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의 독서 메모 ] 91권-95권
- 금주의 독서 메모 091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2.11.13.
[ 책 이름 : 신부님은 왜 큰 성체를 드시나요? ]
- 지은이 : 홍문택, 그림 :고우영
- 지은이 프로필 : 1982년 사제 서품, 1982~1986년 : 길음동, 명동, 미아3동,
고덕동성당
사목(보좌, 주임), 1992년 평화방송 평화신문 주간 등, 1997년 가톨릭
출판사 사장, 2002년 목5동성당 주임 등, 저서로는 그림동화집 1, 2, 3집 등 다수
- 펴낸데 : 가톨릭출판사, 출판 : 2005. 2.24, 179p
- 내용 : 교리책 밖의 교리 60가지 이야기(4집중 제1집)
* 귀염둥이 분도(베네딕토)와 신부님간의 대화 형식
[ 표지의 글에서 ]
성수, 딱 한번만 더 찍으면 안 될까요?
주일미사 빠지면 왜 주님의 기도 33번
하지요?
왜 포도주에 물을 섞나요?
이왕이면 밀떡 대신 절편이나 바게트로 쓰시면
안 되나요?
신부님은 왜 예수님의 몸을 쪼개시나요?
원래 제대 위 십자고상은 어디로
향해 있어야 했나?
제대 촛불이 홀수다 홀수.
주교님 지팡이는 어디로 향해 있나?
헌금 대신 연필 한 자루 봉헌해도 될까요?
성물 축복 - 두 번도 받는다? 신부님,
남자가 여자 세례명 가져도 되나요?
신부님도 고백 성사 보세요?
[ 책을 내면서 ]
-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기쁜 일인지 알리고픈
바람에서 교리책 밖의 교리 이야기들을 묶어 보았습니다. 쉽게 읽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을 만들자고 옷 여러 벌을 입혀 주신 고우영(요셉) 화백님, 내용을 꼼꼼히
감수해 주신 가톨릭대학교 교수 정의철(다마소)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 홍문택 신부
참고 : 질문 < ? / ! > : 귀염둥이 분도 등 , 대답 + : 신부님 * 엄마, 누나, 수녀 등
< 1. 미사 중에 성호는 몇 번 긋나요? > p11
+ 성호경은 보통 기도를 시작할 때와 마칠 때 바치는 기도이므로, 미사 때도 2번
하면 된단다. 묵주기도나 십자가의 길 기도 바칠 때도 마찬가지지.
< 2. 전례 때에도 왼손잡이는 고달퍼!! >
+ 전례에선 항상 오른쪽이 중심이죠. 십자성호를 그을 때는 물론이고, 성체를 집을
때와 성혈을 마실 때도 모두 오른손으로 하죠. 불편하더라도 오른쪽을 사용하세요.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 3. 미사 때 다른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
+ 미사 시간에는 미사만 하는 것이 맞단다. 미사 시간에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은
옳지 않아요. 미사는 하느님께 드리는 가장 큰 기도이기 때문이야. 모든 기도 중에서
미사가 대장 기도(으뜸가는 기도)다.
< 4. 고해 성사도 다 때(?)가 있대요 >
+ 미사 중에 고해 성사를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단다. 미사 시간에 고해 성사를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주는 거야. 미사는 자기 죄를
다 고백하고 보속한 후 바치는 게 제일 좋은 거야.
< 5. 성수, 딱 한 번만 더 찍으면 안 될까요? >
+ 성수(聖水)는 성당에 들어설 때 한 번만 찍는 거야. 우리가 성수를 찍고 성호경을
바치는 것은 예전의 더럽고 오래 된 죄를 씻고 깨끗한 마음으로 기도를 바치겠다는
뜻에서 하는 거란다. 성수대에 있는 성수 찍을 때 하는 기도를 바쳐 봐. “주님,
이
성수로 저의 죄를 씻어 주시고 마귀를 몰아내시며 악의 유혹을 물리쳐 주소서. 아멘.”
< 6. 주일 미사에 빠지면 왜 주님의 기도 33번을 하지요? >
+ 미사에 빠졌을 땐 대신 다른 기도를 바칠 수도 있어. 그걸 대송이라고 하는데,
대송으로 주님의 기도를 33번
바치면 된다. 미사 다음으로 완전한 기도가 주님의
기도니까. 33번은 33년의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며 바치는 것을 의미해. 주님의
기도를 바치기 어려울 때는 대신 다른
좋은 일을 하는 것도 가능해. 예를 들면 선행,
성서나 영적 독서 또는 묵주기도를
바치거나 성체조배를 하는 것도 좋겠다.
< 7. 왜 포도주에 물을 섞나요? >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병사들이 예수님이 진짜 죽었나를 확인
하려고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는데 그 때 거기에서 물과 피가 함께 나왔거든. 그래서
미사시간에 신부님이 포도주에 삼분의 일이 넘지 않을 정도의 물을 섞는 거야. 이는
물을 조금 섞는다는 뜻이지. 여기서 포도주는 신적인 것을 상징하고 물은 인간적인
것을 상징한단다.
< 8. 이왕이면 밀떡 대신 절편이나 바게트로 쓰시면 안 되나요? >
+ 성체를 만드는 밀(제병)은 생명을 지키는 재료이고, 포도는 생명을 상징하는 과일
이란다. 거기엔 어떤 것도 넣지 않은 순수한 것이라야 해. 그래서 다른 음식과 구별해야
하는 거야.
< 9. 신부님은 왜 큰 성체를 드시나요? >
+ 미사 중에 먼 곳에 있는 신자들까지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큰 제병을 사용
하는 거야. 그래서 큰 성체를 드는 거고, 신부님도 성체가 크면 쪼개서 모신단다.
그리고 신자들이 성체를 영하기 좋도록 적당한 크기의 작은 성체를 준비하는 거란다.
< 10. 왜 뒤에 앉은 사람에겐 쪼그만(쪼갠) 성체를 주시나요? >
+ 간혹 성체를 영할 신자가 많은데, 성체가 부족하면 쪼개서 나눠주는 거지. 그러니
뒤에 나오는 신자가 작은 성체를 영하게 되는 거란다. 성체가 크건 작건 예수님 몸이란
점은 마찬가지야. 성체의 크기는 문제가 되지 않아.
< 11. 꿀통형! 식인종처럼 성체 씹어도 돼? > p38
+ 성체는 입 안에서 천천히 녹여 넘기는 것이 좋아. 하지만 성체가 크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조심스레 씹어 모실 수도 있지. 가장 중요한 건 예수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갖는 거란다. 성체는 다른 음식 먹을 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모시는 거야.
< 12. 신부님! 처음부터 미사 참례 안하구 덥썩 성체 모셔도 되나요? >
+ 미사에
처음부터 참례하고 성체를 모셔야 옳지. 그래야 말씀도 듣고 성체도 모시는
온전한 미사 참례가 되는 거야. 하지만 지나가다가 우연히 야외 미사에 참례하게 돼도
성체를 모실 수는 있어. 단 주님을 모실 마음이 뜨겁다면 더 늦어도 준비 기도하고
모실 수 있단다.
< 13. 앞으로 1시간, 뒤로 15분 배고파야 한다?! >
*(m) 성체를 모시려면 공복재라고 하는 것을 지켜야 한단다. 공복재란 성체를 모시기
1시간 전과 성체를 모신 후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배를 비우는 거란다. 그건
예수님의 몸을 우리 마음에 조금 더 순수하게 모시기 위해서야. 성체를 모시기 위해
다른 음식을 먹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님과 같은 마음과 행동이 아닌 것으로부터
깨끗이 마음을 정리하는 게 더 중요하단다. 그래서 마음을 비운다는 의미로 공복재를
공심재라고도 한단다.
+ 1시간 그리고 15분이란 얘기는 성체 모시는 시간부터 따지는 거야. 미사시작, 미사
마침 시간이 아니란다. 즉, 성체 모시기전 1시간, 성체를 모신 후 15분간 공복재를
지킨다는 얘기란다.
< 14. 신부님은 왜 예수님의 몸을 쪼개시나요? >
+ 미사를 드릴 때 신부님이 성체를 쪼개는 건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하고, 빗금 친 부분
에서 떼어 낸 작은 조각을 성혈에 넣는 것은 몸과 피의 합쳐짐, 즉 예수님의 부활을
의미하는 거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의미는 빵을 나눔으로써 사랑과 일치를
다지고, 빵이신 예수님을 받아 모심으로 한 몸을 이룬다는 뜻도 있단다.
< 15. 신부님! 왜 성체를 두 번 주세요? >
+ 오늘 우리가 미사를 드린 곳은 성당도 아니고 감실이 있는 것도 아니잖니. 그렇다고
남은 성체를 아무 곳에나 모셔 둘 수는 없고, 그래서 남은 성체를 모두 모셔야 했던
거란다. 성체의 크기나 양은 많건 적건 중요하지 않아.
< 16. 신부님은 제대 주방장 같아요 >
+ 동그란 접시는 성반이란다. 성작 수건으로 성반을 닦는 것은 혹시라도 성반에 가루로
남은 성체가 있다면 다시 정성스럽게 모기 위해서야. 모은 다음엔 사제가 영하는 거지.
< 17. 왜 감실에 예수님 가둬 두시나요? >
+ 감실에 성체를 모셔 두는 건 성체를 모시고 공경하기 위한 거란다. 그리고 급히
성체를 모셔야 하는 환자들을 위해서 대비하는 것이기도 해. 성체를 축성하려면 미사를
봉헌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 18. 성체 분배 아무나 택배(?)해도 되나요 >
+ 성체를 분배하는 것은 반드시 사제의 위임을 사람이 해야 해. 사제의 위임 없이도
성체를 병원이나 가정까지 분배하려면 부제품 이상을 받아야 한단다. 성체에 대한
지식과 존경심 등을 알아야 하고 그에 맞는 생활을 하는 인정받은 사람만이 분배할 수
있기 때문이야.
< 19. 독서 봉독은 신자들을 쳐다보며 하는 게 아니예요 >
+ 독서를 봉독할 때는 성서 위에 손을 얹거나 두 손을 합장한 자세로 해야 한단다.
독서나 복음을 읽는 것은 자신의 의견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니까 대리자 입장에서 예의를 갖춰 읽어야 해.
< 20. 독서 내용 따라 읽는 방법도 달라야 >
+ 독서의 내용이 교훈적인 내용이거나 명령조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 상황에 맞는
억양과 어투로 읽어야 해. 그리고 중간에 대화체가 있는 경우, 어느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구분해 읽는단다. 독서를 잘 읽는 사람은 사람들의 시선을 압도하는데
그건 그 사람이 그만큼 그 독서의 내용에 대해 잘 소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신자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지. 그러기 위해선 무엇
보다 여러 번 읽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해.
< 21. 독서 . 복음 그냥 듣기만 하라구요? > p67+ 신자들은 미사 때 독서와 복음을
보는 게 아니라 잘 들어야 하는 거야. 물론 너처럼 그날 성서 내용이 담긴 매일 미사
책을 가져와서 보는 사람들도 있지. 하지만 원래 미사 중에 독서와 복음은 듣는 것이
우선이란다.
< 22. 빨간 리본의 비밀 >
+ 미사 시간에 두 개의 주수병 중 하나에만 빨간 리본이나 테이프가 묶여 있는 것은
포도주가 담겨 있다는 표시야. 백포도주는 간혹 물과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이야 네가
봤다는 주수병도 물과 포도주를 구분하기 위해서 A, V로 표시한 거야. A자는 물을
상징하는 라틴말의 첫 자를 딴 것이고, V자는 포도주를 상징하는 거지.
(참고 A: Aqua, V: Vinum)
< 23. 감실에 웬 커텐(?)이 >
+ 요즘은 드물기는 하지만 지금도 감실을 천으로 가려
놓는 성당들이 있단다. 그 천은
미사의 전례에 따라 바뀌는데 그 날 신부님이 입으시는 제의 색과 같은 색이란다.
빨간색은 순교자 성월이나 성령 강림 대축일에, 녹색은
평화를 상징하는 색으로 연중
주일에, 흰색은 예수 부활 대축일과 주님 승천 대축일,
예수 성탄 대축일, 성모님과
관련된 축일에 그리고 자주색은 대림시기, 사순시기 등에 맞춰진단다.
< 24. 누가 감실을 집에다 모시나 >
+ 성당이 아닌 장소에 감실을 모시려면 교구장인 주교님의 승인을 받아야만 해. 감실은
개인이나 가정, 특정한 단체를 위해서 마음대로 모실 수 없는 거란다.
< 25. 신부님 제의에 수놓은 두 개의 십자가 >
+ 신부님이 미사 시간에 목에 거는 영대는 옛날 로마 사람들이 사용했던 손수건이나
목도리로 당시 그것으로 신분을 상징했단다. 신부님이 입는 제의에는 앞뒤로 십자가가
있는데 앞에 있는 십자가는 사제 자신이 져야 하는 십자가를 상징하고, 뒤에 있는
십자가는 신자와 이웃이 져야 할 십자가를 대신 지겠다는 뜻이란다. 옷에 그려진
십자가 하나하나에도 모두 의미가 있단다.
< 26. 원래 제대 위 십자고상은 어디로 향해 있어야 하나? >
*(n) 제대 벽에 걸린 십자고상은 신자석을 향해 있고, 제대 위 십자고상은 원래 사제를
향해 있는 것이란다. 아무나 함부로 제대 위에 오르면 안 된다. 그리고 제대 벽에 십자
고상이 걸려 있으면 제대 위에는 십자고상이 없어도 되는 거야.
< 27. 촛불을 켜는 데도 다 이유가 있다구? >
*(s) 대축일 미사 때는 오른쪽, 왼쪽에 3개씩 6개의 초를 켜는 거야. 보통 주일미사
(연중 주일) 때는 양쪽에 2개씩 4개를 켜.
< 28. 제대 촛불이 홀수다. 홀수 >
+ 미사를 드릴 때는 항상 촛불을 켠단다. 그런데 가끔은 말이야 그 미사에 맞는 초를
켜고, 그 옆에 작은 초를 하나 더 켤 때도 있어. 그건 교구장이 미사를 드릴 때란다.
작은 초는 교구장을 상징하는 거야. 교구장은 각 교구의 모든 일을 관리하신단다.
그리고 주교님이라고 해서 초를 1개 더 켜지는 않는단다. 이는 주교님 중에서도 교구의
총책임자는 교구장이시기 때문이야.
< 29. 신부님 강복, 주교님 강복은 ? >
+ 주교님은 강복을 주실 때 십자 표시를 오른쪽, 중간, 왼쪽 세 번 하신단다. 그리고
예절 집전하시며, 행렬하실 때도 왼손엔 지팡이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역시 세 번 십자
표시를 하시면서 지나가신다. 그런데, 지금은 주교님께서 강복하실 때 꼭 그렇게
하시진 않는다는 거야. 이 말은 주교님과 신부님의 강복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걸 말하지.
< 30. 신부님, 주교님관 쓰시니 꼭 왕 같아요 >
+ 주교님이 쓰는 관(冠/모자)을 주교관이라 하는데 주교관은 교황님, 추기경, 주교님
그리고 대수도원장만이 의식 때 착용할 수 있어. 주교관 뒤편에는 장식용 띠 2개가
늘어뜨려져 있어야 해. 의식 중이거나 기도 때는 벗는단다.
< 31. 신부님! 주교관은 여러 가지로 만들 수 없나요 > p95
+ 주교관은 금실로 장식한 주교관 그리고 금실이 아닌 다른 것으로 장식한 주교관과
장식이 없는 주교관이 있어. 이 세 가지 주교관 중에 의식이 가장 장엄하면 화려한
금실 주교관을 쓰는데 장식관은 계절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쓸 수 있어. 단,
장식이 없는 관은 성금요일이나 장례식 때 주교님들이 쓰시지. 직위가 낮은 성직자는
백색 주교관을 쓴단다.
< 32. 주교님 지팡이는 어디로 향해 있나? >
+ TV에서 보았다는 교황님이 가지고 계신 지팡이는 양을 치는 목자라는 뜻에서 목장
이라고 하는 거란다. 그 지팡이는 교황님과 주교님이 갖고 계시고 베네딕토 수도회의
대원장님이나 수녀원의 원장님도 가질 수 있어. 하지만 수녀원의 원장님은 대부분
가지고 계시지 않지. 지팡이의 끝, 구부러진 쪽이 교우들을 향하고 있어야 해. 그러니까
교황님 지팡이의 구부러진 쪽이 TV를 보는 네 얼굴을 향해야 하는 거지.
< 33. 엄마! 제단 위에 웬 큰 의자가 있어요 >
*(m) (복사가 꿈인 분도는 엄마 따라 서품식이 있는 주교좌성당에 갔다) 저 큰
(등받이가 긴) 의자는 이 지역의 교구장이 앉으시는 거란다. 이 성당은 교구장이 계시는
주교좌성당이야. 주교좌성당엔 교구장이 앉으시는 의자가 있단다.
< 34. 헌금 대신 연필 한 자루 봉헌해도 될까요? >
+ 그럼! 되고말고. 옛날에는 미사 시간에 봉헌할 때 돈 대신 쌀이나 가축, 그 외에
다른 생활 용품들을 냈었단다. 봉헌을 굳이 돈으로 할 필요는 없어. 현금이 가장
편리한 방법이니까 현금으로 봉헌하는 것이지. 봉헌하는 예물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으면 되는 거야.
< 35. 어차피 현금은 착한 일에 쓰는 거잖아요 >
+ (분도는 헌금을 모아서 엄마 생신 선물을 사 드리려고 헌금을 내지 않았다) 물론
헌금은 착한 일로 쓰여지는 것이긴 하지만 그렇게 개인적인 일로 쓰는 것이 아니야.
특히 주일 헌금은 신자들의 의무이기도 해. 그렇게 모은 헌금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이는 거야. 헌금은 헌금을 낸 사람들 자신이나 단체가 자신들이 쓰겠다는 목적으로
봉헌해서는 안 되는 거야.
< 36. 성물 축복 – 두 번도 받는다?? >
+ 원래 축복을 받은 성물(聖物)이 파손되면 정성스레 땅에 묻어야 하는 것이 맞단다.
하지만 요즘은 주변 여건상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려우니까 잘 싸서 버리도록 해야지.
고칠 수만 있으면 다시 축복받으면 될 텐데. 그리고 축성된 성당이 폭력의 장소로
사용되면 후에 다시 축성을 해야 해. 성물도 만일 흉기로 사용했거나 불손하게 사용
되었다면 다시 축복받아야 한단다.
< 37. 축복 안 해도 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 아세요? >
+ 축복하고자 하는 것을 각각 따로 할 필요가 없어. 한꺼번에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단다.
또 포장을 했어도 성물이라면 굳이 벗기지 않고 축복해도 되는 거구. 성당의 외부를
조각한 열쇠고리는 축복하지 않아도 되지. 축복을 하는 것은 예수님, 성모님, 천사 외에
복자품 이상 오른 분의 사진이나 조각하여 만든 성물들에만 축복한단다.
< 38. 예수님 상본에도 절을 할까요? >
+ 우선 기본적으로 성당에 들어올 때는 제대를 향해서 절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제대
앞을 지날 때 그 중앙에서 절을 해. 또 성체를 모시기 전에 성체를 향해서 가볍게 절을
하고, 미사가 모두 끝나면 나갈 때 자리에서 나와 제대를 향해 절을 하는 거란다.
상본에는 절을 안 해도 돼. 예수님이 모셔진 제대나, 축복된 움직이기 어려운 큰 성상
이나 성물에만 절을 하면 돼. 묵주에 달린 십자고상엔 묵주 기도할 때 입을 맞추고(親口)
작은 성상이나 성화엔 특별히 큰 절을 안 해도 된단다.
< 39. 성서는 항상 펴놓는 게 좋대요 >
+ (엄마가 아침마다 거실에 그 날 복음을 펴놓으시거든요) 그래 맞아. 미사가 봉헌되지
않는 시간에도 제대 위에 성서는 항상 펴놓는 게 옳단다. 집에서도 성서는 책꽂이에
꽂아 두는 것보다 그날 독서에 맞춰서 펴놓는 게 좋아.
< 40. 주님의 기도 + 성모송 + 영광송 ≠ 주모경 >
+ 주모경은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말한단다. 이름 그대로 천주님과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를 말하는 거야. 보통,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주모경을
바칠 때 영광송도 바친다고 알고 있는 거야.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모경엔
영광송을 빼야 맞는단다. 하지만 영광송까지 바치면 더 큰 공로가 되는 건데 그것도
생각해 보렴.
< 41. 손가락으로 세며 바친 묵주기도도 묵주기도다 > p125
+ 묵주 없이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 물론 축복받은 묵주로 하면 더 큰 은사를
받겠지만. 십자가의 길도 반드시 성당에 있는 14처를 보면서 하지 않아도 된다.
기도란 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 마음을 보신 하느님은 분명 기뻐하실 거야.
< 42. 친 가족은 혼인 미사 증인이 될 수 없다? >
+ 혼인 미사 때의 증인들은 신랑과 신부의 결혼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는 거야.
다시 말해 이 두 사람은 앞으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것을 확신하며 여러 사람을
대표해 증인이 되어 주는 거란다. 친 가족은 객관성이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증인이
될 수 없어. 신부님이나 수녀님들도 역시 모든 이를 위한 공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증인을
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단다.
< 43. 신자가 아니어도 성당에서 결혼할 수 있을 까? >
+ 혼인 성사는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세례를 받아야 가능해. 세례 성사는 교회에
입문하는 첫걸음이 되는 성사야. 세례를 받아야 다른 성사를 이해하고 받을 수 있는
거지. 성당을 단순히 결혼의 장소로만 이용해선 안 돼. 하지만 너무 가난한 사람을
위해선 혼인 성사가 아닌 결혼식을 위한 장소로 특별히 혜택을 줄 수도 있단다.
< 44. 사랑으로 연결된 반지? >
*(s) 혼인 성사 반지의 조건은 우선 반지가 끊어진 것 안 돼. 반지는 서로를 연결해
주는 것을 의미하거든.
*(b) 누나(s) 말대로 끊어진 반지는 안 돼. 하지만 반드시 새 반지여야 하는 것은
아니야. 끼던 반지를 가공해도 상관이 없는 거야. 그리고 불가피한 상황일 때는 팔수도
있어. 예를 들어 정말 먹을 것이 없다든가 가족 중 한 명이 심하게 아픈데 치료비가
없다든가 하는 경우 말이야. 그리고 반지를 다시 맞췄을 경우엔 다시 축복을 받는다는
것도 알아두라구. 결혼반지는 반드시 한 개로 정해진 것도 아니야.
< 45. 부모님이 신자가 아니면 아이도 세례를 못 받나요? >
+ 어린 아이의 경우는 그래. 그렇지만 첫영성체 받을 나이 정도된 어린이가 원한다면
가능해. 부모님의 동의가 있다면 말이야.
< 46. 세례만 받고 대부, 대모가 될 수 있대요 >
+ 견진성사를 받은 사람이면 더 좋지만 견진을 받지 않아도 대부나 대모를 설 수는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대부나 대모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대자, 대녀가 바른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는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하는 거야.
대부, 대모가 되는 건 행복한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어깨가 무거워지는 일이기도 해.
< 47. 대부님, 대모님 모두 있었으면 좋겠어요 >
+ 예전에는 세례받을 때 대부와 대모 모두를 모셨단다. 그렇게 되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기게 됐어. 예를 들어 대부와 대녀가 결혼을 하게 되는 경우에 대부, 대모의 의미가
사라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안 되는 거지.
< 48. 신부님, 남자가 여자 세례명 가져도 되나요? >
+ 그런 경우 친구들한테 놀림감이 될 수도 있잖아. 그리고 남자를 형제, 여자를 자매
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되면 누구를 호칭할 때 실수를 할 수도 있고. 꼭 그 성인을 주보
성인으로 모시고 싶다면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야. 하여간 남자는 남자 성인, 여자는
여자 성인을 모시는 게 좋겠다. 굳이 혼란을 일으킬 필요가 있겠니?
< 49. 어떻게 세례명을 2개나 해? >
+ 세례 받은 사람이 몇 분의 성인을 공경하고 싶다면 그렇게 정할 수도 있지. 하지만
여러 성인을 모시는 것에 마음을 쓰는 것보다 한 명의 성인이라도 제대로 모시고
공경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니?
< 50. 세례명-생일과 축일이 같은 성인을 정해야 하나요? >
+ 자신의 생일과 수호성인(주보성인)의 기념일이 일치하도록 세례명을 정하기도 한단다.
그 기념일은 성인이 돌아가신 날을 말하는데 그 날에 맞추어 세례명을 정하는 건, 세례로
태어나는 날을 성인 기념일과 맞추려는 것이야. 하지만 반드시 거기에 맞춰서 세례명을
정할 필요는 없어. 중요한 것은 자신이 존경하는 성인을 정해서 그분을 본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마음이지. 너의 세례명인 분도(베네딕토) 성인에 대해 알고 있니? 잘 모르고
있다니 베네딕토 성인에 대하여 다음 주까지 어떤 분이신지 알아올 것!
< 51. 긴급! 긴급 세례! >
+ 대세는 세례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될 경우에 긴급하게 주는 세례를 말하지.
비상 세례라고 하기도 하지만 긴급 세례라고도 하고 대개 대세라고 하지. 만약 대세를
받은 사람이 병이 다 나아서 다시 건강해지면 신자로서 필요한 교리를 더 공부해야 해.
그리고 간략하게 치른 세례 예식을 보충하기도 하지. 이를 ‘보례’라고 한단다. 아주
건강해져서 교리도 더 배우고 다른 성사도 참여하면 더 좋은 거야.
< 52. 보례와 첫영성체의 다른 점을 찾아라! >
+ 급하게 세례를 줘야하는 대세의 경우에는 대부, 대모가 없어도 된단다. 그리고 너무
급해서 세례명을 주지 못했어도 세례는 유효하단다. 그런 상황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건
깨끗한 물이란다. 그리고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ooo에게 세례를 줍니다’
하며 물을 부어 세례를 주면 된단다. 보례는 세례성사나 혼인 성사 등의 성사 집행 때
부족했던 부분을 보충하는 거란다. 예를 들어 죽을 위험에서 대세를 받은 사람이 살아날
경우, 사제가 없이 대세를 받은 경우, 신자 생활을 위해 갖추지 못했던 예식을 보충하는
것을 보례라고 하지. 대세는 사제가 아니라도 줄 수 있는데, 사제가 아니면 사제가 갖고
있는 기름을 바르는 예식들이 빠지게 되지. 그리고 첫영성체는 첫영성체를 하기 전에,
첫 고해 성사를 하는 것말고는 아무런 예식이 없단다. 첫영성체는 사제에 의해 완전한
세례 예식을 받은 사람이 받는 것이야. 그러니 보례와는 차이가 있지.
< 53. 왜 저는 견진성사 안 주셨어요 >
+ 유아 세례를 받았고, 아직 첫영성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 주는 거야. 초대 교회
때에는 세례받을 때 견진성사를 함께 베푼 적이 있지. 하지만 견진성사는 최소한 중학생
이상은 되어야 신앙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고 보니까, 중학생이 되면 줄게. 그리고 어른인
경우엔 죽을 위험이 있는 상황에 처했을 때 당사자에게 영신적 이익이 된다고 판단되면
견진성사를 줄 수도 있단다.
< 54. 장례미사, 신자는 발 먼저, 신부님은 머리 먼저라구요? >
+ 장례미사를 드릴 때 말이야, 신자와 신부님의 차이점이 있단다. 그건 관이 어느 쪽부터
들어가느냐의 차이지. 신자의 시신일 경우는 관이 발쪽부터 먼저 들어간단다. 그리고
나갈 때는ㄴ 한 바퀴 돌아서 발 쪽 부분이 먼저 나가지, 반대로 신부님일 경우엔 머리
쪽이 먼저 들어가고 나갈 때는 발쪽부터 나간단다. 일반 신자는 미사 때 제대를 향하고
신부님은 신자들을 향해 보기 때문에 들어가는 게 다르다는 거야.
< 55. 신학교 입학 때 소속 본당 교구가 평생 교구다 >
+ 신부님은 교구 신부와 수도회 신부님이 있단다. 그런데 교구 신부님의 교구는 신학교
입학 때 결정되는 거야. 즉 입학 당시 소속 본당의 교구가 바로 그 교구 사제로 되는
거지. 일단 입학하면 그 교구에 속하게 되고 교구에서 계속 지원하고 양성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 외에는 입학 때 교구가 평생 교구가 되는 거야. 그래서 새 신부님은 우리
교구(서울), 우리 성당에 부임할 수 없는 거지. 그분은 처음 신학교 들어갈 때 대전에
사셨으니까 대전 교구 소속이 되는 거지.
< 56. 신부님도 고해 성사 보세요? >
+ 신부님들도 고해성사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주교님도 교황님도 모두 고해 성사를
보신단다. 교황님도 사제에게 받으시지. 그건 신자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성사 생활이야.
신부님들이 최대한 바른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겠니? 죄를 짓지
않는 분은 누굴까?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돌아가신 성인들이지.
< 57. 그럼 총 고해 할래? >
+ 고해 성사를 봐도 그리고 보속을 했다 해도 완전한 보속은 힘들단다. 또 모르고 짓는
죄도 많이 있을 수 있고. 그래서 고해 성사를 봐도 잠벌이 있을 수 있단다. 그런 뜻에서
과거 고해 성사에서 고백한 죄라도 왠지 회개나 보속이 온전히 안 됐다 싶은 경우,
사제에게 총고해를 하게 되는 거지. 총고해는 특별한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게 커다란 전환점이 되는 시기에 총고해를 보곤 한단다. 새로운 출발인 만큼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어서겠지.
< 58. 신부님, 보속을 잊어버렸어요 >
+ 사실 보속을 잊은 경우에는 전에 성사 볼 때 ‘그 죄에 그 보속’을 떠올려 바치면 되고
왠지 개운치 않으면 본인이 알아서 다른 보속을 더하면 돼. 그래도 개운치 않다는 생각이
들면 그땐 신부님을 찾아오렴. 보속을 잊었다고 고해성사가 성립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고백에 따른 보속은 해야 하는 거야. 넌 첫 고해성사니까 죄를 용서받을 만큼의 다른
기도를 대신 바치렴. 아니면 착한 일을 해도 괜찮고. 그래도 마음이 찜찜하면 그만큼
더하면 되는 거야.
< 59. 칠성사 중 부제님이 거행할 수 있는 성사는 ... >
+ 칠성사는 세례, 견진, 성체, 고해, 병자, 신품, 혼인 성사를 말해. 이 중에서 부제님이
드릴 수 있는 건 세례성사와 혼인성사뿐이란다. 미사를 드릴 수 없는 것도 아직 성체 성사를
집전할 수 없기 때문이야. 부제님은 사제를 보좌하는 일 외에도 설교, 세례, 결혼식 주관,
본당의 운영 등 여러 가지 일을 하신단다.
< 60. 사도신경 안에 12개나? >
+ 사도신경 안에는 12가지의 신앙 고백이 담겨 있단다. 기도문이 시작되는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부터 마지막인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까지
기도문 전체가 가톨릭의 신조로 이루어져 있단다. 잘 외우는 것도 좋지만 내용을 잘
아는 것도 중요하단다.
# 091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092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2.12.04.
[ 책 이름 : 하느님과의 만남 ]
- 지은이 : 앤소니 드 멜로
- 옮긴이 : 송형만
- 지은이 프로필 : 1931년, 인도 봄베이에서 태어남. 피정지도, 기도연수,
영성지도자
양성 등으로 영어나 스페인어를 쓰는 곳에서 잘 알려진 예수회 신부.
인도 로나블라에
자리한 <사다나 사목 상담연구소> 소장, 1987년 사망
- 펴낸데 : 분도출판사, 출판 : 1998년 초판, 255p
- 내용 : 앤소니 드 멜로의 피정(避靜) 강론을 기록한 유고작(遺稿作)
[ 표지의 글에서 ]
- 이 책의 주제를 고전적으로 표현하자면 세 개의 기본 원리, 곧 기도와 속죄와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문체는 토니 신부님 특유의
강렬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창조하는 성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면, 사랑하는 능력을 가지고자 한다면 그리고 때로는 우리와 맞서고
우리를 오해하는 일도 있을 이 교회에 충성을 바치고자 한다면 하느님 안에 깊은
뿌리를 내려야만 합니다. 관상하는 사람만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만이
충성과 복종을 창조성, 직면과 조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 미사를 통해서 하느님과
역사가 우리의 부족한 점을 보지 않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 목 차 ]
1. 성령을 받음 2. 사도들의 피정, 3. 피정 시작을 위한 준비
4.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5. 기도의 법칙 6. 청원기도와 그 법칙
7. 기도를 위한 그 외의 법칙 8.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 9. 공동 기도
10. 회개 11. 회개의 위험성 12. 죄의 사회적 측면 13. 베네딕토 기도법
14. 그리스도의 나라 15.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고, 따름
16. 그리스도와 생애에 대한 묵상
17. 부록 : 기도를 위해 도움이 되는 요소들
* 참고 : 본문의 전체 내용은 존대어로 쓰여져 있으나 일반어로 독서 메모함.
[ 소개하는 글 ]
- 우리는 그분의 피정 강론을 기록한 이 유작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이책을
정성들여 편집해 놓았지만 발표한 일은 없습니다. 그분이 왜 이 책을 활용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으며, 지금 이렇게 책을 펴내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지도 알 수 없습니다.
틀림없는 사실 한 가지는 피정에 관한 이러한 강론에 대해서 여러 부류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이 매우 반가워하리라는 것입니다. ... 이하의 내용 요약은 '표지의 글'
<파르마난다 디바르카르>
[ 1. 성령을 받음 ] - p11
- 이번 피정의 배경을 교회와 현대세계로 잡으려고 한다. 교회는 위기에 처해 있고
세계는 평화와 발전과 정의를 간절하게 필요로 하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잠시(8일간)
물러나 침묵과 기도를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이것은 현실도피나 사치로 비난받을
수도 있겠다.
- (우리는 현실 도피자들인가?) 겉으로 보면 피정은 사치와 도피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사치는 최전선에서 물러나 반성할 시간을 가진 후에 좀 더 효과적인 전투계획을
세우고 돌아오려는 장군이 누리는 그러한 사치이다. 이 도피는 자신의 동기를 강화하고
마음을 넓히며, 눈을 민감하게 만들고 힘을 키워서, 이 세상에서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임무에 더욱 전심전력을 다해 매진할 수 있게 해주는 도피이다. 우리는 자신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과 세계의 선익을 위해 더 힘 있게, 효과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 관상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 (교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 교회는 지금 혼돈의 시기를 겪고 있다. 그것이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니다. 위기는 성장을 위한 도전이다. 창조에는 혼돈이 선행하는데,
하느님의 성령께서 그 위에 감돌고 계시다는 것이 가장 큰 전제조건이다. 오늘날 교회
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법률, 새로운 신학, 새로운 구조, 새로운 전례가 아니다.
성령이 없다면 이 모든 것들은 영혼이 없는 죽은 몸과 같다. 지금 우리에게는 돌과
같은 마음 대신에 살아 있는 마음을 채워 주실 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새로운 열정과
영감과 용기와 영적 힘을 부어 주실 분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새롭게 부어 주시는
성령이 필요한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령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필요하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지금 이렇게 피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으로
가득한 사람이 되리라는 희망을 안고 이 자리에 모였다. 성령강림 전에 다락방에 숨어
있던 사도들과 똑같은 마음가짐과 기대를 안고 이곳으로 물러나 있는 것이다.
- (성령을 얻는 방법) 우리들의 어떤 노력으로도 성령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성령은
순전히 성부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도들에게는 사도직 수행을
위해 성령이 필요했다. 예수께서는 성령을 얻는 방법에 대해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주셨다.
예수께서는 ‘기다리라’고 하신다. 성령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단지 그 분이 오시기를
기다릴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기다린다는 것은 이 현대세계 안에 사는 불쌍한 우리
인간의 본성에 매우 어려운 일인 것이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한다. 너무
분주하며 참을성이 없다. 성령께서는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찾아오신다. 기도 안에서
매일매일 자신의 마음을 하느님과 그 분 말씀 앞에 내보이는 사람들에게만 성령은 주어
진다. 생산
지향적인 우리의 정신으로 보자면 완전히 시간낭비처럼 보이지만, 수많은
시간과 시간을 투자한 사람들에게만 성령은 찾아오신다. 피정은 세미나와 다르다.
피정에는 강의도 없고 단체 토론도 없다. 피정에는 침묵과 기도와 하느님께 자신을 보여
드리는 것만 있을 뿐이다.
-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 : 태도) 내일 하루 전체의 기도를 위해서, 한 가지 태도를
가지도록 제안한다. 그 태도란 바로 큰 것을 기대하는 태도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
께서는 사람은 하느님께 기대하는 그만큼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여러분이 많이 기대
한다면 많은 것을 받게 될 것이다. 여러분 삶에 기적의 은총이 필요하다면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해야 한다. 여러분이 개인적인 삶 안에서 전혀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
였다면 그것은 오로지 아무런 기적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기대하는 것이 많은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그분이 오시리라고 기대하고
있다면 반드시 오신다.
-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 : 실천) 루카 복음 11장 1-13절(주님의 기도, 끊임없이
간청하여라. 청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을 꼼꼼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청하는 이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참된 신뢰를 가지고 진정으로 성령을 청할 수 있는 충분한 믿음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자. 그리고 나서 청하자. 거듭 청하고, 열심히 청하고,
한밤중에 친구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처럼 뻔뻔할 정도로 더욱더 많이 청하고, “안 된다”는
대답을 받아들이지 말고 계속 청하자. 하느님께 청할 때 “하느님의 뜻이라면”이라는
전제조건을 붙여서 청해야만 하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런 전제조건이
붙지 않는다.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것은 틀림없는 하느님의 뜻이며, 틀림없는
하느님의 약속이다. 부족한 것은 성령을 주시겠다는 하느님의 의지가 아니라, 하느님
께서 성령을 주시려고 한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며, 끈질긴 청원이다. 그러므로 주저
하지 말고 끈질기게 청하고 또 청하기 바란다.
이렇게 청해보자 “저희는 주님의 자녀들이오니 저희에게 그리스도의 성령을 주소서”,
또는 “오소서, 성령이여, 오소서, 성령이여”. 모든 종류의 절규가 힘을 발휘할 것이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진지하게 기도하자. 백 번, 천 번, 만 번 기도하자. 혹은 말없이
청할 수도 있다. 간청하는 마음으로 침묵 속에 그저 하늘을 우러러 보거나 감실을
바라보자. 만일 혼자 방에 있다면 눈으로만 아니라 온몸으로 간청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늘을 향해 팔을 쳐들 수도 있고, 반복해서 절을 할 수도 있다. 기도가 최대한의 힘과
강도를 발휘하기를 바란다면 성령 강림 전에 사도들이 성령을 기다리며 했듯이 해야
한다. 곧, 성모마리아와 함께 기도하는 것이다. 성인들은 성모님의 중재를 청하거나
그분의 보호를 청하는 사람이 도움을 받지 못했던 일은 없었다고 보증한다. 필요한
모든 것을 성모님께 청하므로써 이러한 성인들의 체험을 몸소 체험해 보기 바란다.
이 피정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께 봉헌하자. 피정을 시작하면서 성모님의 축복을
청하자. 그러한 봉헌이 어떠한 차이를 가져오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성령을 청하는
청원기도를 말로 하기 쉽도록 도와줄 수 있는 시편 구절들을 조금 소개한다. 시편 4,
6, 13, 15, 24, 27, 33, 38, 42, 43, 63, 130, 137. 시편에서 고른 이 구절들
중에서 어느 한 구절에 집중함으로써, 당신께 말을 건넬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몸소
주신
이 말씀들 안에서, 하느님께 마음을 쏟아 부으시기 바란다. 이 구절은 신앙을 주는
힘과, 청하는 것을 얻어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 2. 사도들의 피정 ] - p21
- “사도에게 피정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라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마도
피정은 사도가 할 수 있는 가장 사도적인 일일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사도에게 있어
사막으로 물러가는 일보다, 말하기보다는 귀 기울여 듣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쓰는
일보다, 하느님 앞에 자신을 보여드리고,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기에 앞서 자신의
영적인 건전지를 충전하는 일보다 더 필요한 일은 없다. 사도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
앞에 자신을 내어 드리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도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바라시는 그것을 채워주신다.”
- (원천으로 돌아감) 오늘날 쇄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원천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말의
첫째 의미는 문서로 돌아간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원천’으로, 그리스도인이고 사제인
우리의 유일한 원천이신 살아 있는 인간 예수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이러한 회귀에는
과거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살아 계신 분이며
오늘 만날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만나야 할 ‘원천’이시며,
그분에게서 모든 힘과 영감을 얻어야 한다. 피정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 (사도 : 스승을 사랑하는 사람) 사도나 사목자에게 스승께서 맡겨 주신 일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그 일이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첫 번째 주된 의무는
스승을 인격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목 임무를 맡기시기
전에 검증하는 시험을 하신다. 첫 번째는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하겠습니까?”이고,
두 번째는 “나를 사랑합니까?”이다. ... 사도가 되고 사목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지금
예수를 더욱 깊이 사랑함으로써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
니다”하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사도 :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 초대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사도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람이어야 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열두 사도나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는
진정한 사도라고 주장한다. “내가 사도가 아닙니까? 나는 우리 주 예수를 뵙지 않았
습니까?(1코린 9,1) 하고 코린토인들에게 말한다. ... 예수의 죽음과 부활 20년 후에
참된 사도와 증거자가 되기 위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는 사람’이 자격요건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분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지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마찬가지
요건이다. 교회 역사상 모든 참된 사도들은 이러한 요건을 갖추었던 것이다. 사실
그들 중의 어떤 이들은, 교부들이나 교회학자들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만나 뵙는 사람들이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자신들의 가르침으로 계속 교회를
살찌우고 있으며, 교회의 삶에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들은 위대한 관상가였던
바오로, 베드로, 요한처럼 위대한 관상가들이었다.
- (사도 :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이웃에게 성령을 나누어 주는 것이 사도의 주된
임무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가장 먼저 성령을 받았던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특별한
임무이며, 세상에 대한 특별한 공헌이다. 그들은 먼저 자신들 마음 안에서 변화시키시는
성령의 열매를 체험하고 나서 다른 사람들도 이 변화시키는 힘을 받게 해준다. 사도들이
성령을 나누어 줄 수 있었던 중요한 관건은 그들의 기도가 지님 힘이었다. 사도들
자신도 성령강림 전에 열심히 기도한 후에야 비로소 성령을 받았다. 사도로서 지닌
소명의 가장 중요한 특성, 즉 성령을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는 능력이 온전히 살아
있어야만 그 모든 것들이 다 좋을 수 있다. 성령을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여러분이 말씀의 힘과
기도의 힘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과 삶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체험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기도의 능력을 통해서 이웃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바오로
사도가 성공적인 사도직 수행을 위해 주로 사용한 것이 바로 이러한 기도의 힘이다.
- 사도가 물러나 피정을 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사도는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은 깨어 기도하고 인내롭게 기다리는 사람에게
주어지며, 모든 것을 떠나서 고독과 침묵 속에서 자기 자신과 또 하느님과 씨름할
용기를 가진 사람에게 주어진다. 모든 위대한 예언자들과 나아가 예수님까지도 사막
으로 물러가서 오랜 동안 침묵하고 기도하고 단식하고 악의 세력과 싸웠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막은 사도와 예언자들을 벼리는 용광로이다. 장터는 사도가
그 역할을 수행하는 장소이다. 사막은 그가 형성되고, 단련되고, 세상을 위한 사명과
메시지를, ‘자신의’ 복음을 받는 장소이다.
- (사도 : 식별 능력을 지닌 사람) 사도에게 피정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식별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피정은 우리 마음속에 침묵을 창조하고 그것을 심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침묵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끊임없이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일을 사도보다 더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도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남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게 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들음으로써만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언제 말해야 할지,
누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알게 된다. 듣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겠는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게 되면 온갖 다른 소리들이
들려오게 된다. 그중에서 가장 크게 들리는 것은 우리의 이기적인 욕망에서 나오는
끈질긴 요구의 목소리들이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소리는 어둠의 천신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의 권세’라고 부르시는 그 존재가 우리를 꾀어서 하느님께 영광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을 하게 만드는 속삭임이다. 그는 빛의 천사처럼 보이지만 그 꾐에 따르게
되면 그리스도의 나라는 큰 혼돈에 빠지게 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사도는 식별
능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과 자신의 충동을 구별하고, 귀는
예민해야 한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은 바로 기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들
내면에 계시는 성령의 소리에 끊임없이 귀를 열어놓고 있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 (이러한 사도의 특성들을 얻는 방법) 사도직 소명을 받거나 그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는 순전히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마찬가지로 사도의 두드러진 특성, 즉 하느님을 만나고, 성령을 나누어
주고,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는 능력을 얻거나 그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러한 것들을 받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첫째, 열렬히 갈망하고
둘째, 끊임없이 청하는 일이다. 대개 큰 열망을 지닌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고,
성령을 주신다. 하느님께 대한 불타는 열망이 마음속에 일어나게 되면 기뻐하자. 하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열망조차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하느님께
대한 욕구를 잃어버렸다. 여러분도 그러한 상태에 있다면 낙심하지 말자. 최소한 하느님께
대한 이러한 욕구를 가지게 되기를 바란다면 두 번째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부지런히
청원기도를 드리고, 그리스도를 만나는 은총을 위해 기도하며, 성령을 부어 주시도록
기도하고, 하느님께 대한 욕구를 회복시켜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러한 요구는 분명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 이러한 기도를 해보자! “주님, 제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 제 온 마음으로
주님을 원합니다” 하는 탄원 기도를 끊임없이 반복하자. 아니면 다음과 같은 시편 저자의
기도를 빌려 써도 좋을 것이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느님, 이 몸은 당신을
찾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치고 지루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 기도
하자. 여러분이 청하는 기도의 한 마디도 헛된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입술
에서 나오는 탄원 한 마디 한 마디를 모두 들으신다. 여러분의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해
잠시 지체하신다고 해도 틀림없이 그다지 오래지 않아 찾아오실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면, 기도 속에 엄청난 힘이 들어 있음을 전율 속에서 체험하게
될 것이다. ‘절망적인 경우’라고 느낀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성모 마리아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한 말씀 해주시도록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계시는 마리아의 영향력은 엄청나게 큰 것이며, 사도는 그분의 중재로써 큰 힘과 안위와
평화의 원천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 3. 피정을 위한 준비 ] - p37
- (왜 피정을 하는가?) 피정을 시작하면서 기도 중에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 나는
이 피정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가? 그 두려움은 어떤 두려움인가? 나는 이 피정에
어떤 기대를 가지고 참가했는가? 구체적으로 어떤 기대인가? 사람들은 다양한 기대를
가지고 피정에 참석한다. 이러한 형태의 피정에서 가질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기대는,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분과 더 깊이, 더 강렬하게 만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세미나가
아닌 이 피정은 신학이나 영성을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하느님께 대한 체험,
하느님과 사랑에 빠지는 체험,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받는 체험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현대세계는 당신들의 하느님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 달라고 한다. 보여줄 수 없다면
그 하느님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떻게 어디에서 보여주겠
느냐? 하고 말이다. 현대세계는 점차 무신론화하고 있다. 이 세상에 하느님이 존재
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거할 수 있겠는가? 힌두교 어느 책에서 그 증거를 다음과 같이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장 잘 증거하는 것은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과의 일치 체험과 그 체험이 가져오는 기쁨을 이웃
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면 무신론자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일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 (하느님에 굶주린 세상) 찰스 데이비스가 교회를 떠나기 전에 ‘아메리카’지에 기고
했던 글의 요지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나는 교회의 쇄신, 교회 구조의
현대화와 변화에 대한 희망에 불타고 있었다. 나는 청중들에게 현대화와 개혁에 대한
풍부한 가능성을 담고 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신학을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신학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느님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나를 메시지를 지니고 있는 신학자로 바라보지
않고 사제로, 하느님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분명 하느님에
굶주려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고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들에게
하느님을 나누어줄 수 없었던 것이다. 나 자신이 하느님을 지니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내 마음에는 큰 공백이 있었다.” 한 사제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재능은 갖추었지만
하느님에 대한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체험 없이 현대세계로 나간다면, 세상은 하느님에
대한 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간단히 거부해버릴 것이며, 그는 사제보다는
교육자. 철학자. 학자로서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 (몇 가지 제안) 이 피정기간 동안 하느님 체험과 기도와 하느님과의 깊은 친교를
위한 준비를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한다.
1) 하루 종일 엄격히 침묵을 지킬 것 : 하느님의 말씀은 침묵 속에서 가장 잘 들을 수
있다. 곧, 침묵 속에서 피정을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분명히 알지 못하고
있다. 침묵은 혀의 훈련이라기보다는 귀의 훈련이다. 더 잘 듣기 위해서 혀를 침묵하자.
말을 하면서 작은 소리들을 분간해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는,
특히 익숙하지 못한 귀에는 매우 미묘하고 섬세한 소리이다. 여러분의 귀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다면 특히 침묵이 필요하다.
2) 책 읽기를 피할 것 : ‘성서’와 ‘준주성범’처럼 확실히 기도에 도움이 되는 책을
빼고는 모든 책을 멀리하자. 책이 기도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대개 피정 동안에는
하느님을 만나는데 장애가 된다. 기도하는 시간에만이 아니라 피정중 다른 시간에도,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피하듯이 책을 피하자. 기도시간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침묵
하고 하느님께 귀 기울이며, 책을 읽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자. 책읽기는 분명
신앙적인 기분전환이기는 하지만 정신을 파는 일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에게
영적
독서는 영적 생활을 위해 가치 있는 일이고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기도시간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관상의 고통을 달래는 일종의 마약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이 약을 조금 복용하는 것이 완전히 끊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 며칠 지난 후에는 피정자들이 이렇게들 말한다. “독서요? 책을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대개의 경우 이것은 좋은 징조이다. 그들은 실제로 이륙(離陸)에 성공한
것이다.
3) 기도에 집중적으로 시간을 쏟을 것 : 계속해서 가능한 한 오랜 시간을 하느님과
만나기 위해 쓰기 바란다. 이것이 피정에서 극대의 효과를 얻는 방법이다. 이것은 가장
힘들긴 하지만,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할수록 기도생활은 눈에 띄게
진보할 것이다. 이것이 피정에서 여러분이 가지고 갈 수 있는 오래가는 보화가 될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시작하고 정한 시간에 끝내는 ‘정해진 기도시간’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기도하게 되는’, 그러나
그 기도는 너무도 일반적이고 애매하기 때문에 깊이와 집중도가 떨어지게 되는 그런
사람들에게,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그러니 기도 시간을 정하자.
그리고 물론 이 기도 시간 이외에도 또 기도하자.
- (하느님께 대한 열망) 피정에서 하느님을 더 깊이 체험하려면 두 가지 중요한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한 가지는 하느님께 대한 열망이고, 다른 하나는 용기와 관대함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열렬히 갈망하는 사람을 뿌리치지 못하신다. 힌두교 명상가
‘산야시(성자)’의 말이다. “당신이 하느님을 마치 공기처럼 필사적으로 갈망하게 되는
그날 분명히 하느님을 발견하게 될 것이오.” 신비가 ‘라마크리슈나’의 말이다. “어머니
(우상이 상징하고 있는 무한한 실재), 또 하루가 지났는데도 저는 아직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요, 어머니. 얼마나요?” ... 하느님께 대한 갈망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간청하여야 한다. 이 갈망은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계시해 주시려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총이다.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다른 열망들을 잠재움으로써 이
뿌리 깊은 갈망이 표면으로 떠오르게 하자.
- (관대함과 용서) 오늘날 참으며 기도하기 위해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
대한 관대함과 용기이다. 또 다른 이유는, 힘든 시련은 기도 자체가 아니라 기도 중에
만나는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합리화의 껍질을 벗겨버리고 보호막을 부숴버리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게 만드신다는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항상 즐겁고 위안을 주는 체험만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하느님
과의 만남은 아픔을 덜어주기 전에 거치는 수술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하느님께 다가갈
때는 조건 없이, 온전히 자신을 포기하는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직성이다.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자신의 비겁함, 이기심, 소유욕에 관한
진실을 대면하고 합리화를 털어버려야 한다. 기도로 들어가는 순간 듣지 않는 것이 더
났겠다고 말하는 소리가 내면으로부터 들려오게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리 듣기
싫더라도 귀를 막지 않고,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고,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용기이다.
- (복음 텍스트) 아침 기도에 도움이 되는 복음서의 몇 대목이다. 마태 13, 44-46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 마태 19, 16-26(하느님의 나라와 부자), 필리 3,
7-11(참된 의로움), 루카 14, 26/ 마태 10, 37-39(버림과 따름), 창세 12(아브람이
부르심을 받다), 창세 22(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다), 루카 9, 57-10,9
(예수님을 따르려면), 로마 8, 35(하느님의 사랑과 믿는 이들의 확신), 사도 1, 4-
5.8.11(예수님의 승천), 루카 11, 1-13(주님의 기도, 끊임없이 간청하여라), 1티모 1,
15-17(바오로의 감사) ... 무엇을 하든, 어떤 텍스트를 선택해서 기도를 하든, 하느님의
선물을 자신이 만들어 내려고 하지 말자. 여러분이 찾고 있는 용기와 관대함은 너무도
영웅적인 것이고, 여러분에게 필요한 하느님께 대한 열망은 너무도 강렬한 것이어서
어떤 사람도 자기 마음속에서 스스로 그것들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이는 하느님의 선물
이며, 겸손하고 끈질기게 기도로 청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러니
용기를 위해서, 능력을 위해서, 정직성을 위해서, 이 선물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단지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이 피정을 하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기도하자. 우리 모두가 이 피정
동안에 새로운 성령 강림을 체험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
[ 4.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 -p53
- (사도에게 필요한 하느님 체험) 하느님을 직접 대면하는 사람의 말은 힘이 있다.
하느님을 느끼고 그분을 보고 있다고 참으로 주장하는 사람과 만나는 체험은 모든 것을
뒤 흔든다. 바로 이것이 사도라는 신원의 총체적 핵심이다. 사도는 단순히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도는 그 자신이 바로 메시지이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거룩함
으로 가는 길을 가르킬 때 사람들은 우리가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방향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이 먼저 보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오늘날 우리의 사도직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더 훌륭한 사람들이다. 분명히 삶이 성령의 권능과 현존으로 충만한
전혀 새로운 종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 (신원 위기) 오늘날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소위 신원(身元) 위기라는 것을 겪고
있다. 사제란 진정 무엇인가에 대해 연구하고 숙고해서 더욱 적절한 신학적 정의를
내려야만 할 것이다. 사제라는 의미에 대해서 그저 말만 한 것이 아니라, 체험을 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이웃의 삶에 그리스도를 가져다 줌으로써
이루어지는 충만함을 누리고 있는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분을 만나야 한다. 남에게 성령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먼저 자신의 삶에서
그분의 권능을 체험해야 한다. 피정은 바로 그러한 일을 위한 것이다. 피정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세미나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말씀을 말씀을 건내는 침묵의 기간이다.
- (침묵) 두 번째 주제는 침묵이다. 그리스도와 대화하는 데 침묵만큼 도움이 되는
것은 드물다. 이는 마음의 내적 침묵이다. 외적 침묵은 내적 침묵에 도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외적 침묵을 견딜 수 없다면 내적 침묵을 견딜 수가 없다. 침묵을 얼마나
참을 수 있는가는 여러분의 영적, 지적. 감정적인 깊이를 나타내는 아주 정확한 지표가
된다. 예수님께서 기도하러 갈 때에는 문을 닫으라고 말씀하신다. 분명히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마음의 문을 닫지 못하고 있다. 기도하러 갈 때 세상에 대한 관심도 함께 가지고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을 단단히 닫아야 한다. 그리고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소음
속에서 복잡한 문제를 풀려고 애쓰는 수학(數學) 초심자에게 집중이 필요하듯이 기도
초심자에게도 그만큼의 집중이 필요하다. 그리고 수학문제를 푸는 학생이 문제에 심취
하여 아무리 소음이 커도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 오듯이, 기도를 배우는 학생
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초기 단계에서는 겸손하게 정적과 침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 (침묵의 성인들) 성인들은 침묵의 가치를 웅변적으로 역설해 왔다. 토마스 머튼의
책에서 나오는 글이다. “진리를 사랑한다면 침묵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침묵은
햇살과도 같이 하느님 안에 있는 당신을 비추어 줄 것이며, 무지의 환상으로부터 구해
줄 것이다. 침묵은 하느님과 결합시켜 줄 것이다. 다른 그 무엇보다 침묵을 사랑하라.
처음에는 침묵을 강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우리를 침묵으로 이끌어
주는 그 무엇인가가 생겨나게 된다. 하느님께서 당신이 침묵에서 생겨나는 이 ‘무엇
인가’를 체험하도록 해주시기를 빈다. 이를 실천에 옮기기만 한다면 곧이어 형언할
수 없는 빛이 비칠 것이며, 잠시 후에는 이 체험 한 가운데에서 어떤 감미로움이 생겨
날 것이다. 그리고 육체는 어쩔 수 없이 침묵 속에 묻히게 된다.” 또 하나는 성 안토니오의
제자 교부 아모나스의 말이다. “보라, 사랑하는 이여, 나는 여러분에게 침묵의 힘을 보여
준다. 침묵이 얼마나 철저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이 하느님을 얼마나 기쁘게
해드리는지를.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러분이 수행하는 그 일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도록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하느님의 힘이 그들 안에 머무는 것은 침묵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또 하느님의 신비가 그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침묵에 의한 것임을
알리는 것이었다.”
- 에블린 언더힐은 ‘신비주의’라는 저서에서 “자아는 침묵이라는 이 새로운 지평에
익숙지 못하다. 관상생활에서 가장 저급한 활동이라도 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이 지평은 곧 익숙해진다. 이곳에서 자아는 연결고리에서 풀려나며, 세상의 목소리들은
전혀 들리지 않고, 정신의 위대한 모험이 시작된다.” 그렇다. 침묵으로 모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일단 초기의 지루함과 침묵이 가져오는 고단함을 겪고 나면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어두운 침묵이 실은 천상의 빛과 천상의 음악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처음 보기에는 텅 빈 허공처럼 보이던 것이 실은
하느님의 존재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 기도의 스승이신 예수) 피정이 여러분이 기대하는 풍부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기도에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잘 기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몸소 가르쳐 주신다. 우리 역시 그분에게서 어떻게 기도할지를 배울 수 있다.
“예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실 때 일이다. 기도를 마치시자 한 제자가 여쭈었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자 스승에게 직접 청하는 사도들은
얼마나 현명한가? 여러분도 이와 같이 하기를 바란다. ... 피정 시작부터, 어려움에
부딪칠 때에는,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때에는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
제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말씀드리자. 필요하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말씀드리고
또 말씀드리자. 긴장이나 근심을 버리고, 평온한 마음으로, 그분께서 가르쳐 주시리라는
확실한 기대를 가지고 말씀드리자. 정말 그렇게 해주실 것이다. 예수님께로 가서 그분께
가르쳐달라고 청하자. 그것이 바로 기도를 배우는 방법이다.
