내 자비를 공경하고 찬양하는 영혼들을 내게 인도하여라. 그리고 그들을 나의 자비에 잠기게 하여라. 그들은 나의 수난을 대단히 애통해하며 나의 마음 아주 깊은 곳까지 들어 왔다. 그들은 나의 동정심 많은 성심의 모상들이다. 그들은 저 세상에서 특별한 빛으로 밝게 빛날 것이다. 그들은 아무도 지옥 불에 가지 않을 것이고, 나는 특별히 그들 각자를 죽을 때에 보호하겠다.”
(기도) 지극히 자비로우신 예수님, … … . 아멘. (하느님 자비의 5단 기도를 바침)
( 여덟째 날 ) “오늘은 연옥에 갇혀 있는 영혼들을 내게로 인도하여라. 그리고 그들을 나의 자비의 심연에 잠기게 하여라. 그리하여 나의 성혈의 폭포가 그들을 태우는 불꽃을 시원하게 하여라. 그들도 모두 나에게는 매우 사랑스러운 영혼들이다. 그들은 나의 정의에 보상을 하고 있다. 내 교회의 보고에서 모든 은사를 끌어내어 그들에게 주어라. 오, 만일 네가 그들이 받는 고통을 안다면 그들을 위해 영신적 자선을 계속 제공할 것이며, 나의 정의에 대한 그들의 빛을 갚을 것이다.”
(기도) 지극히 자비로우신 예수님, … … . 아멘. (하느님 자비의 5단 기도를 바침)
( 아홉째 날 ) “오늘은 미지근한 영혼들을 내게 인도하여라. 그리고 그들을 나의 자비의 심연에 잠기게 하여라. 그 영혼들은 내 마음에 아주 고통스러운 상처를 입히고 있다. 그 미지근한 영혼들 때문에 올리브 동산에서 나의 영혼은 너무나 무서운 혐오감을 받아야 했다. 그들이야말로 내가 ‘아버지, 아버지의 뜻이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하고 외치게 된 이유였다. 그들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구원의 희망은 나의 자비 안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기도) 지극히 동정심 많은 예수님, … … . 아멘. (하느님 자비의 5단 기도를 바침)
< 자비 축일의 거행 (고해성사, 영성체) >
-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자비의 상(Image)이 장엄하게 축성되고 공식적으로 흠숭받기를 원하시며, 사제들이 하느님의 위대하고 헤아릴 수 없는 자비를 많은 영혼들에게 말하기를 바란다. 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주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이 위대한 선물들에서 선익을 얻도록 하기 위해 사람들은 은총의 상태(고해성사를 받은 상태)에 있어야 하고,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의 조건(하느님께 의탁하는 마음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행위)을 수행하여야 하며, 이 축일에 생명의 원천이신 분께로 나아가야 한다. 즉 영성체를 해야 한다.
(화해와 참회의 성사)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다. “네가 고해성사를 받을 때, 즉 내 자비의 샘으로 올 때 내 성심에서 흘러 나오는 피와 물이 항상 네 영혼에 흘러 들어가 영혼을 고귀하게 할 것이다 고해성사를 받으러 갈 때마다 큰 의탁으로 네 자신을 나의 자비에 완전히 잠기게 하여라. …”(일기1602) “영혼들에게 그들이 어디에서 위안을 찾아야 하는지를 말해 주어라. 위로받을 곳은 자비의 법정인 화해성사 안에서이다. 그곳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이 일어나고, 그 기적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기적을 얻기 위해 굉장한 순례를 하거나 특별한 의식을 거행할 필요가 없다. 믿음으로 나의 대리자인 사제의 발 아래 가서 자신의 비참함을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면 하느님 자비의 기적은 완전하게 증명될 것이다. 썩은 시체와도 같은 영혼, 그래서 인간의 관점으로는 회복의 희망도 없고 모든 것을 이미 잃어버린 것 같은 영혼도 하느님과 함께라면 그렇지 않다. 하느님 자비의 기적은 그 영혼을 완전하게 회복시킨다. 오, 하느님 자비의 기적을 이용하지 않는 영혼들은 얼마나 불쌍한가! 울부짖을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을 것이다.”(일기 1448)
(영성체) 자비의 축일을 위해 주님께서 준비해 두셨던 은총들은 온전한 미사참례와 연결된다. 이것은 죄와 벌에 대한 완전한 용서와 약속이 부가되어 있는 영성체를 포함한다.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다. “나는 모든 영혼들과 결합하기를 열망한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기쁨은 영혼들과 결합하는 것이다. 내가 영성체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갈 때 내 손은 그 영혼에 주고자하는 많은 은총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영혼들은 나에게 어떠한 주의도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홀로 남겨둔 채 다른 일들로 바쁘다. 오, 영혼들이 나의 사랑을 인지하지 못할 때 나는 얼마나 슬픈지!”(일기 1385) “오, 영혼들이 영성체에서 자신들을 좀처럼 나와 결합시키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얼마나 큰 괴로움인지! 나는 영혼들을 기다리고 있으나 그들은 나에게 무관심하다. … ” (일기 1447)
(파우스티나 성녀의 삶안에서의 영성체)
“나의 삶에서 가장 장엄한 순간은 다름아닌 영성체하는 때입니다. 나는 매일 영성체하기를 갈망하며 모든 영성체 때에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께 감사를 드립니다.”(일기 1804) “… 영원한 생명은 영성체를 통하여 이미 이 세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너에게 말해 주고 싶다. 매번의 영성체는 너와 영원무궁하신 하느님과의 친교를 더욱 가능하게 한다.”(일기 1810)
4) 하느님 자비의 5단 기도
< 해설 >
- 예수님께서는 1935년 빌니우스에서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하느님 자비의 5단 기도를 받아쓰게 하셨다. 이 계시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기도의 가치와 효력을 그녀에게 보여 주셨으며 그 기도에 따른 약속도 부과하셨다. 이 기도에서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영혼과 신성’을 바친다. 이 기도에서 우리는 세상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바치셨던 그분의 희생과 우리 자신을 결합시킨다. 하느님 아버지께 그분의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을 바침으로써 우리는 그분이 들으시기에 가장 설득력 있는 논증을 사용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온 세상을 위해 자비를 청한다.
-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이 구송하는 ‘우리’라는 말은 이 기도를 바치는 그 사람이거나 또는 지향을 두고 기도해 주어야 하는 그 사람이다. ‘온 세상’은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가리킨다. 이 기도로써 우리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게 되며 사랑은 의탁(신뢰)과 더불어 은총을 얻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조건이다.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셨다. “나는 이 기도를 바치며 나에게 청하는 모든 것을 베풀어 주는 것이 기쁘다.(일기 1541) 만일 그것이 내 뜻에 부합한다면.”(일기 1731) 그 특별한 은총은 임종의 시간에도 약속되어 있는데 그것은 행복하고 평화로운 죽음의 은총이다. 임종에 직면해서 신뢰와 인내를 가지고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이 기도를 바쳐 주는 사람도 이 은총을 얻게 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제들은 이 기도를 죄인들에게 구원의 마지막 희망으로서 권할 것이다. 아무리 굳어버린 죄인이라도 이 기도를 단 한 번이라도 바친다면 그는 나의 무한한 자비에서 은총을 얻을 것이다.”(일기 687)
< 하느님 자비의 5단 기도 방법 >
1. 주님의 기도, 성모송, 사도신경을 바친다.
2. 각 단이 시작되기 전에 있는 큰 묵주알에서 주님의 기도 대신에 다음 기도문을 바친다. “영원하신 아버지, 저희가 지은 죄와 온 세상의 죄를 보속하는 마음으로 지극히 사랑하시는 당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영혼과 신성을 바치나이다.”
3. 매단마다 성모송 대신에 다음 기도문을 바친다.
“예수님의 수난을 보시고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4. 5단을 모두 바친 후, 성모 찬송 대신에 다음 기도문을 세 번 바친다.
“거룩하신 하느님,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여,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세 번 반복)
5) 자비의 시간 오후 3시
< 해설 >
- “너는 3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를 듣거든 자주 나의 자비를 흠숭하고 찬양하며 너 자신을 나의 자비에 완전히 잠기게 하여라. 온 세상을 위해, 특별히 불쌍한 죄인들을 위해 나의 자비의 전능함을 청하여라. 그 순간에는 모든 영혼들을 위해 자비의 문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이다.”(일기 1320) “그 시간은 온 세상을 위한 자비의 시간이다.”(일기 1572)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겪으신 당신의 죽음의 시간(오후 3시)이 매일 공경받기를 바라신다. 그 시간은 자비가 정의를 누른, 온 세상을 위한 은총의 시간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일기 1572) 예수님께서는 그 시간에 우리가 당신의 지극한 고통의 수난을 묵상하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에 대한 사랑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시간에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흠숭하고 찬미하며 예수님의 수난공로로써 우리 자신, 온 세상, 그리고 특별히 죄인들을 위해 필요한 은총을 간청하기를 원하신다.
-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 시간에 십자가의 길을 바치도록 최선을 다하여라. 십자가의 길을 바칠 수 없거든 잠깐이라도 성당에 들러 성체대전에서 자비로 가득 찬 내 성심을 찬양하여라. 성당에 갈 수 없으면 네가 있는 곳에서 잠깐 동안이라도 기도하여라.”(일기 1572)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다. “그 시간에 너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일기 1572) 자비의 시간은 명백히 오후 3시다. 그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께 바로 기도드려야 하며 우리의 청원을 그분의 비탄스러운 수난의 공로에 호소해야 한다.
< 자비의 시간에 드리는 기도 >
오, 저희를 위한 자비의 샘이신 예수 성심에서 세차게 흘러나온 피와 물이시여, 저는 주님께 의탁합니다.(일기 187) 예수님, 주님께서는 순전히 저희에 대한 사랑으로 친히 그 극심한 수난을 겪으셨습니다. 아버지의 정의는 주님의 탄식 한 마디로 사그라졌으며, 완전히 자신을 낮추심은 오로지 주님의 자비와 그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의 업적입니다. 십자가상 죽음의 순간에 주님의 지극히 거룩한 곳이 열렸으며, 주님은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귀한 수난과 성심에서 나온 피와 물을 저희에게 주셨으며, 저희를 위해 자비의 지칠 줄 모르는 원천을 여셨습니다. 그것은 주님 자비의 전능함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모든 은총이 저희에게 흘러내립니다.(일기 1747)
오, 예수님, 영원한 진리이시며 저희의 생명이시여, 불쌍한 죄인들을 위하여 주님의 자비를 청합니다. 오, 지극히 사랑하올 주님의 성심이여, 연민으로 가득하시며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자비시여, 저는 주님께 불쌍한 죄인들을 위해 간청합니다. 모든 인류에게 상상할 수도 없는 은총의 빛이 쏟아져 나오는 자비의 샘이신 오, 거룩하신 성심이여, 불쌍한 죄인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오, 예수님 주님의 쓰라린 수난을 잊지 마시고 주님의 지극히 고귀한 성혈의 그 값진 대가로 되찾은 영혼들을 잃어버리는 것을 허락치마소서.
십자가 위에 팔을 펼치셨던 오, 예수님, 간청하오니, 모든 일에 있어서 언제 어디서나 거룩하신 아버지의 지극히 거룩한 뜻을 충실히 실천할 수 있도록 제게 은총을 허락해 주소서. 하느님의 뜻이 수행하기에 매우 고된 것이고 어려운 것 같이 보일 때일수록 더욱 간절히 청하오니, 예수님, 주님의 상처로부터 저에게 힘과 능력을 내려 주시어 “오, 주님,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라는 기도를 제 입술에서 거듭 바치게 하소서.
오, 세상의 구원자이시여, 인간의 구원을 사랑하시는 분이시여, 주님께서는 그 끔찍한 고문과 고통 속에서도 자신은 잊고 오직 영혼의 구원만을 생각하신 분이시니, 오 지극히 동정심 많은 예수님, 성부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따라 구원사업에 있어 주님을 도우며 온전히 영혼들을 위해서만 살아갈 수 있도록 제 자신을 잊어버릴 은총을 제게 베풀어 주소서.(일기 1265) 예수님, 주님께서는 숨을 거두셨으나 영혼들을 위하여 생명의 원천은 세차게 흘러 나왔으며 자비의 바다는 온 세상을 위해 열렸습니다. 오, 생명의 샘이시여,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자비시여,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감싸시면서 저희에게 자신을 온전히 비우셨나이다.”(일기 1319)
6)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의 전파
- “나는 내 자비의 영광을 전파하는 연혼들의 전 생애를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기를 돌보듯이 보살펴 줄 것이며, 그들의 임종 시에 나는 심판자가 아닌 자비로운 구세주로 그들을 대할 것이다.”(일기 1075) 이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흠숭을 전파하기를 촉구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행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전 생애를 통하여 그리고 임종 시에 어머니가 아기를 돌보아 주듯 보호해 줄 것을 약속하셨다. 또한 사제들에게는 독자적인 약속을 주셨다. “사제들이 나의 헤아릴 수 없는 자비에 대하여 그리고 죄인들에 대한 내 성심의 연민에 대하여 얘기할 때 굳어버린 죄인들도 그들의 말을 들으며 회개할 것이다. 나의 자비를 선포하고 찬양할 사제들에게 나는 경이로운 힘을 줄 것이며 그들의 말에 기름을 부어 그들이 얘기할 대상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일기 1521)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흠숭과 사도직의 기초는 이 신심의 정신인 선하심과 전능하심에 대한 어린아이와 같은 의탁 그리고 이웃에 대한 활동적인 사랑의 정신을 자신의 삶으로 증거하며 살아가는 데 있다.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자비에 의탁할 것을 권고하면서 내 자비에 영광을 주고 그 흠숭을 전파하는 모든 영혼들은 임종 시에 공포를 체험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자비가 그 마지막 전투에서 그들을 감싸 줄 것이다.”(일기 1540) 오, 영원하신 사랑이시여, 주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영혼들이 주님을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사제가 되어 절망에 빠져 있는 죄로 가득찬 영혼들에게 주님의 자비에 대해서 끊임없이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영혼들에게 주님을 알리기 위해 선교사가 되어 미개한 나라 사람들에게 주님께 대한 신앙의 빛을 비추고 싶습니다. 저는 그들을 위해 제 자신을 완전히 소멸시키기를 원하며, 오 예수님, 주님의 사랑과 불멸하는 영혼들의 사랑을 위해 제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부정함으로써 순교자의 죽음을 얻고 싶습니다. 위대한 사랑은 작은 것을 큰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일기 302) 저의 큰 갈망은 모든 영혼들이 주님을 자신의 영원한 행복으로 인식하고, 주님의 선하심을 믿게 되며, 주님의 무한하신 자비에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일기 305)
[ 4. 성녀 파우스티나의 일기에서 발췌한 기도문 ]
1) 하느님의 자비에 드리는 찬미
2) 성체 대전에서
3) 감사드리며
4) 세상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며
5) 성 교회와 사제들을 위하여
6) 조국을 위하여
7) 하느님의 사랑을 얻기 위하여
8) 하느님께 대한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9) 의탁의 기원
10) 의탁의 기도
11) 이웃에게 자비로워지기 위한 은총을 구하며
12)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13) 고통의 시간에
14) 선종을 위하여
15) 하느님의 어머니께
# 기도문 발췌 메모
기도문 1) 하느님의 자비에 드리는 찬미
하느님의 사랑은 꽃이며 자비는 그 열매이다. 이를 의심하는 영혼은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이 찬미를 듣고 그분께 의탁해야 한다.
○ 성부의 품에서 쏟아져 나오는 하느님의 자비여 ●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 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속성이신 하느님의 자비여 ●
○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무한한 신비이신 하느님의 자비여●
○ 지극히 복되신 삼위일체의 신비에서 쏟아져 나오는 샘이신 하느님의 자비여 ●
○ 인간이나 천사의 어떤 지력으로도 통찰할 수 없는 하느님의 자비여 ●
○ 모든 생명과 행복이 흘러나오는 원천이신 하느님의 자비여 ●
○ 천국보다 더 좋으신 하느님의 자비여 ●
○ 기적과 놀라운 일들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자비여 ●
○ 온 우주를 둘러싸신 하느님의 자비여 ●
○ 강생하신 말씀이신 하느님의 자비여 ●
○ 예수님 성심의 열려진 상처에서 흘러나온 하느님의 자비여 ●
○ 저희를 위하여, 특히 죄인들을 위하여 예수님의 성심 안에 있는 하느님의 자비여 ●
○ 성체성사를 제정한 때에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자비여 ●
○ 성교회의 설립에서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자비여 ●
○ 거룩한 세례성사에서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자비여 ●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저희의 의화에서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자비여 ●
○ 저희의 일생을 통하여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여 ●
○ 특별히 임종 시에 저희를 감싸 안으시는 하느님의 자비여 ●
○ 불멸의 생명을 저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여 ●
○ 저의 삶을 모든 순간에 저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여 ●
○ 지옥불에서 저희를 보호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여 ●
○ 냉담한 죄인들의 회개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자비여 ●
○ 천사들과 성인들에게도 이해할 수 없이 무한하신 하느님의 자비여 ●
○ 하느님의 모든 신비가운데에서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자비여 ●
○ 모든 비참함에서 저희를 끌어 올리시는 하느님의 자비여 ●
○ 저희의 행복과 기쁨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자비여 ●
○ 저희를 무에서 유로 불러내어 주신 하느님의 자비여 ●
○ 주님의 손으로 하신 모든 일들을 감싸 안으시는 하느님의 자비여 ●
○ 손수 창조하신 만물의 영광이신 하느님의 자비여 ●
○ 저희 모두가 잠겨 있는 하느님의 자비여 ●
○ 고뇌에 찬 마음에 감미로운 위안이신 하느님의 자비여 ●
○ 절망한 영혼들의 유일한 희망이신 하느님의 자비여 ●
○ 마음의 안식이며 두려움 가운데 평화이신 하느님의 자비여 ●
○ 거룩한 영혼들의 기쁨이며 황홀함이신 하느님의 자비여 ●
○ 모든 희망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키시는 하느님의 자비여 ●
기도문 4) 세상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며
오, 지극히 자비로우시고 무한히 선하신 하느님, 오늘날 온 인류가 그 비참함의 심연에서 주님의 자비, 주님의 연민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오 하느님, 이 세상은 주님께 부르짖는 많은 비참한 소리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느님, 이 세상 유배자들의 기도를 거절하지 마소서! 오, 저희의 이해를 뛰어넘는 선이신 주님, 저희의 비참함을 잘 아시고 저의 힘으로는 주님께 올라갈 수 없음도 아시는 분이여, 주님께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에게 주님의 은총을 미리 예견하여 주시고 주님의 자비를 증가시켜 주시어 저희가 일생동안, 그리고 임종 시에 주님의 거룩한 뜻을 충실히 행하도록 하소서. 주님 자비의 전능한 힘으로 저희 구원을 방해하는 적들이 던지는 창으로부터 저희를 보호하여 주시어 저희가 주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지고 오직 주님께만 알려진 날인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게 하소서. 예수님, 저희의 모든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얻기를 바라나이다. 주님께서는 저희 희망이시기에 저희는 주님의 자비로우신 성심의 열린 문을 통하여 천국으로 나아가고자 하나이다.(일기 1570)
기도문 14) 선종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던 오, 자비로운 예수님, 저의 임종이 시간을 잊지 마소서. 창에 찔려 열리셨던 오, 지극히 자비로우신 예수 성심이여, 제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저를 보호해 주소서. 저희를 위한 헤아릴 수 없는 자비의 샘이신 예수 성심에서 쏟아져 나온 오, 피와 물이시여, 저의 죄와 잘못을 깨끗이 씻어 주소서. 오, 자비의 볼모로 돌아가신 예수님, 저의 임종의 시간에 하느님의 의노를 막아주소서.(일기 813) 오, 저의 예수님, 제 유배생활의 남은 날들을 온전히 주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따라 보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저는 저의 고통과 비탄과 마지막 고뇌를 주님의 거룩하신 수난에 일치시킵니다. 또한 영혼들을 위하여 그리고 죄인들의 영혼을 위하여 하느님의 풍성하신 자비를 탄원하고자 온 세상을 위해 제 자신을 내어 놓습니다. 저는 굳게 신뢰하며 자비 자체이신 주님의 거룩한 뜻에 제 자신을 온전히 맡깁니다. 주님의 자비는 임종의 시간에 저를 위한 모든 것입니다. (일기 1574)
기도문 15) 하느님의 어머니께
오 마리아님, 저의 어머니시며 모후시여, 저는 저의 영혼과 육신, 삶과 죽음 그리고 그에 따른 모든 것을 어머니께 바칩니다. 저는 모든 것을 어머니의 손에 드립니다. 오, 저의 어머니, 제 영혼을 어머니의 순결한 망토로 덮어 주시고 마음과 영혼과 육신을 정결케 하는 은총을 구해 주소서. 어머니의 능력으로써 모든 적들로부터 저를 보호해 주소서. … 오, 사랑스런 백합이시여! 저의 거울이신, 오 저의 어머니시여!(일기 79) 하느님의 어머니, 어머니의 영혼은 비탄의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어머니의 아이를 보시고 고통을 견디고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제 영혼이 고통 때문에 부수어지지 않도록 강하게 해 주소서. 은총의 어머니, 하느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법을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일기 315) 오, 사랑하올 어머니, 저는 어머니를 제 삶의 모범으로 삼습니다. 저에게 어머니는 빛나는 여명이십니다. 어머니 안에서 저는 제 자신을 잃고 황홀에 빠집니다. 오 어머니, 티 없으신 동정녀시여, 어머니 안에서 하느님의 광선이 반사됩니다. 그 광채 한가운데서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주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오, 원수들에게서 저를 보호하시는 저의 방패, 저의 피난처시여! 보호자이시며 요새이시여! (일기 1232)
[ 5. 성녀 파우스티나의 중재를 통하여 은총을 얻기 위한 기도 ]
오! 예수님, 성녀 파우스티나의 마음을 당신의 무한하신 자비에 대한 깊은 흠숭으로 가득 채우셨으니, 당신의 거룩하신 뜻이라면, 성녀 파우스티나를 통해 청하는 … (지향을 바친다)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당신의 자비를 바랄 수 없는 죄인인 저이지만, 성녀 파우스티나의 중재를 통해 아이처럼 당신께 의탁하며 기도드리오니, 성녀의 희생과 극기의 정신을 돌아보시고 은총을 허락하여 주시어 성녀의 덕행이 빛나게 하여 주소서.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성녀 파우스티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124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125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 책 이름 : 레지오 마리애 ] - 월간지 창간호
- 지은이(편집인) : 남중화
- 운영위원 : 안상인 신부 등 7명
- 펴낸데 : 성모출판사
- 펴낸이(발행인) : 한국세나뚜스협의회
- 출판일 : 1988. 8. - 97p
- 내 용 : 가톨릭교회(천주교)의 평신도 사도직 단체인
‘레지오마리애(Legio Mariae)’의
월간지(창간호/1988.8)
[ 표지의 글 ]
- 그리스도의 현존에 힘입어(마태 28,2) 교회는 세계 종말을 향하여 나아가며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러 나아간다. 그러나 교회는 세기를 통해 – 나는 이점을 강조하는데 - “신앙의 순례길을 미리 걸으셨고, 십자가상의 아드님과의 일치를 충실히 보존하신”
마리아께서 이미 걸으셨던 그 길을 걷는 것이다.
- 마리아여! 당신을 통해 세상에 구원이 오고 주님 앞에 영광을 누리시니 정녕 복되시나이다.
(창간호/1호 표지 사진)
[ 차 례 ]
- 창간사, 격려사/ 성체대회, 성모승천 특집/ 지상 성지순례
(세계성지, 한국성지)/
영성/ 특별교리 연재/ 어느 사제의 길/ 레지오의 성인/
영적 지도자 소개/ 훈화 (5)/
기자 탐방(3)/ 글 모음/ 교본연구/ 연재/ 평의회 회의록/ 레지오소식 등
[ 창간 축사 ]
< 북한에 있는 우리 민족에게도 복음을 >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35주년을 맞이하여, 이제껏 서울 . 광주 양 세나뚜스가 각각 발행하던 회보를 ‘레지오 마리애 월보’라는 이름 하에 합동으로 발행하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성모 마리아의 깃발 아래 모여 조용하게 드러냄 없이 희생적으로 봉사하는 레지오 단원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레지오 마리애는 그 어느 평신도 단체보다 가장 좋은 사목의 협조자로 발전을 거듭하여 풍성한 사랑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마리아의 겸덕과 신덕을 본받아 꾸준한 기도와 활동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며 이 땅의 민족 복음화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조직적인 체계 안에서 개인 성화를 통하여 그리스도 왕국 확장을 위한 공로가 매우 큽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하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어 밀알로서의 역할에 충실해 왔습니다. 저는 레지오 단원들이 북한에 있는 우리 민족에게까지도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기도하며 활동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이 그리스도 안에 한 형제로 만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서로 나누는 축복된 시간이 하루 빨리 찾아 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월보가 단원 여러분에게 신앙의 활력을 불어 넣고, 활동과 기도의 길잡이가 되어 주기를 바라며, 레지오 단원 여러분이 하느님의 기쁨과 평화에 잠기기를 축원합니다. - 추기경 김수환
[ 격려사 ] < 신앙의 순례를 인도하시는 마리아 >
- 레지오 단원들은 “나는 오로지 당신의 것이옵니다.”라고 선서함으로써 전적으로 마리아께 봉헌된 사람들이다. 그것은 물론 마리아의 손을 통해 그리스도께 봉헌되는 것을 뜻한다. 레지오 단원들은 마리아를 사령관으로 모신 무적의 군대로서 그리스도의 왕국을 위해 악마의 세력을 무찌르는 영신적 전투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강생 2,000주년을 경축하는 대성년을 준비하기 위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 성모성년을 반포하셨다. 2천년의 인류 역사 속에서 하느님 나라의 희망을 가지고 신앙의 순례를 해 오고 있는 교회가, 이 순례길의 선두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어 주시는 성모 마리아를 바라보며 그분께 더욱 의탁하고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 천사의 보호를 받은 마리아는 하느님의 놀라운 제언과 약속을 순종과 믿음으로 받아 들이셨다. “주님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하신, ‘순종하는 믿음으로’ 천주 성자, 구세주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셨다. 엘리사벳의 인사 말씀과 같이,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기에 그는 정녕 복되신 분이 되신 것이다. 마리아의 일생은 당신 아드님과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일관된 생활이었다.
- 마리아의 믿음은 예수의 십자가 밑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하느님의 섭리대로 그 십자가 밑에 서 계셨던 마리아는 “당신 외아드님과 함께 심한 고통을 당하셨고 아드님의 제사를 모성애로써 함께 바치셨으며, 당신이 낳으신 희생자의 봉헌을 사랑으로 동의하셨다.”(교회헌장 58항)이렇게 하여 마리아는 아드님과의 일치를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충실히 보존하셨던 것이며, 이 일치는 마리아가 영보 때 천사의 계시를 받아들였던 그 믿음과 똑같은 믿음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영웅적인 믿음과 모성적 사랑으로 당신 아드님의 구원 성업에 완전히 참여하신 마리아는, 그 십자가 밑에서 모든 믿는 이들, 믿음으로 구원되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가 되셨다. 또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아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며 교회의 발족을 이룰 때, 당신 아드님의 첫 제자가 되신 성모님이 거기에 주재하고 계셨던 것이다. … 이번 성모성년이 특별히 레지오 단원들에게 마리아의 순종하는 믿음을 본받고, 그리스도 왕국을 위한 활동에 더욱 분발하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
[ 창간사 1 ]< 많은 협조와 뜨거운 성원 있기를 … >
- 우리나라에 두 개의 세나뚜스가 설립된 것은 이 땅의 레지오 마리애에 대한 성모 마리아의 사랑과 하느님 축복의 표시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나이어야 할 국가 평의회가 두 개나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레지오가 특별하게 성장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양 세나뚜스에서는 그간에 협의를 통해 레지오 제반 양식의 통일화와 새 교본 출판 등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서로간의 정보를 교환하고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질적 향상과 활동상의 고무적인 격려를 위하여 월보를 합동으로 제작하게 된 것은 자랑할 만한 공동 활동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30만이 넘는 레지오 단원들은 양적인 면이나 질적인 면에서 이 나라의 복음화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고 사목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평신도들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조직과 하느님 사업에 대한 열성은 꾸준한 발전을 지속하여 조직적인 관리와 교육으로 더더욱 레지오단원들의 자질을 굳건히 할 수 있다. 이러한 뜻에서 발간되는 월보가 성공적인 발전을 거듭하기 위해서는 단원들의 기도와 협력을 필요로 한다. - 안상인 신부(서울 세나뚜스 영적 지도자)
[ 창간사 2 ]< ‘레지오 마리애’ 창간을 축하하며 >
- 교황 바오로 2세께서 반포하신 성모성년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 때를 즈음하여 그동안 레지오 발전과 숫적 증가로 인한 필요성에 의해 광주와 서울 세나뚜스가 협의하여 합동으로 레지오 마리애 월보를 출간하게 된 것을 경하해 마지않는다. 레지오 마리애 월보의 출간은 한국의 사회 복음화와 가정 복음화에 앞장서는 레지오 사도직의 요구와 한국 교회와 사회의 선교지로서 문서 전교의 일익을 담당하리라 예단하고 기대하면서 앞으로의 발전에 성원을 보낸다. … 레지오의 길은 기도와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길이다. 진리와 정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투신하는 것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따른 길이다. 레지오 단원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우리의 평화’ 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행복한 하느님의 자녀”(마태 5,9)라는 것을 가장 큰 명예요 긍지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레지오 단원들은 평화의 사절들이다. 하느님 자녀의 신분을 가진 우리들은 진리가 주는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하며 형제적 사랑의 유대로 결합된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들이다. … 레지오 제대에 모신 ‘무염시태 성모상’은 뱀의 머리를 짓밟고 서 계신다. 성모 마리아를 사령관으로 모시는 우리 레지오 단원은 사탄의 세력, 악의 세력, 불의의 세력을 꺾고 정복하는 데 앞장서야 할 용감한 여인의 정의로운 후예들이다. 모든 악에서 우리 자신과 이웃과 세상을 보호하는 성모군대에게 레지오 마리애지는 큰 힘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 조철현 신부
[ 창간사 3 ]< 아시아 북음화의 길잡이 >
- 지난 35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발전해 온 한국 성모군대는 교회의 발전과 민족 복음화에 헌신 봉사해 왔다. 오늘의 막강한 성모군대가 존재하게 된 것은 그동안 공경하올 주교님들의 따뜻한 사랑과 사제와 수도자들의 정성어린 지도와 보살핌이라 사려 된다. 또한 초창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레지오 사도직의 소명의식으로 일생동안 성실히 복무를 수행하며 봉사하여 온 선배들의 헌신적인 정신과 용맹스런 활동의 소산이라 믿는다. … 아시아의 복음화는 한국의 성모군대가 담당해야 한다. 성모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머지않아 모스코바 상공에 레지오의 깃발이 펄럭일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성모님의 사업을 일사분란하게 추진하기 위한 매체로서 ‘레지오 마리애’ 월보의 창간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 많은 기대와 관심 속에 창간된 월보는 아주 놀라운 큼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 땅을 변화시키고 아시아를 변화시키려는 큰 힘을 창출해 낼 것이다. 성모님께 바치는 불타는 충성심과 사명감을 함양하는 지침서의 역할도 할 것이다. - 김영대 루스(광주 세나뚜스 단장)
[ 창간사 4 ]< 주 성모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
- 세계 속의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35년이란 기간 동안에 양적으로 급진적인 성장을 했음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질적인 면으로 볼 때는 아직 많이 뒤떨어져 있으며 단원 각자가 레지의 참된 정신을 배워서 생활화하고 모든 규칙을 숙달하고 활동 계획을 보완해야 할 점도 많고 조직적으로 노력 할 점도 수 없이 많다고 본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자기 자신의 성화를 통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전교사이다. ‘레지오 마리애’ 월보가 창간되게 된 주된 목적은 단원 각자의 질적인 향상을 도모하고 레지오의 소식을 신속 정확하게 듣고 알며 각 단원들의 활동 체험과 평의회의 좋은 계획들을 서로 나누고 배우기 위한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레지오 마리애’ 월보는 다른 잡지와는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첫째 특징은 레지오 마리애 광주와 서울 세나뚜스의 회의록이 동시에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둘째로, 단원들이 전교하는데 필요한 길잡이가 되는 전교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셋째로는 단원들이 각자의 신앙을 굳세게 하는데 절대 필요한 내적 성화를 돕는 영성지로서의 특징을 갖고 있다. 넷째로는 각 평의회 영적지도자들의 훈화를 많이 수록하고 있기 때문에 주회 때 이 훈화를 활용할 수 있다. 이외에 지시, 사업, 활동 등 참고 될 사항들을 골고루 수록함으로서 레지오의 관리와 운영의 지침서가 될 것이다. 모든 단원들에게 참으로 유익한 월보가 되리라 믿는다.
- 남중화 요셉(서울 세나뚜스 단장)
[ 1. 성체대회 특별기고 ]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
서울 제44차 세계성체대회 1989.10.5-8
‘모든 이에 대한 사랑으로 쪼개어진 생명의 빵’
- 인류는 그 어느 때 보다도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평화를 갈망하면서도 정작 그 길을 가지 못하는 궁지에 빠져 있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참된 평화를 이룰 수 없다. 참된 평화는 힘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참된 평화는 하느님의 말씀 안에 있다. 진정 하느님의 말씀만이 죄와 고통 중에 있는 인류가 우애와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원리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깨우치고 실행하는 것이 이 땅에 평화를 이루는 길이다. 주님은 산위에서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 태초에 하느님이 세상을 지으셨을 때 세상은 아름다웠고, 사랑스럽고 평화가 가득 넘치는 곳이었다. 그래서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은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으로 세상을 지으셨고, 사랑으로 세상을 채우셨다. 세상은 서로 조화를 이루었고, 부족함이 없이 그대로 평화였다.
- 불행하게도 이 사랑의 질서가 깨어졌다. 창세기 3장은 설화의 이야기 형태를 통하여 인류의 타락을 밝혀준다. 하느님께서는 “동산 한가운데에 생명의 나무를 돋아나게 하셨다.” ‘한가운데’는 그 생명의 나무가 모든 이를 위한 것임을 드러낸다. 그러나 공유하여야 할 것을 함께 나누어 가지기 보다는 혼자서만 가지려 했던 것이 인간의 원죄이다. 이렇게 욕심 때문에 사랑의 질서는 깨어지고 불화는 시작되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을 만들어 주었고 모두에게 불행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죄의 역사이다. 서로의 미움은 시기, 질투, 폭력에까지 이르렀고 하느님만의 영역인 생명까지도 빼앗는 일이 벌어진다. 카인은 하느님을 독점하려고 동생 아벨을 죽인다. 요즈음의 우리들은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얻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자신의 생명까지도 빼앗는 것을 본다. 자기 혼자만 차지하려는 것이 죄의 뿌리이다.
- 인간의 욕심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인간을 죄의 고통 속에 얽매인 인간을 구해 내려 하신 것이 구원의 역사이다. 반면에 구원의 인간에게 있어 죄의 역사이었지만 동시에 사랑의 질서를 회복시켜 주시는 하느님 자비의 역사이기도 하다. … 도둑의 심보가 혼자 차지하려는 욕심이라면 나눔의 실천이 도둑을 막는 방법이다. 싸움을 말린다고 함께 싸울 수는 없다. 누군가가 얻어맞고서도 참아야 한다. 억울하지만 삶을 내어주고, 양보해야 한다. 그래야 싸움이 끝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방법이고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기쁜 소식’이다. 하느님은 이 일을 당신의 외아드님께 맡기셨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당신의 삶과 죽음과 부활로써 우리의 죄 갚음과 구원의 보증을 마련하셨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만찬’에 담겨져 있고 오늘 우리가 거행하는 미사를 통하여 우리 안에 이루어진다. 성체대회를 통하여 기념하고 새롭게 되새기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행사로서가 아니라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는 은총으로써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 유원봉 신부
< 성체 대회 공식 기도문 >
자비로우신 아버지, 세계 성체대회를 맞으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드리오니
우리로 하여금 주 예수의 성체와 한 몸 되어 그 생명의 힘으로 사는 사람 되게 하소서.
또한 성찬의 신비에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그 한없는 사랑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고 나눔으로써 주님 안에 하나 되고, 주님의 평화를 온 세상에 전하는 도구되게 하소서. 주님의 평화를 온 세상에 전하는 도구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평화의 모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세 번) 한국 순교 성인 성녀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 2. 성모승천 대축일과 레지오 마리애 ]
- 이 축일은 성모 마리아가 지상에서의 생활을 마친 후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로 올라갔음을 기념하는 날로서 이는 초기 교부들의 가르침으로 그리스도 신자들은 일찍부터 믿어 왔었다. 1859년 교황 비오 9세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잉태되는 첫 순간,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미리 내다보신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에게 특은을 베푸시어 원죄에 물들지 않게 하셨다.”라고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리를 선포하셨다.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는 “원죄가 없으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현세 생활을 마친 후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늘로 올라가 영광을 입으셨다는 것을 믿을 교리로 밝히고 이를 선언하는 바이다.” 라고 하시며 믿을 교리로 반포하셨다. 그러므로 원죄 없으신 마리아에게 부활이 지연 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승천 신비를 이해하기 위하여 중요한 것은 새로운 하와라는 점이다. 첫 하와는 생명의 어머니가 되었고 마리아는 생명의 어머니, 신비체의 어머니가 되셨다. 첫 하와는 하느님을 거역하여 범죄에 협력함으로써 인류에게 죽음을 초래하였으나 새로운 하와인 마리아는 천사의 영보에 순명하여 새로운 아담을 잉태하였고 탄생, 첫기적, 십자가의 죽음, 승천, 성령강림에 이르기까지 구속사업의 완성에 협력함으로써 인류에게 생명을 가져왔다. 이같이 마리아는 구속 사업에 협조했으니 부활의 영광에 참여함도 당연하다.
- 원죄 없으신 마리아, 예수와 더불어 죽음에서 승리를 거두고 부활하신 마리아를 사령관으로 모신 레지오 단원들은 그 장군의 부하답게 마리아의 신앙과 순명과 고통에의 참여로 그의 덕을 본받아야 한다. 첫째로 마리아는 믿음의 본보기이다. 천사의 아룀은 인간적으로 도저히 믿기 어려웠지만 주님의 말씀이었기에 믿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라고 한 것이다. 둘째로 마리아의 순명이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시를 바랍니다”(루카 1,38)하며 죽든 살든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바랐다. 이는 겟세마니에서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 지게하소서.”(루카 22,42)하고 피땀 흘리며 기도하신 예수님을 연상시킨다. 셋째로 성모님은 “은총을 가득한 이”(루카 1,28)였으며, 또한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 분”(루카 1,42)”이셨지만 누구보다도 이 세상에서 고통을 가장 많이 받으신 분이시다.
-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를 닮은 새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일종의 혁명과업이요. 창조 사업의 연속이며 이것이 바로 구원사업이다. 레지오 단원들은 먼저 자신들이 예수를 닮고, 나아가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닮게 하는 혁명 과업에 투신하는 사람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모님의 굳센 신앙과 주님의 뜻이라면 두려워하지 않고 따르는 순명과,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에도 굴하지 않는 덕을 본받아야 겠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닮은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성모님께 의탁하는 방법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니 모든 사람들이 더욱더 성모님을 공경하고 의탁하도록 해야 겠다. 그리고 무염시태 축일에 일본 패망의 전쟁이 일어나고 성모승천 대축일에 이 땅에 해방이 왔다는 것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라고만 할 것이 아니다. 성모님을 주보로 모시고 있는 우리 한국을 성모님께서 특별히 생각하시고 배려하고 있음이라 하겠다.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성모님께 묵주기도로 화답하며 온 인류의 그리스도화를 위한 성모님의 소명에 적극적으로 동참함으로써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이룩하도록 분발하는 것이 이 축일을 맞는 레지오의 태도일 것이다, - 배문한 신부
[ 3. 성모 신심과 성모님의 메시지 ]
< 1. 교회의 신심(信心) >
- 성서에서 나타난 구원사는 바로 그리스도 중심의 역사이다.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이자 절정이고 만민이 오직 그분만을 통해 성부를 알고 일치함으로써 영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원사는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역사(구약시대)요, 또 오신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이 성취되고 있는 역사(신약시대)이다. 우리가 성모 신심과 성모의 메시지를 거론함도 결국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가 마리아와 어떤 관련을 맺으며 또 마리아를 통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말하는 것이 된다. 즉 그리스도가 없는 성모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심이란 하느님을 섬기려는 인간의 경건한 태도와 자세를 뜻한다. 교회에는 예부터 보편적으로 실천해 온 공적 신심이 있다. 예를 들면 삼위일체에 대한 신심, 십자가에 대한 신심, 예수 성체 성혈에 대한 신심, 예수 성심 신심, 성모와 다른 성인들에 대한 신심 등이다. 이러한 공적 신심 외에도 전례와 연관된 신심행위인 성체조배, 성시간 호칭기도 등이 있고, 사적 신심인 묵주기도, 성월기도 등이 있다. 궁극적으로 모든 신심의 대상은 하느님 자신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신비와 관련된 모든 특별한 신심은 오직 하느님께 대한 공경을 북돋우고 풍요케 함이 목적이다. 그런데 신심의 내용은 언제나 신앙의 내용(계시진리)과 일치해야 하고, 신앙의 내용을 정확하고 올바로 표현해야 한다. 성모 신심도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 2. 성모 신심의 근거 >
- 성모 마리아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분이다. 구약 백성이 기다리던 메시아를 세상에 낳으심으로써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되게 하셨고, 시종일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전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협력하신 충실한 여종이었다. 교부들은 마리아를 첫 여인 하와와는 달리 세상에 축복과 영생을 가져온 새 하와라고 일컬었다. 우리가 마리아를 공경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나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마리아가 바로 하느님의 모친이란 점이다. 인간으로 강생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하느님이시기에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바로 하느님의 모친이 되신 것이다. 우리 교회는 3세기부터 마리아를 하느님의 모친으로 불렀고, 5세기 에페소 공의회를 계기로 이 칭호를 성모께 대한 가장 탁월한 공식 호칭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원죄없이 잉태되신(1854년 12월 8일 비오 9세께서 신앙교리로 선포) 동정녀 잉태와 평생 동정성(모성과 함께 평생 동정성은 모든 여성 중 마리아께만 주어진 특전임), 몽소승천(1950년 11월1일 비오 12세 교황께서 신앙교리로 선포)이 바로 그것이다. 그뿐 아니라 일생을 죄 없이 거룩하게 사셨고 하늘에 오르신 후 천상의 모후가 되셨다. 마리아는 성부의 따님, 성자의 어머니, 성령의 정배로서 삼위일체인신 하느님의 완전성을 가장 완벽하게 반영하는 피조물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의 모친이자 만민의 어머니이다. 여기에서 마리아의 직능(職能)이 나온다. 마리아는 전구자(傳求者), 은총의 중개자, 교회의 보호자로 나타나는 것이다. 머리인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는 하나이므로 그리스도의 모친은 바로 우리의 모친이시고 영원히 우리를 보살피는 분이 되신다.
< 3. 오늘날의 성모신심과 메시지 >
- 성모신심이란 마리아의 탁월성과 성모께서 하느님과 결합하는 월등한 방법을 인정하고, 성모께 대한 자녀다운 애정을 느끼며 그분의 덕행을 본받음을 뜻한다. 이 신심은 첫째로 성모의 존엄성을 경외하고 인정하는 공경 행위, 둘째로 성모의 자애로운 전구를 청하는 기원, 셋째로 성모의 덕행을 본받으면서 성모께 우리 자신을 바치는 봉헌의 세 요소를 포함한다. 성모공경은 하느님께만 드리는 흠숭지례와 구별될 뿐만 아니라, 다른 성인들에 대한 공경과도 구별된다. 성모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지만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점에서 그 어떤 피조물보다 그 지위가 월등히 높다. 그리하여 성모님을 그리스도와 분리하여 별도로 마치 여신이나 되는 것처럼 섬긴다거나 또 다른 성인들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많은 성인들 중 한 성인으로 공경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다. 성모님은 언제나 하느님의 어머니요, 모든 피조물 중 가장 거룩하고 탁월한 분으로 공경 받아 마땅한 것이다. 오늘날 성모 신심은 19세기 이후 잦은 성모 발현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우리 교횐 19세기 이후 여러 곳의 성모 발현에 따른 메시지를 인정한바 있다. 1830년의 파리 발현(기적의 메달 관련), 1846년의 라살렛트 발현(회개 관련), 1858년 루르드 발현(병든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보속), 1917년 파티마 발현(소련의 회개와 세계평화를 위해 보상 기도) 등을 위시하여 그 후에도 보렝, 바뇌 등지에서 발현한 성모님은 한결같이 우리의 회개(생활 개선)를 호소하고 있다.
- 19세기 이후 무신론적 인본주의, 과학 만능사상, 합리주의와 자유주의, 유물사상이 대두하면서 세상은 교회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성서의 계시를 부인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성모발현과 그것에 결부된 기적이나 메시지는 수많은 불신자들에게 대한 도전이었고, 신앙이 악화되고 죄악이 넘치는 세상에 내린 일종의 예언적 경고였다. 메시지의 요점은 언제나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계명을 지키며 세상의 죄를 회개하고 보상함으로써 하느님의 징벌을 면할 뿐 아니라 갖가지 축복과 약속된 구원을 얻으라는 것이다. 성모의 메시지는 당신 자녀들인 우리와 온 세계에 보내는 하느님의 뜻이며 모성적 자애가 넘치는 호소와 간청과 훈계이다. 우리가 자녀다운 공경을 성모께 드리려면 언제나 성서와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해야 할 뿐이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언제나 불완전한 죄인이므로 끊임없이 회개하고 새로워져야 한다. 또 성모님을 본받아 그리스도의 구속 활동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동참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기꺼이 져야 한다. - 이홍근 신부
[ 4. 마리아 찬가 (Magnificat) ] - (루카 1, 46-55)
- 시(詩)를 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맑은 영혼을 소유해야 한다. 시의 세계는 영원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펼쳐지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구속과 억압이 없어야 한다. …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는 이기심 욕심 등을 버려야 한다. 마리아 찬가를 교회는 매일 ‘성무일도’ 안에서 그리고 ‘레지오 마리애 기도’ 시에 창하고 있다. 이 시의 내용은 루카 복음서 1장 46절에서 55절에 나온다.
< 1. 명칭 >
- ‘마리아 노래’ 또는 ‘마리아 찬가’라고 하는 이 노래의 본래 이름은 ‘마니피캇(Magnificat)’이다. 이는 번역된 말이 아니고 이 노래 전체의 뜻을 따라서 붙인 제목이다. … 우리가 마리아의 노래를 부를 때에 감격과 기쁨을 가지기 위해서는 마리아를 닮음이라는 영혼의 내면세계를 나의 영혼 안에 옮겨 와야 함을 알아야 한다. 단순히 입으로만 소리를 내는 것은 이 노래가 나와 공동체에 큰 효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글을 읽어 자연적인 음성을 내는 데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영혼의 심저에서 우러나오는 하느님의 자비와의 만남에서 발성되는 감동과 충격의 소리일 수 있어야 한다. 이 노래는 하느님의 자비로우심과 돌보심에 대하여 영혼의 깊고도 내면에서 발하는 노래임을 밝힌다. 무엇보다 먼저 이 노래의 진위를 깨닫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있는 하느님의 뜻과 반대되는 모든 것을 다 꺼내어 버리고 영혼 안에 하느님이 거하실 수 있도록 비우는 것이 첫째 조건이다. 이기심과 욕심이 없어야 하고, 또 교만한 점이 조금도 없어야 한다. 마음을 비우도록 해야 한다.
< 2. 내용 개요 >
- 이 노래는 마리아 개인의 찬가이지만 이것은 보다 넓은 차원을 가지고 있다. 이 찬가를 부르게 된 배경은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이 배경이지만, 이 찬가의 내용은 루카 복음사가가 기술하고 있는 예수의 유년기 설화들을 말해주고 있는 보다 광범위한 내용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루카는 그의 복음서 1장과 2장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인격화한 마리아를 동정녀인 딸 ‘시온’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그녀는 루카 안에서는 하느님의 사랑의 대상(지극히 사랑을 받는자), 구원사건에 있어서 특전을 받은 증거이다. 전통적으로 가톨릭 신자들은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분’(루카 1,28)으로 여긴다. 엘리사벳 방문 기사에서 마리아는 ‘계약의 궤’로 등장하고 있다. 루카 복음 1장과 2장은 이스라엘의 신앙, 희망, 그리고 그의 메시아적 기쁨을 드러냄으로 기술되고 있다. 이 찬가는 성실하신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는 겸손한 이들의 노래 즉 교회의 노래이다.
< 3. 마리아의 노래 연구 >
- 마리아의 노래를 연구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신앙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 뿐 아니라 신앙에 순종하는 깊고도 단순한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신앙에 순종하는 마음가짐이 없을 때에 마리아의 노래 연구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노래는 바로 신앙에 순종하는 자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높은 지성과 지식으로 머리 안에서 깨달았다 하더라도 순종이라는 깊은 내면 안에 받아들이고 승낙하는 받아들임이 아닐 때에 마리아의 노래를 깨달았다 하지 못한다. 즉 지식으로 깨닫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깨닫는 것이다. 그 실천은 먼저 하느님의 뜻은 무엇이든지 믿고 바라고 살고 실천함에 있어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이 노래 연구는 바로 자신의 순수하고도 솔직하며 깨끗한 마음에서 하느님의 의지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다른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아니하는 영혼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겸손하고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는 종으로 완전히 변화시킬 때 마리아의 마음속에서 솟아나오는 하느님의 자비가 온 세상에 나를 통하여 펼쳐진다. 그러므로 신앙의 순종 안에서만 마리아의 노래 연구는 가능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연구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연구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하느님의 의지에 굴복시키는 데서 이 연구는 끝나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노래 연구는 학문적 지식의 소유가 아니라 마리아 인격의 생활화이다. 마리아의 노래 연구에 앞서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깊은 인식에서부터 마리아 노래 연구는 출발한다.
< 4. 마리아의 신앙 >
- 마리아의 신앙은 ‘없음의 신앙’이었고 ‘없어짐’의 신앙이었다. 여기에는 ‘있음’도 있다. 그 ‘있음’은 잠정적인 지상의 삶이다. ‘없음’은 세상에 오기 전에 자신은 없었다는 것이고 또한 자신은 영원으로부터 계신 분 앞에 한없이 무력한 존재임을 자각하여 완전히 그분께 맡김을 ‘없어짐’이라 한다.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교만과 자화자찬 모든 것을 부수고 하느님의 사람으로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진실한 자신의 표현이다. 낮추어짐은 마리아의 노래 연구에 있어 가장 먼저 가져야하는 마음이고 그 다음은 성서 봉독이다. 구약부터 신약 끝까지 모두 읽고 묵상하고 실천해 볼 때에 마리아의 신앙과 인격은 더욱 크게 자라난다. … 마리아의 노래를 깨닫는 방법으로서는 제일 먼저 마리아를 닮으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겉으로만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자신의 마음을 깊고도 조용하게 들여 다 볼 수 있어야 한다. 한 점 속됨과 허영 또는 꾸밈이 없는 마음인지를 들여다보고 낮아진 마음으로 도우심을 빌며 묵상이 이루어져 가야 한다. …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2,000년 교회 역사 안에서 두 번째로 맞이한 이 귀한 ‘성모성년’ 안에서 우리가 마리아의 인격의 내면을 닮지 못한다면 우리의 생애는 보잘 것 없는 것이 될 것이다. 그 인격을 닮아 소리 높여 ‘마니피캇’을 노래하여 보자! ‘주여! 당신은 한없이 커지시고, 나는 한없이 작아지게 허소서!’(요한 3,30). 한없이 작아짐으로써만 서만 하느님이 크시고 위대하신 분이심을 나의 영혼이 깨닫게 된다.
