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의 독서 메모 ] 81권-85권







- 금주의 독서 메모 081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2.07.10.

[ 책 이름 : 주모경 해설 ]

- 지은이 : 손기영
- 지은이 프로필 : 1960년 성신고등학교 입학, 1963-1972년 대건신학대학,
2013-2019년 대건회 회장, 도서출판 Amen 대표
- 펴낸데 : Amen, 출판일 : 2020년 8월 15일, 71p
- 내용 :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에 대한 해설/ 주모경 묵상

[ 표지의 글에서 ]

- 가톨릭신자는 주모경(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으로 주님과 성모님을
쉽게 만나 뵙는데, 건성건성 습관적으로 바치면 주님과 성모님을 만나지 못하거나
어렴풋이 뵙습니다. 이 책은 주모경의 모든 단어를 깊이 묵상함으로써 영혼이
주님과 성모님께 다가가, 마주 뵈오며 온전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저 자신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느새 주님과 성모님 앞에서 기도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침상에 두고서 매주 보시면 좋겠습니다. (최기식 베네딕토 신부)


[ 추천의 글 ]

-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누구나 하루에도 여러 차례 바치는 이 기도의 뜻을 좀 더
깊이 묵상할 수 있도록 풀이해 주신 손 기영 안드레아 형제에게 감사합니다.
손 형제는 손 선지 베드로 성인의 후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초기 한국천주교회의
순교정신을 보다 많은 교우들이 공유하며 실천할 수 있기를 바라며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 소책자를 통하여 교우 여러분들이 많은 영적인 선익과 은혜를 받으
시기를 바라며 추천합니다. (광주대교구장 김 희중 대주교)


[ 서문 ] - 주모경

- 가장 좋은 기도이며 평생 수만번 바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의미를 생각하지
않으면 건성으로 기도할 수 있으니 함께 의미를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주모경’을
정성껏 바침으로써 주님과 성모님 안에서 기도하는 생활에 도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인 손선지 베드로 탄생 200주년에 박해시절 평신도 사도로서 30년(1836-1866)
전교회장하신 성인께 이 책을 봉정하오니, 이 책 독자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손기영 안드레아)


[ 주모경 ] -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1. 주님의 기도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2. 성모송 :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3. 영광송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1. 주님의 기도 ]

- ‘주님의 기도’는 마태오 복음(6, 9-13)과 루카 복음(11, 2-4)에 나오는데, 교회가
전통적으로 사용해오는 ‘주님의 기도’는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기도문이다. 마태오
복음에서 산상설교는 아주 중요한 복음인데, 그 상상설교의 중심에 이 기도문이 자리
잡고 있다. 주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이고, 주님께서도 아버지 하느님께
바치신 기도이기에 ‘주님의 기도’라고 한다. ‘주님의 기도’로써 우리는 성자 안에서
성부의 자녀가 되어, 주님과 함께 성부께 기도한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 ‘아버지’는 천주성부(天主聖父) 아버지이시다. 아버지는 인자하신 분이시고 자녀를
사랑하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잃었던 아들의 비유(루카 15, 11-32)’로 하느님이
인자하신 아버지이심을 우리에게 감명 있게 깊이 가르쳐 주셨다. 기도 시작에 하느님께
대한 호칭이 ‘아버지(Pater)’이다. 인간이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지극히 성스럽고
두려우신 창조주 야훼 하느님을 사람들에게 가장 친밀하고 사랑 극진한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우리에게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함으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다.

-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첫째,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당신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계시(啓示)하셨기 때문이다. 둘째, 성령께서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로
알게 해 주셨고 셋째,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마다 ‘나는 하느님의 아들딸이다’를
마음 속 깊이 느끼며,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우리는 아버지에 대한 자녀로서의 소박함과 신뢰심, 겸손한 마음과 아버지께서
기도를 꼭 들어 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 ‘우리’ >
- ‘우리’라는 단어는 하느님과 우리의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표현한다. 우리가 성부께
기도할 때 성자와 성령께 함께 기도한다. 성령 안에서 성자와 함께 기도하므로 ‘우리’
라고 한다. 또한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이 되어 그분이 우리 하느님이시기에 ‘우리’라고
한다. 이 ‘우리’라는 단어는 모든 사람을 포함하기도 한다. 교회는 ‘성인들의 통공’을
믿는다. 모든 믿는 이들이 형제자매들이다. ‘주님의 기도’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바치는 기도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사랑하시는 아들을
내어주셨으니, ‘우리’라는 단어에서 하느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도 기억한다. 그들을
하느님께 인도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자. ‘우리’라고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 현장에서도 모두가 형제라는 의식을 갖고 서로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

< ‘하늘에 계신’ >
- ‘하늘’은 어떤 장소가 아니고, 하느님의 존재 양식을 가리킨다. 하느님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모든 것 위에 계심을, 하느님의 위엄과 거룩하심을, 천사와 성인들과 함께
계시는, 우리가 가지고 나아가는 천상 고향(천국)을 가리킨다. ‘하늘’로서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 올리며, 동시에 명심할 것은 ‘우리 아버지’를 덧붙임으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이다. 공간을 초월하여 무소부재로 계시기에, 지금
나를 지켜보시고 내 기도를 듣고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할 때
마다. 지금 여기 나와 함께 계시는 아버지 하느님을 염두에 두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
시작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생각하지 못하면 건성으로 허공에 기도하게 된다. ...
유다인들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쉐마 기도(신명 6, 4-9)’를 바치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주님의 기도’를 바친다.


[ ‘주님의 기도’ 구성 ]

-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는 일곱까지 청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반부 세 가지 청원은
하느님을 향한 간구로서 하느님의 이름, 나라, 뜻에 관한 기원으로 아버지의 영광 곧
아버지께로 우리 마음을 인도하고 드높여 준다. 후반부 네 가지 청원은 자비로우신
아버지께 불쌍한 우리를 돌보아 주시기를 겸손되이 간구하는 기원이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양육하시고, 용서하시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시기를
청하는 기도이다.

< 첫 기도 :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 - (마태 6, 9)

- 하느님께서 온 세상에 알려지시고 공경과 사랑,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첫 기도이다. 부모님께 대한 자녀 된 도리가 효(孝)이고,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도리가 종교(宗敎)라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존립 이유 자체이다.
또한 인생의 목적이기도 하다. 하느님을 믿으면 그 믿음에 마음과 행실이 뒤따라야
하고, 합당한 흠숭지례를 바쳐야 한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를 하는 사람
들은 매일 아침기도때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주일엔 미사에 꼭 참석하여 하느님을
공식적으로 경배해야 한다. 우리는 세례 때의 소명을 받들어 거룩하게 살면 하느님의
이름이 우리 안에서 거룩하게 빛나신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빌 때
우리는 하느님의 이름이 우리 신앙인들 안에서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 모든 일 안에서도
거룩히 빛나시기를 간청한다.

< 둘째 기도 :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 - (마태 6, 10)

-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다스림은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으로 이미 왔고, 복음
으로 선포되었으며,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를 기도하며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할 사명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한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떨치며 재림하심으로써 하느님의 나라가 궁극적으로 도래
하기를 기원한다. 또한 사람들이 성령 안에서 성화되고, 정의와 평화로 하느님 나라가
온 세상에 펼쳐지기를 기도한다.

- 스콜라 철학의 형이상학에서 인간 본체는 질료인 육신과 형상인 영혼이 하나로 결합된
존재라고 한다. 인간의 영혼은 물질의 자연적 본능에 따르지 않고 그 반대로 양심의
명령에 따라 선택과 판단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음에서, 물질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물질과 함께 소멸되지 않고 독립적 생존도 가능하다. 따라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인간의 영혼은 육신을 떠난 후 독립된 존재로 영원히 존재하며 천상 하느님의
나라에서 모든 천사들과 성인들과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음도 가능하다고 한다.
육체와 영혼이 하나 되어 사람으로 세상에 살다 간 후 우리가 갈 곳은 오직 하느님 나라,
하느님뿐이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이며 인간의 최종 목표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우리의
최종 목표가 될 수 없다.

< 셋째 기도 :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 - (마태 6, 10)

- 신앙인은 좋은 환경에서보다 역경에서 더욱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
몸이 건강하지 못하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에 하느님을 원망하고 짜증내기보다는
오히려 그 어려움을 하느님의 뜻으로,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아드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생사는 누구나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바람 잘 날 없이
크고 작은 어려움이 계속된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은 인간 모든 행위의 윤리규범이다.
아무리 어려운 경우에도 예수님께서, 성모님께서, 또한 수많은 순교자들이 모범을 보여
주신 것처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절대적 기준이다.

- 하느님의 뜻은 우리의 뜻과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이웃에 대한
배려와 나눔 및 봉사활동들은 인간적으로 귀찮아서 하기 싫은 경우가 많다. 주일미사도
심신 상태가 안 좋으면 귀찮을 수 있지만 바로 이러한 때에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동함이
긴요하다. 이러한 때에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는 신자들이 명심해야 하는 표어와
같다. 일상생활에서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분별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려면 기도
해야 한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마음과 힘도 기도로써 생겨난다.

-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요약하면 사람들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사는 것이고, 그래서
구원되어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인류 구원이다. 모든 사람의 구원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러 오셨으며 “나는 내 뜻을 이루려고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요한 6,38)”, 십자가의 죽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다 “이제 다 이루었다”. 하늘에서는 이미 아버지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졌다.
구원된 사람들은 모두 하늘나라에서 성모마리아와 성인들과 함께 아버지의 뜻대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다.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 계획이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세상 방방곡곡에 충만히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자.

< 넷째 기도 :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 - (마태 6,11)

- ‘양식’(빵)으로 시작하는 기도이다. 여기서 ‘양식’은 생명유지에 필요한 모든 것을
총칭한다. 육신 생명 유지에 필요한 모든 물질과 재화뿐만 아니라 영신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에겐 육신 생명 외에 세례성사로 받은 영적
영원한 생명이 있다. 하느님의 은총인 이 양식을 먼저 구해야 한다. 먼저 내 영혼이
은총의 상태에서 항상 살게 해 주실 것을 기도하며 또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자.
또한 내 영혼이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하고 그에 상응한 삶을 살도록
힘쓰자.

-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느니라”(마태 4,4)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매일 하느님 말씀의 영적 양식이 필요하다. 성서
한 구절은 하루 한 수저의 영적 식사로 볼 수 있다. 특별히 우리가톨릭신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풍성한 영적 양식이 있다. 성체성사이다. 예수님의 몸을 모심으로써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는 성사로 우리 영혼의 최대 양식이다. 자녀다운 신뢰심을 가지고 아버지께
생존에 필요한 양식을 청한다. ‘저희에게 주소서’라고 청함으로서 우리는 형제들과
하나 되어 아버지께 대한 자녀다운 신뢰를 드러내며 기도한다.

- ‘오늘’은 무슨 의미인가? 예수님의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마태 7,34)는 말씀과 의미가 통한다. 세상사에 대한
우리의 걱정은 대부분이 불필요한 걱정이고,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이다. 그 걱정을
하느님께 맡김으로서 대폭 줄이고, 그 대신에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는
것을 구하여라”(마태 7,23)가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 다섯째 기도 :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
- (마태 6,12)

- 이 기도는 ‘용서하소서’로 시작하는 기도이다. 하느님께 용서를 청함으로써 우리가
하느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함과 동시에 하느님께서 자비하심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한다.
그냥 ‘저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가 아니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오니’로 먼저
형제를 용서하고서 아버지의 용서를 청한다. 형제들을 용서하는 열린 마음에만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와 용서가 스며들 수 있다. 용서는 원래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누구를 용서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에 참여하는 것으로, 신앙인들의
행위중 가장 훌륭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용서는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용서
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성령께서 내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켜 주셔야
가능하다. 용서의 힘은 기도에서 나오니,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기도해야 한다.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는 우리 영육간의 양식을 청한 후에 하는 기도로 그만큼 중요하다.
죄의 용서는 바로 우리 구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 여섯 째 기도 :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 - (마태 6,13)

- 유혹은 그 자체가 죄는 아니다. 인간은 육신의 본능적 유혹과 영혼의 이성과 양심에
따른 판단, 두 가지 중 하나를 자유의지로 판단해야 한다. 자유의지에 의한 인간이
이 선택은 하느님도 존중하고 개입하지 않는다. 책임도 오로지 선택 당사자인 인간이
져야 한다. 책임도 막중하며 그 상벌도 엄격하다. 유혹은 죄가 아니지만, 악마의 나쁜
유혹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동의하면 죄를 짓게 된다. 육신을 지니고 있는 한 예외가
없다. 예수님도 악마의 유혹을 받으셨다. 모든 인간이 육신을 지니고 있는 한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매순간 악마의 유혹을 받는다.

- 악마는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악으로 유혹하지 않는다. 적당한 타협이나 여기까지는
괜찮다 식으로 슬며시 접근한다. 관심을 보이거나 타협의 기미를 보이면 본격적인
공격이 집요하게 계속되어 결국 악마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관심을 보이면 위험하다.
관심은 악마가 들어오는 문이기 때문이다. 인간 본능은 악마의 교묘한 유혹에 약하기
때문에 결코 자만해서는 안 된 다. 인생은 죽는 날까지 매일 매순간 유혹과 싸우며 살아
간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우리 힘만으로는 부족하고 하느님의 도우심이 절대 필요
하다. 예수님께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의 기도를 가르쳐 주고 명하신
이유이다. 항상 깨어 기도하여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자.

< 일곱 째 기도 : ‘악에서 구하소서’ > - (마태 6,13)

- 성경에서 ‘악’은 일반적으로 악마 또는 사탄을 의미한다. 악마는 하느님의 계획과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룩된 하느님의 구원을 가로막는 자이다. 스콜라 철학에서 악은
선의 결핍으로 창조주가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고 한다. ‘악’을 물질적, 윤리적, 영적
측면에서 고찰해 본다. 물질적 측면에서 ‘악’은 있어야 할 물질의 없음이나 심한
굶주림이라고 할 수 있다. 윤리적 측면에서의 ‘악’은 인간 상호 관계의 단절이라고
할 수 있고, 영적 측면에서의 ‘악’은 하느님과의 관계 단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
든 것이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있어야 할 관계가 단절된 것이다.

- 영적 측면에서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 상태에서 정상 상태로 회복되는 것을 ‘악’
에서 구해지는 것으로 본다. 영적 측면에서의 ‘악’은 하느님과의 관계 단절이다.
‘지옥’은 특정 공간이 아니고, 하느님과의 영원한 관계 단절과 결별로 인한 영원한
멸망이다. ‘천당’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생명으로 영원한 생명이다. 회개는 어원적 의미로 방향 전환이다. 하느님께로 방향
전환하여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것으로, 우리가 구원으로 나아가는 관문이다.
신앙인은 ‘악에서 구하소서’를 입으로만 하지 말고 매일 매시간 실제로 하느님께
향하는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한다.

< ‘아멘(Amen)‘ >

- ‘아멘’으로 ‘주님의 기도’안에 포함된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동의를
표하고, 하느님 아버지께 자녀로서의 신뢰를 드러낸다. 기도의 내용을 재확인하고 꼭
그렇게 되기를 빌면서 기도의 내용과 같이 우리가 실제 생활 현장에서도 살아나갈
것을 다짐한다. ‘주님의 기도’는 이렇게 완전한 기도이다. ‘주님의 기도’를 열심히
바치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의 착한 아들딸이 되어 구원되리라
확신한다.


[ 2. 성 모 송 ]

<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 - (루카 1, 28)

*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 아베마리아(Ave Maria)
- 천주성부 하느님의 특사로 마리아님께 파견되어 오신 가브리엘 대천사가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러 와서 하신 인사말의 첫 단어이다.

< ‘은총이 가득하신’ >

- 가브리엘 대천사는 마리아님께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라고 호칭한다. 마리아님은
그 모친 성녀 안나의 태중에 잉대되는 순간부터 하느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받으신
분이다. (1854년 교황 비오 9세께서 성모님이 원죄없이 잉태되셨음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하느님의 가득하신 은총으로 마리아님이 원죄 없이 잉태되신 것은
하느님의 섭리였다. 천주성자의 티없이 깨끗하신 모친으로서의 준비였다. 이제 때가
오자 그 가득하신 은총의 핵심 메시지가 가브리엘 대천사를 통하여 마리아님께 전달
된다.

<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

-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은 호칭이고,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는 가브리엘
대천사의 메시지이다. ‘성모송’에서 가브리엘 대천사의 성모님께 대한 하례 인사
말씀이 여기서 끝나고 구체적인 메시지는 생략되어 있다. 구체적 메시지 다 나열할
필요 없이 이 두 단어 안에 포괄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다는
것은 우주창조보다 더 큰 사건이고 더 어려운 사건이다. 하느님의 자존심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 37-38)
하고 대답하였다.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순명 속에 이루어진 마리아님의
이 대답으로 이 순간 하느님께서 사람으로 마리아님의 태중에 잉태되셨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마리아님께 대한
간단한 인사말이지만 마리아님께 이보다 더 좋은 인사말이 없다.

< ‘모든 여인들 중에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
- 루카 1,43

-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 소리로 외친
말씀이다. 마리아님께 대한 이 경하(敬賀)의 인사는 인간 엘리사벳이 하신 인사라기
보다 엘리사벳을 통하여 성령께서 하신 축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가브리엘
대천사의 인사말에 이어, 여기서는 성령께서 마리아님이 인류 역사 모든 여인들
중에서 가장 복되신 분이 되심과 예수님의 모친 되심을 축하드린다. 따라서 성모송의
전반부를 제일 먼저 바치신 분은 사람이 아니고, 대천사 가브리엘과 엘리사벳을
통한 천주 성령이시고, 기도라기보다 마리아님께 대한 경하의 인사말이다.


< ‘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

- 성모송 후반부는 교회가 제정한 기도문인데, 기도문의 시작이 ‘하느님의 어머니
거룩하신 마리아님’이다. 마리아님을 그 태중에 잉태되신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호칭
하고 기도를 시작한다. 교회는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마리아님이 ‘하느님의 어머니
이시다’는 믿을 교리를 선포하였다. 태어나신 예수님이 참 하느님이시다는 교리이기도
하다. (개신교는 그리스도교의 이 정통교리를 신자들에게 숨기고, 긍정도 부정도 못하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 호칭 뒤 첫 단어가 ‘빌어주소서’이다.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교회의 성모 공경과
기도를 비난하는 오류중의 큰 원인이 이 단어를 모르거나 오해해서이다. 예수님을
태중에 모시고 낳으시고 지금 이 시간에도 예수님과 함께 계시는 성모 마리아님께
전구(轉求)를 부탁드리는 것이다. 마리아님이 우리가 기도드리는 이 시간에도 당신의
아들 예수님과 함께 계시며 하느님과 우리사이의 강력한 중개자 역할을 해 주시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 증명되고 있는 사실이다.
성모님이 우리의 기도에 당신의 마음과 목소리를 합하여 예수님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께 전구하기 때문에 효과가 가장 강력할 수밖에 없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기적도 마리아님의 전구 덕분이었고, 지금도 매일 마리아님의
전구로 그러한 기적들이 계속되고 있다.

< ‘저희 죄인들을 위하여’ >

- ‘저희를 위하여’라고 하지 않고 ‘저희 죄인들을 위하여’라고 ‘죄인’들을 추가하였다.
이는 우리 기도의 첫 목적이 항상 우리의 구원임을 강조시킴에 있다. 또한 여기서는
우리가 예수님과의 관계가 긴밀하지 못한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과의 관계가
가장 긴밀하신 마리아님의 전구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다.

<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

- ‘이제’는 지금이다. 지금 우리는 영혼에 육신이 결합된 사람이다. 그래서 ‘이제’라는
단어로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많은 사람의 영혼 육신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은혜를 전구해
주실 것을 기도한다. 우리 인생은 ‘이제’의 합계이다. ‘이제’가 합해져 한 평생이 되고
그 끝은 죽음의 시간이다. ‘저희 죽을 때에’는 나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시간, 일생의
마지막 시간이며 제일 중요한 시간이다. 내 영혼의 영원한 생명이 결정되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내 영혼이 가장 의탁할 수 있는 분이 곧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하느님의
어머니(천주의 성모님)이시다.

- ‘성모송’은 성모님께 하느님의 어머니 되심과 그 아들 예수님이 참 하느님이심을 고백
하며 축하드리는 장미꽃 한 송이이고, 묵주의 기도 5단은 장미 꽃송이 50개로 이루어진
장미꽃다발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은 모성애가 지극하신 우리의 천상 어머니이시다.
마리아님의 사랑을 깨닫는 정도에 따라 우리의 신앙생활이 달라진다. 가톨릭신자들에게
성모신심이 신앙생활의 척도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성모송을 열심히 바치는 분은
마리아님의 전구로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을 받는다.


[ 3. 영광송 ]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한 분의 하느님이시다는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한다.

- ‘처음’은 성서 전체의 첫 단어로 창세기 1장 1절의 단어이다. ‘처음’은 성부, 성자,
성령께서 천지창조 이전부터 스스로 존재하시는 절대자 하느님이심을 전제하는 단어
이다. 이는 하느님이 창조주이심을 고백하고, 그 창조주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단어이다.

- 하느님은 영원으로부터 계시기에 시작이 없으시다. 시작은 시간이라는 변화의
범주에 속한 개념이고 시간 역시 피조물이다. 시간과 공간을 비롯하여 유형무형의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 하느님의 영광은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의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다. 또한 창조의 이유이며 목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광이 처음과 같이 성부 성자 성령께 있으소서 라고 기도하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바친다.

- ‘이제와 항상’ 하느님께 영광 있으소서 라고 기도하는데, 이 두 단어에는 지금
이 순간과 우리가 사는 한 평생 항상 우리 삶의 지향과 목표가 하느님의 영광에
있음을 고백하면서 또한 그렇게 살겠다는 삶의 자세를 다짐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 ‘영원히’ 하느님께 영광 있으소서 라고 기도한다. 세세대대로 시간의 종말 때까지
하느님의 영광을 기원한다. 역사는 종국에 가서 하느님의 영광으로 끝나고 완성된다.
우리 각 개인에 있어서도 매 순간을 하느님께 영광이 되도록 삶을 영위하면 마지막에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새로운 존재로 격상된다.

- ‘아멘’은 동의, 확인, 다짐을 뜻하는 단어이다. 우리는 이 단어 하나로 우리 삶의
자세를 매 순간 새롭게 할 수 있다. 영광송은 화실기도로서 최상이다. 영광송으로
화살기도 바침을 생활화하면서 하루 종일 기도하는 삶을 살게 된다.

- 자연을 통하여, 자연 안에서, 그 자연과 함께 하느님을 느끼고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이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살아 계신 하느님과의 대화가 더욱 가능해져서 보다
깊이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신앙인과 비신앙인과 다른 점은 자연에서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 하느님을 찬미할 줄 아는 것이다. 신앙의 눈으로 하잖은 들꽃을 유심히
바라보라. 하느님을 찬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우주 자연의 으뜸 겸 대표로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옳은 일이다.

- 영광송이 간단한 기도임에 비해서 하느님께 드리는 영광은 크다. 그래서 그 은혜도
크다. 따라서 영광송만 잘 바쳐도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이 큰 은혜를 받는다. 하느님으로
부터 복을 받으려면 복 받을 수 있도록 매일 살아야 하는데, 그중 아주 쉬운 방법이 매일
영광송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는 것이다. 이제 영광송을 의미를 생각하면서 바치자.
기도는 주님과의 만남이고 대화이다. 영광송으로 화실기도 바침을 생활화하면 하루 종일
기도하는 삶을 살 수 있어서 좋고, 자신도 구하고 남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81 독서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082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2.07.24

[ 책 이름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

- 지은이 : 강길웅(신부)
- 펴낸데 : 생활성서, 출판일 : 2003년 4월 1일, 223p
- 내용 : 강길웅 신부의 소록도에서 온 편지 (삶 이야기)

[ 표지의 글에서 ]

- 어떤 신부님이 산을 좋아하는 나를 보고는 “내려올 텐데 뭐하러 올라가는가? 하셨다.
그런데 사람은 땀흘려 고생해 봐야 세상 안에 감춰진 보물을 캐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세상이 주는 깨달음은 고통과 눈물이 아니면 만날 수 없다. 정상을 올라 사방을 내려다
볼 때의 그 감동은 밑에서는 잘 모른다. 뿐만 아니라 깨달음을 얻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 감동은 고생하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고생 속으로 들어가 봐야 비로소 세상이
보이고 인생이 보인다. 여러 가지 애매한 일로 고통받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깨달음의
지혜만 있다면 눈물 속에 있는 축복 때문에 울면서도 기쁘게 되고 아픔 속에 있는 은혜
때문에 고통 속에서도 즐겁게 된다. 하느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가 결코 편하게 인생
길을 걸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가 좀 고생스러워도 당신이 감추신
보물을 우리가 손수 캐내기를 원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은 것이다.


[ 1. 안된다니까, 그래! ]

< 안된다니까, 그래! >
* 인물,장소/ 키워드 : 빵집 아저씨, 선생님. 여학생, 서대전초등학교/ 외상 빵값
- 대전사범학교에 다닐 때 학교 후문에 있는 빵집 아저씨의 별명이 ‘안된다니까. 그래’
였다. 몇 번 외상을 시도해 보았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으며 소용이 없었다. 그때 주인
아저씨가 늘 하던 대답이 그 별명이 되었다. 졸업후 섬마을 선생 3년을 하다가 서대전
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아 2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어느날 학생들의 가정방문을 하는
날이었다. ... ”워어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그때 내 상황이 그랬다.
나도 당황했지만 그분은 나보다 더 당황했다. 그동안에 아마 이사를 한 모양이었다.
간신히 내가 먼저 말했다. “아저씨, 외상값 안가져 왔습니다!” 그러자 아저씨가 죄송
하다는 듯이 머리를 숙였다. “선생님, 저도 이제 빵 장사 안합니다.”

< 목욕탕에서 >
# 때 많은 인생
* 인물, 장소/ 키워드 : 신자, 목욕탕 / 속때, 겉때
- 나는 매일 아침 등산을 하며 등산 후에는 대중탕에서 목욕을 한다. ...“등좀 밀어
주시겠습니까?” 그 말에는 아주 반색을 하더니 때를 미는 정성과 손길이 아주 극진
하였다. 그러면서 한 마디 했다. “신부님도 때가 있군요?”하며 그 사람이 웃었다.
그래서 나도 한 마디 더 했다. “나는 겉때보다는 속때가 더 많은 사람입니다.”

# 사람도 아닌 인생
* 인물, 장소/ 키워드 : 뚱뚱이들, 목욕탕 / 몸 무게
- 봄에 혼자서 긴 단식을 할 때의 일이었다. 평소에는 몸무게가 55kg정도 였는데
그때는 처음으로 47kg까지 내려가서 뼈만 앙상하게 드러난 꼴이 실로 가관이었다.
탕 안에 모두 20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하나 만 빼고 모두가 빼불뚝이 뚱뚱
이었다. 서울은 뭐가 달라도 분명히 달랐다. 언젠가 탈의실에서 몸무게를 달던
중학생들의 대화가 생각난다. “60kg도 못되는 네가 인간이냐?” 그말을 들으니
나같이 가벼운 사람은 생전 ‘인간 노릇’해 보기는 다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더러운 인생
* 인물, 장소/ 키워드 : 여자아이, 목욕탕 / 별놈
- 목욕탕에 들어서니 어떤 여자 꼬마아이가 아빠랑 몸을 씻고 있었다. 그 꼬마에게
살짝 잉크를 했더니 고것이 “에이 더러워!” 하더니만 침 뱉는 시늉으로 내게 인상을
쓰고 주먹을 들어 때리는 시늉을 하더니 “캭 죽여 버릴라” 하면서 위협까지 하는
것이었다. ... 그런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의 눈은 하느님의 눈이요 아기의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인데 혹시 내 안에 감춰진 어떤 추악한 모습을 보고 질책을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두렵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다. “예수님,
별놈이 다 후려치는 군요.”

# 추저분한 인생
* 인물, 장소/ 키워드 : 때밀이 청년/ 온천장 / 내복 빨래 말리기
- 여름 휴가때 온천장에서의 일이다. ... “추저분 하다”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것은
아니지만 탕 속에 다시 들어가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너희도 각시 없이 살다 보면
추저분할 때가 있을 것이다!”

< 신부님 영광입니다 >
- 광주 지산동에 있을 때의 일이다. 주차중에 고급 승용차의 앞문을 받아 손상시켰다.
너무도 어이없는 처사에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차 주인인 젊은 여자가 오면서
“신부님, 영광입니다.”하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자기도 신자인데 신부님을 잘
알고 있다면서 걱정하지 말고 그냥 가시라는 것이었다. ... 남의 실수에 대해 “영광
입니다”하며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더 환하게 밝아질 것인가.

< 신부도 지옥에 갈 수 있어! >
- 시골 성당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한 자매가 있는데 말발이 굉장히 센 여자였다.
툭하면 “신부도 지옥 갈 수 있어!” 하면서 마치 염라대왕이나 되는 것처럼 자기 맘에
안 들면 본당 신부를 직접 지옥에 처넣겠다는 식의 말들을 많이 했다. ... 우리 주위에는
별난 이웃들이 많이 있는데, 이를테면 그들은 우리의 불우이웃인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무시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는 믿음으로 기도해 주어야 한다. 그들이 저주의
벌에서 해방되기 위해선 우리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골에 있는
그 자매의 목소리가 늘 채찍처럼 내게 들려온다. “신부도 지옥 갈 수 있어!” “예수님,
명심하겠습니다.”

< 빨래 좋아하는 얘기 >
- 언젠가 미국(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몇 달 머물 때의 일이다. 교포 자매들이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한국인 식료품상으로 안내하여 쇼핑을 하는데 일반 잡화를
진열한 코너에서 갑자기 눈에 크게 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무로 된
빨래판이었다. 이를 사러 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 내 관심은 오로지 그것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에겐 그것이 너무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 나는 정말 빨래하는
것을 좋아한다. 운동 후 땀에 전 옷을 비누질하여 빨래판에 비벼 빤 다음에 맑은 물에
행굴 때의 그 개운함과, 방에 설치된 빨랫줄에 빨래를 널 때의 그 즐거움, 그리고
마른 후에 걷어서 개켜 옷장에 넣을 때의 그 편안함은 빨래를 낙으로 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가 없을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빨래도 못하고 밥도 할 줄
모른다면 어떻게 혼자 사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겠는가.

< 어떤 악연(惡緣)? >
* 인물, 장소/ 키워드 : 노인 신부/ 신학교 / 숙취 사건
- 지난여름에 (노인)신부님을 다시 뵈었을 때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만날
때마다 아찔한 불안감을 떨치지는 못하지만 석고대죄를 할 만한 용기가 아직은
내게 없다. 만일의 경우 내 운명이 어찌될지는 생각만 해도 위험스럽기 때문이다.
좌우간, 정(情)은 때리거나 맞아서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그 신부님의 거실에
매달린 액자의 말씀이 생각난다.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좋다”(전도/코헬 7,1).
어떻게 해석하면 ‘맞는 것이 때리는 것보다 좋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 빌어먹을 낚시 >
* 사건, 장소/ 키워드 : 낚시꾼들, 녹동항 / 바다낚시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정밀 편하게 살기에는 인생은 너무 아름다우며
또 너무 소중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른다. 모르니까 조금만 고생해도 사람이
불행하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오직 한 번만 주어진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정말 보람 있게 살아야 한다.

- 나는 등산을 좋아한다. 그것은 내 청소년 시절에는 받은 여러 가지 아픈 상처 때문이다.
그 시절에 나는 오직 하느님과 산밖에 없었다. 산과 상처 난 내 아픔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방황하며 몸부림쳤던 청소년기는 절대로 헛된 세월이 아니었다.
하느님께선 필요 없는 아픔을 결코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으신다. 어떤 신부님이 산을
좋아하는 나를 보고는 “내려올 텐데 뭐 하러 올라가는가? 하셨다. 그런데 사람은 땀 흘려
고생해 봐야 세상 안에 감춰진 보물을 캐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세상이 주는 깨달음은
고통과 눈물이 아니면 만날 수 없다. 정상을 올라 사방을 내려다볼 때의 그 감동은
밑에서는 잘 모른다. 뿐만 아니라 깨달음을 얻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 감동은 고생하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 고생 속으로 들어가 봐야 비로소 세상이 보이고 인생이 보인다. 여러 가지 애매한 일로
고통 받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깨달음의 지혜만 있다면 눈물 속에 있는 축복 때문에
울면서도 기쁘게 되고 아픔 속에 있는 은혜 때문에 고통 속에서도 즐겁게 된다. 하느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가 결코 편하게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가 좀 고생스러워도 당신이 감추신 보물을 우리가 손수 캐내기를 원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은 것이다.

< 청승맞은 사랑 >
- 내가 선생이 되기 전에는 오직 하느님만이 애인이었고 선생이 되고 나서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또 내 애인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었다. 물론 섬마을 선생을
할 때 동네 영감들의 성화로 선도 여러 번 봤으나 그것은 순전히 타의에 의해서였고
전혀 관심도 없었다. 뒤늦게 신학교에 들어가서는 기도하고 공부하며 봉사하는 그 모든
것이 날마다 새로운 의미를 지니면서 날 감격스럽게 했다. 그리고 마음에 기쁨과 은혜가
충만할 땐 세상 전체가 내 애인이었다.

- 사랑보다 아름답고 근사한 것이 없다. 사랑보다 멋지고 행복한 것도 없다.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인간의 삶에서 사랑을 뺀다면 산다는 의미가 어디에 있고 믿는다는
가치는 또 어디에서 발견하겠는가. 사랑 때문에 눈물에도 기쁨이 있고 사랑 때문에
고통에도 즐거움이 있지 않은가. ... 가끔 누군가를 생각하면 그처럼 마음이 금방 밝아
지는데, 왜 주님 앞에선 그토록 오래 꿇어앉아도 ‘빛남’이 잘 보이지 않을까? 빛남이
없는 사랑이야말로 진짜 청승이 아닌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렇게도 청승스러운
것인지... 예수님, 죄송합니다.

< 여복(女福) 많은 신부 >
* 인물, 장소/ 키워드 : 동기 신부, 솔뫼성지 피정지 /여복 있는 신부

< 믿거나 말거나 >
- 술 마시는 잘못된 습성은 신부가 되고 나서도 고쳐지지 않았다. ... 사람이 과음을
하게 되면 피가 산성으로 변하는데 이것을 중화시키지 않으면 숙취로 고생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음주 전이나 중간에, 아니면 음주 직후에 식초를 물에 타서 마시면 정말
기적처럼 속이 개운하고 머리가 가벼울 뿐만 아니라 숙취가 전혀 없게 된다. 매실
엑기스나 매실환은 식초보다 훨씬 더 큰 효과가 있다. 이때 식초는, 빙초산은 안 되고
숙성된 식초이어야 하며 양은 소주잔으로 한 잔 정도를 맥주 컵에 붓고 물이나 꿀,
또는 요구르트 등을 타서 마시면 된다.

- 나는 감기를 평생 껴안고 산 사람이다. 어느 예비신자로부터 감기 치료에 대한
복음과 같은 얘기를 들었다. 그때부터 매일 소금물로 입안을 가글하는데 목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으며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그리고 일과를 마친 후라든지 또는
외출 후에는 어김없이 소금물로 가글을 한다. 그렇게 해서 고질적인 감기에서 해방
되었다. 잘 아는 아가씨가 축농증에 기관지가 좋지 않아서 여름이고 겨울이고 마스크를
떼지 못했는데, 내 얘기를 듣고 나서 매일 소금물로 가글을 하면서는 감기뿐만 아이라
축농증까지 완전히 치료되어 지금은 아주 건강하다. 여기서 소금은 맛소금과 같은
흰 소금은 나쁘며 최소한 볶은 소금이라야 한다.

-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보니 신부가 건강해야 신자나
환우들에게 건강한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 아프면 하느님도
잘 보이지 않고 기도도 안 되며 그리고 육체적인 불편 때문에 마음도 덩달아 쉽게
상하게 된다. 나는 이제 소금 예찬론자요 또 식초 예찬론자이다. 이것은 사람의 체질에
맞고 안 맞고 하는 문제도 없으며 그냥 누구든지 실천만 하면 건강에 큰 이익을 얻게
된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소금을 권하고 식초를 권한다.