- (하느님 중심의 기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기도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예수께서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로 기도를 시작하라고, 우리의 이익이나 필요가
아니라 아버지의 나라로 기도를 시작하라고 가르치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예수의 생애가 그러했듯이 그분의 기도도 본질적으로 하느님이 그 중심이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그분의 이름이 거룩히 드러나는 것과, 어디에서든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에 관심을 가지자. 우리의 기도가 실패하는 한 가지 이유는 너무 자기
중심적이고, 인간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또한 예수께서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하게 하신다. 물질적인 것을
포함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하느님께 이런 필요를
채워 주시도록 간구해야 한다.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예수께서는 우리 자신을 위해 세 가지를 청하라고 명하신다. 일용할 양식(사치가 아닌)과
영적인 힘과, 죄의 용서를 말이다.
- (청원 기도)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가르치셨듯이, 기도란 필요한 것을 청하고, 우리
에게 좋은 것을 청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예수께서는
주님의 기도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신다. “청하시오.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찾으시오.
얻을 것입니다. 두드리시오. 여러분에게 열어 주실 것입니다. 사실 누구든 청하는 이
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입니다.” ... 신약성서가 일관되게
가르치는 것은, 기도에는 힘이 있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고, 기도란
근본적으로 청원기도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구절들을 소개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 보자. 루카 11, 1-13(끊임없이 간청하여라.
청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 마르 11, 22-26(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마태 21,
20-22(믿고 청하는 것은 다 받을 것이다), 루카 18, 1-8(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요한 14, 12-14(청하면 다 이루어진다)/ 15, 7/ 16, 23-24(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야고 1, 5-8(믿음을 가지고 청해라)/5, 13-18(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낸다), 1요한 3, 22(청하는 것은 다 받게 된다)/5, 14-15(청하면 들어주신다), 필리 4,
4-7(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1티모 2,1(간청과 기도와 전구와 감사를 드려라).
- (기도 방법의 열쇠) 칼바레스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도하는 법의 열쇠는
청원기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청원기도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우지 않기
때문에 결코 기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손을 내밀면 조르는 것을 얻을 수
있지만 머리로만 생각해서는 얻을 수 없는 법입니다. ... ‘성인 호칭기도’나 ‘성모
호칭기도’를 천천히 정신을 집중해서 이렇게 기도하세요. ‘성모 호칭기도’를 하는 경우
에는, ‘마리아님, 저를 위해 기도하소서. 천주의 모친이여, 저를 위해 기도하소서.
거룩한 동정녀중의 동정녀여, 저를 위해 기도하소서. ......’” 신부님은 책에서 염경
기도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신심을 가지고 열렬히 기도하는 것이 신비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씀하셨다.
- (기도 안에서 어린아이가 됨) 나는(우리는) 분명 기도하는 법을 알고 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염경기도에, 청원기도에 의지하는 것뿐이다. 어린아이라도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
이기를 멈추었으며, 따라서 기도하는 법을 잊은 것이다. ... 우리는 점차로 성인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호한 확신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을 더
확고하게 하기 위한 방법은 성찰, 성찰, 성찰 - 묵상, 묵상, 묵상이라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기 위해서 확신보다 수천 배나 더 필요한 것은 힘과 영적인 능력과
용기와 꾸준함이며, 이러한 것들을 위해서는 청하고, 또 청하고, 또 청하며,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한다. 청원기도와 관련한 복음서 대목들을 읽으라고 권고하는
것은 곧 여러분에게 일종의 묵상과 성찰을 권고한다는 뜻한다. 묵상에 대한 신뢰를
거두고, 단순한 청원기도를 묵상보다 더 중하게 여기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기도가
주는 힘과 신뢰와 평화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 5. 기도의 법칙 ] -p71
- 기도에서 실패한다면 우리가 기도를 잘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분명
하게 말씀하신 기도의 법칙들을 숙달하는데 실패했던 것이다. 기도도 마치 토목기술
처럼 그 자체의 법칙들이 있기 때문이다.
- (기도의 첫째 법칙 : 믿음) 예수께서는
언제나 치유나 치료 그리고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권능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신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태어난 나자렛 사람들에게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많은 기적을 행하실 수 없었다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믿는다면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 아주 엄격한 법칙이었다.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도 예수께서는 믿음에 대한 응답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고 계신다. 치유의
사명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복음서 안에서 행하신,
사도들이 사도행전에서
행한 그런 기적을 다시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설교하러
파견하실 때에는 언제나 치유와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권능을 주셨다는
사실이다. 예수께서는 치유의 사명과 설교의 사명을 불가분하게 연결시키는 것 같다.
어느 면에서
볼 때, 복음 설교가들은 모두 기적적인 일을 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 믿음은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앙을 가지도록 자신에게 강요하지
말자.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믿으려는 부자연스러운 노력일 뿐이다. 믿음은 그저 자신을
하느님과의 친교에 내맡김으로써 오는 선물이다. 하느님과 만나면 만날수록 그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기도에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따라야 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하신 말씀(마르 11,23)을 기억하자. 마치 엄청난 산처럼 보이는 문제들도 믿음의 힘
앞에서는 굴복할 것이다.
- (기도의 둘째 법칙 : 용서) 예수께서는 기도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
하다고 하시면서 다른 무엇인가가 또 필요하다고 강조하신다. 그것은 바로 용서이다.
“너희가 가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마르 11,25). 이것은 예수께서
거듭거듭 강조하시는 기도의 기본법칙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며,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의 기도에 힘이 없는 큰 이유는 마음속에
원한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용서하기를 무작정 거부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여러분이 용서하지 않는다면, 나는 여러분과 아무 관계가 없다”
피정을 시작하면서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모든 원한을 찾아내어 제거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자. 자신이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억압된 원한을 찾아내는 간단한 방법은
자신이 부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어렵다면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고, 그것도 아니면 다른 사람들보다 덜
좋아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고, 그것도 안되면 마지막으로 여러분을 싫어하는 사람
들의 명단을 만들자. 이 명단은 여러분이 숨기고 있을 잘못된 느낌이나 원한에 대해서
놀라운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 (자신의 체계에서 분노를 제거할 것) 보통 ‘원한을 자신의 체제에서 제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상적인 것은 여러분이 미워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감정을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이상적인 행동이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으로 좋은 방법은 상상 속에서 자신의
원한을 표현하는 것이다. 미워하는 사람이 앞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실제로 그 사람에게
미움을 표현하라. 용서는 허약함이나 소심함과 다르다. ... 성급하게 기도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악화시키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진지하게 권고할 만한 몇 가지 형태의 기도를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이 기도들이,
우리의 체제에서 적개심을 제거해야만 할 깊은 감정적인 (때로는 육체적인)필요를
언제나 대신해 주는 것은 아니다.
- (기도를 통해 용서하는 법) 용서의 은총을 얻고 원한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들이다.
1) 싫어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자. 이것은 예수께서 산상설교에서 권고하신
것이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계속 기도하는 동안에 그들을 향한 여러분의 태도는 신비
하게 변화할 것이다. 그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긍정적인 마음을 지니게
되며, 사랑하게까지 된다.
2) 자신이 당하는 모든 불의를 하느님께서 어떤 신비한 목적을 위해서 계획하시고
통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느님께서는 그저 어떤 일을 ‘허락’만 하는 분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그것들을 계획하고 통제하신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인간의 엄청난 불의한
행위들을 단지 하느님께서 허락만 하신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그것을 계획하셨고,
지향하셨고, 미리 정하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당신이 수난을 겪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성서의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 분노는 사랑의
뒷면이며, 다른 형태의 사랑 그 자체이다. 사랑의 반대는 분노나 미움이 아니라 냉담과
무관심이다.
3) 불만과 원한을 없애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마음속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앞에 서서 이 위대한 불의의 희생자를 바라보자. 그러면 곧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이 작은 불의로 야단법석을 떠는 자신이 부끄러워질 것이다. 여러분은 그분의
제자임을 자처하고 있으며, 그분이 그랬듯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게 되리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서 그분을 따르겠다고 이미 동의를 했었다. ... (밀림의 주인 크리슈나
형님이 주신 우유 단지 이야기) ... 오직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그분을 먼저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한다. 또는 그것이 실재인지
아니면 단순히 자기암시의 효과에 불과한 것인지 어떻게 알겠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주님은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도와주실 생각이 없으신 것 같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
하신다. “먼저 믿으시오. 그러면 보게 될 것입니다. 믿으시오. 그러면 불가능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 6. 청원기도와 그 법칙 ] - p93
- 이집트의 ‘마카리우스’는 어린아기의 비유를 통해서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경탄할
만한 교리를 갈파하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 희망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가치 있고 없고를 따지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과거 우리의 실패나 불충을 들여다보지
않으신다.
1) 그분을 향해 울부짖고, 그분을 간절히 바라며,
2)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한 도움을 아무 곳에서도 받을 수 없고,
3)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그분께서 해주시리라고 믿는 것으로 충분하다.
- (기도의 힘 : ‘나라다’) 비쉬누 신전을 향해 길을 가던 현자 ‘나라다’ 이야기다.
비쉬누 신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어떤 성인이 한 일인가보구나. 성인에게는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거든!” ...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냅니다.”
(야고 5, 16) ... “너희 조상 다윗의 하느님인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이제 내가 너를 치유해 주겠다.”(2열왕 20,5)
- (청원기도의 ‘신학’) 청원기도는 우리가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청하는 바를 알리는 것을 의미한다.
반드시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고나서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며, 그분께서
모든 것을 책임지고, 모든 것들이 잘 이루어지게 하시리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성 바오로는 이 사실을 잘 표현하고 있다. “주님이
가까이 오셨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
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 4,5-7)
- 청원기도에 대한 것들은 우리들의 삶 안에 하느님이 참으로 실재하도록 해준다.
그분은 활동적이시며, 개입하시고 돌보시는 하느님이시다. 우리들 삶의 실제적인
운명 안에서 상호작용을 할 수 없는 멀리 떨어진 신이 아닌 것이다. 예수께서 청원
기도를 중요하게 여기신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나 없이 여러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하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끊임없이 청원기도를 활용함으로써, 우리의 삶
속에서 청원기도의 효과를 계속 체험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이 하느님께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깨닫게 된다. ... 로마인들과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사도 바오로의 편지를 읽도록 충심으로 권고 드린다. 청원
기도에 관한 신학 전체를 놀라운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아이는 단지 사랑하는 부모들이
충족시켜 주어야 할 필요를 표시하기만 하면 된다.
[ 7. 기도를 위한 그 외의 ‘법칙’ ] - p103
- 믿음과 용서라는 두 법칙 외에 다른 네 가지 법칙을 설명한다.
1) 비현세성 : 예수께서는 단순하고, 사치와 부가 없는 과잉 공급하고 있는 지나친
물건들이 아닌 일용할 양식, 일상적인 필수품을 청하라고 가르치신다. 예수께서는
부가 지니고 있는 위험을 잘 알고 계시며,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게 된다고까지 말씀하신다. 인간의 마음은 그 둘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 살아가는 목표가 그러한 것들이라면 주님 앞에 드리는 기도는 힘이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안락과 좋은 물건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정의를
구하라고 하신다.
2) 관대함 : 하느님께서 관대하게 대해 주시기를 바라는 사람은 누구나 이웃사람들
에게 관대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 6,38) 가난한 사람, 곤경에
처한 사람, 도움과 봉사를 청하는 사람들에게 인색하면서 어떻게 주님께서 관대
하시기를 바라겠는가?
3)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함 : 교회가 성부께 기도드릴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또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고 하는 것은 “너희가 내 이름
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 12-14)라는 이 말씀을
토대로 삼고 있는 것이다. 성부께 드리는 기도가 힘이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면
교회의 이 기도법을 따르는 것이 좋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성부께
대한
예수의 영향력에 의지한다는 것을 뜻하며, 그분의 중개, 그분에 대한 성부의 사랑,
그리고 그분을 기쁘게 해주고 그분이 청하는 것을 모두 주시고자 하는 성부의 마음에
의지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예수께서 성부께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간에 틀림없이
주시리라고
믿는다는 것을 뜻한다. 또 그것은 무엇인가를 청할 때 예수의 마음과 정신에
따라서 청한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께서는 부와 명예와 허식과 품위를 멀리하셨다.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이런 것들과 세속적인 쾌락의 충족을 청할 수는 없을 것이다.
4) 꾸준함 : 예수께서 믿음과 용서 다음으로 거듭 강조하신 가장 중요한 법칙은 바로
꾸준함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무엇인가를 한 번 청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성부께서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청을 들어주실 때까지 반복
해서, 쉬지 말고, 지칠 줄 모르고 청해야 한다. 예수께서 꾸준한 기도에 대해서 들려
주시는 몇 가지 예이다. 하나는 루카 복음 11장(5-8 : 끊임없이 간청하여라)이고, 또
하나는 루카복은 18장(1-8 :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그리고
마태오 복음 15장 (21-28 : 가나안 여자의 믿음)에 나온다.
- (청원기도 : 삶의 방식) 기도에 관한 하느님의 말씀은 무척 단순하게 들린다.
“청하시오. 받을 것입니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간단한 말씀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기도 양식 뒤에는 전체적인 삶의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삶은 믿음의 삶, 형제를
용서하는 삶, 곤경한 사람들을 관대하게 대하는 삶, 비현세적인 삶, 하느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삶이다. 청원기도는 단순히 기도의 한 양식이 아니다. 그것은 전체적인
삶의 방식이다.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게 될 때, 엄청난 기도의 효력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은 큰 신뢰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청원기도를 드려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각자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야 할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기도, 즉 경배와
관상,
여러 가지 형태의 묵상과 성사, 성서 독서, 중재 기도, 그리고 청원기도들이
균형을
이루는 기도생활이 필요하다. 성령의 인도와 자신의 필요를 따라가면 된다.
우리는
단순한 청원기도의 필요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늘 주님이 가르쳐 주신‘주님의
기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복음서가 촉구하고 있는
위험하고 도전적인 삶을 살지 않게 된다. 삶에 도전이 없으면 없을수록 기도하지 않게
된다.
[ 8.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 ] -p111
* 이름 없는 러시아 순례자가 쓴 ‘순례자의 기도’ 책의 원고는 20세기 초, 아토스 산에
있는 수도원에서 한 수도자가 죽은 후에 그 방에서 발견되었다. 이 책은 곧 영성의
고전이 되었으며, 대부분의 현대어로 번역되었다.
- 순례자가 어느 날 어떤 수도자를 만났는데, 그가 어디로 가는 길이며 무엇을 찾아
가느냐고 묻자, 순례자는 “저는 이곳저곳의 성지를 찾아다닙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한다. 수도자는 이 순례자의 큰
확신을 보고는 이렇게 말한다. “형제님, 하느님께 크게 감사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다른 것은 몰라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줄 사람을 보내주셨습니다.”
수도원에 도착하자 그 수도자는 순례자를 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오두막에 앉혀놓고
손에 묵주를 쥐어 주고는 이렇게 말한다. “다음 기도를 오백 번 반복하세요.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이 가련한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다음 날 그 영성
지도자는 기도를 천 번으로 늘렸다. 그리고 횟수는 날마다 이천 번, 삼천 번, 사천 번
으로 늘어났다. 그 영성 지도자가 죽었을 때 순례자는 하루에 수천 번 정도 기도하는
습관에 간신히 도달하게 되었다. 주님께서 보내주신 사람이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약속했던 그 사람을 잃자 수도원에 머물 이유가 없어 다시 여행
길을 떠났다.
그의 배낭 속에는 성서 외에 ‘필로칼리아’라는 책을 넣었다. 그 책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라고 일컫는 기도에 관한 글을 수록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기도와 호흡을 연결시키는 법을 배운다. 곧, 숨을 들이쉴 때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하고 말하고 숨을 내쉴 때 “이 가련한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자 점차로, 그 책에는 설명되어 있지 않은 어떤 신비한 방법을 통해서
그 기도를 마음속 깊이 담아둘 수 있게 된다. 그러더니 어느 날 문득 그 기도는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게 되고, 자나 깨나, 음식을 먹거나 말을 하거나 길을 걸을 때에도 계속
그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마음은 생각과는 관계없이 계속 반복해서 그
기도를 드린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순례자는 계속 기도하는 비밀을 배우게 된 것이다.
... 그 책의 나머지 부분은 여행에서 그가 겪게 되는 모험과, 그 기도의 기적적인 효과,
그리고 기도와 영적인 삶 전반에 관한 많은 가르침을 담고 있다.
- 나는 며칠 동안 그 기도를 드려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그래서 그 책에 제시된
것과는 다른 기도문을 선택했다. 여러분도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이 가련한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문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마음에 드는
어떤 기도문이라도 좋다. 한 달이 채 못 되어 내 기도에 두드러진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했던 방법은 생각이 날 때마다 가능하면 자주 내 염원을 기도드리는
것이 전부이다. 기도시간뿐 아니라 자유로운 시간마다 기도를 드렸다. 내가 체험한
변화는 정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어떤 평화와, 평온과, 집중된 느낌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한 정신적인 활동에 몰두하지 않고 있을 때에는 언제나 그 기도문이 입에서
저절로 나오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기계적으로 또 때로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그 기도를 되풀이하게 되었다. ...
이름을 부르는 기도문들의 예(例) : * “예수 성심이여, 당신께 의탁하나이다” * 서방교회
에서 널리 사용하던 기도문 “나의 예수님, 자비를 보이소서” * 아씨의 성 프란치스코의
밤 기도 “내 하느님, 나의 모든 것이여” * 부르노 성인의 기도 “오! 좋으신 하느님”
*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의 기도 “다윗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자비를 내리소서”
* 사막 교부들의 기도 “하느님, 나를 살려 주소서, 야훼님, 빨리 오시어 나를 도와주소서.”
- (실천 방법) 이름을 부르는 기도는 몸소 이 기도법을 체험한 영성 지도자가 기도문을
선택해 주는 것이 전통이다. 여의치 않은 경우, 적절한 기도문을 자신이 고를 수 있도록
주님께 인도를 청하자. 그 기도문에는 어떤 형태로든 하느님의 이름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느님의 이름은 성사와 같은 것이며, 기도하는 이에게 특별한 힘을
준다. 동방교회의 스승들은 다양한 기도문들, 특히 ‘예수’와 ‘자비’라는 말이 지닌 가치를
무척 중요하게 여겼다. ‘자비’란 단순히 죄의 용서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느님의
은혜로움과 사랑에 찬 친절을 나타낸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예수성심이여,
당신께 의탁하나이다” 하는 기도문이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면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의 나라가 임하소서”. “내 주님, 내 하느님”. “내 하느님, 나의 전부여”. 등이 있다.
아니면 단순히 예수님의 이름만을 가지고 해도 좋다. 예수라는 한 단어를 사랑, 경배,
찬양, 회개와 같은 여러 가지 감정을 가지고 반복해서 암송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뜻하는
다른 말들로서 ‘마음’ 또는 ‘불’ 등을 권고한다. 또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특별한 기도인
‘아빠’도 있다.
어떤 기도문이라도 좋은데, 그 기도문이 첫째, 운율적이라면 큰 도움이 된다. 둘째,
공명음을 내는 것이 좋다. 셋째,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한번 기도문을 선택하면 쉽게
바꾸지 말자. 한동안 시도해 보고 나서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다거나 더 좋은 것을
찾았을 때는 바꿀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한동안 무미건조하다거나 위안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바꿔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인 생활에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기도가 우리들 속으로 깊이 침잠되려면 반드시 무미건조함이 찾아오게 된다.
하지만 인내하면서 꾸준히, 아무리 작은 신심이라도 불러일으켜서 기도문을, 주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를 암송하자. 그러면 기도문들이 서서히 되살아나고, 기대
하지 않았던 깊이와 풍요로움을 가지게 되며, 희열에 찬 영적인 자양분을 줄 것이다.
-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의 힘) 정치와 개혁과 혁명의 와중에서 기도의 삶을
살았던 영적인 대가인 마하트마 간디는 하느님을 부르는 힌두교의 이름인 라마를 암송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간디는 그것을 자기의 라마나마, 즉 라마의 이름이라고
불렀다. “라마나마는 내 어두운 시기를 비추는 태양이었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예수의
이름을 반복함으로써, 이슬람 신자는 알라를 반복해 부름으로써 같은 위안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 사람이 어떠한 어려운 고통을 받는다고 해도 마음으로 라마나마를
암송하면 확실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느님의 이름은 여러 가지이다. 각 사람은
가장 자기 마음에 드는 이름을 선택할 수 있다. 라마나마를 마음속 깊이 암송한다면
모든 악한 생각들을 녹여버릴 것이며, 악한 생각들이 사라지고 나면 그에 상응하는 어떤
악한 행동도 할 수 없게 된다.” 간디는 하느님의 이름만으로 어떤 육체적 질병은 고칠 수
있다고 믿을 정도로 이 기도를 신봉했다. 그는 이 기도를 “가난한 이들의 의사”라고 불렀
으며, 자신은 질병으로 인해서 죽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는 병중에 하느님의
이름을 암송하면 병을 낫게 해줄 것이라며 끝까지 약을 거부하며, 78세 때에 암살당할
때까지 건강하게 살았다.
- (예수의 이름이 지닌 힘) 신약성서는 예수의 이름이 지닌 가치와 힘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이 이름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계시하신 모든 이름들 중에서 가장 능력이 있는
이름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따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필리 2,9-11) ... “그분(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사도 4,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
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요한 16, 23-24) ... 하느님의 이름은 단순히 하느님을 가리키는 것만이
아니다. 그 이름은 하느님의 권능과 은총과 현존을 담고 있다. 수많은 가톨릭 관상가들은
인간에게 알려진 하느님의 이름 중에서 가장 힘 있는 이름, 곧 예수라는 이름에 관해서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 이름을 사랑과 헌신, 믿음과 애정, 경배와 존중하는
마음으로 자주 암송하면, 머지않아 이 위대한 관상가들의 지혜를 체험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 (이 기도의 배경에 놓인 ‘심리학적’ 이유들) 자기암시 효과와 무의식의 힘 ...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에서 우리는 하루 종일 단어들의 의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기도문을 자주 암송한다. 이것은 절대 손실이 아니며 실제적인 이득이 될 것이다.
그 단어들이 기도문이라는 것과 기도가 계속되리라는 의식이 존재한다. 그리고 무의식이
점차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며, ‘기도하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여러분의 삶과 행동 전체가 이러한 기도하는 상태에 젖어들게 된다. 자기 암시를 통해서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그렇듯이 이 기도는 인간적이고 효과적인 행위이다.
더욱 깊이 기도하고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정신과 상상력과 감정을
이용하듯이 자기암시의 힘을 이용해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
- (묵주기도)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에 관해서 말한 모든 것들이 묵주기도에도
완벽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 삶에는 인간의 이성이 파악할 수 없는 더 깊은
것들이 존재한다. 인간의 정신은 똑똑하게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지혜롭게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감각이 필요하고, 정신을 초월하는 본능이 필요하다. 성인들이
이런 형태의 기도를 실천하고 권할 때 그분들은 이러한 본능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알퐁소 로드리게스 성인 같은 분은 매일 수십 단의 묵주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인도의
마을에서는 거룩한 늙은 부인들을 만나 볼 수 있는데 그들이 드리는 유일한 기도란
바로 묵주기도를 반복해서 드리는 것이다. 그들의 기도에는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의 모든 원리들이 들어 있다. 지금까지 묵주기도를 즐겨 드려왔다면 그것을
여러분의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로 삼아라. 많은 사람들이 손으로 묵주를 돌리면서 평화와
기도하는 마음을 얻는다. 이는 기도에 운율을 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를 운율적으로 암송하기 위해서 묵주를 사용해 보자. 그러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축복으로 많은 성인들이 기도에서 발견한 지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 9. 공동기도 ] - p135
- 단체 피정은 개인 피정이 줄 수 없는 것을 피정자들에게 제공하며, 반대로 개인 피정은
단체 피정이 줄 수 없는 것을 준다. 이 둘은 서로 보완한다. 하지만 이 둘을 혼합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이 둘을 섞게 되면 서로를 방해하게 되며, 효과가 희석된다. ... 하느님과
홀로 있을 때 그분과 함께 할 수 있는 기도 형태가 있고, 자신의 영적 선익이나 다른
사람의 영적 선익을 나눌 수 있는 기도 형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 19-20). 우리는 처음에는 간단한
공동기도로 시작했다. 누가 어떤 은총을 원한다면 그것을 전체기도 시간에 밝히고, 모두
그 사람을 위해서, 보통 침묵 중에, 기도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공동기도 시간에 공식
으로 감사를 드리고, 모두 함께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선하심을 베풀어 주신
그분께서 더 큰 영광과 사랑을 받으실 수 있게 한다.
요즘은 첫날부터 이러한 공동기도를 권고하는 것으로 모든 피정을 시작하며, 그들이
찾는 은총을 얼마나 금방 얻게 되는지를 거듭거듭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일로 피정외의
영역에서 공동기도가 지닌 가치를 지니기 시작했다. ... 나는 공동기도가 일부 피정자들
에게 예언하는 기회를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피정자들은 기도시간에 들었던 기도,
그곳에서 했던 성찰, 서로 나눈 통찰들이 피정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다주었다고 여러 번
들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체험을 나누거나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주님께서 몸소
말씀하시는 것과 같았다. 나는 예언이 영감을 받은 상태가 아니라 매우 일상적인 그러한
형태의 기도 중에 흔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간단한 기도를 하게
되면 다른 여러 사람들은 열렬한 기도의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게 되거나, 필요한 빛과
영감을 받게 될 것이다.
-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공동기도에 정해진 법칙은 없다. 하지만 공동기도중에 만나게
되는, 방해되는 어려움들이 몇 가지 있다.
1) 사적인 기도를 하기 위해서 기도 모임에 나가는 것이다. 공동기도는 다른 형태의
기도, 다른 마음가짐을 요구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그들에게 기도를 청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도록 성령
께서 주시는 영감에 마음을 열기 위해서 공동기도에 참석하는 것이다.
2) 지나친 ‘두뇌 사용’도 방해가 된다. 공동기도가 생각, 반성, 영감들로 가득 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 ‘비인격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즉 ‘나’ 대신 ‘우리 또는 저희’라는 말을 사용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서 말하지 말자. 모임에 나온 다른 사람들의 감상이나
느낌을 스스로 나서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말하자. ‘우리’라고
말하면 아무것도 나눌 수 없게 된다.
4)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앞서서 기도한 사람의 고뇌를
함께하고 그 사람과 함께 기도할 틈도 주지 않고 서둘러 기쁨에 찬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꼴사나운 일이다.
5) 우리들 마음속에서 말씀하시는 주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주님께 드리는 말씀에 사로잡힌 나머지 우리에게 영감을 주실 여지나,
우리의 마음속에서 말씀하실 여지를 드리지 않게 된다. 주님께서는 자주 우리 마음
안에서 말씀하신다. 우리 자신 안에 내적 침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분께서 우리
에게 기도하도록, 또는 그분이 주시는 영감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도록 재촉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6) 기도를 길게 늘어놓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는 ‘구경꾼들을 위한 기도’라고 부른다.
기도를 너무 길게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듣기가 어려워진다.
7) 사람들이 모임에 오기 전에 개인적인 기도를 통해 미리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각자가 사적인 기도를 통해 많은 시간 준비를 하고 모이는 그런 날에
가장 큰 열매를 맺는다.
- (시작을 위한 몇 가지 다른 조언) 피정 기간 동안 공동기도가 강조하는 주안점은
피정과 관련된 개인적인 도움을 주님께 청하는 것이며, 그것들을 베풀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리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찬미 기도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우리와 이웃에게 주신 좋은 것들에 대해 찬미할 때 우리의 마음은 빛과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된다. 공동기도가 무겁고 끌려가는 느낌이 들 때 지도자는 간단히 찬미의 기도를
드리고,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바라보며, 모든 것에 대해서, 좋은 것과 나쁜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분이 좋으신 하느님이시라는 그 사실에 대해 그분을 찬미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 그분에 대한 찬미는 염경기도로 개인적으로 할 수도 있고, 여럿이
모여서 찬미와 감사와 경배의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공동기도에서는 한 시간 등
기도시간을 미리 정해서 모든 사람들이 얼마 동안 기도하게 될지를 분명히 알리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억지로 분심 속에서 기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 (사제들의 공동 기도) 나는 때로 방문객과 상담을 끝낸 후에 그 사람과 함께 기도를
한다. 둘이 함께, 그 자리에 계시는 주님께 기도하며, 그분께 우리의 희망과 실망과
혼돈을 아뢰며, 도움을 청한다. 이러한 면담시간이 양쪽 모두를 위해서 매우 효과적이고
‘치유를 주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거듭 깨닫게 되었다. ... 나는 여러 가족들을 방문했을 때
그분들과 함께 기도했다. 먼저 내가 기도하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도 주님께 드릴 말씀이
있으면 하시도록 청한다. 그분들에게는 주님께 말씀드릴 것이 항상 많다. 처음에 그들은
내게 말을 하고, 나는 그분들을 위해서 주님께 기도를 드리지만 나중에는 그분들이 스스로
주님께 말씀드리도록 한다.
[ 10. 회개 ] - p153
- 피정을 시작할 때, 자기 죄에 대해 묵상하고, 회개의 은총을 통해서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것이 관례이다.
- (회개 :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길)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일은 우리의 공적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은총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은총을 받기 위한 준비 자세
두 가지는
첫째, 그분을 만나고자 하는 불타는 열망, 둘째, 지속적인 청원기도이다.
그 외에 세 번째 준비가 바로 회개이다. 이러한 사실은 요한 묵시록에 잘 기록되어 있다.
묵시록 2,1-5(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 3, 14-20(라오디케이나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이다.
- (회개의 필요성) 예수께서 첫 번째 설교 주제가 바로 회개이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습니다. 여러분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 또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
들의 첫 설교 주제이기도 하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사도 2,38). 참으로 회개는 그리스도교 신자의 근본 자세이며, 항구 불변의 자세이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로마 7,24-25). 하는 바오로 사도의 말을 체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분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 (죄에 대한 감각) 오늘날에는 자신이 무력하고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어렵다. 나는 그것이 우리 시대에 널리 퍼진 죄에 대한 감각의 상실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는 죄를 상당히 가볍게 여기고 있지만, 예수께서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너희가 누구의 죄를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 23). 예수께서는 주님의 기도 안에서 오직 세 가지만을 청하라고
명하신다. 그 세 가지는 일용할 양식, 유혹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도덕적인 힘, 그리고
죄의 용서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보내주셔서 이 세상으로 하여금 ‘죄와 정의의
심판’을 깨닫게 하신다. 복음서 등의 첫머리에는 죄의 용서가 예수께서 주시는 구원
이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세속적인 구원이라기보다는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신약성서의 여러 대목들(1티모 1, 15/ 로마 5,8/ 1요한 4,10/ 마태 9 등)은
이런 이유 때문에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다.
- (회개의 의미) 그리스어로 회개는 ‘메타노이나’라 하는데 마음과 정신의 전적인
변화를 가르킨다. 죄스러움에서 마음과 정신을 돌려 하느님을 향하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회개의 공식은 예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다음과 같은 권고일 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루카 10,27). 회개의 은총은 언제나 큰 기쁨과 평화를 동반
한다. 예수께서는 항상 회개를 큰 기쁨과 하나로 묶으신다. 예수께서는 길 잃은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하는지,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 양치기가
얼마나 기뻐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죄인 하나가 회개할 때 하느님의 천사가 얼마나
기뻐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신다. “하느님, 하느님을 정말 사랑합니다. 제 마음을
다하고 제 목숨을 다하고 제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하고 거듭
거듭 말씀드리는 것보다 더 나은 회개 방법은 없다.
- (그리스도를 만난 뒤에 회개가 뒤따른다) 회개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회개의 은총보다 선행된다. 회개의 은총을 충만하게
받는 체험은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한 후에야 가능하다. 그분을 만난 뒤에야 비로소
죄가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된다. 어두운 지하 감옥에 있던 사람은 밝은
곳에 나온 후에야 그 감옥이 얼마나 어두웠는지를 깨닫게 되며, 빛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인지를 알게 된다. 죄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죄인이 아니라 성인이다.
그는 하느님의 빛 안으로 나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성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알게 된다. 성 안셀모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기도문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를 애통해하게 되는 단계들을 훌륭하게 전개해 놓은 것이다. 이 기도를 소개
한다. “오 주 하느님,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열망하는 은총을 허락하소서. 그 열망에
넘쳐 주님을 찾고 발견하게 하소서. 주님을 발견하여 사랑하게 하시고,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께서 그리로부터 우리를 구해 내신 그것들(죄들)을 미워하게 하소서. 아멘.”
- (회개와 관련한 성서 대목들) * 신약성서 : 루카 7장(죄 많은 여자의 용서), 루카
15장(되찾은 양, 은전, 아들의 비유), 사도행전 9장(사도 바오로의 회개), 요한 4장
(사마리아 여인의 회개), 루카 19장(자캐오의 회개), 요한 21장(베드로의 사랑 고백),
1티모테오 1, 15(베드로의 감사), 묵시록 2, 1-7 : 3, 14-22. * 구약성서 : 에제키엘
16장, 예레미야 2장, 호세야 2장, 이사야 63, 7-64 등이다. 무엇보다도, 회개와 죄에
대해 애통해하는 은총을 스스로 만들어 내려 하지 말고 하느님께 청하자.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선물을 청하자. 피정 기간 동안 여러분의 기도 안에서 그분을 만나 뵙는
선물을 청하자. 그러면 다음에 회개가 따라올 것이다.
[ 11. 회개의 위험성 ] - p163
- 회개를 잘못 이해하면 죄와 벌의 두려움, 자기혐오를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어 아주
위험한 것이 되어버린다. 모든 좋은 것들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회개도 예외가
아니다.
- (자기용서의 거부) 하느님께서는 오로지 용서하시기만을 원하신다. 우리는 죄송하다는
말조차 드릴 필요가 없다. 단지 그분께 돌아가기를 열망하기만 하면 된다. 사람들은
용서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더 해로운 것은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고 마음이
괴로운지에 대해서만 계속 생각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게 된다. 자신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행을 해야 하고 자신을 정화해야 한다. 다시금 하느님의 호의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지난 과거를 철저하게 보상해야 한다.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이러한 그릇된
생각보다 더 영적인 삶의 진보를 가로막는 것이 없다. 이 그릇된 생각은 절대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면 여러분의 하늘의 아버지께서도
여러분을 용서하실 것입니다”하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양심을 성찰하고 모든 죄를 사제
에게 이야기하며, 회개 행위와 개심과 보속을 채우는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지만
이 모든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형제가 우리에게 했던 나쁜 일들을 용서하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빠진다면 아무리 완벽하게 회개를 하고, 고백소에서 자기 잘못을 아무리
정확하게 열거한다 하여도 죄는 용서받을 수없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랑이다. “내게로 와서 나를 사랑하다고 말하여라. 그러면 네 죄는 용서받을
것이다.” 회개하는 죄인, 사랑 안에서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죄인은 자석보다 더 큰 힘
으로 하느님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긴다. 하느님은 그 사람을 역겨워하지 않으시며,
그지없이 사랑스럽게 여기신다. 바로 이것이 기쁜 소식이다.
- (하느님께 대한 지나친 두려움) 하느님과 그분의 처벌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은 죄에
대한 묵상이 도를 지나친 경우에 나타나는 또 다른 좋지 않은 결과이다.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에 가득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예수께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 율법의 굴레로
부터 해방을 전파하신 지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율법의 종교에 사로잡혀 있다. 이들은
특별히 겁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다. 대개 그들은 자신의 영적인 삶을 지배하는 이러한
두려움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 하느님께 대한 신경증적인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율법과, 율법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달리 이해해야 한다. 율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대한 다른 이해를 주장하는 것이다. 문제는 율법이
요구하는 내용이 아니다. 두려움을 키워내고 속박하며, 자유롭게 하느님을 위해 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바로 율법이다. 결국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께 사랑과 자유 안에서
응답하기 위해서는 율법의 실체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무조건
적인 그 사랑에 대한 이해이다. 성서학자들은 구약과 신약의 메시지가 지닌 차이점을 설명
한다. 구약의 하느님은 착하게 순종한다면 친절을 베풀 것이고, 반역한다면 분노하여 멸망
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신약의 예수께서는 다른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하느님은
성인에게 친절하신 것처럼 죄인들에게도 자비로운 하느님이시다. 그분은 양쪽 모두에게
비와 햇빛과 내려 주시는 분이다.
- (그리스도를 짐스러운 분으로 느끼는 것) 이는 회개와 우리의 죄에 대한 묵상에
도사리고 있는 마지막 위험이다. 사람들은 흔히 그리스도를 선물로 체험하기 훨씬 전에
먼저 일종의 짐으로 체험한다. 그리고 회개하라는 부르심은 그리스도가 짐이라는 이런
생각을 더욱 굳게 만든다. 성령은 성부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선물을
두려워하고 있다. 선물을 받으면서 그 선물에 부과된 부대조건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분이 주시는 것은 아무 조건이 없다는 것을, 그분이 오직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행복과
평화라는 사실을 쉽게 믿지 못한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 마음속의 사랑이 요구하는 것
이상의 것을 결코 요구하지 않으신다. 성인들이 하느님을 위해서 했던 일들을 여러분도
하고 싶다면, 성인들이 하느님께 가졌던 그만한 사랑을 당신 마음에도 부어 주시도록
하느님께 청하자.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커갈수록 하느님께 여러분 자신을 기쁘게 바칠
수 있는 능력도 커질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 12. 죄의 사회적 측면 ] - p179
- 옛날 성인들은 십자가상의 그리스도를 관상하면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자신들의 죄라는 생각을 통해서 깊은 회개를 체험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계속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있는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더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 (형제들의 고통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가?) 오늘날 예수께서는 당신 형제들, 즉 불의의
희생자, 병자, 정서적인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인격 안에서 다시 십자가에 위에
매달려 계신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앞에 서서 “제 죄가 이런 일을 저질렀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듯이, 오늘날 고통을 겪고 있는 어떤 사람 앞에서라도 “제 죄가 이런
일을 저질렀습니다”하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하느님께 대한 죄뿐
아니라 형제들에 대한 죄도 고백했던 것이다. 우리의 죄로 하느님의 마음에만 상처를
입힌 것이 아니라 신비체 전체에 상처를 준 것이다. ... 세상의 고통과 불의에 대해 책망
해야 할 사람은 자본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니다. 책망해야 할 죄, 바로 내 죄이다.
죄를 뿌리 뽑을 수 있다면 고통도 뿌리 뽑을 수 있다. 우리는 기아와 실업, 질병과 문맹을
퇴치하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헌신해 왔다. 그리스도교의 사랑은 그러한 일을
요구한다. 고통 받고 권리를 유린당한 형제들을 향한 마음이 차갑게 식어있다면 우리의
설교는 무의미한 것이며,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는 것이다. 참으로 가공할 일은
기아의 고통이 아니라 굶어 죽어 가고 있는 형제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냉정
하고 무관심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이기심과 죄의 무서움이다.
- (고백성사) 고백성사의 첫째 목표는 하느님과 화해하며, 그리스도와의 깊은 일치를
이루고, 성령의 권능을 새롭게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사를 받기 위한 마음가짐은
고백할 죄의 목록보다 더 중요하며, 이 은총들은 결점의 제거보다 더 중요하다. 이 성사를
받으려면 적절한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한 가지 관심, 즉 우리의
양심을 성찰하고 가능한 한 죄의 정확한 목록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지나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심은 다음에 열거하는 것들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먼저 해애 할 일은 우리에게 잘못한 모든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이다.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마르 11,25). 또 다른 준비는
우리 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고 의로운 분이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
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1요한 1, 8-10). 그리고 또 다른 준비가 있다. 그것은 예수께 대한 큰 사랑과
그분을 보려는 큰 열망이다. 이는 ‘10장. 회개’에서 다룬 대로 처음의 사랑으로 돌아
오도록 에페소 교회에 촉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묵시 2,1-5), 자캐오의 열렬한 바람과
(루카 19), 막달라 여자의 사랑에 찬 눈물과(루카 7), 예수께 대한 베드로의 사랑 고백
(요한 21)을 기억해 보자. 마지막으로 갖추어야 할 준비는 우리를 용서하시려는 예수님의
큰 열망에 대한 믿음이다. 예수께서는 사랑에 찬 아버지의 비유, 잃어버린 은전의 비유,
잃어버린 양의 비유(루카 15), 그리고 묵시록(3,20)에서 하신 말씀을 통해서 당신의
이 열망을 강하게 드러내신다.
* (피정중에 고백성사를 받는 한 가지 방법) 먼저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에 대한 감사로
시작한다. 죄를 고백하고 나서 여러분 삶의 어떤 영역들을 치유해 주시도록 청해 보라.
주님께서 치유해 주셨으면 하고 바라는 육체와 감정과 정신의 모든 질병을 말씀드리자.
주님께서는 죄의 용서와 치유를 하나로 묶어 놓으셨으며, 화해의 성사는 치유의 성사
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러한 치유를 더 자주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치유가 일어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치유와 더불어 이 성사를 받은 결과로서
여러분 안에 영적인 새 힘이 솟아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죄의 용서와 더불어
새롭게 성령으로 충만해 졌기 때문이다. 그리고나서 사제가 동의한다면, 둘이 함께 잠깐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다. 침묵속의 기도든, 소리 내어 하는 기도든, 여러분이 받게 될
사죄의 권능을 통해 주님께서 여러분을 치유해 주시고 당신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힘을
새롭게 채워 주시도록 기도한다.
- (베네딕토 기도법) 기도에 성서를 사용하는 한 가지 방법, 곧 성서 대목을 기도로
바꾸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방법은 베네딕토 기도법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교회 안에서
오랜 세월 동안 사용되고 있다. 기도 중에 쉽게 분심이 들고, 그럴 때 어떻게 해애 할지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특히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기도는 세 단계로 되어 있는데, 독서.
묵상. 염경기도이다. 먼저 성서나 영적 서적의 한 대목을 읽는다. 전에 한 번도 읽어본
일이 없는 책은 기도 재료로 택하지 않는다. 이는 호기심에 마음을 빼앗길 수도 있고,
기도보다는 독서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성서의 한 대목
이나 ‘준주성범’ 같은 영적 서적의 한 대목으로 기도를 시작한다고 가정해 보자. 계속
읽다가 마음에 와 닿는 대목이 나타나면 읽기를 멈추고 다음 단계인 묵상으로 넘어 간다.
묵상은 성찰이나 사변적(思辨的)인 생각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입으로 또는 마음속으로
그 말씀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 말씀을 마음속으로 되풀이하면서 음미한다. 그리고
그 말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 위해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예)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시오. ... 몇 번 반복” 이렇게 하다보면
어떤 단어들을 다른 단어들보다 더 강조하게 된다. 그러면 기도문은 더 짧아진다.
(예) “내게로 와서” ... 반복) 그 단어의 맛을 느끼고 음미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계속한다.
그리고 나서 멈추고 셋째 단계인 기도의 단계로 들어간다. 말씀을 반복하다보면 멈추어서
침묵 중에 그 말씀에 머물고 싶어지거나, 주님께 무엇인가 말씀드리고 싶어지는 때가
온다. 기도(Oratio)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말씀을 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예)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이렇게 부르십니까? 정말 성인과 죄인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부르신단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을 굳게 신뢰하고 주님께
나아가겠습니다.” ... 또는 주님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분의 현존 안에서 침묵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분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깊이 침잠(沈潛)하도록, 그 말씀을 하신
주님의 현존 안에서 사랑을 느끼며 쉬는 것이다.
* 이 외에 시편을 낭송하는 이상적인 방법(성무일도 중에), 그리스의 위대한 스승
성 요한 코마쿠스의 기도법,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기도법, 데레사 성녀의 간단한 형태의
기도 등 소개.
[ 14. 그리스도의 나라 ] -p193
-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종교적인 왕으로 기다려온 메시아가 당신이라는 사실을 드러
내지 않으려고 하신다. 마침내 총독 관저에서 빌라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그분을
만나게 된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장).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나타내는 완벽한 형상이다. 기도 중에 이 장면에 머물러
보자. 이 장면에 머무는 동안 끊임없이 들려오는 그분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보자. ...
“그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쌓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마태 16, 24-27) 우리는
침묵 중에 그분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성의 논리를 버리고, 믿음의 논리, 마음의 논리를
선택해야 한다. 베드로 사도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다음의 세 가지 은총을
청해야 한다.
1) 그분의 부르심에 귀를 막지 않는 은총 : 오늘도 예수께서는 고통과 죽음 속에서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신다. 그리스도께서 “오너라”하고 부르시는 것을 듣게 되면 어리석은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그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와서 죽어라”이다.
2) 이해할 수 있는 은총 :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어느 누구도, 어떤 책도 우리를 이해하도록 해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해하려면 성령의 선물을 청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하느님의 사고방식
으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이 성령을 청해야 한다.
3) 평생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은총 : 이 은총은 큰 고통 속에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감을 의미하며, 단순히 힘든 일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운명을 함께함을 뜻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 그분의 십자가를 지는 것은 슬픔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즐거움과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기쁜
소식이며, 사람들이 오랜 세월 고대해 온 행복의 비밀이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많은 고통을 당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표시를 자신의 몸에 간직하기를
원했다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통에 아직도 부족한 것을 몸소 채우겠다고 까지 말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보낸 서한들에서 볼 수 있듯이 그분은 평화와 기쁨에 넘치는
하느님의 전령이시다.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곧 힘든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삶은 행복한 삶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더 기꺼이, 온 마음을 다해서, 더 꾸준히 그분을 따르게 될 것이며,
그분의 사랑에 찬 현존과 그분 성령의 힘으로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 15.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고, 따름 ] - p201
-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분을 따르기가 불가능하다. 그분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며, 믿음으로 그분을 따르는 은총을 청하자.
- (그리스도를 앎)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곧 그분을 만난다는 뜻이다. 모든 사제,
교리교사, 복음교사 들의 간절한 희망은 자기가 가르치는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이 한 말 때문이 아니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요한 4, 42) 하는 말을 듣는 것이다. 이 인식은 책이나
설교가들에게 들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몸소 가르쳐 주신 인식이다. 이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은 아무리 성찰하고 묵상해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것은 순전히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속에서
겸손하고 끈질기게 청하는 것뿐이다. 여러분을 그리스도에게 소개하고 그분이 누구
인지를 보여주는 분은 바로 성부이시다.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주시고,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을 주시도록 성부께 청하자. 성부 이외에는 그리스도를 아는 분은 없다. 성부께
그러한 은총을 청하자.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
하십니다.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오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1코린 2, 1-12).
- (그리스도를 사랑함) 그리스도와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는, 그분의 선하심과 사랑에
사로잡히지 않고서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깊어질수록 우리의 사랑도 더욱 커질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커질수록 우리의 인식도
더 깊어질 것이다. 어떤 사람을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사랑의 눈으로 그 사람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라고 요구하신다. 주저하지 말고 온
마음을 그리스도께 드리자. 사랑과 애정의 모든 보화를 그분께 쏟아 붓자. 바오로 사도가
지녔던 멋진 사랑, 너무도 강렬하여 감히 외칠 수밖에 없었던 그 사랑을 얻도록 노력하자.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밖에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 35-39).
- (그리스도를 따름)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이 성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일이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성서 몇 대목을 소개한다. 이를 기도자료로 삼아서 그 안에서 영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2코린 1, 3-5(환난과 하느님의 위로), 콜로 1,24(교회를 위한 바오로의
사도직), 2코린 6,4-10(하느님의 일꾼), 2코린 11, 21-12,10(사도로서 겪는 고난,
바오로가 받은 환시와 계시), 갈라 2,19-20(믿음으로 얻는 구원), 갈라 6,17(예수님의
낙인), 2코린 4, 7-16(질그릇에 담긴 보물), 필리 1,20-26(사도의 삶과 그리스도)
...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관한 복음서 대목들이다. 마태 10, 37-39(버림과 따름),
루카 14, 26-29(물 위를 걸으시다), 요한 12,23-26(따름), 마르 10,38-39.42-45
(출세와 섬김), 요한 15,20, 루카 9,57-62(예수님을 따르려면). ... 이중에서 원하는
대목을 택해서 기도자료로 삼아 거기에서 믿음으로 예수를 따르는데 필요한 영감을 얻기를
바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러한 은총을 끈질기게 청하자. 끈질긴 기도와 믿음은 많은
묵상과 성찰로도 얻을 수 없는 것을 얻게 해준다.
[ 16.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묵상 ] -p217
-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많은 성인이 권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복음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해 묵상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상상력을 활용한다. 현대의 많은 심리치료가들은 상상력을 활용해서 효과를 보고 있다.
심리치료가들은 상상의 세계가 생각처럼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며, 도피나 비현실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정신으로 파악할 수 없는 현실의 깊디깊은 실재들을 보여주는
세계로서, 치유나 성장을 위해 매우 효과적인 도구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
그리스도의 생애 중에서 아무 장면이나 선택해 보자. 먼저 그 대목(예 요한 5, 1-9 :
벳자타 못 가에서 병자를 고치시다)을 읽는다. ... 복음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서
아주 일부만 전해 주고 있다. 상상을 통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모두 들어본다.
그리고 그분의 권능에 찬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다. 이 순간은 은총의 순간이다. 2천
년 전 그 병자 앞에서 그러셨듯이, 예수께서는 지금 이곳에 실제로, 권능을 지니시고
현존해 계신다. 그분의 권능을 믿는다면 그분의 치유의 손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그 병자만큼 감각을 통해서 느낄 수는 없을지라도 그만큼 실제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
이다. 그러고 나서 그분과 사랑의 대화를 나눈다.
- 보나벤뚜라 성인의 말이다. “이 묵상에서 선익을 얻고자 한다면 모든 걱정과 근심을
치워버려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관상 속에서, 마음 안의 모든 느낌들 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것을 여러분 자신에게 현존하도록 하되, 마치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처럼 해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것들이 매우 감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더욱
갈구하고 음미하면서 그것에 대해 성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장면이
과거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마치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관상해야 한다.”
이냐시오 성인은 그리스도 생애의 장면들을 스스로 재구성해 보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성탄 묵상에서 “상상의 눈으로 나자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가는 길을 보면서, 얼마나 먼지,
얼마나 넓은지, 평탄한 길인지, 골짜기를 지나가거나 고개를 넘는지를 생각할 것이며,
같은 모양으로, 탄생하신 장소와 동굴이 넓은지, 좁은지, 높은지, 낮은지, 어떻게 준비
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라”고 주문한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그 장소들을 재구성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자신의 환상 속에서 나자렛과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환상은 역사적인 진실보다 훨씬 중요한 신비적인 진실을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환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줄 것이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알베르니아 산으로 가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환시를
보았으며, 사랑으로 그분을 십자가에서 내려드렸다고 한다. 성인께서 예수님을 십자가
에서 내려드리고, 신음하시는 그분 곁에 서 있을 때, 그것이 환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인 정신과 이성적인 신학이 이해하지 못할 침묵 속에 잠겨 있는 그 상황에서,
사랑에 의한 신비가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우리가 크리스마스 때 구유를 만드는 관습은
프란치스코 성인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 (기억의 치유) 치유와 성장을 체험하기 위한 삶에 대한 묵상 방법이다. 그리스도의
생애 중에서 어떤 장면을 묵상할 때, 스스로 그 장소로 가본다. 내가 그곳에 있다고
상상하며, 모든 사건, 대화, 행위에 참여한다. 내 삶의 어떤 장면으로 돌아왔을 때,
그 사건이 일어났던 그대로 되살리되 한 가지만 바꾼다. 그 한 가지란 그리스도께서
그 사건 안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맡으시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들 안에는 계속 괴롭
히는 기억들이 존재한다. 과거 삶의 상황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서 계속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이러한 기억들은 온전히 삶 속에 몰두하지 못하게 하는 장벽을 만들기도
하고, 삶을 살아내는 능력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하기도 한다. 인격의 영적. 감정적
성장을 위해서는 내부에서 계속 괴롭히는 미해결 상태의 이러한 상황들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와 만나서 이러한 상황들을 되살리게 되면, 필요하다면 거듭
거듭 되살리게 되면, 그 상황에 새로운 의미가 담기게 된다. 그리고 그 상황의 아픈
가시들이 사라지고, 감정적으로 동요되지 않으면서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제로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는 선익이 되고 당신에게는 영광이 되도록 그러한 사건들을
계획하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사건들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이 기도법은
훌륭한 치유법이며 탁월한 영성이다. 묵상 속에서 고통, 모욕, 자신이 부적절한 사람이라는
느낌, 슬픔, 열등감, 두려움들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억으로 되돌아
간다. 그 부정적인 느낌들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그리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러한 느낌들이
사라지고, 그 사건에 대해서 사랑과 감사와 찬미를 느끼게 되면 더 이상 되돌아갈 필요가
없다. 해결되지 않았던 그 상황은 그리스도의 현존에 의해서 해결되었고 치유되었으며,
나아가 성화된 것이다.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에서 그 사건들을 되살려보게 되면 하느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며 하느님의 선하심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깊게
해주며, 정신을 성장시켜 준다.
[ 부록 : 기도를 위해 도움이 되는 요소들 ] -p229
- 사랑은 인간에게 본성적인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기술에 통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랑 역시 많은 훈련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기도도 다른
기술들처럼 일종의 기술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기도에 숙달하기 위해서는 고통
스런 학습과 많은 훈련을 거쳐야 한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도의 기술에 있어 별로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기도에 필요한 모든 인간적인 요소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며, 시간과 공간의 피조물이다. 육체를 지닌 피조물
이며, 언어를 사용하고, 공동체 안에서 살며,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기도 역시 이러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기도를 위해서는 언어가 필요하다. 육체를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며, 적절한 장소가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볼 때 기도에는 그 모든 것이 필요하며, 이는 초기의 부드러운 새싹과 같은 단계에서
특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완전히 큰 나무로 성장했을 때에도 그것
들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성장하게 되면 기도는 자신의 독특한 형태를 갖추어
나가기 시작하며, 필요한 요소들을 선별해서 선택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 (기도와 몸) 영적으로 건조하거나 미지근하게 느껴질 때 부활의 광채에 싸여 여러분
앞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떠올려 보자. 그러고는 진지하게 손을 앞에
모으고서 그분 앞에 서거나 앉거나 무릎을 꿇어 보자. 그분의 현존 앞에서 느끼는
감정과 경배심과 신심을 몸으로 표현해 보라는 것이다. 분명히 잠시 후에는 마음과
정신도 몸이 표현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분의
현존에 대한 인식은 더욱 강해질 것이며, 무기력해진 마음이 뜨거워질 것이다. 이것이
몸으로 기도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점이며, 몸도 함께 기도하게 함으로써 누리게 되는
이점이다.
- (언어 없는 의사소통) 많은 심리학자들은 언어가 아닌 몸으로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몸만 가지고서 주님께 무엇인가를 표현해 볼 수도 있다. 몸으로만
하나의 완전한 의식을 거행할 수도 있다. 그분의 현존 앞에 홀로 선 채로 잠시 시간을
보낸다. 그러고 나서 천장이 보일 때까지 천천히 머리를 든다. 잠시 그 자세로 멈춘 뒤에
손바닥을 위로 하고 두 팔을 가슴 높이까지 부드럽게 들어올린다. 그리고 그 위치에서
잠시 멈춘다. 그 다음에는 손바닥을 위로 한 채로, 성반이나 접시를 받쳐 들듯이 두 손이
맞닿도록 서서히 모은다. 이 자세는 자신을 하느님께 바친다는 뜻을 표현한다. 그 자세로
3~4분 있다가 천천히 머리와 손을 내린다. 다시 이 의식으로 자신을 바친다는 같은 뜻을
표현할 수 있고, (다른 자세를 만들어 냄으로써) 다른 태도나 뜻을 표현하는 자세로
나아갈 수 있다.
또 이런 방법도 있다. 방 한가운데에 똑바로 선다. 눈은 수평선을 바라보듯이 똑바로
앞을 바라본다. 그리고 두 팔이 어깨 높이에 올 때 까지 서서히 들어올려서, 손바닥이
바깥을 향하게 하고 두 팔을 크게 벌려서 바깥쪽으로 쭉 편다. 그 자세를 3~4분 동안
유지한다. 이 자세는 주님이 오시기를 바라는 열망을 표현하며, 주님이나 모든 형제들,
여러분 마음에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는 태도를 표현한다. ... 또 한 가지 예
이다. 주님의 현존 앞에 잠시 서 있다가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두 손을 가슴 앞에 합장
한다. 그렇게 잠시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바닥에 엎드린다. 바닥에 닿을
때까지 완전히 엎드린다. 그리고 십자가 모양으로 온몸을 죽 편다. 복종이나 간청, 또는
무력함을 표현하는 그 자세를 몇 분 동안 그대로 유지한다. 여기에 제시한 예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경배나 부드러움이나 슬픔 등을 표현하는 각자의 방법을 창조적으로
만들어 내면 된다. 그러면 몸으로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 (몸을 움직이지 않는 기도) 기도 중에 몸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기도하기를 원한다면
‘언어 없는 의사소통’에서 제시한 것들이 도움이 된다. ‘몸을 움직이지 않는 기도’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육체의 완전한 정지 상태, 곧 평화를 키워주고 분심을 쫓아주는
정지 상태이다.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이 있다. 나태한
상태가 아닌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양팔을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고 어깨 위에 있는
옷의 느낌으로부터 신발에 닿아 있는 발바닥의 느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각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어깨와 등과 손과 넓적다리와 발과 손을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의식하는데 한 가지 감각에 3~4초 이상 머물지 말아야 한다. 얼마간 이
훈련을 계속하면 몸이 편안하게 이완되면서 몸이 온전히 정적(靜寂) 속에 머물게 된다.
이는 기도하기에 아주 좋은 터가 된다. 그리고 기도로 들어간다.
또 한 가지는, 눈을 반쯤 뜬 채로 1m 정도 떨어진 점을 응시하는 방법이다. 많은 사람
들이 이 방법으로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눈을 반쯤 뜨고 있으면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상태가 기도에 도움이 된다면, 어느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어떤 대상이나 한 점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기도에 몰입하면 된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빛나는 물체를 바라
보아서는 인된다는 것이다. 또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등을 똑바로 펴는 것이다.
등뼈를 똑바로 펴고 있으면 잡념이 사라지는 반면에 등뼈를 구부리고 있으면 정신이
분산되는 것은 신비한 일이다. 실제로 어떤 티벳 승녀들은 명상을 위해서 등을 똑바로
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명상하는 사람에게 등을 똑바로 펴고 누워서 명상을
시키기도 한다.
