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의 독서 메모 ] 75권-80권







- 금주의 독서 메모 075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2.04.03.

[ 책 이름 : 아담의 비탄 ]

- 지은이 : 벨퐁뗀느 수도원 엮음
- 옮긴이 : 에드워드 브조스토프스키 역(譯), 홍윤숙 중역(重譯)
- 지은이 프로필 : 그리스 아토스의 수도자 실완(SILOUANE)
- 펴낸데 : 성바오로출판사, 출판일 : 1990년 9월 25일
- 내용 : 아토스의 수도자 실완의 생애와 영성, 그리고 수기(手記) 모음집


[ 표지의 글에서 ]

그렇게 해서 그의 영적 싸움이 끝나갈 즈음에는 실완은 결코 절망하는 일이 없었고
하느님의 사랑을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을 괴롭히고 지치게 하며
평화를 깨뜨리는 그 망상으로부터 해방되는 방법은 찾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은총의 주님께 그 일에 대하여 비탄하며 기도하고 있었을 때 마침내 하느님께로
부터 대답을 얻게 되었다. 그 대답은 그의 마음의 평안, 겸손과 내적 침묵의 평안을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주님께선 “의식하며 지옥의 고통 속에 머물러라. 그러나
결코 절망해서는 안 된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하느님의 말씀이야말로 그에게
주시는 명령이었으며 그의 생애를 결정적으로 방향지어 완전한 겸손과 평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비춰주신 하느님의 빛이었다. - 본문 중에서


[ 다시 옮기는 말 ]

- 이 글을 대하고 있는 동안 한 수도자의 내심의 발자취, 그 영혼이 지나간 길목들을
따라가면서 나는 참으로 형용하기 어려운 감동에 수없이 머리를 숙였습니다. 가령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길을 청빈으로 보여주셨다면 여기 동방교회의
한 숨은 은수자와 같은 실완 성인은 겸손으로 응축시켜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길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실로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 겸손하지 않고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음을 절절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끊임없는 감동의
재생이야말로 바로 삶의 동력입니다. 만일 누구든 우연히 이 글을 대하는 기회를
갖는다면 그는 한 순간이나마 자기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며, 다시 한 번
이글을 읽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는 자신 앞에 서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한 순간이나마
만나 보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동바교회의 한 성인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잊었던
하루를, 하루의 삶과 의미와 방향을 다시 한 번 찾아 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홍 윤숙


[ 책머리에 ]

- 1981년 2월 성지순례 길에 올랐을 때, 나는 ‘실완’이라고 하는 한 수도자를 만났
었는데 그의 모습에 감동한 나머지 실완이라고 하는 30~40년 전의 성산 아토스의
수도자가 어떠한 경력의 인물이었는지를 자세하고 알고 싶어진 것이 이 수기를 입수
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완에 대하여 그 같은 친근감을 갖게 된 것은 마침 그 무렵 내가
찾고자 하던 것을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전부터 동방 그리스도교의 전례에 매력을 느껴 동방교회의 전통적인 ‘예수의 기도’를
나의 기도로 삼고자 조금이나마 노력하고 있었던 탓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실완의
영적 체험을 통한 메시지는 나를 강렬하게 매혹시키고 말았다.

나는 사제서품을 받은지 27년, 일본에 온 지 20년이 되며 천기 시(市) 천전 교회에
부임한지 11년이 된다. ... 일본어뿐 아니라 문화, 역사, 종교, 문학 등을 배울 필요성을
느껴 의숙대학의 통신강좌도 수강했다. 교회의 보좌신부, 주임신부로서 최선을 다하여
뛰기도 했다. 비그리스도인과 노동자, 여러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회 활동가와의 유대를
가지려고도 했다. ... 1980년 12월 휴가를 얻어 프랑스에 잠시 돌아갔었다.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호세 2,16)
에 귀를 기울였고, “주여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습니다.” 하며 결심을 굳히고 있었을 때
아토스의 수도자 실완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 그때 실완의 모습은 나를 놀라게
하고 감동시키고 하느님께로 향하게 해주었다. 그는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모든 죄인과 맺어주셨던 예수와 일치하여 죄인의 무거운 짐을 자신의 짐으로 여기고
기도한다고 했다. - 그때 ‘실완의 수기’를 입수하는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숨을 쉬듯 나는 기도한다. 하느님의 자비가 모든 사람에게 내리시도록
사람들의 죄와 나의 죄를 하나로 묶어서 지고 갈 것을 가르쳐 준 수도자 실완에게
마음으로부터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 천기(市) 천전교회에서 에드워드 브조스토프스키

< 차 례 >

1. 실완의 생애와 영성 p13
- 내적 체험, 아담의 비탄, 실완의 영성, 겸허함,
모든 사람과 하나됨, 성령 안에서 살고 죽는 일

2. 실완의 수기 p33
- 실완의 수기, 아담의 비탄


[ 1. 실완의 생애와 영성 ]

- 수도자 실완은 1866년 중앙 러시아 탐보프에서 태어나 1938년에 생애를 마쳤다.
스물여섯 살에 성산(聖山) 아토스에 들어간 그는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남의 눈에 띄지
않는 평수사로서 살아갔다. 아토스에서의 처음 얼마 동안은 혼자서 사는 이른바 독주
(獨住) 수도자로서의 수련을 받았고, 그 후엔 아토스 최대의 러시아인 공동체인
성팡데레이몽 수도원에서 수도생활을 하면서 회계라든가 구매 관계의 일 또는 농사일
이나 제분 노동에도 종사했다.

- 그의 일상은 다른 모든 수도자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고 하고 있는 일 또한 평범
했기에 단순함에 빛나는 그 영성의 위대성을 깊이 알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완의 생애에서 가장 경탄할 일은 하느님을 향한 영성의 급속한 성장이었다. 한때
가난한 농부였던 그는 당시의 많은 젊은이처럼 방탕한 생활에 빠져 한 여성을 속이기도
했고, 자기를 비웃는 친구에게는 격분한 나머지 죽음으로 몰아넣을 정도의 큰 부상을
입히기도 했다.

- 실완은 욕정에 빠지기 쉬운 난폭한 청년이었지만 하느님은 소년시절부터 그를 부르고
계셨으며 그 또한 그 부르심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하느님께서 그를 최종적으로 이기실
때까지 < 그가 병역을 마친 후에 가족과 고향을 버리고 성산 아토스에 들어가게 되는 스무여섯
살까지 > 그는 안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께로 향한 그의 걸음은 하느님이 개입
하신 구체적인 사건에 의해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그것은 우선 성모 마리아의 체험이었다.
마리아의 말씀에 의해 그는 부도덕한 생활로부터 구출되고 그로부터 죄 가운데의 생활을
지옥의 불길처럼 고통스럽게 느꼈으며 죄에 대해 깊은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 입대하기 전 어느 날 밤 그는 꿈을 꾸었다. 그것은 끔직하게도 뱀을 삼키는 꿈이었는데
꿈에서 깨자 곧 다음과 같은 말씀이 들려 왔다. “너는 꿈에서 뱀을 삼키고는 구역질을
하고 있다. 그런데 네가 실제로 하는 일을 보면 나도 너처럼 토할 것만 같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실완은 끊임없이 죄와 싸우고 멸망으로부터 자기를 구하기 위해 수도자가 될
결심을 굳혔다. 병역이 끝나기 얼마 전 크론슈타트의 요한 신부를 찾아가 하느님의 부르
심에 대하여 충실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아토스로 떠났다.

- 아토스에서의 그는 처음엔 소명에 전념하는 열렬한 생활을 체험했다. 그러나 곧
고독과 무력감의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리고 내심의 통한과 저지른 죄의 추악함을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멸망의 불길 속에 싸여 있는 듯한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얼마 후 그러한 생각들도 사라졌다. 또 다시 그를 엄습해 온 것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떠오르는 사악한 잡념과 망상이었다. 그것은 격렬한 영적 투쟁의 시작이었다.

- 온갖 힘을 다해 그 시달림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노력과 기도도 그것을 이겨내기엔
너무 모자랐고 하느님은 마치도 안계신 듯 침묵하시고 실완을 버린 것만 같았다. 그는
수도자로서의 수련마저 단념하고 싶었다. 그뿐 아니라 절망하여 하느님을 원망하고
마침내는 치매 상태에까지 빠져들었다. 악마가 그에게 단념을 재촉하여 치열하게 공격
하고 그의 기도를 방해하기 위해 그를 에워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음의 평안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식욕도 없고 불면에 시달린 그는 제분(製粉)의 중노동을 견딜
수가 없었다. 하느님께 도움을 청할 기력조차 없었고 어둠 속에 그대로 가라앉아버릴
것만 같았다. - 이와 같은 극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힘을
주셨다. 주 예수의 출현을 본 것이다. 그때의 주 예수의 부드러운 눈길을 그는 평생
잊을 수가 없었다. 비로소 실완은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을 깨닫고 모든 의혹과 절망을
결정적으로 뛰어넘을 수가 있었다. 그로부터 그는 풍성한 빛의 조명 속에 영적인 섬세
함을 가지고 모든 죄에 대해서 경계하게 되었고 항상 깨어 끊임없이 ‘예수의 기도’를
하면서 열심히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시련은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 오랜 세월 수도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수도자 실완만큼의 완덕에의 열망을
갖지 못한 선배가 자신을 의식한 그의 말은 실완의 마음속에 새로운 폭풍을 불러일으
키게 되었다. “실완 당신은 이미 완덕에 도달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아직 그렇게
젊고 사제도 되지 않은 몸으로 아토스의 최고 고참 수도자를 뛰어넘어 이미 성령 안에서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말은 실완에게 자기만족과 함께 교만한 생각을
불어 넣어 주었다. 자기를 위해 하늘 문이 열리고, 천사의 노랫소리가 들리며 여러
성도 중의 한 사람이 되어 버린 듯한 환상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한 밤중에 갑자기
커다란 빛에 둘러싸이는 일도 있었다. 때때로 이러한 환상은 그를 조소하는 악마들의
무서운 난무로 끝나기는 했으나 실완은 오직 주의 도우심을 청하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도록 눈물로 주님께 절규했다.

* 그렇게 해서 그의 영적 싸움이 끝나갈 즈음에는 실완은 결코 절망하는 일이 없었고
하느님의 사랑을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을 괴롭히고 지치게 하며
평화를 깨뜨리는 그 망상으로부터 해방되는 방법은 찾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은총의 주님께 그 일에 대하여 비탄하며 기도하고 있었을 때 마침내 하느님께로부터
대답을 얻게 되었다. 그 대답은 그의 마음의 평안, 겸손과 내적 침묵의 평안을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주께선 “의식하며 지옥의 고통 속에 머물러라. 그러나 결코 절망해서는
안 된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하느님의 말씀이야말로 그에게 주시는 명령이었으며
그의 생애를 결정적으로 방향지어 완전한 겸손과 평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비춰주신
하느님의 빛이었다.

< 내적 체험 > 그 후 실완은 영적으로 더욱더 성숙되어 갔다. 겸손하고 단순하며 밝은
마음을 지닌 그는 외면적으로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지만 훌륭한 수사로서
모두가 그를 존경하였다. 함께 사는 모든 수도자들이 그의 뛰어난 영성을 감지했지만
그는 결코 자기를 드러내는 일 없이 침묵 속에서 감춰진 삶을 살았다. 그의 죽음까지도
정적 그것이었다. 하느님 안에서의 마음의 수렴을 꾀한 그는 ‘살아 있는 기도’ 자체가
되었다. .

* 그는 온 세상의 고통을, 특히 하느님을 모르고 그리스도를 적대시하는 모든 사람의
고통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한없는 인자함과 사랑으로 가득했다. 자주 밤을
새우며 기도했고 자신의 마음이 가난하고, 냉랭하며 메말라 있음을 깊이 의식하고
눈물로 주님께 간구하며 모든 이를 위해 용서를 빌었다. ... 이제 그는 옛날의 실완이
아니었다. 하느님을 잃어버리고 있는 세상의 사막 속에서 어둠과 노고를 견디며
하느님을 찾아 헤매는 한 사람의 인간이 되었던 것이다.

< 아담의 비탄 > 실완 수사는 아담을 인류의 대표자로 보고 있다. 따라서 아담의
비탄은 하느님을 잃어버리고, 하느님을 찾는 모든 사람의 비탄이기도 하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하느님을 사랑할 수도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잃어버린 낙원의
기억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성(內省)하면 할수록 하느님께 대한 깊고
애틋한 향수에 목마르게 되는 것이다.

< 실완의 영성 > 실완의 영성은 ‘피로가리아’를 애독하고 아토스의 살아 있는 전통을
통해서 전하는 동방 그리스도교의 수덕적인 영성이다. 수도자들은 수세기 동안 이
영성을 배워 왔다. 실완이야말로 동방의 수도적 전통 안에서의 영적 체험을 보여주는
가장 뛰어난 인물이다. ... 빛, 변용, 성령에 의한 성화(聖化)의 움직임, 끊임없는
기도 등은 동방교회, 특히 러시아의 모든 성인에 있어서 기본적인 주제가 된다. 실완의
생애와 영성에도 다른 성인들의 경우처럼 이상의 모든 주제들이 고루 나타나고 있다.
... 실완의 말은 겸허하고 소박하며 독자를 당혹시키지 않는다. 변증법적인 논법이나
철학적인 전문용어를 전혀 쓰지 않으면서 뛰어나게 깊은 영적인 체험을 나타내는
것이다.

< 겸허함 > 실완은 무엇보다도 영적인 싸움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은 온갖 욕망으로부터 해방되어 그것을 지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악마의 교묘한
유혹에 지지 않도록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작전을 꿰뚫어보고 자존심 때문에
혼란해 지거나 교활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하느님께 빛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앙과 겸손은 주된 무기가 된다. 그것은 괴롭고 끊임없는 싸움이다. 안도할 새 없이
언제나 경계해야만 한다. 성인들은 악마들과의 끈질긴 싸움, 단식과 기도를 통해 겸손해
짐으로써 악의 세력을 이겨내는 것이다. 최고의 뛰어난 무기는 겸손이다. 실완은 말한다.
“겸손한 사람은 이미 적을 이겼다.” 실완은 끊임없이 겸손을 구했다.

- 실완에게 있어서 겸손은 하느님의 거룩함, 위대함의 표현이었다. ... 실완은 자기
안에 거처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을 맞아들이기 위해 하느님의 거룩함에 거슬리지 않는
것은 오직 겸손밖에 없음을 깊이 깨달았다. 그러나 겸손하게 사는 것은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온 마음을 다해 그 덕을 간구했던 것이다.
실완은 자신의 허무함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자기의 본질적인 추악성에 뛰어들어 그 지옥
속에 의식적으로 머묾으로써 모든 사람과의 유대를 맺게 되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함으로써 전 인류와도 하나가 된 것을 알게 되었다.

< 모든 사람과 하나됨 > 자신이 모든 사람과 하나가 되어 있음을 강하게 느끼고 있던
그는 원수를 사랑할 것을 강조했다. 실완은 원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움에 의해
빚어지는 사람 사이의 모든 분열이나 대립이 없어지도록 기도했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반대자와 하나가 되어 주 예수처럼 그들의 죄를 짊어지고 그들을 위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간절히 기원했던 위대한 사랑을 산 사람이다. 당시 러시아의 정부는 교회를
탄압하여 신부들을 살해하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서 그리스도에의 신앙을 빼버리려고
광분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겸손하기 이를 데 없는 실완 수사는 그 같은 기도를
끊임없이 바치고 있었던 것이다.

< 성령 안에서 살고 죽는 일 > 주 예수는 당신의 성령을 그에게 부어주셨고 그는
성령에 의해서 살아갔던 것이다. 그의 수기는 그것을 증명한다. 그는 성령 안에서
하느님을 알았고, 사랑했고, 언제나 성령 안에서 움직였으며 그와 같은 영의 생명을
자각하고 있었다. 실완 수사는 소박한 말로 신비적 체험을 기록하면서 형언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그가 쓴 단순하고 겸허한 말은 그리스도교
신비신학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말에 필적한다. 실완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간단하고 명쾌했다. 그것은 그가 빛 가운데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내적
발견을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 속에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놀라운 정도로 자연
스럽게 전해주고 있다., ... 선종한 그의 모습은 주의 침묵에 깊이 들어간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평화 그 자체였다. 그는 침묵과 평화로운 기도 속에서 겸허하게 자신의
소명에 충실히 응답하면서 이 세상을 떠났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이윽고 발발한
최악의 사태를 두려워하며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을 때 그는 온 존재를 하느님께
맡겼던 것이다.


[ 2. 실완의 수기 ] – 발췌 메모 <총 150여 편중 60여 편만 메모)

- 한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선 당신의 자비로우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당신 사랑을 보여 주신다.

- 주님은 자비로우시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주님은 한없이 온유하시고 겸손하시다. 주님을 바라본다면 우리들은 변화되어 이웃에
대한 사랑 그 자체가 되고 온유하며 겸손한 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은총을
잃어버리면 낙원으로부터 추방된 아담처럼 울게 될 것이다. 사막은 탄식과 눈물,
고통과 슬픔이 가득한 곳임을 알았다.

- 오 자비로우신 분이여, 지상의 모든 백성에게 은총을 주십시오. 성령의 도우심
없이 인간은 당신을 알고 당신의 자비하심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주여, 당신과
당신께 관한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 필요한 성령을, 아담과 거룩한 예언자와
그리스도 신자에게 베풀어 주신 것과 똑같은 성령을 우리들에게도 베풀어주십시오.

-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에게 배우시오.” 라고 이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 세상이 깨닫는다면 그 하늘의 지식을 얻기 위해 다른 모든 학문을 뒤로 미루게
될 것을 ....

- 사람이 지상의 것을 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겸손의 힘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온 세상의
보물을 뒤로 미룰지언정 그 말씀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 하느님은 스스로 겸손해짐으로써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고 당신 사랑에로 인간을
이끌어주신다. 주님께선 우리에게 성령을 내려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 사랑의
기쁨 안에서 우리는 주님을 알고 이 세상을 잊었다.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의 자비
로우신 사랑을 맛본 사람은 이미 지상의 것은 생각할 수 없게 되며 항상 그 사랑에로
이끌리게 된다. 그렇건만 우리는 교만, 허영, 형제들에 대한 미움과 비난으로 사랑을
잃고 탐욕과 지상의 것에 대한 애착으로 그 사랑을 버린다. 그때 우리는 은총을 떠나게
되고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처럼 괴롭고 지친 마음은 하느님을 찾아 하느님께 부르
짖는다. “하느님, 당신을 애틋이 찾으며 울면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나의 번민을 살펴주시고 나의 어둠을 밝혀 주십시오. 주여, 당신
자비를 내게 베푸시고 또한 당신을 향한 경외심이 내 안에 살아 있도록 겸손을 제게
주십시오.”

- 성령은 우리들을 하느님 가족의 일원으로 만들어 주신다. 당신이 자신 안에 하느님의
평안과 보편적인 사랑을 느낀다면 당신의 마음은 이미 하느님을 닮은 것이다.

-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목말라 하며 당신을 애틋이 찾고 있습니다. 당신은
하늘을 별로, 대기를 구름으로, 대지와 호수를 강과 아름다운 뜰로 꾸미셨습니다.
하오나 우주만물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나는 그 피조물이 아닌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주여, 저는 당신을 원합니다. 당신의 조용하고 부드러운 눈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눈물로 당신께 외칩니다. 주여, 제게로 와주십시오. 제 안에 들어오시어 저의 죄를
씻어 주십시오. 영광의 자리에 앉으시어 지상을 바라보시는 주여, 저의 간절한 소망을
당신은 잘 아십니다. 저를 버리지 마시고 예언자 다윗처럼 외치는 당신 종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나의 하느님, 풍성한 자비로써 이 몸을 용서해 주십시오.”

- 하느님의 사랑을 재확인한 사람은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슬퍼
하지 않는다. 하느님 안에서 견뎌낸 고통은 영원한 기쁨으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 처음, 우리들에게는 영적 지도자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마음이 성령의 은총을 받기
전에는 사탄에 대하여 한층 더 격렬히 싸워야 하며 혼자의 힘만으로는 그 유혹에
대항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스스로 낮추자. 그러면 주께선 ‘예수의 기도’의 힘을 깨닫게 해주시고 성령은 우리
마음의 스승이 되시리라. 그리스도의 겸손을 몸에 익히자. 그러면 주께선 기도의
기쁨을 알게 해주시리라.

- 주께선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겸손해지고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신다. 가난과 질병으로 시달리는 사람이 겸허하게 그 고난을
견디지 않는다면 부질없이 괴로움을 겪을 뿐이다. 그러나 겸허한 사람은 하느님이
그의 보화이며 기쁨이기 때문에 언제나 기쁨으로 가득 채워진다.

- 진실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끊임없는 기도 속에서 은총을 체험한다. 물론
기도하기 위해 우리에겐 성전이 있고 전례서도 있지만 내적인 기도는 항상 우리
자신의 내부에 있다. 전례는 성전에서 거행되며 그곳에도 성령은 임하신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이 하느님의 성전이 되도록 하라.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에겐 온 세상이
성전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그럼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은 소리 내어 기도하고
기도서의 도움을 빌어 기도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주께선 그들의 기도를 받아
들이시고 기도하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신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다른 일을 생각하는
사람의 기도는 주께서 들어주시지 않는다.

- 겸허함을 잃은 사람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도 동시에 잃어버린다. 그리고 기도는
그의 내심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겸허한 사람은 욕정을 이겨내고 하느님으로부터의
은총을 받는다. 그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듯이 원수를 위해 기도하며 온 세상을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다.

- 나는 성령의 은총을 받았을 때 하느님이 나의 죄를 용서해주셨음을 알았다. 하느님의
은혜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기에 나는 그 밖의 어떠한 것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죄를 용서받았다해도 우리는 일생 동안
통회와 회한을 가지고 그 죄를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통회와 뉘우치는 마음을 잃었고, 악마로부터 많은 고통을 받았으며 나에게 일어
났던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주님과 그 자비하심을 알고 있었건만 어찌하여
그처럼 많은 사악한 잡념에 시달렸던 것일까. 그런데 주께선 나를 불쌍히 여기시어
겸손의 길을 가르쳐주셨다. “지옥에 의식적으로 머물라. 그러나 절망하지 말라.” 그렇게
하여 마침내 악마는 패배했다.

- 교만과 허영심은 신앙의 길을 찾는 데 자주 방해가 된다. 의심하고 믿지 않는 사람
에게 다음의 기도를 권한다. “주님이신 하느님, 당신은 계시오니 나를 비춰 주십시오.”
라고. 이 같은 겸허한 희망과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신실한 태도에 주님은 빛을 내려
주신다. 그리고 이 같은 사람은 자기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감지하게 되며 하느님께서
당신 자비로 자기 죄를 용서해 주셨음을 알게 된다.

- 교만한 사람은 악마를 두려워하면서도 때로는 악마적인 존재가 되고 만다. 따라서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악마가 아니라 교만과 허영심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은총을 잊어버리고 만다. 마음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는 악마들과
사귀지 말아야 한다. 충실하게 기도하는 사람은 주님의 빛을 받는다.

- 심신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하면 되는가? 우리는 모든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언제나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 왜냐하면 죽음을 항상 생각하는
사람은 겸허해지며 주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고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 하기 때문이다.

- 나의 마음은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창조주를 외면한 사람은
최후의 심판 날에 어떠한 얼굴을 할 것인가? 거룩하신 그분의 눈길 앞에서 자신을
감추기 위해 어디로 도망칠 수 있는가? 모든 이가 구원받고 모든 천사와 성인들과 함께
영원한 기쁨을 누리기를 하느님께 간구한다. 겸허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느님이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은 성인들의 겸허함을 칭송하고 주께선 당신의 영광
안에 그들이 들게 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 12,26).

- 성령의 평화로 충만된 사람은 그 평화를 빛내고 남에게도 그 평화를 가져다주지만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은 악을 낳을 뿐이다.

-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 사랑의 위대함을 알지 못하고 죄를 통회하지 않으며 회심할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의 멸망을 보고 있기 때문에 나는 슬퍼하며 그들을 위해 울고
있다.

- 겸손하게, 온순하고 순결하게 산 사람은 하늘나라에 도달한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뵙고 세라핌(으뜸 천사)의 노래를 들으며 지상의 일을 잊어버리는 사람들
이다. 그러나 지상의 일에 집착하는 우리는 바람에 날려 흩날리는 먼지와 같다. 성인
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었기에 많은 노고를 견디고 기적을 행할 힘을 받아 병자를
고치고 죽은 이를 소생케 하고 비를 내리게 했다. 그러나 나는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과
겸양만을 받아 자신을 위함과 같이 아무도 상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은혜를 받고 싶다.

- 성령의 은총이 조금이라도 마음속에 있다면 그는 모든 사람, 특히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하느님께 반항하는 사람들이 회심하여 하느님을 인정하게 되도록 밤낮
으로 울며 기도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아버지, 그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 스테파노도 박해자를 위해 기도했으며 그 죄의 책임을 그들에게 지우지
마시도록 빌었다. 우리가 은총을 받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적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죄인을 염두에 두지 않는 사람은 성령의 은총을 받을 수 없다.

- 주님은 빛, 우리들을 비추신다. 허나 원수의 노예가 되어 버린 사람은 그들과 함께
어둠 속에 있다.

- 이 세상에 보화를 쌓는 사람은 눈뜬장님이다. 성령의 가르침으로 여덟 가지 참된
행복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기막힌 행복을 알 수 있으며
지상의 쾌락엔 전혀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하느님께 매혹되어 하느님 안에서
고요함과 평화를 발견한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같이 괴로워하며
눈물로 기도한다.

- 하느님의 은총을 간직하라.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시는 모든 것이 선이며 기쁨이며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우리 마음에 고요함을 주시어 우리는 주님과 성모님이
사시는 아름다운 정원을 걷는 듯하다. 은총에 의해 인간은 영적으로 천사와 동일해
지지만 은총 없이는 인간은 죄 많은 흙덩어리에 불과하다. 은총으로 가득한 사람은
천사처럼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섬긴다.

- 영적 싸움은 교만한 사람에게 있어서만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지, 주를 사랑하는
겸허한 사람에게 있어선 그 싸움은 쉬우며 성령의 은총이라는 힘찬 무기를 얻게 된다.
우리는 그 무기로 적을 완전히 태워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 무기를 두려워한다.
구원되기 위하여 가장 가깝고 쉬운 길은 순명과 정결, 남을 판단하지 않고,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선량하며 주께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 마음으로부터 기도하고 싶어도 그것이 안 될 때 기도의 말을 입으로 외며 자기가
하는 말에 마음을 집중하면 주께서는 조금씩 내면적인 기도의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분심하지 않고 기도하게 될 것이다. 마음의 기도를
할 때 기교를 부려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자신의 마음을 다치고 마침내는
입술에 붙은 말만의 기도로 끝나게 될 것이다. 영적 생활의 질서를 의식해야 한다.
하느님은 성실하고 겸허한 사람에게 은총을 아끼지 않으신다. 항상 순명하도록 하자.
식사 때에도 말을 할 때에도 모든 행동에 있어서 절도를 지키라. 그러면 주께서 당신
에게 내적인 기도의 은총을 베풀어주시리라.

- 권력자가 하느님의 사랑을 참으로 알게 되면 전쟁은 없어질 것이다. 전쟁은 죄의
결과이지 사랑의 결실이 아니다. 하느님께선 형제애에 살도록 명령하시고 사랑하도록
우리들을 만드셨다. 교만한 사람의 권력과 탐욕은 세계를 전쟁에로 몰아간다.

- 사람이 하느님을 두렵게 생각하면 세계는 평화로 충만될 것이다. 그렇건만 사람들은
지금 하느님의 계율을 저버리고 방자한 생활로 하느님이 안 계신 것처럼 행동하고
이 세상의 쾌락만이 진정한 기쁨인 양 착각하며 쾌락만을 좇고 있는 것이다. 나도
옛날엔 이 지상에서 행복을 찾았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건강하고 튼튼하다고
기뻐하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던 나는 그것을 자랑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성령에 의해 하느님을 알게 된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을 연기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들의 마음은 주 안에 있을 때에만 기쁘다. 따뜻한 태양이 벌판의 꽃을
피우고 바람이 그 꽃잎을 흔들 듯이 성령은 마음을 따뜻이 하고 소생시켜 주신다.

-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 하느님은 우리들에게 성령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다. 하느님을 알기 위해선 재산도 학문도 필요하지 않다. 순명과 정결, 겸허한
마음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만이 필요하다. 주께선 그와 같은 마음을 사랑하시어
당신 모습을 드러내신다. 주께선 하느님의 평화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은총을 내려
주시며 사랑과 겸허 속에서 그를 가르치신다.

-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서로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성령은
그 사랑을 가르쳐주신다.

- 성령께서 안겨주신 평화를 지켜야 한다. 헛된 일로써 그 평화를 잃지 않도록 하라.
당신의 형제를 슬프게 할 때 당신 자신의 마음도 괴로워질 것이다. 그러나 형제와
화목해질수록 주께선, 더욱 풍성한 은총을 당신에게 주실 것이다.

- 불순한 생각을 급히 몰아내라. 그 같은 생각을 갖는다면 당신은 하느님 사랑과
열심히 기도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게 된다. 당신이 자신의 뜻을 버린다면 사악한 자를
이기고 평안을 얻을 것이다.

- 지상의 사람들아, 주께 마음을 돌리고 하느님께 기도를 바쳐라. 온 세상 사람들의
기도가 조용히 타오르는 불기둥처럼 하늘에 닿는다면 하늘은 기뻐 용약하며 수난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주를 찬미할 것이다.

-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주를 닮은 자이다. 내가 빛으로 충만
되어 있을 때, 나는 그 은총의 빛으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생활하고 있는가 아니가 하는 문제를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식별할 수 있는가. 그 기준은 이러하다. 당신은 무슨 일에 근심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주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근심하는 일이 없다. 무엇이 필요하면
그 사람은 그 일과 자신을 주께 맡겨버린다. 즉 그는 모든 것을 주께 맡겨버린다.
필요한 것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얻은 듯이 평화롭다.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하느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병에 걸렸다 해도 자신을 위해 필요한 병이라고
생각한다. 필요치 않았다면 주께선 그것을 허용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그는 몸과 마음의 평화를 지켜 간다. 모든 일에 있어서 하느님께 맡길 수 있게 된 사람은
하느님에 의해서만 살고, 또 그 같은 내적 기쁨 속에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

- 나는 나이 먹고 죽을 날이 멀지 않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까닭에 괴로워하며
진실을 기록하고 있다. 한 사람의 인간이라도 구원되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나는
영원히 하느님을 찬미하리라. 나는 온 세상을 위해 괴로워하며 모든 사람이 회심하고
하느님을 인정하고 사랑 안에 살며 하느님 안에 자유롭게 되도록 울면서 기도한다.

- 사랑에는 몇 단계가 있다. 첫째는 하느님을 배신하기를 두려워하는 단계, 둘째로
일체의 악한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을 갖는 단계, 셋째로 은총을 느낄 만큼
충만한 마음의 단계, 넷째로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을 갖는 단계가 있다. 그 사람은
몸도 마음도 성령의 은총으로 충만해 있다. 그 몸은 성별(聖別)되고 뼈는 불멸의 것이
될 것이다. 이같이 완성된 성스러움 속에 사는 사람은 모든 정욕과 탐욕으로부터 해방
된다. 지상의 것은 더 이상 그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이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 이 세상의 것들을 죄다 잊어
버린다. 어떤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노성(老聖) 시메온과 더불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주여 지금이야말로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을 평안히 눈감게 하소서.”

- 하느님 사랑의 자비로우심을 체험한 사람은 하늘나라가 바로 우리 가운데 있음을
알고 있다. 겸허함과 눈물을 사랑하고, 악한 생각을 혐오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형제는 우리들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기쁨과 평안을 부어주시고, 온 세상을 위해 눈물을 흘리게 하시는 하느님의
성령을 느끼는 대로 전한다. 나는 사람들을 위해 괴로워하며 그들을 향해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나는 울면 울수록 그들을 사랑하게 되고 그들을 위해 눈물로써 기도한다.
형제들이여, 나는 입 다물지 못하리라. 하느님의 자비로우심을 숨길 수가 없으니.
그리고 악마의 교활함을 경계하라고 말해야 겠다.

- 주의 계명대로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 위대한 행복은 없다. 그런 사랑을 살아가는 사람은 모든 일에 대하여 기쁨을
느끼지만 그런 사랑 없이는 인간은 평화를 맛 볼 수가 없다. 어떤 일이 그를 자극하면
그는 다른 사람에게 무례함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책망한다. 자기 자신은
하느님의 사랑을 잃고 꾸중 받을 처지임을 알지 못한다. 다만 형제를 경멸하고 나무란다.

- 성령이 마음에 머무시면 사람은 자기 안에 존재하는 하느님 나라를 인식한다. 그대는
“어찌하여 나는 그런 은총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자기 멋대로 살려고 하며 하느님 뜻에 자신을 맡기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항상
전력을 다하여 하느님께 집중해 있고 다른 일체의 마음 씀에서 해방되어 있으며 있을
수록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 회심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죄인은 행복하다. 죄를 미워하기 시작한 사람은 하늘
나라에 이르는 사다리의 첫째 단에 당도한 것이다. 또 죄를 범하고자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게 되면 당신은 이미 두 번째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도움으로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사랑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 사다리의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그대는 “원수가 거룩한 교회를 박해하는데 어찌 그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을 들으라. 가련하게도 그대의 마음은 아직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있다. 하느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지, 모든 사람이 통회하여
영생을 누릴 수 잇기를 얼마나 원하고 계시는지를 아직 모르고 있다. 하느님은 사랑
이시다. 하느님께서 원수를 사랑하시기에 그가 구원받도록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신다. 이것이 참된 사랑이다.

- 성모님의 일생은 거룩한 침묵으로 싸여 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온 세상에 미치고
성령 안에서 그분이 모든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 계심을 주께서 교회에 알려주셨다.

- 지극히 정결하신 성모님이 죄인을 대하시는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나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 나는 그것을 체험했다. 나는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하여 몰랐었건만
성령이 그분에 대하여 알려 주셨다. 40년 전, 성모님께선 죄인이었던 나를 찾아오시어
가르쳐주셨다. 나는 비참한 그 일 때문에 죽을 작정이었는데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다음의 말씀을 깊이 마음에 새겼던 것이다. “당신이 하려는 일을 나는 원치 않습니다.”
그 목소리는 결코 잊어버릴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감미롭고 사랑에 넘쳐 있었다. 죄인
이었던 나는 성모님의 은총과 자비를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 나는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에 슬펐다. 주께선 나를 영적으로 성장시켜주시지 않았기에
나의 나약한 정신은 약한 불꽃처럼 꺼져버린다. 그러나 성인들의 정신은 세찬 불꽃처럼
유혹의 폭풍 속에서 꺼지기는커녕 더욱더 타오른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하였기에
지상에서의 모든 고난을 견디어냈고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주께 영광을 드릴 수가
있었다. 주께선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영광을 주시고 당신과의 사귐 속에 영원한
나라를 주셨던 것이다. 오늘날도 여전히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수도자가 있다. 그들은 끊임없는 기도와 말씀으로 이 세상을 돕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을 구하려는 배려는 주로 교회의 사목자의 마음속에 있다. 우리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은혜를 보게 된다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교만하지 않고 겸손 가운데 구원에 이르도록 주께선 그들의 아름다움을 숨기신다.

- 나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듯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기를 원한다.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자신의 피를 그들에게 쏟아 붓는다는 뜻이다.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이 세상이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가, 또한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다. 신문을 통해 이 세상을 아는 것보다 더 명확히
이 세상을 꿰뚫어볼 만큼 기도는 사람의 정신을 밝게 한다. 주께선 “죄를 범하는 자는
자기 죄의 노예가 된다.”고 말씀하신다. 이 같은 노예의 상태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선
많은 기도를 바쳐야만 한다. 참된 자유란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다. 완전한 자유란 항상 하느님 안에 머무는 일이다.

- 수도자는 자신의 정욕과 싸우고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된다.
때때로 수도자는 천국에 있는 것처럼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다.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바라는 수도자는 자주 그들을 위해 울고 기도한다. 결국 성령은 하느님과 이 세상을
사랑하도록 수도자를 가르치신다. 현재 그처럼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수도자란
이미 없다고 말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이 세상에 있어서 기도하는 사람이
없다면 세계는 이 만큼의 평화도 누릴 수 없을지 모른다고, 더 큰 재해, 우주만물의
파멸까지도 일어날지 모른다고.

- 겸허한 사람은 이미 적을 이긴 것이다. 자기는 마땅히 지옥에 머물러야 할 죄인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에게는 악령이 가까이 가지 못하며 또한 마음속에 어떤 나쁜 생각도 갖지
못한다. 그의 영혼은 하느님 안에 완전히 안식한다. 성령을 알고 성령에 의해 겸허함을
몸에 익힌 사람은 스승이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된다.

- 타인을 판단하지 말 것. 우리는 자주 우리가 전연 모르는 일, 또는 충분히 알지 못하는
일과 관련지어 형제를 판단한다. 그 형제는 영적으로 천사 같은데도.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 것. 자기의 일에 전념하고 받은 명령에 순종할 것. 그러면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그대를 도와주실 것이고 그대는 평화의 끊임없는 기도라는 순명의 열매를 얻을 것이다.

- 선(善)에 가까이 가도록 노력하라. 그러나 우선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자신에게 유익한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아라. 어떤 사람은 기도하는 일을 통해, 또 어떤
사람은 읽거나 쓰거나 하는 일을 통해 선에 다다른다. 그것도 필요한 일이나 분심(分心)
하지 않고 기도하며 눈물을 흘리는 편이 훨씬 낫다. 누구나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대로
따르는 일은 좋은 일이다.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복음서, 사도들의 편지, 거룩한 스승들의 저술을 열심히 읽으라.
우리가 거기서 하느님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일에 얽매이는 일없이 주님으로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 지상에서 생활하지 않았던 것 같은 인상을 주게 될 것이다.

- 우리는 순명함으로써 교만해 지는 것을 막을 수가 있다. 하느님은 순명하는 자에게
기도의 은총, 성령을 보내주신다. 때문에 순명은 단식과 기도보다도 소중한 것이다.

-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언제나 교만 때문이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이성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하느님은 겸허한 사람에게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며
그 모든 기적을 보여주신다. 하느님 뜻에 온전히 맡기는 사람은 언제나 조용하고 평화로
가득차고, 주께서 지켜주시며 은총으로 사는 것을 성서에 의해서나 또는 자신의 체험
으로 잘 알고 있다.

- 사랑이 크면 클수록 고통을 느끼는 마음이 커진다. 사랑이 넓으면 넓을수록 지식이
풍부해진다. 사랑이 열렬하면 할수록 기도도 열렬해진다. 사라이 완전하면 할수록
생활은 청정해진다.

- 우리는 나날이 일상 안에서 싸우고 있다. 겸손해지기 위한 싸움이다. 악마는 교만
때문에 타락했다. 그리고 우리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형제들이여, 스스로 부끄러움을
당하도록 한다면 이 지상에서도 하느님의 영광을 우러러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주께선
겸허한 사람에게 당신을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 악령의 습격을 받았을 때 주께서 그대를 지켜주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탄의 실체를
보았거나 그가 당신을 불길 속에 집어던지려 한다 해도 그리고 당신의 영혼을 사로
잡으려한다 해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을 굳게 믿고 희망을 잃지 말고 “나는
누구보다도 죄인이다.” 라고 말하라. 그러면 악마는 당신을 놓아버릴 것이다. 악령이
당신에게 작용하고 있음을 느낄 때 낙담할 필요는 없다. 성실하게 죄를 고백하고 겸허
함을 주께 간구하라. 주께선 반드시 그것을 주실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겸허한 만큼
은총을 느낄 것이며 만일 완전히 겸허해진다면 당신은 완전한 평안을 얻을 것이다.

- 모든 사람이 같은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강철처럼 강하지만
어떤 사람은 연기처럼 약하다. 교만한 사람은 연기와 같다. 바람에 불려 날리는 것처럼
적에게 마구 휘둘린다. 그들은 인내력이 없으며 간단히 속아 넘어 간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 계명을 지키고 어쩌다 물결에 휩쓸려도 넘어지지 않는다. 바위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도 같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성령의 은총을 주님으로
부터 받는다.

- 구름은 태양을 가린다. 그리고 그늘은 대지를 어둡게 한다. 마찬가지로 마음은 단
하나 교만한 생각으로도 은총을 잃어버리고 안개에 덮이고 만다. 겸허한 생각은 은총을
돌려준다. 나는 실제로 그것을 체험했다.

- 성령의 임하심을 분별하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뜻을 행할 수 있도록 하느님은
인간에게 감성을 부여하셨다. 그러나 조심하자. 악령으로부터 오는 생각은 그 외견에
의해서가 아니라 마음에 작용해 오는 영향에 의해 분별할 수 있다. 우리는 체험에
의해서만 그것을 배운다. 이 같은 체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악령에게 간단히 속아
버린다. 자기 마음속에 빛이 보이거나 또는 빛이 자신을 둘러싸는 것을 보더라도, 그와
동시에 마음이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낄 수 없다면 이 빛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말고 스스로 낮추어 겸손해 지라. 그러면
그 허위의 빛은 사라질 것이다.

- 성인들은 지옥을 보고 지옥 속에 살고 있었지만 지옥은 결코 그들을 지배하지 못했다.

- 누군가가 아직도 겸손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시면 주께선 그 사람으로
부터 은총을 거두신다. 그러나 당신은 낙담해서는 안 된다. 은총은 감추어져 있을 뿐
그대 안에 분명히 있으니 할 수 있는 한 빨리 악한 생각을 몰아내도록 하라. 만일 그
일을 게을리 했다면 통회하라. 그리고 노력해서 그 같은 습관을 몸에 익히도록 하라.

< 아담의 비탄 >

- 인류의 조상 아담은 낙원에서 하느님 사랑의 행복을 체험하고 있었기에 죄로 인해
사랑과 평화를 잃어버리고 낙원으로부터 추방되었을 때 격심한 고통을 받았다. 사막
가운데서 자신이 사랑하는 주님을 슬프게 했다는 생각에 비탄에 빠져 번민했다. 낙원과
아름다움을 못잊어하기보다도 하느님께 바치던 사랑을 잃어버린 것을 괴로워했다.
누구라도 성령에 의해 하느님을 알고 난 후 은총을 잃어버린다면 아담의 고통을 체험할
것이다. 그는 사랑하는 주를 슬프게 한 사실 때문에 병들고 고통 받을 것이다.

- 주와 함께 할 때 행복하고 평화로웠다. 원수의 먹이가 될 수는 없었다. 지금은 악령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악령에게 강타당하고 있는 마음은 불안정하다. 때문에 마음이
주를 찾아 헤매며 죽기에 이르도록 주를 원한다. 마음은 하느님 생각뿐이다. 지상의
것은 더 이상 나를 기쁘게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내 마음을 위로하지 못한다. 고통의
수렁 속에서 주께 외친다. “주여, 나의 주여, 이 몸을 불쌍히 여기소서. 타락한 당신의
피조물을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아담은 비탄한다. 눈물이 뺨을 흘러 발밑의 땅을
적셨다. 사막이 그의 비탄을 들었고 하늘의 새도 고통스러운 그의 비탄에 침묵했다.