< “예수님, 제가 마시겠습니다 >
- “유도화 뿌리 삶은 물은 누가 마셔야 하나” 이 말은 미국에서 그랜드캐니언 관광을
할 때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한 말이다. 옛날 장희빈이 마신 사약이 바로 유도화 뿌리
삶은 물이라는 것이며, 오늘의 사회를 병들게 하는 모든 이들이 바로 이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것이 그가 외친 주장이었다. ... 여행을 마치고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났을 때 40년 동안 병마에 시달리던 여동생이 마지막 20년은 완전한 식물
인간으로 지냈던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양주를
몇 잔을 마셨는데 그 때문에 밤새 토하면서 고생을 했다. 그때 나는 술을 끊은 사람
이었다. 그것도 3년 간 술을 입에 댄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술 끊는 얘기를 방송
이나 잡지에 발표하여 다른 중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무심코 한 잔
마신 것이 길 들어 그 후로도 술 때문에 여러 날 고생하게 되었다. 그때 문득 가이드의
말이 계속 들렸다. “유도화 뿌리 삶은 물은 누가 마셔야 하나?”
“예수님, 제가 마시겠습니다.”

< 내 친구 박진원 >
* 사건, 장소/ 키워드 : 박진원(아오스딩), 광주 수도회 / “예수님 저희도 이제 5학년입니다.”


[ 2. 가객여운(佳客如雲) ]

< 가객여운 >
- (몇 차례 빚진 돈을 갚겠다며 만나기로 한 다방에서 기다렸으나 끝내 나타나지 않음)
바쁜 사람이 나타나지도 않는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은 참으로 불유쾌한 일이었다.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마음은 왠지 속은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떨굴 수가 없었다. 그때 내 눈에 문득 벽에 걸린 한 족자가 들어 왔다. ‘가객여운’. 뜻은
아마도 ‘귀한 손님이 구름처럼 다녀간다’는 말 같은데 그때 문득 ‘내가 이 다방의 가객
이냐, 아니면 훈이 엄마가 나의 가객이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훈이 엄마와
그 남편으로 인해 내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분노가 갑자기 솟구쳤지만 그러나 애써 좋게
해석하며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 ‘가객여운’ 어차피 뜬구름 같은 인생이다. 사람이
남을 속이고 살아서야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용서 못 받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이며 또 용서를 못 하는 마음은 얼마나 큰 지옥인가. “예수님, 없어진 것은 얻은
것으로 알겠습니다.”

< “예수님, 명심하겠습니다” >
- 사람은 화장으로 그 본성을 꾸밀 수도 없고 또 옷이나 물건으로 그 진가(眞價)를
대치할 수도 없다.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듯이, 까마귀가 날개에 페인트를
칠한다 해서 백로가 되지 않는다. 문득, ‘체신을 생각하라’는 제자의 말이 의미 있게
들린다. 아마 그녀가 말한 체신이란 사람의 겉 부분이 아니라 속 부분이었으리라.
“예수님 명심하겠습니다.”

< 믿어도 될까요 >
- 사제 안식년에 한 1년 미국에 머물면서 귀국할 때는 교포 신자들이 날 붙잡고 놓아
주질 않았다. 교포들과 같이 미국에서 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사정이
아니어서 귀국하는데 그 서운함을 달래기 위해 송별회 때 딱 한 잔 마신 것이 다시
천 잔이 부족할 정도로 둑이 무너지게 되었다. 술 끊은 지 만 3년 만의 일인데 언제나
그 ‘한 잔’이 꼭 문제였다. 귀국해서도 나는 계속 술을 마셨다.

- 소록도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환우들의 가정을 방문하면서부터는
일이 좀 복잡하게 얽히게 되었다. 특히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이다. 손가락도 없는
환우 할머니들이 반찬을 장만하여 상을 걸게 차리고는 기어이 맥주 한 병을 따서는
‘이것은 술이 아니라 음료수이니까 제발, 제 술 한 잔만 받으시라’고 성화를 대신다.
그래서 드디어 발동이 걸리면 맥주가 아니라 소주를 두 병은 마셔야 직성이 풀린다.
자기 의지로는 술을 끊지 못한다. 알코올 중독자는 신앙으로도 술을 끊지 못한다.
그런데 이번엔 겨우 한 달 만에 딱 끊어졌는데,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마는 내가
생각해도 내가 다 신통할 때가 있다. “예수님, 이거 믿어도 됩니까?”

< 컴퓨터와의 전쟁 >
- 선생 앞에서 배울 때는 금방 뭘 좀 아는 것 같다가도 방에 들어와 혼자 복습하려하면
갑자기 머리가 콱 막혀서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그럼 당황해서 여기저길
닥치는 대로 막 누르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컴퓨터에 계속 오류만 생겨 나중에는 혼자서
만들고 쌓아 놓은 스트레스 때문에 급기야는 컴퓨터를 부숴 버리고 싶은 충동까지도
생기게 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코 화를 낼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컴퓨터가
내게 잘못한 일도 없고 또 누가 나를 괴롭힌 일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지금까지 살아 온 모든 부분들이 바로 그런 식이었다는 반성이었다. 결국 나는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았는데, 이젠 어제 틀린 것을 오늘 다시 틀린다 해도 조금도 슬퍼하지 않으며,
언제고 내가 컴퓨터 안에 내장된 작은 방이라도 들어가고야 말겠다는 의지만은 버리지
않고 얌전하게 버틸 수 있었다.

< “예수님, 먼 일이라요?” >
- 중학교를 졸업할 때는 키가 161cm였는데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선생으로 나갈 때는
162cm밖에 되질 않았다. 4년 동안 겨우 1cm 컸기 때문에 친구들은 나를 볼 때마다
“키가 졸아든다”라고 농담을 했는데 사실이 그랬다. 그들은 부쩍부쩍 크고 있었고 나는
올 스톱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내가 점점 작게 보였던 것이다. 복장이 터질
일이었다. ... “짜리 몽땅!” 이젠 나이가 오십이 넘었는데도 누가 ‘키’ 얘기를 하면
자존심부터 상하면서 오장이 뒤집혀질 때가 있다. 그리고 운동구점에서 슬그머니 키를
재보았더니 아무리 용을 써도 161cm에도 미달이었다. 키가 정말 졸아들고 있는 건지
어떤 건지 별일이었다. “예수님, 먼 일이라요.”

< 고추장 단지 사건 >
- ‘연인’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내용과 장면이 너무도 의외였다. 불륜의 사건을
다룬 것이기 때문에 낯 뜨거운 장면들이 많았다. 어린 소녀가 대담하게 펼치는 정사의
장면들이 잘리지 않고 그대로 상영된 탓으로 마치 음란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참으로
민망스러운 영화였다. 그러나 그 영화의 내용이 프랑스의 이름난 여류 문인의 자전적
소설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어떤 신선한 충격과 함께 영화에 대한 작은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 사람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솔직하게 고백하여 드러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인격과 인생의 모든 것이 거기에 달려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잘못을 참회의 뜻으로 고백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거나 나무
라지 않는다. 오히려 혐오스러운 악행까지도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건으로 미화되어
용서되는 것이다. ... (파출소에서 도망치다가 남의 집 장독대의 고추장단지 위에 떨어져
다시 연행된 그 선생) 참으로 묘한 것은, 감추면 더럽고 치사하지만 그러나 솔직하게
고백하고 뉘우치면 그 자체로 아름답게 보인다. 세상의 모든 잘못엔 위대한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다.

< “예수님, 제가 이렇게 삽니다” >
- 본래 나는 신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결국 엉뚱한 학교에 들어가 선생이 되었으니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었으며 기쁨도 없었다. 다만 신부가 못된 탓으로 섬마을 선생이
되어 열심히 봉사하긴 했으나 가난과 우환 때문에 상처받은 마음을 그런 식으로 달랬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하느님의 은총이었다.
대개 본당에서는 본당 신부님의 영명축일을 가급적 성대하게 차려 주려고 한다. 사랑
이란 늘 주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받기 싫어도 받아야 하는 것이 애덕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받은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 축일 같은 행사가
돌아오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 미국에서 6월 셋째 주일은 ‘아버지의날’ 이었고 바로 그 주간 목요일이 내 영명축일
이었는데, 내 축일을 아무도 모르는지 누구 하나 꽃을 달아 주는 이가 없었고 미사 중
에도 누구 하나 기도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원했던 일이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는데도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참으로 별일이었다. 왠지 무시
당한 기분이었고 괘씸한 생각까지 들어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실제로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사건이 잘 진행이 됐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마음이 영판 추저분해졌다. “예수님,
제가 이렇게 삽니다.”

< “예수님, 제가 이렇게 삽니다 2” >
* 사건, 장소/ 키워드 : 서울 모 수녀원 새벽미사, 회갑미사 지참, 레지오 교육 / 건망증
< “예수님, 약 좀 없을까요?” >
* 사건, 장소/ 키워드 : 노안 시골 성당 방, 버스안의 모 교회의 전도사 / 공갈 협박
< 주방과의 전쟁 >
* 사건/ 장소/ 키워드 : 섬마을 분교 평교사 근무, 사제관의 주방 아주머니 / 반찬,
“예수님, 솔직히 밥을 해 먹을 자신은 없습니다!”

< “예수님 휴가 감사합니다” >
- 3박 4일간의 겨울 휴가 중에 마지막 날 순천에서 극장에서 ‘조 블랙의 사랑’ 이라는
영화를 관람했다. 어떤 기업의 회장이 어느 날 둘째 딸에게, 한번 정열적인 사랑을
해보라는 권유를 한다. “사랑은 정렬과 집착이다. 그 사람 없이는 못사는 것이다.”
그러니 완전하게 한 번 빠져 보라고 하며 미칠 듯한 사랑을 찾아보라고 한다. “사람이
살면서 깊은 사랑을 안했다면 산게 아니다. 마음을 열면 첫눈에 스파크가 튀는 사람이
있다. 노력을 해라. 아빠는 네가 둥둥 떠다니며 노래를 했으면 좋겠다. 사람이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산게 아니다.” 참으로 멋진 아빠였다. 아빠는 죽은 부인과 함께 아주
정렬적인 사랑을 나눴던 사람이었다. 이 회장이 나중이 이런 말을 한다. “아내가 죽은
후 몇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늘 그녀를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죽은 아내를
생각나게 해!”라고. 그런데 둘째딸은 바로 그날 아침에 첫눈에 불꽃이 튀는 남자를
커피숍에서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 나는 과연 사제로서 내가 믿는 주님과 정렬적인 사랑을 해 본 적이 있는가. 그분에게
완전히 빠져서 미칠 듯한 사랑을 가져본 족이 있는가. 왠지, 대답 대신에 눈물이 쏟아
졌는데 결국 나는 사제로 산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슬펐다. 뿐만 아니라
마음을 열고 노력 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나는 과연 합당한 노력을 했는가. 더구나
사제로서 노력을 충분하게 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사제로서 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그런데 남몰래 혼자 울면서 내일이 바로 내 사제 수품 기념일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느님께선 아무렇게나 우리의 길을 버려두시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께선 바로 이 영화를 보게 하시기 위해 3박 4일의 여행을 준비
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어떤 불우 이웃(?) ” >
- 나는 7남매 중에 둘째였으며 형님이 위로 한 분 있고 밑으로 동생 다섯이나 되었는데
조산되어 죽은 세 동생까지 합치면 모두 10남매였다. 그런데 내 바로 밑의 ‘길봉’이라는
남동생과는 나이 차이가 2년이 넘는데도 청소년 시절엔 서로 비슷해서 사람들이 우리
두 형제를 잘 분간을 못했다. ... 그가 한참 건강할 때 내게 이런 말을 슬쩍 한일이 있었다.
“나는 불우이웃이니까 형이 좀 도와줘!” 본래 싱거운 사람이라 그때는 들은 척도 안했는데,
결국은 그 말이 내 귀에 남는 마지막 말이 되었다. 결혼도 늦게 해서 자식 사랑이 남달랐
는데 그는 정말 불우이웃이 되어 부모님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산다는 게 무엇
인가? 문득 원고지 앞에 앉아 있으려니까 죽은 동생이 튀어 나와 “어, 강신부!” 하며 그
능청맞은 표정을 다시 짓곤 한다. “자식들 걱정은 말고 편히 쉬거라”

< 어떤 여인 >
* 사건, 장소/ 키워드 : 어떤 여인, 꿈속에서 교통사고, 여학생과 어머니 / 꿈, 낙태시도

< 딱 한 잔의 술독 >
- 사람들은 흔히 술을 상습적으로 마시는 자만을 알코올 중독자로 인정하고 있다.
그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가끔 마시는 자라도 술을 조절하지 못하는 자는, 단주(斷酒)
클럽에서는 이들도 알코올 중독의 범주에 넣는다. 몇 가지 질문에 답해 보면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 술을 마셨다 하면 과음을 하며 이튿날에 일어나기 어렵게 된다.
* 술 마시고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을 못하며 그리고 그 때문에 걱정을 한다.
* 술을 남보다 빨리 마시고 또 많이 마시므로 남보다 더 일찍 취한다.
* 술이 들어가면 자주 공격적이 되며 술이 깰 때까지 남을 못살게 군다.
* 술에 대해 끊임없는 가책을 느끼지만 자신의 음주 습관은 개선되지 않는다.
* 술이 들어가면 비정상적인 행동이 자주 나온다.
등등의 질문에서 하나라도 “그렇다”라는 대답이 나오면 그는 알코올 중독에 아주 가까운
분이다. 한마디로 비정상적인 음주자는 모두 알코올 환자이며 중독자다. 왜냐하면 그
상태는 결코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 알코올 환자는 또 자신도 모르게 술 마실 구실만 찾게 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음주를 남의 탓으로 돌리며 자신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마실 수밖에 없었다고 합리화시킨다. 핑계가 끝이 없으니 끝없이 마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음주자에게 있어서 술과의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즉 독한 술에서
약한 술로 바꾸고, 마시는 횟수도 줄여서 조절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어떤 이유나 변명도 일체 입을 막아야 한다. 알코올 환자들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많이 속여 왔는지를 본인들이 알고 잇다. 그래서 알코올 중독자에게 있어서
술은 자기 의지나 신앙만으로는 끊기가 아주 어렵다. 왜냐하면 중독 자체가 무서운
질병이기 때문이다.

- ‘단주친목’이 있다. 일종의 알코올 중독자들의 모임으로 첫째는 그들 자신이 술을
마시지 않고, 둘째는 다른 중독자들이 술을 끊을 수 있도록 협력하는 단체이다. 현재
각 나라에서 알코올 중독자를 가장 효과적으로 도와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단주친목이라
할 수 있다. 나 자신도 이 프로그램을 보고 술을 끊었으며 어떤 누구도 여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단주클럽에서는 돈이 필요 없고 비밀이 보장되며 그리고 어떤 종교나
사회단체에 속한 모임도 아니다. 그러면서 어떤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라도 단주침목회
에서는 그를 정상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놀라운 비밀을 가지고 있다.


[ 3장. 어떤 꿈과 현실 ]

< 어떤 꿈과 현실 >
- 꿈과 현실이란 참으로 묘한 관계가 있다. 어느 땐 그것이 투명하게 보여서 인생길을
별 어려움 없이 쉽게 걸어가기도 하지만, 또 어느 땐 그것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마치 미로처럼 헤매게 될 때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되
꿈과 현실이 결코 남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신부가 되기를 원했었다.
그러나 집안의 어려운 사정 때문에 사법학교에 들어가 선생이 되었는데, 선생을 하면서도
나는 교직에서의 대부분을 섬마을에서 근무하며 젊음을 불태우곤 했었다. 그때의 섬마을은
좌천지었으나 나는 이를 오히려 좋아했다.

- 나이 서른넷에 신학대학에 들어간 나는 불혹이라는 사십에 신부가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가는 성당마다 거기에 나환자 정착마을이 있어서 그때마다 쉽게 그들과
잘 어울리며 지낼 수 있었다. 이게 정말 인연이라는 것인지, 참으로 묘한 일이요 고마운
일이었다. 첫 본당에 4년 반 머무는 동안 정착마을에 있는 나환우환자들의 집을 모두
네 번 이상 돌아가며 먹고 마셨는데 동네는 그때마다 늘 잔칫날이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만든 음식을 신부님과 함께 먹는다는 기쁨에 아무리 말려도 집집마다 돈을 아끼지 않고
풍성하게 차리곤 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성당을 옮길 때마다 나는 나환자들과 함께 식사
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겼다. 외국신부님들이 소록도에서 자진 철수(1996년)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이때다 싶어 교구장이신 주교님께 선착순으로 지원을 했더니 흔쾌히
받아 주셨다. 한국 신부로서는 처음으로 소록도 신부로 부임했는데 참으로 감회가 새롭
기만 했다. 나는 결국 소록도에 들어오기 위해 그처럼 멀고도 복잡한 길을 외롭게 걸어
왔던 것이다.

< 숨어서 지켜보는 눈 >
- 광주 가톨릭 신학대학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한번은 소록도에 다녀오신 신부님이
느닷없이 나를 부르시더니 그곳의 어떤 환우가 준 것이라 하시면서 장학금이란 명목으로
돈 십만 원을 불쑥 내놓으셨다. 당시 이 금액은 제법 큰돈이었다. 그 후로도 나는 알지
못하는 소록도 환우의 돈을 서너 번 더 받았는데 이름은 절대로 밝히지 않으셨다. 신부로
수품 되는 날이 가까워지자 나는 은인을 찾고 싶었다. 정식으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앞으로 살아가면서 은혜도 갚아 드리고 싶었다. 교회에선 많은 은인들이 숨어서 도움을
베풀기 때문에 좀처럼 수혜자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 신부가 될 때까지도
나는 소록도에 와 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수품 신부들과 함께 소록도 환우들의 성당을
찾아 첫 미사를 봉헌할 때는 여러 가지 감회가 깊을 수밖에 없었다. 환우들 어딘가에 내
은인이 숨어서 지켜본다는 사실은 그들 모두가 바로 내 은인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은인을 찾는 것을 기쁘게 단념했지만 그동안 소록도에는
거의 매년 찾아오긴 했었다.

- 세상에는 없는 사람보다 있는 사람이 더 인색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재물이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배는 부르면서 더욱 갈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푸는 사람은 마음이 넉넉해서 아무리 가난해도 이웃에게 나눠줄 사랑을 늘 지니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가진 것을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함을 오히려 안타까워한다. ...
천국이란 무엇인가? 가난해도 나눌 줄 알고 병들어 고생해도 감사할 줄 알면 바로 거기가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가 소록도에 와서 줄곧 배우고 감탄하는 것은, 어떤 처지
에서도 베풀면서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 삶의 진정한 축복이 있다. 내가
소록도 신부라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 얻어먹고 삽니다 >
- 단식을 하고나면 세상의 모든 음식이 맛있게 된다. 멸치 한 마리가 그렇게 맛있는
고기라는 것도 단식을 통해서 알았으며 또 시어 빠진 깍두기 하나가 그렇게 귀한 맛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배가 고플 땐 세상에 맛없는 음식이 없으며 싸고
흔한 것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한 식탁을 만들 수 있다. ... 돈이라는 것이 그랬다. 누굴
도와준다든지 또는 아주 꼭 필요한 일에 쓴다면 보람도 있고 기쁨도 있지만, 단지 먹고
마시는 일에 많은 것을 지출하게 되면 그땐 보통 아까운 것이 아니다. ... 사제관의
주부식비를 한 달에 세 사람이 십만 원도 안 되는 돈을 살고 있으니, 우리는 아마도 작은
기적을 이루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도시 사람들이 가끔 소록도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묻는다. 물론 질문한 뜻은 그게 아니지만 나는 항상 동문서답을 한다. “얻어먹고 삽니다.”

< 오까 신부님 >
- 신학생 때 멕시코 신부님이 성서학 교수로 오셨는데 우리말이 대단히 서투르셨다.
‘오까’란 영어로 치면 ‘오케이’라는 뜻으로 우리가 그분 말씀을 못 알아듣는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의 이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강의 시간이면 수십 번씩 “오까?”를
연발하셨다. 그래서 신부님의 별명이 ‘오까 신부님’이었다. ... 신부님은 욕심이 없으셨고
또 모든 이에게 너그러우셨다. 그 후 소록도에 3년 동안 주임신부로 계실 때는 만나는
사람마다 사탕을 나눠주심으로 해서 아예 ‘사탕 신부’로 유명했다. 소록도를 떠나신
후에는 순천에서 과달루페회(멕시코 선교회)지부장 일을 보셨으며 간에 오랫동안 이상이
있던 것이 암으로 악화되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소록도의 다음,
그 다음 주임신부가 되었으니 감회가 그저 클 뿐이다.

< 어떤 부자(父子) >
- 소록도 마을에서 ‘분도’는 ‘베드로’ 형제의 다섯 번째 양자가 되었다. 베드로는 발도
없고 손도 없는 환우였다. 그리고 분도는 나병에다가 말도 그저 “어, 어” 밖에 못하는
일종의 벙어리였으며 지능은 아주 낮은데 그때 당시 나이는 서른이 넘었었다, 베드로 씨는
남의 아이들을 키워 봤기 때문에 사람 다루는 기술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었다. 분도가
갖고 있던 쓰레기 같은 소지품들을 다 태워 버리고 일체 새 것으로 바꿔 주었으며 ‘바보도
사람이다’는 인격에 대한 존경심으로 말 못하는 그를 달래고 어르고 하면서 사람 노릇을
하게 만들었다. ... 베드로 형제가 참 사랑을 쏟자 분도 쪽에서도 참 사랑이 솟구치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 소중한 줄을 깨닫게 되어 말도 제법 배우고 사람노릇을 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베드로 형제의 손발과 눈이 되어 하나부터 열까지 지성으로 아버지를 받드는
것이었다. 이걸 보고 사람들이 감탄했다. ... 세상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작은 자를
큰 사람으로 보는 눈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마치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베드로와 분도의 부자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 백일반지와 지네 >
- (백일 반지) 소록도에 부임한지 백일이 되는 날에 금으로 된 가는 반지를 요리 봉사를
하시던 수녀님들로부터 축하선물로 받았다. ‘백일 반지’라는 이름으로 소록도의 생활을
축하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너무 행복했다.
- (지네와의 전쟁) 섬 지방에는 대체로 지네와 뱀이 많은 편이다. 소록도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사제관과 수녀원은 건물들이 낡아서 그놈의 짐승들이 수도 없이 기어 나오기 때문에
질겁할 때가 자주 있다. 식사나 잠자리에서도 기어 나오니 지네 노이로제에 안 걸릴 수가
없다.

< 두 원장의 차이 >
- 사람은 어쩌니 해도 덕을 좀 닦으면서 살아야 한다. 그게 바로 세상을 사람답게 사는
지혜이다. 특히 윗자리에 잇을 때 겸손한 자세로 봉사해야 하며 가진 것이 있을 때 베풀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은 정말 우리가 봉사한 만큼 그 세상을 차지하게 되며 사랑을 나눈
만큼 또 세상으로부터 되돌려 받게 된다. 소록도의 80년 역사에서도 그런 일들이 많이
있었다. 나환우들에게 비인간적인 대접을 했던 원장이나 직원들은 역시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며 참 사랑의 봉사를 했던 원장은 역시 참 사랑과 존경을
받으면서 그가 죽은 뒤에도 소록도에 여전히 남아 사람을 감동 시켰다.

- 초대 원장이었던 '아리까와(1916~1921)'는 나환우들의 생활양식을 순전히 일본식
으로만 강요했으며, 마치 노예나 짐승처럼 다루었다. 그리고 도주를 방지하기 위해 하루
에도 두 차례씩 점호를 취했으며, 일본 황실의 천조대신을 숭배토록 강요했다. 그런데
2대 원장이었던 '하나이(1921~1929)'는 군의관으로 출신으로 많이 달랐다. 그는 군인
답지 않게 아주 자상하고 인간적인 사랑으로 원생들의 삶의 질을 높여 주었으며 환우들이
원했을 때 과감하게 일본식의 생활양식을 뜯어고쳐 한국식의 생활 풍습과 전통을 존중해
줬다. 또한 일본의 천조대신을 모시던 사당을 철거해 버리고 기독교 예배 전용으로 하는
등 그는 실로 파격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환우들은 하나이 원장의 민족을 초월한
헌신적인 사랑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이하 생략

< “이것이 뭔 일이다냐?” >
- 육지서 바다를 건너 소록도를 들어오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배가 시내버스처럼
자주 있는데다가 시간도 7,8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까지 건너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산다는 게 실로 녹녹한 것은 아니다.
(한 할머니의 넋두리 이야기) ... 이 할머니는 소록도에 입원하신지 반년 만에 세상을
뜨셨다. 향년 80세였다.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이 몹시 아팠는데 단풍철이 되고 보니
가슴이 또 미어진다. “이것이 뭔 일이다냐?” 할머니의 넋두리가 무슨 화두처럼 나를 자꾸
붙잡는다.

< 가난 속에 들어 있는 천국 >
-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하지만 정말 가난의 행복을 누리는 크리스천들은
몇이나 되며, ”마음을 비워라“하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마음을 비운 불자들은 또 몇이나
될까. 그렇다! 우리는 가난의 행복을 얻기에는 너무도 가진 것이 많으며, 마음을 비우기
에는 너무나 세상에 집착해 있다. 얼마 전에 소록도의 환우 한 분이 돌아가셨다. 내가
부임한 이후 벌써 열일곱 번째다. 그런데 그 열일곱 분이 모두 비슷했다. 자신이 가졌던
얼마 되지 않은 재산을 이웃을 위해 쓰라고 다 내놓고 가신 것이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
으로 가시지만 그 손에는 세상이 통째로 들어 있음을 보게 된다.

< 6월의 바다를 보며 >
- 소록도에서는 보통 6월부터 수영을 시작해서 9월 말까지 계속한다. 그러니까 넉 달은
족히 수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수영하러 예까지 온 것은 아니지만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살며 하루에 한 번쯤 수영을 즐기는 것은 덤으로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겠는가. (수영을 전혀 못하여 한 때 물을 무서워했음) 사람들은 너나없이
시도도 해 보지 않고 그냥 처음부터 겁먹고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특히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일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자신의 결함을 발견하여 조금만 방법을
고치면 될 것을 사람들은 노력도 않고 그저 자신의 신세만 한탄한다. 자기 방식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안 되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 심 할아버지 >
- ‘심 할아버지’는 어엿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치료실 간호사들과 주위의 사람들은
‘심부름 할아버지’, 또는 ‘심 할아버지’로 부르고 있다. 이유는 당신이 할 수 있는 간단한
일도, 그리고 별 자질구레한 잡다한 일도 당신이 안하고 꼭 남을 시켜 먹기 때문이다.
... 이하 생략

< 나병을 바로 압시다 >
우선 나환자라고 우리가 말하는 사람은 나병이 다 나았지만 후유증으로 지체 불구만
남은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의 몸속에는 나균이 없다. 그러므로 이런
장애인은 나균을 퍼뜨리지 못한다.

- (누가 나균을 퍼뜨릴 수 있나?) 잠복기 동안의 환자, 즉 병의 초기로 아직 진단을
받지 못한 사람의 몸속에는 전염될 수 있는 균이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건강인과
똑같이 그 누구도 찾아내기 힘들다. 나환자는 전염력이 없고 건강한 사람 중에 균을
퍼뜨리는 사람이 있다.
- (나균이 몸속에 들어오면 병이 생기는가?) 아니다! 나균이 몸속에 들어오면 몸의
면역기능에 의해 금방 죽는다. 즉 몸속에 균이 들어와도 증상 없이 모두 낫는다. 그 중
극히 일부에서 균을 죽이지 못하는 경우에 병이 될 수 있다.
-(복지부 지침 변경) 복지부에서는 결핵이나 나병으로 진단받고 2주 이상 치료한
사람은 직장 근무를 하여도 좋다고 한다. 즉 강력한 항생제에 의해 치료 시작 2주 만에
전염력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나병 예방주사) 나병도 예방주사가 있다. 이는 BCG 균이나 BCG-Mycobacterium
bovis라는 균으로 결핵균이나 나균에 모두 상호작용할 수 있는 균이다. 우리나라는 생후
4주 전에 BCG 주사를 맞고 있고, 초등학교 5-6학년 때 tuberculin 반응검사를 하여
음성인 경우 BCG주사를 맞는다. 그래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나병 예방주사를
이미 다 마쳤다는 결론이다.


[ 제 4장 산은 ‘산’이 아니다 ]

< 산은 ‘산’이 아니다 >
- 등산은 혼자 다녀야 산에 대한 음미를 제대로 할 수 있다. 누군가가 쓸데없는 잡담을
걸어온다든지 혹은 동행이 있어 걸음의 템포를 맞추기 위해 괜한 신경을 쓰다보면
심신이 그만큼 피곤하게 된다. 산에서는 역시 산보다 더 다정한 친구도 없다. 사범학교
시절에는 무던히도 산을 좋아 했었다. 그때는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풍파가 삶을 온통 혼란에 빠뜨렸던 어려운 시기였다. 바로 그런 때, 물론 지금도 가끔
그렇지만, 어려운 때에 나를 정답게 받아 줄 대상은 하느님과 산밖에 없었다. 하느님과
산은 공통점이 있었으니 이를테면, 오를 때는 몸이 무거워도 내려올 땐 마음이 가벼웠다.

-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고(思考)의 능력만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언덕이
있는데 거기서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 바로 슬픔이나 가난이나 병 같은 아픔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고통과 눈물을 통해서 인간은 넘을 수 없는 산을 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산’을 넘고 있는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산을 타는 사람들은 과연 ‘산’을
넘고 있는가. 아픔을 모르는 이에겐, 산은 ‘산’이 아닌 것이다.

< 꼽추 소녀의 깨달음 >
- 어떤 꼽추 아가씨가 있었다. 소녀는 자라면서 세상을 더욱 저주하게 되었고 온전치
못한 자신의 육체를 바라볼 때마다 부모를 원망하게 되더니 성질도 더 포악하게 되었다.
부모가 많은 고생을 했으나 약이 없었으며 소녀는 자신을 가리켜 ‘인간쓰레기’라며
학대하고 있었다. 그녀가 열여덟이 되는 해였다. 어느 날 성당의 수녀님이 찾아와서는
아가씨를 데리고 넝마주이들의 일터로 갔는데 거기에서 꼽추 아가씨는 참으로 놀라운
세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쓰레기장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결코 버려야 할
쓰레기가 아니라 아주 소중한 자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아가씨는 버려진 쓰레기가
가난한 이들의 학비가 되고 약값이 되며, 또한 생명의 양식이 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는 쓰레기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 그것은 깨달음이었다. 바로 그 시간부터 꼽추 아가씨는 자기가 더 이상 ‘인간쓰레기’가
아니라 이웃에게 사랑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어린 장애인들을 모아 돌보았는데 죽을 때까지 이웃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어떤 장애인이라도 세상에 불행한 인생은 없다. 다만, 자신을 천하게 바라보면 불행한
인생이 되지만 귀하게 바라보면 틀림없이 행복한 인생이 된다. 연꽃은 절대로 맑은 샘물
에서는 피지 않는다.

< 용서 없이는 희년 없다 >
- 하느님께선 절대로 필요 없는 고통을 우리에게 주시지는 않는다. 내 편에선 참으로
억울하고 답답하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그러나 하느님께선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통해서 당신께로 가까이 다가오기를 원하신다. 나는 정말 치악산에서 얻은 그
깨달음 때문에 고질적인 십자가였던 누군가를 진정 용서했으며 그리고 미움의 감옥에서
비로소 해방될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너나없이 미운 사람이 있고 또 성가신 십자가가
있기 마련이다. 하나를 용서하면 또 다른 미움이 생기고 하나의 십자가를 짊어지면 또
다른 십자가가 나타나서 우리를 괴롭히지만,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미움 때문에,
그리고 바로 그 십자가 때문에 내 인생의 의미가 계속 올바르게 밝혀지는 것이며 그리고
바로 그것들 때문에 하느님께 참 영광을 드리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누구를 미워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내 십자가는 과연 무엇인가? 그를 용서하고 그 십자가를
용기 있게 짊어짐으로써 희년(2000년 대희년)의 성문을 활짝 열도록 하자.

< ‘산’을 모르면 인생은 노동이다 >
- 고통은 악이다. 가난이나 병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성서를 보면 그것들은 필요악
(必要惡)이다. 좀 애매한 표현이지만, 더 큰 선을 드러내기 위해선 악이 절실하게 요청
되는 것이다. 인간은 매를 맞을 때 제 정신을 차리는 지혜를 얻게 된다. 세상에는 이유
없이 얻어맞는 아픔이나 억울함이 많이 있다. 이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다 소중한 뜻과 의미가 있다. 하느님께서는
아무런 뜻도 없이 인간에게 아픔을 허락하시지 않는다. 이를테면 산에 오를 수 있는
발판을 주신다는 것이다. 산을 모르면 인생은 노동이다.

< 얻어맞은 얘기 >
* 인물, 사건/ 키워드 : 어머니에게 장작개비로 맞음, 군대 선임하사에게 곡괭이 자루로
맞음, 신자들에게 말로써 얻어맞음/ 남을 때리다 보면 결국은 매가 자기에게 돌아온다.

< 인생은 노동이 아니다 >
- 새해의 의미는 매년 남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시작과 끝(인생도 포함)은 우리가 맘대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해를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만 축복일
뿐이지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는 결코 축복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축복의 눈을 떠야 한다. 인생은 정녕 노동이 아니다. 고역도 아니다. 사는 것이 좀 고생
스럽다 해서 인생이 또 짐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인생은 허무인데, 그럴 수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물론 힘든 것이 사실이요 때로는 걸어갈 길이 고달프긴 하지만
그러나 인생은 누가 뭐라 해도 축복인 것이다. 오히려 그 힘든 일 때문에 더 보람 있고
값진 인생이 되는 것이다. ...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새해의 인사말은 흔히 부귀와
장수를 말하지만, 그러나 그 복이란 세월이 지나면 금방 사라질 허무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복은 비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고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보물을
말하는데 그것은, 세상을 축복으로 바라보는 아름다운 눈을 말한다.

< ‘두려움’이라는 은총 >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주를 할 때, 모세가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 할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바오로가 주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할 때도 두려움이
있었다. 한마디로 두려움 없이는 하느님의 은총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천주교회에서
지극한 정성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리아의 생애도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때는 오로지
두려움의 연속일 뿐이었다. 이런 것을 바라볼 때, 은혜와 축복의 길은 두려움을 거치지
않고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하느님의 섭리인 것이다. 따라서 성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계속해서 우리에 당부한다. 그러나 두려움을 떨구는 데에는 사실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

- 인생은 어렵게 보여도 어려운 것이 아니며 슬프게 보여도 결코 슬픈 것이 아니다.
세상이 무너져도 어떻게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서 사람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우리를 억누르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질병과 재난이 우리를
또 짓누른다. 인생은 그래서 ‘고(苦)’라는 굴레를 계속 맴돌게 되지만 그러나 진정한
생의 발전은 바로 ‘고’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 세상이 ‘좋다’는 것은 사실 벗겨
보면 지나가는 것이요 또 결국은 모두 허무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싫다’는 것은
그 실체를 깨닫고 나면 다 소중한 것이요 또 우리 인생을 밝게 빛내 주는 보물인 것이다.
그걸 모른다면, 그는 ‘삶’도 그리고 ‘믿음’도 여전히 모르는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만다.
진정한 보물은 ‘두려움’으로 포장되어 있다.

< 고통이라는 용서의 약 >
- 세상은 사실, 있는 자들과 건강한 자들에 의해 계속 파괴되어 왔다.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도 그들이며, 사치다 낭비다 해서 방탕한 생활로 윤리 도덕을
깨뜨리는 주범들도 역시 그들이다. 그런데 이 망조가 든 세상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과 에너지가 바로 약자들의 고통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의 육신에 고통은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고통은 그 자체로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에
인간의 육신에 고통이 없다면, 인간의 수명은 짧아지며 세상이 고통에 없다면 인류
역사가 미래를 향해서 전진할 수 없는 것이다. 망해도 벌써 망했다는 것이다.

- 인생은 고역이 아니고 세상은 또 모순도 아니다. 물론 악인들이 힘을 갖고 위세를
떨치며 세상을 짓밟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선인은 늘 악인에게 당하면서
애매한 고통 때문에 눈물 흘리며 몸부림치는 억울함도 만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 자체가 모순이 될 수 없으며 악이 승리자요 선이 패배자는 더더욱 아닌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한다. 순전히 외향만 보고 ‘이것이 진실
이다’, ‘저것이 행복이다’하고 논하고 있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은 내면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억울하게 당해보고 또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체험하기 전에는 세상 자체가 지니고 있는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다.
세상은 죄악이 창궐해도 용서받으며 전진하는 것이다.