- (답답해하고 고요히 머물지 못하는 문제) 기도하기 위해서는 육체를 고요히 머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움직이는 주에도 계속 기도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기도는 깊은 기도가 되지 못한다. 기도에 깊이 몰입하기 위해서는 몸이 고요히
머물러야 한다. 고요한 몸이 깊은 기도를 만들어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동안에는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된다. 움직이고 싶은 충동이 너무 강한 경우에는
해 볼수 있는 예이다. 여러분이 체험하는 그 자극과 충동을 의식한다. 그리고 그것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과 긴장, 그 긴장을 느끼는 부분과 그 자극과 충동에 대한 저항을
살펴본다. 몇 분 후에도 여전히 가라않지 않는다면 방안을 아주 천천히 걸어본다. ...
너무도 긴장이 심하고 움직이고 싶어서 이런 저런 방법이 도움이 안 된다면 방에서 이리
저리 걸어보든가 조용한 뜰 한편에서 걸어보도록 한다. 단순히 몸을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천천히 평화로운 몸짓으로 움직이면서 몸으로 기도한다. 아니면 3~4분마다,
아주 천천히 자세를 바꾼다. 그러다가 어떤 자세에서 머물게 될 수도 있는데, 그런 경우
에는 자세를 바꿀 필요가 없다.
- (좋아하는 자세) 기도의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이면 머지않아 자신에게 꼭 맞는 자세를
찾아내게 된다. 그리고 기도할 때마다 거의 그 자세를 취하게 된다. 경험으로 보아
그 자세를 취하고 쉽사리 바꾸지 않는 것이 현명함을 알게 된다. 한 자세가 다른 자세
보다 쉽게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고, 하느님을 더 쉽게 만나게 해주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 이상적인 자세는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경배와 육체의 휴식과 평화가
결합된 자세이다. 많은 훈련을 통해서 이러한 평화와 고요함과 경배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몸 안에서 기도를 위한 힘 있는 동지를 만나게 될 것이며, 때로는 기도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충동까지도 발견하게 된다.
- (깨지기 쉬운 기도생활) 자연은 세심하게 온갖 도움으로 우리를 감싸주고 있다.
기압이나 기온에 이상이 생기면 모든 생명은 즉시 멸망하게 될 것이다. 살기 위해서는
매일 먹고 마셔야 하며, 공기로 호흡해야 한다. 건강과 육체의 안녕을 보호하기 위하여
의학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러한 염려 덕분에 인간은 더욱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기도생활에도 언제나 모든 도움과 뒷받침이 필요하다. 연약한 묘목이 끊임없이
보호하고 감싸주며, 영양분을 공급해 주어야 하듯이 기도생활을 반성과 침묵과 영적
독서와 다른 많은 도움들로 감싸주지 않으면 쉽게 손상을 입고 소멸되어 버린다.
- (기도 장소) 기도를 위해 선택한 장소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기도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 예수께서는 산상 설교나, 거룩한 변모를 보여주실 때 산에 오르셨다.
또 게쎄마니 동산에도 가셨는데 이곳 역시 기도하시던 장소인 것 같다. 또 복음서에는
광야라고 부르는 사막에도 가셨다. 예수께서는 물러가서 기도로 이끌어 주는 힘이 있는
장소를 선택하신다. 기도를 북돋아 주는 장소들이 있다. 조용한 정원, 그늘진 강가,
평화로운 산, 끝없이 펼쳐진 바다, 황혼에 물든. 밤에 별이 총총한. 새벽별이 돋는.
해가 떠오르는 테라스 등 이 모든 장소들은 기도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하는 장소들이라
할 수 있다. 한 번 그런 장소에 가게 되면 그 장소를 마음에 담아올 수 있다. 한 번 담아
오게 되면 상상 속에서라도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충분하며, 실제로 그곳에 갔을 때
누렸던 기도를 위한 혜택을 모두 다시 얻을 수 있다. 그런 장소를 찍은 사진들까지도
기도에 도움이 된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에서, 회개와 뉘우침의 은혜와 자신이
죄인이라는 깨달음을 더 쉽게 얻기 위해서는 방문을 닫고 주위를 어둡게 하라고 권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캄캄한 방에 촛불을 한 자루 밝혀놓을 수도 있다. 그러고는 기도로
들어가서 그러한 분위기가 기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자. (단, 촛불은 바라보지
않도록 한다) 촛불은 전체의 분위기를 조성해 준다. 물질적인 것들은 우리의 감정
상태에 영향을 준다. 많은 성인들은 그러한 것들에서도 풍부한 영적 선익을 이끌어 냈다.
- (동일한 장소에서 기도함 : ‘거룩한’ 장소) 기도는 가능한 한 열거했던 그런 장소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장소’ 라든가 ‘거룩한’ 장소에서 기도하도록 한다. ‘거룩한’ 장소란
기도를 위한 장소, 교회나 경당, 기도방들을 말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여러분 방이나
집의 한 모퉁이를 기도 장소로 정해 놓고 매일 그곳에서 기도를 하자.
그러면 그 장소는
신성한 특성을 얻게 될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다른 장소보다 그곳에서 기도하기가 더
쉽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어떤 집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그 집에 살고
있는 공동체의 영적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분위기 안에서 그것(신성한 특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체 앞에서 기도하는 특별한 은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성체가 계신 곳에서 기도할 때 그들의 기도는 생명력을 얻게 된다. 어떤 성인들은 이러한
은사를 강하게 받은 나머지, 성체를 모신 장소에 가면, 겉으로 드러나는 표시가 있든
없든 그곳에 성체가 계시다는 것을 거의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성체에 대한 이러한 본능만으로 그 성체가 축성된 성체인지 아니면 단순한 제병인지도
구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성체 앞에서 기도할 때 받는 은사는 많은 영적 축복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할 수 있을 때마다 성체 앞에서 기도하자. 기도 장소에 대해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어느 장소에서 기도하든 그곳을 깨끗하게 치우라는 것이다. 하느님이
계신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예배 장소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면 머지않아 여러분의
기도에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기도에 도움이 되는 요소 : 시간) 인스턴트 기도란 없다. 어떤 사람과 깊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면 아주 많은 시간을 투자할 각오를 해야 한다. 결국 기도도 하느님과의
관계이므로 마찬가지이다. 현대인들의 기도에 방해가 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첫째,
정적 속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신경증적인 긴장감과, 둘 째, 시간 부족이다. 현대인들은
시간 속에서 너무 많은 요구의 중압에 시달리며, 불행하게도 기도는 시간 낭비라고
느끼고 있다. 특히 정신과 마음과 감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결과가 즉시 나오지 않을 때
더욱 그렇다.
- (기도의 리듬 : 카이로스, 크로노스) 주님께서 주시는 매우 특별한 은총을 받지 않은
경우라면, 기도에 진보하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심화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기도를 배우는 것은 다른 어떤 기법이나 기술을 배우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많은
훈련과 엄청난 시간과 인내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오늘 크게 비약했다고 느끼지만
내일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는 것이 아닌가 느껴질 것이다. 결국 매일 규칙적인
훈련을 할 수밖에 없다. 테니스나 바이올린을 배우려면 하루에 많은 시간을 연습하고
다음날에 연습을 걸러서는 안 된다. 절대로 ‘하고 싶을 때 하라’고 내버려 두지 않는다.
대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육감을 발달시키려면 싫든 좋든 매일 해야 한다. 마음 내킬
때만 훈련을 한다면 그 기술을 통달하기 위한 시작도 안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불규칙
적으로 쏟아 부은 시간은 낭비해 버린 것에 불과하다. 숙달하는 것이 목표라면 ‘하고
싶을 때’ 기도하는 것은 마음 내킬 때 연습하는 것과 똑같이 좋지 않다. 적게 기도할수록
기술은 더욱 퇴보한다.
한 때 ‘기도의 리듬’이라는 이론이 유행한 일이 있었다. 이 이론은 기도에 큰 해악을
끼쳤다. <그리스에는 시간을 뜻하는 단어가 둘이 있다. 하나는 시간의 양, 곧 분. 초,
시를 뜻하는 크로노스(chronos)이고, 다른 하나는 시계에 따른 시간이 아닌 은총의
시간을 나타내는 카이로스(kairos)이다. 예수께서 ‘때’ 또는 ‘시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실
때는 바로 이 카이로스의 의미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카이로스, 즉
하느님께서 정하신 시간을 말씀하신다. 그러니 정해진 시간표 말고 개인의 카이로스에
따라서 기도하자. 기도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과 자신의 영적 욕구에 귀 기울이면서
은총의 시간을 찾자. 그리고 욕구가 충족되거나 하느님의 부르심에 답을 얻을 때까지
모든 시간을 쏟아 붓자!> 매우 합리적으로 들리는 이 이론은 정말 매력적이나 기도
생활에 적지 않은 해를 입었다. 무엇보다도 기도를 적게 할수록 더욱 퇴보하기 때문이다.
기도를 계속 미루게 된다. 그리고 머지않아 미사나 전례시간을 제외하고는 긴 시간을
기도한 지가 참으로 오래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점차 기도하고자 하는 욕구를
잃게 된다. 그리고 하느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절망에 빠진 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삶을 기도하지 않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 092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093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2.12.24.
[ 책 이름 : 생명, 인간의 도구인가? ] - 생명공학 발전과 생명윤리
- 지은이 : 이동익
- 지은이 프로필 : 1983년 사제수품, 1990년에 로마 라테란 대학교 성 알폰소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 취득, 이후 1년간 영국 성 안셀모 연구소에서 영성
상담과정을 수료하고 귀국,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로 재직, 교황청
생명학술원 회원이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이고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자문위원회 부위원장이다. ‘생명의 관리자’, ‘실천윤리신학’ 등 다수의
저서 및 역서가 있다. (2006년 기준)
- 펴낸데 : 바오로딸, 출판 : 2006년 2월 15일, 213p
- 내용 : 생명과학의 발전과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생명 칼럼과 질의응답
[ 표지의 글에서 ]
- 생명과학의 발전은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고 인간성의 품위를 지지해 주며
인간으로서 책임감을 고양시키고 본질적인 차원에서 인간에게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
- 현대세계 안에서 진보와 발전의 개념을 어떻게 알아들을 것인가? 최근 10여 년간
생명과학 의 눈부신 발전은 인류의 삶에 새로운 희망을 던져주었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
감추어진 인간 소외는 “이렇듯 눈부신 생명과학의 발전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라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 목 차 ]
1. 생명의 시작 -p13 - <바로가기 클릭>
생명의 관리자, 인간 생명의 시작, 줄기 세포, 줄기세포 연구지원, 태반은행, 유전자 진단,
맞춤 인간, 인간 게놈 지도, 복제인간1, 복제인간2, BT산업, 라엘리안 무브먼트,
인간복제회사 한국지부
2. 생명은 선물 –p69 - <바로가기 클릭>
모자보건법, 낙태천국, 사후피임약, 인공출산, 대리모, 자연출산조절, 저출산 문제,
뇌사1, 뇌사2, 장기 이식, 장기이식의 한계, 이종 장기이식, 무의미한 연명치료중지,
연명치료거부, 생명은 선물, 품위 있는 죽음, 안락사, 자살
3. 생명 윤리 –p139 - <바로가기 클릭>
생명윤리 기본법(가칭), 시급한 생명윤리 기본법, 과학자의 고백, 기대에 못 미친
생명윤리법, 법과 윤리, 법과 생명윤리, 자연법, 가톨릭 신자 의사, 의료윤리심의기구
협의회, 생명과학 연구의 윤리,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세계 가톨릭 의사협회 총회,
윤리적 상대주의, 자율성 존중의 원리, 이중결과 원리, 전체성의 원리, 과학기술주의,
자유주의, 소비제일주의, 하느님의식 실종, 가정,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
[ 들어가는 글 ]
- 생명과학의 발전이 온전히 인간에게 봉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때, 인간을
도구화시키고 인간자체를 효율성의 차원에서 다룸으로써 결국 인간을 소외시키고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외면하는 생명과학의 발전이라면 결코 그에 동의할 수 없다.
생명과학의 발전은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고 인간성의 품위를 지지해 주며, 인간
으로서의 책임감을 고양시키고 영성적으로 더욱 성숙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더욱 한층 더 드러낼 수 있도록 본질적인 차원에서 인간에게 봉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01년 봄부터 2년 남짓 ‘가톨릭신문’에 격주로
연재했던 생명칼럼을 읽은 독자들의 질문에 필자가 대답하는 내용을 첨가하는 형식
으로 구성되었다. ... ‘인간성 회복과 생명존중’에 도움이 되고, 가톨릭 신자들이
교회 가르침의 본뜻을 새겨 우리 사회 안에서 생명의 수호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 1. 생명의 시작 ]
< 생명의 관리자 > -p15
- 기술 발전은 인류가 지금까지 하느님의 영역이라고 철저히 믿어왔던 인간 생명의
영역까지 깊이 개입하도록 만들었다. 이식을 위해 필요한 장기를 쉽게 만들고, 고통
없이 자는 듯 죽게 만들고,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쉽게 낙태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삶을 실용적이기고도 아주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떠든다.
과연 이러한 현실에서 인간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지, 이 시대가
안고 있는 실존적 고뇌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시대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과제는 인간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사랑하며 이를 위해 봉사하는 새로운 생명문화의 건설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았기에 이 생명의 숭고함은 현세적 삶에서도 위대함과
측량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 인간은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
주인이 아니다. 다만 생명의 관리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하느님께서 자신
에게 선사한 생명을 잘 보호하고 가꾸어 나갈 매우 막중한 책임과 의무가 있다. 다른
사람의 생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것,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물론 실험실에서 인간 생명을 조작하고 만들고 폐기시키는 것까지, 이 모두는
생명의 관리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인간에게 당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신
하느님의 주권과 사랑의 계획에 정면으로 거부하는 행위이다. (2001.1.7.)
- Q/A : 가톨릭교회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 생명의 증진이라든가
연장을 위한 노력을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곧 이 분야의 연구나 실험에는 반드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명을 구하구자 하는 연구나 실험에서 생명을 경시하거나 파괴하는 행위를
동반하는 행위까지 허용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의약품을 만들거나 치료용 세포
등을 만들기 위해 살아 있는 사람의 목숨을 희생해서까지 만들어도 좋다는 식의 사회
일각의 주장에는 결코 동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과학 분야의 수많은 선의의 과학자
들의 노력은 반드시 생명 파괴를 가져오는 연구나 실험이 아닌, 모든 사람이 윤리적으로
합당하다고 여기는 방법으로 인간 삶의 질을 높이고 생명을 증진시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 인간 생명의 시작 > -p19
- 인간 생명의 시작에 관한 문제는 생명윤리에서 매우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인간의 생명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에 따라 인간 배아(Embryo/胚芽)를 이용한
생명공학 분야의 연구나 실험에 대한 윤리성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인간 배아를 가지고 실험실에서 행해지는 일들은 대부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동물의 자궁에 인간 배아를 착상시키려는 시도, 동물의 생식세포와 인간의 생식
세포를 수정시키는 일, 인간 배아를 냉동 보관하였다가 폐기시키는 일, 유전자 개입을
통하여 형질이 변형된 배아를 생산하는 일, 배아를 재료로 하여 줄기세포를 만드는 일
등등이 실험실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은 인간 배아를 파괴하고 인간 생명을
훼손하고 있다는 주위의 거센 윤리적 비판에도 귀를 막고 있다. 인간 생명의 문제는
단순히 생물학적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영혼의 문제이고 인격의 문제이다.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듯이 수정란도 이미 생명인 것처럼 냉동 배아. 복제배아도 당연히
인간 생명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인간 생명이 실험실에서 한번 쓰고 버리는 생물학적
재료 수준으로 격하된다는 것은 끔직한 일이다.
- Q/A : 2002년 7월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의 과학학술지 ‘네이처’가 인간
신체의 구조나 조직은 늦어도 수정된 후 몇 분 안에 형성된다고 발표하면서 ‘수정 후
즉시’ 인간 생명이 시작된다는 우리의 견해를 뒷받침해 주었다. ‘네이처’의 이러한
발표 후 실제로 ‘원시선’ 형성 이후부터 인간 생명의 시작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원시선 형성 형성시기란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하는 과정에서
14일 정도 지난 후에 신체의 장기나 조직으로 분화되기 직전, 어느 정도 조직의 윤곽이
드러나는 시기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생명공학자라고 자부하던 사람들까지도
수정란이 단순한 세포덩어리는 아니라고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 인간을
물질화하려는 시도, 또 생물학적 재료로 쓸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 줄기 세포 > -p24
- 생명과학 분야에서 윤리논쟁의 중심에 줄기세포가 자리 잡고 있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생명윤리 기본법의 핵심도 줄기세포의 추출과 관련되는 문제다. 체세포 핵이식
방법에 의한 인간 배아복제의 허용 또는 금지 문제도 결국은 줄기세포를 어떤 방법으로
용이하게 얻을 수 있는가와 직접 관련되어 있다. 줄기세포는 신체의 모든 장기나 조직을
만들어 내는 만능세포로 이 세포가 분화하여 궁극적으로 뼈. 혈액. 뇌. 근육. 장기. 피부
등 모든 신체기관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한다. 이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각종 뇌질환에서
심장병. 당뇨병.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등 현대의학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수많은
난치병을 가까운 미래에 완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곧 줄기세포의 분화 과정을 통해
인체의 신호 체계를 밝혀내면 질병이 발생한 조직과 기관을 재생시키거나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내면서 질병의 원인은 완벽하게 제거될 수 있다.
-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인간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로 발전하면서 이에 따르는
매우 심각한 윤리문제가 생겨났다.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인간 생명의
배아는 반드시 파괴되어야만 하고, 이는 곧 줄기세포의 확보를 위해 인간인 배아가
일종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의 윤리는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온전한 인간 인격으로서 인간 배아를 파괴하면서까지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것을 반대할 뿐이다. 줄기세포가 인류의 건강과 생명에 큰 기여를
할 것이기 때문에 계속 연구. 활용되어야 한다면 성체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를 그 대안
으로 제시한다. 이탈리아의 밀라노 성심 가톨릭 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태반은행을 설립
하여 타아추출물이나 탯줄 등을 이용하여 성체줄기세포를 연구를 시작하였고, 로마
교황청에서도 이를 지지한다. 성체줄기세포가 배아줄기세포보다 분화 능력에서 다소
뒤떨어지지만 일정한 방향의 분화조절이나 안전성에는 월등히 뛰어나기 때문에 그 기여도
에서 오히려 월등할뿐더러 윤리적 문제도 없다는 점이다.
- Q/A : 줄기세포의 치료법을 통해 난치. 희귀병이 치료된다면 그러한 질병으로 고통을
겪어왔던 환자들에겐 새로운 삶을 가져올 것이며, 그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줄기세포 연구가 오히려 사람의 생명을 파괴하는 연구
라면 생명증진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도구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톨릭교회는
이 때문에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면서도 필연적으로 인간생명을 파괴하게 되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며, 그 대안으로 배아가 아닌 사람의 체세포를 가지고 줄기세포를
생산하는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는 것이다.
< 줄기세포 연구지원 > -p28
- 인간 생명은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며, 인간 생명은 그 존재의 첫 순간부터 인간으로
서의 존엄성을 갖춘 존재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다. 정부에서는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사업 과제를 선정. 발표하면서 ‘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10년간
총 천억 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따른 윤리성 문제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또 토론되는 상황에서 자칫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정당화하고, 나아가 인간 배아복제까지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생명공학계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생명 공학 발전을 위해서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속도를 낸다는 것 자체가 그르다는 것은 아니나 무엇이 더 시급하고 필요한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시급한 것은 연구개발사업이 아니라 생명과학의 참된 발전을
위한 생명윤리법 제정이다. 이법의 기초는 당연히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어야 하며, 생명
과학분야의 연구개발사업 역시 이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2002.1.27.)
< 태반 은행 > -p31
- 인간 배아복제에 대한 대안으로 태반과 탯줄을 이용한 연구를 통해 치료목적의 줄기
세포를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태반은행이 시작된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 배아 복제를 반대한다. 비록 인간 배아복제를 통하여 필요한 인간 장기를 양산하고,
지금까지 인류가 극복하지 못한 여러 불치병의 극복을 위해 필요한 의약품을 생산하여
인류의 생명과 건강 증진을 위해 획기적인 기여를 한다 해도 인간 배아를 인간으로 보는
가톨릭교회는 인간 배아의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는 이 방법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 곧 가톨릭교회의 윤리는 아무리 좋은 목적을 지향한다 하더라도 그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이 악하다면 그 행위는 악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로마 3,8 참조)
인간 생명을 살리기 위해 또 다른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이론
이다.
- 태반이나 탯줄은 인간 배아처럼 생명은 아니다. 그것들은 출산 후의 추출물로서 당연히
인간 신체를 다루듯 정중하게 다루어야 하겠지만 인간 생명의 증진에 이용된다면 이 역시
배아복제만이 만능이라고 여기는 과학자들은 가톨릭교회의 이런 시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비록 배아복제에 비해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의 양은 적지만 태반과 탯줄에서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이 방향의 연구는 인간 존엄성에 위반하지 않는 연구가 될
것이다.(2001.1.21.)
- Q/A : 가톨릭교회는 인간 생명의 시작을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부터라고 가르친다.
일반적으로는 수정란부터 인간 배아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 배아를 사람의 손으로
조작하여 만들어 내고, 생물학적 재료로 사용한다는 것은 인간을 조작하고 치료도구로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가톨릭교회가 인가 배아복제의 대안으로 태반은행을 제시하는
것은 제대혈 등의 태아 추출물을 통해서 인간 배아복제 방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태아 추출물은 낙태아를 통해서 얻는 것은 아니다.
정상적인 출산 후에 과거에는 쓰레기로 버렸던 것을 이제는 소중하게 보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태반은행이 서서히 설립되고 있다.
< 유전자 진단 > - p35
- 현대를 가리켜 유전자 의학의 황금시대라고 한다. 멘델의 유전법칙이 유전적 질환을
이해하는데 이론적 기초를 마련했고 그 이후 과학자들의 DNA분자구조 해명과 유전자
재조합 기술, 나아가 최근의 유전자 지도 완성 등의 업적을 이루어 낸 유전자 의학발전은
유전자를 이용한 진단과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최근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 분석되면서 유전성 질환에 대한 진단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특수 질환의 발견 가능성까지도 예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위한 유전자 진단이 가져온 결과는
오히려 매우 부정적이다. 유전자 진단 방법이 태아 진단에 적용됨으로써 나타난 결과는
놀랍게도 낙태의 현저한 증가였고, 결국 이 방법은 태아의 질병치료에 사용되기보다는
낙태를 유발시키는 방법으로 전락해 버렸다. 유전자 진단은 또한 유전적 질병을 알아
보려는 방법으로 사용되면서 특별히 치료방법이 없는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에게 큰 불안
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유전자 의학이 질병 극복과 인류의 더 나은 건강한 삶을 위해
발전되어야 한다면 그 발전 과정에 반드시 윤리적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의학적인
노력과 처치가 오히려 인간을 차별하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이는
반드시 점검되어야 하며, 특히 낙태의 현저한 증가를 가져온 태아에 대한 유전자 진단은
금지되어야 한다. (2001.10.28.)
- Q/A : 유전자 진단은 이미 태아에게 뿐만 아니라 인간 배아의 초기 단계에서도 이루어
지고 있으며, 만일 이러한 단계에서 유전적인 질병의 예후라도 발견된다면 이는 즉시
낙태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로 유전자 의학이 발달하면서 놀라운 변화는 질병을 극복
하기보다는 낙태의 현저한 증가라는 것이다. 또한 유전자 의학은 개인의 정보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유전 정보에 대한 엄격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에
따른 부작용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유전자 의학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서는
유전 정보를 철저히 관리. 통제할 법적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정보가 혹시라도
개인이나 사설기관에서 관리하게 된다면 정보의 남용은 매우 심각할 수도 있다.
< 맞춤 인간 > -p39
- 인간의 유전자 연구는 사람의 질병이 가지고 있는 여러 불가사의를 상당 부분 밝혀
냈고, 그 결과 지금까지 난치병으로 여겨졌던 수많은 질병의 원인 규명은 물론 유전적
질환의 치료라는 의료적 차원의 획기적 전환점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 숨겨진 사회. 윤리적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유전자 진단 목적이
단순히 의료적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그것이 비의료적 목적으로 확대되면서 낙태
증가, 인간 차별 심화 등 비인간적. 비윤리적 차원으로 드러난 것처럼, 유전자 개입 및
치료 방법 역시 인간 질병의 극복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벗어나 비의료적 목적으로 확대
되면서 낙태증가, 인간 차별 심화 등 비인간적. 비윤리적 차원으로 드러난 것처럼,
유전자 개입 및 치료방법 역시 인간 질병의 극복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벗어나 비의료적
목적으로 확대되어 나타날 때의 심각성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만큼 엄청난 것이다.
유전자 조작 방법이 본연의 목적인 치료나 예방 차원보다는 인간 능력의 개선이라는
차원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미 동물의 유전자 조작 방법을 통해서 ‘맞춤동물’의 생산이
가능해진 것처럼 인간 역시 유전자 진단 방법을 통해 특정 배아를 선택한 다음에 이를
착상하는 식의 ‘맞춤인간’, ‘개량인간’도 이미 부분적으로 나마 현실화되었다.
- 가톨릭교회의 윤리는 인간 유전자 치료 방법이 결코 인간의 존엄성을 거스르는 방향
으로 전개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전자 치료가 질병 진료 차원에 머물러
야지 그것이 유전적 차별과 변형 방향으로 발전된다면 이제 우리 사회는 그 어디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찾아볼 수 없는 사회로 변질되고 말 것이다. 혹시라도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대한 국가의 정책이나 생명공학계의 연구가 유전자개입 및 치료. 조작을
통해 완벽한 인간, 완벽한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면 하루빨리 환상
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2001.11.11.)
- Q/A : 인간 게놈(Human Genom) 프로젝트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30억내지 35억
개의 유전자 염기서열(염기쌍)을 분석하여 지도를 만드는 일이다. 2000년에는 다국적
팀과 셀레라(바이오 벤처기업)가 공동으로 인간 게놈 지도 초안을 발표했으며, 2003년
4월 드디어 인체의 유전학적 설계도를 99.99%의 정확도로 해독한 게놈지도(유전체
지도)가 완성. 발표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응용으로 실제로 수많은 질병에 대한 유전자
테스트 방법이 개발될 것이며, 나아가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수많은 유전자 결함을 바로
잡거나 보완하는 방법을 개발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 이 지도의 완성이 인간의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안겨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염려스러운
점도 적지 않다. 질병 진단과 치료에 쓰이는 유전 정보가 인간의 이기심을 자극하여
상업적으로 악용될 위험도 얼마든지 있고, 나아가 유전적 변이를 통한 인간 개조 차원
으로까지 발전될 힘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어떤 분야보다도 연구자들의 윤리성이
요구된다. 이는 당연히 인간 존엄성의 차원에서 엄격히 통제되어야 하는 연구 분야이다.
< 인간 게놈 지도 > -p44
- 인간 게놈 지도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인간 생명과 건강뿐 아니라 인체의 모든 신비가
과학적. 체계적으로 밝혀질 시기가 매우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생명과학
분야에서 이 사건은 인류의 역사에서 핵에너지 발견 이상의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 지도가 완성됨으로써 인간 생명의 신비라든가 신체의 모든 신비를 밝힐 수
있는 가능성을 던져준다.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은 인류가 지금까지 극복하지 못했던
불치병이 속속 정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다. 고질병을 유발시켰던 유전자가 어떤
것이고, 유전자의 어떤 차이로 말미암아 각 개인별 건강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내고
그것을 적절하게 조작함으로써 질병완치와 건강 회복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 이 지도의 완성으로 피부와 머리 색깔을 선택하는 등 맞춤인간이 가능해질 것이고,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태아에 대한 유전자 진단이 이루어진다면 낙태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유전적으로 완벽한 인간이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은 동시에 유전적으로
가장 열악한 최하위 인간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이는 지금까지 인류가 몇
천 년을 살아오면서 노력해 온 인간 평등과 인권문제를 다시 백지화시키는 역사의 퇴보를
가져오는 우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지도 완성에 환성을 올리기보다 윤리적. 법적
측면에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2001.2.25.)
- Q/A : 인간 유전자 염기서열 해독은 앞으로 유전공학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조짐
이다. 가톨릭교회의 윤리는 순수한 의미의 치료차원이라면 인간 게놈 지도를 완성하는
일에 대해 반대하지 않으며, 유전자 치료도 근원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사람에게
유전적 변이를 일으키지 않고,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치료 목적의
유전자 진단과 치료는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유전자 진단과 치료에 관한 연구가
확대되면서 유전인자 때문에 생명이 위협받고, 차별당하는 일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
한다. ‘헌팅턴 무도병’은 출생 후 30,40년이 지나 발병하는 질병인데 태어나기도 전에
그 질병의 유전인자가 발견되고, 즉시 낙태로 이어지는 현실이다. 또 ‘다운증후군’ 등
몇몇 질병의 경우도 출생 전 진단에 의해 낙태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얼마나 비인간적인
처사인가? 이러한 문제점 등으로 유전자 지도가 완성된다면 그것이 철저하게 순기능
으로만 이용될 수 있도록 윤리적. 법적 차원에서 철저한 관리가 요구된다.
< 복제 인간 1 > -p48
- 1997년 2월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에서 복제양 돌리가 만들어졌다고 발표하자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전까지 포유류에게 생식법칙으로까지 여겨졌던 양성생식의 룰을
깨고 단성생식으로도 생명출산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놀라움 외에도 그 기술이 언젠가는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를 가져왔다. 당시 놀라움과 우려는 그
복제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될 때 앞으로 인간 생명이 남녀의 만남으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복제양 돌리처럼 실험실에서 만들어진다거나 더 나아가서 똑같은 복제 인간이
수없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 배아복제든 개체복제든 우리는 그것이 모두 인간 복제라는 사실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인간을 실험실에서 만들어 약으로 쓰고, 장기를 만들고, 또 2세를 만든다는 사고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서
다른 사람은 희생되어도 좋다는 논리를 우리는 합리화할 수 없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봉사한다는 의미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지 그것이 오히려 인간에게 위협이
된다면 과학기술의 본뜻은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인간 복제로 인한 윤리적 논쟁이 가열
되고 있는 이때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곧 이 세상의 모든 자녀가 갖는 고유한 권리는
부모의 사랑에 의해서 이 세상에 태어날 권리라는 것이다. (2001.2.11.)
- Q/A : 복제 인간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사람이 누군가의 의도로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부모 때문에 생겨나는 많은 불행을 알고
있고, 복제 인간 역시 이러한 범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불임의 고통은 다른 제 삼자가
모른다고 하지만 복제인간이라는 현실이 과연 불임의 고통을 없애 줄지는 의문이다.
복제인간을 만드는 과장에서 시작되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복제인간 자녀를 갖게
되면서 훨씬 더 큰 고통이 그 가정에 닥쳐올지도 모른다. 부부의 사랑은 불임으로 인한
큰 고통까지도 함께 이겨낼 수 있다. 비록 내 자녀는 아닐지라도 입양방법도 있다.
입양한 자녀를 통해 가정의 사랑을 더욱 키워 나갈 수 잇을 것이다.
< 복제 인간 2 > -p52
- 체세포 핵이식에 의한 인간 복제란 체세포를 제공한 사람과 똑같은 개체를 하나
이상 복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윤리적 판단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 복제는 생물학적 측면이나, 엄밀히 인격적인 측면에서 인간 생식의 기원에
관한 구조적인 상관성과 상호 보완성을 근본적으로 조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로
인해 인간 생식의 고유한 의미는 변질되고 만다. 둘째, 인간 복제는 몇몇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고 그들의 생물학적 본질을 마음대로 또는
순전히 실리적 기준에 따라 선별하여 계획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생물학적 특질이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더 큰 의미를 부여할 것이라는
확신을 조장하게 될 것이다. 셋째, 인간의 존엄성 문제이다. 복제 인간은 다른 존재로
부터 복사됨으로써 세상에 등장하게 되는데 이러한 행위는 복제된 인간에게 근본적인
고통을 줄 수밖에 없다. 가톨릭교회는 인간 배아복제와 관련된 실험은 어떠한 경우에도
비도덕적임을 밝힌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육체를 단순한 연구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인간은 이 세상에 하느님을 증거하는 존재이며, 그분께서
존재하신다는 표징이다. 또한 하느님 영광의 흔적으로서 다른 피조물의 생명과는 전혀
다른, 하느님의 영광 그 자체이므로 이렇듯이 존귀한 인간이 마치 물건처럼 취급될
수는 없는 것이다.(2001.11.25.)
- Q/A : 인간 복제는 인공생식의 한 형태로서 두 배우자의 기여 없이 이루어지는
무성생식이며, 무배우자 생식이다. 복제하고자 하는 개체의 DNA 유전자를 담고 있는
체세포와 세포핵이 제거된 난세포를 인공적으로 융합시킴으로써 이른바 자연수정을
대체하는 방법이다. 체세포의 세포핵은 유전 형질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
에서 얻는 개체는 변이 가능성을 제외하고는 핵 제공자와 똑같은 유전자를 지니게
된다. 이처럼 핵 제공자와 본질적으로 유전자가 일치하기 때문에 새 개체에서 핵
제공자의 체세포 복제나 복사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존재이며, 그 소중함은 어떤 사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 고유한
품위와 특성이 있다. 누군가를 모델로 하여 복제되는 것, 그럼으로써 복제된 인간의
주체성 위협이나 상실은 충분히 예상된다. 그리고 인간 복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드러나는 인간 배아의 생산과 파괴, 여성의 도구화 등 인간의 본질적 측면을 파괴하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인권이라는 측면에서도 인간 복제는
인간 권리의 바탕이 되는 모든 인간이 동등하고 평등하다는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
복제 논리에 가려진 우생학적 선택으로 인한 차별도 우리가 복제 인간을 반대하는
매우 중요한 이유이다.
< BT 산업 > -p57
- 유럽사회의 산업화가 인류의 삶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은 매우 컸다. 지성적 측면
에서는 인간 이성이 강조되고 합리적 사고가 사회 안에 뿌리내렸으며,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면서 인류의 삶을 편리하고도 윤택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산업화와 함께
성숙되기 시작한 정치적 자유주의는 남녀의 정치적 평등이라든가 시민권 확대, 나아가
신분 차별을 폐지하도록 이끄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실상 19세기 산업화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삶의 질은 크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산업화의 결과로 야기된 부정적인
측면 또한 간과할 수 없다.
- 산업화 이후 인류 역사에서 혁명이라고 평가되는 것이 이른바 IT(정보기술)혁명, BT
(생명공학)혁명이다. 이 두 가지는 인류가 경험하고 있는 일종의 충격과도 같은 혁명이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복제인간은 BT산업의 결과이며, 이제 인간까지도 인간의
손에 의해 제작될 수 있으므로 일종의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의 생명복제회사인
클로네이드사에 의해 인류 최초로 복제인간 1호가 만들어졌다는 보도가 있다. 그리고
이미 세계 각국에서 2백 명의 복제인간 제작 신청자가 클로네이드사와 계약을 맺었고,
이 회사는 1명의 복제인간 제작에 2억5천만 원을 받는다고 한다. 안전성에 따른 복제
인간의 인권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인간이 여타의 상품처럼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
지는 세상, 그리고 인간 제작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BT산업이 도래되었다는
엄청난 충격 앞에서 이러한 산업이 인류 역사의 혁명을 이룰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배아복제가 곧바로 복제인간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경험하면서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2003.1.12.)
- Q/A : BT는 Biotechnology(생명공학)의 약자이다. 생명공학이라는 개념은 넓은
의미에서 ‘생명현상을 이용하여 산업 및 보건 분야의 은용,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모든
기술적 고안과 응용을 의미’하며, 좁은 의미로는 ‘생명현상 중에서도 특히 유전자 염기
서열 분석과 유전자 조작기술을 활용, 특정한 용도에 맞도록 생명체를 변형. 증식시키려는
방법론’을 의미한다. 생명공학 기술은 특별히 농수산업과 의약산업에 광범위하게 활용
되면서 최근에는 유전자 조작기술과 체세포 복제라는 두 가지 기술을 축으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 기술은 이미 현실화되어 생명에 대한 인류의 기존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 이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되어 이미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를 복제하여 줄기세포를 추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생명공학의 이러한 놀라운
발전은 결국 인간 배아복제까지 도달하였고, 이는 결국 인류가 염려하는 복제인간을
아주 가까운 시기에 현실화시킬 것이라는 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BT산업은 결국
체세포 복제라는 생명복제기술로 치닫게 될 것이다. 식량 증산, 난치, 희귀병 치료라는
BT산업의 좋은 의도가 변질되어 산업구조의 논리로 빠져들 때 인간과 사회의 존재기반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인류의 파국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 라엘리안 무브먼트 > -p62
- ‘라엘리안 무브먼트’란 인간 복제를 주장하는 일종의 종교집단이라 할 수 있다.
이
집단은 프랑스인 ‘클로드 라엘’이라는 사람에 의해 창설되었는데, 그는 1975년 UFO를
타고 온 외계인을 따라 외계 혹성을 방문, 거기서 2만5천 년의 진보된 문명을 체험
했다고 주장했다. 라엘은 황당무계하고도 허구적인 주장에 근거하여 ‘국제 라엘리안
무브먼트’란 조직을 만들었고, 이 조직을 통해 일종의 종교적 교리까지도 내세우면서
동조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러한 허무맹랑한 주장에 동조하는 회원이 전 세계
84개국에서 5만5천 명 정도이며, 우리나라에도 2천여 명이나 ‘라엘리안’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 라엘은 자신의 종교적 해석에 따라 인간 복제를 주장하면서, 실제로 인간복제회사라고
할 수 있는 ‘클로네이드’라는 회사를 만들어 인간 복제를 추진해 온 것이다. 그런 라엘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거창하게 공개 기자회견까지 가졌는데 그는 기자회견에서 ‘복제
인간은 앞으로 6개월에서 24개월 사이에 나올 것’이며 ‘과학은 종교와 같이 인간을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호언한 것이다. ... 라엘이 우리나라를 방문한 의도는
인간 복제 연구에 대한 미국의 제지로 인해 이를 추진했던 미국내 연구실이 폐쇄된 상황
에서 법적으로 무방비 상태인 우리나라를 가장 적합한 대안으로 삼아 인간 복제를 시도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인간 복제를 위한 실험무대가 되지 않고, 인간 생명에 대한
온갖 위험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되지 않기를 정부와 온 국민은 심각하게 받아들여
이에 대처해 나가야 한다.(2001.9.16.)
< 인간복제회사 한국지부 > -p64
- 클로드 라엘은 오늘날과 같이 첨단생명공학기술이 발달한 이 시기에 모든 인류가
하나같이 꿈꾸어 온 영원한 삶에 대한 궁극적 해답을 줄 수 있는 방법이 곧 ‘인간 복제’
라고 하여 미국에 생명복제회사인 ‘클로네이드사’를 세워 인간 복제를 추진하고 있는
사람이다. 클로드 라엘이 인간 복제를 추진하기 위하여 만든 미국의 클로네이드사가
한국에 이미 자회사를 설립했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부사장 ‘토머스 캔지히’가 일본
동경에서 열린 국제 바이오 엑스포에서 연설을 통해 한국지부에서는 이미 ‘RMX2010’
이라는 배아세포 융합기를 만들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인간 복제가 매우 구체적
이기고도 대량의 방법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그 추진 장소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지금까지는 한낱
환상이나 기우라고 생각해 왔던 복제인간이 점점 구체적으로 현실화되어 다가오고
있다. 그것도 우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가 아닌 바로 우리나라 한복판에서 복제
인간이 태어나고, 나아가서는 복제인간을 쉽게 만들 수 있는 기계까지 만들어 수출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자랑스럽기는커녕 너무 부끄러워 할 말이 잃어버렸다. ... 지금
우리는 생명윤리법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와 있다. 이제 이를 위해
인간 존엄성의 수호자인 교회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실천할 수 있는지를 찾아 나서야
한다.(2002.7.21.)
- Q/A :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팀이 세계 최초로 사람의 체세포와 난자를 이용해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냈다고 보도했고, 이후 전 세계 매스컴은 한국 과학자들의
인간 배아복제 성공 소식을 앞 다투어 보도했다. 많은 언론이 세포 주입을 통한 난치병
치료기술을 여는 새로운 진보라고 극찬하기도 했지만 한편에서는 머지않아 복제인간이
현실화 되리라는 큰 우려도 함께 제기되었다. ...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인간 배아
복제에 대한 엄격한 법 규정을 만들어 아예 금지하는 나라가 대부분이고, 허용한다 하더
라도 매우 엄격한 심의를 거쳐 예외적으로 연구를 허용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그와 비슷한 법적 장치도 없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가 입법 예고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2005년 1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에서는 인간 배아복제는 물론 동물의 난자와 인간의 체세포를 이용한 이종 복제배아까지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으니 우리나라가 배아복제 연구의 온실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에는 여성의 난자가 모두 242개 사용되었는데 단
1개의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나머지 난자는 모두 파괴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16명의 여성으로부터 이 모든 난자를 기증받았다고 발표했지만 어떤 과정으로 채취
되었고, 난자를 기증한 사람이 누군지 또 어떻게 소모되고 파괴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
[ 2. 생명은 선물 ]
< 모자보건법 > -p71
- 모자보건법 시행(1973.5.10.발효) 이후 새 생명을 죽이는 일종의 살인행위가 합법화
되었다. 모자보건법 시행령’의 주된 내용은 임신 28주 이내에 합법적으로 낙태가 가능한
경우를 다섯 가지로 정했다. 1) 우생학적 또는 유전적 정신적 질환이나 신체장애가 있는
경우, 2)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이나 준강간에 의한 임신,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의 임신의 경우, 5)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하게
해친다고 판단되는 경우이다.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실제로 낙태 시술은 증가되었고, 신자
들은 정신적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법이 낙태를 인정하니까 윤리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기게 된 것이다.
- 가톨릭교회의 윤리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의 낙태를 어떤 경우에도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유일하게 그 윤리적 정당성을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의학적
이유로 산모의 생명이 극히 위태로운 경우 산모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태아가
죽게 되는 경우뿐이다. 교회가 낙태에 대해 엄격한 입장을 견지하는 이유는 교회 스스로가
생명의 파수꾼이기 때문이다. 낙태천국이라는 오명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우리 교회의
진정한 사명은 과연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 Q/A : 산모의 생명이 임신으로 인해 극도로 위험에 처했을 때 산모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유일한 치료방법이 태아의 낙태라는 의료적 판단만이 낙태를 허용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는 분명히 산모의 건강상의 이유와는 구분된다. 성폭력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 피해 당사자나 그 가족의 고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낙태는
태아에게 곧 죽임인데 이는 일종의 강한자, 기득권자의 무죄한 이에 대한 폭력이며, 살인
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피해 당사자와 그 가족의 고통은 우리 사회가 함께 아파하고
극복해 나가야 할 하나의 과제이다. 만일 이런 고통스러운 일이 주위에 있다면 본당
사목자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 낙태천국 > -p75
- 미국의 ‘뉴스위크’지는 한국에서 연간 150만에서 200만 건의 낙태시술이 행해지고
있다는 매우 부끄러운 사실을 보도(2002.4.8.)했다. 이는 최고 수준으로, 우리나라
에서 한 해 태어나는 신생아가 60-80만 명에 이르는 것을 감안할 때 태아 4명중 1명
만이 살아남고, 나머지 3명은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에서 낙태시술이 이처럼 성행하는 이유를 ‘뉴스위크’지는 젊은 세대의 성개방은 빠르게
진행되는 반면 사회 전반의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에 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점 등 몇 가지를 지적했다.
- 피임방법의 확산이 문란한 성풍속을 조장하고 미혼 여성의 임신을 증가시켜 낙태를
더욱 부채질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낙태가 증가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현대사회의 그릇된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사회가
다원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가치질서가 무너지고 인간 역시 물질화. 도구화
되는 가운데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다분히 상대적 가치로 전락해 버렸다. 사회. 경제적
이유로 생명을 버릴 수 있다는 사고방식으로 변질되었으며,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대한 의식을 실종해 가고 있다. 생명에 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생명 복음’의
말씀이 우리 의식 속에 살아 있기를 바란다. ‘생명은 하느님한테서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선물이고 그분의 숨결을 나누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이 생명의 유일한 주인이십니다. 인간은 이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2002.4.14.)
- Q/A : 낙태 증가의 주된 원인은 포괄적으로 가치관의 전도이다. 생명경시의 사회,
물질 중심의 사회에 대한 한국 가톨릭교회는 끊임없이 생명의 존엄성과 올바른 가치관
확립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서울대교구에서는 1992년부터 시작한 참 생명학교,
천주교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생명존중사업 전반에 관한 일의 담당, 2001년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발족, 2003년에는 주교회의에서 생명운동 전반을 담당하는 기구인
‘생명31’ 창설, 미혼모 재활원 설립, ‘성가정입양원’에서 미혼모 아기들의 입양주선 등이
있다. 특히 낙태문제는 우리나라의 의료 정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한국
가톨릭교회는 생명윤리 관련법이나 의료정책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법 제도나 정책이
생명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조언이나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 사후피임약 > -p79
- ‘사후피임약’이란 성관계를 가진 후 72시간(3일)내에 복용하면 수정을 막을 수 있고,
또 수정되었다 하더라도 자궁내 착상을 막음으로써 임신 진행을 방해할 목적으로 복용
하는 약이다. 일부에서는 이 약(노보레)을 성관계 이전에 복용했던 기존 피임약에 비해
매우 간편하고 획기적인 피임약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 약의 효과로
평가되는 ‘반착상’ 효과는 이미 수정된 수정란을 파기시키는 낙태약이라고 하여 이 약의
시판에 대해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 약은 여성들에게 임신에 대한
공포를
없애주기 때문에 그 자체로 여성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을 한다.
-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사람의 생명을 화학적인 방법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도 낙태이다. 그렇다면 이 약은 오히려 낙태를 증가시키고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생명권은 분명 행복추구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문제의
핵심은 약 시판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약 시판을 찬성. 반대하는 측 모두가 함께 주장
하는 생명의 존귀함과 삶의 행복은 결코 ‘사후피임약’의 시판 여부에 달려 있지 않고
이 사회가 도덕적으로 얼마나 건강하게 지탱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건전한
성문화와 상호 존중 의식, 그리고 특별히 인간 배아처럼 가장 약하고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존재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존중이 실천되는 사회를 위한 우리 모두의 철저한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2001.8.12.)
- Q/A : 낙태를 위한 일명 ‘응급 피임약’ 시판에 앞서 식품의약처에서는 이 약은 반드시
의사의 처방에 따라 판매될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지금은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처럼 취급되고 있다. 이 약(노보레)의 부정적 기능은 청소년의 문란한 성문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은 한층 더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이 약의
시판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가톨릭교회는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낙태도 당연히 반대한다.
사회 일각에서 제기하는 아기의 불행, 여성의 불행은 사실 기득권자의 논리다. 이 세상에
태어나려는 아기를 아예 원천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얻게 되는 행복은 과연 누구를 위한
행복인가? 물론 그에 따르는 아픔은 있다. 사회적. 정신적 고뇌와 경제적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가장 약한 태아를 죽음으로 내몰아도 좋다는 식의 강변은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다. 이 아픔의 책임을 태아에게 묻는 것은 옳지 않다. 이 아픔은 인간을
존중하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지녀야 하는 이 사회가 함께 안고 가야 하는 매우
중대한 과제이다. 이러한 과제 앞에 생명의 종교인 가톨릭교회는 증거자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최근 미혼모를 위한 사회복지시설이 늘어나고 있으며, 미혼모를 위한 사회
적응 프로그램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미혼모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데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 인공출산 > -p83
- ‘인공출산’이란 부부가 자연적인 성교로 임신이 되지 않을 때 인위적으로 임심. 출산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다. 인공 수정이 인간에게 처음으로 적용된 시기는 18세기 말부터
이다. 이 인공수정은 처음에는 체내수정 형태로 발전되어 오다가 급기야는 시험관 아기
라는 체외수정의 획기적인 방법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1978년 영국에서는 세계 최초로
시험관 아기 시술 방법에 의해 여아 브라운이 태어난 것이다. 그 이후부터 시험관 아기의
시술은 불임치료를 위한 매우 보편적인 방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방법은 의사가
남녀의 생식세포를 몸 밖으로 끄집어내어 유리접시 위에서 수정시키고, 그 수정란을
여자의 몸속에 주입, 임신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가톨릭신자라면 누구나 교회가 이
문제에 대해 왜 그렇듯 엄격한 반대 입장을 취하는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
이 문제에 대한 교회의 시각은 두 가지이다. 첫째, 자녀는 부부 사랑의 살아 있는
표지이며, 부부 일치의 영원한 징표이기 때문에 자녀는 부모의 사랑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날 당연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더욱 심각하다. 의사들은 시험관
아기의 시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4, 5개의 수정란을 한꺼번에 자궁에 주입시키고,
배아들이 그 안에서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나중에는 건강한 배아 1,2개를 남겨
놓고 나머지는 밖으로 끄집어낸다. 결국 이 방법은 가톨릭교회가 인간 생명이라고
가르치는 인간 배아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불임부부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인공출산 과정과 방법이 인간을 영락없는 물건으로 취급
하면서 하나의 수단으로 격하시키고, 나아가서는 체외 수정으로 얻어진 인간 배아들을
의도적으로 유기시킨다고 할 때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자기 핏줄을 원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2001.4.8.)
- Q/A : 가톨릭교회는 체외수정 방법을 엄격히 반대한다. 이 방법은 출산의 의의와
부부 일치의 관점에서 지극히 비윤리적이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가 지니고 있는
자녀에 대한 인식은 무엇보다도 자녀는 부부 사랑의 결실로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부부 사랑은 부부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하나로 일치시키지만 단순히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들에게 가장 위대한 선물인 자녀를 갖게 한다. 부부는 새로운 인간에게 생명을
전달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협력자가 되는 것이다. 자녀는 부부 사랑의 살아 있는 표상
이고 부부 일치의 영원한 징표이다. 그런데 체외수정에 의한 출산은 이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실상 체외 수정을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인위적 조작 과정이
요구된다. ... 남성은 주로 자위행위를 통해서, 여성은 전신마취를 통해 생식세포를
얻게 되는데, 이런 일로 새롭게 생겨난 풍속이 정자 판매, 난자 판매라는 기상천외한
세일즈가 등장했다. ... 체외수정의 출산과정과 결과를 볼 때 체외수정에 의한 잉태가
부부에게 인격적 품위를 제공해 줄 수 없다는 점과, 출산과정에서 요구되는 자녀의
권리가 무시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일정한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
영락없이 물품 생산의 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가톨릭교회가 체외수정을
반대하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가톨릭교회는 다만 부부의 불임 원인을 찾아내어 자연
적인 임신에 이르도록 기본 치료에 의한 불임치료 방법을 권장한다.
< 대리모 > -p88
- 대리모 임신이란 건강한 난소를 가지고 있으나 신체적 결함으로 아기를 임신할 수
없는 여성의 경우 다른 여성의 자궁을 빌려 임신하는 방법이다. 곧 생물학적 부모의
생식세포를 채취하여 몸밖에서 수정시키고, 그 수정란을 다른 여성의 자궁에 이식하는
방법이다. 이때 자궁을 빌려주는 대리모는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게 되고 출산 후에는
생물학적 부모에게 아기를 넘겨줌으로써 대리모의 역할은 끝난다. 가게의 고유한
혈통을 간절히 원한다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대리모아 출산된 아기의 관계가 사랑 없이 돈으로
고용된 관계라면 그 사태의 심각성은 더욱 크다. 타아는 자신을 잉태하고 있는 모체와
내적 친밀감의 연대를 형성하게 되는데, 대리모의 태아는 어머니와의 진정한 교감을
가질 수 없게 된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대리모와 관련하여 제시한 내용이다. ‘대리모는
모성적 사랑의 의무와 부부간의 정결, 그리고 책임 있는 모성의 의무를 객관적으로
다하지 못한 것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가 어머니 자궁 속에서 임신되고 발달되며
바로 그 부모에 의해 세상에 나와 성장해야 할 권리와 아이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인
동시에 가정에도 피해를 주어 가족의 기본 구성단위인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도덕적
분열을 초래하기도 한다’(2001.4.22.)
- Q/A : 대리모 출산 과정의 비윤리적 문제는 접어두고라도 대리모 이후의 삶에 대해
충분히 숙고해야 한다. 언니를 대리모로 하여 자녀를 가진 동생은 언니가 몸이 안 좋을
때마다 죄책감이 든다고 한다. 친정어머니를 대리모로 선택한 딸 역시 가정 문제로 심각한
분열을 겪을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대리모로 자식을 가질 수 없었던 어머니는
일생 남편과 가정에 대해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대리모 출산은
여성에게 커다란 멍에가 된다. 핏줄에 대한 욕심이 사람을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 자연출산조절 > -p91
- 자연출산조절을 생명과 사랑으로 결부시키는 이유는 단순히 산아제한의 한 방법으로만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부부가 책임감을 가지고 자녀의 수를 결정할 수
있고, 이를 위해 자연출산조절 방법을 이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방법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께서 부부에게 선사하시는 생명을 기쁘게 받아들이게 하고 나아가 부부의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증진시켜 준다는 사실이다. 한국 교회는 인공피임 방법을 단죄하는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생명’ 이후 1975년 주교회의 산하에 ‘행복한 가정운동’을 발족
시켜 자연출산조절 방법에 대한 교육과 홍보에 힘써왔지만 많은 신자들이 이 방법을 알고
있고 또 실천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반성해야 한다. 이 방법에 대해 누구보다도 성직자.
수도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며 신자들의 교육을 위해서 예비자 교리. 견진 교리 등에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다. (2002.7.7.)
- Q/A : 가톨릭교회 윤리가 약품이나 기구를 사용하는 인공적 피임방법을 반대하는
근본적 이유는 그 방법이 자연법에 어긋난다는 데 있다. 곧 부부행위는 근본적으로
생명을 지향하는 부부 사랑의 행위임에도 인위적 수단을 통해 그 지향을 적극적이고도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생명과 사랑을 지향하는 부부행위의 목적에 어긋난다.
인공피임 방법의 발달은 고귀한 성을 한낱 쾌락의 도구로 전락시킨 측면도 크다. 이로
인해 성의 문란은 가속화되었고, 이에 따른 부작용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숱한 형태의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했다. 실제로 인공피임의 사고방식은 생명경시현상을 가져왔다.
피임의 실패는 즉시 낙태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여성의 건강 악화. 죄의식 등은 또
다른 형태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공피임은 특별히 여성의 인권에 큰 피해를
입혔다고 볼 수 있다. 자연출산조절 방법 역시 의도적으로 생명을 거부하는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지만 적극적으로 생명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며, 기본적으로
생명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자연출산
조절 실천에 가장 어려움을 준다는 주기적인 절제는 육체적인 해를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자기 자신의 개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주기적인 절제는 욕정에서 자유로울 것
이며, 이로 인해 자신에 대한 존중심을 더욱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본능에 대한
의지의 지배는 일종의 수덕적 방법이며, 이는 부부 사랑에서 가장 높은 인간적 가치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 저출산 문제 > -p96
- 출산율 감소는 연령별 인구구조를 왜곡시켜 노령인구의 증가, 노동력 감소, 연금과
의료보험 등 사회적 부담 증가, 노령층의 여성인구 증가, 나아가 가정 붕괴, 사회구조
붕괴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이제 정부가 사회적 위기로
인식하게 되었고, 인구 감소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국가 차원의 중요한 문제로 등장
하게 되었다. 가톨릭교회도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저출산 상황 배경이 물질만능주의, 개인주의, 변질된 가치관 등이 주도하는 죽음의
문화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 많은 자녀를 두는 부모에 대한 출산 장려금 지급이나
자녀 학비 지급, 부부 중 한 사람이 가정에 남아 편안한 마음으로 자녀 양육에 힘쓸 수
있도록 배우자 보조금 지급 등도 고려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산부인과 의사들이 본연의
직업적 소명에 충실할 수 있는 정책적 도움이 매우 시급하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 교회에
맡겨진 과제는 무엇보다 이 사회에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증거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와 그 구성원이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나 사랑과 생명의 풍요로움을
함께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도록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2002.11.24.)
- Q/A : 가톨릭교회는 오래전부터 정부의 저출산 정책 변화를 촉구해 왔고, 특히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모자보건법 폐지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오고 있다. 실제로 출산
장려 정책의 일환으로 이제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출산 장려금 지급이라든가, 자녀들의
학비 보조금 지급 등은 일부 교구에서 오래전부터 시행해 오고 있다. 배우자 보조금
제도는, 직장일로 자녀를 갖지 않으려는 부부가 늘어나면서 부모들이 안심하고 자녀
양육을 할 수 있는 가정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교회가
출산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인 가정이 깊은
감사와 기쁨으로 생명을 받아들임으로써 진정으로 인간을 존중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룩하는 데 있으며, 따라서 이를 위한 교회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 뇌사 1 > -p100
- 교황청 과학기술원의 ‘생명의 인위적인 연장과 죽음의 정확한 순간 결정’이라는
세미나에서내린 결론이다. ‘뇌사는 인간 신체의 정신적. 육체적 기능을 조절하고
통합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의 불가역적(不可逆的)인 상실의 상태이며, 죽음의 순간은
뇌의 전 기능이 불가역적으로 정지되는 순간’이다. ... 부연 설명에서 ‘인간적 생명이
존재하는 한 그는 정신적 존재로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체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생명적 기능이 멈추게 될 때, 육체적 인간 생명은 끝났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영혼과 육신이 분리된다고 볼 수 있다’. 곧 뇌의 생명력이 다함으로써
인간의 생명력이 다한다는 것이다. 뇌사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공식적 견해는 1995년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의 ‘의료인 헌장’을 통해 발표되었다. 이는 뇌사가 죽음을 판정
하는 참된 기준이 된다고 선언한 최초의 문헌이다. 뇌사가 죽음의 판단 기준으로 인정
하고 있지만 여기에 가장 철저하게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히 뇌사 판정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성이다. ... 가톨릭교회가 죽음의 판단 기준으로 인정하는 뇌사는
장기이식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죽음이란 모든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실존적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인간은 반드시 죽어야만 하고, 피할 수 없는 죽음과 항상 가까이 있는 인간임이 우리
모두의 공통적인 실존일진대, 죽음을 내 실존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곧 품위를 갖춘
인간의 모습일 것이다.(평화 2001.8.19.)
< 뇌사 2 > -p104
- 현대의 의학기술은 뇌의 기능이 완전히 정지된 사람에게도 인공호흡기를 부착하여
산소를 공급하면 심장박동을 1~2주 더 연장할 수 있을 정도로 놀랍게 발달하였다.