- 하느님을 알고 그리고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던가를 깨달은
자만이 아담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아담처럼 은총을 상실했다. 그리고 아담처럼
외친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에게 사랑과 겸허한 마음을 주소서. 저는 눈물
로써 당신을 찾아 헤매며 기다립니다. 당신은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모습을 저에게
드러내셨습니다. 하여 저는 그 사귐 속에서 당신을 원하고 있습니다.”

- 아담은 울면서 말한다. “나에게 있어 사막이란 어때도 상관이 없다. 높은 산이나
벌판, 숲 또는 새들의 지저귐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하느님을 모욕하고 지금
상중(喪中)에 있다. 내가 낙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사랑하는 하느님을 슬프게
하였으니 나는 분명 고통 속에 계속 울어야 할 것이다.” 낙원으로부터 추방된 아담은
괴로워하며 절망의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안 사람은 누구나
그분을 못잊어하며 갈망한다. “주여, 주는 어디에 계시 온지. 나의 빛이시여, 당신은
어디에 계시나이까. 당신께서 얼굴을 가리셨나이다.”

- 내 마음이 주님께 머물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보라. 나에겐
그리스도의 겸허함도 없고 원수에 대한 사랑도 없다. 아담은 범한 죄 때문에 울었고
마음은 고통으로 가득 찼었다. 그의 눈물은 말라버렸지만 마음은 하느님을 향해 불타고
있었다. 그리하여 낙원의 아름다움보다 하느님 사랑의 힘에 강하게 끌리고 있었다.
* 아담이여, 보여 주십시오. 내 약한 마음은 당신처럼 간절히 하느님을 갈망할 수는
없지만 당신의 통한의 무게나마 짊어지려고 합니다. .....
* 인류의 조상이신 아담이여, 주님께 드리는 찬미가를 불러주십시오. 온 세상이 그것을
듣고 당신의 모든 자손들이 하느님께 마음을 다시 돌려 지상의 고통을 잊고 하늘의
찬가로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 ..... 성모님에 대하여, 그리고 성모님이 지금 하늘나라
에서 얼마나 큰 축복을 받고 계시며 영광을 누리고 계신지 들려주십시오. .....
* 아버지이신 아담이여,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당신의 자손인 우리들이 지상에서
고뇌하고 있습니다. 고뇌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기쁘게 해주십시오. .....

- 하여, 아담이 대답한다. 아이들아, 보라. 내 마음이 하느님 사랑에 충만하여 그 아름
다움을 즐긴다. 하느님 앞에 서는 사람은 이미 지상의 일을 기억하지 않는다. 나는
성모님을 빛 속에 뵙는다. 거룩한 사도와 예언자들을 본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의 아들,
우리들의 주 예수그리스도를 더욱더 닮은 자가 된다. 나는 하느님과 함께 잇기에 낙원의
뜰을 걸어 다닌다. 어찌하여 그대들은 나를 부르는가. 주께서 그대들을 사랑하고 계시는데.
주는 계명을 일러주셨으니 그것을 지키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면 하느님 안에서 평화를
얻으리라. 자신들의 죄를 위해 언제나 보속하라.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게서 사랑을
받는다. 나를 축복하는 자는 내개서 축복을 받는다.” 라고 주께서 말씀하신다.

- 아담이여, 당신의 자손인 우리들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우리들의 마음은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낙원에서 사시며 게루핌과 세라핌과 여러 성인들을 만나
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사슴처럼 하느님을 향해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안에 있는 사랑의 불꽃은 적고 약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하늘나라에 이를 수
있도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베풀어 주십시오.

- 하느님의 사랑은 한량없는 것이다. 그 누가 그것을 묘사할 수 있으랴. 아담은 지상의
낙원을 잃어버리고 눈물로써 찾아 헤매였다.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써 주께선 삼위
일체의 천국이라는 찬란한 새로운 낙원을 열어주셨다. 하느님 사랑에 충만한 사람은
이 지상을 잊어버린다. 그 사람은 찾아 헤매던 그분을 이미 어둠 속에서 바라보고 있다.

- 나는 어려울 때 언제나 주를 찾았고 그때마다 주의 응답을 받았다. 우리들은 자신의
이성만으로는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 주의 자비하심과 성령의 은총에 의해서만 사랑을
깨달을 수가 있다. 그것은 성인들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말하겠다. 하느님은 대죄인 까지도 사랑해주셨고 죄에서 헤어날 수 있는 은총까지도
우리에게 주셨다. 주께선 그들을 기쁘게 맞아 주시고 아버지께 인도하신다. 그들 때문에
천상에서는 크게 기뻐한다. 주께선 모든 사람을 사랑해주시겠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특히 사랑하신다.

- 은총을 받은 사람은 악령에게 찬사를 받지만 그 감언에 빠지면 은총을 잃어버린다.
사람은 처음엔 은총을 잃은 것을 자각하지만 그것이 교만한 마음 때문인 것을 미처
모른다. 오랜 싸움 끝에야 사람은 비로소 겸허함에 대하여 알게 된다.

- 내가 수도원에 들어간 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 고백신부에게 “나는 정결(貞潔)에 위배
되는 일을 생각했다”고 고백하자 그분은 “두 번 다시 그 같은 생각을 하지 말도록 하라”
고 했다. 나는 그 이후 45년이 지났는데 한 번도 그 같은 생각을 하거나 남에게 화를
낸 적이 없다. 나는 항상 주의 자비하심과 성령의 사랑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피해를 용서했기 때문이다.

- 마음이 하느님 사랑에 빠져 깊은 침묵 속에 머물며 타인과의 이야기도 원하지 않고
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떠나 있는 것처럼, 다른 희망은 아무것도 갖지 않은 그러한
사랑이야말로 사랑이신 주님을 보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마음은
이미 이 세상일에 흥미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을 잊어버리고 이 세상일을
뒤로 돌린다. 성령의 자비를 맛본 마음은 이 같은 사랑에 충만 되어 있다. 주여, 우리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 같은 사랑을 베풀어주십시오. 온 세상에 그런 사랑을 주십시오.
성령이시여, 저희들 마음속에 내려오소서. 저희들이 목청을 다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
이신 창조주를 찬미할 수 있도록. 아멘 아멘 알렐루야.

[ 아담의 비탄 ]독서 메모 - end.

금주의 독서 메모 076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2.04.10.

[ 책 이름 : 가장 아름다운 화해 이야기 ]

- 지은이 : 스즈키 히데코 - 옮긴이 : 박태극, 최경식
- 지은이 프로필 : 성심수녀회 수녀, 도쿄대학교 대학원 인문과학 박사과정,
일본 성심여대에서 일본 근대문학 강의, 문학요법 및 심리요법을 통해
말기 중환자들의 내적 치유 도움 봉사, 일본 에니어그램 학회 명예회장,
국제 코뮤니온 학회 회장 활동 등. 저서로는 '사랑과 치유의 366일' 등이 있다.
- 펴낸데 : 생활성서, 출판일 : 1998년 9월 12일
- 내용 :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 후속편 (죽음 묵상 둘)

#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 ‘# 42 독서 메모’ 보러가기(링크)
* 원 제목 : ‘죽어가는 사람들이 전해주고 싶은 말’


[ 표지의 글에서 ]

가슴에 상처를 안고 먼 길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죽어가는 이들은 우리도 언젠가는
그들처럼 가야 할 그 길을 늘 준비하며 살아가게 합니다. - 사람은 누구나 죽기 전에
반드시 풀어야 할 마음의 매듭이 있습니다. ‘죽음’은 살면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며 분열된 관계를 사랑으로 일치하게 합니다. 누구에게나 공평
하게 주어지는 또 하나의 축복에 초대받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은 이들과 공유하는 삶은 우리가 살아가는 한순간
순간을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 책머리에 ]

-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 책을 계기로 새로운 체험을 하신 분들은 그 신비스런
체험을 통해, 그 후의 자기 인생이 크게 달라졌다고 했다. 나는 많은 이들의 체험담을,
내가 죽음 체험을 했던 때와 똑 같이 신선한 놀라움과 감동으로 받아들였다. 전혀 다른
장소에서 전혀 관계없는 이들로부터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의 이야기에는 불가
사의하게도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죽음체험자들처럼 놀랄 만한
것들이었다. 이 책에 수록된 일련의 체험들은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체험한 당사자들에게는 ‘현실’이며 ‘진실’인 것이다. 나는 그분들의 얘기를 경청
하면서,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보면 백일몽, 꿈, 환상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본인에게
그것이 진실이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는 ‘그 체험 후의 삶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 즉 삶의 근본적인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나게 됐다’는 점에 있음을 확인했다. ...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가 계기가 되어 죽은 이로부터 사랑에 넘친 선물을 받은
많은 분들처럼, 이 책이 당신에게도 ‘죽은 이와 산 이의 화해의 시간’을 가져다주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당신 주위에서 ‘행복감’ ‘지복감’의 파동이 파문처럼 크게 널리 퍼져
나가길 바란다. 생명 있음을 함께 기뻐하고 서로 도우면서 괴로움을 이겨내어, 살아
있는 우리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연대하는 ‘코뮤니온(communion/영적교감, 공유)’을
체험하면서 참된 ‘화해의 시간’을 하루하루 살 수 있기를 기원한다.


< 어머니 다츠로부터 다츠지에게 >
* 등장인물 : 한 노인(다츠지, 84세), 세상을 떠난 어머니(다츠)

- 강연을 마친 후 한숨 돌리고 있는 나에게 노인 한 분이 다가 오셨다. “사인을 부탁
합니다.” 침착하고 겸허한 말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그 노인은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를 가슴에 꼭 안고 계셨다. “저 같은 사람의 사인을 원하시다니요.” ... “저의
이름만 쓰면 될까요.” 라고 하자 “아니오, 그건 것은 필요 없어요.” “사인을 원하셨는데,
그러면 뭐라고 써드리면 될까요?” 노인은 천천히 오른손을 움직여 속표지의 왼쪽 면을
가리키셨다. “‘어머니 다츠로부터 다츠지에게’(어머니가 아들에게)라고 써 주십시오.”
(다츠지는 본인으로 그 어머니의 아들로 84세 된 노인) ...“그렇다면 어머님께 서는요?”
“제가 세 살 때에 돌아가셨습니다.”

- 노인의 이야기이다. “저는 어머니와 다시 만났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말입니다.”
주위의 침묵은 깊어가고 노인의 말소리만 낮게 혼잣말처럼 들려왔다. “읽어 가는 도중,
책 속에서 내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책의 내용도 잘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목소리는 책의 내용에서만이 아니라 글의 행간(行間)에서도 메아리쳐왔습니다.
‘어머니가 이 책을 통해서 저에게 말씀을 시작하신다.’라는 것을 저는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참으로 따뜻하게 말씀을 계속해 주셨습니다. 읽고 나서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아! 이 책 속의 삶은 모두 어머니의 말씀이로구나.’ 라고 직관적으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어머니의 책인 것입니다.” ... 일생동안 끊임없이 어머니를
그리던 다츠지 씨는 이제 어머니의 넘치는 애정에 힘입어 인생을 결산한다는 큰 과업을
조용히 받아들여 ‘달성’하려고 한다. 인생의 종말을 향해 고요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분과의 만남이었다.


< 켄의 선물 >
* 등장인물 : 젊은 부인(카요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외아들(켄), 친구, 간호사,
켄의 담당 의사 세 분

- 가을이 깊어갈 무렵, 카요코 씨라는 젊은 부인의 방문을 받았다. 조용하고 맑은
표정을 지닌 분이었다. ... 카야코 씨는 책 한 권을 가슴에 꼭 안고 있었다. 그 책은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였다. 그는 상 위에 책을 놓고 나서 “제가 오늘 이렇게 찾아뵙게
된 것은 이 책 덕분입니다.” 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름 아니라, 저는 한 달 반 전에
여섯 살 된 외아들(켄)을 잃었습니다. 소아암, 말하자면 백혈병이었습니다. 의사는
‘여름을 넘길 수 없을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10월초까지 견디어 주었습니다.”
... 카요코 씨는 기억을 더듬으며 아들 켄이 죽기 전 한 달 가량의 기간을 다시 한 번
되살리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말을 잠시 멈추고 깊은 침묵에 잠기다가는 또다시 이야기를
하며 장시간에 걸쳐 조용히 얘기해 주었다.

- ‘화해의 시간’이란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에 나오는 말이다. 죽음에 임박한
환자가 임종 직전에 갑자기 원기를 되찾아 마치 회복한 듯이 보이는 일이 있다. 이
기회에 환자는 자연스럽게 말을 남기거나, 하고 싶어 했던 일을 마무리한다.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 화해하고 사랑을 나누는 시간인 이런 특별한
때를 의료관계자들은 ‘화해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 (죽기 전 켄과 세분 의사와의 ‘화해의 시간’에 관한 이야기 등) 단숨에 이야기를 끝낸
뒤 카요코 씨는 다시 책에 시선을 돌려서 그 책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도 또한
침묵가운데 카요코씨와 함께 계속 앉아 있었다. 갑자기 카요코 씨는 혼자 고개를 끄덕
이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말로 표현하였다. “이 한 달 반 사이에 저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씌어 있는 데로, 비록 어린아이일지라도 죽음이 임박했을 때는,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며 화해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나도 깊이
공감했다.

캔은 젊은 의사에게, 그때 자기에게 가장 소중했던 물을 내어주었다. 작은 체구의 의사
에게는 ‘인간은 용서받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 자기 존재가 타인에게 용서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의 중요성, 그리고 존재를 용서받고 있다는 자각이야 말로 타인을
존중하는 근거이며 인간 유대의 기초’ 라는 교훈을 주었다. 나이 많은 의사에게는 있는
힘을 다해서, 상대방이 당장 그곳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 ( 그 의사의 경우엔
쉴곳)을 내어주려고 했다. 나는 켄과 세 의사가 나눈 화해의 시간은, 켄이라는 아이의
모습을 빌려서 하느님이 인간에게 가장 귀중한 것을 가르쳐 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카요코 씨는 말했다. “하나뿐인 아이를 잃어 슬프고 쓸쓸하지만 더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와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생은 그 길이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지요.
켄은 부모인 우리에게 인간이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더할 나위없는 효자입니다.” ... 이처럼, 카요코 씨는 고요하고 티 없는 맑은 분위기
속에서, 켄과 함께 보낸 나날을 통해 얻은 체험과 속마음을 나누어주었다. 나는 책을
통해 알게 된 카요코 씨와의 연줄과, 인간이 놀라운 존재라는 사실을 켄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 노인과 파동 >
* 등장인물 : 간호사 마이코, 심술궂은 노인 환자, 간호사들

- 외진 시골에서 양로원을 겸한 작은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마이코 씨는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 한 권을 친구에게서 선물을 받았다. 독서를 즐기는 그는 병원
근무 중에 휴식시간을 이용해 조금씩 읽고 있었다. ... 어느 날 마이코 씨가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데, 간호사 호출신호기가 울려, 책을 손에 든 채로 병실로 갔다가 그는 무심코
그곳에 책을 놓고 와버렸다. 그 병실은 언제나 이런저런 말썽거리가 끊이지 않아 간호사
들이 출입을 꺼리는 6인용 병실이었다. 그중에도 특히 심술궂은 노인 한 분이 걸핏하면
빈정대며, 한밤중에 필요도 없이 호출신호기를 울려대 간호사들을 애먹였기 때문이다.

- 응급환자가 들어와 이틀을 분주하게 보낸 뒤에야 심술궂은 노인이 있는 병실에 책을
놓고 나온 것을 알아차리고, 마이코 씨는 책(원래 이름은 ‘죽어가는 사람들이 전해주고
싶은 말’이다)을 찾으러 허둥지둥 병실로 달려갔다. 그 노인으로부터 ‘죽음’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 책을 일부러 두고 갔다고 꾸중하실께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노인이
책을 손에 들고 계셨다. 무슨 말을 들을까 하고 마음을 졸이던 그에게 노인은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주었구려”라고 평소와는 다른 공손한 어조로 말하셨다. 그리고는 “이것 좀
빌려줄 수 없을까?”하고 청했다. “예, 물론이지요. 천천히 다 읽으세요.”

- 저녁 검진 시간에 그 병실에 갔을 때 마이코 씨는 그 병실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부드러운 분위기마저 감돌고 있었다. 다음 날, 그리고
또 다음날, 병실 분위기는 날로 부드러움을 더해가는 것 같았다. ... 어느 날, 열린 방문
저쪽으로 환자들이 둥그렇게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문 뒤에서 자세히 보니 바로
그 노인이 모두가 둘러앉은 한복판에서 책을 펴놓고 천천히 소리 내어 읽고 있었다.
마이코 씨가 빌려준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를 낭독하고 있었던 것이다. ... 그 후
에도 그 노인을 중심으로 하는 독서회는 마치 비밀집회처럼 계속되었다. 두 달이 지났을
때, 노인은 간호사실에 책을 돌려주려고 오셨다. 노인은 책상에 책을 놓으시고 “오랫동안
빌려줘서 대단히 고마워”라고 겸허하게 말하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들려
주려는 듯이, 책을 읽은 감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 “이 책을 읽기 전엔, 험담을 해대고 서로 미워하는 짓들을 거리낌 없이 해왔지만, 이
책을 읽은 다음에 사람들이 모두 변했어. ...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하게 되었지. 병이
든 덕분에 다른 사람에게서 이런 친절을 받을 수 있다고. 가족이라도 이렇게까지 잘 해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고맙게들 생각하고 있어. ... 모두가 죽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 친척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을 많이 했어. 그들에 대한 추억을
조용히 말하는 동안에 모두가 그리워졌어. 우리가 죽으면 그 사람들이 모두 마중 나와
주리라는 기분이 들었지. 그렇게 될 테니 죽는다는 것이 조금도 두렵지 않게 됐어.” ...
한 사람이 따뜻한 감정을 지니게 되면, 그것은 그 감정을 받아들인 사람에게서 또 다음
사람에게로 파동처럼 퍼져간다. 작은 돌이 고요한 수면에 큰 파문을 일으키듯, 작은
온정이 커다란 사랑의 파동을 일으킨다.


< 자살한 어머니 >
* 등장인물 : 독신 여성 마리코, 언니, 노이로제 증상의 어머니, 자살한 어머니

- 마리코 씨는 ㅇㅇ은행에 근무하는 마흔여섯 살 된 독신여성으로, 서른일곱 살 때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관리직에 선임되었다. 판단력이 뛰어나고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며,
언제나 주위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아 부하직원들로부터는 존경을 받고 상사로
부터는 신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은행에서의 평가와는 다르게 그녀의 사생활은
괴로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 그녀의 어머니는 언니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 당시 어머니에게 노이로제 증세(신경성 질환)가 나타났다. 언니는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갔으나 별 진전이 없었고 병세는 더 악화되기만 했다. 언니는 이대로 계속하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여, 혼자 사는 마리코 씨에게 어머니를
맡겼다. 노이로제에 걸린 어머니와 함께 지낸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힘든 일
이었다.

- “어머니를 떠맡았을 때 저는 결심했습니다. ‘가정이 이처럼 암담하니 은행에서 일하는
동안만이라도 명랑하게 행동하자. 적어도 은행에 있는 동안은 어머니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므로, 어머니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고 명랑하고 즐겁게 지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쓰러지고 말 테니까’ 라고요.” ... 어머니를 떠맡은 지 약 2년이 지난 후 어느 날,
저녁 반찬을 만드는 중이었다. 그날은 은행에서 짓궂은 여자 선배에게서 불쾌한 말을
들어 기분이 우울한 상태였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부엌에 들어오셔서, 언제나 하는
불만을 늘어놓으셨다. “뭐냐, 이 생선은? 이 따위 생선을 먹을 수 있단 말이냐?” 평소
같으면 스스로에게 타이르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을 텐데, 그날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속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올라 쌓이고 쌓였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폭발해 버린
것이다. “도대체 이걸 누구를 위해 만든다고 생각하세요? 어머니는 매일매일 부정적인
말만 하시니,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우울해 못 견디겠어요. 어머니와 함께
살기 때문에, 결혼도 못하잖아요. 어머니 같은 사람은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났겠어요!”

- 발작적으로 내뱉은 자신의 격한 목소리에 섬뜩했지만, 참아온 분노가 한번 폭발하자,
어떤 말을 해도 모자랄 것 같은 심정이었다. 어머니도 마리코에게 지지 않는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알았다. 그렇다면 죽어주마.” 마리코도, 어머니도, 둘 다 무서운 형상이
되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화가 가시지 않았지만, 태산같이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키며 방으로 들어가 피곤하여 그대로 잠이 들었다. ... 마리코는 아침이면 언제나
어머니가 일찍 일어나셔서 부스럭대는 소리에 잠을 깨곤 했었다. 너무 조용한 것이
이상하게 여겨져 무심코 어머니 방을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잠옷 차림의 어머니가
대들보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발은 바닥에서 조금 들려 있었다. 어머니는 목을
매달아 자살한 것이다.

... “뒤에 저는 당시의 제 기분을 돌이켜보았습니다. 저는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
습니다. 어머니가 제 육친이면서도 딸에게 복수하듯 매달아 자살하신 사실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도 끔찍하고 부당한 일이 내게 일어났는가. 그토록 심한
어머니의 푸념과 들볶음을 참아냈고, 직장에서도 힘껏 명랑하게 행동하면서 참고 또
참아왔는데, 그런 노력에 대한 보답으로 이런 식으로 앙갚음을 받아야 한다면 너무한
것이 아닌가.’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 “ 그 이후 13년 가까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내 탓이고 어머니를 죽인 것은 나야’라고 하면서 자신을 괴롭혀왔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마르코 씨는 자신이 친모를 살해한 사람이라고 주위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도록 겉으로는 더욱 명랑하게 행동하며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능력을
인정받고 두터운 신망을 얻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관리직에 선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은행에서 받는 평가가 높으면 높을수록, 내면과의 틈은 점점 벌어져서 괴로웠다.
자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못된 인간인데도 겉으로는 착한 사람처럼 행동한다고 자책
하면서 줄곧 자신을 비난해 왔다.

- “죽고 싶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지만, 자살한 어머니를 가진 저는 자살이 다른 사람
에게 얼마나 무거운 짐이 되고, 혐오감을 주는가를 뼈저리게 알고 있었으므로 자살만은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습니다.” 그 13년의 세월은 정말로 지옥처럼 모질고 고통스러
웠던 시간들이었다. ... 연휴 중에 마리코 씨는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 책을
발견하고는, 조용히 읽기 시작했다. 임종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의 말은 따뜻하고 인정에
넘쳐 있어서 가슴을 찌르는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은 어디 두고 보자는 듯이 내뱉었던 죽어주마였지 않은가.’ 가슴을 에는
슬픔이 북받쳤다. 책을 다 읽은 후, 문득 얼굴을 들어 창밖을 보았다. 신록에 반짝이는
찬란한 빛의 파동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돌연 그 빛 한가운데에 어머니의 얼굴이 떠
올랐다. 어머니는 정답고 자애로우셨다. 나는 그때까지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 “마리코.” 자기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그리고 어머니는
명료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씀하셨다. “마리코, 나는 죽었어. 그렇지만 내가 죽은 것은
네 탓이 아니란다. 그때 나는 몸이 쇠약해 있어서 나 스스로도 살아 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어. 자살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지. 그저 몸이
저절로 움직여서 자살하게 되었지만, 난 조금도 괴롭지 않았어. 죽은 뒤에 나는 용서를
받아 빛에 감싸여 편안한 곳에 있단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말아라. 그러니까 나를 죽였다는
생각 따위는 할 필요가 없어. 그건 너의 지나친 생각일 뿐이야. 죽음은 너와는 관계없는
곳에서 나에게 주어진 거야. 그러니 마리코, 자신을 원망하는 일일랑은 그만두고 진정
으로 밝고 희망에 찬 너 자신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이것이 나의 소망이란다.”
...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빛 속으로 홀연히 사라지셨습니다.”

- “말씀을 듣고 있었다기보다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뚜렷이 새겨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 마리코 씨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그녀는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히 이 사실을 이해했고 온몸과 마음으로 이해했다. 어머니가
‘나는 용서받았다’ 라고 한 말이 전신을 꿰뚫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또한 용서를 받았
음을 강하게 느꼈다. “나는 용서 받았다. 나는 용서받았다.” 숨을 크게 내쉬며 몇 번이고
되뇌었다. ... “아아, 살아 있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구나.” 그는 마치 어린이로 되돌아가
어머니 품에 안긴 것 같았다. “온몸을 찌르고 있던 수많은 화살이 일제히 뽑혀나간 것
같았습니다. 안도감이란 이런 것이다. 자유란 이런 것이다. 하며 오랜 세월 동안 잊고
있었던 감각이 되살아났습니다.” ... 그 일이 있은 후, 주위 사람들과 세상은 완전히
다르게 보였습니다. 어머니와 화해를 이룬 저는 가족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 있으면,
자연히 깊은 공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

- 개관적으로 보면 어머니께서 마리코 씨 앞에 실제로 나타나신 것인지, 아니면 마리코
씨가 환상을 보거나 꿈을 꾼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순간에 일어난 사건으로
인하여 마리코 씨의 인생이 완전히 변한 것만은 사실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화해는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그때까지 증오하는 일에 써온 에너지가 사랑으로
바뀌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산 이와 죽은 이 사이에도 어떤 계기로 인해 화해가 이루어
진다. 다만, 그것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지 것인지를 살아 있는 사람의 상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권의 책이 마련해준 마리코 씨와의 만남을 나는
따뜻한 상념에 잠겨 받아드렸다.


< 나타난 아들 >
* 등장인물 : 50대 신사 모리카와, 부인 유키코, 아들 아키히로

- 어느 회사에 근무하는 모리카와 씨는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숨을 거두었다. “임종했습니다.”라고 전하는 의사의
말소리가 병실에 울리자, 그때까지 한마디 말도 없었던 부인 유키코 씨가 펄썩 주저앉아
통곡을 하였다. 사인(死因)은 내장파열이고, 병원에 옮겨졌을 때에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외상은 없어서 얼굴도 몸도 깨끗한 채로 잠자는 듯이 숨졌다. 열일곱
살의 고등학생이었다. 결혼한 지 11년 만에 낳은 아이로 장남이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성적이 항상 우수하였고, 성격도 명랑하고 활발해서 친구도 많았으며, 친척들에게서
칭찬도 받았었다.

- 조문객이 모두 가버리고 혼자 남게 되었을 때,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바로 며칠 전
까지만 해도 건강했던 아들이 조그만 유골함에 들어가 있었다. 그때에야 비로소 이게
꿈이 아니고, 아들이 정말로 죽었다는 사실이 가슴을 찔렀으며, 돌연 화신이 터지는
기세로 격렬한 분노가 솟아올랐다. “어째서,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가슴이 쥐어뜯기는 듯한 아픔 가운데 타오르는 분노는 분출구도 없이 점점 거세졌다.
그때 귀에 들려온 것은 아내의 목소리였다. “제가 나빴어요. 아키히로가 죽은 것은 제
탓이에요.” 아키히로가 병원에서 숨을 거둔 날 밤, 부인 유키코 씨는 흐느끼면서
모리카와 씨에게 여러 번 거듭하여 오로지 용서만을 빌었다. 그 이후 부인은 항상 같은
말을 했다. “미안해요. 제 탓이었어요.” (아키히로가 사고를 당한 날, 유키코 씨는 고교
동창 모임에 갔다가 늦는 바람에 아들이 학원에 가기전 습관적으로 먹는 간식을 급히
서둘러 준비해 준 음식을 먹었고, 학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급히 길을 건너다가
과속한 트럭에 받혀 사고를 당함으로서 유키코 씨는 자신이 늦었던 사유로 인해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고 자책 하게 됨)

- 남편은 자식을 빼앗아간 운명을 저주하며 아내를 미워하고, 아내는 자신을 원망하고,
남편에게 끊임없이 책망을 받으며 살았다. 남편은 아내를 온몸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의 분출구로 삼아 아내를 잔인하게 대했다. 그러고는 그렇게 행동하는 자신이
싫어져서 자책감에 빠졌다. 둘 다 상처를 받아 지칠 대로 지쳐 살아가면서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모리카와 씨는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별 생각 없이 서점에
들렀다. 특별히 사고 싶은 책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스스로도 왜 서점에 들어갔는지
전혀 알수 없었다. 신간 서적 코너 앞에 다다르자 쌓여 있는 어느 책의 제목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원제 : 죽어가는 사람들이 전해주고 싶은
말). 모리카와 씨는 그 제목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책 표지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으니, 죽은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무 말도 없이 홀연히 죽어간 아들, 만약 죽기
전에 그 아이가 어떤 말을 했다고 가정하면, 그 최후의 말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이
무엇인지 중요한 것을 가르쳐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권을 샀다.

- 책을 읽어가면서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 무엇인지 모를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지난 3년 동안 한 방울도 흘려본 일이 없는 눈물이 흘러 넘쳤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부스럼처럼 마음을 덮고 있던 분노와 원망이 하나씩 둘씩 벗겨지는 듯 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소리를 지르며 튀어나오듯, 몸속으로부터 눈물이 쏟아져
나와 어쩔 수가 없었다. 마지막 쪽을 넘길 때에는, 이미 날이 새고 있었다. 모리카와
씨는 그가 양복을 입은 채, 똑 같은 자세로 밤새워 책을 읽고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모리카와 씨가 울다 지쳐서, 책 위에 얼굴을 덮자 잠이 엄습해왔다. 잠간 그렇게 졸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툭툭 치는 것 같았다. 뒤돌아보니 바로 앞에
아들이 서 있었다. 아들은 흰색이 감도는 황금빛에 싸여 있었다.

- “아버지, 저를 잘 보세요. 저는 이렇게 아름다운 빛에 싸여 행복 속에 있어요. 자,
저를 잘 보세요.” ‘이게 꿈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들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 아버지는 제가 죽은 후에 어떤 삶을 살아오셨나요? 어머니와 싸움만하시고,
저의 문제로 두 분은 서로를 불행 속으로 빠뜨리고 계셨지요? 아버지는 어머니를 원망
하고, 또 어머니는 자신을 원망하고만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죽을 운명
이었어요. 지금은 인생을 완결해서 정말로 행복해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느
것 하나도 나쁜 것이 없어요. 어떠한 고통도,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인간은 더욱 성장하게
되지요. 고통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랍니다.” 아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나이를 초월한 자애와 예지가 넘쳐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사이좋게 행복한 삶을 살아주세요. 저는 지금부터 빛을 보내서 두 분을 지켜
드리겠어요.” 아키히로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생긋 웃었다. 황금색의 빛이 더욱 퍼져
모리카와 씨는 자신도 빛과 하나가 되었다고 느끼게 된 순간, 빛도 아들의 모습도 사라
졌다. ... 그날을 계기로, 부부의 관계는 완전히 변해서 집안 분위기는 햇살이 비치듯
밝아졌다.

- 말을 모두 마친 다음, 모리카와 씨는 온화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들의
죽음은 저에게 인생과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좋은 대학을 나와 출세해서 높은 지위를 얻고 돈을 버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
이고 가장 큰 행복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우수한 아들은 제 행복의 상징이었지요. 그러나
아들의 죽음과 함께 그러한 가치관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하는 것을 통감하게 되었
습니다. 그처럼 풍요로운 장래를 약속받았던 아들이 죽게 되니,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요. 그때부터 3년 동안, 괴로움에 지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저는
수녀님의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를 우연히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책을
통해 죽은 아들이 나타나 찬란한 빛을 내주었습니다. ...”

- 가톨릭교회에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커다란 마음의 전환을 ‘회심
(回心)’이라고 한다. 모리카와 씨도 죽은 아들과의 만남을 통해 물질적 행복에서 진정한
행복으로 마음을 돌려 참다운 가치관에 눈을 뜬 것이다. 모리카와 씨의 체험이 현실
이었는지, 아니면 꿈이나 환상이었는지를 구별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사실에 달려 있다.
그것은 그가 갖고 있던 가치관이나 행동이 그 후 매일의 생활에서 어떻게 변했는가를
보는 것이다. 그 체험을 계기로 그때까지 지니고 있던 증오감이나 소외감이 사람들과
일치를 이루고 조화를 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전환되었다면, 그것은 ‘현실 체험’인 것
이다. 모리카와 씨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을 체험했는지 아닌지는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모리카와 씨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가치관의 대전환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임종의 자리에 나타나신 두 분>
* 등장인물 : 어머니 마사요, 어린 딸 하루카, 마사요의 아버지, 두 분

- 상잉 지방의 어느 도시에서 열린 젊은 어머니들을 위한 세미나 지도를 위해 그곳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한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 있었다. 그 아이는 어머니에게
가까이 오는 사람이 있으면 이를 악물고 사납고 거칠게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 휴식 시간에 그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나를 만나러 왔다. 가까이에서 본 그 아이는
사나운 표범을 생각하게 했다. 어머니 마사요 씨는 딸이 그렇게 된 경위를 말해주었다.
“일 년 전쯤의 일입니다. 이 아이가 두 살 때, 근처에 사시던 아버지께서 졸도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를 이웃집에 맡기고 나서 급히 달려갔었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아버지는 위독한 상태였다. 눈앞이 캄캄했다. 당황해 하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우선
아버지의 입원 수속을 끝낸 다음, 간병도 제대로 못 하고 아버지의 용태를 보며 눈물만
흘리면서 지켜보다가 밤이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딸인 하루카를 데리러 이웃집에
갔다. 그런데 하루카의 얼굴이 누구한테 얻어맞았는지 한쪽 눈이 덮일 정도로 부어오른
흉한 얼굴로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아이를 맡아 돌보아 주었던 이웃집으로부터의
가해 사실은 전혀 없었다.

- 다음 날 아직 부기가 가라앉지 않은 하루카를 의사에게 데려갔다. “누군가에게 얻어
맞은 걸까요?” 로 묻자, 의사는 대답했다. “이건 아토피성 질환입니다. 이 질환은 심인성
(心因性)인 경우도 있습니다. 어린이는 어머니의 걱정을 민감하게 느낍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당신의 걱정이 딸에게 전달되었고, 어머니가 돌연 자기를 내버려
두고, 홀로 남겨졌다는 충격이 겹쳐져서 이렇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느 누구에게서
매 맞은 것이 아님을 알고 일단 안심했다. 마사요 씨는 하루카를 데리고 곧장 아버지께서
입원중인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도착해서 그는 아버지를 줄곧 시중들고 계시던 어머니와
교대하고 어머니에게 하루카를 부탁하고, 혼수상태에 있는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오직
마음을 다하여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의식불명상태가 계속되면서
돌봄은 계속되었다. 한 번은 친정에 갔더니 하루카의 얼굴이 여전히 부어 있었고,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난폭해져 있었다. 입원하신 지 엿새째 되는 날에 아버지의 의식이 돌아
왔다.

- 의식이 든 아버지께서는 분명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모르는 두 분이
병실을 방문해서 줄곧 시중을 들고 격려해 주셨단다. ... 두 분은 일본인이 아니었어,
지금껏 만난 일도, 본 일도 없는 분들이었어, 그분들이 한 번도 나를 떠나지 않고
간병해 주셨어. 그래서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그분들은 늘 온화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 계셨어. 그래도 부부 같아 보이지는 않았어. 화장실에 가는 일도
한 번 없이, 말없이 계속 앉아 계셨어. 두 분에게서 나오는 빛과 같은 것에 의해 병이
나아가고 있음을 알았어. 그래서 그 두 분이 곁에 계신 것만으로도 아무 걱정이 없다고
생각했지. 참으로 친절하고 온화한 분들이었어.” ... (아버지의 과거 생활상 등 회상)
아버지의 병세가 호전되어, 마사요 씨는 하루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사요
씨는 집과 병원을 왕복하면서, 집에서는 울고 불며 보채는 하루카를 돌보고, 병원에서는
아버지를 간병하느라고 몹시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다. 병의 후유증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말씀은 하실 수 있어도 한쪽 팔을 움직이지 못하셨다.

- 병원에 가면 아버지께서는 변함없이 언제나 당신을 돌보아 주셨다는 그 두 사람에
대해서만 계속 이야기하셨다. 아버지께서 확고한 어조로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는 모습으로 보아서, 단순한 병자의 헛소리로만 여길 수 없게 되었다. 어떻든
이야기는 들어주기로 하고, 게다가 조금은 흥미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두 분은 어떤
분들이었어요?”라고 물었더니, 아버지는 눈을 반짝이며 대답하셨다. “한 분은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로 흰 머릿수건을 두르고 흰 옷을 입고 있었어, 두건에도 옷에도 분명
하게 파란 테두리가 들어 있었어. 허리는 구부러지고, 얼굴에는 잔주름이 가득했지.
인정이 많은 분이었어.” ... “그러면 또 한분은요?” “또 한 분은 남자인데 엷은 콧수염을
길렀고,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어. 해골같이 몹시 여위어보였고, 어쩐지 옷을 입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어. 아무튼 친절하고 온정이 넘치는 분이었지.” “그 두 분을 본
일이 전혀 없으셨나요? 예전에 어딘가에서 만나신 적도 없고요?” “아니야. 전혀 모르는
분들이야. 사진도 본 일이 없어. 두 분 다 틀림없이 훌륭한 분들이야.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 께 틀림없어.”

- (마사요씨는 도서관에서 외국인 초상화나 사진이 실려 있는 책, 노벨상 수상자들의
사진이 들어 있는 사진집, 성서나 그리스도교 관계 서적 여러 권을 빌려와 보여주면서
일일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두 분이 ‘마더 데레사’ 수녀님과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
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됨) 그리스도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당신 일만을 생각하며
돈에만 매달려 살아온 아버지에게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는 분들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마사요 씨는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아버지는 “역시, 이 두 분이 나를 구해주신 거야”
라며 만족스럽게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마사요에게 이 두 사람에 관해
알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마더 데레사는 인도에서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을 위해
자신의 생을 바친 분이고, 노벨 평화상을 받으신 분이에요. 콜베 신부님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께서 “콜베 신부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으니, 알아보고 나서
가르쳐주면 좋겠다.”라고 하셔서, 콜베 신부님의 전기(傳記)를 빌려와서 읽었다. ...
그리고 아버지에게 콜베 신부님의 생애를 이야기 해드렸다. 1894년에 태어난 콜베
신부님은 1941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폴란드의 선교사로 일본에도 체류하셨던 사실,
전쟁 중에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끌려가서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처형당하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콜베 신부님은 “벗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는 성서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신 것이다. 또한 병자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으셨다고 한다. 신부님의
사후에도 콜베 신부님께 도움을 청하면 그분의 도움으로 불치의 병이 완쾌되거나, 죽어
가던 병자가 급격히 회복되는 기적이 많이 일어났다. 콜베 신부님은 1982년에 가톨릭
교회의 성인으로 시성(諡聖)되었다. 그리고 마더 데레사가 하신 말씀중의 한 내용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병은 자신이 어느 누구에게도 필요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온갖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약도 쓰고 치료도 할 수 있으나,
자기는 다른 사람에게 필요가 없는 존재라고 스스로 느끼는 사람에게는, 적극적으로
봉사하는 손과 사랑하는 마음 외에 이 무서운 병을 고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 “욕심덩어리이고 자기중심적이던 아버지의 마음이 뭔가 달라지셨다. 아버지의 병실에
나타나신 두 분이 목숨을 건져주셨을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고쳐주셨고, 민감한 하루카가
그것을 알아차려 아이의 병도 나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루카는 얼굴은 나았지만
마음은 아직 완전히 안 나은 상태였다. 마사요 씨는 긴 체험담을 마치자 나는 무의식중에
그분의 손을 꼭 잡아주며 말해주었다. “아버님의 병을 고쳐주신 콜배 신부님께 기도드리고,
두 분께 청해보세요. 두 분은 아버님을 보살펴주셨으니까, 당신의 기도를 듣고 하느님으로
부터 치유의 은총을 가져다주실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버님을 문병하러 갈 때마다
하루카를 데려가 보면 어떨까요?” 반년이 지난 후 다시 상잉을 방문했을 때, 마사요 씨가
하루카를 데리고 만나러 왔다. 나는 완전히 변한 하루카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얌전
하고 귀여운 아이가 거기에 있었다. “덕분에 하루카는 이처럼 착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마사요 씨는 기쁨에 넘쳐 환한 얼굴로 말했다. 마사요씨는 하루카를 아버지의 병실에
매일 데리고 갔던 모양입니다. ... “전에는 아버지를 문병 가는 것이 그토록 싫었는데,
지금은 무척 즐겁습니다. 아버지와 둘이서 마더 데레사나 콜베 신부님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그분들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신 분이시기에,
죽음에 임했던 상잉의 보잘것없는 지독한 이기주의자 곁에까지도 나타나주신 것이겠지만,
그래도 마더 데레사나 콜베 신부님 같은 분이 아니었더라면 아버지 같은 사람을 구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 이세 만(灣) 태풍 때 죽은 언니 >
* 등장인물 : 중년 여성 나츠에, 언니, 단골손님

- 나고야에서 열린 강연을 마쳤을 때, 중년 여성 한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나를
찾아왔다. 그분의 이름은 나츠에 씨로, 1959년 이세 만(灣)에 불었던 태풍으로 언니를
잃었다. 이때에, 이세 만에서 양식하는 진주조개를 전멸시켰을 뿐만 아니라, 오천 여명이
넘는 인명을 빼앗아 갔다. 이세 만 태풍이 지난지 36년이 지났다. 언니를 잃은 이후
나츠에 씨는 매일 밤 언니의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때 이후 계속해서 꾸어온 꿈은
언제나 같은 내용이었다. “... 길고 검은 머리가 상자에서 물 위로 떠올라, 언니가 떠내려
가는 쪽과 반대방향으로 긴 꼬리가 되어 끌려갑니다. 머리카락 한 가닥 한 가닥이 마치
도와달라고 애원하듯이요.” 나츠에 씨는 언제나 땀에 흠뻑 젖어 눈을 떴다. 자신이 지금
이세 만 태풍에 말려 든 것 같은 현실감을 맛보는 것이다. 꿈을 꾸고 난 아침에, 그녀의
뇌리를 스쳐가는 생각은 늘 같은 것이었다. ‘언니는 틀림없이 성불(成佛)하지 못하고
이승을 헤매고 있는 거야.’

- 나츠에 씨는 야채상을 하면서 일하였는데, 장사도 잘됐고 가정도 원만했고, 자녀들도
잘 성장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순조로울수록 오히려 언니에 대한 걱정은 더 커졌고,
언니의 일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항상 따라다녔다. 일주일에 한번 있는 휴일이 오면
언니를 위해 참배를 갔다. 신사(神社)에서 제사를 드리고, 절에서 경을 읽고 보시도
했다. 그래도 꿈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보시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으로 공양은 점점 늘어났고 결국에는 신흥종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벌어
놓은 돈을 마구 갖다 바치기도 했으며, 시키는 대로 더 많은 돈을 내고 기도사에게
경을 읽게도 했다. 그래도 역시 효과가 없었다.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가게에 자주 오는
단골손님이 가슴에 책을 안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책은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 이었다. 책을 보니 문득 언니의 일이 떠올랐다. ‘혹시, 언니가 내게 무엇인가를
알려줄지도 모른다.’ ... (책을 살려고 했으나 단골손님으로부터 선물로 받게 됨) 그날
가게 일을 마치고 나서 즉시 방에 들어가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 ‘죽어가는 사람들은 죽기 직전에, 그때까지 끝내지 못한 일이나 하지 못한 말을 하기
위한 화해의 시간을 가진다고 하지 않는가. 만일 언니가 화해의 시간을 가졌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읽고 있는 동안에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일주일가량에 걸쳐 책을 세 번 되풀이해 읽으니, 더욱더 눈물이 났다.
그토록 열중해서 진지하게 책을 읽는 일은 없었다. 다 읽고 나서 또다시 언니에 관해
생각했다. ‘언니는 순식간에 높은 파도에 휩쓸려 사라져버렸다. 매일 밤, 언니의 죽는
장면이 꿈에 나타나는 것은 언니가 죽는 순간,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알아들을 때까지 계속 꿈에 나타나는 것
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니 또다시 눈물이 그치지 않았고 눈물이 다말랐다고
여겨질 때까지 계속 울었다. 그런데 그날 밤부터 전혀 언니가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주일이 지나도 언니의 꿈을 꾸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다. 어느 날, 동이 틀 무렵 언니의
모습이 눈앞에 또렷하게 나타났다.