< 5. 마니피캇의 구분 >
- 마리아의 노래는 세 가지 흐름의 생각, 즉 세 가지의 시절(詩節)로 구분되어 있다. 이 마리아의 노래를 크게는 두 개의 구분으로 짓는다. 전편은 1,46-50까지 이고, 후편은 1,51-55까지이다. 전편은 첫째 시절 1,46-50, 그리고 후편인 둘째 시절 1,51-53과 셋째 시절 1, 54-55까지이다. 4구분으로 나누는 경우에는 전편을 1,46-48과 49-50으로 구분한다. 본 글에서는 세 가지 시절로 구분해서 각 시절의 특징과 내용을 설명하기로 한다. 먼저 구약성서와 마리아의 노래와 대조하면서 이 노래를 생각해 봄이 유익하다. 구약성서와 관계 구절을 두어 먼저 소개하고 1부, 2부, 3부로 구분지어 설명하고 한다. … (다음호에 계속) - 이정운 신부(수원 가톨릭대학 교수)
[ 5. 레지오 마리애와 사도직 ]
- 1921년 아일랜드 더블린 시에서 시작한 레지오마리애(마리아 군단)는 가톨릭 복음화 운동의 신속함과 그 범위에 있어서 모든 수도회를 훨씬 능가하고 있다고 ‘죠반니 롬바르디’ 신부님은 말씀하셨다. 이는 복음화 운동에 있어서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성모님을 가운데 모시고, 성모님을 통하여 성모님과 함께 어느 누구보다, 또 어느 단체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뜻한다. 또 이렇게 하느님 왕국을 위하여 활동하는 것을 사도직이라 부른다. 레지오 마리애의 총 사령관이신 성모 마리아는 사도들의 모후로서 ‘사도들의 사도’이시다. 사도란 어떤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하느님으로부터 ‘파견을 받은자’를 말한다. 가장 으뜸이시고 최고의 사도이신 분은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파견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느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당신 외아드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 이리하여 마리아는 인류 역사에서 제일 첫 번째로 예수님을 모신 영광을 받으신 분이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성모님의 사도들로서 사도직을 수행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성모님을 떠나서는 아무런 사도직을 수행할 수 없다. 한 가지 예로써 동양의 사도라고 불리는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의 사도직 체험에서 잘 볼 수 있다. 마리아 없이 혼자 복음을 전파할 때 복음에 반대되는 결과를 맛보게 된다.
- 오늘날 사도들의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알베리오네 신부님의 말씀대로 현 세대는 온갖 오류와 윤리적 무질서, 미신, 거짓 예배 그리고 물리적 빈곤의 혼동 가운데 빠져 있기 때문이다. … 레지오 마리애는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군대이므로 또한 교회의 군단이다. 즉,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특별한 협력자로 참여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구속 사업에 방해되는 적들과 싸우면서 그리스도의 참 평화를 향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빛을 암흑의 세상에 비추는 군단들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평화와 빛을 캄캄한 영혼들의 집과 마음 안에 심고 모든 이를 빛의 자녀로 인도하는 군단들이다. 교황 레오 13세께서는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오십니다. 마리아로부터 성부의 생명이 우리에게 이르는 방법은 성부께로부터 그리스도께로, 그리스도로부터 마리아께로, 그 다음 마리아께로부터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며, 마리아와 예수님을 통해 모든 생명과 완전하고 불멸하는 생명이 성부께로 되돌아갑니다.”라고 하셨다. 교황 비오 12세께서도 마리아께 대한 신심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을 통하여 예수님께 나아가는데 있다’고 하셨다.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간택하신 것은 하느님을 세상에 주시고, 인간을 하느님께 드리기 위한 것이다.
- 몽포르의 성루도비코-마리아는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의 불을 곳곳마다 점화하는 하느님의 종 즉 불꽃이며 하느님의 원수를 쏘아 관통시키는 마리아의 손에 쥐어진 날카로운 화실입니다. … 그들이 복음을 전파하는 곳에는 모든 율법과 계명의 완성인 사랑의 황금을 빠짐없이 남겨 줄 것입니다” 또 그는 마리아 군대는 길을 잃지 않는다고 하셨다. 어느 성인의 말씀처럼 인간의 호흡이 계속되는 것은 아직 그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표시인 것처럼 마리아를 생각하고 마리아를 마음속으로 부르짖는 것은 그 사람이 아직 죄에 의해서 죽어 굳어지지 않았다는 표시라고 한다. 모든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의 자랑스러운 군사라는 긍지를 가지고 ‘아베 마리아로 날이 밝고, 아베 마리아로 밤이 켜지는’ 하루하루가 되어지길 기원한다.
- 김상옥 가브리엘리스 수녀
[ 6. 세계 성지 순례 ] < 예수 아기 피난 성당 >
-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의 북쪽에 위치한 고대 문명의 발상지로써 애급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집트는 구세사에서 다양한 역할을 한 나라이다. 고대에 유복했던 이 땅은 굶주린 성조들이 몸 붙여 살던 곳이요, 패전한 이스라엘 민족의 피난처이자 예수께서 피신하신 곳이기도 하다.출애굽(탈출) 때 하느님은 이집트를 벌하셨으나 이집트가 회개하여 당신을 흠숭하도록 섭리하고 계신다. 카이로는 이집트의 수도로 나일강 삼각주의 요지에 자리 잡고 있다.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가다보면(버스로 한시간 거리) 예수 아기 피난 성당(곱틱 정교회)이 세워져 있다. 원죄없으신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가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탄생하였을 때, 목동과 동방박사들의 방문을 받고나서 잠자리에 들었을 때이다 주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버리려고 한다”(마태 2,13)고 말하였다. 요셉은 그날 밤에 15개월 된 아기 예수와 마리아를 데리고 피신의 길에 올랐다. … 아무도 반겨줄 사람 없는 이집트의 여행길은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는 도중에는 강도를 만나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 했고, 맹수들은 그들을 공포의 분위기로 몰고 갔다. 그들이 모진 고생과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무사히 이집트에 도착하여 정착한 땅이 지금의 아기 예수 피난 성당이라 불리는 곳이다.
- 피난 당시 그곳은 땅굴이었는데, 물이 고이기도 하여 습기가 차고 벌레들이 많았다. 아기 예수, 양부 요셉과 마리아는 이 땅굴 속에서 7년을 살았다. 그들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의 양부 요셉은 남의 집에서 일을 하고 삯을 받는 품팔이를 하였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남의 집에서 방아 찧기, 옷감 짜기 등의 수익으로 곡식을 사고 옷을 마련하였다. 먹고 사는 문제는 큰일이었다. 생활의 어려움은 이 세 사람에게 모진 고문이었다. … 티 없고, 아무 걱정 없이, 부족함이 없이 곱게 자라야 할 예수의 유년 시절은 눈물과 슬픔의 세월이었다. 7년이 굶주림과 추위와 고통 속에서의 삶이었지만 세 사람은 성가정을 이루어 하느님을 높이 흠숭하고 하느님 말씀대로 살았다. 이 성당 옆에는 아기 모세(탈출기)를 광주리에 띄운 나일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이 성당에서 우리 순례 일행(62명)은 예수 탄생이래 처음으로 한국 가톨릭 신자들이 한국 신부의 집전으로 미사를 봉헌하였다(1988.4.22). 나는 미사 강론에서 마태오복음(25, 35-40) 말씀을 인용하여 “굶주리는 아기 예수와 우리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가서 정성껏 공경하자. 그러려면 다섯 가지를 해드리자. 곧 첫째 굶주린 이에게 빵을 주고, 둘째 목마른 이에게 마실 물을 주고, 셋째 헐벗은 이에게 입을 옷을 주고, 넷째 잠잘 곳 없는 이에게 잠자리를 마련 해 주고, 다섯째 병든 이를 간호해 주고, 여섯째 옥에 갇힌 이를 찾아보자고 강조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 회개하여 아기 예수와 마리아를 마음 깊이 모시고 비행기에 태워가자”고 했다. 그때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우리 모두는 목이 터지도록 울었다. 미사가 끝나 성당을 나와 보니 가뭄 중이던 그곳에 ‘축복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 오기산 신부(한국천주교 성지연구원장)
[ 7. 한국 성지 순례 ] < 천진암 >
- 천진암은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우산리 행자봉 기슭에 자리잡은 조그만 암자이다. 이곳에 한국 천주교 발상지라는 간판을 내건 1979년 이전까지만 해도 천진암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아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도 천진암이 산골임에는 틀림이 없다. 수 백 대의 차량이 머물 수 있는 주차장이 생기고 순례 인파가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사실이 이 심산중곡의 큰 변모라 할 수 있다. 어느 땐가 없어져 주춧돌만 남았던 조그만 암자의 옛터로 사람들이 몰려 오는 것은 한국교회의 오묘한 기원에서 연유한다. 2천년 그리스도 신앙의 역사에서도 유래가 없이 한국교회는 한국인 스스로의 손으로 창립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출발은 1784년 봄 이승훈이 북경에 가서 영세하고 돌아와 신앙 공동체를 이룩한 때로부터 친다. 그러나 그보다 4년이 앞선 1780년 1월 무렵 경기도 광주.여주군에 걸쳐 있는 앵자산의 천진암과 주어사에서는 이미 자랑스런 교회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 때 앵자산의 두 암자에서는 당대의 석학 권철신이 주재하는 강학과 수련의 모임이 있었다. 모인 사람들은 궐철신.권일신 형제, 정약전.정약종.정약용 형제, 이승훈, 그리고 김원성, 이총억 등 10여명이었다. 어느날 밤 이 자리에 이벽이 서울에서 100여리 눈 길을 걸어 찾아 든다. 강학회 모임이 당초 시작될 때는 일반 학문으로써 실학연구와 서학강의에 그쳤으나 이벽의 참여로 심신을 수련하는 성격을 띠게 되었다.
- 이때 학자들은 우주의 창조주로서의 천주와 사람에게는 불사 불멸하는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구의 권고나 가르침이 없었지만 천주의 진리를 스스로 탐구하여 믿었다. 7일마다 하루를 주일로 삼아야 했으나 요일을 모르는 까닭에 이레(7), 열나흘(14), 스무하루(21), 스무 여드레(28)를 천주공경의 날로 정했다. … 강학회가 끝날 무렵 이벽은 ‘천주공경가’를 정약종은 ‘십계명가’를 지었다. 이들이 지은 노래를 음미해 보면 천주학이라는 학문적 지식을 천주교의 종교적 신앙으로 발전시킨 점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교회사상 획기적 전기가 되는 이승훈의 북경 파견은 이벽의 여러 해에 걸친 시도와 노력 끝에 이루어졌으며 이는 천진암 주어사 강학회의 결실로 보고 싶다. 천진암은 문자 그대로 천주(天主)의 진리(眞理)이고 주어사는 그리스도의 상징인 고기 어(魚)자로 달린다(走)는 뜻이니 둘 다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고 느껴진다. 북경에 가서 영세를 받고 귀국한 이승훈은 제일 먼저 자신의 임무 수행 사실을 이벽에게 보고하고 그곳에서 가져 온 천주교 서적과 성물을 바친다. 이를 받은 이벽은 한적한 곳으로 들어가 두문불출, 교리를 탐독하고 묵상과 기도시간을 가진 뒤 이승훈으로부터 제일 먼저 세례성사를 받고 본명을 세자요한으로 하여 본격적인 전교에 나서게 된다.
- 이벽의 첫 전교 대상은 그에게 매부가 되는 마재의 정약현과 그 형제들 그리고 양근에서 학문연구 마을을 이루고 있던 권철신과 권일신 형제들이다. 자신보다도 18세나 연장인 대학자 권철신을 설득하여 입교시킨 사실은 장유유서가 극심했던 풍토속에서 보통일이 아니었다. 1784년 가을에는 서울 명례방에 살던 통역관 김범우 형제를 입교시키고 그의 집을 택해 교회 예절 거행과 교리강좌 장소로 사용함으로써 수도 한복판에 이 겨레 구원 성업의 터전을 닦으니, 이곳에 오늘날 한국 가톨릭의 얼굴이며 심장과도 같은 명동 대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명례방 집회는 1785년 봄 추조금리들에게 적발된다. 여럿이 책을 들고 앉아서 교회 전례를 거행하며 교리해설을 듣고 배우다가 포졸들에게 발각당해 모두 붙들려 갔으나 양반들은 풀려나고 중인 출신 김범우만 귀양을 갔다. 이 일로 인해 이벽은 식음을 전폐하며 무저항 투쟁을 하다 전염병에 걸려 죽고, 김범우는 귀양지에서 장독으로 세상을 떠나니 이것을 을사추조금리 사건이라 한다. 한국교회 기원사에 관해서는 오래 잊혀져 오다가 1960년에 와서야 주재용 신부(1894-1975)가 이곳 지명들을 문헌상으로 찾아냈고 그로부터 2년 후에는 남상철 선생이 앵자봉 동편 아래 주어말에 묵으면서 마을 노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국 천주교 요람지가 발견됨’이라는 글을 경향잡지에 빌표한 바 있다.
- 천진암 성역화 위원회(주임 변기영 신부)는 광암 이벽(1754-1785)의 묘를 그의 사후 195년 만에 경기도 포천군 내촌면 화현3리 공동묘지에서 파묘 직전에 찾아내는데 성공, 천진암 옛터로 이장했다.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의 해인 1981년에는 정약종, 이승훈, 권철신, 권일신 등을 이벽의 옆으로 모셔 한국 천주교회 창립 선조의 묘역을 조성했다. 또 정약종의 아들로서 교구설정 막후교섭과 선교사 영입을 위해 북경에 아홉 차례나 왕래하였던 정하상(1795-1839) 성인의 묘를 밭주인에 의해 파묘되는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고서야 남은 유해를 천진암의 한 계곡에 안장할 수 있게 되었다. 성역화 위원회가 천진암 일대에 확보한 땅은 12만평이 넘고 100년 계획 대성당 건립도 한창 추진중이며 교회창립 선조들의 정신과 위업을 이어받기 위하여 한국 천주교회 창립기념일을 6월24일로 제정, 해마다 기념행사를 갖고 있다. 갈멜수녀원에서 100m 가량 오르다가 천진암 계곡으로 갈라지는 옛날 물레방아 자리에 웅장하게 솟은 기념비가 있다. 무려 5천 글자로 된 비문은 우리나라가 선교사나 성직자 없이 교회가 창립된 사실이 강조돼 있다. 우리 겨레 스스로의 자발적이며 창의적인 노력으로 진리를 탐구하고 천주를 섬기었으니 천진암이야말로 진리 탐구의 실천, 그 전파와 수호에 있어 세계 모든 민족들 중에서 우리 배달겨레가 가장 뛰어난 정신문화 민족임을 드러내 보인 정신 문화사의 요람으로 자랑할 만한 성지인 것이다.
- 이충우 안드레아 (한국 순교자 현양위원회 위원)
[ 8. 레지오 단원의 영성 ]
< 영성의 정의 >
- 영성(靈性)이란 비물질적인 것으로서 정신적인 속성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하느님과의 연관성을 배재할 수 없다. 하느님의 계시와 그리스도의 구속사업 전체의 신비적 차원을 영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신비를 믿는 이들이 받아 들이고 체험하면서 자기 안에 완성해 나가지 않으면 한갓 이론에 불과한 것이기에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연결시켜야 한다. … 영성신앙이 다루는 그리스도교적 영성생활이란, 하느님의 계시와 구원사업의 신비적 차원을 받아 들이고 체험하면서 실현하는 그리스도교인의 존재와 삶을 의미한다.
< 하느님의 계시 >
- 우리 종교는 계시 종교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능력으로 알 수 없는 신비를 인간에게 알려 주셨다. 대자연과 인간의 양심을 통한 간접 계시로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직접 계시를 인간에게 내리셨다. 구약에서는 예언자, 판관, 왕들을 통해 당신의 뜻과 신비를 알려 주심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하셨다. 따라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 올바로 살면서 하느님 백성들이 공동체 안에서 사랑에 찬 유대를 갖는 것을 원하셨다.
< 예수 그리스도 >
-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느님이 육화(肉化)되신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 중의 계시이고 가장 명백한 계시이며, 인간들의 전형으로써 모든이가 그를 따르기를 하느님은 원하신다. 이 분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기도를 가르쳐 주신 분이시고 흠없는 완전한 분으로 모든이의 모범이 되신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48)하심으로 완덕을 갖추신 하느님처럼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그렇게 살기를 원하셨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 때 즉 그 분을 본받아서 살 때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른 사람들의 영성생활인 것이다.
< 덕(德) >
- 그리스도를 닮기 위하여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여야 한다.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덕을 닦아야 한다. 덕이란 좋은 일을 계속해서 그것이 습관이 될 때 덕이라고 한다. 우리가 닦아야 할 덕에는 첫째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인 향주삼덕이 무엇보다도 있어야 한다. 믿음(信仰), 바램(希望), 사랑(愛)의 덕이 향주삼덕(向主三德)이다. 믿음이란 하느님의 초대에 몸과 마음을 다하는 응답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진실한 분이시며 그분이 계시한 것과, 교회를 통해 가르치시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지적행위이고 의지행위이며, 하느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하는 전인적인 행위이다. 바램이란 하느님께로 희망을 두는 행위이다. 어려움이 많고 좌절하기 쉬운 현실 속에서 인간적인 나약성 때문에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행위는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에서만 가능하다. 애덕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고, 사랑하고 계시기에 사랑에 보답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하느님을 만유위에 사랑해야 하지만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구체적인 방법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을 뿌리로 하고 희망을 줄기와 가지로한 나무가 되어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 둘째의 덕은 윤리덕이다. 윤리덕은 사람의 생각, 말, 행동을 올바르게 함으로써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필요로 하는 덕이다. 윤리덕 중 가장 중요한 네가지를 사추덕(四樞德)이라고 하며 이는 지(智), 의(義), 용(勇), 절(節) 덕을 말한다. 지덕이란 합리적인 생각과 판단을 하는 습성이다. 의덕이란 올바르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용덕이란 합리적인 생각과 판단을 내리고 올바르게 실천하는데 어떤 장애가 있더라도 용기있게 밀고 나가는 덕을 말한다. 절덕이라 함은 물질에 대한 욕망, 음식에 대한 욕망, 성욕, 명예욕 등을 자기에게 허락된 범위 내애서 사용하고 과도하게 되는 것을 절제하는 덕이다. 셋째로 다루어야 하는 덕은 복음삼덕이다. 복음적인 삶을 위해, 그리스도를 더욱 더 완전히 따르기 위해 필요한 덕이며, 수도자들이 하느님을 만유위에 사랑하듯이 높고 깊은 최고의 덕까지 닦아야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
복음삼덕에는 신빈(神貧/청빈), 정결(貞潔), 순명(順命)의 덕이 있다. 신빈이란 물질적 소유권에 대한 포기를 말한다. 마음과 정신을 재물에 예속시키지 않음을 뜻한다. 정결은 하느님을 위하여 성적 쾌락을 끊어버리고 일생을 독신으로 사는 것을 뜻하고, 순명은 자기 뜻대로가 아니고 윗 사람의 권한에 속하여 그분의 뜻에 따라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수도자들에게 신빈, 정결, 순명을 요구하지만 그 중에 가장 모체가 되고 중요한 덕은 순명의 덕이라고 하였다. … 레지오 단원들은 더욱 더 순명의 덕을 닦아야 한다. 레지오 마리애가 한국에서 크게 발전하여 사목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고 사목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도 실은 교본 정신에 따라 교회의 권위에 순종하며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에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봉헌하고 순종하는 마리아와 같이 레지오 단원들도 순명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실천해야 한다.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군대가 군대일 수 없듯이 교회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레지오는 레지오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 안상인 신부(서울 세나뚜스 영적 지도자)
[ 9. 활동교리 – 성당엘 왜 나갑니까? ] * : 레지오 단원, / : 과일가게 아줌마
- 레지오 단원인 테레사와 요셉피나 두 자매가 활동을 위해 동네 시장 과일 가게 아줌마와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 … * 아줌마, 이 사과는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 왜 그걸 물어요. 사과나무에서 나오지요. * 사람들이 사과나무를 심는 뜻은 사과를 따기 위해서인데 … 사람의 생명은 무엇을 해서 주어진 것일까요? / 그냥 살다가 죽는 거지요.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합니까?* 그래요, 이렇게 고생만 하다가 죽어버려서 끝장이 나는 인생이라면 장미꽃 한 송이보다도 못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댁에서는 왜 살며 성당에는 왜 다니는데요?
* 아줌마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인 내 생명이 있기 때문에 돈도 필요하고, 집도 필요하고, 가정도 필요합니다. 내 생명이 없다면 이 세상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내 생명을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내 생명이 왜 태어났으며, 왜 살아야 하며, 생명의 끝이 죽음인데 죽음 다음엔 어떻게 되는지 이게 제일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사실입니다. 이 한 생명 살아가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는 분주하게 뛰고 있어요. 어떤 때는 도대체 사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 아줌마! 이 바나나는 어느 공장에서 나왔어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예요. 이 사람들 아침부터 돌았네. 그래 그 바나나를 만드는 공장이 있다는 말이예요?
* 아주머니 진정하세요.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닙니다. 이 라디오는 분명히 이것을 만든 공장이 있겠지요?/ 그렇지요.* 그러나 바나나를 만드는 공장은 있을 수 없어요. 그건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사람이 만들지 못합니다. 비행기 만드는 공장이 있고, 자동차 만드는 공장이 있지만은 오징어 만드는 공장은 아직 없습니다. 사과 만드는 공장도 쌀 만드는 공장도 없습니다. 아줌마 사람이 왜 사람의 생명을 만들 수 없을까요? / 그건 너무 신비한 것 아니겠어요? * 옳습니다. 생명은 신비스러운 것입니다./ 사람이 제 마음대로 생명을 만들 수 있다면 큰 일 나게요?
* 그래요. 사과도 마음대로 만들고 사람도 마음대로 죽이고 살릴 테니까 말입니다. 정말 생명은 심오한 것입니다. 인간이 제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한 송이 장미꽃을 만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생명은 귀한 것이고 신비스런 것입니다. 봄에는 죽은 듯이 보이던 풀들이 파릇파릇 싹이 나지요. 싹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요. 이 얼마나 심오한 이치입니까?/ 그건 사실입니다. 제가 과일 장사를 하지만 그 과일이 저마다 맛이 다르거든요.
* 그렇게 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시다. 사과나무는 사과라는 열매를 주고, 밤나무는 밤이라는 과일을 주고, 장미꽃은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향기와 기쁨을 주는데 나는? 무엇을 주기 위해서? 무엇 때문에 사느냐고 묻는다면 아줌마는 어떻게 답변하시겠어요? /글쎄요. 그런 것까지 생각을 해 보지 못했습니다.
* 내 귀한 생명이 무엇 때문에 주어졌느냐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나에게 제일 귀중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생은 한 번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도 없습니다. 내 인생은 돈으로 사고 팔 수도 없습니다. 꼭 한 번 밖에 없는 귀한 인생인데 …. / 정말 그래요. 그런데 댁에서는 왜 성당엘 나가는데요?
* 아줌마, 귀한 생명은 어떤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은 답변할 수가 없어요. 과학자도, 철학자도, 문학자도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는 답변을 할 수 없어요. 그것은 오로지 생명을 만드신 창조주만이 우리에게 정확한 답변을 줄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세상에서 나에게 제일 귀한 것이 내 생명이라면 내 생명이 무엇인지, 왜 사는지,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는지 이렇게 귀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아서 올바로 살게 해 주는 곳이 성당이지요. (다음 호에 계속) - 박도식 신부
[ 10. 신자 재교육 교리 ] < 사람의 생명은 누구의 것인가? >
- 참된 신앙인은 ‘자살’이란 말을 압에 올릴 수 없는 것이 상식선이다. 생명은 내가 만들어 낸 내 것이 아니며 어떤 인간이 만들어 준 그 인간의 것도 아니다. 생명은 생명의 유일한 주관자이신 창조주의 것이다. 삶의 뿌리인 인간의 생명은 인간의 감정이나, 지성이나 자유나 영웅심 등에 의해서 좌우될 수 없는 주종 관계상 최상의 것이다. 생명이 감정과 지성과 자유와 영웅심 등을 부수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지 영웅심이나 자유능력이나 감정이 인간의 생명을 갖는 인간의 주인공은 아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죽을 것이 두려우면 태어나지 않아도 괜찮을 그런 자유없이 태어난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자유로이 기분이 내켜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것도 아니고 생각해 보고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우리의 생명은 자유의 개입도 기분의 개입도 지성의 개입도 있기 이전에 자연의 질서와 원리를 따라 태어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영역은 살아 있는 한 독자적이며 으뜸자리이다. 이 자리가 지켜져야 자신의 내적 질서가 서 있는 것이며 정상적인 인간이다. 자신의 내적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고 깨뜨려 버리면 실제로 죽지 않았어도 교회에서는 이를 죄악시 한다. 즉 예를 들면 게으름, 방종, 실망, 무절제, 지나친 욕망, 무기력 같이 생명의 가치를 낭비하는 내적 여러 사항들이 그렇다. 그러니 자살은 한 순간의 자살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내적 질서의 세계에서 세상의 참된 가치를 조금씩 낭비해가며 허약하게 만들어 간 탓이라 본다.
- 올바르게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란 자연법과 절대적 진리(계시)에 따라 살아야 그 생명의 가치와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으로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남용하여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신비에 가득찬 생명의 창조 영역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은 우리 자유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 있는 높은 차원의 것이다. 우리 인간 자유에 예속된 것이 결코 아니다. 자기의 생명을 끊어 버리는 것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창조주 앞에 거부하는 행위로, 자신의 존재를 탄생케 한 원인과 목적을 감히 무시하고 취소하는 결정적 도전이다. 생명의 목적은 하느님 때문이라는 목적에서만 하느님 앞에 정당하게 된다. 유한한 이 물질적 세상의 작태인 정치적 이유에서의 민주화나 통일이나 또는 생명의 가치를 유한한 물질적 가치 정도로 판단하여 버리며 생명을 날려 버리는 것은, 그 자체가 생명의 목적을 유한한 물질계에 둠으로써 무신론적 행위로 하느님의 실상을 무시한 소치이다. (다음호에 계속) - 이기정 신부
[ 11. 어느 사제의 글 ] < 오늘의 신자 무엇이 문제인가? >
- 어느 본당 신부는 연실 한숨을 쉬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묻자 본당신부는 속사정을 털어 놓았다. “본당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신자들이 신앙 실천에 대하여 과연 어떤 상태인지를 점검하였죠. 그 방법은 교적을 확인하는 것이었죠.” 교적에는 사규(四規) 고해, 영성체 현황, 교무금 납부 현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본당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레지오 마리애, 평신도협의회, 성서모임 등의 단체 임원들에 대한 교적과 구역장, 반장의 교적을 모두 뽑아 하나씩 보아 나가기로 하였지요. 하나씩 교적을 살펴 본 결과 봉사는 많이 하는 것 같았으나 실천 신앙은 형편없었어요. 교무금 실적은 형편없었고, 자식도 그냥 예식장에서 결혼시켜 버린 사람도 있었고, 사규 고해도 제대로 보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어요.” … 한국 천주교회에서 레지오는 가장 훌륭한 신심 단체로 평가 받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괄목할 만하다. 그러나 위의 본당 신부의 지적대로 실천이 없는 신앙생활이어서는 안 된다.
- 레지오는 군대라는 뜻이다. 군대는 규율대로 움직여야 한다. 그 규율을 어기고 내실이 없을 때 그 군인은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 현대 교회는 실천 신앙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론적인 신앙이나 위선적인 신앙은 예수님의 사랑이나 성모님의 자애를 많은 이웃들에게 오도하기 때문이다. 성모성년을 통해 레지오 단원들 모두가 실천 신앙인이 되기를 바란다. 레지오 단원들은 자신이 레지오에 입단하기 전보다 좀 더 사랑이 깊어 졌어야 하며 믿음이 성장되고 소망이 가득해졌어야 한다. 레지오 단원이 됐기에 가정이 더욱 화목하고 삶이 예수님과 성모님과 함께 행복해졌어야 한다. 그것은 레지오 정신을 실천할 때 생기는 것이기에 다시 한 번 실천 신앙을 강조하고 싶다. 레지오 단원 모두가 실천 신앙을 생활화한다면 지금까지 하던 활동의 결과는 배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비신자는 교회로 신자는 레지오로 모두 모여 들 것이다.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 최기산 신부(인천교구 사목국장)
[ 12. 레지오의 성인 ] <조용한 믿음의 성인 성요셉 >
- 구세주의 양아버지인 동시에, 성모 마리아의 배필이요 보호자이지만 그에 대하여 복음서 중에 기록된 곳은 매우 적다. 그리고 세상 사람도 겸손한 성인의 생존 시에는 별로 주목을 안 해 왔지만 묵묵히 쌓인 성덕의 빛은 언제든지 감추어져 있지 않고 특히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복음이 전파됨에 따라 그의 양 아버지의 성덕도 차차 세상에 알려지고 뭇사람에게 존경을 받게 되었다. 성 요셉은 다윗 왕가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대에는 옛 영화도 꿈처럼 사라져서 빈궁한 나머지 겨우 손에 익은 목수의 일을 하며 그날그날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었다. 그런데 그는 정결하고도 겸손하고 열렬한 신앙과 하느님께 무한한 신뢰를 갖고 있었음으로 하느님께서는 성자와 성모를 맡기시는데 그 사람 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오묘한 섭리로써 그를 성모 마리아의 정배로 삼으셨던 것이다. 여기에 기이한 일은 마리아도 요셉과 같이 성왕 다윗의 혈통을 계승하고 또한 현세의 재보의 혜택을 받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성덕에 있어서는 전후무비(前候無比)로 혜택을 받고 있었다.
- 요셉에 관한 복음서의 요약이다. (일부 메모자 추가)
*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이 태어나셨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지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드렸다.” (마태 16-25)
*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날이 되어, 첫 아들을 낳았다”(루카 2,1-7).
* “(동방/東國)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거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마태 2,13-15).
* “헤로데가 죽자, 꿈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다.”(마태 2,19-21)* (예수님의 소년 시절) “예수님의 부모는 … ”(루카 41-52)
-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자녀에게 거울이 될 만큼 부모에게 효도하며 늘 잘 도와드렸음이 분명하다. 예수께서 공생활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시기 전에 성 요셉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천주의 성모와 하느님이시고 모든 사람들의 심판자이신 예수 자신에게 간호 받으며 세상을 떠난 그의 임종은 다른 어떠한 성인에게도 볼 수 없는 은혜였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참말로 그때 양부인 요셉에게 ‘충실하신 분이여, 주님의 종으로서의 즐거움을 누리소서!’하고 아주 강한 위로의 말씀을 해드렸을 것이다. 아! 요셉이여, 우리를 위하여 임종의 성총을 하느님께 간구하여 주소서!
[ 13. 레지오 마리애의 영적 지도자 ]
- 레지아와 세나뚜스 영적지도자 중심(1988년 기준)
* 서울 세나뚜스 : 안상인 요셉 신부 (연희동 본당 주임)
* 광주 세나뚜스 : 조철현 비오 신부 (저전동 본당 주임)
* 대구 레지아 : 김경식 보니파시오 신부 (계산동 본당 주임)
* 인천 레지아 : 이근창 프란치스코 신부 (도하동 본당 주임)
* 수원 레지아 : 김창린 필립보 신부 (조원동 본당 주임)
* 부산 레지아 : 신상도 아우구스티노 (부산교구 사목국장)
[ 14. 훈화 ] 1-5
< 훈화 1 : 민족복음화의 기수가 되자> - 배문한 신부(수원 가톨릭 대학 교수)
-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유언이요, 지상 명령으로서 하느님 백성의 최대 과업이다. 교회는 이 주님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복음 선포를 하지 않으려면 교회가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 선포는 교회의 여러 가지 활동 중의 하나가 아니고 바로 교회의 존재 이유이며 교회 실현의 본질적 구성 요소이다. 선교함으로써 교회가 비로소 교회인 것이며 선교로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완전한 성장에 도달하는 것이다. … 1953년 레지오가 한국에 도입 될 당시 한국의 신자수는 17만 명이었으나 1987년 말 233만 명으로 성장시킨 것은 뭐니 해도 레지오 단원의 힘이 크다고 하겠다. 이제 또한 1990년 300만 신자화를 목표로 하여 매진하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인 것이고 장한 일이다. 복음 선포는 교회의 지상 명령이기도 하지만 이 나라 이 민족에게는 하나의 애국 운동이요 구국 운동이다. ‘한국 사람은 개인으로는 금강석 같으나 여럿이 모이면 모래와 같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한국 사람이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우수하나 모이면 단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성은 사색당쟁으로 나타났고, 일본의 종살이를 하는 비운을 초래했으며, 남북 분단과 피 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슬픔을 맛보게 하였다. 남북분단도 부족한지 동서(東西)의 불목까지 초래하고 있다. 또한 설상가상으로 우리 사회엔 황금만능주의, 물질주의, 이기주의가 만연되고 있다. 이런 것들은 국가 발전의 암적 존재로 이런 것을 고치지 않는 한 고도의 경제성장도 이 민족의 영원한 번영을 위해서 사상누각이 될 가능성이 크다.
- 이러한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복음의 정신뿐이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마르 12,30-31), “미소한 자에게 베푼 것이 곧 나에게 베푼 것이다.”(마태 25,40), 우리는 모두 신비체의 한 지체로서 네가 아픈 것이 곧 나의 아픔이란 신앙이다. 이러한 신앙대로 산다면 단결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돕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하느님을 안다면 황금만능주의도 안 될 것이다. … 육당 최남선은 그의 개종 선언에서 “가톨릭이야말로 이 나라 이 민족을 구할 수 있다는 애국심에서 개종했다”고 선언하였다. 올바른 인생관을 갖고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인간을 만드는 일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애국운동중의 애국이다. 구국적 신념으로 더욱 더 복음 전파에 매진해야 겠다. 이러한 복음 선포에 있어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첫째, 민족의 복음화는 인간의 힘없이도 안 되지만 인간의 힘만으로 안 되니 먼저 기도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간구해야 한다. 둘째, 복음 선포를 우해 애쓰는 우리 자신이 먼저 쇄신되고 성화되어야 한다. 셋째, 단원들의 질적 향상이다. 우리 자신이 교리를 더 잘 알고 신흥종교에도 대처할 수 있어야 하기에 꾸준한 교육도 필요하다. 단원들의 증원도 필요하며 여성화 경향에서 탈피하여 남성 단원들의 증원도 필요하다. 민족 복음화는 애국 운동이요, 구구운동이란 신념을 가지고 3,000만 신자화의 꿈을 향하여 매진하면서 우리 모두 민족복음화의 기수가 되자.
< 훈화 2 : 감사의인 성사인 성체 > - 최익철 신부
- 어느 존재이든지 본질이 하나가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두 가지 본질이 있다. 신성과 인성이다. 하느님으로서 우리를 사랑하시면 우리가 알 수 없기에, 우리가 알게 하시려고, 물리적으로나 철학적으로도 불가능 한 일을 하시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성체와 성혈이다. 창조주이신 하느님은 피조물인 사람만 되신 것이 아니라, 무생물인 빵과 포조주가 되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 벗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면, 창조주가 피조물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다면, 그 사랑은 얼마나 크다고 해야 할까? 그러기에 성모님은 비록 당신이 낳으신 분이시지만, 할 수 있는 존경과 흠숭, 사랑과 찬미를 드리셨다. 교본에서는 ‘성체 성사의 성모’라고 부르고 있다. 모든 은총의 중개자로서 성체와 성체 안에 있는 모든 은총에 대하여 절대적이고도 완전한 처분권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성체 성사는 가장 효과적인 구원 수단이며, 예수께서 주신 구속 사업의 가장 뛰어난 열매이다. 따라서 영혼들이 성체를 받아 모시도록 준비시키는 일이나, 성체를 자주 방문하여 항상 조배하도록 충동을 주는 일도 성모께서 하신다. 그래서 단원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뿐만 아이라, 형제들에게도 ‘매일미사 참례와 잦은 영성체를 권장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영성체로써 커다란 축복을 받은 우리임을 잠시도 잊지 말아야겠다. 한 번의 영성체를 위해 죽을 때까지 감사해도 다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피조물이 창조주와 일치 된 기쁨을 자랑 삼자.
< 훈화 3 : 러시아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하여라 > - 김승훈 신부
- 1917년 5월 13일부터 13일마다 여섯 차례에 걸쳐 포르투갈 파티마에서 성모님의 발현이 있었다. 같은 해 성모님의 발현이 끝난 후 11월에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성공하였다. …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구약시대 하느님의 판관들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그때와 너무나도 흡사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모든 것을 인간의 힘으로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활 안에서 하느님을 모실 마음이 전혀 없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세상이 악하게 될 것을 아시고 하느님께서는 이 시대의 우리들을 다시 당신의 크신 사랑 안으로 부르시기 위하여 러시아를 택하여 이 세상에 큰 어려움을 준비하시지 않으셨나 생각된다. 극도로 교만해진 오늘의 사람들이 ‘아, 나는 참으로 나약하고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존재이구나’하고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깨닫게 하시려고 이 시대에 러시아의 무력을 마련하신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을 파티마에 보내시어 미리 이 세상에 일어날 혼란을 알려 주셨고, 러시아가 이 세상과 교회를 몹시 괴롭히리라는 사실을 암시하셨고, 러시아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여 주신 것이다.
- 1917년 당시의 러시아는 평범한 전제 국가에 불과하였다. 세계적인 강국도 아니었고, 과학 문명이 발달된 나라도 아니었다. 공산주의 혁명 후에 그것도 2차 세계 대전 후에 갑자기 부강한 강대국이 되었고 지금은 세계 역사를 만들어가는 강한 독재 국가가 되었다. 이 지구상에서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나라가 되었다. 지난해에 우리는 파티마 70주년을 기념하였다. 그 7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우리는 러시아의 새로운 변화를 목격할 수 있었다. 악을 상징하는 그 나라의 수상이 평화를 말하기 시작했다. 미국 대통령을 방문하여 만나고,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핵 감축 계획을 발설하였고, 자신의 나라에서도 진정한 민주주의의 길을 열어 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러시나의 회개가 우리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성모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나의 티 없는 성심이 결국에는 승리할 것이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독재자 스탈린이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려고 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선한 사람이 악해지면 보통 사람보다 더 악랄하여 진다고 한다. 스탈린 치하에서 러시아 국가 자신이 얼마나 악독한 지배를 받았었는지 모른다. 이제 그 나라가 회개하고 있다. 파티마에서 말씀하여 주신 러시아의 회개와 세계 평화를 위한 우리의 기도 행렬은 더욱 길게 더욱 장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느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참 평화가 오늘의 이 세상에 풍성하게 내려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훈화 4 : 성거룩한 야심 > - 변갑선 신부
- 여러해 전의 일이지만 어느 평신도가 전교에 관해서 말해 준 얘기가 기억에 새롭다. … 모 교수 가정의 무남독녀가 대학 졸업장을 받아들고 교정을 나오다가 교통사고로 죽고, 어머니는 의식을 잃고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중이라는 신문 기사가 보도된 것으로부터 전교가 시작된다. 서울의 어느 독실한 가톨릭신자는 슬퍼하는 정도를 넘어서 하나밖에 없는 여식을 잃고 괴로워하는 부모를 구체적으로 돕고 위로하는 길을 찾고 있었다. 괴로운 마음으로 기도하고 생각한 끝에 그 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를 적어 보내면 다소라도 위로가 될까하여 펜을 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실화는 대략 다음과 같다. … 미국의 유명한 출판사의 사장이 아들을 잃는 큰 불행에 처하게 되었는데, 세상이 캄캄하게만 보이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간 사업이 바쁘다는 이유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고 있었는데, 아들이 죽은 다음에는 “하느님이 계신다면 어째서 별로 죄도 없는 순진한 아들을 돌보아 주지 않았는가” 라면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마음속의 갈등을 표명했다고 한다. 어느 한 친구도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묻는 하느님의 뜻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답변해 주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설교와 이론은 먹혀들어 가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사장은 당시 인생철학에 대해서 좋은 말씀을 능란하게 한다고 하는 ‘풀톤 쉰’ 주교님을 찾아뵈러 갔다고 한다. 미국의 전 지역으로부터 하루에도 수백 장의 상담 의뢰의 편지를 받아서 읽고 사십여 명의 타자수를 거느리고 회답을 해주어야 하는 주교님은 더 많은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개인 면회를 허락하지 않고 있었으나 참사를 당한 주인공인 사장의 면회 신청을 듣고서 응접실에서 기다리게 하고는 성당에 가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장은 만나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자비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이 계시다면 왜 자기 아들을 돌보아 주시지 않았는지 정답을 의뢰하는 것이었다. 주교님은 그 아들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부족하나마 기도를 바치고 부모님의 슬픔을 함께 해보려고 노력을 했다는 인사말을 간단히 하고는 “저도 세상의 불행에 대한 하느님의 심오한 뜻을 말할 수 없는 인간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제가 사장님에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나를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얼핏 듣기에 별 수 없는 말과 같은 표현이 사장에게는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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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은 바쁘다는 핑계로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고 자녀도 제대로 돌보지 않은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하느님을 원망하고 다니느냐 하는 뜻을 마음 속 깊이 깨우쳤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즉시 주교님 앞에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과거의 죄를 고백하고 우선 슬픔을 더 무겁게 한 마음의 갈등만은 다소 해소하게 되었다고 한다. ... 성령께 기도를 바치고 심사숙고하여 말해준 주교님의 한 말씀은 하느님의 자비를 이해시키는데 상당한 역할을 해주었음이 확실하다. 이상과 같은 실화를 정성껏 정리하여 여식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 교수에게 우편으로 발송하게 되었다. 교수로부터 감사의 답장을 받았고, 꼭 한 번 뵙고 싶다고 했다. 그 후에 그 교우는 교수를 자주 만나 대화를 갖게 되었는데, 그 교수님은 교리를 배워 영세 입교하게 되었다는 경험담이다. 이를 소개한 신자의 경험담은 이웃을 돕고 전교하려고 할 때 심사숙고한 다음에만 찾아가서 필요한 것을 주고 말을 꺼내야 함을 깨우쳐 준다. 이웃을 성급하게 도우려 한다거나 생각 없이 타이르는 것은 이웃을 괴롭힘으로써 복음 선포에 도움은커녕 방해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훈화 5 : 성모 마리아의 칠고칠락(七苦七樂) > - 임상무 베네딕토 (도림동 주임신부)
- 성모님께서는 순명하는 마음으로 고통을 받으셨기에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하늘나라로 불러주셨다. 우리는 성모 몽소승천 대축일을 맞이하여 성모님이 받으신 일곱 가지 고통과 기쁨을 같이 묵상해 보자. 성모님이 받으신 첫 번째 고통은 아기 예수님을 낳아 이집트로 피난 가신 고통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죄의 유혹을 피해 나가야 하며 이로써 받는 고통을 성모님처럼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 두 번째 고통은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실 때 시므온의 예언이었다.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루카 2,35). 성모님처럼 자녀들에 대한 걱정은 하느님께 맡겨 드리고 간섭이 아니라 관심을 갖는 부모가 되어야 겠다. 세 번째 고통은 소년 예수를 잃어버린 일이었다. 우리도 이제까지 자녀들로부터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었다. 우리는 성모님처럼 하느님께 순명하는 마음으로 자녀들로부터 받는 고통을 받아들여야 겠다. 네 번째 고통은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아드님을 만나는 일이다. 가시관을 쓰시고 피와 땀이 뒤범벅되신 예수님, 무거운 십자가에 짓눌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성모님의 마음이 어찌 괴롭지 않았겠는가? 자녀들의 고통을 통해서 자녀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고 그 희생을 성모님처럼 하느님께 바칠 수 있어야 겠다. 다섯 번째 고통은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고통을 바라보시는 일이었다. 손발에 못이 박혀 짙붉게 흘러내리는 피를 바라보시는 성모님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리도 자녀들로부터 받는 고통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하느님께 제물로 바쳐야 하겠다. 여섯 번째 고통은 아드님의 싸늘한 시신을 안으셔야 했던 슬픔이다. 우리가 자녀로부터 받는 슬픔은 성모님께서 어루만져 주시며 달래주고 계신다. 일곱 번째 고통은 예수님의 장례를 지내신 일이다. 이젠 고통도 불안도 걱정도 없이 누워 계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우리도 언젠가는 성모님의 품에서 고요히 잠들어 이 세상을 떠나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을 생각해 보자.
- 이처럼 엄청난 일곱 가지 고통 뒤에는 성모님이 받으신 일곱 가지의 기쁨이 있었다. 성모님이 받으신 첫 번째 기쁨은 예수님을 잉태하신 기쁨이다. 성모님께서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라고 순명하심으로써 불안과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셨듯이 우리도 모든 일에 순명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겠다. 두 번째 기쁨은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만나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라고 주님을 찬미한 것이다. 우리도 주님을 이웃 사람 안에서 만나볼 때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기쁨은 예수님을 낳으신 기쁨이다. 산고 끝에 새 아기의 탄생을 맞은 기쁨은 어머니들께서 더 잘 알 것이다. 네 번째 기쁨은 동방박사 삼왕이 아기 예수께 조배할 때이다. 우리도 어떤 난관에 속에서 성체조배를 통해 용기를 갖게 될 때 성모님께서 기뻐할 것이다. 다섯 번째 기쁨은 소년 예수를 성전에서 찾으신 일이다. 우리도 우리 죄로 예수님을 잃었을 때 고해 성사를 통해 예수님을 찾아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여서 번째 기쁨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일이다. 온갖 고통과 죽음을 이겨내신 예수님이 이젠 우리 안에 영원히 살아 계시니 예수님을 매순간 만남으로써 희망을 갖고 살아야겠다. 일곱 번째 기쁨은 하늘나라의 면류관을 받으신 일이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하느님께 순명하며 모든 고통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썩어 없어질 월계관이 아니라 영원히 빛날 면류관을 받기 위해 남은 여생을 충실히 살아가자.
[ 15. 쁘레시디움의 뿌리를 찾아서 ]
< 한국 최초로 설립된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pr.) >
- 1921년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레지오가 한국 땅에 도입된 지 35년, 한국 가톨릭교회의 평신도 단체 중 가장 거대한 단체로 많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레지오의 목적은 단원의 성화를 통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데 있다. 레지오가 한국에 도입되던 1953년 당시는 6.25 전쟁의 상처가 곳곳에 산재하고 있던 때였다. 빈곤과 소외와 폐허 속에서 이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목포지역 선교 책임을 맡고 있던 골롬반 선교회의 부족한 일손을 돕기 위해 창설되었던 레지오가 이제는 민족 복음화를 위한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전교활동과 사목에 협조하고 있다. 월보 ‘레지오 마리애’의 창간에 맞추어 한국 최초의 쁘레시디움(Pr.)인 산정동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방문했다. ‘평화의 모후’ Pr.은 ‘치명자의 모후’ Pr.(산정동 성당), ‘죄인의 의탁’ Pr.(경동 성당)과 더불어 1953년 5월30일 콘칠리움(세계 평의회)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한국 최초의 쁘레시디움이다. 이 쁘레시디움은 매주 화요일 저녁 미사후 사제관에서 주회를 갖고 있다. 산정동 성당은 1897년 ‘뮈텔’ 주교의 명에 의해 ‘드예’신부가 설립하였다.
-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은 여성들만으로 구성되었으며, 창단 당시는 연령제한 없이 12명으로 시작했다. 창단 당시에는 헤롤드 교구장 서리 신부님이 레지오를 지도했으며 1954년 제5대 광주 대교구장으로 취임하기 직전까지 주회에 참석하여 훈화와 교본 해설을 통해 단원 교육을 시켰다. 교본이 없던 시기였기 때문에 레지오에 관한 모든 지식은 신부님의 영어 교본과 말씀으로 이루어졌다. 당시의 활동은 12명 정도가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고 첫째로 모임이 중요했기 때문에 제 시간에 주회에 모이는 것부터 시작하여 신부님의 지시대로만 움직였다. … 현재(1988년 기준) 목포지역에는 소년 레지오를 포함하여 138개의 쁘레시디움이 있다. 레지오 정신과 규칙을 충실히 지키면서 활동했기 때문에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큰 발전을 가져온 것이다.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은 30~40대의 주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6월 21일자로 1,844차 주회를 가졌다. 주요 활동은 병원 방문, 쉬는 교우 방문, 외인권면 및 전체 활동으로 민족복음화를 위한 묵주기도 등을 드리고 있다.
< 명수대 천주교회 ‘평화의 모후’ Pr. >
- 서울에 레지오 마리애를 처음으로 심어 놓은 명수대 천주교회의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찾았다. 1,652차 주회를 맞는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은 1956년 8월 19일에 명수대 본당에서 첫 주회를 가지면서 시작되었다.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은 30년의 역사를 통해 참으로 많은 활동을 해 왔고, 많은 쁘레시디움을 분가시켰다. 이 쁘레시디움은 5~6년 전 거의 10년 이상을 영등포 구치소를 방문하여 봉사하면서 한 달에 한 번 미사를 하고 말씀의 전례를 통해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믿지 않는 이에게 믿음을 심어 주는 전교 역할을 맡아왔다. 현재는 사순절 기간 어려운 가정을 돌봐주고, 환자 방문을 하여 9일 기도를 하며 비신자들에게 믿음의 씨앗을 심어 주고 있다. … 30년이란 긴 역사가 말해 주듯이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은 많은 활동과 많은 비신자들을 입교시켜, 성모님의 군대로서 다른 레지오 단원들에게 모범이 되어 오고 있다.
< 종로성당 ‘죄인의 의탁’ Pr. >
- 종로성당의 ‘죄인의 의탁’Pr.은 1,584차 주회를 가졌다. 서울에서 명수대 본당의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되었다. 1977년 3월 16일에 ‘죄인의 의탁’Pr.은 1,000차 기념행사를 가졌고, 1980년 11월 20일에는 서울 세나뚜스 주최로 열린 민족복음화 대회에서 20년 근속자 6명이 금메달을, 15년 근속자로 2명이 은메달을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받았다. … 이 쁘레시디움은 병으로 고통 중에 있거나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픔에 잠겨 있는 형제자매들을 찾아 위로하며,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빌어주면서 병자 방문에서 상가를 위한 봉사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성당 봉사를 맡아 본당에서 혼배 성사가 있는 날이면 바쁜 봉사활동을 한다. 또한 단원들은 초창기 때부터 지금까지 초상집을 방문하여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연도를 바치며, 입관을 해주는 등 꾸준히 주님의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대세를 준 가정의 가족 전체가 영세를 하였을 때 레지오 단원으로서 긍지를 갖는다고 하였다.