심장 박동이 멈추고 호흡이 완전히 멎는 상태를 죽음으로 보는 심장사의 기준에서
뇌사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뇌사는 장기이식과 관련하여
더욱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뇌사 상태는 당연히 식물인간 상태와 구별된다. 뇌사
상태에서는 어떠한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반드시 심장사에 이르게 되는 반면 식물인간
상태는 대뇌만 손상되어 기억. 사고. 감각 능력은 없으나 손발은 조금씩 움직이며,
호흡. 소화. 혈압조절이 스스로 가능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회복도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식물인간 상태는 몇 개월 몇 년 후에라도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 대한
의학회는 ‘임종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지침’을 공개하여 뇌ㅏ사자의 치료중단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치료가 뇌사자에게 어떤 도움을 주지 않고 단지
죽음의 과정만을 연장시키는 행위라면 그것은 오히려 환자의 고통을 더 연장시키는
의료집착의 수단이 될 뿐이다. 그렇지만 뇌사자가 아니고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환자의
경우 의학적으로 아주 근소한 회복 가능성이 보일 때는 반드시 치료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 의료인의 당연한 의무다. 의료인은 자신이 생명의 주인도 죽음의 정복자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환자의 실제 조건에 맞추어 합당한 선택을 해야 한다. (2002.12.15.)
- Q/A :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뇌사 판정 조건
으로 제시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외부 자극에 전혀 반응이 없는 깊은 혼수상태
2) 자발적으로 호흡이 되살아날 수 없는 소멸된 상태 3) 두 눈의 동공이 확대. 고정
되어 있는 상태 4) 뇌간 반사가 완전히 소실되어 있는 상태 5) 자발 운동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상태 6) 이러한 결과가 여섯 시간 동안 지속되는 상태 7) 뇌파 검사를
실시하여 평탄 뇌파가 30분 이상 지속되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태가 모두 충족된
상태를 뇌사로 정의할 수 있으며, 뇌사의 판정은 법률이 정하는 뇌사판정위원회에서
담당하고 있다.
< 장기이식 > -p108
- 장기 이식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기본 시각의 기초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내용
이라 할 수 있는 이웃을 위한 애덕 실천이다. 이웃 사랑의 실천이라는 차원에서 장기
이식 수술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면서 매우 놀라운 기술
발전을 하였다. 심장이식 수술을 비롯해 오늘날 살아 있는 사람의 간을 일부 이식받을
수 있는 기술까지 일반화되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윤리 의식이 의학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장기이식 수술이 이웃의 생명을 구하는 헌신적이고도
숭고한 행위인데도 일부 잘못된 윤리의식이 장기이식 행의 자체를 경계하게끔 만드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장기이식 분야에서 끊임없이 고질적인 비난거리가
되는 것이 장기 매매 행위이다. 이러한 윤리적 문제는 필요한 장기가 절대적으로 부족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한마음한몸운동
본부와 가톨릭신문사는 공동으로 장기 기증운동을 벌이고 있다. 장기 기증자가 많아져
윤리적인 혼란이 감소되기를 기대한다.
< 장기 이식의 한계 > -p110
- 우리나라는 1969년 신장이식의 성공을 시작으로 1988년 뇌사자한테서 적출한
간이식이 성공하였고, 1992년에는 췌장 및 심장이식이 성공하면서 장기이식이
의료적 치료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장기이식 수술이 생명의
질을 높이고 나아가 생명을 연장하는 중요한 치료 수단이 되면서 나타나는 윤리적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 장기이식이 그 본연의 목적인 타인을 위한 숭고한 애덕
실천 행위가 되기 위한 윤리적 한계 및 몇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장기이식은 무엇
보다도 인간의 인간에 대한 발전과 존중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한다. 둘째, 장기이식은
또한 인간 생명에 봉사하는 숭고한 행위여야 한다. 곧 장기이식은 인간 생명을 보호
하고 생명에 유익이 되어야 한다. 셋째, 장기이식 수술을 위한 장기 적출과 이식 수술
에서 따라오는 동의 문제이다. 특히 기증을 위한 장기적출은 자유로운 동의여야 한다.
주의의 압력이나 경제 문제 등이 기증자의 자유를 방해한다면 이는 분명 자유로운
동의는 아니라는 것이다.(2002.2.10.)
< 이종 장기이식 > -p112
- 수요에 비해 공급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에 실제로 장기이식 혜택을 받는 환자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 가운데 하나가
이종 장기이식 방법이다. 곧 사람에게 부족한 장기를 동물에게서 취하여 이식하는
방법이다. ... 교황청 생명학술원에서 ‘이종 장기이식에 대한 전망’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에서 이종간 장기이식에는 아직까지도 많은 난관이 남아 있다는
점을 전제하면서도 가톨릭교회의 윤리가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신학적 기초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창조질서에 대한 인간 개입의 수용 가능성이다. 이는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순응하는 가운데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창세 1,28
참조)는 창조주의 명령을 따르는 것을 기본으로 제시하고 있다. 곧 인간 발전을 통하여
모든 피조물의 최종 목표인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나라의 완전한 도래를 위한 피조물의
이용을 강조하는 것이다. 둘째, 인간의 생존과 행복을 위하여 동물을 이용하는 것의
윤리적 타당성이다. 인간의 동물 이용을 긍정하면서도 동물 이용의 윤리적 조건으로서
불필요한 동물의 고통, 그 일이 정말 필요하고 합당한 일인지에 대한 판단, 종의 다양성과
균형을 심각하게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셋째, 동물의 장기나 조직이 인간
수혜자의 정체성에 미칠 수 있는 객관적. 주관적 영향이다. 동물의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가 존재론적 차원에서나 심리적 차원에서 인간됨을 잃어간다면 이는 윤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처럼 ‘환자를 큰 위험에 빠지게 하는 일 없이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생물학적 가능성이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2002.2.24.)
- Q/A : 오늘날 이종 장기이식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연구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녹아웃 방식(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제거함)의 동물 이용이며, 또 하나는
동물에게 인간의 유전자를 주입시켜 그 장기를 이식할 사람의 유전자와 거의 일치시킴
으로써 면역거부반응을 없애는 방법이다. ...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이러한 연구나 적용이 윤리적 타당성을 갖느냐의 문제로 본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 가지가 판단 기준이 된다. 첫째는 창조 질서의 존중이고, 둘째는 인간 생명을 위한
동물 이용의 타당성 여부이며, 셋째는 인간 정체성 존중이다.
<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 > -p116
- 가톨릭교회가 임종환자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 문제에 대해 가지는 기본 시각은 1980년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발표한 ‘안락사에 관한 선언’에서 잘 드러난다. 불치병의 말기환자
에게 정상적인 간호행위라는가 영양공급 등 통상적인 치료수단은 의무적이지만, 단순한
연명 장치로 인공호흡기와 같은 예외적인 수단 사용은 정당할 뿐, 항상 의무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원칙에는 몇 가지 설명이 필요하다. 첫째, 여타의 충분한 치료법이 없다면
환자의 동의 아래 사용하는 것은 허용되어야 한다. 둘째, 환자의 동의 아래 그러한 수단을
중단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셋째, 사용되는 수단에도 회피할 수 없는
죽음이 임박할 때, 불확실하고 고통스런 죽음의 시간만을 연장해 줄 뿐인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환자의 결정은 양심에 따라 허용되어야 한다. 환자의 이 거부는 자살이 아니다.
-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정상적이며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수단(영양 공급, 수혈, 주사 등)
은 언제나 의무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행위를 포기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의 적용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어떠한 의료행위가 무익한 것이고, 또 예외
적인 치료 방법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결정을
위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환자의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의 전문
적인 지식과 올바른 양심이다. - 불치의 말기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죽음을 자기 실존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온갖 예외적인 치료 수단을 다 동원하여
다가오는 죽음의 시간과 흥정하려 한다면 오히려 그 환자에게 정작 요구되는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중요한 순간마저 빼앗아 버리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러기에 불치병의 말기환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의료
집착의
불필요한 치료행위보다는 오히려 환자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기꺼이 받아
들이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잇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씨닷컴’ 2001.4)
- Q/A : 교황청 과학기술원은 죽음에 대한 생의학적 정의를 내렸다. 곧 ‘인간의 몸의
신체적. 정신적 기능을 통합하고 조화시키는 능력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상실하였다면
사망한 것이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대해서는 ‘첫째, 심장의 자동적인 기능과 호흡이
결정적으로 멎었을 때, 둘째, 모든 뇌의 활동이 돌이킬 수 없는 정지상태일 때’라고 정의
했다.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는 이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뇌사를 죽음의 판정기준으로
인정했다. 본문에서 언급한 예외적인 치료 수단이라고 하는 것은 말기환자가 자연사에
이르는 마지막 과정에 개입하여 인위적인 수단으로 죽음의 순간을 억지로 연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뇌사 상태에 있는 환자에게 계속하여 인공호흡기를 부착하는 일도
이에 속한다. 한 가지 강조해야 할 것은 식물인간 상태의 사람을 뇌사자와 동일시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식물인간 상태의 사람은 자동적인 호흡이 가능하고, 소화 기능도 있으며,
또 언젠가는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에
대한 치료는 계속되어야 한다.
< 연명치료 거부 > -p121
- 임종환자란 이미 자연적인 생명이 다한 상태의 환자로서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등의 특수한 치료방법을 통해 어느 정도 임종 시기를 늦출 수 있는 환자를 의미한다. ...
사회 일부에서는 임종자에 대한 연명치료의 중지가 소극적 안락사이기 때문에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한다. 이 문제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생각은
치료행위를 지속시키느냐 거부하느냐의 문제보다는 더 근본적인 것으로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회피할 수 없는 인간
실존의 문제라고 한다면 그 죽음 또한 내 삶의 한 부분이고 따라서 죽음 또한 내 것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내 실존의 죽음이 나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왔을 때 죽음에 대한 나의 자세는 애써 외면하기보다는 책임 있는 의식과 자유의지로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태도이다.
-
가톨릭교회는
환자의 조건으로 보아 이미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특수한 치료
행위를 그만두기로
환자가 결정하였다면 이를 가리켜 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결정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가르치는 것이다. 그 환자에게는 죽음의 시간을 조금 더 연장시키는
치료도 중요하겠지만 올바른 의식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하고 생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주위의 도움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임종환자나 말기환자에게 치료를 받거나
거부하는 행위의 주체는 언제나 환자에게 있다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다. 연명
치료에서도 의사가 그 결정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환자가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연명
치료의 중단’ 보다는 ‘연명치료의 거부’라는 말이 더 적합할 것이다. 치료의 중심은 언제나
환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2002.6.23.)
- Q/A : 가톨릭교회의 윤리는 환자 자신이 계속적인 치료를 원할 경우 치료를 중단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다만 환자가 치료를 원하지 않을 경우 환자의 의견을 존중해서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곧 치료의 계속이나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주체는
의사가 아니고 환자이며, 환자가 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것을 안락사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이러한 행위를 안락사라고 간주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허용하는
이유는 환자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을 의식이 있는 가운데 잘 준비하는 것이 환자를
위해서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죽음의 시간을 조금 늦추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연명치료가 때로는 인간 삶의 실존이라 할 수 있는 죽음마저 애써 피하려는 생각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놓치게 할 위험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 생명은 선물 > -p125
- 우리는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과연 내 생명의
주인인가?”, “내 생명을 내 임의대로 처리할 수 있는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은 인간 생명과 관련된 기초적이면서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우리가 올바른
이성과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이해하는 인간 생명은 분명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하나의 위대한 선물이다. 성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창세2,7). 인간 생명의 주인은 인간 자신이 아니라 창조주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을
창조주로 고백하고 믿는 사람들은 인간 생명이 하느님께 영을 받은 것이고, 그분한테서
선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 지상에서도 귀중하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 생명은 분명 우리 인간이 만들거나 창조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곧 우리는 생명을 살아갈 뿐이지 생명의 주인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께 선사받은 생명을 온전히 보존하면서 거두어지는 순간까지 지킬 의무가 있을
뿐이다. 이 생명은 고통스럽다고 해서 스스로 거두어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명은 물론 타인의 생명을 파괴하거나 죽인다는 것은 생명을 선사하신 하느님께 대한
도전이다. 고통스런 삶을 끝내기를 원하는 안락사적 사고가 횡행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여된 하나의 과제는 환자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실천적인
삶이다. 안락사로서 품위 있는 죽음을 맞으려는 말기환자의 생각이 반대로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죽음을 평온하게 수용함으로써 보다 품위 있는 창조적 변화로 전환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을 기대한다. (2002.3.31.)
- Q/A : 가톨릭교회의 윤리는 시험관 시술을 반대하지만 그 결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아기를 죄인 취급하면서 교회 공동체에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록 비윤리적
이고 비인간적인 시험관 시술이지만 그 결과로 태어난 아기는 분명히 우리와 똑같은
하느님의 선물로서 존엄성을 가진 인간 존재인 것이다. 성폭력에 의한 임신이라든가
청소년의 성적 호기심의 결과로 생겨난 아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 모든 생명도
그 자체로는 어떠한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질에 대해 말하기도
하지만 생명에는 결코 질적인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미숙아든 장애아든 임종 직전의
말기환자든 그 사람들의 생명은 차별이 없는 것이다. 비록 죄 중에 어머니가 나를 배었을
지라도 그 죄가 태어 날 아기의 죄는 아니기 때문이다.
< 품위 있는 죽음 > -p129
-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다가오는 인간 실존의 한 부분이다. 노년에 맞는
죽음이나 불치병이라는 급작스런 질병 선고에 따라오는 죽음 등 우리들 인간 실존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죽음이 있지만 그러한 죽음에서 공통된 것은 죽음을 맞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와 반응이 일단은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죽음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고통으로 다가오기에 할 수만 있다면 이 죽음을 적극적으로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은 이러한 정신적. 심리적인 것뿐 아니라 육체적
질병으로 인한 고통 또한 극심하다. 진통제에 의존하지 않으면 잠시도 안정을 취할 수
없는 말기환자나 불치병으로 근근이 생명을 유지하면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환자들이
당면하고 있는 죽음이라는 부정적 체험은 환자 자신이게 그 모든 고통은 하루라도
빨리 벗어버려야 할 무거운 짐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이렇게 극심한 고통이 현대인
들의 의식에 가져다 준 것이 곧 안락사의 사고방식이다.
- 안락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품위 있는 죽음’이 그 으뜸을 차지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의 고통이,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건 육체적인 것이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에 죽음의 순간에도 당당하게 죽을 수 있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주위에서
의료적인 도움을 받아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는 죽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의
죽음이 과연 ‘품위 있는 죽음’일까?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품위 있는 죽음’이란 결코
안락사 형태의 죽음이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실존적
사건 앞에서 그것이 비록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 있는 자유와
의식을 가지고 생명 전체를 요약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어야 한다. (2001.6.17.)
- Q/A : 고통 중에 있는 말기환자가 고통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안락사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주사나 약물 등의 투여로 직접 죽음을 초래하는 일, 또는
말기환자에게도 응당 베풀어져야할 기본적인 치료나 간호 행위, 영양공급 등을 거부함
으로써 서서히 죽음에 이르는 일이 안락사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더
이상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 예컨대 말기암환자 등이 이제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스스로 결정했다고 할 때 이러한 결정을 안락사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환자가 나중에 연명치료의 한 방법으로 인공호흡기 부착이나 심폐소생술
등을 하게 될 상황이 올 때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지 말도록 의료진이나 가족에게 요청
하는 것 역시 안락사의 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환자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을 삶의
실존으로 받아들이고 책임감 있는 의식을 통해 죽음을 잘 준비하는 일이 오히려 그 환자
에게는 더 필요한 것이다. 극심한 고통이 있다면 의료진의 도움으로 그 고통을 경감시켜
가면서 죽음을 준하는 일, 이것이 곧 진정한 의미의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준비일 것이다.
< 안락사 > -p133
- 이른바 생명윤리 원리 중에서 자율성 존중의 원리가 모든 판단 기준의 절대적 기초인
것처럼 여겨지면서 이제 환자가 스스로의 삶과 죽음에 대한 결정을 하는 것까지도
이 원리 때문에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고통스런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며,
목숨을 끊기 위해 자신을 이해하는 의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자율성
존중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되고 있으며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생명경시현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삶을 다스리는 하느님의 권능에 위반되는 자율성의 해석을
반대한다. 우리의 성서적 전통은 홀로 또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함께, 인간 서로를 위해 존재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을 위해서 존재한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의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일종의 선물
이고 신뢰인 것이다. 나의 육체는 내 존재의 자리이자 조건이라는 점에서 나의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전권이 내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몸과 정신은 온전히 우리를 구원하신 하느님의 것이다. ‘1코린 6,19-20’, ‘로마 12,1’
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하자.
- Q/A :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동시에 그에 따르는 책임도 함께
부여하셨다. 자유의 행사에는 반드시 윤리적 책임이 함께 따른다는 의미이다. 하느님
께서 우리 인간에게 허락하신 자유는 무한한 자유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살아
가는 데 있어서 지켜야 할 하느님의 법을 준수하는 한에서의 자유로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이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하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선택은
가치를 따라가며, 이러한 선택은 언제나 내가 누리는 자유에 의해 온전한 ‘나의 선택’이
된다. 자유에 의한 선택이지만 이 선택은 관계 안의 선택이며, 이웃에 대한 책임이
따른 선택이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 생명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비록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생명이지만 이는 내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속한 것이고, 따라서 이 생명에 대한 어떠한 권한도 내게 없다는 것이
우리가 믿는 신앙의 내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도 하느님의 생명을 마치 내 것인
양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고, 안락사 역시 내가 내 생명의 주인인 양 행사하는
한 형태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나는 자유를 가진 인간이지만 또한 하느님의 법을 따라
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생명을 사랑하라!’, ‘살인하지 말라!’고 내게 명하시는 하느님의
법을 지키는 가운데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 자살 > -p137
- 자살은 일종의 절망 행위다. 깊은 절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봄이라는
계절에 주위의 모든 활기 있고 생명력 있는 사물을 대할 때 오히려 자신의 절망스런
처지가 더욱 절망스럽게 느껴지면서 빠른 속도로 스스로를 자살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내가 보고 느끼는 모든 사물은 이렇게 생명력이 넘쳐나고 있는데 나는 왜 희망이라든가
새로운 생명력을 느낄 수 없는가? 이렇게 생겨나는 절망감이 그 절망의 최종 행위인
자살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 ‘악마’에서 자살을 인간이 하느님을
가장 크게 반역할 수 있는 행위로 묘사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살 행위는 하느님을 반역하기 위한 행위라기보다는 어쩌면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원하셨던 인간됨을 향한 몸부림이 잘못된 모습으로 드러난 좌절이나 절망행위
라는 생각이 든다. ... 우리 인간은 궁극적으로 이웃과 도움을 주고받는 존재로서 인생
에서 도움을 받고 또 도움을 주는 것이 삶의 당연한 법칙이라는 것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 가장 귀하게 만드신 우리 인간이 어떠한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
하게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잘 가꿀 수 있도록 삶에 지친 많은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관심으르 보여야 할 때다. (2001.3.11.)
[ 3. 생명 윤리 ]
< 생명윤리 기본법(가칭) > -p141
- 과학기술부가 위촉한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생명윤리 기본법의 기본 골격안을 발표
(2001.5)하였고, 이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 기본틀은 주로 인간 배아 연구와
활용의 허용범위를 비롯해서 생명복제연구 및 유전자 변형 연구활용과 허용범위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기 위한 국가 생명위원회의 기능과 구성에 대한
내용으로 다루어졌다. ... 이날의 공청회는 인간의 생명이 돈의 논리에 따라 논의되는
것 같아 매우 불쾌한 자리였다. 올바른 생명윤리의 확립을 위한 진지한 논의의 자리라면
기술이나 상업화 문제가 결코 우선적인 논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01.6.3.)
< 시급한 생명윤리 기본법 > -p143
- 과학기술부가 위촉한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내놓은 생명윤리 기본법 골격안이 발표
되자 생명공학계. 시민단체 그리고 종교계는 각각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우며 논쟁에
돌입하였고,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비판하거나 지지의 목소리를 높였다. 논쟁의 핵심은
체세포 핵이식에 의한 배아복제의 허용여부였다. 이를 금지하는 기본 골격 안에 대해
생명공학계 일부는 거세게 반발했지만, 종교계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환영하면서도
배아복제 금지에 대체하기 위한 잔여배아를 이용한 연구 허용 문제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했다. 서로간의 상이한 입장과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고, 결국 기본법은 가을
정기국회에 상정도 못하고 말았다. 생명윤리 기본법 안이 일부 생명공학계의 조직적
이기고도 거센 반발을 불러왔기 때문에 그들의 편을 들어 법안 제정을 미루고 있다는
오해도 없지 않았다. 실제로 이 법안 제정이 지연되면서 생명윤리와 관련한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된 듯하였다. ...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교잡행위 금지,
인간 복제, 인간 배아복제 금지 및 인간 배아의 보호, 태아와 우생학적 목적의 유전자
치료금지 등 생명윤리 기본법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은 실상 생명과학 분야에서 종사
하는 전문가들뿐 아니라 모든 시민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다. 하루빨리 이 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2002.1.6.)
< 과학자의 고백 > -p146
- 최근 생명공학계에서는 인간 배아복제 허용 입법과 관련하여 논쟁이 매우 뜨겁다.
정부가 앞장서서 이미 허용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난치병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는 등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생명공학산업 경쟁력까지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에 대해
칼라슈니코프(AK47 자동소총 개발자)와 오펜하이머(원자폭탄 제조의 실제적인 총책)가
우리 모두에게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 배아복제에 대한 연구나 실험, 더
나아가 인간 개체 복사로 이어지게 될 통제할 수 없는 충격적. 비극적 상황이 가져오게
될 인류의 미래에 대해 책임 있게 말할 수 있는 과학자의 양심이 절실히 요청되는 때다.
거대한 과학 연구가 어느 순간에 자신들의 통제력 밖으로 떠나버린다는 역사의 산교육을
과학자들은 기억해야 한다. (2002. 8.11)
- Q/A : 유전공학의 발달로 농산물에 대한 유전자 조작이 이루어지면서 단기적인 이익과
환상이 결국에는 자연의 질서를 훼손시키며, 나아가 자연을 회복 불가능한 정도로 파괴
함으로써 인류의 삶은 어쩌면 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우리의 두려움이 있다. 생명
공학의 기술개발 및 발전 과정에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편리함과
유용성이 제시되는 반면에 그 엄청난 파괴력도 함께 도사리고 있음을 함께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지혜는 우선적으로 물질문명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혜의 보고를 맡고 있는 교회가 우선적으로 인간을 존중하는 실천과 증거의 삶을 살아야
한다.
< 기대에 못 미친 생명윤리법 > -P150
- 보건복지부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 입법을 예고(2002.9)했다. 정부 측
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의 인간 개체 복제 국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오명에서 벗어
나기 위해서라도 인간 개체 복제 금지 등의 법안 제정이 시급했다고 하겠지만 법안이
당초 의도했던 생명의 윤리 및 안전의 확보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 모름지기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은 제목 그대로 생명존중과 보호를 위한 법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법안에서는 기본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은 그 자체로 존중
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기보다는 하나의 도구로 전락시킴으로써 오히려
생명윤리를 거스르고 있다. 인간 배아는 그 자체로 생명이다. 따라서 당연히 법으로
보호되어야 함에도, 기존의 생명을 보존하고 치료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은 어떤 논리
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스스로의 결정이 없는 약한 생명에 대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일종의 폭력이며 기득권자의 횡포이다. (대한매일 2002.9.25.)
< 법과 윤리 > -p153
- 국가의 실정법은 윤리적 가치와 그 의무에 대해 절대로 무관심할 수 없다. 인간의
인간다운 삶, 인간의 존엄성, 생명의 존중, 인권보호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수호해야
하는 공권력의 임무는 그야말로 중차대하다. 공권력의 수호자인 법이 이러한 보편
가치를 경시하고 오히려 반생명적 음모를 부추기게 된다면 이는 국가의 존립과도 밀접
하게 관련된다. 한 사람의 온전한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할 인간 배아를 한낱 도구로
격하시키려는 정부의 시도는 매우 중대한 윤리적 오류임에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법률안 제정을 통해 국민 전체를 오류 속으로 몰아넣고자 하는 것이다. ...
과학과 기술은 언제나 인간을 위해서 발전한다는 대전제가 생명윤리법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2003.3.2.)
- Q/A : 법과 양심이 충돌하는 경우 양심을 따르는 것이 더 타당한 선택이며, 양심을
거스르는 법을 선택하는 행위가 행위자의 양심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오늘날 이
사회에 만연된 공리주의 사상이나 사회학주의 현상은 다수의 힘으로 만들어진 법으로
개인의 양심까지도 상대화시키고 있다. 가톨릭 윤리는 악법은 양심적으로 따를 의무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친다. 동시에 법의 준수가 반드시 양심을 자유롭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법에서 낙태를 허용한다고 해서 낙태가 양심적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며, 인간 배아 복제를 법에서 허용한다고 해도 양심적으로 이를
지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의 허용이 자칫 양심의 허용으로 비추어질 위험에 늘
경계해야 한다.
< 법과 생명윤리 > -p157
- 생명과학의 발전으로 숱한 난치병이 극복되고 수명이 연장되면서 삶의 질적 향상에
대한 기대는 크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상황이 낙관적
이지만은 않다. 생명과학 분야의 놀라운 발전과 함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위협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과학의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생명으로서의
인간 배아를 철저하게 파괴. 유린되고, 맞춤인간의 시대를 예고하는 등 인간 생명이
파괴. 조작되는 현실이 극도로 심각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그러한
상황이 만연되면 그 결과 양심 자체가 마비되어 인간 생명의 기본적인 가치와 관련된
문제에서 선가 악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은 윤리적 불감증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2001.7.29.)
- Q/A : 사람의 수정란, 곧 인간 배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방법으로 저장. 보관.
관리되는지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 있는 답변을 하지 못함은 곧 아무렇게나 보관.
방치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하다. 이렇게 인간의 생명이 허술하게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아무도 여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도 그럴 것이 이에 대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인간 배아는 언제라도 출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인간 개체임에도 이렇게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인권유린이며,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 자연법 > -p161
- 가톨릭교회가 자연법에 대해 전통적으로 가르쳐 온 내용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자연법은 인간 본성의 정체성과 목적을 가지고 있는 인간 이성의 법으로 하느님께 뿌리
내리고 있지만 결코 타율적인 법이 아니다. 곧 자연법은 외부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행동의 주체인 인간의 본성적 요구와 그에 따르는 의무가 혼합 형태로
드러나고 인식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법은 인간 본성의 요구와 의무가 실체화하는
관점에서 법의 형태를 지니며, 스스로 의무를 수반한다. 동시에 가치를 함축하는 인간
본성의 진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궁극적으로 자연법은 인간 본성의 ‘되어야 함’을 추구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법은 신으로부터 주어진 법적 규칙이라기보다는 창조주가
피조물 안에 이미 부여하였고, 또 그것을 통해 피조물 상호간의 관계를 이루게 하는
자연의 조화와 질서인 것이다.
-
자연법은 인간의 양심과 이성 안에 있는 영원한 법의 반영이다. 그러므로 자연법을
따른다는 것은 이성적 존재인 행위자가 자신의 존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영원한 법에
참여하는 것이다. 자연법은 인간 생명의 가치가 절대로 수단으로 전락될 수 없음을
우리 본성에 호소하고 있다. 인간 배아의 파괴를 가져오는 온갖 형태의 연구나 조작,
안락사, 낙태 등의 죄스런 사회 구조에 대항하는 우리의 노력이 그 어느 때다 절실하다.
개별 인간의 모든 생명에서 최고의 존엄과 가치를 발견하라는, 우리 본성에서 우러
나오는 요구, 곧 자연법의 요청에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2002.3.17.)
- Q/A : 생명은 소중한 것이고 그 어떤 가치와도 견줄 수 없는 가장 큰 가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누리고 있는 생명에 비추어 생각할 때 추호의 의심도 없을 것이다.
가장 약한 사람의 생명이라 해도 그에게는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생명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고 상식적인 것이다. 이것이 곧 자연법적인
테두리에서 이해될 수 있는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생명에 대한 존중은
우선 ‘나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 가톨릭신자 의사 > -p165
독일은 낙태시술이 가장 엄격하게 규제되는 나라로 유명하다. 낙태시술의 엄격함은
물론 법적 규제의 엄격함에 대한 그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낙태를 직접적으로 시술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반대가 더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반대했던 이유는 ‘의사란 생명을 구하는 사람이지, 죽이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매우 단순한 것이었다. 당시 가톨릭 신자 산부인과 의사들도 낙태를 엄격히 규제하는
입법(독일 연방 헌법 제218조) 과정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들 역시 생명을
살리는 의사의 사명감에 기초하여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낙태시술을 하지 않습니다
’ 라고 용기 있게 선언할 수 있었고, 이처럼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올바른 양심이
독일을 어느 나라보다도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국가로 이끌 수 있었다.
(2001.5.20.)
< 의료윤리심의위원회 > -p167
- 대한의학회는 한국의료윤리심의기구협의회를 공식으로 출범(2002.5)시켰고,
대한의사협회가 의사윤리지침을 제정하면서 의료윤리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지침 내용의 대부분이 의료현장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한 의사들의
행동에 관한 것이었지만 지침을 제정하는데 사회 각층의 다양한 소리를 반영하지
못했고, 따라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이 없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 일각에서는 그러한 지침들이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의 한 단면이라는
신랄한 비판도 없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의료현장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건강과 생명에 관련된 수많은 문제는 이제 단순히 의료 분야에만
맡겨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
비록 의학 분야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분야 중 가장 가까이 있는 분야라고는
하지만 인간의 생명은 단순히 의학 분야뿐만 아니라 철학. 사회학. 물리학. 생물학.
생태학. 법학. 신학 심지어는 정치 분야까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인식이 널리
확장되어 있다는 것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곧 인간 생명의 영역은 이제
단순히 어느 한 분야에만 맡겨둘 영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한
의학회가 의사. 의학자. 법학자. 변호사. 종교인. 철학자. 윤리학자.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의료윤리심의기구협의회를 발족시킨 것은 적어도 인간 생명과 관련된 윤리
문제는 단순히 의사들에게만 맡겨진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 전체가
폭넓게 인간 생명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도록 초대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 생명과학 연구의 윤리 > -p170
- 바티칸에서 열린 ‘교황청 생명학술원 제9차 정기총회’의 주제는 ‘그리스도교 관점
에서의 생명의료학 연구를 위한 윤리’였다. 총회에서는 ‘인간에게 봉사하는 생명의료학
연구의 현실적 경계’를 비롯하여 생명의료학과 관련된 정치 및 정책 분야 등 현실
구조 문제, 국제 규범 문제, 그리고 인간학. 윤리철학 등 타문학과의 관련성 문제를
다루었다. 총회 기간 중에 교황성하를 알현하는 특별한 시간에 교황님은 다음과 같은
귀중한 말씀을 남겨주셨다. “교회는 과학의 연구를 존중하고 또 지지합니다. 그러나
그 연구가 인간을 도구화하고 파괴하는 모든 형태를 피하고, 또한 정치적 경제적
관심에서 언제나 자유로우면서 진정으로 인간을 위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전제해야 합니다. 교회는 지금까지 생명과학의 발전 과정에서 인간의 자연적 이성에서
인도된 윤리지침을 제시하면서 그리고 과학이 인간의 참된 선을 추구할 것을 요구하면서
생명과학 분야 연구에 매우 값진 봉사를 해왔습니다. 생명과학 연구는 그 결과뿐만
아니라 방법과 수단까지도 언제나 개별 인간 존재의 존엄성을 존중해야만 합니다.”
교황성하의 말씀은 총회의 결론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는 분명 생명과학의 시대이지만,
동시에 진정한 인간 존중이라는 윤리적 요청을 호소하는 시대이기도하다.
(2003.3.16.)
<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 -p172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4년 ‘교황청 생명학술원’을 설립하면서 발표한 교서
‘생명의 신비’에서 생명학술원 설립의 필요성을 한마디로 ‘생명의 봉사’라고 했다.
교회의 관심은 생명의 위기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이 시대에 생명을 보호하고 증진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법률 및 생명 의학의 주요 문제점, 특히 그리스도교 윤리와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그에 대한 정보와 교육을 제공하는 제도적. 학문적
장치를 위해 ‘교황청 생명학술원’이 생겨난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목적으로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이 연구회는 특별히 생명윤리를 위한 전문가
그룹이라고ㅗ 할 수 있는 신학. 철학. 생명과학. 의학. 법학. 교회법 분야에서 모두
10명의 연구위원이 참여하고 있다. 연구회 활동방향은 인간의 생명 문제와 관련된
교회의 가르침을 조명하는 일이며, 생명을 보호. 존중하는 차원에서 방향제시와 다양한
제언을 마련하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생명 보호와 증진 차원에서 신자 교육은 물론
여론 지도층에게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한 임무이다.
< 세계 가톨릭 의사협회 총회 > -p176
- 제21회 세계 가톨릭 의사협회 총회 및 학술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30개 국에서
참가한 300여 명의 의사들이 함께 가톨릭 신자 의사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했다. 오늘날처럼 다양하게 발달하고 있는 의료 형태를 통해 제기되는 숱한 윤리적
혼란에 대해 가톨릭 의사로서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할 수 있는가를 함께 찾고 또 확인
할 수 있었다. ... 우리가 과거에는 기적이라고 했던 것들이 이미 현실화 되어버린
생명복제기술, 유전자 치료기술 등은 그야말로 가까운 미래에 인류의 삶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삶으로 송두리째 바꾸어 놓겠지만, 모든 인류가 반드시 경계
해야 할 것은 그러한 변화가 윤리적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 의사들이 환자에게 제공하는 도움과 봉사는 단순한 인간 신체에 대한 치료 이상의
것이다. 이는 정신적인 도움까지도 포함하는 인간의 전인격을 향한 도움이다. 이것이
바로 가톨릭 의사들이 자신의 직무를 통해 독특한 방식으로 공헌하는 참된 모습이다.
왜냐하면 참된 의사이며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치유와 구원이
전인적 치유이며 동시에 전인적 구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톨릭 의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하시는 능력과 봉사를 본받아 자신의 직무를 통해 숭고한 사명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내가 만나는 환자들을 통해 실천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의 직접적인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가톨릭 의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증거자라고 할 수 있다.
(2002.9.8.)
< 윤리적 상대주의 > -p180
- 이른바 ‘문화사회학주의’ 사조에 따르면 모든 가치는 변화되기 때문에 영속적인
가치는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윤리적 판단이나 행위 기준은 역사. 문화. 지역. 관습.
계층.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현대인들의
윤리의식에 깊이 뿌리내리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의 30퍼센트 이상이 행위의 윤리적
판단 기준을 다수의 의견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옳고 그름은 다수의 의견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좋다’라는 설문 문항에 대해 한국은 30%가 긍정한다고 함) 이러한
윤리의식은 특히 생명윤리와 관련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낙태라든가 안락사를 합법화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고, 바로 그러한 주장의 근거가 다수의 의견이다. 사회적으로
이미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낙태가 합법화되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안락사를
원하기 때문에 안락사는 일종의 자비 행위라는 주장이 차츰 힘을 얻어가고 있는 사회
라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가 과연 윤리적으로 올바로 확립되어 있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잔혹한 범죄가 대중의 합의에 의해 합법화된다고 해서 그것이 범죄가
아니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윤리적 가치는 결코 ‘과반수’ 의견으로 변경할 수 있는
임시적이고 변경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직 인간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는 내면의 소리로
하느님의 법이 윤리적 행위의 기준이 될 때 오늘날 이 사회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분열과 혼란, 죽음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2001.7.1.)
< 자율성 존중의 원리 > -p184
-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료분야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생명
윤리의 원리 가운데 ‘자율성 존중의 원리’가 있다. 이는 곧 환자의 삶과 행동에 관해서는
환자 스스로가 자유로이 결정하고 행동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며, 자기 관리에 대한
권리까지도 포함한다. 의료 상황에서 자율성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환자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치료 과정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이 조건은 매우 중요하다.
- 생명윤리에서 이해되는 자율성 존중의 원리는 환자가 치료받을 수도 있고 또 상황에
따라서는 치료를 거부할 수도 있는 환자 자신의 능동적인 권리로 해석되면서 환자
스스로의 존엄성을 보호할 권리가 되기도 한다. 나아가 의료 행위는 반드시 환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해 주는 긍정적인 권리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율성 존중의 원리는 생명 윤리 분야에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인간의 생식과 관련하여 정자나 난자 공여라든가, 대리 임신 문제 그리고 안락사 문제와
관련한 자율성 적용 및 수용 주장에는 생명의 존중과 보호보다는 오히려 생명의 파괴를
가져올 것이라는 심각한 염려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자율 개념의 핵심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의미의 확대는 생명윤리와 관련하여
그리스도교에서 가르치는 핵심과는 전혀 상반되는 내용으로 발전될 수 있다. 그리스도교가
가르치는 인간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지 결코 인간 자신이 아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생명까지도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 이성의 자율은 반드시
신앙과 밀접하게 협조하는 신율(神律)의 범주 안에서 이해되는 자율성이어야 한다.
(2001.12.13.)
< 이중 결과의 원리 > -p188
-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어떤 선한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인간 행위에 그 행위의 수단이
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때로는 어떤 정당한 목적을 위한 행위를
하는 가운데 결과적으로 물리적 악이 생기는 경우가 생겨나기도 하는데 윤리신학자들은
이 경우 그 악이 허용될 수 있는 근거로 ‘이중결과 원리’를 제시하였다. 이 원리는 토마스
데 아퀴노의 ‘정당방위의 논제’에서 비롯되는데, 곧 여기서 그는 ‘하나의 행위가 두 가지
결과, 곧 의도된 결과와 의도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그 행위의 윤리성은
의도된 결과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지 의도되지 않은 결과에 의해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함으로써 의도되지 않은 인간 행위의 악한 결과를 윤리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
예를 들어 집안에 침입자가 들어와 생명과 재산을 위협할 경우 내가 그 위험에서 벗어
나기 위해 침입자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로 침입자가 죽게
되었다면 그 침입자의 죽음은 윤리적으로 정당하게 허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곧 하나의
행위에 내 생명과 재산이 보호되었다는 선한 결과와 그 침입자가 죽었다는 악한 결과라는
두 가지 결과 중 악한 결과가 윤리적으로 허용 될 수도 있다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는
원리가 ‘이중결과의 원리’이다. 전통적으로 윤리신학자들은 이 원리가 적용되기 위한
조건으로 다음 네 가지를 제시한다. 1) 행위 그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야 한다. 2) 악한
결과와 선한 결과가 적어도 동시에 한 행위에서부터 직접 나와야 한다. 3) 행위자의
의도가 선해야 한다. 4) 간접적인 결과로 악을 허용하는 행위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전체성의 원리 > -p190
- 그리스도교 윤리학에는 인간 행위를 윤리적 행위로 이끄는 데 도움을 주는 몇 가지
원리가 있다. 이 원리 중에는 ‘전체성의 원리’가 있다. 전체성의 원리란, ‘부분’은
‘전체’를 위하여 존재하므로 부분적인 선은 전체의 선에 존속되며, 전체는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부분에 대하여 결정을 내리거나 부분을 처분할 수 있다는 원리이다. 예컨대 어느
누구도 고의로 자신의 신체에 대해 해를 가할 권리는 없지만 신체 일부를 제거하거나
희생함으로써 그 사람이 치료될 수 있다면 그 제거나 희생은 윤리적으로 정당하기 때문
이다. ... 그러나 전체성의 원리 적용은 반드시 한 유기체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 나 자신의 선을 방해하기 때문에 나를 위해 다른
사람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전체성의 원리가 아니며, 어느 사회에서도 용인될 수
없는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산모와 태아는 엄격히 각기 다른 인격체이건만 어떻게
산모의 작은 선을 위해 태아의 생명권을 박탈할 수 있는가? 사회 도덕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임신이 당사자의 미래에 큰 타격을 주고 비도덕적 인간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낙태를 통해 사회적 평판을 회복하고 불안한 양심을 해소하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가
이 사회 안에 침투하면서 점점 죽음의 사회로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어느 한 산부인과 의사가 태아 살해로 구속되었는데, 그는 독극물외에도 태아를
유도분만한 뒤 수술실 바닥에 엎어놓고 방치하여 호흡곤란으로 영아를 숨지게 했다고
한다. 태아에 대한 사형선고가 과연 산모의 권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2001.8.26.)
< 과학기술주의 > -p193
- 19세기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인간생활의 구조에 몇 가지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노동 자체의 구조가 바뀌었고, 노동 분야에서 과학적.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
지면서 노동은 인간 실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신학자들의 인간 노동에 대한 관심도 커져갔고, 20세계 초에는 노동신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노동신학의 핵심은 이렇다. 곧 노동을 통해 인간은 세상을 자신의
집으로 만들고,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인간 노동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노동이 인간을 발전시키고, 하느님의 창조활동을 완성시키는 도구가 된다는 노동의
진정한 의미를 잘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은 인간에게 중요한 기본권리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면서 과학기술주의가 노동신학의 기초를 가장하여 맹위를 떨치고 있다.
-
인간은 하느님 창조사업의 가장 중요한 협조자이며, 이 창조사업은 하느님께서 인간
에게 부여하신 모든 것, 곧 지성과 창조력, 온갖 노력을 쏟아 붓는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과학기술 발전은 하느님 창조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허구가 마치 진리처럼 여겨지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 과학기술이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한에서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오늘날 점점
그 위세를 떨쳐가는 생명공학 발전이 인류의 미래에 희망이 될 것이라고 떠들어 대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삶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 것이라는 위기감이 없지 않다. 과학
기술주의적 사고는 결국 모든 윤리문제에서 개인의 극단적 자유까지 과학의 이름으로
인정하는 극단주의를 초래하게 되고 나아가 일종의 우상으로 군림하여 과학기술이
거꾸로 인간을 지배할 거라고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2002.11.17.)
< 자유주의 > -p197
-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의 가치로 인정하는 신념이나 정책을 의미하는 사상
으로 오늘날 민주주의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유주의 사상의 기초는
인간은 본래 평등하며 자유롭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로서 이러한 기초는 근대. 현대
시민 사회 생활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자유주의 사상은 민주주의의 성장은 물론
19세기 유럽 사회에 불어 닥친 산업화 과정에서 자본주의 사상이 뿌리내리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자본주의 경제체제 발전 과정에서 드러나는 폐단도 매우
컸다. 인간이 물질에 예속되어 가고, 부익부빈익빈의 새로운 사회적 불평등이 등장했을
뿐 아니라 노사분규를 비롯하여 시민간의 극단적 분열과 첨예한 대립도 자유주의 사상의
한 단면이다.
-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자유주의는 극단적 형태의 자유주의 또는 개인주의적 자유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절대적 가치는 개인의 자유이며, 이들 삶의 기본노선은 개별 실존을
위한 투쟁이다. 이익과 관심만이 행동의 기준이 된다. 개인의 자유를 구속한다고 여겨
지는 법. 전통. 관습. 권위. 윤리도덕. 규범은 그들이 생각하는 자유를 방해하기 때문에
당연히 거부된다. 부모의 정성어린 충고와 사랑의 말도 구속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가출
이라는 수단이 그들에게는 자유인 셈이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사상에서는 결국
‘나’ 자신이 절대적이므로, ‘너’와 ‘우리’는 ‘나’를 위한 도구로 전락되고 만다. 이러한
자유주의가 우리 사회에 가져온 것이 죽음의 문화다. ... 요즘 배아복제 허용 여부에 관한
논쟁이 한창이다. 배아복제를 허용하고 또 배아를 연구. 실험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각종 난치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치유될 수 있으리라고 떠들어댄다.
인간 생명인 배아를 죽여서라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을 해야 한다는
충격적인 주장이다. 이것이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사상의 한 단면이다. 참된 자유란
‘나만의 자유’가 아니라 ‘나와 너, 나와 우리가 함께 누리는 자유’다 (2002.10.27.)
- Q/A : 가톨릭교회는 자유주의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안에서
그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개인이 만일 오늘날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변형된 형태의
자유주의 사상 때문에 인간으로서 품위를 상실해 간다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자유시장
경제구조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윤리도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곧 자유시장은
효과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은 정의와 진리에
대한 엄격한 의무라는 점을 강조하며, 수요와 공급만이 시장을 형성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자유시장체제에 대해서는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될 때 시장은
강한 자에 의해 독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의 윤리는 인간이 지닌 하느님
모상성의 한 특징으로서의 ‘자유’가 아닌, 오로지 ‘나’라는 개인만을 위한 도구로 전락함
으로써 ‘너’와 ‘우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방임의 자유를 경계하는 것이다.
< 소비제일주의 > -p202
- 오랫동안 미국에서 대학생 사목을 담당해 왔던 마거릿 베츠는 미국 문화의 세 가지
부정적 특징을 개인주의, 소비제일주의 그리고 폭력이라고 지적하였다. 개인주의라는
용어가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오늘날 미국
문화의 개인주의는 심각하게도 개인의 이익만을 챙기는데 전념하는 극단적 개인주의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믿을 수 없게 만드는 불신의
사회를 조성하게 된다. 소비주의는 사전적 의미로 이해할 때 상품구입 행위를 향한
집착 또는 성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소비주의는 사람보다는 상품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사람을 평가할 때도 사람의 됨됨이보다는 그 사람이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 또는
어떤 물건을 구입할 능력이 있는지에 따라 평가하는 경향이다. 그리고 미국의 영화와
텔레비전 산업은 미국민의 폭력성을 극대화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미국
에서는 총기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매년 몇 만 명에 이르고, 청소년 총기난사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 문화의 특징이라고 지적된 이 세 가지 현상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개인주의. 소비제일주의의 모습이 결국은 폭력사회를 조장하였고 생명이
경시되고 사회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반사회. 반생명 현상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우리 문화의 긍정적인 가치를 시급히 찾아야 할 때다. 특히 생명의
존엄성 등 이 사회의 정신적 가치를 제시하고 이끄는 종교계와 학계의 제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현실이다. (2002.5.12.)
- Q/A : 서구 사회의 경제적 변화와 발전의 한가운데는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한몫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문제는 인간과 사물과의
관계이다. 물질이 중시될 때 인간이 그에 종속되면서 비인간화되어 가고, 물질이 경시될
때 인간의 삶은 또한 인간적 삶을 누려야 하는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어버리는 등 그
긴장관계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은 인간보다는
물질에 치우쳐 있다. 치우쳐 있다기보다는 물질숭배 사상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인격이나 됨됨이보다는 그 사람이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한 평가기준이 되고 있다. 이러한 풍조의 가장 큰 원인은
우리 사회가 인간 존중의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소중하면 다른
사람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의식, 내 생명이 귀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생명도 똑같이
귀하다는 의식, 그리고 사람은 결코 물건처럼 취급되어서는 안 되는 존귀한 존재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 교회가 담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몫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인간 존중의 삶을 실천하는 증거자의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인간 사랑을 위한 극진한 희생과 사랑의 삶을 이 사회에서 가장
구체적이고도 분명하게 드러내고 증거하는 것이 교회의 당면과제이다.
< 하느님 의식 실종 > - p207
- 서울대교구 시노드 사회복음화 의안준비위원회가 준비한 토론자료를 가지고 신자.
수도자. 성직자 모두 활발한 토론을 한후 부분적인 결과로 드러난 것은 생명분야는
생명 자체이신 하느님을 믿는 신자로서 생명존중의식이 기대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 안락사 문제에 관한 토론의 의견대로라면 안락사에 대한 가톨릭 신자들의
의식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환자의 고통을 생각해서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도록 도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나 의식이 없는 삶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의 삶이 아니기 때문에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이제 교회 안에서도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는 것 같아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이러한 생명의식에 대한 토론마당의
결과보고서는 생명존중 의식의 함양과 실천을 위한 생명교육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한다.
-
체계적인 생명교육 프로그램과 교육 자료가 전무하다시피 하므로 교회가 가르치는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교육의 부재만이
오늘날의 반생명의식을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더 중대한 원인은 교회내에서조차도
하느님 의식이 실종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초자연적 가치나 정신적 가치가
물질적 가치보다 언제나 상위에 있다고 가르쳐 온 교회가 세속화의 물결에 그대로 몸을
맡겨버림으로써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을 향해 힘주어 외칠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진
것은 아닐까? 가장 버림받고 미약한 사람들을 사랑하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삶은
당연히 그리스도께서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셨던 가장 버림받고 미약한 사람들을 사랑
하는 삶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하느님을 깊이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해야 할 때다.
(2002.9.22.)
< 가정,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 > -p211
- 가정은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일치를 가장 충만하게 드러내는
가정은 단순히 우연적인 공간 안에서 그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통해 사랑과 생명을 더욱 확고히 하고 나아가 또 다른 다양한 관계를
창조하는 일이다.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의 개인적 성장을 위해서나 공동체적이고도
사회적인 성장을 위해 매우 중요한, 가장 작은 기초 단위의 공동체이다. 그리고 이 작은
공동체의 기초가 곧 사랑과 생명이다. 그런데 가정에 대한 이러한 기본 인식이 변해
가고 있다.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경험하게 되는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우리의 가정이
그 변화의 태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한가운데 있는 오늘날의 가정은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로서 그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
전통적인 가정의 붕괴는 특히 산업화 시대 이후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다.
핵가족화 현상이 가족 구성원들을 일의 노예로 몰고 가면서 가족 구성원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하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다.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가 발표한 담화문은
생명의 성역인 가정이 무너지고 있음을 크게 걱정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출산율 급감,
이혼율 증가, 수많은 낙태가 그 구체적인 증거라고 한다. 가정의 위기가 곧 교회와
사회의 위기라는 일종의 경종으로 알아듣고 싶다. 물질과 쾌락, 유용성과 편리함이
우리 가정과 사회의 큰 가치로 등장하면서 우리 사회 전체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라는
두려움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듯하다. 우리 가정과 사회가 이제 회개함으로써 가정
안에서 사랑과 생명을 다시 찾아야 한다. 사랑과 생명으로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장의 중심이 되는 ‘작은 교회’를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찾아야 한다. (2002.12.29.)
#093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094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3.01.01.
[ 책 이름 : 아침을 여는 3분 피정 ] - 마르코 복음 단상
- 지은이 : 박병규
- 지은이 프로필 : 2001년 대구대교구에서 서품, 프랑스 리옹 가톨릭 대학교에서
성서신학을 공부중 (2003년 6월 기준)
- 펴낸데 : 생활성서, 출판 : 2003년 6월1일, 207p
- 내용 : 마르코 복음을 묵상하며 떠오른 단상(斷想)들로, 매주일 대구대교구 주보에
연재되었던
글들의 모음집
[ 표지의 글에서 ]
- “인생의 길목에서 ‘함께할 수 있는 이’를 가진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관계 안에서 어울리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내 것을 볼 수 있다면 남의
것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배려 없이는 신앙도 제대로 설 수 없습니다.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느님과도 함께하지 못하고, 그래서 자기 것만 우겨댑니다.”
[ 목 차 ]
1. 여는 글 - 사랑하는 임의 편지 p4
2. 단상 - 단상 1, 2, 3, 4, 5, 6, 7/ ‘심부름꾼’ 등 92가지
3. 닫는 글 – 마지막 이야기 p206
[ 여는 글 ] - 사랑하는 임의 편지
- 요즘 교회 안에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라고 하는 성서
읽기의
한 방법론이 부각되고 있다. 예수님 역시 회당에서 많은 이들이 보는 가운데 에서 성서를
펴 읽으셨고, 그 예수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신약 성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이천 년 가까운 시간을 통해 읽혀 왔다. 내 삶의 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내가 살아
가는 데 힘을 주는 말씀 하나를 꼭 새겨 보는 것, 이것이 바로 ‘거룩한 독서’이다. 만일
성서가 사랑하는 임의 편지였다면 그렇게 미루거나 읽기를 두려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임의 편지를 거부하거나 읽기 힘들어 한다면, 그 임을 진정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성서 한 줄 한 줄은 일상에 묻힌 우리 인간을 일깨우는 귀한 말씀이다.
그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는 참된 겸손과 꾸준하고도 성실한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임의 편지인 성서에서 마르코 복음을 묵상하며 떠오르는
단상들을 모은 책이다. 처음부터 단행본을 염두에 두고 쓴 글들이 아니고, 대구대교구
주보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 이 책에 인용된 성서구절은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를 따랐다.
* 단상의 글들은 모두 존대어로 쓰여 졌으나 독서 메모상 일반어로 요약 기록하였음.
[ 단상 1 ]
- 안치환이 부른 노래 중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곡이 있습니다. 할미꽃이나
호박꽃이라고 해도 우리에게 혐오감을 주는 꽃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한낱 꽃이 이렇게
아름다울 진데, 그 보다 귀하게 창조하신 사람은 얼마나 더 아름답고 뛰어난 존재이겠
습니까. 꽃보다 아름답다고 여기지는 못 할지라도, 꽃을 보듯 사람을 예쁘게 바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01. 심부름꾼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1-11 (세례자 요한의 설교, 세례를 받으심)
* 단상의 소재들 : 어머니 심부름, ‘달고나’ 설탕과자
-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의 ‘심부름꾼’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것이 아닌 그분의
것을 소리 높여 외친다. 세례자 요한이 외치던 소리는 회개와 겸손에로의 초대였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 신발 아래로 자신을 낮춘다. 하느님께 돌아서서 그분의 사랑에
잠기는 것이 회개이다. 그리고 남을 나보다 낫게(높게) 여기는 것이 겸손의 출발이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 안에서 모두를 나보다 낫게 여기도록 광야에서 힘차게 외쳐
댄다. ... 예수님이 오신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심부름꾼이다. 심부름
꾼이라면 그분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면,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라고 고백하며 어머니에게 다가갔던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을 되살려 보자.
< 02. 광야에서 희망을 만나세요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12-13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심)
* 단상의 소재들 : 광야
- 예수님은 하느님의 영에 이끌려 광야로 가신다. 광야는 인간이 살기 힘든 곳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광야는 희망의 장소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침묵 속에서 공생활을 준비
하신 곳이 광야였고, 광야에서 들짐승과 영적 존재인 천사들과 지내셨다고 성서가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이 평화로이 살아가는 것은 미래에 있을 새 하늘
새 땅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 안에서 서로가 화목하게 살아가는 그 시간은
분명 희망의 미래이다. 살아가는 일에 지쳐 잠시라도 쉬고 싶을 때, 예수님이 머무셨던
광야로 여행을 떠나 보자.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
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면, 고통이라는 텃밭에 희망의 싹이 조금씩 싹터
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광야는 아름답다. 광야에서 희망을 만나자.
< 03. 이미 시작된 나라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14-15 (갈릴래아 전도를 시작)
* 단상의 소재들 : 첫복음 믿음과, 회개
- 예수님이 복음을 선포하신다.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하느님이 인간과 함께
구원의 길을 시작하셨다는 이야기가 새롭게 펼쳐진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침묵을 깨고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선포하신 첫 복음은 ‘믿음’과 ‘회개’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는 기쁜 소식,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께 돌아서서 그분의 말씀대로 삶을 사는 것, 즉 회개하라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가 예수님의 복음 선포와 함께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느님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 실현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며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믿음과 회개의 삶이다.
< 04. 버리고 떠나기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14-20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심)
* 단상의 소재들 : 유명한 스님, 용한 점쟁이, 예수님
- 스님과 점쟁이는 하루 종일 찾아오는 인파에 묻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먼저 간절히 먼저 찾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신다. 그리고 제자들을 부르신다. 예수님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길로 그들을 초대하시자, 제자들은 ‘그 자리에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선다. 먼저 다가오시며 손을 내미시는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욕심과 세상의 이익을 쫓던 옛 사고방식 등, 지금까지 의존해 왔고 집착해 왔던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민첩하게 반응하며 즉시, 선뜻 자신의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 05. 말과 행동이 하나로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21-28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쫒아내심)
* 단상의 소재들 : 교권, 정치권(권위), 집단 이기주의
-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이 땅에 필요한 권위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시사해 준다. 예수님의 명령에 더러운 영이 회당에서 곧 떠나가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 나타났음을 깨닫는다. 예수님의 권위가 가진 그 힘은
어디에서 솟구치고, 이 땅에 필요한 참된 권위의 힘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진정한
권위는 무엇보다 말과 행위의 일치에 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곧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알아차리게 된다. 우리의 삶속에서 내가 한
말이 곧 내 삶으로 옮겨 질 때, 삶 속에서 자신이 내 뱉은 말을 몸소 실천할 때, 비로소
우리는 권위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06. 마음의 위로자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29-31 (시몬의 병든 장모를 고치심)
* 단상의 소재들 : 시몬의 장모, 심한 열병, 곁에 있던 사람들
- 몸이 아프면 더더욱 외로워지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어진다. 시몬의 장모 역시
병중에 외로웠을 것이다. 말이 없는 시몬의 장모는 ‘마음의 위로자’를 애타게 그리워
하고 있었을 것이다. 복음에 나타난 사람들은 이런 시몬의 장모를 예수님에게 이끌어
준다. 예수님에게 장모의 아픔과 외로움을 온통 내맡기고자 한다. 예수님은 가까이
다가가셨고 낫게 하셨다. 이웃의 애정 어린 관심이 예수님의 치유 행위와 하나가 된다.
예수님은 병든 이가 아파서 고통스러워 할 때 그 곁에 계신다. 시몬의 장모는 가슴
벅찬 기쁨을 안고 다시 바삐 움직인다. 예수님을 위한 맛있는 진짓상을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 07.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32-34 (많은 병자를 고치심)
* 단상의 소재들 : 유치부의 한 꼬마 아이, 매미 한 마리
- 매미가 아픈 것을 안타까워하며, 매미가 낫기를 바라는 아이의 간절한 눈망울이
예수님의 눈망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은 아픈 이의 이름이 무엇인지,
귀신들린 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며 재산은 어느 정도 되는지 통 관심이 없다.
그저 아프기 때문에, 귀신 들렸기 때문에 고쳐 주고 싸매 주고 위로해 주실 뿐이다.
예수님은 아픈 이에 대해서 차별 없이 보편적인 연민을 보여 주셨다. 그 사람의 아픔
만을 보실 뿐이다.
< 08. 여행길에서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35-39 (전도 여행을 떠나심)
* 단상의 소재들 : 추억 만들기, 시원한 계곡, 넓디넓은 바닷가, 피서
-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찾아 나서는 행위’ 그 하나
뿐이다. 가족과 신나는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 일부러 계곡을 만들 필요도 없고,
바다의 파도나 시원한 바람을 가져갈 필요도 없다. 내가 찾아 나서기만 하면 자연은
그곳에 이미 존재하고 있으면서 나를 맞아주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외딴 곳에서 홀로
기도하고 계신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예수님을 애타게 찾아다닌다.
저 먼 외딴 곳에서 예수님이 기도하고 계신다. 하느님이신 그분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 우리는 그저 기도하는 예수님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 나서기만 하면 이미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다. 마치 떠나기만 하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
처럼 말이다.