- “언니는 죽을 당시의 젊은 모습이었으나, 그때는 꿈에 나타났던 것처럼 상자 속에서
흠뻑 젖은 모습이 아니라, 생글생글 웃으며 빛나고 있었습니다.” 언니는 하얗게 반짝이는
옷을 입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온몸에 후광을 받은 듯이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츠에 씨는 언니가 성불한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빛에 싸인
언니는 “나츠에야, 아무 걱정도 하지 말아라. 나는 지금 행복한 곳에 있고, 죽을 때도
아무런 괴로움이 없었단다.” 그 순간 나츠에 씨는 매우 훈훈한 기운이 자신을 감싸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이것은 꿈이 아니야, 현실이야’라고 생각했다. “나츠에야, 너의
기도는 고마웠어. 너의 기도는 하나도 헛되지 않았어. 모두 빛이 되어 나에게 도달했
단다. 그리고 그 빛은 또 너에게로 내려가고, 또 다른 곳으로도 퍼져가는 거야. 너의
기도가 제일 좋았어. 기도는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란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언니의
모습은 사라졌다.

- “젊어서 죽은 언니가 얼마나 원통했을까 하는 생각과 저만 혼자 살아남아서 행복하게
지내도 괜찮은 것인가라는 부담감 때문에, 오랜 세월을 두고 그런 악몽을 꾼 것이지도
모릅니다. 언니는 성불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사실은 언니가 오늘까지
줄곧 저를 인도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제 인생을 꿋꿋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서 계속 꿈에 나타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뒤로
언니는 한 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 세상을 떠난 언니와의 재회를 통하여
나츠에 씨는 수십 년 동안 겼었던 괴로움이 치유되었다. 그리고 나츠에 씨가 자기 체험을
이야기함으로써, 그것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이세 만 태풍 때 체험한 갖가지 깊은 상처나
슬픔에서 치유되고 있었다. ... 죽은 이와 가진 화해의 시간은 다름 사람에게도 화해의
시간을 준다. 나츠에 언니가 한 말과 같이, 따뜻한 빛의 파동은 반드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면서 돌고 돌 것이다.


< 단풍이 반짝이는 도서관 뜰에서 >
* 등장인물 : 30대 대기업 회사원 키요카와, 아내, 양부, 친부

- 키요카와 씨는 부모님의 사랑을 모르고 자라난 남자이다.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
를 읽음으로써, 만나본 적이 없는 아버지와의 연줄을 처음으로 느꼈다고 한다. “제 생애
에는 처음부터 ‘아버지’라는 존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아버지께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언제나 저의 인생을 떠벋쳐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도호쿠 지방에서 태어났다. 생가가 가난하여, 그는 어렸을 때 양자로 가게 되었다. 그 뒤
줄곧 아버지란 존재를 몰랐고, 성장한 뒤에도 생부(生父)와 만난 적이 없었다. 성적이
우수했던 그는 마침내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다. 사회인이 되면서 그는
양부 집을 떠나서 살았다. 생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20대말경의 일이었다.
“그때 저는 소식을 듣고도 다른 사람의 일처럼 흘려버렸습니다.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제 인생에서 아버지는 저와 아무 관계가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 키요카와 씨는 그 후 회사의 동료와 결혼하였다. 그들에게는 자식이 없었지만 지난 10년
동안 그런대로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재능을 발휘
하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일을 했다. ... 최근 그는 문득 자신이 이상하게 된
것은 아니가하고 느낄 때가 있었다. 감정이 전혀 우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의 프로
젝트를 완성할 때면 직원들과 함께 눈물을 글썽이며 기뻐하면서도, 컴퓨터를 마주하고
앉았을 때는 항상 갖는 무기질(無機質)의 느낌만이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과 말할 때에도
생각은 분명하게 표명하지만, 기분을 말로 표현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자신을 알아차리기
시작한 어느 날, 회사에 출근하려는데 아내가 책 한권을 건네주었다. “이 책 꼭 읽어 보세요.”

- 회사까지의 통근 시간은 전철로 약 한간 반쯤 걸렸다. 전철좌석에 앉자마자, 무심코
아내가 준책을 가방에서 꺼냈다.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원제 :죽어가는 사람들이
전해주고 싶은 말). 제목만 보고 나서 그는 이 책이 자기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할 일은 산더미 같고 경쟁은 심해서 공연한 일을 생각하고 있을 틈이 없고,
더구나 ‘죽음’은 동떨어진 낱말이었다. 그래도 ‘이런 행동을 한 일이 없는 아내가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하고 이상히 여겨져서, 여기저기 책장을 넘기다가 눈길이 머무는 대로
부분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는 마침내 점점 책 속으로 끌려들어갔다. 읽어나가는 도중,
뭔가 잊고 있던 감정이 그의 가슴에 치밀어 올랐다. 너무나 흥분하여 그는 책을 ‘탁’하고
덮었다. 도저히 전철 안에서는 읽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억누를 수 없는 자신이 돌연
나타난 것이다. 평소의 냉정한 자신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가슴속에서는 정체 모를
‘태풍의 눈’ 같은 것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며, 계속 그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 후에도 그는
매일 책을 가방에 넣고 다녔으나 읽는 것이 두려웠다. 그것은 자기의 인격을 빼앗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읽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다만 어디서 읽어야 좋을지를 몰랐다. ‘혼자만 있는 곳에서 이 책을 읽고 싶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입사 이래 처음으로 도서관에 갔다.

- 날씨가 화창한 토요일 오후였다. 도서관은 넓은 공원 부지 안에 있었다. 마침 11월
이어서 단풍이 산뜻한 빛을 띠고 있었다. 도서관에 들어서니, 사람이 별로 없이 한산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내 생애를 통해 이렇게 조용한 시간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
구나’라고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자기에게 어떤 변화가 일고 있음을 느끼면서,
일인용 책상에 앉아 아내가 준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 마음 속에도 이런 감정이 있었던가’
라고 놀랄 정도로 뜨거운 감정이 용솟음쳤다. 어느 사이에 눈물이 흘렀다. 그는 눈물을
닦으면서, 계속 책을 열심히 읽었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게 되어,
책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공원의 단풍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땅 위로 무지개
같은 광채를 드리고 있었다. 한적한 나무 그늘 밑 벤치에 앉아 계속 열중해서 책을 읽었다.
끝까지 읽었을 때, 키요카와 씨는 고개를 숙이고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태어난 이래로
이토록 많이 울어 본 기억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생부에 대해
생각했다.

- ‘아버지라니 ... .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리워한 일도 없다고 애써 생각해왔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만, 나의 감정에 덮개를 씌워 억누르고 있을 뿐이었어.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은 자식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아버지가 인정하지 않은 자식인
나는 그런 아버지를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눈을 들어보니, 눈물이 만들어낸 안개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단풍의 물감을 녹여서 그려낸
환상적인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나무 사이로 스쳐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볼 위를 흐르는
눈물을 씻어주었다. 그때 그는 아버지의 존재를 뚜렷이 느꼈다. 아버지의 얼굴 모습이
떠오른 것이 아니라, 다만 ‘아버지께서 계신다’라는 느낌을 가졌다. 키오카와 씨는 어느
사이에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고 있었다. 자기가 태어났을 때의 아버지의 기쁨, 그러나
가난한 탓으로 자식을 양자로 보내야 했을 때의 원통함, 그리고 무정함, 양부모에게
자기 자식을 넘겨줄 때에 느꼈던 살을 에는 듯한 아픔 ... 멀리 헤어져 있어도 아버지
께서는 언제나 아들의 일을 걱정하고 계셨겠지...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일생동안 만나
볼 수 없었던 아들을 생각하고 게셨을 아버지 ...,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차례차례 떠
올랐다. ‘나에게는 피를 나누어준 아버지가 계셨다. 그 아버지께서는 한 번도 아들을
잊은 일이 없었다. 나를 사랑해 주셨던 것이다.’

- ‘돌이켜 보면, 내 인생에는 아버지라는 커다란 수호자가 계셨던 것이다. 구체적인
말씀을 하시거나, 도와주신 일은 없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호해주신 것이다. 양자
라고 해서 별로 비뚤어진 일도 없이, 꿋꿋하게 자라나서 훌륭하게 어른이 된 것도 그분
덕분인지도 모른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고, 외롭지도 않았다. 아버지와 따뜻한 마음
으로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 가을빛에 물든 나뭇잎은 햇빛을 받아 빨갛게 노랗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있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 온갖
나무를 키우듯이, 나의 인생 위에도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이 내리쏟고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 사랑이 나를 뒷받침해주었던 것이다.’ 라고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 다양한 색깔의 잎들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하늘의 색깔도, 빛의
느낌도, 모두 다르게 보였다. 그는 ‘자연이 이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이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먼 하늘 저편에서, 자신의 일생을 따뜻하게 지켜봐주신 아버지의
시선을 의식할 수 있었다. ‘인간은 자연과 대지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이제, 나는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고 그리고 또 대우주와 연결되어 있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서, 오랫동안 그곳에 서 있었다. 아버지와 마음을 나눌 수 있었고, 그리고
아내와는 끊을 수 없는 정을 느끼고 있었다.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키요카와
씨의 입에서 조용히 한마디의 말이 새어나왔다.


< 자전거와 손자 >
* 등장인물 : 시어머니 카즈에, 손자 케이타, 맏며느리 히로코, 남편, 증손자 다케시

-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분을 약속후 찻집에서
만났다. 나이 든 분은 카즈에 씨(82세)였으며, 중년 여성인 맏며느리는 히로코 씨(56세)
였다. 카즈에 씨가 먼저 말을 시작했다. 책을 읽고 나서 수녀님께 제 이야기를 꼭 들려
드리려고 싶었고, 특히 며느리 앞에서 말하고 싶어서 이렇게 둘이 함께 나왔다고 했다.
“제 첫 손자, 그러니까 며느리에게는 맏아들인 케이타는 다섯 살 때 강물에 빠져 죽었
습니다.” 카즈에 씨가 50대였던,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지난 일이었다.

- 카즈에 씨에게 케이타는 첫 손자였다. 다섯 살이 되는 생일이 가까워오는 어느 날,
할머니는 저녁 식사 중에 “생일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으냐?”고 묻자 케이타는 눈을
반짝이며 “자전거를 갖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다섯 살 된 손자에게 자전거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고, 아직 어리니까 좀 더 자랄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고
했다. 케이타는 동네 아이들은 모두 갖고 있다고 하면서 끈질기게 졸라댔다. 둘이서
주고받는 말을 듣고 며느리(엄마)가 결심한 듯 말했다. “케이타가 저렇게 졸라대니,
제일 갖고 싶어 하는 것을 사주는 것이 어떨까요? 곧 클 것이고, 자전거를 타는 것은
좋은 운동이 되니까 건강에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할머니는 약간 불안했으나, 손자가
열심히 졸라대고 며느리의 설득에 못 이겨 마지못해 승낙을 했다. 케이타의 생일날,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가 배달되었다. 집주위에서 타는 연습을 시작했고, 곧 혼자서도
탈 수가 있게 되었다. 할머니도 엄마도 모두 바쁜 일이 있어 케이타가 없는 것을 오후
늦게야 알아차리고 모두가 찾아 나섰다. ... 마을 아이들이 “강 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어요.”라고 대답했다. 강가에 다다르니, 케이타의 자전거가 넘어져 있는 것은
보았으나 케이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두 시간 후, 강에 빠져 하류로 흘러가서
둑에 걸려 물 위에 떠 있는 케이타의 시체를 발견했다.

- 집에 돌아 온 남편은 장남을 별안간에 잃은 노여움으로, 아내에게 버럭 화를 낼 수
밖에 없었고, 시어머니도 같은 생각이었다. “너는 살인자다.” 둘 다 그렇게 말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카즈에 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런 끔찍한 말이 아들을
잃고 괴로워하는 며느리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지금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내뱉고 나자, 분노는 더욱 부풀어 올라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
습니다. 저는 며느리에게 계속해서 욕을 해댔습니다. ‘그래서 내가 반대했던 거야.
자전거는 아직 이르다고 그렇게 네게 말했건만, 너는 이웃 아이들이 다 갖고 있다면서
허세를 부리며 무리하게 비싼 것을 사서 주더니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지 뭐냐. 너는
언제나 고집이 세었으니까.” 노여움은 노여움을 불러와서, 시어머니는 평소의 불만
이나 과거의 일까지도 모두 끄집어내어 온갖 욕설을 며느리에게 퍼부었다 “아들이
너 같은 여자와 결혼한 게 잘못된 거야.” 이런 온갖 욕설을 퍼부어대니, 며느리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게 되어 친정으로 갔다.

- “며느리는 견딜 수가 없었겠지요. 누구보다도 마음이 괴로웠을 며느리에게 참으로
혹독한 욕설을 퍼부어댔으니까요.” 카즈에 씨의 어조에서 깊이 뉘우치는 마음이
엿보였다. 그때, 히로코 씨가 갑자기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당시의 심정은 정말로
끔찍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 제가 살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님이나
남편이 저를 원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저는 자살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가장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분은
제가 아이를 죽였다고 할 정도로까지 계속해서 저를 괴롭혔기에 저는 죽으려고 해도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두 분의 괴롭힘을 참아내는 힘이 있었기 때문에, 슬픔으로
주저앉을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죽일 생각으로 죽인 것이 아니다. 누구도 내 시련과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다.’ 이러한 무언의 반발심이 저를 살 수 있게 하는 힘이 된 것
입니다.”

- 친정집은 오빠 가족이 상속하여 상주하고 있어 거처하기가 곤란하였고, 오빠의
아이들을 볼 때마다 죽은 아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아들의 위패가 있는 곳에라도
가 있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다시 시집으로 돌아왔다. ... 히로코 씨는 두 사람에 대한
떳떳치 못한 생각과 죄의식 때문에 더욱 집안 살림에만 진력했다. 드디어 집안이
표면상으로는 평온해졌고, 아이도 둘이나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사고를
잊은 적이 없었고, 마음속에는 커다란 응어리가 남아 있었다. 그 무렵, 히로코 씨는
서점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를 발견했다. 죽은 아이의 일이 생각나서,
집에 돌아오자 마다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생명과 인생이란 것이 얼마나 존엄한 것인가를 깨달았고,
그것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 책을 어머님께 읽으
시도록 권했습니다.”

- 산슈에는 히로코 씨 남편의 회사가 운영하는 휴양소가 있어서, 여름에는 가족 모두가
그것으로 가곤 했다. 그곳은 숲으로 둘러싸인 고원 지대로 자연은 아름다웠으나, 특별한
오락시설은 없어 처음으로 그곳으로 간 초등학교 5년생인 증손자 다케시에게 약간
따분한 곳이었다. 휴양소에 도착하던 날, 카즈에 씨는 방안에서 혼자 몸을 식히며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산책에 싫증난 다케시가 혼자 돌아와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 근처에 자전거 대여점이 있어요. 타보실래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카즈에 씨는 손자 생각이 났고, 온몸이 떨렸다. “안돼, 절대로 타면 안돼.”
다케시는 할머니의 무시무시한 노기에 놀라는지, 말없이 어디론가 가벼렸다. 그렇지만,
별 다르게 놀 거리가 없는 다케시는 지루하였는지 몰래 자전거를 탄 모양이었다. 그
뒤에, 증손자에게 너무 심하게 화를 내며 말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케시는 다섯 살짜리 어린이가 아니니까’라고 생각을 고치고 “자전거를 탈 때에는
조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다케시가 할머니를 꾀어, 같이 타게 되었다.
다케시는 “괜찮아요. 2인용 쌍페달을 가리키며, 제가 페달을 밟아드릴께요. 할머니는
앉아서 페달에 발을 올려놓고 계시기만 하면 돼요.” 라고 말했다.

- 자전거는 인적이 없는 고원의 자전거 길을 거침없이 달려갔다. (얼마 안지나 같이
페달을 밟게 됨) 두 사람의 가쁜 숨소리와 페달을 밟는 리듬이 약동하는 숲의 리듬과
하나가 되는 듯 했다. “어때요, 재미있으시죠? 혼자 타는 것 보다 둘이 타는 편이 더
재미있어요.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즐겁네요.” 그 말은 카즈에 씨의 가슴에 깊이 메아리
쳤다. ‘죽은 손자가 곁에서 내게 말을 하고 있다.’ 웬일인지 자꾸만 그렇게 생각되었다.
한 바퀴 돌고 나서 자전거에서 내리며 다케시가 말했다. “할머니, 참 재미있었어요.”
“응, 덕분에 난생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 보았구나. 즐거웠단다. 참으로 고맙구나.”
그날 밤, 카즈에 씨는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읽었다. 말 한마다
한마디가 마음에 깊이 울렸다. ‘역시 죽은 손자가 곁에 왔던 것이다., 증손자를 통해
손자가 나타나서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었다’ 라고 강하게 느꼈다. 가슴속에서는
‘즐겁지요? 즐거워요’라는 말이 메아리쳐오는 것 같았다. ‘온몸으로 느끼는 상쾌함.
초목과 흙의 향기. 풍요로운 자연의 숨결. 바로 눈앞에는 나를 이끌어주는 힘 센 아이가
있다.’ 아아! 즐겁다는 것은 그런 감촉이었다. 카즈에 씨는 오랜 세월 동안 잊고 있던
것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즐겁게 사세요”라고 사람들이 아무리 말을 해주어도 허사
였지만, 손자는 ‘즐겁다는 것은 이런 것이에요’라고 몸으로 가르쳐 준 것이다.

- (시어머니 카즈에 씨와 며느리 히로코 씨는 용서와 사과로 서로 화해함) 산슈에서
돌아오신 어머니께서는 많이 변하신 것 같았다. 나 자신도 책을 읽은 이후 변했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내가 용서받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우리 두 사람의 관계가 크게 변한 것 같이 생각되었다. 손자와 자전거를 타신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토록 뜻 깊은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머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전에 체험한 적이 없었던 훈훈함을 느꼈다. 어머님께서 말씀하신 ‘즐겁네요’
라는 말이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었다. ... 만난 때로부터
1년 후,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최후의 모습을 알려드리기 싶다는 내용의 편지
한통을 히로코 씨로부터 받았다. ... “어머니께서는 노인들이 오실 때마다 즐겁게 차와
과자를 내놓으셨습니다. 어머님의 인사말은 ‘여러분, 이렇게 와주셔서 즐겁습니다.’
였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언제나 상냥하셨고 모든 분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경청하셨
습니다. 저의 집은 따뜻한 양로원같이 되어서 모든 분들이 즐거워하셨습니다. 노환으로
어느 날 하루 반 동안 자리에 누우시더니 주무시듯 돌아가셨습니다. ‘고맙다. 즐겁구나.’
이것이 최후의 말씀이셨습니다.”

- 서로 증오하며 사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차디찬 얼음 덩어리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한 사람의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그 따뜻한 온기로 이웃의 얼음까지도 녹는다.
마음속에서 자기 자신과 화해하기 시작한 사람은 반드시 타인과도 화해하게 된다. 나는
자전거와 손자의 이야기를 상기하면서, 이것도 죽은 이와 나눈 ‘화해의 시간’의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과거를 원망한다든지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인생을 낭비
하고,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그르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은 이가 가르쳐 준다. “자,
보세요! 살아 있다는 것은 이처럼 즐거운 것이에요. 왜 그렇게 침통한 얼굴을 하고
있나요?” 우리는 죽은 이로부터 이러한 훌륭한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새삼스레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모래 공포에 사로잡힌 소녀 >
* 등장인물 : 소녀 유카리, 엄마, 할머니

- 강연이 끝난 뒤에 열 여설 살의 소녀가 찾아왔다. “좀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괜찮을
까요?”아름다운 소녀로 커다란 눈을 뜨고 내 앞에 똑바로 서 있었다. 주저하는 빛도
없이 나를 쳐다보는 모습에서 그리고 멋진 자세와 또렷이 말하는 품에서 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그런데 그 빛나는 듯 싶은 아름다움을 저버리는 것 같은
소녀의 첫마디는 전혀 예상외의 것이었다. “저는 최근까지 등교 거부를 하고 있었어요.
그건 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이지요.” 대수롭지 않은 듯 입 밖에 내놓은 그 말이 지니는
의미의 무게에 나는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소녀에게 의자를 권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유리카라는 이름의 이 소녀는 초등학교 때 3년 동안 부모의 직장 일로
미국에 가서 유학을 했다. 열한 살 때 혼자 일본으로 돌아와 어느 지방의 해변가, 작은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할머니 집에 맡겨졌다. 초등학교에 편입했고 그 후 중학교에
진학했다.

- 중학교 2학년 초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해변가 길목에서 여고생 불량배
여섯 명을 만나게 되었다. (... 말을 주고받는 중에) 우두머리격인 여고생이 잔인한
웃음을 띠며 앞으로 나왔다. “언제나 우등생 티를 내는 건방진 년이야!” 그 말을 신호로
불량배들은 유카리의 책가방을 모래밭에 집어 던지고 유카리를 제방에서 모래밭으로
밀어 넘어뜨렸다. 엎어져 쓰러진 유카리의 몸에 여섯 명이 일제히 올라타 짓눌렀다.
그리고 “해치워!”라고 하자, 그들은 유카리의 얼굴을 모래 속으로 처박았다. 입과 코,
귀로 모래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숨이 막힐 것 같아 몸부림치며 고개를 들고 숨을
쉬려하면 머리를 다시 짓누르는 바람에 숨을 들이쉰 입으로 또 모래가 들어와 목이
막혔다. 아무리 몸부림을 치며 빠져나오려고 해도 모래에 더욱 깊이 파묻히는 것 같았던
유카리는 공포로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마침내 유카리는 극도로 괴로운 나머지 녹초가
되어 뻗고 말았다. 그러자 일제히 유카리의 몸을 발로 차고 또 차더니 “이제 알았어?”
라며 온갖 욕설과 상소리를 퍼붓고는 사라졌다.

- 꽤 늦게 돌아온 손녀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 할머니는 너무나 놀랐다. 그날부터
유카리는 두 번 다시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할머니나 선생님이 아무리 “괜찮아”라고
안심시켜도 듣지 않았다. 공포 때문에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유카리는 불량배들의 보복이 두려웠던 게 아니었다. 유카리가 사로잡힌 것은 모래
속으로 파묻혀 들어가는 공포였다. 모래가 귀로, 입으로 들어오는 감촉, 쏴쏴하는
모래 소리, 그런 것에 사로잡혀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바깥바람 소리만 들어도
모래 먼지가 소용돌이치며 자기를 갑자기 뒤덮는 게 아닌가 하고 두려워하게 되었다.
유카리는 이전에도 질식할 뻔 한 체험이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과 함께
도쿄에서 살고 있었을 때이다. 할머니를 찾아 이 해변가 마을에 놀러 왔다. 이 마을의
한 소녀와 친해지면서 둘이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을 때이다. 그 애가 별안간
뒤에서 유카리의 어깨를 눌러 바닷물 속에 처박았다. 그러던 과정에서 바닷물을 잔뜩
마셔 점점 더 숨을 쉴 수 없게 되었다. 그 아이는 그렇게 몇 번이나 머리를 눌러 질식
하기 직전까지 짓궂은 학대를 되풀이 했었다. 그때는 그 일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 곧 아주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번에 당한 학대로 잊어버리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어린 시절의 공포를 불러일으켜 지금의 공포와 겹쳐졌고 이 공포는
갈수록 증폭되어 갔다.

- 그 후 일 년쯤은 전혀 바깥에 나가지 못하고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유카리는 일 년이
지나도 공포를 잊기는커녕 일 년 전의 기억이 되살아나 두려움은 더해지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손녀가 방에 없는 것을 알고는 할머니가 밖으로 찾으러 나왔을 때,
유카리는 마당에서 별동별이 떨어지는 밤하늘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놀랐지 뭐냐.
갑자기 네가 없어져서.”라고 말하자, 유카리는 “별이 되고 싶어요.”라고 나직이 중얼
거렸다. 그것이 유카리가 학대 사건 이래로 처음으로 밖에 나온 날의 일이었다. 어느 날
아침 , 유카리는 모래밭에 파묻힌 꿈을 꾸면서 신음소리를 냈고, 식은땀에 흠뻑 젖어
깨어나자 그 공포의 체험이 역력히 떠올랐다. 공포에 질려서 ‘이젠 죽어버리고 싶다’
라고 생각했다. ... (잠옷 바람에 맨발로 집을 나와 어둑한 새벽녘 바다로 들어갔다가
죽을 고비에서 살아 집으로 다시 돌아옴) ... 유카리는 걱정스러워 하는 할머니의 얼굴을
본 순간 단숨에 긴장이 풀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격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유카리는 할머니께 매달려 둑이 무너진 것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실컷 울고나자,
유카리는 할머니께 비로소 자기 생각을 전할 수가 있었다. “일 년 동안 무서워서 살아
있는 것 같지도 않았어요.” 할머니께서는 처음으로 손녀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럼, 더 이상 이곳 학교엔 가지 않아도 돼. 아빠, 엄마가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거라.”

- 유카리는 워싱톤 교외에 살고 있는 부모님의 곁으로 가게 되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지내며, 미국 학교 시절의 친구들과도 다시 만난 유카리는 서서히 기운을 차리게
됐고 명랑한 보통 아이로 돌아왔다. 어느 날 아침, 엄마가 “이 책 읽어볼래?” 하며 건네는
한 권의 책을 받았다.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 였다. 그 속엔 어느 의사의 딸이
십대에 비행 소녀가 됐다가 재기한 얘기가 있었다. 책에 나오는 ‘죽음’이라는 말에 섬뜩
하여 주저했으나 읽기 시작했다. 점심과 저녁식사를 거르면서 계속 책을 읽어나갔다.
유카리가 방에서 나올 수 없었던 것은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할머니
품에 안겨 통곡했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눈물과 함께 남아 있던 두려움이 모두 녹아
내렸다. 가슴속에서 따뜻함이 치솟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또 한 번 읽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계속해서 읽고, 한밤중이 됐을 때에 눈물은 멈추고 그 순간, 유카리
는 자기가 변했다고 느꼈다. 그 공포는 완전히 사라졌다. 폭풍이 휩쓸고 간 뒤, 먹구름은
사라지고 푸른 하늘이 활짝 열린 그런 느낌이었다.

- 유카리는 어느덧 소리를 내어 말하고 있었다. “살아 있어서 좋아. 살아있다는 것은
멋진 거야.” 유카리는 방에서 튀어나와 엄마에게 달려갔다. “나 살아 있어. 엄마도
살아 계신 거죠? 엄마 몸이 따뜻하네요.” “네 몸도 아주 따뜻하구나.” “우린 살아 있는
거죠.” 그 후 유카리는 눈에 띠게 달라졌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뭔가를 하면서 있는 힘을 다해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나 이젠 괜찮아요.
일본으로 돌아가서 공부할게요.” 유카리는 이제는 바닷가로 가도 염려할 것 없다고
생각했다. 눈을 감고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바닷가 모래밭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연상
되었으나 그 소리를 공포가 아닌 상쾌한 소리로 들을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유카리가
일본으로 귀국하기전 부모는 유카리를 데리고 바닷가에 있는 휴양지로 갔다. 물결치는
파도에 밀려온 모래가 발에 닿는 감촉을 상쾌하게 느꼈다. 공포로 상처받은 마음이
파도로 치유돼가는 느낌이었다. 학대를 받았던 그 바닷가에 가면 당장에는 충격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한 부모는 딸이 모래에 서서히 익숙해지도록 해주기 위해서
바닷가로 찾아온 것이었다. “우리는 살아 있는 거예요.” 유카리는 행복감에 젖어 몇
번이나 그 말을 되풀이했다.

- 유카리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제가 바다 속으로 뛰어
들었을 때 ‘죽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를
읽었을 때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렇게 되자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이 전부 뒤집어진 거죠. ‘죽음’은 이제 친근해졌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제가
소중한 책이 되었습니다. 삶의 한 가운데에 죽음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삶의 그 곁엔
언제나 죽음이 가까이 있는 것이고요. 하지만 그것이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삶이
실감나게 맛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죽음을 모르는 사람은 삶도 모릅니다.
그러한 체험을 겪었기 때문에 비로소 저는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난 살아
있다. 모두들 살아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누구에게나 친숙한 감정을 지닐 수 있게
됐어요. 일본으로 돌아와서도 처음 만난 낯선 사람에게도 아무런 위화감 없이 친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실업가와 그의 어머니 >
* 등장인물 : 40대 실업가, 돌아가신 어머니

- ‘남은 믿을 게 못 된다. 자기밖에 믿을 게 없다’ 40대 실업가인 이 남성은 사람들
앞에서 말한 일은 없어도 마음 깊은 곳에선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이 말은 그가
살아가기 위해서 어려서부터 갖고 있던 신조였다. ... 그는 결코 마음속으로부터 남을
신용하는 일도 없고 남의 비판도 전혀 개의치 않았으며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독단적
으로 사업에 전념했다. 직원들에게는 위압적인 태도로 대했으며, 집안의 아내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 무렵, 모시고 있던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께서는
옛부터 신앙을 갖고 나가사키에서 사시던 그리스도교 신자였다. 욕심이 없는 분으로
만년에는 오직 신앙만을 위해서 사셨다. 장례식이 끝난 밤의 일이었다. 어머니께서
그의 머리맡에 서 계셨다.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어머니의 모습은 신성한 빛에 둘러
싸여 있었다. “역시 천국은 있었단다. 아름다운 곳이야.” 어머니께서는 틀림없이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빛과 함께 사라지셨다.

-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도 어머니의 목소리는 또렷이 귓가에 남아 있었다. ‘어머니
께서 돌아가시고 쓸쓸해진 마음 때문에 이런 꿈을 꾸었구나’ 그는 별로 깊이 생각도
하지 않고 단지 꿈이었노라고 단정해 버렸다. ... 때마침 불어 닥친 경제 불황으로
회사의 경영이 어렵게 되었다. 여태껏 이해타산만 앞세우는 강제적인 방식으로 일관
해온 탓으로 회사는 곧 파탄했다. 파산한 뒤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내와도 격한 욕설을 주고받은 끝에 이혼하게 되었고, 집마저 빚으로 넘어가고 그는
혼자 비좁은 삭월세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혼자 초라하게 이삿짐을 싸기 시작
했을 때의 일이다. 먼저 어머니의 물건들을 처분하려고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어머니께서 시집올 때 갖고 오신 낡고 작은 경대와 장롱뿐이었다. 경대 서랍을
열자, 책 두 권이 있었다. 한권은 어머니의 손때가 묻어 누렇게 된 성서와 <가장 아름
다운 이별 이야기>라는 책이었다. 순간 그는 어머니께서 소중히 하시던 성서와 함께
그 책을 잘 간수하고 계셨다는 것은 어머니께 반드시 뭔가 의미가 있는 책이었음에
틀림없겠다고 생각했다. ... 그는 짐 싸는 것을 중단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줄곧 어머니 생각을 했다.

-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그는 처음으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눈으로 어머니를 보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나와는 달리 온유한 분이셨다. 남의 경우를
맨 먼저 생각하고 친절하게 대하셨다. 나는 그것을 손해보는 삶의 태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가 틀렸는지도 모른다.’라고 생각되자, 어머니께서 머리맡에 서서 얘기
하셨던 말씀이 갑자기 커다란 의미와 충격으로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말다툼만 했었던 그였으나, 항상 가난과 괴로운 생활이었으면서도 잠시도
기도를 멈추지 않으셨던 어머니께서 갑자기 너무나도 큰 존재로 느껴진 것이다. “역시
천국은 있었단다.”라는 어머니의 그 말씀은 어머니께서 승리를 선언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어머니께서 곧잘 하시던 말씀이
별안간 떠올랐다.

- “하느님께서는 말이다, 죄 많은 사람을 마음속으로 좋아하신단다. 왜냐하면 하느님
께선 죄인을 구하러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으니까. 인간이 나쁜 짓을 하니까
그것을 용서하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거야. 인간은 용서받고 또 용서받아도
너무나 나쁜 짓을 하니까, 자기가 용서받지 못한 것처럼 느끼는 거야. ...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인간을 위해 보속하고 계신단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일은 인간이 서로 용서하며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란다. ...” 그리고 어머니께서 밤마다 주무시기 전에 “하느님께서 오늘
하루도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보속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시던 모습이 생각
났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던 ‘남들과 사이좋게, 서로를 소중히 하고, 모든 것을 서로
나누면서 함께 살아나간다’ 라는 것은 참으로 터무니없는 이상론이며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비현실적인 생각이라고, 그래서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던 그 말씀이야말로 참된 생활 태도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남을 조정하고 책망하며 위협하는 일에 열중해오던
그 에너지는 역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 일을 시점으로 그의 생활 태도는 딴판으로
달라졌다.

- 훗날 그는 그 책을 가슴에 안고 나를 찾아와서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인상적이었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타지마할의 장려한 궁전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찬연히 떠오른 것처럼 어둠 속에 있던 제 인생에도 드디어 빛이 비쳐, 인생의 타지마할,
다시 말해 제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는 두 번 다시
저 어둠 속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 죽은 이가 메시지를 전해주었다는 체험담에는
공통된 패턴이 있다. 원래 자기 안에 있던 것에 빛이 비쳐 순간 이를 의식하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때 이미 생활 태도는 그 밑바닥에서부터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그때부터 전혀 다른 인생을 걷기 시작한다. 나는 거기에서 단지 꿈이나 환상과는 사뭇
다른 그 무엇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온갖 잔재를 씻고 빛나는 인생 >
* 등장인물 : 은사 Y선생님

- 고명한 학자인 Y선생님은 명문대학의 교수로서 학문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훌륭한 업적을 쌓아올린 후 은퇴하셨다. 공적, 사적으로 지도해주신 선생님과의 만남은
내 인생에서 커다란 기쁨중의 하나였으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 중의 한분이었다.
감기 기운으로 병원을 찾아 갔다가 갑자기 입원하게 되었고, 낫기 어려운 병으로 진단을
받으면서 병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입원하신 병원이 수녀원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
매일 저녁마다 찾아뵙게 되었는데 처음 문병 갔을 때 하신 말씀 때문이었다. “드디어
해방될 때가 왔구나.” “해방되시다니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시는 겁니까?” “이 인생
으로부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 인생이 끝난다는 것이지. 내 인생은 열다섯
살 때인 근 오십 년 전에 이미 끝났어야 하는데, 나는 오십 년이라는 세월을 더 살아온
셈이지.” ... 찾아뵐 때마다 선생님은 점차 젊었던 시절의 일들에 대한 얘기를 끄집어
내시는 것이었다. 가끔 허리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났고 그때마다 심하게 아프신지
괴로워하는 얼굴로 허리에 손을 대셨다.

- 선생님은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학도병의 마지막 세대였다. 가장 어린 소년병으로
항공모함의 갑판을 닦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 어느 여름날 아침 항공모함에서
날아오른 한 대의 전투기가 높은 상공에서 두 동강이 나는 것처럼 보였는데 곧 ‘ㄱ’자
모양이 되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버렸다. 그는 그것을 눈앞에서 똑똑히 보고 들으
셨다. 전투기가 공중에서 꺾인 순간, ‘뚝’하는 굉음이 허리에 울려 격렬한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천황이 항복을 고하는 방송을 들으셨다. “그날 아침 공중
에서 산화한 전투기와 굉음이 내 몸에 통증으로 남았지. 그리고 오십 년 가까이 가끔
갑자기 허리에 통증이 일어나 그때의 뼈가 꺾이는 것 같은 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거야.” 병원에선 몇 번이나 검사를 했지만 확실한 원인을 찾아낼 수 없었다. 보통 땐
아무 일 없이 지내실 수 있는데 갑자기 허리에서 ‘뚝’하는 소리가 나면서 심한 통증이
엄습했다. “그 허리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 소리는 패전한 날, 공중에서 산화한 전우의
비명소리 같아. 그 전우만이 아니라 많은 전우들이 아침에는 모함을 떠나 날아가
그대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어. 나는 전우들보다 한발 늦은 거야. 그들과
함께 죽었어야 할 내가 이렇게 살아남아 있어. 내 청춘 시절은 고통의 나날이었지.
함께 죽는다는 연대감 속에서 청춘을 함께했던 동료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만 살아
남았다는 것, ... 나만 태연하게 살고 있다는 것은 견딜 수 없도록 꺼림칙했어.”

- 선생님과 나는 돌연 엄습해오는 그 불가해한 요통에 대해서 서로 얘기를 나누며
어떤 상황일 때 그 통증이 일어나는 것이지 추측해 보면서, ‘요통 미스테리’는 다음과
같은 결말을 찾아내게 되었다. “오랜 옛날에 일어난 사건과 연결시켜 익힌 그 감각을
오십 년 가까이 현실의 것으로 계속 맛보아온 것이지. 나의 에너지가 내려가게 된다든지,
원기가 없어지게 된다든지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살아 있어 죄송스럽다는 감각이
몸 안에 충만해졌어. 그렇게 꽉 차면 허리가 ‘뚝’하는 소리를 냈고, 풍선을 터트리는
것처럼 심한 통증이라는 모양으로 충만돼 있던 가스 같은 것을 밖으로 내놓으며 스스로
균형을 잡으려 한 것이야.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 “언제까지 그런 삶의 태도를
지니실 작정이십니까? 돌아가실 때까진가요? ” “그렇군. 죽을 때까지라고 한다 해도
이제 얼마 안 되는 시간밖에 남아 있지 않지. 잘해야 한 달이나 될까?” ... 선생님,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닭의 날개를 잡고 꼼짝 못하게 꾹 눌러놓고 목을 옆으로
돌립니다. 그리고는 닭의 눈 있는 데에서 일직선을 긋고 닭이 그것을 보도록 합니다.
그렇게 하면 닭을 놓아주고 자유롭게 한 뒤에도 닭은 계속해서 눌린 채로 있는 것처럼
계속 그 직선을 보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는 더 이상 눌려 있는 게 아닌데도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그렇구나. 참말로 나는 그 닭이야. 전쟁에서 죽는다는 직선, 열여섯 살밖에 살지
못한다는 직선을 인생에 긋고 그 선으로 나 자신을 묶어버렸어. 평생을 두고 내 인생을
일직선으로 계속 얽매온 거야. 머릿속에서는 시대가 변했음을 알고 있었고 표면적으로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면에선 일직선에 시선을 고정시킨 닭
그대로였던 거야. 나는 그 일직선에 내 인생의 시간을 얹어놓고 있었군.” 야간 면회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방송이 병원 안에 울리고 있었다. “그러시면 선생님, 닭의 직선은 이제
슬슬 지우셔도 좋이 않을까요?” 라고 말씀드리자, 선생님은 두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며
말씀하셨다.“ 나는 이 선을 이렇게 꽉 쥐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 외에는 사는 길을 몸에
지닐 수가 없었지. 하지만 이제 그것을 풀어주자. 자, 닭의 날개여, 자유로워져라. ...
그래, 직선이 사라졌으니까 닭의 날개가 자유로워졌구나”

- “그러나 내 인생이 끝나는 때에 삶의 자유를 되찾다니 ... 죽기 바로 전이라도 인간
으로서의 자유를 다시 찾고 속박됐던 닭에서 참된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 신나는 일이구나.” 작별 인사를 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선생님은 “덕분에
나는 살아가는 데 대해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어. 이제부터 자유로이 살아가겠네.
참으로 자유로이.” ... 그것이 선생님과의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그날 밤 선생님은
발작이 일어나 집중치료실로 들어가 숨을 거두셨다. 당신 자신에게 삶의 허가를 주고
자유로이 살아가기를 선취하신 그 순간에 선생님은 영원한 시간에 사는 기쁨의 세계로
들어가셨다. ... 생애를 걸고 잡은 그 순간은 이승에서 끝나버리는 게 아니라 인생을
완결하는 기쁨으로 이어져, 그 후의 영원한 생명을 사는 빛이 되어 있을 것이다.


< 마음의 등불 >
* 등장인물 : 사토 하지메, 밀라노의 한 젊은이(대기업 부사장), 하니 스스무 씨,
엔도 슈사쿠 씨, 텁석부리 할아버지, 미국의 학술조사단 연구원들

- 아오모리 현 히로마에 시에는 ‘이스키아의 집’이라 이름 붙인 치유의 집이 있다.
이 집과의 관계가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라는 책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다.
이 집에는 온갖 사람들이 마음의 지주를 구해 찾아온다. 이 집의 주인은 사토 하지메
씨이다. 내가 이 분을 알게 된 것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오모리 시의
대학에 강연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학장님이 역까지 전송해주셨는데 이 분이 하지메
씨였다. 그 후 강연 청탁으로 자주 히로마에에도 가게 되었다. 히로마에에는 가톨릭
교회가 지역사회에 뿌리고 내리고 있었는데 당시 그는 그 교회의 평신도회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 마침 주임 신부님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모두들
하지메 씨의 집에 모여 있었다.

- 주임 신부님은 캐나다 출신으로 그곳 사람들을 위해서 당신 몸을 돌보지 않고 일
해온 분이셨다. 신부님께서는 지역사회의 양로원을 맡고 계셨다. 그곳 노인네들에게는
물론이고 직원들에게서도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받으셨다. 신부님께서는 양로원이 아니
라도 병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노인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시면 날아가듯이 달려가셨다.
신부님을 만난 많은 사람들은 아무리 괴로울 때라도 그분이 계시다는 것만으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음을 체험하곤 했다. 그러한 신부님 한 밤중에 돌연 극심한 복통이
일어나 병원에 갈 사이도 없이, 쉰 살이 막 지난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한다.
내가 히로마에에 처음으로 간 것은 바로 그러한 때였다. 그로부터 나는 히로마에 행이
시작되었다. 학교나 공회당에서 강연을 한다든지, 여러 군데 양로원을 방문한다든지,
또는 직원들의 연수 지도를 하면서 하지메 씨의 집에 모이는 사람들과 친교를 다졌다.
모든 이들이 이제부터는 돌아가신 신부님처럼 살아가고 싶다고 말하였고, 그들은
신부님의 정신을 살려나가고 싶다는 열의에 넘쳐 있었다.