< 당신의 안테나는 ... >
- 사람은 저마다 고유한 수신 ‘채널’을 가지고 있고 또 자신만의 독특한 안테나를
사용하기 때문에 같은 말이라도 들리는 감각과 듣는 판단이 서로 다르게 된다. 특히
자기에서 어떤 콤플렉스가 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안테나의 반응이 아주 예민해서 누가
그 내용을 살짝 건드려도 이내 날카로운 반응이 나오는데, 이때 나타나는 반응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게 된다. 나의 콤플렉스는 무엇인가? 어떤 내용을
말할 때 자존심이 상하고 무슨 말을 할 때 듣기가 민망스럽고 거북한가? 혹 누가 듣기
거북한 얘기를 내개 말할 때 내 안테나를 조절하는 지혜를 길러야 겠다.

< "예수님, 제가 이런 곳에서 삽니다!"
* 인물, 사건/ 키워드 : 덕이 할머니(86세), 숭녕 할머니(80세), 오봉 할아버지(78세),
병홍 할아버지(63세)/ 소록도에는 못 말리는 분들이 많아서 은혜도 받고 재미도
많은 곳이다.



# 독서 메모 082 끝.




금주의 독서 메모 083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2.08.15.

[ 책 이름 : 과달루페의 성모 ]

- 편찬 : 메리놀회
- 편역인 : 임찬원
- 펴낸데 : 성 황석두루가 서원, 출판일 : 1995년 5월 10일(4판), 188p
- 내용 : 멕시코의 '테페약'산 에서 발현한 '과달루페의 성모'에 관한 이야기



[ 책을 펴내며 ]

- 가톨릭 신자들에게 성모님의 공경심을 더욱 불러 일으킨 것은, 지난 수세기에 걸쳐
세계 도처에서 있었던 성모의 발현과, 그 발현을 통하여 우리에게 내리셨던 메지지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세상에서 기적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성모의 발현이야말로
성모님이 직접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증표이며 성모님을 통하여 이룩하신 하느님의
신비의 역사로서, 우리에게는 더없는 기쁨이며 믿음의 산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소개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근세에 있어서 성모님의 발현이었다고 할 수 있는 '과달루페'
의 성모에 관한 것이다. 멕시코 '테페약' 산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파티마'와 '루르드'
에 있은 성모의 발현보다도 약 300년 앞서 일어난 것이며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개종(大改宗)을 낳는 기적의 역사인 것이다. 이 '과달루페'의 성모에 대한
이야기가 책으로 엮어짐으로 해서, 발현에 얽힌 여러 가지 사건들에 관심있는 신자들
에게 유익한 독서의 자료가 되고, 우리에게 향하신 성모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메리놀회 조영호 수사)


[ 머리말 ]

- 성모의 발현이라면, 우리 신자들은 우선 1858년의 ‘루르드’와 1917년의 ‘파티마’에
있었던 발현을 연상하게 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서적, 영화 등의 여러 전달 매체를
통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성모마리아의 역사적 시대의 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는 1531년의 멕시코 테페약 산에서 일어났던 과달루페의 성모의 발현에 대해
서는 한국에 소개된 책자도 없었고 그에 대한 사실을 알고 있는 신자들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역사상으로 볼 때, 과달루페의 성모의 발현만큼 한 민족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을 없었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발현이 있는 후 7년 만에 당시 멕시코
인구의 거의 전부에 해당하는 8백만 명 이상이 가톨릭 신자로 개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오늘 날 멕시코는 가톨릭국가로서
인구의 9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이다.

- 성모님이 멕시코 인디언 ‘요한(후안) 디에고’에게 발현하신 것은 멕시코인들이 정복자
들에 의해 온갖 핍박과 설움을 당하던 때였다. 아메리카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멕시코에
성모님이 발현하신 이유는 그 전체의 신대륙을 하느님의 땅으로 선언하시기 위해서였다.
당시의 이 신대륙은 지금처럼 국경이 없었다. 성모님은 대륙의 모든 민족을 당신의 백성
으로 선언하셨을 뿐만 아니라 당신을 믿고 따르는 것이 진정한 구원의 길임을 선포하셨던
것이다. 이 과달루페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인간들에게 보여 주신 성모님 사랑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이 책을 엮으면서 인간의
어리석음, 믿음의 나약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작은 책자가 성모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신자들에게 다시 한번 당신 구원의 손길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편역자 임찬원)


[ 1. 성모의 성화(聖畵) ] - 테페약 언덕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의 모습

- 멕시코 변두리에 위치해 있는 과달루페의 성모를 위해 세운 대성당 안에 450년 동안
보존되어 오고 있는 성모 마리의 그림에는 작가의 서명이 없다. 인간이 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는 증거를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이 세상 사람에 의해서 그려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명백하다. 이 신비의 그림은 역사적 사실에서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있고 과학적 조사에 의해서 입증된 것으로서, 성모 마리아께서 실제로 인간에게
발현하셨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이 그림은 하늘 나라에서 마리아를 통해 직접
인간에게 전해진 것으로서, 우리가 성모 마리아의 사랑을 증거할 수 있는 유일한 증표
이며, 오랜 전통으로 교회가 인정해 오는 기적의 표상이다.

- 1531년 성모님이 멕시코에 발현하신 때에 아메리카 대륙은 국경이 없었다. 당시는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지 반세기도 채 안되었던 때였다. 유럽의 정복자와 원주민들
사이에는 싸움이 끊일 날이 없었고, 뚜렷한 국가도 없었다. 멕시코 변두리에 있는 테페약
(Tepeyac) 산에 과달루페의 성모가 발현하신 것은 ‘성모의 원죄없으신 잉태 대축일’을
전후해서였다. 발현하신 날짜는 12월 9일에 두 번, 10일에 한 번, 그리고 12일에 두 번
이었다. 또한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를 전달받은 사람은 57세나 된 늙은 아즈텍 인디언
이었다. 성모님이 발현하신지 약 450년이나 지난 지금도 발현 장소에 세워진 대성당에
는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의 성모 기적의 성화를 보려고 테페약 언덕을 오르고
있다. 성모의 발현 후, 백여 년 동안 이 성화는 완전히 노출되어 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친구(親口)까지 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1647년 이후 멕시코시의 당국자
들은 성화의 훼손을 막기 위해 유리로 덮어 나무 액자 속에 보호해 왔다. 오늘날 이 성화는
금.은.동 등 세가지 금속을 합금하여 만든 훌륭한 액자 속에 보관되고 있고, 그 액자는
과달루페의 성모를 위해 거대한 현대식 건물로 신축한 대성당의 제대위에 걸려 있다.



(책의 표지에 있는 과달루페의 성모 성화)


[ 2. 요한 디에고(Juan Diego) ] - '테페약' 언덕에 발현하신 성모님을 뵈신 분

- 멕시코의 ‘쿠아우티틀란’이라는 작은 마을에 ‘요한 디에고(세례명)’라는 가난한
인디언이 살고 있었다. 요한 디에고는 부지런한 농부였다. 그는 인디언중에서도 천한
계급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지독히 가난한 생활을 했고 흙벽돌과 옥수수대로 지은
집에는 방에 창도 없고 드나드는 입구만 있을 뿐이었다. 키는 작은 편이었고 얼굴은
당시에 영국인들이 정착했던 북아메리카 인디언보다 못생긴 편이었다. 기질은 매우
호전적이었으나 햇빛에 그을린 얼굴빛은 보는 이로 하여금 친근감을 자아내게 하였다.
그의 곧은 성격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임을 받을만 했고, 태도와 눈빛 또한 무척
겸양스러웠다. 그의 아내 마리아 루시아의 태도도 겸손했고 행동에는 품위가 있었다.

- 요한과 마리아의 생활은 행복하였다. 그들은 의식을 올리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마을에 나가, 북의 반주에 맞추어 의례적인 춤을 추곤 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행사는
가난한 마을에서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스페인의 수도자들이 그곳에 간 후부터
그런 의식적인 행사가 자주 있게 되었다. 수도자들은 거대한 피라밋 꼭대기나 사람들
에게 잘 보일 수 있는 높은 장소에서 미사를 드리곤 했다. 우뚝 솟은 곳은 인디언들
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고 경배의 마음을 갖게 하기에 걸맞는 장소였다. 또한 그들은
인디언들을 불러 모아서 그들의 풍습에 따라 춤과 노래를 즐기게 한 후,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가르치곤 했다. 그러면서 수도자들은 헌신적인 행동으로써 그들
에게 좋은 표양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스페인의 군인들과 귀족들은 그들의 신의를
저버리고 남용하였다. 인디언들은 그들의 잔악한 행위들을 보면서 두려워하게 되었고
성직자들 조차도 믿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수도자들은 인디언들과 똑같이 가난한
생활을 해가며 모범적인 행동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전하려했다. 인디언들의 마음에도
점차 두려움이 사라져 가면서 그들은 수도자들을 믿고 따랐다. 그리고 마침내 수도자
들을 찾아와 세례받기를 청하게 되었다. 최초로 세례 받기를 청한 자들 가운데는 요한
디에고와 마리아 루시아도 함께 있었다. 인디언들이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것은 스페인
인들이 멕시코에 건너간 후 3년이 되어서였다.

- 그들은 세례를 받은 후로는 규칙적으로 미사에 참례했다. 그것은 보통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는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그곳에는 성당이 없었고 약 40마일(40리) 떨어진
프란치스코회 수도원뿐이었다. 그리고 그곳까지 가자면 험한 길과 테페약이라는 산을
넘어가야만 했다. 인디언들은 어릴 때부터 걷는데 익숙했지만 그곳까지는 세 시간
이상 걸리었다. 오랫동안 요한 디에고와 마리아 루시아는 미사에 빠지는 때가 없었다.
그러나 마리아가 열병에 걸려 죽자 요한 디에고는 홀로 미사를 가야만 했다. 작고
초라한 집이었지만 행복했던 그 가정에 이제 쓸쓸히 혼자 남아 있게 되었다. ... 세월은
흘러갔지만 요한이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을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의 나이
쉰 다섯이 되었다. 그는 매우 쓸쓸해 보였으며 늘 말없이 살고 있었다. 미사에는 빠짐
없이 참석했고 신앙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정말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경배하려
했으며 아침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별이 지기 전에 테페약 산을 넘어가곤 했다.

- 더 이상 그의 아내가 없는 집에서는 혼자 살수가 없어 숙부가 사는 곳(톨페틀락)으로
이사했다. 그는 숙부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산기슭에 아담한 집을 한 채 지었다.
숙부의 집까지는 5분도 안되는 거리여서 그들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숙부 요한
베르나르디노는 요한 디에고와 똑같이 세례를 받은 독실한 신자였다. 그는 늘 아버지
처럼 요한 디에고를 보살펴 주고 있었다. 12월 9일 토요일 아침 일찍이 요한 디에고는
미사에 가기 위해 테페약 산을 넘고 있었다. 그는 길을 가면서도 쓸쓸한 마음으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었다. 그의 가죽 샌들은 돌에 ��기어 구멍이 났고 발은 상처
투성이었으며 차가운 겨울바람이 허름한 옷사이로 매섭게 파고 들었다. 그곳은 언제나
황량한 불모지였다. 그는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추어 섰다. 왜냐하면
그 쓸쓸하던 곳이 아름다운 음악소리로 가득차 있었고 새벽의 어두움은 환한 빛에 밀려
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산 위에서 그를 부르는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 왔다.


[ 3. 안토니오 발레리아노 ] - 테페약의 성모님 발현 사건을 기술

- 안토니오 발레리아노는 요한 디에고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역대기 작가다. 그는
몬테즈마 왕가의 후손이었고 이름 있는 학자였다. 발레리아노는 요한 디에고가 늘
다니던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후에 그는 멕시코 제국의 여러
학자들 사이에 명성을 떨쳤고 그의 업적은 식민지 시대에 인디언들이 이룬 업적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었다. 그는 연설가로서의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사제들은 그의 천부적 재능을 개발시켰던 것이다. 그는 수도원의 원만한 환경에서
공부하며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나 발레리아노가 당시에 기술했던 요한 디에고와
성모의 발현에 관한 이야기는 그 문장 자체로는 그렇게 훌륭한 것은 아니었으며
현대에 와서 다시 많은 수정을 가하게 되었다. 발레리아노가 테페약의 사건을 기술한
얼마 후 ‘라스텔라베’ 신부가 발레리아노의 이야기를 보다 함축되고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으로 번역하였다. 여기에 기술하는 이야기는 그의 번역문을 근거로 한 것이다.

- 요한 디에고가 테페약 산에 이르렀을 때 새벽의 어두움은 환한 빛에 의해서 물러
갔고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희귀하고 신기한 새들의 노래였다.
요한 디에고는 멈추어 서서 주위를 살피며 혼자 중얼거렸다. ‘방금 들은 노랫소리는
정말 아름다웠는데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내기 지금 있는 곳은 어디지?
여기가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지상낙원인가? 벌써 내가 천국에 온 것일까? 천상의
노랫소리가 들려온 동편 언덕을 바라보며 주위를 살피고 있을 때 갑자기 조용한
가운데서 “화니토, 후한 디에귀토”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서슴없이 그 음성을
쫓아갔다. 그는 마음속으로는 크게 놀라고 있었지만 언덕위로 올라가면서 한편으로는
무척 기쁜 마음이었다.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그는 거기에 홀연히 서 계신 한 부인을
보았다. 그는 부인이 서 있는 가까이에 이르자 그 주위에 초현실적인 무엇이 감돌고
있음을 느끼고 깜짝 놀랐다. 부인은 태양같이 찬란한 의복을 입고 있었고, 부인이
서 있는 바위는 보석처럼 빛났으며, 주위에 무지갯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는 곧 부인
앞에 엎드려 부인의 말을 들었다. 부인의 말은 온화하고 친절했으며 태도에는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 그 부인이 “어디로 가는 길이냐” 하고 물으시자 요한 디에고가 “성당에 가는 길
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부인은 곧 당신의 숭고한 뜻을 드러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사랑을 받는 자여, 너는 내 말을 명심해 듣도록 하여라! 나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느님의 어머니 성 마리아다. 나는 너희가 나의 사랑, 나의 자비, 나의
구원과 보호를 증거하기 위해 이곳에 하루 바삐 성당을 세우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믿으며 나의 도움을 청하는 지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의 어머니다.
나는 그들이 탄원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며 그들의 모든 슬픔을 위로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분부를 듣고 멕시코 주교관에 가 이 언덕 위에 나를 위한 성당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밝히고 그것이 나의 간절한 소망임을 전하도록 하여라. 네가
보고서 놀란 일도 모두 아울러 전하여라. 나의 뜻도 확실히 전하여라. 나는 너희가
겪는 어려움과 내가 명한 일을 달성하기 위해 겪는 노고를 경사가 되게 할 것이다.
지금 너는 멕시코 주교관으로 가서 나의 분부대로 하여라.” 부인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그는 절을 하고 “마나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비천한 종 떠나겠습니다.”라는 인사말을
한 후 곧 바로 멕시코로 가는 둑길로 떠났다.

- 요한 디에고가 성모님께 경건하게 경배를 드리는 순간 하늘의 여왕은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에 영광의 빛에 휩싸여 테페약 산을 떠나시었다. 성모님은 그를 택하
시었고 당신의 높은 뜻을 주교관에 가서 전하라고 분부하셨다. 그는 성모님의 뜻을
저버릴 수 없었다. 요한 디에고가 간 길은 북쪽 길이었다. 그는 너무나 초라한 옷을
입고 걸음걸이는 몹시 지척거렸다. 그는 자신이 매우 비천한 신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였지만 신성한 임무를 맡고 있다는 확신 감으로 용기를 내어
견디어내고 있었다. 그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시내로 들어가 주교관으로 향했다.
주교관은 멕시코시 중앙공원 ‘조갈로’ 에 있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그는
용기를 내어 주교관 문지기에게 주교님을 뵙게 해 달라고 청했다. 그는 무표정하게
요한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문지기는 주교가 그를
만나기를 허락했다고 전해주었다.


[ 4. 주마라가(Zumarraga) 주교 ] - 성모 발현 당시 멕시코시의 초대 주교

- ‘주마라가’는 멕시코 초대 주교였다. 그는 귀족의 아들로서 ‘두랑고’ 마을에서 자랐다.
그는 젊었을 때 수도자가 되었고 처음에는 아빌라의 프란치스코 수도원의 원장신부로
있었다. 다음에는 ‘브르고스’의 성 세바스찬 수도회 원장신부로 있었다. 그는 이 두
수도원에서 젊은 날을 보냈다. 1527년에 그는 다시 또 다른 수도원 ‘아브로호’의 원장
으로 갔을 때 스페인 왕과 성주간을 함께 지낸 일이 있다. 그때에 그는 왕으로부터
많은 하사금을 받았는데 그 모든 돈을 수도원 부근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
버렸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성청으로부터 멕시코의 초대 주교로 임명(1528년 12월)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멕시코에서 살면서부터 인디언들에게 사도적 열성과 사랑을
보여 주었다. 인디언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들에게 가장 강경하게 대항한 인물이었다.

- 요한 디에고는 넓은 초원을 가로질러 험한 산을 가는데 익숙했었다. 그러나 그가
험한 산길을 가는 다리의 아픔보다 정복자들의 수도로 가야 한다는 두려움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주교관은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주변의 건물들은 그에게
위압감을 주었다. 그리고 주교관 정문에서 그를 쏘아보며 수상히 여기던 문지기의
눈초리도 그에게 불안과 모욕을 느끼게 하였다. 그는 주교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었다.
그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저는 테페약 산꼭대기에서
찬란한 빛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해가 뜨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만 그것은
성모님이 발현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주마라가 주교는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이상한
이야기를 듣자 부드럽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요한은 그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짓자 더욱 열심히 보았던 사실들을 설명하며 납득시키려 했다. 주마라가는
그의 말을 다 듣고 난 후 약간 어색해하며 요한의 말을 수긍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언젠가 내가 보다 한가한 시간이 있어 당신 말을 들을 수 있게 되면 다시 한 번 이곳에
찾아오시오. 당신 말을 신중히 숙고해 보겠소. 그리고 이곳까지 찾아온 당신의 열성
어린 마음과 그 요구를 신중히 생각해 보겠소.” 주마라가 주교는 인디언에게 물러가라는
손짓을 했다. 요한 디에고는 자신의 사명이 완전히 좌절되었음을 깨닫고 침통한 표정
으로 물러나왔다. 그는 서둘러 테페약으로 가는 북쪽 들길을 갔다.


[ 5. 요한 디에고를 의심하는 주교관 사람들 ]

- 요한 디에고는 테페약 언덕 위에 이를 때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슬픈 마음이었지만
산 위로 올라 가면 하늘의 여왕이 기다리고 계시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좌절감에 빠져 있던 그에게 그러한 확신감이 있어 산을 다시 오를 수 있었다. 산
정상에 서 계시는 성모님의 모습을 보자 황급히 뛰어가 그분 앞에 엎드렸다. “성모님!
저는 분부하신대로 주교관에 가서 성모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주교님을 만나기까지
어려움과 고통을 격었지만은 마침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 그분은 이곳에 성모님을
위한 성당을 지으시려는 당신의 소망을 제가 꾸며낸 말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성모님의 실제 분부임을 믿지 않고 계셨습니다. 그러니 성모님, 성모님 말씀을
전달해서 그분이 신뢰할 만한 사람, 덕망있고 명예있는 훌륭한 인물을 택하셔서 주교관에
보내십시오. 저는 본래가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이며 하늘의 여왕이신 성모님의 사신이
될 인물이 못됩니다. 그리고 저는 주제넘게 주교관에 찾아가 성모님의 실망과 심려만을
더하였습니다.” 모두 단념하고 조용히 성모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성모님의 말씀이 있기도 전에 상처받은 마음이 평화롭게 치유됨과 성모님의 사랑과
동정을 느낄 수 있었다.

- “잘 알아듣도록 하여라.” 성모님은 다시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로 말씀을 시작
하셨다. “너는 나에게 많은 사자들과 천사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나는 그들을
시켜 나의 말을 전하게 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너를 선택한 것은 네가 나의 청을 받아
들여 너의 중재와 도움으로 나의 뜻이 이룩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진정으로
내가 나의 뜻을 받아들여 다시 내일 주교에게 갈 것을 명한다. 그리고 주교관에 가서
나의 말을 전할 때도 나의 이름을 들어 말을 하고 내가 요구하는 성당의 건립이 그가
수행하여 마땅한 나의 뜻임을 강조하여 말하여라. 또한 너를 보낸 이가 하늘의 여왕
이신 성 마리아라고 말씀하셨다는 것도 밝히도록 하여라.” 요한 디에고는 다시 힘과
용기가 솟아났으며 큰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기쁜 마음으로
말씀을 전하러 가겠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는 성모님께 절을 한 후 곧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나 마을의 집으로 돌아갔다.

- 다음 날(12월10일) 은 주일이었기 때문에 일찍이 일어나 미사를 드린 후 교리
가르침을 들었다. 그리고 그는 곧 멕시코시로 출발했다. 일요일이면 여러 곳에서
많은 신자들이 그 수도원에 왔다. 그리고 그들은 미사가 끝났을 때 곧 바로 자기
마을로 돌아가지 않고 성당 앞 뜰에 큰 십자가상 밑에 모여 서로 안부와 소식을 묻고
관심있는 일들을 상의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요한 디에고는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좀더 신중히 생각해야
했다. 주교관 하인들을 다시 만난다는 생각은 몹시 두렵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하인들은 그를 밀어내면서 주교가 그를 만날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그들 앞에서 물러나 성모님께 다시 기도했다. 자신의 틸마로 몸을 감싸고 그는 주교관의
앞의 뜰에 앉아 있으면서 틈틈이 가서 들여보내 달라고 청했다. 그가 괴로운 심정으로
기다리는 동안 하인들은 무관심한 표정으로 그의 앞을 지나다녔다. 그는 굽히지 않고
끈기있게 기다렸다. 마침내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마지못해 하인들은 주교가 그를
잠시 만나보겠다고 허락했음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 요한 디에고는 모든 수모를 잘 참아내고 있었지만 막상 그 어려운 시간이 지나가고
주교 앞에 서니까 말을 못할 정도로 설움이 복받쳤다. 그는 말을 하려고 하였으나
도저히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었고 눈물만이 나올 뿐이었다. 마침내 그는 주교의 발
아래 엎드려 울먹이며 테페약의 성모님 말씀대로 성당을 세워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하였다. 본래 절제없는 행동을 몹시 싫어했던 주마라가 주교는 떨떠름한 태도로
요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엄격하고 단호한 어조로 요한을 꾸짖으며 그런 터무니
없는 이야기나 부질없는 재촉은 무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만일 그 말씀을 믿게
하려면 분명하고 조리있는 말로써 설명하고 질문에 신중하게 답하라고 말했다. 요한은
다시 신중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나서 정중하고 공손한
태도로 주교의 말에 서슴없이 대답했다. 이미 말한 사실들을 되풀이하면서도 조금도
이상이 없었고 여러 가지 반대 질문에도 조금도 혼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분명
하고 확신에 차있는 말로 성모님을 만나 뵙고 대화한 일을 거듭 상술했다. 성모님의
모습, 서 계신 장소의 초자연적 현상들과 그분의 분부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그를 보내신 분이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라고 말씀하신 사실도 강조했다.
그분이 자기를 택하신 이유와 그분의 심부름꾼으로 그 임무를 수행할 책임을 느꼈다는
사실까지 설명했다.

- 조금도 동요없이 말하는 것을 본 주마라가 주교는 그 인디언의 말이 매우 진지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믿지 않고 그가 어떤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반가운
표정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부드러운 태도로 다시 한 번 주교관을 찾아오라고 일렀다.
그리고 다시 올 때에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물로 하늘의 여왕이신 성모 마리아의 표적을
하나 가져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주교관에서는 신임하는 하인들을 몇 명 불러
들여 그 인디언을 뒤쫓아가도록 하였다. 그 인디언이 어느 곳으로 가서 누구를 만나며
어떠한 대화를 하는가를 알아오도록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테페약
산과 들이 접하는 곳에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곳에 놓여진 다리에 가까이 이르자
요한이 갑자기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 요한 디에고는 자신을 의심하며 미행했던 자들로부터 자기를 보호한 그 안개는
성모님이 보내주신 것이었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테페약에서 성모님의
주위를 에워쌌던 안개였고 그를 보호한 후로는 곧 사라져 없어진 것이었다. 잠시 후
그의 앞에는 길이 다시 나타났고 그 안개는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테페약 언덕 위에
안전하게 도착한 그는 다시 성모님을 만나게 되었고 지금까지 겪은 일을 낱낱이 말씀
드렸다. 성모님은 그의 말을 들으신 후 더욱 온화하고 사랑스런 말씀으로 그에게
위안을 주셨다. “만일 그러하다면 주교가 요구한 분명한 표적을 보여 주도록 할테니
내일 다시 이곳에 오너라. 네가 그것을 가지고 간다면 다시는 너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며 너의 참된 믿음을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네가 겪는 고통에 보상을 내릴
것이다. 나는 내일 이곳에서 다시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 6. 성모의 메시지와 베르나르디노의 치유 ]

- 요한 디에고가 마을로 돌아오자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숙부를 만나보러 잠시
집을 들러보니 숙부 베르나르디노가 몹시 앓고 있었다. 그는 코콜리스틀래라는 열병에
걸려 있었고 몹시 위독한 상태였다. 요한 디에고는 마을의 의사를 불러 왔고 모든
치료법을 다 동원하여 치료하여도 그의 치명적인 병은 고칠 수가 없었다. 그 노인은
조카 요한을 불러 날이 밝는 대로 프란치스코회 신부를 데려와 달라고 했다. 그 노인은
마지막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아무런
불평이 없었지만 병자성사를 받지 않은 채로 죽을 수는 없었다. 그날은 12월 12일
이었다. 요한은 첫새벽에 출발하여 곧바로 수도원으로가 가서 신부를 데려오겠노라
면서 환자 숙부에게 위안을 주려고 애썼다. 그가 한 가닥의 희망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제가 고백성사와 마지막 강복을 주는 것 이상의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
이었다. 요한 디에고에게 숙부는 세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친척으로 만일 신부가
그를 살려내지 못한다면 그는 숙부마저 잃게 되는 것이었다.

- 그는 한 순간도 지체할 수 없음을 느꼈다. 만일 성모님과의 약속을 지키러 산으로
간다면, 그분은 주교에게 보낼 표적을 보여 주시려고 자기를 붙잡아 못 가게 하실
것임에 틀림없다. 성모님은 본래의 그 표적을 주시면서 멕시코시로 가라고 하실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숙부는 숨을 거둘 것이다. 요한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숙부가 곧 죽을 것만 같아 더 이상 그곳에서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산의 다른 길을 택하여 가려고 하였다. 그는 오직 병을 고쳐줄 신부들이 있는
곳만을 생각하며 서둘러 갔다. 그러나 성모님은 그를 만나기 위해 산 위에서 내려오시는
길이었고 요한은 산의 중턱에서 성모님과 마주치게 되었다. 성모님이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이냐?” 그는 성모님
과의 약속을 잊고 있었지만 성모님이 그를 생각하시는 마음은 한결 같았다. 그는 곧
솔직한 심정으로 그분에게 모든 일들을 말씀드려야 했다.

- 그가 몹시 안타까워하며 그분의 동정과 이해를 구하는 동안 성모님은 매우 사랑스런
눈길로써 그를 바라보고 계셨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일과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대로
한 행동을 성모님이 모두 용서하고 계심을 알았다. 성모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잘 알아들어라. 요한 디에고. 이제 네가 걱정할 일은 없다. 조금도 근심하지 말아라.
너의 숙부님 병도, 그밖에 너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네
곁에 있지 않느냐? 이제 너를 괴롭히며 불안케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진정
으로 나는 네가 네 숙부의 병이 이미 완쾌되었음을 믿기 바란다.” 성모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 그의 마음은 평화를 되찾았고 새로운 힘과 용기가 솟아났으며 숙부의 병이
완치되었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제 그분께서 주시는 표적을 가지고 수도원이 아닌
멕시코의 주교관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성모님은 분명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씀
하셨다. “가거라, 요한 디에고. 네가 나를 처음 만나서 나의 분부를 받던 산 위로
가면 형형색색의 장미꽃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주워 모아 이곳으로 가져오너라.”

- 요한 디에고는 곧 산 위로 올라갔다. 산 위로 가보니 거기에는 카스틸랴 지방의
장미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그곳은 한 번도 꽃이 피지 않았었고 늘 바위와 엉겅퀴,
가시덤불, 선인장 등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12월이면 그런 잡목들마저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꽃이 필 계절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초목은 아예 자랄 수 없는
추운 겨울이었지만 그는 아무런 의심 없이 곧 장미들을 자기 틸마에 담기 시작했다.
장미들은 아침 이슬이 맺혀 마치 진주처럼 빛났고 매우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꽃송이들을 꺾어 모은 그는 곧 산으로 내려와 성모님께 가져갔다. 성모님은
그가 가져온 꽃송이들을 보시자 손수 그의 틸마에 꽃을 다시 가지런히 다듬어 주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한아, 장미꽃이 네가 주교에게 가져 갈 표적이다.
너는 이 꽃을 그에게 가지고 가 나의 뜻을 깨달아 그것을 실행해야 한다. 어떤 말도
보태어 하지 말며 네가 보고 들은 사실만 말하여라. 내가 그 산으로 보냈다고만
말하며, 네가 그곳에 가서 장미를 발견하고 놀란 사실만을 말하여라. 그러면 너는
그를 믿게 만들 것이며 내가 요구한 성당이 세워지는 날까지 그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말씀을 마치신 후 성모님은 곧 요한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셨다.

- 그는 주교관에 도착해 집사장과 하인들을 불러 주교님을 뵙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는 누구도 그렇게 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지만 그가 끈덕지게
졸라대며 자기네들을 괴롭히리라는 짐작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를 될 수
있는 대로 오랫동안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가 머리를 떨구고 사정하는 동작을
보다가 그의 틸마에 무엇인가 조심스럽게 싸서 가지고 왔음을 알고 다가와 빼앗
으려 했다. 하인들은 그것을 보려고 그를 밀치고 당기고하며 갖가지로 괴롭혔다.
하인들은 그것이 상당히 많은 카스틸랴 장미꽃임을 알자 무척 놀랐다. 그때가 꽃이
필 계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꽃이 활짝 피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웠고
감미로운 향기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놀랐다. 몹시 탐이난 그들은 그것을
빼앗으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당황한 나머지 그들은 주교에게 달려가 그
인디언이 무엇인가를 가져와서 그를 기어코 만나고자 한다고 전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주교는 그것이 그가 인디언에게 요구했던 표적이려니 했다. 그는 곧 하인들
에게 요한 디에고를 데려오게 하였다.

- 요한은 접견실에 들어서자 허리를 굽힌 채로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자기가
본 일을 이야기 하였다. “주교님, 먼젓번에 저에게 요구하신 그 표적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하늘의 여왕이시며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 마리아께 그 말씀을 믿으시게
하려면 주교님께 어떤 표적을 가져가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모님은 제 청을
들어주셨고 그 표적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모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받아 주십시오.” 그때까지 요한은 틸마에 싸서 조심스럽게 들고 있던 장미를 펼쳐
보였다. 그러자 꽃송이들은 다채로운 색깔과 온갖 향기를 풍기며 폭포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다시금 꽃송이를 보는 요한의 마음은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는 정말
고귀한 물건을 전달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 사명을 완수했던 것이다. 그는 믿음
으로 가득차 있었고 바로 성인처럼 ‘나는 훌륭히 싸웠고 임무를 완수했고 믿음을
지켰다.’고 말할 수가 있었다. 그 순간이 요한에게 있어서는 그때까지의 처량하고
고달픈 일생에서 가장 영광스럽게 느껴졌다.

-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발아래에 떨어진 꽃송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주교는
그 장미꽃보다 더 큰 일에 놀라는 중이었다. 주마라가 주교는 자리에서 내려와
요한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주교의 입술은 떨리고 눈물 고인 눈은 장미에 맺힌
이슬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의 변한 시선은 바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경모하는 시선으로 요한의 틸마를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한이 소스라쳐 놀란 것은 방금 그 꽃송이들을 풀어놓은 틸마를 보고서였다.
그 틸마에는 때 묻은 형태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바로 테페약에서 그에게
발현하셨던 그 성모님의 영광스런 형상이 나타나 있었다.


[ 7. 요한 베르나르디노의 증언 ]

- 주교 후안 주마라기는 훌륭한 성직자요 신사였다. 그는 그의 믿음에 뜻밖의 새
사실이 밝혀졌고 새로운 능력의 표시가 드러나자 요한의 무릎 앞에서 일어서면서
요한의 두 손을 잡고 진정으로 사과를 했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요한을 의심했기
때문에 요한이 겪은 고초에 대한 사과였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는 확실한 표시
였다. 그는 요한을 가장 명예로운 손님 대접을 하며 하룻밤 묵도록 하였고 다음날
성모님을 위한 성당을 지을 장소에 함께 가자고 약속했다. 주마라기는 요한에게
사과를 하며 그의 방문에 깊은 환영의 뜻을 표한 후 곧 허리를 굽혀 요한의 목에서
그 틸마의 매듭을 풀었다. 그리고 그 성모님의 성화를 자기 개인 기도소인 소성당
으로 가지고 갔다. 그것은 그가 보다 깊이 성모님에 대한 경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주교관 하인들도 곧 주교의 행동에 따라서 요한의 그 찬란한 틸마
앞에 무릎을 꿇었고 깊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성모님 성화에
대한 그들의 경외심과 찬미가 진심에서 우러난 자발적인 것이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 다음날 주교가 요한 디에고에게 출발하자고 할 때 비록 불편한 하룻밤이었지만
주교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동행하는 주교관 사람들의 규모는 대단했고 그 행렬의
중요성은 매우 의미 있는 것이었지만 그는 조금도 위축됨이 없었고 오히려 그의
행동은 자유스러웠고 낯익은 땅으로 간다는 기쁨이 그의 얼굴에 서려 있었다. 그날은
길에 안개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늘은 맑았고 태양은 길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테페약 산꼭대기에 도착한 요한과 일행은 곧 성모님이 서 계셨던 곳으로 갔다. 요한이
그 지점을 지적하자 주마라기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의 말을 받아들었다. 그는
그곳에서 성당을 세울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적으로 암자 같은 소성당을
세우는 것이 성모님의 뜻에 따르는 가장 알맞은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성모님이
발현하신 장소를 지적해 준 그는 자신의 임무가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조용히
주교 앞으로 가서 집으로 보내달라고 겸손하게 청했다. 주마라가 주교는 기꺼이
승낙하였다.

- 요한 디에고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잠자코 받아들여 왔다. 그가 숙부의 집에
도착하니 구원의 물결이 또 하나 펼쳐지고 있었다. 숙부가 살아 있음은 물론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다. 침대 위에 앉아 있는 그는 외모로 보아도 건강이 좋아지는 중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듣고 생생한 감흥을 갖고 있었다.
그는 조카와 함께 온 사람들을 진심으로 환영했다. 그 많은 스페인들이 자기 집에
찾아 온 경위를 듣기도 전에 자기 신상에 일어난 흥미진진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요한 베르나르디노는 요한 디에고가 마지막 성사를 줄 신부를 데리러 떠나간 후
찬란한 의상을 입으신 하늘의 여왕님이 나타나셨고 그분이 오신 순간부터 자기 병이
완전히 나음을 느꼈노라고 말했다. 그분은 그에게 조카를 멕시코시로 보내셨음을
알려주시고 그 이유를 설명하여 주셨다. 또한 요한 베르나르디노는 그분이 테페약에서
그의 조카 요한 디에고에게 나타나시어 그의 남루한 틸마에 아름다운 장미들을 싸가지고
주교관으로 보내신 사실마저 알고 있었다. 성모님은 그런 일을 알려 주시면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 테페약 산꼭대기에 성당이 곧 세워지리라는 사실도 알려주셨으며 그
성당에 당신의 성화가 안치될 때 그 성당 이름을 ‘과달루페의 평생 동정녀 성 마리아’
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 요한 베르나르디노는 그 메시지를 주교에게 직접 전해야 했다. 그는 요한과 함께온
사람들에게 그 성화의 호칭을 주교에게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테페약의
성모 발현 장소를 확인한 주마라가 주교는 요한 디에고의 마을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하인들과 함께 멕시코로 돌아왔다. 주교관에 도착한 그는 곧 사람들을 불러들여 그
성당을 짓는 계획에 착수했다. 요한 베르나르디노의 말을 들은 주교관 하인들은 그를
주교관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요한 베르나르디노의 일행이 주교관에 도착하니 주교관
정문 뜰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인들은 곧 그 노인을 접견실로 데려갔다. 주마라가
주교는 그 노인의 증언을 듣고 또다시 놀람을 금치 못했으며 특히 요한의 틸마에 나타
났던 성모님 그림의 칭호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요한 베르니르디노의 증언을 다 들은
주마라가 주교는 그들에게 테페약에 성모님을 위한 성당이 완성될 때까지도 주교관에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으나 그들은 정중히 거절하고 주교관을 나왔다.