< 09. 네 사람의 믿음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2,1-12 (중풍병자를 고치심)
* 단상의 소재들 : 병든 이들, 죄인 취급, 중풍병자
- 하느님 말고는 죄를 사할 수 없다. 예수님은 권위를 지닌 분으로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서로가 서로를 죄인 취급하는 우리의 악한 마음도 치유하신다. 중풍병자의
치유는 율사들이 남에게 함부로 죄의 멍에를 지우는 행위에 대한 따끔한 경고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우리가 교만과 잘못된 우월감을 버리고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게 살라고
권고하신다. 복음 말씀에서 중풍병자를 지붕위로 옮긴 ‘네 사람’의 모습을 눈여겨보게
된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대한 믿음뿐 아니라 죄인으로 따돌림 당했을 그를 손수 들어
옮겼을 정도로 병자에게 마음이 열려 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뿐 아니라 ‘이웃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마음을 보셨을 것 같다. 예수님은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으신다. 친구, 이웃, 사회를 포기하는 것은 바로 우리뿐이다.
< 10. 냉장고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2,13-17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드심)
* 단상의 소재들 : 냉장고, 냉담자
- 신자들이 냉담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나 같은 죄인이 무슨 성당엘 다녀?’
라고 생각하면서 돌아오지 않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예수님은 우리의 병과 아픔을
치유하러 오신 의사와 같은 분이다. 환자가 ‘병이 너무 깊어져서 이젠 병원에 가 보았자
소용없을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환자 스스로가 치료를 받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의사가 억지로 고삐를 매서 끌고 갈 수도 없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의사는 건장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앓는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러 왔습니다.” 라고 말씀하신다. 죄인을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외면하면서 계속 ‘죄 많은 냉장고’ 이기를 고집하지 말고 용기를
내자. 예수님은 우리가 죄인이기에 더욱 간절히 기다리고 계신다.
< 11. 소신껏 살자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2,18-20 (단식 논쟁)
* 단상의 소재들 : 소신, 단식, 위선
- 시류나 유행을 타지 않고 소신껏 산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려면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하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
신념이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다. 작은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을 왜 하는지 목적과 명분을
분명히 알고 행하는 것이 소신 있는 행동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그런 소신을 갖고 계셨던
분이었다. 사람들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단식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 와서는 다짜고짜 당신은 왜 단식을 하지 않느냐고 따진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식은 속죄와 참회의 표시로서, 진정한 마음과 행위가 뒤따르지 않으면 위선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교회가 하라고 하니까, 또 다른 신자들이 그렇게
하니까 등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행하는 단식이나 참회를 반기실 리 없다. 아주 작은
기도나 선행이라도 마음에서 우러나와 소신껏 하는 것이 중요하다.
< 12. 새것은 새것답게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2,21-22 (새것과 헌것)
* 단상의 소재들 : 새 옷, 새 자동차, 새 집, 새 사람, 새 포도주, 새 가죽부대
- 예수님은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우리가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선포하신다.
새 옷이나 새 구두를 신은 정도나, 새 자동차를 타고 새 집에 이사 간 정도가 아니라
우리 영혼이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새로운
영혼에는 헌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신다. 그분 덕분에 새롭게 태어난 우리들이 단지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옛것을 고집하지 말라고 하신다. 새 사람은 새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아름답다.
< 13.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2,23-28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음)
* 단상의 소재들 : 경미한 교통사고, ‘내 탓이오’라는 스티커, 안치환이 부른 노래
- 안치환이 부른 노래 중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곡이 있다. 할미꽃이나 호박꽃
이라고 해도 우리에게 혐오감을 주는 꽃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한낱 꽃이 이렇게 아름다울
진데, 그 보다 귀하게 창조하신 사람은 얼마나 더 아름답고 뛰어난 존재이겠는가. 꽃보다
아름답다고 여기지는 못 할지라도, 꽃을 보듯 사람을 예쁘게 바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서로 사랑하려고 모인 신앙인들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말한다. “사랑하라. 그리고 그 다음에 말하라.”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마음 안에 사랑이 없으면 그 말은 울리는 징과 같고 소용이 없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심어 주러 오셨다. 사랑은 사람들을 꽃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로 만든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무엇보다 우선한다.
[ 단상 2 ]
- 가끔 삶을 살아낸다는 것이 무거운 멍에처럼 느껴질 때면 예수님에게 매달려 봅시다.
‘제발 저 좀 살려 주십시오.’ ‘제발 저를 내팽개치지 마십시오.’라고 간청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아마도 우리에게 이렇게 외치시겠다. ‘왜 그리 믿음이 약합니까? 당신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임을 왜 모릅니까? 당신의 아픔 안에 있는 나를 왜 느끼지 못합니까’
< 14. 숲길을 걸으며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3,1-6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심)
* 단상의 소재들 : 한적한 숲길, 시원한 산 속 계곡, 매캐한 도시 매연, 노심초사
- 사람이 없는 한적한 숲 속이나 교외에서는 자신에게 솔직해지면서 자유로움을 느끼는데,
막상 세상 안에 들어오면 솔직해지기보다는 자꾸 자신에게 덧씌우기를 하게 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신다. 오그라든 손을 펴라. 이는
움츠러든 우리 내면의 진실을 감추지 말고 그대로 드러내라는 말씀인 듯하다. 손이 오그
라든 사람의 손을 펴게 만드시는 예수님. 그분은 세상이 덧씌운 겉포장을 벗어 버리고,
자신의 것만을 챙기려는 이기심을 던져 버리기를 바라신다. 자신의 것을 꼭 쥐고 놓지
못하는 ‘오그라든 손’이 되지는 말아야 하겠다. 행여 자신의 것이 다칠까 봐 노심초사
하면서 자신을 감추고 꾸미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그래서 이웃과 진실된 만남, 가식 없는
나눔을 가져야 하겠다.
< 15. 그분을 만나려면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3,7-12 (군중이 호숫가로 모여듦)
* 단상의 소재들 : 한적한 숲길, 시원한 산 속 계곡, 매캐한 도시 매연, 노심초사
- 바쁜 일상 속에서도 기회가 되는 대로 자주 피정(避靜)을 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갖가지 세상일들을 잠시 접어 두고 예수님을 생각해 본다. 그분의 사랑, 그분의 겸손,
그리고 그분의 십자가를. 내 것이 아닌 예수님의 것을 챙겨 보고, 그것이 내 것과 어떻게
다른지 짚어 보는 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그러면 어느 때는 삶의 회한들이 울컥 밀려
오기도 하고, 예수님의 위로가 뜨겁게 느껴져 올 때도 있다. 그러나 피정 중에도 잠시
접어놓으려던 세상일로 마음이 다시 산란해질 때가 많다. 세상의 온갖 근심 걱정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으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예수님은 깜박 잊고 두고 온 셈이다.
오늘 복음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몸과 마음에 생긴 아픔을 가지고
예수님을 만나려고 몰려든다. 예수님을 만나려는 열정을 품는 것은 참 좋은 일이나
이 열정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늘 되묻고 점검해 보아야 한다. 나의 치유, 나의 기쁨,
나의 만족을 위해서 예수님을 만나려 한다면 우리는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다. 예수님은 해결사가 아니다. 그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우리의 고통을 묵묵히 나누어지고 계실 뿐이다.
< 16. 서로 빛깔은 달라도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3,13-19 (열두 사도를 뽑으심))
* 단상의 소재들 : 단풍 빛깔, 초록. 붉은. 노란 빛깔, 다양한 빛깔
-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의 이름을 부르시고는 그 제자들의 성격에 맞게 별명도 붙여
주신다. 다혈질의 시몬은 베드로라고 하고, 질투심과 명예욕이 많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은 천둥의 아들들(보아네르게스)이라 부르고 계신다. 예수님이 이들을
부르신 이유는 그저 ‘함께’하시려는 당신의 원의 때문이다. 한솥밥 먹고 서로 도우며
살기 위하여 열두 제자들을 직접 부르셨던 것이다. 각자가 모두 다른 빛깔을 가졌는
데도 말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들 각자의 고유한 모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신다.
여러 가지 모습들이 함께 호흡하는 다양성 안의 일치를 원하셨던 것이다. 변하지
않는 사철나무들과 어우러진 다양한 빛깔의 단풍은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가르키고 있는 것 같아 더욱 정겹다.
< 17. 우리는 형제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3,20-35 (예수님의 참가족)
* 단상의 소재들 : ‘콩가루 집안’, 부모(자애)와 자녀(효도)
- 부모가 자녀를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한 교육관과 가치관이다. 그 중에서도
더욱 중요한 것은 부모의 일관된 태도이다. 자녀에게 일관된 철학을 갖고 교육을 하는
부모는, 자기 자식을 대할 때나 남의 자식을 대할 때 태도가 별로 다르지 않다. 마찬
가지로, 부모에게 진정한 효심을 가진 사람은 자기 부모를 대할 때나 남의 부모를 대할
때 큰 차이가 없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입니까?”하고
조금은 냉정하게 들리는 말씀을 하신다. 여기에서 나는 예수님은 만인의 어머니요,
자녀요, 형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의 태도는 부모를 대할 때나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수님의 가족관은 새롭다.
혈연관계로 맺어진 좁은 울타리를 넘어, 하느님의 나라를 희망하는 사람은 누구나 가족
으로 받아들이시는 것이다.
< 18. 작은 것에서부터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4,1-20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 단상의 소재들 : 도시 시멘트 바닥위의 텃밭, 상추 재배
- 어느 날 저녁 식탁에 아기 손바닥만한 상추가 수북하게 올라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가 뒷마당 시멘트 바닥 위에 강가의 흙들을 날라 밭을 일구고 그곳에 상추씨앗을
뿌려 거두어들인 것이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작고 탐스런 생명, 그것이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 준 것이다. 시멘트 바닥처럼 삭막한 이 세상 속에 하느님 나라의 향기를
퍼뜨리는 일은 우리 신앙인들의 몫이다. 우리들 마음 한구석에 하느님께서 정성스레
당신의 씨앗을 뿌려 놓으셨다는 사실을 아는 까닭이다. 하느님 나라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은 씨앗이 점점 자라나 큰 나무가 되듯, 하느님 나라는 우리 생활 속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곳에는 직접 거두어들인 상추로 맛깔스러운 저녁상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하느님의 사랑이 늘 함께하고 있다. 때때로 삶이 힘겹게
다가오지만 힘을 내자! 하느님의 사랑이 당신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 19. 솔직히, 정직하게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4,21-25 (등불의 비유)
* 단상의 소재들 : 자신을 감추는 삶, 빗장
- 빛은 어둠을 몰아낸다. 감추이고 보이지 않는 부분을 그 밝음으로 밝히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낸다. 성서에서는 이 빛을 예수님으로 소개한다. 예수님은 힘 있고
권력 있는 율사들이나 바리사이들 앞에서 그 사람들의 잘못을 책망하신다. 그리고
권위에 찬 목소리로 하느님 나라의 참 모습을 일깨워 주신다. 우리도 빛이 되고자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꾸밈없이 드러내고자 한다. 용기와 소신이이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
더라도 ‘솔직히, 정직하게’라는 말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꼭 필요한 것 같다. 물질과
과학을 신봉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 세상 풍조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고
자신의 신앙을 당당히 고백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자신의 신분과 정체성
을 솔직히 고백하고, 또 그분을 내 삶으로써 성실하게 드러내야 한다. 내가 이해하고
내가 소망하는 것을 신앙의 이름으로 합리화하지 말고 언제나 예수님이 바라시는 것을
참되게 드러내도록 노력한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세상의 빛이 될 것이다.
< 20. 난(蘭) 화분에 자란 수박 씨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4,26-29 (저절로 자라는 씨앗)
* 단상의 소재들 : 수녀원 응접실의 난, 잡초, 수박씨의 새싹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농부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라는 씨앗으로
비유하신다. 농부는 그저 씨만 뿌렸을 뿐인데, 싹을 틔우고 줄기가 나고 이삭을 맺고
낟알을 낸다고 하신다. 나는 종종 이 말씀으로 위로를 삼는다. 내가 하는 일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은 작은 일에 불과하지만, 그 다음에 해야 할 모든 긴 과정은 모두 하느님
께서 손수 해주시겠다는 말씀이시다. 내가 했던 작은 말이나 행동이 누군가의 밭에
뿌려져 나도 모르게 자라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에 그 씨가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이었다면, 하느님께서 손수 가꿔주시고 열매를 맺어 주실 테니,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21. 기쁨은 준비하는 이에게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4,30-32 (겨자씨의 비유)
* 단상의 소재들 : 입시생 부모, 동화사 갓바위, 성모당, 대학 입학시험, ‘4당5락’
- 하느님 나라는 준비 없는 이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지는
공짜가 아니라는 말이다. 평소 열심히 한 학생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듯이 하느님
나라는 신앙인으로서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잘 준비하는 사람이 이루어 낼 수 있다.
그렇듯 지금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겨자씨만 한 하느님 나라라 할지라도 마침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이는 나라로 그분의 나라는 완성될 것이다. 자기 자녀가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니 갑자기 의문이 든다.
그 간절한 기도가 준비를 잘한 만큼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인지, 혹은
씨앗을 뿌리지도 않고 열매만 거두려고 하는 바람인지. 자녀를 위한 부모의 마음은
숭고하지만 결코 공짜를 바라서는 안 될 것이다.
< 22. ‘예수 천당, 불신 지옥’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4,33-34 (비유를 들어 가르침)
* 단상의 소재들 : 도시 한복판,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외침
-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잘 알아듣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고
많은 고민을 하신 것 같다. 그리고 그 고민 끝에 수많은 비유를 들려주신다. 그 말씀
하나하나에는 참으로 쉽고 분명하며 재미있는 것이었다. 오늘 우리들 역시 이런
예수님을 본받아 세상 사람들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알아들을 수 있는, 성숙한 신앙
고백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며 살자’, ‘’기쁘게 살자‘, ’착하게 살자‘ 예수님은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해 외치셨다. 그리고 세상이 알아들을 수 있게 외치셨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인들끼리만 이런 말을 외쳐대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또는 이런 말은 조심스러워 아예 꺼내지도 못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 23. 삶이 멍에일 때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4,35-41 (풍랑을 가라앉히심)
* 단상의 소재들 : 희망, 기쁨, 기쁜 소식
- 신앙인은 희망을 먹고사는 사람이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운 때에도 신앙인들은
기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신앙인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기쁜 소식을 믿으며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가끔 삶을 살아낸다는 것이 무거운
멍에
처럼 느껴질 때면 예수님에게 매달려 보자. ‘제발 저 좀 살려 주십시오.’ ‘제발 저를
내팽개치지 마십시오.’라고 간청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아마도 우리에게 이렇게
외치시겠다. ‘왜 그리 믿음이 약합니까? 당신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임을 왜 모릅니까?
당신의 아픔 안에 있는 나를 왜 느끼지 못합니까’.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내 곁에 계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요, 기쁨이다. 그분과 함께 있으면 풍랑은 곧 가라앉는다.
< 24. 한판 승부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5,1-20 (마귀들과 돼지 떼)
* 단상의 소재들 : ‘나의 싸움’, 삶을 망치는 것, 자기 자신, 이기적인 생각, 행위들
- 오늘 예수님은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신다. 더러운 영은 자신
안에 있는 온갖 추잡함이고 자신을 옭아매는 쇠사슬이다. 나를 자유롭게 못하게 해서
결국엔 죽음에로 몰고 가는 내 안의 미친 기운이다. 예수님에게 나아가는 데 방해되는
고집과 옹졸함이 이러한 것들을 단단하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행여나 예수님이
자기에게 걸림돌로 여겨진다면 지금 걷고 있는 그 길은 죽음의 길일 것이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려고 우리에게 다가오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성공하는 삶이어야 한다.
예수님 안에 참 자유를 누리는 생명의 시간이어야 한다. 이기적인 욕망과 집착이 자신을
옭아 메고 있다면, 그래서 예수님을 피하고만 싶다면 지금 우리는 자신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라는 구절을 마음에 새기고
예수님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우리는 그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 25. 나는 믿나이다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5,21-43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심)
* 단상의 소재들 : 대림시기, ‘크리스마스 특수’, 성탄일
-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간절함은 다르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해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셨고, 또 우리의 구원을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음을 믿는다.
그래서 다가올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은 더욱 설레고 간절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을 믿지 않거나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대림과 성탄은 수많은
휴일 가운데 하나일 뿐,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믿음이라는 말이 세상살이에서는
힘없고 허황된 느낌을 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믿음은 세상살이의 마지막, 그 끝
자락에서 더욱 힘을 발휘한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바닥나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런 절박함이 있는 곳에서 믿음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은 바로
예수님에게 나를 전적으로 내어 맡길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내 것을 넘어서 하느님
것에 온전히 투신하는 것이 신앙의 시작이다.
< 26. 사람은 누구나 성장합니다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6,1-6 (나자렛에서 무시를 당하심)
* 단상의 소재들 : 고향
- 예수님도 고향을 찾아가신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뜻밖의 대접을 받는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환대한 것이 아니라. “이 사람한테 이런 일이 어디서 내렸을까?”
하고 수군거린다. 마치 “누구네 개똥이가 출세했구먼!” 하는 식이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어떤 선입견을 갖고 바라보았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런 고향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하시고는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곧 다른 촌락으로
떠나신다. 예수님이 고향에서 당하신 일은 우리가 자녀나 배우자, 또는 동료들처럼 친숙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내가 너한테 기대를 하는 게 잘못
이지.”, “너 하는 짓이 다 그렇지. 그럴 줄 알았다.” 라는 말들을 던지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의기를 꺾는다. 그렇지만 사람은 누구나 변하며, 성장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 사람의 ‘가능성’을 생각하며 그 사람을 밀어 주자.
< 27. 변치 않는 것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6,6-13 (열두 제자를 파견하심)
* 단상의 소재들 : 급변하는 세상, 다양한 대중 매체, 선교활동
-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빵도, 자루도, 그리고 전대(돈가방)의 돈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하셨다.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필수품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는 말씀
이다. 세상의 변화를 잘 파악할 필요는 있겠지만, 그 변화의 흐름에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는 없다. 복음을 전하는 데는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방법
으로 전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복음 전파의 과정과 방법을 선별할 때, 그
중심에는 하느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굳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말씀은 근본적으로 우리들의 말이나
선전이 아닌 우리의 행동, 즉 우리들이 기도하는 모습, 그리고 그 말씀 그대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통해 세상에 전해진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 끌려
가지 말고 세상이 그리스도를 닮은 우리에게 이끌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 단상 3 ]
- 인생의 길목에서 ‘함께할 수 있는 이’를 가진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관계 안에서 어울리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내 것을 볼 수 있다면 남의
것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배려 없이는 신앙도 제대로 설 수 없습니다.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느님과도 함께하지 못하고, 그래서 자기 것만 우겨댑니다.
< 28. 쓴 소리가 보약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6,14-29 (세례자 요한의 죽음)
* 단상의 소재들 : 쓴 소리, 보약
- 오늘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 앞에서 깊이 침묵하게 되었다. 예수님 오시는 영광의
길을 곧게 하겠다고 목 놓아 외치던 세례자 요한이 죽었다. 세상과 타협하며 하느님께
등 돌리고 살아가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쓴 소리를 하던 세례자 요한은 결국 사람들의
욕심과 체면 아래에서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이제 우리 앞에 더는 “예수님이 여기
오시니 제발 회개하시오”라고 외치던 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삶이란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살아야 하는 것일진대, 돌이켜 보니 나 역시 제 몫을 구하는 이기심으로 가득
차 지내 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쓴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너의
소리, 우리 모두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자기 것만 챙기면 하느님의 소리는
사라진다. 들을 줄 아는 마음은 우리를 이웃과 그리고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한다.
< 29. 나눔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6,30-44 (오천 명을 먹이심)
* 단상의 소재들 : 구걸하는 이들, 잘사는 동네, 못사는 동네, 강남 부자, 소박한 사람
- 예수님이 제자들더러 먹을 것을 나누어 주라 하시자 제자들의 반응은 지극히 계산적
으로 나온다. 많은 군중들에게 나누어 줄 빵이 문제가 아니라 그 빵을 사야 할 ‘이백
데나리온’이라는 돈의 문제가 된다. 나누어 줄 빵 이전에 돈 걱정부터 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성당마다 ‘사회복지위원회’의 활동이 활발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보잘것없고 하찮은 것이라 해도, 그것을 함께 나누면 풍요로움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이 그러하셨고,
지금까지 교회의 역사가 그랬다. 복음을 나누고, 복음대로 사랑을 나누고,
그래서 희망을
나눠 왔다. 여기에 돈 문제는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큼의 나눔이 있었다. 여기
에는 거래가 없다. 그냥 아무 대가 없이 퍼주는 사랑이 있을 뿐이다.
나누려는 마음만
있다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을 수 있다.
< 30. 삶의 풍랑 위로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6,45-52 (물 위를 걸으심)
* 단상의 소재들 : ‘평화 계곡’, 고즈넉한 분위기
- 오늘 말씀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제자들을 만난다. 그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존재는 없다.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에게 유령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 것에만
머물러 있으면 상대방의 모습은 잊혀지기 때문이다. 여럿이 함께 나눌 때, 삶의 가쁜
호흡은 편안하고 잔잔한 긴 호흡으로 바뀐다. 함께 살아가는 삶의 여유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바라보게 한다. 바쁠수록, 힘들수록 옆을 보고 뒤를 돌아다보아야 하겠다.
예수님이 내 삶의 풍랑위로 걸어오고 계신다.
< 31. 기쁨의 흔적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6,53-56 (겐네사렛에서 병자들을 고치심)
* 단상의 소재들 : 겐네사렛 동네, 모여든 사람들
- 예수님이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이라는 동네에 도착하셨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모여 들었다. 앓는 이들을 고쳐주고 싸매 주셨던 그 예수님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새로운 삶의 희망을 제시해 주는 분으로 각인되어 예수님의 모습에서 희망을 볼 줄
알았던 사람들이었다. 어디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따라 다닌다.
그리고 그분의 옷단이라도 만져 보려고 필사의 노력을 한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런
마음을 소홀히 여기지 않으시고, 당신을 만지는 이는 누구나 다 고쳐 주신다. 병을
고치는 예수님, 그분을 똑바로 바라보자. 그분께 우리를 낫게 해 달라고 외치며 달려
가자. 우리의 희망이요 구원이신 주님에게 매달리러 힘차게 뛰어가자. 그분은 우리의
아픔을 씻으시고 눈물을 닦아 주시려고 곁에 와 계신다.
< 32. 가슴에 손을 얹고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7,1-23 (조상들의 전통에 관한 논쟁)
* 단상의 소재들 : 말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사탄의 자식’
-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말씀대로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각자의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말씀의 전달자요,
말씀의 실현자이며, 말씀의 파수꾼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하느님 말씀을 읽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켜 ‘사탄의 자식’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한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가 사탄의 자식이 되는 때는 하느님 말씀을 멀리하는 그 순간에 결정된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가만히 손을 얹고 자신을 돌아보자. 자신 안에서 활개 치는
온갖 더러움 속에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속임수, 방탕, 악한 눈길,
모독, 교만, 어리석음 따위의 더러움이 없는지를. 하느님 말씀은 한가하고 나른한
오후에 멍하니 떠올리는 공상이 아니라 우리 삶에 구체적인 힘과 활력을 제공하는 참
양식이다. 말씀으로 살고 말씀을 먹어야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진다.
< 33. 오직 사랑으로만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7,24-30 (시리아 페니키아 여자의 믿음)
* 단상의 소재들 : 시로페니키아 여인, 자녀들의 빵, 강아지, 부스러기
- 어린 딸이 아프다고 하소연하는 여인의 간청에도 예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신다.
그럼에도 다시 간곡히 청하는 그 여인에게 예수님은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못하다는 말씀까지 하며 여인의 가슴에 못을 박으신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의 한 마디, 곧 “주님, 상 밑에 있는 강아지들도 아이들이 먹다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는 대답에 그의 딸을 고쳐 주신다. 여인의 이러한 믿음은
바로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간절한 사랑이었다. 인간의 지식과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찾을 수 없는 은총의 길은 오직 사랑으로만 가능함을 이 여인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일깨우고 있다.
< 34. 아름다운 침묵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7,31-37 (귀 머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심)
* 단상의 소재들 : 할머니의 죽음, 고요한 침묵
- 오늘 예수님이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쳐 주시면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다.
무엇이 그리 답답하셨는지 세상사의 온갖 막막함이 예수님의 긴 한숨 속에 배어 나오는
듯하다. 귀먹고 말 못하는 것이 어디 장애인들만의 몫이겠는가? 인간들의 교만이
뭉쳐져 서로의 귀를 막게 하고 서로가 말문을 닫은 채 자기만의 성 안에 몸을 숨기고
있다. 사람들 간에 진정한 대화는 없고 세상에 시끄럽게 떠도는 것은 욕망에 가득 찬
목소리들뿐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할머니는 고요한 침묵 속에서 하느님께로 돌아
가셨다. 인간의 마지막 말, 그 무엇보다 강하고 힘 있는 침묵으로 하느님 앞에서 서
계실 것이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떤 말도 쓸모가 없다.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제대로
듣고 제대로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열심히 연습하며 살아가야 하겠다.
< 35. 배고픈 사람들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8,1-9 (사천 명을 먹이심)
* 단상의 소재들 : 사순절, 단식, 절제
- 오늘 예수님은 배고픈 이들을 측은히 바라보시고 먹거리들을 나누어주신다.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이나 되는 군중들을 배부르게 먹이신다. 이 기적의
발단이 되었던 것은 제자들이 가져온 음식이 바로 그 기적의 재료였다.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 그 자체보다는 더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먼저 가진 모든 것을 예수께 바쳤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낌없이 그분께 드렸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찮은 것이라도
우리가 가진 것, 나의 지력과 의지마저 그분께 온전히 내어 맡기는 행위일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가 내어 놓은 그것을 예견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크게 불려
우리에게 되돌려 주실 것이다.
< 36. 이보다 더 큰 표징은 없다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8,10-13 (바리사이들이 표징을 요구함)
* 단상의 소재들 : 십자고상의 피, 성모상의 눈물, 성체의 기적
- 오늘 복음을 보면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조른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그런 태도에 대해 절대로 표징이 주어질 리 없다고
잘라 말씀
하신다. 표징을 보여 달라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예수님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이미 바로 전에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신 엄청난 기적을 보여주셨다고 씌어 있다. 그러니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예수님의 기적을 칭송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예수님을 시험해 보고자 했던 의도였다. 예수님의 몸을 나누어주시는 성체의 기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 기적을 받아들이지 않고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도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그분을 시험하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날마다 일어나는 성체의 기적보다 더 큰 표징은 없음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 37. 머리에서 가슴까지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8,14-21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토록 하심)
* 단상의 소재들 : 제의방 담당 어느 젊은 수녀님, 본당 신부님, 마이크 줄, 꾸지람
- 본당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고 퇴장하다가 마이크 줄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면서
꾸지람을 들은 수녀님은 신부님의 화를 풀어드릴 겸 이렇게 재치 있는 말로 대답했다.
“신부님, 눈 없는 마이크 줄이 어떻게 사람을 피하겠어요. 눈 있는 사람이 조심을
해야지요.” 수녀님의 넉살에 신부님도 그만 화를 풀고 웃었다는 후문이다. 오늘
예수님은
눈이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면서도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시고
몹시 답답해하신다. 머리가 좋거나 지식이 풍부해야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몸으로 실천하며 살고
계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그분들의 삶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평소에는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면서도 하느님을 따를 때는 누구보다 용맹하다는 것이다. 어느
교회 어른이 ‘머리에서 가슴까지가 가장 먼 길’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정말 알아듣는
것에서 실천하기까지는 참으로 아득하고 먼 길인 것 같다.
< 38. 뻐기고 싶은 마음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8,22-26 (벳사이다의 눈먼 이를 고치심)
* 단상의 소재들 : 산 정상, 산 아래의 풍경들, 소경
- 아주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마음 상하고, 또 어설프게 해낸 작은 성과에도 우쭐
해져서 남들이 알아주기를 은근히 바란다. 도움을 주었는데 고맙다는 표현을 받지
못하면 서운해지고, 조금 잘한 일이 있으면 금세 뻐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런
사회에서 예수님은 참 이상한 분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이 소경을 데리고 와서 만져
달라고 간청한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고치실 수 있고, 또 실제로 손수 손을 얹어
눈을 뜨게 해주신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대단한’ 일을 ‘마을 밖’에서 하신다.
그를 데리고 밖으로 마을 밖으로 나간 다음에 은밀히 고쳐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주 조용하게 이 일을 행하신다. 보잘 것 없는 일을 하고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한번 깊이 묵상해 볼만한 구절이다.
< 39. 그 이름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8,27-30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함)
* 단상의 소재들 : 예수님을 지칭하는 이름들
- 예수님을 지칭하는 이름들은 주님, 그리스도, 메시아, 예언자, 하느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 등이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베드로가 부럽다.
나는 가끔씩 예수님을 ‘친구’ 라고 부르고 싶다. 이리저리 널려 있는 삶의 흔적
가운데에서 정처 없이 떠도느라면 예수님이 안쓰럽게 내 어깨를 토닥여 주시는
듯하다. 그때 예수님은 나의 오랜 지기(知己)로 다가오신다. ‘너 괜찮니? 힘내! 자,
우리 다시 한 번 해 보자.’ 예수님을 지칭하는 이름들이 ‘친구’라는 말 안에 모두
스며드는 것 같다. 친구라는 말은 예수님을 예수님이게끔 하는 나만의 신앙 고백
이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뭐라고 부르고 싶으신지.
< 40. 저만치 앞서가는 임 뒤로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8,31-33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심)
* 단상의 소재들 : 베드로, 예수님의 호통, ‘사탄아!’
- 성서에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라고 호통을
치신다. 이렇게 야단을 치시는 이유는 인간이 하느님보다 앞서 가려고 했기 때문
이다. 하느님은 이쪽으로 가려 하는데 사람이 저쪽 길이 좋다고 하면 꾸중을 들을
수밖에 없다. 이미 ‘길’이 어딘지를 알고 있는 쪽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시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바로 그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인생의 길목에서
‘함께할 수 있는 이’를 가진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사람은 관계 안에서
어울리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내 것을 볼 수 있다면 남의 것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배려 없이는 신앙도 제대로 설 수 없다.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느님과도
함께하지 못하고, 그래서 자기 것만 우겨댄다. 만약에 우리가 혼자 앞서가려 한다면
예수님은 베드로를 야단치셨듯이 우리에게도 불호령을 내리실지 모른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메시지는 바로 모두가 함께 살자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같이 사는
이들도 못 본 체하고, 이끌어 주시는 주님도 모른 체하고 자기의 잣대로 하느님의
길을 판단하는 것을 예수님은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 단상 4 ]
- 세상일에는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고, 슬픔이 있으면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 수 있지요. 슬픔 없이 좋을 수만은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고, 예수님 역시
슬픔 뒤의 기쁨을 이야기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쁨이 있으면 그보다 더 큰 기쁨만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사실 우리는 슬픔 속에서도 크게 자라는데 말입니다. 기쁨은
다가 올 슬픔을 준비시키고 슬픔은 기쁨을 예고합니다. 그래서 슬픔과 기쁨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 41. 네 이놈, 감기야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8,34-38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 단상의 소재들 : 감기, 매년 인사치레
- 감기와 한바탕 씨름을 했다. 감기가 어느새 내 마음의 원수가 되었다. 몸도 좋지
않고 일도 하기 싫고 그저 침대에 뒹굴고 싶은 게으름이 감기를 핑계 삼아 더욱 기승을
부렸던 것이다. 일 년에 한두 번 꼭 인사치레를 하고 지나가는 감기인데 온통 정신을
빼앗기다 보니 무슨 중증 환자라도 된 것처럼 나태해지고 약해지고 그래서 너무나 쉽게
생활이 흔들린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도 우리들은 감기환자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예수님은 가진 것 다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네 목숨마저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신다. 그런데 나는 ‘조금 나으면 그때 할게요.’라고 둘러댄다. 실은
나를 버리는 것이 싫고 아파서 잠시 예수님을 피하는 것인데 말이다. 오늘은 감기
때문에 어질러 놓은 제 삶의 나태함을 추슬러 보아야 겠다. 그리고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 힘껏 불러 보아야 겠다.
< 42. 꿈은 이루어진다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9,1-10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모하심)
* 단상의 소재들 : 월드컵 경기, 축구팀, 월드컵 4강, ‘꿈은 이루어진다’
- 오늘의 복음에서 나타난 베드로를 보면, 그가 예수님에게서 어떤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는지 짐작이 간다. 산에서 갑자기 눈부신 모습으로 변한 예수님을 보면서 베드로는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지른다. 베드로는 내심 ‘성공한 예수님’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예수님을 보고 나서, 이제야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베드로의 꿈은 이루어진다. 그리고 우리의
각자의 꿈도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비록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때, 그 시각은
아니지만,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을 겪으신 뒤, 산에서 살짝 보여 주신 것과 똑같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 43. 텃밭 가꾸기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9,11-13 (엘리야의 재림)
* 단상의 소재들 : 텃밭, 밭갈이, 물주기
- 구약의 전통을 소중히 여기고 따르던 유다인들은 종말에 엘리야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다인들이 엘리야의 재림을 학수고대하던 그 믿음은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하느님의 목소리를 전하던 예언자들과 하느님의 외아들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세상 안에 직접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신앙의 진리들은
값진 지혜이며, 구원의 척도이다. 그러나 진리라는 말에만 얽매여 세상을 제대로 볼
줄 모르고, 세상에 귀 기울일 줄 모른다면 우리는 그 진리를 옳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하느님께서 손수 가꾸시는 텃밭이다. 세상은 구원의 밭고랑을
일구어야 하는 곳이고, 구원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물을 주어야 하는 곳이다.
< 44. 설렘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9,14-29 (어떤 아이에게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심)
* 단상의 소재들 : 저잣거리, 시끌벅적, 외쳐 댐
-오늘 예수님이 어린아이를 고쳐 주신다. 사람들이 만나고 싶었던 것은 ‘예수님 그분’이
아니라 예수님의 ‘치유 능력’이었다. 제자들에게도 치유 능력이 있었다면 사람들은
오히려 제자들에게 몰려가며 예수님을 찾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병을 고치고 싶으면
의사를 찾아가면 된다. 어떤 뛰어난 기술을 익히고 돈을 벌고 싶다면 실력 있는 전문가
에게 가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필요’ 때문에 세상살이의 ‘도구’로 예수님을
찾지는 말아야겠다. 우리에게 정녕 필요한 것은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는 설렘이 되었으면 좋겠다.
< 45. 슬픔이 기쁨으로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9,30-32 (수난과 부활을 두 번째로 예고하심)
* 단상의 소재들 : 마음의 평안, 성당, 슬픔, 기쁜 소리
- 오늘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 이야기를 두 번째로 들려주신다. 슬픈 이야기이다.
어린아이를 고쳐주시며 영광스러운 변모를 보여 주신, ‘잘 나가시던’ 예수님이 또 한 번
엉뚱한 말씀을 하신다.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의 말씀의 참뜻을 깨닫지 못했고 또 묻기
조차 두려워한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 말씀을 ‘못’ 알아들었다기보다 ‘안’ 알아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일에는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고, 슬픔이 있으면 기쁨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살 수가 있다. 슬픔 없이 좋을 수만은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고,
예수님 역시 슬픔 뒤의 기쁨을 이야기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기쁨이 있으면 그보다
더 큰 기쁨만 찾아오기를 바란다. 사실 우리는 슬픔 속에서도 크게 자라는데 말이다.
기쁨은 다가 올 슬픔을 준비시키고 슬픔은 기쁨을 예고한다. 그래서 슬픔과 기쁨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 46. 꼴찌를 좋아하는 사람들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9,33-36 (가장 큰사람)
* 단상의 소재들 : 라틴어 ‘후밀리타스(땅, 흙/겸손)’, ‘신자유주의 경쟁’ 사제서품식, 꼴찌
- 오늘의 복음에서는 서로 다투어 자신을 앞세우려 하는 겸손치 못한 제자들의 경쟁의식을
보게 된다. 집도 가족도 모두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던 제자들이 이제는 새로운 권력과
명예를 얻기 위해 서로 야단이다. 얼마 전 부제. 사제 서품식이 있었다. 자신의 일생을
하느님께 바치고자 서약하는 날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꼴찌를 좋아해야 한다. 서품을
받은 이들 역시 세상의 꼴찌가 되고자 서약한 이들이다. 땅바닥에 엎드려 모든 사람들을
우러러 보고자 약속한 이들이다. 처음에 품었던 겸손의 마음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사는
부제, 사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겸손을 지켜줄 수 있는 ‘지킴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 47. 약자를 품으면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9,36-37 (어린이를 껴안으심)
* 단상의 소재들 : 순수한 기쁨, 순수함, 단순함, 어린이의 모습, 약자
- 오늘 예수님은 어린이 하나를 꼭 껴안으신다. 이렇게 그분의 품안에 안겨 있는
어린이의 모습을 묵상하다 보면 그 아이가 한없이 부러워보인다. 그래서 가끔 그분의
품안에 안겨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어린이는 철없고 힘없는 존재이다. 어른이
돌보지 않으면 제때 밥을 챙겨 먹지도 못하고, 몸이 더러워도 씻을 줄 모른다. 누군가가
보살펴 주어야만 하는 ‘약자’이다. 예수님이 그런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신 비유에는 물론 해맑고 단순한 어린이의 마음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라는 뜻도 있지만, ‘약자’에 대한 사랑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린이 같은 약자하면 그분이 나를 품어 주시고, 또 어린이 같은 약자를 내가 품으면
하느님 아버지를 품는 것과 같다고 하시니, 약자는 우리를 그분과 이어주는 다리가
아닌가 싶다.
< 48. 경주의 꼴불견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9,38-41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
* 단상의 소재들 : 경주 유명한 절, 대웅전의 부처님, 스님이 던진 빗자루
-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비판한다. 그런데 그 비판은 어떤 종교가 추구하는 절대자에
대한 비판보다는 그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경주에
있는 한 유명한 절에 간 적이 있다. 부처님에게 인사나 올리고자 하고 대웅전의 부처님을
잠시 바라보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웬 스님이 던진 빗자루 하나가 허공을 질러 날아왔다.
그 스님은 불전에 돈을 바치지 않고 대웅전에 들어오는 무례를 범했다고 빗자루를 내던진
것이었다. 그 사건 때문에 유명한 그 절은 나에게 세계적인 보물이 아니라 오히려 경주의
꼴불견으로 기억되고 말았다. 사실 그 스님 때문에 절을 찾은 게 아닌데도 그 스님의
경망스러운 행동이 명사찰의 이미지를 흐려 놓은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
이다. 그런데 성당에 오려던 이들이 나의 행동 때문에 발길을 돌린다면, 우리도 ‘꼴불견’의
오명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 49. 마음의 성형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9,42-48 (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쳐라)
* 단상의 소재들 : 성형미인, 성형수술
- 요즘 성형 미인이 참 많다. 예수님도 오늘 복음에서 ‘성형 수술’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런데 코를 높이고 턱을 깎는 정도가 아니라, 두 손과 두 발을 자르고 두 눈을 뽑아
버리라는 무서운 말씀을 하신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될 우리의 귀한 두 손,
두 발, 두 눈을 그렇게 모질게 대하라고 하시는 것일까? 그렇다. 죄에 대한 해방이다.
죄에 얽매여 자신을 죽음에로 내몰기보다 죄로 물든 자신의 어느 한 부분을 끊어버리
더라도 오직 생명에 열중하라는 말씀이다. 죄는 곧 죽음이다. 그리고 생명은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확고한 결심이며 그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죄나 악습을 끊어 버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겉모습이 예뻐지기 위한 성형보다도 속내가 예뻐지고
생명을 구하는 마음의 성형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할 때이다.
< 50. 소금을 간직하세요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9,49-50 (소금)
* 단상의 소재들 : 소금, 짠맛, 빛과 소금, 평화
-소금은 짠맛을 낸다. 단맛도 신맛도 아닌 꼭 짠맛을 낸다. 그리스도인이라 외치면서도,
또한 그렇게 산다고 자부하면서도 세상 사람들 속에서 짠맛을 잃어버리고 살 때가 많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꼭 붙들고 살아야 하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면 바로 평화
이다. 그리고 평화는 잔잔하기만 한 산 속의 평화가 아니라, 거센 폭풍우도 끝까지
견디어 내는 작은 돛단배에 실려 있는 평화이다. 위태롭기 짝이 없어 보이지만, 자신이
꼭 지켜 내고 말겠다는 의지로 완성되는 평화이다. 고집스러울 만큼 큰 뚝심을 갖고
지켜 가겠다는 평화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희생도 투신도 필요하다. 빛이 빛을
잃지 않고, 소금이 짠맛을 잃지 않기 위해서 세상과 싸울 때는 싸워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평화는 비장한 투신없이는 주어지지 않는다.
< 51. 아름다운 관계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0,1-12 (혼인과 이혼)
* 단상의 소재들 : 새로운 삶, 결혼 생활
- 두 사람이 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결혼이다. 한 몸이 된다는 것은 내가 너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나를 새롭게 만들어 가겠다는 굳은 약속이며 인생을 건
계약이다. 결혼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며, 결혼을 하는 순간부터 완전히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은 한 몸을 이룬 부부 관계를 인간이 갈라놓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하느님이 맺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을 수는 없는 법이다. 결혼 생활이
쉽지는 않다. 결코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부부만큼 아름다운 관계도 없다.
둘이 하나가 되는 엄청난 신비가 그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그 신비가
여러분 안에서 실현되고 있다.
< 52. 마음으로 다가가고 싶습니다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0,13-16 (어린이들을 사랑하심)
* 단상의 소재들 : 어린이들, 어린이의 마음
- 오늘 예수님은 당신에게 찾아온 어린이들을 기쁘게 맞이하신다. 어떤 이들은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오고, 또 어떤 이들은 공연히 트집을 잡거나 명예를 얻기
위해 찾아오지만, 어린이는 다른 이유 없이 그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달려온다.
어린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처음 만난 아이들과도 쉽게 어울려 논다. 그런데 어른들은
이해타산으로 그런 것 같지 않다. 가끔 어린이들처럼 사심 없이 사람들을 만나며 살고
싶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그런 어린이의 마음으로 다가가고 싶다.
< 53. 가져가셔도 괜찮아요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0,17-22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
* 단상의 소재들 : 참다운 나눔, 포기, 재산
- 내가 가진 것 중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을 나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내게도 꼭 필요하지만 그 사람에게 더 필요하다면 내가 갖기를
포기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일이고, 참다운 나눔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얄궂게도 예수님은 언제나 내가 가장 포기하기 힘든 바로 그것을 요구하신다.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부모를 공경하라는 등의 여러 계명은 모두 착실히 지켰던 청년,
그런 그가 포기하기 어려웠던 것은 재산이었는데, 예수님은 그를 유심히 보시고는 바로
그것을 내놓으라고 하신다. 내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한 번 생각해 본다. 내게도 분명히 있다. 그래서 “예수님, 다른 건 다가져가셔도 좋습
니다. 요것만 빼고요.”라고 단서를 달게 된다. 그런데 “네가 포기하지 못하는 바로
그것을 내게 주지 않겠니?”라고 말을 걸어오신다면, “좋아요. 가져가셔도 괜찮아요.”
하고 포기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런 점에서 걸인이 어쩌면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누가 무엇을 던져 주든지, 누가 무엇을 가져가든지 별로
개의치 않을 것 같은 사람, 나는 하느님 앞에 그렇게 빈손, 빈 마음으로 앉아 있는 걸인
이었으면 좋겠다.
< 54. 인생 역전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0,23-27 (부자가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는 어렵다)
* 단상의 소재들 : 로또, 인생역전, 대박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하신다. 돈깨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읽으면 별로 기분
좋은 구절이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돈이 많다는 그 사실 자체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돈이 사람을 점점 더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게 만들기 쉽기에
하신 경고가 아닐까 싶다. 예수님이 경고하신 것은 부자가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면
그만큼 마음이 좁아져서 점점 더 편협한 삶을 살아가게 되기 쉽다는 것이다. “나는
예수님을 믿어서 인생 역전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참된 부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단상 5 ]
- 하느님은 비워낸 만큼 채워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버리려면 우선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버리는 대가로 무엇인가를 다시 받겠다고
기대해서도 안 됩니다. 그저 버리고 싶어서 버리는 것이지 또 다른 무엇을 채우기 위해
버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버림의 자유를 만끽하세요. 버리고 비우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집니다.
< 55. 비우면 가볍습니다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0,28-31 (따름과 보상)
* 단상의 소재들 : 비움, 버림
- 우리들은 곧잘 “저는 죄인입니다. 제 모든 것을 당신께 맡깁니다.”라고 고백한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솔직해져야 한다. 내가 무엇을 그렇게 부둥켜안고 집착하며 살아
가는지 직시해 보아야겠다. 말로 자신을 버리고 비워 낸다고 수없이 되뇌어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나의 고집뿐이다. 하느님은 비워낸 만큼 채워주신다고
하셨다. 버리려면 우선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버리는 대가로 무엇인가를 다시 받겠다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그저 버리고 싶어서
버리는 것이지 또 다른 무엇을 채우기 위해 버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버림의
자유를 만끽하자. 버리고 비우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
< 56. 의로운 죽음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0,32-34 (수난과 부활을 세 번째로 예고하심)
* 단상의 소재들 : 의로운 죽음
- 오늘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터인 예루살렘에 ‘앞장서’ 가신다. 예수님은 당신이 거기서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억지로 끌려가듯 힘없고 두려운 발걸음은 아니었다.
따라가던 이들이 놀라고 겁먹을 정도로 당당하셨다. 예수님의 삶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으셨던’ 삶이었기에 죽음을 예고하시면서도 그리 당당하실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고 당당하게 맞이한 이들은 대부분 이 세상에서도
의롭게 산 사람들이다.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연장이기에 자신의 삶에 성실했던 사람이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고 의연할 수 있었을 것이다.
< 57. 고난을 위하여 건배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0,35-40 (출세와 섬김)
* 단상의 소재들 : 성공 비결 책, 성공 목표의 삶
- 세상 사람들은 성공이라는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성공하고픈 속내를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있다. 어떻게든
예수님 덕으로 자신의 입지를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볼 만한 곳으로 끌어올리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의 축배를 원하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쓰디 쓴 독배를
건네며, ‘세상사에서 죽어야 한다’는 세례의 의미를 들려주신다. 예수님의 온 생애는
고난의 삶이었다. 처음부터 그분은 우리를 위해 죽기 위해 오셨기 때문이다. 성공은
애초부터 그분에게서 너무 멀리 있었던 삶이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눈이 멀어 예수님의
처절한 희생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자 교회의 한 구성원
으로 살아간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소외된 곳에서 함께하며 예수님처럼 살아가는지,
아니면 또 다른 영광을 위하여 몸부림치며 살아가는지 반성하게 된다.
< 58. 섬기는 사람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0,41-45 (섬기는 사람)
* 단상의 소재들 : 힘의 논리, 권력욕과 허영심, ‘빽’이나 ‘줄’
- 힘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한다. 힘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고개 숙여야 하는 세상에는
온갖 권력욕과 허영과 욕심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세상을 좀 더 편하게 살고자 힘 있는
자의 그늘 아래로 들어가려 하고, ‘빽’이나 ‘줄’을 찾는다. 이런 세상에서 섬기고 봉사
하고 급기야 다른 사람의 종이 되려는 생각을 품는 사람이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으로
손가락질당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하느님의 자리에서 보잘 것 없는 우리 인간의
세계로 내려 오셨다. 당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아버지의 원의대로 온전히
인간이 되어 오셨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남이 좋아하고 기뻐하도록 자신을
낮추는 종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기적인 자아를
버리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삶이야말로 바로 진정 남을 섬기는 삶이라고 하신다.
< 59. 힘을 내세요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0,46-52 (예리코에서 눈먼 이를 고치심)
* 단상의 소재들 : 성당에 다니게 된 계기들, 함께하는 삶
- 오늘 복음에서 예리고의 소경은 예수님을 만나면서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던 이들이 소경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넸기 때문이다.
‘힘을 내시오, 일어나시오, 당신을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소경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주었던 것이다. 예수님을 찾던 소경의 간절한
마음은 함께하는 사람들의 격려와 위로를 통해 예수님에게 대한 굳은 믿음으로 새로이
태어난다. 그리고 소경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마침내 구원을 받아 내고야 만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웃의 손길과 타인의 관심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나 혼자
만나는 나만의 예수님이 아니다. 지금 바로 여러분 옆에 이웃이 있다. 그리고 이웃에게
’힘을 내세요. 일어나세요. 그리고 용기를 내서 예수님에게 달려가세요.”라고 독려할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다.
< 60. 인연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1,1-11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다)
* 단상의 소재들 : 사람들과의 인연(因緣), 예수님과의 인연
- 쉽사리 정 주기 힘든 세상에서 어떤 인연으로 만나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고 부둥켜
안고, 때로는 서로의 인연을 원망하며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세월에 따라 끊어질
듯하다가도 아슬아슬하게 다시 이어지는 것이 사람들과의 끈질긴 인연이다. 예수님과의
인연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기쁠 때 보다 절망할 때 더 많이 찾았던 그분과도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듯하다. 세례로 시작한 그분과의 인연은 점점 깊어져 급기야
성소를 키우며 사제품을 받고 그분의 가신 길을 걷고자 이렇게 길을 나서게 되었다.
오늘 예수님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겉옷을 길 위에 깔고 환호하며 소리 지르는
군중들 속으로 볼품없는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예루살렘의 길목에서
그분의 모습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상과
새로운 인연을 시작하신다.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목숨을 내주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 61. 내가 외면한 사람은 ?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1,12-14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
* 단상의 소재들 : 자동차 경적,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보행자와 운전자
- 자동차의 경적에 보행자와 운전자가 다르게 반응하는 일들은 결국 나 중심의 사고
에서 비롯된다. 이웃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잣대로만
모든 일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도 우리가 가진 이런 자기중심적인
사고는 여지없이 드러난다. 예수님이 “배고프다.”라고 하실 때, 우리는 “아직 배고플
때가 아니예요.”라고 판단하고, 예수님이 “목마르다.”라고 하실 때 우리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따먹으면 될 것을”이라고 투덜대며 예수님의 본심을 외면한다.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에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열매를 낼 수 있는 나무인데도 단지 열매를 낼 철이 아니라는 핑계로 허기진
예수님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아가 적당한 구실을 둘러대서 허기진
이웃을 못 본 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 62. 아름다운 화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1,15-19 (성전을 정화하심)
* 단상의 소재들 : ‘화’, 분노
- 구약성서에서는 우상을 섬기고 당신의 뜻을 거스르는 인간들에게 화를 내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종종 드러난다. 그리고 복음서에서도 예수님의 분노가 나타나는 구절들이 있다.
오늘 복음은 그 대표적인 장면이 아닌가 싶다. 얼마나 화가 나셨던지 마치 ‘폭력’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예수님이 왜 이렇게 화를 내시는지 그 이유를 잘 살펴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집’이어야 하는 하느님의 성전이 ‘강도의 소굴’로 더렵
혀진 모습을 보고 화가 나신 것이다. 묵상 중에 화가 나 있는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 얼굴은 화내는 우리들처럼 보기 싫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그분의 화는 욕망의 표출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당신에 대한 열정이 나를 집어 삼킬 것입니다.”라고 요한복음서(2,17)에 표현된 대로
하느님께 대한 끓어오르는 사랑의 또 다른 단면이었다. 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예수님
처럼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니라면,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솔직하게 묻고, 현명하게
화를 처리해야 한다.
< 63. 행복한 고민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1,20-26 (말라버린 무화과 나무의 교훈)
* 단상의 소재들 : 행복한 고민을 하는 수녀님
- 꾸준히 청하지도 않고 한 순간 스쳐 가듯 생각했는데도 금세 들어 주시는 기도가
있는가 하면, 간절하고도 꾸준히 청했는데 쉽게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도 있었다. 이를
나는 바로 오늘 복음에 그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되리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전혀 의심없이 품었던 소망은 마치 산이 들려서 바다로 던져진 것처럼 쉽게
하느님께 당도하지만, 마음속으로 하느님이 내 기도를 과연 들어주실 것인가 아닌가를
따지며 바치는 기도는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다. 어떤 때는 완전히 믿다가도 어떤 때는
모두 불신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나약한 마음이다. 다만 반신반의하는 마음에서 점차
흔들리지 않는 굳은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 64. 무엇을 묻고 싶으세요?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1,27-33 (예수님의 권한을 문제삼다)
* 단상의 소재들 : 죽음, 질문, 권한
- 세상에서 제아무리 떵떵거리고 산다고 한들 결국에는 한 평 남짓 땅 속에 묻힐
우리들이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다 놓고 가야하는 죽음이건만, 우리는 어떻게든 내
목소리, 내 자존심, 그리고 내 이름 하나를 남기고 싶어한다. 실상은 무엇하나 남기고
떠날 수 없는 세상살이인데도 말이다. 예수님에게 무엇을 묻고 싶은가? 영원한 구원을,
천국의 생활을 묻고 싶은가? 아니면 하늘나라에 함께 할 기쁨은 어떤 것인지 묻고
싶은가? 어리석은 우리들이 예수님에게 묻고 싶은 진짜 속내가 내 목소리, 내 자존심,
내 명예 등 그저 내 몫에 대한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본다. 세상에서 막강한 권한을 누린
다고 해도 죽음 앞에서는 허공에 사라져 버리는 연기와 같다. 하늘에서 비롯된 권한이
아니라면 모래성에 불과하다. 죽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참 권한을 가진 분을 섬겨야
하겠다.
< 65. 내 몫은?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2,1-12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 단상의 소재들 : 휴대전화, 갖가지 장식품, ‘내 몫은’
- 보통 휴대 전화를 열면 이름이나 그림이 나타나는데 어느 분의 전화기(휴대폰)에는
‘내 몫은?’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분 말씀의 요지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의 근원은 자기 몫이 아닌 것을 차지하려는 데서 비롯된 것 같다. 내 몫이 아닌 것을
탐내는 마음만 없어진다면 죄를 짓지 않고 살 것 같아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열어보게
되는 전화기에 그 말을 새겨 두었다’고 한다. 정말 내 몫이 아닌 것에 대한 욕심만 버린
다면 훨씬 더 정직하고 깨끗한 삶이 될 것 같았다. 내 몫이 아닌 것을 탐하다 보면
판단력도 잃고 끝내는 죄의 수렁에 빠져들고 만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소작인들도
자기들 것이 아닌 포도원을 차지하고 싶은 욕심에 눈이 멀어 주인의 아들까지 죽인다.
내 몫이 아닌 하느님의 몫을 가로채려고 하느님의 아들을 죽인 우리들 모습과 얼마나
똑같은지 모른다.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어떤 판단을 내리기 전에 한 번만 더
진지하게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겠다. 그게 정말 내 몫인가? 하면서.
< 66. 제자리 찾기?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2,13-17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
* 단상의 소재들 : 눈물, 삶의 십자가, 제자리 찾기
- 누구에게나 받아 안아야 할 힘겨운 몫들은 있다. 그를 우리 신앙인의 말로 표현하자면
삶의 십자가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나고 나서 보면 은총의 십자가이지만, 막상 견디고
있는 그 시간은 거부하고 돌아서고만 싶은 것이 솔직한 심경이다. 우리가 그 십자가를
받아 안을 수 있는 이유는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절망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 진정한 희망을 얻을 수 있음을
알고 있기에 십자가를 져야 하는 인생일지라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고,
또 내가 살아내야 하는 이 삶에서 우리는 아픔과 절망과 기쁨, 모두를 경험한다. 그 속
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까워지는 하느님과의 관계이다.
내 것은 내 것으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의 것으로 제자리를 찾으면서 그 관계를 돈독
하게 가꾸어 나가는 일이 바로 우리네 삶이 되어야 한다.
< 67. 헛똑똑이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2,18-27 (부활 논쟁)
* 단상의 소재들 : 헛똑똑이, 사두가이파 사람, 지식, 진리
-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나는 부활논쟁을 벌이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헛똑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질문은 당시 통용되던 율법인나 관습상으로
볼 때는 아주 논리적인 질문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질문 속에는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져서 상대방의 허점을 찔러 보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읽힌다. 예수님은
자긍심 강한 사두가이파 사람들에게 도리어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일침을 가하신다. 이 말씀은 마치 배웠다는 사람들이 그런 것도 모르니
너희야말로 헛똑똑이 아니냐는 말씀으로 들린다. 모든 진리를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하면 잘 안 될 때가 있다. 하느님 나라의 진리는 지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식을 사용하면 더 잘 알아 들을 수 있는 진리도 있지만, 어떤 때
지식은 진리를 받아들이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지엽적인 지식에만 몰두하다 보면,
큰 줄기와 흐름 속을 관통하고 있는 핵심을 놓칠 수가 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격이다.
[ 단상 6 ]
- 예수님은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는 과감하게 투자할 줄 알아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즉 보물이 묻혀 있는 밭을 발견하면 돌아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든지, 당신을 따르려거든 가진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든지 등의 말씀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도박이나 투기가 아니라 자기가 확고하게 믿는
신념에 대한 과감한 투지이자, 전적인 헌신을 말한다.
< 68. 사랑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2,28-34 (가장 큰 계명)
* 단상의 소재들 : 삶의 의미, 율법, 사랑의 계명
- 오늘 계명에서 예수님은 유다 사회의 수많은 율법과 해석과 판례들을 단 두 계명
으로 압축해 알려 주신다. 그 두 가지는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두 계명은 결국 ‘사랑’ 이라는 하나의 계명으로 다시 통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사랑의 계명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당신
생명을 내놓으셨다. 그분은 단지 사랑만 하다가 돌아가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님을 우리의 그리스도, 즉 구세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란 뜻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그리스도인이다. 따라서 우리는 삶의 의미와 방법에 대한 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 삶의 토대는 바로 예수님이 남겨 주신 ‘사랑의 계명’이다.
< 69. 굽이돌아 오신 길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2,35-37 (다윗의 자손이시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 단상의 소재들 : 정의로우신 하느님, 세상의 불의와 모순, 그리스도인
-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 즉 ‘사람의 아들’로 오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해마다 기념
한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다윗 자신이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부른 시편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아들이 되겠느냐고 하신다. 이는 예수님
스스로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신 부분이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시지만 이 세상
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바로 구유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으로 곧장 이 세상을
통치하실 수도 있지만, 인간이 되시는 길로 굽이돌아 오셨다. 그분이 계신 곳을,
그분이 오신 길을 우리 마음대로 바꿔서는 안 되겠다.
< 70. 다시 첫마음으로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2,38-40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 단상의 소재들 : 율사들, 예수님의 경고
- 율사들을 조심하라는 예수님의 경고를 전하는 오늘의 복음을 읽을 때마다, 나는
그것이 꼭 나를 향한 경고인 것만 같아 부끄러워 온다. 그리고 한숨과 눈물로 가슴을
쥐어뜯으며 나의 위선과 잘못을 그분 앞에 내어 놓게 된다. “하느님, 당신이 또 다른
제 삶의 모습이게 하소서. 하느님, 당신이 제 삶의 거울이게 하소서. 시대의 흐름 위에,
제 삶의 가난 위에 하느님 당신이 제 주인이게 하소서. 제가 서 있는 그 자리에는 당신의
겸손이 채워지고, 그래서 당신이 제 삶의 전부라고 고백하게 하소서. 하느님, 제가
다시 첫마음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 71. 믿음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2,41-44 (가난한 과부의 헌금)
* 단상의 소재들 : 믿음 묵상, 가난한 과부
-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가난한 과부 이야기를 읽으면 내 자신감은 더욱 줄어든다.