- 어느 날 하지메 씨가 불쑥 “방 하나만 더 있으면 먼 곳에서 오신 분들이 좀 더 계실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하고 얘기했다. 나는 “그렇다면 2층을 만들어 그곳을 치유의
공간이 되도록 하지 그래요.”라고 대답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어요?”
“아뇨, 하지메 씨. 자기 욕심 때문이 아니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남을 살리는 일에
연관되어 있다면 그것은 꼭 이뤄지리라고 저는 제 체험을 통해 알고 있어요.” ... 생각
없이 말한 나 때문에 하지메 씨도 용기를 얻어 2층을 올릴 결심을 했다. ... (여러
계층의 다양한 분들로부터 기부금을 모음) 선의의 기부금들이 모여 2층은 완성됐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치유의 집에 이름을 붙여야 할 단계가 되자, 나는 얼마 전에 찾아간
이탈리아에서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 사람은 강한 충격을 받으면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보인다고 한다. ... 이탈리아의
젊은 후계자도 ‘지금 손에 갖고 있는 것은 죽어갈 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라고
느꼈다. 그 순간, 갑자기 주위가 잿빛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젊은이는 약혼 파티가
있던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작은 여행 가방 하나를 달랑 들고는 여행을 떠났다. 행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어려서 아버지와 함께 갔던 이탈리아의 남부에 있는 어느 섬이다.
‘돌아오라, 소렌토로’ ‘오, 솔레미오’ 같은 노래의 무대가 되었던 햇빛 찬란한 나폴리 만,
그곳은 기원전에 번영의 극치에 달했던 도시, 베수비오 화산이 돌연 터져 폼베이가 그
분화에 뒤덮여 재에 묻히고 말았다는 역사적 유적이다. ... 섬에는 낡은 교회가 있는데
건물만 남아 있었다. 그는 그 속에 들어가 재에 파묻힌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를
걸어봐도 자기밖에 없는 세계였다. 폐허의 천정에서 엿볼 수 있는 나폴리 만의 푸른
하늘도 그에겐 잿빛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사람과 만나고 싶지 않아 이 잿빛 세계에
갇혀 살고 있는 그에게 아무 말도 없이 음식을 일부러 고깃배로 날라다 놓고 가는 마을
사람들, 그 따뜻한 마음씨가 젊은이의 잿빛 마음속으로 조금씩 스며들어갔다.

- 그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자기를 향해 계속 던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섬에 와서 오직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잿빛
세계에 처박혀 있는, 아무 인연도 관계가 없는 자기에 대해서 마을 사람들이 염려해 주는
인정, 그에 대한 고마움만이 진짜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자기의 인생은, 성공 그 자체로
보이는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자기 목숨이 끝날 때 끝나버리는 그런 것이었다.
‘지금 나는 회사에 없지만 부사장으로 내가 했던 일은 누군가가 맡아서 하고 있겠지.
이 세상에서 나밖엔 할 수 없는 그런 일은 아니다. 그러니 성공도 아니다. 나 이외엔 할
수 없는 일, 그것은 지금 내가 받고 있는 이 따뜻한 정을 주위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일이
아닐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그에게 처음으로 음식물을 가져다
주신 그 텁석부리 할아버지께서 섬에 오셨다. 그는 할아버지에게 빙그레 웃어보였고,
할아버지도 따라 웃으셨다. 그 순간, 빛이 젊은이의 마음 깊은 곳에까지 쏟아져 들어갔다.
그 빛은 깊은 감동과 울림을 가지고 그의 온몸으로 흘러들어갔다.

- 그가 우러러 본 하늘은 새파란 남국의 하늘이었다. 천상의 푸른빛은 잿빛 세계를
말끔히 씻어 없애고 있었다. 그는 하늘에서 쏟아 붓는 빛을 느꼈다. 지금까지 자기
삶의 태도에 대한 깊은 반성이 마음속 밑바닥으로부터 격렬하게 자기를 뒤흔들었다.
이 빛을 받은 자기는 이번엔 그것을 돌려드릴 차례가 아닌가 하는 움직일 수 없는
신념이 별안간 우러나온 것이다. 사람의 따뜻한 정을 만나 빛을 받고 주위의 아름다움에
눈이 열렸을 때, 그는 이렇게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은 뭔가 역할을 맡고 이
세사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제각기 자기 소명을 가지고, 인생의
무대를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 그는 회사 사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회사에는 2만여
명의 사원과 그들에게 딸린 가족이 있다. 그 사람들이 생활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일,
자기가 놓인 처지에서 남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 자기의 역할이라고 깨달았던 것이다.
... 그때 마침 미국의 학술조사단이 이 섬에 왔다가 그들이 타고 온 배로 밀라노 근교에
까지 그를 데려다 주었다.

- 그로부터 6년쯤 지난 뒤 조사단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밀라노에 들를 일이 있어
모두들 “이스키아 섬에서 만난 그 젊은이는 어떻게 지내고 보러가자”라고 얘기를 했다.
그 젊은이가 말해준 회사이름을 수소문해 찾아갔는데 그곳은 참으로 큰 회사였다.
젊은이의 이름을 대자 호화스러운 부사장실로 안내되었다. ... 그는 다시 만나게 된
것을 기뻐하며 섬에서 배를 태어준 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이렇게 말했다.
“제 눈을 똑바로 봐주십시오. 처음 그 재의 섬에서 만나 뵈었을 때의 눈빛과 똑같기를
바랍니다.” 그는 섬에서 만났을 때와 똑같은 말솜씨로 담담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 “저는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회사에 속해 있습니다. 제 역할은 이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통해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무대 위에서 임금님의
역을 하는 사람이 임금님의 복장을 입듯이 저는 부사장의 역할에 알맞은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 진짜 자기라는 것은 그 재의 섬에서 받았던 햇빛,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정, 미풍을 보내주는 나무들, 그러한 대우주의 파동에 의해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그는 시원스레 웃었다. “저도 따뜻한 파동의 발신저가 되고 싶군요. 그래서 이 회사를
저 재의 섬과 같은 치유의 자리로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그게 제 바램입니다.” ...
이것은 내가 이탈리아에 있을 때 들은 얘기이다.

- 사람들의 선의가 모여 이뤄진 히로마에의 치유의 집에서 나는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했다. 그래서 사토 하지메 씨의 집은 ‘이스키아의 집’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 후
많은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인생의 재기를 마련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 사람들은 단지 병이 치유됐다, 빛을 받게 됐다 하는 것만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극적으로 바꿨다. 편하게 지낼 수 있어 괴로움 없는 나날을 보내고 싶다는 욕망을
지니면서도, 그 욕망에 조정당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방향으로 그 삶의 중심이 돌아선 것이다. 살아가는 가운데 가장 소중히 하고
있는 것, 즉 인생의 가치관이 근원으로부터 바뀌어가게 된 것이다. ‘이스키아의 집’에서
치유된 사람들은, 밀라노의 그 젊은이가 자기의 원래 자리로 되돌아갔듯이 제각기
갖고 있던 그전의 생활로 돌아간다. 겉보기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생활하고 있지만,
그 근본에서 커다란 변화를 이룬 것이다. ... 그 후 ‘이스키아의 집’은 발전하여 히로마에
교외의 산속에 또 한 채의 집을 갖게 되었다. 물론 이 집도 사토 하지메 씨의 노력과
함께, 치유의 소중함을 맛본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의 결정체이다.


< 바다를 건넌 만남 >
* 등장인물 : 최경식(옮긴이), 함세웅 신부, 스즈키(저자)

- 최경식 씨는 일제 점령하의 한반도에서 태어났다. 동서냉전에서 비롯된 한국전쟁과
그 후의 남북 분단 속에서 소년인 그는 가족과 함께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 중에
가족과 헤어지게 되었고 남한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음악평론가로
활동했다. 군사정권하에서 수사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그는 쫓겨나듯 조국을
떠났다. 미국으로 건너온 최 씨는 언어장벽과 인종차별로 고통을 받으면서 고생한
끝에 실업가로서의 지위를 확보하였다. 그는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읽고 쓸 수 있어서
일본어로 된 책들을 계속 읽고 있었다. 뉴욕의 서점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
를 보게 되었고 그 이후 자신이 체험한 것들을 나에게 편지로 보내주었다. 여기에
그 내용을 소개한다.

- “세상에는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서적이 출판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좋은 책을
만나게 된다는 것은 하나의 은혜라고 여겨집니다. 그 책을 읽음으로써 지식보다는
지혜를 얻을 수가 있고, 또한 그 지혜에 의해 내적인 변화가 촉진되고 인간으로서
성숙하고 회심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은총이라고 생각됩니다.
달나라로 가는 우주 비행사에게 ‘오직 한 권의 책과, 오직 하나의 음악을 가지고
간다면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그는 서슴치 않고 ‘그것은 성서와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 저는 이 책을 워싱톤의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속에서 계속 읽는 동안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이 눈물은
물리적인 눈물도 아니고, 감정적인 눈물도 아닌 무엇인가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눈물이었습니다. 저는 그 눈물에 의해서 성사(聖事)를 체험한 것입니다. 그것은
제 속에서 두 가지 근원적인 변화로 나타났는데, 하나는 회심에 이르는 내적 변화이고,
또 하나는 오직 분노와 원한만의 절망적인 어두운 상태에 빛이 비춰졌습니다. 희망을
전혀 가질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지닌다고 하는 강한 심경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

- 저의 번역 초고가 완성됐을 쯤에서 뜻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군사정권에
강하게 반대하여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계셨던 신학자인 함세웅 신부입니다. 함 신부님은
로마의 우르바노 신학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사제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레고리안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서울의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계셨습니다
. 정의구현사제단의 리더로 군사정권의 부정에 감연히 맞선 진취적인 분이셨습니다.
또 그분은 반일파로도 유명하셨습니다. 저의 집에 머무시던 어느 날 밤, 함 신부님은
저의 번역 노트를 눈여겨보시고 밤늦게까지 읽으셨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 ‘이 책,
제가 내줄게요’ 그 반일파 신부님이 일본인 수녀님이 쓴 책을 내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해 가을, ‘위령의 날’에 맞춰 발간을 서둘렀습니다. .. 죽음도 불사한 체험을
겪은 함신부님과 동료신부님들에 의해, 한 권의 책인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가
간행되었다.

- 죽은 이들을 위해 비는 그날 미사 강론에서 이 책을 소개하시며 죽어가는 이들을
인생의 교사로서 경애하고, 죽음을 자기 인생이 완결되는 소중한 시간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 함 신부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한 생명체가 이 세상에 태어
났을 때 그 아기는 울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기쁨으로
그 아기를 맞이합니다. 한 인간이 세상을 떠날 때 그 인간은 묵묵부답으로 세상을 떠나
갑니다. 그러나 죽음을 지켜보는 우리들은 슬퍼하며 울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이
울고 있는 그 순간에 그 생명체는 영원한 기쁨 속에 웃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즉 인간의
탄생이 주는 그러한 의미의 역관계가 죽음과 부활의 관계에서 나타나 있다고 추정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이 죽음은 인간을 가장 위대하게 또 크게 만듭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무한한 꿈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러한 내적인 힘을 펼치는 상태에 있다는 뜻입니다.’

- 수녀님은 책에서 이렇게 얘기하셨지요. ‘인생에 일어나는 우연의 일치에는 의미가
있다. 그것은 공시성(共時性)이라 불리며 필연이다.’ 어떤 한 권의 책이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를 가져와 태평양을 건너 이렇게 독자인 제게 한국어로 번역하도록 결심케
했으며 한국에서의 출판까지 실현시켰습니다. 그 사이에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은
공시성에 넘친 필연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공시성에 의해 수녀님이 워싱톤의 공항에
도착하여 저희 집에 방문하는 날이 왔습니다. ... 수녀님의 강연회가 이곳 포토맥의
‘자비의 모후’ 성당에서 열렸고, 많은 이들이 경청했고 그들과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3일 예정이었던 수녀님의 체류는 3주간이 되었습니다. ... 저는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의 저자인 수녀님을 만나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시는 그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씨에 접하게 된 것을 한 사람의 역자로서 깊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 마음으로 맺어진 인연 >
* 등장인물 : 최경식, 김민기, 스즈키

- (워싱톤에서/ 가수에의 길/ 어둠 속에 반짝이는 부드러운 노래/ 옥중에서 받은 계시/
기지촌과 농촌/ 연출가 김민기 씨) 미국에 영주하고 있는 음악평론가이면서, 방송음악
프로듀이기도 했던 최경식 씨와 가수이면서 연출가였던 김민기 씨에 관한 이야기

- 나는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라는 책이 인연이 되어, 미국 수도 워싱톤에서
최경식 씨를 통하여 김민기 씨에게로, 김민기 씨를 통하여 한국에로 확실하게 이끌려
가고 있다. 김민기 씨가 ‘아침 이슬’에서 노래하는 ‘긴 밤 지새우고 ... 진주보다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마음에는 한국인들의 눈물이 맺혀 있고, 그리하여 나는 ‘작은 미소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


< 저자 후기 >
- 가까웠던 사람의 죽음은 한 사람의 인간이 죽어서 절대적인 모양으로 이 세상을
떠나간다는 것, 자기에게도 타인에게도 언젠가는 그것이 찾아온다고 하는 것을 좋든
싫든 엄숙한 사실로써 눈앞에 들이댄다. 가까웠던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여느 때와는 전혀 다른 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돌아가신 분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해주셨던가, 자기도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던가를 실감하며 평상시에는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인간 존재 그 자체의 소중함, 그러한 것을 곰곰이 생각하고
삶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 이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의 일생을 돌이켜볼 때 사람의 마음은 온화해진다.
마음은 화해의 방향으로 향한다. 죽어가는 이가 절실히 원하는 것은 주위 사람들과
화해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죽음의 세계에 들어간 사람은 이제는 이 세상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야(經夜)나 장례식 같은 자리에 사람들을 모은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면서 엄연한 존재감을 지니고 사람들의 중심에 존재하며, 죽은 이에
대한 사랑과 추억을 나누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맺으려 한다. 그것은
죽은 이가 세상을 떠나는 때를 맞아 산 이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살아 있는
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화해시켜 서로를 소중히 하도록 만드는 초청이며 재촉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현실을 받아들일 때 마음 깊은 곳에서 그 슬픔을 견디어내면
그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자비로 바뀐다는 사실 또한 위로가 된다.

- 죽은 이로부터 뭔가 메시지를 받게 될 경우엔, 그것은 반드시 ‘화해’를 가리키는
것 같다. 누군가가 죽을 때 고통스러운 형상을 하고 있어서 주위에선 “틀림없이
괴로웠을 것이다”라며 가슴 아파하고 있을 경우에도, 훗날 받게 되는 메시지에선
“죽을 땐 괴롭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이다. 겉보기엔 아무리 비참하다 해도 그 밑바닥
에는 평화가 있는 것이다. 죽은 이가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밝고 즐겁게 자기답게 지내라”는 것이다. 살아가는 가운데 온갖 고통스런
일들이 있는 것은 인간 사회에선 당연한 것이며 그것을 통해 성장하기 위한 것, 바꿔
말하면 사랑을 깊게 하기 위해 중요한 것이다.

- ‘인생이란 특별히 큰 업적을 올리는 일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 일을 하면서 성장해 간다는 것, 다시 말해 사랑에 산다는 것’이라고
그들은 조용히 말하고 따뜻하게 우리 마음에 계속 속삭이고 있다. 그것은 살아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존재이며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그 사람
고유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일어나는 일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고, 인생
에서 무가치한 것이란 없으며, 임시 우회로도 없고 뒤늦어 버림도 없다. 지금부터
자기의 귀중한 성장을 위해서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싫은
사람일수록 화해와 사랑의 관계를 갖도록 결심하라고 재촉하고 있다. 그리고 죽은
이들은 그러한 것을 당신이 해내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으로 당신을 응원
하고 있다.

-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이들, 또한 지금 이 세상을 떠나려고 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닌
사명의 하나는 인류의 후배들인 살아 있는 우리를 ‘인간 존재의 근원’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용서에 의해 분열이 치유되고 자기 자신 안에서도
부모, 반려자, 자녀, 친구들,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그리고 이미 죽은 이들과도 치유된
관계에 들어서서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재촉해 주고 있는 것이다. ... 이 책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의 앞으로의 나날이 우주적인 커다란 사랑으로 충만되어 마음의 깊은
곳에 지복이 깃들기를 빈다. 폭풍이 바다 위 표면을 아무리 거센 파도로 휘몰아친
다해도 바다 속 밑바닥은 깊고 고요하며 평안하듯이.

[ 가장 아름다운 화해 이야기 ]독서 메모 - end.







금주의 독서 메모 077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2.05.01.

[ 책 이름 : 능숙한 대화를 하려면 ]

- 지은이 : M. 퍼킨스
- 옮긴이 : 정성호
- 지은이 프로필 : 미국의 진보기독교 목사이며, 시민 운동 활동가.
또한 커뮤니티 개발자이며 철학자이며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 펴낸데 : 성바오로출판사, 출판일 : 1993년 8월 20일
- 내용 : 대화의 요령 (목소리와 화술에 매력을 더하고 개성있는 대화와 바른 자세 등)


[ 표지의 글에서 ]

목소리는 이야기하는 당사자에게, 또 접하는 상대방에게, 어떠한 작용을 하는가에
따라서 우리들의 인생에 심리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들은 화술여하로 좋은 교육을
받은 교양인이라고 여겨지든가, 아니면 그 반대로 생각될 것입니다. 그 반대라고
여겨진다면, 그것은 능숙한 화술을 몸에 익힐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능숙해지도록 말하는 태도를 고쳐야 합니다. 이 책을 읽어
나가면, 당신은 자신의 목소리를 좋게 내고, 화술을 향상시켜서 자기라는 인간을 좀더
충분히 표현하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 개성과 목소리 ]


- 개성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를 결정하는 힘이다. 개성이란 여러분 자신이라는 것이
된다. 입고 있는 것, 머리칼, 얼굴의 표정 등 모두가 이 복잡한 개성이라는 것의 일부
이다. 우선 처음에 상대방을 보는 순간 시각적인 인상을 마음에 간직한다. 다음에
귀로 들은 것을 바탕으로 해서 제2의 인상을 형성하게 된다. 여기서 목소리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왜냐하면, 말(言語)은 자신의 생각이나 심정을 남에게 전달
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말을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어떤 생물과도
구별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이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말하는 능력은 유년시절 동안에 자연스럽게 몸에 밴다. 이야기
할 때의 목소리는 이야기의 내용이 한층 더 또렷하도록 될 수 있는 대로 느낌이 좋고
매력적인 것이 아니면 안 된다. 목소리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품이 좋게 또는 나쁘게
듣는 사람에게 인상 지워지는 것이다.

- 정치가나 배우 등 쉴 새 없이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사람들은 목소리만으로
상대방에게 확신, 웃음, 슬픔, 공포 등 갖가지의 감정을 환기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의가 없으면 그것이 당장 목소리에 나타나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흥미를
잃게 하고, 성의가 담겨 있는 목소리는 사람들의 호감을 자아낼 수 있다. 우리들은
개성을 보물처럼 지키고 소중히 간직하여야 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표준어를 사용하여
야만 한다. 사투리를 쓰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서두르지 않고 유창하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마음만 있으면 화술은 향상될 수 있다. 내성적인 사람은 목소리를
목구멍 안쪽으로 움츠린다. 말을 삼켜 버리는 것이다. 입속에서 말을 우물우물 넘겨
버리는 사람도 있다. 이와 같은 매력적이 아닌 목소리도 고치려고 진지하게 생각하면
고칠 수가 있다. 목소리는 이야기하는 당사자에게, 또 접하는 상대자에게, 어떠한
작용을 하는가에 따라서 우리들의 인생에 심리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들은 화술
여하로 좋은 교육을 받은 교양인이라고 여겨지든가, 아니면 그 반대로 생각될 것이다.
올바른 발성법을 몸에 익히기만 한다면, 화술과 이야기의 내용에 중점을 둘 수 있다.
능숙한 화술의 기본은 올바른 호흡법과 숨의 컨트롤을 습득하는데 있다.


[ 호흡법 ]

- 올바른 호흡법은 올바른 화술의 기본일 뿐만 아니라, 신체와 두뇌를 강화시켜 주고,
그 위에 에너지와 자극을 부여해 준다. 올바른 호흡법이 어떤 것인지 완전히 이해하는
데는 어느 정도 힘이 들겠지만, 신경을 쓰지 말자. 가장 중요한 것은, 깊이 숨을 들이
쉬는 것으로, 그때 복부를 앞으로 밀어내지 않는 것이다. 숨을 들이 쉬면 흉곽이 확대
되고 숨을 내쉬면 수축한다. 이야기 할 때의 올바른 호흡법은 늑골(갈비뼈)근과 횡격막
(가로막으로 호흡과 복압 조절에 관여)을 연계시키는 것이다. 즉 늑골의 바깥쪽과
안쪽의 근육과 횡격막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호흡을 하면, 숨을 들이쉴
때 바깥쪽의 늑골 근은 수축하고, 늑골을 들어 올려서 흉곽을 좌우로 펼친다. 숨을 내쉴
때는 안쪽의 늑골 근이 수축하여 늑골을 밀어 내린다. 이 방법에 의해서 내쉬는 숨이
완전히 조절되는 것이다.

- 호흡의 연습법이 몇 가지가 있다. (이중 5번째 한 가지만 메모함) 벽에 등을 대고
다리를 약간 벌리고 선다. 숨을 쉬면서 팔을 천천히 옆으로 들어 올려서 어깨 높이에서
멈추고, T자 모양을 만든다. 숨을 멈추고 그 자세로 이삼 초간 서 있다가, 숨을 내쉬며
팔을 원래 위치로 내린다. 숨을 들이쉴 때, 흉곽이 전후좌우, 그리고 밑으로도 퍼지는
것과, ‘복압’을 사용해서 내뱉는 숨을 조절하는 것을 잊지 말자. 이것을 세 번 반복한다.
내뱉는 숨의 조절법을 익히게 되면,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해도 숨이 끊기는 걱정 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신감도 생기고 침착하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된다.


[ 긴장을 푸는 방법 ]

- 자신감과 침착성을 유지하려면 긴장을 푸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긴장하고 있으면
외관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이상해진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말이 나오지도 않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 경우가 아니더라도 목소리의 질이나 높이가 달라진다. 정신적인
긴장과 육체적인 긴장은 분리할 수가 없다. 한쪽이 긴장하고 있으면 나머지 한쪽도
긴장한다. 육체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되었던 수많은 병이 현재에는 정신적인 긴장이
그 원인이라고 한다. 편두통, 궤양, 혈전증, 불면증 등은 대개의 경우 긴장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생기는 병이다. 긴장하고 있는 사람은, 즐겁고 여유로운 사람보다 절반
만큼도 매력을 느낄 수가 없다. 많은 무대인, 예능인의 인기의 비밀은 긴장하지 않는
여유 있는 태도나, 자기도 모르게 끌려드는 자연스러움에 있는 것이다. 몸이 굳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람이 긴장을 푸는 기술을 몸에 익힌다면 그 체험을 할 때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줄곧 도움이 될 것이다.

- (육체의 긴장) 육체의 긴장은 참으로 불쾌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데 익숙해 있지 않은 사람은, 신경질적이 된 나머지 온몸의 근육이
곧장 긴장된다. 그렇게 되면 호흡도 영향을 받는다. 말하는 태도가 부자연스러워지며,
몸의 움직임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된다. 눈에 거슬리는 버릇이나 몸짓이 눈에
띄게 된다.

- (옷차림을 단정히 하라) 옷차림을 단정히 한다는 것은 바로 예의이지만, 또 옷차림이
단정하다는 자각이 있으면 사기도 훨씬 높아질 것이다. 외출하려면 반드시 시간의
여유를 갖도록 하자. 미리 도착하면 필요한 몸단장을 할 수가 있고, 또 마음을 가라앉힐
수도 있을 것이다.

- (그 자리에 임해서 신경을 쓰지 말라) 뛰어난 화술가는 미리 충분하게 이야기의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의 비밀인 것이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 할 이야기 할 것인가를 분명히 정해 놓았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침착
하게 이야기할 수가 있다.

- (연습은 성공의 비결) 연설을 부탁받으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신중히 생각하여
요점에서 요점으로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구성한다. 그리고 몇 번씩이나 반복하고 연습
해서, 그 내용을 완전히 머리에 집어 넣어 둔다. 그런 후 이야기를 하게 되면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된다. 여기 주의할 것은, 메모한 것은 항상 소리를 내어 읽도록
한다. 묵독은 안 된다. 자기의 목소리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자기의
목소리의 속도와 높이를 간단하게 판단할 수 있다. 자기가 이야기 할 내용을 숙지해 두면,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

- (긴장을 풀라) 바쁘기만 한 세상 속에서 긴장없이 지내는 귀중한 몇분을 즐기도록
하고, 그것을 매일의 습관으로 하는 것이다. 머지 않아 그 효과를 느끼게 되고, 자신감과
침착성이 붙게 될 것이다. 외관에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침착성이 느껴지게 되면, 세상
사람들은 바로 당신을 침착성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 (정신적인/육체적인 긴장을 풀라) 똑바로 위를 보고 눕는다. 다리는 야간 벌리고,
손은 몸의 양옆에 붙여 둔다. 숨을 들이쉬고 온몸이 될 수 있는대로 많은 근육을 긴장
시킨다. 그런 후 숨을 내뱉고 힘을 뺀다. ... 긴장을 푸는 세부적인 방법 중략 ...

- (의자의 경우) 긴장을 푸는 방법을 사용해도 충분히 힘이 빠지지 않거나, 또 어떤
이유로 누울 수 없는 경우에는, 의자에 편안히 앉아 양팔을 축 늘어뜨린다. 손가락을
한 개씩 떼어서 움직여 보고, 아무것에도 닿지 않은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아무것에도
닿지 않은 손가락을 의식해 본다. 의식의 척도에 따라서 근육을 차례로 풀어 준다.
이번에는 발가락을 의식하고, 그 감각을 발목, 장딴지, 무릎, 넓적다리 순으로 의식해
나간다. 그렇게 해서 하지 전체의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다. 두개골, 얼굴, 목, 가슴,
배의 근육도 의식한다. 체내의 근육을 잊지 말자. 그리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전히
힘을 빼도록 한다.

- (몸을 펴는 연습 1, 2) 우선 똑바로 위를 보고 마루바닥에 눕는다. 누울 때마다
바닥의 딱딱함에는 점점 신경이 쓰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방석은 잊지 않도록 한다.
두 발을 붙이고 누워 몸을 될 수 있는대로 길게 뻗습니다. 팔은 머리 위로, 그리고
손끝도 발끝도 똑바로 편다. 그렇게 하면서 깊이 숨을 들이 쉰다. 그 자세를 이삼초
계속하는데 고통을 느끼기 전에 그만둔다. 그런 후 긴장을 푼다. 두 발을 조금 떼고
팔은 아래로 내린다. 힘을 빼면서 숨을 내쉰다. 다시 한번 몸을 펴고 앞에서와 마찬
가지로 힘을 뺀다. 펼 때마다 몸 전체가 약간 늘어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체형에 놀랄
만한 변화가 나타난다. 자세가 좋아지고 허리가 가늘어진다. 피로가 심하지 않으면
이를 6회 반복한다. ... 이하 연습 2 생략


[ 발 성 ]

- 목소리는 본능적인 것이다.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남한테서 배울 필요는 없다. 말을
하기 위해서는 뇌에서 자극이 보내지고, 그것이 말을 관장하는 기관에 전달된다.
그 조음기를 거쳐서 단순한 소리가 아닌 명확한 말이 표현되는 것이다.

- (후두) 목소리가 만들어지는 곳을 후두라고 한다. 이 조그만 삼각형 모양의 기관을
통해 공기가 폐로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다. 말을 하려고 하면 후두 속에 들어 있는
두 장의 조그만 고무 조각과 같은 성대가 서로 접근을 한다. 폐로 나온 공기가 그
사이를 지나갈 때 성대가 진동하고, 그때 비로소 소리가 나는 것이다. 남성의 성대는
보통 여성의 성대보다 크기 때문에 남성의 목소리가 여성에 비해 굵고 낮은 것이다.

- (성대의 긴장) 성대의 긴장이나 느슨함도 역시 목소리의 높고 낮음에 영향을 미친다.
성대가 바짝 긴장하고 있으면, 목소리는 커진다. 극도로 긴장한 사람이나 신경질적인
사람의 목소리가 높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 (목소리의 확대) 후두에서 만들어진 소리로는 대화에 충분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목소리를 확대하려면 의식해서 목소리를 내도록 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목소리를
앞으로 밀어내듯이 ’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의도가 몸에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
목소리를 앞으로 밀어내 주면 목소리의 울림과 질과 파급효과가 좋아진다. 그것은
공명의 덕택이다.

- (공명) 우리들은 흉골 뒤쪽의 공동부와 후두의 공동부, 그리고 인두를 사용해서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공명을 행하고 있다. 본래 자연스럽게 공명시키고는 있지만,
의식적으로 노력하여 목소리를 밀어내서, 경구개에 부딪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꾸어 말하면, 목소리를 먼저 위로 향하게 하고, 다음에 앞으로 향하게 하는 것을
생각해야만 될 것이다.

- (비강 내의 공명은 비성이 아니다) 말을 할 때 절대로 콧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코에서 소리를 내면, 귀에 몹시 거슬리게 된다. 마치 지독한 코감기에 걸렸을 때와
같은 소리, 즉 비성이 되어 버린다. 비성은 좋은 목소리가 아니다.

- (소리를 너무 지르지 마라) 의식적으로 공명을 할 수 있게 되면, 소리를 지를
필요가 없어지고, 목소리는 부드러워 질 것이다. 무턱대고 소리를 높이 지르는
버릇은 건강에는 물론,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

- (구개수<口蓋垂>와 혀 ) 구개수란 연구개에서 목구멍 쪽으로 늘어져 있는 조그만
돌기를 가리킨다. 입을 크게 벌리고 거울에 비춰 보면 보인다. 목소리가 앞으로
나가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구개수는 적당히 긴장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혀의 위치는 그때의 발음에 필요한 높이에 멈추게 하고, 그 이상 높게 해서는 안 된다.

- (연습1) 충분히 숨을 들이쉰다. 혀끝을 앞니 뒤쪽에 갖다 붙인다. 입을 크게 벌리고,
‘아, 응, 아, 응, 아, 아, 응’하고 발음한다. 연구개의 움직임을 느끼도록 한다. 연구개는
‘아’ 음에서 올라가고, ‘응’의 음에서 내려가는 것과 동시에, 높아진 혀의 안쪽 부분에
닿는다. ‘응’의 소리는 코에서 나온다. 영어에서는 비음이 세 가지밖에 없다. ‘응’과
‘므’와 ‘느’이다. 이외의 소리를 코에서 내서는 안 된다.

- (연습2) 앞에서의 연습을 거꾸로 하는 것이다. 혀끝을 앞니 뒤쪽에 갖다 붙인다.
‘응’에서 ‘아’로 달라질 때, 연구개가 위로 올라가는 움직임에 신경을 쓰도록 한다.
‘응, 아, 응, 아, 응, 아’하고 반복한다. 자연스럽게 연구개의 위치가 변화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의사가 목구멍을 진찰할 때 환자에게 ‘아아’하고 말하게 하는데, 그것은
연구개가 올라가서 목구멍 속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 (발성 연습 1, 2, 3) 커다란 방안에 있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맨 뒷줄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목소리가 들리도록 해본다. 한 음에서 한 음으로 옮아갈 때는
또렷하고 명확하게 음을 바꾸도록 한다. 1. 충분히 숨을 들이쉰다. 입술을 둥글게
밀어내며‘스’의 음을 내고, 다음에 열고 ‘아’의 음을 낸다. ‘스, 아, 스, 아, 스, 아’하고
반복한다. 2. 충분히 숨을 들이쉬고, ‘므, 우, 므, 우, 므, 우’라고 말한다. ‘우’의 음을
낼 때 입을 둥글게 한다.3. 충분히 숨을 들이쉬고, ‘브우, 드우’라는 말을 발음해 본다.
이것을 되풀이하면서 방끝까지 목소리가 도달하도록 노력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발음과 말 ]

- 목소리는 말로 바꾸어야만 한다. 이 습성은 어린 갓난아이일 때 몸에 베게 된다.
갓난아이는 어머니, 아버지, 또는 누군가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서 말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므로 가지각색의 언어가 생겨난 것이다. 어느 나라든 지역이든 간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각기 독자적인 어휘를 발달시켰고, 자손이 그것을 흉내 낸 것이다. 그
결과, 수많은 언어가 발달했다. 한 나라 안에서도 지방에 따라서 독특한 사투리가
생겨난 것이다.

- (모방) 훌륭한 말을 하려고 생각한다면, ‘조음 기관’(말을 만들어 내는 기관)의
상태를 조절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면 조음 기관은 필요할 때 즉각 효과적으로 반응할
것이다. 조음 기관이란 입술, 혀, 턱(이와 잇몸), 경구개와 연구개이다. 어는 기관이든
뇌에서 언어 충동이 전해졌을 때는 즉각 반응할 수 있어야만 한다.

- (연습) 1. 혀끝을 아래쪽 앞니의 뒤쪽에 붙이고 ‘후 잇츠(who eats)‘하고 6회 반복
한다. 2. 혀끝을 역시 아래쪽 앞니의 뒤쪽에 붙이고, ‘후 아유(who are you‘하고 6회
반복한다. 3. 혀를 앞에서와 같은 위치에 놓고, ‘미, 마, 머, 무(mee, mah, maw, moo)‘
라고 될 수 있는 대로 리드미컬하게 6회 반복하여 발음한다. 입술 모양의 변화를
의식한다.

- (혀의 훈련 1,2,3) 1) ... 2)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될 수 있는 대로 길게 내민다.
그리고 그 혀를 먼저 왼쪽으로, 다음에 오른쪽으로 리드미컬하게 움직인다. 이를 6회
반복한다. 3) ...
- (턱의 훈련 1,2,3) 1) ... 2) 혀를 평평하게 한 채로 입을 벌리고, 아래턱을 될 수
있는 대로 떨군다. 그 상태에서 아래턱을 좌우로 8회 움직인다. 3) ...중략

- (자음) 언어음은 크게 자음과 모음으로 나눌 수가 있다. 자음을 정확하게 그리고
손쉽게 발음할 수 있는 사람은 ‘조음’이 좋다고 일컫는다. 자음은 언어 기관을 부분적
으로, 혹은 전부 사용해서 발음하기 때문이다. 자음은 기관별로, 즉 그 자음을 발음
하는데 어떤 언어 기관을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분류할 수 있다.

- (입술/ ... / 발음이 어려운 자음) - 중략

- (모음) 이야기 할 때 똑똑 끊어진다는 것은 모음을 정확하게 발음한다는 것이다.
모음 가운데는 지방에 따라서 발음의 방식이 상당히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출신지를 알아맞히는 단서가 된다. 런던 토박인가, 아니면 북부 사람인가 쉽게 구별이
된다.

- (사투리를 쓰지 말라) 사투리에는 분명히 애교가 있지만, 설령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표준어를 사용해야만 한다. 승진을 원하고 있는 사람이나, 클럽 등에서 임원직을
맡은 사람은, 지금까지 사용한 사투리로는 여러 면에서 불리하다. 특히 사투리를 사용
하지 않는 방법으로는 모음의 발음을 정확하게 해야만 한다.

- (모음의 발음) 영어의 알파벳 가운데 모음을 나타내는 것은 a, e, i, o, u 의 다섯 개
문자이다. 이것이 실제로 발음이 되어 나오면, 여러 가지로 변한다. 모음은 18개의
음으로 분류된다. 그 중에 12개가 단모음, 나머지 6개가 두 개의 음이 연결된 이중
모음이다.

- (모음의 발음 연습) 입의 모양과 혀의 위치로 모음을 발음하는 예시 단어 연습 ... 중략

- (발음과 강세) 좋은 발음을 내기 위해서는 단어의 발음이 정확해야 한다. 어떤 단어를
발음할 때, 강세를 두어야 할 음절에 제대로 강세가 놓여지지 않으면 안 된다. 강세를
두어야 할 음절에 밑줄을 그어 보자. 그런 후 사전과 대조해 보자 전부 맞는다면 당신의
발음은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 발음에 자신이 없는 단어에 마주칠 때마다 사전을 찾아
보고 작은 노트에 적어 둔다. 나중에 재검토 할 경우를 위해서 노트의 각 페이지에 알파벳
순의 제목을 붙여 참조하기 쉽게 해둔다.


[ 목소리의 변화 ]

- 목소리에 고저를 붙이면 억양과 변화가 생긴다. 그러면 자신이 말하려고 하는 것에
청중의 관심을 강하게 끌어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억양이 없는 단조로운 목소리는
듣는 사람의 관심을 금방 약화시키고 만다.

- (말의 높낮이) 변화는 인생의 양념이라는 것을 명심해 두자. 적당한 변화라면
목소리에 다른 맛이 나는 것이다. 대개 목소리는 즐거울 때, 흥분했을 때, 화가 났을 때는
높아지고, 슬플 때, 겁을 집어 먹었을 때, 송구스러울 때, 영문을 알 수 없을 때는 낮아
지게 마련이다. 완전히 침착한 상태의 대화라면 중간 정도의 높이로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 (말하는 속도) 사람마다 각자 걷는 속도, 먹는 속도가 다르듯이 말하는 데도 그 사람
나름대로의 속도가 있다. 그러나 말하는 속도는 각자의 모형 안에서 거듭 여러 가지로
변화한다. 흥분하면 빨라지고, 슬플 때는 늦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목소리의 고저의 변화
이외에 속도의 변화도 대화의 내용을 부각시켜 준다.

- (강약) 목소리가 강한 사람은 그것으로 득을 볼 때도 있지만, 손해를 볼 때도 있다.
필요에 따라서 강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되지만, 쉴 새 없이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것은 불쾌하며 귀에 거슬린다. 그것은 목소리가 지나치게 작아서 잘 들리지 않기 때문에
짜증이 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목소리의 크기도 역시 적당하게 가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그때에 걸맞는 목소리의 강도를 유지해야 한다.

- (억양) 억양이라는 것은 목소리를 일정한 높이의 범위 내에서 높이고 낮추는 일이다.
높이기만 하는 경우도 있으며, 낮추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 혹은 계속해서 자주 높이
거나 낮추거나 하는, 즉 목소리가 곡선을 그리는 경우도 있다. 억양은 의미의 전달을
도와준다. 예를 들면, 문장 끝을 낮추어 줌으로써 단순한 서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의심하는 마음은 문장 끝을 올리는 것으로 전해 준다. 즉 억양의 변화로 의미를 바꿀
수가 있는 것이다.

- (문장 끝의 억양) 지금 어떤 얘기를 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그 얘기를 마무리 지을 때
문장 끝을 올려 버리면, 듣는 사람에게 확신이 없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설령 자기가
말한 것이 진실이라고 확신하고 있어도 말이다.

- (긴 문장의 억양) 길고 복잡한 문장을 말할 때는, 각 구절의 단락에서 목소리를 낮추
어서는 안 된다. 의미가 완결될 때까지는 목소리를 높이든가, 같은 높이로 유지해 가든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한편, 낮추어야 할 곳을 높이게 되면, 듣고 있는 사람에게
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그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당신은
혹시, 문장의 끝이 아니라 도중의 단락에서 박수를 치는 통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했던 연사를 본 경험을 없었는가? 그 원인은 다름 아닌 억양을 잘못 사용한 탓인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니까 문구의 단락인데도 억양을 낮추어 버린데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 인상(印象) ]

- 처음 대하는 사람과 만나면 먼저 시각적인 인상을, 다음으로 청각적인 인상을 받게
된다. 당신의 목소리가 높거나 낮은지, 또렷하고 밝은 목소리인지, 공격적이거나 온화한
목소리인지, 아마도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서 또 타인에게 주는 인상에 당신의 목소리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 생각 해 본 적이 별로 없을 것이다.

- (음성을 조종하라) 자신의 음성을 조정하는 것은 자신이라고 마음속으로 정하자.
자신이 표현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어떤 생각도, 어떤 개성도 반드시 음성으로 나타
내도록 하는 것이다. ... 우수한 정치가 지망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참다운 개성을
발휘해 보지 못한 사람도 많은 반면에, 음성과 개성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서 당당한
지지를 획득했던 사람도 많았던 것이다.

- (성실성) 성실성이야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모든 특징가운데서 가장 인간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 중의 하나이다. 망설이는 말을 하게 되면, 듣고 있는 사람은 지식이
모자란다든가, 좀 더 심한 경우에는 확신이 없다든가, 그러한 느낌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 (생기게 넘치게 말하라) 누구나가 대개 생동감 있는 말씨에는 마음이 끌리는 법이다.
말하는 사람이 생기에 넘쳐 있으면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강연을 들을 때나 집회에
나가거나 할 때, 이야기의 내용이 신통치 않은 것과 화술이 단조로운 것 때문에 우선
주의가 산만해지고, 다음에는 졸음이 오는 경우를 경험했을 것이다.

- (자연스럽게 말하라) 근본은 매우 상냥한 사람인데도 말을 하게 되면 무뚝뚝하고
근접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 이런 태도는 자연스럽다고 할 수가 없다. 불행하게도
오랫동안 몸에 익혀 온 때문일지도 모르며, 세상 전체에 대해서 무의식중에 대항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악한 척할 생각이 없다면, 목소리에 참다운 자기를
나타내 보자.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은 당신의 목소리 속에서 우정을 발견하고,
바로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 (재치를 발휘하라) 재치가 부족한 사람은 재치가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엉뚱한 발언으로 실수를 하는 사람은도저히 다른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살 수는 없다.
‘타 지방에서 살게 되면 그 고장의 풍습에 따라야’ 한다. 타지방의 생활적응이 어느
정도는 힘들 것임을 각오해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유명인이라면 관대하게 보아
넘겨지는 것도, 무명인들에게는 허용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취를 발휘해야
하고, 절대로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말도록 해야 한다.

- (침착성) 자신의 근심이나 생각에 몰두해서 남의 이야기에 차분히 귀를 기울일 수
없는 것은 침착성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게 된다. 얘기 상대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얘기를 잘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남의 얘기를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이는 의견을 말하면 금방 그 이야기에 흥미를 잃고 대화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바꾸거나
혹은 성급하게 그 화제에 결론을 내리거나 하는 사람이 있다. 대화라는 것은 상호적
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대화를 함께 하겠다는 암묵적인 양해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쌍방이 서로 얘기하고 동시에 듣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대화의 예의라는 것이다.

- (대화의 상대방) 그때그때의 상대방에게 화제를 맞추도록 하자. 누구에게나 화젯
거리는 있는 법이다. 그러면서도 어떤 사람들이 특히 얘기를 잘 하는 것은, 재미있는
화제를 다른 사람들보다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들보다도 쉽게 얘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날씨가 참 좋군요!” 하는 인사는 꽤나 바보스럽다고 무시당하고
있지만, 그래도 덕분에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깨지고 즐거운 대화에로의 길이 열리는
경우가 흔히 있다. 우리들은 모든 화제에 정통할 수는 없다. 모두 ‘만물박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 대화는 상호적인 행위이고, 듣는 사람이 없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자 세 ]

- 좋은 자세가 바람직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어서이다.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세가 좋으면 호흡을 편하게 할 수 있고, 숨의 컨트롤이 손쉽게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자신감과 침착성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두 번째
이유만을 중요시하지만, 자세에 따라 숨의 컨트롤이 얼마나 달라지는지에 대하여는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다.