- 요한 베르나르디노가 다녀간 날 밤 주마라가는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그 기적의 성모 성화를 자기 개인 기도소에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그 성화를 마음대로 보게 성당으로 옮겨 놓기로 결정
했다. 그 성화는 너무나 많은 신비를 지니고 있었다. 그 틸마는 두 조각의 천을
이어서 만든 것인데 그 이은 솔기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제일가는
화가도 그러한 천위에다 전혀 색을 칠할 수 없었다. 주교는 모든 인디언들이 그것을
볼 때 깊은 감명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성모님께
대한 보다 큰 헌신을 다짐하리라고 확신했다. 정말 그가 생각한대로 그것은 새로운
성모 공경의 시발이 되었다.


[ 8. 과달루페(Guadalupe)의 뜻 ]

- 이 성화를 ‘과달루페의 성모’라고 부르게 된 것은 그 지방의 특유한 문화에서 비롯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 이름이 성모께서 발현하신 장소 이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기적이 일어났던 장소의 명칭은 과달루페가 아니라 테페약(Tepeyac)이었다. 그리고
이 성화 이름은 성모 마리아께서 직접 붙여 주신 것이었다. 최근에 디시 그 사건을
조사한 헬렌 베렌스와 공동 연구반에 의하면 이 성화의 이름은 성모 마리아께서 직접
일러주신 것임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스페인어의 번역문을 논평하면서 헬렌 베렌스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데 과달루페라는 이 말은 본래의 아즈텍어가 아니다. 스페인어
였다. 그것은 스페인어로 과달루페라고 불리던 곳에 성모님을 위한 성당을 세운 명칭
이었고 오늘날까지 그렇게 불러왔다.“

- (과달루페의 성모로 알려지게 된 이유) 기적이 일어날 당시에 주마라기 주교나 다른
어떤 고위 성직자도 성모께서 당신의 성화를 ‘데 과달루페’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신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성모님은 인디언말로 말씀하셨고 당신이 쓰신 말을 결합해 본
결과 ‘데 과달루페’처럼 그들에게 들렸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던 것이다. 아즈텍어로
‘테 콰틀라소페우 (Te Coatlaxopeuh)’는 다음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테(Te)’는
‘돌’을 의미하고 ‘콰(coat)’는 ‘뱀’을 뜻하는 말이다. ‘틀라(tla)’는 영어로 the와 같은
명사형 어미이다. ‘소페우(xopeuh)“는 ’쳐부수다‘ ’박멸하다‘의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이 메시지의 마지막 문장이 본래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그분의 성화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 마리아’로서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과달루페의 의미는 돌뱀을 쳐부수다 또는 박멸하다의 뜻이다.” 성모마리아의 메시지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었다. 당신이 언급하신 돌뱀은 아즈텍인들이 섬기는 날개 돋친
사신 ’퀴트잘코아틀‘임이 분명하다. 이 신은 아즈텍인들이 해마다 2만 명 이상 여자와
아이들을 피의 제물로 바치던 신이었다. 그러나 마리아께서는 그러한 돌뱀의 우상을
물리치시고 그곳을 당신의 지배하에 두셨던 것이다. 또한 이것은 창세기에 예언(창세
3, 14-15)되어 있던 여인을 교회에 확인시켜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묵시록에도 뱀을
사탄으로 인정하고 있다.

-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마리아의 이 메시지 속에는 그 돌뱀이 사탄임을 나타
내고 있다. 당신이 발현하신 후 7년간에 그곳의 모든 인디언들 약 8백만에 달하는
삶들을 완전히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킴으로써 당신을 그들을 돌뱀(사탄)의 지배에서
구원하셨던 것이다. 테페약에서의 성모 마리아의 발현은 뱀을 짓밟는 승리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당신은 그곳을 사탄의 지배에서 해방시킴으로써 당신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하셨던 것이다. 1854년 교황 비오 10세는 12월 8일을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로 제정하였다. 그러나 그 축일이 제정되기 백 년 전에 이미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과달루페의 성모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 마리아로 인정하셨던 것이다. 이
축일을 동방교회에서는 8세기경부터 지키기 시작했고 원래는 12월 9일이었다. 그리고
그날이 바로 요한 디에고가 성모님의 발현을 처음 본 날이니 상당히 의미 깊은 일이다.

- 테페약에서 마리아는 요한 디에고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의 사랑과
자비의 어머니이다.” 이 말씀은 성모 마리아를 자비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로 받드는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과 일치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는 주님의 어머니로서 온 인류의
어머니임을 선언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당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인 것이다. 당신의 활동 목적은 당신 백성을 위협하는 악의 세력을 물리
치시고 그들을 절대적인 선에 이르도록 역사하시는 것이었다.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이룩하신 구속 사업을 우리들이 이어받기 원하신다. 테페약
에서는 당신이 인류의 건강의 샘이시며 현세의 어려운 고통 중에도 위로자이심을 단언
하셨다. 이것이 요한 디에고에게 하신 메시지의 요약이며 현세에 살고 있는 믿는 이들의
소망인 것이다.

- (황녀 ’파판트진‘의 예언) 오늘날 ’틀라텔로코‘는 멕시코시의 유명한 광장 ’조칼로‘
에서 약 1.5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아즈텍 제국 시대에는 그곳은 대단히
중요한 행정의 중심지였다. 이 도시에는 아스텍 족의 전쟁의 신에게 바쳐진 거대한
신전이 있었다. 옛날 아즈테족은 이 신전에서 인신제사(人身祭祀)를 끊임없이 바쳤다.
스페인인들이 멕시코를 정복하기 이전에 틀라텔로코는 아즈텍 제국의 한 공국으로서
당시의 황제 몬테즈마의 여동생 ‘파판트진’ 황녀가 대신하여 그곳을 통치하고 있었다
. 그녀는 이름 모를 병으로 죽었다고 생각했었는데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꿈을 꾸었는데 가까운 장래에 스페인인들이 그곳을 정복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꿈속에서 천사의 말을 들으며 넓은 바닷가에 서 있었다.
그녀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니까 갑자기 커다란 범선이 무수히 나타났다.
범선의 돛은 검은 십자가로 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천사의 이마에 새겨진 십자가와
같은 것이었다. 이 십자가는 후에 과달루페 성모의 브로치 위에 새겨진 십자가와
같은 것이었음이 밝혀졌다. 천사는 그녀에게 그 범선에는 무력으로 그녀의 제국을
정복하려는 사람들이 실려 있으며 멕시코인 들에게 참된 하느님의 신앙을 가져오는
중이라고 하였다.

- 그녀는 그 일을 몬테즈마 황제에게 알렸다. 이 예언적 계시는 10년 후 ’코르테스‘가
멕시코를 공격하였을 때 몬테즈마가 항복한 원인중의 하나가 되었다. 또한 그 천사는
멕시코인들 가운데에서는 그녀가 첫 번째로 물로써 죄 사함을 받게 되리라고 했다.
그녀는 1525년 ’도나마리아‘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
인들은 전쟁의 신의 거대한 신전을 뜯고 그 옆에 성당을 세웠다. 이 성당이 멕시코
최초의 산티에고 성당이며 지금도 남아 있다. 요한 디에고와 부인 그리고 숙부도 이곳
에서 1525년에 세례를 받았다. 요한 디에고가 테페약에서 성모님을 만났을 때 다니던
성당이 바로 이곳이었다.


[ 9. 아즈텍 제국과 스페인의 식민통치 ]

- 스페인 코르테스의 군대는 멕시코에 처음 도착하자, 그 관습이 유럽 문명국가에
비할 만한 민족이 살고 있음을 알았다. 그 민족은 능률적으로 한 연합국가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가장 강한 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정부였다. 이 아즈텍 제국의 영토는
지금의 멕시코에서 온두라스 대서양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방대한 것이었다. 제국의
정부 형태는 유럽의 국가와 근본적으로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최고의 권력과
지위를 갖고 있는 계층은 황제를 비롯하여 주요 귀족들과 38개 부족국가의 통치자들
이었다. 당시 사회는 엄격한 계급제도였다. 유럽 봉건주의 시대의 제도와 비슷했다.
그들의 신앙은 다신교 형태여서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다. 신들 중에도 가장 흉포한
형태로 제사를 바쳐야 했던 신은 전쟁의 신 ‘휘트질로포크틀리’였다. 그들은 싸움에서
이길 때마다 이 신에게 인간을 산 제물로 바치곤 하였다. 코르테스는 멕시코 제국의
위대함을 알고 있었고 그 제국을 정복한 후 제국을 통합하여 당시의 유럽의 신성 로마
제국처럼 만들고자 했었다.

- 새로운 스페인(멕시코)에 있어서 스페인인들의 우선적 활동은 원주민들을 그리스도교
에로 개종시키는 일이었고, 또한 원주민과 스페인인들 사이에 결혼을 권장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멕시코의 언어와 관습 등에 스페인의 유럽 문화를 융합시키려 했다. 그런 노력
으로 말미암아 오늘날의 멕시코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다음가는 진보한 국가로 성장
하게 된 것이다. 하느님이 성모의 발현지로 멕시코를 택하신 이유는 그럴 만한 중요성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은 그들에게 성모 마리아의 성화를 보내 주셨고 또한 그들
에게 주셨던 예언을 입증시키셨다. 그러한 사실을 두고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같은 일은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입니다.”


[ 10. 평신도 사도의 모범, 요한 디에고 ]

- 요한 디에고가 성모님 발현을 본 것은 서기 1531년 12월 9일과 10일과 12일이었다.
과달루페의 기적에 관한 내용은 멕시코의 유명한 역대기 작가 ‘돈 안토니오 발레리노’에
의해 기술되었다. 스페인인들과 멕시코인들은 12월 26일에 기적의 성화를 모셔 두기
위해 테페약에 소성당을 세웠다. 그것은 기적이 일어난 후 꼭 두 주일 만에 완공한 것
이었다. 멕시코 최초의 주교 주마라가는 요한 디에고에게 그 성당의 관리 책임을 맡겼다.
소성당 동편에다 숙소를 지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남은 여생(17년)을 보냈다. 요한
디에고는 남은 여생을 성모님께 바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 지역에서 미신을
몰아내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펴게 만든 기적의 성모 성화는 매일같이 수천 명의 멕시코인
들을 개종시켰다. 요한 디에고는 그곳으로 몰려드는 인디언들에게 성모님의 뜻을 쉴
사이 없이 설명해야 했다. 성모님이 발현하시기 전만 해도 그리스도교 교리를 받아들인
멕시코인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 성화의 기적은 거룩한 권능의 표적이었다. 요한
디에고의 틸마에 나타난 성화는 수천 년간 멕시코인들이 숭배해 온 우상들을 몰아내는
데 뜻이 있음이 잘 나타나 있다.

- (성화의 이미지) 멕시코인 들에게 그 그림은 하나의 메시지이며 하늘에서 보내온
증거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도가 되기를 원했고 세례를 받아 주님의
증거자가 되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약 8백만에 달하는 멕시코인들이 그 기적이 있은 후
7년 만에 완전히 그리스도교로 개종했으니 성모님의 예언은 요한 디에고와 그의 숙부
요한 베르나르디노가 살아 있던 생전에 이미 실현을 본 것이다. 성모님의 성화를 지키며
성모님의 뜻을 전하는 임무가 몹시 힘든 일이었지만 요한 디에고는 그 역할을 더없는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수년 동안 성모님과 영적 친교를 이루며 그 소성당에서
지내는 동안에 이웃 사람들은 그가 크게 변모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의 용모에는
위엄이 깃들어 있었으며 검약하고 절제 있는 금욕생활은 품위가 있었다. 그는 그 거룩한
생활을 통해 모든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되어 갔다. 훌륭한 인품과 고결한
사상을 지닌 사람으로서 주위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다.

- 1548년 그는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다. 주마라가 주교는
1544년에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의 숙부 요한 베르나르디노와 함께 그 소성당에
그를 묻게 하였다. 그 후 150년 동안 멕시코 교회와 식민지 정부는 과달루페의 기적이
교회법상으로 인정받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1666년 멕시코시에서는 과달루페
기적의 동기를 밝히는 공청회가 개최되었다. 이때 여러 증인들의 증언들이 사실대로
기록되었으며, 요한을 멕시코 그리스도교 신자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았다.
교회는 거룩한 명성을 얻고 죽은 이 신자에게 사사로이 기도를 올리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

- (요한 디에고의 시성<諡聖> 운동) 요한 디에고에게 최초로 공식적 경의를 표한 것은
1931년 4월 멕시코의 ‘만리께 자라테’ 주교가 발표한 사목교서이다. “요한 디에고는
성모님을 만나는 고귀한 체험을 했다. 그는 그분에게 깊은 사랑을 받았고 초대 멕시코
교회에 하느님 사랑의 전달자가 되었다. ... 우리는 책임 있는 위치나 사회적 지위를
통해 기꺼이 요한 디에고의 영광을 기리는 일을 해야 한다.” 고 하였다. 만리께 주교는
요한 디에고의 시성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1939년에 “요한 디에고는
누구인가?”라는 그의 사목교서에 장황한 논문을 실은 바 있다. 거기에서 그는 요한
디에고의 인간성과 역사적 자료에 의한 전기적(傳記的) 사실들을 논평했다. 또한 요한
디에고의 시성을 반대하는 이유를 논박했으며 멕시코인들은 자기네 민족 중에 가장
존경 받아 마땅한 그리스도인의 시성을 위해 노력과 기도를 아끼지 말 것을 호소했다.

- (로마에서의 요한 디에고의 시성운동) 1937년 이후 화가, 과학자, 사진작가, 미술
전문가들은 그 성화가 진정 성모님의 초상화인가를 판별하기 위한 새로운 조사를 시작
했다. 몇 명의 조사자들은 그 초상화를 조사하던 중에 성모님의 오른쪽 눈에서 인간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1962년 바실리카의 사진작가는 그 상본에서 성모님의
눈을 촬영하여 여러 배로 확대시켜 조사했다. 그 결과 그는 성모님의 오른쪽 눈에서
선명한 사람의 영상 셋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왼쪽 눈은 그 틸마의 매듭이 이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부식되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에 의해 이 자료를
분석한 결과 그 영상을 보다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 세 사람의 모습은 요한 디에고가
살아 있을 당시에 생존한 인물들로서 안토니오 발레리노가 기술한 사실과 전적으로
일치하고 있었다.

- 이 발견에서 두 가지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1) 성모님의 성화는 자연적
상태에서나 또는 인공적으로 그려 질 수 없는 것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함으로써 그
초상화가 인간이 그린 것이냐 또는 하느님에 의해서 보내진 것이냐에 대한 4백년간의
논쟁이 매듭을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요한 디에고의 틸마에 나타난 성모님의 초상화는
하느님께서 성모님의 영광과 인류의 구원을 위해 역사하신 것임이 명백히 밝혀지게
되었다. (2) 이 조사로 말미암아 성모님의 성화 속에 요한 디에고의 모습이 4백 4십년
동안 보존되어 왔음이 분명해지고 이 사실은 요한 디에고의 궁극적인 사명이 성취되었
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1960년대 중엽 이 사실이 밝혀질 즈음에,
이 사건이 의미하는 구체적인 일들이 로마에서 거론되고 있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에서는 현대 교회의 평신도 역할을 규정하였다. 평신도에 관한 교의를 공식화한 교부
들은 그 문제를 토의하면서 요한 디에고를 연상했을 것이다. 그의 경력이야말로 평신도
사도직에 가장 적절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모님이 요한 디에고에게 하신 말씀
중에 모든 평신도 사도들에게 귀감이 될 말씀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내가 너를 선택한
것은 네가 나의 청을 받아들여 너의 중재와 노력으로 나의 목적이 이룩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11. 요한 디에고의 틸마 ]

- 성모의 초상화가 새겨진 요한의 틸마는 외투로 둘러입은 커다란 천이다. 옛날 로마
시민이 입던 망토와 비슷하며 같은 방법으로 입는다. 그것은 아즈텍 모든 남자들이
입는 옷이었고 스페인인들이 멕시코를 점령한 후에도 계속 유행하고 있었다. 또한
그 틸마는 입고 있는 사람의 사회적 신분을 나타낸다. 요한 디에고는 중류계급에 속한
틸마를 입었다. 그것은 아마포 같은 색깔이며 용설란에서 뽑은 실로 만들었고 울이
좀 성긴 것이기는 했지만 오래도록 바래지 않았다. 왼쪽 어깨위에 매듭을 지어 입었다.
그 틸마는 본래 매우 큰것이었지만 성모님의 모습이 나타난 곳만을 잘라냈다. 이 천에는
초자연적인 특성이 둘이 있다. 보통 식물성 섬유는 약 20년이 지나면 부식하기 시작
하는데 그 틸마는 과달루페의 기적이 일어나기 전부터 요한 디에고가 입었던 것이고,
성모의 성화가 나타난 후 435년이 지난 오늘날도 조금도 변함없이 본래의 상태대로
있다. 또 한가지의 특성은 아무리 유명한 화가라도 그처럼 올이 성긴 천 위에는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그것이 하느님의 하느님의 작품임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

- 성모님의 모습은 높이가 4피이트 8인치(141.5cm)이다. 이 그림은 빛을 발산하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멀리서 볼 때 실제의 그림보다 크게 보인다. 성모님의 얼굴은
아름다운 젊은 여성의 모습이다. 피부색은 엷은 황갈색이고 뺨에는 약간 홍조가 돋고
있으며 눈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아서 언제라도 움직일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머리카락은 진한 흑갈색이다. 성모님은 금빛의 꽃무늬가 새겨진
엷은 분홍 드레스를 입고 있다. 그리고 소매에는 순결의 뜻을 표시하는 흰 모피가 달려
있다. 검은 십자가가 가운데 새겨진 금빛 브로치를 속에 걸고 계시는데 그것은 멕시코
인들에게 참 신앙을 가져다 준 표적이기도 하다. 성모님의 머리에서 발 아래까지 길게
내려온 외투는 밝은 청록색이다. 이 색깔은 멕시코인들에게 거룩함을 뜻하는 색깔이다.
이 외투에는 성령 세례와 새로운 생활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8각의 별 46개가 장식되어
있다. 또한 외투의 금색 테두리도 정절의 표시를 나타낸다. 성모님의 모습은 태양
광선과 같은 금빛 광선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형상은 마치 광선이 구름을 물리치는
듯하다. 악마를 상징하는 검은 초승달을 밟고 서 계시는데 그 밑에서는 한 어린 천사가
성모님의 옷자락을 떠받들고 있다. 이 그림의 모든 세부적인 장식은 상징적인 것들이다.

- 이 성화는 예술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이다. 다른 어느 성모상도 그 아름다움과 사실적
묘사에 있어서는 이 초상화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116년 동안 이 성화는 유리로 보호
되지 않은 채로 그냥 전시되었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대기의 풍화작용과 그 앞에서
불태워졌던 수천 수만의 촛불의 연기에 의해서도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았다. 게다가
사람들은 성화를 손으로 만지며 입맞추곤 했던 것이다. 1647년에 성화를 보호하도록
두 장의 유리를 스페인에서 보내 왔다. 그리고 1766년에 한 공작이 또 한 장의 유리를
보내옴으로써 이 성화는 보다 견실하게 보호하게 되었다. 기적이 일어난 후 150년 동안
이 상본은 홍수와 전염병, 사회적 변란, 교회 건물의 개축 등으로 여섯 차례나 장소를
옮겨 다녀야 했다. 그러나 마침내 1709년에 대성당이 과달루페의 언던 위에 세워지게
됨으로써 성화는 제대 위의 큰 액자 속에 안치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그 앞
에는 찬란한 왕관이 달려 있는데 그것은 1895년 10월 12일 교황 레오 13세가 교회법에
의한 장엄예식을 거행하면서 과달루페의 성모께 바친 것이다.


[ 12. 최초의 기적 ]

- 오늘날 대성당 안에 걸려 있는 수많은 그림 중에는 요한 디에고의 틸마 앞에서 일어난
최초의 기적을 그린 그림이 끼어 있다. 이 기적은 테페약 산에 성모님을 위해 최초로
세운 경당으로 요한의 틸마를 옮겨 가던 중에 일어난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면 장엄한
행렬을 그린 작은 그림이 또 하나 우측 상단에 있는데 그 행렬의 맨 앞에는 화사한 예복을
입은 주교들이 있으며 다음에는 수도자들과 당시 멕시코의 총사령관으로 있던 페르난도
코르테스와 그의 부인이 보이며 다음에는 멕시코시의 귀족들과 그 도시 인근 마을의
추장들이 참석해 있는 것이 보인다. 또한 이 행렬에는 많은 인디언들이 참석해 있었는데
대개가 스페인 정복자들의 노예들이다. 그들은 노래와 춤과 악기를 연주하며 그 행렬을
따라가고 있다. 그들은 행렬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성모님을 찬미하는 아바탈
(Abatal)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 성가는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불렀고 노래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환희로써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 이 행렬이 한창 환희와 기쁨으로 무르익어 힘차게 나아갈 무렵 광대들의 악기 연주에
맞추어 춤을 추며 따라가던 인디언 하나가 갑자기 날아온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사람들은
수심에 휩싸여 목에 화살을 맞아 즉사한 그 인디언을 요한의 틸마 앞으로 메고 갔다.
목에서 화살을 뽑아낸 뒤에 그를 다시 소생시켜 주십사 성모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 순간 인디언은 다시 살아났고 그것을 본 주위의 사람들은 더욱 열광하여 성모님께
감사의 노래를 불렀다. 행렬이 새로 지은 소성당에 도착했을 때 주마라가 주교는 성모의
상본이 그려진 요한의 틸마를 제대 위에 안치하고 소성당을 축성하는 첫미사를 드렸다.
미사를 드리는 동안에 정복자들과 인디언들은 민족적 감정을 서로가 포용하며 화해하였다.


[ 13. 과달루페의 기적에 관한 기록의 원문(原文) ]

- 이 글(原文)은 아즈텍 인디언이었던 ‘안토니오 발레리아노’에 의해서 당시의 인디언
말이었던 ‘나후아틀’어로 쓰였던 원문(Nican Mopohua)을 조금의 수정도 가함이 없이
말 그대로 스페인어로 옮겨 놓은 것을 다시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원문은 1548~
1554년 사이에 쓰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 기적에 대한 원문을 기술했던 안토니오
발레리아노는 과달루페의 성모께서 발현하셨던 그 시대에 생존한 인물이다. “다음은
과달루페의 여왕이시며 영원한 동정녀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최근에 테페약 언덕에 신비의
형상으로 발현하시어 하명하신 사실에 대한 기록이다. ... (이하 원문 번역 내용 생략)”


[ 14. 과달루페와 관련된 중요한 사건의 연대기 ]

- (1325년 아즈텍 종족 ~ 1531년 스페인의 식민 통치) : 생략

- 1531년 12월 9일 : 과달루페 성모의 최초의 발현. 요한 디에고는 ‘톨페틀락’의
그의 집에서 ‘틀라텔로코’에 있는 산티에고 성당으로 미사를 가던 중, 새벽에 ‘테페약’의
불모의 산을 넘어갈 무렵 그 산 정상에서 들려오는 신비한 음악 소리를 듣고 놀란다.
그는 조사해 볼 생각으로 정상으로 오르게 되는데, 거기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는 구름
속에 홀연히 서 있는 아름다운 귀부인을 만난다. 그분은 자신이 은총을 받으신 동정녀
마리아임을 밝히신다. 그리고 그분은 그분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서 그 장소에 한 성당을
세우게 하라는 메시지를 주교에게 전하도록 분부한다. 요한은 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서둘러 주교관으로 간다. 그날 오후, 그의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다시 그분을 만나게
되는데 , 그는 주교에게 메시지를 전했지만 그의 말을 믿지 않더라고 보고 드린다.
성모님은 다음날 주교에게 다시 가서 그 성당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라고 그에게
이르신다.

- 1531년 12월 10일 : 세 번째 성모의 발현. 두 번째로 주교를 만나 후, 요한 디에고는
만일 성모님께서 그에게 한 표적을 보내주신다면, 주교는 기꺼이 성모님을 위한 성당을
세우겠다고 하였음을 보고 드린다. 은총의 성모께서는 그의 말을 쾌히 승낙하시고 다음날
아침에 그 표적을 줄 테니 다시 오라고 요한에게 분부하신다. 그러던 중, 틀페틀락으로
돌아온 요한 디에고는 그의 숙부, ‘요한 베르나르디노’가 거의 병으로 죽어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요한은 그날 밤 숙부와 함께 밤을 지새고 다음날도 집에 있게 된다.

- 1531년 12월 11일 : 요한 디에고는 성모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린다. 그날 저녁
숙부의 병환은 더욱 악화된다. 숙부는 요한에게 다음날, 틀라텔로코의 산티에고 성당에
가서 사제의 방문을 청하도록 한다.

- 1531년 12월 12일 : 네 번째 성모의 발현. 그의 숙부에게 종부성사를 줄 사제를
부르러 길을 가던 중, 그는 성모님을 만난다. 그는 전날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사과
드리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분은 그에게 그의 숙부가 이미 완쾌되었음을 알려 주시고
테페약 산 정상에 올라가 주교에게 가지고 갈 표적들로서 장미들을 주워 오라고 분부
하신다.

- 1531년 12월 12일 : 성모의 성화의 출현. 그날 오후 늦게 그는 그 장미들을 주교관
으로 가지고 간다. 그가 가져간 장미들을 보이려고 그의 틸마(망토)를 펼치는 순간,
갑자기 은총을 가득히 입으신 동정녀 마리아의 성화가 그의 틸마에 나타난다. 오늘날
이 성화는 과달루페의 대성당에서 우리가 직접 볼 수 있다.

- 1531년 12월 12일 : 요한 베르나르디노에게 성모의 발현. 한편 톨페틀락에서는
요한 디에고에게 발현하신 것과 같은 형상으로 성모께서 요한 베르나르디노에게
나타나시어 그의 병을 완치시켜 주신다.

- 1531년 12월 : 기적의 성화는 성모님을 위한 성당이 세워질 때까지 주교의 기도소와
그리고 성당에서 경배의 성물로서 공개된다. 14일 후, 인디언들은 테페약 언덕에 흙벽
돌로 작은 성당을 세우게 된다.

- 1531년 12월 26일 : 대대적인 축제와 함께, 소성당으로 성화를 옮기는 장엄행렬이
있게 된다. 행렬 도중에 한 인디언이 갑자기 목에 화살을 맞고 죽게 되는데, 이 사건은
첫 기적을 낳게 한다.

- 1533년 : 주교 요한 데 주마라가가 스페인에 머무는 동안 인디언들은 성모를 위해
보다 큰 성당(두 번째 성소)을 세운다.

- 1539년 : 성모 마리아의 발현이 있은 7년 후, 8백만 명에 달하는 인디언이 가톨릭
신자로 개종하게 된다. 그것은 성모의 발현과 기적의 성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1544년 5월 15일 : 요한 베르나르디노가 84세의 나이로 톨페틀락에서 세상을
떠난다.

- 1544년 : 페스트가 멕시코에서 크게 퍼져, 1만 2천여 명이 죽음을 당하게 되는데,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6~7세된 아이들과 함께 소성당으로 성로 신공을 드리며 행진
하자 그 유행병은 퇴치된다.

- 1545년 : ‘니칸 모포푸아’가 돈 안토니온 발레리아노 신부에 의해 완성된다. 이 성모
발현에 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 1548년 5월30일 : 요한 디에고가 74세의 나이로 별세한다.

- 1548년 6월 3일 : 주마라가 주교님 별세, 연세는 약 80세, 요한 디에고와 같이
성당에 묻힌다.

- 1556년 : 두 번째 멕시코 대주교, ‘몬프파르’가 세 번째 성당을 세운다. 그리고
이것은 옛 인디언들의 교회로 알려지고 있다.

- 1556~1557년 : 몬프파르 대주교는 과달루페의 성모의 발현에 대한 사실들을 교회법에
의해서 입증하게 된다.

- 1666년 : 성모님이 처음 발현하셨고, 요한 디에고가 장미를 모아 주웠던 장소,
테페약 언덕에 소성당이 세워진다.

-1709년 4월 27일 : 과달루페의 성모가 멕시코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된다. 그러한
선포가 있은 후 당시에 유행하던 전염병이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리고 12월 12일을
축일로서 선포한다.

- 1754년 4월 24일 : 로마의 성성(聖省)은 과달루페의 성모를 위한 의식과 미사를
승인하는 법령을 발표한다.

- 17544년 5월 25일 : 교황 베ㅔ네딕토 14세가 멕시코의 수호성인으로서 과달루페의
성모를 인준하는 칙령을 발표한다.

- 1756년 : ‘미구엘 가브레라’ 와 여러 명의 화가들이 과달루페의 성화를 감정한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의 어떤 사람도 그와 같이 정확히 그림을 그릴 수가 없음을 입증한다.

- 1929년 : ‘알폰소 마르크에 곤잘레스’ 는 성모의 성화의 눈에 나타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는 당국자들의 권유에 의해서 그가 발견한 사실을 1960년까지 발표를
보류한다.

- 1955년 : ‘톨페틀락’에서 한 소년이 요한 디에고가 병든 그의 숙부를 만났던 장소를
표시했던 돌로 된 십자가상을 발견한다.

- 1955년 12월 : 라디오 방송을 통해 성모의 성화의 오른쪽 눈에 나타난 형상이 요한
디에고의 모습과 명확히 동일함을 발표된다.

- 1956년 5월 26일 : ‘야비에르 토로엘로 부에노’라는 외과의사가 성모의 성화의 눈에
나타난 모습에 대한 성명서에 서명한다.

- 1962년 : 과달루페의 성모의 얼굴을 25배로 확대하여 촬영한 사진을 조사하던 중,
‘찰레스 J 왈리그’박사는 성모의 성화의 눈에 두 사람 이상의 모습이 나타나 있음을
발견한다. 왈리그 박사는 인간의 눈에 나타날 수 있는 그러한 모습들에 대한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사진을 실험으로 이 발견을 철저히 규명한다.

- 1976년 10월 12일 : 성지에 위치한 옛 성당 과달루페의 성모를 위한 새로운 대성당을
세우고 헌당식을 갖는다. 그것은 옛 성당이 지진으로 인해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없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 1979년 1월 25일~30일 : 교황 바로로 2세가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과달루페의
성모의 성지를 순례한다. 그는 멕시코 방문 기간중에 멕시코 주교회의에 참석했다.


( 이상 # 독서 메모 082 끝. )


- (독서 메모자 내용 추가) ‘요한(후안) 디에고’는 1990년 4월 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그해 5월 6일 멕시코시에서 시복시성 기념식이 열렸다.
이어서 그는 2002년 7월 31일 멕시코 과달루페의 동정 마리아 대성당에서 같은 교황
으로부터 성인품을 받았다.





금주의 독서 메모 084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2.08.21.

[ 책 이름 : 하느님을 누가 보았나 ]

- 지은이 : 김형덕
- 지은이 프로필 : 1934년 함남 영흥 출생, 1961년 서울 상과대학 졸업,
1968~1985년 동아일보 근무, 1985년 미국으로 이주.
저서로는 ‘빛을 남긴 사람들’, ‘세계의 신비’, ‘세계의 우화’, ‘세계의 신학’ 등 다수
- 펴낸데 : 성바오로, 출판일 : 2000.11.25(2판), 247p
- 내용 :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생의 교본임과 동시에
알기 쉽게 설명한 가톨릭 교리서

[ 표지의 글에서 ]

-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교리를 간결한 문체로
알기 쉽게 설명했다. 제1편에서는 창조주와 영혼, 그리고 불멸성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었고 제2편에서는 신자로서 지켜야 할 계명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재해석해
놓았으며 제3편에서는 성사를 정리하되, 신자들의 일상생활에서 늘 반복되는
고해성사와 성체성사에 특히 역점을 두었다. 따라서 이 책은 이미 예수님을 따르고
있거나 그러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간결한 길잡이이고,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착하고 바르게 사는 법을 알려 주는 인생 교본이다. 가톨릭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이웃에게 반드시 권해야 할 참으로 유익한 책이다.

[ 추천의 글/ 저자 서문 ]

- (추천의 글) 누구나 알아야 할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가톨릭 교리의 내용을 한 평신도가
알기 쉽고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여 책자로 출간함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 책은 저자의
글에서 밝혔듯이 이미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음으로써 검증을 거친 내용
이다.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교리를 평신도 입장에서 누구나 공감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설명해 놓았기 때문이다. 난해한 신학적인 접근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신자가 아닌 사람이라도 이성적으로 조금만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가톨릭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논리정연하게 전개시켜 나간 점이 돋보인다.
(성바오로수도회 유광수 야고버 신부)

- (저자 서문) 미국 동부지역 사제회의 결정에 따라 뉴욕, 코네티컷, 뉴저지, 펜실바니아
주의 교포 들을 대상으로 가톨릭 선교방송이 시작(1994년 초)되었다. 일요일 아침마다
동부 지역의 사제들의 강론 그리고 묵상, 5분 교리 등으로 30분씩 엮어진 이 방송에서
필자가 5분 교리를 맡았었다. 이름은 ‘5분 교리’였지만 평균 8분 가량씩 진행되었는데
신자, 미신자, 종파를 초월하여 그 반응이 놀라울 정도로 좋아 재방송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방송원고와 녹음테이프를 원하는 청취자들의 문의가 잇달아, 그 원고들을
책자로 내게 되었다. 이 책은 인생의 교본임과 동시에 교리서이기도 하다. 교리의 심오
함과 방대함에 비해,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 짧았기 때문에 미흡한 점이 많지만 이 작은
책자가 독자 여러분의 빛을 향한 충실한 안내자가 되기를 바란다. (김형덕)


[ 차 례 ] - 차례별 클릭

제1편 하느님을 누가 보았나 : 1. 하느님을 부가 보았나 2. 뇌는 영혼이 아니다.
3. 마음에 들지 않는 하느님 4. 예수는 누구인가 5. 천주교는 어떤 종교인가
제2편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 1. 계명 2. 십계명의 대의
제3편 하늘나라의 시민권 : 1. 기도 2. 성사

[ 제1편 하느님을 누가 보았나 ]?

* 하느님은 성서를 통해서 믿어야 하는 존재일 뿐 아니라 우주만물을 통해서 보아야
하는 존재이다


< 1. 하느님을 누가 보았나 >

(인생의 근본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몹시 바라던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면 성취감에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반대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망에 빠져 심한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희열이나 좌절감을 맛볼 때면 흔히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인간 이외의 절대자를 생각하게 된다. 잘된
일에 대해서는 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절대자의 도움을 갈망하게 되고, 이루어
지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절대자의 도움을 갈망하게
된다. 그래서 기원전 9세기의 유명한 시인 호머(Homer)는 ‘오디세이’에서 “모든 사람은
선천적으로 신을 경외하고 사모한다.”고 했고,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철학자 크세노폰
(Xenophon)은 저서 ‘명심기’에서 “신에 대한 숭배와 공경은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가진 첫째 율법이다.”라고 했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유명한 철학자 키케로(Cicero)는
저서 ‘뚜스끌라네 논쟁’에서 “세상에는 신에 대한 신념을 갖지 못할 만큼 미개한 민족은
하나도 없다.” 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일이 잘 되어 가는 것은 자신의 착한
성품 때문에 절대자인 최고신의 축복을 받은 탓이라 하여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일이
잘 되어 가지 못하는 것은 악행 때문에 최고신의 천벌을 자초한 탓이라 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린다.