[ 16. 글 모음 ]
< 겨자씨 자라나서 > - 이 마리아(서울 세나뚜스 서기)
- 한국 천주교는 어느 누구의 선교사도 없이 실학파에 의하여 자생함으로써 눈물겨운 사건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우리 선조들은 하느님을 찾아보겠다는 오직 한 가지 생각에서 얼마나 안간힘을 썼었는지! 우리나라 5,000년 역사상 유교 사상이 뼛속 깊이 배어 있던 1784년, 이승훈(베드로)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함으로써 겨자씨 하나가 생기게 되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 세상에서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신들의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신앙을 연구하며 이타주의 사상으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을 바탕으로 한 형제자매로 인식하게 됨으로써 빈부귀천 사상이 타파되었고, 어른, 아이, 양반, 상인, 중인, 천민의 우매했던 머리에도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지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하느님의 진리에 의하여, 모든 사람에게 완전한 인격체로서의 평등사상이 전개되었다. … 천주교를 믿기만 하면 국가로부터 부모, 형제, 친척은 물론 재산과 고향을 잃음과 동시에 온갖 천대와 굶주림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으며, 목숨까지 잔인한 방법으로 빼앗겨야 하는 모진 박해 속에서도 신앙인은 날로 늘어만 갔다. 이러한 어려운 중에서도 겨자씨들은 메말라 죽지 않고 움이 돋고, 싹이 자라 떡잎이 되어 줄기가 생기더니 1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주님께서 우리 선조들의 끈질긴 신덕을 가상히 여겨 종교를 자유를 얻게 하여 주시니, 1899년에 신앙의 자유를 보장받게 되었다.
- 6.25 동란 직후 국가는 아직 안정을 찾지 못하였고 모든 국민은 공포와 폐허 속에서 가족과 재산을 잃은 서러움과 식생활조차 해결하기 무척 힘이 들던 1953년, 한국 교회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이 ‘레지오 마리애’라고 생각하신 분이 고 ‘현 헤럴드’ 주교님이셨다. 1953년 5월 31일 목포 산정동에서 ‘치명자의 모후’Pr.과 ‘평화의 모후’ Pr. 2개의 Pr.을 창설시키셨다. 그 후 30년이 지난 서울과 광주 2개의 세나뚜스(Se.)에 총 14,000여 개의 Pr.이 설립되어 16만여 명의 정단원 및 20여만 명의 협조단원을 보유한 방대한 조직이 되었다. … 1953년 레지오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설립될 당시 교우 숫자가 10여만 명 밖에 되지 않았으나,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신자수는 250만 명이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개방적인 종교 정책을 시행하는데 레지오도 발맞추어 모든 단원들이 성직자와 수도자를 도와 교회에 순명하면서 무언의 숨은 봉사의 역군으로서 그리스도의 사업에 총력을 기울여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가 성장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단체가 레지오 마리애라는 사실을 부인 하지는 못할 것이다. … 우리 레지오 단원 모두가 작은 밀알과 작은 겨자씨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갈 때 교회와 그리스도 왕국 건설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레지오의 앞날에 더 많은 은총이 풍부히 내려질 것이다. 우리 모두는 순교자의 후손답게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 즉 성모 마리아의 정신을 본받아 겸덕과 기도로 무장하여 실천 신앙인이 됨으로써 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되도록 다 함께 노력하여야 겠다.
< 영성체의 기쁨 > - 방 글라라
< 기도의 성과는 생활개선이 따라야> - 김 노렌죠
< 야유회와 행려병자> - 안 힐라리오
<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 정 말가리다
< 내탓입니다 > - 홍 마리안나
[ 17. 교본 연구 ]
< 레지오의 정신 > - 김영대 루스 (광주 세나뚜스 단장)
-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낱말은 누구나 ‘어머니’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사랑과 정신을 생각하며, 집에 계신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면 마냥 기쁨이 넘치곤 한다. 누구나 성모님과 같은 분위기에서 생활한다면 그는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요, 레지오적으로 생활하면 그는 인생의 승리자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사랑으로 숨쉬고, 희망 속에 생활하는 그 은총의 생활보다 더 축복받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레지오의 정신은 바로 마리아의 정신이다. 마리아의 정신과 신심은 무엇인가? 첫째,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라고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봉헌하는 신심이다. 둘째, ‘찬양 하였다’ 이 세상의 물질이나 출세를 생각 않고, 오직 일생동안 하느님만을 찬양했고, 이에 모든 것을 봉헌하는 것이 성모님의 전 생애였다. 셋째, ‘마음에 품으셨다’ 한 치의 눈도 팔지 않고, 탈선도 없이 일생동안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마음에 모시고 흠숭의 생활을 하였다. 넷째, ‘십자가 옆에 서 계셨다’ 일생동안 아들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살피시며, 기도하고 아들과 동참하였다.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처럼 생활하고자 레지오 깃발아래 모였다. 성모님께 순명하는 우리가 되기 위해 정신과 마음을 가다듬어 지상의 가장 으뜸가는 정예 군대가 되어 민족복음화의 역사적 소명을 완수해야 한다.
1) 봉헌된 자라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 나는 누구인가? 하느님의 자녀이며 하느님의 것이다.
* 하느님을 공경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삶을 영위해야 한다.
* ‘이 몸이 주님의 종입니다’ 이것이 성모님의 정신이다.
* 하느님의 도구로 바쳐야 한다.
* 청결하고 빛난 도구가 되어야 한다.
* 온전히 모두 바치는 자녀가 되어야 한다.
2) 바른 길로 가고 바르게 사는 단원이 되어야 한다.
* 레지오의 지침서인 교본을 착실히 공부해야 한다.
* 레지오의 규율을 엄격히 지키며, 활용하여야 한다.
* 레지오 정신으로 무장된 상태에서 활동해야 한다.
3) 주위를 살펴보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 이웃의 모든 민중들을 교회에 인도해야 한다.
* 길을 방황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 본 고향을 모르는 이웃을 찾아야 한다.
* 십자가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형제를 찾아야 한다.
* 감사와 사랑에 인색한 형제를 찾아야 한다.
* 진리를 안다고 하면서 빗나간 형제를 찾아야 한다.
* 죄와 물질에 묶여 있는 형제를 찾아야 한다.
* 자기 위주로 살아가는 형제를 찾아야 한다.
4) 묵묵히 땀 흘려 아낌없이 봉헌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 형제를 위해 피와 땀을 흘리는 단원이 되어야 한다.
* 성모님의 사업에 쓰여지는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될 단원이 되어야 한다.
* 땅속에 묻힌 보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
* 후회 없이 열심히 활동하여 민족복음화의 시기를 앞당길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야 한다.
* 미지근한 신앙을 버려야 한다.
- 단원의 정신은 성모님의 정신이다. 즉, 깊은 겸손, 온전한 순명, 천사 같은 부드러움, 끊임없는 기도, 갖가지 고행, 더없는 순결, 영웅적인 인내심, 천상적 지혜, 자기를 희생하는 용맹한 하느님의 사랑을 단원들은 성모님으로부터 본받아 성모님과 같은 신심으로 일생을 봉헌해야 한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군대인 레지오 단원만을 믿고 계신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성모님 생각에 젖어야 한다. 지상의 평화군! 성스러운 그 이름 성모군대여! 성모님께 일치하는 성모군대의 대열에 참여하게 된 이 기쁨을 활동으로 보상해야 한다.
[ 18. 레지오 마리애와 프랭크 더프 ] - ‘레지오 마리애’의 창설자
- (아일랜드의 열심한 한 가정) 아일랜드는 애국심이 종교적 감성과 긴밀히 연류된 나라이다. 그것은 이웃 영국이 가톨릭 신앙을 억압하고 국가 자주성도 억압한데서 온다. 아일랜드 가톨릭 신자가 수세기 동안 어떤 차별을 대우를 받았는가는 자국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300년 이상 끌려 온 고통 받는 민중의 봉기는 언제나 실패만을 거듭하였다. 1916년에야 섬 남쪽 지방이 자유를 얻는데 성공하였다. 1921년 아일랜드는 영국 연방의 일부가 되었다. 완전 자주 독립은 1949년에야 비로소 성취되었다. 아일랜드 주민들의 잠재의식 속에 자기 고향에 대한 연민은 천주의 모친에 대한 애정과 일치하였다. 아일랜드 해방 운동은 이렇게 거의 신비로운 특징을 지녔다. … 더블린에서 가장 멋진 남자라고 불렸던 프랭크 더프는 레더씨아 수산나 프리힐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더블린에서 북쪽으로 40km쯤 떨어진 조그마한 도시, ‘트림’에서 태어났다. 프랭크 더프는 국가 공무원이었으며, 레더씨아 역시 국가공무원이었다. 레더는 여섯 아이를 낳았는데, 그 중 둘은 어린 나이에 죽었고, 4남매가 프랭크와 더불어 자랐다. 가정생활은 행복스럽게 여겨질 정도였고, 긴밀하고 애정이 넘쳐흐르며 단결되었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처음부터 굳건한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것은 명백한 일이었다.
- (내적 및 외적 발전) 프랭크는 젊은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곧 중요한 과업을 맡도록 등용되었다. 그는 처음에 농림부로 갔다. 아일랜드는 그 무렵에 가까스로 창설되었다. 그는 국가 공무원이 들어 간지 2년 만에 이미 토지 개혁법 실시에 필요한 통계 기획 업무를 맡았다. 이때 발휘된 그의 명석한 논리적 사고와 수학적 두뇌 때문에 훗날 그는 재무부로 전근하게 된 것이다. 그가 자기 나름대로의 결정을 하기 훨씬 전에 ‘우리는 성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소책자를 출간한 적이 있었는데, 그 소책자에서 평신도들에게 성덕에 이르는데 대한 안내와 충고를 해 주었다. … 성 비오 10세 교황이 매일 성체를 배령하기를 권면하여 반포한 영성체에 대한 교령이 몇 년 전에야 나왔고 아직은 일반적으로 시행되지 않을 때였다. 프랭크가 매일 하루 일과 전에 영성체를 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프랭크가 매일 ‘사제들의 성무일도’를 바치기로 결정했을 때가 1913년, 그의 나이 24세 때였다. 이런 결정을 한 지 1년 후에 프랭크는 처음으로 ‘성 빠뜨리시오 말괄량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러크 더크’를 순례하였다. 이것은 정말 세상에서 훌륭한 참회를 위한 순례였다. 24시간 대재(大齋)와 소재(小齋)로 시작한 참회는 3일간 계속되었다. 그 순례기간 동안 많은 기도와 묵상은 물론 매일 여러 번 묵주기도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쳤다. 프랭크는 그때부터 매년, 병마로 시달릴 때까지 8월 첫주일에 러크 더크로 갔다.
- 어느 날 아는 사람이 프랭크에게 빈첸시오 형제회에 가입하기를 권하였다. 이 회는 애덕사업을 목적으로 창설된 모임이다. 빈첸시오 형제 회원은 자기 사명이 공직상 사회사업가로서 가난한 이들을 만나는데 있지 않고,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께로부터 잊혀지지 않고 교회도 그들의 궁핍을 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식을 그들에게 심어주는 데 있음을 알고 있었다. 프랭크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결국은 순수한 관심에서 오는 동기보다는 그 아는 사람에 대한 호감에서 그 회에 가입했다고 한다. 빈첸시오 형제 회원들은 매주 프란시스 거리의 ‘마이러하우스’라는 곳에서 만났다. 이들의 모임은 기도와 영적독서로 시작하였다. 회의록이 작성되고 사업 청취가 있었다. 그것은 훗날 레지오 마리애의 창설적 의미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레지오마리애가 처음에 이어 받은 형태가 바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빈첸시오회는 저명한 인사들을 그 회원으로 하였고, 매우 활동성이 있었으며 생기가 있었다. 프랭크는 그 전체 분위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곧 열렬한 빈첸시오형제 회원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 다음호에 계속 >
[ 19. 평의회 회의록 ]
1. 광주 세나뚜스 회의록
* 제380차 회의록/ 1988년 6월 12일/ 광주세나뚜스 회의실/ 회의 순서
2. 대구 대교구 의덕의 거울 레지아(광주 세나뚜스 산하)
* 제5차 종합보고서/142차~153차(12차분)
3. 바다의 별 소년 꾸리아(광주 세나뚜스 직속) 제30차 종합보고서
* 제30차 종합보고서/357차~366차(10차분)
4. 서울 세나뚜스 회의록
* 제113차 회의록/ 1988년 6월 26일/ 명동가톨릭회관 3층 중강당/ 회의 순서
5. 서대문, 마포(2)지구 꼬미씨움(Co).(서울 세나뚜스 산하)
* 제3차 종합보고서/55차~66차(12차분)
[ 20. 레지오 소식 ] - 시드니에 한인 꾸리아(Cu.) 설립 등
[ 21. 지시 사항 ] - 성모성년 페막식 행사 등
#125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126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 책 이름 : 신발은 신어도 됩니까? ]
- 지은이 : 강길웅 외 15인
- 펴낸데 : 성바오로출판사
- 펴낸이(발행인) : 이순규
- 출판일(발행일) : 1993.3.20 - 183p
- 내 용 : 16분의 성직자 및 수도자(신부, 수사, 수녀)가 부르심에 응답한 체험글 모음
[ 표지의 글 ]
*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당신 것으로 삼으실 양이면 그렇다 고 말씀해 주시지 그러셨어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이리저리 헤 매고, 쫓겨날까 마음 졸이고, 혹 다른 좋은 길이 있나 기웃거리며 힘을 뺐습니다. 당신이 부르시면 거절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만, 당신은 아무래도 부르시는 방법을 배우셔야 합니다.
* 조금 더 자상하고 조금 더 친절하고, 조금 더 편안하게 부르시 는 법을 배우시지요. 주님! 당신이 오라는 길로 멋도 모르고 따라 갔다가 눈물, 콧물 다 쏟아내며, 가슴에는 온통 시퍼렇게 멍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주님이 좋은 걸 어쩝니까? 그래도 ‘나’라는
신발은 신어야 겠지요.
[ 차례 ]
강길웅, 곽명호 신부/ 김옥현 수녀/ 김홍언, 박재만, 배광하 신부/ 손종수 수사/ 신현만, 오무수, 이용우, 정광열, 정순오, 최경환, 최용준 신부/ 최은미 수녀/ 홍성남 신부/
후기
1. 삼십 년 동안 뜸을 들이신 하느님 - p7
< 강길웅 신부 : 1943년 대전 출생, 1982년 사제서품 >
- 내가 처음으로 신부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열 살 때였다. 그때 우리 식구는 천안에서 살고 있었는데, 나는 매일같이 새벽미사 복사를 하러 성당에 달려가는 것이 재미있고 신이 났었다. 6학년 때는 아버지께서 대전으로 발령(대전 사범학교)을 받아서 대전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그해 가을에 어머니께서는 여동생을 낳으셨는데, 그 동생이 돌도 되기 전에 큰 병을 얻는 바람에 우리 집은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게 되었다. 동생의 정확한 병명은 지금도 모른다. 다만 어쩌다가 경기를 한번 한 것이 그대로 발작하는 병이되었다. 우리 식구는 자그마치 여덟이나 되었다. 아버지의 박봉으로는 빌린 돈 이자 갚기도 모자랐고 동생의 병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내가 소신학교 갈 때가 되자, 부모님이 신학교는 늦게 가도 될 것 같으니 먼저 집안을 돕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진로를 사범학교로 바꾸어 선생이 되었는데, 그때가 스무 살 때였다. 처음 발령이 난 것은 충남 당진군에 있는 ‘대난지도’에 있는 작은 분교였다. 그때의 한 달 봉급이 5천원이 채 못되었는데, 집에 송금을 하고 나면 용돈은 거의 없었다. 그 흔한 시계 한번 손목에 차보지 못했고, 집안 빚은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선생이 된 지 3년째 되던 해에 섬 근무자에 대한 특혜가 생기는 바람에 대전시로 전입되었고, 그해 12월 나는 입대하여 군 생활을 했다. 군 생활이 쉽지 않았으나 30개월의 복무를 마쳤다. 그래도 군복무 동안 성당까지의 거리가 8km나 되었지만, 주일미사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위안이었다.
- 제대한 뒤에 나는 대전 시내 국민(초등)학교에 복직이 되었으나 도시 환경이 체질에 맞지 않아 다시 섬마을 학교로 지원하여 안면도 밑에 있는 ‘추도’라는 작은 섬의 분교장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였는데, 그때 나는 정말 상도 많이 받았고 칭찬도 많이 받았다. 1970년 초에 주임교사 제도가 생겼으나 그 첫 번째 발령에서 내가 제외되었다. 하늘이 캄캄했다. 이제야 산더미 같은 빚을 다 갚고 숨좀 돌려볼까 했는데 …. 나에겐 여러 가지 꿈이 있었다. 그것은 머슴살이도 해보고, 광부나 뱃사람도 되어서 인생의 밑바닥을 샅샅이 체험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머슴살이는 못해 보았으나 강원도 도계 탄광에 들어가서 광부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생이란 참으로 어려운 길이라는 것 뿐 아니라 죽을 위험을 서너 번 넘기면서부터는 삶에 대한 애착도 아주 강해졌고 많은 것을 배웠다. 갱속에서 나는 새로운 삶의 세계로의 길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광부생활 1년만의 일이다. 주위에서는 신학교를 가라고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동생을 생각하며 병원 사도직을 하는 천주의 성요한 수도회에 입회하게 되었다. 동생은 이미 식물인간이 되어 있었다. 수도생활에서 기도하고 봉사하는 삶이 그렇게 즐겁고 좋은 것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때 나는 ‘성심의 메시지’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어느 날 그 책을 읽고 기도하고 있는 데 감실에서 어떤 음성이 들려왔다. 그것은 분명 주님의 음성이었으며, 들리지는 않았지만 목소리가 있었으며, 보이지 않았지만 표징이 있었다. 그 목소리의 메시지는 신학교 시험을 치라는 것이었다.
- 수도원 감실에서는 계속 나를 부르시고 권하셨다. 주님이 원하신다면 아무도 그 길을 막을 수 없다. 나는 수도원을 나가야 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우선 예비고사부터 준비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해야하는지 도저히 엄두도 나지 않았고 공부할 장소도 돈도 없었다. 수도원을 나가기 하루 전이었다. 난데없이 옛날 섬마을 학교 육성회장을 맡고 있던 분이 나를 찾아와 나에게 돈을 내놓았다. 그가 어려울 때 내 돈을 좀 얻어 쓴 적이 있었는데, 신세도 많이 지고해서 되받을 생각 없이 그냥 드렸었다.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돈을 갚는다고 내놓은 것이었다. 마치 하느님이 보내신 천사 같았다. 나는 염치도 없이 그 돈을 받아 광주 근교에 있는 암자를 빌려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해에 나는 예비고사에 합격하고 신학교 시험에도 합격했다. 1976년, 사범학교를 졸업한 지 꼭 14년째요, 내 나이 서른네 살 때의 일이다. 나는 마흔 살이 돼서야 신부가 되었다. 어렸을 때의 기도는 하느님이 꼭 들어주신다는 부모님의 말씀은 옳았다. 하느님은 나를 적절하게 뜸을 들이시고 단련시키시어 사제가 되도록 인도하셨다. 특히 식물인간이 된 여동생은 내 성소의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다. 열 살 때부터 기도하고 소망한 꿈이 30년 만에야 이루어지리라고는 하느님 이외에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실로 행운아였다.
2. 그리유, 그리유 - p15
< 곽명호 신부 : 1957년 대전 출생, 1991년 사제서품 >
- 내가 잘 쓰는 말 중에 하나가 촌스런 서산 사투리인 “그리유, 그리유.”이다. 딱 잘라 거절을 못하고 하는 말이다. 사실 나는 청년이 되기까지 한 번도 신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국민(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도, 성당도 십 리 밖에 있었다. 그래서 매일 토요일이면 등을 떠밀려서 성당을 가야 했는데, 학교에서 십리를 걸어와서 가방을 놓자마자 다시 십리를 걸어서 성당에 가야 했으니 그런 중노동이 또 어디 있으랴 싶었다. 나는 학년이 높아지자 성당에 안 가려고 꾀병을 앓거나 별별 핑계를 다 대면서 샛길로 빠지곤 했다. 청년회 시절, 성탄절을 앞두고 나는 불우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연탄배달을 한 일이 있었다. 그때 남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를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 후 나는 해마다 남을 돕는 일을 계속하면서 남한 천지 구석구석 안 가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새로운 환경에 맞부딪혀보자는 생각으로 남쪽의 외딴 섬인 소록도에 가기로 했다. … 나는 그들의 한 맺힌 이야기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뭉그러진 손을 꼭 잡아주면서 돌아서는 일밖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만큼 무력함을 절실히 느껴본 적도 없다.
- 돌아오는 길에 우리 봉사자들은 누구도 말이 없었다. 비가 와서 질퍽질퍽한 흙길을 거르면서 나는 주님께 물었다. “주님,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도대체 당신은 제게서 무엇을 원하십니까? 제가 갈 길은 어디 있습니까?” 소록도를 다녀온 후유증은 몇 달을 두고 계속되었다. 나는 그동안 해오던 봉사활동도 그만두었다. 하루하루 나의 알량한 자존심과 그동안 떠벌려오던 생활철학이 한 조각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였다. 설령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과연 그 길이 순탄할 것인지도 미지수였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그때 내 머리 속에는 신학교를 가야겠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아버님께서 너그럽게 허락해 주셨는데, 얼마 후 정정하시던 아버님은 갑자기 쓰러지더니 주님 곁으로 가셨다. 그 후 나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학교를 졸업한지 오래된 나에게 학력고사를 본다는 것부터가 대단한 도전이었다. 내게는 ‘주님께서 부르셨다면 반드시 될 것이다.’라는 굳은 확신이 있었다. 나는 학력고사를 무사히 치르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사제 서품까지는 참으로 길고 긴 인내가 필요했다.
- 사제 서품을 받고 첫 발령을 받은 곳은 유서 깊은 서산성당이었다. 경운기보다 전혀 나을 것이 없는 본당 고물차를 타고 첫 공소 방문을 갔을 때의 감격은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이다. … 신학교를 입학하기 전에도 그랬고, 사제직을 준비하면서도 그랬고, 그리고 지금 사제로 살아가면서도 늘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물음은 ‘진정한 의미에서 참다운 봉사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이 물음은 평생 동안 봉사직의 길을 걸어야 하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물음이기도 하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라고 하신 예수님처럼, 하느님이셨지만 사람을 사랑하기에 그들의 종이 되셨던 예수님처럼 나도 그와 똑 같은 걷고 싶은 것이다. 예수님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고치를 짓고 번데기가 되고 긴 인고를 겪으면서 허물을 벗듯이, 나를 단련시키시고 여러 체험의 기회를 주시고 때가 되면 문제를 해결할 힘도 주실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은 사제이고 싶다. 점점 살기가 어렵고 각박해지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전해 주는 한 작은 도구이고 싶다. 주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나 “그리유, 그리유” 하고 대답하는 사제이고 싶다. 나의 주인은 주님이시고, 나를 어디에 쓰실지 결정하시는 분도 그분이시기에 내가 할 일은 단지 비어놓는 그릇이 되는 것뿐이다.
3. 당신 아니면 받아줄 사람도 없습니다 - p23
< 김현옥 수녀 : 1956년 서울 출생, 1979년 첫 서원/성바오로딸수녀회 수녀 >
- 나의 장래 희망은 국제간첩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입 밖으로는 표현하지는 않았다. 스파이(간첩)가 되고 싶었던 것은 목숨을 걸고 생사의 기로에 서서 어려운 일을 척척 해내는 만능인간 같은 모습 때문이었다. 나는 스파이 영화라면 한밤중에라도 일어나 볼 정도의 열성을 보였다. 그러한 나는 사실 수녀라는 말만 들어도 얼굴을 찌푸렸다. 본당에서 수녀님을 뵈어도 그저 수녀란 답답하고 엄격하고 무서운 사람으로만 생각했기에 커서까지도 수도원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떠올려본 일이 없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가까울 무렵, 기차 안에서 어떤 수녀님께 자리를 양보해드리면서 난 처음으로 수녀님과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맺었다. 그분은 내 친절이 고마워서 인사로 당신 집에 놀라오라고 하셨다. 꼭가야 하는 줄 알고 몇 달 후에 그분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내 성소의 첫 씨앗이 되어주셨던 임 수녀님을 만났다. 토요일마다 그 먼 길을 찾아갈 정도로 그분에게 매료되었다. 무엇보다도 ‘자유롭고 최선을 다하는 후회 없는 삶’이란 말이 너무 멋있게 들려 그때부터 나는 오직 수녀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한번 결심하면 하늘이 무너져도 해야 하는 나의 고집은 부모님의 반대를 꺾고 수녀원에 골인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 골인의 응답은 멋도 모르고 한 것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사실 난 성소에 대해서도, 수도생활이나 신앙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무지개 같은 한 가지 이상에만 마음이 팔려 “네.”하고 대답했던 것이다.
- 수도원에 입회해서 넉 달이 지나서야 본가로 휴가를 갔다. 우리 수도회(성바오로딸수도회)는 지원자들이 사복을 입는다. 맞는 옷이 없자 그 전의 청원자들이 입던 점퍼스커트를 주셨는데 그 옷은 빛이 바랜데다가 두꺼운 모직천이어서 찬바람이 나야 입을 수 있는 것이었다. 8월의 찌는 듯한 여름에 나는 우습게도 휴가갈 때 이 옷을 입고 갔다. 나는 이제 옛날의 내가 아니라는 것, 나는 수녀라는 것을 성당 친구들에게 뽐내고 싶었는데 그걸 증명해 보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 작은 사건은 내 첫 번째 응답을 한마디로 표현해 주는 것이었다. 뭔지도 모르고 오색 무지개로 둘러싸인 생활을 향해 나는 텀벙 뛰어 들었기 때문이다. 난 초기 양성기 때에도 내 자신이 어떤 성격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나의 미래에 대해서도 아무 걱정 없이 부딪히는 일이 있어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수도회로부터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성소가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 번 숙고해보라는 권고를 받았다. 이 권고를 받아들여 집으로 돌아와 깊은 실망 속에서 괴로워하던 그날들이 내게는 제2의 성소였던 것이다. … 내 어려운 처지를 하느님의 뜻으로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고, 하느님에 대해서는 말조차 꺼내기도 싫었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게 맞는 방법을 생각했다. ‘매일을 행복하게 살 것’ 나는 내가 그날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아내며 보물찾기하는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 바깥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나는 여전히 수도자였다. 정식으로 퇴회한 것도 아니었고, 가끔 수도원에 가서 내 생활을 장상에게 보고해야 할 의무도 있었고, 내가 결혼하고 싶으면 수도회에 정식 통고해야 하니 나의 밑동은 여전히 수도회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리둥절하며 보내는 시간들이 아까워 내 주변정리를 했다. 결론적으로 그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할까 봐 매일미사에 참례하고 묵주기도를 바쳤다. 나는 “주님, 당신의 뜻을 알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바라시는 바를 실천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를 되풀이하며 다른 삶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과 수도원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면 좀 더 진지한 응답을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했다. 다시 돌아간다는 것도 내게는 일종의 두려움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나는 “죽기야 할라구!” 이렇게 결심한 뒤에는 이것저것 재보지 않고 다시 두려움 속으로 몸을 던져 버렸다. 나의 두 번째 응답은 두려움을 품은 응답, 힘이 들어간 응답이었다. 세 번째 응답은 애간장을 녹여내는 응답이었다. 나의 작음과 주님의 너무 크심에 눌려 눈물을 쏟아내며 드리는 응답이었다. 그런데 종신서원을 하고 수도생활에 투신하면서 모든 것이 다 잘될 줄 알았던 내 신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고 있는 사도직이 마음에 안 들고 자매들과도 마음을 합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고독했고 고통스러웠다. 행복하지도 평화롭지도 못한 내 삶에 무언가 결정을 해야 한다고 마음을 먹고 수도회를 떠나는 것이 공동체와 나를 위해 좋을 거라는 결론에까지 이르렀다. 장상에게 이러한 내 심경을 말씀드렸더니 그분은 얼마간 여유를 두고 생각해보자고 하셨다.
- 10월의 대피정이 깊은 산 속 기도의 집에서 있었다. 매일 동이 트기 전에 산책을 나서곤 했을 때이다. ‘넌 지금 어둠 속에 있는 거야. 무언가 너를 꼭 막고 있는 그것을 빼버리면 넌 새로운 세상을 볼 거야.’ 라고 내 마음이 나에게 속삭였다. … 나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살아왔던가? 주님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내 생각만을 우상처럼 떠받들고, 내 생각만이 모든 것 위에 군림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자매들을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기를 꺼려하면서도 그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나는 그들에게 진실하게 대하지 못하고 이중적인 모습으로 나를 나쁘게 보이지 않기 위해 너무 많은 힘을 낭비했고, 그들을 끊임없이 판단하고 그들의 생각을 넘겨짚으면서 혼자 고독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 내가 수도회를 떠나고 싶었던 진짜 이유는 수도회의 삶을 통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복음을 따르는 것조차 우습게 여겨지며 자매들이 부담스러워지고, 도대체 내 존재조차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고독함이 나를 누르고 있었다. 그것은 변화되지 못하는 내 존재에 대한 무력감이었다. 그러나 변화되지 못하는 나의 가난함을 그대로 인정하며, “기다려주십시오!”하고 주님께 말씀드리고, 자매들을 향해서도 부르짖자마자 나는 전부터 고요히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맹인이 눈을 뜨는 감격적인 모습이었다. … “나를 따르라.”하고 부르시는 주님의 모습을 뵙는 듯하다. 앞서 가시며 사는 법을 보여 주시는 그분을 보고 나는 두려움이나 헛된 용기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 속으로 그저 살며시 나를 놓아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애간장을 끓이며 약간은 죄송한 마음으로 다시 드리는 나의 대답은 “당신이 아니면 갈 데도 없습니다.”라는 고백이다.
4. 장돌뱅이에서 신부가 되기까지 - p33
< 김홍언 신부 : 1939년 전남 강진 출생, 1969년 사제서품 >
- (덤으로 태어나다) 오늘날처럼 자녀가 둘 이상만 되면 야만인 취급을 하는 시대였다면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3남 3녀의 막내이지만 어려서 죽은 형제를 포함하면 열 번째로 태어난 것이다. 어머니 나이 마흔 둘에 나를 낳으셨으니 나는 세상구경할 확률이 극히 낮은 셈이다. 게다가 늦둥이어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늘 약골이라서 무리하면 곧 피곤을 느꼈다. 20대 초반에는 늑막염에 걸려 고생하였고, 요즘은 지방간으로 늘 병을 옆에 끼고 산다. (신앙에 귀의하다) 국민(초등)학교 때 친구따라 개신교에 다닌적이 있다. 3학년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서 주일에 교회에서 들었던 설교 말씀을 어김없이 일기장에 요약해서 정리해두곤 했다. 나는 지금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일학교 학생들과 예비자들에게 신앙일기를 꼭 쓰도록 권장하는데, 그것은 아름다운 추억이 될뿐아니라 자신의 성장의 발자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그때 암송했던 성서구절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장돌뱅이가 되다) 당시에는 중학교 입학 국가고시가 있어서 그 점수를 가지고 중학교를 지망했다. 그때 나는 최고 점수를 받아 도시 일류 중학교에 입학하고도 남을 정도였으나 집안 형편상 도시의 중학교에는 갈 수 없었다. 처음으로 맛본 좌절이었다. 일단 중학교까지는 졸업하기로 하고 나서 돈을 벌기로 했다. 졸업후 이웃 친구와 함께 장사를 시작하게 되어 일곱 고을의 장터를 떠도는 장돌뱅이가 된 것이다. 파장을 하고나면 막걸리를 많이 마셨는데, 학교를 다녀야 할 나이에 맺힌 한을 술로 마시고라도 잊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 (파산선고를 받다) 장사가 잘되자 친구와 함께 계를 10여 개를 들었는데, 그 친구가 곗돈을 챙겨 줄행랑을 치는 바람에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그 뒤에 광주로 와서 고학이라도 해볼 양으로 제재소에 취직을 했다. (신흥종교의 늪에 빠지다) 어린 시절 나를 교회를 인도했던 친구가 이번에는 박태선 장로가 세운 전도관으로 끌어들였다. 은근히 세상을 비관하던 나는 막된 생각으로 부추겨지면서 신이나서 내 삶은 온통 광란의 불기로 타올라 걷잡을 수 없었다. (약국 생활) 신흥종교에 빠져 있던 나를 잡아 끌다시피 해서 광주역 근처에 있는 약국에 취직을 시킨 것은 매형이었다. 약국 생활 3년, 어느 정도 안정이 되는 듯싶었는데 약국 주인이 어느날 6.25 때 부역한 사건으로 어디론가 잠적해 버렸다. 나는 기회다 싶어 그곳을 나와 신앙촌에 입촌할 생각이었는데, 누군가가 약국 경영 기술을 익혔으니 직접 약국을 경영해보라는 권유를 받아 약국을 경영했다. (천주교로 개종하다) 그때 같이 약국을 경영하던 분이 천주교 신자여서 나는 자연 천주교 신자들과 접촉이 잦아졌고 그때마다 종교에 관한 토론을 하곤 했다. 그때 마침 북동 천주교회에서 외국 신부이신 주임 신부와 매주 화요일 저녁에 개신교 신자와의 토론시간이 있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나갔다. 고백성사에 관한 것과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참 교회임을 깨달으면서 나는 얼마나 기쁨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의혹의 구름이 걷히고 햇살처럼 찬란한 빛이 내 심령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세례를 받았다. (성소의 문을 두드리다) 어려서 장돌뱅이를 함께 하다가 도망쳤던 친구가 고향으로 돌아와 지내다가 식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부음을 받았다. 한번 잘살아보자고 나하고 의형제의 인연까지 맺었던 친구였다. 그 친구를 위해 여러 차례 밤샘 기도를 하면서 나는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고, 마침내 사제가 되어야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 (만학의 길에) 신학대학에 가려면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하는데, 그때 내 나이가 스물세 살이었다. 전에 통신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다가 그만두었던 것을 생각하여 그를 근거로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증명서를 만들어 전학 형식으로 야간 고등학교에 편입했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공부를 해야 했던 만학이 고생 끝에 드디어 2년 후에는 나는 괜찮은 실력으로 가톨릭 신학대학에 합격을 했다. 재학중 신학대학이 정식으로 문교부 인가를 받는 바람에 학생들이 다시 입학시험을 치러야 하는 일을 거치는 등 어려움이 따랐다. (신학대학에서의 위기) 다시 신학교 공부가 시작되었는데, 갈수록 공부는 어려웠다. 머리도 나이 탓으로 둔해지기도 했지만, 늑막염으로 독한 약을 먹은 후유증으로 인해 죽만 먹다보니 힘이 딸려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겨우 철학을 마치고 나니 남들은 모두 군에 입대를 하는데 나는 늑막유착과 비후 때문에 세 번씩이나 신체검사에서 떨어져 혼자 남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 학교에서는 세상에 나가서 3년 동안만 세상 체험을 하고 돌아 오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사정을 세세히 말씀드려 1년 동안만 따로 하여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다가 합반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 시간이 흘러 부제품을 받을 때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신부가 될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짐을 싸놓고 영성 지도신부를 찾아가 그만두어야 겠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지금은 고인이 된 ‘손 에드워드’ 신부님이셨다 신부님은 몇시간에 걸친 내 이야기를 다 들으시더니 이런 말을 해주셨다. “ … 당신은 부족함을 깨닫고 있으나 하느님의 백성을 사랑하고 그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나는 바로 그것을 성소가 있는 증거라고 확신합니다. 당신은 훌륭한 신부가 될 것입니다. 비천한 이들이 체험하는 그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한많은 세상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야말로 가난한 자들의 한과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훌륭한 신부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신부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는 그 넓은 가슴으로 나를 꼭 안아주셨다. 신부님의 말씀은 내 삶의 좌우명이 되었다. …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순례하는 분이다. 부르심의 길이란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이며, 그 속에서 하느님은 당신이 뽑으신 자를 갖가지 방법으로 단련시켜 굳세게 하신다는 것을 사제가 된 지 20년이 지난 오늘에야 나는 어렴풋이 깨닫는다. 성소의 길은, 달걀이 부화되려면 어미닭의 따뜻한 체온이 필요하듯이 교회의 제도가 감싸주어야 한다. 성소는 오묘하신 하느님의 도우심과 성소자 스스로의 노력이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성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나래를 펴기 위하여 생살을 찢는 아픔의 밤을 수없이 지내야 한다. 아무쪼록 이 부족한 체험이 ‘부르심’이라는 길고도 험한 순례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격려가 되었으면 한다.
5. 질그릇에 담긴 보물 - p46
< 박재만 신부 : 1947년 충남 당진 출생, 1976년 사제서품 >
- 우리 집안은 두 분의 할아버지를 순교자로 모신 일명 구교우 집안이었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어려서부터 순교자의 후손답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다. 할아버지는 순교자의 후손답게 정말 성인처럼 사셨다. 우리 가족은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모여 아침이면 조과(아침기도)를 바쳤고 저녁이면 만과(저녁기도)와 묵주기도를 바쳤다. 우리 형제들은 이러한 할아버지 밑에서 국민(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조과, 만과, 묵주기도를 다 외워야 했다. 별채엔 언제나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오시면 즉시라도 쓰실 수 있도록 방 하나를 비워서 준비해놓고 있었다. 그분들이 오시는 날이면 우리 형제들은 성인 이야기, 교리 이야기를 들려 주셨는데, 그분들이 가실 때 마다 신부나 수녀가 될 생각이 없는지 묻곤 하셨다. 그런 질문이 나올 때마다 형이나 누나 동생들은 신바람이 나서 당당하게 “네.”라고 대답했지만 나는 마지못해 “신부가 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될 수 있는 건가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하느님의 계획은 묘하게도 형들은 제쳐놓고 나 혼자만 신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때의 별채는 나에겐 ‘예비 신학교’ 구실을 톡톡히 한 셈이다. 나의 사제성소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은 할아버지였다. 본당 신부님께 신학교에 가고 싶다고 떠듬거리며 말씀드린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의 봄판공 때이다. 신부님은 웃으면서 왜 신부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셨다. 그것은 예상한 질문으로 모범답안을 미리 작성해둔 터였다. “사제의 헌신적 봉사에 참여하고 싶어요.”라고 서슴없이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대답은 가소롭기 짝이 없어 픽하고 웃음이 나온다.
- (신학교 생활) 내가 소신학교에 입학하고 몇 년이 지난 후, 할아버지는 원 주교님의 요청으로 대천공소 전교회장으로 봉사하셨는데, 방학 때가 되면 으레 그곳에 가서 며칠씩 지내곤 했다. 할아버지는 더없이 내가 대견스럽고 흐뭇해서인지 내 손을 끌고는 동네방네 인사를 다니셨다. “얘가 내 손자 녀석인데 신학생입니다. 이분은 아무개이시다. 인사드려라.”라며 쉬지 않고 다니셨다. 그토록 나를 사랑하시던 할아버지셨는데 돌아가시는 것조차 뵙지 못하고 장례미사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행여 나의 신학교 생활에 지장이 있을까 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기 때문이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이 신학교 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에 이르러서였다. 종말적 영성이 짙었던 신학교 교육에 육화적 측면이 보완되면서 자연히 부작용과 혼란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전통의 유지와 쇄신 수용의 과정에서 신학교는 새로운 거듭 태어남을 위해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교수님들과 학생들 간의 갈등도 적지 않았다.
- (시련과 서품) 내가 ‘부제품 보류’라는 통보를 받은 것은 1974년 말이었다. 성소책임자 신부님의 방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부제품을 받기에 하자가 없다고 자신만만했었다. 잘못 들은 게 아니가 싶어 다시 여쭈어보았다. 그러나 대답은 똑같았다. “부제품을 보류한다” 이것은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류의 이유도 모호한 것으로 보면 개인감정까지 개입되어 있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러나 나로서는 승복하는 방법 외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났고, 상처가 깊었고, 아픔도 컸다. … 완전히 ‘다름’의 생활을 한지 한 학년의 학기말이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부제품을 재차 보류한다는 통보가 날아왔다. 절망감이 밀려왔다. 두 번째 부제품이 보류되었다는 것은 사제품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마저 불투명하다는 얘기였다. 교구 측에서는 나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위로하면서 인내를 갖고 기다려 보자고 했다. 괴로움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거리고 있는 나에게 교구 측에서 운영하는 중학교에 가서 그 동안만이라도 아이들과 함께 지내보아라는 제의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교직생활은 재미있었다. 아이들과의 생활에 정이 들어갈 무렵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사제 서품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자신감에 차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은 내 교만을 꺾고 겸손을 터득하도록 하시고, 내가 하느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도구로 선택하심을 깨닫게 하시려고 잠시 동안 나를 내팽개치신 것이라 생각하였다. 서품일은 포교사업의 수호자 예수 아기의 성녀 테레사 대축일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이 성녀를 각별히 사랑하시어 우리 가정의 주보로 삼아 오랫동안 공경하며 기도를 바쳐왔었다.
- (성소의 성숙과정의 반성) 부제품이 미뤄지고 신학교에서의 생활도 거의 끝나가던 어느 날 밤에 친구 부제가 찾아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 친구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가 보기에도 말이야, 자네가 부제품 받기에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아. 그런데 딱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자네가 혹시 기도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 성령께서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내 영적 삶을 되돌아보게 하셨음에 틀림없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까지도 꾀나 열심히 산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진정 주님을 만나지 못했고, 성령께 내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품도 중요하지만 신앙인으로서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나한테 제기된 것이다. 하느님은 제쳐두고 나 혼자서 무엇을 하겠다고 나댄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까지 주도권을 쥔 분은 하느님이 아니고 나였던 것이다. 참으로 큰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복음 선포자로서의 사명감과 자세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었다. 기도와 활동을 하나로 조화시킨 예수님은 우리의 모범이시며 스승이시다. 기도하지 않는 사제는 직업인, 혹은 사업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친구가 진지하게 던진 충고, “혹시 기도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라는 말은 그래서 더없이 소중했고, 나 자신을 점검해보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6.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 p57
< 배광하 신부 : 1960년 강원도 홍천 출생, 1992년 사제서품 >
- 초등학교 6학년 되던 해에 부모님께서는 나를 더 잘 가르치겠다고 산골짜기 양구에서 춘천 시내로 전학을 시키셨다. 혼자서 도회지에 나와 하숙집에 산다는 것은 자칫하면 옆길로 빠지기에 딱 좋다. 나는 중학교에 들어갔지만 공부는 뒷전으로 밀어놓고 날이면 날마다 친구들과 놀기에 바빴다. 중학교 3학년 때에는 술도 마시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결국은 춘천서 중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양구로 다시 전학을 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럭저럭 중학교를 마치자 부모님은 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으셨는지 다시 춘천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기를 원하셨다. 입학한 고등학교는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학교로 남녀공학이었고 기숙사도 있었다.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제법 공부를 했지만 잠시뿐 얼마가지 않아 밤중에 몰래 담을 넘어 술집에 드나들었고, 불량학생들과도 어울려 술을 퍼마시면서 결석하는 날이 수업일수 보다 많아졌다. 결국 나는 학교에서 유명한 불량학생으로 낙인이 찍혀 근신이나 정학을 밥 먹듯이 했다. 그렇게 못된 생활만 하는 주제에 뭘 믿고 대학에 가겠다고 예비고사 시험을 쳤는지 모르겠다. 결과는 뻔했다. 고향에 내려와서도 술만 퍼마시면서 세월을 갉아먹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던지 술값은 벌어야겠다 싶어 막노동판에 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일을 해봐도 술값을 갚을 수는 없었다. 술이 술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활이 계속되면서 육체는 병들어 갔다.
- 방황의 극을 달리고 있는 나의 삶에 종지부를 찍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마침 그곳에 술을 마시러 왔던 육군 중사와 시비가 붙어 급기야는 패싸움으로까지 번지게 되었고, 군인이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상처를 입자 도망을 가서 헌병대에 신고를 해버렸다. 결국 우리는 체포되어 어찌나 맞았는지 초죽음상태로 경찰에 넘겨졌다. 당시는 계엄하였기에 붙잡혀온 사람들은 가차 없이 삼청교육대 행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훈방되었다. 이는 아버지와 본당 신부님의 덕분이었다. 군사재판을 받기까지 긴 시간을 기다리면서 나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타락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본당 신부님과의 소중한 인연은 시작되었다. 나는 차차 신앙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신부님께서는 주위의 수군거림을 못들은 척하시고 나를 주일학교 교사로 임명하셨다. 그 뒤에도 신부님은 갖가지 피정과 연수회 등에 내가 참석할 수 있도록 마음을 써주셨다. 그렇게 거듭된 사랑과 배려에 힘입어 나의 감정은 점차 순화되어 갔고, 감히 사제가 되고 싶다는 꿈까지 꾸게 되었다.
- 이듬해에 용기를 내어 신학교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워낙에 공부를 하지 않은 터라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때처럼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 적도 없었다. 그후 방위병 생활을 마치고 두 번째, 세 번째로 신학교 시험에 도전 했지만 결과는 계속 낙방이었다. 그때의 절망감과 하느님께 대한 야속한 감정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었다. 이듬해, 고모 수녀님의 알선으로 인천 석남동의 지방 신문국에 취직하여 낮에는 신문배달과 수금을 하고, 밤에는 학원에 다녔다. 배고픔과 갖은 모욕을 감수하며 살았던 1년간의 신문배달원의 생활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상하게도 마지막 신문배달지는 석남동 본당 사제관이었다. 나는 신문을 넣어 두고서는 성당에 들어가 잠시 동안이라도 성체 앞에 꿇어 앉아 기도를 바쳤다. 그때처럼 애절하게 기도한 때는 없었다. 그해에는 정말로 열심히 기도하면서 주님께만 의탁하던 때였다.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네 번째 시험에 임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합격자 명단에는 없었다. 내겐 정말 사제성소가 없는데 내가 이렇게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나의 오기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또 다른 길을 내 앞에 마련해 놓고 계셨다. 마침 그해 수원 교구에 처음으로 신학교가 생겨서 그곳에 응시할 수 있었다.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신학교에 나는 입학하게 되었다. 그것도 성적이 좋아서가 아니라 나의 끈질 긴 노력을 높이 사서 합격시켰다는 뒷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나는 지금도 능력으로 사제가 되었다는 생각은 추호도 갖고 있지 아니하다. 내가 사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내 곁에 계셨고, 앞으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으실 주님의 은총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모든 것이 은총이었음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은 고통 가운데 당신의 더 큰 사랑을 마련하시는 분이시다.
7. 해바리기를 닮을게요, 형! - p64
< 손종수 수사 : 1965년 강원도 춘천 출생, 1990년 첫 서원/살레시오수도회 수사 >
- 짱구, 이 친구는 내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친구다. 물론 많은 친구들이 다 소중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나 짱구는 서로를 위해 죽을 수 있을 정도의 용기를 보여줄 수 있는 친구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나 벌써 20년 가까이 친구가 되어 온 사이이다. 그는 나에게 신학교를 가겠다고 고백했고, 그래서 나보다 1년 빨리 살레시오수도회에 입회했다. 나한테는 짱구 말고도 윤택이라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 역시 20년 가까운 친구로서 그 친구는 나와 같이 수도원에 들어와 어려운 고비고비 다 넘기고 이제 수련자 지도 수사로 소임을 맡아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자 직업훈련소를 거쳐 직장생활을 하였기에 내 친구들보다 한 학년이 늦었다. 그래서 짱구가 먼저 수도원에 갔고, 윤택이는 재수하는 동안에 내가 끌어서 수도원으로 같이 들어왔다. 우리 세 명은 풍족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모두가 밝은 마음들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약속한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뜻을 가슴속에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세 명은 산을 좋아하여 가끔 등산을 했다. 특히 12월말이면 산에 올라가 한해를 반성했던 것은 정말이지 대견한 모습들이었다.
- 나는 어려웠던 사춘기 시절을 잘 잡아주었던 한 바오로 형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짱구로부터 전해 듣고 영안실 주변을 오가며 대기하고 있었다. 짱구가 20분 늦게 왔다. 그 친구는 지금 수도원을 떠났지만 더 수도자다울 수 있는 친구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16명의 청소년들을 보살피며 생활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나보다 훌륭한 수도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나의 삶에 생생하게 사랑을 심어주었던 형에게 고마움의 표시를 몇 번이고 하고 싶었는데, 10년이 다 되어서야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맞이하여 형을 찾아뵈니 마음이 정말 아팠다. 형은 내가 세상에서 태어나서 가장 좋아했던 사람이다. 바오로 형은 분명히 천당 갔을 거라고 믿었다. 형의 초상화를 바라보니 ‘그래, 천당에서 만나자. 남은 생 열심히 살아라’하는 형의 음성이 생생했다. 귀가 길에 전철 안에서 손가락 묵주를 돌리는데, 바로 그때 커다랗게 웃음으로 다가오는 바오로 형을 보았다. ‘형! 형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손길로 나를 하느님께로 인도한 사람이야. 형은 나보고 꽃이 되라고 했지? 씨도 많이 남기고 고개를 푹 숙인 꽃 말이야. 난 이제부터 해바라기를 닮을게. 그래서 많은 사랑을 나눠줄 거야.’ … 한 사건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 비해 나는 참 많은 사건으로, 그리고 다양한 만남으로 나를 부르시는 하느님을 체험했다. 이런 수도자의 삶을 나에게 미리 보여준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데, 그들은 모두가 작은 예수들이다. 형인 바오로란 남의 이야기하며 내가 받은 부르심을 생각하는 것은 부르심이 결코 혼자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는 나의 확신 때문이다. 내게 크게 작게 다가왔던 친구들, 선배들, 이웃들이 바로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었다는 생각을 하면 이 부르심이 때때로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른다. 그러나 그들의 따뜻한 관심과 기도가 그 짐을 함께 진다는 사실도 잊지 않는다.
8. 위대한 자유인에로의 초대 - p80
< 신현만 신부 : 1954 강원도 횡성 출생, 1982년 사제서품 >
- 인간인 나는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사제직을 받은 ‘나’는 누구보다도 위대하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그러나 이 특권은 내가 잘나서 누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매일 주님의 제단에서 미사를 집전한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죄경을 염해주고, 병자들을 보살피고,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이의 벗이기도 하다. 나의 몸짓이나 표정이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기도하고 위로와 용기를 주기도 한다. 나는 가난한 이나, 부자나,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구별하지 않고 만나서 인생을 얘기한다. 그리고 세상의 아픔과 동참하며, 고통을 당하거나 기쁨 중에서도 감사하기에 큰 행복을 느낀다. 세상에서 이렇게 자유스러운 사람이 어디 또 있겠는가? 나는 부르심(성소)란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조상 대대로 천주교 집안인 까닭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신앙에 젖어 살았고, 어렸을 때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처럼 천주교 신자인줄만 알았다. 초등학교 시절 매일 새벽미사에 복사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신부가 될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과정이라 여기고 잘 참아냈고, 어릴 때부터 나는 신부가 된다는 것 외엔 다른 것은 생각도 해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 마을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소신학교(중고등학교 과정)를 입학시험을 거쳐 들어갔고, 소신학교에서의 생활은 그저 즐겁기만 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청소년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고 통제되어 있다는 비판의 소지도 적지 않았지만, 그 당시로서는 그래야 하는 줄로 알고 나는 그저 열심히 학교생활을 해나갔다 매 학기마다 수십 명이 제적되거나 자퇴하는 것을 보고서는 공연히 불안하고 위축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신부가 되는 것만이 최상의 목표이자 나의 삶의 전부로 여겼다. 여러 차례 성소의 위기를 느끼기도 했고 갈등도 겪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아무 탈 없이 소신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소신학교 때의 이러한 갈등은 대신학교(신학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로 나를 괴롭혔다. 대신학교에 들어오면서 문호개방이라고 해서 여성들과 한자리에 나란히 않게 되니 이도 적지 않은 분심거리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느껴지는 신학교의 답답한 분위기, 비자율적 교육에 대한 불만, 보수적 경향에 대한 반발 등이 뒤엉켜 그야말로 폭발일로의 상태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러한 나를 붙들어 주는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그 하나는 한 번 주어지는 이 인생을 아무쪼록 값지게 살아야 한다는 결심이다. 두 번째는 대신학교 시절에 얻은 것이다. 이웃 간의 깊은 단절감의 벽을 허물어 한데 모으고, 화해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은 바로 사제이기에 사제가 되기 위한 열망이었다. 그러나 어떤 것보다 나를 사제의 길로 이끌어 준 큰 힘은 가족들이었다.