- (첫 인상) 사회자로부터 소개를 받고 연단에 올라가거나, 또는 의자에서 일어서면,
모여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당신에 대한 첫 인상, 즉 시각적인 인상을 준다. 아직 한
마디도 하기 전부터 청중은 마음속으로 당신을 평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앉아 있는
동안은 고개를 푹 숙이지 말고 조용히 자신감을 갖고 앉아 있어야 한다. 연단에 올라갈
단계에서는 침착하고 위엄 있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겸손이라는 것은 자신감이
없는 비굴한 태도와는 다른 것이다. 자신감이 없는 비굴한 태도는 청중에게 ‘이 문제는
저 사람에게는 너무 벅차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와 반대로 오만불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안 된다. 이러한 태도도 자신감의 결여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자신감이
없으면 그 불안을 해소시키려고 위압적이고 뽐내는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 (마음을 편하게 가져라) 서는 자세에 대하여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 오히려 더 당황
하게 된다. 숨을 편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자세면 된다. 두 다리를 약간 벌리고, 한쪽
발을 조금 앞으로 내밀 듯이 한다. 체중은 주로 한쪽 다리에 싣고, 다른 쪽 다리는
균형을 잡는데 사용한다. 몸에서 힘을 빼도록 하자. 그러나 이것은 긴장이나 몸이
굳어지는 것을 푸는 의미로, 앞으로 몸을 구부린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배는 약간
디밀고 내밀지는 말도록 하자. 이렇게 하면 내쉬는 숨을 컨트롤하기 쉽다. 무엇을
하든 간에 목과 목구멍의 근육을 경직시키지 말고 긴장을 풀도록 하자. 목이나 목구멍에
힘이 들어가면 목소리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 (머리와 손) 이야기를 하면서 쉴 새 없이 머리를 움직이는 행위, 즉 가로나 세로로
목을 흔드는 행위는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머리는 필요한 때에 청중을 둘러보는
느낌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경우에만 쓰도록 한다. 그리고 손에 힘을 주어서는 안 된다.
항상 제스처를 많이 써서 팔을 휘두르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면 모를까, 강연자가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다. 이따금 꼭 필요한 때에 제스처를 넣는
것이 효과적이지만, 항상 움직이고 있으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 (버릇) 자기로서는 깨닫지 못하는 버릇, 그것을 주의해야 한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
에게 미리 얘기를 듣고, 어떤 버릇이 없는가 즉, 손가락으로 항상 머리칼을 긁어 올리는
습관, 코를 문지르는 습관, 넥타이를 만지는 습관 등을 지적해 달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무리 해도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 것이 좋겠다면, 다른 것보다는 메모를
적은 종이쪽지를 들고 있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것이라면 참고도 되고, 또 안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
이라는 역할을 연기하는 기회라고 생각하도록 충고를 하면 잘되는 경우가 있다. 이야기의
자료를 미리 충분히 준비했으면 청중과 접한 순간부터는 일체를 무대 위의 연기로 가정해
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는 그 시간을 위해 특별히 선택된 인물인 것이다. 그러면
이전에는 자랑스럽기는 했지만 어딘가 두렵기만 했던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된다.

- (시선) 대단한 자신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강연자로서의 경험을 쌓고 있는 것도
아니라면, 절대로 주의할 것은 청중 속에서 한 사람만을 골라 그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
시키는 것은 안 된다. 해보면 알 수 있듯이, 중요한 연설에서 마음이 빗나가 버리고,
자기뿐만 아니라 선택된 상대도 당황하게 된다. 항상 수평보다 조금 위를 보도록 한다.
위라고 해서 천정을 보아서는 안 된다. 방의 한쪽 끝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도 청중으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하기 위해 때때로 잠깐씩 좌우로 눈을 돌리도록 하자.
적당한 기회가 있으면 미소를 지어 보자. 그것으로 청중과의 관계가 밀접해질 뿐만
아니라, 목소리의 상태도 안정되고, 긴장이 풀린다.


[ 강연의 실제 ]

- 전화로 강연을 부탁받아 약간 기분이 좋다. 그런데 돌연 엄청난 일을 수락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신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담?” 강연을
해본 경험이 없는 당신은 그러 당황할 뿐이다.

- (경험과 자신감)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상대라면, 이야기 하는 것도 매우 편할
것이다. 그러나 잘 모르는 사람들이 상대인 경우에는, 모이는 사람들의 종류, 강연장의
크기 등을 미리 조사해 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예정되어 있는 시간과 강연이 끝나고
나서 질의응답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해 두자. 강연의 내용이 준비되면, 시간을 재기
위해서도 몇 번 연습을 해보자. 이야기에 유머를 섞어야 하는 것은, 잠깐의 유머가
커다란 효과를 내는 경우가 흔히 있기는 하나 때로는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 유머에는
반드시 상대방과 경우에 따라 알맞게 집어넣도록 하자. 선천적으로 농담을 썩 잘하지
않는 한, 어설픈 농담으로 자리를 망치지 말고, 실제로 있었던 적당한 일화를 인용한다
든가, 진지한 태도로 일관하는 쪽이 오히려 안전할 것이다.

- (계획을 세워라) 강연의 준비가 잘 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미리 종이에서 계획을 세우고,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조립해
나간다. 실제로 이야기 할 때 메모지를 들고 있다 하더라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머뭇거리거나 요점을 잊어버리고 당황해하는 것보다 메모지를 보는 편이 훨씬
낫다. 강연자의 소개를 받은 경우에는, 우선 청중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그 회합의
취지를 간단히 설명하고, 오늘의 연제를 발표하고 강연 뒤에 질문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언급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연자의 이름을 똑똑히 말한다.

- (강연의 진행법) 강연(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진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는
식으로 시작한다면 청중과의 사이에 부드러운 관계가 맺어진다. 본제에 들어갈 때는,
재미있거나 또는 적절한 일화를 바탕으로 해도 좋고, 모두를 긴장시키는 말을 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후자는 상당히 강연에 익숙한 노련가에게만 권하고 싶은 방법이다.
본론 부분에서는 주제를 체계적으로 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종류의 전문 용어는
당신에게는 당연한 것일 지라고, 청중들에게는 낯선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기기의 이용) 시각 자료를 사용할 수 있다면, 강연자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시각 자료를 이용한다면, 강연장의 맨 뒷자리에 앉은 사람도 잘 보이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청각 기기를 사용할 때는, 전원이 쉽게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기기는 모두 미리 시험해 보고, 이상 유무를 확인해 두어야 한다.

- (결론) 이야기가 끝나면 결론으로서 중요한 점을 간단하게 요약하여 청중의 기억을
새롭게 하도록 한다. 단 이것은 어디까지나 ‘결론’입니다.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 사족이
되어 버려서는 안 된다. 강연이 끝부분에 가까웠다는 것을 암시하고 나면, 불필요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도록 해야 한다.


[ 개성의 선택 ]

- 당신의 목소리는 정말로 개성을 나타내고 있는지 어떤지 판단을 해보자. 자신의
목소리가 마음에 드는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지. 대답이 ‘아니오’라면, 지금 당장
목소리를 바꾸어야 한다. 반대로 개성은 나타내고 있지만, 그것은 자기가 남에게 주고
싶은 이미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굳게 결심을 하고 당신이 바라는 목소리를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생관이 바뀌면 그것이 목소리에도 뚜렷이 나타나서 놀라운 효과를
낳는다. 우리들은 모두 모든 점에서 각 사람이 서로 다르다. 신장, 체중, 눈이나 머리
색깔, 기질 등등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들의
개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 (두 개의 목록) 이 책을 읽고 나면 책상에 앉아서 목록 두 개를 작성해 보자. 첫 번째
목록에는 ‘목소리와 이야기 하는 방법’ 이라는 제목을 붙이자. 그 용지의 반쪽 절반은
‘좋은 점’을 쓰고, 오른쪽 절반은 ‘나쁜 점’을 기록한다. 즉, 왼쪽 난에는 자신의
목소리와 이야기 하는 방법에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점, 그대로 계속하고 싶은
점을 전부 기록한다. 그리고 ‘나쁜 점’ 난에는 그다지 매력적이 아닌 점, 바꾸든가
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점을 빠짐없이 기록한다. 다음으로 두 번째 목록에는 자신의
용모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과 싫어하는 곳을 기입한다. ... 진실을 꿰뚫고 있는
격언을 한 가지 기억해 두자. “웃어 보세요. 그러면 세계도 함께 웃을 것입니다. 울어
보세요. 그러면 우는 것은 당신 한 사람 뿐입니다.”

- (자신감을 가져라) 좀 더 인생을 즐길 수 있도록 자기 자신에게 변화를 줄 결심을
했다면, 가족이나 친구의 비판이나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당신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것은 당신 자신의 개성이지, 가족이나 친구의 개성은 아닌 것이다.
당신 자신의 인생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한, 당신이 살아가고 싶은 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화법과 개성을 선택하여 인생을 마음껏 즐기며 살아가도록
하자.


[ 능숙한 대화를 하려면 ] 독서 메모 - end





금주의 독서 메모 078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2.05.15.


[ 책 이름 : 뜻을 알면 전례가 새롭습니다 ]

- 지은이 : 정의철
- 지은이 프로필 : 1981. 사제 서품,
1989년 로마 성안셀모대학교 전례학 박사학위, 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등
- 펴낸데 : 생활성서사, 출판일 : 2003년 6월 1일
- 내용 : 39가지 가톨릭 전례 상식 (월간 ‘생활성서’ 연재 글 모음)


[ 표지글 ]

- 교우들이 전례 주체로서 좀 더 완전하고 능동적으로 전례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표지인 말(기도, 성서말씀,
사제와 회중이 주고 받는 말, 미사 경문 등), 동작(꿇고, 고개숙이고, 합장하고,
일어서고 하는 동작과 사제의 동작), 전례용구(빵, 포도주, 성유 등)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의 삶과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원 업적의 의미를 깊이 체험할 수 있고, 나아가 우리
삶과 전례를 연결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 책머리에 ]

-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는 전례에 대하여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 나오는 원천”이라고 정의한다. 때문에 교회는 전례에 있어서 ‘교우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 전례는 믿는 바를 보고 느끼며 표현하는
전인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교우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행하는 의식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음으로 인하여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권리와 직무를 가지게 된다. 이 책은 그동안 월간 <생활성서>에 실린 글을 모아 엮은
것이다. 물론 체계적으로 쓴 글이 아니라, 단지 교들이 꼭 알아야 하는 전례 상식을
중심으로 나름대로 주제를 잡아 쓴 글이다. 교우들이 이 책을 통해 전례를 더욱 깊이
이해하여 각자 안에서 전례가 더욱 새로워지고 삶과 연결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1. 앵무새 교우 벗어날 수 있나요 ?

- 본당에서 미사를 드리다보면 모든 교우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세 가지 유형의
교우를 볼 수 있다. 즉 첫째는 벙어리 교우요, 둘째는 맹꽁이 교우요, 셋째는 앵무새
교우이다. 앵무새 교우는 앵무새처럼 남이 하는 대로 따라서 소리는 잘 내지만 의미도
모른 채 그냥 기계적이며 습관적으로 읊기만 하는 교우를 말한다.

- 성직자들이 많은 전례 행위를 하고 있지만, 이들만이 전례의 공식 집전자이거나
모든 전례의 주체인 것은 결코 아니다. 세례성사를 받고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
모든 평신도도 직접, 간접으로 전례의 주체이다. 평신도는 성직자와 함께, 또 성직자를
통하여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에 화답하며, 제물을 봉헌하고,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세상 구원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다.

- 교우들이 전례 주체로서 좀 더 완전하고 능동적으로 전례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표지인 말(기도, 성서말씀,
사제와 회중이 주고 받는 말, 미사 경문 등), 동작(꿇고, 고개숙이고, 합장하고,
일어서고 하는 동작과 사제의 동작), 전례용구(빵, 포도주, 성유 등)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럴 때만이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의 삶과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원 업적의 의미를 깊이 체험할 수 있고, 나아가 우리 삶과
전례를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2. 전례 중에 ‘환호’를 한다고요?

-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동의하거나 환영하고 찬성을 표시할
때에 흔히 한두 마디의 짤막한 환호를 하거나 박수를 치곤 한다. 전례 중에 하는 ‘환호
(acclamatio)’도 이와 비숫하게 주례자나 전례 봉사자의 기도, 권고 또는 동작에
공동체 전체가 동의와 찬성을 표시하는 짤막한 말씀을 뜻한다. 언어학적으로 보아
‘환호’는 한 단어(예 : 아멘)나 간단한 문장(예: 하느님 감사합니다,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으로 구성된 것을 말한다. 긴 문장으로 된 환호도 있는데 이는 ‘찬미가’,
‘감사가’라고 부른다. (예: 대영광송, 거룩하시다, 하느님의 어린양 등).

-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전례 환호에는 성서적인 환호도 있고 창작 환호도 있다.
성서적 환호는 ‘아멘, 알렐루야, 호산나’ 등이고, 창작 환호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영광 받으소서,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등이다.
전례 중에 하는 환호는 교우 전체의 반사적인 외침이기 때문에 성격상 노래로 읊는
기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우 전체가 노래로 부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고,
또 노래로 부를 때 그 의미를 제대로 드러낼 수 있게 된다.


3. 미사 때 일어섰다 앉았다 하는 이유가 뭔가요?

- 우리는 교우 아닌 이들에게서 가톨릭은 예식이 장엄하고 엄숙해서 좋지만, 한편으론
너무 복잡해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오히려 어려움만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사실 교우 아닌 이들뿐 아니라 교우라도 예식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와 또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전례는 하느님의
구원을 실현시켜 인간을 거룩하게 하는 성화의 수단이며, 하느님께 대한 공경을 표현
하는 행위이다. 하느님의 업적이 다양하듯 이를 표현하는 전례 동작도 다양하다.

- 전례 동작 중 서는 자세는 첫째, 존경을 표하는 자세이다. 그래서 사제나 부제가
복음을 봉독할 때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을 선포하신다고 보고, 그리스도께 대한
존경의 표시로 서서 듣는다.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전례를 집전하는 사제를 행해서도
드러내는데, 주례자가 입당하고 퇴장할 때 교우들은 일어 선다. 둘째, 서는 자세는
가장 보편적인 기도 자세이다. 그래서 기도할 부분에서 일어서는 것이다. 셋째, 서는
자세는 부활과 기쁨의 자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서 일어나셨고, 우리도 그분을
통해 부활하여 일어섰다. 이런 의미 때문에 부활시기와 주일에 서서 기도하는 경우
(부활삼종기도 등)가 많다. 앉는 자세는 바른 몸가짐을 나타낼 뿐 아니라, 기대와
주의력으로 가득 차 있음을 나타내는 정성 담긴 자세이다. 그래서 전례에서 경청의
자세로 앉는 자세를 취한다. 이런 의미를 담고 있기에 교우들은 미사 중에 복음 외의
성서를 봉독할 때나 강론 때 앉아서 경청한다.


4. 사제가 입는 제의(祭衣) 색깔은 왜 종종 바뀌나요?

- 사제는 전례 집전 때 반드시 전례 복을 입고 전례를 거행한다. 이는 전례 집전시
특별한 복장을 함으로써 사제가 사적으로가 아닌 교회의 공식 시종자로서 예식을
거행함을 뜻한다. ... 제의 색깔이 달라지는 이유는 거행되는 전례의 특성과 전례력에
따라 그리스도인 생ㄴ활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다.

- ‘백색’은 거룩하게 변모하신 그리스도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하여 영광,
결백, 기쁨을 뜻하므로, 부활과 성탄 축일, 성모 축일, 천사 축일 및 순교자가 아닌
성인 성녀 축일 등에 입는다. ‘홍색’은 사랑과 피를 상징하기에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 성령 강림 대축일, 주님의 수난 행사, 사도와 복음사가 축일,
순교자 축일 등에 입는다. ‘녹색’은 생명과 희열과 희망을 상징하므로 연중 주일과
연중시기의 평일에 입는다. ‘자색’은 통회와 보속을 상징하므로 대림시기, 사순시기에
입는다. ‘흑색’은 죽음을 상징하므로 장례 미사, 위령 미사 때 입지만, 요즈음은 흑색
대신 자색이나 백색을 입기도 한다. 백색을 입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차원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장미색’은 주로 기쁨을 향한 휴식을
의미하는 대림 제3주일, 사순 제4주일 미사 때 입는다. ‘금색’은 미사를 성대하게
거행할 때 입는데 백색, 홍색, 녹색을 입는 전례시기에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색깔의 제의를 전례에 따라 모두 갖추지 못했을 경우에는 백색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


5. 미사 참례가 가끔 짐이 될 때가 있어요.

-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헌장에서 ‘미사는 전례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셨던 구원
사업을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 즉 미사에 모인 우리들과 함께 그대로 재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헤아려야 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미사 중에 능동적으로 우리의 역할을 수행
해야 하는 것이다.

-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미사 중에 이루어지는 하느님 말씀과 사제가 하는 기도문을
잘 귀담아들으려고 노력하고, 제단 위에서 이루어지는 예식들을 놓치지 않고 유심히
보아야 한다. 또한 교우들이 응답해야 할 부분들에서는 적극적인 태도로 임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미사가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실생활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되고 신앙생활을 기쁘고 희망차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6. 성체만 영해도 미사에 참여한 것이 되나요?

- 하느님께서는 성체 성혈뿐 아니라 당신 말씀을 우리에게 영적 양식으로 주셨다.
그러므로 미사 때 성체 성혈만 받아 영하면 반쪽만 영하는 것이요, 말씀까지 받아
영할 때 온전하게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말씀 전례’ 부분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다시 부각됨으로써 지금은 ‘성찬 전례’
못지않게 미사 안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말씀 전례’는 그리스도 생애의
사건, 또 그 장면의 신비, 그때 그 장소를 상기시킴으로써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
업적을 이룩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이 말씀 전례는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양식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구원 신비를 기념함으로써
성찬 전례를 준비시킨다. 말씀 전례에 이어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
그러므로 미사에서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에 제대로 참여할 때, 우리는 미사에
온전하게 참여하는 것이 된다.


7. 죽은 이를 위해서는 미사 예물만 바쳐도 되겠죠?

- 교회가 죽은 이를 위하여 미사를 봉헌하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모든 지체가 서로 영성적인 도움을 주며 다른 지체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이다.
중세기에 미사의 제사성이 강조되면서 미사의 제사화와 함께 당시의 신학 사상, 특히
구원론과 시대적 여건 등의 요인이 맞물려, 교회에서 죽은 이들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인간 구원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죽음과 그 이후 세계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연옥 교리의 발달이 죽은 이들을 위한 심심 행사에 논리적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우리가 죽은 이를 대신하여 기도와 희생을 바쳐 하느님께 간구하면, 그분은 우리의 정성을
보아 연옥에서 단련 받는 이의 고통과 시련 기간을 단축시켜 주실 것이라는 교리에 따라
연도나 위령 미사를 바치는 관습이 생겨났던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미사가 지닌 참된 제사적 의미를 생각하면서 위령 미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바치는 제사는 단순히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만이 아니고, 출생, 공생활, 수난과 죽음, 부활을 포함하는 전 생애를 하느님께 바치신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가 제사를 바친다는 의미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 자신의
전 생애를 하느님께 바치고 그분을 위해 생활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단순히 미사 예물
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포기하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제물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위령 미사를 드릴 때 미사의 본의미를 생각하여 합당한 지향과 마음가짐
으로 먼저 준비한 다음, 그 미사 안에서 죽은 이를 위한 은혜를 청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8. 사물에 불과한 제대에 왜 절을 하나요?

- 제대는 교회의 원천이요 머리요 중심이신 그리스도 신비의 표지이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그리스도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제대 없이 그리스도를 언급할 수 없다”
라고 데살로니카의 시메온은 말했다. 이처럼 제대는 전례 거행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신학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도 바오로가 언급한 것처럼
그리스도교의 제대는 ‘주님의 식탁’이다. 제대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가 자신의 사제직을
통하여 인간 구원과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를 이루는 데 필요한 희생 제사를 재현하는
식탁인 것이다. 따라서 제대는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 사이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중심점이
된다.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놀라운 교환이 이루어지는 곳도 제대이다.

- 그러므로 사제는 미사 입당 때나 퇴장 때 제대에 대한 존경으로 제대 앞에 나아가
정중히 절을 한다. 때로는 제대에 분향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제는 복음 봉독 전에도
제대 앞에 나아가 고개를 숙이고 “전능하신 하느님, 제 마음과 입을 깨끗하게 하시어,
합당하게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게 하소서”하고 기도한다. 마찬가지로 모든 교우도 제대
앞을 지나갈 때면 깊이 고개 숙여 존경을 표시한다. ... 교회가 제대에 대해 깊은 존경을
표하는 이유는 제대가 곧 ‘그리스도’이고 ‘주님의 식탁’이라는 제대 신학에서 연유한
것이다.


9. 주일 미사 독서는 어떻게 정해지나요?

- 말씀 전례는 하느님 말씀과 인간의 말로 이루어진다. 이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인간이 이에 화답하는 대화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기 위한 것이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 봉독’이다. 주일
미사 독서는 먼저 그리스도의 구원 행적과 가르침을 복음에서 택하고 그것과 어울리는
내용을 구약에서 택한다. 그리고 그 복음 말씀을 어떻게 생활화할 것인가에 대한
사도들의 가르침을 사도들의 서간에서 택한다. 그러므로 말씀 전례의 목적은, 하느님
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원 업적을 상기하고 기념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에
새기고 하느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받는 데 있다.

- 교회는 주일미사를 위한 독서로 제1독서는 구약성서, 제2독서는 사도들의 서간,
제3독서는 복음을 봉독하고 있다. 그리고 가해, 나해, 다해의 3년 주기로 나누어,
복음에 있어서는 공관복음을 중심으로 가해에는 마태오 복음, 나해에는 마르코 복음,
다해에는 루가 복음을 봉독하여 체계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를 묵상하도록 하고
있다. ‘해’의 구분은 당해 연도를 3으로 나눌 때 1이 남으면 가해, 2가 남으면 나해
이고, 딱 떨어지면 다해가 된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대림, 성탄, 사순, 부활시기 등
특별시기에 봉독하게 된다. 주일 미사 독서는 복음과 제1독서(구약성서)의 주제가
항상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제2독서(신약성서)와 복음은 매주일 이어서 차례대로
봉독되고 있다.


10. 연극처럼 실감나게 ‘독서’하면 안 되나요?

- 독서자 임무의 중요성에 대해서 ‘전례헌장’에서는 “교회에서 성서를 읽을 때 말씀
하시는 이는 그리스도 자신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성서 봉독은 회중을 향하도록
규정되어 있어 독서대는 독서자가 교우들에게 잘 보일 수 있고, 말씀이 잘 들릴 수
있는 곳에 배치한다. 독서자는 독서대 앞에 서기 전에 주례 사제를 향해 인사함으로써,
자신이 성서 봉독의 임무를 주례 사제에게 허락 받는다는 뜻을 나타낸다.

- 독서자는 성서 본문을 구두점에 따라 정확히 끊으면서 유창하게, 그러면서도
의미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봉독해야 한다. 독서자는 주관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억양을 조심하면서 차분하고 냉정한 태도로 성서를 봉독해야 한다. 성서를 객관적
으로 표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독서자 자신이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여 확신을
갖고 읽어야 한다. 성서 봉독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과 ‘사업’을 선포하는 것이며,
그 ‘증거’로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므로 언제나 객관성이 요구된다.


11. ‘보편 지향 기도’는 어떻게 바치면 되나요?

- 전례에 참여한 교우들이 공동으로 바치는 기도중 대표적인 것이 ‘보편 지향 기도’
(신자들의 기도)이다. 보편 지향 기도는 세상 구원에 대한 사명을 지닌 공동체의
간청이기에 모든 사람을 위한 폭 넓은 기도여야 한다. 이 기도의 지향 순서는 모든
교회, 전 인류와 같은 보다 폭 넓은 개념의 공동체를 위한 기도로 시작하여,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를 위한 기도로 이어진다. 그 지향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 첫째 부분에서는 모든 교회를 위해 기도한다. 하느님 백성이 된 사람, 모든 교우,
교회 전체, 세계의 모든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둘째 부분에서는 전 인류,
즉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
셋째 부분에서는 긴급하고 필요한 일을 위해 기도하는데, 그것은 모든 차원의 공동체를
위한 아주 구체적인 내용이면 된다. 넷째 부분에서는 우리 공동체, 예를 들어 본당이나
지역 공동체 또는 각종 단체 등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 이 기도를
어느 책자(월간 ‘매일미사’ 등) 등에 제시된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이는 예시
기도문이므로 각 공동체 실정에 맞게 언제나 새롭게 만들어 바치도록 노력해야 한다.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2. 미사 예물을 바친 사람의 지향만을 위해 미사가 봉헌되나요?

- 미사는 십자가상 제사를 영구히 기념하고 재현하는 성찬이며 제사이다.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사제는 미사성제를 집전하면서 완전한 제물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지체인 교우들도 봉헌한다. 한편 교우들은 자신을 봉헌하는 마음을 외적으로 표시
하는데 그 중 한 가지가 미사 중에 공동으로 바치는 헌금이고, 다른 한 가지는 미사
전에 개별적인 지향과 함께 바치는 미사예물이다. 특히 미사 예물은 교우들이 자신을
제물로 봉헌하시는 그리스도와 더욱 긴밀히 결합하고, 거기서 나오는 효과를 더욱
풍성히 누리고자 하는 마음의 상징적 표시이다. 또한 교우들은 미사 예물로 집전
사제와 이웃에게도 봉사하게 된다. 교우들이 바치는 미사 예물은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의 생활과 사목 활동에 보탬이 될 뿐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위한 자선금으로
쓰여지기 때문이다.

- 사제는 교우들이 자원해서 바치는 미사예물의 일부를 자기 몫으로 가질 수 있으며
(1코린 9,13/루카10,7),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로서 예물봉헌자가 원하는
하느님의 은총을 더욱 힘차게 간청할 수 있다. ... 미사 예물은 교우와 그리스도, 교우와
사제 그리고 나아가서 사제와 이웃과의 긴밀한 일치와 나눔의 표시가 된다. 그러므로
개별적인 지향과 함께 외적 봉헌의 표시로서 미사 예물을 바치는 우리는, 그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면서 그것을 통해 성찬의 나눔을 더 한층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13. ‘거룩하시도다!’를 세 번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미사 중 감사송이 끝나면 하늘의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하나가 되어 ‘거룩하시도다!’를
세 번 반복하여 노래하거니 외친다. 라틴어 원문의 첫 글자를 따서 ‘상투스(Sanctus)’
라고 불리게 된 인 노래는 공동체가 감사의 마음으로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리는
환호성이다. 세 번을 반복하는 것은 최상급의 의미를 나타냄과 동시에 거룩함의 강도를
점점 높여 가는 표현법이다. 즉 하느님의 더없는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거룩
하심은 하느님의 대표적인 본질이다. 그분은 온전히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분께 속한 백성,
땅, 성전 등 모든 것이 거룩하거나 거룩해야 한다는 것이 성서의 주된 가르침이다.
지상의 전례 공동체인 우리는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하느님이 보여 주신 구원의
업적에 감사드리며 그분의 더없는 거룩하심을 찬양해야 한다. 다함께 외쳐보자.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14. 미사 때 성체를 높이 올려 보여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성체 거양’은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고 나서 성체를 들어 올려 교우들에게
보이는 예식을 말한다. ‘성체 거양’ 때의 올바른 자세는 오직 성체를 바라보면서 마음
속으로 주님의 현존을 경배하는 것이다. 이 예식은 처음부터 있었던 예식이 아니라
중세 때 신자들의 열의를 채워 주려는 뜻에서 도입되었기에 미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미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 때
빵과 포도주에 대해서 하셨던 말씀, 즉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 ”라는
‘성찬 제정 축성문’을 기도하는 때라 할 수 있다.


15. 영성체 한 시간 전부터는 물도 못 마시나요?

- ‘공복재(空腹齋))’란 ‘공심재(公心齋)’라고도 하는데,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성체를
영하기 위해 성체를 모시기 일정 시간 전부터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을 말한다. 본격적인
공복재 규정은 중세 후기에 나타나며, 1917년 <교회법전>에 이것을 제도화하여
영성체 할 사람은 전날 자정부터 일체 음식이나 음료를 먹거나 마시지 못하게 하였다.
비오 12세가 1953년과 1959년에 이 제도를 점차 완화하였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1964년 바오로 6세 교황에 와서는 공복재 규정이 사제와 신자 모두 영성체 전
한 시간으로 줄어들었다. (순수한 물은 언제나 마실 수 있다) ... 공복재는 하루냐,
세 시간이냐, 한 시간이냐 하는 시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내
안에 모시기 위해 합당한 준비를 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공복재를 지키는 정신보다 시간이라는 외적 규정에만 너무 얽매인다면 공복재를 지키는
의미가 퇴색된다.


16. 하루에 몇 번이고 성체를 영하면 그만큼 복을 더 받나요?

- 성체를 영하는 자세는 자유이지만 우리 한국교회는 1969년에 주교회의에서 서서
손으로 영할 것을 규정하였다. 모든 전례 행위에 있어 교회가 공적으로 규정한 방법을
따르는 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의 자세이다. 영성체하는 횟수는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매번 성체를 영한다고 잘못된 것일 리야 없겠지만, <교회법전> 917조에서는 “성체를
이미 영한 사람이라도 같은 날 자기가 참여하는 성찬 거행 중에서만 다시 성체를 영할
수 있다.” 라고 언급하면서 하루에 두 번까지 영성체 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성체를 많이 영할수록 그만큼 더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복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교우들을 올바른 신앙생활로 이끌어 주기 위한 방법에서 나온 규정
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전례 행위에 있어 교우들이 취해야 할 자세는 교회가
정한 규범을 따르는 것이 정상적이며 바람직하다. 또한 성체를 영할 때는, 먼저 성체
앞에서 깊숙이 절하고, 왼손을 오른손 위에 포갠 채 성체를 받은 다음 옆으로 물러서서
오른손으로 영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17. 성혈은 왜 신부님만 영하시나요?

- ‘양형 영성체’란 성체와 성혈을 함께 영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최후 만찬 때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내주시면서 당신 몸과 피니 먹고 마시라고 하셨다. 초대교회
에서는 최후 만찬의 의미를 되새기며 처음부터 미사 때에 양형 영성체를 하였다. 그러나
12세기부터 교우들이 성혈을 흘릴 위험성이 있다는 사목상의 문제로 성혈을 마시는
것은 사라지게 되고 성체만 영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주님께서 성체 안에도
온전히 현존하신다는 신학에 근거하고 있다.

-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양형 영성체의 규정을 개방하여 주교의 판단에 따라 서품
미사 등에서 양형 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70년 ‘미사 경본 지침’에서는 이를
더욱 확대시켜 양형 영성체가 허용되는 여러 경우를 언급하고 있다. 즉 세례, 견진,
혼인, 병자, 서품, 수도자 서원, 독서직과 시종직, 선교사 파견 등의 예식에서 양형
영성체를 허용하고 있다. 이 밖에도 공동집전 미사, 피정 미사, 은경축이나 금경축 미사,
새 사제의 첫미사 등에서도 양형 영성체가 허용되고 있다. 이처럼 교회가 양형 영성체를
완전히 허용하지 않고 특별한 경우에만 허락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성혈을 흘릴 위험성이
크며,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등 사목상의 어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가
아니하면 교회는 오히려 양형 영성체를 권장한다.


18. 봉성체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일반적으로 매달 첫 금요일에 사제는 성체를 모시고 본당 구역 내의 병자들을 방문
하여 그들에게 성체를 영해 주는 예식을 거행한다. ‘봉성체(奉聖體)’란 공동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교우들, 특히 병자들에게 성체를 모셔 가 영해 주는 것을 말한다.
봉성체의 목적은 주님의 이름으로 병자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형제애로 돌보아
줌으로써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심과 사랑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 봉성체 준비는 병자의 방을 깨끗이 정리하고, 작은 상을 마련하여 깨끗한 보를 씌운
다음 그 위에 십자고상, 초와 촛대 등을 놓으면 된다. 그리고 봉성체 대상자가 성체를
잘 넘길 수 있도록 물과 숟가락도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봉성체
대상자의 마음의 준비이다. 먼저 깨끗이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성체를
모시기에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한다. 또한 죄가 있다면 죄를 성찰하고 통회하는 준비가
있어야 한다. 공복재는 환자에게 있어서는 외가 인정된다.


19. 전례주년이란 무엇인가요?

- 교회 고유의 주기를 1년 단위로 표시 한 것을 ‘전례주년’이라 하며, 교회는 1년
과정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 실현된 하느님의 위대한 구원 업적을 기린다. 이 전례
주년을 시기, 달, 날짜순으로 종합하여 적어 놓은 것이 ‘전례력’이다. 전례주년의
목적은 하느님 구원 역사를 재현하여 현재에 살며, 미래를 준비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례주년의 구조 안에서 한 해의 큰 축을 이루는 것은 파스카(부활) 축일과 성탄
축일이기에, 이 두 축일을 중심으로 전례주년이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전례주년은 대림
시기, 성탄시기, 사순시기, 부활시기, 연중시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안에 성인들의
축일이 들어 있다. 이처럼 전례주년은 전례 고유시기에 따라 거행해 나가는 축일과
성인들의 축일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20. 축일에도 등급이 있다면서요?

- 전례력에 나타난 축일의 형태를 보면 주님의 구원 역사에 관한 축일, 성인 성녀 축일,
이밖에 주님의 구원 역사와는 상관이 없지만 어떤 특별한 면을 강조하여 만든 이념 축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등) 등이 있다. 이 이념 축일은 ‘교의
(敎義)’이라고도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는 등급 분류를 단순화시켜 ‘대축일’,
‘축일’, ‘기념’으로만 분류하고 있다. ‘대축일’은 가장 중심이 되는 축일로 예수 성탄,
주님 부활, 성령 강림 대축일 등이 있다. 대축일 등급의 종류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주님의 대축일(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성삼일 등), 2. 성모께 대한
대축일(천주의 성모 마리아 등), 3. 성인 대축일(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등),
4. 지역 대축일(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등), 5. 수도회 대축일(수도회 특정성인
대축일)이 있다. ‘축일’ 은 주님의 축일로는 보편 전례력의 주님 축일 등이며, 성모께
대한 축일로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일 등이다. 그리고 사도와 복음사가 축일 등
성인들의 축일, 지역 축일, 수도회 고유 축일이 있다. ‘기념’은 성인 성녀들을 기념하는
날로 탄생일, 순교일로 이루어진다.


21. 주일을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 주일(主日)은 곧 ‘주님의 날’ 이다. 그 기원으로 보나, 교회의 전통으로 보나, 신학적
의미로 보나 주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건들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데 적지 않은 방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파스카 신비의 거행으로서의 주일의 의미를 명백히 부각
시켰다. “이 날에 신자들은 함께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미사성제에 참여함으로써,
주 예수의 수난과 부활과 영광을 기념하고, 하느님께 감사하여야 한다”

- 초대교회 신자들은 그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과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자발적으로
‘주님의 날’을 기념하면서 주님의 현존을 강하게 체험하였다. 우리도 주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바로 알아 주일 미사 전례에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또한
미사에서의 봉헌도 단지 물질적인 봉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봉헌도 함께 이루어
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주일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즐거운 휴식이라는 의식이
고취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주일 휴식은 단순한 예배 차원을 넘어서서 복음을 묵상
하고 영성 생활의 진보와 말씀의 선포, 그리고 애덕의 실천과도 병행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22. 대림시기엔 무엇을 기다리지요?

- ‘대림(advantus)’이라는 말은 원래 이교 세계에서 비롯되었다. 즉 신이 자기 신도
들을 만나러 자기 신전에 일 년이 한 번 찾아오는 것을 뜻했다. 초세기 그리스도교의
저서들, 특히 불가타(Vulgata) 성서는 이러한 예배전통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사람들 사이에 오심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교적인 용어였던 ‘대림’이라는 말을
그리스도교적 의미로 사용하였다. 즉, 메시아 시대를 연 그리스도의 강생과 그리스도
께서 세상 끝날에 구원 사업을 완성하러 영광스럽게 오실 것임(재림)을 이 말로써
표현했다. 대림시기는 4주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례의 성격에 따라 다시 두 시기로
나누어진다. 첫 시기는 대림 첫 주일부터 12월 16일까지로, 종말에 대한 기다림을
뚜렷이 드러내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기다리도록 교우들의 마음을 준비
시킨다. 두 번째 시기는 12월 17일부터 24일까지로, 교우들이 더욱더 직접적으로
구세주 탄생을 준비하도록 해준다.

- 대림시기 전례는 복음 안에서 그 의미가 잘 드러나는데, 제1주일은 주님을 기다리는
자세에 관한 내용으로서 예수님께서 “깨어 있어라” 하고 말씀하신다. 제2, 제3주일의
복음은 요한 세례자에 대한 내용이다. 제4주일은 요셉에게 한 예고(가해), 마리아에게
한 예고(나해), 마리아 엘리사벳 방문(다해)에 관한 복음이다. 또한 교회의 아주
오래된 전통에 따라 이 시기에는 이사야 예언서를 주로 읽는데, 이사야 예언서에는
어렵고도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던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을 위로하였던 희망의
말씀이 나온다.


23. ‘성탄 대축일’과 ‘공현대축일’은 어떻게 다른가?

- 가톨릭교회의 전례주기에서 양대 축을 이루는 주요한 축일은 ‘예수 부활 대축일’과
‘예수 성탄 대축일’이다. 교회는 이 두 대축일을 중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자 참 신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신 주님의 탄생일을 성대하게 경축하고자 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탄생일을 정확히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뜻 깊은
다른 어느 날을 선정하는 것이 필연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선정된 날이 바로 새로운
해가 다시 소생하는 날로서 태양신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이었다. 이 날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정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은 곳으로 떠오르는 참 빛이요
태양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 ‘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교회에서 만들어진 축일로 그 유래는 ‘예수 성탄 대축일’과
비슷하다. 동방, 특히 이집트에서는 태양의 탄일 축제를 1월 6일에 지내는 관습이 있기
때문에 서방교회의 성탄 축일과 같은 의미로 그 날로 정해 지냈던 것이다. 이 두 대축일은
둘 다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를 고유한 주제로 삼고 있기에 같은 의미의 축일이라 할 수
있다. 구태여 차이점을 둔다면 ‘예수 성탄 대축일’은 가정 축제와 같이 하느님의 아들이
보잘것없는 인간이 되셨다는 강생의 신비에 더 치중하고, ‘주님 공현 대축일’은 세계적
축일로서 이 아기의 신적 차원으로 눈을 돌려 주님이 세상에 밝게 나타나셨음에 더 치중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4. ‘예수 성탄 대축일’에는 왜 서로 다른 세 대의 미사가 있는가?

- <미사 경본>을 보면 예수 성탄 대축일 당일에는 ‘밤미사’, ‘새벽미사’, ‘낮미사’의
세 대 미사가 있으며, 각 미사마다 고유 전례문이 있다. 이 세 대의 미사 외에 12월
24일 저녁에는 ‘전야 미사’를 드리도록 되어 있다. 이처럼 다른 축일과는 달리 성탄
당일 세 대의 미사가 있는 것은 교황청 전례에 기원을 둔 것으로서 로마의 여러 교회
에서 행해지던 예배와 관련이 있다. 예수 성탄 대축일 밤에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구유 경당에서, 새벽에는 ‘성녀 아나스타시아 성당’에서, 낮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
에서 전례를 거행했던 것이다. 교황청의 전례서들이 이탈리아와 알프스 이북으로 퍼져
나가고, ‘카를’ 대제가 이 전례서들을 자기 왕국에서 사용함에 따라 세 대의 성탄
미사는 전 서방교회에 받아들여졌다. 이런 전통에 따라 오늘날에도 온 교회는 예수
성탄 대축일에 세 대의 미사를 드리고 있다.


25. 사순시기를 잘 지내는 비결은요?

- 사순시기는 40일의 기간으로 구성되는데 이 ‘40’이란 숫자는 성서의 상징적 숫자에
비추어 유래된 것(모세의 십계, 엘리야의 호렙산, 예수님의 공생활전 단식, 예수님께서
승천전 머무심)으로서, 구원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40일 동안
삶을 변화시키고, 하느님과 만나기 위해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하며, 장차 이루어질
중대한 사건을 위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사순시기는 성서에 나타난 상징적
의미처럼 참회와 속죄로 은총에 감싸여,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의 파스카 축제와
하느님과의 만남을 벅찬 희망 속에서 준비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 교회는 사순시기를 ‘재의 수요일’부터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전까지로 정하였다.
그리고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인 제6주일부터 한 주간을 성주간으로 지내는데, 이를
지내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순간부터의 수난을 기념
하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성주간이 끝나는 주일을 ‘예수 부활 대축일’로 기념한다.
특히 사순시기 주일의 미사 독서는 다음의 세 가지 형태, 즉 세례 중심의 사순시기
(가해), 그리스도론 중심의 사순시기(나해), 참회 성격의 사순시기(다해)로 배정되어
있다. 우리 주님이시요, 구세주이신 분이 우리를 정화시키고 성화시키기 위해 부르시는
시기가 바로 사순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순시기 동안 무엇보다도 하느님
말씀에 더 자주 귀 기울이고, 더 집중적으로 충실한 기도와 단식, 자선 행위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26. 왜 사순시기를 재의 수요일로 시작하나요?

-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일을 준비하는 사순시기는
‘40일’의 기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6세기 초에 이르러 사람들은 실제적으로 40일 간
온전히 재를 지키기 원하여 이미 지켜오던 36일에다 4일(수목금토)을 첨가하였다.
그러다보니, 사순시기의 시작이 주일에서 수요일로 바뀌어 재의 수요일이 사순시기의
시작이 된 것이다. 참회와 슬픔의 표시로서 머리에 재를 얹는 행위는 구약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며, 초세기의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관행을 자주 개인적으로 하였다.
10~11세기에 이 관행이 이탈리아에 들어오면서 1091년 베네벤토 교회 회의에서는
“재의 수요일에 모든 성직자와 평신도, 남자와 여자 모두 재를 받을 것이다”라고 선언
하였다. 재를 얹는 예식은 그 도입시기부터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임을 생각하십시오”(창세 3,19)라는 양식문과 함께 행해졌지만, 지금은 이 말
대신에“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마르 1,15)라는 주님의 말씀도 사용하고 있다.


27. 수난 감실은 왜 마련하나요?

-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에서 ‘영성체 후 기도’가 끝나면 사제는 미사의 마침
예식을 생략한 채 성체를 모시고 행렬하여 다른 장소에 성체를 모시는 예식을 한다.
성체를 별도의 장소에 모시게 되면 그곳에서 성체조배를 하게 되는데, 이때 성체를
보관하는 장소를 ‘수난 감실’이라 부른다. 교회는 이미 초세기부터,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 후에 겟세마니에 가셔서 번민하시고 체포되시고 돌아가시기까지의 행적을 따라
여러 형태의 신심 행사를 가져 왔다. 신심행위가 발전되면서 무덤처럼 만든 곳에
성체를 모시게 되었으나 이는 주님의 묻히심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사가
거행되지 않는 성금요일 영성체 예식 때 분배될 성체의 보관을 위해서 마련된 것이기
때문에 이전의 ‘무덤 제대’라는 한정된 표현 대신 ‘수남 감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수난 감실 앞에서 행하는 밤중 성체조배는 성체성사 안에 나타나는 주님의
사랑과 수난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는 데 목적이 있다.


28. 성금요일에만 미사가 봉헌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일 년 중 성금요일에만 미사가 봉헌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미사의 본주체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수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셔서 무덤에 계신다는 뜻에서이다. 성금요일은
주님께서 몸소 십자가 위에서 제물이 되신 날로서, 미사는 드리지 않고 ‘말씀 전례’,
‘십자가 경배’, ‘영성체’ 예식을 거행한다. 그리고 독서, 복음 봉독 후 간단한 강론을
한 다음 사제는 ‘보편지향기도’를 바치는데, 이 날의 기도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다른 날과 달리 많은 기도(10가지)를 드림으로써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폭넓게
간구한다.