- 아무리 위대한 과학도 파스퇴르(Pasteur)의 말과 같이 생명체를 만들 수 없으며,
인간의 죽음을 극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여기에 이르러 인류는 인간의 능력에 한계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과학도 만능이
아님을 실감하면서 “인간은 무엇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인생의 근본
문제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요 물리학자요 철학자인 파스칼은
이 문제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닥쳐올 미지의 세계에 대해
의심을 품고 사는 것은 확실히 큰 불행이다. 이런 의심이 있는 사람은 그 문제를 연구해
볼 의무가 있다. 이것을 아는데는 고상한 지식이 필요치 않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생과 사, 나아가서 영생까지 그 모두를 주관하시는 절대자의 존재를 생각하게 되는데,
이에는 고상한 지식이 필요치 않다.

(하느님을 누가 보았나) 신을 부르는 이름은 종교에 따라 다르다. 천주교(天主敎)에서는
이분을 ‘하느님’이라고 한다. ‘하늘을 지배하시는 하늘의 주인님’이란 뜻이다. 그런데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하느님을 누가 보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말은 그럴듯한 질문으로 들리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공간을 생각해 볼 때, 이 우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넓어서,
별과 별의 거리를 말할 때는 ‘광년(光年)’이라는 단위를 쓴다. 1광년은 엄청난 속도의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이다. 미국 항공우주국은 지구로부터 140억 광년 떨어진 곳에
천체들이 널려 있는 것을 발견(1994년 기준)했다. 그 바깥쪽으로도 어디까지 얼마나
더 널려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렇게 넓은 우주의 한 구석에 지름 30cm 정도 밖에
안 되는 사람이 살고 있다. 시간적으로 볼 때에도 지구의 나이는 45억년 이고, 우주의
나이는 2백억 년이 된다고 한다. 이 기나긴 시간 속에서 사람은 겨우 80년가량 살다가
간다. 이 엄청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인간은 한 구석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하루
살이와 같은 존재이므로, “하느님을 누가 보았느냐?”는 질문은 결코 현명하다고 할 수
없다. 또 우리는 두 눈이 있지만 우리의 눈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완전한 것이 아니다.

-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너무 작거나 멀리 있는 것뿐만이 아니다. 바로 눈앞에 있는
공기도 보지 못하며, 방송국의 전파나 X광선을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한다. 또한
햇빛이라고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곱 빛깔의 광선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으나
적외선(적색의 바깥쪽 빛)이나 자외선(자주색의 바깥쪽 빛)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다.
이처럼 불완전한 눈으로 이 넓은 우주의 한 점을 부싯돌이 반짝이는 순간에 스쳐 지나
가는 것이 인생이다. 더군다나 하느님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비물질적인 신령한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보아야만 인정하고 보아야만 믿겠다고 것은 현명한 생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지성이 있다. 때문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것이 이치에 맞으면 인정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부정할 수밖에 없다. 세상만물을 이루고 있는 원자는 그 크기가
1천만분의 1밀리미터밖에 안 되어 아무리 좋은 전자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구조를 알아내어 원자탄도 만들었고 원자력발전소도 곳곳에 세웠다. 또 불가시
광선인 적외선과 자외선은 병의 진단과 치료, 그리고 군사적인 목적에 이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는 것들을 이치만으로 이를 이용하고 있다. 세상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하느님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신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이
지닌 오묘한 이치와 피조물 사이에 얽혀 있는 오묘한 질서 등을 통해서 그분의 지혜를
보고 그분의 능력을 보아야 한다.

(우주 만물의 제1원인)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를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 아기 사슴을 보면 우리는 어미 사슴이라는 원인이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우주의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이처럼 원인이 있다.
우리는‘자연히’ 또는 ‘저절로’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이것은 원인 없이 그렇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고, 인공적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원인 없이 일어나는 일은 미리
알거나 예방할 수도 없으니 항상 불안과 공포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인과
결과의 상관관계(因果律)는 털 끌만한 예외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과를 보면
원인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 종교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창조주의 존재와 영혼의 존재도 이 인과율을 통해서
알아낸다. 지금으로부터 2백 년 전 오늘, 현재의 우리는 단 한 사람도 이 세상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존재하니 어찌 된 일인가? 이것은 부모라는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생물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생물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주의
모든 변화도 생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원인과 결과, 즉 인과율로 이어지면서 각기
진행을 계속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과 관계로 이어져 있는 자연계의 현상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은 맨 처음에 있는 제1원인을 찾을 수 있다. 13세기 이탈리아의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말했다.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
그러므로 제1원인이 없으면 중간 것도 없고 마지막 것도 없다.” 제1원인은 다른 무엇을
원인으로 생겼느냐는 질문을 가끔 듣는다. 제1원인이라는 것이 스스로 존재한 것이
아니고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라면 그 다른 원인이 바로 제1원인이 될
것이다. 기차를 생각해 보자. 맨 뒤에서 달리는 객차는 아무런 동력장치도 없이 마구
달린다. 이는 그 앞의 객차가 끌기 때문이다. 그 앞의 객차도 아무런 동력 장치 없이
달리고 뒤의 객차까지 끌고 간다. 이렇게 한 칸씩 차례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은
맨 앞에 있는 기관차에 이르게 된다. 이 열차를 운행시키는 제1원인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누가 만일 “그러면 이 기관차는 또 어떤 차에 끌려가는가?”하고 묻는다면 그는
기관차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 우주의 제1원인은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없었던 것이 저절로 생겨났다는 말은 아니다. 미생물 하나도 저절로 생겨나지
못하는데, 하물며 우주의 제1원인 같은 어마어마한 존재가 저절로 생겨났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자기가 자기를 창조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
창조’란 자기가 자기보다 먼저 있었다는 모순을 지닌 말로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우주의 제1원인은 다른 원인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분’ 시작이 없는
‘영원한 분’, 온전히 자기의 능력으로 ‘우주 만물의 원인이 된 존재’ 라는 것이 판명된다.

(운동으로 가득 찬 우주) 우주는 온통 운동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자기가 자기를
움직이는 물질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물체는 외부로부터 어떤 힘의 작용을 받지
않는다면 영원히 정지하고 있든지 또는 같은 속도로 운동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관성의 법칙‘이다. 다시 말해 물체는 자기가 자기를 움직이지 못하고,
한 번 운동이 시작되었으면 자기의 힘으로 정지하거나 운동의 방향을 바꾸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람을 비롯한 동물의 운동을 보자. 동물은 물체처럼 외부로부터 움직임을
받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움직이는 힘이 자신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속도와 방향을
자유로이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천체들의 운동들이 속도와 방향에서 자유
로운 변화가 없다는 것은 관성의 법칙에 따른 운동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다른 존재로부터 움직임을 받아 움직인
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천체의 운동은 제1원인, 즉 창조주의 존재를 다시 한 번 확인
시켜 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 달은 38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45억 년 동안 지구의 둘레를 돌고 있고,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1억 5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초속 30킬로미터 속도로 역시 45억
년 동안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 이것도 지구와 달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천체들에 공통된 이야기이다. 모든 전체는 인력으로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데, 누가
거기에다가 적당한 속도를 주어 부딪치지도 않으면서, 도망갈 수도 없도록 묶여 있게
했다. 이 달아나려는 원심력의 크기와 끌어당기려는 인력의 크기가 정확히 비기도록
천체들 사이의 거리와 속도를 계산해 낸 수학자요 물리학자는 누구인가? 누가 모든
전체들을 정지 상태에 두지 않고 끊임없는 운동 상태에 두면서도 거기에 교묘하고
기이한 균형을 잡았는가? 저 끝없는 공간에 누가 역학과 기하학과 수학 상의 신비를
창조했는가? 그분이 하느님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장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대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그 크신
능력을 보게 되는 것이다.

(만물 사이의 정연한 질서) 무엇을 만들기 위한 목적을 세우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을 선정하는 것은 지능만이 할 수 있다. 그래서 ’질서는 지능에서‘라는 철학의
원리가 있다. 우리의 몸을 먼저 생각해 보자. 위나 창자 등 소화기관이 빨아낸 양분과,
코나 허파 등의 호흡기관이 빨아들인 산소는 순환기관으로 넘어가고, 혈관이나 심장
등의 순환기관은 피를 통해 이것들을 몸의 구석구석까지 운반한다. 그래서 우리의 몸은
자라거나 운동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원을 공급받게 되는 것이다. 한편 다 쓰고 남은
양분이나 산소는 순환기관으로 넘어가 허파와 콩팥으로 돌아와 몸 밖으로 나간다. 우리의
몸이 항상 신선한 양분과 산소를 공급받아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오묘하고 정연한 질서를 확립하는 것은 지능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는 사람
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동물에게도 해당된다. 식물도 마찬가지이다. 잎은 물과
탄산가스와 햇빛으로 녹말을 만든다. 줄기는 잎들이 햇빛을 잘 받아 녹말을 많이 만들 수
있도록 역할을 하며, 잎은 제가 만든 녹말들을 몸의 구석구석까지 보내어 몸이 자라는데
쓰게 하고, 나머지는 열매로 보내 저장한다.

- 동물과 식물 사이에도 질서가 있다. 동물은 식물로부터 단백질, 지방, 염분 등 제 몸에
필요한 성분들을 골라서 흡수하고, 그 대신 식물에 필요한 질소, 인산, 가리 등의 거름을
배설해서 돌려보낸다. 또 동물은 공기 중에서 산소를 빨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배설한다.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 녹말을 만들고 동물에게 필요한 산소를 배설해서 공기를
맑게 한다. 이래서 공기의 배합률은 항상 일정하다. 산소 22%, 질소 78%로서 이들 둘이
99%를 차지하고 나머지 1%가 아르곤, 탄산가스, 수소, 네온, 헬륨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지금 아마존 강 유역의 원시림을 모두 개간한다면 인류는 당장 호흡에 곤란을
느끼게 된다.

- 우리가 자연을 훼손해서 공기 중에 탄산가스가 늘어나면 기온이 올라가기 때문에 양극
지방의 빙산들이 녹아 바다의 수면이 높아져 지구 대부분의 기름진 평야를 잃을 것이다.
또 해면에서 증발하는 수증기는 공기를 통해서 올라갔다가 사방으로 흩어져 비나 눈이
되어 모든 생물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고, 이러한 순환작용으로 말미암아 수면은 항상
일정한 높이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기막힌 질서들은 자연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각
분야에 걸쳐 더욱 뚜렷해진다. 19세기 프랑스의 곤충학자이며 파리 박물관의 곤충부장을
지낸 라트레이(Latrille)는 이렇게 탄복했다. “인간의 얕은 지식으로는 알기 어려운 신기한
방법으로 위대한 지혜에 대해 비상한 존경심과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그 피조물 사이에 정연한 질서를 세우시고, 이 질서를
통해서 세상만물을 섭리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 2. 뇌는 영혼이 아니다 >

(생혼과 각혼) 사람에게 영혼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하느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하는 문제와 함께 신앙생활에선 가장 기본이 되는 문제이다. 아무리 하느님이 계신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영혼이 없다면 육신의 생명이 끝남과 동시에 우리는 완전히 허무로
돌아가게 된다. 모든 생물은 그 생명이 물질과 결합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생물에게 있는
그 생명 현상은 무생물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무생물은 그 덩어리의 조직이 전체적으로
같지만 생물은 부분마다 그 조직이 다르다. 태평양이 제 아무리 넓고 깊어도 한국에서
퍼낸 물이나 미국에서 퍼낸 물이나 그 성분은 똑같다. 그러나 식물은 뿌리, 줄기, 잎, 꽃,
열매 등 그 부분마다 성분이 다르고 그 작용도 다르다. 벌레도 마찬가지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 조직의 성분과 그 작용이 다르다. 생물은 그 세포가 분열되면서 성장하지만
무생물에는 성장이라는 것이 없다. 그리고 생물에는 생식작용이 있어서 제 몸의 손실
없이 저와 똑 같은 생명체를 제 속에서 낳아 놓는다. 그러나 무생물에는 이것이 없다.
이처럼 생물은 그 몸이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만, 물질 사이에 일어나는 물리적, 화학적
작용 이외에 독특한 생명력이 따로 있는데, 이것을 ‘혼’이라고 한다.

- 식물은 그 혼이 제 생명을 유지하는 작용만 하기 때문에 식물의 혼은 ‘생혼’이라고 한다.
따라서 육신의 생명이 끝나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생혼도 소멸되고 만다.
동물의 경우에는 생명의 유지뿐이 아니라 감각작용까지 하기 때문에 동물의 혼은 ‘각혼’
이라고 한다. 모든 동물은 외부로부터 빛, 소리, 냄새 등의 자극을 받으면 눈, 귀, 코 등의
감각기관이 그것을 뇌에 전달해 주기 때문에 그 자극을 깨닫게 된다. 물질적인 감각기관
들이 물질인 뇌에 그것을 전달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물질끼리의 물리적, 화학적 작용의
연속이다. 이 각혼은 눈, 귀, 코, 피부 같은 육체기관을 통해서만 그 능력이 발휘되기
때문에 혼자서는 아무 구실도 할 수 없다. 따라서 육신의 생명이 끝나면 이것도 소멸되고
만다.

(영혼) 사람도 넓은 의미에서는 동물인 만큼,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그 혼이 감각
작용을 한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이성이 있어서 이치를 깨닫고 판단하고 계산하고 추리
하며 희로애락을 느낀다. 이것을 통틀어 ‘정신작용’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신작용은
단순한 각혼과는 전혀 다른, 인간만의 독특한 작용이다. 따라서 이것을 뇌가 하느냐,
아니면 뇌 이외에 다른 실체가 있어서 그것이 하느냐 하는 것이 영혼의 존재를 판가름
하는 초점이 된다. 유물론자들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정신작용은 뇌가 직접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 정신작용이 뇌가 직접 하는 것이라면, 정신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뇌에 손상이
있을 것이요, 뇌에 손상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정신에 이상이 있어야 한다. 또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 천재와 백치의 뇌에는 반드시 무슨 차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결코 없다. 생리학자 샤라는 저서 ‘뇌의 구조와 기능’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혼과 뇌가 서로 다른 실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뇌가 건전할지라도 정신에 장애가
있을 수 있고, 뇌에 장애가 생길지라도 정신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많은 전문의들이 증명한 바이다. 또 유명 인사들의 뇌와 범죄자들의 뇌를 미세한 부분
까지 검사해 보았지만 아무런 차이도 발견하지 못했다.”

- 결론으로 19세기 독일의 물리학자이며 의학자인 마이어(Mayer)이 설명이다. “뇌는
물질이다. 그런데 물질은 사상, 감정, 의지 등의 정신작용을 발생시킬 수 없다. 정신
작용은 두뇌의 작용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두 개의 작용을
혼동하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전신
(電信)은 전기의 화학작용으로 말미암아 상대방에게 전해지지만 그 전보(電報)의
내용은 전기의 화학 작용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정신과 두뇌의 관계도 이와 같다.
뇌는 영혼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영혼이 이용하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영혼은
물질이 아닌 만큼 우리의 오관을 통해서는 알 수 없고, 물리, 화학이나 해부학으로
연구할 대상도 아니다.”

(영혼은 죽지 않는다) 사람에게 아무리 영혼이 있다 하더라도 육신의 생명이 끝남과
동시에 영혼도 소멸된다면 굳이 종교에 귀의할 필요가 없겠다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사람이 뇌진탕 같은 이변을 당하면 무의식 상태에 빠진다. 또 뇌에 이상이 생기면
발광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임종 때에는 정신작용이 아예 자취를 감춘다. 이런 상태
들을 볼 때 육신의 생명이 끝나면 영혼도 동시에 소멸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할
수도 있다. 사람은 영혼과 육신이 결합되어 있는 생명체인 만큼, 뇌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면 영혼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뇌의 고장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기능이 정지된 것이지, 영혼이 그 기능을 상실한 것은 아니다.

- 임종을 보고 그의 영혼도 소멸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도 큰 착각이다.
임종은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철수‘이지 결코 ’소멸‘은 아니다. 임종하는 사람을 보자.
손, 발 등 심장에서 먼 부분부터 싸늘하게 식어 들어간다. 그에 따라 감각이나 생리작용도
사라져 간다. 이 역시 철수작용이지 소멸작용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심장의 박동까지
멈추면 시체만이 우리 눈에 보인다. 육신을 포기한 영혼은 철수해서 그대로 존재를 계속
하는 것이다. 영혼과 육신의 결합은 물질과 비물질 결합인 만큼 매우 오묘한 것이라서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굳이 비유를 든다면 합금과 같다고 할 수 있다.

- 구리는 무른 금속이고, 아연은 부스러지기 쉬운 금속이다. 그런데 이 두 금속을
10대 3의 비율로 섞으면 단단히 결합되어 단단한 놋쇠가 된다. 그러나 놋쇠 속에서도
구리는 구리대로, 아연은 아연대로 제 성질을 잃지 않고 있다. 때문에 놋쇠를 녹이면
무거운 아연은 가라앉고, 그보다 가벼운 구리는 뜬다. 그래서 아연은 아연대로, 구리는
구리대로 다시 분리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놋쇠뿐 아니라 모든 합금에서
다 마찬가지이다. 19세기의 독일의 물리학자이며 의학자인 마이어(Mayer)는 “내가
영혼의 불멸을 확신하는 것은 하늘의 계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사실로 말미암은
것이다.”하고 자신 있게 천명했다. 영혼과 육신의 결합이 이런 성질의 것인 만큼, 정신
작용이 육체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것은 육체가
정신작용에 영향을 주지만 정신작용 그 자체는 영혼이 독자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법정
판결에서 검사의 논고나 변호사의 변론, 그리고 피고인의 진술 등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만 최종판결 그 자체는 판사가 독자적으로 하는 것과 같다. 영혼은 이처럼 독자적
으로 행동하는 만큼 육체와 헤어 지더라도 제 존재를 계속한다.


< 3. 마음에 들지 않는 하느님 >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란 무엇이냐고 물으면 세 가지 유형의 정의를 내린다. 그 하나는
여러 가지로 불합리한 이 사회를 이상적 수준으로 향상시켜 이 지상에 낙원을 건설하려는
하나의 기관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종교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그것이 종교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다음으로는 마음 약한 사람들이 가공적인
신을 상정해 놓고, 거기에 의지하여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고 모여 있는 단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부 인사들이 입교하는 동기이지, 이것이 종교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끝으로
종교란 윤리와 도덕을 지켜 마음을 닦고 정신을 수양하는 기관이라는 것이다. 수양을
쌓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역시 종교의 부산물이지 종교의 목적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 종교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공경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영원한
천상복락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이 계시고, 사람에게는 의리를
아는 불멸의 영혼이 있다. 하느님께 대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종교이다. 종교의
첫째 목적은 하느님을 공경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의무가 있는 이상, 이것을 이행하는
것은 선이요, 그렇지 않으면 악일 수밖에 없다. 선에는 그에 합당한 상이 따르고, 악에는
그에 합당한 벌이 따르는 것은 질서유지를 위해 피할 수 없는 귀결이다. 착한 사람의
영혼은 사후에 천국으로 들어가 영원한 복락을 누리고, 악한 사람의 영혼은 영원한 벌을
받게 함으로써 이 세상에서의 불공평을 보완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요, 하느님의 경고
이다. 이 무서운 벌을 피하는 것이 영혼을 구원(구령/救靈)하는 것이다.

(악을 버려두시는 하느님) 하느님을 공경하고, 그분의 계명을 잘 지킴으로써 천상의
영원한 복락을 추구하는 것이 종교의 목적이다. 이 모든 것을 다 인정한다 해도 신앙을
갖고 싶지는 않다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이처럼 악이 횡행하고
있는데, 이것을 막지 않는 하느님을 믿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악만
저지르도록 창조된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사람에게는 사리를 판단할 수 있는
영혼이 있는 만큼, 사리를 잘 분별해 가면서 즐겁게 살도록 자유를 허락했을 뿐이다.
인간에게 자유란 목숨 못지않게 소중한 것이다. 이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선인이 될 수도 있고, 악인이 될 수도 있다.

- 어떤 분들은 자유를 주신 것에 감사하지만, 이 자유를 남용해서 악을 저지르는 사람을
즉시 처벌함으로써 다른 악이 저질러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바람직한 의견이지만,
누가 악을 행할 때 즉시 무서운 형벌이 내린다면, 채찍이 무서워 밭을 가는 황소처럼
사람은 자유를 잃고 한낱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악을 범하는 즉시 무서운 형벌을
내린다면 아마 우리도 오늘 이처럼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처벌은 하지
않더라도 착한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악한 사람들이 복을 받는 이러한 불합리는
시정해 주셔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이런 것을 보고 하느님의 정의를 의심
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의 정의로우심은 성서의 몇 군데에서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
마태오 복음 25장 46절(최후의 심판), 16장 27절(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13장 30절(가라지의 비유)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 모든 것은 다 제 때가 있다. 씨앗을 심을 때가 있고 가꿀 때가 있고 추수할 때가 따로
있다. 지금의 이 인생은 우리에게 주어진 그 짧은 시간을 자유로이 쓰면서 다음에 올
영원한 세상에 알맞도록 우리의 영혼을 성숙시키는 기간이지, 상선벌악을 완성시키는
기간은 아니다. 사람은 본시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착한 사람도 악을 행할 수 있고,
반대로 악한 사람도 선을 행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악을 저지르던 사람이 진정으로
뉘우치면 자기의 죄를 기워 갚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 선을 행하는 경우도 많다.

(불공평한 하느님) 어떤 사람들은 잘 살고, 어떤 사람들은 못 사는 불공평함을 볼 때
하느님을 믿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런데 우리에게 필요한 온갖 것들을
장만해 주시는 것은 오로지 그분의 자비와 우리에 대한 사랑에 기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이에게는 더 주고, 어떤 이에게는 덜 주신다고 해서 불평할 일은 못 된다. 여왕
개미는 알만 낳고, 수개미들은 여왕개미에게 수태만 시키고, 일개미는 집을 짓거나
먹이만 구하고, 병정개미는 적을 물리치기 위한 싸움만 함으로써 개미의 사회가 유지
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 밑바닥에 있는 것이 하필이면 왜 나여야만
하는지 원망스러워 하느님을 믿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일개미나 병정개미들이 왜
일하거나 싸우는 것이 하필이면 나여야만 하느냐고 제각기 항의해서 모두 수개미가
된다면 개미의 사회는 금방 굶주리고 적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고 말 것이다.

-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굶주리는 사람은 없어야 할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국제식량농업기구의 통계(1993년 기준)에 따르면 지금 지구에서 생산되고
있는 식량은 인류가 필요로 하는 분량의 다섯 배에 이른다고 한다. 그럼에도 지구의
한 구석에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기심과 물욕이 가득 차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메말라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분들은 하느님이 공평하시다면
왜 어떤 사람에게는 더 나은 재능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보잘 것 없는 재능을
주시느냐고 불평한다. 우리가 비행기나 자동차를 타고 편하게 다니면 되는 것이지,
각자가 그것을 만들 수 있는 재능을 다 가질 필요는 없다. 사람마다 재능의 종류가
다를 뿐이지, 누구나 하늘로부터 받은 독특한 재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신자나 성직자,
수도자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신앙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분들도 종종 본다.
그런데 신자건 성직자건 수도자건 간에 그 누구도 예수님이 아니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있는 제자들이다. 우리 신앙의 대상은 이 제자들이 아니라 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 예수님이다. 사람이 성화(聖化)된다는 것은 어렵다.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일생을 통해 그분을 본받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 4. 예수는 누구인가 >

(삶의 모범) 하느님은 한 분이시면서 아버지인 성부와 아들인 성자, 그리고 성부와
성자께서 발하시는 성령의 세 위격을 갖고 계신다. 그래서 하느님을 ‘삼위일체의 신’
이라 한다. 이 세 위는 서로 높고 낮음이나 먼저 계시고 후에 계심도 없이 오직 한 분의
하느님이시다. 이에 대한 성서의 말씀을 들어 보자. 마태오 복음 3장 16절에는 예수
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 위에 내려 오셨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이라고 말씀하셨다. 말씀하시는 이(성부)와
아들과 성령의 셋이 구분된다. 또 28장 19절에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0장
30절에는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잘라 말했고, 14장 9절에는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성부와 일체를 이루시는 하느님이심을
천명하셨다. 그리고 성령도 성부, 성자와 똑같은 하느님이심을 말씀하셨다.

- 한 분이면서도 세 분처럼 역사하시는 이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참으로 어렵다. ‘경험하지 못한 것은 인식에 없다.’는 철학의 원리는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다. 삼위일체에 대해서 굳이 비유를 든다면 전기를 생각할 수 있겠다.
우리 가정으로 들어오는 전기는 하나지만, 이 전기는 집 안에 들어와서 전등 속으로
들어가면 빛을 내고, 냉장고 속으로 들어가면 얼음이 되고, 다리미 속으로 들어가면
열을 낸다. 그런데 석유 등잔불 밑에서 살던 조선 시대의 노인이 부활해서 이것을 본다면
도저히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전기를 경험하지 못했고, 그의 머릿속에는 전기가
인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모두 하나의 전기라는 것을 아무리 설명해도
하나의 전기가 빛을 내고, 얼음을 얼리고, 뜨거운 열을 내는 현상을 납득하지 못한다.
오직 세 종류의 전기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 하느님 자신이신 성자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서 세상에 오신 것은 교훈과
표양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보속하시기 위함이다.
가난한 목수의 양아들로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심으로써 가난을 즐겨 받는 모범을 보여
주셨고, 부모를 도와 열심히 일함으로써 효도의 모범을 보여 주셨으며, 부모에게 순명
함으로써 성가정의 모범을 보여 주셨고, 거룩한 언행을 보여 주심으로써 바르게 사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많은 교훈으로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신 다음, 잡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몸소 모범을 보이시는 이유를 밝히셨다.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바르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친히 보여 주시지
않고, 하느님으로서의 위엄과 권능을 가지고 하늘에서 말로만 가르치셨더라면 그
가르침이 이처럼 설득력을 갖지는 못했을 것이다.

(인류가 바친 제물)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당시, 인간이라고는 단 두 사람이었다.
따라서 도둑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 하는 등의 계명은 소용이
없는 때였다. 그러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은 하느님께 대한 순명과 충성심을
측정하는 유일한 계명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먹으면 하느님과 같게 된다는 마귀의 꾐에
빠져, 아담과 하와는 이 계명을 어겼다. 그 목적이 배고픔이나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하느님과 같이 되겠다는 것이었던 만큼, 이것은 하느님께 대한 모반이었다. 절대자이신
하느님께 피조물인 인간이 모반한 죄는 큰 죄였다. 이처럼 큰 죄를 속죄할 만한 대가를
사람이 치를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비천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이 하느님께 어떠한 속죄를 하든지 그것이 하느님께 반역한 그 큰
죄를 상쇄할 만큼 큰 가치를 지닐 수는 없다. 이것은 오직 신이면서 사람이신 성자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우리의 죄를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이유
중의 하나이다.

- 예수님은 요한복음 12장 27절에서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하고 말함으로써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밝혔다. 이것은 죽음을 앞두고 십자가상의 고통에 대해 번민하면서 하신 말씀이다.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이 이처럼 큰 것이기에 우리는 그분을 구세주로 섬김과 동시에
그분에게 형님이요, 오빠요, 벗으로서 친밀감을 느낀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2만여 명의 우리 조상들을 위시해서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순교자들이 그분을 위해 서슴없이 목숨을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활) 예수님은 비참한 죽음과, 사흘 뒤에 일어날 부활에 대해 적어도 세 번은 예언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마태 16, 21).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다시 되살아 날
것이다.”(마태 17, 22)라고 두 번째로 예고하신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 날 것이다.”(마태
20, 17)라고 세 번째로 예고하신다. 이처럼 예수님은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죽을 것임을 다 알고 계셨다. 그렇지만 사흘 뒤에 부활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가르쳐 왔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돌아가신 다음, 제자들의 태도를 보면 이것이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믿지 않았고, 믿으려 하지도 않았다.

-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맨 처음 본 막달라 마리아가 이 소식을 전해 주었는데도
믿으려 하지 않았고(마르 16, 9),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께
실망하는 말을 주고받을 때 예수님이 나타나 함께 가며 대화를 했는데도 그들은 한참
동안 몰랐고(루카 24, 13),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처음 나타나셨을 때 그들은 유령
보는 줄로 알았으며(루카 24, 37), 열두 제자 중의 하나였던 토마는 내 손으로 못 박힌
상처를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요한 20, 24) 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도 이처럼 믿지 못할 부활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그들은 믿기 어려웠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들이
갖지 못했던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증거란 바로 부활 이후에 돌변한
그들의 태도이다.

-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무서워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
걸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사흘 뒤부터 태도가 바뀌어 모두 거리로 뛰어 나왔다. 예수님이
처형당하신 지 두 달도 못되어 그들은 위험천만한 예루살렘 성내에까지 밀고 나와
예수님의 부활을 외쳤다. 그 결과 예루살렘에서는 수많은 사제들도 예수님을 믿었으며,
바오로 시대에는 로마 제국의 방방곡곡까지 파죽지세로 번져 나갔다. 바오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외치는 스테파노를
돌로 쳐 죽일 때 바오로는 증인으로 있었고, 교회를 쓸어버리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남녀를 가리지 않고 끌어내어 모두 감옥에 쳐 넣었다. 그러고도 여전히 살기를 띠고
신자들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끌어 올 수 있는 권한을 받아 그것을 집행하러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이때부터 태도가 돌변하여 가장 열렬한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 열 두 제자 중에서 요한만 유배되어 자연사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십자가에서
참혹하게 처형됐거나 칼 등으로 무참히 순교 당했고, 바오로도 장렬히 순교했다. 열두
제자들은 처음부터 부활이란 것을 믿지 않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믿을 수박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증거들을 다 제쳐 놓고서라도 창조주의 전능을 생각할
때, 부활을 믿는 것은 당연하다.


< 5. 천주교는 어떤 종교인가 >

(예수님이 친히 세운 교회) 천주교의 특성은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친히 세우신 종교이다.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시는 장면을 성서를 통해서 알아보자.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 19-20). 또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
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6, 15-16). 아주 단호한 말씀이다. 예수님은 반드시 당신 친히
세우신 교회를 통해서 세례를 받고, 당신을 믿고 당신이 명한 모든 것을 지켜만 구원 받을
수 있다는 확고한 태도를 교회를 창립하셨다.

- 교회를 창립하신 예수님은 교회를 유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지도하기 위한 질서를 확립
하기 위해 12제자중 수제자인 ‘베드로’(원 이름은 시몬)에게 교회를 다스릴 교도권을
주셨다. ‘베드로’란 ‘큰 바위’, 즉 ‘반석’이란 뜻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교도권을 주시는
성서의 장면이다. 제자들과 함께 있는 베드로에게 예수께서는 “내 어린양들을 잘 돌보아라”
(요한 21, 15)라는 당부를 세 번이나 하신다. 십자가상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베드로에게
“내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루카 22, 32)라고 다른 제자들을 부탁하신다. 그리고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려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의 열쇠를 주겠다.”(마태 16, 18-19)며
베드로에게 지상교회의 교도권을 송두리째 부여하신다.

- 예수님은 이렇게 베드로를 사도단의 으뜸으로, 그리고 당신 교회의 으뜸으로 뽑으셨다.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뒤에 뒤를 이어 교회를 다스리는 분을 ‘교황’
이라 한다. 따라서 초대 교황은 베드로이고, 지금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베드로로
부터 264대째 이어 내려온다(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266대임). 베드로 이외의 사도들의
후계자는 주교들이다. 주교는 교황의 임명을 받아 각 지방 교회를 다스리고 있다.
천주교는 이처럼 예수님이 친히 세우셨고, 처음부터 유기적이고 질서정연한 지도 체제의
기틀을 잡아 주셨기에 때문에 12억의 신자들을 포용하고 있으면서도 오늘까지 분열
없이 세계의 종교로 인정받고 있다.

(성서를 보존하며 가르치는 교회) 성서는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에 기록한 ‘구약’과
예수님 이후 사도 시대에 기록한 ‘신약’으로 나누어진다. 이대로 믿고 행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벌을 받는다는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계약이다.
구약성서는 천지창조, 인류의 조상들, 유다 민족의 역사 등을 기록한 ‘역사서’와 덕행을
가르치는 ‘교훈서’, 그리고 회개를 권하며 미래를 예언하는 ‘예언서’의 세 종류로 분류
되는데, 모두 46권으로 돼 있다. 신약성서는 예수님의 언행과 교리를 사도들과 제자
들이 기록한 것인데, 모두 27권으로 돼 있다. 구약은 예수님이 오실 것을 예언하는
동시에, 그에 대비한 마음의 준비를 시키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언행을 기록한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의 네 복음서가 중심이 되고, 그 밖의 성서
들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바를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기록한 것이다.

- 가톨릭은 신약성서가 기록되기 전에 벌써 창립되어 성서 없이 신자들을 가르쳐 왔고,
가르치면서 기록해 내려왔다. 따라서 성서의 알아듣기 어려운 구절이나 애매한 문구들을
바르게 해석하는 데 이보다 적임자가 있을 수 없다. 구약성서의 첫째 권인 창세기로부터
신약성서의 마지막 권인 묵시록이 기록될 때까지 1천 5백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각기
다른 세대, 풍속, 언어, 지방, 환경 등에 처한 71명의 저자들이 기록한 것이 성서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는 6천 가지가 넘는데, 2000년 4월 현재 성서는
이미 2천 300가지 언어로 번역되어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예수님의 명령을 전하는
교재로 쓰인다.

(성전<聖傳>을 보존하며 가르치는 교회) 예수님의 명령 중에 글로 전해 오는 것을
‘성서’라 하고 기록 없이 초대 교회부터 교회 안에 그대로 전해 오는 것이 ‘성전’이다.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성전이 성서보다 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극히 당연한 사항은 기록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신약성서가 기록됐다 하더라도
거기에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이 다 기록된 것은 아니다. 천주교와 개신교가 공동
번역한 신약성서를 보면 예수님의 언행을 기록한 네 복음서가 각각 평균 55페이지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이 3년 동안이나 가르치시고 하신 것 전부가 여기에 실렸으리라고
보는 것은 우선 상식이 허락치 않는다. 그래서 요한은 복음서를 이렇게 끝맺는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성서는
일부 분실됐지만 그 가르침은 교회 안에 대대로 전해 오고 있으니 이 또한 성전이다.
성서보다 먼저 있었고, 성서와 공존해 온 성전은 성서의 희미한 뜻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문구들을 분명하게 설명해 준다. 초대교회 때부터 이 성전을 품에 안고 보존해 온
가톨릭교회는 예수님이 명하신 모든 것, 즉 성서와 성전을 온 세상에 전하고 있는 것이다.

(미사로 하느님께 공경을 드리는 교회) 미사는 천주교회가 하느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사이다. 제사는 제관이 생명이나 물질의 제물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하느님의 권능에
승복하는 심정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제사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최고의 의식으로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동시에 이루어졌다.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은 각각 달랐지만
어느 경우든 정성이 가장 깃든 것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최고의 충성심을 드러낸다.
제사의 동기는 어느 경우든 생명을 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데 대한 감사의 정을 표시하고,
죄에 대한 용서를 빌고 속죄하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온갖 은혜를 구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과 해방을 기념하며 지내던 구약의 제사는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신약의 제사로 바뀌었다. 하느님은 창세기와 시편을 통해 약속하신대로 당신의 독생
성자를 세상에 보내시어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닌,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완전무결한
제사를 드리도록 하셨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성부께 바침으로써 온 인류를 성부와 화해시키고 구원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킨 제물이 되셨고, 홀로 그 제사를 거행한 대사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서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4, 14)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
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 대사제로 임명된 예수님은 십자가상의 제사가 거행되기 전날 밤에 열 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저녁에 빵과 포도주를 드시면서 이렇게 말씀(마태 26, 26, 마르 14, 22,
루카 22, 19)하셨다.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라고 단호하게 그것이 당신의
몸과 피라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너희는 이 예식을 행함으로써 나를 기념하라.” 이로써
제자들을 사제로 임명하셨다. 미사는 하느님이 친히 세우신 제사요, 이것을 거행하는
사제 역시 하느님으로부터 임명받아 대를 이어 내려오는 제관들이다. 이처럼 미사는
십자가상의 제사를 재현하는 제사이다. 따라서 제물이 바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인만큼 이것을 함께 나누어 먹음으로써 하느님과의 통교가
이루어지고, 이것을 받아 모시는 모든 사람이 하나 되는 것이다.