- 기나긴 신학교 생활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내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하느님은 나에게서 성프란치스코나 성도미니코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의 내가 완성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지금도 그 깨달음의 감격과 흥분의 순간을 잘 기억하고 있다. 나의 온갖 약점도 그분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고, 내 안에도 훌륭한 장점이 있고 가능성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나는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진짜 사제생활은 서품받은지 10년째부터라고 한다. 서품 받은지 10년을 맞고 있는 나도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신학교에 입학한지 17년 만에 사제 서품을 받고 나의 첫 미사 때 했던 인사말이다. “나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벌기가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더 힘든 것은 돈을 보관하는 일이며, 이보다 더 힘든 것은 돈을 잘 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사제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더 힘든 것은 사제직을 보존하는 길이며, 가장 힘든 일은 사제로 쓰여지는 일입니다. 어지러워진 마당을 쓸고 난 뒤 아무렇게나 던져지는 빗자루, 사람들이 뛰어 노는 멍석처럼 내가 쓰여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나는 사제직의 본질을 ‘자유’라고 보고 있다. 함께 웃고 함께 울 수 있는 자유, 엎어진 삶을 주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울 때의 기쁨, 힘겨울 때마다 사제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감각, 그래서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자랑스럽고 행복한 것이다. 정말 나의 사직은 위대하다. 그것은 가장 위대한 자유인에로의 초대다.
9. 어머니, 이 몸은 당신의 것이옵니다 - p88
< 오무수 신부 : 1949 대구 출생, 1979년 사제서품/
한국 순교자 성모 트라피스트 수도회 수사 >
- 대구 대교구청 옆에 있는 ‘성모당’은 나의 사제성소의 탄생지라 할 수 있다. 어머니는 성모님을 유독 사랑하셔서 시간만 있으면 성모당에 찾아가서 기도를 드리곤 하셨다. 어머니는 오씨 집안으로 출가하셔서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내리 세 명을 낳아 집안 어른들의 말없는 눈총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성모당에 가셔서 기도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약속까지 해버리셨다. “성모님! 저에게 아들 하나만 주시면 고스란히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아들을 얻었는데, 그 아들이 바로 나였다. 세월이 흘러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셨는데, 이때 나의 출생과 관계되는 이이야기를 모두 엿듣고 말았다. 이때부터 마음속에는 ‘나는 신부가 될 사람이구나’하는 인식이 깊이 박혀 버렸다. 이때부터 나는 어머님이 하신 약속을 채워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러한 생각은 나를 조금씩 변화시켜나갔다. 나는 좀 더 열심히 복사노릇을 했고, 주일학교, 레지오활동에도 더욱 성실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빈첸시오회에 들어가 불우한 이웃을 위해 일하면서 나의 사제성소는 더욱 무르익어 갔다. 내 안에는 이웃을 위한 삶보다 더 보람 있는 삶이란 없고, 이 이상을 채우는 것이 바로 사제의 삶이라는 확신이 깊어갔다. 나의 이러한 사제성소를 깊이 심어준 분이 계시는데 나의 외할머니이시다. 그야말로 삶의 낙을 기도 안에서 찾으신 분이다. 나보다 두 살 위인 카르멜회 수녀님인 나의 누님 역시 당신 성소에 가장 영향을 준분은 외할머니였다고 말했다.
- 나는 사제성소만으로도 과분하고 벅찬데, 하느님은 내게 또 다른 길을 원하셨다. 신학생 시절에 나는 트라피스트회(고행과 철저한 침묵을 실천하는 공동체)의 수도자인 토머스 머튼의 저서에 무척 심취해 있었다. 대학원 석사논문도 토머스 머튼에 관해 썼을 정도로 나는 그분의 사상에 매료되어 있었다. 내 안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분처럼 침묵의 생활을 하고 싶다는 갈망이 싹텄다. 사제가 된 후 나의 생활은 참으로 기쁘고 보람차고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수도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 계속 커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주님의 뜻을 알려 주십사하고 간절히 기도하기도 했다. 고민과 기도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 어느 날 주님은 용기의 은총을 주셨다. “아들아!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고 한번 시도해 보아라!” 나는 사제성소의 의무를 더욱 충실히 살기로 했다. 첫째가 고해성사였고, 두 번째로 힘을 쏟은 부분은 사목활동이었다. 그런데 사목활동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수많은 활동의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기도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기도가 없는 활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절실히 체험했다. 결국에는 기도가 가장 큰 활동이라는 역설적인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마침내 나는 세상과 교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수많은 사도직 중에서 ‘기도의 사도직’으로 봉사하자는 결심을 했다. 드디어 나는 미국 제네시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를 했지만 많은 시련과 유혹을 격어야 했다.
- 수도원에서 내가 하는 일이란, 땅 파고, 나무 자르고, 빵 만드는 일 따위의 집안일로서 사목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외적으로 볼 때는 아무 가치가 없고, 아무런 결실도 없는 정말 한심스럽기조차 한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삶이 트라피스트 수도자들이 살아가는 이유였다. 외적으로는 내가 하는 일의 결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바로 그것을 통해서 세상과 교회에 더 큰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전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나는 하느님께 자신을 온통 바치면서 소박한 삶을 사는 영혼이 교회에 엄청난 생명력을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기에 모든 시련과 유혹을 견뎌낼 수 있었다. 믿음이 약했고 흔들릴 때마다 나는 우리 한국 순교자들에게 매달렸다. 수련기간을 지내면서 내 영적인 눈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사람!”(시편 34,9) 나는 주님의 집인 이 수도원이야말로 참으로 지상낙원이 아닌가하고 생각한다. 이 성소를 얻기까지 나에게 가장 큰 힘과 도움을 주신 분은 누구보다도 성모님이셨다. 나의 어머니가 나를 위해 기도하셨듯이 이제는 내가 성모님께 약속을 드렸다. “성모님! 제가 트라피스트회의 아들로 새로 태어나게 해주시면 저를 온전히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내가 신부가 된 후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대구의 성모당이었다. 그 다음 미국 트라피스트 수도회에서 서원을 한 후 한국에 진출하여 법원리에 자리 잡았을 때에도 제일 먼저 성모님께 수도원과 나 자신을 봉헌했다. 나의 성소는 성모님에게서 시작되어, 성모님 품안에서 양육되고, 성모님의 품안에서 끝맺을 것이다. “어머니, 이 몸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옵이다.”
10. 죄인이면서도 부르심 받은 이야기 - p95
< 이용우 신부 : 1959 서울 출생, 1992년 사제서품/ 예수회 신부 >
- 내가 가톨릭 신자로서 세례를 받은 것은 아주 어릴 때이다. 나는 언젠가 집에서 우리 가족이 대방동 성당에서 함께 세례를 받고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었다. 7남매중 막내아들인 나는 그냥 울어버릴 때 세상살기가 아주 수월했다. 울면 안 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나를 따라 다닌 칭호는 ‘고집쟁이’에다가 ‘욕심쟁이’이라는 별 유쾌하지 못한 것이었다. … (국민학교 시절부터 베네딕토회에서의 수도생활과 이 회에서 예수회로 옮겨 입회하기까지의 여러 어려움과 갈등에 관한 장문의 성소 이야기 수록) … 1984년 2월, 나는 드디어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수련원에서의 첫피정에서 ‘총고백’이란 말을 듣자마자 나는 피정 지도 신부님께 총고백을 청하고 3시간에 걸쳐 나의 모든 지난날을 말씀드렸다. 그것은 당신께서 이렇게 어렵게 이끄셔서 이제 시작하게 된 예수회의 생활을 드디어 시작하기에 앞서 나의 모든 지난날을 하느님과 교회와 예수회 앞에 솔직히 털어놓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8년이 흐른 1992년 7월, 나는 다른 43분의 부제님들과 함께 서울 잠실 체조 경기장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서품식 중에 엎드려 있으면서 나는 주님께 마음속 깊이 감사를 드렸다. 무엇보다도 먼저, 나의 봉헌을 기꺼이 받아주심에 감사를 드리고, 나를 지금까지 키워주신 은총에 감사를 드리고, 예수회의 사제가 되고 싶어 하던 나의 오랜 소망을 이제서나마 들어주시고 서품을 주심에 눈물로 감사드리면서 서품미사를 봉헌하였다. 봉헌 때에는 성 이냐시오의 기도를 노래할 수 없었고, 사제로서 계단에 올라가 처음으로 미사를 바치는 동안에는 경문의 단 한 줄, 단 한 단어도 제대로 발음을 할 수 없었다. 사실 나의 지난날을 그분 앞에서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그때마다 나는 아픔과 고마움으로 눈물이 글썽거린다. 앞으로도 네게 눈물이 마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날이 눈물로 감사드리며, 날마다 목숨을 걸고 살아갈 것이다. 그분께서 나를 그렇게 부르신다. 당신의 십자가에로, 그분과 함께 그 십자가의 길을, 나는 기꺼이 가리라. “나는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 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그분 고난에 동참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필리 3,10) 아멘!
11. 내가 사제가 되기까지 - p131
< 정광열 신부 : 1963년 충북 제천 출생, 1992년 사제서품 >
- 나는 충북 제천에서 5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우리 집안은 농사를 짓긴 했지만 별다른 부족을 느끼지 못하고 지낸 걸보니 그냥 살만 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나는 어찌나 놀기를 좋아했던지 해가 진 줄도 모르고 달이 동산에 덩그렇게 뜨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에게 들켜서 혼 구멍이 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이 버릇을 쉽게 고칠 수는 없었다. 이렇듯 노는 것만 좋아했던 나는 당연히 공부는 뒷전이어서 학교 성적도 밑에서 세는 것이 더 빨랐다. 그럭저럭 바닥을 기며 중학교를 마쳤지만 문제는 고등학교 입학이었다. 내성적으로는 감히 인문계엔 명함도 내밀 수 없었다. 어찌해서 턱거리로 해서 농업고등학교에 간신히 들어갔지만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2학년이 되던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 꼴로 가다가는 농사꾼도 못될 것이 뻔하다 생각하니 앞길이 막막해졌다. 그래서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인데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가? 안 된다!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그것도 아주 멋지게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공부였다. 공부를 많이 하려면 대학에 가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고등학교부터 인문계로 바꾸어야 했다. … (이후 중학과정 교재로 독학 후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 제천 농업고등학교 졸업 후 다시 청주 인문계 신흥고등학교 입학, 외지에서의 외롭고 고되었던 학교생활 수기 내용) ….
- 혼자 자취를 하다 보니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끼면서 무엇인가를 지탱해줄 것이 필요하여 찾아간 것이 집 가까이에 있는 개신교 교회였다. 어느 날, 나는 젊은 전도사로부터 아주 충격적인 설교를 들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지고 내 뒤를 따라 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27)라는 말씀에 대한 설교였다. 지금까지 나는 국가에 충실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것보다 더 큰 가치는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소중한 부모까지 버려야 한다니 도대체 예수가 누구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큰 충격이었다. 며칠 후 교회에 들러 성서 몇 구절을 읽고 묵상하면서 그날 하루를 반성하고 자취방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든지 얼마 안되었는데 갑자기 방안에 십자가가 나타났다. 내 키와 비슷한 그 큰 십자가는 붉은 빛을 띠고 떠 있었다. 그런데 그 십자가는 나를 향해 내려오기 시작하더니 내 몸에 닿았고, 서서히 내 몸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하는데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내 몸속에 완전히 스며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내 몸의 고통도 사라졌다. 잠시 후에는 별처럼 빛나는 것이 바로 내 가슴 위에 떠 있었다. 그 빛은 내가 피할 겨를도 없이 내 가슴에 아주 빠른 속도로 떨어져 스며들었으나 고통은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마 요즈음 내가 부쩍 종교에 신경을 쓰다 보니 환상까지 나타나는구나 싶어 무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체험은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이 일을 계기로 해서 나는 아주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성직자가 되겠다는 결심이었다.
- (그 이후 성직자로서의 목사가 아닌 사제가 되는 이유와 친구를 통하여 성당의 예비자 교리반에 등록하여 1982년 세례를 받고, 성당에서의 활동, 6년간의 고등학교 생활, 대학에 가기 위한 부모 설득, 군 입대, 군복무 마친 후 독서실 생활, 신부(사제)가 되기 위한 부모 설득,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여러 장애 및 애로사항 등 수기 내용) ….
세례를 받은 지 3년 7개월이 지났을 때 나는 드디어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동안 하도 어려운 고비를 많이 넘겨온 나로서는 신학교의 낯설음이나 작은 곤란 등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었다. … 부제품을 앞두고 나는 ‘인간의 고통’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썼다. 그리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몸 바치는 이들을 기도로써 도와주고, 신학교 공동체 발전을 지향으로 하는 ‘기도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제 나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리고 은인들의 기도 덕분에 사제가 되었다. 사제는 하느님의 사람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특별히 선택하신 목적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인간들에게 봉사하라고 부르신 것이다. 따라서 사제의 특권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인 특권이 아니라 봉사하는 특권이며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이다. 사제인 나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이의 종이 되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기 위해 힘쓸 것이다. 사제란 라틴어로 ‘Sacerdos(사첼도스)’이다. ‘Sacer’은 ‘거룩한 것’이며, ‘Dos’는 ‘주다’라는 뜻으로, ‘거룩한 것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란 뜻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거룩한 것을 나누어 주는 일이다. 즉, 하느님의 말씀을 풀어서 쉬운 말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거룩한 몸으로 변화시켜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다. 사제 서품을 받으면서 내 삶의 지표로 삼은 성서구절은 마태오 복음 16장 24절을 택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 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12. 내가 뭐길래 - p148
< 정순오 신부 : 1954년 부산 출생, 1989년 사제서품 >
- 나의 어머님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셨다. 세 살 때 부모님을 따라 부산으로 오게 되었는데, 다섯 살 때인 원인 모를 고열을 앓다가 한쪽 눈을 실명하고 청력마저 잃게 되었다. 그 후 듣지를 못하니 자연 알고 있었던 말도 잊어버리게 되어 언어장애까지 겹치게 되었다. 어머니는 스물셋에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는데, 아버지 역시 세 살 때 고열로 청력을 잃고 언어능력도 상실케 되었으나 뛰어난 제화 기술자였기 때문에 수제화의 명문이었던 금강제화의 공장장으로 계셨다. 금강제화라는 명성도 아버지와 농아분들 사오십 명이 열심히 일한 덕도 큰 몫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부모님이 그랬기 때문에 우리 오남매는 말보다 수화를 먼저 배우면서 자랐다. … 공장에 기계가 도입되고 대량생산 체제로 바뀌면서 아버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그만 두게 되자 조그마한 제화점을 차렸으나 여러 사정으로 저당 잡힌 집까지 내놓는 신세가 되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우리 식구는 애덕 농아 자활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곳의 원장이셨던 허 카리타스 수녀님은 50년 전에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농아들을 위해서 전 생애를 바치고 있던 독일인 수녀였다. 우리 가족은 이 일을 계기로 막내 여동생을 선두로 모두 세례를 받았다.
-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1년 정도 냉담을 하다가 내 교적을 부모님이 계신 돈암동 본당으로 옮겼다. 이때 농아 장년부에서 봉사하는 장 테레사 누님의 권유로 명동 농아 청년부에 나가 활동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아버지에게 제화기술을 배웠던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나의 활동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나의 수화기술은 아주 작은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들에게는 큰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미사를 수화로 통역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미사통상문을 수화로 옮긴 다음 맹연습을 하여 미사를 수화로 통역하기 시작한 나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수화교육도 실시했다. 마침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기 때문에 교구에서는 지구 신앙대회 등 행사가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수화 통역을 위해 높은 연단에 서게 되었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교리지식도 그렇고 신앙심도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농아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교리 신학원 야간 종교 교양과에 등록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일마다 피곤한 상태로 강의를 들었지만 그래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언젠가 허 카리타스 수녀님께서는 내게 신부가 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지만, 무심코 흘려버린 일이 있었다. 나는 2남 3녀 중의 장남인 데다가 남같지 않은 부모님을 모시고 있으며 사제가 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게다가 사제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신학교가 뭐하는 곳인지도 그 당시에는 몰랐다.
- 허 수녀님의 소리를 귓전으로 흘려듣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농아 분들이 신부가 될 생각은 없느냐고 정색을 하면서 물어왔다. 내가 신부가 되어 수화로 미사도 지내고 고백성사도 들으면서 자기들을 위해 일을 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 허 수녀님이 사제성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녀님은 “미카엘이 신부가 되어 농아들을 위해 일하면 좋겠지만, 그게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요. 결혼해서 사는 것도 아름다운 것이지요.”하면서 여운을 남기는 것이었다. 나는 차츰 이 문제를 앞에 놓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뭐 길래 사람들은 나를 필요로 하는가? 내가 뭐 길래 그런 소망을 거절하려 드는가? 나에게 그것을 거절할 권리가 있는가? 하느님께서 농아 분들을 통해서, 수녀님을 통해서 나에게 건네시는 손길이라면, 나는 그 손을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 나는 기도를 드렸다. “저는 보잘 것 없는 당신의 종입니다. 한번 최선을 다해서 해보겠습니다. 당신께서는, 마지막 날 당신 앞에서 내가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게 해주고, 당신 품에 안기는 영광을 주소서.” 나는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 인간의 생각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성장시절 갈등이며 걸림돌이었던 부모님의 자애가 큰 은총으로 변해서 다가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부모님 덕분에 나는 다른 많은 농아 분들과 함께 자유롭게 기쁨을 나누기도 하고, 고통을 나누기도 하며 하느님을 찬미하게 되었다. “하느님! 당신은 듣지도 못하는 이들에게도 당신의 말씀을 전하시고, 말을 못하는 이들에게서도 찬미의 노래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의 부르심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13. 신랑이 될 뻔한 신부 - p155
< 최경환 신부 : 1960년 대구 출생, 1987년 사제서품 >
- 나는 세상에 나기도 전부터 이미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중교우로 정해져 있었다. 우리 집안이 몇 대째 내려오는 천주교 집안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세상에 난 지 삼일 만에 프란치스코 사베리오(방지거)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아버지께서는 일찍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우리 육남매는 신앙심 깊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우리 아들 삼형제를 볼 때마다 입버릇처럼 “아이고, 천주님이 아들을 셋이나 주셨으니, 이 중에 하나는 바쳐야 하는데!”라고 되뇌이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려서부터 우리 중에 누구 하나를 하느님께 바치지 않으면 무슨 변이라도 나는 줄로 알았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과연 누구에게 그 몫이 돌아갈 것인지 점쳐보았다. 큰형은 어머님을 모셔야 할 테니 안 되겠고, 막내인 나는 성격도 못됐고 욕심도 많기 때문에 안 될 것 같았다. 둘째 형은 우리 중에 그래도 가장 성격이 둥글둥글하고 이해심도 많으니까 제일 적격인 듯 했다. 나는 그렇게 둘째형을 꼽으면서도 이상하게 ‘나도 잘 할 수 있을 텐데.’하는 생각이 은근히 들곤 했다. 중학교 때였다. 우리 집안과 잘 아는 수녀님 한 분이 우리 집에 놀러 오셨다가 날 보시더니 대뜸 “방지거야, 너 신부되거라.” 하시는 것 아닌가! 나는 기겁을 해서 순간적으로 ‘안 할랍니더’라고 하면서 줄행랑을 쳤다. 그러나 속으로는 은근히 좋았다. 그때의 일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수녀님의 그 말 한마디가 바로 하느님이 나를 부르신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그 말이 그대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입학원서 쓰기 2개월 전에 신학교에 가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어머니는 물론, 가족과 주위사람들은 멀쩡하던 아이가 무슨 일인가 하여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동안 나는 신학교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은 데다 이모저모 살펴보아도 신부감으로 생각되는 구석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별 어려움 없이 신학교에 합격하여 보따리를 짊어지고 신학교를 들어섰던 그날의 설레임과 두려움, 그리고 잠 못 이루며 뒤척이던 첫날밤은 영원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하며 신학교 4년간을 생활했다. 그런데 신학교 생활도 할 만큼하고 나니 초반기의 열성도 식어가고, 사제직에 대한 매력도 시들해져 갔다. 그래서 예쁜 아가씨를 볼 때마다 마음이 설레고, 자연 담 넘어 행복을 꿈꾸는 횟수가 많아졌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혼란과 방황, 그 긴 세월의 암흑기를 지내면서 마침내 나는 한 가지 결정을 했다. ‘이건 내 길이 아니다. 나가야 겠다!’ 그래서 비장한 결심을 하고 마지막으로 영성지도 신부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한참 동안 여차여차해서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때까지 잠자코 듣고만 계시던 신부님께서 불쑥 한다는 소리가 “그래라.” 하시는 것 아닌가! 기가 막혔다. 어쩌면 이럴 수가 있는가? 그래도 자기한테 4년간이나 영적 지도를 받아 온 제자가 인생의 길을 바꾸겠다는 데 단 한 마디의 위로는커녕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도 없이 “그래라.” 라니! 나는 갑자기 오기가 났다. 생각하면 할수록 약이 오르고 분통이 터졌다. 그래서 짐을 싸려고 준비했던 것을 몽땅 다시 제자리에 정리해 놓고는 이를 악물었다. ‘좋아’ 당신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내가 신부가 되지 못하면 사람도 아니다.
- 누굴 위해 신부가 되려고 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고 부끄럽지만, 그 신부님의 방법은 나에게 적중했다. 신부님이 ‘그래라’ 라고 말하지 않고 이런저런 말로 위로하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얼렀다면 지금쯤 나는 신부(神父)가 아니라 신랑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어머니의 입버릇이셨던 “너희들중 하나는 신부가 되어야 하는데 …”하는 말이 이상하리만큼 내게는 올가미처럼 느껴졌던 것, 무심코 던졌을지도 모를 수녀님의 말 한 마디, 그리고 나의 오기를 자극한 지도 신부님의 그 말이 오늘의 내가 있게 해준 중요한 계기가 되어 주었다. … 생각해 보면, 내가 만일 인간적으로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어서 그 잘난 맛에 도취되어 신부가 되었다면, 참으로 기고만장했으리라. 그러나 다행이도 나는 내세울 것도 가진 것도 없는 못난 인간이지라 고개를 숙이고 살 수밖에 없다. 늘 겸손되이 살라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어머님, 수녀님, 그리고 지도신부님 안에서 나는 또 다른 모습의 하느님을 발견하며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제 길을 되돌아보고 제 발길을 당신 법으로 돌립니다”(시편 19,59)
14.“빌고 또 비옵나니 … ” - p160
< 최용준 신부 : 1955년 전북 임실 출생, 1989년 사제서품 >
- 나자렛 성가정 안에서 소년 예수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날로 지혜가 충만해졌다고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과 성장기를 되돌아보면 그러한 천상적 은총과는 거리가 멀었다. 단지 본성적 사랑과 혈연의 유대라는 보편적 윤리 관념으로 충분했다. 그러므로 다른 가치나 윤리가 있는지는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는 막연하나마 하나의 ‘동경’이 있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것이지만, 이 알 수 없는 동경은 차차 그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염원이 되어 그 후 내 마음속에 ‘영원한 그리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나는 그 그리움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많은 노력도 해보았으나, 어쩌면 그것은 이 세상 것이 아니라 세상 넘어 피안에 있는 알 수 없는 신비의 세계였다. 중고등학교의 학창시절은 그야말로 사고의 극대화의 시기였다. 어떤 암시에 의해서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왜 사는가?’에 대해 정신이 이상할 정도로 집착해 있었다. 이 시기에 나는 허무주의의 깊은 늪 속에 빠져 있었다. 그때 나는 내 시름에 못 이겨 가끔 눈물을 흘렸다. 나의 정신적 편력은 현실에 대한 실망과 무의미만을 극대화시켰을 뿐, 삶의 새로운 지평을 끝내 열지는 못하고 말았다.
- 처음으로 성당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나는 신부님이 ‘하느님’을 말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하느님이 계시다니!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나는 여태껏 몰랐구나!’ 그뿐만 아니라 내 마음의 온갖 갈등과 번뇌를 씻어 내리며 무릎을 꿇게 만든 것은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미사곡이었다. 나는 스무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하느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동안의 마음의 고뇌와 방황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이었다. 신앙으로 다시 태어난 나는 모처럼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대학 진학과 더불어 성당 활동을 하면서 즐거운 생활을 했다. … 그러나 실생활과 연결되지 않는 외형적인 열심은 결국 내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 별 효과가 없었다. 학창시절의 정신적 번뇌와 갈등이 진정한 자아발견에 별 도움을 못 주었듯이 신앙생활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나는 하나의 생각과 종교적 의식으로 끝나버리는 신앙생활, 정작 진리를 찾아 헤매어도 막상 그 문 앞에서 주저앉고 진리의 언저리에서 맴도는 것으로 만족해 버리는 생활을 했던 것이다. 인간의 위선과 거짓, 나약함, 오히려 죄스러운 인간 본성이 얼마나 내 안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내 양심을 부채질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나는 또다시 고통과 괴로움의 도가니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하느님의 법은 내 양심 깊숙이 다다르게 되었고, 그럴수록 나는 죄의 심연에서 헤매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직장을 그만두고 사제의 길을 걷겠노라고 뛰쳐나왔던 것은 현세적 생활의 고역과 그 끝의 무상함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우선은 그럴듯해 보였지만 그 마지막 종착지가 너무나 빤히 들여다보여서 현세적 삶의 굴레에 자신을 끼어 넣는다는 것이 괴로움의 행진으로만 보였다. 더욱이 나를 잡아 끈 것은 주님께 지은 잘못을 기워 갚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심리적 욕구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다. 과연 내가 주님의 사제직에 합당한 자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 또한 고통이었다. 불합당한 자가 합당한 자의 행세를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제기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 내 갈등과 괴로움을 해소시켜주는 그 무엇이 없었더라면 감히 그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확실히 나는 그것이 은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죄가 많은 곳에 은총도 많이 내린다.’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런 의미의 은총이었다. … 이제 사제생활 4년째, 뒤돌아보나 지금을 보나 너무나 빈약한 것뿐이다. 죄스럽고 송구스러울 뿐 그 동안의 삶에 비추어보아 나아진 게 조금도 없다. 구원의 도구라고 하지만 고장 나고 부서진 도구가 아닌가 싶어 마음이 편치 않다. 모두가 믿음이 적은 탓이겠지만 갈수록 걱정과 시름이 늘어난다. 그래서 할머니들의 “사는 것이 다 죄지요”하는 고백소의 소리도 나한테는 심상치 않게 들린다. “빌고 또 비옵나니, 나를 내치지 마옵소서. 우리를 내치지 마옵소서. 가련한 인생, 불쌍한 인생들이오니 당신 장막에서 물리치지 마소서.” 나는 아직도 부름 받았음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내가 불리워졌기를 바랄뿐이고, 또 그렇게 빌고 있다. 아멘.
15. 뭐하러 왔노? - p167
< 최은미 수녀 : 1963년 대구 출생, 1992년 첫 서원/ 성바오로딸수녀회 수녀 >
- “예수님의 모친이신 동정마리아여, 우리를 거룩한 자 되게 하소서.” …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려서부터 가난이 어떤 것인지를 깊이 맛보면서 자라났다. 그래서 낮에는 직장을,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세상을 알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중노동을 하는 어린 소녀들을 보고, 또 그들이 말도 안 되는 형편없는 임금을 받는 것을 보았다. 나는 삼대째 신앙을 지켜온 열심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아무 의식없이 세례를 받았다. 따라서 신앙은 나에게는 숨을 쉬듯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하느님은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시다고 들었고 거기에 대해 의심할 생각조차 없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비치는 모든 양상들은 이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다. 하느님의 사랑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세상과 삶에 대한 거듭되는 나의 실망은 하느님에 대한 분노로 변해갔고, 이것은 세상에 대한 반항으로 이어졌다. 그러면서도 나는 어딘가에 있을, 나를 쉬게 해줄 안식처를 찾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보게 된 것이 어떤 스님의 글이었다. 나는 그 자연스런 글의 흐름에서 내 마음을 찢어놓았던 의문과 실의에 대한 해답을 찾는 듯 햇다.
- 이때부터 나는 불교에 관한 책들과 절을 찾으며 묻고 또 물었다. 결국에는 이 갈증을 채워줄 길을 찾기 위해서 세상을 떠나 비구니가 될 생각까지 했다. 그래서 청도에 있는 한 절을 찾았다. 그 절의 가장 어른 스님 앞에 앉게 되었다. “뭐하러 왔노?”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둣한 스님의 눈이 두려웠다. 그러면서 느닷없이 울을 터트리면서 간신히 불교에 대한 진리를 배우고 터득하하기 위해 중이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스님은 나의 신상에 대해 자세히 묻기 시작했다. … 스님은 나를 어떻게 보셨는지 아무나 중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시면서 “우선 부처님의 자비가 있어야 하고, 부모님 승낙없이는 안되는 일”이라고 딱 잘라 거절하셨다. 그러나 나는 한 번 결심한 것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더 굳혔다. 나는 그 후 더욱 열심히 불교 학생회에 나갔고, 불교신자인 학교 선생님도 찾아다녔다. 그러던중에 어떤 스님을 알게 되어 부여의 어느 절을 무작정 찾아갔는데, 이번에는 친구에게마저 알리지 않고 잠적을 했다. 가출한 것이다. 그곳 스님들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도 묻지 않았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친절한 것도 아니고 불친절한 것도 아니었다. 그곳에서 열흘을 지내다가 내가 얻은 결론은 ‘내가 살 곳은 여기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곧 짐을 챙겨 하산했다.
-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한 달 동안을 심하게 앓았다. 살고 싶은 의욕도 없었다. 정신이 들어 눈을 떠보면 나를 들여다보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보이곤 했다. 아, 사랑하는 어머니! 이때부터 나는 어머니와 가족들의 말로 다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혈연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고, 그러므로 내 인생이라고 내 마음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세상은 내가 알고 보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나는 다시 기운을 차려 학업을 계속해서 졸업을 했고 병원에 취직을 했다. 응급실에서 첫 일을 시작했는데, 응급실은 그야말로 요지경 같은 세상의 축소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저 일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 후 부서를 옮겨 사회사업과로 가게 되었다. 그 일은 진작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일로 기쁘고 감사했다. 그곳은 주로 가난하고 병든 이들이 찾는 곳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주고 도울 수 있는데 까지 도와주는 일이었다. 얼마 동안 병원에서 일하다 보니까 결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교회 계통의 병원이건만 치료비가 없으면 어떤 중환자라도 입원이 거절되었다. 이곳에서 거절된 사람들이 이곳저곳으로 전전하다가 죽어갔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 가난한 환자들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아야 할 때 느끼는 분노, 절망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나는 세상의 어두운 면을 모조리 맛보았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어두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고통받는 이들과 자신을 나누며 기쁘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 오빠가 사제 서품을 받던 날, 새로 서품될 부제들을 선두로 끝날 것 같지 않은 신부님들의 행렬이 성당의 중앙통로를 지나 제대위로 올라섰다. 그 경건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나는 어떤 말할 수 없는 신비스러움이 온몸을 감쌌다. 무엇을 위해 저 많은 젊은이들은 자기 삶을 바치면서 하느님의 도구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밀려오는 감동과 함께 뭔가 크게 착각을 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하느님에 대해서 참되게 알고 싶었고, 기도를 하고 싶었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열정이 나를 재촉했다. 나는 본당 신부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보고 신부님의 말씀에 따라 나는 교리공부을 다시했고, 그때부터 나의 삶은 완전히 방향을 바꾸었다. 내가 달라지자 세상도 달라져 보였다. …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사제를 지망한다는 한 학생을 만났다. 그와 만나면서 나는 생각했다. ‘왜 나는 수도생활을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사실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이 생길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빛을 주시기를 기다렸다. 기도하는 동안 주님은 이러한 나의 교만을 정화시켜주면서 내게 알맞은 성소를 골라 주셨다. 내가 수도회에 들어 온지도 벌써 5년 남짓하다. 그 동안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배반으로 점철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공부하고 묵상하면서 마치 나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나 자신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 내가 걸어 온 고통과 어둠의 길들, 나의 반항,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주님의 은총이었고, 나를 정화시켜 이곳까지 끌고 오시기 위함이었다. 이제 나는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 온 생애를 바칠 것이다. 주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끌어오셧듯이 앞으로도 나와 함께 계시어 주실 것을 믿는다.
16. 유다를 부르심 - p176
< 홍성남 신부 : 1954년 서울 출생, 1987년 사제서품 >
- “열두 사도를 뽑으시다”(마태 10, 1-4). 하느님께서 어떤 사람을 당신의 제자로 삼으실 때는 특출한 재능을 가지고 있거나 훌륭한 성품을 가진 이를 뽑으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뜻밖에도 전혀 아니다 싶은 사람을 선택하시는 경우도 있다. 내가 세례를 받은 것은 1969년 8월 15일,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때 성당에 같이 다니던 몇몇 친구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학교만 끝나면 곧장 성당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 나는 자신도 의식도 못하는 사이에 소위 ‘얀세니즘(Jansenism)’ 경향에 빠져 있었다. 하느님의 심판은 너무나도 엄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밤만 되면 지옥으로 빠진 악몽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구원을 못 받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과 사춘기의 육체적 깨어남이라는 양극단을 오가며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으며 지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린 것이 신학교에 가는 것이었다. 부모님께 입학원서를 보여 드렸더니 거부되어 재수생 신세가 되었다. 나는 그 당시 세태를 쫓아 장발에다 술, 담배까지 알아가면서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도대체 하느님이 뭐길래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가?’, ‘어차피 구원받을 수 없다면 인생을 즐기다가 죽는 게 낫지 않겠는가?’ 나름 이런 생각들이 아주 그럴듯하고 현명한 생각이라고 자부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나는 차츰 교회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나중에는 아예 발길을 끊어버렸다. 그것은 1년 후에 일반 대학교에 입학해서 군대에 갔다 온 다음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밤이면 곧잘 내 몸뚱이가 불구덩에 던져지는 환시 같은 것을 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마음이 돌아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참고 : 얀세니즘(Jansenism) : 극단적 고행과 종교적 엄숙주의를 강조하며, 교회 밖에는 은총도 구원도 없고, 이교도들은 모두 지옥에 간다는 이념. 이는 1713년 교도권에 의해 단죄되었다.
- 대학교 4학년이 되었다. 현실이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깨달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가난은 불편한 것이 아니라 죄악이라는 것이었다. 눈앞에 당장 취직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떼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것뿐이었다. 1980년 12월 25일, 이른 새벽에 느낌이 이상해서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로 눈을 돌리는 순간, 십자가에서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 빛이 얼마나 강한지 나는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을 감았는데 수많은 십자가가 서 있는, 빛으로 가득한 벌판이 보였다. 그 십자가마다 모든 사람들이 달려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는 가장 큰 십자가가 서 있었는데 거기에 매달려 있는 사람의 몸에서는 빛이 쏟아져 나와서 그 넓은 벌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빛은 더없이 따뜻하고 포근해서 내 영혼은 그야말로 오랜만에 더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나는 순간적으로 ‘아, 이대로 죽어도 좋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십자가에 달린 그분이 “마태오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어 오는 것이었다. 두 번, 세 번에 걸쳐 똑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나는 이렇다 할 대답도 못하고 그저 멍청히 서 있었다. 그러자 더 강한 빛이 쏟아져 나오면서 내 온몸을 감싸는 것이었다. … 이상한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강한 빛이 쏟아지는데도 내 안에는 녹지 않는 시커먼 돌덩어리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나는 즉시 깨달았다. 내 속의 온갖 죄악 덩어리였다. 나는 그만 너무 부끄러워서 어디로 숨어버리고 싶었지만 몸은 꼼짝할 수 없었다.
- 나는 그날로 성당을 찾아가서 총고백을 하고 신앙생활을 다시 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데 왜 이 세상의 고통과 악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일까?’, “하느님은 우리들의 아버지라고 하면서 지옥은 왜 있는 것일까?‘ 나는 이 질문을 풀기 위해서라도 신학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신학교 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때는 교만이 극에 달했던 때였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하느님이 주셨던 환시 체험에 대한 기쁨은 사라진지 오래고, 다시 예전의 상태가 되어버린 나의 마음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유혹에 매일처럼 시달렸다. 이런 고민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 부제품을 받을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자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부제품을 받아도 되는 것일까 하는 강한 의구심과 함께 자책감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교회에 폐를 끼치지 말고 스스로 그만 두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하였으나 선뜻 학교를 나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이도 저도 못 하고 있다가 나는 정말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진심어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부제품을 받을 준비를 위한 피정이 시작되었다. 이냐시오 영성 수련의 피정을 하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나의 삶을 돌아보며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피정이 끝나갈 무렵, 묵상을 하려고 성서를 폈는데 마태오복음 10장이 눈에 들어왔다. … 열두 제자의 면모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스가리웃 유다와 마주했을 때, 나는 문득 왜 예수께서는 유다를 당신 제자로 삼으셨을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왜 당신을 팔아넘길 사람을 뽑으셨을까? 오랜 묵상 끝에 비추임을 받은 것은 단 가지 이유, 즉 예수께서는 유다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사랑하셨기에 빗나갔고 또 빗나가도 행여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여 내치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느님, 유다를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하여 사도로 불러주셨듯이, 저를 불러 주십시오.“ 나는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신 목적도 유다의 경우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신부생활을 하면서 자주 독선과 교만과 자기도취에 사로잡혀 지내다가도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은 유다의 성소 때문이었다.”라고 생각하며 자세를 바로 잡곤 한다.
< 후기 >
- 촉박한 시간 안에 여러 신부님들과 수녀님들께 원고를 부탁드리면서, “주님께서 뜻하시는 대로 이루어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드렸는데 주님은 기대 이상의 보답으로 채워주셨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원고가 모아지고 그 안에 펼쳐지는 진솔한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한 인간의 응답을 대하면서 저희들은 마치 성서의 예언자들의 고백록을 보는 듯하였고, 각 개인에게 먼저 손을 내미시고 이끄시는 그분의 놀라운 은총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들을 통해서 먼저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걸어가신 그 길을 따르려는 저희들은 물론이요, 주님의 부르심을 느끼는 모든 이가 크나큰 감동과 위로를 받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주님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고 기억하는 일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체험을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눈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데, 이렇듯 정성을 다해 원고를 써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이 책이 나오기까지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 1992.12. 성바오로딸수도회 열네 명의 첫 서원자
# 126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127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 책 이름 : 포기하지마라 포기하지마라 절대로포기하지마라 ]
- 지은이(편역) : 이상문
- 펴낸데 : 김 & 정
- 지은이 프로필 :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83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
대한민국문학상 등 수상, 저서로는 ‘살아나는 팔’, ‘방랑시인 김삿갓’ 등 다수
- 출판일(발행일) : 2006. 07.25 - 95p
- 내 용 : ‘카네기 행복론’의 강력한 처방전을 텍스트로 삼아 번역하여 편집한 것으로마음을 열고, 마음을 움직이고, 의지를 세워서 원기 있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 제시.
[ 표지의 글 ]
마음속의 근심거리를 찾아 분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감정을 지배하고 평화로운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원칙, 몸과 마 음에 열정을 기르는 생활태도 등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마음을 움직이고, 의지를 세워서 한 번뿐인 인생을 결코 포 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서문 ]
최근에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 ‘카네기 행복론’을 다시 펼쳐 들었다. 이 책에는 마음속의 근심거리를 찾아 분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감정을 지배하고 평화로운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원칙, 몸과 마음에 열정을 기르는 생활태도 등이 제시되어 있다. 이 책은 바로 ‘데일 카네기’의 강력한 처방전을 텍스트로 삼아 나름대로 정리해본 것이다. 마음을 열고, 마음을 움직이고, 의지를 세워서 온갖 고민과 불안을 극복하여 원기 있게 살아가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차례 ]
1장. 무엇이 걱정인가?
2장. 고민을 없애는 법칙들
3장. 행운을 부르는 법칙들
4장. 감정을 지배하고 조절하자
5장. 모든 일에 열정을 불어넣자.
[ 1장. 무엇이 걱정인가? ]
< 1. 오늘에 살자 >
- ‘과거란 오늘의 거울이요, 미래는 다가오지 않는 오늘이다’라는 말이 있다, 과거를 거울삼아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오늘에만 존재할 수 있다. 오늘에 충실하고 좋은 생각만을 하도록 하자. 좋은 생각은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계획을 세우도록 하지만, 나쁜 생각은 긴장과 신경쇠약을 가져다줄 뿐이다. … 모든 일을 한꺼번에 해치우려 들다가는 하나도 제대로 처리할 수 없음을 물론 육체나 정신도 소진되고 만다.
-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오늘에’ 전념하자.
이를 위해서는 매일 아침 다음과 같이 자신에게 물어 보는 것도 좋다.
* 미래를 걱정하여 오늘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 과거의 일을 후회하면서 오늘을 괴롭게 지내지 않는가?
* ‘오늘 24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리라’는 결의가 솟구치고 있는가?
* ‘오늘에 산다’는 다짐이 자기 인생을 성취하는 데에 징검다리가 되고 있는가?
< 2. 피하려고만 하지 말자 >
- 곤란한 일이 생겼다고 해서 걱정만 하고 있다면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현실을 직시하지 않음으로써 집중력마저 잃게 만든다. 아무리 나쁜 상황에 처했더라도 피하지 말고 맞서자. 우선 문제를 인정하고 전부를 받아들이자. 그렇게 하면 마음이 침착해지고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 응용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월리엄 제임스’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기꺼이 받아 들여라. 일단 일어난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더 이상 불행한 결과가 일어나지 않도록 가로막을 수 있는 첫걸음이다.” 중국의 철학자 임어당도 그의 저서 ‘생활의 발견’에서 “참다운 마음의 평화는 최악의 사태를 감수하는 데에서 얻어지며, 이는 심리학적으로 에너지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이를 강조했다.
- 우리가 일단 최악의 사실을 받아들이고 보면, 그 이상 나쁜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상황이 그 전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말이다. 만일 어떤 고민이 있다면 다음의 사항을 실행하라.
*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가?’를 스스로 물어본다.
*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 조용히 그 최악의 사태를 개선해 나간다.
< 3.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자 >
- 걱정거리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내용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사실을 정확히 모른다면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앙드레 모로아’의 말이다. “우리들은 개인적인 욕망에 일치되는 것들은 모두 진실이라 생각하고, 그렇지 않는 것에는 분노한다. 감정을 섞지 않은 공평하고 객관적인 사고(思考)로 사실을 파악하는 것만이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 길이다. 고민하고 있을 때는 감정이 흥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을 뚜렷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하고자 한다면 첫째, 그것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둘째, 자신과는 반대 측에선 변호사의 입장에 되어 보자. 자신이 피하고 싶은 불리한 사실이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다. …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면 분석을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고민의 반은 명확한 판단에 이르면 소멸되며, 나머지는 판단을 실행하는 것으로 거의 사라진다. 다음은 결단을 위한 4단계 방법이다.
* 걱정거리를 자세히 기록한다.
*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을 기록한다.
*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 결정을 즉시 실행에 옮긴다.
< 4. 즉각 실행에 옮기자 >
- 어느 출판업자는 날마다 반나절은 회의나 토론으로 보냈다. 이것을 할까? 바꾸어 볼까? 그만 둘까? 의논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끝이 없어 아무리 오래 끌어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 몸은 피로하고 신경은 날카로워졌다. 게다가 일은 접혀 진척이 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숙고한 결과, 그는 획기적인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 문제를 하루아침에 해결했다. 그 비결은, 회의를 열기 위해 다음의 네 가지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서류를 만들도록 했다. * 1단계 : 문제는 무엇인가? * 2단계 :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 3단계 : 가능한 해결법은 무엇인가? * 4단계 :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 이후 직원들은 어떤 문제를 갖고 찾아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러한 네 가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온갖 사실을 파악하고, 그 문제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까지 마련한 뒤에는 대개의 경우 다른 사람과 의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의논할 필요가 있는 경우일지라도 회의 시간은 훨씬 줄어들었다. …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거나 의논하는 데에 긴 시간을 소모하지 말라. 일을 바르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의논보다도 실행에 중점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걱정거리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는 위의 네 가지 단계가 도움이 될 것이다.
[ 2장. 고민을 없애는 법칙들 ]
< 1. 더욱 바빠지도록 하자 >
- 생각과 행동은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신중한 것도 좋지 않다. 마음을 짓누르는 고민이 되기 때문이다. 때때로 고민은 하나의 습관처럼 굳어버리기도 한다. … 고민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민할 시간조차 없이 바쁜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심리학으로서 밝혀진 가장 기본적인 법칙에 의한 것이다. 그 법칙이란 인간은 한 번에 한 가지 이상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감정분야에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 비참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는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몸을 쉬지 말고 언제나 바쁘도록 하자. 이것이야말로 세상에 있는 모든 약 가운데 기장 값싸고 가장 효엄있는 약이다. * 고민을 줄이기 위한 첫 번째 법칙은 ‘바쁘게 살자. 고민이 생겼을 때는 더욱 바빠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 2.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말자 >
- 인간은 커다란 재난에는 용감하게 맞서면서도, 지극히 하찮은 일에는 쓰러지기 쉽다. 사업의 실패, 동료 간의 다툼, 가정의 파탄까지도 그 원인을 따지고 보면 말도 안 될 정도로 사소한 일 때문에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뉴욕의 지방검사 ‘프랭크 S.호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사사건의 과반수는 사소한 원인 때문이다. 자존심이나 허영심을 다치게 했다든지, 멸시를 받았다는 따위의 시소한 일들이 이 세상 고민의 원인이 되어 사람들을 극한 상태까지 몰고 가는 것이다.” … 일상의 우스꽝스럽고 하찮은 일 때문에 큰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그런데 인생은 작게 살기에는 너무나 짧다. * 고민을 줄이기 위한 법칙 두 번째는, 잊어야 할 사소한 일에 대해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자.
< 3. 확률을 따져보자 >
- 사람들은 무척이나 쓸데없는 것, 일어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일을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누구나 벼락을 두려워하지만, 실제로 1년 동안 벼락에 맞아 죽는 사람은 극히 미미한 숫자인 것이다. 확률적으로 0.001%도 되지 않는 일이다. 이제라도 확률의 법칙에 비추어, 우리의 고민에 정당성이 있는가를 충분히 고려하여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으면 고민의 상당 부분은 해소될 것이다. … 만약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 고민할 경우가 생기면, 기록을 조사하고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불안이 어느 정도의 근거가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 고민을 줄이기 위한 세 번째 법칙은 당장 일어날지 모른다고 해서 고민하고 있는 그 일이 과연 일어 날 것인가? 평균율의 법칙에 비추어, 어느 정도의 확률이 있지 조사해보자.
< 4.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 >
-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어쩔 수 없는 실패에 부딪칠 수도 있다. 그것은 결코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면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가피한 재난에 적응하든가 아니면 반항을 하다가 파멸하거나 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어떤 선택을 하는가는 자유이다. 이에 대해 철학자 ‘윌리엄 제인즈’의 현명한 충고가 있다. “모든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라. 일단 일어난 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행한 결과를 극복하는 첫걸음이다.” … 예수는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지옥도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지옥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천국을 택할 것인가? 그렇다고 온갖 재난에 무조건 머리를 숙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사태를 조금이라도 개선 할 가능성이 있는 한 싸워야 한다. 우리는 재난과 비극에 견디어 승리를 걷을 수 있는 강한 마음의 힘을 가지고 있다. … 만일 우리가 인생의 쇼크를 흡수하지 않고 이에 대해 반항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이에 우리는 수많은 내면적 갈등을 일으킬 것이고, 끊임없는 긴장으로 신경쇠약에 걸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준엄한 현실 세계를 거부하고 스스로 만든 꿈의 세계로 도피한다면, 미치광이가 되고 말 것이다. * 고민을 줄이기 위한 네 번째 법칙은, 피할 수 없다면 체념하고 받아들이자.
< 5. 연결 고리를 끊자 >
- 증권계의 신화로 여겨지는 ‘버튼 S. 카스틀스’는 주식투자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이렇게 역설했다. “어떠한 주식 거래에 대해서는 ‘스톱 로스 오더(Stop Loss Order/손실정지 주문)’를 해둔다. 이를테면 자신이 소유한 주식에 대한 손실정지 주문을 5포인트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만일 시세가 떨어져 매입한 주가가 5포인트 내리게 되면 자동적으로 팔리게 된다. 그러므로 손실은 5포인트로 끝나는 셈이다. 그러나 이익은 평균 10~50포인트에 달하므로 손실을 5포인트로 제한한다면, 절반 이상 거래에 실패하더라도 막대한 벌이가 된다.” 이러한 법칙은 다른 여러 일에도 응용될 수 있다.
- 참다운 마음의 평화는 가치에 대한 올바른 판단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일이 당신의 삶에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는가를 명확히 판단할 수만 있다면 고민의 반은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 고민을 줄이기 위한 다섯 번째는,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이 얼마만큼 중대한 것인가? 지금까지 이미 충분히 손해 보지는 않았는가? 이 고민에 대해 ‘스톱 로스 오더’를 하고 연결고리를 끊어버리자.
< 6. 되돌릴 수 없는 과오는 잊자 >
-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오로부터 교훈을 배우기는커녕 계속해서 똑같은 과오를 범하고 있다. 이미 벌어진 일, 즉 흘러가 버린 과거에 연연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욱 나쁜 것은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들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다. ‘그때 내가 그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 또는 ‘만약 그렇게 했더라면…’하는 생각에 빠져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보다 나은 것을 택하는 속성이 있다. 다만 누가 더 먼 장래를 보고서 결정을 내렸는가로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 순간에는 비록 옳은 선택이었을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오히려 그릇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구를 원망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스스로 선택 일이기 때문이다. 이왕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모두 잊자. 그리고 그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노력을 하자. … 성공한 사람들은 오히려 남보다 커다란 불행을 겪었던 사람들이다. 다만 그들은 고민과 슬픔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행복과 생활로 나아갔을 뿐이다. * 고민을 줄이기 위한 여섯 번째 법칙은,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음을 명심하자.
< 7. 고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10가지 어드바이스 >
1) 고민만 하지 말고 문제를 생각하라.
2) 부정적인 시각을 긍적적인 면으로 바꿔라.
3)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다.
4)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라.
5) 고민을 더 이상 과장시키지 마라.
6)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 놓으라.
7) 근심 속에 빠지지 말고 긴 안목으로 보라.
8)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라.
9) 일을 계획하고 더 규칙적이 되라.
10) 남에게도 고민이 있음을 알라.
[ 3장. 행운을 부르는 법칙들 ]
< 1. 생각하는 대로 된다 >
-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이 있다. 생각이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되는 것이다. 즐거운 생각을 하면 즐거워지고, 슬픈 생각을 하면 슬퍼진다. 또한 무서운 생각을 하면 무서워지고, 실패를 생각하면 실패한다. 마음가짐은 인간의 육체에 대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 행복을 위해서 싸워라! 그 무기는 쾌활하고 건설적인 생각이다. ‘시빌 F. 패트릭’ 의 명구(名句) ‘오늘만은’의 일부 내용이다.