- 이어서 이 날의 핵심 예식이라 할 수 있는 ‘십자가 경배’를 한다. 이때 교우들은 줄을
지어 나아가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거나, 입을 맞추거나, 절을 하는 동작으로 십자가에
경배한다. 이처럼 수난 당일에 십자가 경배를 함으로써 십자가에 담긴 주님의 수난과
죽음, 사랑의 의미에 대해 감사하고 우리의 잘못을 뉘우쳐 새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성체’ 예식이 이어진다. 교우들이 이 날 영성체를 하게 된
이유는 교황 비오 12세의 회칙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교우들이 이 날 모든 이를 위하여
자신이 바치신 주님의 몸을 모심으로써 그 구원 효력을 더욱 풍부히 누리게 한다.” 라는
의미에서다.


29. 부활초에 왜 여러 가지 표상을 새기나요?

- 부활 성야의 전례는 크게 ‘빛의 예식’, ‘말씀 전례’, ‘세례 예식(세례 서약 갱신식)’,
‘성찬 전례’로 이루어져 있다. 이 날 교회는 ‘빛의 예식’ 부분에서 불 축복과 함께 부활초
점화를 통해 부활초에 담긴 의미를 보여 준다. 먼저 사제는 준비해 놓은 불에 축복을
하는데, 이때 활활 타오르는 불은 구약에서와 같이 하느님의 출현을 뜻하며, 영원하신
성삼위의 지극히 거룩하심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 다음 부활초를 준비하면서 사제는
부활초에 여러 가지 표상을 새긴다. 먼저 위에서 아래로,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십자가를
긋고, 그 십자가 위와 아래 부분에 그리스어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인 알파(A)와
오메가(Ω)를 쓴다. 이는 ‘영원’을 뜻한다.

- 이 영원을 표시하는 두 글자 사이에 그해(年)의 연수를 표시하는데, 이 뜻은 하느님의
영원한 섭리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그 해가 세대의 주인공인 주님께 속해 있음을 말해
준다. 마지막으로 다섯 개의 향 덩어리를 부활초에 새겨진 십자가에 꽂는데, 이는 예수님
께서 십자가에서 입으신 다섯 상처를 드러내 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느님이시고
참 인간이심이 십자가와 다섯 상처로써 상징되는 것이다. 이 표상들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고 십자가상에서 죽으셨으나,
이 십자가의 다섯 상처에는 우주와 시간의 구원이 달려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부활초에 새겨지는 표상으로 그리스도의 초상은 완성되고, 사제는 하느님 출현의 표지인
활활 타는 새 불꽃에서 불을 붙여 부활초에 불을 댕긴다. 이는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의미한다.


30. 연중시기는 어떤 시기인가요?

- 연중시기는 ‘주님 세례 축일’후 월요일부터 ‘재의 수요일’ 전까지의 기간과 ‘성령
강림 대축일’후 월요일부터 대림시기 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연중시기는 일반적인
시기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특별한 현의에 대한 축제를 지내지 않는다. 따라서 연중
시기의 복음 내용을 보면, 예수님의 세례로부터 시작해서 인간 구원을 위한 그분의
전교 활동과 복음 선포, 기적 행위, 진리에 대한 가르침, 신앙의 성장을 위한 교훈,
교회의 성장하는 모습 등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므로 연중시기는 이 모든 복음의
종합이며, 하느님 나라로 향한 순례의 종착점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왕 대축일’로써
끝을 맺는다. 연중시기의 독서들은 사목적인 이유에서 성서의 주요한 부분들을 연속적
으로 봉독하게 되어 있다. 연중시기의 주일 제1독서(구약)는 주제 면에서 복음과 연결
되어 있으며, 가능한 한 짧은 내용의 독서를 선택하여 교우들이 구약성서의 주요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2독서(신약)에서는, 주로 바오로와 야고버의 서간
들이 3년에 걸쳐 연속적으로 봉독된다.


31.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과 ‘예수 성심 대축일’에 대해서 알려 주세요.

- 주님의 구원 역사와는 별로 상관이 없지만 교회가 주님에 대한 어떤 특별한 면을
부각시켜 만든 이념, 신심 축일이 있다. 우리가 6월 중에 지내는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과 ‘예수 성심 대축일’이 바로 그러한 축일이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1247년 프랑스 리에즈의 ‘율리아나’라는 한 수녀의 열성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1208년, 주님께서 환시 중에 성체성사를 공경하는 연중 축일이 빠져 있음을
자신에게 알려 주셨다고 말하였다.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성체성사 기적에 감명 받아
교서를 반포하는 가운데 성체성사를 기념하는 새 대축일을 제정하게 되었다. 이후
교황 클레멘스 5세와 교황 요한 22세에 의해서 이 교서가 새로 확인된 다음에야
이 대축일이 전 교회에 받아들여졌다. 이에 따라 성체 행렬(성체 거동)이 13세게
말부터 행해지기 시작하여 퍼져 나갔다.

- ‘예수 성심 대축일’은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생겨났다. 1672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사제 요한 에우데스가 맨 처음 예수 성심 대축일 미사를 드렸다. 그 후 1675년 성모
방문회의 수녀인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가 주님의 계시를 받음으로써 이 신심을
널리 퍼지게 하는 데 공헌하였다. 교황 비오 9세는 이 축일을 라틴교회에 퍼뜨렸으며,
교황 비오 11세는 1929년 새 미사 경문과 시간 전례(성무일도) 기도문을 만들었다.
이 축일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풍요함에 대해 감사드리는 것과 상처
입은 성심을 뉘우치는 마음으로 묵상하는 것이다.


32. 성모 마리아의 축일은 왜 여러 날인가요?

-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의 전례헌장 103항에서는 마리아 공경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관심을 더욱 뚜렷이 표현하고
하느님 백성의 기도를 확실히 이끌어 주기 위해서, 전례력의 축일들 그리고 마리아
신심미사와 시간 전례 등을 개정하였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새 전례력에서는
성모님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다양한 공경 방식을 존중하기 위해서 마리아 축일들을
거의 그대로 두었다. 새 전례력에 나타난 마리아 축일 중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
(1월 1일), ‘성모 승천’(8월 1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12월
8일)는‘대축일’이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5월 3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성탄’(9월 8일)은 ‘축일’이다. 그리고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10월 7일),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10월 7일)는 ‘의무 기념’
이며,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2월 11일),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7월 16일), ‘성모 대성전 봉헌’(8월 5일)은 ‘선택 기념’이다. 그중 성모성월인 5월에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5월 31일)이 있다.


33. 성모 마리아의 축일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축일은 무엇인가요?

- 성모 승천 대축일은 1세기 이후에 ‘마리아의 잠드심’, ‘마리아의 안식’ 축일이라는
이름 아래 동방 교회에 퍼져 동정 마리아께서 이 세상에서 떠나심, 하늘에 올려지심을
기념하는 날이 되었다. 서방에서는 세르지오 교황에 의해 7세기 말에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770년의 ‘그레고리오 성사집’ 안에서 ‘승천’이라는 용어가 나타났다. 하드리아노
교황이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성모 승천 신비를 드러내는 제대 장식을 봉헌한 것으로
보아 이 용어가 당시 이미 로마에서 널리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1950년, 교황
비오 12세의 성모 승천에 대한 교의 선포는 이 축일에 대한 모든 전례를 재구성하게
했다. 그리하여 성모 승천 대축일은 마리아를 공경하여 지내는 축일들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것이 되었으며, 이 칭호의 마리아를 수호성인으로 삼는 교회들이 많이 세워
졌고, 수많은 본당과 수도회는 영광스럽게 하늘에 들여 올려진 마리아의 수호에 스스로를
의탁하였다.


34. 성인 축일이 바뀌거나 없어지기도 하나요?

- 성인들은 그리스도교 생활의 모범을 보인 이들로서, 자신의 삶 속에 실현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선포하고 전한 진정한 증거자들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선포하고 새롭게 한다는 의미로 1년의 기간 안에 순교자들과 여러 성인의 축일을 기념
하고 있다. 전례력에서 성인들의 축일은 항상 그리스도 구원 사업의 완성인 파스카 신비
안에서 이루어지고, 그것을 조명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시대를 거쳐 오면서
성인들의 축일이 일정한 원칙 없이 그 시대의 신심이나 교황의 개인적 신심에 따라 정해져
왔기 때문에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는 경향이 있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우려하면서, 그리스도의 고유 축일들의 의미에 더 큰 가치를 두고자 하였다.
그래서 생존 인물이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성인들(크리스토폴, 바르바라,
우르술라 등)의 축일은 삭제 하는 등 보편 전례력의 축일을 수정하였다.

- 새 전례력 안에는 각 대륙의 증거자들이 들어가게 되었고, 네로 박해 시대의 순교자들로
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대의 성인이 망라되었다. 성인 축일에 있어 특징적 요소
중의 하나는 축일이 그 성인의 ‘천상 탄일’, 즉 성인이 돌아가신 날에 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날이 사순시기 등 특별한 전례시기 안에 있을 경우에는 다른 의미 있는 날, 즉
주교인 경우 주교서품일이나 유해를 옮긴 날, 시성일을 선택하여 기념하도록 하였다.


35. 감실의 위치는 정해져 있나요?

- 미사 중에 축성된 성체를 보존하는 관습은 임종의 위험에 처한 교우가 하느님 곁으로
가는 도중의 양식, 즉 노자성체를 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준비로 생겨났다. 또 보존된
빵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 자체이므로 자연히 그 앞에서 기도를 바치게 되고, 미사를
지내지 않는 평일에도 성체를 그날의 양식으로 영하는 관습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
빵의 형상으로 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은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기념하는 결과로 생기는
것이므로,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 감실이 직접 필요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전례가 거행되는
장소에서 감실이 처음부터 제대 위에 놓여 있는 바람직하지 않다. 전례를 위한 장소에
감실을 꼭 고려할 필요는 없으나, 성체께 대한 개인적 경배나 묵상의 공간을 갖기 위해서는
별도의 경당을 마련하고 그 중심에 감실을 두는 것이 좋다. 별도의 경당을 설치할 공간이
없는 경우에는 성당 제대 중앙 바로 뒤편에 감실을 안치하는 재래의 관습을 피해야 하고,
교우들이 잘 바라볼 수 있는 성당 안의 한 자리에 두도록 해야 한다.


36. 십자가와 초는 꼭 제대 위에 놓아야 하나요?

- 제대에 놓이는 십자가는, 성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것임을 나타내는 표지이다. 전례가 이뤄지는 장소 중심에 모시는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의 한가운데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와 계심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수난을 강조하는 십자가보다는 그리스도의 상흔을 통해 부활을 나타내는
초대 파스카의 십자가가 바람직하다. 또한 십자가는 본래 땅 위에 세워 진 것이기에
반드시 제대 위해 놓을 필요는 없고, 말씀과 성찬 전례 장소 중간 바닥에 세우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 미사 때 제대에 놓이는 초는 제대의 장식에 속하지만, 그리스도의 현존을 강조하여
흠숭과 축제의 기쁨을 드러내는 것이다. 제대 위의 초는 전례 집전을 경건하게 하고
축제의 성대함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므로 초의 수에 따라 그 날 전례의 성격과
중대성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연중 평일이나 ‘기념’ 등급의 성인 축일에는 두 개의
초를 올려놓고, 연중 주일이나 사도, 복음사가의 축일 같은 ‘축일’ 등급의 날에는
네 개의 초를 올려놓으며, 주요한 ‘대축일’의 경우에는 여섯 개의 초를 올려놓는다.
그리고 주교가 집전하는 미사에는 재관인 주교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일곱 개의 초를
올려놓는다.


37. 주교의 반지, 모자, 지팡이는 각각 무엇을 상징하나요?

- 주교의 반지는 주교 품위의 상징으로서, 또 신앙의 모범을 보여 주는 상징으로서
9세기에 처음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주교의 품위와 관할권의 표지로서 주교 서품식 때
받으며, 주교와 자기 지역교회와의 영성적인 일치와 계약을 의미한다. 그리고 장엄
예식 때 주교는 신부들과 달리 머리에 주교관(모자)을 쓰고 지팡이를 사용하는데,
‘미트라’라는 주교관은 고대 페르시아의 빛과 진리의 신인 ‘미트라스’의 모자에서 기원
했다. 미트라는 특별한 품위의 상징으로 주교가 전례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썼던
두건이었다. 주교가 예식 때 사용하는 지팡이를 목장(사목적 지팡이)이라 하는데,
이 목장도 주교의 품위와 관할권을 상징하고 있다. 교황 첼레스티노 1세는 425년
이단의 극단적인 주장에 대해 올바른 가르침을 제시하기 위하여 주교들이 특별한
지팡이를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이 목장의 형태는 목자들이 사용했던 지팡이의 형태에
따라 손잡이가 구부러져 있으며, 은이나 금으로 도금되어 있다.


38. 십자성호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나요?

- 십자가는 원래 고대 중동 지방의 사형 도구였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희생되신
이후 그리스도교 신앙의 상징이 되었다. 따라서 교회는 이미 초세기부터 여러 형태의
십자 표시를 전례나 사적인 기도 등에서 애용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마와
가슴 및 어깨에 긋는 전형적인 십자성호가 전례나 기도 등에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3세기경부터이다. 특히 이 동작은 중세 초기에 성삼 기도문과 겹쳐지면서 더욱 일반화
되었다. 이마와 가슴 및 양 어깨에 십자성호를 긋는 뜻은 이들 부위가 인간의 몸과
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마나 입술 및 가슴에 십자 표시를 하는 것을 ‘작은 십자
성호’라고 하는데, 전례 안에 들어 온 것은 12세기 이후부터이다. 이는 복음 말씀을
머리로 깨닫고 입으로 선포하며 마음으로 받아들여 실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사람이나 사물에 십자표를 그리는 행위는 축성, 축복, 사죄, 구마 등을 위한 것이다.
현행 예식에서는 미사 때의 축성, 참회 예식의 사죄, 각종 예식 끝의 파견 축복 등에서
하고 있다.


39. 전설에 의하면 성모님도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셨다면서요?

- 교우들의 신심 행사 중 특별히 사순시기 동안에 가장 많이 행해지는 것이 주님이
걸어가신 길, 즉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기도이다. ‘고통의 길’이라고도
하는 십자가의 길은 초대 교회 때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던 순례자들이 실제로 빌라도
관저에서 갈바리아 산까지 걸으면서 기도하였던 데서 유래했다. 전설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께서도 예수님 승천 후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함께 자주 이 길을 걸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던 사람들도 자주 이 길을 찾아 그분을 생각하고, 흠모하며,
눈물로써 기도하였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만들어 기도하기 시작한 것은
14-15세기경부터이다. 1342년, 프란치스코회가 성지에 대한 관리를 맡으면서 십자가의
길 기도는 하나의 신심 행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예루살렘 순례가 지리적, 정치
적인 장애를 받게 되자 유럽에서는 성지 모형의 십자가의 길을 만들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신심은 먼저 세계 곳곳에 있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그 수도원의 성당들에서 일반화
되었고, 근처 성당으로 확산되었다.

- 이때에는 십자가의 길 각 ‘처’의 숫자가 고정되지 않았으나, 1637년에 이르러서
교황청에 의해 오늘날처럼 고정되기 시작했다. 1731년 교황 클레멘스 12세는 모든
교회에 ‘십자가의 길’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하였고, 처의 숫자도 14처로 고정시켰다.
일반적으로 십자가의 길은 14처로 구성되어 있지만, 어느 지역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제15처를 추가하기도 한다. 이 십자가의 신심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
우리의 구원과 생명과 부활이 있음을 깨닫게 하며, 그로써 구원과 자유를 얻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 뜻을 알면 전례가 새롭습니다 ] 독서 메모 - end





금주의 독서 메모 079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2.06.12.


[ 책 이름 : 지식을 넘어 지혜를 향해 ]

- 지은이 : 최창섭
- 지은이 프로필 : 서강대 영문학과 학사(1964),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교육분야 박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및 언론대학원장, 서강대 대학원장,
서강대 교학부총장, 사단법인 맑은물되찾기운동연합회 총재 등 . 저서로는 방송비평론,
한국방송론, 방송원론, 방송총론, 방송철학 등 다수
- 펴낸데 : Jinhan M&B, 출판일 : 2007년 8월 30일, p374
- 내용 : 최창섭 교수의 삶과 세상 이야기


[ 표지글 ]

- 이런 저런 저술활동을 곁들이며 열심히 뛰던 교수직에서 정년(停年)이 아닌 법으로
정한 정년(定年)을 맞이하여 이제까지 34년간 지켜오던 강단을 막상 떠나면서 그동안
여기저기 투고했거나 새로 쓴 에세이 형태의 자유분망한 글들을 디지털 자료로
정리하면서 의미 있다고 느껴지는 일부의 글을 묶어 부담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에세이집으로 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에세이 서문 중에서 -


[ 에세이 서문 ]

- 세계미래회의 회장(Timothy Mack)이 ‘시간 빈곤’ 시대를 예고했듯이 ‘바쁘다’를
외치며 시간적 여유를 박탈당한 현대인들에게는 무엇보다 마음의 양식과 여유가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마치 선현들이 “자연으로 돌아가라”라고 외쳤듯이 마음의
고향인 자연에서 자연과 대화하며 빈곤해진 삶의 영양분을 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에 비유했듯이 이들 에세이 글을 부담없는 사색거리로
삼으며 윤기 있는 갈대로 다시 태어나는 생기 있는 독자들의 미소를 보고 싶은 것이다.


[ Ⅰ. 삶의 멋과 맛 ]

< 1. 삶의 멋 >

- 분명 살아가는 데도 ‘멋’이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중에도 멋을 추구하려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속된 표현으로
‘멋쟁이’를 원하고 또 스스로도 ‘멋쟁이’가 되려고 노력하는 자타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누구나 다 갖추고 있는 육체의 세계를 토대로 어떠한 삶을 영위
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의 값어치가 다르게 평가될 것이며, 이는 곧 정감적인 멋으로
풍기게 마련이다. 단순한 육체의 세련미에서 풍기는 외형적인 멋의 세계를 초월한,
위대하고 멋있는 삶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 것일까. 우선 무엇보다 평범하고 자연적인
삶의 모습에서 멋을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자연스러운 것은 곧 자연과 같다는 말로,
결국 멋의 근원을 대자연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는 의미다. 자연스러움은 곧 멋을 의미
하며, 자연스러움에 대칭되는 작위성 내지 인위성은 추한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즉,
인생의 멋은 바로 자연스러운 자연의 모습을 닮아가려는 모습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 여든이 다 된 노학자 한 분이 자신의 인생을 요약하여 핵심적인 두 가지 측면으로
압축하여 기술한 내용이 있다. 첫째로 팔십 평생을 통해서 그는 카메라를 통해 인간을
가시적인 세계에 담으면서 사진작가로 지냈으며, 또 한편으로는 현미경을 통해 미생물의
세계를 관찰하는 미생물학자로서 지내 왔다고 한다. 이 두 작업에서 그가 터득한
이야기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즉 카메라를 통해 클로즈업해서 본 인간의 세계는 추한
반면에, 미생물의 세계는 클로즈업시켜 볼수록 질서와 조화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이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미미한 자연의 세계에도 질서와 아름다움이 있다는
말이다. 겉으로 보이는 세계만을 추구하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세계에서 많은
인생의 생활 철학을 터득하려는 사색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워주는 가르침이었다.

- 고전(classic)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불멸하는 메시지를 일컫는다. 다시 말해, 고전이란 어느 주어진 특정 시대나
상황, 지역을 초월하여 만인에게 감동을 주는 불변의 진리를 담은 작품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인생에도 클래식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음악에도 있고 소설과 시에도
있는데, 이들 작품의 창조자인 인간의 길에도 고전적인 길이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나름대로 느낀 감동의 세계를 가식 없이 그대로 표출하고픈
순수한 열망에 의해 인생의 길이 펼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충실한 삶을
통해서도 멋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충실성은 노력의 모습이요, 또한 최선의
모습이다. 동시에 정성의 모습이기도하다. 과일의 세계에도 갈고 닦는 한여름의
정성어린 보살핌이 있어야 과일의 맛과 때깔이 다르다. 빙산의 모습(1/6만 보임)도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 용설란의 세계도 그렇다. 한 번 꽃을 피우기
위해 평생 노력하는 모습에서 충실한 삶의 모습을 보게 된다.

-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듯이 어울리는 한 쌍의 잉꼬부부를
보면 평화와 미를 느끼게 된다. 한 사람을 통해서보다는 한 쌍을 통해서 더한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다. 또 일관성에서도 멋을 찾을 수 있다. 해 뜨는 모습은 어제도 그랬듯이
내일도 변함없을 것이라는 자연의 규칙과 이에 대한 믿음에서 멋을 느낀다. 눈물은
반성의 의미요, 땀은 노력의 모습이요, 피는 희생의 모습이기에 이들의 복합은 바로
관용과 포용의 원천으로 엄청난 삶의 멋을 창출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기보다는 이미 널리 알려진 보편적이고 단순한 듯한 사실들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과정에서 깊은 의미를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루살이는 왜 입이
없을까라는 유형의 평범한 질문도 되뇌일 줄 아는 사색의 인간도 권하고 싶다. 마치
칡뿌리를 계속 씹으면서 단물을 알게 되듯이. 우리 생활 주변에서 체험하고 느낀 것을
사색의 원천으로 승화시키는 삶의 멋을 창출하는 인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보자.

- ‘잡보잠경’의 한 구절이다. “유리하다고 교만치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치 말자.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참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하면 과감히
행동하라.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라.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 알고 터지는 분노를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 사슴처럼 두려워 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무섭고 사나워라.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의 길이니라.”


< 2. 남을 위한 삶 >

- 서강대학교를 설립한 예수회의 교육이념은 한마디로 ‘남을 위한 삶(man for others)’
으로 요약될 수 있다.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인간의 손과 입과 위에 관련된 원시적인
이야기가 있다. ... 손의 단순한 젓가락질 역할이 순차적으로 씹는 입과 소화의 일로
연결되면서 그 영양소가 결국에는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신체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독특한 역할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다. 손과 입과 위만 위해서 젓가락질해야만 한다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오히려 씹고 소화시키는 과정에 도움을 줌으로써 자신은 단순히
젓가락질만 해도 영양을 공급받게 된다는 역할 분담의 의미와 남을 위해 돕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돕는 일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 ‘그리스도의 지체’에 대한 가르침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공동체 안에서 개개인 각자의
역할과 의미를 보다 넓고 깊은 차원에서 추구하도록 일깨워 주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본다. 우리 육체의 어느 한 부분도 똑 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역할을 하는 게 없다고
본다. 다 각기 다른 위치에서 다 다른 역할을 하기에 서로 조화를 이루며 한 육체가
필요로 하는 위대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손이라도 왼 손과 오른
손이 서로 보완적인 일을 하듯이 손가락들도 다 각기 독특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
남을 위해 봉사하는 그 즐거움과 그 즐거움 속에서 연결되는 열매를 볼 줄 아는 비가시적인
세계를 꿰뚫어 보는 안목(眼目)을 겸비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손의 역할을 하는
개개인의 진솔한 봉사자와 일꾼의 모습에서 에너지로 환급되어 되돌아오는 인간 결속과
공동체 성장의 밝은 내일을 기대해 본다.


< 3. 성공의 의미 >

- 성공하여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저명인사들의 실패담을 소개한다.
나폴레옹은 수필가로 실패했으며, 세익스피어는 양모사업가로 실패했으며, 링컨은
상점 경영으로 실패했으며, 그랜트는 제혁업자로 실패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분야로 옮겨가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 노력
했으며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이다. 실패가 사람을 강하게 만들고, 작은
실패가 사람을 성공으로 이끌고 큰 실패가 사람을 위대하게 만든 실증적인 예증인다.
- 영시 두 가지를 소개한다. 첫 번째 시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지의 힘을 강조
하고 있고, 두 번째 시는 우리가 어렸을 때의 자세가 평생을 좌우한다는 의미를 강조
하고 있다.

1) The Power of the Will (의지의 힘)
- ‘졌다고 생각하면 이미 진 것이다/ 감히 하려하지 않는다면 으레 안할 것이다/
이기길 원하되 할 수 없다 생각하면 이미 이기지 못할 징조를 보이는 것이다/
질 거라 생각하면,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다/ 넓은 세상을 살다보면 성공의 이미
개인의 의지로부터 시작됨을 알게 될 것이다/ 거의 모두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통 크게 생각하면 행동도 담대해질 것이다/ 작게 생각하면 뒤처질 것이다/
할 수 있고 하겠다는 생각을 해라/ 거의 모두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남보다 앞섰다고 생각하면 이미 앞선 것이나 다름없고/ 일어서려면 크게 생각하라/
하나의 상을 수상하기에 앞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삶의 투쟁에서 강하고 빠른
자 만이 항상 이긴다는 법은 없다/ 결국 언젠가 승리하는 자는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이다’

2) Children Learn What They Live (세살 쩍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 ‘비판하며 성장하는 어린이는 저주를 배우고/ 적개심으로 자란 아이는 싸움을
배우고/ 우롱 속에 자란 아이는 수줍어하게 마련이고/ 부끄러움으로 자란 아이는
죄의식을 품게 마련이고/ 아량과 포용으로 자란 아이는 인내를 배운다/ 칭찬과 함께
자란 아이는 고마워할 줄 알고/ 안전한 보호감 속에 자란 아이는 믿음을 배운다/
긍정 속에 자란 아이는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포용과 우정으로 자란 아이는 살아
가며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길에서 만난 행복’에서의 행복에 대한 구절이다. ‘힘을 가진 한 사람이 나약한
여섯 사람보다 더 크다. 활기찬 한 사람이 무기력한 일곱 사람보다 더 크다. 꿈을
가진 한 사람이 꿈꾸지 않는 여덟 사람보다 더 크다.’ 미국의 W.에머슨은 <무엇이
성공인가>에서의 진정한 성공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서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
지는 것’

- 성공이란 외형적인 성공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무언가 발전 지향적인
목표를 세워 놓고 꾸준히 그 지향점을 향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인간 내면
적인 변화와 그에 따르는 자기만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성장이나 성공의
의미는 바로 남을 위한 나눔, 섬김, 봉사 정신과 함께 곁들여질 때 그 진가가 더욱
깊어지리라 믿는다.


< 4. 지사심언행(知思心言行)의 일치 >

- 머리로 하는 지식의 세계와 사색의 세계, 마음으로 되새기는 가슴의 세계, 말로
표현되는 언어의 세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의 세계가 모두 일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 가운데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체험의 세계는 주로 언어와 행동의
세계라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언어와 행동은 어디까지나 지. 사. 심(知思心)이라는
내면세계의 일치가 이뤄진 후에 자연발생적으로 유발되어야 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머리와 가슴이 일치되어야만 이를 바탕으로 한 참다운 말이 나오고 또 이를
실천에 옮기는 올바른 행동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 충남 해미읍 순교성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어, 그곳에서 혹독한 무고와 고문을
치르며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용감하게 순교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믿음의 경지에서
신앙을 위해 말과 함께 말을 통해 말을 지켜간 이들 순교자야말로 행동의 일치를
보여준 극치였다. 입으로만 하느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고 생각하며
마음에 두었던 바를 그대로 행동으로 연결시켜 ‘지사심언행(知思心言行)’의 일치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치를 이루었을 때 그것이 주는 믿음은 크며, 힘과
설득력을 갖게 마련이다.

- 권태감이란 마음의 불이 꺼진 상태를 말한다. 일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면 자연
권태감이 오게 마련이다. 권태감이 팽배하면 규범이 없는 상태, 죽 아노미(anomie)
현상이 뒤따른다. 거기에다 ‘그저 그렇지’ ‘아무렇게나 하지’ 등의 자조의식이 더해
지면 윤리나 도덕이 없어지고 쾌락만이 난무하게 된다. 규범이 없는 상태에서는
공허감이 생길 뿐 아니라 고립도 커져 간다. 자아상실증에 걸릴 우려도 있고 심지어는
극한 선택까지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소신과 신념을 갖고 일에 임하며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를 찾을 줄 아는 인간상이 확립되어야 한다. 이는 곧 각자의 끊임없는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내면세계와 외적행동이 일치하도록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자신의 내적인 지사심(知思心)의 일치는 참다운 외적 언행(言行)으로
나타나는 삶의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5. 금테의 참 의미 >

- 금테나 모자챙에 수를 놓은 금박 또는 은박 표시의 기원을 정확히 추적하기는
어려우나 다만 해군에서 군함 갑판의 전방이나 상방에서 지휘자를 쉽게 식별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금테나 노란 줄의 참 의미는 바로 지휘자의 책임감과 사명감에
따르는 희생과 봉사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즉 금테는 하급자 위에 군림함을 암시하기
보다는 봉사하는 정신을 일깨워 주는 자극제이며 상징적 표시인 동시에 이러한 공복
(公僕)의 본분과 신분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식별시켜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주자는데 숨은 뜻이 있는 것이다. 영어로 이해는 ‘understanding’
이라고 한다. 이는 본래 under(밑에)와 standing(선다)의 복합어로서 남의 밑에 서서
봉사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위에 서기 보다는 밑에 서서 남을 위해 봉사함으로써
만이 상대방의 이해를 얻을 수 있다는 암시적이고 교훈적인 뜻을 내포하는 것이다.

- 오늘날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꾼은 바로 금테의 깊은 의미를 생각하는 마음
으로 되새기면서 스스로 남의 밑에 서서 짐과 책임을 지려는 봉사자이다. 참다운
봉사자는 피와 땀과 눈물이라는 세 가지 액체를 몸소 흘리면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일과 희생을 즐겁게 실천하는 자인 것이다. 머리에 둔 지식은 풍부하나 나눔과 사랑이
결핍되어 마음의 세계가 빈약한 사람을 상상해보라. 반면 육체적으로는 건강하나
생각이 깊지 못한 빈 머리를 생각해보라. 결국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풍부한
지식과 건전한 양식과 가치관을 겸비한 나눔의 실천자인 것이다.


< 6. 대칭의 미학 >

- 우리말에는 서로 상반되는 정반대의 의미를 음성학적으로나 발음적으로도 상당히
아름다운 느낌을 갖게 해주는 표현들이 많다. 들쑥날쑥, 밀물 썰물, 오르막 내리막,
들이쉼 내쉼, 씨줄 날줄, 헤어짐과 만남, 속과 겉, 앞과 뒤, 낮과 밤, 양지와 음지,
빛과 그림자, 막힘과 뚫림, 삶과 죽음, 전진과 후퇴, 반목과 친목, 많고 적음, 찬성과
반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남자와 여자, 다름과 닮음, 비움과 채움 등 수없는 대칭의
개념을 표현해주는 고은 말들이 존재한다.

- 보는 시점과 시각에 따라 극과 극을 달리는 듯 멀고 먼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나
실상 이들 대칭언어는 배타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상호보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채움이 있어야 비움이 있고, 비움이 있어야 곧 채움이 필요한 것이다. 들이쉼이 있으니
내쉼이 가능하듯이 ‘다름’이 있으니 서로 ‘닮음’을 찾게 되고 닮음이 있으니 서로
차별화를 통한 개성과 특성을 추구하려는 다름의 값어치가 생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은
마치 정반대의 노선으로 보이나 실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 결국 인생의 길이요
이 같은 반복을 통해 보다 나은 그리고 보다 높은 이상을 향해 전진하는 완성의 길이다.
빛이 있으니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요, 그림자가 있으니 빛의 가치가 돋보이는 것이다.
... 우리는 서로 달라야 한다. 같아서는 안 된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기에 결혼을 통해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게 된다. 단추와 구멍은 하나의 짝을 이룬다는 평범한 진리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면서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 속에서 ‘편 가르기’가 아닌 ‘다름’
속에서의 보완성을 추구하는 삶의 자세를 촉구하는 것이다.

- ‘지혜의 세계 : 지식 사회를 넘어서 ’ 지식 사회는 분명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더 나은 세계는 어느 무엇보다도 균형 잡힌 올바른 인간 성장을 기대할 수
있고 바람직한 인간의 가치들을 제대로 추구하고 참된 가치관이 존중받는 세계일 것이다.
더 나은 세계를 위한 화두(key word)는 역시 ‘지혜로운 인간’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
단순 지식이 아닌 지혜로 살아간 선현들의 생활 속에서 이뤄진 지혜의 세계를 되새겨
보자. 이솝우화에서 ‘겨울 나그네 외투 벗기기’에서의 승자는 바람이 아니라 해였다.
인류 역사상 삶에 대한 무한한 가치를 지닌 훌륭한 고전을 펴낸이들은 역시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 ‘가위-바위-보’도 일상생활 속에 보편화되어있는 지혜로운 게임의 하나
이다. ‘바위’가 ‘가위’를 이기고, ‘가위’는 ‘보’를 이긴다. 참으로 묘한 것은 세계 어디
에서나 제일 약할 것 같은 ‘보’가 제일 강한 ‘바위’를 이긴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진리를 배울 수 있다. 사랑은 부드러움이요, 먼저 다가가는
마음의 여유이다. 그리고 사랑은 이 세상 그 무엇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라는 지혜의
가르침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 ‘지혜로운 사람’은 오늘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누구나 쉽게 미래를
위해 산다고들 하지만 미래는 그저 불확실성뿐이다. 한편 과거는 내일의 교훈으로
삼을 성찰의 대상이지만 과거에 너무 집착하여 많은 것을 의존해서도 아니 된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순간순간인 현재와 오늘이라는 선물을 각자 최대한 잘 선용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의 생활가이드 지침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시간을 신은 인간에게
똑같이 허락했지만 그 가치는 저마다 다르다. 시간은 저장할 수 없고, 일단 흘러가
버리면 되돌릴 수 없고, 또 시간은 누구에게 줄 수 없고 돈을 주고 살 수도 없다. 따라서
시간을 아껴 쓸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현재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으로 그만큼
우리의 삶도 여유로워진다. 인생은 짧되 할 만한 가치와 덕을 추구하고 아름다움과 선을
바탕으로 한 지혜로운 삶의 모습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 철학자 ‘라인홀드 니버’에 따르면,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각자 자기의 짧은
생애를 통해 이루기는 어렵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또
진실하고 아름답거나 선한 일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코 짧은 역사적 맥락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아울러 덕스러운 일도 쉽게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우리는 사랑으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던져주고
있다. 한편 인간의 성장과 존재론적 이원론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인 동시에 영혼이라고
한다. 인간의 성장은 양자의 균형있는 성장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육체의 유지와
성장에는 음식이 필요하고, 머리는 지식을 필료로 하며, 정신과 마음에는 나눔과
사랑으로 충만해야 하고, 영혼의 세계는 말씀을 통해 생명을 유지한다고 한다. 육체
뿐만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 및 영혼의 세계가 균형잡힌 성장을 이룰 때만이 건전하고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성장이 가능한 것이다.


< 7. 삶의 맛 >

- <위대한 결정>의 저자 ‘엘런 액셀로드’는 결정의 순간 여지없이 위대한 결정을
내리는 리더들의 의지에는 남다른 특이함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루비콘 요소’라
부른다. 루비콘은 북 이탈리아의 소도시 라벤나 근교에 있는 작은 강이다. 가뭄이면
물이 말라버릴 정도로 폭이 좁고 바닥이 낮은 강이지만, 기원전 1세기 당시에는
루비콘을 건넌다는 사실은 로마에 반기를 든다는 것을 뜻했다. 당시 로마를 지배하고
있던 폼페이우스는 휘하 장군들이 관활 지역 밖으로 군대를 이동하면 ‘반역죄 처벌법’
으로 처단했다. 알프스 남쪽 갈리아를 통치하던 카이사르는 고뇌 끝에 6천여 군사를
이끌고 루비콘을 건넌다. 카이사르의 유명한 명언이이 때 나왔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테드 터너는 절친한 친구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평소 꿈꾸던 사업에 착수했다.
그는 중얼거렸다. ‘“지금 아니면 언제?”이고 “내가 아니면 누가?”할 것인가였다. 24시간
뉴스 전문 케이블 채널 CNN은 그렇게 탄생했다. 남아프리카 기차여행을 하던 마하트마
간디는 3등석 화물차로 자리를 옮기라는 말을 들었다. “유색인종의 자리는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1등석 티켓을 끊었다는 항변도 소용없었다. 간디는 말했다. “좋아요. 그러나
내 발로 나가지는 않겠소” 비폭력 투쟁을 하겠다는 결단은 이때 비롯된 것이다.

-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과 조건은 저마다 다르지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은 언제나
다가오게 마련이다. 조직의 리더나 국가의 지도자라면 그가 내린 결정이 전체 구성원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트루먼은 “대통령이 현명한 결정을 내리면 국가에 다행이고,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면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전혀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
보다는 낫다”했다. 이 책은 역사의 위인들이 위기 속에서 내린 결단을 통해 리더십의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저자는 ‘루비콘 요소’를 가진 사람은 어떤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일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고 말한다. ‘루비콘 요소’는 장애와 난관을 돌파하게 하는 힘이
된다. 그 결정은 순간의 통찰력과 용기도 필요하지만 대개는 무수한 고뇌에 탐색 끝에
나온다.

- ‘어떤 상황이 닥쳐도 놀라지 말고 당당하게 대처하라’는 의미의 변처불경(變處不驚)의
가르침과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의 비전을 떠올린다. ... “어려운 일도 어렵지 않다 여기고,
어려움이 닥쳐도 이기고 나아가며, 어려운줄 알고도 뛰어들어 절대 도피하지 않고,
실패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위험이 닥친 이유를 생각하면 안정을 찾을 길이
보이고, 혼란해진 이유를 생각하면 국가를 잘 다스릴 수 있는 방도를 찾을 수 있으며,
멸망한 이유를 생각하면 존립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역사서 신당서(新唐書)의 가르침
에서 일말의 위로를 찾을 수 있다.

- 사랑은 가슴으로부터라는 말의 의미도 깊이 새겨 본다. 언젠가 김수환 추기경께서
가장 가까운 머리에서 가슴으로 오는데 평생이 걸렸노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더 늦기 전에 가슴으로 사는 인생을 진지하게 설계하고 실천해야 할 때이다. ... “머리는
차가운 생각을 하게하고, 가슴은 따뜻한 생각을 한다. 머리는 딱딱한 생각을 하고,
가슴은 부드러운 생각을 한다. 머리는 초조하게 생각하고, 가슴은 여유 있게 생각한다.
머리로 하는 생각은 따지기를 좋아하고, 가슴으로 하는 생각은 이해하기를 좋아한다.
머리는 결과를 생각하고, 가슴은 과정을 생각한다. 머리는 앞서 갈 것을 생각하고,
가슴은 같이 갈 것을 생각한다. 머리는 현실을 생각하고, 가슴은 꿈을 생각한다. 머리는
곱하기를 좋아하고, 가슴은 나누기를 좋아한다. 머리는 성공을 생각하고, 가슴은 사랑은
생각한다.”

- 정하걸 님의 ‘3.3.3 법칙’으로 살아가는 모습도 떠올린다. 이 법칙은 3원색, 으뜸
화음(3음), 3원 빛에 숨어 있다. 빨강(R), 파랑(B), 노랑(Y)은 색깔의 3원색으로
두 가지 색깔을 섞으면 두 색의 중간색이 나오는데 세 가지를 다 섞으면 검은 색이 된다.
도. 미. 솔은 으뜸화음의 3음으로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도 두음이 울리던, 3음이
울리던 화음은 이루지만, 자신의 독특한 소리는 잃지 않는다. 빨간빛, 노란빛, 녹색
빛은 빛의 기본 색으로 두 가지를 동시에 비추면 중간색의 빛이 되지만 세 가지를 동시
한곳에 비추면 그냥 아무색이 없는 환한 빛이 되어버린다. 이처럼, 사람이 살아가면서
장소나 시기에 따라서 처신해야 한다. 어느 때는 색깔을 묽게 하여 옆 사람에게 흡수
되고, 욕심을 내면 새까맣게 검어져서 모두의 색깔을 망치고, 묻혀버리게 된다. 3.3.3의
기본을 늘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분의 모습을 통해 세상에는 나를 원하는 곳도 있고,
내가 가서는 아니 될 곳도 있고, 하고 싶지만 해서는 안 될 것이 있고, 하기 싫지만
안하면 안 되는 것도 있음을 되새기게 한다.

- 서산대사는 생과 사를 “삶이란 것은 한 조간의 뜬 구름이 일어난 것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의 뜬 구름이 흩어지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뜬 구름에 비유하기를
좋아했나 보다. ... 인생에 관련된 원로 선생들(안병욱 등)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70후의
인생계획을 세 번이나 바꿨다고 한다. 첫 번째 70이 되면 ‘낮에는 밭 갈고 밤엔 책
읽는다’고 계획했는데, 실제로 85세가 되면서 새로운 사회봉사 일을 중심으로 한 두 번째
계획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세 번째는 그래도 남은 삶이 있어 죽을 때까지 천진한
마음으로 마냥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자고 했단다. 안병욱 선생은
평소 생의 예찬론을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아침마다 찬미하는 밝은 태양이 있기 때문
이다. 내가 사랑하는 소중한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믿고 좋아하는 정다운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 일할 천직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핏줄기로 얽힌
조국과 동포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정성을 다해 추구할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우러러 볼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 유대의 철학자 ‘필로 폰 알렉산드리엔’은 인간의 운명을 7년 주기로 나누었다. 태어
나서 처음 7년째 되는 해엔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며(7년), 그후 7년이 지나면
성적인 성숙기에 들어서며(14년), 세 번째 7년이 다가오면 남자의 경우는 수염이 돋아
나고(21년), 다시 맞는 7년째는 인생의 전성기이며(28년), 다섯 번째 7년은 존경을
받는 시기이고(35년), 그 다음 7년은 이성의 성숙을 이루며(42년), 일곱 번째 7년이
지나면 이성을 통해 영혼이 고귀해지고(49년), 여덟 번째 7년이 지나면 이성(理性)과
오성(悟性)이 완성되며(56년), 아홉 번째 7년을 맞이하게 될 때에는 감정을 극복하여
공정함과 온화함을 갖추게 된다고 하며(63년), 마지막 열 번째 7년이 지나면(70년)
죽음과 행복하게 만나라고 말한다.

- 세계미래회의(WFS) 회장인 ‘티모디 맥’은 “앞으로 시간이 가장 값지고 희귀한 자원의
하나가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미래엔 한정된 시간 안에 경험해야할 것이 너무 많아
먹는 것과 보는 것 등 경험한 단위에 투자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 그래서 앞으로
시간이 돈보다 값진 자원이 되는 ‘시간부족 : 시간 기근사회’가 올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 안철환의 <자연과 삶> 이야기 중에서 ‘흙에는 잡초란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에
의하면 대표적인 해초라는 풀들은 먹지 못하고 쓸데도 없는데다 잔뿌리가 많아 잘
죽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잔뿌리가 죽은 흙을 살리는데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선 잔뿌리에 잔뜩 붙잡혀 있는 흙은 아주 부드럽다. 즉 잔뿌리가 흙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뿌리는 다양한 미생물과 벌레들이 서식하기 좋은 곳이 된다.
적절한 습기가 있는데다 먹이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해충이나 해초가 어디 있겠는가.
다만 인간의 욕심이 있을 뿐이란다. ... (미국 레이먼드 디트머스 교수의 나무상자
실험 이야기) ... 자연의 신비로움에 옷깃을 다시 여미고 헌 바퀴를 갈아 끼우고 새로운
출발을 향해 가보자.