[ 제2편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
* 욕심을 버리고자 하는 욕심이 강할수록 당신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 1. 계명 >

모세는 구약성서의 처음 다섯 권을 기록한 성인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는 홍해의 동쪽에 있는 시나이 산에 들어가서 심신을 경건하게 준비한
다음, 하느님으로부터 이 계명을 받았다. 그러나 이 계명에는 제1, 2계명 등의 분류가
없었다. 처음에는 ‘필로’라는 유대인의 분류를 따랐으나 5세기에 이르러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분류를 따랐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십계명이다.

(제1계명 하느님을 공경하라)
하느님을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높이 공경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고,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7)

1) 미신 행위

- 이 첫 번째 계명을 충실히 지키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드릴 공경을 다른 이에게 드리는
행위는 일체 금해야 한다. 즉 온갖 미신행위를 금한다는 뜻인데, 미신이라 하는 것은
이치를 거스르는 믿음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을 하느님처럼
공경하는 행위는 물론이고, 비록 하느님을 공경한다 하더라도 헛된 방법으로 공경한다면
이는 모두 미신에 속한다. 예를 들면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실을 기적이라
외치며 몰려다니는 행위는 모두 미신으로 인정해서 금하고 있다.

- 우리는 온갖 식물들과 뛰노는 동물들과 날아다니는 새들을 통해 그들 안에 작용하신
하느님의 기적을 발견하게 되고, 창공에 널려 있는 수많은 천체들의 운행을 통해 그 안에
작용된 물리학적. 역학적. 수학적 기적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세상은 온통 기적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기적 속에 묻혀 있는 우리가 그것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엉뚱한
기적을 찾아다니거나 무슨 다른 기적이 또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이 또한 미신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교회가 항상 해오고 있는 방법을 벗어나서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도 미신 행위
이다.

2) 우상숭배

-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을 하느님처럼 공경하는 행위를 흔히 우상숭배라고 하는데,
이 역시 미신행위로서 제1계명은 엄격히 금하고 있다. 구약의 신명기(5, 7)에 기록되어
있는 계명의 원문을 통해서 우상숭배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어떤 형상으로도 신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그리고 우상숭배는 아니지만 헛된 징표로서 길흉을 믿는 모든
미신행위도 금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점을 치거나 손금, 관상, 토정비결 등을 보는 행위
등이다.

- 천주교회에서 성모 마리아나 성인 성녀들을 공경하는 것은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을 어기는 행위가 아니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아주 좁은 안목에서 나온 생각이다.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은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없는 마리아라면 그분은 성모님이 아니요,
따라서 마리아를 공경할 이유도 없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낳아 기르셨을 뿐 아니라 십자가
아래에서 아들의 처참한 임종을 지켜봄으로써 정신적으로 십자가형을 함께 당하셨으며,
그 시신을 품에 안아 장례까지 지내셨다. 천주교회가 성모님께 기도하는 것은 성모님을
전능하신 하느님과 동일시해서 그분의 능력으로 무엇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카나의
기적 (혼인잔치에서 예수가 어머니의 청을 받아 들여 물을 술로 만드신 기적)처럼 아드님
예수께 말씀드려서 우리가 구하는 바를 얻게 해달라고 그 전달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것을
전구(傳求)라고 한다. 따라서 성모님께 대한 공경은 예수께 대한 공경을 경감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어머니를 본체만체 하는 것이 얼마나
예수님을 언잖케 하는 행동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

3) 성인 공경

- 성인, 성녀들을 공경하는 것도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성인, 성녀들의 대부분은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이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비록 육신의 생명을 바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하느님을 위해서 세상의
부귀영화와 모든 쾌락을 다 끊어 버리고 높은 덕행을 쌓아 올림으로써 정신적으로 순교
해서 하느님을 증거하고 세상 사람들의 모범이 된 분들이다. 따라서 이분들을 공경하는
것은 바로 그 뒤에 계신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없는 마리아라면 공경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예수님이 없는 성인. 성녀라면 비록 존경의 대상은 될망정 종교적인
공경의 대상은 될 수 없는 것이다.

- 성인, 성녀는 어떻게 태어나는지 잠시 살펴보자. 덕망이 높은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
복자나 복녀로 추천할 만하다고 여겨지면 모든 조사 서류를 교황청의 시복시성성
(諡福諡聖省)에 보낸다. 성성은 이 문서들을 검토한 다음, 추천할만하다고 인정되면
교황에게 보고한다. 교황이 이를 검토해서 시복조사를 허락하면 이때부터 본격적인 시복
조사가 시작된다. 수십 년 또는 백여 년에 걸친 조사가 끝나면 교황이 참석하는 회의를
열어 그가 과연 높고 거룩한 덕을 갖추었거나 순교를 했는가 등을 검토한 다음, 최종적
으로 교황이 그의 성덕을 인정하는 교서를 발표한다. 그리고 교황은 날짜를 정해서 그를
복자나 복녀의 반열에 올리는 시복식을 거행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두 번에 걸쳐서
모두 103위의 복자가 탄생됐는데 1984년에 맞은 한국 천주교 창설 200주년에 즈음
해서 교황(요한 바오로 2세)이 친히 한국을 방문해 이 103위에 대한 시성식을 거행하심
으로써 김대건 안드레아 등 103위의 성인이 탄생되었다. 이처럼 긴 세월에 걸쳐서
엄격한 심사를 거친 하느님의 충신들을 공경함으로써 그 높은 덕을 본받고, 천국에서
하느님의 총애를 받고 있을 그분들께 우리를 위해 빌어 주기를 청하는 것은 우상숭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4) 하느님 시험과 독성(瀆聖)
- 제1계명은 하느님께 대한 불경스러운 행동을 금하고 있다. 불경스러운 행동으로는
우선 하느님을 시험하는 행위를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대수롭지 않은 물건을 꺼내 오기
위해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면서 하느님께 보호를 요청한다든가, 심한 과속을
하면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지켜 주시기를 요청하는 등, 기적이 아니고는 무사할 수 없는
위험 속에 일부러 자신을 노출시키면서 그 부담을 하느님께 전가시키는 것은 하느님의
인자하심을 시험하는 행위이다. 또 중병에 걸린 환자가 투약을 거부하고 하느님께서
낫게 해주시기만 바란다든가, 벌기 위한 노력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복권 한 장 당첨되게
해주시기만을 바라는 등 하느님께 보호를 요청하는 것은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시험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하느님께 바쳐진 거룩한 것을 침범하는 독성을 들 수 있다. 하느님께
바쳐진 거룩한 것에는 사람과 장소와 물건의 세 종류가 있다. 사람에 대한 독성은
성직자나 수도자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그 직책에 관계된 사항을 가지고 세상 법정에
고소하는 것이다. 장소에 대한 독성은 축복한 성당이나 교회 묘지의 담 안에서 살인이나
음란한 행동, 파괴, 방화 등을 하는 것이다. 물건에 대한 독성은 미사를 드리기 위해 제대
위에서 하느님을 공경하는 데만 쓰기로 축성되었거나 강복된 물건들을 침범(피해)하는
것이다.

(제2계명 하느님의 이름을 정성스럽게 부르라)
제2계명에서 명하시는 것은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을 정성스럽게 부르라는 것이다.
경의를 갖추어서 기도의 형식으로 하느님을 부르는 것은 하느님을 공경하는 바람직한
행동이지만, 상당한 이유도 없이 또 경의도 갖추지 않고 사소한 일에 자기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맹세하기 위해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금하고 있다. 맹세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느님을 불러 자기 말이 참되다는 것을 보증해 달라고 청하는
행위이다. 맹세가 맹세로서의 효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첫째로 맹세하는 사람에게 맹세할 의향이 있어야 하고 진실해야 한다. 그리고 맹세는
그 내용이 의로운 것이어야 한다.

- 하느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불러 맹세한다는 것은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성서는 이에 대해서 집회서(23,9)에서 세심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네 입에 맹세
하는 버릇을 들이지 말고 거룩하신 분의 이름을 습관적으로 부르지 마라. ... 맹세를
어기면 죄악이 그와 함께 머물고 분별없이 맹세를 하면 죄가 갑절로 무거워지리라.
그가 헛맹세를 하면 의롭게 되지 못한다.” 예수께서도 마태오 복음(5,33)을 통해 엄하게
주의를 주고 계신다.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물론 이것은 맹세를 금하시는 명령은 아니고 다만 당시 사람들이 함부로
맹세하던 나쁜 습관을 경계하는 말씀이지만 우리도 이러한 폐습에 젖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겠다.

(제3계명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
제3계명에서 명하시는 것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는 것이다. 안식일(토요일)을
주일(主日)로 지키던 구약의 규정은 폐기되었지만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 신약의 종교와 구약의 종교를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같은 날을 주일로 지키면 신약의 교회와 구약의 교회를 구별하기가 어려
웠고 신자들의 신앙상의 위험도 없지 않았기 때문에 주일을 다른 날로 할 필요가 있었다.
둘째, 신약 교회의 기초가 되는 예수 부활과 성령강림이 일요일에 일어났기 때문에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일요일을 주일로 정했다.

- 구약의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창조사업을 마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구출하셨음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신약의
주일(일요일)은 하느님 자신이신 예수께서 강생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
하심으로써 인류의 구원사업을 완성하신 것은 더욱 놀랍고 기념해야 할 날이다. 사도
시대부터 종교적인 행사는 일요일에 행해졌다. 이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천주교
신자들은 제3계명이 명하는 바에 따라 일요일마다 교회에 모여 미사에 참여하고,
사도들이 했던 것처럼 주님의 만찬을 나누고 있다.

(제 4계명 부모에게 효도하라)
제3계명까지가 하느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부분이라면 제4계명부터는
사람사이에 지켜야 할 부분이다. 제4계명서 명하는 것은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것이다.

1) 자녀의 본분
-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며 순명하고, 부모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힘닿는 까지 도와
드리는 것이 자녀의 본분이요 효도이다. 이러한 효도의 기준은 어는 민족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또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모두 동일하다. 따라서 이것은 천주교의 교리 이전에
본성법에 따른 인간의 윤리요 도덕이다. 성서는 부모에 대한 모든 무례한 행동을 금하고
있다. 신명기(5, 16)와 출애굽기(21, 17)에 있는 두 가지 말씀은 부모를 공경하면
복을 내릴 것이고, 부모를 업신여기면 벌을 내리겠다는 경고이다. 부모의 순명에 대해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서(6, 1)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자녀 여러분,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옳은 일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이는
약속이 딸린 첫 계명입니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녀로 태어났다가 성장해서는 부모가 된다. 따라서 부모가 살아 계신
동안에 부모에게 효도를 잘하는 것은 내가 부모 되었을 때, 내 자녀들이 내게 효도하는
길을 가르쳐 주는 산교육이다. 계명 이전에 내 자녀들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라도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2) 부모의 본분 Ⅰ
- 부모는 자녀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의 생활을 돌보고, 특별히
종교와 정신교육을 충분히 시켜서 올바른 가치관, 올바른 인생관을 심어 주어야 한다.
사람이 출생과 동시에 소속되는 사회가 바로 가정이고, 그 가정의 환경과 조건을 형성
하는 것이 부모인 만큼, 부모는 자녀를 어떤 부류의 인간으로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문제아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부모에 의하여 만들어진다’고 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착한 표양을 보여 주어야 한다. 어릴수록 부모의 언행을 본받는 현상이 두드러
진다고 한다. 그래서 자녀들 앞에서 하는 대화의 내용은 항상 건전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부지런한 모습도 보여야 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면 자녀들은 자연히 열심하게 되고, 부모가 냉랭하면 자연히 자녀
들도 따라서 그렇게 된다.

3) 부모의 본분 Ⅱ
- 부모가 자녀에게 할 본분 중에 청소년들을 가진 부모가 지켜야 할 본분을 알아보자.
현재의 사회는 전근대적인 가치와 근대적인 가치, 동양적인 가치와 서구적인 가치가
혼재하는 과도기에 있다. 이러한 와중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부모 자신의 가치관 확립이다.
하지만 어떤 가치를 지닌 문화가 어떻게 범람하든 간에 만고를 통해서 변치 않는 진리는
엄연히 존재한다. 이것을 망각하거나 소홀히 할 때 사회적 병리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그 진리의 대표적인 것이 가정의 중요성이다. 가정은 인간의 가장 큰 미덕이 ‘사랑’이라는
것을 생활을 통해 체험하면서 배우는 곳이다. 유대인들은 ‘자식에게 한 마리의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금언을 좌우명으로 하고 있다. 청소년
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의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제일가는
전문가가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겠다.

4) 부부의 본분
- 에페소서 5장 21절~25절의 말씀이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
하십시오.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
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고 그 몸의 구원자이신 것과 같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그리스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가정도 공동체인 만큼 질서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그것이 지켜
지지 않을 때 그 가정에 파탄이 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따라서 여자인 하와를 창조
하면서 그 목적을 밝히신 것은 가정 안에서 부부 사이의 질서를 세워 주신 것이다.
교회의 가르침이 이렇고 또한 사회의 통념이 이러한 만큼 부부는 각기 자기의 본분을
알아 이를 지키고, 한계선을 침범해서 충돌을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유념해야 겠다.

5) 부부생활과 자녀
- 사람이 태어나서 자립할 때까지 소속되는 사회가 바로 가정이기 때문에 사람은
부모의 영향 아래에서 사람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아가게 된다. 그래서 부부간에
나눈 대화나 부부간에 하는 행동, 그리고 부부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자녀의 인격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부모를 보면 자녀를 알 수 있고, 자녀를 보면 그 부모를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부간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존경하는
마음가짐이다. 부부는 각기 다른 환경에서 각기 다른 부모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식성, 취미, 관념 등 모든 면에서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런 만큼
이것을 잘 이해해서 서로 상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되도록 상대의 의견을 수렴하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부부가 서로 정중하게 부르는 것은 존경심을 드러내는 것이고,
자녀들 앞에서 부모로서의 품위를 갖추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녀들도 부모의 권위에
승복하게 된다.

(제5계명 살인하지 말라)
이 계명은 자기나 남의 생명을 살해하는 행위를 금함은 물론, 자기나 남의 육신을
상해하는 것도 엄금하고 있다. 살인과 상해에 관계되는 것으로는 자살, 지체절단,
악을 행하는 자 대한 살해, 불의한 침입자에 대한 살해, 낙태 등이 있다.

1) 자살과 지체 절단
- 자살은 내 영혼 육신을 창조해 주셨고, 또 나를 다시 불러 갈 대권을 가지신 하느님을
모독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 보더라도 나를 낳아 보람 있게 잘 살기를 바라며
힘겹게 길러 주신 부모를 배신하는 불효한 행동이다. 하느님께서는 신명기(32, 39)를
통해 당신이 잡고 계신 생사 대권을 아무도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신다. 천주교회는
하느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스스로 제 목숨을 끊는 사람에 대해서는 교회 예식으로 장례를
지내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사사로이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금하지 않는다.

- 육신은 하느님께서 창조해 주신 것인 만큼 육신의 활동이나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모든 지체들 역시 하느님의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그 주인이 아니요 다만
그것을 잘 써서 육신의 생명을 보전하고, 인간으로서의 활동을 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사용자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온몸을 보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지체를
절단하는 행위는 대죄를 면치 못한다. 지체를 절단하는 행위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임신을 피하기 위한 수술이다. 원하지 않는 임신의 경우에도 성욕은 정관이나 나팔관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절제 없이 쾌락을 추구하는 나약한 정신이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욕구는 그대로 두고 죄 없는 지체들을 절단하는 것은 또 다른 죄악을 가중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덕행이든 악행이든 이것은 모두 자유의지에서 나오는 것인 만큼
정결한 덕은 자기의 의지로 지켜야 한다. 어떤 경우든 육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목적
이외에는 지체의 절단이 정당화될 수 없다.

2) 악행자의 살해와 정당방위
- 부득이한 정당방위가 아니면 아무도 악행하는 사람을 사사로이 죽이지 못한다.
정당방위란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그에게 죽음을 당할 위험에 처했을 때 그 죽음을
면하기 위해 상대를 죽이는 행위를 말한다. 법은 국가 권력만이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악을 행하는 자를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량한 국민들을 보호
하기 위한 이런 권력은 하느님께서 국가에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권력은 하느님의
뜻에 맞도록 써야 한다. 이래서 법은 아무리 국가 권력이라 하더라도 법에 따른 재판을
거치지 않고는 악행하는 자를 사형에 처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불의한 침략자에 대해서는 자기나 남의 생명, 지체, 정조 등을 보존하기 위하여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에는 죽일 수 있다. 이것이 정당방위인데, 이 정당방위는 하느님께서
주신 육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공격인 만큼 하느님께서 인정하심은 물론이요, 모든
국가들이 국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정당방위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요건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 첫째, 다른 방법이 없어야 한다. 둘째, 손해를 입기
이전이어야 한다. 셋째, 침략 행동이 시작되었어야 한다. 저편에서 아무런 행동의 표시도
없는데 이쪽에서 지레짐작으로 폭력을 써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상대가
덤벼들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거친 언동으로 분위기가 상당히 위험해졌고, 누가
보더라도 곧 공격으로 이어질 것이 예상되면 먼저 공격할 수 있다.

3) 낙태
- 자궁 안에서 나와서는 살기 어려운 7개월 이전의 태아가 나오는 것을 ‘낙태’라 하고,
그 이후의 태아가 나오는 것을 ‘해산 촉진’이라 한다. 그래서 낙태가 살인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7개월 이전의 태아가 사람이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과학기술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태아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영혼을 가진 우리와 똑 같은 인간임을 부인할 수
없다.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둘이 결합된 순간에 비로소 나라는 인간이 존재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내 영혼의 작용으로 내 몸은 무서운 속도로
세포를 증식시키면서 바깥세상에서 사용할 손발을 비롯하여 눈, 코, 귀, 혀 등의 감각
기관들을 갖춘다. 따라서 나라는 인간의 시작은 바로 잉태된 그 순간 말고는 그 밖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 기원전 4세기의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생명이 수태된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선언했으며, 그의 이 선언은 의학 수업을 마치고 의업에 종사하려는 모든
사람이 하는 선서로 채택되었다. 흰 가운을 입고 한 손엔 촛불을 들고 다른 쪽 손을 들어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된 때부터 더없이 존귀한 것으로 여기겠노라.”하며 선서를
한다. 천주교는 낙태하는 임산부, 그것을 시술하는 의사, 간호원, 마취사, 약제사를 모두
파문에 처하고 있다. 그리고 낙태를 강요한 부모, 남편, 그와 간통한 자 등도 모두 파문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미국의 경우 루이지애나 주처럼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주가 있는가 하면 , 뉴욕 주
처럼 낙태를 허용하는 주들도 있다. 낙태를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주들은 바로 그 인명
경시 풍조 때문에 살인사건의 발생률이 높다. 많은 주들이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근친
상간이나 강간에 의한 임신, 그리고 모체의 생명이 위태로울 경우에 한해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라 하더라도 무죄한 태아는 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 실제로 이런 경우를 당하면 인간적으로는 참으로 어렵고 괴로운
일이지만 생사 대권을 잡고 계신 하느님께 열심히 간구하면서 그분의 처분을 기다려야
한다. 의사와 엄마를 향해 살려 달라고 외쳐대는 아기의 처절한 절규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겠다. 이 침묵의 절규는 물욕과 이기심과 쾌락을 절제하면 할수록 선명
하게 들려온다.

(제6계명 간음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성(性)이 왜
있는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1) 성의 목적
- 식물은 제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바람이나 곤충의 힘을 빌어서 수꽃
가루를 암술머리에 묻힘으로써 종자를 번식시키도록 창조되었다. 식물은 감각기관이
없기 때문에 이 가루받이를 하는 과정에 쾌감을 느낄 수 없을 뿐 아니라, 제 욕구에
의해서 가루받이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를 유발시키기 위한 쾌감이 필요치
않다. 하지만 동물의 경우에는 몸을 제 스스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남의 힘을 빌지
않고 암수끼리 직접 교미를 통해서 후손을 퍼트리도록 창조되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수컷은 항상 개방돼 있지만 암컷은 발정기에 한해서 교미의 욕구가 발동되도록 창조
되었다. 암컷은 새끼를 배기 위한 목적 이외에는 교미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무리
수컷이 개방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 역시 새끼를 배기 위한 경우 이외에는 소용이 없다.

- 사람은 정신생활을 하는 동물인 만큼 부부 사이에는 후손의 증식 이외에 정신적 요소
또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사람의 경우에만은 임신이 가능한 가임기간이
아니더라도 남녀를 막론하고 항상 개방되어 있다. 이렇게 자유를 주더라도 자기의
욕구를 자기가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자유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지성을 믿고
인간에게만 주신 특별한 선물이요 축복이다. 그런데 성의 이러한 목적은 도외시한 채
거기에 깃들어 있는 쾌락만을 탐닉해서 하느님의 이 신뢰를 저버리고 윤리와 도덕과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 허다하다.

2) 간음의 종류
- 간음이란 부부 이외의 남녀 사이에 행해지는 모든 육체관계를 말하는 만큼, 이 계명은
성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부부 사이에만 이를 허용하고, 그 이외의 남용을 일체 금한다는
것이다. 간음에는 배우자에게 매인 몸끼리의 육체적 관계를 ‘간통’이라 하는데, 간통은
배우자가 있는 자가 자기의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관계를 했을 때 성립하는 죄로
배우자의 권리를 침해할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가정을 파괴
한다는 점에서 특수한 악을 내포하고 있다. ‘강간’은 합의가 없이 어느 한 쪽에 의해서
강요된 육체관계를 맺는 것으로, 이는 상대의 정조를 강제로 유린할 뿐 아니라, 상대
에게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주며, 심지어는 피해자의 의사와 전혀 관계없는 임신까지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특수한 악을 내포하고 있다.

- ‘상피(相避)’는 혼인할 수 없는 친척이나 인척사이의 육체관계를 말한다. ‘서로 피해야
할 사이’라는 뜻이다. 상피 중에서도 아버지와 딸 등은 직계 관계이기 때문에 고해시
이를 밝혀야 한다. 양아버지와 양어머니 같이 법적으로 맺어진 법친(法親)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천주교에서 대부나 대모같이 세례나 견진성사를 받을 때 영적인 지도를 위해
맺어진 신친(神親)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상피는 일가 친인척 사이의 혈연과 가정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특수한 악을 내포하고 있다. ‘독성(瀆聖)’은 거룩한 사람과의 육체
관계를 말한다. ‘거룩함을 모독했다’는 뜻이다. 거룩한 사람이란 성품을 받은 성직자와
정결을 지키기로 서원(誓願)한 수도자를 말한다. 거룩한 사람을 유혹하는 것은 6계명을
범하지 않았더라도 제1계명의 독성죄를 범한 것이다. 독성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특수한
악을 내포하고 있다.

3) 사음(邪淫)
- 자유인 몸끼리 합의해서 결합하는 행위를 ‘사음’이라 한다. 자유인 몸이란 배우자가
없거나, 수도원 등에서 정결을 지킬 것을 허원(許願)한 일이 없거나, 성직을 갖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모든 사음 중에서 근래에 특히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는
것이 10대 청소년들의 사음이다. 이들은 쌍방이 원한다면 그것은 당사자들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들은 성의 목적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것도 미처 생각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없는 자유는 미혼모가 늘어나는 원인이 되고, 이렇게 태어난 아이
들의 범죄율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높다는 것을 청소년들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에게 성의 목적, 성의 남용에 개재되는 악, 그리고 그로 인해 야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철저히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약혼자 사이에는 상관없지 않겠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약혼이란 결혼을 하겠다는 계약에 불과하다. 따라서 약혼한
사람들도‘진정한 사랑은 기다린다(True love waits)’는 운동을 하는 청소년들의 맹세를
함께 따라야 한다.

4) 그 밖의 부정(不貞) 행실 등
- 제6계명은 부부의 도(道)가 아닌 성적 쾌락을 일체 금하고 있는데, 수음(手淫/자위행위),
소도미아(동성끼리 동침), 수간(獸姦/짐승과 교접), 키스, 포옹, 부정한 만짐 등이 이에
해당된다. 여기서 ‘수간’은 영혼을 가진 인간을 모독하는 추악한 짓인만큼 모든 음란한
죄 중에서 가장 무거운 죄이다. 그리고 그 지방의 풍속에 따라 어디 갈 때나 들어왔을 때
예의와 친절의 표시로 뺨이나 손 같은 깨끗한 부분에 키스하거나 포옹하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상당한 이유 없이 이런 키스나 포옹에 오래 지체하면 육욕이 발동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이런 일은 피해야 한다. 그 이외의 부분에 키스하는 것은 음욕에서 나온 행동이거나
음욕이 발동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대죄가 된다. 그리고 눈을 조심하지 않거나, 음욕을
충동할 만큼 노골적인 음담패설을 하거나, 음란테이프, 음란 서적 등을 보거나, 그런
죄를 지을 위험이 예상되는 장소에 가는 것을 피해야 한다. 음란한 죄를 범하는 사람들이
그 악습을 끊어 영혼의 생명을 구할 생각은 않고 그 악습을 즐기다 지옥에 가기를 더
원하고 있다. 음란 죄 중에 오래 머물수록 이런 증세는 더욱 심해진다.

(제7계명 도둑질하지 말라)
- 일곱 번째 계명의 취지는 재산의 소유권을 보호하자는 데 있다. 불의하게 남의 재산을
빼앗는 도둑질이나 강도짓은 물론이고, 남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끼치는 행위와, 그러한
일에 협력하는 행위, 그리고 비록 자기 재산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낭비하는 행위를 모두
금하고 있다. 도둑질은 가질 권리도 없으면서 주인의 뜻을 거슬러서 재산을 가지는 행위를
말하는데, 절도, 강도, 사기, 횡령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일반적인 도둑질 외에 도둑질이면서
아니라고 생각하기 쉬운 사례를 들어 보자. 남의 부탁을 받아 그의 물건을 매매해 주면서
주인 모르게 챙기는 행위도 이에 속하며, 남의 일을 맡은 사람이 주인을 속여서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행위도 이에 해당된다. 또 물건을 속여서 파는 행위도 도둑질에 속한다.
또 지나치게 높은 이자를 받는 것은 돈에 쪼들리는 사람의 약점을 이용해서 그의 돈을
빼앗는 행위이기 때문에 강도에 가까운 도둑질이다. 또 고용인에게 품삯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터무니없는 낮은 품삯을 주는 행위도 도둑질이다. 이것은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
들의 약점을 악용해서 그들을 착취하는 간교한 죄악이다.

- 다음으로 남의 재물을 부수거나 불을 질러서 남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끼치는 행위도
이 계명에 어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 남편이 알든 모르든 아내가 과도한 비용을 지출
하는 것도 이 계명을 어기는 행위이다. 남편이 가정을 경제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
하는데, 필요 이상의 과다한 지출은 아무리 자기 재산을 자기가 쓴다하더라도 재산의
소유권을 보호하려는 이 계명에 배치된다. 이것은 남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재산은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인 만큼, 상당한 이유 없이 낭비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은
남의 소유권을 침범하는 행위인 만큼 어떤 모양으로 하든지 항상 죄가 됨은 물론이고,
이것을 부추기는 사람은 교사범, 그리고 그러한 일에 협력하는 사람은 공범으로서 모두
같은 죄악을 범하게 된다.

(제8계명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제8계명은 거짓말과 말로써 남에게 해를 끼치는 모든 행위를 금하고 있다. 거짓말로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로는 위증(僞證)과 무함(誣陷)을 들 수 있다. 위증은 법정에서
했건 법정 밖에서 했건 항상 죄가 된다. 만일 위증으로 인해서 어떤 편에 큰 손해를
입히면 대죄를 면치 못한다. 무죄한 사람을 죄가 있는 것처럼 재판관에게 무고(誣告)
하는 사람도 세속 법정에서 했든 교회 법정에서 했든 대죄를 면치 못한다. 다음으로,
없는 사실을 꾸며서 남을 곤경에 빠뜨리는 행위를 ‘무함(誣陷)’이라고 하는데, 전혀
없는 사실을 꾸미는 행위는 물론이요, 비록 있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침소봉대(針小棒大)로
작은 일을 크게 과장하는 행위도 모두 이에 속한다. 위증이나 무함은 다 같이 거짓말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악이다. 만일 그런 일을 해서 남에게 해를 입혔다면 반드시 그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 다음으로 거짓말은 아니더라도 말로써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로는
훼방, 이간질, 모욕, 비밀누설 등을 들 수 있다.

- 본인이 없는 데서 남을 헐뜯어 비방하는 행위를 ‘훼방’이라 하는데, 이러한 행위는
남의 명예를 해친다는 점에서 악을 내포하고 있다. 말로써 남의 정이나 관계를 떼어서
사이가 멀어지게 만드는 행위를 ‘이간질’이라 한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좋지 않게 말했다든가, 또는 그 사람이 알면 마음 상한 일을 했을 때, 그 사실을
고자질함으로써 범하게 된다. 불화의 원인을 조성한 이 같은 이간질도 죄악이다. 또
본인을 앞에 두고 불의하게 헐뜯거나 무례한 행동으로 불의하게 남의 존엄성을 침범하는
행위를 ‘모욕’이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하느님의 모상인 영혼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 인격은 존엄한 것이다. 다음으로, 비밀을 누설해서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들
수 있다. 비밀에는 자연적 비밀, 허락한 비밀, 위탁된 비밀이 있다. 어떤 종류의 비밀
이든 당사자의 명예와 여타 손실을 막기 위해서 지켜져야 하며, 특히 위탁된 비밀의
경우에는 그 의무가 더욱 중하다. ‘위탁된 비밀’은 의사, 변호사, 계리사, 신학자 같은
사람들이 직업상 알게 된 비밀이다.

- 끝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혼자의 생각만으로도 남의 명예를 손상시킬 수 있는데,
이러한 행위로는 ‘속단(速斷)’을 들 수 있다. 이것은 확실한 증거도 없이 남을 그렇다고
단정함으로써 범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혹시’하고 의심하다가 ‘아마 그럴 것’이라고
발전하고 마침내 ‘그렇다’고 판단을 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남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지 말라.’는 법의 정신이 있고, 모든 법정은 이 정신에 따라 판결하고 있다. 예수
께서는 마태오 복음(7,1)을 통해 이렇게 경고한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제9계명 아내를 탐내지 말라) 제9계명에서 금하시는 것은 온갖 음란한 생각과 행동을
여기시는 그러한 마음까지 금하시는 것이다. 이 계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범할 수
있다. 하나는 어떤 특정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그와 음행을 했으면 하는 원욕(願慾)을
품는 것으로서 이것은 미래에 관한 욕구요, 또 하나는 전에 범한 음행을 회상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과거에 관한 것이요, 마지막 하나는 미래나 과거의 분별
없이 음란한 생각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처럼 혼자서 생각만 하는 것은 이론적
으로 본다면 죄 될 것이 없지만 부정한 쾌락을 머리에 떠올리다 보면 그 쾌락에 동의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 예수께서는 마태오 복음(5, 27)을 통해서 이렇게 주의를 주신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
으로 그 여자와 간음하는 것이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감안하신 경고의 말씀이다. 이것은 저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불쑥 치솟는 본능적인 욕구를 악으로 규정하는 말씀이 아니라, 그 욕구를
지속시키면서 마음으로 즐기는 것을 지적하시는 말씀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기
때문에 이 계명은 온갖 부정한 생각을 떨쳐 버리라고 명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순간적인
충동을 즉시 눌러 버린다면 아무 죄도 되지 않는다.

(제10계명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제10계명에서 금하시는 것은 불의하게 남의 재물을 탐내는 탐욕이다. 제7계명에서
금하신 도둑질을 여기서는 그러한 마음까지 금하시는 것이다. 사기, 횡령, 착취 등의
도둑질을 할 마음과, 남에게 해를 끼쳐 가며 재물을 모을 생각, 그리고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서 부모가 빨리 사망하기를 바라는 마음 등 불의한 탐욕을 악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계명이든 다 마음만으로도 범할 수 있지만 성욕과 물욕의 두 가지 욕망을
이처럼 특별히 경계하시는 것은 이 욕망들이 사람을 유혹하는 힘이 강한데다가 이
욕망들은 끝이 없어서 이 세상 죄악의 대부분을 이 두 욕망이 일으키기 때문이다.

- 사자는 제 생존을 위해서만 다른 동물들을 죽이는데 반해서 호랑이는 죽이는 것 자체에
쾌감을 느껴서 다른 동물들을 죽인다. 두 동물의 힘은 비슷하지만 밀림의 왕자로 사자를
꼽는 것은 이러한 품성 때문이다. 인간의 성욕과 물욕은 호랑이의 습성과 같아서 그것이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든 가질 수 없는 것이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끝없이 가지려고
한다.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만여 벌의 옷을 남겨 두고 죽을 만큼 영화를 누렸
지만 그 많은 돈으로도 목숨만은 살 수 없었다. 통일한 천하를 지키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아 놓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불로 장수 약을 찾아 헤매던 중국의
진시황제도 결국 제 목숨만은 살 수 없어서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
돈으로 쾌락을 살 수는 있어도 정신적 만족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친구를 살 수는 있어도
진정한 우정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지위를 살 수는 있어도 수하 사람들의 존경심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황금 침대를 살 수는 있어도 평화로운 잠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집을
살 수는 있어도 가정은 살 수는 없다.

< 2. 십계명의 대의 >

(사랑Ⅰ)
- 십계명의 대의(大義)는 마태오 복음(22, 35)에 있다. 율법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다.“‘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
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
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제1계명에서 제3계명까지는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나머지 일곱 계명은 사람끼리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마태오 복음(7, 21)에서
말씀하신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런 다음에는 아버지의 뜻,
즉 계명을 실천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일러 주신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 13)

- 다음으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은 영혼과 육신이 결합된 생명체인 만큼 영혼을 위해서는 정신적인 사랑을
서로 나누어야 하고, 육신을 위해서는 물질적인 사랑을 서로 나누어야 한다. 이렇게 사랑
속에서 서로 화목하고 신뢰하며 평화롭게 행복을 누리라는 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다. 물질적인 사랑에 대해 예수께서는 마태오 복음(25, 35-41)에서,
최후의 심판 때가 오면 모든 사람을 불러 놓고, 착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을 갈라놓으신
다음, 착한 사람들에게는 천국을 차지하라고 하시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시겠다고
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주었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리고
악한 사람의 무리를 향해서는 영원한 불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겠다고
했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사랑 Ⅱ)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으로는 질투와 증오, 그리고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과 남을 죄짓게 하는 행위를 들 수 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도
율법학자들과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 등 백성들 앞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사람들의 질투
때문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예수라는 강적을 만나자 자기들의 인기에 불안을 느끼면서
질투하기 시작했고, 이 질투는 증오로 발전하고, 증오는 다시 살의(殺意)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자기는 완벽하다는 전제에서 나오는
착각이다. 사람은 모두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늙은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늙을 자격이 없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잘못을 저지를 자격이 없다. 이러한 무자격자가 잘못을 저지르면
용서받을 길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마태오 복음(6, 14)에서
“너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남을 죄짓게 하는 행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나의 언행이
남의 증오심이나 질투심을 유발함으로써 남을 죄짓게 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나의
범죄에 남을 끌어들여 공범을 만듦으로써 죄짓게 하는 경우이다. 거짓 증언을 하거나
남을 험담, 무함, 시기, 무고, 이간질해서 제8계명을 범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증오심을 일으키게 하고, 또 절도, 사기, 횡령 등으로 남의 재물을 불의하게 빼앗아 제7
계명을 범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증오심을 일으키게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재력, 지위, 학식, 재는 등을 천박하게 과시함으로써 듣는 이로 하여금 증오심이나 질투심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다. 이것은 천주교가 교만을 신앙의 적으로 규정하는 이유 중의 하나
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사기, 횡령, 절도, 강도 등의 도둑질에 남을 끌어들여 공범자로
만들거나, 임산부에게 낙태를 권유해서 살인하지 말라는 제5계명을 범하게 하거나, 남을
유혹해서 함께 음란한 행동을 함으로써 남을 죄짓게 할 수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을 죄짓게 하는 것이 음란한 행동이다.

- 성서에서는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 세 가지를 지적한다. 자기
사랑, 재물 사랑, 쾌락 사랑이 그것이다. 자기 사랑에 집착하면 질투, 시기, 증오가
머리를 들 뿐 아니라,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되면 지나칠 정도로 사랑하고, 자기와
이해관계가 없다고 판단되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기심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재물을 사랑하면 인색해져서 남에게 베풀 수가 없다. 사람을 사랑하고, 그러기 위해
재물을 주셨는데, 거꾸로 재물을 사랑하고 사람을 이용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쾌락을
사랑하면 한 순간의 쾌락을 위해서 영원을 잃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사랑하고,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지 않는 전도된 가치관은
인간사이의 신뢰와 애정과 평화를 파괴함으로써 각종 악을 유발한다.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것을 계명으로 주셨고, 또한 이 계명은 단순한 권유가 아니라 명령이라는 것을
강조하셨다.