가난한 과부가 자신이 가진 전부를 바쳤다는 말씀이 나 자신과 비교하면 너무도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믿는다는 것은 살아있음에 대한 응답이다. 삶과
믿음은 그 자체로 하나이어야 한다. 내 삶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믿음이라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자신의 전부를 걸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믿는다는
것은 참으로 긴장되는 일이다.
< 72. 건망증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3,1-8 (재난의 시작)
* 단상의 소재들 : 건망증
-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님의 참 모습을 잊고 살 때가 많다. 예수님이
나의 벗임을 잊는 것이다. 벗으로 오신 분을 딱딱하고 형식적으로만 대하면 예수님이
몹시 섭섭해 하실지도 모르겠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자신이 그리스도라 외치며
다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그 사람들과 당당히 맞서려면 우리 예수님을 참
하느님, 참 벗으로 만나 뵈어야 한다. 잊어서는 안 될 나의 하느님, 나의 벗 예수
그리스도. 가스 밸브 하나 잠그지 않거나 다리미 전선을 뽑지 않는 것으로도 우리
삶이 위협받게 되는데,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이자 지침인 예수님의 참 모습을 잊는
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큰 위험에 빠지겠는가? 생활 속에서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늘 그분과 함께 기쁜 나날을 이루도록 하자.
< 73. 짜장면과 짬봉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3,9-13 (스스로 조심하여라)
* 단상의 소재들 : ‘짜장면’ 책, 짬뽕
- 사람이 산다는 것은 짜장면(자장면) 배달과 같은 것이다. 배가 고파서든 그 맛을
좋아해서든 간에 사람들은 짜장면을 시킨다. 그리고 짜장면은 인간의 욕구를 담고
이리저리 배달된다. 배달 장소가 너무 멀거나 배달된 짜장면을 제때에 먹지 않으면
면이 금세 퉁퉁 붓는 것처럼, 우리도 자신의 욕망을 자꾸만 더 멀리, 더 높은 곳에만
두다 보면 퉁퉁 불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짜장면을 시킬 때
사람들이 늘 하는 고민이 있다. 짜장면을 시킬까, 짬뽕을 시킬까 하는 갈등이다.
짜장면이든 짬뽕이든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해서 맛있게 먹듯이 자기가 선택한 것에
만족하면서 살아야 한다. 짜장면을 선택했으면 짬뽕을 포기하고, 짬뽕을 선택했으면
짜장면을 포기하자. 욕심을 버리면 갈등의 원인도 사라진다.
< 74. 작은 연못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3,14-23 (가장 큰 재난)
* 단상의 소재들 : ‘작은 연못’ 노랫말, 붕어 두 마리
- ‘작은 연못’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가장 큰 재앙은 어쩌면 우리들 안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의 행복, 조화와 균형, 혹은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기보다는 이기적인 이익 다툼으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가진
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논리에 힘없는 이들이 쓰러져 가니
말이다. 붕어 두 마리 중 물 위에 떠오른 그 붕어 한 마리는 우리 사회가 만든 희생양,
또는 보이지 않는 악의 시초일지 모른다. 우리가 소외시킨 이웃은 결국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에 놓이게 된다. 하느님의 나라와 우리의 양심을 좀먹는 것은 갈등과
소외와 희생양을 만든 우리의 이기적인 욕심이다. 우리는 세상의 갈등과 부패의
원인이 무엇인지 주위를 잘 살펴야 하겠다. 내 삶의 터전이 주검으로 가득 차지
않도록 말이다.
< 75. 별이 빛나는 밤에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3,24-27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 단상의 소재들 : 고즈넉한 시골의 밤 풍경, 별들과 둥근 달
- 시골에서 보내는 밤은 나에게 인위적으로 살아온 지난날과 화해를 하는 성스러운
시간이다. 인간의 기술과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요즘, 시골 밤의 정취가 뭐 그리
대단하고, 더욱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시골 생활이 뭐 그리 그리울 게 있겠냐만은,
그래도 나는 시골 밤을 무던히 좋아한다. 숙연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연 앞에 무릎 꿇은 한 인간의 초라함이 시골 밤의 정취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나는 별이 빛나는 시골 밤을 좋아한다. 그런 시골 밤, 그 속에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침묵과 겸손으로 바라보는 밤하늘 속에서 오늘은
왠지 그분의 모습을 뵐 수 있을 것만 같다.
< 76. 멀고 험한 길에서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3,28-31 (무화과나무의 교훈)
* 단상의 소재들 : 사제의 길
- 세상의 아픔을 껴안고 함께하는 사랑의 도구인 목자가 되고 싶었지만 이상과
현실은
너무 동떨어져 있다.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잘 알아야 하는데, 세상의 흐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헉헉거리는 모습이 나의 현실
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절망과 좌절에 사로잡힐 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 말만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품었던 불안감은
이 말씀 하나에 녹아든다. ‘세상 안에 숨어 있는 그분의 손길은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세상의 겉모습만을 좇으려 하다니.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그분의 이 말씀을 등대 삼아
나는 오늘도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멀고 험한
길에 용기를 갖고 나아가고자 한다.
< 77. 내 삶의 파수꾼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3,32-37 (깨어 있어라)
* 단상의 소재들 : 성서공부, ‘삶의 자리’, 네티즌 사이의 논란(발전노조와 명동성당)
- 성서를 공부하다 보면 자주 만나는 단어가 있는데 ‘삶의 자리’이다. 성서는 하느님을
만난 선조들의 신앙 고백이자 신앙의 역사이므로 성서는 자신의 삶 안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나 자신의 입으로 언제나 새롭게 되풀이되는 신앙고백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요구하신다. 깨어 있다는 것. 이는 사랑하자는 말과
상통한다고 생각한다. 깨어 있으면 자기 삶의 자리를 살필 수 있고,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의 잘잘못을 따지는 감시자가
아니라 자기 삶의 파수꾼이 된다면, 무엇이 옳은지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지 좀 더 밝게
깨달아 알 수 있을 것이다.
< 78. 자신 없는 대답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4,1-2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다)
* 단상의 소재들 : 이웃의 작은 수녀원의 수녀님들, 부활 인사
- 수녀님 한 분이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셨나요?”라고 부활인사를 했다. 나는 머뭇
거리다가 “아직 못했어요.”라는 자신 없는 대답을 했다. 오늘 복음에서 대제관들과
율사들은 예수님을 몰래 잡아들일 궁리를 한다.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그 사람들은 백성들이 반발하지 않도록 치밀한 계략을 세운다. 축제 기간을 피해서
‘공격 개시일’을 잡으려는 그들에게 군중을 이용하려는 교활함이 엿보인다.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뉠 것이다. 예수님을 살리는 편에 선 사람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을
죽이는 편에 선 사람이든지. 나 역시 이제는 죽음의 편에 설 것인가, 생명의 편에 설
것인가 선택을 해야 할 시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내가 생명의 편에
선다면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셨나요?”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 80. 과감한 투자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4,3-9 (어떤 여자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다)
* 단상의 소재들 : 값비싼 향유, ‘낭비한 여자’, 칭찬
- 가끔 ‘아끼는 것이 낭비’라는 말을 한다. 조금 아끼려고 하다가 잃는 것이 더 크다는
뜻이다. 또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도 있는데 작은 것을 탐하면 큰 것을 잃는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는 과감하게 투자할 줄 알아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신다. 즉 보물이 묻혀 있는 밭을 발견하면 돌아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든지, 당신을 따르려는 자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든지 등의 말씀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도박이나 투기가 아니라 자기가 확고하게 믿는 신념에 대한
과감한 투자이며, 전적인 헌신을 말한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값비싼 향유를 바친
여인에게서 이런 ‘과감한 투자’를 느끼신 게 아닐까 한다. 조금 있으면 우리 곁을 떠나
하느님께 돌아가셔야 함을 알고 계셨던 예수님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보고 싶었던
여인의 마음을 읽으셨던 것이다.
< 81. 사랑이 배신을 이긴다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4,10-11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다)
* 단상의 소재들 :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
- 묵상 중에 유다를 비난하는 나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무슨 권리로
유다를 미워하느냐?” 나는 끝내 나에게 유다를 미워할 어떤 권리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 그분이 말씀하신다. “사랑이 배신을 이긴다.”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당하는 것이
‘배신’이다. 믿지 않았으면 배신이랄 것도 없다. 배신을 당해 본 사람이 받은 상처는
그만큼 크고 깊으며, 그것이 치유될 만한 신뢰를 회복하지 않는 한 치유되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배신을 치유할 약은 ‘용서’와 ‘사랑’뿐이다. ‘사랑은 배신을 이긴다’라는
말은 유다의 배신을 묵상할 때마다 내가 함께 붙들고 있어야 할 하나의 화두(話頭)일
것 같다.
< 82. 라면과 최후만찬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4,12-26 (최후만찬, 성찬례 제정)
* 단상의 소재들 : 프랑스 노동절, 종일 라면 식사
- 묵상 주제가 ‘최후 만찬’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이 이루어지는 이층
방을 한참 동안 묵상하였다. 그런데 향긋한 음식 내음이 내 후각을 자극하는 듯하더니
이번에는 한국의 닭찜, 김치찌개 등 닥치는 대로 떠오른 음식들이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만찬상에 올려졌다. 그리고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 ‘너 지금 뭐하니?’. 이상하게도
교회에서 단식을 하라고 하는 날이면 더욱 시장기가 돈다. 단식을 하라는 날도 많지
않은데도 그날이면 꼭 뭔가 먹고 싶어지고, 금육을 해야 하는 날이면 고기 먹을 일이
생긴다. 내가 묵상을 하며 한국의 음식에 정신이 빠져 있는 동안, 예수님은 당신 몸과
피를 우리에게 나눠주고 계셨다. 정신을 차리고 예수님을 바라보니 코끝에 맴돌던
김치찌개, 닭찜 냄새가 참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 단상 7 ]
-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또는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몰라 당황스러울 때
예수님에게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제시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분께 중요한 판단 기준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를 지고 어깻
죽지가 찢어지는 아픔을 겪으면서 그 길을 제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바라
보세요. 그리고 그분에게 길을 물어보세요.
< 83. 치즈가 좋아졌어요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4,27-31 (베드로가 당신을 모른다고 할 것을 예고하심)
* 단상의 소재들 : 유럽의 치즈 냄새, 고약한 냄새
- 유학생활 초기에 가끔씩 냄새가 고약한 유럽 치즈를 먹어야 할 때가 되면 나는
“두 번 다시 이걸 먹는 날엔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이상
하게도 그렇게 싫던 치즈가 조금씩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변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희망적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인간의
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베드로의 배신은 내가 수없이 반복하는
배신과 변덕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할 수 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배신하는 나는
딱 세 번 배신했던 베드로의 배신이 부럽기까지 하다. 나는 언제쯤이면 내 말에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하고 자문해본다.
< 84. 위로가 되기를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4,32-42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시다)
* 단상의 소재들 : 자신만의 십자가, 인생살이, 삶의 고난과 행복
-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십자가가 있다. 어떤 이는 운명으로, 또 어떤 이는 삶의
교훈으로 받아들이며 어떻게든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애쓴다. 그러나 인생살이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게 우리네
삶이다. 삶의 고난과 행복이 교차하는 그 속에서 우리는 원망과 긴 한숨과 깊은 상실감에
빠져 산다.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오시어 당당하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시던 예수님.
그 예수님
역시 지금 우리들과 함께 흔들리고 계신다. 죽음이라는 그 끝에 서서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외로움으로 쓸쓸히 흐느끼고 계신다. 그러나 예수님은 용감하게 말씀하신다.
“아빠 아버지, 당신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가
뜻하는 대로가 아니고 당신이 뜻하시는 대로 하소서.” 우리는 예수님이 인간으로서
십자가를 지고 인간이 겪는 고통을 받으시고 죽으신 데에서 위로를 얻는다. 우리가
겪는 크고 작은 고통에 그분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도 예수님께 위로를
드릴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눠지듯이 이웃의 십자가를 함께 지려 한다면,
예수님은 그 이웃 안에서 위로를 받으실 것이다.
< 85.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4,43-52 (잡히시다)
* 단상의 소재들 : 사제직, 예수의 제자 유다, 앞잡이 노릇, 참된 신부
- 오늘 예수님이 잡혀가셨다. 잡아가야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 주려고 앞잡이 노릇을 한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과
함께 삼년 동안 공생활을 하면서 동고동락을 같이 했던 제자가 예수님을 넘겨주는 사람이
되었음을 볼 때, 지금 그분의 제자라는 사실만으로 그분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행동으로 예수님이 욕을 당하지 않도록 더욱 더 자주 ‘나는 무엇하
는 사람인가?’하고 물어야 겠다.
< 86. 진리가 아니면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4,53-65 (최고 의회에서 신문을 받으시다)
* 단상의 소재들 : 한국 월드컵 경기, 황당무계한 꿈
- 월드컵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월드컵이 끝난 뒤에 남겨진 삶은 황폐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월드컵 경기가 열릴 당시, 본래 축구를 좋아해서 열광했던 사람들보다는,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갑자기 축구광이 되어 버린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오늘 예수님은
심판을 받으신다. 예수님은 자기변호를 하지 않고, 서로 일치하지 않는 군중의 허황된
증언에 침묵으로 일관하신다. ‘절대다수’가 늘 진리는 아니다. 분위기에 따라서 진리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진리’는 ‘침묵’을 지킨다고 해도 진리요, 아무리 사람들이 열광하고
아우성을 친다고 해도 진리가 아니면 진리가 될 수 없다. 간혹 다수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주관을 잃고 흔들리기 쉽지만, 진리 아닌 진리에 속아 넘어가지는 말아야 겠다.
< 87. ‘패거리’에서 ‘우리’로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4,66-72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다)
* 단상의 소재들 : 월드컵, 한국의 응원문화, 한국민의 힘
- ‘우리’라는 말은 공동체성을 드러내는 말이다. 나를 넘어서 남을 향해 열려 있는 삶,
혼자의 이익이 아닌 모두의 유익을 추구하는 삶, 공동선을 지향하는 삶 등 긍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그런데 불행이도 ‘우리’라는 말은 때로는 무서운 말로 둔갑한다.
그럴 때 ‘우리’는 ‘패거리’가 되기 쉽다. 나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했을 때, 이런 ‘우리’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베드로가 예수님과 ‘일대 일’의 관계
였다면 과연 예수님을 배반했을까? ‘패거리’의 덫에 걸려 그분과 맺은 고유한 관계를
잠시 잊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 88. 이유 없는 죽음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5,1-15 (빌라도에게 신문을 받으시고 사형 선고를 받으시다)
* 단상의 소재들 : 예수님의 재판관 빌라도, 군중
- 빌라도는 군중들에게 ‘예수님의 잘못’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런데 군중은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은 채 무조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만 소리친다. 군중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명한 사실이지만, 대답할 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아무 잘못도
없으셨고, 그분은 이유 없이 고발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곳곳에서 ‘이유
없는 죽음’이 일어나고 있다. 전쟁터에서는 아이들이 이유 없이 폭탄을 맞고, 지하철
에서도 갑자기 불이 나서 이유 없는 죽음을 맞는다. 그럴 때 왜 죄 없는 사람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항변하게 된다. “죄 짓지 않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왜 그런
벌을 주셨습니까?”라고 울부짖으며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나는 이유 없는 죽음
에는 반드시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분의 숨은 뜻 없이는 이유 없는
죽음을 허락하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까지도 ‘이유 없는
죽음’을 당하셨고, 그 억울한 죽음을 통해 구원을 이뤄내셨기 때문이다.
< 89. 그분에게 길을 물어 보세요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5,16-20 (군사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다)
* 단상의 소재들 : 거룩한 독서, 인간의 흑백논리, 제삼의 증거자
- 예수님을 향해 유대인의 왕이라 조롱하는 병사들의 마음에 잠시 들어가 본다. ‘과연
이분이 하느님의 아들일까? 아니야, 필시 정신 나간 거짓 예언자일 게야.’라고 생각
하면서 그들은 군중들의 무모한, 그러나 강력한 무게에 짓눌려 마음속 혼란을 애써
감추며 예수를 업신여긴다. 병사들 옆 저만치에 또 다른 모습들이 보인다. ‘저래선
안 되는데. 저건 정말 미친 짓이야! 저분은 진정 하느님의 아들이란 말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들. 이럴 때는 누군가가 나서서 옳고 그름을 증명해 주면 좋았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또는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몰라 당황스러울
때 예수님에게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제시해 주시기를 청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분께 중요한 판단 기준을 받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를 지고 어깻죽지가
찢어지는 아픔을 겪으면서 그 길을 제시해 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리고 그분에게 길을 물어보자.
< 90. 무딘 마음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5,21-41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숨을 거두심)
* 단상의 소재들 : 병원 영안실, 미혼의 딸 사망, 어머니의 애통함, 조문객의 위로
- 예수님이 돌아가셨다. 우리 하느님이 돌아가셨다. 그런데 사실 크게 비통한 느낌은
없다. 모르는 사람이 죽어도 가슴이 아프고, 상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는 게 인지상정
인데, 우리는 왜 사랑하는 예수님이 돌아가셨는데도 이렇게 아무 느낌 없이 데면데면
하기만 할까? 자식 잃은 어머니를 위로하는 말처럼 그분이 이미 좋은 데 계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면, 그분이 곧 부활하실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이 그저 해마다 반복되는 ‘연중행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느낌이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진지하게 반성해 보아야 한다. 지금 이 시간도 예수님은
여전히 피 흘리며 “하느님, 내 아버지, 왜 나를 버리시나요?‘라고 하며 고통스러워하는데
말이다.
< 91. 신앙과 이성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6,1-8 (부활하시다)
* 단상의 소재들 : 신학교, 그리스도론, 갖가지 의문, 갈등
-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빈 무덤 이야기를 읽는다. 이제까지 예수님의 이야기를 할
때면 곧장 우리네 삶 속에서 많은 것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조금 어려워
진다. 순전히 믿는 이들의 이야기이자 신앙 고백이 펼쳐져, 믿음 없이는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성서는 예수님이 ‘어떻게’ 부활하셨는지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무덤이 비워져 있었다는 사실만을 전한다. 빈 무덤을 보고 부활을 믿어야
하는 기막힌 일이 바로 ‘믿는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이라는 것은 현자와 철학자들이
말하는 윤리 규범이나 도덕 생활과 다르다. 그리고 이성으로 얻어지는 논리적 귀결도
아니다. 단순하고 순수하게 나를 투신하고 내맡길 수 있는 것이 신앙이다. 부활의
신비를 믿을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부활의 신비가 한계가 있는
인간의 머릿속에 가둬지고 한정 지워지는 것에 불과하다면, 나는 그런 하느님을 믿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이성을 초월한 분이시다. 그리고 이를 믿고 나를 온전히
맡기는 것이 신앙이다.
< 92. 듣는 행복 >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6,9-18 (부활하여 나타나시다)
* 단상의 소재들 : 루르드 숙박, 친구 신부와의 대화
-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도 들어 왔다. 처음으로 복음을 들었을 때
느꼈던 그 새롭고 신선했던 열정이 식어 버린 이유도 그동안 너무 많이 듣고 익숙해
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너무 많이 들어 귀가 무뎌진 것도 문제이지만, 그 수많은 말
가운데 진리와 복음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이다. 하느님은 언제나
가까이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으라고 재촉도 하신다.
우리도 더는 귀를 막지 말고 하느님께 이렇게 속삭여야 하겠다. “하느님, 당신 말씀을
듣는 것이 행복해요.”라고.
[ 닫는 글 ] - 마지막 이야기
* 인용 성서 구절 : 마르 16,19-20 (승천하시다. 끝맺음)
-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오늘 드디어 마르코 복음 마지막 묵상 글을 쓰게 되었다.
예수님이 모든 말씀을 마치시고 하늘에 올라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셨다는 말씀으로
마르코 복음은 끝을 맺는다. 아담의 죄 이후 하늘과 땅이 또 한 번 갈라지는 순간인 듯,
이 구절을 읽으면 내 마음 가득히 서운함이 깃든다. 우리 인간과 동고동락하시다
인간의 손에 죽은 예수님,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과 한계를 더는 보기 싫어서 하느님께
훌쩍 떠나 버리신 것은 아닌지, 마치 정든 임을 떠나보낸 듯 가슴 한 켠이 저려 온다.
예수님이 저 하늘로 올라가신 이후 정의와 사랑과 평화는 예수님과 함께 사라져, 이
세상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나는 거리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한다. 길거리를 지날 때마다 웃으며 눈인사를 건네는 수많은 사람들, 재잘
거리며 뛰어가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망울, 그 속에서 희망과 기쁨과 행복을 발견한다.
이렇게 살다 보면, 그래서 더 행복해지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인생을 통해 던져지는
하느님의 물음 앞에 큰 소리로 응답할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희망 속에 기쁘게 살아가도록 하자.
# 094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095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3.01.14.
[ 책 이름 : 찬미받으소서 ] -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 지은이 :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
- 펴낸데 : 한국천주교주교회의(CBCK), 출판 : 2015년 9월25일, 180p
- 내용 : 공동의 집(지구)을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 246개 항
[ 표지의 글에서 ]
-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이 아름다운 찬가에서
우리의 공동의 집이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어 주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 차례 ] 장별 바로가기 -> 클릭
‘찬미 받으소서’ 등 서문 : (1-16항)
제1장 :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17-61항)
제2장 : 피조물에 관한 복음(62-100항)
제3장 :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101-136항)
제4장 : 통합 생태론 (137-162항)
제5장 : 접근법과 행동 방식 (163-201항)
제6장 : 생태 교육과 영성 (202-246항)
'두 가지 기도문 '
* 각항의 서두에 있는 (괄호) 내용은 책의 본문에는 없었으나 독서 메모중 검색의 필요성에 따라
나름의 소제목(키워드)을 붙인 것으로, 각항이 담고 있는 내용을 속히 파악하기 위해 부기하였음
* 본문의 내용은 모두 존대어로 기술되어 있으나 독서 메모상 일반어로 수정 메모하였음.
[ 서두(書頭) ]
1항. (프란치스코 성인의 아름다운 찬가) 찬미받으소서.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라고 노래하셨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이 아름다운 찬가에서 우리의 공동의 집이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어 주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신다.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누이이며 어머니인 대지로 찬미받으소서. 저희를 돌보며 지켜 주는 대지는 온갖 과일과 색색의 꽃과 풀들을 자라나게 하나이다.”
2항. (지구의 탄식과 진통) 하느님께서 지구에 선사하신 재화들이 우리의 무책임한 이용과 남용으로 손상을 입었다. 우리는 지구를 마음대로 약탈할 권리가 부여된 주인과 소유주를 자처하게 되었다. 지구는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흙의 먼지라는 사실을 잊었다. 우리의 몸은 지구의 성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는 그 공기를 마시며 지구의 물로 생명과 생기를 얻는다.
<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
3항. (세계적인 환경 악화에 당면) 이제 우리가 세계적인 환경 악화에 당면하였기에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이를 대상으로 말씀드리고 싶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지속적인 선교 쇄신을 촉구하고자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을 썼다. 이제는 특별히 우리의 공동의 집에 관하여 모든 이와 대화를 나누고자 이 회칙을 쓴다.
4항. (인간 행위의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 강조) 복자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환경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시며 인간의 무절제한 행위로 ‘비극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자연을 불법 사용함으로써 자연을 파괴할 위험에 직면하고 인간 스스로가 도리어 이런 타락의 희생물이 될 위험도 없지 않음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산업 문명의 역효과에 따른 생태적 재난”의 가능성에 대하여도 말씀하셨다. 그리고 “인간 행위의 근본적인 변화가 긴급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5항. (세계적인 생태계 회개를 요청) 요한 바오로 2세(교황) 성인께서는 이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당신의 첫 회칙에서 인간이 자주 “자연 환경을 놓고서 즉각적인 이용과 소비에 유익한 것 말고는 다른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듯”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고하셨다. 그리고 세계적인 생태계 회개를 요청하셨으며, “참다운 인간 생태론의 윤리적 환경을 보호하려는”노력이 제대로 이루지지 않았음을 지적하셨다.
6항. (성장모델 수정 제안 및 자연환경 훼손 인정 요청) 전임자이신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도 “세계 경제의 역기능의 구조적 원인을 제거하고, 환경 존중을 보장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난 성장 모델의 수정”을 제안하셨다. 교황께서는 세상을 그 일부 요소들만 따로 떼어 분석할 수 없다고 보셨다. “자연이라는 책은 하나이고 나눌 수 없는 것으로 ” 환경, 생명, 성, 가정, 사회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 훼손은 실제로 인간 공존을 실현하는 문화와 긴밀한 관련”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교황께서는 우리가 무책임한 행동으로 자연환경을 심각하게 훼손시킨 사실을 인정할 것을 요청하셨다. 이로 인해 사회 환경도 해를 입었다. 그리고 피조물이 손상을 입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라고 우리에게 촉구하신다.
< 동일한 관심을 통한 일치 >
7항. (모든 이의 성찰)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이러한 말씀은 많은 과학자들, 철학자들, 신학자들과 시민 단체들, 그리고 이 문제와 관련한 모든 이의 성찰을 반영하고 있다. 가톨릭교회 밖의 다른 교회와 교회 공동체와 다른 종교들도 깊은 우려를 나타내며 우리 모두를 어지럽히는 문제들에 관한 소중한 성찰을 하였다.
8항. (지구의 해침에 대한 회개 언급)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께서는 특히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지구를 해친 것을 회개할 필요를 언급하셨다. 강하고 설득력 있는 어조로 우리가 피조물에게 저지른 죄를 인정할 것을 촉구하셨다. “인간이 하느님 피조물의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고 기후 변화를 일으켜 지구의 본디 모습에 손상을 입히고, 자연 삼림과 습지를 파괴하며, 지구의 물, 흙, 공기, 생명을 오염시키는 것은 모두 죄가 됩니다.” “자연 세계에 저지른 죄는 우리 자신과 하느님을 거슬러 저지른 죄”이기 때문이다.
9항. (금욕주의 실천 요청)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께서는 환경 문제의 윤리적 영적 근원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셨다. 이는 우리가 기술만이 아니라 인간의 변화에서 해결책을 찾도록 요구하신다. 우리가 소비대신 희생을, 탐욕 대신 관용을, 낭비 대신 나눔의 정신을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주는 법을 의미하는’ 금욕주의로 실천할 것을 요청하신다. “이는 사랑의 방법, 점차로 내가 바라는 것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세상에 필요한 것으로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이는 공포와 욕망과 충동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
10항.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적인 삶)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취약한 이들을 돌보고 통합 생태론을 기쁘고 참되게 실천한 가장 훌륭한 모범이셨다. 그분은 생태분야에서 연구하고 활동하는 모든 이의 수호성인으로 비그리스도인들의 사랑도 많이 받는 분이시다. 그분은 하느님의 피조물과 가난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셨다. 그분은 자연보호,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 사회적 헌신, 내적 평화가 어떠한 불가분의 유대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 주신다.
11항. ( 프란치스코 성인의 찬미 노래)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해와 달 또는 가장 작은 동물들을 바라볼 때마다 모든 피조물을 찬미하며 노래를 부르셨다. 성인께서는 모든 피조물과 대화를 나누고 심지어 꽃 앞에서 설교하시며 “꽃이 마치 이성을 지닌 듯 주님을 찬미하도록” 초대하셨다. 그분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돌보아야 한다는 소명을 느끼신 것이다.
12항. (프란치스코 성인의 권유) 성경에 충실한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우리가 자연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고,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당신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선함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는 놀라운 책으로 성경을 받아들이도록 권유하신다.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습니다”(지혜1,20참조). 성인께서는 수도원 정원의 일부를 언제나 손대지 않은 상태로 놓아두어 거기에 들꽃과 목초가 자라게 하셨다. 그래서 그것을 본 사람들이 그러한 아름다움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신 것이다.
< 개인적 권유 >
13항. (공동의 집을 보호하려 노력하는 이들에게 감사) 인류는 여전히 우리의 공동의 집을 건설하는 데에 협력할 능력이 있다. 우리 공동의 집의 보호를 보장하려는 수많은 방법으로 노력하는 이들을 격려하며 감사드린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의 삶에 끼치는 환경 파괴의 비극적 영향을 해결하고자 쉼 없이 노력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감사를 드린다. 젊은이들은 변화를 요구한다. 그들은 누구라도 환경 위기와 배척당한 이들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고서 어떻게 더 나은 미래의 건설을 내세울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14항. (지구의 미래에 대한 긴급한 대화 호소) 우리 지구의 미래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지에 관하여 새롭게 대화를 나눌 것을 긴급하게 호소한다. 모든 이가 참여하는 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새로운 보편적 연대가 필요하다. 이는 남아프리카 주교님들이 말씀하시는 대로이다.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인간이 저지른 피해를 복구하려면 모든 이의 재능과 참여가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 자신의 문화, 경험, 계획, 재능으로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 피조물 보호에 협력할 수 있다.
15항. (회칙은 인간 발전을 위한 지침을 제시) 이제 교회의 사회 교리에 새로 추가되는 이 회칙이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규모와 긴급성을 인식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현재 생태 위기의 여러 측면을 간략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시작하겠다. 이는 오늘날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과학적 연구 결과를 활용하여 그러한 결과가 우리 마음 깊이 다가오게 하고, 이에 따른 윤리적 영적 여정을 위한 구체적 기초를 마련해 주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 상황의 뿌리를 찾아 그 증상만이 아니라 그 가장 깊은 원인도 성찰해 볼 것이다. 변화가 동기부여와 교육 과정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확신으로 그리스도교 영성 체험의 보화에서 영감을 얻은 인간 발전을 위한 지침을 제시할 것이다.
16항. (회칙 전개 내용들) 모든 장(章)이 고유한 주제가 있고 구체적인 접근법을 제시하지만 중요한 문제들은 다시 살펴보기도 할 것이다. 이 회칙을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 되풀이하여 나타나는 몇 가지 핵심 주제가 여기에 해당된다. 가난한 이들과 지구의 취약함의 긴밀한 관계,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기술에서 나오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힘에 대한 비판, 경제와 발전에 대한 다른 이해 방식을 찾으라는 요청, 모든 피조물의 고유한 가치, 생태계의 인간적 의미, 숨김없는 솔직한 토론의 필요성, 국제 정치와 국내 정치의 중대한 책임, 버리는 문화와 새로운 생활양식의 제안과 같은 것이 있다.
[ 제1장.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17항. (우리 공동의 집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 우리의 공동의 집(지구)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18항. (인류와 지구 변화의 가속화) 인류와 지구의 변화가 지속적으로 가속화되면서 오늘날 삶과 노동의 속도도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빠르고 지속적인 변화가 반드시 공동선이나 온전하고 지속 가능한 인간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변화가 바람직한 것이지만 세상과 많은 인간들의 삶의 질을 악화시킨다면 근심거리가 된다.
19항. (환경과 자연보호 문제 살펴보기) 우리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진심 어리고 애틋한 관심과 더불어 환경과 자연보호에 대하여 사람들이 더 민감해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더 이상 감추어 둘 수 없는 이러한 문제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이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통렬하게 자각하고 그것을 기꺼이 우리 자신의 고통으로 삼아 우리가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다.
Ⅰ. 오염과 기후 변화
< 오염, 쓰레기, 버리는 문화 >
20항. (대기 오염 물질의 노출로 인한 영향)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오염들이 있다. 대기 오염 물질에 대한 노출은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의 건강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찍 사망하게 된다. 요리와 난방에 사용하는 연료에서 배출되는 다량의 연기를 흡입하면 병에 걸리게 된다.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오염도 있다. 이는 교통, 공장 매연, 토양과 물의 산성화 물질, 비료, 살충제, 살균제, 제초제, 일반적인 농업용 독극물 등을 통하여 발생한다. 상업적 이익과 관련된 기술이 이러한 문제들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되나 사실 그러한 기술은 문제가 얽히고설킨 관계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때로는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지만 다시 새로운 문제를 일으킨다.
21항. (폐기물과 쓰레기의 오염물질) 여러 지역에서 나오는 폐기물과 더불어 쓰레기에서 나오는 오염 물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해마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대부분 생물학적으로 분해가 되지 않고 맹독성이며 방사능이 있다. 여기에는 가정과 기업, 건설과 철거 현장에서 나오는 쓰레기와 더불어 의료 폐기물, 전자 폐기물, 산업 폐기물이 있다. 우리의 집인 지구가 점점 더 엄청난 쓰레기 더미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흔히 사람들의 건강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기 전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는다.
22항. (‘버리는 문화’의 문제와 대처) 이러한 문제들은 버리는 문화와 밀접하게 관계된다. 버리는 문화는 물건을 쉽게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소외된 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우리 산업 체계는 생산과 소비의 과정 끝에 나오는 쓰레기와 부산물의 처리나 재사용 능력을 개발하지 않는다. 현재와 미래 세대들을 위하여 자원을 보존할 수 있는 순환방식을 여전히 채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재생 불가능한 자원 사용의 최소화, 소비 절제, 효율 극대화, 재사용, 재활용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지구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버리는 문화’에 맞서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 공공재인 기후 >
23항. (기후는 모든 이의 공공재) 기후는 모든 이의, 모든 이를 위한 공공재이다. 세계적 차원에서 기후는 인간 삶의 많은 필수 조건들과 관련되어 있는 복잡계이다. 매우 확실한 과학적 견해들은 우리가 현재 기후 체계의 심상치 않은 온난화를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인류는 이러한 온난화에 맞서 싸우거나, 최소한 인간이 이러한 온난화를 일으키거나 악화시키는 근원들에 맞서 싸우려는 생활양식과 생산과 소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화산 활동, 지구 궤도와 축의 변화, 태양의 활동 주기와 같은 다른 요소들도 온난화에 영향을 미치지만, 최근 수십 년간의 지구 온난화가, 대부분 인간 활동의 결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 곧 이산화탄소, 메탄, 산화질소와 같은 화학물질들의 농도가 매우 짙어졌기 때문에 주로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특히 세계 에너지 체계의 중심인 화석 연료의 엄청난 사용을 기반으로 하는 개발 방식 때문에 문제가 더욱 악화된다. 토지 사용 변화, 특히 농사를 목적으로 한 삼림 파괴의 증가 또한 이에 영향을 주고 있다.
24항. (기후 온난화의 영향) 온난화는 탄소의 순환에 영향을 미친다. 온난화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조장하여 지역의 물과 에너지와 농산물과 같은 필수적인 자연의 이용에 영향을 미치고 지구의 생명 다양성에 손실을 가져온다. 극지방과 고지대의 빙하가 녹아내려 매우 위험한 메탄가스가 배출되고 냉동되었던 유기물이 분해되면 이산화탄소 배출이 더욱 증가하게 될 수 있다. 기후 변화의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열대림의 감소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이산화탄소 때문에 생기는 오염으로 해양이 빠르게 산성화되어서 해양 생태계의 먹이 사슬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21세기는 예사롭지 않은 기후 변화와 전례 없는 생태계 파괴로 우리 모두에게 심각한 결과가 초래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대부분의 거대 도시가 해안 지역에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해수면의 상승은 매우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25항.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중요한 도전 과제) 기후 변화는 세계적 차원의 문제로 환경, 사회, 경제, 정치, 재화 분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중요한 도전 과제이다. 수십 년 안에 아마도 개발도상국들이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자연 훼손으로 악화된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이주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국제 협약에 따른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어떠한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이 포기한 삶에 따른 손실을 고스란히 부담하고 있다. 온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비극에 대한 무관심이 만연하고 있다. 우리 형제자매가 관련된 이 비극에 대한 우리의 부실한 대응은 모든 시민 사회의 기초인, 우리 이웃에 대한 책임감의 상실을 가리키고 있다.
26항. (이산화탄소와 심각한 오염 유발 물질 배출 감소 등 정책 개발) 더 많은 자원과 경제적 정치적 힘을 지닌 이들은 대부분 문제를 호도하거나 그 증상들을 감추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기후 변화의 일부 부정적인 영향만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현재의 생산방식과 소비 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에 부정적인 영향들이 더욱 강화될 것임을 보여 준다. 서둘러 정책을 개발하여 앞으로 몇 년 안에, 예를 들어, 화석 연료를 대체하여 재생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고, 이산화탄소와 심각한 오염을 유발하는 여러 기체들의 배출을 과감하게 감소시켜야 한다. 효율적인 에너지 저장기술 개발이 아직 필요하다. 에너지와 원료를 적게 사용하는 생산 수단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에너지 효율을 개선한 건물의 건축과 개조에도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바람직한 실천들이 보편화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Ⅱ. 물의 문제
27항. (지구 천연자원의 고갈) 현재 상황에 대한 또 다른 지표들은 천연자원의 고갈과 관련되어 있다. 낭비와 버리는 습관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차원에 이른 선진국들과 사회의 부유 계층의 현재 소비 수준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구 착취는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섰지만, 우리는 아직 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28항. (깨끗한 물의 필요성) 깨끗한 식수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이는 인간의 삶 그리고 육상과 수생 생태계를 보존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깨끗한 물의 원천은 보건과 농업과 산업 부문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엄청난 양의 물 공급에 의존하고 있는 대도시들은 물 부족 시기를 경험하였고 매우 심각한 때에는 공정하고 올바른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많은 아프리카인들은 안전한 식수를 확보하지 못하거나 농산물 생산을 저해하는 가뭄을 겪고 있다. 일부 나라들에서는 물이 넉넉한 지역이 있는 반면에, 극심한 부족 현상을 겪는 지역도 있다.
29항. (물의 질은 가장 심각한 문제) 특별히 심각한 문제는 가난한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물의 질이다. 수인성 질병과 더불어 미생물과 화학물질이 일으키는 질병에 시달리는 가난한 이들이 많이 있다. 위생 불량과 물 부족으로 생기는 이질과 콜레라가 어린이의 고통과 사망의 주요 원인이다. 특히 적절한 규제나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나라의 여러 지역에서는 특정한 광업, 농업, 산업 활동으로 배출되는 오염 물질들로 지하수가 위협을 받고 있다. 세계 많은 곳에서 사용하고 있는 세제와 화학제품들이 계속해서 강, 호수,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30항. (물에 대한 접근권은 기본적이며 보편적인 인권)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물의 질은 계속해서 악화되어 가고 있음에도, 물이 시장 논리에 지배되는 상품으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물에 대한 접근권은 기본적이며 보편적인 인권이다. 물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며, 바로 그래서 다른 인권들을 행사하는 데에 전제 조건이 된다. 물을 마실 수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이 세상은 커다란 사회적 부채를 지고 있다. 그들의 침해할 수 없는 존엄에 맞갖은 생명권이 부인되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깨끗한 물과 위생 시설을 마련해 주려고 재정지원을 확대하면 그 부채가 어느 정도 경감된다. 그렇지만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 안에서도 물의 낭비가 지속되고 있다. 이는 물 문제가 어느 정도 교육과 문화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 준다.
31항. (심각한 물 부족 현상의 영향) 심각한 물 부족은 여러 상품들의 가격 상승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서둘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몇 년 안에 극심한 물 부족 현상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환경의 충격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다국적 대기업들이 물을 통제하면 21세기의 커다란 분쟁 요소가 될 것이다.
Ⅲ. 생물 다양성의 감소
32항. (다양한 생물종들은 매우 중요한 미래 자원) 경제, 상업, 생산 활동에 대한 근시안적 접근으로 지구의 자원이 착취되고 있다. 숲과 삼림 지대의 손실은 생물종들의 감소로 이어진다. 생물종들은 식량만이 아니라 질병 치료와 여러 용도로 이용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미래 자원이 될 수 있다. 다양한 생물종들은 앞으로 인간의 필요에 도움이 되고 환경 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자원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33항. (다양한 생물종의 고유한 가치) 다양한 생물종들을 그저 활용할 수 있는 잠재적 ‘자원’으로만 여겨 그 고유한 가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마다 수천 종의 동물과 식물이 사라지고 있다. 인간 활동과 관련된 이유로 매우 많은 생물종들이 사라졌다. 우리 때문에 수많은 생물종들이 더 이상 그들의 존재 자체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지 못하고 그들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할 권리는 없다.
34항. (위기 상태의 지구계에 인간의 개입) 생태계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균류, 해조류, 벌레 무리, 파충류, 그리고 셀 수 없이 다양한 미생물들이 필요하다. 개체수가 많지 않은 종들은 눈에 잘 뜨이지는 않지만 특정 지역의 생태 균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구계가 위기 상태에 놓이면 인간이 개입해야 하는 것이 맞다. 인간이 초래한 문제들의 해결책(소멸된 새와 곤충의 역할을 또 다른 기술로 대신하는 등)을 찾으려고 값진 노력을 기울이는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개입 정도가 종종 기업의 이익과 소비주의를 위한 것이어서 우리가 살고 있고 있는 지구를 빈곤하고 추하게 만들고 소비재들이 넘쳐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대체할 수 없고 회복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 같다.
35항. (생물 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미흡) 모든 계획의 환경 평가에서, 일반적으로 토양, 물, 대기에 미치는 영향에는 관심을 두면서도, 마치 동식물종의 소멸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생물 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신중한 연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고속도로, 새 플랜테이션(plantation), 특정 지역에 울타리 치기, 수자원 저장 둑 건설, 이와 유사한 개발과 같은 것은 자연 서식지를 차지하고 때로는 파괴하여 동물 개체군들이 더 이상 이동하거나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게 된다. 그 결과로 일부 종들은 멸종 위기에 놓이게 된다. 최소한 이러한 계획들의 영향을 완화시키고자 생물학적 회랑지대 조성과 같은 대안들이 있지만, 극히 일부 국가들만 그러한 배려와 신중함을 보여 주고 있다.
36항. (생물종의 소멸에 따른 막대한 손실) 생태계 보호를 위하여 앞을 멀리 내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생물종이 소멸되거나 심각한 해를 입게 되면 그에 따른 손실은 막대하다. 그래서 환경 훼손에 따른 엄청난 비용을 현재와 미래의 인류에게 떠넘긴 채로 개인적 이익만 얻으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가장 심각한 불행 앞에 침묵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37항.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지역) 일부 국가들은 육지와 해양에서 특정 지역과 장소의 효과적인 보호 조치를 시행하여 그 모습을 변형시키거나 원상태를 훼손시키는 모든 인위적 개입을 금지하고, 세계적 생태계에 매우 중요하기에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지역이 있다. 또한 중요한 저수지라서 다른 생명체들의 안식처가 되기에 그러한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지역도 있다.
38항. (열대림 보호) 다양한 생물들로 가득 차 있는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과 콩고 분지나 대수층(帶水層)과 빙하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지구 전체와 미래 인류를 위하여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열대림의 생태계는 매우 복잡한 관계를 맺는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 경작을 위하여 열대림을 불태워 버리거나 갈아엎으면, 몇 년 안에 수많은 생물종들이 사라지고 그 지역은 황무지가 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가 열대림에 관하여 이야기 할 때는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커다란 세계적 경제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들이 열대림 보호를 구실로 개별 국가의 통치권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다국적 기업들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하여 아마존을 국제화하자는 제안’이 있다. 우리는 합법적 압력 수단을 동원하여 이 문제에 대한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비판적 협력을 해 준 국제단체와 시민 단체의 노력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39항. (습지대가 경작지로 바뀜에 따른 우려) 습지대가 경작지로 바뀌면서 이전의 엄청난 생물 다양성이 상실된다. 일부 해안 지역에서 맹그로브 습지대로 유지되던 생태계가 사라져 커다란 우려를 낳고 있다.
40항. (특정 어류의 무절제한 포획 등) 대양은 우리 지구의 대부분의 물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엄청난 수의 다양한 생명체도 품고 있다. 해양 생물은 세계의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고 있으나, 특정 어류의 급격한 감소를 가져오는 무절제한 포획으로 위협받고 있다. 일부 플랑크톤과 같이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해양 생명체가 특히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한 생명체는 바다 먹이 사슬의 중요한 요소이며, 우리가 먹는 어류는 궁극적으로 그것에 의존한다.
41항. (바다 오염의 영향) 열대와 아열대 바다에서 우리는 육지의 거대 삼림에 비교되는 산호초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산호초는 물고기, 갑각류, 연체동물, 해면동물, 조류와 같이 거의 백만 종에 달하는 생명체를 보호한다. 오늘날 세계 산호초의 대부분은 이미 황폐되거나 지속적인 감소 상태에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 삼림 파괴, 단일 작물 재배, 산업 폐기물, 특히 청산염과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는 파괴적인 어업방식에 따른 오염이 바다에 이르러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해수 온도 상승으로 악화된다. 어떤 자원 채취는 궁극적으로 해저에 영향을 미치는 파괴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
42항. (환경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에 대한 연구) 생태계의 기능을 더 잘 이해하고, 환경의 중요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들의 적절한 분석을 목표로 하는 연구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모든 피조물은 서로 관련되어 있기에 사랑과 존경으로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살아 있는 피조물인 우리는 모두 서로 의존하고 있다. 모든 지역은 이 가족을 돌보아야 할 의무가 있다. 멸종 위기에 있는 생물종들을 특별히 보살피면서 보호계획과 전략을 개발하여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생물종들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Ⅳ. 인간 삶의 질의 저하와 사회 붕괴
43항. (개발 방식, 버리는 문화에 대한 영향 고려) 인간은 생명권과 행복권을 누리는 피조물이며, 고유한 존엄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존의 개발 방식, 버리는 문화가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44항. (도시들의 불균형적이고 무분별한 확대) 오늘날 우리는 많은 도시들이 불균형적이고 무분별하게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도시들은 유독 가스 배출에 따른 오염뿐 아니라 도시의 혼잡, 열악한 교통, 시각 공해, 소음으로 건강하게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있다. 많은 도시들은 거대하고 비효율적인 체계를 갖고 있으며 에너지와 물을 지나치게 낭비하고 있다. 우리는 시멘트, 아스팔트, 유리, 금속으로 넘쳐 나는 세상에 살면서 자연과 물리적 접촉이 차단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45항. (특정 공간의 사유화, 생태 주거지로 접근 차단) 일부 도시와 농촌 지역에서는 특정 공간을 사유화하여 사람들이 매우 아름다운 장소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인위적 평안을 누리고자 외부를 차단한 이른바 ‘생태 주거지’를 만들기도 한다. 종종 우리는 도시의 이른바 ‘안전 지역’에 아름답게 잘 가꾸어진 녹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사회생활에서 소외된 이들이 살고 있는, 제대로 눈에 뜨이지 않는 지역에는 그런 곳이 없다.
46항. (삶의 질을 개선하지 못한 징표와 증상들) 세계적 변화의 사회적 요인들 가운데에는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 혁신, 사회적 소외, 에너지와 그 밖의 공공 서비스의 불평등한 분배와 소비, 사회적 붕괴, 폭력 증가, 새로운 형태의 사회 폭력의 증가, 마약 매매, 젊은이들의 마약 사용 증가, 정체성 상실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지난 두 세기의 성장이 언제나 온전한 발전을 이끌지 못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보여 주는 징표이다. 이러한 징표 가운데 일부는 현실적인 사회적 쇠퇴, 사회적 통합과 화합의 유대가 소리 없이 와해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증상이다.
47항. (인터넷과 매체를 통한 의사소통의 문제점) 현실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동반하는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가 이제는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으로 대체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러한 의사소통은 관계를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거나 끊어 버릴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사람과 자연이 맺는 관계보다는 컴퓨터와 그 화면을 통해서 맺는 관계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형태의 꾸며 낸 감정들이 종종 생겨난다. 오늘날 매체는 우리 서로가 의사소통을 하며 지식과 감정을 서로 나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 매체가 다른 사람들의 고통, 두려움, 기쁨, 복잡한 개인적 체험을 직접 체험하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매체가 흥미로운 기회를 마련해 주는 반면에, 인간관계에 매우 우울한 불만을 야기하거나 외로움이라는 해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Ⅴ. 세계적 불평등
48항. (환경과 사회의 훼손으로 인한 영향) 환경과 사회의 훼손은 특히 이 세상의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물고기 개체수의 감소는 다른 생계 수단이 마땅치 않은 영세 어민들에게 어려움을 주게 된다. 수질 오염은 특히 생수를 사 먹을 수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해수면 상승은 주로 해안 주변에 사는 달리 갈 곳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현재 이러한 불균형의 영향은 많은 가난한 이들의 이른 사망, 자원의 결핍으로 일어나는 분쟁, 국제적 논의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 많은 다른 문제에서 나타난다.
49항. (참된 생태론적 접근) 특히 소외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소외된 이들은 수억 명에 이르러 인류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국제적 논의에서 이들이 언급되며 부수적 피해자로 여겨지지는 않지만 그들의 문제는 부가적으로, 피상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종종 받게 된다. 부분적으로 그 이유는 많은 전문가, 여론 선도자, 통신 매체, 권력의 핵심들이 부유한 도시 지역에 거주하여 가난한 이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가난한 이들의 문제에 거의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높은 수준의 발전에 따른 편안한 위치에서 세상의 대부분 사람들이 범접하지 못하는 삶의 질을 누리며 생활하고 생각한다. 이렇게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접촉과 만남의 결여는 종종 도시의 해체로 촉발되며 양심을 무디게 하고 현실에 있는 것을 무시하는 편향된 분석을 낳는다. 때로 사람들은 말로는 ‘환경’을 옹호하면서도 이러한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참된 생태론적 접근은 언제나 사회적 접근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한 접근은 정의의 문제를 환경에 관한 논의에 결부시켜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모두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한다.
50항. (인구 밀도의 불균형 문제) 가난한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생각하기보다 출생률 감소만을 제안하는 사람도 있다. 인구 성장과 통합적이고 공평한 개발은 전혀 모순이 되지 않는다. 인가 증가를 비난하는 것은 문제를 회피하려는 술책일 뿐이다. 이는 현재의 분배 방식을 소수의 사람들이, 보편화될 수 없는 방식으로 소비할 권리가 자신에게만 있다고 믿는다. 지구가 그러한 소비로 발생하는 쓰레기조차 감당할 수 없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생산된 식량 전체의 3분의 1이 버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음식을 버릴 때 마다, 그 음식은 마치 가나한 이들의 식탁에서 훔쳐 온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국가와 세계 차원에서 인구 밀도의 불균형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소비증가는 환경오염과 교통, 쓰레기 처리, 자연 손실, 삶의 질과 관련된 문제들이 서로 얽힌 문제로 복잡한 지역 사정을 일으킨다.
51항. (다국적 기업이 저개발국에서의 운용에 따른 오염과 피해) 일부 부유한 국가들의 엄청난 소비로 야기된 온난화는 세계의 가장 가난한 지역, 특히 아프리카에 영향을 미친다. 아프리카에서는 기온 상승이 가뭄과 맞물려 농업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고체와 액체 상태의 독성 물질을 개발도상국에 수출하고, 자본을 대는 나라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저개발국에서 기업을 운영한 데 따른 오염으로 발생되는 피해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기업들이 흔히 다국적이라는 것에 주목한다. 그들은 선진국, 이른바 ‘제일 세계’라고 불리는 국가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을 이곳에서 저지른다. 일반적으로 그들이 기업 활동을 중단하고 철수하고 나면 실업, 활기 없는 마을, 천연자원의 고갈, 삼림 파괴, 지역농업과 축산업의 몰락, 노천광의 웅덩이, 훼손된 언덕, 오염된 강, 유지가 불가능한 사회 시설과 같은 인간과 환경에 부담이 되는 짐만 남게 된다.”
52항. (기후 변화에 대한 차등적 책임) 가장 중요한 생물권 보존 지역이 있는 개발도상국들은 자기의 현재와 미래를 희생해 가면서 부유한 국가들의 발전에 계속 이바지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의 소비를 크게 줄이고 가난한 나라들의 지속 가능한 발전 정책과 계획을 지원하여 이러한 부채를 갚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가장 가난한 지역과 나라들은 환경 영향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채택하기가 어렵다. 그에 필요한 과정을 개발하고 그 비용을 충당할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후 변화에 관하여 차등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의 인류 가족이라는 인식을 더욱 확고히 해야 한다.
Ⅵ. 미약한 반응
53항.
(생태계 보전을 위한 법적 틀의 수립) 우리 공동의 집을 지난 200년 동안 아프게 하고 잘못 다룬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하느님 아버지의 도구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래서 지구가 하느님이 창조하실 때 바라신 그대로 존재하고 평화와 아름다움과 충만함을 위한 당신의 계획에 맞갖은 것이 되게 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에게 이러한 위기에 맞서는 문화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후손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모든 이를 고려하여 현재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지도력이 부족하다. 한계를 분명히 정하고 생태계를 보존할 수 있는 법적 틀을 반드시 수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술. 경제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힘의 구조가 우리의 정치는 물론 자유와 정의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54항. (미약한 국제 정치의 반응) 환경에 대한 국제 정치의 반응이 얼마나 미약한지 놀라울 정도이다. 세계 정상 회담의 실패는 우리의 정치가 기술과 금융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김없이 보여 준다. 이익 집단 세력이 너무 크고, 경제적 이익 집단들이 손쉽게 공동선을 내쳐 버리고 정보를 조작하여 그들이 세운 계획이 아무런 영향도 받지 못하게 한다. ‘아파레시다 문헌’은 “생명의 원천을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경제 집단들의 이익이 천연자원을 다루는 일보다 우선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경제와 기술의 동맹은 그 즉각적 이익과 무관한 모든 것을 배제시켜 버린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피상적인, 어쩌다 하는 자선 행위, 마지못해 보이는 환경에 대한 관심만을 기대할 뿐이다. 반면에, 사회 안에서 변화를 불러일으키려고 단체들이 기울이는 참다운 노력은 낭만적인 환상에 근거한 골칫거리나 회피해야 할 걸림돌로 여겨지게 된다.
55항. (나쁜 소비 습관의 증가) 일부 국가들은 점진적으로 중요한 진전을 이루어 더욱 효과적인 관리를 개발하여 부패와 맞서 싸우고 있다. 사람들이 생태계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는 있지만 나쁜 소비 습관은 바꾸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습관은 사라지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지구 밖에서 이 세상을 관찰하는 이가 있다면 때로는 자기 파괴적으로 보이는 그러한 행동에 놀라게 될 것이다.
56항. (환경 파괴에 대한 무방비 상태) 경제 세력들은 투기와 경제적 수익 추구를 앞세우는 현재의 세계 체제를 계속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체제는 인간 존엄과 자연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은 말할 것도 없고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환경 파괴와 인간적 윤리적 타락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절대 규칙이 되어 버린, 신격화된 시장의 이익 앞에서 자연환경처럼 취약한 모든 것은 무방비 상태에 있다.
57항. (새로운 갈등을 해소해야 하는 정치의 역할 미비) 어떤 자원이 고갈된다면, 고귀한 명분을 내세운다 해도 결국 새로운 전쟁의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 전쟁은 언제나 환경과 풍부한 민족 문화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며, 누군가 핵무기와 생물학적 무기 사용을 고려한다면 그 위험은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정치는 새로운 갈등을 예견하고 그러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들을 제거하는 데에 커다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강력한 경제 세력들은 이러한 노력에 가장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고, 정치적인 개혁에는 넓은 시각이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시급하고 반드시 실행할 필요가 있는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못하게 된다.
58항. (환경 개선에 대한 긍정적인 모범들) 일부 국가들에게서는 환경 개선에 대한 긍정적 모범들을 찾아볼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오염되었던 강을 정화하고 원시림을 복구하였다. 환경 개선 계획으로 자연 경관이 아름다워졌다. 아름다운 건물들을 세우고 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 생산과 대중교통 개선에 진전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조치들로 세계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이가 여전히 긍정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59항. (거짓되거나 피상적인 생태론의 증가) 자기만족과 경박한 무책임을 부추기는 거짓되거나 피상적인 생태론이 증가하고 있다. 담대한 결단이 요구되는 심각한 위기의 시기에, 우리는 현재 무슨 일이리 벌어지고 있는지 확실히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는 유혹에 빠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염과 훼손에 관한 몇 가지 피상적 표징을 제외하고는 상황이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고 지구도 한동안 현재 상태를 유지할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회피적 태도는 우리가 현재의 생활양식과 소비의 방식을 유지하게 해주고 있다. 이는 악행들을 알아채고 인식하지 않으려 하고, 중요한 결정을 뒤로 미루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는 것과 같은 인간이 자기 파괴적인 악행들을 조장하는 길이다. Ⅶ. 다양한 의견
60항. (포괄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대화 제안들) 우리는 이러한 상황과 가능한 해결책과 관련하여 다양한 시각과 사조가 전개되었음을 인정한다. 한 극단에서는 발전이라는 신화를 맹목적으로 믿으며, 환경 문제는 윤리적 성찰이아 커다란 변화 없이도 단순히 새로운 기술의 적용으로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또 다른 극단에서는 인간과 그 개입이 위협이 될 뿐이라서 세계적으로 생태계를 위협하므로 지구에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줄이고 모든 개입이 중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현실성 있는 미래 계획은 이 두 가지 극단적인 관점에서 중용을 취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이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모두 포괄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여러 가지 제안이 있다.
61항. (우리 공동의 집의 훼손에 대한 표징들) 교회는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이견들을 존중하면서 솔직한 토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공동의 집이 심하게 손상되었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희망은 우리에게 언제나 헤쳐 나갈 수 있고, 길을 바꿀 수 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 준다. 그렇지만 우리는 급속한 변화와 훼손으로 상황이 한계점에 이르렀음을 나타내는 표징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증상들은 대규모의 자연 재해와 사회적 위기, 심지어 경제 위기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세계의 문제는 개별적으로 분석되거나 설명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체제는 여러 관점에서 봤을 때 지속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인간 활동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 지구의 여러 지역들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바로 인류가 하느님의 기대에 어긋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 제2장. 피조물에 관한 복음 ]
62항. (과학과 종교의 생산적인 진지한 대화 나누기) 정치와 철학 분야에서, 창조주의 개념을 단호히 부정하거나 타당하지 않다고 여기어 종교가 온전한 생태계와 인류 발전을 위하여 커다란 이바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과학과 종교는 각자의 고유한 현실 접근 방식으로, 서로에게 생산적인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Ⅰ. 신앙이 주는 빛
63항. (교회의 사회교리의 발전) 생태 위기가 복합적이고 그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해결책이 현실을 해석하고 변화시키는 한 가지 방법에서만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여러 민족들이 다양한 문화적 풍요, 곧 그들의 예술과 시, 그들의 내적 삶과 영성에 의지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파괴한 모든 것을 바로잡게 하는 생태론을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어떤 학문 분야나 지혜를 배제할 수 없다. 가톨릭교회는 철학적 사상과 나누는 대화에 열려 있다. 그래서 교회가 신앙과 이성의 다양한 종합을 이룰 수 있었다. 교회의 사회 교리의 발전은 사회 문제와 관련하여 그러한 종합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사회 교리는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더욱 풍요로워질 필요가 있다.