[ Ⅱ. 사색과 나눔 ]

< 8. 체험과 사색(思索), 그게 바로 사는 맛 >

- 오늘 내일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는 사시(斜視)와 난시(亂視)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올바른 안목(眼目)으로 오늘과 내일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정시(正視)에로의
교정은 사색이라는 밑거름을 필요로 한다. 사색의 원천은 경험이다. 즉 우리의 인생과정
에서 느끼고 되새기는 모든 것이 바로 ‘경험의 창고’를 풍요롭게 하는 공급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험의 창고를 차곡차곡 정리해주는 사색의 과정이야말로 내일을
사는 생의 원천이 되고 활동의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분명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의식을 하든 못하든 간에, 각양각색의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이들 체험은 그 심도에
따라 대략 세 등급으로 분류된다.

- 첫째는 아무런 계획이나 생각 없이 그냥 스쳐버리는 정도의 체험을 말한다. 이는
‘단순 경험’의 차원으로 살아가는 데 큰 의미를 주지 못한다. 길거리를 지나치면서 가볍게
스치거나 여기저기서 목격되는 일상적인 상황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둘째 부류에 드는
‘인식된 체험’의 세계는 사전계획이나 목적과 필요에 따라 체계적이거나 의도적으로
만나게 되는 경험의 세계를 일컫는다. 직장이나 가정생활에서 벌어지는 의미 있는 각종
일상과의 의식적인 만남으로 인생 항로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경험의 세계이다. 세 번째
부류에 드는 체험의 단계는 ‘충분히 인식된 경험’의 세계로, 오랜 사색의 과정을 거쳐
걸러져 깊은 의미를 제공해주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사색의 과정은 가시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육체적 감각의 세계를 통해 얻어진 구체적 경험들이 비가시적인 무한대의
사고 과정을 거치면서 무형의 자산인 지혜와 가치관이란 틀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아무런 사전 계획이나 목적의식이 없는 단순 경험의 세계라도 깊은 사색의
과정을 거치면서 충분히 인식된 경험의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 분명 인간은 사고(思考)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물의 영장이며, 특권처럼 주어진
사고력을 어떻게 행사할 수 있느냐에 따라 저마다 살아가는 의미는 천차만별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똑같은 체험의 세계를 거치면서도 각자에게 부여되는 의미의 심도와 차원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 하루 일과를 마치는 시각인 취침 전의 사색도 좋고
특정한 경험의 의미를 의식적으로 새겨보는 노력 또한 자신의 보람찬 생(生)을 향한
성장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깊이 음미해보자. ... 여행이 단순 경험의 여행으로 끝나거나
직장에서의 일과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의 단순 반복으로 끝나서도 안 된다. 똑같은
일상일지라도 매일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새롭게 태어나는 체험의 세계를 구축해보자.


< 9. 친교의 세계와 사색 >

- 일생을 살아가면서 옳은 친구 하나를 얻을 수 있다면 생(生)의 성공이라고 할 정도로
참다운 벗 하나를 만나기란 용이한 일이 아닌 듯싶다. 친구란 인간 간(間)의 교류로
제한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직업에서 온 일 자체나 기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교수라면 일반적으로 책과 원고지가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겠다. 자선사업가라면
자선을 베푸는 일 자체가 일상적인 친구가 될 것이다. 또 물질과 권력 및 명예에 집착
되어 이들과 밀착된 친교를 맺고 지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도 가끔 우리가 좋아하고 가까이 대하고 있는 친구가 누구인지를 자문해
보면서 자신의 주위를 점검해 보는 것도 자기완성을 위한 좋은 방법이다.

- <잡아함경> 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네 명의 아내를 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첫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나 깨나 늘 곁에 두고 살아간다. 이 아내는 ‘육체’를 비유한다.
둘째는 아주 힘겹게 얻은 아내이다. 이 아내는 ‘재물’을 의미한다. 셋째는 특히 마음이
잘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며 즐거워한다. 이 아내는 ‘일가친척, 친구들’이다. 넷째는
별 관심이 없고 늘 하녀 취급을 받았으며,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지만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그의 뜻에 순종하기만 한다. 이 아내는 바로 ‘마음’이다.
살아있는 동안은 별 관심도 보여주지 않고 궂은 일만 도맡아 하게 했지만 죽을 때
어디든 따라 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마음뿐이다. 살아생전에 마음이 악행의 자갈길이
었다면 그 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고, 선과 덕을 쌓으며 걸어 다니던 밝고 환한
길이면 늘 다니던 그 환한 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죽고 난 뒤 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 자신의 눈의 방향감각과 교우관계를 점검해보면서 자신의 주위환경을 되돌아봄과
동시에 내적으로도 깊이 사색하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가짐으로서 자아를 발견하고
인간으로서의 자기성장을 위한 사색적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다음의 시(詩)
한 구절을 음미해 보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라 그것은 힘의 원천이다. 노는 시간을
가져라 그것은 재창조의 비결이다. 독서하는 시간을 가져라 그것은 지혜의 샘이다.
진실을 베푸는 시간을 가져라. 그것은 행복의 길이다. 웃는 시간을 가져라 그것은
내면세계(혼)의 음악이다. 관조하는 시간을 가져라 그것은 마음과 정신을 들어 올리는
것이다.” 생각하고 관조하는 내적사색 과정이야말로 곧 전인적인 참다운 인간이 되기
위한 필수요건이 된다. 여기에서 사색의 근거는 어디까지나 생활자체에서 오는 것으로
생활을 통한 끊임없는 ‘자아발견의 과정’은 결국 풍부한 체험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 참다운 인생의 길은 세 가지의 액체를 필요로 함을 인식해야 한다. 땀과 눈물과
피가 바로 그것이다. 끊임없는 노력에 따르는 땀을 얼마나 흘렸으며 주어진 일과
속에서 공동체와 팀워크를 위해 희생의 피를 얼마나 흘렸으며, 부족함에 대한 자성의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가. 인간의 성취란 결국 자신과의 끊임없는 투쟁에 달려 있는
것이다. 어제에 대해서는 가혹한 질책을 아끼지 않고, 오늘의 일에는 믿음과 신념으로
일하고, 내일의 일은 “땀과 눈물과 피”를 토대로 희망 속에 전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아울러 인간에게는 끊임없는 쇄신이 요구되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비가시적인 무형의 세계를 꿰뚫어보는 안(眼)과 가시적인 현실세계를 직시해
보는 안목(眼目)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아를 발견해가는 과정이 곧 자기성장의 길일
것이다.


< 10. 조문(弔問) 이야기 >

-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어리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없는 어머니의 모습.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으시다고, 외할머니가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줄만 알았던 나.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어머니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
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직장)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는 있는 곳은 아니다.
...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나내는 사람이다. ...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
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
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배쯤 될 것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도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 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
간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와 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 (상중의 장례 이야기는 메모 생략) ... 우리 사회 장례문화가 갖는 특징 중의 하나는
분명 호상(好喪)과 악상(惡喪)의 구분이다. 살만치 살다 돌아가시는 분의 장례분위기는
그렇게 침울한 분위기가 아닌 오히려 상주의 슬픔과 걱정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려는
역설적인 의미가 있어 오히려 겉으로 보면 떠들썩한 분위기이다. 한 주검을 치루는
과장에서 나는 또 하나의 인생을 배우는 듯한, 많은 상식을 뛰어넘는 체험을 거친다.
대구 성직자 묘지에 가면 입구에 새겨져 있는 문구가 있다.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라는 말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해준다. 코린토 둘째서간(4,18)의 말씀이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 11. 알코올 담론(談論) >

- (나의 MBA 과정) 평소 술을 좋아하다보니 그에 따르는 ‘술 담론(酒道談論: Alcohol
Discourse)이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 이제는 나름대로의 술에 대한 도를 그런대로
텄다. 자연스럽게 주변에 일당의 주당꾼들이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그 이름을
재미있게 MBA로 명명하기에 이르렀다. 술과 함께 한 알코올의 세계를 나름대로 이해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일명 ’알코올 경영학 과정(Management by Alcohol)이란 명칭
아래 오고가며 주고받는 바로 자화상 같은 삶의 모습 자체일 것이란 생각이다. 이제는
더 이상 젊었을 때의 오기를 펴지 않는다. 나름대로 주도라 할 수 있는 술 마시는 길을
터득한 것이다. 저녁 6경부터 시작되는 알코올의 시작이 다음날 아침 8선식(禪食)을
들기까지를 한 주기로 하는 주도가 형성된 것이다.

- 낮술은 피한다. 술은 안주와 함께 한다. 안주 없는 술은 들지 않는다. 혼자 술은 없다.
따라서 집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특히 1차의 경우는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맛있게 먹기 위해 술을 곁들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보면 매일 술을
마시는 셈이 된다. 왜냐하면 매일 저녁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주말이나
일부 일요일을 제외하곤 매일 마시는 셈이다. 일명 360일을 마신다는 계산도 나올법
하다. 다시 말해 술을 마신다는 생각자체를 없애야 한다. 2차의 경우는 대화를 위한
매개체로서 술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눔의 매체인 것이다. 술 자체를
위한 술자리는 나의 경우에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 (술은 약한 술부터) 술 주(酒)자를 보면 물수 변에 닭유자로 닭이 물 한 모금을
마시고 횃대로 올라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유시(酉時)로 그때부터가 인간이 술 마시기
시작하기에 제일 좋은 시간이란다. 어떻든 촐촐해지는 시간이 일반적으로 오후 6시경을
전후에서이다.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이제부터 술 마시기 시작입니다.’라고 위대한
위(胃)님께 사전 신고를 해서 자연스럽게 위샘을 준비시킨다. 이는 이런 의미도 있다.
맥주를 마시고 위스키를 마시면 안전하고 반대로 위스키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면
절대적으로 위험하다 뜻이다. 쉬운 우리말로는 강한 술부터 시작하기 보다는 약한
술부터 마시는 게 안전하다는 의미와 상통하는 술 마시기 주도의 제 일조 가르침인
셈이다.

- (술은 시멘팅으로 시작한다) 일단 신고식이 끝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음식을 즐기는
강한 술과의 시멘팅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술 한 잔은 반드시 안주 수반한다는
원칙이다. 술 한 잔이면 꼭 안주가 뒤 따른다. 강한 술이란 보통 고기집이면 소주요,
일식이면 정종이요, 중국집이면 고량주를 말한다. 술과 안주를 맛있게 번갈아 깔아
놓으면 그게 바로 단단한 시멘팅 작업인 것이다. 일단 시멘팅이 잘 이뤄지면 그 다음에
술을 마냥 부어도 별탈이 없게 마련이다. 술잔을 함부로 위로 넘기면 안 된다. 위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잘해야 술자리가 끝난 뒤 속이 편하기 마련이다. 술잔을 입에 댓다가도
일단 어떤 때 위에서 받을 준비가 안 되었다는 시그널이 느낌으로 올 때는 반드시
일단 술잔을 내려놓고 잠시 위를 쉬도록 해주어야 한다. 위대한 위를 재대로 위하지
못하면 꼭 탈이 나기 마련이다. 술잔을 마구 부어대면 후에 술탈이 나서 부어댄 만큼
위가 토사광란을 통해 내뱉기 마련이다. 이를 수없이 당하고 나서야 도를 트게 된다.

- (2차와 7대 건강 안주) 일단 단단하게 시멘팅시키면서 1차를 든든히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목이 마르게 마련이다. 이제 2차로 옮길 때가 된 것이다. ... 술 건강을
안주 선택에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몇 가지 나름대로 건강 안주가 있다. 이들
공통점은 모두가 가공되지 않은 자연식이라는 점이다. 대표적인 마른안주는 통북어가
일품이요, 젖은 안주는 조선 통배추와 막장(양념섞인 된장)이다. 사람들이 배추가
어떻게 안주가 되느냐고 반문하는데 이는 독한 위스키를 중화시키면서 위를 편하게
해주는 아주 좋은 자연산 안주이다. 통북어의 위력은 대략 술 마신 다음날 아침
해장국으로 으레 북어 국을 찾게 마련임을 통해서도 쉽게 이해될 것이다. 왜냐하면
북어에는 알코올 해독제가 있으니 말이다. 이에 곁들이는 안주들이 젖은 류는 배추와
함께 서걱서걱한 들 푸른 무와 배추꼬랭이가 일품이요, 마른안주로는 통북어와 함께
죽방멸치, 파래, 김 등을 들 수 있다. 김의 경우는 구멍이 숭숭 뚫린 막 김이 제격이다.
이들을 통틀어 7대 건강 안주라 하는데 여기에다 계절에 맞는 과일을 곁들이면 8대
안주가 된다. 계절 따라 감이나 복숭아와 싱싱한 밤 등이 제격이다.

- (마무리 8선(禪) 식단)아침에 일어나면 약 30분에 걸친 나름대로의 아침운동을
한다. 본격적인 운동이라기보다는 체질과 생활 습관에 맞춰 재활의 체조를 보완해
가면서 스스로 만들어낸 동작들의 연속이다. 게으른 생활습관에 맞춰 밖에 나가지
않고 누구와 함께 할 필요 없이 아무 때나 혼자 실내에서 할 수 있는 편이한 운동이다.
맨손체조부터 시작해서 허리 굽히기, 몸통 일으키기, 가슴 펴기, 90도 각도 굽혀
뛰기 등 맨손과 부분적인 운동기구동작과 연결되면서 5분간의 거꾸로 매달리기로
끝을 맺는다. 특히 거꾸로 매달리기는 매우 기분이 좋다. 운동이 끝나면 곧 몸을 씻고
곧 역시 지속해온 8선(禪)식 식사에 들어간다. 예전부터 불교에서 스님들이 혼자
선을 시작할 때 갖고 들어가는 간편 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대략 7~8가지 곡식을
빻아 가루 채 먹는 방법이다. 우선 꿀 한 숟갈로 목을 축이면서 선식을 편하게 먹기
위해 우유에 섞어 마신다. 심심하니 반찬 식으로 야채를 한 접시 준비한다. 곁들여
검정깨와 잣, 호두, 낫도 콩도 곁들이다 보면 그런대로 영양가는 있으면서 먹기에
편하면서도 가벼워 위에 부담이 안가고 시간도 안 걸리는 식단이다. 이렇게 8선식
까지 마치고 나면 전날 저녁 6시경에 시작한 음주 한 바퀴가 마무리 되는 셈이다.

- 각자 나름대로 자기 몸에 맞는 주도를 터득하게 마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술도
하나의 음식이지 하는 평범한 생각으로 주도를 하면서 언젠가는 술도 못 마실 때가
오겠지 하는 걱정도 함께하면서 말이다. 또 항상 알코올 해독에 여념이 없는 간장도
잘 보호해야지 하는 말뿐인 각오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매일 알코올로 얼굴을
씻으니 안면 피부미용에도 좋다는 익살스러운 넋두리도 빠뜨리지 않는다.


< 12. 피세정념(避世靜念) 이야기 >

- 피정이란 ‘피세정념’의 약식표현으로 복잡한 생활현장을 잠시 피해 자신만의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가져 보자는 것이다. 피정을 영어로 ‘retreat’ 이라 표현한다.
이는 전쟁터에서 성공적인 전진 공격을 위한 일시의 전략적 후퇴를 의미하기도 하고,
또는 다시 신중하게 다뤄본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다시 말해 살아가는 자신의
삶의 모습을 잠시 뒤로 물러앉아 거울에 비춰 보는 것이다. 물론 피정에는 여러
형태가 있으나 단체 피정이 주류를 이루고 이는 듯하다. 자기가 속해 있는 단체를
중심으로 단체의 성격과 목적에 따라 피정의 주제와 강사진 및 장소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 인생을 살다 보면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특히 필요로 하는 것과 원하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원하는 것만 취하다 보면 편식을 함으로써 필요로 하는 양분을 멀리
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많은 경우 원치 않더라도 몸에 꼭 필요로 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에를 들어, 쓴 약은 원치 않더라도 몸을 위해 꼭 필요한 경우가 여기에 속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피정을 통해 평소에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영양분의 필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는 장점이 있다.

- 단체피정에서도 무언의 침묵 피정이 있다. 한 예로 2박3일 동안 일체 말을 하지
않고 심지어는 식사 시간에도 침묵으로 일관하여 공통 주제에 대한 말씀을 통한 자기
묵상 내지는 하느님과의 단독 대화시간을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피정자들 끼리 대화를
나누다 보면 깊이 묵상할 시간이 없음에 비춰 침묵피정의 특징은 하느님과의 채널
주파수 맞추기에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말하지 않고 그 긴 시간을 지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코 그에 따르는 선물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값진
것임에 틀림없다. 서로 얘기를 나누며 지내는 피정에서 얻을 수 없는 특별 은혜를
얻는다. 신비할 정도로 침묵피정이 끝나면 피정 참석자들 간의 통공함을 느끼게 된다.

- 단순히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하며 연자매로 가는 당나귀 마냥 끌려가는 인생에서
스스로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지혜를 창출해 보자. 마음의 공간 확보는 마치
이사한 뒤에 짐을 풀어 놓기전 빈틈없이 빽빽하던 상태에서 하나하나 짐을 정리해
가며 없던 공간이 차츰 생겨나듯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비결이기도 하다.
우리는 분명 정리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색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피정의 의미는
바로 빽빽한 삶의 긴장감에 여유의 공백을 불어 넣어 생기를 붇돋아 주는 청량제인
것이다. 마음의 여유, 사색의 공간, 영육간의 나눔 등은 우리의 영성 세계를 분명
풍요롭게 할 것이다.

- 시간에 쪼들리거나 세파에 지쳐 하느님과의 대화채널에 제대로 주파수도 맞출 줄
모르면서 단순히 나의 기도도 안 들어준다고 그 분만을 원망하는 푸념쟁이로 전락해
버리지나 않았는지 가끔 한 번씩 무릎을 꼬집어보자. 또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도
가져보자. 자신과의 대화에 혹 소홀하지 않았는지. 가족들 간의 나눔에 혹 등한히
하지는 않았는지. 이웃에 귀 기울이는 데 인색하지나 않았는지. 말씀 듣기에 냉담
하지는 않았는지. 가끔 자연을 찾아 대자연 속에 숨 쉬고 있는 하느님 말씀의 보물
찾기를 해보자. 하느님은 인간과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늘 말씀하고 계시다고 한다.
적어도 일 년에 한번쯤 만사 제쳐 놓고 말씀에만 주파수를 맞추는 시간을 가져보자.


< 13. 용서 이야기 >

- 신앙생활을 포함한 나의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역시
용서하는 마음인 듯싶다. 사람과 사람의 마주침으로 연결되는 희로애락의 일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기적인 측면은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미움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럴
때마다 내 스스로 미움을 떨쳐버리기 위한 몸부림을 치기도하고, 또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용서를 묵상하며 대화식 고백성사를 특별히 청해 미움의 불가피성에 대한 용서를
청하기도 하는 등의 아전인수 격 입장에서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강제로 성숙한 부모의 입장에 놓고 자식을 깊은 사랑으로 용서하는 가상적
실천을 모색해 보기도 한다.


- 가톨릭교회 차원에서는 지난 2,000년을 대사면의 해(대희년)로 포용과 용서를
묵상하고 실천하는 대화합의 계기로 삼은 적이 있다. 십자가의 묵상을 통해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용서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며, 인간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부모의 입장으로 성숙해 가는 모습에서 신앙인의 올바른 모습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삶의 열두 가지 기둥”을 되새기며 내 자신을 채찍질
해나간다. < 1. 미소하고 화내지 말라. 2. 뽐내지도 숨기지도 말라. 3. 즐겁게 살고
증오하지 말라. 4. 물질적 정신적으로 독립하라. 5.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을
개선하라. 6. 자신의 무지를 알고 남에게서 배워라. 7.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하되
스스로 결정하라. 8.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라. 9. 옛것과 새것을 모두 귀중하게
여겨라. 10. 아는 것을 실천하라. 11. 모든 것을 사랑하라. 12. 계속하라. >


< 14. 복 받은 마음 >

- (지게할아버지, 중학생, 친우 이야기) ... 친우는 남이 보든 안보든 그 당사자가
‘고맙다’는 말을 했든 인했든 이미 복 받은 마음을 간직한 행복한 사람이다. 또한 비록
돈이 없어서 금전적으로는 그 지게할아버지를 도와주지 못했을지라도 불우한 처지의
사람을 보고 마음 아파하고 심적으로나마 동정을 아끼지 않은 그 중학생도 이미 복
받은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 전 세계에서 두 번째 부자로 알려진 워렌 버핏이
자기 재산의 85%인 370억 달러, 무려 36조원에 달하는 자신의 재산을 자선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척박한 우리의 기부문화에 대한 반성이
있고,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편법으로 재산을 물려주려고 하는 우리의 일부 재벌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계기도 되었다. 복 받는 마음이야말로 평소 누가 보든
안보든 가식 없는 참된 마음으로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과 정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이다.

-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주위의 불우한 사람들의 처지를 같이 나누는 평범한 일상
생활에서부터 복 받는 마음을 갖도록 ‘행복도 심는 것이다’를 되뇌이며 노력해야 하겠다.
“모든 행복은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옵니다. 가시적 현실은 비가시적 생각이 자란 열매입니다. 어떤 생각을
심는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선택됩니다. 행복한 생각을 심으면 행복한 인격이 나오고,
행복한 인격을 심으면 행복한 인생이 나옵니다. 불행을 원치 않으면 불행한 생각을 거부
해야 합니다. 불행한 생각을 선택해서 행복해 지는 법은 없습니다. 인생은 작은 선택들이
모여 큰 선택들이 됩니다. 평소에 행복의 선택을 훈련함으로써 나의 행복은 결정됩니다.
(인터넷 좋은 생각)”


< 15. 데레사 수녀의 교훈 >

- 마더 데레사는 150cm의 단구(短軀)에 옷 두벌과 침구 하나로 진솔한 사랑이 무엇
인지를 보여 주었으며 진정한 봉사의 실천이 어떻게 전 세계를 감동시키며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지구상의 막강한 실력과 재력과 무력을 다 갖춘 어느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위대한 성녀의 역할을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해온 것이다. 이제 그는 갔다.
그러나 그의 실천의 가르침은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살아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의
가르침은 단순한 지식이 아닌 성스러운 실천이었기 때문이다.

- 우리 주변은 설익은 정보와 지식으로 포만 상태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희생과
봉사가 무엇인지 이타적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앎의 지식이 실천으로 옮겨져 삶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별개의 차원들이라고들 한다.
구슬이 서 말인들 꿰지 않는다면 무슨 용도에 쓴단 말인가. 단순한 데이터 자료는 결코
정보가 될 수 없으며 오직 잘 분석된 정보만이 지식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지식인이
곧 지성인이라 할 수 없듯이 실천의 뒷받침이 될 수 있는 삶의 지혜가 행동지표의
토양이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우리사회에는 행동이 없는 지식인이 너무나 많은 지도 모른다. 다양한 매스미디어와
교육기회의 확대로 현대인들의 머리는 온통 새로운 첨단 정보로 가득차 비대할 대로
비대해진 거대한 머리에 상대적으로 왜소해질 대로 작아진 가슴과 손발로 비정상적인
몰골로 비화 되어버린 군상들로 꽉 차 있는지도 모른다. 따뜻한 가슴이 식어버린
지식인! 작아진 손과 발로 허우적거리기만 하며 입으로만 떠드는 지식인! 이들의 손과
발을 키워주고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마더 데레사의 따뜻한 사랑과 실천의 등불이
오래 오래 비춰지기를 염원한다.


< 16. 장인들의 집념과 끈기 >

- ‘빨리 빨리’로 대변하는 우리 국민의 조급성은 분명 그 도를 넘고 있다. 의학적으로
조급한 사람은 체내에 생화학적 변화가 생긴다고 한다. 뇌하수체가 자극을 받아 콩팥
위에 붙어있는 부신피질에서 호르몬을 혈액 내에 방출하여 심장을 뛰게 만든다. 호흡도
빨라지고 체내에 축척되어 있는 지방질의 혈관 내 유입을 도와준다. 한마디로 혼자
비상사태에 걸려들어 모든 기관을 전시체제에 돌입시킨다고 한다. 전시상황의 과열된
우리 몸의 기반이 무한정 버틸 수 없다는 것은 기정사실인 이상 어떤 형태로든 문제를
일으키게 마련이다. 심장마비, 고혈압, 뇌졸중, 당뇨병, 심지어는 암까지도 마다하지
않는다.

- 사람이 산다는 것은 숨을 쉰다는 것이고 쉰다는 것은 곧 휴식을 의미한다. 휴식
(休息)은 사람(人)이 나무(木) 그늘 아래에서 숨을 쉰다(息)로 풀이 된다. “일만 하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아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자동차왕
포드의 말처럼 바쁜 속에 쉬어가며 속도를 줄여 주위를 되돌아보는 가운데 착실한
과정을 밟아가는 생활의 지혜가 필요하다. 바쁘다는 핑계 속에 속빈 강정만 양산해내는
외화내빈(外華內貧)의 우리의 주변의 생활 자세와 일한 결과를 낳으려는 동서고금
선현(先賢)들의 노력의 모습을 비교해보자. 200년 이상 짓고 있는 뉴욕의 영국성공회
사원, 불후의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제작되기까지의 과정, 오랜 인내와 정성으로
우려된 깊은 장맛, 1년간 다듬고 칠해서 만들어지는 나전칠기, 평생을 바친 대동여지도,
명창이 되기까지 피로 토하는 수련의 과정 등은 졸속풍토 속에 바삐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 나전칠기 작은 함 하나를 만드는데도 빨리는 1년, 화장, 소목장, 나전장, 칠장,
마장 등 장인들의 손을 두루 거친 후에나 그 은은한 옻 향내와 오색자개의 영롱하고
정교한 멋이 빛을 발한다. 이들 장인들의 정성과 인내는 곧 몇 초라는 짧은 시간에
생명을 걸고 압축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담기 위한 광고인들의 피땀 어린 노력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고 믿기에 예 장인들의 집념과 끈기를 되새겨 보고픈 것이다.
건축물 하나를 짓는데 200년 이상 걸린다는데, 뚝딱하면 어느새 짓고, 부수고, 파고,
헤치는 우리의 졸속, 날림! 또 250년이 지난 지금도 명연주가의 손에서 변치 않는
음색을 내고 있는 스트라디바리우스, 구전심수(口傳心授)의 멀고 험한 길을 거쳐야
하는 명창의 길, 지도 한 장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친 김정호의 집념과 끈기!
쉬어가자. 그리고 반박자만 늦추자. 그리고 은근과 끈기로 온갖 정성을 쏟으며 집념
으로 알찬 결과를 창조하자. 잎만 보고 뛰는 속도가 아닌 여유로운 리듬문화를 통한
새로운 창조를 꿈꾸고 싶은 것이다.


< 17. 일본인의 장인정신 >

- 북방정책이 가시화되기 전인 1987년에 필자는 킬링필드로 알려진 캄푸치아
(구 캄보디아)를 어렵게 입국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목적은 MBC 6.25특집
제작에 관련된 인터뷰어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사회주의 국가로서 분쟁지역
으로 알려진 곳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일본 제작팀을 통해 캄푸치아
입국 현지 취재 제작이 가능했었다. 제작 현장에서의 작업은 약 일주일간에 걸친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야간작업이 수시로 뒤따랐다. 그 제작 현장에서 보여준 일본
제작팀 특히 카메라맨들의 ‘쟁이’ 정신은 나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다. 매일 연속되는
고된 촬영과정에서 보여준 그들의 철두철미한 프로정신이 있기에 일본이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되새겨 본다.

- 우리 주변의 생활정신을 살펴보면 그들의 ‘쟁이’ 근성과는 너무나 먼 모습이다.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 중에 ‘적당, 적당히’. ‘대충대충 넘어가’, ‘뭘 따져’,
‘두리 뭉실’ 등의 말이 회자되고 있다. 이들 표현은 곧 우리 생활모습의 일단을 단편적
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마치 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하면 ‘빨리빨리’ 가 떠오른
다고 하듯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적당주의와 졸속주위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는 물론 우리 역사의 흐름에서 끊임없는 거대한 물결 속에 급변하는 상황에 대응해
나가려는 산 경험철학에서 연유하였으리라 본다. 그러나 분명 과거의 불가피한 상황이
미래의 답변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철저히 따지는 우리의 새로운 각오를 역설해 본다.


[ Ⅲ 대화의 자세 ]


< 18. 입과 귀 그리고 대화 이야기 >


- 누구나 아침과 저녁으로 세수를 하거나 화장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얼굴을 대한다.
누구나 하루에 적어도 두 번 정도는 거울을 들여다보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틈을
이용해 얼굴에 자리 잡고 있는 나의 ‘귀와 ’입‘의 위상을 점검해 보는 습관이 있다. 대략
다섯 가지 질문을 던져보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대화방법이다. 우선 하루를 지나면서 나의
두 귀가 양쪽에 제대로 위치를 지키고 있나 점검해 보는 것이다. 많은 경우 두 개의 귀가
한쪽으로 쏠려있음을 본다. 이는 하루 일과 중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한쪽의
얘기만을 들었거나 아첨의 소리만 즐겨 찾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입과 귀의 높이가
뒤바뀌지 않았나‘ 점검해 본다. 많은 경우 자기 얘기는 높이고 남의 얘기는 비하시키다
보니 귀는 턱밑으로 처져 있고 입은 눈 위로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본다.

- 세 번째는 ‘왜 입은 닫혀 있고 귀는 열려 있는가’이다. 분명 남의 얘기는 항시 개방된
자세로 듣고 자기 얘기는 조심하고 반듯하게 하라는 깊은 의미가 반듯한 입모습과
귓바퀴로 소리를 담아 주는 귀의 모습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네 번째는 입과 귀의
수를 헤아려 보는 것이다. 어느 날 귀는 사라지고 입만 얼굴 한가운데 세 개가 위 아래로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본다. 그날은 틀림없이 남의 얘기는 하나도 듣지 않고 자기 얘기만
세 번 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남의 얘기를 듣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섯 번째는 ‘왜 혀를 이빨과 입술로 보호하듯이 했을까’이다. 혀 잘못 굴리다 혀 물리기가
쉽다. 혀는 감출수록 좋듯이 자기 말을 아끼면서 품의를 지킴이 좋은 듯싶다. 대화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화는 겸손한 삶의 반영이어야 한다.


< 19. 갈등해소 역할로서의 대화 >

- 인간의 만남이 때로는 결속을 가져오는가 하면 또 많은 경우에는 오히려 갈등이
생겨 단절을 가져오기도 한다. ... 국가적으로 본다면 정부와 국민, 정치적으로 본다면
여당과 야당, 기업조직으로 본다면 경영자와 근로자. 부서와 부서간, 상사와 부하직원간,
본사와 공장간, 동료사원간의 원활한 대화가 중요시되며, 가정의 차원에서도 부부간,
부모와 자녀간의 진정한 대화가 이뤄져야만 그 조직체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육체가 건강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몸 전체의 혈액순환이 원활해야
하며 신경조직망에 의한 지체간의 피드백이 그때그때 잘 이뤄져야 하는 원리와도 같다.

- 대화란 ‘나’와 ‘너’ 사이에 이뤄지는 갈등해소를 통한 나눔의 해소라는 데서 그 의미의
뿌리를 찾을 볼 수 있다. ‘나’와 ‘너’가 만남을 통해 지속적인 체험을 나누면서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의 경험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이 대화이며, 이를 통해 이상적
으로 양자 간에 완전일치를 이룰 수 있다면 불이(하나)의 경지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나눔의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 내지는 사랑의 정신을 바탕으로
할 때 이뤄진다는 깊은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이해와 믿음은, 신뢰와 존중이 없는 나눔
이란 피상적인 허구에 지나지 않아 진정한 내면세계의 나눔이 없는 낭비에 불과하다.
말 한마디가 반듯하지 못하면 천 마디가 소용이 없고, 진실에는 수식어가 없고 미사
여구가 많은 말에는 진실이 없다고 한다. 따라서 언어로 표현되는 대화는 언어이전에
각자의 내면세계에서 이뤄지는 충분한 사색과 마음의 되새김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 마디를 위해 열배의 내면적 뒷받침이이 있을 때 비로소 입에서 입으로의 피상적인
차원을 넘어서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되는 진솔한 나눔의 대화가 엮어지는 것이다.

- 대화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올바른 대화는 쌍방 모두의 인간됨됨이와 성숙함 및
인내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가꾸고 다듬는 정성어린 나눔의 꽃을 피워 이웃을 위해
각자 대화의 깊은 의미와 접근방법을 한번쯤 심각하게 되새겨 보자. 진실로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참된 말이 말로서의 자격과 생명을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선현의 몇 마디 가르침은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준다. “진실의 언어는 간결하다.
지혜의 소리는 평이하다. 참된 말은 가식이 없다. 명언은 우리에게 지혜를 준다. 금언
(金言)은 우리에게 힘을 준다. 지언(至言)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잠언(箴言)은 우리
에게 교훈을 준다. 진언(眞言)은 우리에게 빛을 준다. 허언(虛言)은 우리를 분노케 한다.
망언(妄言)은 우리를 불쾌하게 한다. 폭언(暴言)은 우리를 욕되게 한다. 실언(失言)은
우리를 섭섭하게 한다. 식언(食言)은 우리를 괴롭게 한다.


< 20. 말에는 인격이 담겼다는데 >

- 말씨(말투)가 ‘부드럽다, 상냥하다, 겸손하다, 곱다, 온화하다, 잔잔하다, 따스하다’는
등의 말은 말하는 사람의 겸손, 친절함, 포용력 등의 바람직한 인품을 나타내 준다.
반면 말씨가 ‘퉁명스럽다, 투박하다, 쌀쌀맞다, 표독스럽다, 싸늘하다, 사납다, 쏴붙이는
듯하다, 차갑다, 쓰다’ 등의 말은 말을 하는 사람의 성격이나 인품 자체가 그렇거나
억누르지 못한 그 당시의 기분이나 감정을 나타낸다. 이같이 말은 말하는 사람의 내면적인
감정 상태나 성격을 간접적으로 나타내 줌으로써 결국은 한 인간의 인간 됨됨이나 교양
정도 및 현 위치와 걸어 온 길을 드러내 주게 된다.

- 우선 말이 진실하며 일관성이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는 말하는
사람의 내면세계의 충실함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평소 아는 것(知識)을 깊이 생각하고
(思索) 마음에 되새기면서 지(知). 사(思). 심(心)의 세계가 일치된 모습으로 나나나는
것이 바로 말(言)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내면세계가 뒷받침되지 않는 말이란 경솔한
말장난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올바른 화술이란 상대방의 말을 존중하며
귀담아 듣는 경청의 자세에서 출발한다. 자기주장만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려 들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으로부터 찬. 반의 얘기와 찬사의 비판의 얘기를 모두 포용하는 개방적
자세는 곧 상대방의 이해를 얻는 길이다. 이는 청산유수의 백 마디보다 더 강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 아울러 선입견 내지는 선입관을 버리고 억지를 쓰지 않으며 단언적이고 극단적인
흑백 논리를 피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가능한 한 상대방을 감싸주려는ㄴ 변호사의
입장에서 부드러움으로 대할 때 상대방이 내 안에 들어올 수 있는 ‘나눔’이 이뤄지는
것이다. 대화란 나와 너의 참다운 나눔의 행위로 진정한 인간적 성장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사실로 볼 때 올바른 화술의 밑뿌리는 능란한 언어의 유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진솔 된 포용력에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겸손으로 집약되는 인격과 인품을 반영하는 좋은 말씨를 평생 벗 삼을 수 있도록
“지혜로운 인간관계 10가지 비결”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짐해본다. 1. 사람들과 이야기
하라. (한 마디의 인사 등) 2. 사람들에게 미소 지어라. 3. 이름을 부르라. 4. 친절하고
돕는 자가 되어라. (친구를 갖기 원한다면) 5. 성의껏 하라. (모든 일에 즐겁게 말하고
행동) 6.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라. (누구든지 좋아할 수 있도록) 7. 칭찬을
아끼지 말라. 그리고 비판을 삼가라. 8. 다른 사람의 느낌을 고려하여라. (너의 편,
상대방 편, 올바른 편) 9. 봉사에 민첩하여라. (가치 있는 삶) 10. 이상의 것에다가
유머와 인내와 약간의 겸손을 더하라. 그러면 많은 것을 보상 받으리라.


[ Ⅳ 여행을 통해 본 세상 ] < 메모 생략 >

< 21. 나의 해외여행, 22. 해외여행 건망증, 23. 세계무대 – 우리 기업의 힘,
24. 루브르, 25. 서민 대통령궁, 25. 바이칼 호수, 26. 캄푸치아, 27. 북 유럽 >


[ 부록 ]


< 숨을 돌리며 여유 있는 독자들에게 >


- 언어생활에서 제기되는 문제

1. 오감의 불완전성 2. 주관적 해석 3. 언어의 불완전성(언어의 정지성, 언어의 상징성,
의미의 복합성, 일반화 간소화 경향) 4. 사고의 불완전성(흑백논리, 고정관념), 5. 즉각적 반응


-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언어생활)

-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기본원칙

1. 반복성의 원칙 2. 피드백의 원칙 3. 간략한 정보제공의 원칙 4. 단언적 표현의
배제원칙 5. 현실세계와 언어의 확인 원칙 6. 고정관념의 배제 7. 인덱스(Index)의 사용
8. 등등(etc.)의 사용 9. 비교의 모호성 탈피 10. 숫자화 11. 육하원칙의 명시

- 커뮤니케이션에 임하는 자세

1. 낮춤, 2. 겸손, 3. 경청의 자세, 4. 선인(仙人)의 경지, 5. 부드러움, 6. 변호사의
입장, 7. 선입견의 배제, 8. 용서하는 자세, 9. 상징적 반응... 어느 한 가지의 원칙이나
자세든 간에 하나라도 깊이 사색하면서 실제의 언어생활 속에서 깊이 추구하는 노력을
한다면 똑같은 진리의 길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 오실리아 매튜 수녀 지음 – You

우리가 기도할 때는 하느님께 말씀을 아뢰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묵상할 때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증거할 때는 하느님을 대변하는 것이지요.


#79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080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2.06.26.

[ 책 이름 : 그리스도와 여인들 ]

- 지은이 : 에치오 모로시, 옮긴이 : 이재숙
- 펴낸데 : 성바오로, 출판일 : 1994년 5월 30일, p194
- 내용 : 복음에 따른 여성신학


[ 표지글 ]

- 복음에 나타난 여인들은 그리스도가 제시한 길을 용기 있게 따른다. 그리고 그녀들은
모두 스승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면서 각자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녀들은 대수롭지
않은 여인들처럼 보이지만 영웅적이며 용기 있고 헌신적이며 근본적인 회개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들의 눈물, 고통, 생활의 변경 또는 그녀들의 기쁨, 감사,
믿음 등은 하느님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의 표현들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 가장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 그리스도 앞에 나타난 여인들 >

- 남성과 여성은 하느님의 사랑에 의하여 창조되었고 동시에 둘이 하나의 삶을 형성
하도록 결합된 존재이기에, 우리가 남성과 여성을 따로 구분하여 대립된 두 개의 세계
처럼 나누어 말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또한 아무리 대중 매체에서 남성과
여성간의 경쟁, 권리 주장, 대립 또는 복수 등에 관하여 강조한다 하여도 남성과 여성이
서로 하나를 이루고 있고 동일한 본성에 속하며 또 각자 동일한 하느님의 모상을 지니고
있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이처럼 남성과 여성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누구
든지 상대방에게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을 하게 되면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
오게 되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결국 한 실체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완성시켜 준다. 서로 분리된다는 것은 하느님 창조에 역행하는 것이며 오직
서로가 일치를 이룸으로써 하느님의 창조를 찬미하게 된다.

- 복음에 나타난 여인들은 그리스도가 제시한 길을 용기 있게 따른다. 그리고 그녀들은
모두 스승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면서 각자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녀들은 대수롭지
않은 여인들처럼 보이지만 영웅적이며 용기 있고 헌신적이며 근본적인 회개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들의 눈물, 고통, 생활의 변경 또는 그녀들의 기쁨, 감사,
믿음 등은 하느님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의 표현들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 가장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 하느님의 계획대로 살고 있는 한, 여성은 신적인 요소를 드러낸다. 즉 여성의 감수성,
섬세함, 애정, 친절, 봉사, 자비심 등으로 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생명의 새싹처럼 세상을 뚫고 들어가서 부패를 방지하고 자유롭게 하며, 세상을
그의 창조주와 일치시켜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명에 충실한 여인들, 겸손하고
온순하며 순수한 감수성의 마음을 가지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여인들을 만날 때마다 찬미와
경탄을 금할 수 없게 되며, 복음에서 마리아에 대하여 보여 준 것과 같은 찬미를 하게
된다. “참으로 당신은 복되십니다.”


[ 1. 하열 병에 걸린 여인 ] - (루카 8, 42-48)

- 하느님께서 세상의 어머니들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신다는 이러한 희망과 확신으로
하혈병에 걸린 여인은 예수님께 다가갔다.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는 군중들에게 떠밀려
나는 것을 상관하지 않고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직 침묵과 반성과 신앙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오직 하느님의 유일한 ‘예언자’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에만 전념
했으며 그분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 있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 이 여인은 종교
적인 화려한 장식품이나 많은 초나 경박한 신심행위를 믿지 않았다. 반면에 본질적인
것을 찾고 청하였으며 그것은 그녀를 더욱 빠르게 하느님께 도달하게 만들었다. 예수님은
그녀의 청을 들어주시기 위하여 그녀를 기다리고 계시며, 그녀가 어렵게 당신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고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계신다. 예수님을 만지는 것과 치유를
받는 것은 하나이며 동시에 이루어졌다.

- 그가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자 즉시 하혈이 멎었다. 예수님께서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모두 자기는 아니라고 하는데, 베드로가
“스승님, 군중이 스승님을 에워싸 밀쳐 대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다. 나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나는 안다.”하고 말씀하셨다. 그
부인은 더 이상 숨어 있을 수 없음을 알고 떨며 나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자기가 무슨
까닭으로 예수님께 손을 대었으며, 또 어떻게 즉시 병이 나아는지 온 백성 앞에서 아뢰
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루카 8, 44-48)

- 예수님의 여정에 있어서 치유의 많은 기적들은 이 경우처럼 병의 치유를 받은 사람의
협조와 도움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 여인은 성서의 여러 장면에서 다시 나타나지
않으며 아무도 그녀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사건은 하느님께서 그의 사랑을
믿고 청하는 자에게 얼마나 다정하신지, 그리고 그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그분이 얼마나
능력이 있으신 지를 기억시켜 주기 위하여 대대로 전해지고 있다. 성인들도 이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많은 성인들 중에 성덕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름길을 걸었던 라지외의
성녀 데레사가 있다. ... 우리는 예수님을 ‘만지기’(이것은 모든 성사, 특히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통해 이루어진다)를 원하는가, 아닌가? 혹은 치유되는 것을 겁내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우리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꾸기가 싫어서 멀리 있기를 원하는가? 하혈병에
걸린 여인은 단순함과 사랑 그리고 치유에 대한 열망을 우리에게 조언해 주고 있다.
그밖의 모든 것은 예수님이 준비해 주신다.