[ 제3편 하늘나라의 시민권 ]
* 하늘나라는 영혼의 건강만을 심사하여 받아들이는 유일한 나라이다.


< 1. 기도 >

(은총) 은총이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려 주시는 특별한 사랑을 말하는데, 이 사랑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계명을 잘 지켜서 범죄하지 않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타고난 본능만으로는 행할 수 없고, 반드시
하느님께서 내려 주시는 은총에 의해서만 할 수 있다. 은총은 성총(聖寵)이라고도 하는데,
상존(常存) 성총과 조력(助力) 성총의 두 가지가 있다. 상존 성총은 사람에게 항상 있어서
그 영혼을 거룩하게 하는 은총인데, 이 은총으로 인해서 지상의 것과 천상의 것을 구별하는
눈이 열린다. 그러면 사람이 하느님의 벗이 되고 자녀가 되어 하늘에 공로를 쌓고 영생을
얻을 자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영혼을 거룩하게 의화(義化)시켜
공통점을 만듦으로써 서로 사랑하며 친하게 지내는 친구로 삼고자 하신다. 요한복음
(15,14)에서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고 허락하셨다.

- 세례성사를 받으면 타고난 원죄와 우리 자신이 지은 본죄가 사해지고 천상의 것을
바라보는 눈이 열려서 비로소 하느님과 공통점을 갖게 된다. 이때부터 하느님의 벗이
되고 자녀가 돼서 하느님의 상존 성총이 그 영혼을 거룩하게 의화 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계명을 어기는 대죄를 범하면 상존 성총도 다시 잃게 된다. 그러나 하느님은 자비하셔서
잘못을 뉘우치고,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청하면 거두었던 성총을 다시 주신다. 같은
사람에게 죽음과 생명ㅇ이 동시에 있을 수는 없다. 대죄는 영혼의 죽음이요, 상존 성총은
영혼의 생명이다. 조력 성총은 우리 여혼의 힘을 돕는 은총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비추시어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도록 그 마음을 움직이시는데, 이것이 조력
성총이다. 상존 성총은 방향을 제시하고 조력 성총은 그 방향으로 가도록 밀어 주는
것이다. 성총의 이러한 작용에 관해 필립피서(2, 13)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느님은
당신의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른 기도)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 향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느님을 흠숭하며,
받은 은혜에 감사드리고, 죄를 사해주시기를 빌며, 우리에게 요긴한 은혜를 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가 올바른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이 몇 가지
있다. 첫째, 가능한 것을 청해야 한다. 둘째, 자기 영혼에게 해롭지 않은 것을 청해야
한다. 셋째, 겸손한 마음으로 청해야 한다. 넷째, 꾸준히 청해야 한다. 끝으로 이와 같은
조건들이 다 갖추어졌으면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청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루카 복음(11, 9)을 통해 말씀하신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기도하는 방법) 바른 기도를 위한 요건들이 다 갖추어졌는데도 들어 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찾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잘못 청하는 경우 세 가지를
지적해 주신다. 첫째,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이다(마태 6, 5). 둘째, 쓸데없는 말을
하는 기도이다(마태 6, 7). 셋째, 자기의 악행을 호도하기 위한 기도이다(마르 12, 38).
예수께서는 이처럼 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다음, 이어서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여라.”
(마태 6, 9)하시면서 그 유명한 ‘주님의 기도’를 지어 주셨다. 이 기도문 속에는 아름다운
형용사도 미사여구도 없으며, 빈말도 없다. 그 짧은 경문 속에 일곱 가지의 기원이 포함
되어 있는데, 앞부분의 세 가지는 하느님의 영광에 관한 것이고, 그 다음 네 가지는 우리의
유익에 관한 것이다.

- 예수님이 친히 지어 주신 이 완전한 기도문의 짜임새를 본따서 천주교는 성모경을
비롯한 각종 기도문을 지어서 쓰고 있다. 아침 기도, 식사 전 기도, 식사 후 기도, 부모를
위한 기도, 자녀를 위한 기도, 문병 때의 기도, 문상 때의 기도, 성묘 때의 기도 등 생활
전반에 걸쳐서 그때그때 필요한 모든 기도를 이 경문에 따라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꼭 이 경문대로만 해야 한다든가 사사로운 자유 기도를 금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이처럼 기도문을 제정하는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잘못된 기도를 지도하기
위해서이다. 둘째는 기도의 정이 샘솟지 않는 경우에 이 기도문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셋째는 여럿이 기도할 때 주위 사람들에게 마음을 쓸 필요 없이 이 경문을 따라 하라는
것이다.

(기도의 내용과 종류) 하느님은 우리의 영혼만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 아니라 영혼
육신을 모두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런 만큼 영육 간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청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예수께서는 마태오 복음(6, 31)을 통해 하느님께
무엇을 구해야 할 것인가를 일러 주신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분의 의로움’이란 ‘공정(정의)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 이라고 구약성서 미카서(6, 8)에 포괄적으로 간단명료
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의 본질이요 목적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 등의 세상의 복을 기원하는 기복(祈福)
신앙이 아니라 공정을 실천하고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신앙이다. 상존 성총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인간의 능력이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의 영혼을
비추시어 악을 피하고 공정을 실천하도록 그 마음을 움직여 주시는 조력 성총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께 열심히 간구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조력 성총이다.

- 기도에는 묵상기도와 염경기도의 두 가지가 있다. 묵상기도는 하느님과 대화하거나
그 앞에서 무슨 진리를 궁구(窮究/속속들이 깊이 연구함)하는 것을 말한다. 농부는 농사에
대한 묵상을, 상인은 장사에 대한 묵상을 자기도 모르게 수시로 하게 된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의 영혼 사정에 대해서 농부나 상인들이 생각 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 묵상기도
이다. 눈을 감고 조용한 마음으로 우리가 당하는 우환이나 유혹을 말씀드리면 하느님께서는
좋은 생각을 보내 주심으로써 응답하신다. 이것이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는 묵상기도이다.
그리고 성서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써 진리를 탐구하고 어떻게 하겠다고 결론을 맺는
것이 진리를 궁구하는 묵상기도이다. 그날그날의 묵상기도를 지도하는 책이 있어서 대개는
이 책을 펴 놓고 묵상을 한다. 그들은 여기서 그날그날을 살아 나아갈 영신상의 에너지를
얻는다. 염경기도는 교회가 제정했거나 인준한 기도문을 입으로 외우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사사로이 할 수도 있고 여럿이 모여서 할 수도 있다. 이렇게 기도 할 때는 그 마음이
기도문을 따라가며 분심이 없이 하느님을 향해야 한다.

(기도의 대상과 시기) 기도는 하느님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께 드리는 청원이다.
하느님께 우리의 소망을 청원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우리가 직접 하느님께
청원하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성모 마리아와 천사들과 성인 성녀께 부탁을 드려서 나대신
하느님께 빌어 주시도록 하는 방법이다. 천주교 신자들이 항상 지니고 다니는 묵주는
우리가 하느님께 직접 드리는 주님의 기도 한 번에 성모님의 전달을 구하는 성모송을 열
번씩 바치면서 다섯 번을 되풀이 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교인들 중에는 이것을 보고 천주교는 마리아를 믿는 종교라고 믿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성모송은 성모님과 하느님을 동일시해서 성모님 자신의 능력으로 무엇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
하면서 성모님의 전달을 되풀이해서 애원하는 참으로 현명한 기도이다.

-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하느님께 용서받지 못한 대죄가 남아 있는 영혼은 지옥에 떨어
지고, 영아들처럼 대죄를 범한 일이 없거나 모든 대죄를 다 용서받은 영혼은 천국이나
연옥으로 들어가게 된다. 천국이나 지옥은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은 인생의 종착역이다. 그런데 연옥은 종착역이 아니라 교도소와 같은 곳이다. 거룩함
자체이신 하느님 곁으로 때 묻은 영혼이 그대로 갈 수는 없다. 고해성사를 통해서 대죄
자체는 다 용서받았다 하더라도 그 죄로 인한 잠벌은 받아야 한다. 이 벌에 대한 보속을
이 세상에서 다 하지 못했으면 저 세상에서라도 다 치르고 나야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는데, 이 옥고를 치루는 곳이 연옥이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들은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늘 기도드리며, 교회는 연옥영혼의 달(11월)을 정해 놓고 그분들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베풀어지도록 온 신자가 함께 기도드리는 것이다. 기도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서 드리는 것이다.

- 예수께서는 루카 복음(18, 1)에서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하셨고
마르코 복음(14, 38)에서는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신다.
예수님의 당부대로 언제나 기도드리기 위해서는 수시로 마음을 하느님께 향하고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저희를 용서하소서.” “주님,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하며
짧은 기도를 드리는 것이 좋다. 이러한 기도를 ‘화살기도’라고 한다. 이러한 화살기도는
발음해도 좋고 마음으로만 해도 좋기 때문에 식사 중에도, 일을 하면서도, 걸으면서도,
잠자리에서도 아무 때나 할 수 있다. 성녀 예수 아기의 데레사는 다른 수녀들과 함께 일
하면서도 온종일 마음속으로 화살기도를 바치셨다. 이처럼 끊임없는 기도가 그녀를 성녀로
만들었던 것이다.


< 2. 성사 >

성사는 그 성사가 표시하는 은총을 이루어 주기 위해 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예절이다.
성사는 모두 일곱 가지가 있는데, 어떤 성사든 이처럼 예절을 통해서 그 성사가 표시하는
은총을 받게 된다. 세례성사는 하느님의 자녀로 입적해서 새 생활을 시작할 힘을 주고,
견진성사는 하느님을 증거할 용기를 주며, 고해성사는 범한 죄를 용서받고 다른 죄를 피할
힘을 주며, 성체성사는 하느님과 사랑으로 결합할 열정을 주고, 병자성사는 세상을 떠날
사람에게 마지막 유혹을 이겨낼 힘을 주며, 성품성사는 성직을 잘 수행할 은혜를 주고,
혼인성사는 부부생활과 자녀 교육을 잘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준다. 이 모든 은혜는
우리가 세상을 바르게 살다가 영생을 얻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 만큼, 예수께서는
이 은혜를 주시기 위해 각각 그에 해당하는 성사를 세우셨다.

(세례성사)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맨 먼저 받는 것이 세례성사이다. 세례는 물로 씻는
예절을 하는 성사인데, 이 성사를 받음으로써 타고난 원죄(原罪)와 스스로 범한 범죄
(本罪)를 모두 용서받을 뿐 아니라, 그 본죄 때문에 받아야 할 벌까지 다 사함을 받는다.
따라서 이때부터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다른 성사를 받을 자격을 얻게 된다. 예수께서는
마태오 복음(28, 19)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분부하셨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이어서 마르코 복음(16, 15)에서는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신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3, 5)에서는 세례를 받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단언하신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을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 천주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자녀가 태어나면 3일 이내에 세례를 주도록 하고 있으며,
만일 죽을 위험에 처했으면 즉시 줄 것을 부모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세례성사는
사제가 정식으로 로마 전례에 따라 거행하는 것이지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아무라도
간단히 사적 세례를 행할 수 있다. 일반인이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준비가 필요
하다. 첫째, 각자의 지적 수준에 맞는 교리를 충분히 배우고 그것을 믿어야 한다. 둘째,
죄를 통회해야 한다. 그리고 세례성사를 받을 때에는 대부(代父)나 대모(代母)를 정해서
신친(神親)관계를 맺게 하는데, 이것은 대자(代子)나 대녀(代女)로 하여금 신자로서의
본분을 잘 지키도록 지도하기 위해서 이다. 대부모가 된 사람은 대자녀가 영구히 자기
에게 위탁되었다는 것을 명심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일생을 통해 잘 돌보아야 한다. 세례를
받을 때에는 성인 성녀의 이름을 하나씩 따서 자기의 본명으로 정하는데, 이것은 그분의
언행을 본받고, 그분의 보호를 받도록 하기 위함이다.

(견진성사)
견진(堅振)은 성령과, 성령께서 주시는 일곱 가지 은혜를 받는 성사이다. 견진성사는
세례 받은 신자가 성령을 받음으로써 하느님을 섬기고 영혼을 구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는 슬기와, 교리를 잘 알고 믿는 통달함과, 선악을 분별하는 의견과, 유혹에 대항
해서 싸우는 굳셈과, 성서의 말씀을 알아듣는 지식과, 하느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여
공경하는 효경(孝敬), 그리고 죄악으로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 성령께서 주시는 일곱 가지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견진성사를 받기 위해서는
첫째로 상당한 교리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이제부터 남의 영혼을 구하는 일에 힘쓸
본분을 지니는 만큼 이것은 당연한 의무이다. 둘째는 성총 지위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만일 대죄를 범해서 상존 성총을 잃은 상태에서 이 성사를 받으며 견진성사를 모독하는
대죄를 추가로 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견진성사를 받을 때에도 세례성사 때와 마찬
가지로 대부모를 세우는데 견진성사를 받은 사람을 세워야 한다.

(병자 성사)
병자성사는 지능이 열린 신자가 병으로 죽을 위험에 처했을 때 이를 도와주는 성사이다.
이 성사는 첫째로 앓는 이의 심적 고통을 덜어 주고, 임종 때에 당하는 유혹을 이기게
하는 은총을 준다. 평소에 건장했던 사람도 병마에 시달리고 임종이 가까워지면 임종이
가까워지면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약해지고 고독감과 비애를 느끼게 된다. 게다가 자기의
영혼 사정에 대해 불안을 느껴서 남모르는 근심 걱정으로 애태우며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마귀는 갖은 방법으로 유혹한다. 원망으로 하느님을 미워하게
하거나, 실망과 낙담으로 마지막 통회의 기회를 놓치게 하거나, 죄의 사함에 대한 의구심을
일으켜 하느님께 대한 소망을 포기하도록 유혹한다. 병자성사는 이러한 상황에 처한
병자에게 예수님께서는 병자의 영혼을 구하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심을 일깨워 주며,
천당 영복을 위해 병고를 달게 받도록 하고, 용기를 가지고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게 한다.

- 병자성사는 병자가 전에 고해성사를 통해서 용서받았던 죄의 잠벌과 소죄를 다 없앨
뿐 아니라 병세 때문에 고백까지는 못하더라도 통회하는 대죄까지 다 사해 준다. 이처럼
대죄까지도 다 사해 주는 성사인 만큼 병자성사는 반드시 성품을 받은 사제만이 거행할
수 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 노자(路資)가 필요한 것처럼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세계로 넘어가는 사람에게는 성체가 필요하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받는 성체를 ‘노자
성체’라 한다. 노자 성체는 같은 날만 아니면 위험이 계속되는 동안 몇 번이든 다시 받을
수 있다.

(고해성사 Ⅰ)
고해성사는 세례성사를 받은 이후에 범한 모든 죄를 사하는 성사이다. 죄는 영혼의
병이다. 사람은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고, 견진성사로 군인의 자격을
얻지만 사람인 이상 그 영혼에 병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 병을 치료하는 것이 고해
성사이다. 이 치료를 받기 위해선 다섯까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자기가 범한 모든
죄에 대해서 잘 성찰(省察)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명하신 십계명이나 교회가 명한
교회법을 어기면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기 때문에 만일 이러한 상태에서
세상을 떠난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 마태오 복음(18, 8)에서는 계명을
어겨서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강조하신다.
“ 네 손이나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두 손이나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불구자나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불타는 지옥에
던져지는 것 보다, 한 눈으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계명을 어겨서 하느님을
떠난 결과가 이처럼 것인 만큼 대죄는 반드시 잘 성찰해서 죄의 종류와 횟수를 알아내어
이것을 고백하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

- 둘째, 성찰한 죄에 대해서 뉘우치고 아파하는 통회를 발해야 하는데, 이것은 고해의
다섯 가지 요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뉘우침이 없으면 같은 죄를 다시 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파하지 않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뉘우침에는 완전한
뉘우침과 불안전한 뉘우침의 두 종류가 있다. 완전한 뉘우침은 죄로 인해서 인자하신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하느님을 욕되게 한 것을 아파하는 것인데, 이러한 뉘우침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불완전한 뉘우침은 죄로 인해 천국을 잃고
지옥 벌을 받게 된 것을 아파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뉘우침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
보다 자기 영혼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완전한 뉘우침은 고해할 뜻을
가졌으면 즉시 사해지고, 불완전한 뉘우침은 반드시 고해성사를 통해서만 사해진다.
때문에 완전한 뉘우침은 범죄했을 때나 임종 때에 반드시 발하는 것이 좋다.

- 셋째,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고 또한 범죄할 기회를 피하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정개(定改)라 하는데, 이러한 결심이 없이는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 넷째,
성찰한 죄를 고해신부에게 고백해야 한다. 사람이 하느님께 지은 죄를 같은 사람인 신부가
사해 주는 것은 신부들이 월권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부여하신 권한을 가지고
그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요한복음(20, 23)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명한 말씀
으로 사죄권을 주신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또한 마태오 복음(18, 18)에서도 같은 내용의
말씀을 하신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어 있을 것이고, 너희가 무엇
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사죄권을 부여받은
제자들의 뒤를 잇는 신부들인 만큼 신부들은 죄를 풀거나 풀지 않을 권한을 가졌다.

(고해성사 Ⅱ)
남의 죄를 용서하는 것은 고해 신부가 자기 자신의 권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가지고 하는 만큼 죄의 고백이 끝나면 고해신부는 이렇게 기도한다.
“인자하신 하느님, ... 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용서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서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신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약속에 따라
그 직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부도 사람인만큼 잘못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신부도
잘못이 있으면 다른 신부에게 고백하고 그 잘못을 용서받는다. 그리고 평신도든 신부든
주교든 추기경이든 교황이든 어느 누구도 자기 영혼의 병을 자기가 진단하고 자기가 처방
하고 자기가 치료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다른 신부에게 고백해서 그 진단과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고해제도이다.

- 다섯째, 반드시 자기가 저지른 죄에 대한 보속(補贖)을 해야 한다. 고해성사로 죄를
용서받으면 지옥 벌은 면하지만 그 죄에 해당되는 잠벌(暫罰)은 남아 있다. 이 벌은 세상
에서 받지 않으면ㄴ 연옥(煉獄)에 가서 받아야 한다. 보속에는 하느님이 정하신 것과
신부가 벌하시는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보속은 남에게 끼친 모든 손해를
기워 갚으라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고해 전에 해야 한다. 남에게 끼친 손해는 반드시
기워 갚아야만 그 잘못을 용서해 주시겠다는 이 보환(報還)의 의무는 하느님께서 정하신
만큼 고해신부도 면제해 줄 수 없다. 다만 경우에 따라 그 의무의 실행을 연기해 줄 수는
있다. 재물로든 몸으로든 어떤 형태로라도 상대에게 입힌 손해를 갚아야 하고, 그렇지
못할 형편이면 스스로 고행을 해서 자기 자신을 벌하고, 선행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라도
갚아야 한다. 신부가 벌하시는 보속은 주로 어떤 기도를 몇 번 하라든가 떤 고행이나 어떤
선행을 하라는 것이데, 이것은 고백을 듣고 나서 명하는 만큼 고해 후에 한다.

(고해의 비밀)
고해의 비밀은 고백으로 알게 된 모든 것과 그와 관련된 것들을 통틀어 말한다. 이 비밀의
누설은 자연법, 신법(神法), 교회법 모두가 금하고 있다. 이것을 누설함으로써 죄를 고백한
사람의 명예가 훼손되는 만큼 자연법과 신법은 이를 금하고 있으며, 또한 이것을 누설함
으로써 사람들이 이 성사를 기피해서 그리스도가 친히 세우신 이 성사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교회법도 이를 엄금하고 있다. 고해의 비밀을 지킬 의무는 영구적이요
절대로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여기서 ‘영구적’이라는 말은 죄를 고백한 사람이 죽었더라도
그 비밀을 지킬 의무는 계속된다는 뜻이다. 이 의무는 고해신부뿐 아니라 고백을 통역한
사람, 우연이든 고의든 남의 고백을 들은 사람, 그리고 고해를 위해서 적어 놓은 성찰
기록을 우연이든 고의든 읽은 사람 모두에게 지워진다. 대죄는 물론이고 아무리 작은
소죄라 하더라도 고백을 듣고서 알게 된 사실은 모두 고해의 비밀에 속한다. 그리고 고백한
당사자뿐 아니라 그의 공범이나 피해자에 관한 사항들도 모두 고해의 비밀에 포함된다.

- 비밀을 누설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고해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을 놓고 이름
까지 대면서 아무개가 이런 일을 했다고 분명히 말하는 직접 누설과, 그렇게는 하지 않지만
주위의 사람들이 고해한 사람의 죄를 눈치 채게끔 말하거나 행동하는 간접 누설이 있다.
고해신부가 이 법을 어기고 고해의 비밀을 직접 누설하면 파문을 당하고, 간접 누설하면
미사 집전이 금지되고 고백을 들을 자격이 박탈되며, 죄가 중하면 성직을 박탈당한다.
그런데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이 성사를 세우신 지 2천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다른
법을 어겨서 처벌된 신부들이 더러는 있어도, 고해의 비밀을 누설해서 이 교회법을 적용을
받은 신부는 한 사람도 없다.

- 고해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신부들도 있다. 1350년, 보헤미아(지금의 체코
슬라바키아)출신인 요안 신부는 당시 왕비의 고해신부로서 고백한 내용을 밝히라는
국왕에 대해 비밀을 지키다 강물에 수장하는 순교를 했다. 신자들은 그 시신을 프라하
대성당에 안치하고 고해성사의 신성함을 옹호한 순교자로 공경했다. 후에 1729년 3월
19일,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요안 신부를 성인품에 올리는 시성식을 거행했다. 또한
프랑스의 ‘뒤물린’ 신부는 고해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25년의 유배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 이 신부는 살인의 누명을 쓰고 종신 중노동형을 인도받아 일 년 내내 태양이
작열하는 적도 밑의 악마섬으로 유배되었다. 유배생활 25년이 되던 해에 살인범은 그것이
자기 소행이었다는 것을 많은 사람 앞에서 고백하고, 고백성사까지 받고 죽었다. 그러나
뒤물린 신부는 중노동으로 병들어 신음하다가 범인이 자백하기 하루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서도 ‘나는 고백한다’라는 제목으로 오래전에 소개된 바 있다.

(성체 성사 Ⅰ)
성체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의 온전한 몸과 온전한 피, 그리고
온전한 영혼과 천주성이다. 성체성사는 이 빵과 포도주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을 받아
먹고 마심으로써 예수님과 일체를 이루는 성사이다. 요한복음(6, 27)의 말씀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그리고 이 양식을 얻기
위한 조건은 먼저 당신께 대한 믿음이라고 말씀(6, 35)하신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는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생명의 빵을 먹으면 영생을 얻게 되고(6, 47),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먹어야 할 생명의 빵이란 ‘나의 살’이라고 말씀(6, 51)하신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또한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고 말씀(6, 55)하신다. 이 ‘생명의 빵’에 대한
말씀은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의 말씀들이다.

- 성체성사는 십자가에서 수난하시기 전날 저녁에 친히 이것을 세우셨다. 12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는 장면은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의 네 공관 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고, 코린토 전서에도 자세히 실려 있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화가는
불후의 명작 ‘최후의 만찬’을 남길 수 있었다. 예수 친히 이 성사를 세우신 장면(1코린,
11, 23)을 보자.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 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수난 이후, 교회는 처음부터 이 예식을 행해 왔다.
오늘 날은 범세계적으로 코린토 전서의 말씀을 경문으로 쓰고 있는데,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이 성체성사가 바로 ‘미사성제’이다.

(성체 성사 Ⅱ)
물리. 화학 같은 자연과학의 법칙만을 익힌 우리의 짧은 식견으로는 성체성사가 납득
하기 어려운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안에 이 자연과학의 법칙을 세우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다. 따라서 하느님은 자연
과학 위에 존재하는 초자연적인 분이시다. 빵과 포도주가 어떻게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하느님의 진실하심을 보아서 그분의 말씀을 믿고, 그분의
전능하심을 인정해서 믿을 문제이지 자연과학의 법칙을 가지고 풀어 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성체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과 속성은 그대로 둔채, 당신의 전능으로 그 안에
실존하시는 것이다. 지난 8세기에 이탈리아의 란차노에서 바실리오회의 수사신부 한분이
미사성제를 봉헌하던 중,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고서 그 안에 예수님이 실존하신다는
사실을 두고 의심했다. 그 순간, 빵의 형상은 살의 형상으로 변했고, 포도주의 형상은
피의 형상으로 변해서 다섯 개의 일정치 않은 덩어리로 응고되었다. 이 성체와 성혈은
1200년이 지난 지금도 손상됨이 없이 성프란치스코 성당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현미경의 발달로 후에 이 성체를 확대해 본 결과, 그 살은 혈관까지 선명한 심장근육임이
밝혀졌다.

- 예수께서는 무엇 때문에 성체성사를 세우시면서 당신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예식을
행하라고 명하셨는지를 살펴보자. 식물은 뿌리에서 물과 양분을 빨아올린 다음, 햇빛의
힘을 빌어 그것을 자기의 몸으로 전환시키는데 이를 ‘동화작용’이라고 한다. 동물은 다른
동물이나 식물을 먹은 다음, 내장기관의 힘을 빌어 그것을 자기의 몸으로 전환시키는데
이 역시 ‘동화작용’이다. 이처럼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서 그것을 우리의 몸과 동화
시킴으로써 우리와 한 몸이 되고, 그와 동시에 그 안에 살아 계신 영혼과 천주성도 우리의
영혼과 결합해서 영육의 완전한 일치를 이루자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6, 56)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끝(28, 20)에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 마지막 약속 또한 이 성체성사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 그분은 진리 자체이시고 선 자체이시기 때문에 악과는 공존하실 수 없다. 따라서 내
영혼을 말끔히 청소한 다음에 모셔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일 대죄로 더렵혀진 영혼이
성체를 모시면 성체를 모독한 죄 하나를 더 짊어지게 된다. 비록 소죄라 하더라도 통회나
고해성사로 깨끗이 씻고 나서 성체를 모시는 것이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대접이다.
코린토 전서에서는 이렇게 경고하신다.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내 안에 모시기 위해 정성어린 영혼의 준비를 하고,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한 몸을 이루고
싶은 욕심에서 그 살과 피를 삼킬 때, 그분은 기꺼이 우리와 하나 되어 우리의 영혼을
돌보신다. 요한복음(6, 54)의 말씀을 명심하자.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혼인성사)
사람이 결혼하는 목적은 첫째로 자녀를 낳아 기르자는 것이고, 둘째는 서로 도와가면서
의지하고 살자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각기 자기 몸에 대한
권리를 상대방에게 서로 주고받겠다는 종신계약을 하느님 앞에서 맺는 것이 혼인성사
이다. 결혼의 목적은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정해 주셨는데, 이것은 구약
성서 창세기(1, 27)에 잘 나타나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하셨으니
자녀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결혼의 첫째 목적이다. 또 창세기(2, 18/24)에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하셨으니 남녀가
한 몸이 되어 서로 돕고 의지하는 것이 결혼의 두 번째 목적이다.

- “남자는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이 된다.” 하셨기 때문에 교회는 일부다처나 일처다부를
용납하지 않고 반드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계약만을 인정한다. 일부다처는 신법뿐 아니라
자연법에도 위배된다. 혼인에 대해서 코린토 전서(7, 4)는 이렇게 말한다. “아내의 몸은
아내가 아니라 남편의 것이고, 마찬가지로 남편의 몸은 남편의 것이 아니라 아내의 것
입니다. 서로 상대방의 요구를 물리치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부부사이라고 해서 상대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그 지체를 해치는 등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혼인성사는 종신 계약
이기 때문에 한 번 맺으면 상대가 죽기 전에는 풀리지 않는다. 이것을 ‘혼인의 불가해소성’
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 예수께서도 마르코 복음(10, 8)에서 “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코린토 전서(7, 10)에서 바오로는 “혼인한 이들에게 분부합니다. 내가 아니라 주님께서
분부하시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과 헤어져서는 안 됩니다. 만일 헤어졌으면 혼자 지내
든가 남편과 화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라고 혼배의
불가해소성을 강조하신다. 일단 혼인을 했으면 상대의 흠을 보지 말고 코린토 전서(13,
사랑) 말씀을 따라야 한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성품 성사)
성품(聖品)성사는 특별한 사람을 선택하여 성직(聖職)을 수여하고 그 성직을 타당하게
수행할 수 있는 은총을 주는 성사이다. 이 성사를 받은 사제는 그리스도께 당신 교회를
결속시키고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에서 봉사함으로써 구원의 은총을 전하고 다른 사람을
성화 시키는 특별한 사명을 받는다. 보통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신학대학에서 7년 동안
철학, 신학, 어학 등을 공부하게 된다. 신약 시대 최초의 사제들은 예수께서 친히 임명
하셨다. 루카 복음(6,13)에는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다.” 그리고 열두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나누는 자리
에서 성체 성사를 세우신 다음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하고 명하심으로써
성체를 축성하여 미사를 집전할 권한을 그들에게 주셨고, 요한복음(20, 22)에서는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심으로써 사죄권을 가지고 고해성사를 거행할 권한을 주셨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28, 19)에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명하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이 분부에 따라 그들은 각 지방을 두루 다니며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이끌어 나갈 적임자들을 뽑아 그들에게 안수하여 사제품에 올렸다. 따라서
열 두 사도들은 예수께서 임명한 최초의 주교들이었다.

- 예수께서는 마태오 복음(16, 18)을 통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
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이것은
열 두 사도 중에서 다시 베드로를 으뜸가는 사도로 뽑아 교회의 전권을 맡기시며 지도
체제를 확립하는 말씀이시다. 이처럼 예수님을 대리할 지상 교회의 최고 지도자를
예수님이 임명하셨으니 이분이 바로 제1대 교황이시다. 성품성사를 받아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덕(聖德)을 갖추어야 한다. 사제에게는 인격도 중요하고, 학식도
중요하고, 언변이나 수완도 중요하지만, 교회 안팎을 막론하고 훌륭한 인격자들이 많고,
학식이나 언변이나 수완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은 만큼 이런 것들만 가지고 그들을
하느님께로 이끌어갈 수 없다. 그들을 지도하며 이끌어 나가는 힘은 바로 사제의 성덕
에서 나온다.

- 사제가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코린토 전서(7, 32)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혼인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혼인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이 갈라집니다.” 사제의 길은 그
길을 갈망하는 의향을 품는 순간부터 성덕을 쌓고 독신생활을 결심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자녀에게 사제가 되기를
강요하거나, 반대로 사제가 되려는 자녀를 방해하는 부모는 파문에 처하고 있다. 이것은
사제를 간택하시는 하느님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성품성사를 받아야 한다. 이때부터 사제는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고,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로서 각종 성사를 거행할 수 있게 된다.
사제는 하느님 앞에 이러한 중책을 맡은 분이며,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자기의
일생을 제물로 바친 분들인 만큼, 그들을 경애하고, 그들의 지도를 따르며, 그들을
아껴야 한다. 끝으로 여자는 성품성사를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 성서에는 없지만 예수
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의중을 따라 교회는 처음부터 그것을 성전(聖傳)
으로 가르쳐 왔다.

- # 084 독서 메모 끝.




금주의 독서 메모 085 (본문 중에서 부분 발췌)/ 2022.09.11.

[ 책 이름 :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 ]

- 지은이 : M.P. 뒤크로크
- 옮긴이 : 전유미
- 펴낸데 : 성바오로출판사, 출판일 : 1991.12.27, 192p
- 내용 : 현대의 가장 위대한 성녀, 전교의 주보이신 ‘예수 아기 성녀 데레사’
(=소화/小花 데레사) 수녀의 삶과 가르침들.

[ 표지의 글에서 ]

- 1873년 1월 알랑송에서 태어나 1897년 9월 30일 리지외의 갈멜 수녀원에서
죽을 때까지 24년의 짧은 삶을 산 ‘현대의 가장 위대한 성녀’. 죄인들의 용서를 구하고
선교에 대한 열렬한 갈망을 실현하고자 15세에 갈멜의 숨은 생활로 속으로 들어가
이 세상을 하느님께로 들어올리기 위해 작고 평범한 삶 속에서 하느님과 완전하게
결합한 예수 아기의 데레사 수녀. 극단적인 금욕뿐만 아니라 작고 평범한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극기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도 인간은 신성함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 준 성녀의 삶을 여러 자서전과 편지 글들을 모아가며 새롭게 이야기 한다.
1925년 5월 17일 시성, 1027년 12월 14일 전교의 주보 성녀로 선포.



[ 추천의 글 및 머리말 ]

- 소화 데레사 성녀(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의 사랑은, 비록 작고 보잘것없는 사건들
속에서 성화된 아주 적극적이고 창조적이며 구체적인 삶 그 자체였다. 성녀의 짧은
생애는 살아 숨 쉬는 사랑을 위한 삶이었으며, 평범하고 매일같이 되풀이되는 삶안에서
위대한 진리의 진주를 진흙 속에서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성녀 스스로 “나의 소명은
사랑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신성함이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자녀인 사랑 안에 있음을
성녀께서 일찍이 깨달은 것을 의미한다. ... 이 책은 전반적으로 성녀의 성소였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비록 기쁨보다 우선하는 희생과 고통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더
아프지만, 결국 사랑만이 인간에게 진정한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오직 신앙
안에서만 느끼고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성녀처럼 “모든 것이 은총이다.”라는 삶이
었음을 하는 바람이 크다. (갈멜수도회 정대식 신부)

- 물리학을 비롯한 모든 과학의 위대한 법칙들도 별것 아니다. 왜냐하면 어느 날 어떤
학자가 이 법칙들을 발견하여 그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법칙들은 세상이 창조된 이래로 여기에 변함없이 있었던 것이다. 영성 세계도 이와
마찬가지다. 데레사 마르탱이 새롭게 만들어 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다만 복음
에서 얻어낸 사라질 수 없는 힘의 원리, 참된 사랑의 힘을 명백하게 설명하였는데, 사랑의
고유한 투명성으로 밝혀 낸 것이다. ... 데레사 성녀가 손수 쓴 그들을 직접 읽는 편이
훨씬 낫지만, 이 글들을 많이 읽고 또 많이 기도한 뒤에 말할 수 있다.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 성녀의 삶과 가르침을 샅샅이 뒤져내어 이를 분석하고 해석하여 짜임새 있게
표현한 탁월한 책과 논문이 많이 있지만, 이 책에서는 모든 것을 아주 간소하게 설명하고
있다. (뒤크로크)


[ 차 례 ]

1. 저의 소명은 사랑입니다. 2.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
3. 신뢰의 길 4. 그분께서 하시는 것, 그것이 바로 제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5. 사랑하며 고통을 겪는 것 6. 데레사는 마리아 성화상 7. 파견, 부록

< 비고 : 차례별 내용에서 자서전 A는 ‘예수의 아녜스’ 원장 수녀에게 쓴 것, 자서전 B는 ‘마리아’
언니에게 쓴 것, 자서전 C는 ‘공자가의 마리아’ 원장 수녀에게 쓴 것이고 편지 모음집, 시집
그리고 예수 아녜스 원장 수녀의 ‘노란 수첩’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중 일부 발췌 메모/
데레사=테레사, 갈멜=카르멜>


[ 1. 저의 소명은 사랑입니다 ]

- 사람들은 예수 아기의 데레사 성녀가 희망의 계시자, 포기와 신뢰의 성녀, 겸손의
완전한 본보기, 영적 어린이의 길의 교사였다고 말하였다. 아직도 현대인의 흥미를 끄는
어느 책에서는 성녀의 전 생애를 통하여 ‘신뢰의 역동성’을 발견하여 기술하였다. 또한
성녀의 단순함 이 지닌 매력, 복음과 교회에 대한 성녀의 취지, 성녀의 전교 정신과
형제애에 관한 발견 등을 기술한 책도 있다. 성녀 데레사의 이 재산 목록은 지극히 풍부
하고 참된 것이어서 그 녀가 사랑의 성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사랑의 성녀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한다. 이 사랑에 는 데레사의 내적인 역동성과 생명력과 활동, 진보와 통일,
그리고 모든 것을 총괄하는 힘 이 있다. 데레사 자신은 사랑의 성녀이어야 함을 스스로
명백히 말하였고,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다. “저의 소명은 사랑입니다.” (B)

- 그녀는 자신의 고유한 사명을 명확히 정의하였다. “저는 무엇보다도 저의 사명이 곧
시작 되는 것을 느낌니다. 제가 하느님을 사랑하듯이 착하신 하느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노란 수첩)

- 데레사가 마지막으로 더듬거리며 했던 말은 다음과 같다. “오! 하느님, 당신을 사랑
합니다. 하느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노란 수첩)

- 데레사가 온갖 소명을 모두 택하면서도 “사랑이 모든 소명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서전 B)고 외쳤다.