64항. (믿는 이들의 생태론적 의무 인식)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들을 자신들이 살고 있는 환경을 돌보도록 촉구한다고 볼 때, 그리스도인들도 “특히 피조물 안에서의 자기의 책임은 물론 자연과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의무가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이 우리의 확신에서 나오는 생태론적 의무를 더 잘 깨닫는 것은 인류와 세상 전체를 위해서 좋은 일이다.
Ⅱ. 성경적 설명의 지혜
65항. (우리는 하느님 사유(思惟)의 산물) 창세기에 나오는 첫 창조 이야기에 보면 하느님의 계획에는 인간의 창조도 포함된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다음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1,31). 성경은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는 모든 인간이 저마다 헤아릴 수 없는 존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단순히 어떤 것이 아니라 어떤 인격이다. 인간은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의 주체가 되며, 자유로이 자신을 내어 주고 다른 인격들과 친교를 이룰 수 있다. 인간 존엄 수호를 위하여 노력하는 이들은 이러한 노력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그리스도 신앙에서 찾을 수 있다. 창조주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수 있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예레 1,5). 우리는 하느님 마음에서 생겨났고, 이러한 이유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 사유(思惟)의 산물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사랑하시고 필요로 하시는 존재이다.
66항. (인간과 자연이 맺은 조화로운 관계의 충돌)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는 인간의 실존과 그 역사적 실재에 대한 깊은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는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세 가지 관계, 곧 하느님과의 관계, 우리 이웃과의 관계, 지구와의 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암시한다. 성경에 따르면 이 세 가지 핵심적인 관계는 이 세상과 우리 안에서 깨어졌다. 이러한 불화가 죄이다. 창조주와 인류와 모든 피조물의 조화는 우리가 하느님 자리를 차지한다고 여기고 피조물로서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아서 깨어졌다. 결국 이는 이 땅을 ‘지배’하는 우리의 임무, 곧 ‘그곳을 일구고 돌보는’ 임무를 왜곡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과 자연이 맺은 본디의 조화로운 관계가 충돌하게 되었다.
67항.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주님의 것) 사람들은 인간이 땅을 ‘지배’(창세1,28)하게 했다는 말이 창세기에 나온다는 것을 근거로, 인간을 본성적으로 지배적이고 파괴적인 존재로 묘사하면서 유다. 그리스도교 사상이 무분별한 자연 착취를 조장하였다고 주장한다. 이는 교회가 이해한 바른 성경 해석이 아니다. 성경 구절은 우리가 세상이라는 정원을 ‘일구고 돌보아야’(창세 2,15)한다고 말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일구다’라는 말은 밭을 경작하고 갈거나 밭일을 한다는 뜻이고, ‘돌보다’라는 말은 보살피고 보호하며, 감독하고 보존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 책임을 지는 관계를 의미한다. 모든 공동체는 생존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풍요로운 땅에서 얻을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이 땅을 보호하고 후손들을 위하여 이 땅이 계속해서 풍요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야 하는 의무도 있다. ‘땅은 주님의 것입니다(시편 24,1). 그래서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신명 10,14)은 주님의 것입니다.
68항. (하느님께 속한 땅에 대한 책임) 하느님께 속한 땅에 대한 책임은, 지성을 지닌 인간이 자연법과 이 세상의 피조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정교한 균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그분께서 명령하시기를 저들이 창조되었고 그분께서 저들을 세세에 영원히 세워 놓으시고 법칙을 주시니 아무도 벗어나지 않았기”(시편 148,5-6) 때문이다. 성경의 율법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뿐 아니라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를 위한 다양한 규범을 인간에게 차근차근 제시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다른 피조물을 고려하지 않는 자의적인 인간 중심주의가 통하지 않는다.
69항. (각 피조물의 고유한 선을 존중) 우리는 이 땅의 재화를 책임 있게 사용해야 하고, 또한 다른 생명체들도 하느님 보시기에 고유한 가치가 있음을 깨달을 것을 요청받는다. 인간은 고유한 존엄과 지성을 지녔기에 피조물과 그것의 고유 법칙을 존중할 것을 요청 받는다. 이는 “주님께서 지혜로 땅을 세우셨기”(잠언 3,19) 때문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왜곡된 인간 중심주의를 매우 분명하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피조물은 저마다 고유한 선과 완전성을 지니고 있다. ... 저마다 고유한 존재를 지니기를 하느님께서 바라신 다양한 피조물들은, 저마다 고유한 방법으로 하느님의 무한한 지혜와 선의 빛을 반영한다. 이 때문에 인간은 각 피조물의 고유한 선을 존중하여 ... 사물의 무질서한 이용을 피해야 한다.”
70항. (이웃과 바른 관계 유지의 의무) 내가 책임지고 돌보고 보호해야 할 내 이웃과 바른 관계를 이루어 유지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리면, 나 자신, 다른 이, 하느님, 지구와 각각 맺은 관계를 망쳐 버리게 된다. 이러한 모든 관계를 소홀이 하면, 정의가 이 땅에 존재하지 않게 되면, 삶 자체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고 성경이 우리에게 말해 준다. 이는 정의와 평화의 조건을 계속 충족시키지 못하는 인류를 하느님께서 쓸어버리겠다고 경고하시는 노아의 이야기에 나타난다. 모든 것은 서로 관계를 맺고, 우리 자신의 삶과 자연과 맺은 관계를 올바로 돌보는 것은 형제애, 정의, 다른 이에 대한 충실함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71항. (안식일과 희년의 의미)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자”(창세 6,5) 하느님께서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창세 6,6)하셨지만, 하느님께서는 의롭고 흠 없는 노아를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열기로 결정하셨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께서는 인류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희망을 되찾는 데에는 의로운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 성경 전통은 이러한 회복에 하느님께서 직접 자연에 새겨 놓으신 순환의 재발견과 존중이 동반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이렛날에 쉬도록, 곧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령하셨다. 이와 유사하게 이스라엘은 일곱째 해는 땅을 위한 안식의 해로 지내게 하셨다. 그리고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내면, 모든 것에 대한 용서와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레위 25,10)을 선포하는 희년을 거행하도록 하셨다. 이러한 율법의 전개는 인간이 다른 이들과 맺은 관계와 그들이 살고 일하는 땅과 맺은 관계에 균형과 공정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땅의 결실을 포함하여 땅이 주는 것은 모든 이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72항. (주님을 찬양하여라) 시편은 창조주 하느님을 찬송하라고 자주 우리에게 권유한다. 또한 시편은 우리와 함께 찬미하도록 다른 피조물을 초대한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해아 달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반짝이는 모든 별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하늘 위의 하늘아 하늘 위에 있는 물들아.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명령하시자 저들이 창조되었다”(시편 148,3-5). 우리는 하느님의 권능으로만이 아니라, 하느님을 마주하며 하느님과 더불어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찬미하는 것이다.
73항.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느님) 성경에 나오는 해방시키시고 구원하시는 바로 그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느님의 이 두 활동 방식은 긴밀하고 분리할 수 없게 연결되어 있다. “아, 주 하느님, 당신께서는 큰 권능과 뻗은 팔로 하늘과 땅을 만드셨으니, 당신께서는 어려운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 당신께서는 표징과 기적들로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예레 32,17.21).
74항. (전능하신 하느님) 바빌론 유배의 경험은 영적 위기를 가져왔으나, 이 위기가 하느님에 대한 더욱 깊은 믿음을 이끌어 냈다. 그 경험은 하느님의 창조적 전능을 밝혀 주어 사람들이 불행한 상황 가운데서도 희망을 찾을 것을 권유하였다. 그로부터 수 세기가 지난 다음, 로마 제국이 절대 지배를 행사하려는 가운데 찾아 온 또 다른 시련과 박해의 시기에, 믿는 이들은 전능하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다시 굳세게 하여 위로와 희망을 찾으며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전능하신 하느님, 주님께서 하신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 ... 주님의 길은 의롭고 참되십니다”(묵시 15,3). 무에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관여하시고 온갖 악을 물리치실 수 있다. 그러므로 불의가 무적은 아닌 것이다.
75항. (이 세상의 유일한 주인은 창조주 하느님) 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을 망각하는 영성은 받아들일 수 없다. 만약 이를 받아들이다면 우리는 세상의 다른 힘 있는 것을 숭배하거나 하느님의 자리를 빼앗고, 심지어 그분의 피조물을 우리 발아래 두며 짓밟아 버리는 제한 없는 권리를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인간이 제자리를 찾고 이 땅에 대한 절대적 지배의 요구를 종식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창조주이시며 이 세상의 유일한 주인이신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알려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간이 언제나 자기만의 법과 관심을 강요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Ⅲ. 세계의 신비
76항. (자연과 창조의 의미) 유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말하는 ’창조‘는 자연보다 더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하느님의 사랑이 넘치는 계획, 곧 모든 피조물이 저마다의 가치와 의미를 지닌 것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자연은 인간이 분석, 이해, 통제하는 체계로 여겨지는 반면에, 창조는 모든 것의 아버지께서 손을 내미시어 주신 선물이다.
77항. (창조는 사랑의 질서) “주님의 말씀으로 하늘이, ... 만들어졌네”(시편 33,6). 이는 세상이 결단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지 혼돈이나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며, 세상을 더욱 찬미하게 한다. 창조의 말씀은 자유로운 선택을 나타낸다. 세상은 자의적인 전능, 곧 힘의 과시나 자기 과시의 욕망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창조는 사랑의 질서이다. 하느님 사랑은 모든 피조물 안에 있는 근본적 동력이다.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지어 내신 것을 싫어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지혜 11,24). 그래서 모든 피조물은 그 각자의 자리를 세상에 마련해 주신 하느님 아버지의 온유함의 대상이다. 가장 하찮은 것의 덧없는 생명조차도 하느님 사랑의 대상이며, 아주 잠깐 살아 있어도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 주신다.
78항. (자연에 대한 우리 인간의 책임) 유다-그리스도교의 사유(思惟)는 자연의 탈신화(脫神化)를 이끌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언제나 찬미하면서도 자연 안에 신성이 깃들어 있지는 않다고 여긴 것이다. 이리하여 자연에 대한 우리 인간의 책임이 더욱 강조되었다.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이 세상의 일부로서 자연을 보호하고 그 잠재력을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훼손시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만약 우리가 자연의 가치와 취약함을 깨닫는 동시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깨닫는다면, 무한한 물질적 발전이라는 근거 없는 현대 신화를 깨뜨릴 수 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보호에 맡기신 취약한 세상은 우리의 힘을 이끌고 발전시키고 제한하는 현명한 방법을 찾을 것을 요청한다.
79항. (자연 보호의 의무를 상기시켜 주는 교회의 활동) 신앙은 우리 눈앞에 전개되는 것의 의미와 신비한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는 우리의 지성을 사물의 긍정적 발전에 쓸 수 있고, 고통과 현실적인 퇴보의 원인이 되는 악을 더하는 데 쓸 수도 있다. 이것이 역사를 긴장되고 극적인 것으로 만든다. 인간 역사는 자유, 성장, 구원, 사랑 안에서 전개되거나 타락과 상호 파괴의 길로 전개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그 활동으로 자연 보호의 의무를 상기시켜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류가 자멸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80항. (하느님의 거룩한 현존) 하느님께서는 자제하시며 어느 모로 개선의 여지가 있는 세상을 창조하셨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악이나 위험 또는 고통의 원천으로 여기는 많은 것들은 사실 우리가 창조주와 협력하도록 이끄는 출산의 고통이 된다. 하느님께서는 피조물들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모든 존재의 가장 깊은 내면에 현존하시어 현세 사물의 합당한 자율성을 가져온다. 하느님의 거룩한 현존은 모든 존재의 생존과 성장을 보존해 주며, 창조 사업은 계속 이어 나간다. 하느님의 성령은 이 세계를 가능성으로 가득 채우시었기에 사물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언제나 새로운 것이 나타날 수 있다.
81항. (인간은 객체가 아닌 주체의 지위) 우리는 저마다 인격적인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성찰, 논증, 창의성, 해석, 예술 활동 능력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다른 능력들과 더불어 물리학과 생물학의 영역을 넘어서는 새로움을 보여 주는 것이다. 물질세계 안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등장한 데에 따른 질적인 새로움은 하느님의 직접적 행위를 전제로 하고, 또한 생명으로 이끄시며 하느님이신 ‘당신’과 인간인 ‘너’가 맺는 관계로 이끄시는 특별한 부르심을 전제로 한다. 창조에 관한 성경 이야기는 모든 인간이 객체의 지위로 격하될 수 없는 주체임을 알게 해 준다.
82항. (강자의 자의를 옹호하는 관점의 결과) 다른 생명체들이 인간의 자의적인 지배 아래에 놓이는 단순한 대상이라고 여기는 생각도 그릇된 것일 수 있다. 자연을 단지 이윤과 이익의 대상으로만 여긴다면, 이는 사회에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강자의 자의(恣意)를 옹호하는 관점(觀點)은 대부분의 인류에게 엄청난 불평등, 불의, 폭력을 낳는다. 이 경우에 자원은 먼저 차지하거나 가장 힘이 센 자의 것이 되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조화, 정의, 형제애, 평화의 이상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대의 세력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6).
83항. (지성과 사랑이 부여된 인간) 이 세계 여정의 목적은 하느님의 충만 안에 놓여 있다. 이 충만은 모든 보편적 성숙의 중심이 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이루어졌다. 모든 피조물은 우리와 더불어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공동의 도착점, 곧 하느님을 향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품어 주시고 빛나게 해 주시는 초월적 충만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성과 사랑이 부여된 인간은 그리스도의 충만으로 이끌려 모든 피조물을 그들의 창조주께 인도하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Ⅳ. 창조의 조화 안에서 모든 피조물이 전하는 메시지
84항. (물질세계 전체는 하느님의 사랑)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을 닮았다고 내세우면서 모든 피조물이 각기 기능이 있고 그 어느 것도 필요 없지 않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질세계 전체는 하느님의 사랑, 곧 우리에 대한 무한한 자애를 나타낸다. 흙과 물과 산, 이 모든 것으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루만지신다. 하느님과 우리가 나누는 애정의 역사는 언제나 매우 개인적인 표징이 되는 지리적 공간 안에서 전개된다. 우리는 모두 좋은 추억이 깃든 장소를 마음에 담아 둔다. 그 추억의 장소로 돌아가면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되찾으라는 부름을 받았다고 느끼게 된다.
85항. (피조물에 관한 성찰들) 하느님께서는 소중한 책을 쓰셨다. 이 책의 글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피조물들이다. 캐나다 주교들은 하느님의 이러한 계시에서 배제된 피조물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잘 표현하셨다. “가장 뛰어난 장관(壯觀)에서부터 가장 작은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경탄과 경외의 끊임없는 원천이다. 이는 또한 하느님의 끊임없는 계시이다.” 일본 주교들도 말씀을 하셨다. “모든 피조물이 자신의 존재를 노래하고 있음을 알아채는 것은 하느님 사랑과 희망 안에서 기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피조물에 관한 이러한 성찰은 모든 것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가르침을 발견하게 한다.
86항. (피조물의 다양성 이해)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 세계 전체는 하느님의 다함없으신 풍요를 보여 준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다중성과 다양성이 ‘제1원인의 뜻’에서 나온다고 현명하게 강조하셨다. 그 제1원인은 ‘하느님의 선하심을 드러내시고자 각 사물 안에 부족한 것이 다른 것들로 보충되기를 바라는 분’이셨다. 우리는 그 다양한 관계 안에서 피조물의 다양성을 이해해야 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피조물들이 서로 의존하기를 바라신다. 해와 달, 독수리와 참새, 전나무와 작은 꽃 한 송이, 이들의 무수한 다양성과 차별성의 장관은 어떠한 피조물도 불충분함을 의미한다. 이들은 다른 피조물에 의존하여 서로 보완하며, 서로 봉사하면서 살아간다.”
87항. (프란치스코 성인의 아름다운 노래)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느님을 반영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면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주님께 찬가를 드리고 피조물과 함께 주님을 흠숭하려는 마음을 품게 된다. 이러한 찬미와 흠숭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아름다운 노래 (피조물의 찬가)에서 나타난다. “저의 주님, 찬미 받으소서. 주님의 모든 피조물과 함께, 특히 형제인 태양으로 찬미받으소서. 태양은 낮이 되고 주님께서는 태양을 통하여 우리에게 빛을 주시나이다. 태양은 아름답고 찬란한 광채를 내며 지극히 높으신 주님의 모습을 담고 있나이다./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누이인 달과 별들로 찬미받으소서. 주님께서는 하늘에 달과 별들을 맑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지으셨나이다./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형제인 바람과 공기로, 흐리거나 맑은 온갖 날씨로 찬미받으소서. 주님께서는 이들을 통하여 피조물들을 길러 주시나이다./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누이인 물로 찬미받으소서. 물은 유용하고 겸손하며 귀하고 순결하나이다./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형제인 불로 찬미받으소서. 주님께서는 불로 밤을 밝혀 주시나이다. 불은 아름답고 쾌활하며 활발하고 강하나이다.”
88항. (자연 전체는 하느님의 현존의 자리) 브라질 주교들은 자연 전체가 하느님을 드러내 보일뿐만 아니라 그분의 현존의 자리임을 강조하셨다. 모든 피조물 안에는 생명을 주시는 성령께서 살아 계시며 우리가 하느님과 관계를 맺도록 초대하신다. 이러한 현존의 발견은 우리가 “생태적 덕목들”을 키워 나가게 한다.
Ⅴ. 보편적 친교
89항. (모든 피조물은 숭고한 공동체)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입니다”(지혜 11,26). 그래서 우리는 한 하느님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이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 함께 보편 가정, 곧 숭고한 공동체를 이루어 거룩하고 사랑이 넘치며 겸손한 존중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확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육신을 통하여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긴밀하게 결합시켜 주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토양의 사막화를 마치 우리 몸이 병든 것처럼 느끼고 동식물의 멸종을 우리 몸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느낀다.”
90항.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불평등) 인간들 사이의 동등한 존엄을 위하여 노력하기보다는 인간 이외의 생물종 보호를 위한 투쟁에 더 나선다. 우리가 다른 생물종들을 무책임하게 다루지 말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불평등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어떤 이들이 자신을 다른 이들보다 더 존귀하다고 여기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비참한 곤경에 빠져 거기에서 헤어 나올 방법이 없는 반면에, 또 다른 이들은 자기의 재산을 주체할 수 없어 하며, 허영에 빠져 잘난 척하고, 모든 사람이 따라한다면 지구를 파괴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쓰레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이들이 자신을 마치 더 많은 권리를 지니고 태어나 다른 이들보다 더 우월한 존재로 여기는 것을 묵인하고 있는 것이다.
91항. (환경보호의 의미를 훼손시키는 일) 인간에 대한 온유, 연민, 배려의 마음이 없다면 자연의 다른 피조물과도 깊은 친교를 올바로 느낄 수 없다. 인신매매에 완전히 무관심하며, 가난한 이들을 배려하지 않고, 맘에 들지 않는 이들을 해치려는 마음을 지니면서, 멸종 위기에 놓여 있는 생물종들의 매매와 맞서 싸우는 것은 분명히 모순이다. 이는 환경보호의 의미를 훼손시키는 일이다. 환경보호는 인간에 대한 참된 사랑과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연결되어야 한다.
92항. (인간의 존엄성에 어긋나는 것) 이 세상의 다른 피조물들에 대한 무관심이나 잔혹함은 언제나 어느 모로든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여서 동물을 학대하도록 이끄는 비열함은 곧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나타나게 된다. 그 어떤 피조물에 대한 것이든 모든 학대는 “인간의 존엄성에 어긋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현실의 그 어떤 측면이라도 소홀히 한다면, 우리가 큰 사랑을 한다고 여길 수 없다. 평화와 정의, 그리고 피조물 보호는 서로 철저하게 연결된 주제이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된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 사랑으로 서로 엮여서 형제자매로 일치되어 멋진 순례를 하고 있다.
Ⅵ. 재화의 보편적 목적
93항. (모든 형태의 사유 재산의 사회적 기능) 오늘날 우리는 신앙인이든 아니든 모든 지구가 본질적으로 공동 유산이므로, 그 열매는 모든 이에게 유익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이는 신앙인들에게 창조주에 대한 충실의 문제가 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를 위하여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생태적 접근은 가장 취약한 이들의 기본권을 배려하는 사회적 관심을 포함해야 한다. 그래서 사유 재산이 재화의 보편적 목적에 종속된다는 원칙, 곧 공동 사용 권리는 사회 활동의 ‘황금률’이고 윤리적 사회적 질서 전체의 ‘제1원리’이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사유 재산권을 절대적이거나 침해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한 적이 없으며, 모든 형태의 사유 재산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는 “하느님께서는 온 인류에게 땅을 주시어 아무도 제외되거나 특권을 누리지 않고 그 모든 구성원들의 생계를 유지하게 하셨다.”하고 말씀하셨다.
94항. (모든 이는 동등한 존엄) 부유한 이와 가난한 이는 동등한 존엄을 지닌다. “이들을 모두 지으신 분은 주님”(잠언 22,2)이시기 때문이다. “작거나 크거나 다 그분께서 만드셨고”(지혜 6,7),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마태 5,45) 하십니다. 파라과이 주교님들의 말씀이다. “모든 농민에게는 땅을 적당히 분배받아, 그 땅 위에 자신의 가정을 꾸미고, 가족을 부양하며 생존을 보장받아야 하는 자연권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권리는 허상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적으로 행사하도록 보장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95항. (자연환경은 모든 인류의 유산이며 공공재) 자연환경은 모든 인류의 유산이며 모든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공공재이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을 사유화해도, 모든 이의 이익을 위하여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이들의 생존을 부인하며 우리의 양심을 거스르게 된다. 이러한 까닭에 뉴질랜드 주교님들이 “세계 인구의 20%가 가난한 나라와 미래 세대의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것을 훔치면서까지 자원을 소비하고 있는” 시점에서 “사람을 죽이지 마라.”는 계명의 뜻을 묻고 계시는 것이다.
Ⅶ. 예수님의 눈길
96항. (모든 피조물과 아버지로서 맺으신 관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시면서,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과 아버지로서 맺으신 관계를 깨달으라고 권유하시며, 하느님 보시기에는 그들 모두 중요하다는 사실을 감동적인 온유함으로 상기시켜 주셨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루카 1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마태 6,26).
97항. (자연에 관심을 기울이셨던 예수님) 주님께서는 언제나 자연과 관계를 이루시면서 큰 사랑과 경탄으로 자연에 관심을 기울이셨다. 당신께서 사시던 지역의 구석구석을 다니시다가 잠시 머무시면서 당신의 아버지께서 심어 놓으신 아름다움을 음미하시고는,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메시지를 이해하도록 당신 제자들에게 권유하셨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된다”(마태13,31-32).
98항. (피조물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사신 예수님) 예수님은 피조물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사셨기에 다른 이들이 놀라워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마태 8,27). 그분께서는 세상과 떨어져 사는 금욕주의자의 모습을 하지도 않으시고 삶의 즐거운 면을 적대시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육신과 물질과 세상 현실을 경멸하는 사상들과는 매우 거리가 먼 분이셨다. 예수님께서는 손을 사용하는 일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물질들을 날마다 다루시며 장인의 기술을 발휘하셨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생애 대부분을 이러한 일, 전혀 경탄할 것도 없는 단순한 일로 보내셨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가?”(마르 6,3). 이렇게 하여 예수님께서는 노동을 신성한 것으로 만드시어 우리가 성숙하는 데에 노동이 특별한 가치가 있도록 하셨다.
99항. (모든 피조물의 운명) 현실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이해에 따르면, 처음부터 모든 피조물의 운명은 그리스도의 신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콜로 1,16). 요한복음의 머리글은 그리스도의 창조 활동이 하느님의 말씀(logos)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 머리글은 놀랍게도 이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요한 1,14)라고 말한다. 삼위일체의 한 위격께서는 피조(被造) 세계에 오셔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운명을 이 세상과 함께하셨다.
100항. (모든 피조물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 신약 성경은 우리에게 지상에 계셨던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이 세상과 맺으신 실재적인 사랑의 관계를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다. 또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영광스럽게 되시어 당신의 보편적 주권으로 모든 피조물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도 보여 준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켰습니다”(콜로 1,19-20). 예수님께서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감탄하셨던 들판의 바로 그 꽃들과 새들은 이제 그분의 빛나는 현존으로 충만하게 된다.
[ 제3장.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들 ]
101항. (생태위기의 근원에 대한 성찰) 인간이 초래한 생태위기의 근원들을 인식하지 않고서 그 증상들을 설명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에 대하여 성찰해 보아야 하겠다. 지배적인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과 이 세상에서 인간과 인간행동이 차지하는 자리에 초점을 맞출 것을 제안한다.
Ⅰ. 기술 : 창의력과 힘
102항. (과학과 기술은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 창의력의 놀라운 산물) 우리는 두 세기에 걸친 커다란 변화의 물결을 물려받았다. 여기에는 증기 기관, 철도, 전신, 전기, 자동차, 비행기, 화학 산업, 현대 의학, 컴퓨터 공학과 더불어 좀 더 최근에는 디지털 혁명, 로봇 공항, 생명 공학, 나노 공학이 있다. 이러한 발전을 기뻐하고 우리 앞에 계속 펼쳐지는 엄청난 가능성에 흥분하는 것은 당연하다. 과학과 기술은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 창의력의 놀라운 산물이기 때문이다. 유용한 목적을 위하여 자연을 변화시키는 것은 인류가 그 시초부터 지녀 온 특징이다. 기술 그 자체는 인간이 점차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도록 촉구하는 내적 긴장을 나타낸다. 기술은 인간을 위협하고 제한하는 많은 폐단들을 개선해 왔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대안들을 마련해 준 많은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의 업적을 인정해야 한다.
103항. (기술 과학은 아름다움을 창출) 기술과학이 방향을 제대로 잡는다면, 유용한 가전제품 등 인간 삶의 질을 증진하는데 매우 소중한 수단을 생산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기술 과학은 아름다움을 창출해 내어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이 아름다움의 세계로 도약하게 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훌륭한 미술 작품과 음악 작품들도 있다.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기술자와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이는 일종의 온전히 인간적인 충만으로 도약하게 되는 것이다.
104항. (기술과학이 가져다 준 엄청난 힘) 우리는 핵에너지, 생명 공학, 컴퓨터 공학, 그리고 우리 자신의 유전 정보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우리가 이룩한 많은 다른 능력들이 우리에게 엄청난 힘을 가져다준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일찍이 인류가 이 정도의 힘을 지닌 적이 없었다. 현재 그러한 힘이 쓰이는 용도를 살펴보면 그 지혜로운 활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전쟁에 이용될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의 증가는 말할 것도 없고, 20세기 중반에 투하된 핵폭탄과 더불어 나치즘, 공산주의, 여러 전체주의 정권들이 수백만의 사람을 살상하려고 개발한 엄청난 기술의 동원을 생각해 보면 된다. 현대전에 동원되는 더 치명적인 무기는 말할 것도 없다. 소수의 사람들이 이 힘을 차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105항. (인간의 책임과 가치관과 양심의 발전은 미흡) 사람들은 힘이 늘수록 진보가 이루어지고, 안전, 유용성, 복지, 활력, 가치 충만의 증가가 이루어진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는 기술과 경제의 힘에서 저절로 생겨난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현대인들은 힘을 올바로 사용하는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엄청난 기술 발전에 인간의 책임과 가치관과 양심의 발전이 함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시대는 그 시대가 지닌 한계를 제대로 인식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오늘날 인류가 자신이 당면한 도전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 인간은 완전히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자유는 무의식, 즉각적인 욕구, 이기주의, 잔인한 폭력의 맹목적인 힘 앞에 무너질 때 병들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은 아무런 통제 수단도 없이 커져만 가는 자기의 힘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이다. 인간이 형식적인 수단들을 마련해 두었으나, 실제로 한계를 정하고 자제력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건전한 윤리와 문화와 영성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Ⅱ.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의 세계화
106항. (인간의 무한 성장은 그릇된 개념) 인간은 언제나 자연에 간섭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인간의 간섭으로 사물에서 최대한 모든 것을 뽑아내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면서 인간은 자신의 본디 모습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린다. 그래서 인간과 사물들은 더 이상 서로 다정한 손길을 건네지 못하고 적대적으로 대립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인간은 무한 성장 또는 제약 없는 성장이라는 개념을 쉽사리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경제학자, 금융 전문가, 기술자들은 이에 큰 매력을 느꼈다. 이는 지구 자원을 무한히 활용할 수 있다는 거짓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지구를 그 한계를 넘어서 최대한 “쥐어짜는” 데에 이르게 된다. 이는 “무한한 양의 에너지 자원을 이용할 수 있고, 그것들을 신속히 재생할 수 있으며, 자연 질서의 착취에서 오는 부정적인 결과는 쉽게 완화될 수 있다”는 그릇된 개념이다.
107항. (기술의 산물의 영향) 우리는 기술의 산물이 가치중립적(價値中立的)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기술의 산물은 결국 생활양식에 영향을 미치고, 특정 권력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회적 기회들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순전히 도구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선택이라도 사실은 이루고자 하는 사회생활의 유형과 관련된다. (* 가치중립 : 어떠한 특정 가치관이나 태도에 치우치지 않는 것)
108항.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의 지배) 다른 문화적 패러다임을 내세우면서 기술을 단지 도구로만 이용한다는 개념은 상상할 수 없다. 오늘날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의 지배가 매우 강력해져서 이를 수단으로 하지 않고 사는 것이 어려워졌고, 그 논리에 지배되지 않으면서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기술과 그에 드는 비용, 세계화시키고 평준화시키는 힘에서 부분적으로나마 벗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생활양식의 선택은 반문화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기술을 대표하는 이들은 기술이 궁극적으로 유용성이나 복지가 아니라 권력에 관련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의 요소들과 인간 현존의 요소들을 모두 장악하려고 한다. (* 패러다임 : 인간 사고를 지배하는 인식 체계)
109항.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의 경제와 정치적 지배)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은 또한 경제와 정치를 지배하고자 한다. 경제는 이윤을 목적으로 모든 기술 발전을 받아들이며 인간에게 미치는 잠재적 악영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금융은 실물 경제를 질식시켜 버린다. 우리는 세계 금융 위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고, 환경 훼손에서는 너무 더디게 교훈을 얻고 있다. 많은 집단은 현대 경제와 기술이 모든 환경 문제를 해결할 것이고, 또한 비전문적인 언어를 동원하여 전 세계 기아와 빈곤이 단순히 시장의 성장만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속되고 있는 비인간적인 박탈 현상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대비되는 낭비적이고 소비 중심적인 일종의 ‘초발전’을 누리고 있다. 그 반면에, 가난한 이들이 정기적으로 생필품을 마련하도록 해 주는 경제적 지원 시설과 사회 제도의 개발에는 속도를 내지 못한다. 사람들은 현재의 이 불균형의 좀 더 깊은 원인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러한 불균형은 기술과 경제성장의 방향, 목적, 의미, 사회적 맥락과 관련된다.
110항. (삶은 점차 기술의 영향을 받는 상황에 종속) 오늘날 세계의 가장 복잡한 문제들, 특히 환경과 가난한 이들에 관한 문제의 적절한 해결책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일한 관점이나 이해관계로만 다루어질 수 없다. 중대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과학은 철학과 사회 윤리를 포함한 다른 학문 분야의 지식을 반드시 참고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를 실천하는 것은 무척 힘이 든다. 삶은 점차 기술의 영향을 받는 상황에 종속된다. 기술 자체가 삶의 의미 해석에 근원이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마주하는 구체적 상황에는 환경 훼손, 불안, 삶의 의미와 공동생활의 의미 상실과 같은 잘못을 보여 주는 많은 증상들이 있다. 우리는 ‘실재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111항.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의 공세에 대항에 필요한 것들)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의 공세에 대항하는 다른 시각, 사고방식, 정책, 교육 계획, 생활양식, 영성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심지어 최선의 환경 보호 운동도 동일한 세계화의 논리에 빠져 버리고 말 것이다. 개별적으로 나타나는 환경 문제에 대한 기술적 해결 방안만을 찾는 것은, 실제로 서로 이어져 있는 것들을 분리하고, 세계 체제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들을 숨기는 것이 된다.
112항. (지배적인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 인간의 자유는 기술을 제한하고 그 방향을 바꾸어 기술이 다른 형태의 발전, 곧 좀 더 건전하고 인간적이고 사회적이며 온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게 할 수 있다. 지배적인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일이 실제로 가끔 일어난다. 예를 들어, 군소 생산자들의 오염을 줄이는 생산 방식의 채택, 소비 지상주의를 지양하는 삶과 여유와 공동생활 방식의 채택, 사람들이 더 존엄하게 덜 고통 받으며 살아가도록 돕는 일,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이를 바라보려는 의지 등이다. 새로운 종합을 요청하는 참된 인본주의는 서서히 기술 문화 한가운데 자리 잡는 듯하다.
113항.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에 대한 다른 인식)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이 더 이상 행복한 미래를 믿지 않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더 이상 현재의 세계정세와 기술력을 근거로 하는 더 나은 미래를 맹목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 발전이 인류와 역사의 발전과 동일시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은 근본적으로 다른 데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술이 마련해 주는 기회들을 거부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지만 인류는 큰 변화를 거쳤고, 계속 나타나는 새로운 것들은 우리를 지나치게 피상적으로 한 방향으로만 이끄는 찰나적인 것을 신성하게 여기게 한다. 잠시 멈추어 삶의 깊이를 되찾는 일이 힘들어졌다. 건축물이 시대정신을 반영하기에, 초대형 건축물과 획일적으로 지어진 주택 단지는 세계화된 기술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새로운 상품과 엄청난 단조로움이 공존한다. 이에 굴복하지 말고 모든 것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말자.
114항. (용감한 문화적 혁명의 필요성)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우리가 용감한 문화적 혁명을 통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할 절박한 필요성을 알려 준다. 과학과 기술은 가치중립이지 않아서 한 과정의 시작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여러 의도와 가능성들이 개입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속도를 줄여서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바라보며 긍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받아들이는 것과 더불어, 지나친 과대망상으로 잃어버린 가치와 중요한 목표들을 되찾아야 한다.
Ⅲ. 현대 인간 중심주의의 위기와 영향
115항. (인간은 타고난 자연적이고 윤리적인 구조를 존중) 현대 인간 중심주의는 모순적이게도 현실보다는 기술 이성을 앞세우게 되었다. 인간은 자연을 아무런 전제 없이 있는 그대로 물건을 만들려는 자리와 재료를 여기며, 그 결과로 어떤 일이 발생하든 관심이 없다. 그래서 세상의 고유한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제자리를 되찾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모순된 행동을 하고 만다. “인간이 그 본래의 선한 목적에 따라 사용하도록 땅이 하느님에 의하여 주어졌으며, 이러한 이유로 인간은 자신이 타고나는 자연적이고 윤리적인 구조를 존중해야 한다.”
116항.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지배는 책임 있는 관리의 의미) 근대에 들어서서 지나친 인간 중심주의가 있어 왔고,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또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며 공동 관심사와 사회적 결속 강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저해하고 있다. ‘프로메테우스’처럼 세상을 지배하려는 꿈이 퍼져 나가면서, 자연 보호는 나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나타났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지배’는 책임 있는 관리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117항.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 부족) 인간이 자연에 끼친 해악과 인간의 결정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 부족은 자연이 그 구조 안에 새겨 넣은 메시지에 대한 무관심을 뚜렷하게 보여 줄 뿐이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가난한 이, 인간 배아, 장애인이 지닌 가치를 인식하지 못할 때 자연의 울부짖음 자체에도 귀를 기울이기가 어려워진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 현실에서 독립된 존재임을 선언하고 절대적 지배자를 자처하면, 인간 삶의 기초 자체가 붕괴된다.
118항.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능력을 인정) 인간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자연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올바른 인간학 없이는 생태론도 있을 수 없다. 인간이 단지 여러 존재들 가운데 하나로, 우연이나 물리적인 결정론의 산물로 여겨질 때, 우리의 전반적인 책임 의식은 악화될 것이다. 그릇된 인간 중심주의가 반드시 ‘생태 중심주의’에 자리를 내어 줄 필요는 없다. 이러한 생태 중심주의는 오늘날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며, 문제들을 가중시키는 또 다른 불균형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지성, 의지, 자유, 책임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이 세상을 책임 있게 대할 것을 바랄 수 없다.
119항. (인간과 환경과의 관계) 다른 모든 피조물에 견주어 인간이 특별한 가치를 지녔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교 사상은 우리가 모든 인간의 가치를 인정하고 다른 이들을 존중하게 한다. 알고 사랑하며 대화할 수 있는 ‘너’에게 마음을 여는 것은 언제나 인간을 고귀한 존재로 만들어 준다. 따라서 피조물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고 해서, 인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사회적 측면과 하느님이신 ‘당신’께 우리 마음을 여는 초월적 측면을 약화시킬 필요는 없다. 사실 인간과 환경의 관계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120항. (자연 보호와 인간 배아 보호) 모든 것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기에 자연 보호와 낙태의 정당성도 양립할 수는 없다. 비록 출산으로 불편과 어려움이 생긴다고 해도 인간 배아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우리 주변에 존재하면서 때로는 성가시거나 귀찮게 하는 약한 존재를 받아들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새 생명을 받아들이려는 개인적 사회적 정서가 사라지면 사회에 소중한 또 다른 것들도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121항. (그리스도교는 새로운 역사적 상황들과 끊임없이 대화) 지난 수 세기 동안 전개된 그릇된 변증법을 극복할 새로운 종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스도교는 그 고유한 정체성과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진리의 보화에 충실하면서,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역사적 상황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교는 그 영원한 새로움을 꽃피우는 것이다.
(* 변증법 : 문답에 의해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
< 실천적 상대주의 >
122항. (전형적인 실천적 상대주의는 위험) 그릇된 인간 중심주의는 그릇된 생활양식을 낳는다. ‘복음의 기쁨’ 회칙에서 우리 시대의 전형적인 실천적 상대주의가 ‘교리적’ 상대주의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했었다. 인간이 자신을 중심으로 삼으면 당장의 유익을 가장 우선으로 여기게 되어 나머지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 된다. 따라서 만연한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과 인간의 무한한 힘의 숭배와 더불어, 즉각적인 이득을 주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상대주의가 자라난다. 이는 서로를 희생시키며 살아가고, 환경과 사회의 부패를 낳는 논리가 담겨 있다.
123항. (환경 보호하는 데에 정치적인 조치나 법의 힘만으로는 불충분) 상대주의 문화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단순한 대상으로만 취급하여 강제 노동을 시키거나 빚을 명분으로 노예로 부리는 것과 다름없는 질병이다. 이는 또한 시장의 보이지 않는 힘이 경제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내적 논리이기도 하다. 이들은 그러한 힘이 사회와 자연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가난한 이들의 장기를 팔거나 실험에 이용하려고 구매하고, 부모의 바람에 어긋난다고 해서 아이를 ‘버리는’ 논리와도 같다. 이러한 논리에서는 실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소비하려는 무절제한 욕망 때문에 쓰레기가 양산된다. 그러므로 환경에 해로운 행위를 방지하는 데에 정치적인 조치나 법의 힘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문화가 부패하고 객관적 진리와 보편타당한 원칙들이 더 이상 인정되지 않을 때, 법은 자의적으로 부과되는 것이거나 피해야 할 장애물로만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 고용 보호의 필요성 >
124항. (온전한 생태론에서 노동의 가치를 포함시키는 것은 필수) 인류를 배제하지 말아야 하는 온전한 생태론에 대한 모든 접근에서 노동의 가치를 포함시키는 것은 필수이다.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는 ‘노동하는 인간’ 회칙에서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피조물의 합리적인 발전을 촉진하는 인간의 개입은 세상을 돌보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 하느님께서 사물에 심어 놓으신 가능성이 전개되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께서 땅에 약초를 마련해 놓으셨으니, 현명한 사람은 그것을 소홀히 하지 않으리라”(집회 38,4).
125항. (노동 개념의 올바른 이해 필요) 우리가 인간과 그 주변 세계의 올바른 관계를 성찰하려면 노동의 개념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말할 때, 현실에 대한 인간 활동의 의미와 목적을 묻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육체노동이나 농업뿐 아니라 사회 연구 개발부터 기술 개발 계획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존 현실의 변화를 포함하는 활동을 말한다. 온갖 형태의 노동은 우리가 다른 존재와 맺을 수 있고 또 맺어야 하는 관계의 개념을 전제로 한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피조물에 대한 관상적 찬미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영성도 노동에 대한 부요하고 건전한 이해를 발전시켜 왔다.
126항. (묵상과 노동의 상호 작용으로 인간의 성숙과 성화를 추구) 본디 수도생활은 도시의 타락을 피하고자 세속을 벗어나는 것을 선호하였다. 그래서 수도승들은 사막을 찾아 간 것이다. 그들은 사막이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는 데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고 확신했다. 나중에 누루시아의 베네딕토 성인께서는 그의 수도승들에게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기도와 영적 독서와 더불어 육체노동도 할 것을 제안하셨다. 영적 의미를 담은 육체노동의 도입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사람들은 묵상과 노동의 상호 작용으로 인간의 성숙과 성화를 추구하는 방법을 익혔다. 우리가 이러한 방법으로 실천하면 환경을 더욱 잘 돌보고 존중하게 되어, 세상을 건전한 냉철함으로 대할 수 있게 된다.
127항. (최우선 과제는 모든 사람의 안정된 고용 보장) 우리는 인간이 모든 경제 사회 생활의 주체이며 중심이고 목적임을 확신한다. 인간은 물질적 복지를 도모하고 윤리적 향상을 추구하며 영신 기능을 계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언제나 명심할 필요가 있다. 노동은 이렇게 개인의 다양한 성장을 위한 자리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창의력, 미래 설계, 재능 계발, 가치 실현, 타인과의 대화, 경배와 같은 삶의 여러 측면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오늘날 세상의 현실은, 편협한 기업 이윤과 모호한 경제적 합리성을 뛰어넘어, 계속하여 모든 사람의 안정된 고용 보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을 요구한다.
128항. (노동은 이 땅에 살아가는 의미) 창조 때부터 우리는 노동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인간의 노동을 점진적인 기술 발전으로 대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인류에게 해악을 끼칠 것이다. 노동은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은 이 땅에 살아가는 의미에 속하며, 성장과 인간 발전과 개인적 성취의 길이다. 가난한 이들이 노동을 통하여 존엄한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이 언제나 커다란 목적이 되어야 한다. 경제는 일종의 기술 개발을 촉진하여 일자리를 기계로 대체한 결과, 생산 비용을 절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는 결국 인간이 자기 자신을 거슬러 행동하는 또 다른 길이 될 뿐이다. 또한 일자리 감소는 모든 사회적 공존에 필수적인 신뢰, 의존, 법규 존중의 관계를 연결해 주는 ‘사회 자본’의 점진적인 손실로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적 손실에는 늘 경제적 손실이 따르며 경제적 역기능에도 늘 인적 손실이 따른다.” 단기간에 더 큰 금전적 이익을 얻고자 인적 투자를 중단하는 것은 사회에 악 영향을 미치는 기업 행위이다.
129항. (일자리 창출은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필수 요소) 지속적인 고용 보장을 위해서는 생산의 다각화와 기업의 창의력을 고무하는 경제의 증진이 반드시 필요하다. 행정 당국은 군소 생산업자들과 그들이 생산하는 품종의 다양성을 투명하고 확실하게 지원하는 조치를 취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기업 활동은 부를 창출하고 모든 이를 위하여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할 고귀한 소명이다. 기업이 일자리 창출을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필수 요소로 여긴다면 그 활동 지역의 풍요로운 번영의 원천이 될 수 있다.
< 새로운 생명 공학 >
130항. (동물 실험에 대한 합당한 한계와 적용) 인간은 동식물계에 개입할 수 있으며,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경우 동식물을 이용할 수 있지만 ‘가톨릭 사회 교리서’는 동물에 대한 실험이 합당한 한계를 지키고, 인간 생명의 치유와 보호에 이바지할 때에만 정당하다고 가르친다. 교리서는 인간의 힘에는 한계가 있고 동물을 불필요하게 괴롭히며 마구 죽이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모든 동식물의 이용과 실험은 피조물 전체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요구한다.
131항. (생태계의 한 영역에 개입할 때 기울여야 할 관심)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는 “우리는 생태계의 한 영역에 개입할 때에는 그러한 개입이 다른 영역에 미치는 결과와 미래 세대의 행복에 대하여 모두 마땅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유전학과 같은 다른 학문의 도움을 받아 분자 생물학을 연구하고 응용하고 그 기술을 농업과 산업에 적용하여 얻은 혜택을 교회가 높이 평가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셨다. 그러나 성인께서는 이러한 혜택이 그와 같은 개입의 부정적 영향을 간과하는 ‘무분별한 유전자 조작’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도 지적하셨다. 예술가에게 그 창의력을 발휘하지 말라고 할 수 없듯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위한 특별한 은사를 받은 이들이 다른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능력을 이용하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다. 또한 우리는 커다란 위험을 지닌 형태의 힘을 보여 주는 인간 활동의 목적과 효과와 맥락과 윤리적 한계에 대하여 끊임없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132항. (동식물계의 개입에 관한 성찰) 이러한 틀 안에서 동식물계에 인간이 개입하는 것에 관한 모든 성찰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에는 오늘날 물질세계의 잠재력을 착취하려는 생명공학을 통한 유전자 조작이 포함된다. 생명과학이 경제적 이익에 좌우되지 않는 연구를 통하여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주의를 촉구한다.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피조물의 본질에 따라 자연이 발전하도록 자연에 영향을 주는 개입은 정당하다.
133항. (식물과 동물 유전자 변형에 대한 판단) 의학이나 농업 분야의 식물과 동물 유전자 변형에 대한 판단은 어렵다.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여 개별적인 판단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와 관련된 위험은 그 기술 자체 때문이 아니라 부적절하거나 지나친 기술 적용 때문에 발생한다. 사실 유전자 변형은 자연에서 자주 발생되어 왔고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인간의 개입으로 변형된 현상이 아니다. 동물 길들이기와 교잡 육종과 더불어 오래된 여러 일반적 관행들이 있다. 유전자 변형 곡물의 과학적 개발은, 식물 게놈 변형을 자연스럽게 일으키는 박테리아의 관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134항. (유전자 변형 곡물 이용의 문제점들)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악 영향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없고, 일부 지역에서는 그러한 곡물의 이용이 경제 성장을 가져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었지만, 여전히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중대한 문제들이 남아 있다. 많은 지역에서 이러한 곡물이 도입되면서 비옥한 농토가 소수의 손에 집중되고 있어 군소 생산자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취약한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고, 많은 농촌 일꾼들은 결국 도시의 빈민가로 이주하게 된다. 유전자 변형 작물의 증산은 복잡한 생태계망을 파괴시키며 생산 작물의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현재와 미래의 지역 경제에 영향을 끼친다. 여러 상품들의 생산을 독점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번식력이 없는 종자가 생산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러한 의존성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135항. (현재와 미래의 공동선을 위한 논의의 장 마련) 유전자 변형 작물의 증산 문제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그에 관련된 모든 윤리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광범위하고 책임 있는 과학적 사회적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가능한 정보를 고려하고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직간접적으로 어느 모로 관련된 모든 이(농민, 소비자, 행정당국, 과학자, 종자 생산자, 농양 살포 농지 주민)가 자신들의 문제를 알리고, 현재와 미래의 공동선을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믿을 만한 충분한 정보를 얻는 논의의 장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그 문제를 새롭게 조명하는 독립적이고 학제적인 연구를 위한 자금 지원 노력이 필요하다.
136항. (인간 가치가 인간의 발전 수준보다 중요) 일부 환경 운동에서는 환경의 온전함을 수호하고 과학 연구의 제한을 정당하게 요구하면서도, 이 동일한 원칙을 인간 생활에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살아 있는 배아를 연구할 때 모든 제한을 넘어서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양도할 수 없는 인간 가치가 인간의 발전 수준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이처럼 기술이 위대한 윤리 원칙들을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게 된다. 윤리를 배제한 기술은 자기 힘을 스스로 통제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 제4장. 통합 생태론 ]
137항. (통합생태론의 다양한 요소들에 관한 성찰을 제안) 모든 것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오늘날의 문제들이 세계적 위기의 모든 측면을 고려하는 시각을 요구하기 때문에, 인간적 사회적 차원을 분명히 존중하는 통합생태론의 다양한 요소들에 관한 성찰을 제안한다.
Ⅰ. 환경, 경제, 사회의 생태론
138항. (생태론에 대한 성찰과 논의) 생태론은 살아 있는 유기체들과 그 유기체가 성장하는 환경의 관계를 연구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사회의 삶과 존속의 조건에 대한 성찰과 논의가 따르게 된다. 또한 발전, 생산, 소비의 모형들에 대한 의문들을 제기하는 솔직함이 있어야 한다. 시간과 공간은 따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 원자나 소립자조차도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지구의 물리학적, 화학적, 생물학적 구성 요소들이 서로 관련되듯이, 생물종들도 우리가 결코 그 전체를 알고 이해할 수 없을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
139항. (사회적 환경적인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 당면) 우리가 ‘환경’이라고 말할 때 이는 자연과 그 안에 존재하는 사회가 이루는 특별한 관계를 의미한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에 속하므로 자연과 끊임없는 상호 작용을 한다. 어떤 지역이 오염된 이유를 알아내려면 사회적 기능, 경제, 행태, 유형, 현실, 이해 방식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반드시 자연계 자체의 상호 작용과 더불어 자연계와 사회 체계의 상호 작용을 고려하여 포괄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사회적인 동시에 환경적인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에 당면한 것이다. 그 해결책을 위한 전략에는 빈곤 퇴치와 소외된 이들의 존엄 회복과 동시에 자연보호를 위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140항. (고유한 가치를 지닌 생태계) 우리가 생태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그 합리적 활용 방법을 찾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효용과는 별도로 생태계가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유기체는 하느님의 피조물이기에 그 자체로 좋고 감탄을 자아낸다. 또한 하나의 체계로 기능하는 일정한 공간 안에서 다양한 유기체들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경우에도 그러하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생존을 위하여 이 공존에 의존한다. 우리는 생태계가 이산화탄소의 분해, 물의 정화, 질병과 전염병의 통제, 토양의 형성, 배설물의 분해, 그리고 우리가 간과하거나 모르는 많은 작용을 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141항. (생태계와 사회의 다양한 영역들 간의 상호 작용) 경제 성장은 생산 과정의 단순화와 비용 절감을 위한 자동화와 규격화를 추구한다. 이 때문에 현실을 더 포괄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경제 생태론’이 필요하다. 환경보호는 사실 발전 과정의 핵심 요소이어서 별도로 다룰 수 없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경제학을 포함한 다양한 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인본주의가 절실히 필요하다. 오늘날, 환경 문제의 분석은 인간, 가정, 직장, 도시의 상황에 대한 분석과 분리할 수 없다. 생태계들의 상호 작용과 사회의 다양한 영역들 간의 상호 작용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입증된다.
142항. (환경과 인간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건전한 사회 제도) 모든 것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면, 사회 제도의 건전함도 환경과 인간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연대와 민간 우호를 침해 하는 모든 것은 환경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 생태론은 필연적으로 제도와 관련되며, 사회의 기초 집단인 가정에서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지역공동체와 국가, 그리고 국제적 삶까지 그 대상으로 삼는다. 사회 각 계층 안에서, 그리고 그 계층들 사이에서, 인간관계를 규제하는 제도들이 발전한다. 그러한 제도를 약화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자유의 상실, 불의, 폭력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많은 나라들에서 불안정한 제도로 국민들이 피해를 입고 그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이들도 있다. 국가 행정과 다양한 차원의 시민 사회, 또는 개인들의 관계에서도 불법 행위가 너무 흔하게 자행되고 있다. 형식을 제대로 갖춘 법률이 제정되지만, 이는 흔히 사문화되고 만다.
Ⅱ. 문화 생태론143항.
(생태론은 가장 넓은 의미의 인류 문화재 보호) 자연의 유산과 마찬가지로 역사, 예술, 문화의 유산도 위협받고 있다. 이 유산은 한 지역의 공동 정체성을 이루고 살 만한 도시 건설의 기초가 된다. 그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을 보존하면서 역사와 문화와 건축을 통합해야 한다. 생태론은 가장 넓은 의미의 인류 문화재 보호와도 관련된다. 환경과 관련된 문제를 분석하면서 과학기술 언어와 일상 언어의 대화를 촉진하고 지역문화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문화를 과거의 기념물로만 여길 수 없다. 문화는 무엇보다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성찰할 때 배재할 수 없는 살아 있고 역동적이며 능동적인 것이다.
144항. (민족들의 권리와 문화의 관점을 존중할 필요) 오늘날 세계화된 경제로 조성된 소비주의적 관점은 문화의 획일화를 추구하고 모든 인류의 보화인 엄청난 문화적 다양성을 약화시킨다. 삶과 세상이 역동적이기에 우리도 세상을 유연하고 역동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순전히 기술적인 해결책만으로는 문제의 본질과 상관없는 증상만을 다루게 될 위험이 있다. 민족들의 권리와 문화의 관점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한 사회 집단의 발전은, 문화적 상황 안에서 전개되는 역사적 과정을 전제로 하며, 지역 사회 일꾼들이 자신의 고유문화 안에서 시작하는 지속적이고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삶의 질에 대한 개념은 강요될 수 없으며, 각 인간 집단에 고유한 상징과 관습의 세계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145항. (문화의 소멸은 심각한 문제) 여러 형태의 철저한 환경 착취와 파괴는 지역 공동체의 생계 수단을 고갈시킬 뿐만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과 더불어 생존과 공동생활의 의미를 오랫동안 보존해 온 생활 방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회적 자원을 망가뜨린다. 문화의 소멸은 식물종이나 동물종의 소멸만큼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단일한 생산 방식에 연결된 하나의 지배적인 생활 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생태계의 개조만큼이나 해로울 수 있다.
146항. (토착 공동체와 그들의 문화 전통에 각별한 관심) 토착 공동체와 그들의 문화 전통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이 사는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사업이 진행될 때 특히 그러하다. 그들에게 땅은 상품이 아니라 하느님과 그곳에 묻힌 조상들의 선물로, 그들의 정체성과 가치를 함양하고자 관계를 맺어야 하는 거룩한 자리이다. 그들이 자기 땅에 머무를 때 그 땅을 가장 잘 돌본다. 그러나 세계 여러 지역에서 자연과 문화의 훼손을 도외시한 채 자행되는 광업, 농업, 축산업 개발 계획에 밀려 그들은 자신의 땅을 버리고 떠나라는 압력을 받는다.
Ⅲ. 일상생활의 생태론
147항. (우리의 인생관과 정서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주변 상황) 참다운 발전을 논의하려면 그것이 인간 삶의 질의 온전한 증진을 이루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삶이 전개되는 공간에 대한 분석이 포함된다. 이 주변 상황은 우리의 인생관과 정서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환경에 적응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어떤 환경이 무질서하고 혼란스럽거나 시청각적 공해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한 지나친 자극이 온전하고 행복한 정체성을 형성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방해한다.
148항. (공동체라는 그물 안에서의 소속감) 주어진 조건의 악영향을 개선하고, 무질서와 불확실성 안에서도 자신의 삶의 방향을 깨달아 환경의 제약을 초월할 수 있는 개인이나 집단의 창의력과 관대함은 경탄할 만하다. 때때로 가난한 이들이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룩하는 공동 생태계는 칭찬받을 만하다. 친밀하고 따뜻한 인간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이루며 공동체라는 그물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모든 사람이 환경의 한계를 내면적으로 극복하면, 인구밀도가 높은 주거 지역의 확대로 생기는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을 없앨 수 있다.
149항. (공동체적인 치유의 체험) 화합, 개방, 통합 가능성이 없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극심한 빈곤은 잔인한 행위와 범죄 조직이 사람을 악용하는 일을 조장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 놓인 많은 사람들은 자아의 벽을 무너뜨리고 이기주의의 장벽을 극복하는 공동체 체험으로 소속감을 지니고 더불어 살아가면서 인구 과밀의 상황을 바꿀 수 있다. 이런 공동체적인 치유의 체험이 때로는 한 건물이나 동네의 개선을 위한 창의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150항. (도시 계획에 지역 주민들의 견해 반영이 중요) 도시를 설계하는 이들은 인간의 사고방식, 상징 세계, 행동 방식의 이해를 돕는 여러 학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외적인 아름다움의 추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 삶의 질, 인간과 환경의 조화, 만남과 상부상조와 같은 또 다른 아름다움에도 도움이 될 때 더욱 값진 것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도시 계획의 분석에 관련 지역 주민들의 견해를 더 많이 반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151항. (도시와 농어촌의 경관 변경시 지역의 여러 요소들을 고려) 소속감, 뿌리 의식, 편안함을 증진하는 공공장소, 명소, 도시 경관을 가꿀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전체 도시를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공간으로 여기지 않으며 특정 동네에만 갇혀 살지 말고, 도시의 여러 지역이 잘 조화를 이루어 지역 주민들이 도시 전체를 조망(眺望) 할 수 있어야 한다. 도시와 농어촌의 경관을 바꾸는 경우에 지역의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주민들이 이 전체적인 것을 풍부한 의미를 지닌 일관된 틀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152항. (집을 마련하는 것은 인간 존엄과 가정의 발전에 매우 중요) 주택부족은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대도시만이 아니라 농어촌 지역에서도 심각하다. 국가 예산은 전형적으로 수요의 일부만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만이 아니라 사회의 다른 많은 구성원들도 집을 마련하기가 매우 어렵다. 집을 마련하는 것은 인간 존엄과 가정의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 이는 인간 생태론의 핵심 과제이다. ... 임시 판자촌이 들어선 지역이나 가난한 이들이 사는 오염된 도시 근교나 위험한 집단 거주지 등에 대한 대책과 창의력을 발휘하여 낙후된 지역을 살기 좋은 도시로 통합하게 해야 한다. 다른 이들과 교류하고 관계를 맺으며 알아 가는 공간들로 가득 찬 도시들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153항. (도시의 생활수준은 교통수단과 깊은 관계) 도시의 생활수준은 교통수단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 교통수단은 종종 주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두 사람만 승차한 많은 차량들이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교통 혼잡을 초래하고 공해를 악화시키며 엄청난 양의 비재생 에너지를 소비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대중교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이러한 교통수단의 근본적 개선이 없으면 필요한 몇몇 조치들이 평화로운 방식으로 수용되지 못할 것이다. 많은 도시들에서 사람들은 과밀, 불편, 긴 배차 간격, 불안 때문에 품위 없는 대접을 견뎌야만 한다.