* 오늘만은 자기 자신을 사물에 부응시키도록 하자. 사물을 자기가 바라는 대로 다루려 들지 말자. … * 오늘만은 몸조심을 하자. 운동을 하고, 몸을 아끼고, 영양을 섭취하자. … * 오늘만은 자신의 마음을 굳게 가지자. 무엇인가 유익한 일을 배우자. … * 오늘만은 내 영혼을 운동시키자. 남모르게 무언가 좋은 일을 하고, 수양을 위해 적어도 두 가지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자. * 오늘만은 유쾌하게 지내자. 씩씩한 모습을 하고 어울리는 복장을 하고 조용하게 이야기 하고, 예절 바르게 행동하고, 마음껏 사람들을 칭찬하자. … * 오늘만은 오늘 하루로서 살아보기로 하자. 인생의 모든 문제를 앞에 놓고 한꺼번에 덤비지 말자. … * 오늘만은 하루의 프로그램을 갖고 매시간 할 일을 기록해 두기로 하자. … * 오늘만은 30분 동안이라도 혼자서 조용히 휴식할 시간을 갖자. … * 오늘만은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자. 행복하게 되는 일, 아름다운 것을 즐기는 일, 사랑하는 일,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기로 하자. …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의지력으로 정신 태도를 변경할 수 있다면 당신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 행운을 부르는 첫 번째 법칙은, ‘쾌활하게 생각하고 즐겁게 행동하라’이다.
< 2. 앙갚음하지 않는다 >
-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구절은 단순한 도덕률을 설명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의학까지 설명하고 있다. 증오로 인한 해독은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나아가 육체를 망가뜨린다. 그러면 행복은 균열이 가고, 결국 불행의 늪에 빠지고 말 것이다. 마음에 품은 증오로 인해 스스로의 표정이 험악해지고 몸은 지쳐 신경쇠약이 되며, 심장병에 걸려 생명까지 위태롭다. 원수를 사랑할 만한 성자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원수를 용서하고 잊어버리기로 하자. 그것이 현명한 태도이다. 비록 원수를 사랑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자신을 사랑할 수는 있지 않는가? 적에게 자신의 행복과 건강의 지배권을 내주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 공자는 말했다 “도둑맞거나 모욕을 당했더라도 그것을 잊어버리는 한 아무 것도 아니다.” … 원수를 용서하고 잊는 확실한 방법은 자기보다도 무한히 큰 어떤 사상에 몰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당하는 모욕이라든가 적의(敵意)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 행운을 부르는 법칙 두 번째는, ‘보복하려고 들지 말자’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보다 더 많은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 3.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
- 남에게 베풀지라도 감사받을 생각을 하지 말자. ‘사무엘 L. 존슨’은 이렇게 말했다. “감사하는 마음은 교양의 결실이다. 비천한 사람에게는 찾아볼 수 없다.” 은혜를 입고도 감사하지 않는 마음이 인간성의 문제 때문인지 모르지만, 비록 남에게 베풀지라도 감사를 기대하지는 말자. … 남에게 친절을 베풀면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남의 친절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왜냐하면 친절을 베푸는 것은 우월의 표시이며, 그것을 받는 것은 열등의 표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행복을 찾고자 하면, 감사라든가 은혜를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의 기쁨을 위하여 베풀어야 한다. 하지만 부모는 자녀에게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쳐야 한다. 은혜는 잡초처럼 자연스러운 것이고, 감사는 장미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물과 비료를 주며 사랑으로써 키우고 또한 보호해야만 되는 것이다. 잡초처럼 자란 자식은 남에게는 물론 부모에조차 감사할 줄 모를 것이다. 그러므로 남에게 감사할 줄 아는 자식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 예수는 10명의 나병 환자를 고쳐 주었지만, 감사한 사람은 그중에 한 사람뿐이었다. 예수 그리스도 이상으로 감사받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니겠는가? … 감사하는 마음은 배양된 특성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감사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르쳐 주어야만 한다. 행운을 부르는 세 번째 법칙은, 베풂에 대해 섭섭함을 느끼지 말자.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은 감사받기를 바라지 말고, 주는 기쁨을 위해 베푸는 것이다.
< 4.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한다 >
- 행복하고자 한다면, 90%의 행운에 마음을 집중하고 10%의 불행은 무시하자. 지금 가지고 있는 두 눈, 두 다리, 자식을 값진 보석과 바꾸겠는가? 세상의 모든 재화를 준다고 해도 결코 팔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은 당신이 가진 90%의 행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불행하고 싶다면 마음을 10%의 불운에 집중시키고, 90%의 행운을 무시하면 된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밖에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없는 것만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대의 비극이다. … 행복해 지는 비결은 무척이나 단순하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감사해야만 할 온갖 것을 생각하고, 주어진 은혜와 자비에 대해 신(하느님)께 감사하자. 행운을 부르는 네 번째 법칙은, 괴로움을 헤아리지 말고 축복을 세워라! 쾌활하게 생각하고 즐겁게 행동하라.
< 5. 남을 탓하지 않는다 >
- 아동 교육에 관한 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한 ‘안젤로 패크리’의 말이다. “자기의 마음과 육체를 버리고 자기 이외의 어떤 다른 사람, 자기 이외의 무엇이 되고 싶다고 하는 사람만큼 비천한 이는 없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특히 할리우드의 젊은 배우들에게 극명하게 드러난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명인의 ‘짝퉁’이 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이미 그러한 매력을 충분히 즐겼기에 이번에는 그들과는 다른 배우를 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구직자가 범하는 최대의 잘못 역시 마찬가지이다. 침착하고도 솔직해야 할 사람이 스스로를 버리고 면접관의 비위에 맞는 대답만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잘난 누구와는 같지 않다는 사실을 고민하지 말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고 새로운 존재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자신과 똑같은 인간은 하나도 없었으며, 또 앞으로도 그런 인간은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경험, 환경, 유전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의 것만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좋든 나쁘든 우리는 인생이라는 오케스트라에서 자신의 작은 악기를 연주해야만 한다. * 행운을 부른 다섯 번째 법칙은, 남의 흉내를 내지 말라. 스스로를 발견하여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라.
< 6. 운명을 기쁨으로 대한다 >
- 행복이란 대개의 경우 쾌락이 아니다. 그것은 승리인 것이다. 인생의 승리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패배자가 될 것인가? 그것은 선택에 달려 있다. 니체는 ‘초인(超人)에 관한 법칙’에서 이렇게 밝혔다. “궁핍을 참고 견딜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랑하는 이가 초인인 것이다.” 성공자의 경력을 연구해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핸디캡을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다. 흔히 생각하는 약점 또는 장애가 뜻밖에도 자극제가 되어 성공을 거두게 한 것이다. ‘밀턴’은 장님이었기 때문에 뛰어난 시를 썼으며, ‘베토벤’은 청력을 잃었기 때문에 불후의 명곡을 남겼다. 또한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가 고난에 찬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길이 남을 명작을 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손실에서 이익을 올리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점이 분별력 있는 사람과 바보의 차이점을 만드는 것이다. 행운을 부르는 여섯 번째 법칙은, 운명이 슬픔을 주었다면 그것을 기쁨으로 바꿔라.
< 7. 남에게 기쁨을 준다 >
- ‘로프틴’은 이런 말을 했다. “싸움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피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싸움을 하는 것 이상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는 친구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그는 고민을 극복하여 인생을 즐기는 방법도 알고 있는 것이다. … 위대한 정신병학자 ‘알프렛 아들러’가 발표한 보고에서, 그는 언제나 환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처방대로만 하면 두 주일이면 완쾌합니다. 날마다 어떻게 하면 남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 특히 원한에 찬 이들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괴롭힐 수 있을까?’만을 생각하고 있다. 성경에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이 있다. 이웃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은 인간은 인생의 실패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온갖 실패는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보다 좋은 협동자가 되어라’,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되어라.’,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는 참다운 반려자가 되어라’ 이다.
- 알프렛 아들러 박사는 하루 한 가지씩의 선행을 역설하고 있다. 선행이란 다른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가져오게 하는 행위이다. 이 선행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려는 것만으로도 고민이나 공포 등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자신의 일을 생각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남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보다 큰 행복, 보다 큰 만족과 자존(自尊)의 감정을 갖도록 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남에게 선을 행할 때 인간은 자기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남에게 장미꽃을 바친 손에는 언제나 향기가 남아 있다.’ … 다른 이에 대한 배려는 자기 고민에서 구제될 뿐만 아니라 많은 친구를 만들어 준다. 인간이 짧은 인생에 기쁨을 만끽하려면, 자기보다도 타인이 잘 되도록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의 기쁨은 그들의 기쁨에 이어져 있고, 그들의 기쁨은 자신의 기쁨에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 행운을 부르는 일곱 번째는, 타인에게 관심을 가짐으로써 자기를 잊자. 그리고 다른 사람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를 떠올리게 할 만한 착한 일을 하자.
< 8. 성공적인 삶을 위한 10가지 어드바이스 >
1) 조금만 더 노력하라. 2) 조금만 더 인내하라. 3) 조금만 더 행동하라.
4) 조금만 더 성실하라. 5) 조금만 더 모범을 보여라. 6) 조금만 더 헌신하라.
7) 조금만 더 절제하라. 8) 조금만 더 격려하라. 9) 조금만 더 정열을 가져라.
10) 조금만 더 믿어라.
[ 4장. 감정을 지배하고 조절하자 ]
< 1.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자 >
-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았다고 하자. 기분이 좋지 않았겠지만, 다음의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비난한 이는 자기가 잘난 것 같은 느낌을 맛보고 있으리라는 것을, 또한 비난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이든 남의 주목을 끌 만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 유명한 미국인으로 ‘위선자’ ‘사기꾼’ ‘살인범보다 조금 나은 사내’라고 공공연하게 욕을 먹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톤이다. 비록 그가 재임하는 동안 수많은 정적(政敵)이 있을지라도, 역사는 그를 둘도 없이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록하고 있다. * 세상에는 자기보다 성공한 사람들을 나쁘게 말하는 데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부당한 비난은 대게는 감추어진 찬사이다.
< 2. 집중과 통찰력을 가지자 >
- 남에게 속거나, 비웃음을 받거나, 배반을 당하더라도 그 때문에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부당한 비난은 무시하라. 스스로가 옳다고 믿든 일을 하면 된다. 물론 그렇게 해도 욕을 먹고, 하지 않아도 좋은 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어차피 비평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링컨이 어떠한 방식으로 스스로에 대한 비난을 이겨냈는가에 관한 그의 기술(記述)은 문학적 고전처럼 여겨지고 있다.
*
“내게 가해지는 비난에 대해 대답은 고사하고 신경을 쓰려고 했다면, 나는 이 사무실을 폐쇄해 버리고 무엇이든지 다른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좋은 방법을 최선을 다해 실행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끝까지 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좋으면, 내게 가해진 비난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않다면, 10명의 천사가 내가 옳았다고 증언해 주더라도 그것은 아무런 쓸모없는 짓이 되고 말 것이다.”
< 3. 스스로를 평가하자 >
- 누구나 고민을 남의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현명해짐에 따라 결국 온갖 불행은 스스로의 책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몰락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소인은 극히 사소한 비평을 받아도 흥분하고 성을 내지만, 현명한 사람은 자기와 논쟁을 하고 자기를 비난한 사람조차 용서한다. … 만일 누군가가 욕한다고 해서 스스로를 변호하지 말자. 그것은 어리석은 이가 하는 짓이다. 보다 독창적이고 겸허하고 훌륭하게 행동하자. 만약 비난을 하는 이가 또 다른 결점을 알고 있다면 더 통렬하고 혹독하게 헐뜯을 것이다. * 자신이 저지른 어리석은 짓을 기록해 두었다가 스스로 비평하자. 그리고 편견이 없고 이익이 되는 건설적인 비평을 자진해서 구하자.
< 4. 하루를 25시간으로 만들자 >
- 피로는 때때로 번뇌(煩惱)를 부르고, 감기를 비롯한 온갖 질병에 대한 육체적 저항력을 약하게 한다. 정신과 의사는 피로가 공포나 근심이라는 감정에 대한 저항력을 저하시킨다고도 말한다. 그러므로 피로를 예방하는 것은 번뇌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피로의 예방은 피로하기 전에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피로는 놀라운 속도로 축적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심장은 혈액을 온몸에 순환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하루에 20톤이 넘는 혈액을 순환하면서 옮기는 엄청난 노동을 수십 년 동안 하는 것이다. 심장은 어떻게 그것을 견딜 수 있는가? 하버드 의대의 ‘월터 캐년’ 박사의 설명이다. “사람의 심장은 항상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수축할 때마다 일정한 휴지기를 갖는다. 분당 70회의 속도로 심장이 고동친다고 한다면, 실제로는 24시간 중에서 겨우 9시간밖에 활동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상상한대로 심장이 1분 1초라도 쉬지 않고 활동한다면 인간의 수명은 불과 1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심장에서의 휴식은 일종의 수리(修理) 상태인 것이다. … 5분간의 낮잠이라도 피로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저녁 식사 전에 1시간만 누어 휴식(수면)을 취해 보도록 하자. 그러면 하루가 24시간+a 로 늘어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 깨어 있는 동안의 생활에 1시간 덧붙인 것이 된다. 역설적으로 휴식을 많이 할수록 더욱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슈미트’ 박사에 의해 실험적으로도 증명된다. * 지치기 전에 잠깐 쉬자. 하루를 24시간 이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5. 지칠 때는 몸을 편안하게 하자 >
- 인간은 기계가 아닌 이상 당연히 지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경이로운 것은 정신적 작업으로만은 결코 지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즉, 뇌는 전혀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영국의 정신병 학자 ‘J. A 하드필드’는 그의 저서 ‘힘의 심리’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인간을 괴롭히는 피로의 대부분은 감정적 원인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순수한 육체적 원인에서 오는 피로는 실로 드물다.” 인간을 피로하게 하는 감정적 요소는 기쁨이나 만족이 아닌 번민, 긴장, 감정의 혼란이 피로의 3대 원인이다. 이러한 감정적 요소가 인간의 정신을 지치게 만들어 능률을 저하시키고, 감기의 원인이 되어 신경성 두통을 느끼게 한다. 자기의 감정이 신경적 긴장을 낳기 때문에 피로를 느끼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피로를 느낀다면 당장 쉬도록 하자. 우선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자. 눈은 우리 감각기관 가운데 가장 예민한 기관으로 눈으로부터 비롯되는 피로는 우리가 느끼는 피로의 1/4에 해당한다. 휴식시간이 짧다면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30~40%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다음에는 몸을 편안하게 만들어 보자. 좁은 공간에서 목운동 등 별다른 도구 없이 가능한 운동을 찾아보자.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모든 근육을 이완시켜 벗어 놓은 양말처럼 몸을 흐늘흐늘하게 만드는 것이다. * 하루를 마감할 때면 자신의 피로도를 체크해 보자. 얼마니 피로한가를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피로하지 않은 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만약 피로를 몹시 느낀다면 일의 양이나 질에 상관없이 효율적이지 못했음을 상기하자.
[ 5장. 모든 이에 열정을 불어 넣자 ]
< 1. 기도는 고민을 몰아 낸다 >
- 하버드 대학 철학과 교수인 ‘윌리엄 제임즈’는 “고민의 명약은 종교적 신앙이다.”이라고 했다. … 누구나 인생에서 최소한 몇 번은 고민과 맞닥뜨릴 것이다. 고민을 위한 대처법에는 많은 방법이 있겠으나, 가장 효과적인 것은 신앙일 것이다. 어떤 종교를 가지건 그것은 상관이 없다. 실제로 고민을 해소하는 것은 절실한 기도요, 기도는 신앙이 기초가 되었을 때 더욱 효과가 있다. ‘마하트마 간디’도 기도에 의해 지지되고 격려 받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알렉시스 카렐’ 박사가 발표한 논문 중의 내용이다. “기도는 인간이 발생시킬 수 있는 가장 강한 에너지이다. 의사로서 나는 온갖 치료법을 사용해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수많은 환자들이 기도라는 엄숙한 노력에 의해 질병이나 우울증에서 벗어난 예를 목격했다.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우리의 인간적 결함은 충족되어 우리는 강화되고 치유되어 일어서게 되는 것이다.” 만일 종교를 신봉하지 않는 회의론자라도, 기도는 믿고 있는 이상으로 자신을 돕는다. 기도는 실용적인 것이기에 신자이든 신자가 아니든 간에 온갖 사람들이 공유하는 3가지의 심리적 욕구를 성취하도록 해준다.
* 기도는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언어로 표현하도록 도와준다
* 기도는 우리에게 자기 혼자가 아니라 어느 누구와 무거운 짐을 나누어서 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언제든지 신께 호소할 수 있는 것이다.
* 기도는 행위의 활발한 법칙을 활동케 한다. 그것은 행동에의 첫걸음인 것이다.
< 2. 언제나 젊음을 유지하자 >
- 의학 고문인 ‘로즈 힐퍼딩’ 박사는 번뇌를 줄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신뢰하는 사람에게 괴로움을 털어 놓는 것이라고 한다. 가슴에 품고 있는 고민이 신경적 긴장을 불러 일으켜 병을 유발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그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즉 세상에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위안을 얻어 신경증의 대부분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신의 괴로움을 분명하게 알고, 또 그 문제의 경중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뢰할 만한 이에게 자신의 아픔을 털어 놓는 것이 곧 마음의 평정을 찾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밖에도 전문가가 권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 노트에 자신을 감동시키고 정신력을 향상시키는 경구(警句)나 시, 기도문 등을 적어 두고 수시로 펴보도록 하자.
* 다른 사람 특히 자신에게 괴로움을 주는 가까운 사람의 결점보다는 장점을 생각하자.
*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자. 새로운 사람과 사귀는 것도 좋다. *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일 할 일의 목록을 적어보자. 일의 시작과 끝을 명확히 할 수 있다. * 긴장과 피로를 피하고, 가능한 한 몸을 편하게 하자. 스트레칭도 좋고 요가도 좋다. 이는 미용에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
< 3. 당장 해야 할 일을 구분하자 >
- 현대인은 누구나 일에 쫓기고 있다. 시작도 끝도 없이 늘 일에 묶여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피로는 가중되고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당장 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자. 직장인이라면 당장이라도 책상을 정리하자. 첫째,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처리하자. 당면한 문제에 관계있는 서류 외엔 모두 책상에서 치워버려라. 둘째, 일의 중요도에 따라 순서를 정하자. 일을 신속하고 능률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순서를 정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또한 ‘어떤 일은 모든 일에 우선한다’는 스스로의 원칙을 세워둘 필요가 있다. 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날마다 반드시 5쪽 분량의 작품을 쓰는 것을 제1원칙으로 삼고, 9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썼던 것이다. 셋째, 문제에 직면하면 즉시 해결하자. 만약 결단에 필요하다면 절대 미루지 말라. 굴지의 기업 ‘U. S.스틸’의 회의 진행 방법은 무척이나 독특하다. 한 가지 의안을 채택하면, 결정의 연기나 보류는 허용하지 않는다. 그 결과, 수많은 자료는 간단히 정리되었다. 넷째, 책임과 권한을 나누도록 하자. 스스로가 번민과 긴장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면 당장이라도 실행해야만 한다. 이는 조직을 활성화하여 전체에 활력을 줄 수 있으며,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훨씬 많음을 알게 된다. * 당장 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자. 직장인이라면 당장이라도 책상을 정리하자. 주부라면 일을 구분하여 목록을 작성하자.
< 4. 권태를 몰아내자 >
- 피로의 주된 원인의 하나는 권태이다. 변함없고 반복적인 일은 사람에게 권태를 느끼게 하고, 그것은 피로를 가중시킨다. 사람이 피로를 느끼는 것은 육체적인 면보다는 감정적인 면에 훨씬 큰 영향을 받는다. 자신이 흥미를 느끼고 즐거운 생각을 가졌을 때에는 절대로 지치지 않는다. 피로는 일 때문에 아니라 고민, 좌절, 원한이 원인인 것이다. 인생은 사고(思考)에 의해 만들어진다. 일에 흥미를 가지면 고민으로부터도 해방되고, 결국은 지위도 오르고 월급도 오르게 될 것이다. * 기왕 주어진 일이라면 일을 즐겁게 하라.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만으로 당신의 삶은 활력이 넘치고, 보석처럼 빛날 수 있다.
< 5. 불면증에서 벗어나자 >
- 인간은 인생의 1/3을 잠으로 소비하면서도 무엇이 진짜 수면인가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이 습관이며, 잠을 자는 동안 자연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각 개인에게 몇 시간의 수면이 필요한지, 수면이 절대적으로 필요한지 어떤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불면증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불면증 그 자체 이상으로 건강에 해롭다. 수면 연구의 일인자인 ‘나다니엘 클레이먼’ 박사는 불면증이 원인이 되어 죽은 예는 없다고 단언한다. 분명 인간은 불면증에 대해 고민하여 생존 능력을 잃고 목숨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고민이 원인이지, 불면증 자체가 원인이 아니다. 클레이먼 박사는 또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보통 자신이 자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잠을 잔다고 말한다.
* 숙면을 위한 방법1 : 숙면의 제1조건은 안정감이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이다. 절대적인 존재에게 자신을 의지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다.
* 숙면을 위한 방법2 : 만약 특별한 신앙을 가지지 않았기에 제1방법이 적합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물리적 방법으로 몸을 편하게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명상, 요가 등의 정적인 방법으로 스스로를 체면 상태로 만들어 잠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육체보다는 정신을 다스리는 것이다. 전신의 근육이 긴장을 풀고 편히 쉴 수 있도록 암시를 주는 것이다. 근육이 긴장하고 있으면, 마음도 신경도 편히 쉴 수가 없다.
* 숙면을 위한 방법3 : 동적인 방법도 권할 만하다. 수영, 테스, 골프, 스키 같은 운동이나 정원 손질하기, 공작 등으로 몸을 피로하게 만들어라. 단, 스스로가 즐거워야 한다. 만약 즐겁지 않다면 정신적인 피로와 육체적인 피로를 동시에 얻는 것이므로 더욱 나쁠 수 있다.
< 6. 즐겁게 일하자 >
-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꼽는다면 대개는 직업과 배우자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직업은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자 자신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인간은 스스로 정열을 품고 있는 일에는 거의 성공하게 마련이다. ‘뒤퐁’사의 인사를 담당했던 ‘에드너 카’ 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큰 비극은,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월급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처럼 딱한 사람은 없다.” 정말 적당한 직업을 찾아내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다. 과연 어떤 직업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인가? 그것은 개인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무어라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제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자신이 즐거운 일은 보다 큰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에게 적합한 직업 선택을 위한 4가지 제언을 한다.
1) 주위의 이야기에 좌우되지 말자. 주위의 이야기는 정보로써 활용하자. 특히 점쟁이, 직업지도사의 말은 무시해도 좋다. 가능하다면 자신이 관심을 가진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이에게 자문을 구하자. 2) 이미 인원 과잉이거나, 사양 산업은 피하자. 예로, 악기를 전공하는 사람의 많은 이가 바이올린을 선택한다. 바이올린이 악기의 여왕이지만 모두가 여왕이 될 수는 없다. 비교적 경쟁률이 적으면서도 자신의 욕구를 상당부분 충족시킬 수 있는 악기가 있다. 그리고 직업에서 흔히 ‘사(士)’ 자가 들어가는 직업조차 머지않아 과잉상태가 될 수 있다. 당신이 흥미롭고 자신 있는 분야를 택하라. 무모하지만 않다면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도 좋다. 3) 직업을 단순한 생계수단으로 삼지 말자. 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영위하기 위해 직업을 택한다. 이는 자신에게나 사회적으로도 손해이다. 비근한 예가 보험이다. 의욕도 흥미도 책임감도 없으면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많은 이가 곧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4) 자신이 어떤 직업에는 적합하고, 어떤 직업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그릇된 생각을 버리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많은 직업에 성공하는 수도 있고 실패하는 수도 있다.
< 7. 돈을 지배하자 >
- 수입의 증가가 경제적 고민에 대한 해답은 아니다. 수입의 증가는 낭비만 증가시킬 뿐이며, 이로 인해 두통을 비롯한 각종 질환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사람들이 하는 고민의 원인은 금전의 부족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돈을 쓰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과연 어떻게 해야 제대로 돈을 쓸 수 있을까? 그 11가지 법칙은 다음과 같다.
1) 출납 상황을 꼼꼼히 기록해보자. 예산 전문가들은 3개월 동안 자신이 소비한 돈의 정확한 수입과 지출 결산표를 만들라고 권한다. 이렇게 하면 돈이 어떻게 써졌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으므로 예산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이 기록한 결산표를 보면 대부분 놀랄 것이다.
2) 필요에 맞춰 예산을 작성하자. 예산이란 생활에서 기쁨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많은 경우 감정적인 안정과 번민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고 있다. 예산을 세워 생활하는 사람은 보다 행복한 사람들이다.
3) 돈을 살려서 쓰는 방법을 배우자. 같은 비용으로 최대의 가치를 얻는 방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모든 큰 회사에는 구매만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부서가 있다. 이는 회사를 위해 유리한 거래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자산의 관리인겸 책임자는 이런 일을 해야 한다.
4) 수입이 늘어난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수입이 늘어난 만큼 지출도 늘어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갑자기 수입이 늘게 되면, 필요 없는 것조차 마구 사들이게 된다. 그리고 한 번 늘어난 씀씀이는 여간해서 줄이기 힘들다.
5) 신용을 쌓자. 살다가 보면 급히 돈을 빌려야 할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신용을 쌓도록 하자. 돈을 빌리기 전에는 과연 필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숙고하자.
6) 사고나 질병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자. 온갖 종류의 사고와 불시에 닥칠 사건에 대비하여, 비교적 싸고도 도움이 되는 것은 보험이다. 자신의 특성을 파악하고 전문가와 상의해서 알맞은 상품을 택하자.
7) 생명보험금은 배우자나 가족에게 현금으로 한꺼번에 지불하지 않도록 조치하자.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여 유가족을 위해 생명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유사시에는 보험금이 현금으로 한꺼번에 지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일시 현금 지급방법은 현명한 방법이 못된다. 그 돈으로 신탁예금 등의 방법으로 수익이 있을 만한 방법을 강구하도록 해주는 것이 더욱 좋다.
8) 자녀들이 일찍부터 경제 감각을 갖도록 교육시키자. 자녀가 부모로부터 수시로 받은 자기의 돈에 대해 책임감을 갖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9) 당신에게 적당한 부업을 생각해 보자. 당신의 주위를 살펴보면 의외로 할 만한 일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규모가 크지 않아도 좋다. 가능하다면 자신의 취미에 맞으며 특색 있는 일이 좋고, 만약 실패하더라도 금전적인 손해는 적은 일이라면 더욱 좋다.
10) 도박은 금물이다. 도박의 끝은 언제나 제로(O)이거나 대부분은 제로가 아닌 마이너스가 된다. 내기나 도박에는 휘말리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정말 손을 대고 싶다면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되는가를 꼼꼼히 따져 보라. 극히 확률이 적은 즉석복권 같은 것에 돈을 쓰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11) 가진 것에 만족하자. 다른 사람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경제적인 고민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자. 원하는 것은 전부 얻을 수 없다고 해서 귀중한 세월을 번민이나 원망으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것은 더욱 나쁜 일이다.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인간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불만을 느낀다면 전 세계를 다 차지해도 불행할 것이다.”
#127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128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 책 이름 : 성서에 대한 101가지 질문과 응답 ]
- 지은이 : R.E 브라운
- 옮긴이 : 박영식
- 펴낸데 : 바오로딸
- 지은이 프로필 : 1928년생, 1953년 사제수품,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로마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으로 임명. 가톨릭 성서협회, 성서문학회, 신약성서연구회라는 세 단체장을 역임한 유일한 인물, 저서로는 ‘메시아의 탄생’ 등 다수
- 옮긴이 프로필 : 1947년생, 1976년 사제수품(대구대교구), 1982년 로마 교황청 직속 성서대학에서 석사학위 취득, 1990년 위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박사학위 취득
- 출판일(발행일) : 2001. 11.15 - 223p
- 내 용 : 성서(성경)에 관한 22가지 주제별 총 101가지의 질문과 응답
[ 표지의 글 ]
성서에는 전문가의 도움 없이 이해할 수 있고 영적인 자양분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하느님은 학자의 허락 없이 독자에게 말씀하실 수 있다. 그러나 일반 대중의 차원에 서 교양있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학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성서에는 매우 다른 상황에서 인간이 개인적. 집단적으로 하느님과 접촉한 거의 2천년에 걸친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성서를 읽는 대단한 희열중의 하나는 성서적 상황이 우리 자신의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지난날 인간의 응답을 기대하면서 요구하신 것을 오늘날도 요구하신다.
[ 머리말 ]
- 1950년대 후반 나는 성서를 가르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서 박사학위 공부를 마쳤다. 1960년 나는 처음으로 여름성경학교를 개설했고, 그 사이 몇 년 동안 정규수업 이외에 성서에 관해 듣고 싶어 하는 각계각층 사람들의 모임에서 천여 번 강의했다. 주교들의 모임, 가톨릭 교구 성직자, 가톨릭교회와 다른 교파의 성직자, 수녀원 그리고 여름학교, 전문학교, 회합과 협의회에 참석한 대단히 많은 사람들에게 강의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내용을 강의하든 질의응답 시간에 제기된 질문들이 늘 같은 주제로 되돌아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사람들의 관심사를 파악하는 데뿐 아니라 그들의 필요에 더 잘 부합하는 대답을 구상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질문시간이 강의만큼 성서에 대한 존중심을 심화시키는데 큰 뜻이 있다고 가끔 나에게 말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질의응답 시간에 체험한 것들, 가장 자주 제기된 질문이라고 기억되는 것들을 모아서 출판하기로 했다.
-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질의응답 시간에 하나의 질문이 이따금 다른 질문들을 야기하고 하나의 주제를 발전시킨 논리적인 전후관계를 만들어냈다. 나는 이 책에서 이러한 현상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101가지 질문들’을 아무렇게나 혹은 빈도순이나 중요성에 따라 제시하는 대신 주제별(내용분석표)로 배열하였다. 이 책은 일반인을 위한 책이지 학자를 위한 책이 아니라는 것을 독자들이 염두에 두기 바란다. … 이 책에 제시된 질문은 실제로 질문자가 제기한 것이기 때문에 학자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간주할지 모르는 주제뿐만 아이라 그들이 피할 것 같은 주제들도 있다. … 이 책의 질문에 대한 응답을 보면서 독자들은 내가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임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또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성서적 증거를 제시하려 했으며, 어디에 성서적 증거의 한계가 있고 어디서 성서 해석이 수세기에 걸친 교회 삶 안에서 새로운 통찰이 추가되었는지를 밝히려고 노력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 차례 ] - 내용분석표/질의응답 주제
(주제별 바로가기 링크/클릭)
1. 질문 1-4 : 성서 번역
2. 질문 5-10 : 정경과 외경
3. 질문 11-14 : 성서를 읽는 방법
4. 질문 15-17 : 교회의 지도
5. 질문 18-22 : 성서를 왜 읽는가?
6. 질문 23-27 : 성서는 글자 그대로 사실인가?
7. 질문 28-30 : 성서 비평
8. 질문 31-33 : 성서적 근본주의와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
9. 질문 34-37 : 신약성서는 글자 그대로 사실인가?
10. 질문 38-44 : 복음서
11. 질문 45-51 : 예수의 말씀과 행위
12. 질문 52-53 : 예수의 부활
13. 질문 54-60 : 예수의 탄생
14. 질문 61-68 : 마리아
15. 질문 69-76 : 예수의 지식
16. 질문 77-78 : 교회의 창립
17. 질문 79-85 : 성사
18. 질문 86-88 : 초대 그리스도인들과 유다인들
19. 질문 89-92 : 초대 교회 관리
20. 질문 93-96 : 성찬식 거행
21. 질문 97-100 : 베드로와 교황
22. 질문 101 : 신약성서 시대 이후 교회는 얼마나 많이 변화했는가?
부록 : 성서 근본주의자들이 가톨릭 신앙을 오해하지 않도록 표현하기
# 일러두기 : 이 책에 수록된 성서 구절은 구약성서의 경우 ‘구약성서 새 번역’을, 신약성서의 경우 ‘200주년 성서’를 인용하였음을 밝혀 둔다.
[ 1. 질문 1-4 : 성서 번역 ]
<질문 1 > 가장 읽기 좋은 성서는 어느 것인가?
- 가장 적절한 성서 번역이 어떤 것인지는 읽는 사람의 목적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주일 혹은 다른 공동 예절이 거행되는 경우처럼 공적 독서는 장엄하게 번역된 것일 필요가 있다. 한편 영적 성찰과 쇄신을 목적으로 하는 사적 독서는 눈에 잘 들어오는 ‘사용하기 쉬운’ 문체로 번역된 것이 가장 알맞다. 주의 깊은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적 독서는 원문의 어려움과 모호함을 보존하는 보다 축어적(逐語的)으로 번역된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가장 좋은 포괄적 대답은 성서의 원어인 히브리어, 아람어와 그리스어로 쓰인 본문은 이해하기 어렵고 모호한 표현들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때때로 성서 저자들은 분명하게 기록하지 않았다. 역자들은 일정 기간 동안 원문의 뜻을 추측해야 한다. 직역을 하는 경우 그 직역에 보존된 모호한 점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각주나 해설을 달 필요가 있다. 자유롭게 번역한 경우는 모호한 구절에 대한 역자의 생각을 번역에서 밝힌다. 그러한 이유로 자유롭게 번역한 것은 읽기에는 쉽지만 진지한 연구 주제로 삼기는 어렵다.
<질문 2 > 당신은 어떤 번역본을 추천하는가?
- 직역본 중에서 유용한 번역본이 네다섯 가지가 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 거의 모든 주요 번역본이 중요한 개정작업에 들어갔으므로 성서를 구입할 때는 특정 번역판의 최신판을 입수할 필요가 있다. 내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성서는 ‘개정 표준 역본(The Revised Standard Version)’ 이다. 이 번역서는 난해한 점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읽기 쉬우면서도 주의 깊게 직역된 것이다. 이는 1990년 ‘새 개정 표준 역본’에서 일부 수정되었다. 보수적 개신교 신자들은 아직 ‘킹 제임스 역본’을 선호하고 있지만, 주류를 이루는 개신교 신자들은 단연 ‘새 개정 표준 역본’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미국 가톨릭 신자들은 ‘새 아메리칸 성서’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거의 주일 강론대에서 읽혀지고 있다. ‘새 아메리칸 성서’의 신약성서는 1980년대 후반에 전반적으로 수정되었고, 1990년대 초부터 전례에 도입되었다. 영국의 가톨릭신자들은 ‘예루살렘 성서’를 전례에 사용하고 있으며, 이 번역판은 교파를 초월하여 호응을 받아왔다. ‘예루살렘 성서’의 각주(脚註)는 광범위한 지식을 제공하는 매우 값진 것이며 ‘새 예루살렘 성서’에서는 더욱 향상되엇다.
<질문 3 > 대중용 번역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번역이 있는가?
- 나는 특히 자유롭게 번역한 사람들이 원문의 모호성을 능숙하게 제거했을 경우 그 성서를 즐겨 읽었다. 자유로운 번역은 어떤 뜻으로는 번역문 안에 끼어 들어가 있는 해설을 포함한다. 내가 신학교에 있을 때는 굿스피드가 번역한 신약성서를 갖춘 ‘시카고 성서’가 매우 인기있었는데 개인적 독서를 위해서는 아직도 퍽 유용하다. 오늘의 영어 역본인 ’기쁜 소식 성서(The Good News Bible)’ 오늘날도 여전히 인기가 높고 이해하기 쉬운 번역이다. 내가 추천하지 않는 번역본은 ‘살아있는 성서(The Living Bible)’이다. 이는 ‘저자가 사용한 것과는 다른 말을 사용하면서 그의 사상을 고쳐 쓴 것’이라고 공언하였듯이 의역으로 되어 있다. 이 번역본의 요한복음의 첫구절을 보면 ‘한 처음에 그리스도가 계셨다.’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리스 원문을 직역하면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로 옮겨야 한다. 첫구절은 신학적으로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이 되었을 때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의역은 번역의 범주를 넘어서서 지각없이 말씀을 그리스도로 대체하였다.
<질문 4 > 당신이 말한 성서 중에서 어떤 것은 개신교의 성서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개신교 성서를 읽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 않은가?
- 가톨릭교회의 초기 입장과 최근의 입장은 구별되어야 한다. 초기에 성서는 개혁파와 트리엔트 공의회의 신학자들 사이의 큰 논쟁거리였다. 가톨릭교회의 판단으로는 자국어 번역들, 즉 개혁파들이 다양한 국어로 옮긴 번역은 이따금 개신교의 입장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결과적으로 트리엔트 공의회는 공적인 성서 독서, 강론, 성서 해설 모임에서는 교회가 수세기 동안 사용한 라틴어 번역판(Vulgata)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의 결과로 가톨릭 성서 번역은 라틴어 번역판에 입각한 반면, 개신교 번역은 원어인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서로간 상대의 성서를 읽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모든 것은 달라졌다. 1950년대가 시작되면서 가톨릭 번역들, 공적인 성서 독서와 강론에 사용된 번역들까지 원어로부터 이루어졌다. ‘새 아메리칸 성서’와 ‘새 예루살렘 성서’가 그러하다. ‘개정 표준 역본’은 각주를 단 ‘옥스퍼드 성서’ 판으로 출판되었다. 이제 성서는 더 이상 주류를 이루는 개신교 교회와 가톨릭교회 사이의 전쟁 무기가 아니다. 가톨릭측 학자들이 ‘개정 표준 역본’ 최신 개정판에 한몫을 담당하고, 개신교측 학자들이 ‘새 아메리칸 성서’의 최신 개정판에 참여했다. 이제는 성서를 이해하기 위해 서로 돕고 있다. 가톨릭 독자는 교리적 차이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으면서 ‘개정 표준 역본’ 혹은 ‘새 영어 성서’을 즐겨 읽을 수 있다.
[ 2. 질문 5-10 : 정경과 외경 ]
< 질문 5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는 내용면에서 다른 성서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 신약성서에 관해서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성서가 같은 27권의 책과 동일한 순서로 되어 있다. 차이는 구약성서에 있다. 유다인과 대부분의 개신교 신자들은 39권의 구약성서를 가지지만, 가톨릭교회는 46권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많은 개신교회에서는 구약성서가 몇 권인지에 대해 공식적인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 가톨릭 신자들은 개신교의 구약성서에 나오지 않는 가톨릭측 7권을 제2경전이라고 부른다. 개신교 신자들은 이따금 이 7권을 외경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상권과 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로 구성된다. 이 7권은 히브리어 혹은 아람어가 아니라 그리스어로 보존된 책들이다. 위의 7권은 칠십인역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 번역서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유다인들이 구약성서를 그리스어로 옮긴 것으로서 초대교회가 공통적으로 받아들인 성서가 되었다. 개혁파들은 원어로부터 번역하고 싶어서,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쓰인 원본이 없는 제2경전에 대해 아주 의심스러워하면서 그것을 배척했다. 예로 들어서 가톨릭계 신학자들은 마케베오기 하권 12장 43절부터 45절은 연옥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해석되었으나 이에 대한 개혁파의 한 반응은 이 책을 성서로 인정하지 않았다.
< 질문 6 > 개신교 신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구약성서에 관하여 도대체 일치된 견해가 있을까?
-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이 지금 논란의 대상인 7권의 구약성서를 정경으로 받아들인다는 공식적 진술을 당장은 안할 것으로 보인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위의 책들을 성서로 공표했기 때문에 가톨릭의 입장이 바뀔 여지는 없다. … 그러나 좋은 소식이 있다.개신교의 후원으로 출판되는 많은 성서는 외경이란 이름 아래 위에 제시한 7권의 책을 수록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개정 표준 역본’과 ‘새 영어 성서’는 이 책들을 포함해서 ‘완전한 성서’라는 형태로 출판되었다. 일반적으로 위의 책들(제2경전)은 가톨릭 성서의 경우처럼 정경으로 여기는 책들 안에 섞여 들어가 있지 않고 구약과 신약성서 사이 혹은 신약성서 다음의 끝부분에 따로 수록되어 출판되었다. 이는 제2경전이 정경임을 선언한다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교회일치적 사실에 대한 인정을 뜻한다. 첫째는, 가톨릭 신자들이 이제 개신교 성서를 읽고 있으며, 그들이 소위 완전한 성서라고 여기는 것을 개신교 성서에서도 만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가 함께 성서를 공부한다는 것이다. 또 제2경전이 초기 유다교와 신약성서에 대한 이해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수 시대에 훨씬 가깝게 쓰인 제2경전은 예수께서 받아들인 관념과 견해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서 마케베오 상. 하권과 지혜서는 죽은 다음의 삶에 대한 믿음을 증거하고 있다. 이렇게 제2경전은 성서 연구에 필요하다. 개신교 독자들과 학생들이 이 제2경전에 친숙하게 됨에 따라 과거의 의혹들은 일부분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회서에는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에 이용될 수 있는 윤리적 가르침의 보고(寶庫)를 발견했던 것이다.
< 질문 7 > 당신은 개신교 신자와 가톨릭 신자가 신약 성서에 관해서는 의견을 같이한다고 말했다. 외경에 속한 복음서에 관해서는 어떠한가?
- 외경이라는 용어는 광범위하게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 모두가 성서로 여겨지지 않는 유다적. 그리스도교적 책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된다. ‘외경’에는 헤녹서, 희년기, 에즈라 4서와 같은 유다인들의 책들이 포함되는데 이 책들은 우리에게 알려진,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정경 목록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에티오피아권의 그리스도교회에서는 이 유다인의 책들 중에서 일부 정경으로 받아들였다. ‘외경’이라는 용어는 정경 목록에 수락되지 않는 복음서를 포함한다. 이 복음서들 중에서 어떤 책들은 고대로부터 보존되어 왔다. 예수의 유아기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태도를 이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야고버의 최초 복음’이 있다.(질문 10, 67, 68 참조) 외경에 속하는 복음서들 중에서 일부 고대에서부터 알려져 왔지만 분실되었다가 현대에 와서야 다시 발견되었다. 그것들 중에서 유명한 복음서가 예수의 고난을 상상해서 묘사한 설화 ‘베드로의 복음’ 일부이다. 특히 1940년대 후반에 이집트에서 대중적이지만 부정확하고 영지주의적인 복음서로 불리는 작품들의 전집이 발견되었다. 그것들 중에서 이차적 복음서라 불릴 만한 책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토마의 복음’이다.
< 질문 8 > 신약성서의 외경들 가운데서 어떤 것은 언젠가 참된 성서로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 교회는 어떻게 작품들을 성서로 인정하는가? 그렇게 할 권위가 교회 안에 있는가? 어떤 원칙 위에서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제시하면서 대답하고자 한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그러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지만 성서에 관한 가톨릭적 원칙은 그러한 조치를 금지하곤 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교회에서 공적 독서를 위해 오랫동안 그리고 보편적으로 사용된 책들을 정경으로 인정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러므로 분실되었던 고대의 책, 예를 들어서 바오로의 친필인 어떤 편지가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책이 교회에서 읽히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는 그것이 성경으로 수락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하게 한다. 이는 교회가 이미 수집된 책들 안에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말씀을 인정한 까닭이다. 그렇다면 새로 발견된 책은 교회에서 전혀 사용되지 않았기에 정경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
< 질문 9 > 외경적 복음서들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 최근 발견된 어떠한 외경적 복음서도 예수의 생애에 관해 단 하나의 새로운 전기적. 역사적 사실도 제시하지 않는다. 최근에 발견된 복음서(특히 ‘토마의 복음’)는 정경에 속한 복음서들에 보존된 내용보다 더 초기에 속한 예수 말씀의 내용을 우리에게 제공할 수도 있다. 아주 드물게는, 최근에 발견된 복음서가 정경에 속한 복음서들에는 없는 예수의 진짜 말씀을 제공할지도 모른다. … 외경에 속한 복음서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2세기나 그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했고, 정경에 속한 복음서들이 빈자리로 남겨둔 예수 생애의 세부 사항들을 어떻게 ‘풍부한 상상력으로’ 채워넣었으며, 어떻게 그들이 예수를 그들 자신의 신학의 대변자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 이 외경 복음서들의 가치는 우리가 2세기. 3세기. 4세기의 다양한 그리스도교 집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예수에 대한 혹은 60년대 베드로와 바오로의 죽음 이전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역사적 정보를 주는 데는 실제로 아무런 가치가 없다.
< 질문 10 > 나는 몇몇 외경 복음서들이 가톨릭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 교회 안에서 수세기 동안 필사해서 사용한 2세기 중엽의 작품은 ‘야고보의 최초 복음’이다. 이 복음서는 마리아를 그리스도교적으로 묘사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이 복음서가 가브리엘 천사가 동정 잉태를 예고하기 전 그녀의 배경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복음서를 통해 마리아의 부모 요아킴과 안나의 이름이 알려 졌으며 마리아가 어린 나이에 성전에 봉헌되었다는 이야기도 유래했다. 이 봉헌 이야기가 기점이 되어 가톨릭교회는 마리아의 봉헌축일을 제정했다. 그런데 마리아의 봉헌은 인기 있는 외경 복음서의 가치에 관해 심사숙고할 기회를 제공했다. ‘야고보의 최초 복음’은 마리아가 어렸을 때부터 하느님께 봉헌되고 바쳐졌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성모영보에 관한 사실을 극화해서 묘사했다. 그러한 극적 묘사는 ‘총애를 받은’이라는 그리스어의 과거시제가 암시하는 바에 대한 신학적 토론보다 대중적 차원에서 훨씬 더 감명 깊게 이해될 수 있었을 것이다.
[ 3. 질문 11-14 : 성서를 읽는 방법 ]
< 질문 11 > 당신은 성서를 진지하게 읽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독서법을 권하는가?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통독해야 하는가? 혹은 특정의 성서를 먼저 선택하는 게 좋은가?
- 이러한 질문에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대답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엔 열성적으로 성서를 읽다가 구약성서의 첫 다섯 권에서 족보나 제사에 대한 율법 규정들을 읽으면 궁지에 빠지고 그 후로는 그만 성서에서 손을 떼기도 한다. 성서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기보다는 본질적으로 더 매력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부분을 읽는 것이 낫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사는 성서 전체를 읽어야 하는 중압감에서 허우적거리는 독자들을 돕기 위해 축소된 형태의 성서를 기획해서 제공해 왔다. 나의 견해는 창세기부터 출애굽기(탈출기)의 첫 부분까지, 그 다음에 왕조역사를 직감적으로 이해하면서 판관기, 사무엘기와 열왕기 순으로 읽어 나가는 것이 좋다. 그 다음으로 열왕기 끝 부분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를 거쳐 마케베오기 상권까지 읽음으로써 독자들은 왕조가 몰락했을 때, 그리고 유다인들이 유배지에서 돌아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그 다음 예언서들과 지혜서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대변자들이 말한 이스라엘 종교사상의 한 표본을 제공한다. 시편은 여러 가지 생활 체험에서 연유한 장엄한 기도로서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배경 없어도 이해할 수 있으며 감동을 준다.
- 신약성서의 경우 독자들은 마르코복음과 요한복음에서 시작하여 사도행전으로 넘어가고 초대교회의 정신을 파악하기 위해 몇몇 바오로 서간들(예로 코린토 첫째 서간과 필리피 서간)과 베드로 첫째 서간을 견본으로 읽으면 좋을 것이다. 성서의 덜 어려운 부분들을 빨리 읽어 나가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성서 전체를 읽기 위한 준비를 갖출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이 다양한 기질을 가진 독자들에게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아마 가장 좋은 방법은 성서를 읽고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알아보는 것이다.
< 질문 12 > 보조수단으로서 각주나 해설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 성서 이해를 돕는 방법들은 다양하다. 나의 판단으로는 각주를 구비한 성서를 읽는 것이 낫다. 각주는 모호한 본문 혹은 배경 설명의 필요에서 발생하는 어려운 점들을 해결해 준다. 해설서에는 적어도 네 가지 종류가 있다. * 간단한 ‘소책자’ 형태의 해설서(75-100쪽)들이 있다. 소책자로도 성서 전체에 대한 해설을 충분히 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해설들은 매우 도움이 될 수 있고 사실 대부분의 성서 독서자들에게 적합하다. * 더 진지하게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낱권으로 된 성서보다 큰 해설서(200-300쪽)가 있다. * 아주 진지하게 공부하는 학생을 위해서는 ‘모든 구절을 총 망라한’ 해설서(1,500쪽)가 있다. * 그 다음 성서 전체에 대한 ‘한권의’ 두꺼운 해설서가 있다. 로마 가톨릭 신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제롬 성서 주해’로, 새로 출판한 ‘새 제롬 성서 주해’가 있다. 가장 좋은 시작은 소책자의 해설서가 제공하는 도움을 받는 것이다.
< 질문 13 > 그러나 각주나 해설서에서는 성서에 관한 견해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성서를 이해하려면 학자들에게 의존해야 하는가?
- 성서에는 전문가의 도움 없이 이해할 수 있고 영적인 자양분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하느님은 학자의 허락 없이 독자에게 말씀하실 수 있다. 고등교육을 받은 독자들은 성서에 접근할 때 이따금 그들이 받은 과학 교육으로 인해 창세기를 배우면서 세상이 참으로 6일 안에 창조되었는지, 혹은 오랜 진화과정이 없었었지 질문을 하기도 한다. … 독자가 받은 일반적 교육 때문에 성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영적 자양분을 찾기 위해서는 학자들의 도움이 필요 없다. 그러나 일반 대중의 차원에서도 교양 있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학자들의 도움이 필요할지 모른다.
< 질문 14 > 나는 학자들이 제공한 어떤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적 해설에 의존한다는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 인간적 중개자들이 필요한가?
- 성서에 있는 모든 말은 인간이 기록한 것이어서 성서를 이해하기 위한 인간적 시도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도움이 된다. 유다-그리스도교적 사고방식에 의하면 하느님은 인간적 중개자들을 통해서 활동하신다. … 오래된 견해들이 안전하고 현대의 견해들은 쉽사리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성서에 대한 옛 해설들은 지난 몇 세기에 걸친 학자들의 의견이며, 현대의 견해들은 금세기 학자들의 견해로서, 어느 쪽도 특권적이거나 불변하는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독자는 오로지 가장 좋은 학자들의 지식을 찾아내는 데 책임이 있을 뿐이다. 21세기나 22세기에 더 나은 견해가 있으면, 미래의 독자들은 그것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 우리 선조들은 그 당시 이용할 수 있는 정보에 최선을 다했으므로 모든 책임을 완수한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한다면 죄책감없이 하느님의 옥좌 앞에 설 수 있다.
[ 4. 질문 15-17 : 교회의 지도 ]
< 질문 15 > 이것(질문14의 답)은 성서를 사적으로 해설한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나는 가톨릭 신자들이 사적 해설에 의존해서는 안 되고 그들에게 성서가 무엇을 뜻하는지 말해 준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고 생각했다.