- 살아 있는 동안 시대, 봉쇄, 나이, 생활양식으로 제한을 받았던 데레사는 천국에서
모두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줄 알았다. “저를 기다리고 있는 천국 행복에 대하여 저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제 마음을 뛰게 하는 단 한 가지 기대는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노란 수첩)

- “예수님께서는 자격자를 부르지 않으시고 당신의 뜻에 맞는 자를 부르십니다. 성바오로
께서도 하느님께는 ‘자비를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하고 싶은 사람을
동정한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고 안 받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A)

- 데레사는 아주 초기의 기억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착하신 하느님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첫영성체를 한 후, “저는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그분 안에서만
기쁨을 얻으려는 갈망도 느꼈습니다.”(A)

- “오, 하느님, 당신은 아십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만을 원했습니다. 저는 다른
열망을 갈망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사랑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미리 저에게 알려 주셨고
저를 길러 주셨으며 지금은 심연을 이루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자서전 C)

- 15세의 데레사는 예수의 아녜스 원장 수녀에게 이렇게 썼다. “저는 성녀가 되고 싶습
니다.” 또 데레사는 아버지의 영광이 되고 싶어 한 것이다. “네, 저는 언제나 당신의 작은
여왕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성녀가 되어 당신의 영광을 이루도록 할 것입니다.”
(편지) 그리하여 데레사는 갈멜에 있게 된다.

- 오래 전부터 데레사는 “태양아래 모든 것이 헛되고 정신의 괴로움뿐이며, 유일한
선은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 세상에서 마음이 가난한 것”(A)임을 깨달았다.

- 데레사의 소원은 무한하였다. “저는 예수님이 이제까지 사랑받으신 것보다 더 사랑
하고 싶어요. 그분을 그토록 사랑하고 싶어요.”(A/착복식 피정때)

- “사랑하십시오. 우리 마음은 이를 위해 잘 만들어졌지요. 때때로 저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다른 언어를 찾습니다만, 유배의 땅에서 영혼의 온갖 떨림들을 표현하기에는 말이
무력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라는 이 한마디로 만족해야 합니다.”(편지)

- 데레사는 죽기 몇 주 전에 이 영혼들(그녀의 가르침으로 살아갈 모든 영혼들과 사랑의
일을 할 모든 영혼들)을 위해 그리스 대학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지레와 받침점만
주시오. 그러면 지구를 들어 올리겠소.”(C) 데레사도 지구를 들어 올릴 한 가지 방법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사랑, 더 정확히 말하여 ‘사랑의 불을 타오르게 하는 기도’이다.

- 유년기부터 하느님께로 향한 데레사는 당신께로 가서 당신을 기쁘게 해드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사랑임을 일찌감치 경험한 것이다. 그리고 데레사는 말년에까지 이 확신
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를 하느님의 마음에 들게 하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는 것,
이 사랑만이 제가 탐내는 보물이라는 것을 저는 너무도 잘 압니다.”(B)

- 데레사는 열렬한 갈망을 채우기 위해 성서를 샅샅이 뒤져 보았고 마침내 자신의 전
생애인 사랑을 발견한 것이다. 사랑은 데레사의 소명 자체였다. “교회는 심장이 있고
이 심장에는 사랑이 불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교회의 모든 지체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 사랑이 꺼질 지경에 이른다면, 사도들은 복음을 다시는 전하지 못할
것이고 순교자들은 피를 흘리려 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은 모든 성소를
포함한다는 것, 사랑이 모든 것이라는 점, 사랑은 모든 때와 모든 장소를 포함한다는 것,
즉 한마디로 말해서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B)

- 데레사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하느님께 반해’ 있다는 것이 ‘마지막 남긴 말씀’ 책의
서문에 씌어 있다. 바로 ‘사랑’이라는 지렛대의 힘이 우리도 들어 올릴 수 있고, 우리와
더불어 교회와 이 세상을 들어 올릴 수 있다. 받침점은 하느님, 오직 하느님이시다.


[ 2.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 ]

데레사는 수련자들에게 수련장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말하면서 태초부터 계신
유일한 근원 즉 하느님, 하느님의 사랑,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먼저 찾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필요한 단 한 가지는 저를 점점 더 예수님께
일치시키는 것이며, 나머지는 여분으로 주시리라는 것을 저는 느꼈습니다.”(C)

(단 한명의 친구)
- 12세 때 첫영성체를 한 뒤부터 데레사의 ‘단 한 명의 친구’는 예수님이셨다. 하느님은
데레사에게 ‘좋은신 분’이시지만, 아버지와 하나가 되시는 예수님이 훨씬 더 좋으신
분이셨다. 예수 아기의 데레사 수녀는 아기 같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유일한 사랑을 알아
보았고 언제나 그것은 그녀의 것이었기에 죽기 1년 전에는 이렇게 표현했다. “오, 예수여!
첫째이며 유일한 벗이여, 제 사랑을 오롯이 바치는 그대여.”(B)

- “순교, 이것이 어렸을 때 저의 꿈이었습니다. 이 꿈은 갈멜 수녀원 생활 속에서 저와
함께 커갔습니다. ... 제가 만족하려면 모든 순교가 필요할 것입니다. ... 예수여, 예수여,
저의 모든 갈망을 쓰려고 한다면, 모든 성인들의 행실이 적혀 있는 당신 생명의 책을
빌려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을 위해 이 행실을 다 실행하고 싶습니다.”(B)
"나의 유일한 평화, 유일한 행복 나의 유일한 사랑은 주님, 당신이십니다."(시36)

(내가 그분을 사랑하듯이 그분을 사랑하게 하는 것)
- “어느 날 저녁,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과 예수님은 어디서나 사랑을 받고 찬미 받으
시기를 제가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어떻게 말씀드릴지 몰라서 전전긍긍하다가, 지옥에서는
사랑의 행동을 단 한 가지도 전혀 받으실 수 없다는 것을 비통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저주스러운 곳에서도 예수님이 영원히 사랑받게 하기 위해서라면, 그분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그곳에 빠져들어 가겠다고 하느님께 말씀드렸습니다.”(A)

- “예수님 안에서 일치된 우리 영혼은 다른 많은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온화하신 예수님은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다 들어주실 것이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것,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
우리가 예수님께 청하는 것입니다.” ... “저는 갈멜의 고독 속에서 제 사명이(데레사가
사랑했던 잔다크처럼) 죽은 왕에게 왕관을 씌우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임금님을 사랑
하게 하는 것, 그분께 마음의 왕국을 맡기는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편지, 벨르에르 신부에게)

- 룰랑 신부에게 보낸 지상에서는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이다. “저는 천국에서 일하지
않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갈망은 교회와 영혼들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하느님께 청하고 있으며 하느님께서 이 소원을 들어주시리라고
확신합니다. 하늘의 왕국으로 저를 이끄는 것은 주님의 부르심이고 제가 그토록 원한대로
마침내 그분을 사랑하는 희망이며, 그분을 영원히 찬미할 수많은 영혼들이 저로 하여금
그분을 사랑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편지)

-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그분을 사랑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데레사 성녀의 딸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려면 고통을
견디고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편지, 마르땡 가의 박식한 조언자 피숑 신부가)

- “저는 제 자신에 조금도 전념하지 않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제 영혼
안에서 시행하는 것을 그분께 내맡깁니다. 저는 저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 엄격한 생활을 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편지, 벨리에르 신부에게)

(주께서 저에게 맡기신 사람들)
- 몹시 쇠약해져서 회복만을 열망하고 있었을 데레사는 ‘지상에서 선을 실행하여 천국을
지내겠다’는 갈망을 죽기 전에는 거의 표현하지 않았다.“저의 사명은 제가 하느님을 사랑
하듯이 사람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 저의 작은 길을 영혼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저의 소망이 이루어지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지상에서 저의 천국을 지내겠습니다.
네, 저는 지상에서 선을 실행하면서 저의 천국을 보내고 싶습니다.” (노란 수첩)

- 영혼들의 구원과 보편적인 지복(至福)에 대한 열성은 데레사의 두 편의 글에서 절정에
달한다. 첫 번째 글 : “아, 저는 작지만 예언자, 학자들 같이 영혼들을 비추고 싶어요.
저는 사도가 될 성소가 있습니다.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며 영광
스러운 당신의 십자가를 이교도의 땅에 꽂고 싶어요.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저는 한 가지
사명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복음을 방방곡곡에, 가장 멀리 떨어진 섬에
이르기까지 한꺼번에 알리고 싶어요. 저는 몇 해 동안만 선교사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세상이 창조된 이후부터 그랬으면 싶고, 세월이 다할 때까지 그렇게 되고 싶어요. 오
지극히 사랑하는 구세주여, 저는 당신을 위해 제 피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쏟고 싶어요.”(B)

- 두 번째 글 “오 주여,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되게 하여 돌려보내 주소서. 신앙의
빛나는 ��불의 비춤을 받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마침내 그 불이 빛나는 것을 보게 하소서.
오 예수여,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진 식탁이 당신을 사랑하는 한 영혼에 의하여 깨끗해
져야 한다면, 당신께서 저를 빛나는 당신의 나라에 즐겨 이끌어 들이실 때까지 저는
거기서 홀로 시련의 빵을 먹고 싶습니다. 제가 당신께 청하는 단 한 가지 은총은 잠시도
당신의 마음을 상해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C)

- “단순한 사람에게 복잡한 방법은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도 단순한 영혼의 하나이므로,
어느 날 아침 감사 기도를 할 때 예수님은 저의 사명을 이행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이끄소서, 우리가 당신의 향기를 따라 달려가겠어요.’ 하는
찬가의 말씀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오 예수여, 그러므로 ‘나를 이끌면서 내가 사랑하는
영혼들도 이끌어 주소서.’ 하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를 이끄소서, 이 한마디로 충분
합니다.”(C)


[ 3. 신뢰의 길 ]

(신뢰와 사랑의 물결 위에서)
- “저는 영광을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생각하고 또 여기에 이르는 방법을 찾는 중에
하느님께서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분은 제 영광이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지 않고 위대한
성녀가 되는 데 있다는 것을 이해시켜 주셨습니다. 제가 얼마나 약하고 불완전했는가,
그리고 수도 생활을 7년이나 했지만 여전히 그대로인 것을 생각하면 이 소원은 무모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항상 위대한 성녀가 되겠다는 한결같이
대담한 신뢰를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아무 공로도 없으니까 저의 공로를 믿는 것이
아니고 오직 덕과 거룩함 그 자체이신 하느님께 바라는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저의 약한
노력을 만족히 여기시어 저를 당신께로까지 끌어올리시고, 당신의 무한한 공로로 저를
덮어 주셔서 성녀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A) 이 신뢰는 하느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특출한 의식,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절대적인 확신, 필연적으로 끝까지 밀고 나간 신념
바로 그것이다.

- 데레사의 마지막 자서전의 마지막 장에 쓴 이 말은 완전히 신뢰에 젖어 있다. “저는
믿음과 사랑을 통해 하느님께로 올라갑니다.” ... “저는 저의 아름다움을 전혀 보지
않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총만 보입니다.”(노란수첩)

(하느님은 저에게 당신의 자비를 주셨습니다)
- “현세의 삶이 끝날 때, 저는 빈손으로 당신 앞에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께
저의 일들을 셈해 달라고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올바르다고 하는 것은 모두
당신께서 보시기에 결점투성이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당신의 정의를 입고 싶으며, 당신
사랑으로 당신을 영원히 차지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완전한 사랑의 활동으로 살기
위해 당신의 자비로우신 사랑에 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봉헌합니다. 당신께 간구하오니
제 자신을 끊임없이 다 태우시고 당신께서 지니신 영원한 자애로움의 물결이 제 영혼에
넘치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 사랑의 순교자기 되게 하소서. 오, 하느님.”(봉헌문에서)

(당신께서 가난하면 할수록)
- “예수님은 어지심과 자비로우신 사랑은 너무도 알려져 있지 않아요. 사실 이 보물을
갖기 위해선 겸손해지고 자신의 허무를 인정해야 합니다. 많은 영혼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편지/벨리에르 신부에게)

- “갈망도 덕행도 없이 약하면 약할수록, 모두 태워 버리면서 변모시키는 이 사랑의
활동에 더욱 적합하게 됩니다. 희생물이 되려는 갈망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힘 없이
언제나 가난한 채로 동의해야 합니다. 이것이 어렵습니다. 마음이 참으로 가난한 사람을
어디서 찾겠습니까?”(편지)

- “저는 복음서가 아닌 다른 책에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저는 이 복음서로 충분
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에게 배워라.’ 저는 제가 해야 할 모든 것을
일러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듣습니다.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그래서 저는 그분의 정다운 이 약속대로 평화를 얻습니다.”(노란 수첩)

(예수님을 사랑하기만 하면 됩니다)
- “머지 않아 제가 천국에 가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자, 내가 곧 가겠다.
나는 너희 각 사람에게 자기 행적대로 갚아 주기 위해서 상을 가지고 가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할 때, 아마도 주님은 저에 대해서는 난처하실 것입니다. 저는 한 일이 없습
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제가 한 일에 따라서’ 갚지 못하실 것입니다. 주께서는 당신께서
하신 일대로 제게 갚아 주실 것입니다.”(노란 수첩)

- “작은 사람은 후하게 심판받을 것입니다. 아무리 중책을 짊어졌던, 아무리 오래 살든,
작은 사람으로 있을 수 있습니다. 만일 제가 여든 살까지 살고, 중국에서 아무데나 살다가
죽는다 해도 지금처럼 작은 사람으로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또 주님은 마지막 날에
지상의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일어서실 것이라고 성서에 씌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심판하신다고 하지 않고 구원한다고 하셨습니다.”(노란 수첩)


[ 4. 그분께서 하시는 것, 그것이 바로 제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

(첫 번째 은총)
- 성탄의 밤에, “사랑스런 갓난아기 예수께서 제 영혼의 어두움을 찬란한 빛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날 밤에 예수께서는 저를 사랑하시는 까닭에 용감하게 만드셨고,
당신의 무기를 제게 입혀 주셨습니다. 축복받은 이 밤 이후부터 저는 어떤 싸움에서나
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승리에서 승리로 나아갔습니다. 말하자면 거인의 경주를 시작
했던 것입니다.” 데레사는 그때부터 “덧없는 어떤 일에도 낙담하지 않는 은혜”(A)를
받으면서 또 그러한 사실을 훌륭하게 증명한다.

(나를 조금도 내세우지 말 것)
- “제 마음은 하느님의 뜻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것을 위에서 부를 때
내부에 침투하지 않는 것이 있어요. 이는 물과 섞일 수 없는 기름처럼 쉽게 미끄러지는
무(無)입니다. 사실 저는 아무것에도 동요되지 않는 깊은 평화 속에 항상 머물러 있습
니다.” 데레사의 지극히 깊은 이 평화는 어떤 상태에서도, 아무것에도 그 평정이 파괴
되지 않는 일종의 조화를 얼굴에 드러내 보였다. “저는 자기를 잊고 자신을 조금도
내세우지 않기로 힘썼습니다.”(노란 수첩)

- “저는 그토록 생생하게 느끼지 못했던 갈망, 즉 죄인들의 회심을 위해 일하고 싶은
갈망을 느꼈습니다. 한마디로, 제 마음 안에 애덕이 깃들이고, 기쁨을 주기 위해서는
저를 잊어야겠다는 필요를 느껴서 이때부터 저는 행복했습니다.” ... “저는 성녀가 되기
위해 고통을 많이 겪어야 하고 언제나 가장 완전한 것을 추구해야 하며 자기 자신을
잊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우리 자신을 잊읍시다.” (A)

- 데레사의 마지막 시를 얼핏 보면 완전한 포기를 잘 느낄 수 없다. 그러나 데레사는
한 정상에 이른 것이다. 데레사가 살 날은 5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활짝 핀 장미는
그대의 축일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지만 꽃잎이 떨어진 장미는 잊혀지고 버려집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꽃잎이 떨어지는 장미는 꾸밈없이 자기를 바쳐 사라져 버립니다.”
(시 51)

- 데레사는 방금 종부성사를 받았고 ‘오랜 여행의 여비’로 성체를 영하였다. “하늘의
이 빵은 제 몸을 강하게 해주었습니다. 보십시오, 저의 지상 순례는 끝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점을 한탄하기는커녕,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위해 제게 여전히
고통을 겪도록 허락해 주시는 것이 기쁩니다. 아, 두려움도 갈망도 없이 그분의 팔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참으로 감미롭습니다.” (벨이에르 신부에게 마지막을 쓴 편지)

- 데레사는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을 조금도 찾지 않으려고 많은 주의를 했다.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만을 위해서, 특히 기도 중에 자기 자신을 잊으려는 고심은 가장 섬세
하고 가장 은밀한 형태를 띠게 된다. 데레사는 서원식날 품에 지녔던 짧은 쪽지에
이렇게 적었다. “예수여, 당신께서 전부가 되어 주소서. 예수께서 전부가 되소서.
그리고 저는 무(無)가 되게 하소서. 예수께서 알려지시고 사랑받으시도록 나를 잊어야
하며 또 잊혀져야 한다.”

(모든 것이 은총입니다)
- “사랑은 장수(長壽)를 대신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천국에서는 이미 시간이 존재
하지 않기에 예수님은 시간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에만 세심한 주의를
하십니다. 많은 사랑을 저에게도 주시도록 예수님에게 청하여 주십시오. 저는 다정한
사랑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절실한 사랑을 원합니다. 오,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달콤한지요.”(편지)

- “하느님은 제가 단순한 병사로만 있기를 원치 않으시고 기사의 갑옷을 입혀 주셨
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적 싸움터에 달려가 자기 포기와 숨은 작은 희생으로 자신과
싸웠습니다. 본성으로는 아무 소득도 없는 어두운 이 싸움에서 저는 평화와 겸손을
찾아내었습니다.”(마지막 남긴 말씀)

- “주께서 항상 저를 인도하신 길은 참으로 인자한 길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게
어떤 갈망을 품게 하시고 꼭 그것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쓴 잔도 제게는
달게 생각되었습니다.”(A)

- “삶과 죽음에서 제가 택해야 한다면 저는 차라리 죽는 편이 좋습니다. 그러나 저를
위해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것이므로 저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 그것이 바로 제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 ”성사를 받는 것은 큰
은총입니다만 주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때에는 그것도 좋은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은총입니다.“(노란 수첩) ... 그분과 함께라면 모든 것은 사랑이고, 모든 것은 은총이며,
고통을 포함한 모든 것이 행복까지도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사랑하면서
고통을 겪는 것으로 충분하다. 데레사는 용기 있게 이 점을 재차 말했던 것이다.


[ 5. 사랑하며 고통을 겪는 것 ]

- ”사랑하며 고통을 겪는 것은 가장 순수한 행복입니다.“ 데레사의 마지막 시 속에
이런 진주가 박혀 있다. 몇몇 단어를 제외하면 그 당시 자신을 괴롭혔던 것을 전혀 드러
내지 않았지만, 이 시를 성모님에게 헌정하고 싶었다. 이 시는 성모님의 고통을 관상함
으로써 솟아오른 것이다. 이 관상에서 자기 고통의 정당성과 이 고통을 기쁨으로 튀어
오르게 하는 발판을 발견한 것이다.

- ”천국의 임금님께서는 당신 어머니께서 어둠 속에, 마음의 고뇌 속에 잠겨 있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여, 지상에서 고통을 겪는 것은 은혜겠지요?
그렇습니다, 사랑하며 고통을 겪는 것은 가장 순수한 행복입니다. 예수님은 제게 주신
모든 것을 도로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저 때문에 거북하게 생각하지 마시라고 해주세요.
그분께서 숨으실지라도 저는 그분을 기다릴 것입니다. 저의 믿음이 소멸될 일몰 없는
그날까지. (시 54)

- “하늘나라로 저를 이끄는 것은 주님의 부르심이고, 제가 그토록 원했던 대로 마침내
그분을 사랑하려는 희망이며, 그분을 영원히 찬양할 수많은 영혼들로부터 그분께서
사랑받으실 수 있게 하려는 생각입니다.” (편지)

(저는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 “저는 제 생애에 가장 큰 은총을 받은 것같이 엄청난 위로를 가득 받았습니다. 고통은
제 마음을 끌어당길 수 없는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고통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괴로워했는데 그날부터 저는 고통에 대해 참된 사랑을 느꼈습니다. 저는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하느님 안에서만 기쁨을 얻기를 원했습니다.”(A)

- “저는 첫영성체 때 저를 위해 지상의 모든 위로를 쓴맛으로 바꾸어 주시도록 예수님께
청했습니다. 그 후로는 고통 받고 싶은 갈망을 줄곧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것을
기쁨으로 삼을 생각은 못했습니다. 나중에야 저는 그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 고통
받고 싶은 갈망은 잿속에 파묻힌 불씨나 또는 때가 되어 열매를 맺는 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다시 말해 제가 고통을 받을 때 눈물을 흘리고
있어서 놀랍고 슬퍼서, 그렇다면 언제까지나 갈망일 뿐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노란 수첩)

(저는 고통을 겪는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 “나의 기쁨은 고통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의 기쁨은 어둠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며
나를 감추는 것이고 나를 낮추는 것입니다. 나의 기쁨은 유일한 나의 사랑이신 예수님의
거룩한 뜻입니다. 나의 기쁨은 작은 채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눈물을 흘릴지라도
나의 기쁨은 이 눈물을 잘 감추는 것입니다. 오! 꽃들로 고통을 가릴 줄 알 때 고통은
어쩌면 그렇게도 매력이 있는지요. 나의 기쁨은 내 마음이 유배되었을 때 생긋 웃는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나의 기쁨은 선택받은 사람들을 낳기 위하여 끊임없이 싸우는
것입니다. 나는 고통을 겪는 것이 기쁩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한 나의 기쁨은 당신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나 삶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던가요? 예수여,
나의 기쁨은 당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시 45) 데레사가 고통을 겪고 싶어 하고, 고통
중에서도 기쁜 것은 예수님의 수난에 결합되어 하느님을 위함인 것이다.

(당신을 위하여)
- “나는 고통을 받고 싶어요, 죽고 싶어요, 당신을 위하여”(시31)

- “시련은 세속에서 초탈하도록 많이 도와준다고 생각합니다. 시련은 세상보다 더 높이
바라보게 합니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편지)

- “어느 날, 우리는 영원히 천국으로 갈 것입니다. 그때에는 이 땅에서처럼 낮이나 밤이
다시는 없겠지요. 오,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우리 노고의 유일한 목표인 천국을 바라보며
평화롭게 걸어갑시다.”(편지)

- “성덕(聖德)은 아름다운 것들을 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런 것들을 생각
하고 느끼는 데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성덕은 고통을 당하는 것에, 그것도 모든 것에서
고통을 겪는 데 있습니다.” (편지)

- “오 하느님, 복된 성삼이시여,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당신을 사랑하게
하며 지상의 영혼들을 구하고 연옥에서 고생하는 영혼들을 도우면서 성교회의 영광을
위해 일하기를 갈망합니다.”(봉헌문)

- “영혼들을 구합시다. 그들을 위해 삽시다. 사도가 됩시다. 특히 사제들의 영혼을
구합시다. 사제의 영혼은 수정보다 더 투명해야만 할 것입니다.”(편지)

- “예수님이 위로받으시도록 저는 정말로 말없이 고통을 받고 싶어요.”(시 45) ...
“주님, 당신을 닮고 싶어요. 고통을, 저는 청합니다. 불꽃같은 당신의 말씀이 제 마음을
태워 주시기를” (시 31)

- 주님의 수난은 단어의 본래 의미에서 데레사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사로잡고 있다.
이 매력은 데레사가 아주 깊이 공경했던 ‘성면(聖面)’과 더불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다. 튀랭(Turin)의 수의인 이 그림(수난 끝에 모욕을 받으시고 엉망이 되어 버린
예수님의 얼굴)은 투르(Tours)의 갈멜의 한 수녀가 보급하였는데 즉시 데레사의
마음을 끌었다. “거룩한 이 얼굴을 보자 데레사의 영혼 안에서는 그분을 닮으려는
열렬한 갈망에 불이 붙었다”...“당신의 얼굴은 나만의 고향입니다.”(시 20) 이것은
데레사의 시중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시구(詩句)다.

- “고통을 정말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에게 고통의 가장 큰 은총을, 아니 오히려
사랑의 완전한 합일에 이르는 데에 더욱 심원한 정화의 은총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아, 제가 이것을 깨달았을 때 모든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받았습니다.”(시30)
이 사랑은 데레사의 고통을 축복해 주었고, 모든 것을 견디는 용기와 더욱더 고통을
겪으려 하는 거의 믿어지지 않는 갈망을 데레사에게 품게 하였다.

- 데레사는 고통을 겪는 것 이상으로 사랑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데레사는
“전적으로, 자기를 찾지 않고, 후회 없이, 자연스럽게”(시 51) 사랑하였다. 데레사는
사랑의 달콤함을 느끼지 않고 변치 않는 기쁨과 평화 속에서 사랑했다고 부언할 수 있다.
... 데레사는 사랑으로 인간에게 가장 흔한 고통을 변모시켰다. 우리도 데레사처럼 온갖
고통 속에서도 거리낌 없이, 경계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에 바칠 수
있기를 바란다.


[ 6. 데레사는 마리아 성화상 ]

- 데레사는 이상한 병이 회복(1883.5.13.)된 뒤, 승리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자신을
괴롭힌 세심증에서 해방되자 성모님의 미소에 대해 이런 말로 자신의 마음의 평정을
나타내고 있다. “저는 성모님이 저를 지켜 주시며 저는 당신의 딸이라는 것을 깨달
았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에게 엄마라는 이름밖에 드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A)

- “오, 하느님. 제가 오직 당신을 사랑하기만을 원하였고 다른 영광을 탐내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은 아십니다. 당신의 사랑이 어렸을 때부터 제 의향을 알아차려 만족시켜
주셨고, 저와 함께 자라서 지금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이 되었습니다.(C)

- “ ‘적게 용서받는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막달레나 성녀보다 저를 더 많이 용서해 주셨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가 죄를 짓지 않도록 미리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 제가 느끼고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제가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것은 당신께서
세심한 배려를 해 주시는 자비로우심으로 저의 영혼을 대죄에서 보호해 주셨기 때문
이지 믿음과 사랑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C)

- “성모님은 피투성이의 볼품없는 모습으로 변하신 예수님을 당신의 무릎 위에
안으셨습니다. 그것은 당신께서 보고 싶어 하는 것과는 딴판이었습니다. 아, 성모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저는 모릅니다. 만일 그러한 꼴이 저를 수녀님 앞에 떠메고 온다면,
수녀님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대로 이루어지라고 대답하세요.”(노란 수첩)

- 데레사는 큰소리로 성모님께 말씀드렸다. “좋으신 성모님, 제가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은 것은 간호 자매를 몹시 고단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 인자하신 성모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노란 수첩)

- “저에겐 지상의 모든 것이 가려진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모님의 베일에
숨어 있는 듯이 느꼈습니다. 그때 저는 식당 소임을 맡고 있었는데 무엇을 하든지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고 빌린 몸으로 행동하고 있는 듯 하였습니다. 이런
상태가 일주일간 계속되었습니다.”(노란 수첩) ... 데레사는 삶의 중대한 순간에 결코
잊지 않고 마리아를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이 오자 성모님에게 도움을
청하며 숨이 차다고 말한다. 원장 수녀가 데레사의 무릎 위에 갈멜 산의 마리아의
성화를 내려놓자 데레사는 간구한다. “오 어머니, 어서 저를 성모님에게 바쳐 주십시오.
저는 기진맥진한 아이입니다. 잘 죽도록 준비해 주십시오”(노란 수첩) 항상 겸손을
깨닫고 실천했기 때문에 준비가 된 것이라고 말하며 격려해 주는 공자가의 마리아
원장 수녀에게 용감하게 대답하는 데레사는 성모님과 가장 가깝다.

- “성모님이 하늘과 땅의 여왕이시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여왕이시기보다도 어머니이십니다. 마치 태양이 떠오름으로써 별의 모습을 지워 버리듯
성모님도 그 특권의 빛으로 다른 성인들의 영광을 덮어 버린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어머니가 아이들의 영광을 지워버리시다니. 이와는 반대로
성모님은 뽑힌 자들의 빛을 한층 더해 주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노란 수첩)

- 데레사는 영가 “오 마리아여, 제가 왜 당신을 사랑하는지”에 관해 말했다. 실제로
데레사는 성모 마리아에 관한 장시(長詩), 일종의 ‘마리아 전서’를 자기 나름대로 썼다.
그리고 데레사의 이 생각은 아주 명확하고 동시에 매우 심오한 것이었다. 데레사가
성모님을 여왕이라기보다는 어머니로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여왕은 하늘의
여왕님을 만나러 가기 전에 그분께 대한 노래를 하고 싶어 했다. “저는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아직 있습니다. 저는 동정 성모님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을 노래로
표현할 수 있기를 항상 열망했습니다.”

- “마리아여, 당신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그리고 당신은
우리를 위해 그분께로부터 멀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모두 주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바치는 것입니다.”(시) 이 마지막 시구(詩句)는 널리 알려져 있다. 데레사는
이 시를 체험했고 성모님은 더욱 그러하셨다. 진복의 문턱에서 제일인자이신 분은 지상
에서 당신을 반영한 사람에게 노래하실 수 있다.

- 공동체의 한 수녀가 휴식 시간 중에 “예수 아기의 데레사 수녀를 보세요. 하늘에서
온 사람 같지 않아요? 데레사는 천사 같아요.”하고 말할 때 동정 성모님의 젊은 동행인
들은 가끔 이런 식으로 감탄했다. 이 사실을 보고하고 있는 데레사의 원장 수녀가 주목한
것은, 실제로 데레사는 명상에 잠긴 모습에 “황홀한 만한 아이의 작은 얼굴 모습을 겸비
했고 이로부터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향기 같은 것이 발산되었다.”는 것이다. 증인들은
여러 시복심사에서 순진무구한 이 모습을 강조하였다. ... “제가 너무 고통스러울 때 슬픈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웃음으로 대응합니다. 처음에는 이 일을 잘 해낸 것만은 아닙니다만,
지금은 몸에 밴 습관이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고백했다.” (‘리지외의 데레사 얼굴’)

- “오, 마리아여, 제가 만일 하늘의 여왕님이고 당신께서 데레사라면 당신께서 하늘의
여왕님이 되시도록 저는 데레사가 되고 싶어요. 승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그린 그림
이면에 있는 데레사의 마지막 자필은 이러하다. 이것은 데레사의 전생애의 서명인 것이다.


[ 파 견 ]

- “주여, 어떤 영혼이 취할 듯한 당신 향기에 사로잡히게 되면 저 혼자만 달릴 수 없고,
그가 사랑하는 모든 영혼들도 뒤따라간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억지로
애써서 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개천이 흘러가는 중에 만나는 모든 것을 깊은 바다로
휩쓸어 끌고 가는 것같이... 오, 예수여, 당신 사랑의 가없는 대양에 잠기는 영혼도
자기의 모든 보화를 끌고 갑니다.”(C) 사랑의 불이 붙은 영혼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진정한 기도 생활의 역설적인 기준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생활의 시금석과
같은 것을 준다. 하느님과 일치를 이룬 삶은 편안함과 이기주의와는 완전히 다르다.
즉 이 삶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몰두하여 그의 마음의 모든 비밀을 발견하고, 또 그의
마음에 따라 우리의 마음을 강대하게 만들기 위해 자기를 잊는 것, 황홀함이다.

- 데레사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그 길을
내주고 있다. 다만, 고통을 조금 겪는 것과 모든 것을 무릅쓰고 많이 희망하는 것에,
그리고 무한히 사랑하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사랑만이 오직 값진 것입니다.”
(마지막 남긴 말씀)


[ 부록 ] - 데레사의 생활과 환경에 대한 고찰

- 신앙이 아주 독실한 가정의 아홉 번째 막내딸 데레사 마르탱은 노르망디(프랑스)
출신인데, 1873년 1월 2일 알랑송에서 태어나 1897년 9월 30일 리지외의 갈멜
수녀원에서 죽었다. 이승에서 24년이란 겸손한 삶을 살았고 곧 이어서 잠깐 동안에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이 성녀의 덕의 빛은 인간적인 모든 설명을 불허한다.
(책 표지의 글 참조)

- 데레사는 분명히 정신적인 원인의 이상한 병에 심하게 걸린다. 성모님께서 1883년
5월 13일 데레사에게 웃으심으로써 그녀를 낫게 해 주신다. 이 날은 데레사의 생애
에서 중대한 날이다.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열성으로 데레사가 준비했을 첫영성체의
기억 역시 중요하다. 그때 데레사는 열한 살이었다. 데레사는 갈멜의 숨은 생활 속에서
하느님께 자기를 모두 봉헌하고, 그곳에서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며 죄인들의 용서를
구하고 선교에 대한 열렬한 갈망을 실현하기를 원하였다. 이런 계획을 위해 모든 장애물
들을 무찌르고, 나아가서 모든 반대를 이겨 낸 후, 열다섯 살에 갈멜에 들어간다. 데레사는
절대적인 이 갈망을 실현하기 위해 로마에서 개인적으로 교황께 간청하러 갔었다. 원장
수녀가 된 폴리나 언니(예수의 아녜스 원장 수녀) 덕분으로 데레사는 1894년, 어린
시절의 추억을 쓰도록 부탁받는다. 어린 시절부터 수도생활의 초기까지 데레사가
‘주님의 자비로우심’이라고 부르는 노래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 예수의 아녜스 원장 수녀로부터 수련 수녀들을 보살피는 책임을 애매하게 맡게 된
데레사는 ‘영적 어린이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신뢰와 사랑의 길, 자신을 위해
발간한 ‘작은 길’을 젊은 친구들에게 열렬히 가르친다. 공자가의 마리아 수녀가 원장이
되자, 이 원장 수녀는 죽음에 임박한 동생의 성덕을 예감한 아녜스 수녀의 격려를 받아
데레사에게 추억의 이야기를 쓰도록 한다. 데레사는 실제로 일 년 이상 몹시 아팠고,
새로운 이 이야기는 처음 것과 다른 음조를 띤다. 데레사는 이 글을 끝낸다. 데레사는
성심의 마리아 수녀(마리아 언니)의 요청에 은해 긴 편지를 썼는데 여기서 자신의
소명인 사랑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다. 데레사는 자신이 발견한 것에서 느끼는 환희를
영적인 문학의 이 보배 속에 넘겨주고 있는 것이다. “저의 소명을 드디어 찾았습니다.
저의 소명은 사랑입니다. 어머니, 저는 교회의 심장에서 사랑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모든 것이 될 것입니다.”

- 세 편의 자서전(A, B, C)은 한데 모아 데레사가 죽은 뒤 ‘한 영혼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데레사의 자매들은 여기서 다른 글들의 부분 원고들 즉, 편지와
시와 다른 회상록들을 첨가했다. 이 모든 글들은 그 후에 상세히 연구되었고, 탁월한
서문과 비평적 주석이 곁들여져 출간되었다. ... 성면(聖面)의 예수 아기 데레사 수녀는
1923년 4월 29일 시복되었고, 그녀가 죽은 뒤 31년이 조금 못된 1925년 성인품
(교황 비오 10세 서명, 시성)에 올랐다. 데레사는 전교의 주보성녀로 선포되었으며,
잔 다크 성녀와 함께 프랑스의 제2주보성녀이기도 하다. 데레사의 영향력은 상당히
중요하고 무궁무진한 것으로 남아 있다. ‘지상에서 선을 행하여 천국을 지내겠다’라는
데레사의 약속은 폭넓게 지켜져, 전 세계에서 오는 수많은 순례자들을 리지외로 항상
끌어들이고 있다.

... #085 독서 메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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