154항. (소외와 무시를 당하는 농어촌 주민들의 처지) 인간 고유의 존엄성의 존중은, 사람들이 도시 생활에서 감내해야 하는 혼란스러운 생활과 흔히 마찰을 빚는다. 그러나 우리는 소외와 무시를 당하는 농어촌 지역 주민들의 처지도 잊어서는 안 된다. 농어촌에는 기본적인 공공시설이 없고 좀 더 존엄한 삶의 권리나 희망 없이 노예의 처지로 추락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155항. (참다운 인간 생태론의 본질적인 요소) 인간 생태론에는 또 다른 심오한 측면도 있다. 곧 인간의 삶과 우리 본성에 새겨진 도덕률이 맺는 필연적 관계, 곧 더 존엄한 환경을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한 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의 몸이 우리가 환경과 그리고 다른 피조물과 직접적 관계를 맺게 해 준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몸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인정하는 것이 이 세상을 하느님 아버지의 선물이며 우리 공동의 집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가 모른 사이에 피조물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된다. 우리 몸을 받아들이며 돌보고 그 의미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참다운 인간 생태론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Ⅳ. 공동선의 원리
156항. (공동선은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 통합 생태론은 사회 윤리에서 핵심적이고 통일적인 원리인 공동선의 개념과 분리될 수 없다. 공동선은 “집단이든 구성원 개인이든 자기완성을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總和)이다.
157항. (국가는 공동선을 수호하고 증진해야 할 의무) 공동선은, 자신의 온전한 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은 인간의 존중을 전제로 한다. 이는 또한 사회 복지, 그리고 보조성의 원리를 따르는 여러 중간 집단의 발전과도 관련된다. 그 가운데 두드러진 집단은 사회의 기초 세포인 가정이다. 공동선은 사회 평화, 곧 특정 질서의 안전과 확실성을 필요로 한다. 이는 특히 분배 정의를 존중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분배 정의가 침해당하면 언제나 폭력이 발생한다. 사회 전체, 특히 국가는 공동선을 수호하고 증진해야 할 의무가 있다.
158항. (가난한 이들의 존엄에 대한 성찰) 불의가 판치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배척당하며 기본권을 박탈당하는 세계화된 사회라는 현재 상황에서 공동선의 원리는 연대와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으로 바뀐다. 이러한 선택은 지상 재화의 보편적 목적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믿는 이로서 우리가 가장 심오한 신앙의 확신에 비추어 가난한 이들의 커다란 존엄에 대하여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
Ⅴ. 세대 간 정의
159항. (세대 간 연대는 정의의 근본적인 문제) 공동선의 개념은 또한 미래 세대도 관련된다. 세계 경제 위기는 우리 후손들도 예외일 수 없는 공동 운명을 무시하는 심각한 악영향을 보여 주었다. 오늘날 우리는 세대 간 연대 없이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더 이상 논할 수 없다.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지구를 생각하면, 우리가 거저 받은 선물을 전달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논리에 접어들게 된다. 땅이 우리에게 선사된 것이라면 우리는 더 이상 개인적 유익을 위한 효율과 생산성이라는 공리주의적 원칙으로만 생각할 수 없다. 세대 간 연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우리가 받은 지구는 후손들에게도 속하기 때문이다. 환경은 각 세대가 빌려 쓰는 것으로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 하는 것이다. 통합 생태론은 이러한 폭 넓은 전망을 담은 것이다.
160항. (자신의 존엄이 위기에 빠져 있음을 인식) 우리가 물려주고 싶은 세상에 대하여 스스로 질문을 제기할 때에는, 주로 그 전체적 방향, 의미, 가치를 생각한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치열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우리의 환경을 위한 노력이 중요한 결과를 낳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우리가 세상에 온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지구는 왜 우리를 필요로 하는가? 그러므로 그저 우리가 미래 세대만을 걱정한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자신의 존엄이 위기에 빠져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미래 세대가 살 만한 지구를 물려주는 것에 관심을 보이는 첫 세대이다. 이는 우리가 지상에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묻는 것이기에 우리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161항. (소비, 낭비, 환경 변화의 속도는 지구의 한계 초과) 종말에 대한 예언은 더 이상 비웃거나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엄청난 폐허와 사막과 오염을 남겨 줄 수 있다. 소비, 낭비, 환경 변화의 속도는 지구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래서 현재의 생활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기에 이미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재앙으로 치달을 수 있다. 현재 불균형의 영향을 줄이는 것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하는 행동에 달려 있다. 특히 최악의 결과를 감수하게 될 이들이 우리가 제기하는 책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162항. (세대 간 연대 의식을 새롭게 하는 도덕적 요구도 절실) 이러한 도전에 진지하게 맞서는 데에 방해가 되는 것은 환경 악화에 수반되는 윤리적 문화적 타락과 관련된다. 탈근대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지나친 이기주의에 빠질 위험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다. 많은 사회 문제들은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자기중심적인 문화, 가정적 사회적 결속의 위기, 다른 이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과 관련된다. 우리가 미래 세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하면 당장의 관심사에만 매달려 발전에서 소외된 많은 이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된다. 미래의 가난한 사람들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살아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오늘날의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므로 더욱 공평한 세대 간 연대 의식과 덧붙여, 이 세대 간 연대 의식을 새롭게 하는 도덕적 요구도 절실하다.
[ 제5장. 접근법과 행동 방식 ]
163항. (인류의 현재 상황에 대한 대화의 길의 윤곽 잡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난 흠집과 인간이 초래한 심각한 환경 훼손의 원인들을 살펴보면서, 인류의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현실 자체만을 보아도 이미 방향 전환과 다른 조치의 필요성이 드러나지만, 이제 우리가 점점 빠져들고 있는 자멸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도록 해주는 주요한 대화의 길의 윤곽을 잡아 보도록 하자.
Ⅰ. 환경에 관한 국제 정치적 대화
164항. (환경과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세계적인 합의 필요) 세계 국가의 상호 의존은 우리에게 공동 계획을 가진 하나의 세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러나 엄청난 기술 발전에 사용된 그 지성이 심각한 환경과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효과적인 일종의 국제적 지도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개별 국가만의 조치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 문제들을 다루면서 세계적인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이러한 합의는 지속 가능한 다품종 재배 농업 계획, 재생 가능한 무공해 에너지 개발, 높은 에너지 효율성의 촉진, 삼림과 해양 자원 관리 개선, 식수의 보편적 접근 보장을 이끌어 낼 수 있다.
165항. (세상에 당면한 긴급한 도전 과제들에 대한 나태) 우리는 엄청난 오염을 유발하는 화석 연료, 특히 석탄과 석유와 더불어 소비량은 적지만 가스를 기반으로 하는 기술의 점진적인 대체를 바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국제 공동체는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많은 비용을 누가 지불할 것인지에 대한 적절한 합의를 여전히 이루지 못하고 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환경 문제는 폭넓은 공개 토론을 촉발하여 시민 사회 안에서 커다란 책임감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이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정치와 산업은 우리 세상에 당면한 긴급한 도전 과제들에 적절히 반응하는 데에 게을렀다. 21세기 초의 인류는 자기의 막중한 책임을 기꺼이 떠맡았다고 기억되었으면 한다.
166항.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환경관련 세계 정상 회담) 세계적으로 생태 운동은 많은 시민 사회단체들의 노력으로 이미 큰 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시민 사회단체들의 노력 덕분에 환경 문제는 점점 더 공적인 안건으로 자리를 잡아 장기적 성찰이 필요한 지속적인 과제가 되었다. 그럼에도 최근에 있었던 환경에 관련된 세계 정상 회담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다. 정치적 의지가 결여되어 참된 의미가 있는 효과적인 세계적 합의에 도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67항. (‘지구 환경 정상 회담’에서 발표된 원칙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지구 환경 정상 회담’은 중요한 회담이었다. 이 회담은 “인류는 지속 가능한 발전에 관한 논의의 중심에 서 있다.”고 선언하였다. 지구 전체의 생태계를 돌보려는 국제 협력, 환경오염을 초래한 이들의 경제적 책임, 모든 개별 사업이나 계획의 환경 영향 평가를 의무화하였다. 지구 온난화 추세를 역전시키려는 대기 중 온실가스 배출 제한 목표가 마련되었다. 실천 계획을 담은 의제와 생물 다양성 협약을 마련하였고, 삼림에 관한 원칙들을 발표하였다. 이 정상 회담은 당시로서는 참으로 혁신적이고 선구적이었지만, 이때 이루어진 협약들은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감시, 정기 검사, 위반 행위 제재를 위한 적절한 장치가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회담에서 발표된 원칙들의 현실적 실현을 위한 신속하고 효과적인 방법들이 필요하다.
168항. (환경 관련 협약의 긍정적 경험의 사례) 이에 관련된 긍정적 경험의 사례로는 유해 폐기물에 관한 ‘바젤 협약’이 있다. 이 협약에는 유해 폐기물의 ‘국가간 이동에 관한’ 사전 통보, 표준 규범, 규제 체계가 담겨 있다. 또한 멸종 위기에 놓인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도 그 사례에 포함된다. 여기에는 그 효과적 이행을 검증하려는 현장 방문 조치가 담겨 있다. 오존층 보호를 위한 비엔나 협약, 그리고 몬트리올 의정서와 그 개정안을 통한 협약의 실행으로 오존층 감소 문제는 해결의 길로 들어선 듯하다.
169항. (‘리우+20’의 효과 없는 최종 선언문) 생물 다양성 보존과 사막화에 관한 문제 해결의 진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기후 변화와 관련한 진전도 거의 없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강대국들과 환경을 가장 많이 오염시키는 나라들의 정직과 용기와 책임이 요구된다. 201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이른바 ‘리우+20’으로 불리는 ‘국제 연합 지속 가능 발전 정상 회의’는 많은 문제를 다루었으나 효과 없는 최종 선언문을 내놓았다. 세계적 공동선보다 자국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나라들의 입장 때문에 국제적 협의는 중요한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170항. (기후 변화 대응 비용의 차등적 부과) 오염 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일부 전략은 환경 비용을 모든 국가가 분담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여기에는 자원이 부족한 나라가 고도로 산업화된 나라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과도한 부담을 지게 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조치의 실행은 개발을 가장 필요로 하는 나라들에 피해를 입히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환경보호를 구실 삼아 또 다른 불공평이 자행되는 것이다. 기후 변화의 영향이 나타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금 엄격한 조치가 취해져도 자원이 부족한 일부 국가들은 이미 나타나고 있는 기후 변화의 영향이 그 국가 경제에 끼치는 악영향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지만 그것이 차등적으로 부과되어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분명하다. 이는 볼리비아 주교들의 말씀처럼 “엄청난 온실가스 배출을 대가로 높은 수준의 산업화의 혜택을 누린 나라들은 자신이 초래한 문제의 해결에 더 커다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171항. (탄소 배출권 거래 전략은 안이한 해결책) ‘탄소 배출권’ 거래 전략은 새로운 형태의 투기를 유발할 수 있으며 세계적인 오염 가스 배출 감축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환경에 대한 그렇듯한 노력을 가장한 안이한 해결책이어서 결코 현재 상황에 맞는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오히려 이 제도는 일부 국가와 지역의 과도한 소비를 조장하는 조치가 될 수 있다.
172항. (후진국은 빈곤 퇴치와 사회 발전이 최우선 과제) 가난한 나라들은 자국민들의 빈곤 퇴치와 사회 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또한 그 국민들 가운데 소수 특권층 집단의 터무니없는 소비 수준을 분석하고 더욱 효과적으로 부패에 맞서야 한다. 이 나라들도 오염 발생이 낮은 에너지 생산 방식을 발전시켜야 한다. 여기에서 이 나라들은 지구를 현재와 같이 오염시켜 가면서 엄청난 성장을 이룬 나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풍부한 태양 에너지를 직접 이용하려면 개발도상국들이 기술 이전과 더불어 기술과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장치와 도움이 필요하다.
173항. (실행 가능한 국제 협약이 시급히 필요) 실행 가능한 국제 협약이 시급히 필요하다. 지역 국가 당국들이 효과적으로 개입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국제 관계에서 각국의 주권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결국 모든 이에게 해를 끼치게 될 지역적 재해 방지를 위한 상호 합의된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일부 기업이나 강대국이 다른 나라에 고도로 오염된 폐기물을 내다 버리거나 환경을 오염시키는 산업을 이전하는 것과 같은 용서할 수 없는 행위를 막고 의무를 부과하려는 국제적 규제의 틀이 필요하다.
174항. (‘세계 공동재’의 통치 제도에 대한 합의 필요) 해양 관리 체계도 언급되어야 한다. 해양 폐기물과 해양 보호와 관련된 문제들의 증가는 계속 특별한 도전 과제들을 보여 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른바 ‘세계 공동재’ 전체를 다루는 통치 제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175항. (참된 세계적 정치 권위를 지닌 국제 조직의 수립 필요) 환경오염의 감소와 가난한 국가와 지역의 발전이라는 문제를 다루는 데에 더욱 책임 있는 세계적 호응이 필요하다. 21세기에도 구시대의 통치제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민족 국가들의 영향력 감소가 목격되고 있다. 이는 특히 초국가적 성경을 띤 경제와 금융이 정치를 지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 정부들의 합의 아래 공정한 방식으로 위임된 권위로 제재의 권한을 지닌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구성된 국제 조직의 수립이 필수적이다.
Ⅱ. 새로운 국가적 지역적 정책을 위한 대화
176항. (국가와 지역의 정책에 대한 주의가 필요) 가난한 나라에서는 차등적 책임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환경과 경제발전과 관련된 문제들이 더 이상 국가 간의 차이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되며, 국가와 지역의 정책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177항. (법률과 제한과 정치적 제도적 틀) 감시와 조정의 기능을 담당하는 요소에는 법률이 있으며, 이는 공동선에 비추어 허용되는 행위 규정을 마련한다. 건전하고 성숙하며 자주적인 사회가 마련해야 하는 제한에는 예측, 주의, 적절한 규정, 규정 적용 감시, 부패 척결, 생산 과정의 바람직하지 않은 부작용에 대한 효과적 대처, 불확실하거나 가능한 위험에 대한 적절한 개입이 있다. 기업 활동으로 발생하는 오염을 줄일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 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제도적 틀은 단지 나쁜 관행의 방지만이 아니라 바람직한 관행을 장려하고, 개인적 집단적 계획을 촉진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창의력을 증진해야 한다.
178항. (기본 원칙에 따른 국정 운영과 장기적 공동선의 배려) 근시안적인 정권 수립으로는 환경에 관한 장기적인 안건들이 정부의 공공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 권력의 자리를 지배하는 것보다 그 과정을 이끌어 내는 데에 더 주의를 기울일 때에 언제나 더 풍요한 결실을 맺게 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정치적 위대함은 어려운 시시에 중요한 기본 원칙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며 장기적 공동선을 배려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국가적인 계획에서 정권이 이러한 의무를 다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179항. (지역의 개인과 단체의 차원에서의 활동) 일부 지역의 협동조합 활동 사례는 기존의 세계 질서가 책임을 지지 못하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지역의 개인과 단체의 차원에서는 더 큰 책임감, 더 강한 공동체 의식, 특별한 보호 능력, 더 많은 창의력, 자기 땅에 대한 깊은 사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후손들에게 남겨 줄 것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이러한 가치관은 지역 주민들에게 매우 깊이 뿌리박혀 있다. ... 시민들이 국가와 지역과 지자체의 정치적 권력을 통제하지 않으면 환경 피해를 막을 수 없다. 또한 이웃한 공동체들이 합의하여 동일한 환경 정책을 지지하면 지자체의 법률이 더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180항. (할 수 있는 많은 일들) 획일적 해결책은 없다. 나라와 지역에 고유한 문제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 현실에서는 잠정적 조치나 기술을 시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강제적 의무 조치를 단계별로 수립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국가와 지역 차원에서 에너지 절약 장려와 같은 할 일이 여전히 많다. 여기에는 에너지 효율의 극대화와 원료 사용 절약을 통한 산업 생산 방식의 촉진이 있다. 지역 차원의 정치 활동은 소비의 변화, 쓰레기 처리와 재활용 경제의 발전, 특정 생물종의 보호, 그리고 윤작을 통한 다품종 농업 계획을 추구할 수 있다. 가난한 지역의 농업은 농촌 기반 시설, 지역이나 국내 시장의 조직, 관개 시설, 지속 가능한 농업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로 개선할 수 있다. 새로운 형태의 협력이나 공동체 조직의 촉진으로 소규모 생산자들의 이익을 증진하고 지역 생태계를 착취에서 보호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일들이 정말 많다.
181항. (정책의 연속은 필수) 연속성도 필수적이다. 기후 변화와 관련된 정책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결과를 얻어 내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직접적인 비용이 필요하지만 정부의 임기 내에 뚜렷한 효과를 이끌어 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한 까닭에 국민과 시민단체의 압력이 없으면 당국은 언제나 개입을 꺼릴 것이다. 특히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 건전한 정책이 우선되어 제도 개혁과 조정이 이루어지고 압력과 타성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사회에 고귀하고 탁월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위대한 목표와 가치, 그리고 인본주의적이고 깊은 의미가 있는 이해가 결여된다면 훌륭한 조치도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덧붙여야만 한다.
Ⅲ. 정책 결정 과정의 대화와 투명성
182항. (기업 활동과 사업의 환경 영향 평가) 기업 활동과 사업의 환경 영향 평가는 투명한 정치적 과정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는 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특혜를 통하여 특정 계획의 실제적 환경 영향을 은폐하는 부패는 흔히 정보 제공 의무와 충분한 논의가 결여된 모호한 합의를 이끌어 낸다.
183항. (환경 영향 평가의 시행) 환경 영향 평가는 생산 계획, 어떤 정책이나 계획, 또는 프로그램의 수립 이후에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환경 영향 평가는 처음부터 이루어져야 하며 학제적 방식으로 투명하며 모든 경제적 정치적 압력에서 벗어나 시행되어야 한다. 이 평가는 반드시 노동 조건과 인간의 육체와 정신 건강, 그리고 지역의 경제와 안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발생 가능한 일들을 고려하고 억제가 가능한 부작용을 해결하려는 추가 투자를 현실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된다. 다양한 관점과 해결책과 대안들을 제시할 수 있는 사회 관계자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늘 필요하다. 토론에서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특별히 존중되어야 한다. 모든 관계자의 숙고와 토론을 통한 정책을 수립하려면 환경에 ‘개입’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참여로 모든 사람이 다양한 측면과 여러 위험과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계획에 관하여 처음에 내린 결정에만 머물지 말고 통제나 지속적인 감시 활동도 여기에 포함되어야 한다. 과학과 정치적 토론에는 정직과 진실이 반드시 필요하다.
184항. (계획들에 대한 충분한 분석 필요) 현재 또는 미래의 공동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 위험의 요소가 나타나는 경우 모든 결정은 “여러 가지 가능한 대안들에서 예견되는 위험과 이득을 비교하여 결정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무엇보다 어떠한 계획이 천연자원의 소비 증가, 배출 가스 또는 폐기물의 증가, 쓰레기 증가, 경관이나 보호받아야 하는 생물종의 서식지 또는 공공장소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경우에 특히 요구된다. 일부 계획들에 대하여 충분한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측하지 못한 소음 공해, 조망권 침해, 문화적 가치의 상실, 또는 핵에너지 사용의 영향과 같이 매우 다양한 문제들로 한 지역의 삶의 질이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소비주의 문화는 단기적이고 사적 이익을 우선시하여 졸속 행정 처리나 정보 은폐의 관행을 조장할 수 있다.
185항. (환경 영향 평가 토론시 제기되는 질문들) 어떤 사업에 관한 모든 토론에서 그 사업이 참다운 온전한 발전에 이바지할 것인지를 알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 되어야 한다. 사업의 목적, 이유, 장소, 시기, 방식, 수혜자, 위험요소, 비용, 비용 지불 주체와 방법은? 이러한 검토 과정에서 우선되어야 하는 사안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물이 필수적이지만 부족한 자원이며, 다른 인권들의 행사의 조건이 되는 기본권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특정 지역에 대한 모든 환경 영향 평가에 우선하는 것이다.
186항. (환경 개발에 관한 예방 원칙)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의 선언’(1992년)에는 다음과 같이 내용이 있다. “심각하거나 회복 불가능한 환경 피해의 우려가 있을 경우, 과학적으로 완전히 확실하지 않다는 핑계로 환경 악화 방지를 위한, 비용 효율이 높은 조치의 실행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이 예방 원칙은 스스로를 방어하고 명백한 증거들을 모으는 능력에 한계가 있는 가장 취약한 이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한다. 객관적 정보를 통하여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피해가 예측된다면, 명백한 증거가 없어도 모든 관련 계획은 중단되거나 수정되어야 한다. 이는 입증의 책임을 바꾸어 놓는다. 이러한 경우에는 어떤 계획이 환경과 그곳 주민에게 그 어떤 심각한 피해도 입히지 않는다는 객관적이고 결정적인 증거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187항. (새로운 평가를 위한 토론) 이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모든 기술 혁신을 반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든 이윤이 유일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정보가 추가되어 새로운 판단 요소가 나타나는 경우, 모든 관계자가 참여한 가운데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토론의 결과에 따라 관련 계획의 중단, 변경, 대안이 마련될 수 있다.
188항. (공동선을 위한 솔직하고 열린 토론을 권장)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어려운 환경 문제에 관련한 논의가 있다. 교회가 과학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정치를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거듭 말씀드린다. 그러나 특정한 필요나 이념이 공동선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솔직하고 열린 토론을 권장하고 싶다. Ⅳ. 인간 성취를 위한 정치와 경제의 대화
189항. (정치와 경제는 서로 대화 필요) 정치가 경제에 종속되거나, 경제가 효율 중심의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에 종속되지 말아야 한다. 공동선을 고려할 때 오늘날 정치와 경제는 반드시 서로 대화를 나누며 삶, 특히 인간의 삶에 봉사해야만 한다. 제도 전체의 검토와 개혁을 위한 확고한 결의 없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은행을 구제하고 그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은 금융의 절대적 지배를 재확인하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지배에서는 미래가 없고, 장기간에 걸쳐 많은 비용을 치른 피상적인 회복 이후 결국 새로운 위기가 닥칠 뿐이다. ... 금융 거품은 일반적으로 생산 거품을 야기한다. 결국 사람들이 실물 경제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지만, 실물 경제야 말로 생산의 다각화와 증진을 촉진하고, 기업들이 그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해 주며, 중소기업의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가능하게 한다. (* 실물 경제 :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판매, 소비활동 등과 관련된 경제 활동)
190항. (환경은 재화 가운데 하나) 환경보호는 오로지 금전적인 손익 계산을 바탕으로 해서는 보장될 수 없고 환경은 시장의 힘으로 적절히 보호하거나 증진시킬 수 없는 재화 가운데 하나이다. 이윤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틀 안에서는 자연의 순환, 자연의 쇠퇴와 재생의 시기, 또는 인간의 개입으로 변형될 수 있는 생태계의 복잡함에 대한 생각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게다가 생물 다양성은 기껏해야 착취 가능한 경제적 자원의 창고로 여겨질 뿐이며, 사물들의 실제적 가치, 인간과 문화에 주는 의미, 가난한 이들의 이익과 욕구에 대해서는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191항. (천연자원의 지속 가능한 이용을 증진) 우리는 생산과 소비의 속도를 줄이면 다른 형태의 진보와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천연자원의 지속 가능한 이용을 증진시키려는 노력은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기적으로 볼 때 또 다른 경제적 이익을 낳을 수 있는 투자가 된다. 시야를 넓혀서 보면 혁신적이고 환경에 덜 영향을 미치는 다양화 된 생산 방식이 유익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는 또 다른 가능성의 길을 여는 일이 된다. 인간의 창의성과 진보에 대한 꿈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힘을 새로운 길로 이끄는 것이다.
192항. (생산의 다각화는 환경을 보호) 생산의 다각화는 인간 지성이 창작과 혁신을 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를 마련해 주는 동시에 환경을 보호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 이는 인간의 고귀함을 다시 피워 내는 창의력이 될 것이다. 삶의 질이라는 더 폭넓은 의미에서,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발전 방식을 찾으려는 용기와 책임을 발휘하며 지성을 발휘하는 것이 더 고귀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로운 소비 기회와 즉각적인 이윤만을 위하여 자연을 훼손하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 내는 것은 존엄과 창의력이 모자라는 천박한 일이다.
193항. (검소한 생활 방식을 실천할 자세 필요) 이제 세계의 일부 지역이 불경기를 어느 정도 감수하면서 다른 지역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지원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기술적으로 발전한 사회들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여 좀 더 검소한 생활 방식을 실천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194항. (발전의 개념을 새로 정의하는 것이 필요) 새로운 발전 모델이 나올 수 있도록 우리는 ‘세계적인 개발 모델’을 바꾸어야 한다. 이는 경제의 의미와 경제 목표를 고찰하여 그 역기능과 오용을 바로 잡는 것에 대한 책임 있는 성찰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발전의 개념을 새로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 나은 세상과 전체적으로 더 높은 삶의 질을 이루어 내지 못하는 기술과 경제 발전은 진보로 볼 수 없다. 경제가 성장해도 종종 인간 삶의 질이 실제로 떨어지기도 한다. 환경이 악화되고 식품의 품질이 떨어지며 일부 자원이 고갈되기 때문이다.
195항. (공동의 환경 자원의 이용에 따른 비용 부담) 이윤 극대화의 원칙은 다른 모든 시각을 외면하며 경제 개념을 왜곡한다. 이는 생산이 늘기만 한다면 미래 자원이나 환경의 건강을 희생시키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벌채가 생산을 증가시킨다면 한 지역의 사막화, 생물 다양성의 훼손, 오염의 증가로 발생하는 손실은 생각하지 않는다. 공동의 환경 자원을 이용하는 데에 드는 경제적 사회적 비용은 다른 민족이나 미래 세대가 아니라 그 이용자가 온전히 부담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할 때에만 윤리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196항. (보조성의 원리) 우리는 보조성의 원리를 기억한다. 이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 존재하는 능력을 발전시키는 자유를 보장하면서 또한 더 많은 권력을 지닌 이들이 공동선을 위하여 더 큰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일부 경제 부문이 국가보다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가 결여된 경제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러한 경제는 현재 위기의 다양한 측면들을 지배하는 다른 논리를 촉진할 수 있다. 환경에 대한 참된 배려가 없는 논리는 사회의 가장 취약한 이들의 통합에 대한 관심이 없는 논리이다. (* 보조성의 원리는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정신을 기반으로 한다. ‘공동선’을 목표로 하고 ‘연대성의 원리’를 전제로 한다)
197항. (새로운 통합적 접근을 하는 정치) 우리는 폭넓은 시각으로 위기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하여 대화를 포함한 새로운 통합적 접근을 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흔히 정치는 올바른 공공 정책의 부재와 부패에 따른 불신에 스스로 책임을 지게 된다. 한 지역 국가가 본분을 다하지 못하면 일부 기업 집단이 후원자를 자처하며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며, 스스로 어떤 규정들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조직범죄, 인신매매, 마약매매, 폭력과 같은 근절시키기 어려운 모든 형태의 범죄들을 일으키는 데에 이른다. 정치가 왜곡된 논리를 깨어버릴 수 없고,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인류의 주요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참다운 변화를 위한 전략에는 전체 과정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198항. (공동선을 지향하는 상호 작용의 방법 찾기) 정치와 경제는 빈곤과 환경 훼손에 대해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와 경제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공동선을 지향하는 상호 작용의 방법을 찾기를 바란다. 한쪽은 경제적 수익만을 추구하고 다른 한쪽은 권력의 유지나 확대에만 집착한다면 결국 남은 것은 전쟁이든지 아니면 정치와 경제 양자가 맺는 불순한 협약이다. 여기서도 “일치는 갈등보다 우월하다”라는 것이 사실이다. Ⅴ. 과학과 종교의 대화
199항. (종교적 고전들은 모든 시대에 중요한 의미) 종교적 고전들이 모든 시대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러한 저술들은 새로운 지평을 연다. 오로지 특정 저술들이 종교적 신념의 맥락에서 생겨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어둠 속에 폐기시키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명한 일인가? 사실 윤리 원칙들이 모든 현실 상황을 벗어나 순전히 추상적으로 성립한다는 생각은 너무나 단순하다. 윤리 원칙들이 종교적 언어로 표현된다고 해서 공개 토론에서 그 가치가 줄어들지 않는다. 이성이 파악할 수 있는 윤리 원칙들은 언제든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고 종교적 언어를 포함하여 다양한 언어로 표현될 수 있다.
200항. (우리가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지혜의 보고) 인류가 길을 벗어난다면, 곧 공동생활, 희생, 선을 가능하게 해 주는 위대한 동기들을 망각한다면, 과학이 내세우는 모든 기술적 해결책은 세계의 심각한 문제들의 해결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믿는 이들이 자신의 신앙과 일치된 삶을 살면서 신앙에 모순되는 행동을 하지 말도록 촉구해야 한다. 이들이 하느님의 은총에 마음을 다시 활짝 열고 사랑과 정의와 평화에 대한 자신의 깊은 신념에서 힘을 얻도록 권유해야 한다. 우리의 원칙들을 잘못 이해하여 종종 자연을 착취하거나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횡포, 또는 전쟁과 불의와 폭력을 정당화하여 왔다면, 우리 믿는 이들은 이러한 행동이 우리가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지혜의 보고(寶庫)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종교가 오늘날 요구에 더욱더 잘 응답하려면 바로 그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201항. (공동선을 위한 여러 분야의 대화 필요) 자신을 신앙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자연보호, 가난한 이들의 보호, 존중과 형제애의 관계망 구축을 목적으로 하는 대화를 서로 나누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학문들 사이의 대화도 역시 시급하다. 각각의 학문은 자기 언어의 한계 안에 즐겨 머물려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문화는 고립과 개별 지식의 절대화를 낳은 경향이 있다. 이는 환경 문제를 적절히 다루는 것에 방해가 된다. 또한 서로 이념 투쟁도 하는 여러 생태 운동들 사이의 공개적이고 우호적인 대화도 필요하다. 생태 위기의 심각성은 우리 모두 공동선을 생각하고 언제나 “실재가 더 중요하다.”는 원칙을 기억하며 인내와 절제와 관용을 필요로 하는 대화의 길로 나아갈 것을 요청한다.
[ 제6장. 생태 교육과 영성 ]
202항. (인류가 공통된 기원을 지니고 있다는 인식) 많은 것의 나아갈 방향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인류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 우리는 인류가 공통된 기원을 지니고 있고 서로에게 속해 있으며 미래를 함께한다는 인식이 부족하다. 이러한 기본 인식이 있어야 새로운 신념,자세, 생활양식을 이끌어 낼 수 있다.
Ⅰ. 새로운 생활양식을 향하여
203항. (강박적 소비주의를 촉진하는 경향) 시장이 상품 판매를 위하여 강박적 소비주의를 촉진하는 경향이 있기에, 사람들은 과잉 구매와 불필요한 지출을 하는 집착적 소비주의의 소용돌이에 빠지기 쉽다. 과르디니가 지적한 대로 사람들은 “합리화된 계획과 기계로 만든 규격화된 상품이 강요하는 대로 생활용품을 구매하고 삶의 양식을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대체로 그것이 현명하고 옳은 것이라고 느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모든 사람이 이른바 소비의 자유를 누리는 한 자신이 자유롭다고 믿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유를 누리는 이는 경제적 금전적 힘을 휘두르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보잘 것 없고 헛된 목적을 위한 수단들을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있다.
204항. (소비 지향적 생활양식에 대한 집착의 결과) 사람들이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의식 안에 머물 때 탐욕이 커지기 마련이다. 마음이 공허할수록, 사람들은 구매하고 소유하고 소비할 대상을 더욱 필요로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참다운 공동선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가 한 사회 안에 만연할수록, 사회 규범들은 개인욕구와 상충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존중된다. 따라서 우리는 엄청난 기상 이변이나 커다란 자연 재해의 위협에만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사회 위기에서 비롯되는 참사에 대해서도 생각해야만 한다. 소비 지향적 생활양식에 대한 집착은 폭력과 상호 파괴만을 가져올 뿐이다.
205항. (모든 이는 자신의 존엄을 인식) 인간은 최악의 것을 자행할 수 있지만, 또한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정신적 사회적 제약을 극복하여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시 선을 선택하여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을 솔직하게 살펴보고, 강력하게 불만을 제기하고, 참자유를 향한 새로운 길에 나설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이에게 자신의 존엄을 잊지 말도록 호소한다. 이무도 이 존엄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
206항. (소비자의 사회적 책임) 생활양식을 바꾸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들에게 건전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 운동은 특정상품의 불매로 기업의 형태를 바꾸는데 영향을 미쳐 기업이 환경 영향과 생산 방식을 재검토하도록 한다. 사회 관습이 기업의 이익을 위협하게 되면, 기업은 생산 방식을 바꾸라는 압력을 받게 된다. 이는 소비자의 사회적 책임을 일깨워 준다. 오늘날 환경의 훼손 문제는 우리의 생활양식을 반성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207항. (국제연합의 지구 헌장) ‘지구 헌장(2000.6.29.)’에서는 우리 모두에게 자기 파괴의 단계를 벗어나 새 출발을 하도록 권유한다.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공동 운명이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의 추구를 요청한다. 우리 시대가 생명에 대한 새로운 경외를 일깨우고 지속 가능성을 이룩하려는 확고한 결심을 하며, 정의화 평화를 위하여 투쟁하고 삶의 흥겨운 축제를 위하여 노력한 때로 기억되도록 하자.”
208항. (자기 초월의 근본 자세) 모든 형태의 자기중심성과 자아도취를 거부하는 자기 초월의 근본 자세는 다른 사람들과 환경에 대한 모든 관심의 바탕이 된다. 이러한 자세는 또한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모든 행동과 모든 개인적 결정의 영향을 숙고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불러일으킨다. 개인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대안적 생활양식을 효과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고 사회에 중요한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Ⅱ. 인류와 환경이 맺은 약속에 대한 교육
209항. (젊은이들에 대한 교육적 도전에 직면) 오늘날 문화와 생태 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새로운 습관으로 이어져야 한다. 소비 습관에 커다란 변화가 필요한 국가들에게서, 젊은이들은 새로운 생태 감각과 관용의 정신을 지니며, 그런 가운데 일부는 환경 보호를 위하여 훌륭히 싸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습관들이 자라나기 힘든 지나치게 많은 소비와 풍요로운 상황 안에서 자랐다. 그래서 우리는 교육적 도전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210항. (환경 교육 목표의 점차 확대) 환경 교육의 목표가 점차 확대되었다. 환경 교육이 초기에는 학문적 정보, 의식화, 환경 위기 예방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개인주의, 무한한 진보, 경쟁, 소비주의, 규제 없는 시장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는 경향이 있다. 또 생태적 균형의 다양한 단계의 회복도 추구한다. 곧 내적으로는 우리 자신과, 연대의 차원에서는 다른 이들과, 자연의 차원에서는 모든 살아 있는 것과, 영적으로는 하느님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생태 교육은 신비이신 분을 향한 도약을 이루도록 해주어야 한다. 신비이신 분께서는 환경 윤리에 가장 깊은 의미를 주신다. 또한 교육자들이 생태 윤리의 교육 방법을 새로 고안하여 연대와 책임, 그리고 연민에 바탕을 둔 배려를 함양하는 데에 현실적 도움을 줄 수 있다.
211항. (환경에 대한 책임 교육) 작은 일상적 행동으로 피조물 보호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참으로 고결한 일이다. 교육이 생활양식의 참다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환경에 대한 책임 교육은 환경 보호에 직접적이고 중요한 영향을 주는 다양한 행동을 고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이나 종이의 사용을 삼가고, 물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적당히 먹을 만큼만 요리하고, 생명체를 사랑으로 돌보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승용차 함께 타기를 실천하고, 나무를 심고, 불필요한 전등을 끄는 것이다. 뜻 깊은 동기에서, 물건을 쉽게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존엄을 표현하는 사랑의 행위가 될 수 있다.
212항. (행동의 실천으로 자존감을 회복) 이러한 행동은 사회에 선을 퍼뜨려 우리가 가늠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결실을 가져온다. 그러한 노력은, 때로 눈에 잘 뜨이지 않지만 늘 확산되는 경향이 있는 선을 이 세상에 불러일으킨다. 더 나아가, 그러한 행동의 실천으로 우리는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우리 삶의 깊이를 더하고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사실을 체험하게 해 준다.
213항. (가정은 인격 성숙의 온전한 교육의 자리) 교육은 학교, 가정, 커뮤니케이션 매체, 교리 교육과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어릴 때에 좋은 학교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씨가 뿌려져 평생 그 효과를 거두게 된다. 가정에서 우리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보여 주는 법을 처음 배운다. 예를 들어, 사물의 올바른 사용, 질서, 청결, 지역 생태계 존중, 모든 피조물 보호를 배운다. 가정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다양한 측면의 인격 성숙이 이루어지는 온전한 교육의 자리이다. 가정에서 우리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배운다. 또한 공격성이나 욕심을 통제하며, 해를 끼쳤을 때 용서를 청하는 법을 배운다. 이러한 진심 어린 작은 친절한 행동이 더불어 사는 문화와 우리 주변을 존중하는 문화의 건설에 도움이 된다.
214항.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역할) 정치와 여러 사회단체들도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도록 해야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이러한 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환경 훼손을 막으려면 권력 기관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 절제하고 서로 가르치는 것도 필요하다.
215항. (사고방식이 행동에 영향) 우리가 근본적인 변화를 바란다면, 사고방식이 우리 행동에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인간, 생명, 사회,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한 새로운 틀을 촉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교육은 아무런 효과가 없고 교육적 노력도 열매를 거두지 못한다.
Ⅲ. 생태적 회개
216항. (생태 영성에 관한 몇 가지 제안) 그리스도교 영성의 풍요로운 유산은 이천 년에 걸친 개인과 공동체 체험의 결실로 인류를 쇄신하려는 노력에 값진 도움이 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 신앙의 확신에서 솟아나는 생태 영성에 관하여 몇 가지를 제안한다.
217항. (생태적 회개) 환경 위기는 깊은 내적 회개를 요청하고 있다. 신심이 깊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일부는 현실주의와 실용주의를 내세워 환경에 대한 관심을 우습게 여기고 있음도 인정해야 한다. 또 일부는 수동적이어서 자신의 습관을 바꾸려는 결심을 하지 않고 일관성도 없다. 따라서 이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생태적 회개이다. 이는 예수님과의 만남의 결실이 그들을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에서 온전히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 작품을 지키는 이들로서 우리의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 성덕 생활의 핵심이 된다. 이는 그리스도인 체험에서 선택적이거나 부차적인 측면이 아니다.
218항. (참된 회개와 내적 변화) 우리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을 기억하며 피조물과 맺는 건전한 관계가 인간의 온전한 회개의 한 차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는 또한 자신의 잘못이나 죄, 악습, 태만의 인정, 그리고 참된 회개와 내적 변화를 요청한다. 우리는 회개, 곧 마음을 바꾸는 경험이 필요하다.
219항. (결집된 힘과 일치된 노력) 사회 문제들은 단순히 개인적 선행의 총합이 아니라 공동체의 협력망을 통하여 해결해야 한다. 이 임무는 인간에게 엄청난 과제이기에 개인적 노력이나 개인주의적으로 자란 인간들이 연합하여 노력을 기울여도 완수할 수 없다. 여기에는 결집된 힘과 일치된 노력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변화를 이루는 데에 필요한 생태적 회개는 공동체의 회개이기도 하다.
220항. (감사와 무상성의 태도) 이러한 회개에는 여러 가지 태도가 필요한데, 이러한 태도들이 서로 어우러져 관대하고 부드러움이 넘치는 환경 보호의 정신을 촉진하는 것이다. 먼저 감사와 무상성(無償性)의 태도가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으로 선물하셨기에 우리도 대가를 바라지 않으면서 포기하고 누가 보거나 인정하지 않더라도 관대한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다. ... 생태적 회개는 하느님께서 신자들에게 주신 고유한 능력을 증진시켜 주어, 창의력을 전개하고 열정을 북돋우게 하며,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하느님께 자신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마12,1)로 봉헌할 수 있도록 한다.
221항. (모든 피조물과 이루는 숭고한 형제애의 증진) 이 회칙의 서두에서 제시한 우리 신앙에 대한 여러 확신들이 그러한 회개의 의미를 풍부하게 해준다. 여기에는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모습을 어느 모로 반영하며 우리를 가르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인식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 물질세계에 오시고 이제 부활하시어 모든 존재의 내면에 현존하시며 사랑으로 감싸 주시고 당신 빛으로 감싸 주신다는 확신이 포함된다. 또한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며 그 안에 인간이 무시하지 말아야 하는 질서와 역동성을 되새겨 주셨다는 인식도 포함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회개의 이 차원을 분명히 드러내어, 우리가 받은 은총의 힘과 빛이 다른 피조물과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맺는 관계에서도 펼쳐지기를 바란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그토록 훌륭하게 실천하신 모든 피조물과 이루는 숭고한 형제애의 증진에 이바지할 것이다. Ⅳ. 기쁨과 평화
222항. (절제와 검소함) 그리스도교 영성은 삶의 질을 이해하는 다른 방식을 제안하고, 소비에 집착하지 않고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예언적이고 관상적인 생활방식을 독려한다. 우리는 성경을 포함하여 다양한 종교 전통 안에 담겨 있는 오래된 가르침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곧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라는 확신이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절제를 통하여 성숙해지고 적은 것으로도 행복해지는 능력을 제안한다. 이는 바로 검소함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검소함은 우리가 작은 것들의 진가를 차근차근 알아 볼 수 있게 하고, 삶이 우리에게 주는 기회들에 감사하면서 내 것에 집착하지 않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하여 탄식하지도 않게 한다.
223항. (의식적으로 실천하는 절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의식적으로 실천하는 절제는 우리를 해방시킨다. 이는 부족한 삶도 아니고 열정이 없는 삶도 아니다. 이는 오히려 정반대이다.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특히 다른 것에서 즐거움을 찾고 형제적 만남, 봉사, 능력 개발, 음악과 미술, 자연과의 만남, 기도 안에서 만족할 때 그러하다. 행복하려면 우리를 마비시키는 특정한 욕구들을 억제하는 법을 알고, 삶이 주는 많은 다른 가능성들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224항. (모든 위대한 가치들을 촉진하고 결합) 우리는 인간 생활의 온전(穩全)함에 대하여 당당히 이야기하고, 모든 위대한 가치들을 촉진하고 결합해야 할 필요성을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 우리가 겸손하지 못하고 인간이 아무런 제한 없이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신하게 되면 결국 사회와 환경에 해를 입히게 될 뿐이다. 우리가 자립적이 되어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이 배제되고 우리의 자아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 그리고 선악을 판단하는 우리의 주관성을 신뢰한다면 앞에서 말한 건전한 겸손이나 행복한 절제의 증진이 쉽지 않을 것이다.
225항. (내적 평화는 생태계 보호와 공동선과 밀접한 관계) 어느 누구도 스스로 평화롭지 않고서는 절제하면서도 만족한 삶을 이룩할 수 없다. 영성에 대한 바른 이해는 평화가 전쟁이 없는 상태보다 더 넓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는 것과 부분적으로 관련된다. 내적 평화는 생태계 보호와 공동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제대로 이루어진 내적 평화는, 삶의 깊이로 이끄는 경탄의 능력이 함께하는 조화로운 생활양식에 반영된다. 통합 생태론에는 피조물과 평온한 조화를 되찾고, 우리의 생활양식과 이상에 대하여 성찰하며, 우리 가운데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것들 안에 살아 계신 창조주를 바라보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포함된다. 그분의 현존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고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226항. (차분한 태도로 살아가기) 우리는 태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는 차분한 태도로 살아가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걱정하지 않고 지금 누군가와 온전히 함께할 수 있으며, 순간순간을 하느님의 선물로 여겨 충만하게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에 핀 나리꽃과 하늘의 새들을 바라보라고 권유하셨을 때나, 당신께 질문하는 부자 청년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마르10,21) 말씀하셨을 때에 그러한 자세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간과 피조물과 온전히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피상적이고 공격적이며 충동적인 소비자로 만드는 병적인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227항. (식사 전후의 감사기도) 식사 전후에 잠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이러한 태도를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모든 신자가 이 소중한 관습을 받아들여 내면화하기를 바란다. 비록 짧지만 이러한 축복받은 시간은 우리의 생명을 하느님께 의존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또한 우리에게 피조물을 선물하신 것에 대하여 더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해 주고, 노동을 통하여 이 음식을 우리에게 마련해 준 이들을 떠올리게 하며, 가장 궁핍한 이들과의 연대를 재확인시켜 준다.
Ⅴ. 사회적 사랑과 정치적 사랑
228항. (보편적 형제애) 자연을 돌보는 일은, 더불어 사는 삶과 친교의 능력을 포함하는 생활양식의 일부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시며 그래서 우리가 형제자매임을 일깨워 주셨다. 형제애는 대가가 없는 것이어야만 하기에, 결코 다른 이들이 우리에게 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이나 앞으로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주는 선금과 같은 것일 수는 없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바로 이렇게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지만 바람과 태양과 구름을 사랑하고 받아들이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보편적 형제애를 논할 수 있다.
229항. (타인과 세상에 대한 책임)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타인과 세상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착하고 성실한 것이 가치 있음을 다시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너무 오랫동안 윤리, 선, 신앙, 정직을 비웃으며 도덕적 타락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쾌락적 피상성(皮相性)이 우리에게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회생활의 기초가 무너지면, 인간이 개인적 이익을 지키려고 서로 다투게 되고, 새로운 형태의 폭력과 잔인함이 발생하며, 환경 보호를 위한 참다운 문화의 증진에 저해된다. (* 피상성 :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현상에만 관계하는 성질)
230항. (평화와 우정의 씨앗을 뿌리는 작은 몸짓들) 리지외의 데레사(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우리가 사랑의 작은 길을 가고, 평화와 우정의 씨앗을 뿌리는 친절한 말, 미소, 모든 작은 몸짓을 소홀히 하지 말 것을 권유한다. 또한 온전한 생태계는 폭력, 착취, 이기주의의 논리를 타파하는 단순한 일상 행위로 이루어진다. 이와는 반대로, 광란의 소비 세계는 모든 형태의 생명을 착취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231항. (사회에 대한 사랑과 공동선에 대한 투신) 서로를 돌보는 작은 몸짓으로 넘치는 사랑은 사회적 정치적 사랑이 되며,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모든 행동으로 드러난다. 사회에 대한 사랑과 공동선에 대한 투신은 개인들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정치 차원의 거시적 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애덕의 탁월한 표현이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에 ‘사랑의 문명’이라는 이상을 제시한 것이다. 사회적 사랑은 참다운 진보를 위한 열쇠이다. 더욱 인간답고 더욱 인간에게 걸맞은 사회를 만들려면 사회생활(정치, 경제, 문화)에서 사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야 하며, 사랑이 지속적으로 모든 활동의 최고 규범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상의 작은 몸짓들의 중요성과 더불어 사회적 사랑이 우리를 이끌어 우리가 환경 훼손을 효과적으로 막고 돌봄의 문화가 온 사회에 스며들도록 장려한다.
232항. (자연과 도시의 환경보호 단체 활동) 자연과 도시의 환경을 보호하면서 공동선을 위하여 활동하는 수많은 다양한 단체들이 사회 안에서 꽃피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단체는 건물, 분수, 방치된 기념물, 경관, 광장과 같은 공공장소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모든 사람에게 속한 것의 보호, 청결, 개선, 미화를 위하여 노력한다. 이들 주변에서는 유대가 수립되거나 회복되며 새로운 지역 사회 관계망이 형성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공동체는 소비 주의적 무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집에서 우리가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동체 활동은 자기 자신을 내주는 사랑을 표현할 때에 강렬한 영적 체험이 될 수 있다.
Ⅵ. 성사의 표징과 주일의 휴식
233항. (이상적인 관상에 이르게 하는 법) 세상은 모든 것을 온전히 채워 주신 하느님 안에서 펼쳐진다. 따라서 나뭇잎, 길, 이슬, 가난한 이의 얼굴에 신비가 담겨 있다. 이상적(理想的)인 관상은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활동을 찾고자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데에 이르는 것이다. 보나벤투라 성인은 “우리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 은총의 활동을 더 깊이 느끼고 외부의 피조물들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법을 더 잘 이해하면 관상이 더 완전해진다.”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234항. (실재들 하나하나 안에 계시는 하느님) 십자가 요한 성인의 가르침대로, 이 세상 실재들과 경험들 안에 있는 모든 선함은 ‘하느님 안에 탁월하게 무한히 현존한다. 더 정확하게는, 이 숭고한 실재들 하나하나 안에 하느님께서 계시는 것’이다. 산의 웅장함에 경외를 느끼는 이는 이 경험을 하느님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없고 자신이 체험하는 이 내적 경탄을 주님께 바쳐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235항. (성사는 초자연적 생명을 전달해 주시는 수단) 성사들은 하느님께서 어떻게 자연을 받아들여서 초자연적 생명을 전달해 주시는 수단으로 삼으시는지를 보여 주는 특권적인 방식이다. 경신례를 통하여 우리는 세상을 또 다른 차원에서 받아들이도록 초대한다. 물, 기름, 불, 색깔은 그 모든 상징적 힘과 더불어 우리의 찬미에 포함된다. 강복하는 손은 하느님 사랑의 도구로 삶의 여정에 우리와 함께하시고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친밀함을 반영한다. 세례 때에 어린이 몸에 붓는 물은 새 생명의 표징이다. ... “그리스도교는 물질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육체성은 전례의 행위 안에서 그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는다. 전례에서 인간의 몸은 성령의 성전으로서 그 내적 본질을 드러내며,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육신을 취하신 바로 주 예수님과 결합된다(‘동방의 빛’ 11항)”.
236항. (성찬례는 그 자체로 우주적 사랑의 행위) 피조물들은 성찬례 안에서 가장 탁월하게 드높여진다. 성찬례 안에 현존하시는 강생하신 아드님과 하나 되어 온 세상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사실 성찬례는 그 자체로 우주적 사랑의 행위이다. “성찬례는 시골 성당의 초라한 제대에서 거행될 때에도 어떤 면에서는 늘 세상의 제대에서 거행되기 때문이다.” 성찬례는 하늘과 땅을 이어 준다. 성찬례는 모든 피조물을 품고 그 안에 스며든다. 하느님의 손에서 나온 세상이 복되고 온전한 경신례로 하느님께 되돌아간다. 성찬례는 또한 환경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위한 빛의 원천이며 우리가 모든 피조물의 관리자가 되도록 이끌어 준다.
237항. (주일 성찬례 참여의 특별한 중요성) 주일 성찬례 참여는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다. 주일은 유다교의 안식일처럼, 우리가 하느님과의 관계, 우리 자신과의 관계,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를 치유하는 날로 지내야 한다. 주일은 ‘부활의 날’, 새 창조의 ‘첫날’이다. 이 새 창조의 맏배는 주님의 부활하신 인성으로 피조 세계 전체의 결정적 변모에 대한 약속이다. 나아가 주일은 인간이 하느님 안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을 선포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리스도교 영성은 안식의 가치와 축제의 가치를 결합시킨다. ... 성찬례를 중심으로 하는 안식일은 주간 전체에 빛을 비추고 우리가 자연과 가난한 이에게 더 큰 관심을 기울이도록 고무한다.
Ⅶ. 삼위일체와 피조물들의 상호 관계
238항. (세상은 삼위께서 창조) 세상은 삼위(성부 성자 성령)께서 창조하셨다. 삼위께서는 하나의 신적 근원에서 나오셨지만 각각의 위격에 따라 함께 창조하신 것이다. 따라서 세계를 그 장엄함과 아름다움에 경탄하며 관상할 때, 우리는 온전하신 삼위일체께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239항. (고유한 삼위일체 구조를 담고 있는 모든 피조물) 삼위일체의 친교를 이루시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삼위께서 모든 실체 안에 그 표징을 남겨 두셨다고 생각한다. 보나벤투라 성인께서는 모든 피조물은 그 안에 고유한 삼위일체 구조를 담고 있으며 실제로 인간의 시야가 그토록 좁고 어둡고 취약하지 않았다면 이를 쉽게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이렇게 그분은 삼위일체의 열쇠로 현실을 읽도록 노력하라고 우리를 채근하신다.
240항. (삼위일체의 신비에서 흘러나오는 세계적 연대의 영성) 인간은 자신에게서 벗어나 하느님, 타인, 모든 피조물과 친교를 이루어 살면서 관계를 맺을수록 더욱 성장하고 성숙하며 거룩해진다. 이러한 방식으로, 인간은 창조되었을 때부터 하느님께서 그 내면에 새겨 주신 삼위일체의 역동성을 받아들인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는 우리가 삼위일체의 신비에서 흘러나오는 세계적 연대의 영성을 기르도록 초대한다.
Ⅷ. 모든 피조물의 모후
241항. (성모님은 모든 피조물의 모후) 예수님을 돌보신 성모 마리아께서 이제 이 상처 입은 세상을 모성애로 함께 아파하며 돌보신다. 성모님께서는 이제 예수님과 함께 사시고, 모든 피조물은 그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성모님께서는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의 별로 된 관을 쓴”(묵시 12,1) 여인이시며 하늘로 들어 올려지시어 모든 피조물의 모후가 되신다. 영광스러운 몸이 되신 성모님께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계시며, 피조물이셨던 분으로서 그 완전한 아름다움에 이르게 되셨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전 생애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셨을 뿐 아니라, 이제는 모든 것의 의미를 이해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더 지혜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우리를 도와주시도록 성모님께 간청할 수 있다.
242항. (요셉 성인은 보편 교회의 수호자) 나자렛의 성가정에서 마리아의 곁에는 요셉 성인께서
계신다. 그분은 노동하는 자애로운 삶으로 마리아 예수님을 돌보고 보호하셨다. 복음은 요셉을 의롭고 근면하며 강인한 사람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그분은 깊은 자애도 보여 주시는데 이는 약한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강한 사람의 특징이다. 그런 사람은 현실에 주의를 기울이며 겸손하게 사랑하고 봉사한다. 이러한 연유로, 요셉 성인께서 보편 교회의 수호자로 선포되신 것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돌보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다.
Ⅸ. 태양 너머
243항. (하늘나라에 있는 공동의 집을 향하여) 마침내 우리는 하느님의 한없는 아름다움을 얼굴을 맞대듯 마주할 것이고 세상의 신비를 경탄하고 기뻐하며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세상도 우리와 함께 그 무한한 충만에 함께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영원의 안식일을 향하여, 새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늘나라에 있는 공동의 집을 향하여 나아가는 여정에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21,5)”. 영원한 삶은 우리가 함께 나누는 하나의 경이가 될 것이다. 그 삶 속에서 눈부시게 변모된 피조물들은 자신의 자리를 찾고, 궁극적으로 해방된 가난한 이들에게 어떤 이바지를 하게 될 것이다.
244항. (우리에게 맡겨진 공동의 집을 일치하여 돌보기)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세상에 있는 좋은 것은 모두 하늘나라의 잔치에도 받아들여질 것임을 인식하여 우리에게 맡겨진 이 집을 돌보는 데에 일치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느님을 찾아 이 땅에서 걸어가고 있다. “이 세상에 시작이 있다면 또 세상이 창조된 것이라면, 우리는 시작하신 분, 창조주이신 분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구를 위한 우리의 투쟁과 염려가 결코 우리 희망의 기쁨을 앗아 가지 못한다.
245항. (우리를 매우 사랑하시는 생명의 주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아낌없이 내어 주라고 권유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필요한 힘과 빛을 주신다. 우리를 매우 사랑하시는 생명의 주님께서는 늘 이 세상의 중심에 현존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잊어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신다. 그분의 사랑은 우리가 새로운 길을 찾게 언제나 우리를 이끌기 때문이다. 주님, 찬미받으소서!
246항. (두 가지 기도 바치기를 제안) 기쁨과 고뇌가 담긴 이 긴 성찰을 마치며, 두 가지 기도를 바치기를 제안한다. 하나는,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와 함께 드릴 수 있는 기도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복음이 제시하는 피조물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도록 청하는 기도이다.
(두 가지 기도 :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 그리스도인들이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기도)
<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 >
전능하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온 세계에 계시며 가장 작은 피조물 안에 계시나이다.
하느님께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온유로 감싸 안으시며 저희에게 사랑의 힘을 부어 주시어
저희가 생명과 아름다움을 보살피게 하소서. 또한 저희가 평화로 넘쳐 한 형제자매로 살아가며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게 하소서.
오, 가난한 이들의 하느님,저희를 도와주시어 저희가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소중한 이들, 이 지구의 버림받고 잊힌 이들을 구하게 하소서.
저희 삶을 치유해 주시어 저희가 이 세상을 훼손하지 않고 보호하게 하시며 오염과 파괴가 아닌
아름다움의 씨앗을 뿌리게 하소서.가난한 이들과 지구를 희생시키면서이득만을 추구하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소서.저희가 하느님의 영원한 빛으로 나아가는 여정에서모든 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경외로 가득 차 바라보며모든 피조물과 깊은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깨닫도록
저희를 가르쳐 주소서,하느님, 날마다 저희와 함께해 주시니 감사하나이다.비오니, 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위한 투쟁에서저희에게 힘을 주소서.
< 그리스도인들이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기도 >
아버지, 전능하신 아버지의 손으로 빚으신 모든 피조물과 함께 찬미하나이다.
모든 피조물은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현존과 온유로 충만하나이다.
찬미받으소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 주님에게서 만물이 창조되었나이다.
주님께서는 성모 마리아께 잉태되시어 이 땅에 속하시며
인간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셨나이다.
주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부활하신 분의 영광으로 모든 피조물 안에 살아 계시나이다.
찬미받으소서!
성령님, 성령께서는 당신의 빛으로 이 세상을 아버지의 사랑으로 이끄시며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피조물과 함께하시나이다.
또한 성령께서는 저의 마음 안에 머무르시며 저희를 선으로 이끄시나이다.
찬미받으소서!
삼위일체이신 주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한없는 사랑의 놀라운 친교를 이루시는 분이시니
모든 것이 하느님을 이야기하는 세계의 아름다움 안에서 저희가 하느님을 바라보도록
가르쳐 주소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존재에 대하여 저희가 찬미와 감사를 드리도록
일깨워 주소서. 저희가 존재하는 모든 것과 내적 일치를 느끼도록 저희에게 은총을 내려 주소서.
사랑의 하느님, 이 세상에 저희에게 맞갖은 자리를 보여 주시어 저희가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위한 하느님 사랑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하느님께서 기억하지 않으시는
존재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나이다. 권력과 재물을 소유한 이들을 깨우쳐 주시어 무관심의
죄를 짓지 않게 하시고 공동선에 호의적이며 약한 이들을 도와주고 저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돌보게 하소서. 가난한 이들과 이 땅이 절규하고 있나이다.
주님, 주인의 힘과 빛으로 저희를 붙잡아 주시어 저희가 모든 생명을 보호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마련하여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아름다움의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찬미받으소서! 아멘
- 로마 성 베드로 좌에서 교황 재위 3년 2015년 5월24일 프란치스코
#095 독서 메모 끝.
[ 금주의 독서 메모 ] 목록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 이전의 독서 메모 ]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 다음의 독서 메모 ]는 여기를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