[ 2. 가나안 여인 ] - (마태 15, 21-28)

-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복음을 위하여 이방인인 이 여인의 모습을 택하여 말씀하신다.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장벽을 모르는 모성애의 상징으로 많은 여인 중에서 이
여인을 선택하셨다. 이 여인은 ‘자비’를 청하며, 길에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다가가서 엎드린다. 그러나 첫 번째 거절의 말을 듣는다. 그런데도
두 번째의 더욱 가혹한 거절도 참아 낸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누구든지 이런 말을 듣고는 실망하고 더 청하고 싶은 열망이
식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아주 가혹한 굴욕도 참아 내며 강아지보다 못한
존재라는 것도 받아들인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조각의 빵에 만족하며 더 이상 요구
하지 않을 준비도 되어 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바라보신다. 자기의 딸을 살리기
위해, 둘러싸고 있는 군중 앞에서 자신의 품위나 위신을 상관치 않는 이 여인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계신다. 모든 것을 뒤덮을 수 있는 사랑의 힘이 행위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 예수님은 이 여인과 자신 사이에 무엇인가 비슷한 것이 있음을 느끼신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분은 종의 신분을 취하시고 죄인을 찾아다니시면서 자신을 낮추셨다.
그들과 함께 지내시는 것을, 또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치욕적인 십자가상의 죽음까지 받아들이시며 자신을 낮추셨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한 그분의 끝없는 사랑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만나서
상을 주시기를 원하셨다. 그는 비참함 속에서도 위대하다. 왜냐하면 사랑으로 자존심을
이겼으며, 희생의 정신으로 이기심을 이겼고 사랑 때문에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 자신과
비슷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복음과 일치를 이루는 이 행동을 높이
평가하셨다. 이 때문에 그는 그 여인을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않으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단순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얼마나 큰 위대함이 숨겨져
있는가! 이러한 사람들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
자신도 “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하시며 양보하신다.


[ 3. 베드로의 장모 ] - (루카 4, 38-39)

- 마태오 복음에서는 “당신 손을 그 부인의 손에 대시니(8,15)”라고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과의 이 접촉은 확실히 그녀의 생애에서 귀중한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녀는 언제든지 악과 대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그것을 다시 기억할
것이며 그때의 상황을 되살릴 것이다. 열병만 치유된 것이 아니라 생에 대한 새로운
의미, 생의 빛이 그녀의 마음속에 생기게 되었다. 예수님과의 접촉이 있은 후 그녀는
치유를 받고, 가끔 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이 없어
졌으며 봉사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자신을 잊어버리고 봉사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
들이 할 수 없는 상당히 관대한 행위이다. 심한 열병을 앓고 있었던 베드로의 장모를
잘 살펴볼 때, 그 부인이 자신을 치유해 준 예수님께 대한 답례로서 단순히 미소만
지었다고 해도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를 합리화
하여 일을 안 할 수도 있었지만, 그 여인은 “즉시 일어나 시중을 들었다”

-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은 고통이 어떤 것인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경험이었고 그로 인해 이웃이 도움을 더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자신을 헌신할 수 있었다. ... 적어도, 우리
생의 한 순간에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즉시’ 달려가기 위해
자신을 잊어버릴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자신을 잊어버리는
사람을 잊지 않고 계신 분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베드로의 장모는 우리에게 ‘즉시’
실천하는 것에 대한 가치와 그 귀중함을 상기시켜 준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지금
해야 할 일이 있다”, “지금 약속이 있다”, “이 일을 끝내야 한다” 등으로 우리는 미루어
놓기를 좋아한다. 나의 도움과 나의 충고와 나의 우정을 필요로 하며 내가 옆에 있기를
원하고 있는데 그것을 보류한다는 것은 너무 늦게 도달함으로써 사랑하지 않는 것이며
손을 내미는 사람을 혼자 버려두는 것이다. ‘즉시’ 지금 도와주기 위해 하던 일을 중단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에 어느 정도 우리는 자신을 잊어버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 4. 제베대오의 아들들의 어머니 ] - (마태 20, 20-24)

-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이 여인의 부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평소 때처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 여인을 나무라시지 않으신다. 오히려
이 여인이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기 위하여 그녀를 깨우쳐 주려고 노력하신다.
어쨌든 이 어머니와 같이 선의의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는 잘못하는 것이 유익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본능적인 사랑에도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지나가는 사물에 집착하지 않으며, 하느님의 계획 앞에 자기
자신의 계획을 강요하지 않게 된다.

- 세속적인 방식대로 자기 아들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께 청을 드리는 이 여인은
자식의 참된 행복을 판단하는 데 잘못을 저지를 위험이 있음을 어머니들에게 환기
시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큰 신앙을 가지고 하느님의 지혜에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도움으로 세상의 어머니는 인간의 참된 선을 알고 계신
유일한 진리이시며 사랑이신 그분의 뜻을 대변하게 되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27, 55)과
마르코 복음(마르 15, 40)에 의하면 이 여인의 이름이 ‘살로메’였으며 그녀가 예수님과
만나고 난 후 전과 다른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 앞에서 어리석은 짓을 하였던
이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라고
꾸짖음을 당했지만 이제 신의와 용기 있는 행동을 하는 여인으로 변하였다.

- 그는 골고타까지 예수님을 따랐으며, 요한을 제외한 모든 사도들이 도망가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여인들과 함께 스승의 십자가에서 “멀리시 지켜보고” 있었으며, 예수님이
백성에게 모욕을 당하시는 그 언덕에서도 그녀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날 배운 것을 실천하며 예수님을 따르고 섬김에 자신을 봉헌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헌하면서 더 이상 어머니로서의 청을
주장하지 않았다. 이것은 사랑을 할 때는 모든 것을 진리와 하느님께 맡기게 된다는
성서의 말씀을 우리에게 기억하게 한다. 제베대오의 아들들의 어머니는 우리에게,
실수는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 겸손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뀔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 5. 하느님의 여인 예언자 한나 ] -(루카 2, 36-38)

-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도 나이가 많고 경험과 덕이 많은 이와같은 여인들을 볼 수
있다. ...여예언자 한나는 성전에서의 오랜 기거는 단식과 기도로 일관되어 있었으며
특별히 천상의 ‘신랑’을 향한 사랑과 신의로 이루어졌다. 결혼한 후 7년만에 과부가
되어 그는 자신의 긴 나머지 생을 하느님께 봉헌하여 왔다. 이 여인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며 밤낮없이 주님을 섬기며 지냈다. “예루살렘이 속량
(贖良/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써 대속한 행위)되기를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그 아기 이야기를 하였다.”는 것을 보면 하느님의 말씀을
터득한 여인이었다.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기 위하여 성전을 찾는 많은 순례객들은
이 여인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청하곤 했을 것이다.

- 예언자는 단순히 스승이나 충고자나 종교적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다. 다만
지혜롭고 영감받은 진실된 한마디의 말이면 충분하다. 예언자는 자신의 말과 생활,
증언, 성덕이 일치되어야 한다. 예언자들은 즉흥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남에게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계시된 말씀에 ‘일치’하기
위하여 예언자 한나는 자신의 전 생애를 헌신하였다. 그 결과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예언자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이며, 위대한 가치를 포착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것에 심취하여 육적이든 영적이든 그가 눈으로 본 것을 사람들에게 증언자의 힘을
가지고 전달한다.

- 나이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너무 낮게 평가하는 수가 있으나 그들은 큰 희망의
보증인인 것이다. 그들은 신앙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손에 꺼진 초를 들고 그것에 불
붙이기를 원할 때 불을 붙여 줄 수 있도록 촛불을 보존하고 있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이 할머니들이 얼마나 고마운 분인들인가를, 생의 본질적 가치를 전하는 분들이며
하느님의 여에언자들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젊은
세대들이 그들을 구원하는 말씀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많은 불확실성과
실망 뒤에 오는 그들의 갈증을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솟구치는 샘물”(요한 4,14)로
풀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의 집에 성의를 다하여 꾸준히 성서를 보관해 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기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 되는 예언자들의 역할이다.


[ 6. 엘리사벳이 보여 준 노년기의 가치 ] - (루카 1,39-45)

- 엘리사벳은 이미 나이가 지긋한데도 젊은 마리아를 아무런 시기심이나 질투 없이
감격적인 사건을 가져오는 사람으로 맞아들인다.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사람으로
그녀를 맞으며, 마리아를 기쁨의 샘이며 자기 주님의 어머니로 믿었기 때문아 여인
중에 복된 여인으로 선언한다. 다른 사람들의 기쁨과 가치에 대한 이러한 세심한
주의는 나이 많은 사람의 지혜와 성숙으로 볼 수 있으며, 적당한 시기에 자제할 수
있는 능력과, 자리를 물려 줄 수 있는 자세와 삶의 여러 가지 역할에서 침착하게 순서를
밟아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엘리사벳의 아들 세례자 요한은 그에
대해 열성적인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을 선포할 때 “그분은 더욱 커져야만 하고 나는
작아져야만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 놀라운 말은 어머니의 이러한 덕의 덕택이었을
것이다.

- 노년기는 참으로 많은 가치와 빛을 지니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서두르지 않고
들을 수 있으며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기도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으며 ‘절대적’인 것을 찾기 위하여 ‘상대적’인 것에 덜 집착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또한 어떤 면에서는 쇠퇴하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하느님의 진리, 즉
하느님의 영원성에 우리를 참여시키는 일에 우리 주의를 집중하게 함으로써 여러 가지
세속적인 유혹으로부터 쉽게 우리를 해방시킨다. 그리고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가치 있는 것을 얻고 지니기 위하여 많은 것을 버릴 여유를 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인생은 분별력, 인내심, 넓은 이해와 폭넓은 관용을 지니게 된다. 이 시기는
인생의 고난을 통해 얻은 경험으로 지혜가 축적된 시기이며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을 느끼고 그 귀중함을 깨닫는 시기이다. 그러므로 세월을 헛되게 보내지 않기 위해
자신을 타인들에게 봉헌하려고 노력하며 삶의 가치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느님과의 일치
속에 여생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 엘리사벳처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풍요롭고 귀중하게
살아가는 법을 찾을 수 있다. 우리의 힘이 쇠약해지고 쓸모없다는 실의에 빠져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나이에 관계없이 항상 그분과 함께 무엇인가 찬조하고 베풀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리에게는 항상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말 한마디나 한 번의 미소
그리고 한 번의 응답, 여유, 충고, 눈물, 십자가가 있다. 하느님과의 친교 속에 지내는
사람은 불임을 모른다. 주님은 당신의 왕국을 확장하기 위한 봉사 활동에 나이를 묻지
않고 우리를 부르신다. 그분과 함께 일을 할 때는 청년기든 노년기든, 어떤 시기를
막론하고 유익하고 좋은 것들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 7. 예수님 뒤를 따르던 여인들 ] - (루카 8, 1-3)

- (여자들이 예수님의 활동을 돕다)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난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루카 8, 1-3)

- 복음서에서 열두 제자에 대해서는 자주 이야기를 하지만,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여인들에 대해서는 언급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그들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그들의 사명을 다하도록 도와주는
하느님의 도구들이다. 또한 예수님과 제자들이 물질적 현실 때문에 걱정하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였다. 사도들이 시간을 낭비
하지 않도록 하였으며 복음을 전파하는 데 온 정성을 쏟도록 도와주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받은 영적 도움에 자신들의 재산과 수입으로 보답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항상 자기들이 유익하고 ‘좋은 일’을 하였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하늘나라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신을 위해 가졌던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남에게 베푼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봉사는 그들에게 있어서 현실적인
기쁨이 된다. 왜냐하면 봉사는 그들로 하여금, 봉사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봉사
하러 오신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게 해주기 때문이다.


[ 8. 당신을 잉태한 여인은 복되다 ] - (루카 11, 27-28)

- (참행복)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이 여인이 한 말을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한다면 “당신과 같은 그런 아들을
둔 어머니는 얼마나 행복합니까!”라는 말일 것이다. 자기 어머니를 찬미하는 이 칭송에
예수님은 틀림없이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기 어머니가 참으로
복된 여인이 된 동기를 다른 부모들에게 명확히 알려 주시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부모와 자식에게 해당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 이 말씀은 모든 어머니들이 신앙적인 가정
환경을 만들도록 하며, 세속적인 사고방식에 매인 빈 껍질의 충고에 귀 기울이지 않고,
생활을 맑고 기쁘게 시작할 수 있도록 자식들을 인도하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마리아의 모범을 통하여 반성하고 이해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모든 어머니는 하느님의
친구가 된 자식에게서 자신이 받은 축복을 발견하며, 이러한 의미에서 하느님께 자신의
생을 전 부 다 바칠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된다. 예수님께 높이 소리 지른 그 여인은 한
어머니로서 어디에서 가장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는지를 증언해 준다.


[ 9. 허리 굽은 여인 ] - (루카 13, 10-13)

-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마침 그곳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펼 수가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
났다.’ 하시고,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 예수님은 많은 환자들을 치유하셨지만,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신 것은 환자들을 치유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자비를
표시하는 육체적인 병의 치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 즉 전 인류를 위한
완전한 구원을 우리에게 베푸신다. 구세주는 우리를 이 모든 속박에서 풀어 주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의 죄로 인하여 잃어버린 자유를 다시 찾아 주기 위하여 오셨다.

-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앞에 있는 이 여인은 모든 속박의 슬픔과 사탄에게 유혹된
자들의 실망과 끊어 버릴 수 없는 쇠사슬에 매인 자들의 모든 고통을 대변한다. 허리가
굽어 바로 서지 못하고 땅을 보게 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바라보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 중에서 더 좋고 더 나은 것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예수님은 병에 걸려 회당에 잇었던 이 여인도
아브라함의 자녀이며 아무도 땅만을 처다보도록 강요하지 않는 하느님의 백성에
속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기억시켜 주신다. “너희로 하여금 고개를 바로 들고
다니게 하였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이며 안식일을 지키는 율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뜻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축복을 내리신다. 누구든지 남자나
여자를 종교, 정치, 문화, 사회생활에서 허리를 펴고 바로 서서 다닐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사람은 하느님의 일을 완성시키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 그분의 나라를 실현시키는데
참여하는 사람이다. 복음은 우리에게 그 여인이 바로 일서선 다음에야 하느님을 찬양
하였다고 전해 준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마찬가지이다.


[ 10. 예수님을 모셔 들인 마르타 ] - (루카 10, 38-42)

- 마르타와 마리아는 각각 그들의 가치를 가지고 복음에 나타난다. 그들을 빛으로
비교하자면, 하나는 더 밝고 다른 하나는 그것보다 조금 약하지만 끊임없이 광채를
내고 있는 빛이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참 좋은 몫을 택했으며 아무도 그것을 논란할
수 없다고 정확하게 말씀하신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타의 역할이 의미 없는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 또한 ‘좋은’ 몫이지만 마리아의 ‘더 좋은’ 몫에 비교할 때는
그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 좋은 부분에 하느님의 상(賞)과 그분의
인정이 내려진다. 자비로운 행위들은 하느님 안에서 큰 가치를 가진다.

- 예수님이 오랫동안 걸어서 피곤한 몸으로 베다니아에 도착하셨을 때 그분께 문을
열고 받아들인 사람은 마르타였다. 맞이하여 들인다는 것은 가정생활에서 가장
절묘한 가치를 갖는 것 중의 하나이며,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 편안함을 가질 수 있도록 분위기나 얼굴 표정이나 마음으로
기쁘게 맞아들이려고 준비하는 것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며 언제나 남이 우리 집의 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
하느님께서는 세상 여러 곳에 흩어져 잇는 ‘마르타’ 처럼 살아가는 이들의 모든 일을
알고 계시며,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필요하고 ‘좋은 일’이라고 보고 계시며 그들을
축복하신다. 그러나 모두가 기억해야 하는 한 가지는 봉사와 사랑의 거룩한 행위로
인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적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와 묵상의 시간들을 통해서만 행동하고 희생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는 힘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세상은 마르타를 필요로 하고 마르타는
마리아를 필요로 하고 있다.


[ 11. 막달라 여자 마리아 ] - (요한 20, 1-2)

- 루카 복음에서 이 여인은 예수님과 열두 사도들을 자기들의 재산으로 도와주며
따라다니던 여인들 중에서 첫 번째로 나타난다. 이 모든 여인들은 바로 예수님이
일곱 마귀를 쫓아내 주신 막달라 마리아처럼 영적, 육적으로 치유를 받았기에 예수님께
깊은 감사의 정을 가지고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마귀에게 유혹을 당하는 비극을
체험하였으며, 또한 예수님을 만나는 크나큰 행운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악귀에서
해방이 되었으며 하느님께서 그 모든 가치들을 새롭게 잘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되돌려 주시어 그녀의 인격을 풍부하게 해주셨다. 그 순간부터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주님을 섬기는 데 봉헌하게 된 것이다.

- 그녀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바라보고 있었던 많지 않은 사람들의 한 사람이며,
십자가에 가까이 있었고, “안식일 다음날 장례의 절차를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새벽에 첫 번째로 예수님의 무덤에 달려 갔으며,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에게 달려갔던 여인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첫 번째로 발현하신 것도 이 여인
에게였으며, 부활의 첫 번째 선포자도 이 여인이었다. ... 막달라 마리아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그리고 바오로나 아우구스티노, 또 무수한
사람들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자신을 주님께 투신하였듯이 주님께 복종하도록 자신을
투신할 것을 권유한다. 그들은 하느님의 황홀함에 자신들의 눈을 뜸으로써 무엇을
잃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 12. 이 여자를 그냥 두시오 ] - (요한 12, 1-8)

- 라자로의 여동생 마리아는 예수님께 자신의 애정과 존경과 존중을 표현하기를
원하였다. 그녀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시기 위하여 팔레스타인의 길을 걸으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골고타에 올라 못박히실 스승의 그 발을 향유로 씻는 행위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예수님은 이 행동의 섬세함을 알아차리시고 비록
유다가 그 ‘낭비’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어쩔줄 몰라 비난과 타산적인 차가운
계산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그 행위를 칭찬하신다. ...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서
하는 행위는 하느님 진정으로 칭찬을 받을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와 같은 행위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평가해 주신다. 유다는 그 향료를 300데나리온으로
계산하였다. 1데나리온은 농부의 하루 품삯임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것이 엄청나게
비싼 향료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이상의 많은 것을 얻었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보은(報恩)을 얻은 것이다.

- “이 여자를 그냥 두시오” 이말은 나에게로 향한 이처럼 섬세한 행위를 차가운
계산으로 손상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탐욕과 교만과 이기주의에서 오는 모든 계산은
사랑의 적이다. 존중과 애정과 존경의 이 작은 표현들은 세상의 산소와 같은 것이다.
이 행위는 예수님이 수난을 받으시는 동안 그분을 비웃고 거칠게 대할 때나 십자가에
못박히시기를 바라며 만족해 할 때 예수님께 무한한 위로가 될 것이다. 이말은 사람들의
영혼에 얼마나 좋은 것이 있는 지 보여 주기 위함이며, 형제애를 지속시키기 위하여
이 길을 걷는 사람을 누구든지 방해하여서는 안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말은 이기주의
보다 사랑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이 작은 것에도 상당히
민감하시다는 것을 모두에게 기억시키는 말이며, 이와 같은 방법으로 행동하여야
된다는 그분의 확신인 것이다.


[ 13. 골고타 위의 여인들 ] - (마르 15, 39-41)

- 골고타 언덕 위 그곳에는 몇 명의 여인들만이 있었으며 좀 더 가까이에는 마리아와
요한이 있었다. 이 용감한 여인들은 분명하게 예수님의 여제자들이라고 선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인들은, 예수님이 특별한 사건이나 기적 또는 가르침 등을 통해 백성
앞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 계셨던 것이 아니었으며, 잘못하면 그들 또한 예수님과 함께
단죄 받을지도 모르는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외면하지 않고 골고타 언덕
위에 있었으며, 예수님의 수난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음은 그들 중
세 여인에 대해서만 이름을 알려주고 있다.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이다.

- 골고타 언덕 위의 이 여인들은 침묵과 고통 속에서 일하면서 양심적으로 올바르다고
확신 할 때에는 시작한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즉 그들은 누구든지 확실히 믿을 때에는 그들의 의지를 바꾸지 않는다.
하물며 그분이 그리스도일 경우에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이 여인들은 인간들에
의해 기록된 역사에서는 그 중요성이 상실될지 모르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하느님에
의해 쓰여진 역사에서는 가치를 갖는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그들에게 하신 장엄한
선언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증언하면, 나도 또한
나의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할 것입니다.” 그들의 영웅적인 행동은 오히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기념비와 같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


[ 14. 간음한 여인 ] - (요한 8, 2-11)

- 죄는 내면에서부터 우리를 파괴한다. 우리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기 시작했을 때,
이미 우리는 우리 안에서 무거운 강박감을 느끼게 되며, 누군가가 우리를 희망과 용서와
정화의 길로 걸어갈 수 있게 해 주기를 바라며,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원하게 된다. 우리는 죄를 지었을 때 깊이 동요된 영혼의 상태를 만나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우리의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자신은 스스로 더 이상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 간음한 여인을 고발하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중에 죄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인간의 나약성과 인간이기 때문에 받는 많은 유혹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나쁜
표양을 보여 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
들을 죄 없는 사람으로 여겨 주시길 원하였으나 예수님은 이러한 그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분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땅에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응답을 기다린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들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불협화음을 깨닫기를 기다리신다. 그 여인은 이미 결정된 처벌을 기다리고 있다. 침묵은
항상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값진 선물이다. 침묵 속에 그분의 말씀이 다시 울려오며,
침묵은 그분의 음성과 그분의 진리와 그분의 판단을 더욱 잘 깨닫게 해준다. 침묵은
우리를 반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 마침내 예수님은 그들을 만족시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8,7) 누구든지 무죄한 사람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죄 없음을 증명할
용기를 가졌어야 했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어느 누구도 재판관이 될 수
없었고 다시 침묵으로 돌아갔다. 침묵은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에 도달하기 위하여
가장 잘 애용하시는 통로이다. 잠시의 동요가 있은 다음, 예수님의 말씀이 효력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8,9) 이제 세 번째 침묵이 왔으며, 이것은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오지 둘만이 남아 있다. 덕성과 죄, 용서와 회개, 재판관과 죄인이
마주 서 있다. 아니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부성과 그분의 끝없는 사랑과 그분의 피조물이
하느님의 자녀가 될 희망이 마주 서 있는 것이다.

- 이 여인의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도
또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악에 대한 슬픈 경험에서 우리가 다시 일어나도록 도와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롭고 부드러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나도
당신을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8,11)하시는
음성을 들었는가!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승리인 것이다.


[ 15. 사마리아 여자 ] - (요한 4, 5-26)

- 야곱의 우물가에 지쳐서 앉아 계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도망만 치는 인간을 만나서
구원해 주시려고 수고하며 노력하시는 하느님의 노고를 상기시켜 주신다. 아무도
무한한 인내로 끊임없이 우리의 발자취를 따르시는 주님의 사랑을 제지할 수가 없다.
그분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고 싶어 하신다. 즉 생명의 물은 오직 그분께만
있으며 다른 곳에서 그것을 찾는 것은ㄴ 무의미하다고 말씀하신다. 사마리아 여인은
열정적으로 살고 싶어 했으나, 애정의 무한한 갈증을 채우기를 원했던 여인상이다.
그 여인은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원했다. ... 하나의 상징처럼 그녀가 가지고 온 두레박은
여러 번 우물에 내려졌으나 아직까지도 그녀 가슴의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 그분은 서로 좋아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그것은
자신의 기쁨보다 상대방의 기쁨을 우선적으로 원하는 것이다.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충실하는 것이며, 주님께 항상 더욱 가까이 나아가기 위하여 같은 믿음으로 함께 정진
하며 그분과의 우정 속에 살아가면서 즉시 다가오는 내일뿐 아니라 영원한 미래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또 세상과 모든 사람에게 열린 존재로서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의
사랑을 인식하도록 상대방을 도와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물’이며 사람이 더 이상 갈증을 느끼지 않기 위하여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하느님의 선물인 것이며, 이 물은 실제로 그 사람 안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한
생명’을 줄 것이다.

- 사마리아 여인은 우리를 대신하여, 많은 애정 문제와 가정적인 많은 문제를 안고
사는 우리의 어려움을 대변하여 주고 있다. 우리가 마음의 침묵과 신앙의 빛 안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를 원한다면 그 문제의 해결점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주님은 항상 우리 가까이에서 우리의 바쁜 걸음을 멈추게 함으로써, 그분의 전형적인
신적 너그러움으로 당신에게 우리가 필요하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 하신다. “나에게
마실 물을 좀 주시오.” 이 말씀은 당신에게, 당신의 공동체에, 사랑의 봉사 행위에
시간과 생활을 조금 할애해 달라시는 말씀이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그분이 목마르셨던
것이 아니라 목말랐던 사람은 우리 자신이며 그분이 바로 생명의 물이셨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 16. 나인의 과부 ] - (루카 7, 11-15)

- 죽음이 그녀의 집을 두드린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그녀의 남편을
불러 갔고 지금은 그녀의 아들을 불러 갔다. 그 여인은 이제 혼자 남았으며 더 이상
살고 싶은 아무런 의욕도 남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것은 어떤 하소연이나 호소를 들어
주지 않고, 아무에게도 동정을 베풀지 않기 때문에 이 여인은 다만 애통의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러한 이중의 과부 신세가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다. 예수님은 아들을 살려 그녀에게 되돌려주고 눈물을 그치게 하기 위하여
가까이 다가오신다. ... 예수님은 더 큰 고통을 받는 이런 여인들을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에 옆을 지나시면서 그녀들이 좀 더 멀리 바라보며 미래와 희망을 향해 자신들을
열 수 있도록 초대하신다. 즉 죽음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도록 하며 생을 손상시키지
않게, 다른 이들의 유익한 생활을 위해 삶을 함께 나누도록 인도하신다.

-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이 생명의 끝이 아니라 삶이 계속되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그 죽음을 바라볼 수가 있다. 물론 고통과 깊은 슬픔의
순간들이 있지만 복음의 빛 속에서 사는 사람은 죽음 안에서도 어떤 경우에든 잊어
버릴 수 없는 장엄함과 존엄성과 귀중함을 볼 수 있다. .. 교회는 죽음의 날을
‘탄생의 날’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시련의 시기 다음에 오는 영원한 생명에의 탄생에 대해 말한다. “주여,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입니다.”라고 성서는 우리에게
죽음에 대하여 기억시키며 그것을 반성하도록 한다. 즉 죽음은 실패나 파멸,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하여 지나가야 하는 통로이며 궁극적인
것을 위하여 일시적인 것을 버림을 뜻한다. 무(無) 안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이교도인
에게는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무가 아니라 아버지의
품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 나인의 과부는 그녀가 죽음을 맞이한 순간에, 자기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고
죽었던 아들을 살려 되돌려주신 생명이신 주님을 다시 만나는데 아무런 두려움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여인은 남편이나 아들의 죽음이 가져다 준
슬픔의 시간이 지나 자신의 얼굴에 평온함을 되찾고, 생활에 활력을, 그리고 기도
에서 은혜로움을 서서히 되찾는다 하더라도 항상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죽음에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삶을 가치 있게
이끌어 나가는 것이라고. ... 예수님은 죽음으로부터 방문을 받는 모든 이에게 “울지
마라라.”하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누구보다도 우리의 소원을 더 잘 알고 계신다.
이별은 갑자기 오겠지만 그분의 약속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 17. 복음에 나타난 과부들의 고통, 사랑, 믿음 ] - (마르 12, 41-44)

- 신약성서에서는 자주 과부들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어떤 연민을 가지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찬양한 여예언자 한나를 제외한
다른 과부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커다란 고통과 큰 사랑과 큰 믿음을 가지고 있는
단순하고 소박한 이름없는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복음은 “밤낮 단식하고
기도하며 하느님을 섬겨 왔던” 한나(루가 2, 36-38) 외에도, 자신의 마지막 음식을
예언자 엘리야와 나누어 먹은 사렙다 마을에 사는 과부(루카 4, 25-26),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던 나인의 과부(루카 7, 11-15), 끊임없는 청원으로 불공평한 재판관을
이긴 과부(루카 18, 1-6), 율법학자들이 가산을 몽땅 삼켜버린 과부들(마르 12,40),
자기가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성전에 봉헌한 과부(마르 12, 41-44)들을 기억
한다. 그 여인들은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어떻게 하느님 앞에 합당한 자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시련 속에서도 생의 의무에 대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지니고 그분의
우정 안에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 바오로 사도는 그들(과부들)이 교회 안에서 합당한 칭호를 받으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고 말했다. “선행으로 좋은 평판을 받는 여자여야 합니다. 자녀들을 잘 길러 내고
나그네를 후대하고 성도들의 발을 씻어 주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도와주고 온갖
선행에 몸을 바친 사람이어야 합니다.”(1티모 5,10) 이러한 여인들의 현존과 함께
하느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오는 것이다. 그들의 삶은 신성한 종교심을 위해 다시 기억
되고 이야기되는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


[ 18. 죄 많은 여자 ] - (루카 7, 36-50)

- 최근의 성서 주석에서는 이 여자를 막달라 마리아 혹은 라자로의 여동생인 베다니아의
마리아로 오인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죄 많은 여자 이야기는 갈리래아의 어느
고을에서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 성서에서 나오는 죄 많은 여자는 울어야만 했다.
우리는 생의 어려움과 비극과 실수에 직면하게 되면 울고 싶은 심정이 된다. 우리가
우는 이유는 우리가 악을 용납했고 악을 저질렀기 때문이며 외롭게 버려졌고 희망을
잃어버렸고 실패하였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우리의 가장 귀중한
애정과 살아가는데 절실한 평화를 잃었기 때문이다. 울음, 그것은 존엄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여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아무 앞에서나 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비극을 이해하고 잘못된 생활을 청산함으로써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픈 그녀의 강한
의지와 그녀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 앞에서만 울어야 한다는 것이다.

- 예수님은 두 채무자의 비유를 들어 바리사이 시몬에게 책망을 하면서, 섬세한 애정의
표현(울며, 눈물로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음)을 보인 죄 많은 여인에게는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라는 말씀의 향료를 그 머리에 부우시며
답례하신다. 이러한 선언의 놀라움 속에 예수님은 그녀가 보여 준 믿음의 행위에 대한
보답을 확신하면서 그녀에게 평화를 주었다. 더욱 확실한 많은 죄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사랑 이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 이때 믿음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준다. 그것은 용서의 동기이며 구원의 동기이다. 항상 열려져 있었던 하느님의
모든 길 중의 하나가 그 순간부터 모든 이에게 명백하게 제시되었다.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는 예수님의 명백한 선언으로 이 죄 많은 여자와 예수님과의 만남의 장면이 막을
내리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믿음은 우리를 위하여 특별히 만들어진 길이다.
그러기에 믿음은 선물인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에 조금씩 다가가기를 원한다면 바로
우리의 발로 그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 19.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 - (루카 1, 34)

- 하느님의 계획 앞에서 성모 마리아가 하신 이 말씀은 우리의 생활에서 그리 동떨어진
이질적인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도 자주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질문은
응답을 얻을 수 없는 우리의 한계점을 보여주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 텅 빈 공허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준다. 어떻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각종 악을 다 지니고
있으면서도 하느님의 자녀로서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사는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우리는
매일매일 바오로 사도가 말한 불륜, 더러움, 방탕 등 ‘육적인 행실’(갈라 5, 19-21)이
우리 안에 있음을 재확인하게 된다. ... 우리의 무능력함과 연약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묻는 이 말이 자기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우리가 가진
신앙으로는 어렵고 거의 도달하기 불가능하게 보이는 목표에 이르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이와 같은 질문이 우리 마음속에 떠오른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당황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마리아 역시 이처럼 인간의 상상 밖에서 일어나는 갑작스런 신비의 수태에 대하여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질문하고 있으며, 우리도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힘든 문제들의 해결책을 발견할 수 없을 때마다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게 된다.
마리아의 질문은 계속된다. 요셉이 수태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기를 낳을
장소도 없고 낳자마자 아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며,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그의
백성이 알아주지도 않을 텐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 모든 피조물은
거룩함 앞에 불림을 받을 때나, 양심의 침묵 속에서 하느님께서 무엇인가 요구하시는
것을 느낄 때나 생의 시련 앞에서나 자신의 결핍을 느낄 때 일종의 두려움과 전율을
느낀다. 이러한 영혼의 상태에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천사의 소리를 듣는
것은 위로가 되며 아름다운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이것은 자기의 힘과 가능성
만이 전부이지, 다른 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걱정하는 사람 앞에 하느님께
주시는 응답이다. 인간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많은 일들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실현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주님의 도움으로 얼마나 많은 회개와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
났으며, 처음에 의심했던 사람들이 신뢰를 가지게 되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덕에
이르고 있는가!

- 하느님께서 어떠한 것을 요구하시든, 그 목표가 너무 높거나 그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 보일지라도 이제 우리는 놀라워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분이 가까이 계시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모 마리아가 그녀 자신을 위해 받아
들인 신앙의 행위이며 우리의 일상적인 일 안에서도 우리에게 제안하고 계신 일이다.
예수님은 나에게 그분에 대한 믿음만 있으면 산도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마태 17,20). 마리아를 인도하였고 교회를 인도하였고 또 성인들을 이도하셨던
성령께서 그분과 함께 걸어가도록 우리를 초대하신다. 만일 우리가 마리아처럼 그분과
함께 그분을 위하여 살기를 원하며 우리의 생활에서 우리 마음 안에 그분을 위한
첫 번째의 자리를 마련한다면 광야는 길이 될 것이고, 산은 평지가 될 것이며, 불모지는
물이 솟는 샘이 될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 앞에서 모든 장애는 없어지고 모든 역경은
사라질 것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에 대한 큰 신뢰만을 요구하시며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그분은 아무에게도 실망을 주지 않으실 것이다.


[ 20. 준비된 마음 ] - (루카 1,38)

- 우리 모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라는 말씀에 초대를 받았다. 상급을 얻기
위하여 달려야 할 힘과 그분께 충실하도록 나를 희생시킬 수 있는 힘은 먼저 내가
그리스도에 의하여, 바로 그분의 사랑에 의하여 붙잡혔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분
께서 주도권을 갖고 계시다. 그 다음에 내가 그분을 섬기게 되는 것이며, 나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고, 그분을 맞아들일 힘을 갖게 된다. 마리아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러기에 그녀는 먼저 ‘돌봐 주심’에 주님께 ‘찬미 드렸다.’ ...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예고 받던 날, 천사와의 대화에서 신앙심 깊고 단순하면서도 용기 있게
말씀하시는데, 그렇게 말씀을 하실 수 있었던 데에는 충분한 동기가 있었다. 그녀는
오랜 기간 동안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변함없이 기도와 성실과 복종과
사랑의 생활을 해왔던 것이다.

- 우리 삶은 응답을 기다리는 일종의 부르심이다. 그 부르심의 주도권을 하느님께서
갖고 계시다면, 아무리 위기에 처하여 있다 하더라도 부르신 신뢰에 응답하기 위하여
인간은 더욱더 자신을 위대하게 할 수 있도록 진지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신앙의
역사는 성모님의 응답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용기 있는 응답들로 가득차 있다. 이 응답
들은 신앙을 갖고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친근한 말 한마디로
시작하고 있다. 즉 “네! 제가 여기 있습니다.” 혹은 “네! 말씀하십시오.” ...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명은 나의 삶과 나의 기쁨을 규정하여 구원의 섭리 과정에 나를 동참
시키고 어떠한 어려움과 희생과 고통이 따른다 하더라도 나의 평화를 지속시켜준다.
이것이 바로 마리아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답변으로, 거듭되는 세대를 통하여 우리에게 어머니와 같이
조용하게 가르치시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신앙의 삶을 깨닫도록 마리아의 발자취를
따르라는 초대이며, 나를 위하여 계속적으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알아듣도록
항상 온유하며 주의력 있는 사람이 되라는 권유이다.


[ 21. 현존의 중요성 ] - (루카 2,48)

- 성전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이 사건은 성서의 다른 메시지와 마찬
가지로 구체적인 역사적 이야기에서 보편적 이야기로 전환되어 하느님과 모든 사람과의
관계로 부각된다. 우리 각자는 하느님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그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지, 또 그분을 잃었을 때마다 다시 그분을 찾으려는 열망을 갖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있지 않음을 알았을
때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은 그분의 지혜와 사랑에 열려
있었으며, 그분과 연결되는 영원한 계약을 통해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평화를 느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갈증을 해소시키는 물이며, 배고픔을 채워 주시는 음식이며, 사고의
진리이며, 마음의 애정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만 사람들은 그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우리는 예수님의 부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그분이 언제 우리와 함께 계셨는지
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학자들과 이야기
하도록 그냥 내버려 둔 채 우리는 일시적이고 쉽게 꺼지는 불에 현혹되어 본질적인 것의
부재를 깨닫지 못하고 걱정도 하지 않고 우리의 길을 계속 가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와
요셉은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그분 즉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잃을
수도,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잃어버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시간이나 즐거움, 성공, 편안함, 경력 등. 이러한 것에는 예수님을 위한 공간이 없기
때문에 결국 그분을 잃게 되고 마는 것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그들의 평화와
기쁨,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위하여 무엇이 가장 소중하고 본질적인 것인지에 대해 상기
시켜 주신다. 예수님을 찾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되돌아오도록
충고하고 계신다. ...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다는 인식은 우리 신앙의 유일한
고뇌이다. 십자가 밑에서 성모 마리아는 깊은 고통과 침묵과 침착함 속에 계시면서도
걱정을 하시지는 않았다. 그분은 성전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렸을 때만 걱정을 하셨다.
이것이 마리아가 우리에게 남긴 큰 가르침중의 하나이다.


[ 22. 공허의 슬픔 ] - (요한 2,3/ “포도주가 없구나”)

- 공허(空虛/虛無)라는 것은 우리를 채우지도 만족시키지도 못하고 가난하게 하고
무엇인가를 필요하게 하는 환경에 처하게 한다.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신경을 쓰는 것은 사랑의 표징이다. 마리아는 우리에게 이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그의
어머니로서의 모성을 보여 준다. 잔치에는 술이 필요하다. 성서에서 술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술은 쉽게 즐거움을 가져다주며 분위기를 살려
준다. 카나에서처럼 술이 떨어질 경우도 있고 술이 없음으로써 즐거움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 술의 의미가 없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관대하며 온화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사랑할 수 있고 봉사할 수 있으며 자신을 줄 수 있고 기쁨을 가져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은 영혼의 행위로서 하느님께 가까이
가게 해준다. ... “포도주가 없구나”라는 마리아의 호소는 갈릴래아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우연한 사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그 호소는 어머니와 같이 우리를 일깨
우시려는 마리아의 입을 통해서 계속 울려 퍼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공허를 메워 주시도록 하느님께 비는 호소인 것이다.

- 인간은 많은 공허를 알고 있다. 진리와 이상적인 것에 대한 공허는 우리의 실존을
잃게 하고 우리를 안개 속에 방치하며, 우리의 품위를 떨어뜨린다. 사랑에 대한 공허,
이것은 정말로 인간을 가난하게 만든다. 충실성에 대한 공허는 모든 존경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파괴시킨다. 평화에 대한 공허는 생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윤리에 대한 공허는
자기 자신을 정열로 합리화하여 윤리적 둑을 없애 버림으로써 모든 것이 다 그에게
허락된 것 같은 인상을 주게 만든다. 사회적인 덕에 대한 공허는 사람들을 자기 자신
만을 생각하게 만들며, 다른 사람들의 권리나 요구를 무시하게 만든다. ‘하느님에 대한
공허’는 가장 비극적이며 피조물과 창조주사이의 자연적인 관계를 갈라놓는다. 마치
하느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지 않으려 하며, 세상 사물에 현혹되어
자신의 영혼 안에 있는 하느님의 현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더 편하고 세속적인
것에 묻혀 있기에 생명을 주시는 그분의 복음에 마음을 열지 않는다. 이밖에도 자유에
대한 공허, 윤리적 가치에 대한 공허, 사회적인 덕에 대한 공허, 신앙에 대한 공허 등
많은 영적인 공허가 있다.

- 카나에서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평온함과 즐거움의 요인을 없애고 영혼을
가난하게 만드는 이러한 공허를 고통스럽게 바라보신다. “포도주가 없구나”라는
이 말씀은 더 이상 신앙과 평화와 자유와 이상을 갖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께 전 역사를 통하여 드리는 호소이다. 가치의 부재는 우리의
삶을 슬프게 만든다. 마리아께서는 이 잃어버린 가치를 찾을 수 있도록 안전한 길로
인도해 주신다. 깊은 애정을 가지고 우리의 여정을 주의 깊게 보살펴 주며 어떤 공허가
생겼을 때는 즉시 알아차리신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여러 가지 번잡한 일에 얼이 빠져
우리 자신을 모를 때에도 마리아께서는 우리보다 먼저 알아차리신다. 또한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향한 하나의 기도이다. 그것은 그분과의 친교 속에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알려 주기도 하며 우리를 향한 하나의 초대가 된다. 이 말씀은 어떤 사실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공허의 슬픔이나 괴로움을 당하지 않도록 경고하는 사랑의
표시이기도 하다.

- 우리 자신이 빈 항아리임을 깨달을 때 마리아께서는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가치들로
다시 그것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신다. “그가 무엇이든지 당신들에게 이르는
대로 하시오.” 이 말처럼 우리는 태만하게 그냥 기다릴 수가 없다. 카나의 일꾼처럼
우리도 물을 나르고, 그 상황에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문을 열고, 장애를 제거하도록
초대를 받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오시어 우리의 수고에 대해
상을 주실 것이며 우리의 삶에 특별한 ‘맛’을 주실 것이다.


[ 23. 마니피캇 ] - (루카 1, 46-55)

- 교회에서 성가로 불리고 있으며, 성무일도에서 조용히 바쳐지고 있고 성서 안에서
묵상되고 있는 이 말 ‘마니피캇’은 수세기 전부터 그리스도인에게 반복되어 오고 있다.
성모 마리아가 주님을 향한 사랑과 하느님께 대한 새로운 인식을 증언하기 위하여
사용한 뒤로 이 말은 우리에게 친근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입술에서, 아니 그보다
먼저 우리의 마음속에서 항상 노래해야 할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말을 즐겨 들으시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계획에 대한 어떤 의미를 알아들었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의 피조물을 위대하게 만드신 데 대한 찬미, 감사, 찬양의 의미를 표현한
것이며, 그분의 선하심에 대하여 사람들이 기쁨에 넘쳐서 찬양한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마니피캇 (마리아의 노래)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애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자리에서 끌어내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루카 1, 46-55)

- 성모 마리아는 이해하지 못할 때나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에도 믿었으며, 이러한
믿음으로, 다른 여인이었다면 당황하였을 사건들을 잘 견디고 이겨낼 수가 있었다.
신앙은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신 지혜와 사랑과 확신 안에서 편히 쉬는 것이다. 신앙은
우리의 가난함과 왜소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애정에 의해 계속해서 ‘돌보아지고
있음’을 느끼게 함으로써 우리를 항상 그분 앞에 가치 있는 존재로 남게 해준다.
이 때문에 우리는 신앙 안에서만 성모 마리아가 “당신의 비천한 여종의 신세를 돌보
셨기에 내 주님을 찬양하나이다.”라고 노래를 부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 마리아는
자신의 ‘마니피캇’을 노래하며,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인간의 삶이 당신의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변함없는 신의에 감사할 수 있는 하나의 노래와 찬미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그녀 스스로 모범을 보여 주는 것이다.


* #80 독서 메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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