- 로마 가톨릭 교회는 오랜 시대를 통해 입증된 전통적 신앙의 가치를 강조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교회를 계속 인도하고, 교회가 교리적. 윤리적으로 자기 백성에게 잘못된 요구를 하지 않도록 이끄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가톨릭교회가 불신하는 사적 해설의 유형은 교의나 교회의 공식적 선언을 부인하는 성서 해설에 근거한 교리적 진술을 포함한다. 다른 한편으로 가톨리교회는 대부분의 현대 해설서들이 취급한 분야에 대해서 공적인 성서 해설을 발표하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해설자는 성서의 원저자가 한 구절에서 전하고자 했던 것과 원저자 당대 사람들이 그것을 읽고 이해한 것을 구별하려고 애쓸뿐 오늘날의 독자들을 구속하는 교리적 입장의 확립을 꾀하지는 않는다. … 교회가 성서의 어떤 부분에 대해 해설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질문 16 > 당신은 성서에 근거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성서 본문에 대한 당신의 해설 사이에 충돌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 없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교회의 교리를 구성하는 것에 대해 아주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교회는 교리가 관련된 경우에도 이따금 학문의 도움을 받아서만 교리적인 것과 교리를 표현하는 편리한 방법을 분리해 왔다. 예를 들어서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교회의 교리이다. 그것을 선포한 사람들은 정확하게 창세기 첫 장에서 서술된 바와 같이 하느님이 창조하셨음을 수세기 동안 교리의 일부로 이해했다. 가톨릭교회는 이제 창세기에 관한 현대 학문의 영향을 받아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방법이 창조교리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그러므로 창세기 첫 장이 창조의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진화(進化)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유이다. 셋째, 한 세기의 학자들에게는 분명했던 것이 이따금 그 다음 세기의 학자들에게는 잘못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학식이 마치 오류가 없는 것처럼 자신하지는 않는다. 학자가 대답하는 질문들이 한정되어 있고, 가톨릭교회가 교리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을 사려 깊게 절제하기 때문에, 내가 성서의 자의(字意/글자 뜻)라고 밝힌 것과 가톨릭교회가 성서에 근거한 교리로 가르치는 것 사이에 충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상상할 수 없다. … 다시 말해 자체 연구의 한계점을 존중하는 성서학과 참된 교리가 충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질문 17 > 나는 성서학자들과 교회의 공적 교사들 사이에는 많은 충돌이 있어왔다고 생각했다.
- 20세기 초에는 충돌이 있었다. 그러나 1940년대 교황 비오 12세와 1960년대 초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부터 성서학자들과 공적 교사들 사이에 주목할 만한 일치가 있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수년 동안 존재했던 충돌에 대해서는 포카티의 작품인 ‘아메리칸 가톨릭 성서학’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을 바꾸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교황 비오 12세가 현대 성서학계에 제공한 적극적 지원이었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은 1960년대부터 교황과 교황청 성서위원회와 같은 로마 성성(聖省)들을 검열관과 같은 반대자가 아닌 친구로 여기게 되었다. 지난 25년 동안 양 방향에서 지지가 있었고 성서학자들과 교회의 공적 교사들 사이에는 적대의식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미국 가톨릭교회의 주교들로부터 받은 지원과 교황이나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임명받은 여러 직책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교회가 현대 성서 비평학에 대한 양성을 적절하게 받은 가톨릭 학자들을 복음 선포라는 더 위대한 사업에 긍정적 기여를 하는 집단으로 중요하게 여긴다는 표시라고 하겠다.
[ 5. 질문 18-22 : 성서를 왜 읽는가? ]
< 질문 18 > 당신은 성서를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
- 나는 성서를 읽는 가장 중요하고 실질적이며 개인적인 이유를 제시하고 싶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앞에 다가온 상황 안에서 하느님이 나의 삶을 지도해 주시기를 바란다. 나는 사제로서 교회를 위한 하느님의 지도에 관심을 갖고 있다. 성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그분 백성의 광범위한 체험을 제공한다. 이 다양한 상황가운데서 나는 불가피하게 나 자신의 상황이나 교회의 상황과 유사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영성 서적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접촉하는 특정한 영혼을 만나게 된다. 성서에는 많은 상황에서 인간이 개인적으로 또 집단적으로 하느님과 접촉한 거의 2천 년에 걸친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성서를 읽는 대단한 희열중의 하나는, 또 그러한 희열을 ‘발견하는’ 백성에게 가장 매력적인 것은 성서적 상황이 우리 자신의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지난날 인간의 응답을 기대하면서 요구하신 것을 오늘날도 여전히 요구하신다는 것이다.
< 질문 19 > 성서를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치 않다. ‘하느님의 말씀’이 각 백성에게 다른 뜻을 가진다는 내 생각이 틀렸는가?
- 나는 당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용어 사용에 모호한 점이 있다. 이 표현은 이 활동의 주체가 하느님께 연유하거나 독특한 방법으로 하느님께 관련된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많은 방법으로 교회를 통해, 공적 가르침을 통해, 가정을 통해 지도하신다. 그리고 물론 하느님은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유다교와 다른 종교들 안에서도 결코 침묵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성서에 대한 유다-그리스도교적 전통에서는 하느님이 보존된 기록의 형태로 유일한 지도를 해오셨다. 이 형태는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초대 그리스도교를 상대로 하신 활동들에 대한 기록이다. 성서는 차세대의 하느님 백성이 안내서로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 체험을 보존하는 ‘이스라엘과 초대교회의 도서관’이다.
- ‘말씀’의 표현에서 우리는 성서에 인간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사람들은 말을 하고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성서의 모든 말은 인간이 기록한 것이다. 인간은 성서적 말을 생각했고, 이 말들은 인간인 저자가 일생동안 터득한 의미와 체험을 반영한다. 넓은 뜻으로 말하자면 이렇게 하느님이 인간의 말로, 이 말을 통해 당신의 지도를 전달하셨다는 일종의 육화적 측면이 성서에 존재한다. 자구(字句)에 구애받는 접근방법은 말씀자체가 하느님의 입에서 나왔고 단순히 인간의 손을 빌렸을 뿐이라고 말할 만큼 그분께서 받아쓰게 하셨다는 것을 가정한다. 더욱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하느님이 인간의 마음속에 기록할 내용을 불러주신다는 것이다. 사람이 글을 쓰고 어휘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성서가 참으로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결합임을 더 많이 인정할 수 있다. 자구적 접근방법은 성서에는 오류가 전혀 없으며 과학적이고 역사적 지식을 망라한 총체적인 지식을 전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성서의 모든 진술은 글자 그대로 참되고 완전해야 한다. (질문 20-24, 26-27, 64 참조)
< 질문 20 > 당신이 성서를 도서관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무슨 뜻인가?
- 성서는 약 70권의 책을 수집한 것이다. 내가 ‘도서관’이라고 말한 것은 책의 수에 관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성서가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씌어진 상이한 문학유형의 책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 구약성서들은 그리스도 이전 800년 혹은 700년 동안 형태를 갖추었다고 본다. 이 책들 안에 보존된 일부 전통은 그보다 수백년 앞서 씌어지기도 했다. 마지막 신약성서는 2세기 초에 씌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성서는 1000년에 걸쳐 기록된 책이다. 성서 저자들은 이 기간 동안 다른 문제에 직면하였을 것이고 하느님의 계시를 보고하는 방법을 좌우해 온 신학적 인식의 상이한 단계들을 기록하려 했을 것이다. 성서 저자가 문제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는 자기가 본 문제의 일부를 동시대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구체화시켰다.
< 질문 21 > 성서를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 책들의 수집으로 간주할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 우리는 성서 저자들이 같은 주제에 대해 다르게 응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성서를 하나의 도서관으로 여기는 것은 독자들이 특정 저자의 책을 펼치면서 기대하는 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대 도서관에는 책들이 주제별로 서가에 꽂혀 있다. 즉 역사. 전기. 소설. 연기. 시 등의 부문이 있다. 누가 도서관으로 들어와서 어떤 책을 청하면 사서가 하는 첫 질문은 “어떤 종류의 책을 찾으십니까”이다. 이는 우리가 성서를 읽는 경우에도 해당된다. 성서 해설의 가장 심각한 잘못된 하나는 성서의 모든 책이 역사라고 하는 터무니없는 가정에서 나왔다. 오늘 날 책은 표지를 통해 책의 유형을 말해주며, 독자들은 그 정보에 비추어 자동적으로 자기가 무엇을 선별(기대)해야 할지를 정한다. 성서는 각 권마다 표지가 있는 책이 아니다. 학자들의 중요한 과업중 하나는 각 성서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입문을 제시하는 것이다. 요나서의 경우는 하나의 비유이지 역사가 아님을 설명해 주는 입문은 많은 혼란에서 우리를 구해 준다.
< 질문 22 > 우리는 더 이상 성서의 영감을 믿지 않는가?
- 나는 확실히 믿는다. 사람들은 이따금 어떤 글이 영감에 의해 쓰였다고 하면 곧 그 글이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영감을 받은 시. 연극. 전설. 꾸민 이야기 등이 있다. 요나서가 비유이지 역사가 아니라면, 하느님의 영감은 그것을 영감을 받은 비유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요나서는 모든 민족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이름을 인정하게 하고 그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도덕적 생활양식으로 회개시키려는 하느님의 뜻을 우리에게 전하는데, 이 진리는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영감은 큰 물고기가 요나라는 역사적 인물을 삼켰고 우리가 그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만약 요나서가 영감을 받은 역사였다면 우리는 그것의 사실성을 다루었어야 할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창세기의 첫 장들이 과학으로 분류되지 않고 종교적 민담과 전설로 분류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하느님의 세상 창조야말로 영감을 받은 진리라고 받아들인다. 창세기 이야기를 세상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설명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창세기는 저자가 자기 백성과 다른 백성들에게서 전설적이고 상상적 이야기에서 배웠고, 하느님이 만물위에 군림하시고 우주의 창조주이심을 전하기 위해 사용한 이야기였을 수 있다.
[ 6. 질문 23-27 : 성서는 글자 그대로 사실인가? ]
< 질문 23 > 성서에서 말한 바들이 글자 그대로 모두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은 확실히 걸림돌이다.
- 나는 사람들이 중등교육을 통해 성서의 어떤 부분은 글자 그대로의 사실이 아님을 이미 깨달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교회 안에서 발설될 때 사람들이 걸려 넘어진다면 그것은 발설되는 방법에 달려 있는 것 같다. … 확실에 찬 진술은 성서학자가 입증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또한 절대적 부정의 증거를 제시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순전히 학문적 근거를 토대로 해서 주장해서는 안 된다. 부정적이고 단편적인 지식이 영적으로 청중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떤 때 교회가 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대한 지식에서 성장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다. … 이따금 사람들은 걸려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비역사적 설화를 역사로 취급하여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우리는 인간적 인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하느님의 진리를 섬겨야 한다. 요나서를 마치 역사인 것처럼, 창세기의 첫 장들을 과학인 것처럼 취급할 때 그것을 듣는 사람은 머지않아 그러한 제안이 거짓임을 깨닫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 안에 담긴 신적 진리를 거부할지도 모른다. 성서의 글귀를 다루는데 있어서 청중이 이해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없다. 교사나 강론가가 취해야 할 태도는 이 모든 것이 글자 그대로 일어났다는 하는 단언과 그것이 다만 하나의 이야기라고 제안하는 것 사이의 중간노선을 걷는 것이다. 예수 탄생 때의 별 이야기는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진리를 전달해 주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 질문 24 > 우리가 성서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나는 세상이 6일만에 창조된 것이 아니며 생명은 진화에 의하여 발전된다는 것을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어떠한가? 우리 주임신부님은 그들을 실존 인물로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 우리는 첫 여자가 첫 남자로부터 형성되었고 모든 인간은 이 첫 쌍의 자손이라는 뜻으로 인류의 기원(起源)은 단일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배웠다. 당신의 주임신부가 1955년 이전에 교육받은 사목자라면 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1955년에 로마 교황청 성서위원회의 비서는 이전에 제시한 응답에 대해 가톨릭신자는 ‘완전한 자유’를 누린다고 선언했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자구적(字句的) 뜻을 이해하는 자유는 점점 증가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상황은 1950년 교황 비오 12세가 발표한 회칙 ‘인간의 기원’에 의해 더욱 복잡해졌다. 그는 다원(多源) 발생론, 즉 한 쌍 이상으로 많았다는 이론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의견이 원죄에 관한 가르침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는 결코 분명하지 않다고 했다. 1950년대에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다원주의를 지지했던 반면, 발생학적 발견들은 이제 모든 인류가 한 쌍의 부모로부터 유래한다는 사실을 지지하는 듯하다.
- 아담과 하와 이야기의 진정한 종교적 초점은 부모가 한 쌍이었든 여러 쌍이었든 간에 하느님이 그들 안에 살아 있는 영혼을 불어넣으셨다는 의미에서 그들이 모두 하느님의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우리가 악하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선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 안에는 각자가 범할 수 있는 개인적 죄를 능가하는 기본적 죄의 경향이 있는데 악을 향한 이 기본적 경향은 하느님이 부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 세상에 끌어들인 부패에 속한다. 이렇게 우리는 ‘원죄’라는 개념의 핵심을 보존할 수 있었다. 아담과 하와 이야기의 역사성을 주장할 목적으로 당신 사목자가 한 ‘실존 인물’이라는 진술과, ‘아담과 하와는 없었다’라는 파괴적이고 부정확한 진술 사이에 중간노선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 질문 25 > 아담과 하와 이야기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든 혹은 비유적으로 받아들이든 그것은 여자들의 인격을 손상시키는 이야기가 아닌가?
- 창세기의 이야기를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여자들을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창세기(2, 21)에 기술된 남자의 갈비뼈에서 여자가 창조되었다는 이야기는 여자를 남자로부터 유래된 부차적 인물로 혹은 남자보다 더 못한 인물로 보여주기 위한 표현이 아니다. 사실 창세기(2,23)에서 아담이 여자를 보았을 때 즉각적으로 보인 반응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다.”라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그것은 여자가 동물이나 남자보다 열등한 피조물이 아니라 정확하게 자기와 똑같은 그 누구라는 말이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요점은 여자가 남자보다 더 낮은 위치, 다시 말해 단순히 그의 소지품이라는 처지에 놓인다는 것에 반대된다. 하느님이 인류를 일으키셨을 때 당신의 모상으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는 창세기의 진술(창세 1, 27)은 하느님 앞에서 두 성이 보완적 방법으로 하느님을 반영하면서 서로 동등함을 선언한 것이다.
< 질문 26 >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에 빠져들지 말자. 누가 그 이야기를 상징적으로나 비유적으로 취급한다면, 우리는 어디서 멈추어야 하는가? 아브라함 혹은 모세 혹은 다윗 혹은 예레미아가 실제로 있었는가? 당신은 성서의 이야기를 글자 그대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남으로써 골치 아픈 문제를 건드린 것처럼 보인다.
- 성서를 자구 위주로 접근하는 방법이 더 간단하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인생에는 복잡한 사정들이 있고, 전적으로 간단한 대답은 이따금 소용이 없다. …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들은 일반적인 역사적 배경을 가진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과 이스마엘(아랍인등) 두 민족의 아버지로 제시되고 그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은유적인 특성을 지닌다. 모세의 이야기는 개인의 성취와 한 민족의 역사가 혼합된 민족적 서사시의 일부이다. 다윗 이야기의 부분들은 아마 그 시기의 역사를 살면서 상당히 사실적으로 기록한 궁정 전기작가로부터 유래한 것 같다. 이 세 가지 모두에 역사가 있지만, 역사성과 세밀함의 정도는 다양하다. 미국 역사나 영국 역사나 다른 어떤 역사와 관련해서도 골치 아픈 문제가 있다. 이와 유사하게 하느님이 다른 민족들의 역사에 적용시키신 흥망성쇠를 이스라엘 역사라고 해서 면해 주시지는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곤혹스로움을 참아내야 한다.
< 질문 27 > 고고학적 발견들은 어떠한가? 그것들은 성서가 지닌 대부분의 역사성을 증명하지 않는가?
- 고고학은 성서에 대해 잡다한 모습을 제시한다. 확실히 고고학적 발견들은 성서적 관습, 사회생활, 물리적 환경에 관해 많은 빛을 던져 주었다. 우리는 성서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이 살았던 도시와 집들이 어떠했는지 볼 수 있다. 신약성서 시대에 대해서도 고고학적 발견들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매장과 같은 관습들, 아마도 예수께서 걸으셨을 예루살렘 거리에 대해 빛을 던져주었다. 그렇지만 고고학적 발견들은 성서적 사건의 정확한 역사성을 일관되게 입증하지는 못했다. … 예를 들어서 예리고의 첫 발굴에서 처참하게 파괴된 성벽이 발견되자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여호수아의 성벽 파괴에 관한 성서의 기록을 입증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의 연대 추측 기술은 여호수아 시대보다 훨씬 더 앞서 그 성벽이 파괴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예리고는 여호수아 시대에 점령되지도 않았음을 일러주는 듯하다. 이스라엘 백성의 팔레스티나 침공에 관해 성서에 언급된 장소들도 예리고의 경우와 같이 그 시기가 맞지 않았다. 고고학이 성서의 진실성을 증명한다는 생각은 부정확하고 오해하기 쉽다. 성서 비평학에서는 발굴자들이 입증하고 싶어 하는 몇몇 이야기들이 아마 처음에는 단순한 역사가 아니었다해도 놀라 일이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그것은 자세한 이야기가 고고학적으로 확증되지 않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 7. 질문 28-30 : 성서 비평 ]
< 질문 28 > 당신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성서 비평학’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그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 어떤 점에서 그것은 불행한 용어이다. 보통 영어에서 ‘비평학’은 부정적 판단을 포함하지만 여기서는 분명히 성서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뜻하지 않으며, 한 작품을 주의 깊게 읽고 분석하는 것을 포함한다. 성서의 경우 여러 가지 양식의 비평이 있다. 그 중 한 양식은 성서를 문학으로 간주하여 성서 저자들이 자신의 집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한 여러 가지 기법들을 고려하는 것이다. 그들은 훌륭한 저자들인가? 사용한 기법들은 효과적인가? 비유에 등장한 인물들은 그럴듯한가?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양식의 성서 비평은 정경 비평이다. 성서의 개별적 작품들이 기원전 6세기에 쓴 것이 그 전과 그 후에 씌어진 다른 작품들과 어떻게 관련되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선포하는 신약의 작품들과 어떻게 관련되는가? … 어떤 학자가 성서 비평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역사비평이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지식, 그가 기록했을 때의 상황,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독자들이나 청중들에 관한 지식을 포함한다. 역사 비평은 그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질문 뒤에는 하느님이 성서에 영감을 불어넣으셨다는 것이 인간 저자의 관점과 상황을 부적절한 것이 되지 않는다는 굳은 확신을 갖게 된다.
< 질문 29 > 성서학자들이 ‘비평적’ 방법을 사용하는데도, 나에게는 성서에 퍽 어려운 책과 글들이 있는 것같이 보인다. 당신은 가장 어려운 성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독자의 관점에서 답하고자 한다. 나는 신약성서에서 독자에게 가장 어려운 책은 요한 묵시록(계시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자의 관점이라면 이 책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학자들은 이와 같은 유형의 다른 책 ‘유다적 묵시 문학책’을 읽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묵시록의 표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러한 문학유형에 친숙한 유다인들이 그것이 씌어졌을 당시 이해한 대로 읽으려고 노력한다. … 오늘날의 독자들은 요한 묵시록과 같은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숫자적 도식이나 임박한 세말에 대한 예언들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막대한 혼돈을 일으킨다. 그러한 관점에서 나는 묵시록이 가장 어려운 책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탁월한 성서학자 ‘보터’ 신부가 ‘계시’라는 제목으로 출판한 소책자는 짧은 기간 안에 묵시록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 질문 30 > 그렇다면 묵시록 혹은 계시록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 우리는 묵시록의 저자가 앞날에 관한 지식을 가졌다거나 하느님께로부터 그것을 받았다고 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지구가 얼마나 오랫동안 존속할 것인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러야 하는지, 세말이 언제 올 것인지에 대한 모든 상상들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묵시록을 손에 들고 일어나서 이제 숫자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마지막 시간이 가까이 왔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에 따라서 이러한 상상들은 2천 년 동안 사람들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해석들은 틀렸다. 세상은 아직 여기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묵시록의 근본 메시지는 박해시대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이다. 저자는 거대한 짐승, 용, 홍수, 불 등과 같은 상징적 언어를 사용하면서 자기 시대를 악마가 일으킨 심한 환난과 고통의 시대로 표현한다. 이러한 와중에서 그는 하느님이 모든 것을 관장하신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확신시키고자 한다. 묵시록의 저자는 박해받고 고통 받고 있는 집단에게 하느님이 이 모든 것을 끝내고 승리하실 것이기 때문에 실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 더 심오한 묵시록의 메지지에는 전쟁, 박해, 재난을 통해 이 지상에서 가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전체적 실재의 희미하고 하찮은 부분이라는 확신이 있다. 천상에서 무수한 천사들과 성인들이 하느님을 찬양하고 하느님이 초자연적 악의 세력을 이기신다는 두 관점에서 천상에서 진행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어떤 묵시문학의 저자는 천상적인 것을 동시에 지상적인 것으로 보며 독자들에게 우주의 실재를 넘어서는 보다 광범위한 실재에 대해 의식하게 된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천상적인 것에 참여하고, 감각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에만 전적인 관심을 두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비적인 것, 저 세상에 속한 것, 천상적인 것은 모두 그리스도교적 믿음과 이해를 더욱 폭 넓게 묘사하도록 해주는 묵시문학적인 선물이다. 근본주의자들이 묵시록과 같은 작품에서 우선적으로 현재 특정 지역의 역사 읽기에 대한 열쇠를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졸렬한 억지라고 생각한다.
[ 8. 질문 31-33 : 성서적 근본주의와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 ]
< 질문 31 > 묵시록에 관한 대답에서 당신은 근본주의자들이라는 용어를 썼다. 나는 성서에 관심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 사귀면서 근본주의가 많은 사람들에게 확대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것에 관심이 간다. 그러나 나는 근본주의자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에도 그것을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 근본주의와의 접촉이 많은 사람들에게 확대되어 가고 있고, 이는 특별히 로마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하나의 새로운 문제이다. 근본주의라는 용어의 기원은 20세기가 시작할 때인 1910년 직후에 나왔다. 그 당시 성서 비평(대부분 역사 비평)의 영향 아래 성서의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신앙이 많이 상실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명의 부유한 남부 캘리포니아인이 그리스도교의 ‘원리들’ 인 동정잉태, 예수의 기적, 부활, 그리스도의 천주성, 지옥, 창조의 반다윈주의와 같은 교리들을 옹호하기 위해 일련의 소책자들을 발간했다. 그들은 성서의 모든 부분이 글자 그대로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관점을 포기하는 것은 근본적 교리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근본주의자들이 어떤 교리를 강조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으나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내 판단에는 성서를 글자 그대로 읽는 것은 지적 차원에서 변화될 수 없으며 근본적 그리스도교 교리를 방어하는데도 불필요한 것이다. 근본주의자적 성서 독서를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에게 유익하고 간단한 소책자는 ‘성서 이해(Understanding the Bible/1989년 발행)가 있다. * 참고<메모자 추가> : (일부 개신교의) 성서근본주의자란 근본 교리를 왜곡,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해석하면서 근본교리를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교리의 목적은 보지 못하고 단지 교리를 위한 교리에 집착한다.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격이다. *
< 질문 32 > 그런데 왜 지금 근본주의자들이 더욱 더 문제가 되고 있는가? 내가 알기로는 우리가 전에는 이런 사람들을 다루어야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 성서를 방어적 자세로 또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으로 이해한 현대 근본주의는 대부분 미국적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현대 근본주의가 자양분을 얻고 있는 주된 지역은 미국 남부의 일부이다. 1960년대 이후 발생한 미국 남부의 동서로 뻗은 온난한 지역으로의 대대적 이주물결과 함께 가톨릭 신자들은 대규모로 남부, 남서부와 서부 해안으로 이주했다. 거기서 그들은 근본주의자들을 만났다. 남부에는 1천여 개의 라디오와 70여 개의 TV방송국이 성서 근본자들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은 개신교에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그 지역에서 근본주의자들이 성서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가톨릭신자들은 1960년대에 이르러 근본주의자적 보도기관을 통해 자구에 구애받는 성서 해설일지라도 그것에 관심이 이 쏠렸다. 그들은 ‘내가 왜 전에는 이것을 듣지 못했는가?’ 하고 자문했는데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씨름해야 할 정직한 질문이다’ 그들과 어울려 살아가던 가톨릭신자들은 이웃과 함께 성서학교에 가거나 가정에서 성서를 읽는 것에 마음이 끌렸고 그들과 이웃이 되기를 원했다. 이러한 근본주의의 영향이 대량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을 방법은 거의 없었다. 또 많은 사람들을 근본주의자 집단에 잃어버린 개신교 교회의 주류도 그러했다.
< 질문 33 > 어떻게 당신은 성서적 근본주의자에 대처할 것인가?
- 그것은 커다란 과제로,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제안을 대충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1) 근본주의자들과 성서 본문에 대해 논쟁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2) 근본주의자들을 무식한 자들로 여겨 공격하지 말라. 때때로 성서를 직역해야 한다는 주장은 극히 지적인 사람조차 덫에 거리면 취하는 자기 방어의 태도이다. 그들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보존하고자하며, 성서를 직역해야 한다는 주장이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들은 당신의 공격을 신앙에 대한 공격으로 이해할 것이다.
3) 확신을 가진 근본주의자를 만났을 때 그를 갑자기 전향시키려고 시도하지 말라. 당신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목표는 근본주의자들을 꺾는 것이 아니라 아직 근본주의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에게 풍부한 신앙과 성서에 대한 지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다.
4) 성서를 보도기관, 교회, 성서학교 등에서 지적으로 그리고 비직역주의적 방법으로 제시해야 한다.
5) 가톨릭 사제는 부족하며, 또한 유능한 성서해설자도 아니다. 평신도들 가운데 성서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성서 해설이라는 봉사를 위해 그들을 선발해야 한다. 그리고 가톨릭신자들 가운데 성서 공부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우리의 힘을 동원해야 한다.
6) 성서 근본주의는 로마 가톨릭 신자들에게만 위험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주류를 이루는 개신교 교회와 가톨릭교회 신자들이 성서를 지적으로 제시하기 위한 공동노력에 참여해야 한다.
7) 근본주의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들이 근본주의 안에 있다. 근본주의자들은 강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근본주의적 교회나 집단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본다. 주일에 수천 명이 모이는 대단위의 로마 가톨릭 본당에서는 그러한 공동체 의식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적어도 기능적 측면에서 이러한 본당들을 작은 집단으로 나누면 좋을 것이다.
8) 근본주의자들은 종종 예수께 대한 생생한 사랑을 선포한다. 예수께 대한 사랑은 그리스도교 안에서 굉장한 매력이다. 주류를 이루는 교회들이 예수께 대한 사랑을 개인적으로 가질 수 있다는 동등의식을 가지고서 그것을 선포하도록 한다. … 가톨릭 신앙의 표현과 근본주의에 대해 이 책 끝에 제시된 부록(성서 근본주의자들이 가톨릭 신앙을 오해하지 않도록 표현하기)을 보기 바란다.
[ 9. 질문 34-37 : 신약성서는 글자 그대로 사실인가? ]
< 질문 34 > 지금까지 당신은 구약성서를 자주 참조하면서 성서 전반에 대해 응답했다. 신약성서는 다르지 않은가? 신약성서는 사건들이 일어난 이후 수백 년이 지나서 쓴 것이 아니라 거의 동시대에 씌어졌다. 우리는 그것의 역사성을 신뢰할 수 있다.
- 구약성서처럼 신약성서도 하나의 도서관, 즉 초대교회의 도서관이다. 신약성서 27권 모두가 역사적 사실일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으나, 신약성서 전체가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묵시록의 상징적 광경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신약성서의 많은 작품들은 서간이나 편지들이다. 역사성의 척도를 이 작품들에 적용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신약성서의 편지에 대한 평가는 그것의 역사성보다는 메시지 성격에 훨씬 더 많이 관련되어 있다. 베드로, 야고버, 유다에 기인하는 다른 신약성서의 편지들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사람들은 구약성서의 역사성에 대한 모든 예리한 문제들을 신약성서에 대해서는 가지지 않는 것 같으나 신약성서에도 문제가 있다.
< 질문 35 > 영감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바오로가 쓴 편지들의 친저성(親著性)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가? 신약성서는 바오로가 그것들을 썼다고 말한다.
- 신약성서를 보면 히브리서(서간)는 성 바오로가 썼다는 지적이 없다. 또 그뿐 아니라 원문에는 ‘히브리인들에게’라는 언급이 없다. 이 편지가 히브리인들에게 씌어진 것이라는 확인은 2세기에 나오고(본문 자체에는 나오지 않음), 바오로를 저자로 밝힌 것은 더 늦게 나오며, 그것도 한 동안은 교회의 일부에서만 통용되었다. 로마 교회는 히브리서를 바오로의 편지로 받아들이는 것을 가장 꺼렸다. 이와 비슷하게 요한 세 편지도 그러하다. 이 편지들의 본문에는 요한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 이것 또한 2세기부터 유래된 하나의 추측이다. … 신약성서의 작품들 중에서 13권은 본문에서 바오로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 편지들이다. 학자들은 이중에서 테살로니카 전서, 갈라티아서, 코린토 전서와 후서, 필리피서, 필레몬서, 로마서 이 7권은 바오로의 친서로 여긴다. 비판적 학자들 중에는 일부 작품들을 바오로가 직접 쓰지 않았다고도 한다. 한 서간이 바오로나 베드로의 이름을 가지면, 영감은 이들이 그것을 썼다고 모두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이것은 모세가 오경을 섰다고 하는 사실이 모세가 그것을 썼다는 것을 보장해 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 작품의 저작(著作)이 어떤 위대한 권위에 기인하다고 여기는 관례가 있다. 모세는 율법을 받은 사람으로 기억되었다. 그러므로 법적 자료의 저자는 모세로 추정되었다. 솔로몬은 현자로 기억되었고 그 결과 지혜 자료는 솔로몬의 저작으로 여겨졌다. 다윗은 시를 노래한 사람으로 기억되었고 그 결과 시편 중 떤 것은 명백히 다윗의 작품이 아님에도 다윗이 전 시편의 저자로 간주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바오로가 죽은 후 그의 전통을 따르는 제자들이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서 바오로의 정신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자 했다.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유로운 마음으로 바오로의 이름을 썼다. 저술은 인간의 활동이고, 신적 영감은 그 활동의 관례를 존중한다.
< 질문 36 > 당신의 대답은 특정의 편지를 쓴 사람이 바오로 자신이든 그의 제자이든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나는 질문을 다음과 같이 바꾸고 싶다. 왜 학자들은 바오로의 친서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는가?
- 나는 바오로가 직접 어떤 편지를 썼는지 안 썼는지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편지의 저자를 결정하는 것은 초대교회의 발전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바오로가 생전에 사목서간을 썼다면 그것은 교회구조에 주의를 집중한 것이며, 누가 장로 또는 주교가 되어야 하며, 가르침이 어떻게 통제되어야 하는지가 이미 60년대 초의 한 요인이었음을 뜻한다. 바오로가 사목서간을 쓰지 않았다는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가 옳다면, 바오로가 한 대표자였던 사도 세대들이 죽은 후 누가 그리스도 교회를 사목하고 가르칠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대두된다. 바오로가 생전에 콜로새나 에페소 서간을 썼다면, 그의 신학은 현저하게 변했을 것이다. 즉 교회에 대한 그의 신학이 그때까지 강조되어 온 그리스도 신학을 거의 대체하면서 크게 부각되었을 것이다. 위 두 편지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바치신 당신 몸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것이다. 바오로는 자기 친서에서 그리스도인에게 그들 모두가 그리스도 몸의 구성원임을 강조하지만, 콜로새서와 에페소서처럼 거의 그리스도의 활동목적인 교회에 대한 공동체적 견해를 강조하지 않았다.
< 질문 37 > 바오로가 쓴 편지가 아니라면, 비록 그것이 영감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편지의 권위는 작아지는 것이 아닌가?
-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이 편지들을 정경으로 받아들이면서 그것들과 그 권위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나는 저자가 누구인지 의심스럽다고 해서 정경에 속한 작품들이나 그 중요성을 간단히 기각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서 다른 유형의 근본주의를 본다. 교회가 자기 생활의 근본적 규범으로서 성서에 투신하는 것은 초대교회에서 어느 저자가 어떤 작품을 썼는가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주제이다. 누군가가 신약성서는 사도들에 의해 씌어졌다고 주장한다면, 대부분의 신약성서는 권위를 잃을 것이다. 사목서간의 저자는 바오로가 그의 생애 중에 직면하지 않았던 상황을 다루고 있다. 그가 바오로의 이름으로 그 상황에 대해 제시한 대답은 현대인들이 바오로가 생각했을 것이라고 상상해서 재구성한 것들보다 훨씬 더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 10. 질문 38-44 : 복음서 ]
< 질문 38 > 신약성서의 역사성에 대해 질문했을 때 당신은 주로 바오로의 편지들과 그 저자에 관해 응답했다. 복음서는 어떤가? 예수께 대한 복음서의 묘사는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가?
- 복음서가 예수의 일대기가 아니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실이다. 보통 전기(傳記)작가는 한 개인의 전생애를 기록하려는 일차적 의도를 지니고 어떤 인물에 관해 모든 것을 기록한다. 복음서중 마르코와 요한 복음은 예수의 기원, 출생, 예수의 초기 생활에 관해 우리에게 전해주는 바가 없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의 법적 아버지의 이름(요셉)을 언급하지 않았고, 요한 복음사가는 어머니의 이름(마리아)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한 것들은 복음사가들이 예수의 일대기를 썼다면 포함되어야 할 상당수의 자료가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예증한다. 나는 루카에 의한 복음서는 다른 복음서보다는 전기의 모습에 더 가깝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루카복음은 치밀하지는 않지만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역사를 나열하는 사도행전과 연결되고, 예수의 잉태, 탄생과 유년기에 대한 역사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복음서에도 예수의 일생에 대한 완전하고 객관적인 기록은 제시하지 않지만, 모든 복음서는 그분 삶의 생활들, 그분의 말씀과 행위들에 관한 어떤 역사적 자료를 제공한다.
< 질문 39 > 나는 학교에서 피정을 할 때 예수의 생애를 읽으면서 자랐다. 또 당신도 예수께서 실제적 삶을 사신다고 언급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약성서의 역사성에 대해 질문했을 때 당신은 주로 바오로의 편지들과 그 저자에 관해 응답했다. 복음서는 어떤가? 예수께 대한 복음서의 묘사는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가?
- 복음서에 대한 접근방법이 변화한 것은 현대 성서 비평학의 결과이다. 또 저명한 개신교 학자들은 이미 지난 세기에 비평학을 복음서와 관련지어 사용하고 있다. (비평이란 말의 뜻은 질문 28의 대답 참조) 로마 가톨릭 신자들은 최근 신약성서와 복음서에 대한 현대의 비평적 접근방법을 받아들였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오랜 망설임 끝에 새로운 접근방법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이상 교회의 공식적 선언과 함께 이 태도를 계속 보존한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전과 공의회가 개최되는 동안에, 복음서와 그 역사성에 대해 공식적 가톨릭 공동체들 안에서 활발하고 신랄하기까지 한 논쟁이 있었다. 이것은 교황청 성서위원회가 ‘복음서의 역사적 진리’에 관한 문서를 발표했던 1964년까지 절정에 다다랐다. 위의 문서에 기여한 학자들은 개신교 동료들과 가톨릭 동료들을 불러 중도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복음서의 발전상을 제시했는데, 이 발전상은 복음서가 예수의 직무를 글자 그대로 기록한 것이거나 자료를 기억하도록 단순히 보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인도한 것이다.
< 질문 40 > 더 명확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복음서가 예수의 직무를 글자 그대로 기록한 것이거나 일대기가 아니라면 그것들은 무엇인가? 우리는 복음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 복음서들을 생기게 한 예수의 전통이 세 단계를 거쳐 발전했음을 제대로 설명한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단계는 예수의 공생활에서 시작했다. 이 단계는 그분이 사람들을 가르치고 병자들을 치유하신 갈릴래아와 그 주변에서 활동한 기간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주목할 만한 일을 하고 당신의 메시지를 구두로 선포하시어 추종자들이 당신의 말씀과 행위를 듣고 보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 둘째 단계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일어난 선포 단계로 이루어졌다.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뵌 사람들은 부활을 통해 증명된 그분을 대체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을 여러 가지 칭호(메시아=그리스도, 주님, 구세주, 하느님의 아들 등)로 믿기에 이르렀다. 그분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듣고 본 것에 대한 이야기를 믿음의 빛으로 더욱 발전시켰다. 믿음은 그들에게 과거사가 지닌 중요성을 명시했다. 이렇게 예수께서 말씀하고 행하신 것을 단순히 있는 그대로 보고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 셋째 단계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서가 실제로 기록된 시기이다. 마르코 복음은 약 70년,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은 80-90년쯤으로 그리고 요한복음은 90년대로 추정한다.
- 각 복음사가는 자기가 예수를 이해한 대로 또 자기 복음의 독자들인 공동체의 영적 필요에 따라 예수를 묘사하고 싶은 대로 자료를 정리했다. 이렇게 각 복음사가들은 전통의 형태를 정하고 발전시키고 다듬으면서 복음서의 완전한 저자로 또 그 전통을 특정 의도에 맞추는 완전한 신학자로 드러난다. 나는 복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전반적 응답으로 복음서란 예수의 말씀, 행위, 고난, 죽음과 부활을 포함하는 그분에 대한 전통에서 추출된 내용이라고 묘사했다 . 위의 세 단계의 요강을 이끌어 낸 로마 교황청 성서위원회의 문서가 복음서들은 역사적인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예수께 대한 정확한 기억이나 글자 그대로의 기록으로는 보지 않는 이유이다.
< 질문 41 > 복음서가 전통의 산물로서 발전한다고 보는 현대적 접근 방법은 우리가 복음서를 영적으로 사용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 주일 독서집(현재의 매일 미사책)을 읽으면 된다. 이 독서집은 다른 많은 그리스도 교회가 받아들이는 책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들은 현재의 독서집이 채용되기 전 매년 주일이면 52개로 된 같은 단락의 성서를 읽었다. 이 단락들은 복음서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했기 때문에 신자들이 한 주일은 마태오복음에서, 다른 한 주일에는 루카복음에서, 아주 드물게는 마르코복음에서 따온 말씀을 들었다. … 새로 나온 3년용 독서집에는 복음독서를 첫해는 마태오복음에서, 둘째 해는 마르코복음에서, 셋째 해는 루카복음에서 따왔다. 요한복음의 독서는 사순절과 부활절과 같은 특정한 시기에 읽는다. … 예수께서 빵을 많게 하는 기적 이야기는 네 복음서에서 다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사가의 논리에 따라 각 복음서에서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강론가들이 모두가 이것을 알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독서집이 위와 같이 구성된 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알도록 촉구한다.
< 질문 42 > 당신은 복음사가들이 목격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마태오와 요한이 복음서를 썼고, 이들이 예수의 직무활동을 목격했다고 배웠다.
- 1900년대 초, 로마 교황청 성서위원회는 비평적 성서 학문의 발전으로 다음과 같이 공식적 답변을 발표했다. 신약 성서에 처음 나오는 복음서는 열두 사도 중 하나인 마태오의 작품이며, 네 번째 복음서는 열두 사도 중 하나인 요한의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1950년 중반에 교황청 성서위원회 비서는 신앙과 윤리에 관한 것일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자유롭다고 했다. 즉 복음사가들의 신원에 대한 초기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 교회의 공적 응답에 구속을 받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 복음사가들 자신이 예수의 공적 직무의 목격자가 아니었다는 견해는 현대의 비평학계에서 약 95%를 차지한다. … 어떠한 복음사가도 자기 이름을 제시하지 않았다. 복음서 중에서 저자를 가리키는 가장 가까운 표현은 넷째 복음에서 발견되는데, 그것은 예수의 목격 증인인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복음서의 원천(요한 21,24)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의 신원이 전혀 밝혀져 있지 않다.
< 질문 43 > 당신은 예수께로부터 온 전통이 복음서로 기록되기 이전에 단계별로 수정되고 발전되었다고 했다. 복음을 우리 시대에 적용하고 있는 우리 역시 같은 유형의 발전에 관련되고 있지 않은가?
- 복음서 형성과정의 세 단계를 통해 하느님이 당신의 섭리로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하기 위해 제공하신 책들 즉, 영감의 책들이 출판되었다. 이 성서들이 출판되어 예수 전통의 결정적 단계를 대표했다. 각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시대를 위해 예수의 메시지를 번역하고 적용하고 살아 있는 것으로 보존하는 과정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성서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물론 새로운 질문들에 비추어 예수께 대한 오늘날의 해석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새 책들을 출판한다. 그러나 어느 책도 1세기의 복음서와 같은 지위를 획득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책들은 성서처럼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렇게 오늘날의 작업에서 비슷한 과정의 사고, 성찰, 발전을 보지만, 복음서 이후의 과정은 기록된 복음서를 규범과 지침으로 하여 결정하는 것이다. … 지금은 기록된 복음서들에 의존해서 두 가지 접근방법으로 서로 다른 그리스도교적 모형을 만들어 내는데, 하나는 예수께 대한 기록을 변경하지 않고 보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보존하는 동안 끊임없이 성장시키고 적용하는 것이다. 첫째 모형에 좌우되는 사람들은 변화에 대한 위협을 크게 받을 것이다. 둘째 모형에 좌우되는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가운데서 예수의 모든 메시지와 그 함축적 뜻을 해설하고 이해하는 새로운 기회를 가질 가능성이 더 많다. 나는 후자의 접근방법이 예수께서 일으키신 엄청난 혁신에 더 충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질문 44 > 그러나 복음서에 대한 이러한 접근방법은 근본적으로 복음서를 더 이상 역사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가?
- 그렇지 않다. 복음서는 예수께서 당신 생애 동안 말씀하시고 행하신 것에 대한 전통에서 유래되고 그것을 근본 내용으로 한다는 뜻에서 역사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수의 말씀과 행위에 대한 ‘글자 그대로의’ 기록은 아니다. … 로마 교황청 성서위원회가 1964년 바로 ‘복음의 역사적 진리’라는 제목으로 이러한 접근방법을 설명했다. 전통의 세 가지 발전단계에 대한 토론의 끝 부분에서 위원회는 역사와 발전하는 전통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즉 복음사가들이 주님의 말씀과 행위들을 서로 다르게 배열하고 말씀의 뜻은 보존하지만 이 말씀을 글자 그대로 표현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예수께 대한 이야기의 진실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의 가르침과 생애가 다만 기억되기 위해서 보고된 것이 아니라 교회에 신앙의 기초와 윤리적 실천을 제공하기 위해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예수 직무로부터 나온 복음 자료의 이러한 선포는 전기적 의도를 갖지 않으며 글자 그대로 보존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청중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했으며 그러한 틀에서 역사적이라 할 수 있다.
[ 11. 질문 45-51 : 예수의 말씀과 행위 ]
< 질문 45 > 당신의 설명은 다 멋지게 들리지만 너무 일반적이다. 그러한 전통의 발전 가운데서 우리는 예수께서 생전에 실제로 하신 말씀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가?
- 우리는 마르코, 마태오, 루카, 요한 복음사가가 기록한 말씀들에 대해 확신할 수 있다. 그것은 성령께서 영감을 주셨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것이다. … 예수께서 비슷한 것을 두 가지의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정상적 설명으로 여김으로써 그것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정상적 설명은 30년에서 50년 동안 구두 선포에 변형이 가해졌다는 것일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구두로 자세히 이야기하는 경우에 그러한 발전이 예상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의 말씀 안에 있는 차이점과 변형된 표현들은 네 복음서에서 객관적으로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다. 성서학자들은 약 1900년 동안 복음서들 안에 있는 불일치를 해명하고자 애쓰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복음서의 여러 변형은 예수의 가르침이 많은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음사가들이 보존했거나 자기가 직접 다듬기까지 한 변형은 예수의 같은 가르침에 대한 그들 각자의 서로 다른 통찰이다. 둘째는 네 복음서에 나타난 발전된 전통은 신앙에서 유래한 메시지이다. 그것을 알아 듣는 청중 가운데서 신앙을 창조하기 위해 청중에 맞추어 손질이 가해 진 것이다. 말씀을 보존하고 적용하고 해설하고 재배치하는 것을 포함하는 복음사가적 작업은 복음서를 ‘좋은 소식’으로 만드는 것에 속한다.
< 질문 46 > 내가 당신을 몰아붙이는 것을 허용해 주기 바란다. 당신은 복음서들에 보도된 예수의 말씀 중 몇 퍼센트가 원래 그대로 남아 있고 몇 퍼센트가 달라졌는지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가?
- 솔직히 나는 그것을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대답을 시도하더라도 다른 학자들은 아주 다른 답을 줄지도 모른다. 어떤 학자들은 절대적으로 정확을 기하기 위해 확실성에 대한 접근방법에 있어서 예수의 원래 말씀을 최소한 적게 인정한다. 내 주장은 예수의 원래 말씀에서 명확하게 발전한 것임이 입증되거나 신빙성이 있어야 하며, 단순히 추측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이보다 더 과격한 학자들은 다른 관점에서 시작하여 예수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증명할 수 없는 전통은 교회의 ‘창작’으로 가정해야 한다고 논하곤 했다. 그러나 예수를 선포한 사람들이 그분이 말씀하신 것에는 정말 관심을 두지 않고 그분과 연관 지을 수 있는 의미에 대한 창조적 인식에만 관심을 두었다는 것이 논리적인가? ‘복음서의 역사적 진리’에 관한 로마 교황청 성서위원회가 선언한 전반적 취지는 복음서 내용이 실제로 예수의 생애를 계속한다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지지한다.
< 질문 47 > 지금까지의 질문과 당신의 대답은 예수의 말씀에 대한 것을 취급했다. 그러나 나는 예수께서 행하신 것에 관해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의 기적은 얼마나 믿을 만한가?
- 독일의 유명한 학자 ‘루돌프 불트만’은 현대인들이 기적을 믿지 않는다는 일반적 철학원리에 근거하여 복음서의 기적들은 비역사적인 것으로 분류했다. 나는 다른 많은 학자들처럼 역사적 문제를 이러한 철학적 대답으로 해결하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이 기적을 믿지 않는다는 것도 실제로 확실하지 않다. 기적을 믿는 사람은 현대적이지 않다는 혹평이 있지만 누가 그 수를 헤아렸다면 기적적인 것을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판단에 기적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같은 방법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복음서들 배후의 초기 전통으로 소급한다면, 예수의 치유에 대한 증거가 그분의 비유 가르침에 대한 증거만큼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근거로 나는 예수의 직무활동에서 기적을 기각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다. 유다 역사가(歷史家) 요세푸스의 작품에 예수께 대한 유명한 글귀가 있는데,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90년대에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놀라운 행위들을 한 사람, 진리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스승이다’ 나는 예수께서 그 행위들을 행한 사람이요, 가르침을 준 스승이었다는 말은 근거 있는 전통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 질문 48 > 당신은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셨다는 일반적 전통이 사실적 역사에 대한 기억( 예수께서 치유 등의 방법을 통해 놀라운 일을 하셨다) 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지만, 개별적 기적의 경우 예수께서 그것을 실제로 행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같은 기적이 다양한 전통들 안에 있으면, 그 기적에 대한 증거가 초기의 것이라고 여길 수 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한 예를 들어 보자. 마르코 복음(11, 14; 20-21)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것을 본다. 그 다음 날 사도들이 그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은 것을 보았다고 적혀 있다. 마태오 복음(21,19)에서는 그 나무가 즉시 말라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두 기록 중 어느 것이 더 오래된, 덜 발전된 전통인가를 묻는다면 즉시 마르코 복음을 선택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위의 두 전통을 비교하면 마태오 복음사가가 마르코 복음보다 기적들을 더 극적이고 강렬하게 묘사하는 습관이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루카 복음에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지 못하자 그 나무를 베어버리기를 원한다는 ‘비유’가 발견된다. 이처럼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기록이 예수께 연유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화과나무를 저주로 즉시 죽거나, 다음날 말라 죽거나, 열매를 맺지 않아 잘라버리자는 비유에서 어느 것이 본래의 것으로 보이는가? 기적적인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즉시 루카 복음사가의 비유를 더 본래의 것으로 선택할 것이다. 그런가하면 다른 사람들은 루카 복음사가가 예수의 분노를 부드럽게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예수의 화난 행위가 비유적 성찰로 해석된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예수께 대한 어떤 기적 전통이 근거 있는 것이라고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다 해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기적들을 자유롭게 현대식으로 해설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경고한다. 그것은 복음서가 진술하려고 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진술의 취지를 회피하려는 시도이다.
< 질문 49 > 나는 예수의 말씀과 기적의 차이를 알고 있다. 그분의 말씀은 지속적 가치가 있지만, 그분이 행하신 치유기적들이 역사적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가? 오늘날 우리는 정상적으로는 예수의 방법으로 치유할 수 없다.
- 많은 기적들이 성인들의 시성을 위해 인용되고 있으며 또 나는 이러한 기적적 현상들을 조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정한다. 비록 오늘날 기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상적 치유 자체보다 더 광범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적적 치유로 예수의 직무가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 인간적 필요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여기서 나는 두 가지 다른 세계관의 문제를 정확하게 분석한다면 복음서의 기적에 대해 꽤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르코 복음(9,14-27)에서 예수께서는 어떤 아이에서 더러운 영을 내쫓으시는 것을 서술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예수께서 현대의 과학적 지식을 가지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나는 현대의 어떤 의사가 고대 세계로 이송된다면 이는 간질이 아니라 악마에 사로잡힌 것으로 판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다른 세계관인데, 하나는 과학적 세계관이고 다른 하나는 문제를 신학적으로 보는 세계관이다. 대답은 현대 의학이 틀렸다거나 혹은 우리의 복음서에 나오는 악마에 사로잡힌 ‘모든’ 경우를 포함하여 사실적. 역사적 기록으로 믿어야 한다는 데 있지 않다. 예수께서 악마를 추방하심으로써 병자를 치유하신 것은 당신 시대의 세계관에 따라 활동하셨음을 뜻하고 질병이 단순히 육체의 병이 아니라 세상 안에 있는 악의 세력의 한 표현임을 가르킨다.
- 우리는 하느님이 당신의 계획을 성취하실 때 영혼들의 구원뿐 아니라 전 우주적 차원의 축복도 주관하시어 파괴적인 것이 끝나고 더 이상 고통과 눈물과 재앙과 죽음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고통. 눈물. 재앙과 죽음이 하느님으로부터 소외와 악을 상징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불행을 겪는 사람이 악하거나 악을 범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요인들 존재 자체가 하느님 계획의 미완성을 가리킨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질병뿐 아니라 폭풍과 같은 자연 재해들도 하느님 나라에 반대되는 것으로 취급함으로써 하느님과 세상에 대한 성서의 기본적 이해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계신다. … 오늘날까지 사람들은 계속해서 질병, 재앙과 죽음을 단순히 과학적 원인들보다 오히려 선과 악에 관련시킨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가 질병. 재앙. 죽음과 같은 악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것을 말씀과 행위로 선포하신 예수와 같은 분은 현대 세계와 관련되며 이 세계에 메시지를 던져준다.
< 질문 50 > 그러면 당신의 말은 악마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었다거나 오늘날 전무하다고 하는 것인가?
- 물론 아니다.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처럼 신약성서에 나오는 악마에 사로잡힌 이야기 하나하나의 역사성을 쉽게 취급할 수는 없다. 요한복음에는 이러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나아가서 이러한 이야기들의 이면에는 더 깊은 메시지가 있다. … 당신에게는, 어떤 사람에게서 나와서 안식처를 찾아 광야를 헤매는 악마에 대한 예수의 비유 말씀에 암시된 상황(루카 11,24 /되돌아오는 악령)을 역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러나 예수 시대에 악마들이 그러한 장소에 실제로 거쳐했다는 것을 당신이 믿는다 하더라도, 당신은 그 믿음을 복음의 무류성이라는 미명하에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권리는 없다. 악마들이 자기가 몸담고 있던 사람을 떠나서 한 떼의 돼지들 속으로 침입했다는 이야기(마르 5,12)도 그와 비슷하다. 우리는 예수와 복음사가들이 첫 세기의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음을 참작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세부사항을 역사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다해도 그 이야기들의 종교적 취지를 무시할 자유는 없다.
< 질문 51 > 당신은 악마들의 존재를 믿는가?
- 나는 악마의 존재를 믿는다. 창세기에서 뱀으로 극화된 유혹자는 악마라고 불리지 않는다. 또 욥기에 나오는 사탄은 악의 원리라기보다는 천상적 징계관에 더 가깝다. 바빌론 유배 이후 또 페르시아의 영향과 상당히 혼합된 결과 유다교는 악의 주된 힘(악마, 사탄, 벨리알 등)과 악마들의 무리, 이 둘에 대한 믿음을 드러낸다. 분명히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악마적인 것의 실재에 대해 당대 유다교의 견해를 공유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그리스도교 신학은 오늘의 시대까지 그러한 믿음을 진지하고 규범적인 것으로 간주해 오고 있다. 악마가 없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것을 아는지 이상하게 보인다. 그리고 보편적 부정은 입증하기가 가장 어렵다. 인식의 차원에서 선의 최상적 원리인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왜 인식의 차원에서 악의 최상적 원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해야 한다고 느끼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최근의 세계역사에서 이러한 악의 세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하는 경향이 있었는가? 게다가 더 비관적인 사실은 최근의 세계 역사가 하느님을 믿는 것보다 악마를 더 쉽게 믿도록 만들지 모른다는 것이다.
[ 12. 질문 52-53 : 예수의 부활 ]
< 질문 52 > 당신은 복음 이야기의 많은 측면들, 즉 예수의 말씀, 그분의 기적들, 악마의 역사성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복음 이야기의 최후를 장식하는 사건은 어떠한가? 나는 가톨릭 신학자들을 포함해서 명망있는 신학자들이 예수의 몸이 필레스티나에서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자기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당신은 성서학자로서 신체적 부활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 당신의 질문은 예리하고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이 논쟁을 피하거나 아무렇게나 다룰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날 “그들이 예수의 몸을 팔레스티나에서 발견했다하더라도 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누차 말이나 글을 통해 주장해 왔다. … 성서적 근거는 무덤에서 썩지 않은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를 베드로와 바오로가 선포했다는 사실이다. 신약성서의 증거라는 견지에서 네 복음서가 다 서술한 빈 무덤의 발견에 대한 이야기는 후대의 전통으로 간주되었다. … 빈 무덤의 발견에 대해 각 복음서가 진술하는 내용은 다양하다.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건이다. 무덤이 비어 있는 이유는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복음사가들도 빈 무덤에 대한 다양한 이유를 생각했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마리아 막달레나(빈 무덤을 발견한 주된 증인)가 빈 무덤 앞에서 처음 연상한 것은 누군가 예수의 시신을 가져갔다는 것이었다. 마태오복음 28장(13-15)에서는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시신을 훔쳐갔다고 유다인들이 주장했다고 보고한다. 빈 무덤은 그리스도교적 부활 선포가 예수의 시신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으로 예수의 부활이 육체적임을 암시했다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 가톨릭신자들이 고려해야 할 다른 요인은 교회의 가르침이다. 예수의 몸의 부활은 오류가 있을 수 없는 교리 항목에 속하고 교회의 통상적 교도권의 가르침을 표현한다. … 많은 사람들이 몸의 부활은 성서의 무류성(無謬性) 속한다고 주장한다.
< 질문 53 > 몸의 부활에 관한 당신의 견해는 분명하다. 그러나 ‘신체적’ 부활에 대한 논쟁으로 돌아오라. 왜 이 말을 피하는가?
- 나는 몇 가지 성서적 이유로 그 말을 피한다. 코린토 전서(15, 42-50/부활 때에 완성되는 인간의 구원)에서 바오로는 몸의 부활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가 부활하신 예수를 보았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에 대한 그의 기록은 자기의 그러한 체험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바오로는 부활한 몸이 많은 사람들의 번역처럼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 바오로는 몸의 부활을 생각하지만, 그가 말하는 변화는 부활한 몸이 신체적인 실재에서 영적인 실재로 옮겨가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이와 비슷하게 복음서의 구절들은 부활하신 예수의 발현을 몸의 발현으로 분명히 묘사하면서 그분이 신체적 몸의 특성이 아닌 특성, 즉 우리가 아는 대로 닫힌 문을 통과할 수 있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고, 갑자기 발현하는 능력을 가진다고 묘사한다. … 내가 아는 한, 부활한 몸의 특성은 미결의 문제이다. 또 나는 그것이 교회의 가르침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몸의 부활을 오류 없이 가르쳐 왔다고 판단한다. 이 모든 것은 부활에 내재한 두 가지 요인, 즉 지속성과 변화에 대한 주장으로 표현될 수 있다. 지속성은 무덤에 묻힌 예수의 시신이 참으로 부활했다는 것이다. 변화는 부활한 몸이 이 땅을 걸어 다녔던 신체적 몸과는 거의 형언할 수 없이 다르다는 것이다. 몸의 부활에 대한 바오로의 논지는 정교했다. 그래서 우리도 몸의 부활에 대한 논지에 있어서 그렇게 정교해야 한다.
[ 13. 질문 54-60 : 예수의 탄생 ]
< 질문 54 > 당신은 예수 생애의 역사성에 대한 응답에서 그분의 탄생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당신과 다른 사람들은 탄생 이야기가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 나는 역사성에 대해서 절대적인 뜻의 부정적 진술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한 진술은 입증하기가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마태오복음과 루카복음의 각 첫 두 장에서 발견되는 탄생 이야기의 어떤 세부사항들이 역사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이유들이 있다. 탄생 이야기가 글자 그대로 역사적이라는 교회의 유효한 공식적 선언은 없다. 실상 ‘복음서의 역사적 진리’에 대한 로마 교황청 성서위원회의 선언은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제자들이 ‘예수의 공적 직무 동안’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본 것에 관한 것임을 아주 분명히 했다. 다른 요인은 우리가 예수께서 행하고 말씀하신 것에 대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이유와 관련된다. 그것은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들, 즉 제자들과 특히 열두 사도들이 그 말씀과 행위를 보도할 위치에 있었을 뿐 그들 중 아무도 예수의 탄생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탄생사건에 대해 사도적 증언을 가진다고 주장할 수 없다.
< 질문 55 > 그러나 우리는 예수의 탄생과 관련하여 마리아와 요셉의 증언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 요셉은 예수의 직무 이야기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기 전에 죽었다고 본다. 마리아는 예수의 공적 직무 동안 아직 살아 있었지만, 예수께서 강론과 치유활동을 위해 여행하는 동안 그분을 동반하였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우리는 마리아가 예수의 전통을 보존한 사도적 설교자들과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마리아가 그들에게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하는 것을 상상한다. 그러나 신약성서에서 또 처음 몇 세기 동안에는 그것에 대한 암시가 없다. 탄생 이야기가 단순히 마리아의 회상이라는 생각에 대한 실제적 이의(異議)는 마태오복음과 루카복음에 나오는 두 이야기가 전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같은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상상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위의 두 복음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같은 사건에 대해 전적으로 다른 회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질문 56 > 당신은 두 복음서의 탄생 이야기 사이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마태오복음 이야기에서는,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에 살고 있었고 거기에 집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2.11). 그들은 아기 예수가 거의 두 살이 될 때까지 베들레헴에 머물렀고(2,16), 그들이 이집트로 피난을 가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유일한 이유는 헤로데의 아들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나자렛이라고 불리는 도시로 갔는데 그곳은 한 번도 간적이 없는 곳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2,22-23). 루카복음에서는, 마리아와 요셉은 나자렛에서 살다가 다만 인구조사 때문에 베들레헴으로 갔다(1,26;2,4). 아기 탄생 후 그들은 돌아오는 길에 예루살렘에 들렀다가 나자렛으로 돌아와 거기에서 체류했다(2,39). 루카복음에는 예수 탄생 후 성가정이 2년 동안 베들레헴에 머물렀다는 언급이 없다. 또 동방의 점성술사들이 대단한 갈채를 받으면서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 왔다는 언급과 베들레헴의 아기들이 살해되고 성가정이 이집트로 피신을 갔다는 언급도 없다. 마태오복음의 기록에는 인구조사에 대한 언급이 없고, 이야기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루카복음과는 다르다.
-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위의 두 이야기가 기능적으로 동등한 요인들을 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루카 복음사가는 아기 예수의 잉태 예고가 마리아에게 행해진 것으로 보도하는데 비해, 마태오 복음사가는 그것을 요셉으로 서술했다. 또 이 두 예고는 아기의 신원을 메시아와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로 제시한다. 루카 복음사가는 아기 예수의 탄생 후 그분을 경배하기 위해 목자들이 찾아왔다고 이야기하는 반면, 마태오 복음사가는 그분을 경배하기 위해 동방의 점술가들이 찾아왔음을 이야기했다. 마태오복음에서는 이방인들 측에서, 루카복음에서는 유다인들 측에서 믿음과 찬양으로 응답할 것임을 보여준다.
< 질문 57 > 두 가지 탄생 이야기가 그렇게 다르다면, 하나는 역사적이고 다른 하나는 상징적인 것이라고 왜 가정할 수 없는가? 왜 각 이야기의 역사성을 의심하는가?
- 어떤 학자들은 예수 탄생 이야기들 사이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기도 한다. 로마 가톨릭 학자들 가운데는 루카복음의 이야기를 역사적인 것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리아가 루카복음의 주요 주제이고, 그 이야기의 원천이었다고 추측하는 견해가 있다. 나는 마태오복음뿐 아니라 루카복음에 제시된 사건들에 대해서도 역사성의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에 그렇게 단순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마태오와 루카 복음사가는 둘 다 역사상 기록에 필요한 그러한 사건들을 기록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특이한 천문학적 현상을 서술했다. 즉 동쪽에서 한 별이 떠올라 점성술사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하고, 그 다음 다시 나타나서 예수의 탄생지 베들레헴 위에서 멈추었다는 것이다(2,2.9). 나는 ‘메시아의 탄생’이라는 저서에서 혜성. 행성들의 결합, 대 신성들에 관한 예수 탄생 무렵의 천문학적 모든 자료를 조사했다. 마태오 복음에 서술된 내용과 관련하여 천문학적 기록은 분명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루카복음에서 퀴리누스가 시리아의 집정관이었을 때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명에 따라 실시된 전 세계의 인구조사에 관한 이야기(2,1-2)도 마태오복음의 경우와 비슷하다. 이 인구조사는 아마 헤로데 대왕이 유다의 왕이었을 때 실시된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아우구스투스가 명한 인구조사에 대해서도 모든 기록을 조사했다. 그런데 아우구스투스 치하에서는 전 세계를 망라하여 단 한 번의 인구조사도 없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사가와 루카 복음사가 그러한 공적 사건에 대해 정확히 기록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아마 예수 탄생에 대한 복음서의 기록은 사건 발생 이후(부활 이후)에 그분의 탄생 이전이나 이후 10년 안에 발생한 사건들에 대한 부정확한 기억에 기인한 것 같다. … 그 외 역사성에 대한 의심이 가는 문제들 제시 …
< 질문 58 > 예수 탄생 이야기들이 역사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그것들은 민속적 이야기보다 더 나는 게 있는가?
- 나는 예수 탄생 이야기가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학자들이 이 이야기에 서술된 어떤 사건들은 역사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들을 제시했다. 마태오복음의 이야기도 루카복음의 이야기도 완전하게 역사적인 것은 아니지만, 예수 탄생 이야기에 역사적인 세부사항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위의 두 복음사가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내용이 있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에 있어서 일치하기도 한다는 것을 항상 강조한다. 그들은 다 아기 예수가 탄생하기전 그분의 위대한 미래를 예고했다. 그것은 그들이 모두 하느님의 섭리적 준비와 계시에 대해 일치된 진술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둘 다 아기 예수가 인간적 아버지 없이 잉태된 것(동정 잉태에 대한 놀라운 주장)에 동의할 뿐 아니라 아기 예수가 다윗의 상속을 받은 요셉을 통해 다윗 가문에 속했다는 것, 또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는 데 일치하고 있다. 또한 두 복음사가 모두 성가정이 궁극적으로는 나자렛에 가서 정착했다는 데에 일치한다. 이것들은 중요한 일치이고, 그러한 세부사항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사례를 제시한다.
- 나는 마태오복음의 유년사화에 예언적 글귀들이 나오는 것은 이사야, 에레미야, 호세아 등의 증언을 예수 탄생에 대한 메시지에 포함시키기 위한 시도라고 지적했다. 마태오복음의 요셉 이야기는 그의 꿈 이야기와 이집트 피신과 함께 구약성서에 나오는 요셉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요약하면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다. 루카복음의 유년사화에서도 한층 더 정교한 예술적 균형을 잡아 상세하게 서술한 메시지를 발견한다. … 각 유년사화는 복음과 그 선포를 예상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각 유년사화에서 천사가 발표한 근본적 메시지는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 즉 메시아의 그리스도 신학적 신원이다. 각 유년사화에서 이 메시지는 마태오복음에서는 요셉이, 루카복음에서는 마리아가 순명으로 받아들인다. 각 유년사화에서 다른 사람들이 와서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데, 이는 복음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표지이다. 복음의 두 유년사화는 우리가 구약성서의 배경과 예수의 신학적 신원을 강조할 때에만 적절하게 다루어지는 셈이다. 현대적 접근방법은 질의에서 제기된 민담적 요소와 너무 감상적으로 묘사된 아기 예수께 대한 상상, 이 두가지 모두를 거부한다.
< 질문 59 > 당신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주어진 천사적 메시지를 언급했다. 그 천사적이란 말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천사들이 있는가?
- 구약성서에는 미카엘, 라파엘, 가브리엘이라는 천사 이름이 나온다.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의 유년사화를 통해 이러한 역사의 반향을 보는 것은 흥미롭다. 마태오복음에는 주님의 천사가 여러 번 꿈을 통해 요셉에게 나타나 그에게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다른 한편으로 루카 복음사가는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서에서 마지막 시대의 위대한 광경을 설명하는 계시의 천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루카 복음사가의 유년사화에서 가브리엘의 현존은 다니엘의 예언이 지금 실현되고 있다는(마지막 시기가 예수의 잉태와 탄생으로 가까이 왔다는) 표징이 된다. ‘천사들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응답은 ‘악마가 실제로 있는가?’이다. 천사가 없다는 것을 입증할 방법은 없다. 예수와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분명히 천사는 존재한다고 생각하였고, 그것은 이후 교회의 견해가 되었다. 교회가 천사의 존재와 수호자로서 그들의 역할을 무류적 가르침으로 가르쳐 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느님으로부터 그분의 가장 하찮은 피조물에까지 이르는 존재의 계층에서 천사는 하느님과 인간사이에 자리 잡는다고 여겨진다.
< 질문 60 > 당신은 마태오복음과 루카복음의 시작 부분에 관한 언급에서 유년기 혹은 탄생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루카복음에는 열두 살 된 소년 예수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예수의 소년시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 솔직하게 말하자면 거의 없다. 루카복음의 첫 장에서 천사는 마리아와 백성들에게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시라고 말한다. 3장에서는 예수의 세례 때 ‘하느님의 목소리’가 온 백성에게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12세 소년 예수에 관한 2장의 이야기에서는 ‘그분 자신’이 “당신은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을 줄을 모르셨습니까?”라면서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로 확인한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말씀하고 행동하면서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첫 순간부터 이미 하느님의 아들로서 말씀하고 행동하셨다는 것이다. … 예수의 소년시절에 대한 이야기들의 기능은 근본적으로 역사적이라기보다는 신학적이다.
[ 14. 질문 61-68 : 마리아 ]
< 질문 61 > 마리아는 예수의 탄생과 소년시절에 관한 이야기에서 하나의 역할을 맡았다. 성서적으로 마리아는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
- 복음서를 구분해서 답을 해야 할 것이다. 마리아는 4복음서 모두와 사도행전 시작 부분에서 언급된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가장 초기의 복음서라고 생각하는 마르코복음에서 마리아는 예수의 직무 동안에 단 한 번 나타날 뿐이다. 3장(31-35 : 예수님의 참가족)에서,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당신께 형제이고 자매이며 어머니임을 분명히 하셨다. 그것은 출생에 의해 자동적으로 구성된 자연적 가족이 아니라 제자직에 의해 구성된 가정을 가리킨다. 그것은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어머니에 연결된 가장 기본적인 주제들 중의 하나이다. 마태오복음에서는 마르코복음의 장면이 반복된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사가는 마리아에 대한 전반적 묘사를 1장에서 부드럽게 표현하고 있다. 마리아는 인간적 아버지가 아닌 성령에 힘입어 예수를 잉태하였다는 것이다. 루카복음에서는 마리아의 역할이 매우 크다. 그는 마리아가 천사로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한 잉태 예고 이야기에서 그것을 해결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충심으로 동의한 첫 번째 사람이었기에 첫 그리스도교적 제자가 되었다. 그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왔고 여인들 가운데 복을 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 요한복음은 루카복음과는 다른 자료를 담고 있으면서도 같은 어조를 지닌다. 요한복음에서는 마리아가 두 장면에서 등장하고 있다. 예수께서 카나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하셨을 때 어머니는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암시하며 그분께 요청했을 때이다. 예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표징을 행하신다. 두 번째 장면은 십자가 밑에서다. 요한 복음사가만이 예수의 친구들이 십자가 밑에 있음을 보고하는데 특히 그가 이름을 밝힌 적이 없는 두 인물, 즉 예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와 예수의 어머니를 집중적으로 논한다. 이 두 인물은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남겨 두신 당신의 참된 가정, 죽으면서 영을 넘겨주시는 당신의 참된 가정은 당신의 어머니(자연적 가정)와 사랑하시는 제자(제자직의 가정)이다. 그리고 이 제자가 예수의 형제가 되고 예수의 어머니는 이 제자 자신의 어머니가 됨으로써 이 두 가정은 하나가 된다. 첫 세기 말에는 그리스도교적 제자직 증 주목할 만한 역할이 초대교회의 다양한 방면에서 예수의 어머니에게 주어져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 질문 62 > 후기에 발전한 마리아 신학 중에는 원죄 없는 잉태와 승천이 있다. 당신은 이것들을 신약성서와 연결시킬 수 있는가?
- 신약성서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마리아가 남긴 궤적을 성찰하는 방법을 통해 마리아의 특권적 상태를 명시한 여러 경우와 신약성서의 여러 곳에서 매우 분명하게 그녀에게 부여한 사제직이란 역할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교리는 예수의 모든 제자들이 특권을 받는 데 있어서 마리아에게 우선권을 돌린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우리는 세례를 통해 원죄로부터 해방되었다.(질문 24참조) 로마 가톨릭 신자들은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셨다’고 믿는다. 하느님이 마리아가 육을 취할 결백한 예수를 잉태하기 위해 준비하신 것이다. 루카 복음사가가 마리아를 첫 제자로 묘사한다면 원죄 없는 잉태는 그리스도의 구원 은혜가, 마리아가 잉태된 순간부터 미리 그녀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그녀는 구원의 열매를 받은 첫 사람이다. 원죄에서의 자유라는 선물은 모든 제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지만 그리스도교적 첫 제자인 마리아가 그것을 최초로 받았다. 승천에 관해서는 마리아가 사후에 몸째 하늘로 올려진 것으로 이해한다면, 마리아는 다시 한 번 궁극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질 특권을 받은 첫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은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켜지고 몸째 하늘로 들려 올려질 것이다. 이렇게 그것은 첫 그리스도교적 제자인 마리아에게만 주어졌지만 결국에는 모든 제자들에게 부여될 것이다.
< 질문 63 > 당신이 방금 말한 마리아의 특권들은 성서에 명백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마태오 복음사사와 루카 복음사가가 명확히 언급한 특권, 즉 동정 출산은 어떤가?
- 성서가 묘사하고 있는 것은 마리아가 아버지 없이 예수를 잉태하였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사상사에서는 얼마 후(2세기) 또 다른 견해가 추가되었는데 마리아가 그녀의 신체 기관들이 완전하게 보존된 기적적 방법으로 예수를 낳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 동정 잉태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 개신교 신자들과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 많은 학자들이 동정 잉태를 성서적 근거 위에서 부인한다. 나는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데 그것은 성서적 근거가 동정 잉태의 역사성을 반박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성서적 토대 위해서 동정 잉태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성서 기록의 애매한 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교회의 교리에 호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기 예수의 잉태는 마태오 복음사가와 루카 복음사가만 언급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예수께서 성령을 통해 동정 마리아의 태내에 잉태되신 것은 하느님의 창조적 권능과 메시아가 파견된 순간의 유일성을 포함하여 의심의 여지없이 신학적 의미를 가진다. 나는 학자들과의 대화에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난다는 것’은 인간적인 아버지 없이 태어난다는 것이 아니라 신적 아버지의 도움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마태오, 루카 두 복음사가가 둘 다 동정 잉태가 사실적(또한 신학적)이지 단순히 상징적인 것이 아님을 이해하고 그렇게 지적한 것이다.
< 질문 64 > 동정 잉태와 같은 기적적 사건에 대해 어떠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가?
- 한 가지는 본질상 신학적인 증거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서 저자가 무엇을 생각하든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고 오류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느님은 복음사가들이 전하기로 한 모든 메시지에서 그들을 인도하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서는 하느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의도하신 진리를 충실하게 또 오류 없이 가르친다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헌장 3,11)는 말한다. 로마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동정 잉태의 역사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성서의 무류성보다 교회의 가르침이 신학적 요인이 되곤 했다. … 나는 로마 가톨릭 신자로서 성서에 근거한 교회의 규범적 가르침이, 성서에서 불분명하거나 의심의 여지가 있는 경우 특별한 도움이 된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동정잉태를 받아들인다. … 대부분의 학자들은 신약성서의 마태오와 루카복음의 각 1장을 제외하고는 예수의 동정잉태를 언급한 것이 없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더욱이 이 두 복음사가들은 서로 독립적이며, 동정 잉태에 대한 진술은 매우 다른 문맥을 제시하고 있음에도 동정 잉태에 있어서 일치한다. 그래서 우리는 동정 잉태를 단순히 후대에 꾸며낸 이야기로 처리할 수 없다. … 나는 성서적 증거가 전적으로 분명하고 입증된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혹은 이 증거가 기껏해야 애매한 경우 결정권을 가진다고 억지로 논증하기보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여긴다.
< 질문 65 > 당신은 복음서에서 마리아의 역할에 대해 서술하면서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라는 말을 언급했다. 그것은 개신교적 언어가 아닌가?
- 여러 신약성서 저자들은 형제를 가리키는 통상적 그리스어를 사용하여 주님(예수)의 ‘형제(들)’에 대해 언급했다. 또 내가 언급한 마르코복음과 마태오복음 구절에서는 예수의 ‘자매들’에 대해 말했다. 어떤 가톨릭 성서 번역에서는 ‘형제들(brothers)’이라는 말의 고어체일 뿐인 brethren(brother의 복수형)을 사용하여 형제들이라는 말을 피하려고 했지만 ‘자매들(sisters)’의 경우에는 sistren(sister의 복수형이 아님)을 쓸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리스어가 뜻하는 자의적 번역에 충실해야 하고, 그것이 질문을 야기한다고 해서 삭제하거나 변경해서는 안 된다. ‘예수의 형제들’은 개신교적 언어가 아니라 성서적 언어이다.
< 질문 66 >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었다는 가톨릭의 가르침은 어떤가?
- 정교회와 동방교회의 많은 ‘고교회(高敎會派)’ 영국 성공회 내지 감독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었다는 견해를 공유한다. 흔히 개신교 신자들은 신약성서에 언급된 예수의 형제들과 자매들이 마리아의 자녀이므로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종교개혁이 일어난 당대에는 그것이 주요 문제가 아니었다. 루터, 칼뱅, 츠빙글리 모두가 ‘평생 동정녀’라는 용어를 아무런 반대 없이 사용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한 현대의 논쟁은 종교개혁 후기에 신약성서를 자의적으로 읽는 경향에서 분명히 일어났다. 분명히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형제들과 자매들로 불린 사람들이 친형제들과 친자매들이었다면, 마리아는 평생 동정이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의 친형제와 친자매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마리아가 동정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을 실제로 확증해 주지는 않는다.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은 우리가 기자고 있는 문서상의 증명을 넘어서는 것이며 우리의 믿음에서 우러나온 마리아께 대한 칭송이다. 로마 가톨릭 신자들은 그것을 교리로 간주한다. 우리가 ‘평생 동정녀’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성서 본문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마리아의 거룩함과 이 거룩함이 그녀의 삶 속에서 표현된 방법에 대한 그리스도교 성찰에서 유래했다.
< 질문 67 > 나는 위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은 가톨릭 교회가 마리아의 평생 동정에 대해 말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신약성서가 예수의 ‘형제들과 자매들’에 대해 말한다고 한다. 왜 신약성서에서는 그들을 그렇게 부르는가?
-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형제들과 자매들’이라는 말이 실제로 마리아의 자녀를 가리킨 적은 없으나 ‘형제들’이 예수의 친형제들이 아니라는 미약한 증거는 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묘사하는 마르코복음(15,40)과 마태오복음(27,56)에 멀리서 그것을 바라본 여자들 중 하나인 ‘야고버와 요세(요셉)의 마리아’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추측 건데 이 여자는 야고버와 요셉의 어머니인 것 같다. 이 두 이름은 예수의 형제들 중 둘의 이름이고, 우리는 이 장면에서 이들이 마리아로 불린 다른 여자의 자식임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야고버와 요세’라는 말은 마르코와 마태오 복음사가가 정상적으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인용하는 방법이 아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막달라여자 마리아, 야고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 ) … ‘형제들과 자매들’이란 용어는 왜 사용되었을까? 복음서에 사용된 그리스 용어들은 아람어나 히브리어로 표현된 예수의 가족을 지칭하기 위해 초대 그리스도교가 언급한 것에서 영향을 받았을지 모른다. 그리스어와는 달리 예수시대에 셈족 언어에서는 광범위한 가족관계를 가리키는 정확한 언어가 없었다. 오히려 이 관계는 같은 부족, 씨족 혹은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의 정확한 관계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형제와 자매로 간주된 부족적 배경을 반영했다. 예수의 ‘형제들과 자매들’로 불리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치밀하지 않은 셈어적 용어에 따라 지칭되었고 실상 더 먼 친척들이었다고 논할 수 있다.
< 질문 68 > 가톨릭 신자들은 늘 예수의 형제들이 그분의 사촌을 뜻한다고 배우지 않는가?
- 가톨릭 신자들이 그렇게 배우기는 했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성 예로니모는 서방교회에서 ‘야고버의 최초 복음’(외경)과는 다른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 ‘최초 복음’에는 형제들을 마리아가 낳은 자녀들로 간주하고 있으나, 그는 예수의 형제와 자매들은 요셉의 형제나 마리아의 자매의 자녀들이었다는 것이다. … 이는 서방교회에서 거의 보편적 견해가 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로마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친숙한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에 관한 교회의 ‘교리’는 그 형제들이 누구였는지는 한 번도 밝힌 적이 없었다. …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에 대한 전통에 충실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결혼이나 가정을 비하시키지 않고 독신의 가치를 강조하고자 한다. 만일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후 정상적으로 임신하여 다른 자녀들을 낳았다고 가정한다면, 이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거룩한 행위였을 것이다. 이를 명심하면서, 동정성을 보존하기로 한 그녀의 결심일 때에도 그러하다. ‘신약성서 마리아’ 책은 여러 교파 출신의 학자들이 쓴 범그리스도교적 책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마리아가 요셉과의 관계에서 다른 자녀들을 두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신약성서에 직접 제기되지도 않고’ 확실한 대답도 찾을 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 … 신앙의 차이는 직접적으로 성서에 대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전통과 교회 가르침의 권위에 관한 것이다.
[ 15. 질문 69-76 : 예수의 지식 ]
< 질문 69 > 당신이 설명한 많은 것은 불가피하게 예수에 관한 복음의 ‘보도들’, 그것들의 취지. 정확성 등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자신에 관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나는 당신이 수학적 정확성이나 물리학적 정확성에 대해서가 아니라 인간사에서 가지는 합리적 정확성이나 고도의 개연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믿는다. … 나는 당신이 예수의 행적에 대해서 단순한 질의응답 형식에서 가능한 것보다 더 상세한 것을 원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도움이 될 만한 논문을 추천한다. 그것은 J. P. Meier가 쓴 ‘예수’라는 책에 실려 있다. 탁월한 학자인 그는 역사의 예수에 대한 상세한 보고와 함께 균형이 잘 잡힌 논문을 제시하고 있다.
< 질문 70 > 나는 예수께서 스스로를 어떤 존재로 생각하였는지를 알고 싶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이시라고 아셨는가?
- 이 질문은 1세기 초기에 살았던 갈릴래아의 한 유다인인 예수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예수의 ‘하느님’은 예수 당대의 배경과 당대의 신학적 언어에 의해 구체화된 뜻을 가졌을 것이다. 당대의 한 유다인이 ‘하느님’을 생각할 때 다른 많은 특성들 중에서도 특히 하늘에 거처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의 예수께 제기된 “당신은 자신을 하느님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은 예수께서 당신을 하늘에 거처하는 분으로 생각하셨는가를 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지상에 눈에 보이고 살고 계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질문이 부적절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그분은 하느님께 대한 당신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받으셨다. 우리는 마르코복음(10, 17-18)에서 표현의 묘미와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 즉 어떤 사람이 예수께 “선하신 스승”이라고 말하면서 말을 걸자 그분은 대답하기를 “왜 당신은 나를 선하다고 하십니까?”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와 ‘하느님’이라는 사이에 거리가 있음을 볼 수 있다. … 우리는 그분의 전생애가 담긴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긍정적 대답을 증명할 길이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 자료에서는 항상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이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음을 아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랄 만한 권위를 부여해 주셨다. 복음서를 살펴볼 때 예수께서 그전에는 몰랐던 자신에 대한 어떤 것을 발견하는 장면은 전혀 없다. … 세례 장면(마르 1, 11/”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은 독자들에게 예수께서 누구이신지를 말하기 위한 것이지 그분께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 질문 71 > 그러나 예수께서는 살아가면서 지식이 늘지 않았는가? 그 분이 전생애 동안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면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 우리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해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표현할 수 있는 인간적 언어를 찾지 못했어도 당신이 신적 존재임을 아실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은 첫 세 복음서(마태오, 마르코, 루카)들의 그리스도 신학이 광범위하게 암시적인 이유를 설명해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이 신학은 용어들이 예수의 신원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는 그리스도 신학이 아니라 그분이 무엇을 말하였으며 어떤 음색으로 말하였는지를 들음으로써, 또 그분이 무엇을 하고 무슨 권능과 권위로 그것을 하시는지를 주목함으로써 그분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신학이다. … 그분의 인간적 삶에서는 그분의 성장. 체험. 직무수행 동안 일어난 사건들과 죽음이 인간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켰다. 사람들은 마르코복음의 게쎄마니 장면에 암시된 것과 같은 예수의 인간적 갈등으로부터 성자에 대한 주제를 감지할 수 있다. … 아무도 강생의 신비스러운 깊이와 강생이 예수께 내적으로 미친 영향을 알 수 없다. 복음서는 예수께서 당신에 대해 무엇을 아셨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그분에 관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쓰여졌다.
< 질문 72 > 당신은 예수께서 하느님이심을 믿는다고 말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께서 무엇을 알고 계셨는가 라든지 지식이 증대되셨는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 이 질문에는 철학적으로 대답해야 할 듯하다. 스콜라 철학,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 따르면 하느님의 지식은 우리의 지식과는 다르다. 우리의 정상적 지식 형태는 개념과 판단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고한다는 것이다. 스콜라 철학에 따르면 하느님의 지식은 간접적이다. 하느님은 관념을 가지고 계시지 않다. 그분은 사물을 본질적으로 아신다. 그분은 개념들을 결합시키고 판단을 하는 식으로 사고하실 필요가 없는 다른 형태의 지식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삼위일체의 제2위로서 가지고 계셨을 신적 지식은 실제로 인간적 정신 안에서는 작용하지 않는다. ‘신학대전’의 유명한 구절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만일 그리스도의 영혼 속에 그분의 신적 지식 외에 어떤 다른 지식이 없었다면 예수의 영혼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신적 지식은 그리스도의 인간적 영혼의 활동일 수 없다. 그것은 다른 본성에 속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라고 그렇게 쉽게 주장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스콜라 철학은 때때로 인간도 하느님이 아시는 방법과 같이 직접적 지식을 갖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우리는 우리의 본질이 됨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지 단순히 우리의 본질에 대해 사고함으로써 아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정확히 “예수께서 당신이 누구인지를 아셨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무 어려움 없이 그렇다고 말한다. …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이 되심으로써 당신이 누구인지를 아셨다.
< 질문 73 >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지 않으셨다는 뜻인가?
- 그렇지 않다. 내가 주장한 것처럼 자신의 신원에 대한 예수의 직접적인 앎이란 곧 그분 자신이 하느님의 뜻에 대한 극히 심오하고 친밀한 지식을 가지셨다는 뜻이다. 그분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항상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셨다. 신약성서에는 예수께서 죄가 없으신 분이라고 서술한다. 그러므로 그분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에 대해 신적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복음서에서, ‘아멘(진실히)’이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에서 볼 수 있다. 이 ‘아멘’은 어떤 진술의 참됨을 인정하는 응답으로 사용하는 대신 우리의 인정을 요구하면서 예수의 말씀을 시작하신다. 예수께서 권위를 띠고 다른 선생들과는 달리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고 묘사한 신약성서의 진술은 예수께서 하느님의 뜻을 유일무이하게 알고 계셨음을 인정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사는 동안 하느님과 함께 있는 당신의 신원을 확인하신 데서 흘러나온 지식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분을 통해 하느님의 궁극적 계시가 도래했다는 것을 믿도록 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1, 1-2).”
< 질문 74 > 시실에 입각한 지식은 어떤가? 예수께서는 통상적인 인간적 지식을 넘어선 것들을 모르셨는가?
- 스페인의 스콜라 신학자들은 예수께서 파격적 지식을 가지고 계셨다고 주장했다. 즉 그분은 완전한 군인. 과학자. 예술가. 시인 등이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성서에는 이런 사실을 입증할 만한 것이 없다. 사람들은 그분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놀랐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아람어와 히브리어를 사용하셨을 것이다. 그분은 가파르나움을 지나가는 교역로 때문에 약간의 그리스어와 표현들을 아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께서 당신이 배우신 것 이상의 어떤 언어들을 아셨다고 생각할 아무 이유가 없다. 또 예수께서는 부모의 억양으로 이 언어들을 배우셨을 것이다. 그분이 어떠한 손재주를 가지고 계셨든, 나는 그분이 그것도 부모에게서 배웠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예수께서 하느님의 힘으로 잉태하셨다고 말하는 루카 복음사가는 그분의 지혜가 성장했다는 성서적 기록(루카 2,40.52)을 예수께 적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를 갖지 않는다.
< 질문 75 > 예수의 사명과 관련된 지식에 주의를 집중해 보자. 예를 들어서 예수께서는 당신이 곧 죽으리라는 것을 아셨는가?
- 공관복음에는 사람의 아들의 죽음에 대한 예수의 유명한 예언이 셋(마르 8,31 ; 9,31 ; 10,33-34) 있다. 그러나 이 세 진술을 평가하는 경우 두 가지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요인은 위의 진술들이 골고타나 갈바리아 사건이 발생한 후 30년에서 50년이 지난 다음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서의 발전 과정 중 그러한 진술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지식에 의해 어느 정도까지 각색된 것인지 그 범위를 알아내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둘째 요인은 예수께서 종교적 권위자들 측의 증대되는 적개심에 부딪치자 당신이 난폭하게 처형될 가능성을 감지하셨을 것이라는 점이다. 예수께서는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권위자들로부터 박해를 받고 심지어는 살해당하기까지 한 예언자들의 전례를 알고 있었다. 팔레스티나에서 사신 예수께서는 이 땅을 통치한 로마 총독체제의 관습과 법을 알았음으로 난폭한 죽음이란 널리 사용된 로마식 처형방법인 십자가형을 뜻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거나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당신이 어떻게 죽게 될 것인가에 대해 아셨다는 것은 반드시 초자연적 지식은 아니었다.
< 질문 76 > 그런데 초자연적 도움이 필요한 지식에 대해 질문해도 괜찮은가? 예수께서는 미래를 상세히 아셨는가? 그분은 당신이 죽은이들 가운데서 부활하리라는 것을 아셨는가?
- 예수의 직무 기간(공생활) 동안 사람의 아들의 부활을 예견한 진술들이 있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교 신학자들 사이에 불일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예수께서 얼마나 많이 아셨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쓴 책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에서 지적한 것처럼, 예수의 무지(지식의 결여)를 인간 조건의 일부로 선뜻 인정한 교부들이 그리스도교 초기 여러 세기 동안 있었다. 이는 그분이 모든 면에서 우리처럼 유혹을 받았지만 죄가 없으시다는 히브리서의 진술(4,15)과 일치한다. 이 구절은 그분이 지식의 결여에 있어서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모든 면에서 완전하시다고 주장한 다른 경향의 그리스도교 사상이 있었다. …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서에서 예수께서 특별한 형식의 지식을 받으셨다는 명제(命題/주장)를 발견할 수 있다. 사고하는 인간의 정신에 신적 지식을 옮길 수 없다고 토마스는 인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적 정신에 유용한 지식(특별한 형식의 지식)이 예수께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 예수의 충만한 인성을 부정하는 것은 그분의 충만한 신성을 부정하는 것과 똑같이 심각하다. 또 우리의 지식에 한계가 있고 시간이라는 조건에 매이는 것은 참으로 인간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 16. 질문 77-78 : 교회의 창립 ]
< 질문 77 >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서 예수의 지식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그분이 미래를 위해 준비한 것들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그것들 중 어떤 것은 교회의 존재와 관련된다.
- 예수의 직무가 가지는 계시성 특성과 그분의 한정된 인간적 지식, 이 둘에 대한 균형잡힌 평가가 그리스도교적 상황파악에 중요하다. 우리는 교회의 완전한 윤곽, 즉 교회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 어디서 선포될 것인지, 교회 전례와 생활의 다양한 세부사항들을 포함해서 일어날 모든 것을 미리 본 예수라는 사람을 상상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교회의 청사진을 준 예수라는 사람을 마음속에 그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론에 대해 신약성서 학자는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들 중에서 어디에 그 청사진이 설명되거나 암시되었는지 그 설명을 요구해야 한다. … 네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교회’라는 말을 하신 것으로 보도되는 것은 단 두 곳이다. 이중 마태오복음(18,17)에서 교회는 분명히 지역공동체에 적용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예수께서는 모든 복음서에 단 한 번, 즉 마태오복음(16,18)에서 교회에 대하여 말씀하셨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절은 다음과 같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진술이 예수 부활 이후에 유래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교회를 위한, 교회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세우셨다는 복음의 증거는 실제로 없는 셈이다. 예수께서 그 모든 것에 관해 생각하셨다고 주장하려면 그것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 질문 78 > 그러면 당신네 성서학자들의 말은 에수께서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라는 것인가?
- 나는 결코 그렇게 부정적 진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성서적 주석과 교회의 교리’라는 책에서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셨다는 입장을 성서적으로 옹호할 수 있다고 논증했다. … 예수께서는 당신 직무의 본질적 부분으로서 제자들을 불러 모아 당신의 일에 참여시켰다. 부활한 예수께서는 그들 위에 영을 부어주어 당신의 일을 계속하도록 하셨다. 그들은 예수와 교회 사이의 지속성을 보장한다. 교회는 단순한 인간적 제도도 아니고 예수 제자들 측의 통찰력 있는 사상의 산물도 아니다. 그들은 믿는 이들을 공동체 안으로 불러 모으는 자기들의 활동이 예수께서 자기들을 불러 모아 당신의 일을 계속하도록 파견하셨을 때 행하신 것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예수를 교회를 창립하셨다는 생각을 견지한다.
[ 17. 질문 79-85 : 성사 ]
< 질문 79 > 성사는 어떠한가? 우리가 이해한 대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직접 성사제도를 세우신 것이 아닌가?
- ‘그리스도’께서라는 용어를 적절하고도 정확하게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 우리가 성사 제정을 논하면서 고려해야 할 준거들은 예수께서 20년대 팔레스티나에서 말씀하신 것만 아니라 신약성서 전체에서 발견되는 성서에 대한 증거이다. 그리스도에 의해 성사가 제정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성사라고 부르는 그러한 행위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직무 기간 동안과 부활 후 사도들 안에서 그리고 사도들을 통해 당신 교회에 주신 권능을 교회생활에 구체화하고 적용한 것임을 뜻한다. 이 권능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삶을 성화시킴으로써 악에 대한 하느님의 통치나 하느님 왕국의 승리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성사가 교회의 발명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계획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다.
< 질문 80 >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라. 즉 예수께서는 최후만찬 석상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는가?
- 그리스도께서 최후만찬 석상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다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규범적 가르침이다. 로마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트리엔트 공의회가 그것을 천명했다. 그러나 예수께서 전례적 발전과, 성체성사가 오늘날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전체적으로 실시될 것을 미리 알았거나 실체변화에 대해 말씀하실 수 있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최후 만찬에서 성찬례의 말씀에 관한 네 군데 기록 가운데 두 기록(루카 22,19 ; 1코린 11,24-25)에서 “나를 기념하여 이것을 행하여라”는 말씀이 나오는 반면에, 그것이 마르코복음과 마태오복음에는 없다는 것은 흥미롭다. … 이 말씀은 질문 40에서 토의된 복음 발전의 둘째 단계(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일어난 선포 단계)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나는 성사 제정과 교회 창립사이의 유사성을 본다. 이 두 경우를 그리스도의 행위로 묘사하는 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이 묘사에는 예수께서 이후에 일어날 모든 것을 미리 상세하게 아셨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성령께서 교회 안의 발전을 인도하고 예수의 정신에 충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던 것이다.
< 질문 81 > 사람들은 세례에 대해 예수로부터 한층 더 구체적인 지시(미래에 대한 그분의 예지를 보여주는 지시)를 받지 않는가?
- 당신은 부활하신 주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마태오복음(28,19)의 마지막 구절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 예수께서 부활한 후 정확히 위의 구절대로 말씀하셨다면, 사도행전에서 예수께서 이방인들을 제자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그분의 제자들이 의심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마태오복음의 본문에 암시된 것처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와 같은 발전된 세례 양식이 다른 곳에서 공통되게 발견되는 표현, 즉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제자들은 이방인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여러 해 동안 고투한 후에, 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공동체적 일치의 범위를 보여준 성찰을 한 후에야 그 사명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결과 예수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세례는 아버지와 성령의 활동도 포함해야 했다. 또 여러 복음서에서 부활하신 예수께로부터 기인한 진술들은 그분이 직무를 수행하면서 하신 진술들과는 많이 다르다. 예수의 말씀이라고 알려진 진술들 간에 차이가 생기는 것은 그분이 당신의 뜻을 제시하셨지만, 그 계시가 전해진 것은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통해서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질문 82 > 그럼 예수의 명백한 지시도 없이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세례를 베풀게 되었는가? 그들을 이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인가?
- 우리는 이를 완전히 알지는 못한다. 첫 세 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누구에게 세례를 베푸셨다고 말한 적이 없다. 요한복음(3,22) 에는 예수께서 세례를 주셨다고 적혀 있으나 이후(4,2)에서는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준 것’이라고 부정한다. 그렇지만 ‘그분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또 이러한 본보기는 예수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하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즉 예수께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요한의 선포를 수락하고 이를 보여 주신 것과 같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세례를 받음으로써 예수의 선포를 받아들이고 이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물론 요한과의 관련된 말이 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준 반면, 성령(불)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 오실 것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의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관례와 말씀이 있다. 이를테면 개종자들을 물로 씻는 유다인들의 예절이 이미 실행되고 있었다면, 위의 예식에 대한 이해 가능성은 컸을 것이다. 또 예수께 대한 신앙고백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것을 요구하는 회개의 한 유형으로 이해될 수 있었을 것이다. 세례가 예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한 사람들 가운데 빠른 속도로 보편적 의식이 되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자료에서 볼 때 세례는 이미 기대되고 받아들여진 의식인 것 같다.
< 질문 83 > 세례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 베드로 전서에서는 세례와 연관된 언어로 이방인들이 이제 선택된 백성이 되고, 그 결과 세례가 여러 가지 점에서 하느님의 백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문이 된다고 한다.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오순절 강론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워진 세례의 요구사항이 나온다. 사도적 강론을 경청하는 사람들에게 ‘메타노이아(회개)’와 세례에 대한 강조가 요구사항에 포함된다는 것이다.(사도 2,38) 세례라는 이 추가된 요구는 예수를 따르는 것이 이제 가시적 단계에 이르렀다는 결과를 가져온다. 예수께서 살아 계신 동안, 많은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고 감동을 받을 수 있었으나 하느님의 왕국에 대한 그분의 선포를 믿는다는 어떠한 가시적 표징도 없이 떠나갈 수 있었다. 강론자들은 이 가시적 표징을 요구하는데, 이 요구는 어떤 역사적 맥락을 가지는 요구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례는 그렇게 널리 보급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요구는 어떤 뜻에서는 신앙인들을 가시적 공동체로 조직화하는 첫 단계이다. 예수께서 살아계시는 동안 그분을 따르는 것은 비공식적이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본능적으로 신앙인의 신원을 밝히고 그를 다른 신앙인들과 결속시킬 공식적 관여를 확보하려 했다. 다시 말해 세례가 닌 첫째 특성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형성단계로서의 역할이었던 것 같다.
< 질문 84 > 성체성사는 어떤가? 그리스도인들이 성찬의 식사예절을 거행하게 된 경위와 또 이 예절이 그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 성찬례는 예수께서 최후만찬 때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로 주신 행위의 의미에 본질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확실히 초기 그리스도교적 이해였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코린토 전서(11,23-26)에서 바오로가 성찬례를 예수께서 넘겨지거나 배신당한 그날 밤과 정확하게 관련시켜 언급하고, 복음서들도 최후만찬과 연관되는 행위를 언급하기 때문이다. 바오로의 이해로는 성찬례가 거행될 때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그분의 죽음을 상기했다. 성찬례는 주님의 죽음을 상기시키거나 재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의 것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주께서 오시리라는 미래의 측면은 아주 초기에 성찬례에서 강조되었다. … 성찬례가 가지는 미래의 측면이 성체와 성혈 축성 후에 하는 신앙의 신비 선포의 한 부분으로서 로마 가톨릭 미사에 다시 도입되었다. 네 가지 신앙의 신비 기도문 중에서 세 가지가 주님께서 미래에 오실 것을 언급하고 있다.
< 질문 85 > 요한복음은 어떠한가? 이 복음에는 최후만찬에서 성찬례가 언급되어 있지 않다.
-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기 전날 저녁에 성찬례 행위를 하셨다는 것을 널리 알려진 전통으로 여기는 바오로에 비해, 성찬례 행위를 생략한 요한 복음사가의 의도는 성찬례를 예수 생애의 다른 부분에 연결시키려는 계획적 선택인 것 같다. 요한의 생략이 최후만찬과의 관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보다 초기 행위 안에서 성찬례의 잠재적 행위들을 보았음을 표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성찬례를 최후만찬의 관점에서만 생각한다면, 성찬례는 예수께서 죽기 바로 전 당신 생애의 종점에서 행하신 것이다. 요한 복음사가는 성찬례의 말씀들을 직무 기간 동안 표징으로 행하신 빵의 기적과 연결시켰다. 예수께서는 군중을 빵으로 부양하고 양육시켰다. 빵은 세례로 주어진 신적 생명을 기르는 영적 음식의 표징이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온 빵인 당신의 계시가 사람을 양육하는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강조하신 후 당신의 살과 피(요한 복음사가의 성찬례적 언어)가 제자들을 양육하는 힘을 가진다는 데 역점을 두셨다. 그래서 우리는 요한 복음사가의 덕분에 성찬을 우선적으로 영원한 생명의 음식으로 강조하게 된 것이다. … 예수의 부활 직후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빨리 세례와 성찬례를 거행했다 하더라도, 세례와 부활의 모든 면에 대해 전반적 견해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야 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의 선물에서 다른 풍요로움을 보기에 이르렀다.
[ 18. 질문 86-88 : 초대 그리스도인들과 유다인들 ]
< 질문 86 >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유다인들의 관계는 어떠했나?
- 모든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인이었다. 교회 구조는 새롭게 설정될 필요가 없었는데, 유다교가 이미 자체의 구조, 즉 사제직. 제사. 전례. 축제. 행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생각하실 필요가 없었다. 사도행전은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 등 초창기의 저명한 이들이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갔다고 보고한다. 예수께 대한 그들의 믿음이 이러한 성전 예배와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던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마르코복음(12,29-30)에는 예수께서 하느님의 왕국을 받아들이기 위한 일차적 의무로서 ‘세마(Shema)’ 혹은 유다인들의 기도문들 중에서 가장 기본적 기도를 꼽으신 것이 서술되어 있다. 이 기도는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즈카르야의 찬가(루카 1,68-79)와 같은 송가는, 예수 안에서 일어난 하느님 개입의 성취라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표현된 것을 빼놓고는 신약성서 시대의 유다인 송가의 형식과 문체로 되어 있다.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의 유다인적 특성에 대해서는 이 외에도 많은 사례들이 제시될 수 있다.
< 질문 87 > 무엇이 그리스도인들을 유다인에게서 분리시켰나?
- 그리스도인들이 유다교로부터 분리된 것은 각각 다른 분위기와 다른 이유들 때문이며, 각기 다른 시기와 다른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이 분리에 확실히 작용한 한 가지 요인은 일정한 지역에서 유다인 그리스도인들과 섞여 산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수였다. … 또 사람들을 회개시키려는 복음선포의 강도도 한 요인이었다. 예수를 믿으러 온 유다인들이 믿지 않는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자 계속 공세를 폈다면, 그것은 회당 안에서 분열을 일으켰을 것이고 회당에서의 축출로 이어졌을 것이다. 다른 요인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께 대한 자기들의 평가, 즉 자기들의 그리스도 신학적 용어를 표현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이에 회당의 당국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거슬러 일찍부터 집요하게 대항해 왔었다. 이들은 그리스도인들과 적극적인 논쟁을 벌였고, 단순한 인간을 하느님과 동등하게 만드는 사람들로 이해했다. 유다교는 강력한 교의적 종교는 아니었지만 두 하느님(요한복음 20,28/예수를 하느님으로 고백)을 흠숭하는 자들이 회당에 출석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유다인들은 요한복음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말씀을 하느님으로 선포하는 것을 이신론(二神論)으로 이해했다. 이러한 요인들은 어떤 지역에서 유다교에서의 분리, 그뿐 아니라 회당에서의 축출을 재촉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다른 지역에서는 평화적 상황이 전개되어 그리스도인과 유다인들이 큰 갈등 없이 여전히 회당에 출석하기도 했다. 서기 50년대부터 125-150년 후반까지 그리스도인과 유다인이 결국 서로가 다른 종교를 대표하는 것으로 이해할 때까지 이와 같은 분리과정은 계속되었다.
< 질문 88 > 유다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경우가 있는가?
- 갈라티아서(1,13-14)에서 바오로는 자기가 그리스도인을 박해했다고 진술했는데, 그것은 30년대 초 예루살렘이나 다마스쿠스 지역에서였을 것이다. 복음서에는 예수를 믿는 자들이 회당의 당국자 앞에 끌려가 매를 맞을 것이라는 예언이 있어, 그것을 박해로 생각하였다. 요한 복음사가는 회당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추방뿐 아니라 유다인들에 의한 그리스도인들의 살해도 묘사하고 그들이 이 살인행위를 하느님께 대한 봉사로 생각했다고 해설했다.(16,2-3) … 회당의 당국자들이 유다인 그리스도인들을 축출하고 이들을 더 이상 유다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면, 로마는 이 추방된 집단이 무신론자들과 위험한 사람들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추방된 사람들은 유다인 신분으로서 보호를 받지 못하고 로마의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회당의 당국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어떤 지역에서는 혹독하게 박해했겠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 19. 질문 89-92 : 초대 교회 관리 ]
< 질문 89 > 열두 사도들은 초대교회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가?
- ‘열두 사도들’이라는 관용적 표현은 신약성서의 후기 작품에 나타난다. 초기의 관용적 표현은 ‘열둘’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재건을 상징하기 위해 예수께서 당신 생애동안 선택하신 일련의 사람들이었다. 예수께서는 열둘의 상징에 대해 단 한 번 언급하셨는데, 그것은 그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하는 열두 옥좌에 앉는다는 것이다.(마태 19,28). 성서 기록을 보면 이스라엘이 존재하기 시작했을 때 열두 성조가 있었는데, 이들로부터 열두 지파가 후손으로 내려왔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이 재건되는 결정적 시기에 재건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기 위해 열두 사람을 택하셨다. 예루사렘 교회에 대한 최초의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한 집단으로서 활동하고 있었다.(사도 6,2) … 사도행전을 볼 때 열둘 가운데 예루살렘 밖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뿐이다. … 신약성서에서 ‘사도들’이라는 말이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으며 열둘 보다 더 광범위한 집단임을 알 수 있다. 바오로는 사도의 표지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말씀과 고통, 이 둘을 통해 여러 곳에서 그분을 증거하면서 그분을 선포하기 위해 파견된다는 것이다. 바오로가 열둘 모두를 사도로 생각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이보다 더 후기의 신약성서에서는 그 열둘을 사도들이라고 일컫기 시작했다. 더 후기의 전통은 세계 여러곳에서 행해진 광범위한 사도직의 경력을 열둘의 업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 질문 90 > 열나는 열두 사도들이 온 교회를 운영했다고 항상 생각했다. 만일 그들이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초대교회가 조직돠었나? 누가 교회를 운영했는가?
- 초대교회는 자신(열두 제자)을 이스라엘에서 분리된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치에 중요한 봉사를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공동체의 관리인들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들은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어떤 지역교회를 운용한 것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사도행전(6,5)에서 우리는 일곱 지도자들이 헬라인(그리스인)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행정을 맡은 것을 본다. 이 6장에서 히브리인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관리인이 누구였는지를 명시하지 않지만 그 후의 장에서 교회의 지도자 역할을 한 주님의 형제 야고버와 원로들에 대한 언급이 발견된다. … 사목 서간(티모테오 전서, 티토서)은 바오로 시대 직후 부제들과 더불어 각 도시에서 장로-주교들을 임명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장로-주교들은 신자들을 가르쳤고 공동체의 재산을 관리했으며 각 신자들의 교리와 그들의 도덕적 행위 등을 조사했다. 110년경까지 소아시아와 그리스 여러 지역에서는 한 주교가 장로들과 부제들을 자기 밑에 두고서 온 지방 교회를 감독하는 모형이 이미 발전하고 있었다. 그것은 2세기 말까지 표준적 교회 모형이 되었다.
< 질문 91 > 주교가 사도의 계승자라는 교리는 어떤가?
- 이는 가톨릭의 교리이다. 어떤 사람들이 열두 제자에 속하면서 사도들인 경우가 있었지만 열둘의 역할과 사도들의 역할은 구별된다. 이 교리는 주교가 열두 제자의 계승자임을 암시하지 암시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기 위해 다만 열두 옥좌만 있기 때문에 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은 열두 명 이상이 될 수 없다. 초대교회에서는 열두 사도들이 사망했을 때도 그들을 대체할 사람을 선출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사도들은 밖으로 나가 복음을 선포하고 신자들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 중 어떤 사도들은 사명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를 보살피는 사목을 이어받아야 했다. 첫 세기 후반초기시까지 혹은 그보다 더 일찍부터 어떤 공동체에서 지도자 역할을 수행한 사람들이 ‘주교’라고 불린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초기 단계에는 하나의 공동체에 다수의 주교들 또는 감독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주교는 사도적 복음선포에 의해 세워진 공동체를 보살피는 사목을 이어받았기에 사도들의 계승자라고 말할 수 있다. … 바오로가 티모테오와 티토를 사도의 대리인으로 임명햇고, 그들도 또한 주교들을 임명했다고 말한 사목서간에 명시되어 있다. 이 같은 전통은 그리스도께서 선택하신 사도들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다미면서 그들의 첫 개종자들을 주교와 부제로 임명했다고 90년대 후기의 클레멘스 전서(42,4)에서 뒷받침되었다. 서기 100년경의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15,1)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들을 위해’ 주교와 부제들을 임명하라고 말한다. 결국에는 교회가 주교의 선발과 서품의 전형을 발전시켰고, 3세기부터 일반적으로 이 전형을 따랐다.
[ 20. 질문 93-96 : 성찬식 거행 ]
< 질문 92 > 주교를 선발하는 이러한 발전적 전형은 서품이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한 성사라는 주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행하신 것은 성체성사뿐만 아니라 성품성사의 뿌리였다. 최후 만찬 때 하신 예수님의 말씀 중에는 누가, 어떠한 방식으로 ‘서품을 주는지를’ 자세하게 밝힌 것은 전혀 없다. 그리스도 자신이 최후만찬 때 열 두 제자에게 서품을 주셨다는 통상적인 비유 표현은, 그분이 일어나 식탁 주위를 돌면서 그들 각자에게 안수를 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다. 교회가 결국 자기의 주교. 장로와 부제로 인정한 사람들은 예수께서 당신을 따른 사람들에게 행하시고 또 사도들이 첫 신앙인에게 행한 사목적 직분에 참여한 것이다. 서품된 성직은 교회가 독자적 권위를 가지고 제정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품된 성직의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직무의 지속성에 속하는 본질적 부분이고 교회의 본질을 이루는데 도움을 준다. 이 본질적인 것들은 성품성사를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사로 서술하는 교리에 의해 확인된다. 그 본질적인 것들은 종교 의식에 의해 고정된다.
< 질문 93 > 당신은 장로, 주교역할에 대해 말할 때 성찬례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 2세기 초까지 한 사람의 주교, 다수의 장로들과 주교가 세운 다수의 부제들이라는 삼중구조에서 성찬례 거행은 세례 거행처럼 주교에게만 주어진 권한이었다. 주교가 출타한 경우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위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시기 이전 신약성서에는 누가 성찬례를 거행했는지에 관한 정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루카복음과 바오로의 편지에 제시된 최후만찬에서 예수께서는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혹은 열두 제자를 포함해서 출석한 사람들에게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때문에 사람들은 열두 제자들이 성찬례를 주관한 것으로 기억했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첫 세기의 모든 성찬례에 거의 출석하지 않았다. 또 우리는 한 사람이 정기적으로 성찬례의 주례를 맡았는지, 그렇다면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모른다. … 어떤 곳에서는 예언자들이 전례에서 성찬례적 역할을 했을 것이다.(사도 13,1-2 참조) 결국에는 교회가 성찬례 거행을 규정하고 조정했다. 또 그것은 생명의 빵을 정기적으로 공급받아야 하는 공동체에게 불가피한 발전이었다. 그들은 우연히 공급되는 빵에 의존할 수 없었던 것이다.
< 질문 94 > 성찬식을 거행한 사람이 신약성서 시대에 정규적 방법으로 지명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누가 성찬례를 거행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어느 정도의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 교회는 성찬례 주례의 역할을 하는 누군가를 어떤 식으로든 인정해 왔음에 틀림없다. 성찬의 식사에 온 사람들은 어떤 개인이 주님의 말씀을 읊을 때 어떤 식으로든 그 역할을 받아들였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성찬례 주례자를 위해 교회의 인정이 필수적이었음을 뜻한다. 또 그것은 교회가 서품을 강조해 온 이유이다. 누가 성찬례를 거행할 수 있고 거행해야 하는지를 공식으로 승인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서품의 방식을 규정했고, 이 규정은 교회의 승인을 표시하기에 구속력이 있다. … 성찬례의 봉사자들을 지명하는 다른 방법을 확정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게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기의 성찬례의 주례로 임명하거나 어떤 소집단이 더 큰 교회와의 일치를 깨고서 자체의 구성원들을 만드는 것은 안 된다. 관행이 규정되고 발전한 것은 이러한 탈선을 막기 위함이었다. … 성령께서는 첫 세기 후 교회 안에서 계속 활동하셨으며, 후기에 발전한 내용들은 올바른 방향으로 교회를 인도하시는 성려의 활동이라고 여겨진다. 교회가 어떤 의식을 바꾸고자 한다면 그러기 위해 성령의 인도를 필요로 할 것이다. 또 교회의 결정은 공적이며 보편적 방법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
< 질문 95 > 이 모든 것에서 당신은 사제직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사제들에 대한 예수의 태도에 관한 본문들은 유다인들의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바치는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이나 혹은 미래 공동체의 직무를 언급하기 위해 ‘사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셨다는 어떠한 암시도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미래 공동체의 직무를 제정하지 않으셨다는 뜻이 아니다. 이 직무는 예수의 활동에서 비롯된다. 또 그리스도교의 직무 사제직은 성찬례와 밀접하게 관계되기 때문에 그것은 예수께서 최후만찬 때 행하신 것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사제직이라는 ‘전문용어’는 유다인으로서 예수 자신의 체험을 반영했을 것이다. 또 이미 유다인 사제들이 있었다. 후기 신약성서 시대에 우리는 ‘하느님 자신의 소유물’인 전 그리스도교 백성이 ‘왕의 사제직’으로 불린 것을 볼 수 있다. 이 사제직이 바치는 희생제사는 바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좋은 생활이다. 우리는 히브리서에서 예수 자신이 사제로 불리는 것도 본다. … ‘사제’라는 용어는 서기 200년경에 와서야 주교에게 적용되기 시작했으며 훨씬 후에 가서 비로소 장로에게도 적용되었다. 신약성서의 말만 사용하고자 하는 일부 개신교 교회들은 자기의 장로 등 성직자를 사제로 부르지 않는다. … 성찬례가 하나의 희생제사로 생각되었을 때, 성찬례를 주관하도록 지명된 사람(주교와 후기의 장로)이 곧 사제로 불려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제들은 희생제사에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 질문 96 > 그러면 ‘사제’는 ‘주교’와 ‘장로’에 덧붙여지는 용어인가?
- 나는 일부 개신교 교회들이 사제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언급했다. … 사목서간에 나오는 장로-주교는 그 직무에 있어서 자기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위해 덕행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이상적 모형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어떻게 가족을 관리하고 훌륭한 남편과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선택된 사람들이다. 이와 반대로 구약시대의 레위인 사제는 제물을 바칠 때 세속적인 것에서 전적으로 떠나야 한다. 그는 특별히 씻겨지고 특별한 옷을 입고 공동체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지극히 거룩한 분이신 하느님과의 접촉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제직이라는 용어가 그리스도교의 주교와 장지에게 장로에게 적용되기 시작했을 때, 세속에서 분리되고 일상적 생활양식에서 떨어져 나와 유일한 거룩함을 보존하라는 이러한 요구 중 일부가 불가피하게 장로-주교의 그리스도교적 이상의 일부가 되어야 했다고 본다. 사제들은 자신들이 사목해야 할 사람들의 생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성직자로서 일상적 생활과 문제들을 공유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거룩함 앞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공동체를 대표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제로서 어느 정도 분리되어 독특하게 하느님께 봉헌되어야 한다. … 성직자는 자신이 배출된 공동체와 동일시 될 수 있으면서도 하느님의 현존 속에서 그분을 섬기기 위해 분리된 존재인 것이다.
[ 21. 질문 97-100 : 베드로와 교황 ]
< 질문 97 > 당신은 교회의 지도적 기능을 논하면서 베드로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않았다. 초대 그리스도 인들은 베드로를 교회의 머리로 인정하려 했는가?
- ‘교회의 머리’ 라는 용어는 신약성서의 언어에서 특히 콜로새서와 에페소서에서 그리스도께 사용되었다. 교회는 몸이고 그리스도께서는 머리이시다. 우리는 이를 항상 분명히 해야 한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교리의 통찰에 따라 교황을 베드로의 계승자로 모시지만, 교회의 이러한 지도적 지위가 그리스도를 교회의 유일한 머리로 보는 일반적 그리스도교 믿음에 대한 우리의 동의를 대체하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 부분적으로 교황의 지도를 통해 교회의 수위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교황은 그리스도의 경쟁자가 아니다. 네 복음서 모두에서 베드로가 가장 자주 언급되고 가장 자주 말했다는 점에서 그는 예수의 가장 중요한 제자이다. 실상 모든 복음서에서 그는 자주 열두 제자단과 예수를 가까이에서 추종한 사람들의 대변인으로 나온다. 예수의 직무 기간 동안 이루어진 베드로의 활동에 대한 복음서의 묘사는 예수의 일생동안 그가 이 모든 것을 아주 탁월하게 수행했다는 것을 뜻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복음서에서 베드로가 주요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본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베드로의 탁월한 점은 활동을 통해 드러나는데 그것은 사도행전에 묘사되어 있다.
- 베드로의 생애 동안과 죽은 다음 유통된 증거자료를 볼 때 그는 여러 지역에서 사목적 지도의 상징이 되었다. 마태, 루카, 요한복음 모두가 베드로의 죽음 이후에 씌어졌다는 것이 가장 유력하고, 베드로에 대한 이들 복음서의 본문은 이 인물에 대한 1세기 말기의 사고방식을 밝히는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마태오복음(16, 17-18)에는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유명한 구절이 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터 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 진술에서 베드로는 예수를 그리스도, 살아계시는 하느님의 아들로 선포할 수 있도록 신적 계시를 받은 사람으로 격상되었다. 그는 그 계시와 선포 때문에 교회의 토대가 될 반석으로 묘사되었다. 루카복음(22, 31-34)에서는 예수께서는 최후만찬에 임해서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면서 베드로가 당신을 배반할 것을 예고하였고, 베드로를 위해 예수께서는 특별한 기도를 하셨다. … 요한복음(21, 17-19)에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고 그의 사랑을 시험하시고, 그 다음 그에게 양을 치는 목자의 역할을 할당하신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이미 착한 목자로서 예수의 유일한 수위권을 주장한 복음에서 대단히 중요한 구절이다. 베드로는 특별한 은혜로 예수께 대한 사랑을 통해 여전히 예수의 소유로 남아 있는 양떼를 치도록 승인을 받았다. 각기 다른 공동체를 위해 씌어진 위의 세 구절은 믿음. 선포. 사목적 배려와 교회 안에서 지속적 후원의 화신으로서 베드로의 상징적 의미를 확인한다.
< 질문 98 > 그러나 바오로는 베드로에게 대들지 않았는가? 바오로는 베드로의 수위권을 인정하려 했는가?
- 베드로가 교회의 유일한 지도자는 아니었다. 나는 다만 그가 일생 동안 열두 제자 중에서 가장 탁월했고 죽은 후에는 그의 모습이 교회의 창립과 사목적 배려 전체를 위해 거대한 상징적 가치를 지녔다는 것에 대해 모든 사람이 동의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진술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교회활동에 있어서 베드로의 역할은 한정되었을 것이다. … 베드로는 열두 제자들 가운데서 가장 탁월한 사람으로서, 야고버는 예루살렘 공동체의 지도자이면서 예수의 친척으로서, 그리고 바오로는 자신의 사도적 임무를 통해 이방인들의 개종 문제를 구체화시킨 위대한 이방인들의 복음선포자로서 각각 독특한 중요성을 가졌다. 이들 각 인물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에 있어서 서로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모두 우리가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부르는 것, 즉 할례 없이 이방인들을 교회에 받아들일 수 있다는 데에 동의했다.
- 바오로와 베드로가 갈등했던 상황은 두 가지 경우에 그러했다. 하나는 예루살렘의 상황으로, ‘코이노니아(공동체적인 삶)’에 대한 문제였는데, 이는 다행스럽게 예루살렘에서의 코이노니아는 보존되었다.(갈라 2,9) 또 다른 문제는 할례를 받지 않고 받아들여진 이방인 개종자들도 유다인의 음식 규정(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한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것을 금함)을 지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바오로는 이방인들이 음식 규정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반면, 야고버에서 온 사람들은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베드로는 그 논점이 자유롭다고 하면서 중립적 입장을 취했으나 공동체를 분열시키기보다 오히려 야고보에게서 온 자들 편에 서려고 했다는 것이다. 바오로는 베드로의 모든 견해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었을 것이고, 베드로도 바오로의 모든 견해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었을 것이다. … 바오로는 그리스도께 관한 선포의 본질적인 것들에 있어서 자신과 베드로와 야고버 모두가 같은 메시지를 선포한다는 것과, 그리스도인들이 믿어야 할 것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발현에 관한 것임을 인정했다. 오늘날 합법적 다양성이 그리스도교 안에서 인정되어야 한다면, 본질적인 것들에서는 일치해야 할 필요도 인정되어야 한다.
< 질문 99 > 당신은 신약성서에서 베드로가 주교로 불리지 않았다고 나는 베드로가 최초의 로마 주교라고 생각했다.
- 2세기 말 무렵부터 주요 도시 주교들의 목록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서 이레네오가 제시한 로마 주교들의 목록에서는 베드로가 첫 번째로 나온다. 2세기경 로마 교회는 단일한 주교와 다수의 장로들이라는 구조를 발전시켰고, 같은 세기 동안 다른 교회들도 이 구조를 발전시켰거나 발전 도중에 있었다. 그 이후 계속해서, 로마 교회의 지도자로 인정된 장로들은 특히 다른 교회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들이 취급되는 경우 주교로 불리었다. 단일한 주교 체제가 발전되기 전 로마에서 생긴 여러 문제들은 장로들의 집단에 의해 다루어진 것 같다. … 베드로가 60년대에 로마와 왔을 때 열두 제자들 중에서 첫 번째 제자인 그가 로마 교회에서도 가장 탁월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60년대 베드로의 동시대인들은 그에게 주교라는 말을 적용시키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2세기 말에는 로마 교회의 주교로 목록에 그의 이름이 실리게 되었을 것이다. 주교의 역할은 작은 규모의 집회를 관리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베드로의 중요성은 그것보다 훨씬 위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즉 그는 열두 제자들 가운데 첫 번째로서 재건된 이스라엘의 온전성과, 모든 그리스도교적 백성을 심판하는 하느님의 역할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 질문 100 > 가장 핵심이 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신약성서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를 교황으로 여겼을까?
- 우리는 ‘교황’이라는 전문용어가 발전하는데는 시간이 걸리고 후기 교회의 전문용어가 1세기의 것이 아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또 후기의 전문용어가 생겼을 때 그것의 의미는 첫 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한 것보다 더 구체적인 암시를 지녔을 것이다. 몇 세기 후에 ‘교황’이라는 용어가 로마의 주교를 지칭하기 시작했을 때, 이 용어는 로마 주교의 역사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발전을 드러냈다. 로마는 로마제국의 수도였고, 그래서 로마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의 교회가 되었다.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가 순교한 곳은 로마였다. 이렇게 로마는 매우 실제적 방법으로 그리스도교적 기억 속에 가장 중요한 두 사도의 유물과 유산을 상속하여 그 사도좌가 되었다. 특히 2세기에 로마의 장로들은 이단적 사상에 저항하고 그리스도교적 믿음의 순수성을 보존하는데 주목할 만한 역할을 했다. … 신약성서 시대인 60년대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질문은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를 교황으로 여겼을까?”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차세대 교회에서 일어난 교황직의 발전에 베드로가 본질적인 방법으로 기여한다고 여겼을까?”이다. 나는 베드로가 일생동안 일생 동안 맡았던 역할과 죽은 후에도 그에게 주어진 상징적 뜻에 따라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베드로가 죽고 바오로가 그리스도의 진리를 증언한 이 로마라는 도시의 주교가 교회의 보편성을 보호하는 베드로의 후계자(교황)라고 보는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 22. 질문 101 : 신약성서 시대 이후 교회는 얼마나 많이 변화했는가? ]
< 질문 101 > 당신의 말을 근거로 해서 본다면 신약성서 시대의 교회는 오늘날의 교회와 많이 달랐을 것 같다. 그렇지 않은가?
- 많은 점에서 그렇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모임을 가졌던 개인 집들은 지금의 교회 건물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또 비록 송가와 기도는 있었을지라도 당시의 모임 방식과 소위 전례라는 것은 오늘날과 달랐을 것이다. 그들은 세례와 성찬례를 가졌다. 그런데 우리의 세례 신학과 성체성사 신학은 신약성서 시대에는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을지 모르는 사상들의 혼합물일 것이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형태의 교회 지도체제를 가졌고 그것은 첫 세기말경 급속도로 발전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교구의 주교와는 여러 면에서 달랐을 것이다. 또 차이를 암시하는 다른 많은 특징이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교회는 시간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교회는 자기 신원을 그리스도로부터 얻지만 교회를 만드는 개인들의 필요와 생활양식에 따라 여러 세기에 걸쳐 변화한다. … 그런데 이상하게도 처 교회와 오늘의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변화보다 연속성이 더 감명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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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회에 생명을 주시는 분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주신 같은 성령이심을 우리는 믿는다. 기본적인 성사인 세례는 첫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러했듯이 우리에게도 하느님의 생명을 주며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만든다. 성찬례의 몸과 피는 첫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랬듯이 우리에게도 그 생명을 공급한다. 교회 관리방법과 사목적 배려를 베푸는 사람에게 부여되는 명칭은 변했을지 모르지만 그리스도께서 당신 제자들의 인격 안에 전해 주신 하느님의 왕국과 통치를 이 세사에 현존케 하려는 권위는 오늘의 교회에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적 문헌은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전서이다. 그것은 약 50년경에 씌여졌다. 이 문헌의 첫 다섯 절에 이미 하느님의 아버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에 대한 언급이 있다. 믿음의 활동, 사랑의 수고와 희망 속의 인내에 대한 언급이 이 구절에 있다. 신약성서 시대의 교회와 오늘의 교회가 많은 점에서 다를 것이라 추정하지만 우리가 같은 아버지, 같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성령을 선포하고 믿음. 희망. 사랑을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높이 평가한다는 점은 본질적으로 같다.
[ 부록 : 성서 근본주의자들이 가톨릭 신앙을 오해하지 않도록 표현하기 ]
- 가톨릭 신자들은 교리책에서 사용된 미사. 성사. 교황. 마리아와 성인들과 같은 신앙조목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조목들이 비성서적이라는 비난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교육은 받지 못했다. 근본주의자의 추궁에 대한 가톨릭신자들의 첫 반응은 교회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응답하는 것일지 모른다. 가톨릭 신자들이 이러한 주제에 대해 근본주의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성서적 언어로 말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될는지도 모른다. 가톨릭 신자들이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교리가 성서와 관련된다는 이해했다면 더욱 자신감을 가질 것이다. 또한 가톨릭 교리들이 성서적 분위기 안에서 이해될 수 있도록 표현되었다면, 성서 근본주의자들은 가톨릭 교리에 대한 자기 이해가 너무 단순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근본주의자들이 가장 자주 들먹이는 교리들을 10개 단락으로 취급하면서 가톨릭적 이해가 성서적 신앙과 관련되어 서술될 수 있는 방안을 설명하였다.
1. 성서의 충분성 대(對) 가르치는 교회
- 가톨릭교회는 성서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선포한다는 뜻에서 성서적 교회로 자처한다. 가톨릭교회는 성서가 증거하는 모세와 예언자들의 가르침과 사도들이 선포하는 예수의 가르침 안에서 하느님이 인간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당신을 계시하셨다고 고백한다. 가톨릭교회는 남자와 여자들이 하느님의 뜻과 구원의 은혜를 발견하기 위해 새로운 계시자나 특별한 어떤 계시들을 필요로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성서가 증거한 계시의 충분성을 인정한다. … 교회는 이 사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파라클리토(협조자)-영(성령)의 도구로 자처한다. 이 영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을 취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다음 시대에 진리의 길을 따라 인도하실 것이다.(요한 16,13)
2. 유일한 중개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께 대한 믿음 對 선행과 성인들에게 바치는
기도
-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 때문에 은혜를 베푸시어 의화(義化)와 구원이 왔다고 자기 백성에게 선포한다. 인간은 구속(救贖) 혹은 구원을 스스로 얻을 수 없다. 그것은 선행을 통해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하느님의 구속사업에 응답하여 하느님의 은혜에 힘입어 선행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시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성인들의 중개를 인정해 왔다면, 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성서적 명령을 교회가 이해한 것으로서 ‘우리’라는 말은 이 땅 위의 신자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하느님의 현존 속으로 간 천상의 성인들도 포함한다. 성인들 측의 중개는 하느님이 받아들이시고 한 분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최상의 중개에 연결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사도행전(4,12)에서 단언한 대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3. 예수 그리스도, 인격적 구세주 對 교회에 속함으로써의 구원
- 가톨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 구원을 위해 충분하다고 선포하는 한편,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구원 은혜가 자기를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시키도록 그리스도께 믿음과 헌신으로 응답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와 만나고 그분을 믿는 것은 가톨릭적인 사상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 백성을 속량하셨고(그것은 우리가 교회에 속하는 이유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붙어있음으로써 이 백성에 속한다.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온전함에 있어서 세례와 개인적 헌신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다.
4. 모든 이를 위해 일회적으로 바쳐진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對 사제들이 바치는 희생제사로서의 가톨릭 미사
- 가톨릭교회는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의 명령에 따라 전례에서 정기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빵을 쪼개고 그분의 피와 잔을 바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희생이 일회적이라는 히브리서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다른 희생 제사는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미사라고 부르는 최후만찬의 전례는 다른 시대와 장소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선포하면서 주님을 기념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할 가능성을 다시 현존하게 한다는 뜻에서 희생제사이다. 미사는 결코 십자가의 희생에서 분리된 희생제사가 아니다. 미사는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대체하거나 마치 십자가의 희생제사가 불충분한 것인 양 거기에 덧붙여진 새로운 희생제사가 아니다. 가톨릭교회는 예수께서 새로운 계약의 한 분 대사제이심을 주장한다. 가톨릭신자들이 성직자를 사제라는 명칭으로 부르는데, 그가 단순히 공동체만이 아니라 대사제이신 예수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미사가 예수의 단 한 번의 사제직 희생을 재현한다는 우리의 교리는 전적으로 성서적이다.
5.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對 구원을 베푸는 교회와 교회의 성사
-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신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내어주신 교회는 당신의 몸으로서 위대한 존언성과 중요성을 가지지만 그들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성사들 안에 활동하고 은혜를 베풀어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다. 성사가 사효적이라는 가톨릭적 가르침은 성사 자체가 그리스도와 독립되어 효력을 낸다는 뜻이 아니다. 성사의 효력이 성사를 주관하는 성직자나 관리인에게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은혜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성사 안에서 활동하신다.
6.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對 교황
- 로마 가톨릭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라는 몸의 머리이심을 믿는다. 어떠한 사람도 그분의 머리 역할을 무시하거나 그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교황은 그리스도와 독립적으로 혹은 그분과 경쟁해서는 아무런 권위가 없다. 신약성서에서 개별 교회를 지도하는 감독이나 주교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교황은 그리스도께서 온 교회를 지도하고 교회를 복음의 진리 안에 머물게 하는 데 쓰이는 도구로서 한 사람의 감독이다.
7. 모든 사람은 구속(救贖)을 필요로 한다 對 마리아 찬양
- 가톨릭 신앙에서 마리아는 아담의 다른 모든 후손들처럼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되어야 했다. 우리는 그녀를 다음 두 가지의 성서적 이유 때문에 공경한다. 1) 그녀는 주님이시고 하느님이신 예수의 어머니이시다. 2) 루카복음(1, 26-38)에 따르면 그녀는 예수의 신원에 대한 기쁜 소식을 듣고 “당신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말한 첫 사람이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실행해야 당신의 제자가 된다고 하셨고, 그녀는 이러한 기준에 따라 첫 제자가 되었다. 우리는 하느님이 그에게 특혜를 부여하셨지만,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제자직의 은혜로서 절대로 그녀를 신격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은 그분의 은혜로 아담의 죄에서 구원된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은 죽은 이들 가운데서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가톨릭신자들은 마리아가 한 천사에 의해 계시된 대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첫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아담의 죄에서 전적으로 자유롭게 된 첫 사람(원죄없는 잉태), 몸으로 들여 올려진(성모 승천) 첫 사람이었음을 믿는다.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와 승천이라는 교리는 신약성서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교리들이 마리아를 첫 신앙인으로 본 루카 복음사가의 묘사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예수의 어머니가 특별히 존경을 받으셨다는 요한복음사가의 묘사와 일치한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8. 그리스도의 재림 對 왕국을 성취하는 인간적 선행
-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왕국을 완전히 확립하고 세상을 심판하셔야 한다는 뜻이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워질 것이고 인간의 노력으로는 얻을 수 없다. 하느님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성취하실 때에 대해서 우리는 사도행전(1,7)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침을 믿는다.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위로 정하신 그 시기와 때를 너희가 알바 아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모든 인간적 추측들은 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9. 성서의 사적 해석 對 교회의 감독
- 우리 가톨릭 신자는 교회가 성서의 해설자라는 원칙을 과장하지 않는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성서의 어떤 본문이 그 저자에게 의미한 바를 정의한 경우가 비록 있다 하더라도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교회는 성서해설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학문적 방법을 동원하여 개별 구절들이 씌어졌을 때 그것이 뜻한 바를 찾아내도록 그들을 격려하고 신자들에게는 영적 양식을 얻기 위해 성서를 읽도록 격려한다. 가톨릭 신자 들을 위한 교회의 성서 해설은 후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생활을 위해 성서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다룬다. 교회는 성서에 영감을 주신 영이, 온 신자 공동체의 믿음과 도덕적 행위에 대해 그릇된 길로 나가지 않도록 하실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톨릭교회는 성서에 대한 성찰에서 유래한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의 오랜 전통으로부터 이러한 지도를 받을 것이다.
10. 성서의 문자적 무류성 對 구원 의도에 의해 제한된 무류성
- 로마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의도하신 진리를 성서가 오류 없이 전달한다고 가르친다. 교회는 이러한 뜻으로 성서의 무류성을 단언하면서 또한 성서 저자들이 전혀 생각지도 않은 문제들에 대해 성서의 대답을 요구하는 현대의 시도들에 반대한다. 교회는 전혀 다른 상황의 성서 본문들을 무조건 우리 시대에 적용하려는 시도에 반대한다. 성서에 대한 가톨릭적 관례와 ‘글자 그대로의’ 해설 사이의 갈등 중 어느 것들은 바로 이 점에 원인이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자기 입장이 자의적 성서 해설과 충돌하는 것이 전혀 없다고 믿는다. 교회는 성서 저자들의 시대에 그 자신들의 능력을 넘어서는, 과학적이거나 역사적 진술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서 해설을 이용하는 것에 반대한다.
#128 독서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129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 책 이름 :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온 누리와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
- 지은이 : 엔조 비앙키
- 옮긴이 :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펴낸데 : 성서와 함께
- 지은이 프로필 : 수사, 이탈리아 보세 수도승 공동체의 창설자이자 원장, 성서학자, 수사
- 출판일(발행일) : 2005. 12.21. - 48p
- 내 용 : 그리스도교가 생태와 환경 보존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등
[ 표지의 글 ]
- 오늘날 이 지구와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의식하는 역사상 최초의 세대이다. … 진실인즉슨, 우리가 온 누리와 그 안에 가득 찬 것들과 맺는 관계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 그래서 성령께서는 우리가 존중과 사랑에 찬 태도로 물질계와 관계를 맺도록 요청해 오고 있다.
[ 차 례 ]
머리말
1.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작품인 온 누리
2. ‘동료 피조물’로서 우리와 공동체를 이루는 창조계
3. 구원을 기다리는 창조계
맺음말
[ 머리말 ]
- 하느님이 지으신 온 누리를 가꾸고 지키는 일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기 시작한지는 이미 오래다. 2002년 6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와 교황은 ‘창조계의 보존’이라는 주제로 선언서를 함께 발표하였고, 그리스도교의 여러 교파들은 여러 차례 ‘우리가 자연을 거슬러 범한 죄’를 고백하고, 인간이 온 누리와 그 안에 가득 찬 창조물들과 맺는 관계가 빗나가고 있음을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상시시킨바 있다. 교회들은 “지구의 많은 지역을 오늘날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량한 곳으로 만드는 생태계의 혼란에 직면하여”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학자들 역시 생태 문제에 관한 그리스도교적 입장(讀法)을 제시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 온 누리에 대한 관심, 인류와 자연의 관계에 대한 관심은 성경에 근거하는 신앙에서 솟아나는 필연적 요구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스도교에는 생태 운동을 해야 할 절대적이고도 구체적인 특유의 명분이 있다. 그리고 생태 운동은 그리스도교의 정의와 평화라는 큰 주제들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정의와 환경문제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자연의 소출을 공평하게 나눈다는 것과 자연을 존중한다는 것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인간의 생활과 우주 생명력의 질이 떨어지면 땅은 황폐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인간 생활의 질은 우주의 생명력에도 달려 있다. 인간은 우주의 일부로 우주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바다와 강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다니 3,78)
[ 1.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작품인 온 누리 ]
- 사도로부터 전승된 신앙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저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신경의 이 첫 조목은 창조가 우연히 이루어진 것도, 그렇다고 필연의 산물도 아니란 사실을 선포하고 있다. 창조는 사랑과 자유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 뜻의 결실’이라는 말이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늘과 땅”(창세 1,1 외), “만물/모든 것”(시편 8,7 외)이라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여기서 온 누리는 창조주 하느님이 원하시어 지은 피조물로 늘 사람과 맺는 관계 안에서 소개되고 있다. 신약성서에서도 ‘하늘과 땅’(사도 17,24 외), ‘모든 것’(요한 1,3 외) 등의 표현이 자주 나온다. 성경은 세상을 늘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나아가 사람이 한 부분으로 참여하고 있는 우주로 보고 있다. 창조는 하느님의 유일무이하고 고유한 활동이다. 리옹의 이레네우스는 하느님께서 “놀라운 일을 베풀어 주실 대상이 되는 누군가를 당신 앞에 두시기 위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 자연은 그 자체로 신성을 지닌 것도 아니며, 세상 자체가 하느님이거나 하느님이 자연과 동일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과 당신 창조물 사이에는 다르다는 타자성(他者性)의 거리가 엄존한다. 세상은 다만 하느님의 것이다. 세상은 하느님께 속한 피조물이요, 잘 돌보며 책임을 지고 지켜 나가라고 사람에게 맡겨진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모상’인 사람은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기꺼이 창조하신 세상, 그분께서 보시고 “아름답고 좋더라”(창세 1,4.10.12 외)고 감탄하신 그 세상을 지켜나갈 역할을 맡은 것이다. 하느님께서 당신 피조물을 보시고 “보시니 참 좋았다”라고 경탄하신 것이라면, 사람도 역시 제게 맡겨진 창조계를 찬미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온 누리를 향해 경탄하셨고, 온 누리 역시 자기 몸에 스며든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며 하느님께 화답한다. 그리하여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창공의 그분 손의 솜씨를 알리며”(시편 19,2), “모든 조물이 주님을 찬송하고”(시편 145,10), “강들은 손뼉치고 산들도 함께 환호하며”(시편 98,8)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 숲의 나무들도 모두 환호한다”(시편 96,11-12). 이처럼 믿는 이들의 전례 거행이 있기 훨씬 전 ‘한처음’부터 ‘전 우주가 거행하는 전례’가 있었다.
- 우리는 단지 구약을 통해서만 창조를 알아듣기보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약의 눈으로 창조를 보면서, 창조가 단순히 하느님의 작품일 뿐 아니라 삼위(성부.성자.성령)일체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들어야 한다. 사실 창조는 아버지께서 성령의 능력 안에서 아드님을 통해 이루신 과업이다. … 아드님은 하느님 창조 활동의 중개자로서, 온 누리의 유형무형한 모든 것의 토대가 되는 분이시다. 창조는 “그분(아드님)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콜로 1,16) 아버지께서 하신 일이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다”(요한 1,3-4). 바로 그분이 “만물의 상속자”(히브 1,2)시니, 모든 피조물은 그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아져 마침내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이기”(1코린 15,28) 때문이다. 온 누리는 구약성경이 언급하듯 오직 하느님의 작품이요 창조물인 동시에 그분께서 현존하시는 장소요,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의 구원과 영광이 충만이 드러나야 할 곳이다. 우주는 아드님을 통해 하느님과 맺는 혼인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아드님께서는 사람이 되셔서 인간으로서 창조된 당신의 몸 안에 충만한 신적 생명이 머물게 하시기 때문이다.
- 창조는 또한 창조주 하느님의 능력인 성령의 업적이기도 하다. ‘한 처음’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으신 것은 당신 성령(하느님의 영)을 통해서였다(창세1,2참조). 그리고 모든 것을 존재케 하신 것은 당신 입에서 나온 말씀을 통해서였다. 시편 시인은 “당신은 숨을 내보내시면 그들은 창조되고, 당신께서 땅의 얼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시편 104,30)라고 노래하였다. 하느님께서는 무(無)를 향하여 숨을 내쉬신다. 혼돈 위에 당신의 얼을 내려 보내시고 당신의 숨결로써 물이 생명의 원천이 되게 하시니, 우주의 생명, 창조가 이리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빚으신 진흙에 생명을 주신 분도 같은 성령이시다. 그래서 리옹 이레네우스는 사람의 창조를 “하느님의 두 손” 즉, 말씀과 성령의 작품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이 지구와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의식하는 역사상 최초의 세대이다. 이 의식은 불행이도 오염된 대기와 물, 형편없이 파헤쳐진 땅, 점점 넓어져 가는 사막 등, 너무도 가까이 다가온 명백한 위협으로부터 생겼다. 우리가 온 누리와 그 안에 가득 찬 것들과 맺는 관계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 움직이게 하는 성령의 힘을 온 누리에서 더 이상 알아 뵐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우리가 존중과 사랑에 찬 태도로 물질계와 관계를 맺도록 요청해 오고 계신다.
- 오늘날 우리는 창조계를 한낱 소비를 위한 대상으로만 간주한다. 창조계는 한낱 우리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대상, 한계도 규칙도 없이 무한히 추구되는 우리 편의를 위한 도구가 되어 버렸다. 성령께서도 온 누리에 하느님의 현존을 지속시키고 뚜렷이 해 주시는 창조의 중개자이시다. 성령께서도 자기를 비우고 낮추시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분 역시 말씀처럼, 그리고 언제나 말씀과 함께, 세상 안에 몸을 풀고 우리 안에 거처하셨다. 성령은 모든 조물들에게 생명을 주고 완성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여 하느님 안에서 거룩한 변모의 순간에 도달하도록 해 주는 하느님의 현존이시다. 세상 안에 성령의 이런 현존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하느님 안에 있는 존재가 된다. 영원으로부터 창조계에 현존하고 계신 성령께서는 세상 한가운데 살던 인간 예수님 위에 충만히 내리셨고, 마침내 교회에도 내리셨다.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어 새 하늘 새 땅을 열어 주시기를 간청하고 계신다. 성령께서는 땅의 얼굴을 새롭게 하시며 모든 피조물을 새롭게 만드신다. 그분은 온 누리에 생기를 주시고 죽은 이를 살리신다. “주님의 성령께서는 온 누리를 가득 채우는 분”이라는 그리스도교의 이 진리는 그 자체로 우리가 애정과 관심으로 온 누리를 섬길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 2. ‘동료 피조물’로서 우리와 공동체를 이루는 창조계 ]
그리스도인이 온 누리를 가꾸고 돌보아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온 누리가 사람의 동료 혹은 동반자로서 사람과 ‘동료 피조물 공동체’를 이룬다는 보는 성경의 전망에서 온다. 성경은 하늘과 땅 그리고 모든 피조물이 고정불변으로 멈추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피조물은 시간과 공간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은 시간 안에 역사 안에 현존한다. 여기에는 사람과 함께 동물, 식물들 그리고 온 누리의 모든 것이 다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셨으며, 모든 것이 다 그분의 은혜로운 호의(好意)의 소산으로서 그분 지혜로 말미암아 조화를 이룬다.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선하고 아름다우며 좋다고 선언하셨다. 창세기에서 창조의 정점에 있는 사람(아담)이 땅 혹은 흙으로 빚어졌다고 기록된 것은, 땅과 사람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함이다. 사람은 참으로 ‘땅의 존재’이니, 땅으로부터 땅으로 빚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땅이 바로 사람의 어머니, 모태(母胎)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뿌리인 땅을 결코 잊을 수 없으니, 그것은 그가 땅에서 왔을 뿐만 아니라 다시 땅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창세 3,19). 땅은 하느님의 피조물이며 사람은 그 땅에서 나온 피조물로서, 땅과는 ‘동료 피조물’의 관계가 있다.
- 하느님께서는 동물들도 사람처럼 흙으로 빚으시고,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도록 즉시 사람에게 데려다 주셨다. 비록 동물들이 사람과 동등한 관계는 아니라 해도, 이처럼 처음부터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는 운명을 지녔다. 사람이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 부르게 하셨으니, 동물들은 사람에게 종속되었고, 사람의 동료요 협조자가 되었다. 그런데 친교로서의 이 ‘동료 피조물’ 관계는 오직 이원성(二元性) 혹은 타자성(他者性)의 창조로서만 완성에 이르게 된다. 바로 여기에 여자가 창조된 것이다. 성경에서 여자가 남자로부터 나왔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보다 여자와 남자가 평등하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이 사실은 더 나아가 여자와 남자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뜻하며, 그리하여 이 둘 사이에 대등한 관계, 명실상부한 친교가 가능해진다. 남자와 여자는 이처럼 하느님의 뜻으로 서로 ‘동료 피조물’로 창조되어 하나의 몸을 이루도록 부르심을 받았다(창세2,24). 창세기 1장에서 하느님께서는 날짐승과 물에 사는 생물들에게 복을 내리신다(창세 1,22). 그런데 똑같은 복을 사람에게도 내려 주시는데(창세 1,28), 이 사실은 사람과 동물들이 세상에 함께 살고 번성하면서 서로 어떤 깊은 유대를 맺는지 잘 보여준다. 식물과 동물의 창조는 ‘좋은’ 일로 그리고 사람의 창조는 ‘더 좋은’ 일’드러나면서 사람은 다른 피조물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세상은 사람이 거처하는 장소요 집이 된다.
- 사람이 하느님으로부터 창조계를 ‘수호하고 양육할 분명한 책임’을 부여받는 것은 바로 이 동료 피조물과 맺는 친교의 맥락이다. 사람은 하느님과 비슷하게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되었으니(창세 1,26), 이는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모상이요 그분을 보여주는 그림이 되기 위함이다. 이는 결국 온 누리 안에서 하느님의 ‘보조 경영자’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이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28). 그러므로 사람은 번성해야 하고 살아야 하며, 생명의 가치를 확인해 주고 죽음을 거슬러 삶을 노래해야 한다. 여기서 ‘지배하다’, ‘다스리다’라는 단어는 왕이 평화와 충만한 삶을 위해 자기 백성을 이끌며 통치하는 행위를 뜻한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과연 창조계의 주인이라면, 그것은 주님이신 ‘하느님의 청지기/위임 관리자)’라는 의미일 뿐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창세 2,15). 즉 땅은 사람의 소유가 아니며, 여전히 하느님께 속해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땅을 지배하고 동물들을 다스라는 이 명령은 육식을 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사람이 하느님께 음식으로 받은 것은 온 땅 위에서 자라는 모든 풀과 씨, 그리고 열매(창세 1,29)였다. 사람은 동물적 생명을 지닌 모든 것을 먹거리로 삼을 수 없었다. 온 누리는 서로의 생명을 존중하는 관계 안에서 살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사람 안에는 인간화되길 기다리고 있는 짐승스러운 부분이 존재하고 있다. 짐승들을 다스린다 함은 그들이 폭력을 행사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는 뜻으로서, 사람 마음의 문 앞에 도사리고 앉은 동물성 혹은 죄를 제압하라는 말과(창세 4,7)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폭력 본능과 싸워 이기라는 일깨움이다.
[ 3. 구원을 기다리는 창조계 ]
- 그리스도인이 생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강조해야 할 세 번째 이유이다. 창조는 하느님의 영원한 말씀으로부터 기인한다. 그런데 이 영원한 말씀이 육화되었는데, 이는 영원한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피조물이 되셨다는 뜻이다. 그리고 바로 이 말씀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인간성을 통하여 구원을 가져다 준 것이다. 그런데 구원은 단지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모든 피조물을 위한 구원이라는 사실, 이것이 정작 중요하다. 사람이 모든 피조물과 동반자 관계라는 사실, 그리고 그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지위에 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사람의 구원과 온 누리의 구원이 서로 깊은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사람의 구원 여정이 창조계 전반의 구원을 결정짓는다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구원을 향한 간절한 기다림과 희망, 그리고 욕구를 지니고 있는데, 이 구원은 오직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소명을 실현할 때에만 가능하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될 때, 비로소 창조계 역시 거룩하게 변모할 것이며, 새롭게 되어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탄생할 것이다.
- 온 누리는 죽음과 부패의 노예살이에 내팽개쳐져 있었지만 파스카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운에 노출되고 접촉되었다. 모든 피조물을 그리스도 단 한 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우고, 그리하여 거룩하게 변모한 온 누리가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땅“(2베드 3,13)이 되도록 하는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과업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가꾸고 돌보아야 할 ‘하나의 동산’을 주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조물들의 주인이요 왕으로서, 다시 말해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온 누리를 생명의 공간으로, 모든 조물이 의롭고 평화로우며 아름답게 거처하는 집으로 만들 책임을 부여 받았다. 묵시록에 따르면 마지막 때에 찬란하고 멋진 도성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그 안에 한 동산이 나타나리니’(묵시21-22장/새 하늘과 새땅 참조), 이 아름다운 도성을 지혜롭게 건축하는 임무는 사람에게 맡겨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시도록 온전히 준비하면서 이에 협력해야 한다.
- 오늘날 우리는 ‘다른 사람’의 ‘다름(他者性)’을 존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다름’ 역시 존중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자기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자기 안으로 흡수 합병시키려 한다. 이 시도에 저항하여 반대로 사람을 자연 안에 흡수시키려는 태도가 나타나게 되는데, 우리는 이것이 이교적 유혹임을 식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자연의 요소들이 행사하는 힘과 유혹으로부터 해방되었듯이 자연에서 가해지는 불안과 번민으로부터도 영원히 해방된 사람이다. 하느님을 경배하는 일과, 하느님 앞에서 온 누리에 이름을 지어 주면서 땅을 가꾸고 돌보는 일은 종국적으로 같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책임감은 이 사실을 자각하는 데서도 생긴다. ‘하느님 경배와 땅의 경작’ 사이의 ‘일치’, 바로 이것이 그가 실현해야 할 궁극적 소명일 터이다. 이렇게 그리스도교 종말론은 창조계를 향한 인간의 책무를 힘 있게 가동시켜 준다. 왜냐하면 종말론은 구원이 온 우주적 성격을 띤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역사의 대상에는 물질계도 반드시 포함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 맺음 말 ]
- 성경을 보면 물론, 온 누리를 돌보고 지키며 구원하는 것은 모세가 받은 율법 이전에 이미 사람에게 주어진 계명으로 뚜렷이 드러난다. 안식일의 휴식계명과 함께, ‘동산을 돌보고 가꾸라는 계명’도 있는데, 이것은 사람들 모두에게 주어진 계명이다. 사람은 온 누리를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대리인으로 살면서 온 누리의 생명을 드높일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일그러뜨리고 착취를 일삼으며 지배자로 군림할 것인지 모름지기 결정해야만 한다. 사람이 단지 하느님과 형제들 그리고 자기 자신을 거슬러서만 죄를 짓는 것은 아니다. 땅을 황폐하게 만들 때, 사람은 자연을 거슬러서도 죄를 짓는다. 첫 창조 때 아담은 죄를 범하면서 창조계를 거슬러서도 죄를 범했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러나 ‘새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조계와 훌륭히 조화되는 삶을 모법으로 사셨다. 그분이 메시아로서 하신 활동은 단지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고 창조계와 맺는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수님께서는 땅을 사랑하셨고, 땅에 충실한 사람으로 남으셨다. 그분은 심오한 자연의 관상가이셨다. 자연과 동물들 그리고 사람의 노동, 자잘한 일상사들과 깊은 조화를 이루어 사셨고, 자연을 관상하면서 거기서 가르침과 위안을 얻을 줄 아는 분이셨다. 그분은 모든 조물 안에 깃든 신음과 탄식에도 응답할 줄 아는 분이셨다. 그분은 단지 사람들에게만 “착하고 아름다운 목자”(요한 10,11)로 머물지 않으셨다. 그분은 자연에게도 바로 그런 목자였다.
- 그분을 뒤 따르는 우리 역시 이런 분에게서 배워야 한다. 점점 “넓어져 가는 사막”(니체)과 점점 황폐해져만 가는 대지 앞에 서서, 조물들의 심장부에 새겨진 “조물들의 글씨”를 판독하는 법을, 그리고 “조물들의 눈물”(로마 8,22)뿐 아니라 “조물들의 찬미”(시편 19,2-5) 외) 도 알아보는 법을 배워야 겠다. 그런데 우리로 하여금 조물들을 향한 이런 깊은 눈길을 지니게 해 주는 뛰어난 방편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성찬(성체성사)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성찬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생태계 보전을 위해 헌신해야 할 이유를 가장 잘 가르치는 스승이다. 오직 성찬의 삶을 사는 사람만이, 창조계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로 알아듣는다. 오직 성찬의 삶을 사는 사람만이, ‘동료 피조물’들의 공동체인 온 누리가 모든 피조물의 만물이신 그리스도의 몸 안에 취하여져 성찬의 물질적 재료가 됨을 알아듣는다. 오직 성찬의 삶을 사는 사람만이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1코린 11,26),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 모든 것이 되실”(1코린 15,28) 바로 그날에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릴 줄 안다. … 영원한 생명이신 아드님 그리스도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질 온 누리의 구원이시다. 그 구원은 바로 온 누리의 거룩한 변모이다.
#129 독서 메모 끝. -------------------------------------------
[ 금주의 독서 메모 ] #129 와 관련하여 공동의 집(지구)을 돌보는 것에 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246개 항이수록된 책 ‘찬미 받으소서’(독서 메모 #95)를 링크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찬미 받으소서’ ] -> 바로가기 클릭
[ 차례 ]
‘찬미 받으소서’ 등 서문 : (1-16항)
제1장 :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17-61항)
제2장 : 피조물에 관한 복음(62-100항)
제3장 :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101-136항)
제4장 : 통합 생태론 (137-162항)
제5장 : 접근법과 행동 방식 (163-201항)
제6장 : 생태 교육과 영성 (202-246항)'두 가지 기도문
#129 독서 메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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